2013. 1. 2. 12:30ㆍ독서후기
고맙다 잡초야
- ‘야생초 편지’두 번째 이야기 -
■ 황대권 지음
0 1955년 서울 생, 경복고, 서울 농대, 뉴욕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3세계 정치학 공부
0 간첩단 사건에 연루 무기징역 선고, 서른 살부터 13년 2개월 복역
0 1998 출소 후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초청으로 영국 슈마허 대학과 임 페리얼 대학에서 생태디자인과 농업 생태학 공부
0 2004년 생명평화운동에 투신, 전남 영광에서 ‘생명평화마을’ 운영
0 야생초 편지, 백척간두에 서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등의 저서
■ 서문
참으로 오랜만에 새 책을 낸다. 그동안 칼럼집을 포함하여 이러저러한 책들을 냈지만 본격적인 생태 에세이로는 ‘야생초 편지’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글의 성격상 전작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 소제목을 ‘야생초 편지 두 번째 이야기’로 하였다. ‘야생초 편지’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교도소 안에서 야생초와 함께한 삶의 기록이라면 이 책은 출소 후 지금까지 한적한 전라도 산속에서 자연과 사람을 벗 삼아 놀던 기록이다. ‘야생초 편지’는 옥중이라 어쩔 수 없이 편지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 책은 그런 제약 없이 쓴 에세이다.
나의 생태적 글쓰기와 성찰의 근본은 천지인(天地人) 사상에 있다. 온갖 사상 이론을 다 뒤져보아도 조상들께서 물려주신 천지인 사상만큼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 그에 따라 본문의 글들도 하늘, 땅, 사람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굳이 분류하자니 그렇게 된 것이지 꼭 그렇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천지가 다 들어 있고, 하늘과 땅에도 사람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 번도 사람을 천지와 구별하여 생각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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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실려 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은 ‘생태영성’이다. 누구라도 생태영성을 체득한 사람이라면 그는 천지인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2012. 10월 태청산 기슭에서 바우 황대권 두손모음
제1부 하늘 天
■ 겁쟁이 느림보의 고백
나는 겁이 많다. 행동이 느리고 말이 굼떠서 겁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중고등학교 6년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얌전하게 지내고 대학생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느려터진데다 겁이 많으니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러다가는 굼벵이처럼 땅만 쳐다보다가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으로 한번 고쳐보자고 독한 결심을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농대에는 술만 퍼먹고 다니는 ‘불량 서클’이 있었다. 남들은 술 먹고 객기 부린다고 비아냥댔지만 그들은 ‘호연지기’를 기른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술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잘 못하는 절도가 아니라 전혀 못했다. 소주 두 잔만 마시면 전신이 시뻘게지고 곧이어 졸음이 왔다. 그러나 고질적인 성격을 고치는데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클에 들어가서 군 생활을 포함하여 대학을 8년 만에 졸업한다. 서클 활동을 하도 열심히(?) 하여 그리된 것이다. 그 서클을 나온 이들은 학교보다도 서클 멤버로서의 정체성을 더 중히 여겼다.
대학 졸업 후 나의 성격은 많이 변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과격하다 할 정도로…. 그 과격함은 젊은 날의 소영웅주의와 결합하여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만다. 훗날 내가 국가안전기획부 지하실에 갇혀 만 60일에 걸친 끔찍한 고문을 견뎌낸 것도, 곧바로 이어진 오랜 감옥 생활을 이겨낸 것도 그 시절에 겪은 ‘낭인 훈련’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으로 믿는다.
출소 후 나는 옥중에서 얻은 깨우침대로 살기 위해 전라도 영광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인가라곤 없는 산속에 컨테이너 박스 하나 달랑 가져다 놓고 시작한 산중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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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이었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컨테이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달이 구름 속에 숨었는지 사방이 캄캄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커다란 플래시 불빛이 비추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나는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심장이 터질듯 곤두박질쳤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살펴보니 야행성 짐승의 두 눈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였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도망치면 녀석이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발로 앙버티고 서서 녀석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말하자면 눈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얼마가 흘렀을까. 녀석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가 싶더니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와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 후 조용히 컨테이너 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달님은 보이지 않았고 눈앞의 숲속은 블랙홀처럼 어둠 그 자체였다. 그 숲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숲 가운데 들어서서 작은 나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심호흡을 했다. 나무들이 뿜어내는 밤공기가 진하게 묻어나왔다. 작정을 하고 들어선 탓인지 그렇게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10분, 20분, 30분… 어느 순간엔가 이제 내 앞에 멧돼지가 지나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캄캄한 숲속에 서서 숲과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충분히 만끽하고서야 컨테이너로 돌아와 남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내 딴에는 두려움을 쫓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숲이 보기엔 웬 어설픈 동물이 기어들어와 이상한 퍼포먼스를 하고 돌아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한밤중의 산을 낮만큼이나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밤의 산이 낮보다 매력적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위의 어둠과 함께 훨씬 더 포근하고 조용하다. 그리고 밝은 달빛 아래 반짝거리는 나무들의 속삭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겁 많은 느림보였던 내가 밤의 산을 좋아하게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 천지 벌거숭이
내 걸음이 원래 팔자모양새이기는 하지만 벌써 일주일째 팔자 모양으로 어기적거리고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여름철 농사일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땡볕에 김매기다. 그늘 하나 없는 넓은 밭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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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고 있노라면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땀이 강물처럼 흘러내린다. 아무리 간편한 복장을 한다 해도 이래가지고는 매일 옷 빨다가 날이 새고 만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아예 발가벗고 일하는 것이었다. 그날도 홀라당 벗은 채 낫을 들고 고구마 밭을 매는 중이었다. 서걱서걱 풀을 베어나가는데 앞에서 벌 두어 마리가 선회비행 하는 것이 보였다. “녀석들이 풀 속에 웬일?” 하며 앉은걸음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아랫도리가 어딘가에 불에 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헉 뭐지?” 낫을 내던지고 아픈 곳에 손을 갖다대니 벌 한 마리가 꽁무니에 침을 쏟아놓고 죽어 있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 거울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세상에나! 놈이 하필이면 평소에 자기 손으로도 만지기 힘든 항문과 불* 사이를 정확히 쏘아버린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나자 그 부위가 땡땡하게 부어올라 걷기도 힘들어졌다.
이 사실을 농장에 놀러온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축하하네! 돈 주고도 맞기 힘든 봉침을 급소 중의 급소인 회음혈 자리에 공짜로 맞았으니 그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나” 라며 엉너리를 친다.
이런 소동을 겪은 후에도 나의 천지벌거숭이 놀이는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진드기에 물려 그 무섭다는 쯔쯔가무시병을 앓고도 나는 틈만 나면 벌거벗고 일을 했다. 확실히 인간의 피부는 문명이라는 옷을 입고 너무도 오랜 세월을 보낸 탓에 자연 상태에서 대단히 취약하다. 하지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자면 그러한 성가심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처음에는 조금 괴롭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자연 예찬자나 귀농인들이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얘기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 ‘자연 속에 나체 되기’를 으뜸으로 친다. 흔히들 옷을 벗어던지면 공연히 쑥스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옷을 입은 상태에서 가졌던 생각일 뿐이다. 옷을 벗고 한 시간만 돌아다녀 보면 그 모든 우려가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비즈니스맨들도 협상을 할 때 ‘나체 효과’를 곧잘 이용한다고 한다. 사우나 같은 데서 벌거벗고 얘기를 나누면 아무래도 소통이 용이해지는 모양이다. 자연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늘 벌거벗고 있는데 나만 갑옷에 둘러싸여 있어서는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내가 가진 것을 먼저 꺼내 보여주어야 상대방도 자신의 속살을 보여준다. 실제로 벌거벗고 산책을 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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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위에 걸터앉아 상념에 잠기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에 녹아드는 느낌이 든다. 좀 더 적극적으로 벌거벗고 누워 온 몸을 땅에 밀착시킨 채 휴식을 취하는 방법도 있다. 영어로는 ‘어씽(earthing)’ 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자신과 땅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어씽이나 나체욕은 모두 훌륭한 자연 치유 방법이다. 자신보다 큰 에너지를 가진 존재와 마주하여 온몸으로 소통과 수용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현상이 벌어진다. 옷을 입고 한다고 해서 효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나체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나체로 일하면 유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빨래 걱정이 없어진다. 맘껏 땀 흘리고 저녁에 간단히 샤워만 하면 된다. 둘째로 용변을 보기 위해 굳이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다. 일하다가 그냥 그 자세에서 일을 보면 된다. 이것을 보면 왜 개 팔자가 상팔자인지 알게 된다. 셋째로 온몸에 햇빛을 받음으로써 피부가 건강해진다. 특히 늘 습기에 젖어 있는 부위는 일부러 햇빛에 노출시켜 자주 일광욕을 해줄 필요가 있다. 햇빛은 살균 작용뿐만 아니라 피부를 통해 비타민을 생성시켜주기도 한다. 넷째로 나체로 거닐다 보면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치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벌거벗은 몸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금방 친해지게 만든다. 너와 나 사이에 장벽이 없으니 굳이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 션찮은 반찬으로 맛있게 먹기 - 플라스마 식사법
우리의 식생활이 육식 위주로 바뀌면서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로 쌀 소비량이 줄었으며, 둘째로 식비는 늘어났는데, 셋째로 건강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식사에 들어간 지출이 더 늘어났는데도 국내 농업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건강만 더 나빠졌다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마이너스 일석삼조’ 라고 해야 하나?
