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2)

2012. 11. 28. 17:32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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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2)

■ 김난도 지음

제3부 만나라, 사랑하라, 그리고 살아가라

■ 결혼의 조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 중 하나가 결혼이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할 것인가. 이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달라진다. 결혼을 고민한다는 건,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모든 어른이 다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면 어른 행세를 해야 하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0 결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은 딜레마다. 소크라테스마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말했다. 법원 주차장은 주말에는 강당에서 열리는 결혼식 하객들로 만원이다가 주중에는 이혼 서류를 접수하려는 민원인들로 붐빈다. 처녀총각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는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반면, 아줌마 아저씨가 즐겨 보는 드라마는 혼외 관계가 단골 소재다.

정말이지 몽테뉴 말대로 결혼이란 “새장과 같아서 밖에 있는 새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안에 있는 새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결혼이 ‘당연히 해야 하는 그 무엇’에서 ‘할 수도 있는 하나의 선택’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생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여학생들로부터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요즘에는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즐겨하는 대답. 작곡가 브람스가 했다는 그 유명한 한마디다.

“자유로우나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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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나도 이 말을 인용해 질문에 답한다.

“미혼으로 살면 자유롭기는 하겠지만, 고독할 거야. 자유를 만끽할지 고독을 위로받을지 선택해!”

사실 일부일처제의 결혼이란 개인에게 무척 잔인한 제도다.

결혼하면 다른 이성에게 사랑에 대한 어떤 환상도 기대도 품어선 안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애감정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마음의 깊은 감옥으로 들어간다. 어떤 면에서 결혼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엄청난 독재다.

어디 연애감정뿐이랴. 생활과 시간과 재산.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을 배우자와 공유해야 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미혼 시절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면, 부도덕 무책임이라는 비난의 주홍글씨를 감수해야 한다. 결혼이 내놓으라는 ‘자유’란, 실은 개인의 거의 모든 것이다.

‘고독’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비혼(非婚)의 고독이란 어느 가을날 찬바람이 외투 깃을 스칠 때 홀연히 느끼는, 그런 우아한 고독이 아니다. 넓고 거친 이 세상에 철저히 홀로 남겨졌다는 먹먹함으로 뼛속까지 저리는 고독이다. 명절이나 생일 날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공포, 혹은 늙고 병들었을 때 돌봐주는 이 없이 침대에서 혼자 죽어갈 것이라는 공포를 동반하는 절대고독이다.

결국 결혼을 할지 말지는 그 처절한 고독을 감수하고라도 누려야 할 자유를 고를 것인가. 평생의 자유를 대가로 치르고 고독을 다소 구원받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다. 사람마다 시대마나 자유와 고독의 무게가 다를 것이다. 요즘 비혼자가 많아지는 것은 그 고독을 견딜 만한 사회적 지원이나 소통의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씁쓸하다.

“결혼생활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독신 생활에는 즐거움이 없다.”

0 결혼, 언제 할 것인가

비혼자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주변에서 완고한 독신주의자를 실제로 만난 적은 별로 없다. 늦게까지 독신으로 지내는 이들도 “좋은 사람 생기면 해야죠” 혹은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요”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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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쯤 하겠다’ 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사실 좋은 사람 나타났을 때 결혼을 결심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타난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할 수 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

요즘은 고독하더라도 자유롭기를 원하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 같다. 미혼의 자유를 가능한 한 오래 누리고 싶어한다. 굳이 결혼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속박에 서둘러 매일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도 틀린 건 아니지만,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누리는 미혼의 자유가 필연적으로 나중에 누릴 장년의 자유를 대가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내 친구 하나가 결혼을 참 일찍 했다. 동갑내기인 여자 친구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그리고는 바로 연년생 아들 둘을 얻었다. 당시 대다수가 총각이었던 우리는 이 친구를 부러워하기보다는 측은하게 생각했다.

40대가 지난 지금, 모두들 이 친구를 가장 부러워한다. 다들 아이들 교육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들 부부만 일찌감치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 놓고 훨훨 여행 다닌다.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고 말한다.

굳이 이 친구 얘기를 하는 것은 빨리 결혼해서 노년을 즐기라고 충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인생을 설계할 때 코앞에 닥친 걱정만 하지 말고 전 생애적 관점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돌아보면 젊었을 때의 나는 코앞밖에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기 연령대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낭만적인 마흔과 우아한 황혼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긴 안목이 나에게는 없었다.

많은 미혼자들이 남성의 경우엔 경제적 사회적 준비가 덜 갖추어 졌다는 이유로, 여성은 과중한 직장생활과 육아 등 가정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경험자로서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준비나 자신감이 확실해지는 시점이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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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께서, 누군가 결혼을 주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애 낳는 것 연습해보고 시집가는 여자 없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마음먹었거든, 실행하라.

0 결혼 어떤 사람과 할 것인가

사실 자유니 고독이니 거창하게 이야기 하지 않아도 결혼이 늦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만나는 사람이 있더라도 ‘과연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은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혹은 언제 하느냐의 선택은 독립적인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라는 의사결정이 유예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배우자를 고를 때 고려하는 요소는 정말 많다. 나이, 건간, 외모, 재산, 지위 장래성…… 다양한 기준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을 든다면 이 세 가지일 것이다.

외모, 돈, 성품.

외모는 남자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다. 요즘엔 여자들도 남자의 외모를 많이 본다. 하지만 어찌 남자들만 하랴! “용모를 보고 신부를 고르는 것은 페인트 색깔을 보고 집을 고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총각들에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기혼 선배들이 아무리 충고를 해도 다 부질없는 소리다.

