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7. 11:51ㆍ독서후기
한비야, 그녀의 서재를 탐하다 (2)
■ 김정희 지음
제3부 지도 밖으로 행군, 가장 낮은 곳으로 가다
■ 월드비전에 가기 전 이 책을 읽었다
- 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 타인 없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꿈은 내가 정말 관심이 가는 일, 남이 시키지 않아도 밤새는 일, 돈이 안 되고 계속 기웃거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면 그 다음이 보인다. 나도 세계 일주를 하면서 오지를 다니다 1,000원으로 죽고 살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발, 글발이 있다. 이걸 나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다. 구호활동을 하다 보니 너무 멋진 세상이 펼쳐졌다.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에서 밝혔듯이 한비야는 오지 여행가에서 국제 구호활동가로 방향을 튼다. 처음 여행을 할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비야는 세계 일주를 하면서 오지를 다니다 작은 돈으로 사람이 죽고 살 수가 있다는 것을 구호활동을 하면서 한비야는 다른 세상을 보았다.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비야는 가장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속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피에르 신부도 그러했다.
한비야는 월드비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한마디가 늘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남아 있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굉장히 큰 기준이 돼요. 뭐라 하셨냐면 ‘타인 없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우리는 그 둘 가운데에서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월드비전 들어가기 전에 우연히 서평을 쓰게 되어 읽게 되었는데, 그때 이 신부님이 저에게 화두처럼 준 이 한 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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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신부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사제가 되면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이후 엠마우스 운동을 펼친다. 엠마우스 운동은 집 없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빈민구호 공동체 활동을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 50여 개국, 500여 개 엠마우스 공동체가 활동을 하고 있다.
“날도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던 두 제자가 엠마우스로 피신하여 가는 도중 초라한 여행객에게 한 말이다. 실의에 빠져있던 두 제자는 그 여행자가 부활한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용기와 희망을 되찾게 된다. 피에르 신부가 이 구절은 엠마우스 운동의 정신이 되었다.
◉ 국제 구호 활동가 한비야
한비야는 월드비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 한비야는 월드비전에서 전화가 왔을 때 안경점인줄 알았다고 한다. 월드비전은 한국전쟁 때 고아와 거지들을 돕기 위해서 설립한 기독교 단체다. 현재 전 세계 1백여 개국에서 1억 명의 지구촌 이웃들을 돕기 위한 긴급구호 및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세계적인 NGO다. 긴급구호 일을 제안받은 한비야는 뛸 듯이 기뻤다.
한비야는 오지여행을 하면서 난민들의 삶을 직접 목격했고 그런 사람들을 돕는 사람과 단체들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실감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생명을 살리는데 들어가는 돈이 난민 1인당 하루 80원, 그러므로 800원이면 어린 목숨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커피 한 잔으로 세 생명을 살리고, 레스토랑 저녁 식사 한 끼로 50명의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비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아이가 건넨 빵을 받으면서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그 아이는 지뢰로 팔다리가 잘린 아이였다. 목발을 짚고 꼬질꼬질한 손으로 자신이 아끼던 빵을 한비야에게 준 것이다. 한비야가 그 빵을 베어 물자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비야가 긴급구호팀장이 되어 처음 피견나간 곳도 그 아이들 하고 약속했
던 아프가니스탄이다. 긴급구호 일을 하기 전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 떠난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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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 의사와의 만남도 그녀의 삶을 바꿨다. 당시 한비야는 캐냐 의사에게 “왜 더 나은 삶을 두고 이 일을 하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가진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것은 너무 아깝잖아요.’ 라며 ‘무엇보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 라고 대답했다. 이 말 한마디가 한비야를 열정의 삶으로 이끌었고 그녀가 강조하는 ‘가슴을 뛰게 하라’의 본보기였던 셈이다. 이 말은 그녀가 늘 강조하는 큰 주제이기도 하다.
◉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하는 ‘공감하는 자’
이러한 한비야의 삶은 피에르 신부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피에르 신부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구분은 ‘신자’와 ‘비신자’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는 ‘홀로 만족하는 자’와 타인의 고통과 함께 하는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타인 없이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이제 타인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때 제 능력의 최대치가. 제일 예쁜 얼굴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피에르 신부는 “타인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라며 타인들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공감하며 사는 삶을 선택하라고 강조한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 그 기쁨이야말로 단순한 기쁨이라고 말이다.
◉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피에르 신부는 엠마우스 일로 아르헨티나로 가던 중 배가 난파해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다.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구조되자 신문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피에르 신부를 알아보고 몰려와 질문을 해대자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과 함께 일하러 가야 합니다. 집 없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일상의 조난자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룻밤 새 난파당한 10여 명의 사람들의 소감을 얻어들으려고 이렇게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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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모였습니다. 한데 어째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굴에 살고 있는 수백만의 항구적인 조난자들이 들려줄 한층 더 비통한 증언을 들으러 가지는 않는 겁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피에르 신부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행동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말이나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이 책의 서평에서 밝힌 한바야의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신념을. 상상이 아닌 발로 행하는 자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거리보다 험난하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여행이 있다.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신영복의 ‘가장 먼 여행’이라는 글처럼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이고 ‘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이다 한비야는 타인을 위해 공감하는, 가슴에서 발까지로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셈이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지도 밖으로의 행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난 긴급구호팀 식량담당이다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세상 사람들 모두를 뚱뚱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이 지구상에는 식량이 충분히 있다면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한비야가 세계 여행을 하며 아프리카를 횡단할 때 그녀의 눈에는 난민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시의 아프리카는 내전과 기근, 홍수 등으로 난민들이 넘쳐났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난민들의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처절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만 방관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기아의 현실
한비야는 긴급 구호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 접하게 된다.
“한 동네에 2천 명 중 천 명은 아이들이고 그 중 10%는 극심한 영양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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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요. 아이들이 거의 기절 상태에 있어요. 죽어가는 이 아이를 2주 만에 살아나게 만든 건 비싼 약도 아니고 복잡한 수술도 아니에요. 영양죽 2주일분, 그 값이 만원이에요.”
한비야는 주머니에 만원만 들어 있다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작년 통계를 보면 세계에는 인구를 먹여 살릴 충분한 식량이 있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식량을 생산했대요. 그래도 전 세계의 반은 고스란히 굶어 죽고 있어요.
2008년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의하면 전세계 식량 생산량은 2007년보다 5.4% 늘어난 22억 4,100만 톤으로 역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9년 기아로 고통받는 인구는 1억 명 증가한 10억 2,000만 명에 달한다. 3초에 1명이 굶어 죽는 셈이다. 심지어 생산되는 식량들은 부유한 나라들의 가축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호단체들의 활동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전쟁을 더 연장시키고 살인자들을 배불리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장 지글러는 이러한 비난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르완다 내전과 크메르 루즈를 든다. 선의의 국제구호단체들 활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예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북한을 돕는 것이 오히려 북한정권에 도움이 되는 행위일 수도 있는데 그런 원조를 계속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구호단체의 이런 활동은 정말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 받게 되는 것이다.
◉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
구호단체들의 활동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없을까? 장 지글러는 각각의 프로젝트들이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버릴 응급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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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말이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라는 이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한비야가 듣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도 도움 받을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도와주어야 하나요?’ 라는 것이다. 한비야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40년 넘게 우리를 도왔던 외국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라고 반문한다. 벼랑 끝에 선 채로 삶과 죽음을 동시에 기다리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나라에까지 우리라는 말을 붙여 아주 가까운 공동 운명체로 느끼곤 한다. 이제 그 범위를 조금만 확장시켜보면 안 될까? 우리나라를 넘어 우리 아시아, 우리 세계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아시아와 우리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이 다 우리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 ‘우리’ 아이들 가운데 굶는 아이가 있다면, 별것 아닌 병에 걸려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난 때문에 노예처럼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전쟁이 끝난 후부터 1990년까지 해외의 원조를 받다가 1991년부터에서야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가 되었다. 원조 수혜국에서 지원국이 된 것이다.
다음으로 한비야가 자주 듣는 말은 ‘나 혼자. 월드비전이라는 단체에서 애쓴다고 세상이 변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애써 보았자 소용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한다고 하는 조언이다. 한비야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재난의 현장을 다니면서 복잡하게 얽힌 세계의 문제를 마주하면, 거대한 마차 앞을 가로막고 선 사마귀 한 마리처럼 나 자신이 몹시 무력하게 느껴진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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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그렇게 쉽사리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 하지만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초라해서 견딜 수가 없다. 도시 전체가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데, 나혼자 촛불 하나를 들고 있다고 해서 그 어둠이 걷힐 리 만무하다. 모든 일을 해결할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다.
■ 그녀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
-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코란에도 성경에도, 알라 신을 위해서 여성의 성기를 자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여성을 성적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남자들이 강요하고 장려한 것일 뿐이다.”
한비야는 9년 간 월드비전 긴급 구호 팀장직을 맡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한다.