나는 돈도 별로 들이지 않고 맛있게 먹으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플러스 일석삼조’의 식사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찬이 아니라 밥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 식사법은 반찬이 많이 필요 없다. 반찬은 그냥 그렇고 그런 두세 가지면 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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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예를 들면 김치나 장아찌, 콩자반, 멸치볶음처럼 흔해빠진 것이면 된다. 찬을 많이 차려 놓아도 젓가락이 별로 가지 않는 식사법이다. 비밀은 밥에 있다. 유기농 현미 잡곡으로 밥을 하여 천천히 씹어 먹으면 된다. 늘 들어왔던 얘기라고 무시하지 말기를 바란다.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얘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실천을 않으니 공염불이 되는 것처럼 현미식도 비슷한 처지에 있지 않나 싶다.
어제 저녁 내가 먹은 밥상이다. 그릇 수는 달랑 세 개. 밥 한 그릇, 반찬 두 그릇, 기분에 따라 국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어제는 일하다가 시간이 없어 국을 만들지 않았다. 반찬은 왕고들빼기 김치와 무장아찌이고, 밥은 현미에 온갖 잡곡과 견과류를 혼합한 현미 잡곡밥이다. 나의 식단은 되도록 슈퍼마켓 신세를 지지 않는 방향으로 짠다.
밥은 현미를 기본으로 하고, 콩과 견과류를 있는 대로 섞어 넣는다. 보통은 열 가지 남짓 하지만 많이 넣을 때는 열다섯 가지가 넘기도 한다. 이것도 그날 기분에 따라 넣는 종류와 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밥이 다 되었으면 먹기 시작한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밥이 보약이 되기도 하고 그냥 똥이 되기도 하니까. 숟가락을 들기 전에 먼저 이 모든 음식을 마련해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여기서 하느님은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이 밥 속에 깃든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이라고 했다. 짧은 시간에 간단히 끝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하 시인이 “밥을 모시는 것은 하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라고 노래한 것을 상기하면 이해가 더 쉬워질 것이다.
약간 고슬고슬한 밥을 한 숟갈 정성스럽게 떠서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한다. 흰쌀밥만 먹어온 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다.
음식물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는 온 신경과 에너지를 씹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라즈니쉬 말투로 하면 ‘씹는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씹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눈은 뜨고 있어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 오쇼 라즈니쉬(1331-1990) : 물리학, 공학, 생물학, 심리학 등 모든 학문 에 정통하고 종교에 비판적이었던 사람
- 라즈니쉬 말투 ; 무례하고 오만 방자한 말투. 혹은 달관한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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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의 씨눈이 어금니 사이에서 갈릴 때에 나는 고소한 맛, 녹두와 쌀이 으스러지면서 내는 구수한 맛, 조의 까슬한 맛, 수수의 텁텁한 맛, 보리의 미끄덩한 맛, 된장콩의 비릿함, 밤의 달콤함, 잣의 기름짐, 율무의 사각거림. 은
행의 씁쓰름함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침 속에 녹아들어 한데 어울리면서 내는 맛, 이런 맛과 미묘한 움직임을 느끼기 위해서는 명상하듯 천천히 오래 씹어야 한다. 오래 씹어야 침이 많이 나오고, 침이 많아야 소화가 잘되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사 방법이 ‘플라스마 식사법’이다. 플라스마란 고온에서 음전하를 가진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로서 전하 분리도가 상당히 높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양과 음의 전하수가 같아서 중성을 띠는 기체로 음식물이 입 속에서 완전히 분해되어 흡수되기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을 플라스마에 비유한 것이다.
플라스마 식사법에서 반찬이 많이 필요 없는 이유는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밥을 분해하고 음미하는 대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반찬의 역할이 적기 때문이다.
플라스마 식사법의 구성요소는 자연식품, 씹기, 침, 그리고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가지가 어우러져 션찮은 반찬을 가지고도 기막힌 맛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살찌운다. 흔히들 ‘음식은 몸의 양식이고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음식은 ‘잘만 먹으면 몸과 마음의 양식이 된다.
■ 설거지 놀이
인정받는 최고 기업 경영자나 농사꾼들이 일과 관련하여 늘 하는 말이 있다. “일이 놀이가 되게 하라.”
일이 놀이가 되면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자치지 않고 오히려 심리적 만족감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일이란 의무로 하는 것이지만 놀이는 쾌락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무로서의 일은 기분이 나쁘거나 몸이 고단해도 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놀이는 기분 나쁘면 안 하면 그만이다. 만약 일과 놀이가 하나로 될 수 있다면 우리네 삶은 훨씬 풍요롭고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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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농장에서 내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설거지할 때다. 대체로 저녁식사 그릇까지 합해서 낮에 한꺼번에 하는데 햇볕 따사로운 샘터에 앉아서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하는 설거지는 그야말로 환상이다. 먼저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그릇들을 넣고 물을 채운다. 기름기가 묻은 그릇은 이미 휴지로 깨끗이 처리했기 때문에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킬 만한 물질은 별로 없다. 비누칠이 필요 없는 그릇부터 꺼내어 천천히 맑은 물로 닦는다. 수세미와 그릇이 마찰되면서 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그리고 샘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어울려 마치 경쾌한 음악처럼 들린다.
기름기가 묻어 있는 그릇은 나는 주로 폐식용유로 만든 빨랫비누를 사용한다.
부엌의 싱크대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 속에서 설거지를 하면 눈앞에 돌이며 풀이며 물속의 작은 생물들이 보이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세제는 안 쓰게 된다. 사람이 많이 오는 행사 날에는 비누 대신 칡잎은 따 놓는다. 칡잎을 손으로 비벼서 그릇을 닦으면 의외로 잘 닦인다.
한번은 설거지를 하는데 닦아 놓은 그릇 밑에서 가재란 놈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이곳은 물이 졸졸 흐르는 산골이라 가재가 많다. 한 번은 찌갯거리를 씻다가 돼지고기를 한 점 흘렸는데 어디에서 기어 나왔는지 가재가 벌떼처럼 달라붙어 식겁한 적이 있다. 설거지를 하면서 가재와 놀다 보면 어느덧 뒤통수에 햇볕이 따갑다.
이런 식의 설거지를 노동이나 일로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에서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은 피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휴식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이 문제로 인해 부부간에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훨씬 줄어들지 싶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휴식이지만 무언가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된다. 그것도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생명 살림의 한 과정으로 수행의 의미까지 덧붙인다면 일부러 찾아가서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설거지 장소를 쾌적한 공간으로 연출해야 한다.