배우자의 외모는 행복한 결혼 생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혼 하려는 부부가 “그래도 잘생긴 것 하나 보고 참는다” 고 말하는 것 본 적이 있는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라는 기준이 잠재적이건 명시적이건 영향을 덜 미칠수록 결정은 현명해 진다고 생각한다.

연봉이나 재산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옛날에도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행복은 창을 열고 도망간다”고 했다. 하지만 소득은 일정 수준이 넘으면 더 이상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재산만 보고 하는 결혼은 위험하다.

그리고 어느 결혼정보회사 임원의 인터뷰를 보니 돈, 집안배경, 띠동갑,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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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등의 조건을 먼저 내세운 커플들의 이혼율이 높단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품이다. 나는 이것이 다른 모든 조건을 압도할 만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식고 미모를 잃고 재산이 없어져도, 기본적인 품성은 변하지 않는다. 내 아들이 배우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딱 한 가지, 상대방의 인성만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총알 한 방의 법칙’

사법 연수원에 다니는 후배에게 들었다.

연수원에 여성이 많아지면서 원내 커플이 크게 늘고 있단다. 그런데 워낙 작은 공동체여서 동기 중에서 딱 한 사람과 연애할 수 있고 그와 헤어졌다 해서 다른 동기와 사귀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연수원의 처녀총각들은 입소를 할 때 사랑의 총알을 한 개씩 지급받는데. 그 한 방을 제대로 쏘지 못하면 연수원 밖에서 짝을 찾아야 한단다. 다들 그 한 방을 매우 신중하게 쏘고, 쐈으면 반드시 맞혀야 한단다. 소문은 평생 가니까.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바닥이 좁다. 한 조직 내에서 여기저기 ‘총알’을 쏘고 다니다가는 바람둥이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지급받은 총알이 녹슬도록 꽁꽁 숨겨 놓고 다니는 일도 답답한 노릇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한 방을 쏠 것인가?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영리한 선택, 화려한 예식, 내세울 만한 조건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결혼은 자기와 배우자의 인생을 배려하며, 책임과 너그러움을 차곡차곡 쌓으며 천천히 만들어지는 기나긴 여정이다. 기쁨과 좌절의 시계추를 오가며 차츰차츰 행복의 진폭을 키워가는 쉼 없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어른의 문턱에 선 이들이여, 이제 그 지루한 주저함에 모멘텀(momentum 힘, 기세, 여세)을 줄 때다. 품고 있던 총알을 꺼내 재어넣고 조준을 시작하라. 그리고 너의 한 방을 쏴라! 느낌이 오면, 주저하지 말고.

■ 어른끼리 친구하기

“반갑다, 야! 오랜만에 모이니까 정말 좋네.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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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처음으로 대학 동아리 친구들이 모였다. 동아리가 2000년대에 해체되는 바람에 공식 모임이 전혀 없다가, 우리기 부회장을 했던 친구가 백방으로 노력해서 위아래로 3년 선후배 정도가 한식집에 모였다. 25년 세월의 강을 건넜지만 다들 예전 모습이며 말투도 그대로다. 신기하다. 늙는 것은 겉모습인가보다. 옛날 별명을 부르며 왁자지껄 떠들다가 2~3개월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로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석 달 뒤 문자 메시지가 왔다.

“5월로 예정됐던 동기 모임이 취소됐습니다.”

동아리의 2차 모임 날짜까지 잡아놓고 헤어졌는데, 막상 다시 모이려니까 참석하겠다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단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거다. 자기가 가고 싶은 모임에 가기보다는 가야 하는 모임에 가는 것.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관계다. 학생일 때에는 나와 맞는 사람만 골라서 친하게 지내면 됐는데,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사로 동료로, 혹은 갑으로 을로, 공식적인 역할을 등에 업고 ‘만나야 하는’ 사람과 만난다. 누군가와 새로 친구가 된다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구와 친하게 지낼 것인가?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믿지 말라’는 식의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을 순수하게 대하면 응당 그의 선의는 값을 한다는 원칙을 나는 이작 믿는다.

세상 사람들이 다 ‘믿을 사람 없다’고 냉소할 때, 나만은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거’라며 맞장구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사람을 선의로 대하는 순간, 적어도 내가 일하는 공간에 ‘믿을 사람’이 한 명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의는 천천히 전염된다.

일이 많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답이 없다. ‘이렇게 순진하게 받아들이다가는 바보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염려와 ‘내가 너무 세상을 각박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교차한다. 피곤하다. 마음 편히 만날 수 있는 옛 친구가 그립다.

하지만 아무리 한 때 순수했던 관계였더라도 지금 자주 만나서 그 순수한 교감을 나눌 수 없으면, 찰나의 애틋함 외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히려 옛 친구를 너무 오랜만에 만나면 자꾸 예전의 좋았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감정이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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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서로의 상황이 많아 바뀐 후에는 그 깊어진 괴리를 확인해야 하는 아픔도 있다.

나는 요즘 심정적으로 제일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은, 머나먼 추억 속의 옛 친구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새로 만난 사람들이다. 옛 친구 못지않게 좋다.

어릴 때 만났으면 좋은 친구고, 사회에서 만나면 그냥 업무상의 지인이라는 한계를 미리 만들 필요는 없다. 아무리 나이 들어서 만났더라도, 자주 만나고 솔직하게 감정을 교환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다. 학창 시절의 절친이라 해도 깊이 사귀었던 시간은 대개 3~4년 정도다. 사실 사회에서 만나는 관계가 그보다 훨씬 오래갈 수도 있다.