“여성할례에 관한 ‘다히로 이야기’ 에요. 사실 그 이야기를 이 책(그건 사랑이었네)에 실을까 말까 굉장히 고민했어요.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일을 통해서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아프리카 여성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거예요. 물론 우리 같은 이방인이 그들의 전통을 중단하라고 말할 수 없고요. 하지만, 고통 받는 아프리카 여성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여성할례에 관한 이야기를 수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할례는 종교적인 의식에 따라 성기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를 말한다. 여성할례는 말 그대로 여성성기절제술을 말한다. ‘사막의 꽃’에서 언급한 방법은 소변이 겨우 나올 정도의 성냥개비 머리만한 공간만을 남기고 성기를 전부 꿰매버리는 봉쇄술이다.
“할례의 대상은 8세에서 10세 사이의 어린 꼬마들이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동네 여인이 깜깜한 방이나 집 마당에서 불결한 면도날이나 칼로 마취도 하지 않고 시술을 하니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이 어떨지 불을 보듯 뻔하다.”
◉ 사막의 꽃
‘사막의 꽃’은 주인공 와리스 디리의 이름이다. 어떤 생물도 살아남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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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땅에서 피어나는 사막의 꽃처럼 와리스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아프리카 유목민이었던 소녀가 어느 날 세계적인 슈퍼모델이 되었고 유엔 인권대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와리스 디리는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변을 볼 때
마다 10분 이상 걸리고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한 생리혈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는 고통에 못 이겨 기절까지 한다. 와리스는 그 고통은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그녀가 아는 소말리아의 여자들은 다 그러한 고통을 겪었기에 모든 여자들이 할례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와리스는 이러한 비밀을 의사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할례는 아프리카의 관습이기에 남자들과 상의하는 일은 치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의사들의 처방이란 고작 피임약 처방뿐이었다. 하지만 와리스는 자신이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수술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아프리카 국가의 사람들은 4천년이 넘도록 여성의 성기를 절제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코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코란에도 성경에도, 알라 신을 위해서 성기를 자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남자들이 강요하고 장려한 것일 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원대학원 서정민 교수의 ‘인간의 땅, 중동’에서도 이러한 여성 할례의 실상이 소개되어 있다. 유니세프의 2005년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리카 지역 28개 나라에서 이러한 전통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약 1억 3천만 명에 달하는 여성이 할례를 강요당했으며, 매년 3백만여 명의 여성이 할례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15초 마다 한 명, 하루에 6천 여명의 여성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날 때의 몸이 알라신이 주신 완전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와서 나를 유린하고 내 힘을 빼앗아가더니 나를 불구자로 만들어 놓았다. 나의 여성성을 훔쳐간 것이다. 특정 부위가 없는 것이 알라신의 뜻이라면 왜 만들어 놓으셨을까? 언젠가는 아무도 이런 고통을 겪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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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가 본 사막의 꽃
한비야가 현장에서 본 여성할례의 현실은 책보다 더 참혹했다. 할례 후유증을 앓고 있는 19세 다히로는 여덟살에 할례를 받고 17세에 임신을 했지만 아이를 잃고 말았다. 산고 끝에 한 쪽 다리는 마비되었고 하혈이 멈추지 않은 채로 시골 움막에 버려졌다고 한다. 피 냄새를 맡고 온 하이에나가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어디로 도망갈 수가 없는 처지로 말이다.
“그런데 들짐승도 내가 불쌍했는지 날 해치지 않더라고요.”
다이로는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던 차에 극적으로 구조되어 복원수술 혜택을 받게 된다. 한비야는 할례의 실상을 알고서 다짐한다.
“아프리카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전쟁, 굶주림, 에이즈를 떠올린다. 그러나 다히로에게서 보듯이 이런 고통의 밑바닥에는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지만 이들의 삶을 뿌리채 흔드는 할례라는 괴물이 있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모르고 있었을까? 그들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을 귀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더불어 나는 목소리 없는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겠노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 검정은 아주 다채롭다
-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이 노래는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의 루츠 판 다이크가 대학 기숙사 친구로부터 들은 아프리카 민요이다. 흔히들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표현한다. 풍부한 자원 노동력을 서구 열강들에게 빼앗겼던 암울한 역사와,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색을 비유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 색이 되는 것처럼 역으로 검은 색 안에는 모든 색깔들이 숨어 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도 사실은 각양각색이라고 한다. 백인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아프리카에는 이미 흑인뿐만 아니라 다섯 인종이나 살고 있었다.
“전 세계 언어의 4분의 1이 아프리카에서만 사용된다. 이같은 인간의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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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그 어느 대륙도 따라가지 못한다. 아프리카 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것은 지리적 환경이 다양하고 선사시대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북반구 온대지방에서 남반구 온대지방까지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대륙이며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건조한 사막, 광활한 열대 우림, 적도 부근이 높은 산 등에 둘러싸여 있다.”
◉ 모든 생명의 근원이 시작된 곳,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모든 대륙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 시작된 곳이다. 또 인류의 기원과 맞물려 있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땅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나타났다. 이들 중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유럽으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로 퍼져 나갔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아프리카 사람이다.”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수천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인간 사냥꾼에 의해 서구 출신 노예 상인들에게 팔렸다. 포르투갈 사탕수수 농장이나 남북 아메리카에 있는 대농장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한비야가 여행했던 잔지바르 섬도 세계 최대의 노예 무역항이었다. 이 섬에는 동아프리카에서 생포된 흑인들이 연간 5만 명쯤 끌려와 아랍 상인과 백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힘이 좋은 사람들을 수백 년에 걸쳐 수천만 명 이상 도둑맞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로 경제적 인간적 비극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문책을 받은 일이 없다.”
아프리카 노예의 자식들과 손자들은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라났고 오늘날 세계의 모든 곳에 있다.
◉ 한비야가 본 아프리카
“잠보!”
한비야가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본 아프리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한비야는 아프리카가 인간 본성의 체취를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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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있고, 그 뿌리의 끝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장 좋은 대륙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땅이 아프리카이다.
한비야가 정말 아프리카에 왔다는 느낌은 동아프리카 최대의 국립공원인 세렝게티로 가는 길에서이다. 케냐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도 연결된 이곳은 ‘끝없는 평원’이라는 이름과 걸맞은 곳이다. 전통악기를 연주하거나 가축을 모는 다리가 유난히 가늘고 긴 마사이족 사람들 모습은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멀리 들판에서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수천의 ‘누’ 떼도 아프리카의 풍경 중 하나이다. 한비야가 사파리를 하면서 본 것은 희한하고 다양한 동물들 속에서 지켜지는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이 법칙은 공생과 집단 방어, 서로의 고유 영역 불가침 같은 세부적인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은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있는 사자도 배가 고프기 전에는 장난으로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약자를 죽이지는 않으며, 꼭 필요해서 사냥을 할 때에는 아무리 힘이 없는 초식동물이라도 그것을 잡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한비야는 이런 자연법칙이 인간 사회에서도 그대로 지켜진다면 오늘날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쟁과 굶주림, 환경의 파괴 등이 모두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은 아무 죄도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비극이다. 난민 어린이, 전쟁고아, 병든 어린이, 세계적으로 약 700만 명에 이르는,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 어린이의 2/3 가량이 아프리카 어린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어린이 병사의 문제가 여기에 덧붙여진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가장 어릴 경우 일곱 살이나 여덟 살까지 포함되는 전 세계 30만 명의 어린이 병사 중 약 12만 명이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다. 어린이 병사문제로 국제적으로 가장 비난을 받는 다섯 나라 중 네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등이다.(2003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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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문제 중의하나는 바로 에이즈라는 질병이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 무역 센터에 대한 공격으로 약 3,00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에이즈로 죽었다.
◉ 한비야가 그리는 세계 지도
한비야는 머릿속에 세계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세계시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세계지도 안에는 우리가 필요한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도 골고루 들어 있어야 한다. 세계시민이란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세상 사람들을 공동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금 세계는 식량위기, 지구 온난화, 에이즈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문제들의 약한 고리가 바로 아프리카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프리카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한비야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아프리카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 중의 하나인 물처럼 꼭 필요한 햇빛 역할을 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되지만 세상의 모든 빛을 합치면 세상을 비추는 하얀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 라다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는 산업화나 ‘진보’의 정도가 결코 삶의 질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원시적인’ 라다크에서 16년간 지낸 스웨덴 여성학자가 겸손하고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지은이의 티베트인과 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돋보인다.”