그것은 첫째가 햇빛이고, 둘째가 신선한 공기이며, 셋째가 녹색과 자연의 소리다. 먼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시킨 다음 부엌의 조명을 한껏 밝게 하고 싱크대 주위를 깨끗이 정리 정돈한다. 그리고 평소 베란다에서 주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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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꽃 화분을 하나 갖다 놓는다. 거기에 좋아하는 음악까지 틀어놓으면 대충 놀고 싶은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까? 그리고는 요리할 때처럼 정성으로 세심하게 설거지를 하다보면 직장에서 담아온 스트레스가 어느덧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남자들이 집안에서 거들 수 있는 허드렛일들이 많지만 나는 그중에 설거지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놀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만 되면 나중에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일-놀이’를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모닥불 명상
나처럼 불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모르겠다. 오죽하면 어떤 자기소개서의 직업난에 장난삼아 ‘화부(火夫)’라고 써넣었을 정도다. 성인이 되어 명상이란 것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어릴 적부터 불을 피워놓고 놀 때 느꼈던 삼매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명상의 목적이 존재의 차원 변화를 추구하는 것일진대 불이야말로 눈앞에서 차원 변화를 확실히 보여준다. 단단한 나무가 불꽃을 일으키며 먼지(재)로 돌아가는 과정 자체가 세상 모든 유무형 존재들의 한 생애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유명인의 무덤이나 올림픽 성화 같은 데서 불을 영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천년만년 갈 듯 세워놓은 장대한 궁전이나 사원도 불 앞에서는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았던 영웅호걸도 결국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다만 인간들은 생의 어느 순간에 화려하게 타올랐던 불꽃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모닥불을 피우려고 젖은 장작을 가지고 아무리 애를 써봐야 연기만 나지 불은 잘 붙지 않는다.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먼저 자신이 젖은 장작이 아닌가 생각해볼 일이다. 제 안에 미해결의 문제가 잔뜩 쌓여 있거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먼저 잘 마른 작은 장작으로 불을 붙인 후 젖은 장작은 불 가까이에 세워서 말려야 한다. 화력이 좋을 때는 젖은 장작을 던져도 말라가면서 잘 탄다. 일에 탄력이 붙으면 웬만한 부정적 요소들은 별 장애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초기에 불이 잘 안 붙을 때에는 장작 사이에 공기의 출입이 자유로운지 살펴야 한다. 무조건 정작을 많이 쌓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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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간격을 잘 유지해야 일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가는 장작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금방 타버리고 만다. 웬만큼 불이 붙으면 굵은 장작을 올려 놓고 불문을 막아야 불이 오래간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데리고 있어야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다 나가버리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어차피 나갈 것이므로 필요할 때에 적절히 쓰면 된다. 대신 믿음이 가는 사람은 요소에 박아두고 생활의 안정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처럼 세상일이 잘 안 풀릴 때에 모닥불을 피우고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의외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불에 그렇게 끌리는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인류의 기원 문제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다른 영장류와 자신을 차별화하기 시작한 것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다.
물질적 진화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도 인간은 불을 통해 바로 원시 상태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불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인간의 몸에 각인된 원시성(자연)을 불러내는 가장 원초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영광으로 돌아와 농장을 재건하며, 폭설로 무너진 하우스를 철거했다. 창고로 썼던 하우스 안의 온갖 물건들이 내 키만큼 쌓였다. 해는 저물어 어느덧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볏단에 불을 붙여 모아 놓은 더미에 던져 넣었다.
재료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타오르는 불꽃도 저마다 다 달랐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타는 놈, 비실비실 연기를 내며 타는 놈, 소리 없이 안으로 타들어 가는 놈, 폭죽을 터뜨리며 타는 놈, 타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어느새 다 타버리는 놈, 하늘거리며 우아하게 타는 놈, 눈물을 질질 흘리며 타는 놈, 요상한 피리 소리를 내며 타는 놈, 한순간에 타버리고 후루룩 바람에 날아가는 놈, 좀처럼 안타다가 큰 불꽃이 다가오자 그때서야 타는 놈, 끝끝내 안타다가 시꺼먼 숯이 되고 마는 놈……. 우리 사는 모습이 꼭 그랬다.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무려 세 시간이 걸렸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검은 장막을 배경으로 무수한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쇠스랑을 들고 와서 숯덩이가 된 불씨를 하우스 바닥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바닥에 얇게 펼쳐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제풀에 식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 앉아 불씨들을 바라보는데….
혛용불가(形容不可) 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캄캄한 산 속 너른 바닥에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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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불씨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데, 마치 거대한 불씨의 바다위에 둥실 떠 있는 조각배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에 두 개의 우주가 흐르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의 우주가. 발아래에는 타고 남은 불씨들이 연출하는 땅의 우주가 펼쳐졌다. 이 예기치 않은 축복을 행여 잃을세라 우리는 침묵 속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생과 사, 좋고 싫음, 고통과 쾌락 따위의 모든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했다.
모닥불의 매력은 타오르는 불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타오르기 전의 미세한 불꽃에서부터 다 타고 남은 불씨에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마법과 같은 울림이 숨어 있다. 물론 요즘같이 불에 대한 감시가 심하고 사방이 잡목이 우거진 환경에서 모닥불 피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만한 환경이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불을 피워보자. 그리하여 불과 함께 태곳적 인간이 되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 햇빛과 섹스하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되게 앓아누웠다. 피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 그리된 것이다. 꼼짝 않고 양지 녘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온 몸의 긴장을 풀고 내리쬐는 햇빛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허파 깊숙이 신선한 공기가 들이차고 피부의 온도가 올라가자 기분이 점차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햇빛을 받고 있자니 마치 온돌에 누워 몸통을 지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햇빛에 의지하다 찬 공기가 조금만 스쳐도 전율하듯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오히려 바람의 냉기와 태양의 온기가 교차하는 순간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분명 바람의 냉기는 바로 전 햇볕에 달궈진 달콤한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다음 순간의 따스함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순간적인 오싹함 뒤에 오는 따스함의 쾌감을 꽤 긴 시간 동안 맛보면서 섹스할 때의 오르가즘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메그레가 쓴 ‘아나스타시아’ 연작을 보면 자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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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놀라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녀는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불가사의한 능력을 전해 받았는데 그 모두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초능력에 가까운 것들이다.
인간이 자랑하는 유구한 ‘문명’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 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도구로 만들어 손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더니, 다음에는 옷을 만들어 피부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불을 만들어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혀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나중에는 집을 지어 살면서 몸 전체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오늘날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인간의 감각은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런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과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처음에 ‘아나스타시아’ 를 읽을 적에 그녀가 숲 속에서 벌거벗고 산다든지, 혹은 같은 인간과 사랑을 나누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거의 자연 수준에 가까운 몸의 감각을 발달시켜왔기 때문에 문명세계의 옷이 필요 없었다. 또한 자연과의 은밀한 사랑(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므로 사랑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충분히 채울 수 있덨다.
자연으로부터 오는 기운과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학자들은 ‘생태감수성’이라고 말한다. 생태감수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몸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자연에 가깝게 만들거나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점진적으로 우리 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되찾아야 한다. 에어컨, 선풍기를 떼어 내어 온도 적응 능력을 기르고, 귀에 달고 다니는 이어폰을 떼어내어 청각을 회복하고, 온갖 방향제와 세제를 없애서 후각을 회복하고, 합성섬유를 피해 피부 감각을 회복하고, 무엇보다도 온갖 인공감미료를 멀리하여 미각을 회복해야 한다. 집도 밀폐된 공간에 실내 공기를 덥히는 서양의 난방을 피해 온돌이나 자연 채광을 이용한 생태주택으로 바꾸어야 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되게 앓기는 했지만 그를 통해 큰 은혜를 입었다. 일에 쫓겨 살다 보니 너무 오랫동안 나의 감각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로 인해 몸이 무너졌고 이성과 의지에 의해 억눌려 있던 감각들이 하나둘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각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한 줌의 햇빛이라도 놓치지 않을세라 집중하다 보니 햇빛의 입자 하나하나까지 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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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병이란 인간의 게으름을 일깨워주기 위해 자연이 선사하는 고통어린 선물이 아닌가 싶다.