그대가 먼저 마음을 열어라. 친구 하자고 말하라. 어쩌면 너의 평생 절친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 섹스, 어른의 언어, 어렵고 슬픈

섹스를 고민한다는 건 어른이 되어간다는 꾀 확실한 증거다. 섹스를 해봤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대데 섹스를 한다. 어원상으로도 그렇다. 어른이라는 단어는 ‘얼우다’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혼인하다’ 혹은 ‘성교하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섹스는 어원상 어른과 동의어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사람들에게 섹스하는 이유에 관해 묻고, 1차로 수집된715가지 이유를 237가지로 정리해 남녀에게 각각 다시 질문한 후 분석했다. 237가지! 섹스가 단지 자녀를 갖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남녀가 공통으로 답한 상위 8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나는 그 사람에게 끌렸다. (남 1위, 여 1위)

2. 나는 육체의 쾌락을 경험하고 싶었다. (남 3위, 여 2위)

3. 나는 황홀한 느낌이 좋다. (남 2위, 여 3위)

4.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애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남 5위, 여4위)

5. 섹스는 재미있다. (남 4위, 여 8위)

6. 나는 성적으로 흥분해서 욕망을 풀고 싶었다. (남 6위, 여 6위)

7.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 (남 8위, 여 5위)

8. 나는 발정한 상태였다. (남 7위, 여 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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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8가지 이유를 분류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관계에 관한 것(1,4,7), 쾌감에 관한 것(2,3,5), 그리고 본능에 관한 것(6,8)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첫째, 더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서. 둘째, 그 자체의 쾌락을 위해서. 셋째,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섹스를 한다.

‘인어공주’를 다시 읽는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공주가 우연히 왕자님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왕자님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다리를 얻게 되지만 그 대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잃는 것이었다. 다리를 가졌지만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재회했으나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은 물거품이 되어 죽음을 맞는다.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소통 없는 섹스냐, 섹스 없는 소통이냐의 문제로 말이다.

하반신이 물고기일 때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대화할 수 있었지만 섹스는 할 수 없다. 안타까웠을 것이다. 사랑을 완성할 수 없다, 그래서 하체를 얻고자 했지만 대가로 치러야 했던 것은 소통의 수단인 목소리였다. 결국 사람의 하반신을 얻었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비극이다. 소통이 불가능한 섹스를 선택한 말로다. 지나친 해석인가?

그대가 인어공주 혹은 왕자라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소통 없는 섹스인가, 섹스 없는 소통인가?

사랑은 언어다. 서로 알지 못하던, 완전히 다르게 자라온, 독립한 두 인격체가 만나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닮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소통은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사랑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없다. 소통이 단절되는 때가 사랑이 끝나는 때다.

참 어렵다. 엄격한 도덕가치가 되어 ‘지나친 육체적 탐닉을 자제하자’는 주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섹tm는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의 흐름인 사랑과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욕구를 해소하는 배설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육체가 주는 순간적인 쾌락에만 탐닉하게 된다거나, 관계를 연명하는 유일한 끈이 되어버린다면 섹스는 슬프다. 마치 인어공주 이야기처럼.

■ 나라는 이름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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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고객님.”

전화번호를 문의하려고 114를 누르니, 생면부지의 여성이 예쁜 목소리로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나도 당황스럽지만, 저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저 사람도 딱하다. 얼마나 겸연쩍을까? 정작 애인이나 남편에게는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 했을까? 회사란 참으로 탐욕스러운 존재다. 직원에게 ‘사랑한다’는 숭고한 언어를 아무에게나 내 놓으라고 한다.

저 상담원이 자리에 앉으면서 얼굴에 쓴 것은 전화헤드셋이 아니라 하나의 가면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객이라면 아무리 무례하고 짓궂은 사람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가면 말이다.

감정 노동의 시대다. 전화 상담원이나 백화점의 판매직,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처럼 항상 친절한 목소리로 극존칭의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전체 노동자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직업이 어느 정도 감정 노동의 성격을 띤다. 사회에 나간다는 건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다니면서 상황에 맞게 바꿔 쓰며 그 가면에 맞는 감정 노동자로 변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름이 많아진다는 거다. 집에서는 아들딸로, 아내 남편으로, 며느리로 사위로, 또 아빠엄마로, 밖에서는 유능한 직장인으로, 편한 친구나 애인을 만날 때에도 그 상황에 적합한 연기를 할 줄 아는 유능한 배우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커다란 탈춤판, 본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가장무도회장이다.

문제는 이렇게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지면서, 진짜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쓰고 다니던 가면이 너무 익숙해지면 그 가면이 오히려 자신인 줄 착각하게 되고, 자신의 본 모습은 또다른 가면으로 느껴진다. 모두들 다중인격자가 되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정신질환으로 취급했는데, 요즘엔 능숙하게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역량으로 여겨진다.

나는 누구일까?

지금 연기하고 있는 것이 나일까. 아니면 깊은 내면에 어떤 ‘진짜 나’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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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격 테스트’를 좋아한다.

집요하게 혈액형을 묻고는 ‘A형은 어떻고’ 제멋대로 진단한다. 태어난 별자리나 사주로, 손금으로, 심지어는 발바닥 모양으로 성격을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성격 테스트, 혈액형 심리학, 사주 등을 전혀 믿지 않는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규정하다’는 영어로 define 인데, 울타리를 둘러서 한정짓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왜 자꾸 자신을 규정해서, 성장과 변신의 가능성에 울타리를 두르려는 것일까? 왜 나조차 나 자신에 대해 판단하고 가두지 못해 안달하는 걸까?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내가 써야 하는 가면들을 ‘지켜보는’ 일이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변화하는 맨얼굴과, 나의 가면을 차분히 관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객관적인 내가 필요하다. 그래야 혼란스러운 가면 바꿔 쓰기의 경주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자꾸만 엄마를 닮아가

아빠처럼 되기 싫었는데, 그렇게 되기도 쉽지가 않아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일찍 죽어주는 것이다.”