히말라야 변경에 있는 라다크는 ‘산길의 땅’이라는 이름처럼 세계에서 고도가 높은 지역의 하나이다. 불교도 거주지역인 중심도시 ‘레’의 고도는 3,600미터이고 주위를 둘러싼 고개는 5,000미터가 훨씬 넘는다. 이러한 지리적 폐쇄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문명의 손길을 타지 않았다. 덕분에 자급자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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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지켜올 수 있었다. 언어, 예술, 등 문화적인 측면을 보면 티베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종 작은 티베트라 불리기도 한다. 지역적으로는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 주에 속한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 후 인도와 분쟁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라다크의 수도 레에 있는 레 왕궁은 한비야가 여행했던 티베트의 포탈라 궁의 축소판으로 티베트 중세 건축의 하나로 꼽힌다. 포탈라 궁운 살아있는 부처라는 달라이 라마의 궁이자 티베트의 상징이다. 티베트의 불교는 라다크 사람들의 종교이고, 달라이 라마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티베트의 상징은 영원한 매듭 ‘스팔비’ 문양이다. 티베트의 여덟가지 상징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문양이다. 이 문양은 끊어지지 않는 한 줄로 이어져 있어서 영원성을 상징하며, 연결되어 있는 매듭처럼 세상의 모든 인연은 끊이지 않는다는 불교적인 상징성도 있다.
◉ 라다크의 과거
종교는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1976년 달라이 라마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라다크를 방문했을 때 행사의 분위기는 경건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놀랍게도 흥겨운 축제분위기인 것 같았다고 한다.
이들에게 있어 종교는 서구식의 엄숙함과 진지함을 강요하는 삶과 분리된 의미가 아니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아닌 축제와 같은 행사가 당황스러울지 모르나 라다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종교가 일상적인 삶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다크 사람들의 의식은 죽음을 받아들일 때도 드러난다. 죽음은 슬프지만 환생을 믿기 때문에 종말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티베트인들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옴마니밧메훔, 옴마니밧메훔’이라는 기도문의 후렴을 하기도 한다.
*옴마니밧메훔 -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연꽃 속에 진리가 있다’는 뜻 으로 외우기만 해도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주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잇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검약’을 든다. 인색함과 다른 한정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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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조심스럽게 아껴 쓴다는 것은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어떤 것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남은 보리 찌꺼기로 술을 걸러 내고, 그 찌꺼기를 가루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만들기도 하며, 음식 찌꺼기들이 남은 설거지물도 그냥 버리지 않고 동물에게 준다. 조금의 영양분이라도 동물들에게 먹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양간의 배설물이나 흙은 비료로 재활용이 된다. 지은이는 이런 검약한 생활 때문에 라다크 농민들이 완전한 자립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들의 손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쟁이 아닌 상호협조를 통해 경제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 라다크의 현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에서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개발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녀가 그곳을 처음 밟았을 때 몇 십 년 만에 그곳을 찾은 외국인이었으며 서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후의 거센 변화의 물결을 피부 깊숙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이 본격화된 것은 1974년 인도 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 지역으로 개방한 시점이다. 외국인들과 마주치면 아이들은 빈손을 내밀며 구걸을 하는 모습으로 변했고,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돈 없어도 기초적인 욕구들을 원활하게 충족해 왔으나 어느새 국제 화폐경제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새로운 경제구조는 돈을 벌기 위해 농촌을 떠나게 만들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변해가는 라다크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놀랄 만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현대세계의 생활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새로운 생활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 가버리는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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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안에서는 파악할 수 없다. 현대화라는 것은 겉으로 볼 때 문화에 대한 큰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고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 파괴적 영향력을 명확히 알 수 있다.
◉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개발을 꼭 파괴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라다크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키고 왔던 사회적, 생태학적인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유의 것들을 해체해 버리기보다 전통적인 기반 위에 새로운 것들을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반개발’과 ‘탈중심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비야가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가치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라다크 마을 사람들, 그들의 지혜와 평화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개발이라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확인해 보자.
이 책은 라다크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바탕으로 한 미래에 방점이 찍혀있다. 라다크 사회에서 ‘미래’는 무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수세기 동안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지혜와 방식은 이미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우리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개발 논리의 편협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 빈곤해결 구호활동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다나카 유)
“다섯 손가락은 모두 다르지만, 합치면 하나의 손을 이루어 큰 힘을 냅니다.”
선진국들이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자금을 들여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기만 하고 가난한 사람은 늘어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기? 그 이유는 개발원조가 대부분 ‘원조를 받는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원조하는 나라’를 위한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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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우리나라도 원조를 통해 당장의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다른 측면으로 선진국의 지배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 지역의 가능성을 살리는 원조가 필요하다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에서는 그 방법 중 하나로 ‘지역의 가능성을 살리는 원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원하는 쪽의 편의에 따라 개발원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민 스스로 지역의 미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고, 의존심만 키울 수 있는 것을 경계한다.
이 책에서 가난한 나라들의 빈곤을 없애기 위한 첫째 방법은 ‘공정무역 초콜릿을 먹자’이다. 선진국 초콜릿 회사의 이익을 위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노예노동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커피도 알고 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베트남 사람들의 피예요.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생산지의 커피값은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커피 농사를 지어가지고는 반년도 먹고 살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덤핑으로 팔아요.”
그렇기에 공정무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불공정한 무역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 물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한비야가 아프리카 남부 수단으로 파견 갔을 때이다.
“우리 구호 사업장이 있는 톤즈 지역의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이 이 지역의 유일한 식수원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물을 길어 먹고,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한다. 같은 강물을 소 떼도 함께 마시고 똥오줌을 누는데, 그 옆에서 목동은 그 물을 손으로 퍼서 그냥 마신다. 그 아이들도 그 물이 더럽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어쩌랴. 다른 물이 없는데.”
지구 면적의 3/4이 물이지만 그 중 사용할 수 있는 물은 1% 뿐이다. 지구 10억 명이 물 부족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물 부족 국가에서 하루에 평균적으로 쓰는 물의 양은 1인당 5리터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통계청의 2011년 녹색생활지표 작성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010년 기준으로 333리터이다.
한비야는 지구 전체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일생생활에서의 작은 실천부터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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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에서 한 가족에게 한 달 동안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데 드는 정수약값은 단돈 3,000원이다. 언제라도 깨끗한 물이 나오는 펌프 한 대를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은 약 7백만 원. 한 마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인도에 있는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 1리터를 생산하기 위해 9리터의 물을 사용했다. 때문에 주변의 지하수 수면이 낮아지고 우물이 고갈되었으며 쌀 생산량이 10% 감소되었다. 거대 자본이 물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한 결과다. 이런 예는 전 세계적으로 비일비재하다.
◉ ‘세계’의 문제가 비로소 ‘나’의 문제
이 책은 한 방법으로 ‘하루 2천원으로 사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를 권하고 있다. 단 며칠만이라도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단지 현장을 아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장을 접하면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세계’의 문제가 비로소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 문제 해결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온 만델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배를 주린 채로 잠드는 어린아이가 한 명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바꾸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신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다양성입니다. 모두 있어야 할 까닭이 있어서 있는 것이고, 모두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손가락과 같죠. 다섯 손가락은 모두 다르지만, 합치면 하나의 손을 이루어 큰 힘을 냅니다.”
나만 사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다면 작은 수고스러움을 즐겁게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야는 ‘지도 안’ 여행가로서의 삶에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구호활동가로서의 삶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금을 넘는 데는 단 한 발자국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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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바람의 딸에서 빛의 딸로
■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우리 모두가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리얼리스트 : 현실주의자.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
한비야는 바람의 딸에서 빛의 딸로 변신을 꾀한다. 국제 구호 활동가의 삶을 살게 되면서 세상에 빛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여행의 결과물이었다. 한비야가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체 게바라도 그러하다. 체 게바라는 여행을 통해 혁명가의 길을, 한 비야는 여행을 통해 국제 구호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쿠바의 게릴라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체 게바라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여행은 현실의 회피가 아니다
‘체 게바라 평전’ 중에서 대중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은 그의 청년기이다. 무엇보다도 그 이유는 ‘청춘’과 ‘여행’이라는 낭만성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란 영화로 잘 알려졌듯이 젊은이다운 그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인으로서 우리의 뿌리를 찾아 떠나자. 대륙 발견 이전 시대의 문명을 발견해 보고, 마추픽추를 기어올라 그 비밀을 손수 풀어보자.”
체 게바라와 그의 친구 알베르토는 기말시험을 통과한 후 칠레까지 이어진 장기간의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여행수단은 500CC 짜리 중고 오토바이다.
휴양지에서 접한 상류사회 사람들의 모습을 본 그의 정치의식은 오히려 강화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불평등한 현실의 모습을 확인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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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이다. 지방 선술집에서 만난 병든 노파의 모습을 보고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에 대한 개탄의 소리도 잊지 않고, 거대한 추키카마타 광산에서 노동자의 고단함을 목격하기도 한다.
“여기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경비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주거만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니 지옥이나 다름없어. 그들은 하수구조차 갖춰지지 않은 저 외딴 곳에 마치 가축처럼 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있잖아.”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던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이유는 이런 여행과정에서 목격한 남아메리카의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여행은 그에게 혁명의 준비기였던 셈이다.
다음 여정은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거슬러 쿠스코이다. 이미 그들의 애마 오토바이는 고장이 나서 트럭에 실려 보내 버린 뒤였다. 쿠스코는 대잉카제국의 옛 수도라 페루 여행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잉카제국은 스페인이 정복하기 이전에는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세상의 배꼽’이라 불리는 쿠스코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일단 그 지방 박물관을 찾는 것이 순서라고 한다. 마추픽추에 오르기 전에 잉카의 정서를 흠뻑 느껴보는 첫 단계인 셈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잉카인들이 고도 수준의 문명을 누렸음을 확인했다.