■ 장작패기 명상
지난겨울 한파에 보일러가 얼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장작 난로 하나를 들였다. 불 때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얼씨구나 했다.
나는 수많은 명상 가운데 장작불 명상을 최고로 친다. 머릿속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심사가 뒤틀려 있어도 한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이 차분해 진다. 장작 패기도 마찬가지다. 두 손으로 도끼를 단단히 거머쥐고 온 몸의 기를 모아서 내려찍다 보면 도끼질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버린다. 하긴 무슨 행위를 하든 그 자체가 됨으로써 명상 상태에 이를 수 있거늘 굳이 불 바라보기나 장작 패기가 특별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장작불 명상은 이 둘이 상보적으로 결합되어 그야말로 특별한 명상이 된다. 먼저 도끼질을 통해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충분히 근육을 풀어준 다음. 조용히 앉아 불꽃과 하나가 되면 거의 완벽한 명상에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밀가루를 잘 반죽해서 빵을 구워야 폭신하고 맛있는 빵을 얻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같은 도끼질이지만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존재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단순히 장작이 필요해서 아무 생각 없이 장작을 패면 그야말로 단순노동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네 삶은 이런 식의 의미 없는 단순 노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의미가 있다 해봐야 그것으로 인해 내가 이득을 보느냐 마느냐 정도이다. 이득을 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은 아무래도 표피적이다. 이득이 없을 때는 그와 반대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존재의 ‘깜박거림’ 수준까지 내려가면 생명의 실체와 맞닿게 되어 있다. 표현할 수 없는 일체감과 자유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현대과학은 모든 존재가 에너지의 깜빡거림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냈으나 그 깜빡거림을 있게 하는 생명력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캄캄하다.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그저 아는 만큼, 느끼는 대로 향유하고 나누면 된다. 생명은 순간순간 생성되고 소멸한다. 우리네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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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다 패고 나면 마당에는 적당한 크기의 장작과 파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장작은 장작대로 파편은 파편대로 그러모은다. 여기서 장작은 몸통이고 파편은 ‘찌끄러기’다. 흔히들 몸통이 중요하다고 하여 찌끄러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찌끄러기 없이는 절대로 몸통에 불을 붙일 수가 없다. 개중에는 몸통이라고 으스대는 잘생긴 장작이 있어 녀석의 출처를 조사해 보니 사정이 아주 달라진다. 녀석은 근처 야산에서 숲이 우거져 간벌을 했는데 벌목꾼에게 그만 찌끄러기로 낙인이 찍혀 벌목되어 온 것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 같은 생명의 순환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불 속에서 빠져나간 나무의 생명력은 대기 중의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 창조의 원료로 쓰일 것이고, 타고 남은 재는 흙으로 돌아가 역시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이 될 터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몸통이 되기도 하고 찌끄러기가 되기도 한다. 형태를 잃은 후에도 무수히 다른 생명으로 거듭 태어난다. 도끼질을 하는 나 역시 이 거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 깜빡거리는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 고속주행 명상
강원도 화천군 농민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던 중 졸면서 운전하다가 강촌의 군경합동 검문소 바리케이드를 들이 받았다. 다행히 검문소 중대장이 ‘야생초 편지’ 독자여서 일처리를 잘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큰 낭패를 볼 뻔 했다.
생태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이 역설의 시대에 어쩔 수 없음을 핑계로 아무 생각도 없이 차를 타고 다닐 수는 없다. 운전 중에 명상에 들어보기로 했다.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흔히들 명상을 시도하다가 잠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잘만 하면 그럴 일이 없다. 여러 차례 실험을 한 결과 오히려 졸음운전 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피로 회복과 기력 보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명상의 목적은 ‘작은 나’를 벗어나 ‘큰 나(또는 일체만물)’와 하나가 됨을 경험하는 데 있다.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를 경험할 수 있다면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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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말할 수 있다. 명상에 이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호흡과 자세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명상 책들에는 갖가지 호흡법과 자세가 소개되어 있지만 그저 자신의 바이오리듬에 맞는 자연스런 호흡이면 충분하다. 자세는 자연스럽고 불편함이 없으면 그만이다. 되도록 허리를 곧게 펴는 게 장시간 버티는 데 도움이 된다.
졸음의 반대는 ‘깨어 있음’이다. 명상은 깨어 있음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운전 중에 명상에 들 수 있다면 결코 졸음운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비게이션과 라디오는 모두 끈다. 감시 카메라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한 속도를 철저히 지킬 것이니까. 차 안의 강렬한 빛이나 소리 등은 모두 명상에 방해가 된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속도를 100킬로미터에 고정시키고 목적지까지 계속 같은 속도로 달린다. 차선은 추월 차량에게는 미안하지만 되도록 1차선을 고수한다. 차가 뜸한 밤길이기 때문에 다른 차량에 대한 피해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2차선 주행은 혹 가다 마주치는 저속차량이나 갓길에 서 있는 차량 때문에 명상 상태가 깨질 우려가 있다.
몸의 움직임은 최소화 하고 주행 속도에 적응이 되면 자신의 몸이 마치 자동차 전체로 확대되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온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차와 일체가 되면 도로 표면의 요철 상태에 따라 미세한 떨림이 지속적으로 전해 온다.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이 진동과 떨림에 일일이 반응하도록 노력한다. 가령 차가 덜커덩 하고 위아래로 흔들리면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준다. 좌우, 앞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버들잎이 물결에 따라 쉼 없이 흔들리는 것과도 같다. 계속 이렇게 흔들리다 보면 어느덧 차체와 혼연일체가 됨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주행과 흔들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잊고 있었던 호흡에 초점을 맞춘다. 이제는 차와 일체를 이루었으니 전신호흡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전신호흡이란 온 몸의 주의를 기울여 최대한 천천히 들이 마시고 내쉬되 더 이상 들이마실 수 없을 때까지 숨을 들이켜고 더 이상 폐에 공기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숨을 내쉬는 것을 말한다.
전신호흡은 장시간 운전하느라 피로해졌을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고 긴장된 근육들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전신호흡을 할 때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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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창문을 살짝 열어 두는 것이 좋다. 재미삼아 한 호흡에 몇 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나는 보통 한 호흡에 1킬로미터를 달리지만 숙달이 되면 2킬로미터를 달리기도 한다. 전신호흡은 이완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오랜 시간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명상과 호흡을 번갈아 하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보면 몇 시간씩 걸리는 야간 주행을 깨어 있는 상태에서 거뜬히 해 낼 수 있다. 졸음운전은 아예 끼어들 여지가 없다.
■ 추위에 대하여
젊은 시절 나는 추위에 매우 약했다. 겨울만 되면 내복을 바리바리 껴입고도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는 했다. 이런 나의 몸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감옥 살이 덕분이다. 온기 하나 없는 징역방에서 13년, 그리고 겨울 산속의 컨테이너에서 5년여를 살다 보니 추위에 이골이 난 것이다. 밀실을 싫어하는 것은 아마도 오랜 독방 생활의 영향일 것이고 더운 공기에 취약한 것은 서늘한 공기에 완전히 적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옥의 독방에 있을 적에는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창문을 조금은 열어놓고 잠을 잤다. 비록 갇혀 있지만 넓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 안에 있는 동안 나의 귀와 발은 늘 동상에 걸려 있었다. 산 속에 살고 있어도 달라진 건 없다. 우풍이 없는 방인 경우 반드시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잠을 잔다. 지금은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더 붙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 대자연이 눈앞에 활짝 펼쳐져 있어야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내가 가장 쾌적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은 첫째 어느 정도 우풍이 있을 것. 둘째 방바닥은 따뜻하되 코끝은 약간 싸늘할 것. 셋째 방과 자연이 바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현대 도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피해야 할 조건이지만 사실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네 조상들은 다 이런 조건에서 잠을 잤다.