이 자극적인 말을 남긴 사람은 소설가 장 폴 샤르트르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자녀에게 자신의 길을 걷게 하라’는 뜻을 전할 때면 이 말을 가끔 언급하는데, 역시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겁다. 샤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를 여의었고 이후 장서로 가득한 외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둘러싸여 자랐다. 권위에 의한 억압 없이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며 보낸 소년기는 샤르트르가 기존의 가치관을 뛰어 넘어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버림받은 키다리 처녀를 사로잡아 결혼해 아이 하나를, 즉 나를 서둘러 만들어 놓고는 죽음의 길로 달아나 버렸다.(……)만일 나의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내 위에 벌렁 누워서 나를 짓누르고 말았으리라. 다행히도 그는 일찍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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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사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좀체 넘어설 수 없고 깨지지도 않는 견고한 세계다. 어머니를 성적(性的) 대상으로 두고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경쟁한다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다소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른이 되려는 아들에게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아버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갖는 감정은 모순투성이다. 존경과 무시, 선망과 질투가 공존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비정한 사회에 발을 내디디면서 “아버지처럼 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아들은 자식을 키우면서부터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일찌감치 고등고시에 합격했던 아버지는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나는 나대로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내게 강요하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아들을 얻은 후에야, 아버지가 나를 미워한 것도, 내가 어버지를 미워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깨달음은 항상 너무 늦게 오는가? 이미 아버지는 사과 한 미디 전할 수 없는 ‘레테의 강(망각의 강. 망자가 건너야 하는 이 강물을 마시면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번뇌를 망각한다는 강)’을 건너신 것을. 살아 있는 동안 아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던 아버지는 또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래서 나는 갓 태어난 큰아이를 품에 안고 재우던 어느 날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이 아이가 제 자식을 보는 날까지는 살아 내리라고. ‘이놈아, 이제야 내 맘을 알겠느냐?’하고 마음의 자위라도 한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들의 성장기란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기록이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으며, 아버지를 이기고 싶다는 발버둥이 삶의 동력이 되곤 한다. 결국 성공이란 아버지라는 한계를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관한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닐까?

딸과 아버지 사이는 父子 관계 보다는 훨씬 좋다.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에게는 주지 않던 관대한 애정을 딸에게는 명백히 편파적으로 몰아준다. ‘아들 바보’는 보기 드문데, 딸 자랑이라면 이성을 잃는 소위 ‘딸바보’ 아버지들은 주위에 참 흔하다.

“이다음에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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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녀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결혼 상대를 밝힌다. 당연한 결과다. 딸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남자이자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남자다. 아빠는 이미 엄마와 결혼한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이상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다음에 크면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야.”

아버지는 딸의 첫사랑이다. 딸이 자기 짝을 찾아 사랑하고 결혼할 때, 아버지는 형편없는 노인으로 늙어 있다. 아버지, 그 영원한 이상형을 떠올리는 마음이 첫사랑에서 애잔함으로 바뀔 때, 소녀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참 다르다. 아버지는 어렵고도 뛰어넘을 수 없는 유리벽 같은 차가운 존재로, 어머니는 늘 당신은 뒷전으로 내치며 우리를 포근히 감싸안아주는 애틋한 존재로 느낀다. 아버지들이 이 차별 대우를 억울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어머니의 몸을 열고 나왔고, 그의 젖을 먹으며 사람꼴을 갖추었고. 그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그가 지어주는 밥을 먹으며 자랐다. 자녀 입장에서는 돈 번다고 늘 집 밖으로 도는 아버지와는 도대체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간혹 어머니들이 “아무개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냥 “아들~”하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나는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다. 니체가 “어머니가 사랑하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들 속의 자신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어머니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투사하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성장하면 어머니는 오히려 남편보다 아들에게 의지하는 경향마저 보이는데, 그럴수록 비례해서 커지는 것은 아들의 부담감이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마마보이’와 효자 사이에서 길을 잃는 남자들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딸들이 자라면서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엄마 세대를,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성역할을 교육받은 딸 세대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옷 입는 취향이나 집안 살림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도 딸과 엄마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초기에는 의사결정권을 쥔 엄마에게 굴복하지만, 딸들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한다. ‘나는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심지어 엄마도 딸을 격려한다. ‘그래, 너는 절대 나처럼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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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가 “나이 들수록 징그럽게 싫었던 엄마의 방식으로 살게 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말을 한다. 결혼 초기에는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모님이 살림하는 방식과 사람들을 대접하는 방식과 말투 등이 무척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두 집의 실내 장식에서도 비슷한 구석이 발견된다.

아내는 속속들이 장모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총각들에게 ‘결혼하려는 사람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꼭 살펴보라’는 말을 하는가보다. 어쨌거나 아내는 가끔 투덜투덜 혼잣말을 하는데, 그것이 그녀만의 독백은 아닌 것 같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엄마를 닮아가……”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어머니를 향한 그 모순된 애증의 감정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다.