◉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준 여행
한비야가 쿠스코에 들러 찾아간 곳은 산토도밍고 교회이다. 이곳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인들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지어졌다. 지진이 나자 잉카의 유적은 그대로 남았는데 스페인 건물들이 무너져 다시 세웠다고 한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감금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왕을 살리려고 잉카인들이 가져온 정교한 금붙이들을 운반하기 쉽도록 금괴로 만들어 가져갔다고 한다.
“결국 잉카의 빼어난 문화유산이 녹아 사라지고 만 거다. 아, 정복자의 무자비함이여. 안타깝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그들이 꿈꾸던 마추픽추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이곳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글을 적어 병에 담았다. 일종의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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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캡슐인 셈이다. 이후 두 번째로 페루를 찾은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책들을 싸가지고 마추픽추에 다시 간다. 이 여행을 바탕으로 ‘마추픽추, 아메리카의 돌의 신비’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다음으로 그들이 찾아간 곳은 아르헨티나 나환자 마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술을 발휘해서 그들을 돕는다. 병원의 의사들로부터 이미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한 남자는 그의 수술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여행을 마친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획득함으로써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후 두 번째의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은 혁명가가 되기 위한 출발이다. 알베르토가 있는 카라카스로 갈 예정이었던 체 게바라는 여행일정을 변경하여 혁명의 열기가 한창인 과테말라로 간다. 그의 이름은 간편한 호칭인 체로 굳어졌다. ‘체’는 말을 시작할 때나 강조할 때 쓰는 일종의 감탄사이다.
그는 사랑하는 딸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도록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아버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나서는 길은 그 이상을 꿈꿔야 하는 혁명가로의 길이었다.
◉ 한 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던 혁명가
멕시코에서 그는 추방당한 페델 카스트로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쿠바 혁명에 가담해 달라는 피델 카스트로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메달아 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감옥 안에서 단식 투쟁을 할 무렵 어머니께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총살 후 눈을 감지 않은 그의 모습은 마치 예수의 생김새와 비슷해서 언론에 공개한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장 코르미에는 체를 영혼의 순례자라고 표현한다. 타인의 삶에 무한한 관심을 보이고 그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투쟁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였다고 말이다. 장 코르미에는 이 책을 탈고하기 위해서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출판사 편집자들도 공산주의가 몰락한 마당에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었다. 체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이라는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없었지만 순결한 낭만성 때문에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지 모른다. 꿈을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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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것보다 불가능할지언정 꿈을 꾸는 삶이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다’ 고 엘뤼아르는 말했다. 별이 있는 꿈은 깨어 있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체는 한 번도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다.”
체 게바라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보고자 두 눈을 뜬 채로 세상을 떠났을까.
“이제는 빛의 딸이 되고 싶어요. 태양처럼 큰 빛은 못되더라도 손 안에 든 작은 촛불이나 등불 정도라도 제가 가는 곳을 밝고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요.”
한비야는 체 게바라처럼 혁명가의 삶을 살지 않았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만은 감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좀 더 공정하고 따뜻한 세상이다.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눈물의 땅
-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노암 촘스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잘 살고 있는 땅에 어느 날 갑자기 외세를 업은 유대인들이 쳐들어와 주민들을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외국의 간섭없이 옛날처럼 유대인과 함께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사는 겁니다. 다만 한 가지 전제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예루살렘을 내줄 수 없다는 겁니다.”
한비야에게 팔레스타인은 가슴이 아픈 땅이다.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긴급 구호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여행지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출신 대학원생 집에 방문하는 기회가 있어 팔레스타인 투쟁사를 직접 듣게 된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유대들이 성서의 2천년 기록을 근거로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면서 비롯되었다. 그곳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던 아랍인들의 저항으로 1차 중동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후 모두 4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으나 번번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고, 이스라엘은 건국 당시보다 더 확장된 영토를 갖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곳도 이곳이다. 난민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도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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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에서는 이스라엘이 강제적으로 내쫓았다고 하고 있고, 이스라엘 측에서는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떠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 촘스키가 본 팔레스타인 문제
“미국은 중동 사태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지역 내 몇몇 나라에 군사, 경제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고 미국의 기업들은 석유와 기타 사업들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의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나 국가 사회주의 체제와의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지역 내의 파괴적 충돌과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는 점에서 세계 어떤 지역 문제도 이 문제에 비할 수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정의의 문제, 나아가 민족 생존의 문제들이 적나라하고 위협적인 용어로 다가온다.
노암 촘스키의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제는 양국의 문제만을 떠나 중동 지역이 문제, 나아가 세계 평화와 직결된 문제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아랍측 변론이 정제로 갈고 있는 것은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주를 강요하자 유대인들에게 조국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아무 죄도 없는 다수 인구의 소망은 철저히 무시된 체 마침내 유대국가가 탄생’ 했으며, 그 결과 수십만 아랍인 난민이 추방되고 있는 반면, 까마득히 먼 옛날의 고향에 정착하고자 하는 유대인에게는 유대국가의 ‘귀환법’ 에 따라 누구에게나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부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2,000년에 걸쳐 추방과 박해를 겪은 민족의 땅에 조국을 세우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놀리다. 이 책에서는 각자의 힘과 설득력으로 서로 겨루는 주장들이 민족이 생존권이라는 틀 속에서 조직화 되고 있으니 대책 없는 충돌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 한비야가 본 팔레스타인 문제
“기본적으로 구호 단체 직원은 경제, 사회, 정치, 국제적 약자의 편이다 그래서 여태껏 강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나 그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에서 보고 듣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호전적인 주위의 아랍 국가들에게 존재를 위협받는’ 이스라엘이라는 표현도 전혀 틀린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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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러나 구호 요원으로서의 내 눈엔 미국이란 최강자를 등에 업고 약자인 팔레스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이스라엘이 더 불편한 존재로 보인다. ‘닮고 싶은 나라 이스라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관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한쪽 얘기만 많이 들었으니 다른 쪽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정보의 균형이 맞을 테니까.”
이 지역의 문제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간의 대립일까? 한비야는 이 문제는 종교와는 무관한 영토 분쟁이라고 단언한다. 이 분쟁의 시작은 땅 때문이고, 그 땅에 누가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주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의 대외 원조를 가장 크게 받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이스라엘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석유 때문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 실수도 꼭 거쳐야 되는 과정이다
-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 (프랭크 맥클러스키)
“어떤 꽃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꽃은 완벽하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는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철학교수의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 책 뒤로 갈수록 굉장히 중요한 생각거리를 주시더라고요. 사실 긴급 구호를 보통 소방관에 많이 비유해요. 조금 위험해도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도 우리는 들어가서 불을 꺼야 하고, 특히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 때는 우리의 목숨도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자기를 삼켜버릴지도 모르는 불길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걸 다시 한 번 꺼내서 생각하게 했어요.”
한비야의 말대로 긴급 구호활동은 소방관과 비슷한 점이 많다. 자신의 목숨보다 타인의 목숨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화재뿐만 아니라 지진, 태풍 등의 재난대응과 재난현장 관리, 응급의료, 긴급구조를 병행한다. 긴급 구호의 활동 또한 사람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절감하고 최대한 빨리 일상에 복귀함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한비야가 본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의 세계가 어떨지 궁금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펼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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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 목숨을 살리려면 네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비야가 긴급 구호 활동을 소방 활동에 비유를 한 것은 일의 급박성이나 인명을 구한다는 의미에서 이해가 간다. 그런 면에서 소방관이라는 일과 긴급 구호라는 일은 엄연한 공통점이 있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은 헌신성과 책임감이 아닐까 한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려면 네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비야가 구호 일을 시작하기 전 어느 외국 구호요원한테 들은 말이다.
“특히 긴급 구호요원은 소방관과 같다는 거다. 불이 나면 모두 피신하지만 불구덩이 속에 사람이 있는 한 소방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처럼, 긴급구호요원은 위험한 현장에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뜨끔했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을 결심은 했지만 목숨까지 내놓으라니.”
하지만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에서 철학을 연구하는 일과 소방 활동을 하는 일을 비슷하다고 한 부분에서는 그 이해가 쉽지 않았다. 프랭크 맥클러스키가 말한 대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불과 앰블런스 소리에 출동하는 것은 이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교수와 소방관은 그렇게 다르지 만은 않다. 둘 다 우리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로 인도한다. 진리의 순간으로, 인생의 신비스럽고 심오한 그 무엇을 이해하는 순간으로 이끌기도 한다. 진리는 종종 고대의 서적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화염에 휩싸인 집 깊숙한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붕의 한 귀퉁이와 불타는 계단에서 대학 도서관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자신에 관한 신비를 배울 수 있다.
소방관으로서의 그는 최대한 불을 끄려고 애쓰지만 교수로서의 그는 학생들의 불꽃이 오래 타오르도록 돕는다. 진리를 깨우치려는 학생들과의 첫 강의 시간마다 그가 강조하는 말이 있다.