지난 1세기 동안 급속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몸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추위에 대한 몸의 반응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경우 1970년대 이래 일반화된 아파트 문화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히터로 데운 공기를 마시며 사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쩌다가 낡은 한옥이나 농가에서 잠을 자게 되면 마치 극한 체험이라도 하는 양 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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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 떤다. 농사로 말하면 노지재배에서 비닐하우스재배로 옮겨간 것과 같다. 하우스에서 재배하면 작물의 때깔이 좋아지고 빨리 자라며 또한 수명도 길어진다. 예컨대 우리가 일년초로 알고 있는 고추나 토마토를 하우스에 심고 난방과 영양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 해 바뀜에 상관없이 계속 자라나 나무처럼 된다. 어찌 보면 인간도 재배작물처럼 진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우스 재배 시스템은 도시에 밀집하여 사는 인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말하자면 작물의 의지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도 하우스 작물처럼 누군가에 의해 사육되고 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자연산의 우수함은 외부 조건의 열악함을 안으로 삭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하우스 작물은 주어진 조검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인이 원하는 장품이 되지만, 자연산 작물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스스루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자기 삶의 주체거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나 잘 극복하면 거기에 뛰어난 맛과 향이 배게 된다.
자본가들이 이같은 사실을 모를 리가 없더. 그들은 하우스와 같은 아파트를 잔뜩 지어 놓고 그것을 자연산처럼 만들어준다며 온갖 상품들을 다 만들어 낸다. 공기 정화기, 공기 소독기, 가습기, 산소 발생기, 오존 발생기, 적외선 발생기, 자외선 차단기, 무슨 나노 입자 어쩌고 하며 끝도 없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우풍이 있는 집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 해를 바라보며 기지개 한번 켜면 될 일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무슨 맛과 향이 우러나오겠는가? 사육되는 자의 비애만이 있을 뿐이다.
영어 속담에 “You can't beat the system.” 이라는 말이 있다. 시스템 속에 갇혀 있는 한 개인이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속담이란 하나의 경향이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문명, 새로운 생태주의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라면 의당 체제에 도전해야 한다. 시스템의 어딘가에는 반드시 틈이 있다. 그 틈에서 찬바람이 솔솔 불 텐데 그것을 막으려 하지 말고 재미삼아 한번 맞아보자. 점차 틈새에서 부는 바람에 익숙해지면 때때로 창문을 활짝 열고 찬 공기를 흠뻑 들이키자. 내 몸이 원래 자연산이었다는 사실을 깜짝 놀라며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미래는 추위를 견디는 힘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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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물(敬物)
시골에서 고향집을 지키고 살던 후배로부터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며 자기 집 헛간의 오래된 물건들 가운데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집에 당도하여 후배가 헛간 문을 열어젖히자 어둠 속에서 켜켜이 쌓인목재와 나무박스가 마치 발굴을 기다리는 매장물처럼 희뿌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서자 오래된 창고에서 나는 야릇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폐부를 찌른다.
목재와 공구의 상당 부분은 목수였던 후배의 할아버님 유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거의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다. 도구 박스를 열어보니 책에서나 보았던 그 옛날 목공 도구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흥부가 박을 탈 때 쓰던 탕개톱에서부터 앞대가리가 뭉툭한 거두톱, 나무토막을 깎아 그 위에 쇠날을 입힌 대자귀, 곰보투성이 쇠모루, 통나무를 찍어 나르는 찍게,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집는 쇠집게, 목재의 이음새를 두드려 맞추는 나무메 등 그 자리에서 농기구 박물관을 열어도 좋을 만큼 다양했다.
옛날 도구들의 특징은 쇠에서부터 손잡이까지 세심한 장인의 숨결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말은 많이 들었어도 경물은 낯선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物이나 天이나 人 이나 기능과 작용이 다를 뿐이지 다 같은 물질이다. 같은 물질인데 다 같이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다. 하느님 숭상은 진정으로 하건 안 하건 누구도 의의를 달지 않는다.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도 당위로서 받아들이는 데 주저가 없다. 그러나 하찮은 물건을 숭상하라 하면 어떤 위인은 우상숭배라고 바로 반격해오는가 하면, 어떤 위인은 사람 사랑하기에도 힘이 부치는데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다 분리된 사고요, 자기중심에 사로잡힌 생각이다. 기독교에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직접 사람을 만들어 만물의 위에 놓았다고 가르치지만 우리 조상들은 큰 바위나 서낭나무에 신령스런 신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느님은 무한한 우주 저 끝에서 부터 내가 밟고 있는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안 계신 데가 없다. 인간이 다른 생물종과 다른 점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처럼 폐가의 헛간을 뒤지다 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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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의 경물 정신을 마주치게 된다. 지게 작대기나 망치 자루 하나까지 당신들은 어찌 그리 정성스레 깎고 다듬어 썼는지 이미 파손된 것인데도 버리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설사 거칠고 투박한 솜씨로 빚은 것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며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선인들도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에 둘러싸여 있다면 십중팔구 소비의 미덕을 찬양하며 살았을 것이다. 어느 누가 자갈밭에서 돌 귀한 줄 알며 어시장에서 고기 비린내를 그리워하랴. 안타깝게도 우리는 경물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도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 어찌 보면 현대인이 명품(名品)을 좋아하는 것은 그 옛날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의 경물 정신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절을 하는 마음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과 설날은 모두 절과 관련이 있다. 추석 때는 차례 상을 차려놓고 조상님께 절을 하고 설날에는 살아계신 집안 어른께 절을 한다. 조상 또는 어른에 대한 공경은 인류 공통의 유산인 듯싶다. 다만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유교와 결합하여 매우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족보 있는 집안의 며느리는 연중 제사 치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지금은 많이 간소해졌지만 그래도 기일과 시제, 명절 등 절을 하는 날이 꽤 많이 남아 있다. 거기에 남의 집 문상까지 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아무튼 우리 조상들은 제사에서부터 기본적인 인사에 이르기까지 절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그러던 것이 한말 이후 타의에 의한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절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먼저 일제는 식민지 통치 수단의 하나로써 우리민족의 전통과 습속을 지속적으로 폄하하고 훼손하였다. 조상을 잘못 두어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는 원망의 마음을 갖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연스레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지고 절하는 일도 뜸해졌다. 그 다음에 들이닥친 또 하나의 충격파는 기독교였다. 이들은 우리 선조들의 위패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바로 ‘우상숭배’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렇게 한 세기가 지나고 보니 지금은 절하는 일이 명절 때나 볼 수 있는 전통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절에 대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편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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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였다. 공교롭게도 불교의 사원을 일컫는 ‘절’ 이라는 말이 엎드려 하는 ‘절’과 발음이 같다. 둘 다 우리 고유어라서 한자음이 없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니까 절이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불교와 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렇듯 절이 조상숭배와 불교에 깊은 인연이 있으니 기독교인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절은 우상숭배와 아무 관련이 없고, 또한 불교의 전유물도 아니다. 절은 우리 민족이 발견한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표현하는 최상의 예의’일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구상의 어느 민족의 인사법에서도 우리의 절처럼 동작이 크고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티베트에 오체투지가 있지만 그것은 종교적 표현에 국한되어 있다.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를 최대한 낮추어야 한다. 가령 낮은 곳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바닥이다. 최상의 것은 하늘에 있고 최하의 것은 땅에 있다는 믿음에 나를 최하인 땅과 동일시함으로써 상대를 하늘로 모시는 것이다. 그것도 신체 가운데 가장 소중한 머리를 땅바닥에 댐으로써, 이것은 땅바닥에서 생활하는 좌식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입식 생활을 하는 서양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동작이다. 둘째로 두 손을 가지런히 하여 땅에 대는 것은 정성을 한데 모으는 의미가 있다.
최근에 나는 절명상을 하다가 우리민족이 만들어낸 큰절의 동작에 대해 깊은 감사와 희열을 느껴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생명평화결사’라는 단체에서 행하는 일상적인 수행 가운데 ‘생명평화 100배 절명상’이라는 것이 있다.