■ 창살 없는 감옥에서 자기만의 왕국으로

가끔 주례를 선다. 주례는 강의와 다르다. 강의는 내 것이니까 조금 틀려도 되고, 매주 진행되니까 뭔가 빼먹으면 다음 시간에 더 잘하면 된다. 하지만 결혼식은 내 것이 아니니까 틀리면 안 되고, 그들의 일생에 단 한 번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다음’이 없다. 그래서 결혼식 내내 긴장된다. 어느 판사님은 “원고는 피고를 아내로 맞아……” 하는 식으로 결혼식 내내 신랑 신부를 원고와 피고로 불렀다고 한다. 나는 “신랑 신부는 학생들을 향해 돌아서세요”라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제일 긴장되는 순간은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 신부 행진!”을 외칠 때다. 사회자가 말하듯이 “이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신랑 신부”의 뒷모습을 볼 때 말이다. “연애할 때는 참 보기 좋았는데, 이제 진짜 부부가 된 저 친구들, 잘 살까? 하는 생각에 결혼식을 마쳐 긴장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긴장이 밀려온다. 게다가 신부가 전업주부가 될 예정이라고 하면 걱정이 더 커진다.

부부에게 가정은 하나의 섬이다. 자기만의 왕국이 될 수도 있고, 창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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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될 수도 있다. 안정과 고립을 동시에 경험한다. 요즘 주부들이야 외출도 자주 할 수 있고 전화며 컴퓨터며 소통의 수단이 가득한데, 고립이 웬 말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고립은 심리적인 것이다. 하루 종일 외출하거나 수다를 떨어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의 단절이 있다.

전업주부가 취업주부보다 보람 있는 것은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할 때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사랑을 자식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다는 만족감을 ‘스스로’ 느낄 때이다.

전업주부가 취업주부보다 보람 있는 것은 남편이 충분한 돈을 벌어서 내가 일할 필요가 없다고 흐뭇해할 때가 아니다. 많건 적건 가정의 수입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투자해서 결과적으로 그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스스로’ 느낄 때이다. 여느 여성 직장인들보다 더 바쁘고 부지런하게 나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긍지를 ‘스스로’ 가질 때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업주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자기 책상, 자기 시간, 그리고 자기 급여 통장.

먼저 주부에게도 ‘자기민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물론 가뜩이나 좁은 집에 ‘주부 공간’을 따로 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책상 하나 놓을 공간은 꼭 마련해야 한다. 화장대가 아니라 책상이다. 거기서만큼은 커피를 마시든, 책을 읽든, 라디오를 틀든, 자신의 외모가 아니라 내면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독립된 ‘공간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자기 책상을 마련했다면 이번엔 고정적으로 확보된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 남편 출근하고 애들 학교 가고 나면 그 시간이 전부 주부의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가사노동을 하다 피곤해지면 소파에 잠깐 앉아서 TV를 보는 식의 시간은 자기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특정 시간대를 정해 놓고 그 시간이 되면 종이 울린 듯 자기만의 공간으로 돌아가 쉬는 일상의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부도 ‘급여통장’이 필요하다. 비자금 통장이 아니다. 급여통장이다. 가구 소득의 일정 부분을 가사노동의 대가로 떳떳하게 이체 받을 자신의 통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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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급여 통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웬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고 타박을 들었지만, 이제는 통장을 볼 때마다 아내가 더 즐거워한다. 남편들이여. 아내의 내조에 감사한다면 말로만 하지 말고 통장으로 증명해 보이시기를!

그러나 이런 여러 노력도 전업주부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모래로 쌓은 성일뿐이다. 마음의 섬에서 나와야 한다. 직장인들의 인간관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만남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 만나 배우고 교유하면서 전업주부의 즐거움과 고통을 나누고 풀어갈 때, 가정이라는 폐쇄적인 마음의 울타리를 비로소 뛰어 넘을 수 있다.

스스로 이러한 긍지와 재미를 만들지 못하면, 주부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라는 팻말이 붙은 감옥의 수인이 되어버린다.

■ 가족, 작은 말로 쌓는 탑

아버지는 지방 근무가 잦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은 주로 주말 혹은 월말 부부로 살았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는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비로소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평생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둘이서 3주 동안 유럽여행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때여서, 다들 부러워했다.

여행을 끝내고 귀국하던 날, 공항에 마중을 나가 부모님을 기다리는데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부말부부, 월말부부일 때에도 금실이 무척 좋았는데, 이제 여행까지 함께 다녀오셨으니 얼마나 정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항을 나서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남처럼 따로 나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크게 싸웠다고 했다.

나는 그때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소에 “세상에 너희 아버지처럼 가정적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렇게 사이좋은 두 분이 둘 만의 오붓한 여행을 떠나 왜 그리도 싸우셨을까?

결혼 20주년을 맞고 난 요즘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닫는다. 이상한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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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당연한 결과였다. 두 분이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많은 부부들이 10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고 해도, 잠들어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막상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다. 그나마 몸은 함께 있어도, 각자 TV 드라마 보고 신문 읽으며 따로 보내는 시간까지 제외하면, 부부라고 해도 웬만한 직장 동료보다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적은 것이다.

어릴 때 외가 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할아버지가 전구를 다 갈고서 의자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셨다.

“서방 없는 년은 어찌 사누?”

그게 다였다.

난 그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고 이제야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고마워요” 라고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남편이 있으니 참 좋다’ 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하긴 지금 어르신들 이야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그 피를 이어받아 그런지, 한국 사람이 원래 고맙다는 말에 인색하기 때문인지. 결혼생활을 오래 하면 응당 그렇게 되는 것인지.... 나도 여간해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아내가 내게 고맙다고 말한 것도 참으로 오래 전이다. 밖에서는 말하는 것이 직업인 나도, 집안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2012년 초반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공익광고가 있다.