“차가운 바람속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눈송이들 가운데, 똑같은 두 개의 눈송이가 떨어지는지, 아닌지를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 철학교수, 불 속에 뛰어들다
소방관으로서 그의 구체적인 활동, 즉 불 속에 뛰어드는 첫 순간 그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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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떨려 왔다고 고백한다. 안쪽으로 먼저 들어간 동료를 따라 들어가 엄호해야 했지만 뜨거운 열기와 혼돈 속에서 그는 머뭇거렸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뒤에서 가해진 힘에 의해 앞으로 밀려갔다. 즉 멋지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것이었다. 월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다음 주가 아니야 바로 지금이야’”
동료의 갑작스런 킥이 자신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그날 그렇게 불 속에 들어간 후 그는 자신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그가 처음했던 심폐기능소생술 또한 남다른 의미였다. 한 중년 여성의 극심한 심장 발작. 그는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환자는 변화가 없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좌절했다. 다음날 자신들이 행했던 노력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환자의 목숨을 유지해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자원 소방과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 중의 하나는 ‘신뢰’에 관한 문제이다. 자원소방서에 가입하는 일은 쉽지만 다른 소방관들이 자신에게 호의적이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다. 응급 상황에서 그를 신뢰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그 또한 평생을 걸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응급 상황에서 겪은 동료들의 믿음직한 행동들 때문일 것이다.
◉ 실수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소방관은 물과 신뢰를 가지고 불과 싸운다고 말한다. 물은 쉽다. 물은 불에 퍼붓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신뢰’의 부분이다. 어떤 일을 잘 한다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대가(大家)란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대가는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철학교수가 대가란 여러 가지 시련과 잘못된 선택, 여러 가지 자기를 단단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하나의 크리스탈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굉장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나쁜 결정, 두려움, 비겁한 결정도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 결과로 좀 더 나은 결정, 모두에게 좋은 결정을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책입니다.”
“어떤 꽃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꽃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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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맥클러스키가 중국 철학책에서 인용한 이 문장이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일과 모든 상황은 그 나름으로 특별한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일단 글로 써질 경우 영원히 고갈되어, 시간 속에 동결되어 버린다. 하지만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며, 순간마다 또 사람마다 달라진다. 우리가 삶에서 실제적인 것과 의미 있는 것을 탐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약동 속에서이다.”
프랭크 맥클러스키는 그러한 약동 속에서 책이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경험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찾아 헤맨 보물을 자신이 하고 있는 지금의 일에서 찾았다는 그는,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그가 소방서에서 보낸 값진 과정 덕분이다.
프랭크 맥클러스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가슴이라고 강조한다. 한비야가 세상을 끌어안는 가슴은 두 발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전에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때가 반드시 온다
- 양화소록(강희안 1417-1464 태종~세조, 집현전 직제학, 원종공신, 성삼문 정인지 신숙주 등과 훈민정음 창제 및 각종 서적 편찬에 참여)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키워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 몫이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이것이 ‘한비야의 난초론’이다. 한비야는 ‘나’와 ‘남’의 관계가 난초를 키우는 노력과 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강희안의 난초론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한비야가 본 ‘양화소록’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아!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모르면 안 된다. 건습과 한난을 알맞게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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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지 못하고 그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죽을 것이니 어찌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랴?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養生)하는 법을 알았다. 이로 미루어 이치를 넓혀 간다면 무엇을 하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이치를 터득함으로써 나랏일을 밝히고 백성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한 것이다. 양화소록(養花小錄)은 화초를 재배하는 방법이나 지식을 기록한 글이다.
◉ 강희안의 양화소록
강희안은 꽃과 나무의 품을 9가지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1등은 높은 풍치와 뛰어난 운치를, 2등은 부와 귀를, 3,4등은 운치를, 5,6등은 번화함을, 7~9등은 그 나름의 장점을 취했다. 이 등급은 우월을 비교해서가 아니라 서로 같이 취급할 수가 없어서 나눈 것뿐이라고 한다. 강희안이 1등으로 평한 매,국,연,죽 중에 매화를 감상해 보자
원예를 배우는 선비들은 반드시 먼저 매화를 심으니 아무리 많이 있어도 싫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서운 바람과 눈 속에 꽃봉오리를 내놓는 설중매는 그 기개를 높이 여겨 선비들이 즐겨 심었고 매화가 필 무렵이면 선비들은 탐매여행을 떠났다. 매화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다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야 비로소 그윽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강희안의 선조 강희백이 지리산 단속사에서 어린 시절 공부하면서 손수 심은 매화를 보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는, 속세를 끊어낸다는 뜻의 단속사 옛 터에 아직도 630여년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 무소유가 아닌 소유의 즐거움
“초봄에 꽃이 피거든 등불을 켜놓고 책상 위에 난분을 올려놓으면 잎의 그림자가 벽에 박혀 야들야들한 게 구경할 만하며, 글을 읽는데 졸음을 쫓기도 한다.”
강희안이 이렇게 난을 즐겼지만 법정 스님에게는 무소유의 깨달음을 준 것 또한 난초이다. 법정 스님이 난을 가꾸면서 밖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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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햇빛이 강해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
다. 결국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난을 안겨주었더니 비로소 얽매임에서 벗어났다고 하니 무척이나 까다로운 화초임에는 분명하다. 하나의 꽃을 보고도 사람마다의 감상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 한비야의 양화소록
“지난 봄에 베란다의 화분을 정리할 때의 일이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지 않은 화분을 다 버리려니까 옆에 있던 큰언니가 미처 올라오지 못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 며칠만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런데 글쎄 이주일 만에 베란다 가득 꽃들이 피어나는 게 아닌가. 저걸 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그러나 그때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파리만 남아 있는 화분에 그렇게 예쁜 꽃이 숨어 있을지…….”
한비야는 그때 초라한 화분을 보면서 지도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초라한 화분 안에서 어느 싹이 피고 어느 꽃을 피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눈 밝은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잠재력을 보고 밀어주는 사람.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사람이 바로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말이다. 자신을 뒤에서 응원하는 지도자들 덕분에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한비야는 초라했던 자신을 믿어준 양아버지와 월드비전 전 회장을 떠올리며 다짐한다.
“이제는 내가 우리 양아버지나 오 회장님처럼 ‘싹있는 사람’ 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분들이 내게 했듯 이제는 누군가에게 날개를 달아줄 차례가 된 것이다.
한비야는 중국 유학시절 국화가 한창 핀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늦깎이 인생을 국화와 비교해 보기도 한다. 개나리와 벚꽃은 봄에, 장미는 한여름에 핀다. 무더위를 이기고 가을에 피어난 국화는 묵묵히 때를 기다릴 줄 알기에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계절의 꽃들은 다른 꽃보다 늦게 핀다고 시샘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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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 나는 지금 행복하다
-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이 책은 마시는 순간 바로 갈증이 해소되는 맑고 깊은 샘물 같은 책이다.”
한비야는 책을 읽은 후 뒷장에 간단히 독서일기를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런 습관 덕분에 당시 그녀가 책을 읽은 후의 생생한 소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7년 5월 20일. Great! 역시 고전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구나! 좋은 영양제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세상에는 행복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마셔도 마셔도 갈증만 더하는 ‘바닷물’ 같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마시는 순간 바로 갈증이 해소되는 맑고 깊은 샘물 같은 책이다. 내가 왜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알게 해준 책.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죽을 때까지 누리고 나눌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예전에 나온 판본보다 읽기가 훨씬 즐거웠다.
◉ 행복이 나를 떠난 이유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철학을 소개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또한 선천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고백한 후 현재는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한 해 한 해를 맞을 때마다 나의 삶은 점점 즐거워질 것이다. 이렇게 삶을 즐기게 된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대부분은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욕심 따위는 단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삶을 즐기게 된 주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란 말은 옆 사람을 뛰어 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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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활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이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이 삶의 근본 철학이 된 것이 문제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지나친 ‘걱정’이 많다는 데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좀 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정신적 훈련을 한다면 지나친 걱정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데 서투르다. 두려움이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문제와 부딪히기는커녕 일부러 다른 일을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법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올바른 방법은 그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민하는 것, 그러다 보면 그 두려움에 대해 친숙한 감정이 들고 해결의 지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 행복으로 가는 길
저자는 행복한 사람들이 지닌 뚜렷한 특징인 열정에 대해서 식사하는 태도에 비유를 했다. 식사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 자신의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하는 미식가,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대식가 등의 모습에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은 적당히 식욕을 느끼고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다가 배가 적당히 부르면 수저를 놓는 사람들이다.
“인생이란 잔칫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역시 인생이 내놓는 유익한 것들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행복한 사람은 적당한 식욕을 느끼고 적당한 양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과 비슷하다.”