절 동작에서는 척추의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에서 엉치까지 이어지는 척추의 상태를 주목하며 절을 하면 절을 하는 것 자체로 엄청나게 에너지가 증폭된다. 도인술이나 요가에서도 에너지가 척추를 타고 상승한다는 얘기를 곧잘 하는데 절하는 데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절을 할 때 몸을 수그리는 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정지 동작이다. 서서 합장하고 있을 때, 엎드려 있을 때, 그리고 엎드리기 전후에 잠시나마 정지 동작이 있다. 이때 최대한 척추를 곧추 세워야 한다. 특히 머리를 땅에 대었다가 올릴 때 엎드린 상태에서 목을 최대한 치켜드는 것이 중요하다. 목 근육을 긴장시켜주고 척추를 목에서 엉치까지 일직선으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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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준다. 그리고 일어설 때에도 최대한 척추를 곧게 세운다는 느낌으로 일어
선다 이렇게 척추를 세워서 절을 하면 아무리 오래해도 잘 지치지 않고 싫증도 덜 느끼게 된다. 오히려 절을 하고 나면 충만한 에너지로 인해 기분이 좋아진다.
이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는 독자는 네발로 다니는 척추동물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들에게는 척추디스크 같은 병이 없다. 척추가 땅과 평행을 이루고 있어 중력의 작용이 골고루 분산되는데다가 자주 목을 곧추 세움으로써 척추에 자극을 준다. 절 동작은 우리로 하여금 잠시나마 네발 척추동물로 돌아가게 한다. 거기에 섰다 앉았다 하는 동작이 곁들여져 아주 다이내믹한 동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랜 반복 끝에 절 동작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지면 아무 생각 없어도 절만 하면 절로 명상에 들어갈 것이다.
■ 생태영성에 대해(1) - 그 자리 찾아가기
흔히들 생태주의 시대니 영성의 시대니 말들을 하지만 정작 생태나 영성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설명하기 곤란한 주제다. 사실 생태와 영성은 우리가 늘 그 안에 있으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매순간 숨 쉬고 있는 공기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물의 본질은 의도하지 않았을 때에 더 잘 드러난다. 그날도 그랬다. 농장 나무숲에서 한 나절 가지치기를 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무성한 관목더미 아래에 마른 억새풀이 수북이 쌓여 있어 첫눈에도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억새풀을 이리저리 헤쳐 자리를 만들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누워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노동의 피로가 한결 가시는 느낌이었다. “역시 자연의 품처럼 아늑한 데는 없어!”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엔가 하늘을 둘러싸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저놈은 저쪽 줄기로 이어지고, 이놈은 이쪽 줄기로 이어지고……. 시간이 꽤 지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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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하나도 겹치는 일이 없이 일정하게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관목더미를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나뭇가지들이 주어진 공간에서 햇빛과 공기를 최대한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에 정확히 자리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가 분별력을 가지고 저런 일을 벌인 것일까? 아니면 서로 간에 긴밀한 소통 체계가 있어 양보와 타협을 거듭한 끝에 저런 간격을 유지하게 된 것일까? 생각에 잠기는 동안 ‘생태적소’, ‘자기조직화’, ‘생태장’ 같은 어려운 말들이 떠올랐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자랄 때 신은 그것이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를 정해준다. 각 생명은 정확히 그 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행복하고 또 번성한다. 여기서 신은 기독교의 유일신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혀둔다.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는 뭇 생명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찾아감으로써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 사람들은 흉측하게 생긴 동물들을 보고 진저리치면서 신이 왜 저런 걸 만들어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의아해 한다. 반대로 쓸모 있는 동식물을 보면 이들이 모두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멋대로 생각한다. 둘 다 터무니없는 인간 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고,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때가 아니면 인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주원인이다.
신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지도 않았고 인간을 특별히 예뻐하지도 않는다. 똑같은 생명으로 만들었고, 똑같은 자연의 질서 안에서 살도록 설계하였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살림살이는 점점 윤택해졌으나 자신의 근원인 자연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갔다. 이윽고 인간은 신이 정해준 자리를 완전히 잊고 스스로 만든 질서에 만족하며 자연의 질서에 충실한 다른 생명들을 업신여기기까지 한다. 이제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정복자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의 자리에서 보면 그런 착각에 빠져 있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비참한 존재다.
물질적 실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들은 각자가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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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는데 이를 생태학에서는 ‘생태 적소’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성이란 개체 생명이 무한한 생명의 그물망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접속된 그 상태를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오직 인간만이 영성을 감지할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큰 오해다.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생태와 영성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져 나왔음을 자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생태영성에 대해(2) - 절명상
내가 전라도 산속에서 농촌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은 신께서 허락하신 나만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러저러한 사회적 관계에 얽매여 많은 시간을 돌아다니는 데에 소비해야 했지만 역시 산 속 농장에 자리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편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말한 생태영성의 진면목을 깨우친 것은 농장에서 매일 행하고 있는 절명상을 통해서였다.
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는 절명상은 언뜻 보기엔 지루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의식을 고도로 집중하여 들여다보면 대단히 복잡하고 또 다이내믹한 명상임을 알게 된다.
사람마다 절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로 세 개의 정지 동작이 있다. 먼저 서서하는 합장 동작은 몸의 모든 기운을 마주하는 손바닥 사이로 수렴하여 다음에 펼쳐질 동작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두 번째 합장은 지금 하고 있는 절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고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다. 세 번째는 고개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대는 동작이다. 이것은 자세를 최대한 낮춰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예의를 표시하는 것인데 불자는 부처님께, 기독교 신자는 예수님께. 무신론자라면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에게 절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말은 정지 동작이지만 정지 동작이 길면 느슨해지므로 전체적으로 연속 동작의 일부처럼 생각하며 절을 한다. 중요한 점은 동작 하나하나가 철저히 통제되어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절을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여러 번 해도 동작이나 의미가 똑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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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서예 연습을 할 때 붓을 들고 가장 간단한 세로 일자를 그어 보지만 수백 번을 그어도 마음에 드는 획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손놀림이 경쾌해지면서 마음에 드는 획이 나올 때가 있다. 이때가 바로 신이 정해준 자리다.
그러나 한 번 잘되었다고 해서 언제나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절도 그렇다 어정쩡한 자세와 동작으로 하는 절은 하면 할수록 짜증나고 피곤해진다. 숫자 세기에 급급하고 절하는 의미는 간곳없다. 이렇게 되면 절하는 것이 명상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
제2부 땅 地
■ 한 그루의 나무
오 헨리의 유명한 단편 ‘마지막 잎새’에 보면 꺼져가는 한 생명이 담벼락에 붙은 여린 ‘잎새’를 보며 마지막 삶의 위로를 구하는 장면이 있다. 누구든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의지하고픈 마음을 갖게 마련이다. 이곳 황량한 산속 농장에서 만난 한 그루의 나무가 내게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마지막 잎새’였음을 고백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마지막 잎새’는 모두 세 그루다. 그중 한 그루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우리 농장은 산속에 있지만 나무가 별로 없다. 아니 별로 없는 게 아니라 거의 없다. 산 속의 숲을 베어내고 만든 농장이기 때문이다. 농장에는 출입구가 위 아래 두 군데에 있다. 나는 거리가 짧은 아래쪽 입구를 자주 이용한다.
남의 땅이지만 입구 아래에 풍성하게 잘 자란 소나무 숲이 있고, 오른쪽 경사지에 멋들어진 낙락장송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인공으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막힌 굴곡과 뻗침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황홀했다. 만약 그 나무가 없었다면 뒤에 있는 산과 숲은 그저 그렇고 그런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산 아래에서 볼 때 그 나무는 마치 오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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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보기 위해 아래쪽 입구를 애용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벌목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요란한 기계톱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고 달려 나갔다. 아, 이럴수가! 낙락장송이 토막토막 베어져 나둥그러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다.