“사원 김아영은 친절하지만, 딸 김아영은 ……”

“꽃집 주인 이효진은 친절하지만, 엄마 이효진은 ……”

“친구 김범진은 쾌활하지만, 아들 김범진은 ……”

“부장 김기준은 자상하지만, 남편 김기준은……”

집 밖에서는 친절하고 쾌활하고 자상한 사람들이 집에서는 퉁명스럽고 불친절해지는 모습을 그렸다..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왜 그럴까? 집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잘 하면서 왜 정작 가장 소중한 집안사람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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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작 부모에게, 형제에게 얼마나 함부로 말해왔는가를. 아마도 가족이 편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혹은 집 밖에서의 감정노동이 너무 버거워서, 집 안에서라도 예의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밖에서 불친절하면 고객이나 동료가 외면하지만, 가족은 어떻게 대해도 결국 영원히 내 편이니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게 말하면 친밀하고 편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긴장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친절해야 할 사람들은 결국 가장 사랑한 사람, 가장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 가장 끊기 힘든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말하기의 반대말은 듣기가 아니다. 상대방이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기. 말하는 사람과 늘 눈 맞춰주기.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쳐주기다. 이 원칙이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이 가족간, 부부간이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함께하며 크게 다투신 우리 부모님, ‘고맙다’는 한마디를 욕설로 풀어야 했던 우리 할머니, 그리고 ‘사랑한다’고 한마디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아는 한국 남자들……

우리가 모두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사람의 정이란 사소한 대화로 쌓아가는 돌탑이라는 점이다. 특히 시시한 대화가 중요하다. 사람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알고 보면 별것 아닌 기억들이니까.

왜 우리는 평생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보낼 사람들에게 가장 무례한가? 가족은 누구보다도 친밀하고 편한 사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바로 그 안도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킨다. 가장 친밀하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감정을 드러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족을 약간은 어려운 대상으로 존중할 수 있는 작은 표현들이 필요하다. 서로 친밀하다고 믿을수록, 오랜 시간을 함께할수록, 상대의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작은 배려를 보여주자.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순서대로, 밖에서 만나는 ‘고객님들’의 절반만이라도.

제4부 생의 반환점에 들어서려는 그대에게

■ 인생이 아픔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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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그거 패키지딜(일괄 거래) 이다.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

한 묶음으로만 팔지, 따로 따로 살 수 없더라.

김희근 -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위기가 많았다. 내 인생은 비주류 인생이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외화 내빈, 깡통인생’ 이라고 한다. 죽고 싶도록 괴로운 순간이 있는데 지나고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위의 글은 어느 신문에 보도된 인터뷰를 인용한 것이다. 어떤 사람의 발언일 것 같은가?

나는 이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적어도 고승덕 전 의원 같은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하버드와 예일대를 전 과목 A학점으로 졸업한 후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주식투자전문가와 방송인으로 활약하다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금은 변호사다.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이름은 내게 매우 각별하다.

나는 대학 졸업 후 백수로 지내면서 행정고시 공부에 ‘올인’ 했지만 또 떨어졌다. 당시 여자 친구가 “1차도 안 된 거야?”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왔을 때의 자괴감이란. 그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이듬해 시험에 한 번 더 도전했으나 역시 1차부터 낙방해 피눈물을 쏟았는데 고승덕이라는 사람은 3개 고시를, 재학중에 합격한 것이다. ‘공신(공부의 신’이 따로 없다. 그 당시 고시생들 사이에서 그는 전설이었다.

이 인터뷰를 보고 ‘과도한 겸손’이라거나, 반대로 ‘자만이 지나치다’ 고 평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혼자서 사는 것이다. 이력서의 경력 사이사이에 괄호쳐져 있는 고통과 좌절을 타인은 알지 못한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의 최고 경영진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 삼성SDI 사장을 거쳐 삼성카드의 CEO를 맡고 있는 최지훈 사장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력서만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절망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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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화신’ ‘미다스의 손’ ‘돈 버는 마술사’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한국 휠라의 월급쟁이로 일하다 글로벌 본사를 인수해 버렸고. 이후 세계 시장점유율 60%를 자랑하는 골프용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보유한 회사 ‘아쿠쉬네트’를 성공적으로 합병했다. 그런 그도 아픔을 이야기 한다.

“어린 시절은 고생을 많이 했다. 어머님이 나를 낳은 지 100일 만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다.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의 가난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눈을 감기 직전 “엄마 없이 자란 자식, 내가 장가가는 거라도 봐야 하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셨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의사가 되려 서울대 의대에 도전했다. 세 번 낙방했다. 마지막엔 2지망인 치의예과에 합격했지만 적성에 안 맞아 그만두고 한국외국어대에 가 내 나이 서른에 졸업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달 같은 존재다. 계속 같은 반구(半球)만 보여 준다. 가장 밝은 면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어두운 뒷면은 볼 수 없다. 내 어둠을 아는 것은 나뿐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살면서 자세히 볼 수 있는 ‘어두운 이면’이란 자기 자신의 것뿐이기에. ‘남들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필연적으로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게 되고 자기 인생은 가까이서 보게 되니, 남의 인생은 즐거워 보이고 나의 인생은 슬퍼 보이는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가? 잊지 마라. 이나라 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누군가 당신을 부러워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힘을 내자.