한비야는 행복의 조건이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깥에서 어떤 종류의 힘이 가해지든 그것은 ‘내’ 인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 스스로 행복의 조건으로 만들면 된다고 믿고 있다. 한비야의 표현대로 ‘마음속에 행복발전소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신 안에 무엇이 들어와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만 있다면 행복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 행복은 신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성취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은 운 좋게 저절로 입안으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을 ‘행복의 정복’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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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신이 베푸는 선물이 아니라 어렵게 쟁취해야만 하는 대상이고,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불행의 원인이 주변의 환경에, 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을 때 체념하거나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행복의 정의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정의는 딱 한 가지예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딱 맞아떨어지는 그 일을 하는 것, 그런데 이 긴급구호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에요.”
한비야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바로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얼굴이라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행복한 얼굴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비야가 말하는 ‘행복의 정의’란 그리 어렵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가슴 뛰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람도 일독, 이미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확실한 근거와 증거를 제공하는 책이므로 일독, 특히 고전은 무조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 전방위 지식인이 되고 싶다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
“이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은 훌륭한 형제들과의 교류를 통해 완성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쓴 책, 그의 친구나 형제들, 그가 살았던 시대, 그의 ‘님’이었던 정조까지, 그래서 나는 정약용에 관한 책은 무조건 산다. 뭔가 한 줄이라도 새로운 게 있을까 싶어서다. 한 마디로 ‘이름 마케팅’이 통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은 훌륭한 형제들과의 교류를 통해 완성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그의 형제들이 모두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데 맹활약을 했던 신앙의 선배들이라 더운 흥미로웠다. 여러분도 우리의 자랑스런 전방위 지식인 정약용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정약용은 한비야가 아주 좋아하는 인물이다. 새로운 정약용의 모습을 찬찬히 보고 싶어서 다산 초당에 새로 걸린 안경 낀 초상화 복사본이라도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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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정약용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순조 1년. 정약용의 형제들은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른바 신유년(1801)에 일어난 천주고 박해 사건이다. 이는 천주고 탄압을 미끼로 남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론의 정치적 공격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과 정약종도 연루된다. 정약종은 세계 천주교 선교사상 선교사가 파견되기 전에, 최초로 자청해서 영세를 받은 매형 이승훈과 같은 날 죽음을 맞이한다. 며칠 후 장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 되면서 유배길에 오른다.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등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진실한 실학자의 길을 걸었고 첫째 형 정약현은 집안의 제사를 이어가며 가문을 보호했다. 가문은 비록 폐족이 되었으나 정약용의 형제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다.
◉ 유배지에서 쓴 편지
대역부도죄의 집안사람들은 과거시험 자격이 박탈되어 벼슬길이 막힌다. 정약용은 비록 멀리 떨어진 유배지에서도 자식들 교육에 힘쓴다.
“내가 보기에는 너는 이미 진사도 되고 과거에도 급제할 실력이 된다. 식자로서 과거의 폐단에서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너는 진실로 독서할 때를 얻었다. 내가 이미 말했듯이 폐족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가 된 게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두 아들에게 부친 편지 내용을 보면 과거를 볼 수 없게 된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진정한 학문을 위한 독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벼슬보다 큰 길이 학문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난이 학자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가르치면서 당대에 권력을 쥐었던 학자들이 그 권력 때문에 훌륭한 학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아들이나 사촌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아들에게 과제도 주지만 성의를 보이지 않자. 다그치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한다.
“폐족이라 생각해서 그러느냐? 폐족은 과거에 나가는 것이 기피될 뿐이지 성인이 되는 길이야 기피되지 않는다. 폐족에게 재주 많은 걸출한 선비가 많은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게 많이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부귀영달하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았기에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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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전방위 지식인 정약용
정약용의 3대 역작을 꼽는다면 이른바 ‘1표 2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이다. ‘경새유표’는 국가 경영에 관한 일체의 제도 법규의 개혁에 대해, ‘목민심서’는 지방관을 비롯한 관리의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다루었다. 또 ‘흠흠신서’에서는 곡산부사로 재직할 때 실제 수사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형벌규정의 기본원리와 유의할 점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정약용의 저서 중 법정서 분야의 대표작이고, 철학서의 대표작은 ‘주역사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약용과 정조 관계는 각별했다. 정조가 정약용을 처음으로 만난 건 17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자 책봉을 기념해 실시된 증광검시 합격자들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에서 정약용을 본 정조는 나이를 묻는다. 정약용은 임오생이라고 대답했다. 정조는 사도세자가 죽은 해에 태어난 그에게 애틋함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또 정약용은 사도세자 생전에 온양에 머물 때의 유적지가 방치된 것을 보고 지적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충성이 가상하다며 기뻐한다. 이 보고를 들은 노론은 경악했다고 한다. 유적지를 정비한 것이 충성이라면 사도세자를 죽인 자신들은 역적이 되기 때문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다. 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의 묘가 물에 찬 것을 보고 정조는 오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화성으로 행차할 때마다 한강을 건널 배다리가 필요했다. 정조는 서학서를 통해 서양 과학지식에 해박한 정약용에게 배다리의 설계와 화성을 쌓을 설계도 맡긴다. 정조는 모든 백성들이 편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인물이 필요했다. 정약용은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약용에 대한 두터운 신임은 노론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정조의 죽음 후 정약용은 자신의 미래를 예감했다. 여유당이란 호를 지은 것은 이 무렵이었다.
“여유당은 노자의 ‘망설이면서(與)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猶)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한다’ 라는 구절에서 따 온 것으로서 정조 없는 세상을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강진으로 유배된 정약용은 호를 다산으로 정했다. 근처의 만덕산은 야생 차나무가 많아 다산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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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전방위 지식인이었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이었으며 방대한 저작을 남긴 학자이자 사상가였다. 현실 개혁을 실천하는 정치가이자 경제학자였으며 과학자이자 공학자이기도 했다. 또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애틋한 사랑을 전한 아버지이자 스승이기도 했다.
제5장 그건 사랑이었네
■ 내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
- 성경
“저는 그런 원고청탁을 받으면 쓰지 않을 생각이에요.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 있을까요? 20대 30대…… 그때그때 달라질 수는 있겠죠. 제 경우에 단 한 권으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만약에 반드시 꼭 하나만 말해야 한다면 저는 성경책이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으로 어떤 도서를 선정하고 싶냐는 인터넷서점과의 인터뷰에서 한비야가 권한 책은 성경이었다. 한비야의 이야기에서는 성경에 대한 애정이 유독 많이 묻어 나온다. 그녀가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고 구호 활동도 종교 활동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비야의 이야기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말도 바로 사랑이었다.
통상 불리는 바이블(bible) 이라는 말은 파피루스의 무역집산지였던 비블로
스(Byblos) 지역에서 비롯되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자라는
풀로 책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Bible은 애초에는 단순히 책을 의미하는 말
이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으로 총73권, 나머지 기독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총 66권만을 인장한다.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구
약 7권을 외경이나 제2경전으로 취급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적으로는
읽는 것은 유익하나 교리에 근거가 되는 데는 결코 사용할 수 없다고 보았
다. 동양 문화권에서 유교나 불교의 영향이 있는 것처럼 성경은 서양문화에
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경전이다.
◉ 한비야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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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 중의 하나를 하느님이라고 꼽았다. 한
비야는 파키스탄의 8천미터급 산인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던 도중 거대한 빙
하를 만났다. 갈라진 크레바스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빙하를 건너고 있는데 한순간 본능적으로 발이 멈췄다. 그곳은 천 길 낭떠러
지 얼음벽 벼랑 끝자락이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목덜미를 확 끌어당기
는 바람에 죽을 뻔한 순간을 간발의 차이로 넘겼다. 뒤를 돌아보니 일행은
저 멀리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여러 가지의 이론이 있지만 한비야는 ‘하느님의 손’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죽
을 수도 있었을 상황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신앙인으로서 단순한 현상으
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특히 오지 여행을 하면서 경험했던 위험한 상황들
을 무사히 넘긴 그녀로서 당연한 믿음일 것이다.
한비야가 2007년 짐바브웨로 파견 나갔을 때다. 수년간 계속된 가뭄 때문에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녀는 넉 달 동안 매일 두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을 읽기도 했다. 한비야는 그 무렵 사십대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오십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놓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기도제목이 ‘제가 무엇을 하오리까?’ 였다.
어느덧 짐바브웨에서 드리는 마지막 주일예배 시간이 왔다. 목사는 느닷없이 ‘앞으로의 10년의 삶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다. 바로 그녀가 지난 1년 내내 매일 아침마다 간구했던 기도였다.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굵은 눈물방울이 뚝 떨어지고, 가슴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면서 어떤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고 한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라.’
“아 드디어, 마침내 침묵하시던 하느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것이 내가 지금 짐바브웨에서 할 일이고 앞으로 10년간 해야 할 일이구나.”
한비야의 신앙고백은 책 전반에 담겨 있다.
◉ 기도의 힘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네팔에 있을 때 한비야의 기도는 이어진다. 해발 4천미터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아침기도는 시편 121편으로 시작된다.