벌목업자에 의해 그 나무는 처참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누가보아도 벌목 대상이 아닌 이 나무를 쓰러뜨린 벌목 업자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만난 중년의 사내는 전형적인 협잡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목지역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나무를 벤 이유를 따져 묻자 일꾼들이 모르고 했단다. 견딜 수 없었다. 그자를 군에 고발하고 신문에 잘못된 벌목 관행을 지적하는 칼럼을 썼다. 결국 그 벌목업자는 벌목권을 상실하고 다른 지역으로 갔다. 아마도 그자는 산속에서 웬 재수 없는 놈을 만나 장사 망쳤다고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농장 입구의 낙락장송을 잃고 내가 자주 찾아간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농장에서 산 속으로 약 1킬로미터를 더 들어간 계곡에 있는 아주 오래된 팽나무다. 어른 팔로 두 번은 감아야 겨우 손끝에 닿는 거대한 나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팽나무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나무도 마을의 정자나무로 심겨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의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외로이 계곡을 지키고 있다. (30여 가구의 마을이 공비토벌 작전으로 이주함) 실제로 나무 곁에 서 있으면 나무로부터 뿜어 나오는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뭐랄까? 기분이 선뜩하다고 할까. 아니면 정신이 번쩍 든다고 할까. 멀리서 나무를 보고 걸어오다가 나무의 그늘에 들어서면 마치 밀도 높은 에너지장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한여름에 일하다가 지치거나 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으레 이 나무를 찾아와 기운을 회복하곤 한다.
마지막 ‘한 그루의 나무’는 농장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노거수인 떡갈나무다. 농장안의 모든 나무들이 깨끗이 베어져나갔는데 어째서 이 나무만이 살아남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다가 쉴 그늘을 확보하느라고 산비탈 아래에 있는 이 나무만은 남겨둔 것일까? 아니면 소나무가 아니라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일까? 어찌되었건 홀로 살아남은 이 나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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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다. 농장에 큰 나무가 없다 보니 한여름에 햇빛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헤매다보면 자연스레 이 나무 밑으로 찾아들게 된다.
농장에 있는 떡갈나무는 오로지 나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존재다. 내가 그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면 터뜨리는 대로, 내가 그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 부리는 대로 다 받아주는 존재다. 톱 한 자루면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는 나무지만, 나는 감히 말한다. “한 그루의 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힘보다 더 클 수도 있다!”
■ 근심과 걱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척박한 땅에 김장밭을 만들었다. 둔덕을 만들어 정성껏 씨를 뿌리고, 김 매고,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고, 가물면 물주고…….
김장밭 아래 공터에다 쓰고 남은 씨앗이 아까워 아무렇게나 뿌려 놓았다.
김장거리 수확을 마치고 공터에 가보니 마구 자란 무와 배추가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비록 모양이 각색이고 부대껴 자랐지만 정성껏 거두고 보니 힘들여 키운 것보다 수량이 더 많았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 것이거늘…….
꼭 농사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농사짓는 사람들은 수확을 하고 나서 자신이 다 이룬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고 날씨의 변화에 애를 태웠기 때문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을 것이나 착각일 뿐이다. 애착 또는 집착을 공(功)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농사는 근본적으로 자연이 짓는 것이며 인간은 다만 그 과정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입할 뿐이다. 자연의 功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功의 주체인 자연의 본질은 공(空)이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空으로서의 자연을 믿고 그에 맡기면 다행히 굶어 죽지는 않는다. 굶어 죽기는커녕 신선의 경지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다. 최초로 자연농업의 원리를 세상에 밝힌 후쿠오카 마사노부 옹의 농사철학이다.
사실 겸손이라는 말은 유한한 존재인 사람 앞에서보다 자연 앞에서 더 필요한 덕목이다. 말 못하는 자연 앞이라고 오만에 빠져 제멋대로 굴다가 낭패를 당한 인간지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손자병법에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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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무한한 공능을 지닌 자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다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으니 어찌 위험에 빠지지 않으리.
의도하지 않은 방치농법의 경험을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토양 생태계가 살아 있고, 둘째 야생성이 강한 종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뿌리고 수확하는 자연농법이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씨를 뿌릴 때 종자들의 간격을 충분히 확보해주어야 한다. 병충해라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으며 오히려 병충해를 겪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 무엇보다 자연농법은 작물을 심어놓고 근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최대의 매력이다.
■ 고맙다 잡초야
우리 농장은 돌투성이 산록을 개간하여 만든 것이라 일반적 의미의 농사가 아주 힘든 곳이다. 흙속에 돌이 너무 많이 박혀 있어서 삽질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10여 년 전 처음 이곳을 개간할 적에 도저히 방도가 없어 인근 도로 공사장 절개지에서 흙을 실어와 일정한 두께로 덮고서야 작물을 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나온 흙에 무슨 영양소가 있으랴! 자연농업을 한답시고 비료도 안 주니 작물은 난쟁이에 홀쭉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농사를 하는 듯 마는 듯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가장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는 칡과 억새, 가시딸기, 쑥, 망초 따위가 농장을 뒤덮었다. 처음에 밭을 일굴 때 이들을 몸시도 원망했다. 잡초도 잡초 나름이지 어찌 이리 질기고 독한 잡초들만 가득한가 하고. 그러나 이내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 질긴 잡초 줄기를 틀어쥐고 흔들어 뽑아내자 후드득 떨어지는 흙이 그렇게 보드라울 수가 없었다. 땅속 사방으로 뿌리를 뻗치면서 굳은 흙들을 아주 잘게 부숴놓은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들이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쌓인 유기물질로 인해 표토가 마치 양탄자처럼 폭신하게 되었다. 내가 없는 동안 잡초가 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뒷마당 빨래 너는 곳에 마구 밟고 다니는 작은 공터가 하나 있다. 오며 가며 상추라도 뜯어 먹으려고 밭을 만들고 씨를 부려 놓았다. 일주일 정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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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 그 박한 땅에서도 싹이 텄다. 하지만 놓아기른 닭이 달려들어 쪼아대는 통에 다시 평지가 되고 말았다. 다른 일로 바빠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얼마 전 몇 가지 채소를 옮겨 심으려고 가보았더니 세상에나! 쑥이란 놈이 군데군데 치솟아 있고 그 사이에 바랭이가 빽빽하게 나 있었다. 호미를 들고 쭈그리고 앉아 놈들을 뽑기 시작했다. 먼저 바랭이를 한 줌 쥐고 호미로 땅을 찍었다. 쑤욱 하고 뿌리째 올라오는데 밑에 흙이 그렇게 보슬보슬할 수가 없다. 어떤 곳은 지렁이가 다 튀어나왔다.
쑥은 덩치가 커서 뽑는 데 약간 힘이 들었다. 쑥 뿌리를 뽑으면 유독 개미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개미가 쑥 뿌리의 즙액을 좋아하지 않나 싶다. 쑥은 덩치가 큰 만큼 흙을 갈아 놓는 면적도 크다. 바랭이가 주로 표토를 간다면 쑥은 심토까지 갈아놓는다. 거기에 지렁이와 개미, 굼뱅이, 땅강아지까지 함께하니 아무리 굳은 땅이라도 잡초가 무성하면 저절로 땅이 걸진다.
풀을 다 뽑고 이랑을 만드는 일은 아주 쉬웠다. 흙이 너무도 보드라웠기 때문이다. 밭이랑을 다 만들고 그 위를 걷어낸 풀로 다시 덮는 이유는 직사광선을 막아 흙속의 작은 생물들을 보호하고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중에 풀이 썩으면 좋은 거름도 될 것이다 기존 농법에서는 이것을 녹비(綠肥)라고 한다.
자연농법에서는 로터리를 치지 않는다. 대신 풀의 생육주기에 맞추어 작물을 심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풀이 전성기를 지나 쇠해갈 즈음에 작물을 파종하거나 옮겨 심는다. 따라서 자연 농법에서는 작물의 파종시기에 쇠하는 잡초를 선별적으로 남겨 둔다.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순환농법이다. 보통 순환농법이라고 하면 가축의 분뇨나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사용하는 농장내 또는 지역내 순환으로 이해하지만, 자연농법의 순환은 경작지내 순환을 의미한다. 이것은 경작지 내에 공생관계에 있는 작물과 잡초의 생태적 특성을 살려 자체적으로 순환토록 하는 농법이므로 훨씬 순수하고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뒷마당에 코딱지만 한 밭뙈기 하나 만들면서 너무 거창한 얘기를 한 것 같다. 풀을 한 포기 뽑더라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실제로 밭에 가득한 풀을 뽑으면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초봄에 땅이 하도 딱딱하여 과연 여기에 작물을 심을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터라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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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얘들아 땅을 그만큼 갈아 주었으면 됐다. 이제 너희들의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거듭날 것이니 기쁘게 호미날을 맞아주었으면 한다. 하긴 네게 호미날을 들이대는 나라고 하여 별다를 게 있겠니?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해서 결국은 뒤에 올 누군가의 거름이 되겠지.”