■ 소비자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우리는 사고 싶은 물건이 참 많다. 백화점에 가면 반짝반짝 빛나는 상품들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다. 신용카드 끝을 손톱으로 톡톡 튕기면서 ‘지를까 말까’를 고민하며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소비의 성전’을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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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말 없으면 못 살 만큼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물건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별로 쓰지 않는 물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사할 때마다 물건을 한보따리씩 내다버린다.

현대를 소비사회라고 한다. 구매욕망에 확 불을 지르는 멋진 제품이 많아졌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세계 각국의 눈부신 브랜드가 눈앞에 넘실댄다. ‘소비 권하는 사회’를 살며 소비의 맛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덧 소비는 우리의 종교가 됐다. 물신(物神)을 섬기고, 브랜드를 경배하고, 쇼핑몰을 순례하고, 소비의 주기도문을 암송한다.

랜드마크(홍콩의 거대 쇼핑몰)에 계신 아르마니(시계.향수 등의 이탈리아 패션브랜드)여

아버지의 구두가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프라다(의류, 가방 ,신발 등의 이탈리아 브랜드)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쇼핑이 파리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센트럴(홍콩의 거대 쇼핑몰)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저희에게 남편의 비자카드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수수료를 떼어간 자들을 용서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바닥난 은행 잔고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미쓰코시 백화점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윙온(홍콩의 최대여행사)에서 구하소서.

샤넬과 코티에와 베르사체, D&G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멕스~.(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줄임. 신용카드)

소비자학을 연구하는 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당면하는 수많은 문제가 소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옛날보다 요즘의 청춘이 경제적인 여건은 더 좋아졌는데도 더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변화중 하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소비의 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요즘의 청춘들은 어릴 때부터 TV나 영화를 통해 화려한 소비생활을 너무 생생하게 보면서 자란다. TV 속의 인물들이 당연하다는 듯 누리는 넓은 집. 큰 차, 멋진 핸드백, 예쁜 옷, 아름다운 구두를 나도 빨리 갖고 싶은데 현실에서 너무 힘드니 자꾸 조바심이 나고 소외감을 느낀다. 이것이 아픔의 한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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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환경오염, 범죄, 인성파괴 등 여러 사회문제도 실은 이런 소비주의와 관계가 깊다. 그래서 소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조금만 바꾸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사회도. 당신도.

‘행복과 소비는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가 개선되면 행복도 증가한다. 나라를 막론하고 그렇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일정 수준까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대략 월 400만원까지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비례해서 올라가지만 그 이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 또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이 못 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행복의 수준이 더 높지도 않다.

어른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교육을 들라면 나는 ‘소비자교육’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교육이 아니다. 소비자교육이다.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 제일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타내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는 우리가 어른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징표의 하나다. 하지만 반대로 소비는 우리가 행복한 어른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가장 확실한 장애물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간섭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오히려 소비의 욕망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거 주세요” 하고 쿨하게 말하기 직전에 스스로에게 딱 세 가지만 묻자.

하나, 이것은 정말로 내게 필요한 물건인가?

둘, 이것은 합리적인 가격인가?

셋, 한 달 후에도 나는 이것을 지금처럼 간절하게 원할 것인가?

셋 중 하나라도 자신있게 예라고 답할 수 없다면, 과감히 돌아서라.

소비의 중용 속에 성장과 행복의 답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살(買) 것인가? 또 어떻게 살(生) 것인가?

■ 남의 눈

유학할 때와 연구교수로 일할 때. 미국에서 산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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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함께 머물렀다. 한 가지 공통된 기억은 집사람이 외출할 때의 차림이 미국에선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통이 넓은 치마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서 슈퍼마켓에도 가고 애들 데리러 학교에도 갔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집 앞 편의점에 갈 때에도 정성스럽게 화장하고 옷도 잘 차려입는다.

집사람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한번은 연구교수 시절 알고 지내던 유학생 부부를 동네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부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늘 보았던 펑퍼짐한 트레이닝 차림이 아니라, 그냥 산책 나오는 길이라는데 아주 멋지게 정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 유학생이 새 부인을 얻은 줄 알았을 정도였다.

며칠 전 둘째아이 학교에 간다고 열심히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아내에게 물었다.

“왜 미국에서 애들 학교 갈 때는 안 하던 화장을 여기서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아내의 너무나도 간명한 대답.

“여기는 보는 눈이 많잖아.”

재미있다.

“머리 꼴이 그게 뭐냐? 창피하게.”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왔냐? 남부끄럽게.”

“제발 옷 좀 그렇게 입지 마. 남사스럽게.”

“역시 명품으로 사길 잘했어. 다들 보는 눈이 다르더라니까?”

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책망할 때 꼭 누군가를 의식하는 말이 꼬리에 붙는다.

집 근처 우면산에 가보면 다들 옷차림이 무척 화려하다. 요즘 아웃도어 의류는 무척 비싸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첨단 소재를 써서 그렇단다. 다들 히말라야에 올라도 될 만한 복장으로 동산에 오른다. ‘남의 눈’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눈’에 민감하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극배우처럼 관객들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조명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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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명효과에 대한 심리실험이 있었다.

보기에 민망한 티셔츠를 실험대상 학생에게 입히고, 그가 만난 동료 대학생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자신이 어떤 티셔츠를 입었는지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본인은 절반 가량이 자기 옷을 기억할 것이라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학생들에게 물으니 그 티셔츠를 기억한 친구는 8%에 지나지 않았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나라는 소득 수준에 비해 행복도가 무척 낮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행복의 척도를 자기 기준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두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내가 진정 행복했던 날은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3중 장애를 안고 살았던 헬렌 켈러는 “행복하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고 말했다.