한비야는 자신이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비록 고난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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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도 있을 것이라는 각오도 단단히 하고 있다. 하느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게 하겠다고 말이다. 자신을 온전히 바쳐 순종하겠으니 애썼다는 한마디면 족하겠다고 한다.
국토 종단을 할 때도 성당에 들러 기도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행 중에 늘 자신과 함께 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자신에게 남다른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보내준 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만심도 경계하고 있다.
틱낫한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도는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도는 우주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행복은 이미 궁극의 차원에 존재하고 있으며,
기도는 궁극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길 바란다.
그래서 당신 자신이 우주안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기 바란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는 말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도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과 긍정적인 마음에 달렸다. 더불어 주위 사람이 ‘나’를 위해 좋은 의도를 보낼 때 치유의 힘은 커진다. 기도의 힘을 믿든 안 믿든 2000년 동안 베스트셀러로 사랑을 받아온 성경책 읽기를 권한다. 성경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독자라면 말이다.
■ 부처님을 닮고 싶은 미국의 젊은이들
- 청바지를 입은 부처 (수미 런던)
“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여행 중 미국인 불자 친구가 적극 추천해서 영어로 읽게 된 책. 반갑게도 한국어 번역본이 있었다. 미국의 이십대 젊은이들이 어떻게 동양에서 온 불교를 받아들여 불자가 되고 그 가르침을 일상생활 속에 녹여내고 있는가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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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가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권하는 24권의 책 중에는 ‘종교 영성 분야’로 6권의 책을 권했다. 그 중에서 불교 관련 서적은 법정스님이 엮은 ‘진리의 말씀 법구경’과 이 책이었다. 한비야의 말대로 법구경은 팔만대장경이라 일컫는 수많은 불경 중 가장 많이 읽히는 법문이다. 한비야는 법구경을 읽고 ‘졸고 있는 내 영혼이 죽비로 한 대 세게 맞아 정신이 번쩍 든 느낌’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미국 젊은 불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청바지를 입은 부처’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참선을 하는 이는 극소수였고 이들이 급진주의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동양적인 것들은 신기한 골동품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수미 런던은 말한다.
달라이 라마 법문을 들으려고 수천 명의 군중이 샌트럴파크에 운집했고, 모든 여성잡지마다 요가가 등장했다. 동양의 모든 것들이 이젠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 한비야가 만난 또 다른 부처들
한비야는 티베트로 여행하면서 스웨덴 동행자를 만난다. 동행자는 기차에서 달라이 라마의 자서전을 읽고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건너편에 있는 좡족(중국 소수민족, 티베트인) 대학생들은 책 표지에 실린 달라이 라마 사진을 보고 책을 이마에 대며 경의를 표하더란다.
그 옆에 있던 한족 청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달라이 라마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사람이라는 말에 한비야가 발끈한다. 동행자까지 합세해서 기차 안은 티베트 문제로 격한 언쟁이 이어진다. 좡족 대학생들은 한비야 일행과 한족의 눈치를 보며 문제가 확대되지 않기를 원했다. 동행자는 중국의 침략으로 티베트인들이 100만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고, 수천 개의 불교 사찰들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게 민족 대학살이 아니면 뭐겠어요. 민족으로 보나, 문화로 보나, 역사로 보나 티베트와 중국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전혀 별개의 나라라는 얘기죠.”
언쟁은 씁쓸하게 마무리 되었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제정세는 한반도에 집중해 있었다. 중국은 티베트를 무력으로 편입시킨 후 자치구를 세우고 강력한 중국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티베트는 이에 저항해 끊임없는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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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벌여왔다. 1959년에는 대규모 독립시위가 벌어졌지만 실패한다. 이후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중국 정부에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망명정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1989년 티베트의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 깨어 있을 때 더 좋은 꿈을 꾸어야 한다.
캐머론 워너가 기도 축제가 열리는 석가모니의 탄생지 룸비니에서의 경험은 미국 젊은이다운 솔직함이 드러난다. 사원에 도착한 그는 편한 호텔을 마다하고 스님들과 함께 텐트를 친다.
그리고 그토록 바랐던 기도수행을 ‘일생 최대의 체험’이라 생각하며 강행한다. 매일 앉아서 8시간 동안, 방석도 없이 버티었다. 허리와 다리는 아프고 반복되는 행위에 그는 점점 지치기 시작한다. 그의 회의감을 눈치 챈 스승은 기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설명한다.
“우리 주변의 세상은 잠잘 때 꾸는 꿈처럼 허망할 뿐이다. 잠들어 있을 때엔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전혀 통제할 수가 없다. 깨어 있을 때는 환경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깨어 있을 때 더 좋은 꿈을 꾸어야 한다.”
불교의 확신을 위해 애썼던 이전 세대의 노력에 의해 불교는 미국 사회에서 주류로 대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불교는 사회적으로 보다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젊은 불자들은 이전 세대보다 많은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야는 자아 변화와 불법을 일상에 접목시켜 나가는 젊은 불자들의 고민과 다양한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확인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느끼고 실천하고자 하는 청바지를 입은 불자들의 삶은 승복을 입은 불자들의 모습 못지않게 진지하다.
■ 종교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이다
- 이슬람교 (발터 M. 바이스)
“ 이슬람교가 세계 12억 신도를 지닌 세계 제4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일반인을 위한 이슬람교 책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 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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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사진과 그림 자료를 곁들여 이슬람 세계의 흐름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어 고마운 책이다.”
아랍인들은 원래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컬었으나 오늘날에는 아랍어를 말하면서 마그레브, 메소포타미아, 예멘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초기 이슬람 전통에서는 이들의 시조 집단들을 언급하는데 그들 모두는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인 셈의 후손이다.
이슬람교(모슬렘, 무슬림)의 창시자는 무함마드(마호메트)이고 이들의 경전은 코란(쿠란, 꾸란)이다. ‘칭송 받는 자’라는 뜻인 무함마드는 570년 경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610년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처음으로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그가 이때부터 632년까지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 코란이다. 코란은 ‘읽기’ 또는 ‘읽어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1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핵심은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신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과 심판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무슬림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책으로서 법적이면서 종교적인 의무와 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적인 생활영역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생활 영역들을 따로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 이슬람 종교
이슬람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전통과는 다르게 원죄 개념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노력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에 따른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계율을 어기고 선약의 나무를 따먹은 데에서 기인한다.
무함마드가 주장하는 신앙의 핵심 중에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에 적용되는 것도 있다. 그는 우선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의 의미를 강조했고, 이스마엘이 아랍 민족들의 조상임을 내세웠다. 그는 기도의 방향을 예루살렘에서 메카로 바꾸었고, 그곳이 아브라함이 세운 유일신의 성소라고 규정했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하면 이슬람은 다섯 기둥에 근거하는데 이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기본적인 의무를 의미한다. 신앙고백, 매일의 기도, 라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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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금식, 구제헌금, 메카 순례가 있다. 여섯 번째 기둥으로 지하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전’이라고 불리는 지하드는 코란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슬람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한 무장투쟁을 나타낼 수 있다. 저자는 서양에서나 심지어 무슬림 사이에서도 이 ‘지하드’는 가장 빈번하게 잘못 해석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만약 지하드가 공격적인 전쟁이라면 그것은 오직 합법적인 무함마드 후계자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은 무함마드 후계자가 없으므로, 단지 방어를 위한 전쟁만이 허락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정치가들이 지하드를 잘못 정당화한다는 젓이다.
◉ 이슬람 문화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것과 달리,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생각해서다. 죽은 짐승의 고기도 먹지 않는다. 코란에서는 죽은 동물의 고기, 피, 돼지고기는 알라가 아닌 다른 사악한 신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다. 이는 풍습이나 기후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돼지는 사막이나 초원에서는 기르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다음으로 여인들은 집 밖에서는 얼굴과 몸을 감싸야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 규정은 남성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고자 함이다.
- 부르카 : 눈만 내놓음, 바닥까지 닿는 나팔꽃 모양의 치마가 달린 모자
- 차도르 : 천막을 뜻함, 몸과 머리를 감싸는 검은외투, 얼굴은 가리지 않음
- 히잡 : 여성의 몸을 보지 못하게 하는 옷을 뜻함
무함마드는 일부다처제와 이혼을 법으로 규정했고, 여성에게 상속권과 재산 소유를 허락했다. 그러나 압바스왕조(750년 이후)에 이르자 여성을 공식적인 생활 영역에서 밀어내고 베일을 강요하며 하렘에서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19세기부터는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다. 비록 이슬람의 정신은 가부장적이라고 해도 몇몇 이슬람국가들은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슬람 사회가 남성 종교라는 일방적인 오해는 제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한다.