■ 나와 자연농업
감옥 안에서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야생초를 발견하게 되었고, 야생초를 기르는 틈틈이 농사라는 것을 처음 지었다. 감옥 안에서는 농사 도구와 자재를 구할 수도 없고 원하는 시간에 들여다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연농업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야생초와 함께 짓는 농사’를 배운 셈이다. 야생초와 함께 농사를 지으니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초 작업이 곧 수확이었다. 나중에는 심어놓은 채소보다 그 사이에 나는 야생초가 더 기다려졌다. 출소 후 감옥에서 익힌 농사법을 현대 농학 이론에 근거하여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늦은 나이에 다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도 그런 농업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다. 결국 자연농업은 주로 책과 견문을 통해 서양이 아닌 일본과 제3세계에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자연농업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오래 전 그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혁명’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전과 전혀 다른 농법이라 그렇게 이름 붙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후로 자연농업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마사노부의 혁명은 지금까지 인류사에 있었던 그 어떤 혁명보다도 근원적이고 획기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자연농업의 선구자들은 한 사람의 농부라기보다 위대한 자연철학자였다.
자연농업이 왜 그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혁명인지는 ‘자연농업’이라는 말 안에 다 들어 있다. 인류의 문명은 자연으로부터 비롯하여 인위의 극단으로 치달아왔다. 다시 말해 자연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벗어나는 것이 문명의 목표처럼 되어버렸다. 그 결과 문명의 고향인 자연도 망가지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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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이를 극복하여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길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기술 숭배 사상에 빠진 이들은 첨단 기술에 의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설사 그러한 세상이 온다 해도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한지는 의심스럽다.
자연회귀는 인위의 문명이 수명을 다하고 완전히 다른 문명이 시작됨을 뜻한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냐다. ‘조만간’일 수도 있고 ‘먼 훗날’일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삶의 알짬(여럿 가운데서 핵심이 될 만한 가장 요긴한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가 언제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 회귀의 삶은 먼 훗날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일이 아니라 내가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 그날에 시작되는 것이다. 개인의 편차에 따라 일찍 되기도 하고 늦게 되기도 할 뿐이다.
자연이 문명사로 보나 의미로 보나 이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화두임이 확실하다면 이제 농업에 대해 알아보자. 이 말을 들으면 놀랄 사람도 있겠지만,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가한 최초의 환경 파괴는 농업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농업을 통해 극대화되었다. 농업의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최초의 농업은 숲을 불태워 밭을 만드는 화전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불태울 숲이 줄어들자 땅을 갈아 경작하는 정착농업이 자리를 잡아 지금은 산업화된 농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제 문제는 명확해졌다. 현재의 농업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농업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 농업, 곧 다가올 자연주의 시대에 걸맞은 상생의 농업을 실천하면 된다. 바로 자연농업이다. 자연농업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근본 화두인 ‘자연’과 ‘농업’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키워드다. 마지막으로 이미 고인이 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유언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자연농업은 단순한 농업이 아니다. 인류가 지상에 살아남기 위해 남아 있는 유일무이한 길이다.”
■ 리듬에 맞추어
우리 선조들은 일을 할 때 그냥 하지 않았다. 신명을 돋우기 위해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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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요와 소리로 장단을 맞추면서 즐겁게 힘든 노동을 이겨냈다.
다양한 리듬의 조화 속에 일의 효율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신명’은 우리가 잘 간직하고 발전시켜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한다.
리듬을 잃은 생명은 죽은 것이다. 아니 생명은 곧 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장의 박동이 다 리듬이고, 그 심장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내는 화음도 리듬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자연은 물론 무변광대한 우주도 일정한 리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한다. 이 리듬을 잘 읽고 맞출 수 있다면 일이 곧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곧 일이 된다.
■ 아끼다
오늘 아끼던 아끼다를 보냈다. ‘아끼다’는 일본의 국견으로 우리나라의 진돗개와 비교된다. 2년 가까이 아끼다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빼고는 모든 면에서 진돗개보다 우수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개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아끼다야말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시부야 역에 가보면 광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개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곳에서 출퇴근했던 주인이 죽어서 돌아오지 않자 10년 동안 매일 역에 나와 서성대던 아끼다견을 기려 세운 것이라 한다. 그런 아끼다지만 내가 기르던 놈은 순종이 아니라 그런지 주인에게 섭섭하게 굴 때가 많았다. 심지어 자기를 데리고 있었던 전 주인이 와도 시큰둥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 먼 산골에 던져놓고 가버린 주인에 대한 섭섭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멋진 개를 왜 남에게 줘버리고 말았는가? 녀석의 포악함 때문이다.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의 본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튼튼한 쇠사슬로 묶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입힌 재산 피해만 해도 상당하다. 농장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를 스무 마리 이상 물어 죽였고, 방문객 일곱 명이 녀석에게 물렸다. 묶여 있는 개의 소행치고는 좀 지나치다 할 수 있다. 주변에서 여러 차례 된장을 발라버리자고 아우성이었지만 기르던 개를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이상하게도 농장에 닭을 들여오면 그 며칠 안에 반드시 줄이 풀려 사달이 나고 만다. 힘이 장사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게 주기적으로 사슬을 끊는 개는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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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밥을 줄 때에도 단번에 주어야지 밥그릇에 손을 대면 사정없이 물어 버린다. 녀석의 무는 솜씨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감탄할 지경이다. 녀석은 옷으로 덮여 있는 다른 신체 부위는 물지 않는다. 오로지 맨손만 공략한다. 주인에게 어리광 피우기 위해 건성으로 물때도 손이 어떠한 위치에 있건 정확히 맨손에 이빨을 들이댄다. 아끼다가 얼마나 유능한 사냥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끼다는 사냥견으로뿐 아니라 경비견으로도 손색이 없다. 녀석은 500미터 밖에서 접근해오는 사람의 기척을 알아보고 무섭게 짖어댄다. 때문에 농장에서 마음 놓고 낮잠을 자다가도 개 짖는 소리에 나가 보면 틀림없이 누군가 오고 있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반면에 사람을 잘 따르는 개는 경비 본능이 둔감하지 않나 싶다.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을 비하해서 말할 때는 개에 비유하곤 하는데 사실 개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자기들도 일상에서 늘 하는 일인데 왜 나에게 덤터기 씌우는가 하고 말이다. 예컨대 ‘개같이 먹어 대는’ ‘발정난 개처럼’ ‘개차반’ ‘개새끼’ ‘개나 소나’ ‘개잡듯 패는’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나는 아끼다의 기품어린 모습과 눈동자를 보고 그와 같은 동물 비하의 말을 삼가게 되었다. 아끼다는 목 주위가 두텁고 작은 삼각형 모양의 귀가 단단히 붙어 있는 단정한 얼굴로 인해 첫눈에 늠름한 기상이 느껴진다. 녀석이 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 막 신께 기도를 마치고 출전을 기다리는 인디언 전사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녀석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알지 못할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조셉 콘라드가 말한 ‘어둠의 심연’이나 알도 레오폴드가 죽어가는 늑대의 눈에서 보았다는 ‘녹색의 불꽃’이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순순히 차에 실려 떠나가는 아끼다의 눈을 바라보며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사육동물의 측은함 보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에 대한 경외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 어디로 가든 부디 불행한 죽음만은 피하거라. 네가 지니고 있는 그 야성이 너를 지켜주리라.”
2013. 1. 1.
* 다음에 제2부 ‘땅 地’ 편의 중간부터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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