◉ 한비야의 하이브리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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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파견지였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일화이다. 구호팀이 기독교 단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나 부활절 때 신자들끼리 조촐하게 숨어서 하는 예배였음에도 현지 직원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 직원은 당시 부시 대통령이 믿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적의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비야는 이 직원에게 자신의 종교를 숨길 수 없었다. 우여 곡절을 겪은 그날 이후 한비야와 그 직원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비야가 본 코란에는 구약의 ‘모세 5경’, ‘시편’, 신약의 ‘복음서’의 내용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이후 이슬람학 교수로부터 코란에는 선지자인 마호메트의 행적보다 예수의 행적을 칭송하는 말이 더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극과 극일 것 같은 두 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 이렇게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한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종교를 인정하여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종교 간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하는 한비야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 나는 세상을 보듬어 안는 치유자이고 싶다
- 상처 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싸매지만, 그분은 한 번에 한 군데씩 상처를 풀었다 다시 싸매십니다.”
“메시아가 언제 오실까요?”
“가서 그분에게 직접 물어 보시오.”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성문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을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습니까?”
“그분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싸매지만, 그분은 한꺼번에 한군데씩 상처를 풀었다 다시 싸매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아마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그때 잠시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준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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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어야만 해’라고 혼잣말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랍비의 물음에 예언자 엘리야가 대답한 말이다. 우리의 해방자는 어떻게 올까? 여기서 해방이란 증오와 억압, 민족주의와 전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정의와 평화를 주는 존재가 바로 메시아고, 해방자다. 헨리 나우웬은 사역자도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한 번에 하나씩 상처를 싸매며 자신이 필요하게 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 입은 사역자이자 치유하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런 삶의 마무리는 어떤가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 그이는 단식으로 자기 몸을 벗고자 했다.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과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법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
스코트 니어링은 전쟁에 반대하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란 “문명국가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대량 학살이자,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벌이는 힘겨루기”라고 보았다. 펜실바니아 대학에서도 아동노동 문제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그는 톨레도 대학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상적인 사람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
스코트 니어링은 마흔도 채 안 되는 나이에 미국의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늘 책임 있는 삶을 살려고 했고 자기과시를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생활을 피해왔기 때문에 심한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결과였고 그로 인한 대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설사 자신의 행동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라도 다시 그래야 한다면, 더 분명한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말이다.
둘의 만남은 연인으로서보다 친구로서 서로를 알고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헬렌은 말한다. 스코트와 헬렌은 서로 다른 점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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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하고 빈틈없으며 잘 연마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그녀는 환상적이고 즉흥적이며 학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부르주아적 배경은 엄격하고 의지가 확고한 개혁주의자와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는 융의 말을 인용하며 둘도 그와 같았다고 말한다.
헬렌은 스코트의 제안에 따라 밑바닥 삶을 체험하기도 했다. 스코트로부터 책 쓰는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녀는 상류층 생활을 버리고 그에게로 갔다. 둘의 다양한 흥미 분야들은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따로 떨어져 있던 관심사들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었다. 스코트와 헬렌은 ‘내 남편’ 또는 ‘내 아내’라는 말이 지나친 구속과 소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거의 쓰지 않았다고 한다.
◉ 조화로운 삶
둘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어려웠다. 둘은 ‘교회의 쥐’처럼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갔다. 농장일은 둘이 밖에서 같이 한 첫 번째 일이었다. 그녀는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수확하는 일을 배웠고, 자신의 노동으로 자기 먹을 양식을 얻는 일에 만족스러워했다.
“우리는 화학비료를 안 쓰는 자연 그대로 유기 농사를 짓고 싶었다. 농기계를 거의 안 썼기 때문에 기술의 힘을 빌리는 일이 많지 않았으며, 그 지역에서 깨끗하게 재배되고 되도록 가공되자 않은 자연 그대로의 단순한 자연식을 하려고 했다. 우리는 단순하고 건강에 좋은 환경 속에서 자연을 따르는 생활을 추구했다.”
그들은 검소하고 절약하며 사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 우리가 애써온 삶은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다. 검소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립하는 그 삶은 우리 이마에 땀을 흘려 생계를 꾸리고, 고용주나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먹을 양식을 기르고 살 집을 지으며 필요한 나무를 베고, 자신의 생활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거의 필요 없었고. 쓸 일도 없었다. 물건을 살 돈이 없으면, 우리가 손수 만들거나 그냥 없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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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기관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박탈당했던 스코트는 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프리랜서식 강연을 했다. 학교와 노동조합, 단체 등을 돌면서 여론의 평가와 지역 형편을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의 강연은 사람들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경제학자, 교육자, 평화주의자, 인권옹호자, 생태주의자 등으로 인정받았다.
◉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스코트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죽기를 원했고, 죽음에 협조하면서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편안하게 몸을 버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했다. 웰즈와 같은 평온한 최후를 즐겼다고 한다 웰즈의 마지막 날 인터뷰를 하러 간 기자가 들은 말은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내가 지금 죽느라고 바쁜 걸 보지 못하시오?’하는 말이 전부였다. 스코트는 자신도 그렇게 떠나기를 원했다.
“그이는 단식으로 자기 몸을 벗고자 했다. 단식에 의한 죽음은 자살과 같은 난폭한 형식이 아니다. 그 죽음은 느리고 품위 있는 에너지의 고갈이고, 평화롭게 떠나는 방법이자, 스스로 원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원하는 데로 죽음으로써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 아니 아름답게 완성했다.
◉ 죽음은 단식으로, 삶은 채식으로
“당신은 빈대, 흰개미, 모기, 바퀴벌레 같은 해충들을 죽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혹시 이런 사실을 알고 계신지를 묻고 싶습니다.
1,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숲을 파괴하고(썩은 고기를 얻으려고) 지나치게 많은 목초지를 만들고, 드넓은 땅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2, 인간은 온갖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3, 인간은 ‘스포츠’란 이름으로 야생동물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4, 역사상 인간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이룬 문화를 파괴하고 약탈하며 수천만 명을 노예로 만들고 죽이지 않았습니까?
5, 당신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도시의 입구에 자리 잡은 빈민가의 그 끔찍한 광경, 광고판이 줄지어 선 고가도로를 보지 못했습니까? ‘해충’을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살아 있고 살리는‘ 뜻에서 볼 때 인간이 단연코 으뜸가는 해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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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은 니어링 부부가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이다. ‘단식으로 죽음’을 기꺼이 맞이했던 스코트 니어링은 살아서는 채식으로 삶을 이어갔다.
헬렌 니어링은 어렸을 때부터 채식주의자였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으나 그녀 스스로도 동물을 사랑해서 잡아먹는 것을 거부했다. 스코트와의 만남을 계속하게 된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둘은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그녀가 끌린 점도 그가 평화주의자이고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가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 스코트 니어링 : 1883-1983 향년 101세
- 헬렌 니어링 : 1904-1995 향년 92세
■ 한비야의 인생 설계
-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 (소노 아야코)
“일본의 소노 아야코라는 사람은 삼십대에 ‘이렇게 나이 먹지는 말자’는 내용으로 계로록(戒老錄)을 써서 공전의 베스트셀러이자 최장기 스테디 셀러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자기가 칠십대에 이르러 살펴 보니 어느새 자신이 그 책에서 그토록 경계한 노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더란다. 삼십대부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책이 널리 읽히는 바람에 보이지 않는 시선의 감시까지 받은 사람도 이렇다는데, 나 같은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그 계로록이란 책을 읽고 한비야는 이후의 인생 설계까지 해 보았다. 일명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리스트’다. 그녀는 종목별, 나이별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평상시에 해야 할 목록도 만들었다. 종합 건강 검진을 받은 후 병원에서 직접 내원을 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 걱정 끝에 작성한 것이다.
◉ 한비야의 인생 설계
- 나이별 리스트
50대 : 구호 현장 최전선에서 일하기, 백두대간 종주, 각 대륙의 최고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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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배 타고 지구 세 바퀴 반 돌기
60대 : 후진 양성, 후배 교육, 강의, 글쓰기에 전념하기, 못다 한 오지여행,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 파워 인터뷰
70대 : 성지순례, 세계의 국립공원 여행
80대 : 조용히 책 보며 지내기, 가진 것을 몽땅 나누어 주기
-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평상시에 해야 할 일 리스트
매일매일 자기
매일 성경 읽고 묵상하고 일정한 시간에 기도하기
운동 및 아침 식사
정리정돈 : 특히 일기장, 편지, 사진
하루에 한 사람 이상에게 안부 전화하기
◉ 바람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한비야의 인생 설계도를 본 주변의 반응은 도대체 그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이 뭐가 그렇게 많냐고. 죽기 전에 다 못할 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이 들면 이런 구체적인 계획이 오히려 사람을 주눅들고 기죽게 하는 거라는 이도 있다. 그녀 스스로도 계획을 세우고 못했을 경우 민망하고 창피할까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잠깐의 망신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지레 포기하고 계획마저 세우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한다. 과연 한비야 답다. 그녀는 나이가 주는 물리적 한계는 인정하지만 실체가 분명한 한계라면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계획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단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자신은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닮지 말아야 할 두 가지 모습은 ‘내가 왕년에는’을 말머리 삼는 사람, ‘자기 생각과 경험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내 식으로 나이를 먹고 싶다. 죽을 때까지 뭔가를 배우고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업데이트 하면서 살고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 ‘바람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
2012. 12. 16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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