우리는 함부로 타인의 행복과 가치관을 평가할 수 없다. 남의 평가나 동정에 연연하지 않는 자기만의 주관이 만족과 감사를 낳고 그것이 행복감과 이어진다.

묻는다.

당신은 오늘. 자기 행복의 주인인가. 남의 시선의 노예인가? 당신의 철학은 무엇인가? 그것을 실행해 나갈 충분한 용기를 지녔는가?

■ 취미, 일생의 벗

“교수님은 주말이나 여가에 주로 무엇을 하십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별로 고민할 것도 없이 대답한다.

“글씁니다.”

조금 놀라는 표정. 이어 되돌아오는 질문.

“글쓰는 일 말고, 취미 같은 건 없으세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대답한다.

“요즘엔 취미 없습니다. 불쌍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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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대학 시절에는 여대 앞 클래식 다방에서 DJ를 할 만큼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다. 골프도 조금 쳐봤다. 미국에서 연구교수로 있을 때 배웠는데. 귀국하고 나니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거의 하지 못했다.

취미라. 잊고 산 지 벌써 오래된 것 같다. 요즘 유일한 휴식이자 놀이는 신문을 정독하는 것이다. 나는 다양한 논조의 일간지 네 종을 구독한다. 가벼운 음악을 틀어놓고 편한 자세로 누워 신문을 뒤적이는 것이 내겐 제일 편안하고 재미있다. 그러고는 나머지 시간은 전부 글 쓰고 강의 준비하고 프로젝트 진행하고 학교행정업무 처리하는 데 쓴다.

하지만 취미랄 것도 없는 내 일상이 엄살떨 만큼 비참하지는 않다. 일이 제법 재미있기 때문이다. 일에서 재미를 느끼니 별도로 취미를 찾기 위한 취미생활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할까?

그래도 어느 순간, 내겐 순전히 재미만을 위해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 조금 서럽다.

한국독서경영연구원의 다이애나 홍 원장은 인생에서 ‘다섯 친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운동, 여행, 영화, 음악, 독서가 평생을 동반할 좋은 친구라는 것이다.

취미생활은 중요하다. 인간은 자기다울 때 가장 행복한 법인데, 급여를 위해 나 답지 않은 일을 할 때보다는 스스로 즐거워서 찾는 취미를 즐길 때야말로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취미는 노동의 공허를 메워준다. 어떻게 살든 삶의 권태는 필연이니까.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이 실제로 가장 많이 시간을 쓰는 여가활동을 조사해보면 단연 TV 시청이 압도적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방송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TV는 게으른 자의 마지막 취미다. 물론 피곤한 현대인들에겐 가장 쉽고 간편한 취미가 TV일지 모른다. 하지만 몸을 쓰지 않는다고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주말 내내 집에서만 뒹굴다가 출근한 월요일, 오히려 몸은 더 무겁고 월요병도 심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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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체험에서 온다. TV를 끄고 집 밖으로 나서면 ‘진짜 재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다. 나를 좀 더 현명하게 해줄 지식을 쌓고, 내 시간을 더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때로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약간의 휴지(休止)와 여백을 갖는 일, TV를 치우고 나면 이런 일들이 가능해 진다.

그런 측면에서 TV는 위험한 취미다. 접근이 쉽고 마냥 재미있기 때문이다. TV를 켜기는 쉽지만 끄기는 쉽지 않다. 전형적인 ‘시간도둑 형’ 취미다.

이 풍요로운 세상에 드러누워 리모컨만 쥔 채 시간을 죽인다는 건 너무 슬프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시간 도둑이 ‘인생도둑’ 될 수 있다.

자신의 여가를 냉철하게 돌아보라. 그것이 진정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시간도둑인지. 점검하라. 만약 시간도둑이라는 판단이 서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가차 없이 끊어라. 그리고 떠나라. 날마다 자신을 새로운 경험과 감정 속에 빠뜨릴 수 있는 재미를 찾아나서라. 진짜 나를 발견하라. 좋은 취미는 일생의 벗이다.

■ 결핍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병이 있어야 오래 산다.”

역설이지만 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아버지는 무척 건강한 분이었다.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았다. 바둑을 무척 즐기셨는데, 친구분들과 밤새워 바둑을 두다가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근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엔 언제나 건강한 붉은빛이 돌았다.

1987년 초겨울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것이다. 낮에 계단을 오르다가 어질어질해서 넘어질 뻔 했는데 아무래도 빈혈인 것 같아서 약이라도 받으려고 병원에 갔더니 자세한 검사를 해보자고 입원시켰다는 것이다.

며칠 후 의사가 나에게 보호자 좀 보자 했다.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라는 사실이 내심 신기하고 머쓱하다는 생각을 하며 따라갔는데, 의사가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다.

“폐암 4기입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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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가 없었다. 한 6개월 정도 더 사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로 아버지는 그날부터 무슨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야위어가더니 5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참말로 건강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동갑인 집안의 어르신 한 분이 젊어서부터 만성 신장염을 앓았다. 그분과 겸상한 적이 있는데, 깜짝 놀랐다. 무염식....... 어르신은 건강이 호전된 이후에도 지병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맥주 한 병 이상 마시지 않았다. 매일매일 걷고 등산하며 건강을 관리했다. 며칠 전에도 어르신을 뵈었다. 금년이 팔순인데, 여전히 정정하시다.

건강했던 한 분은 일찍 돌아가셨고, 지병이 있던 한 분은 팔순에도 골프를 즐기며 사신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만약 관리가 필요한 지병이 있었다면 그래서 밤새워 담배를 몇 갑씩 피우며 바둑 두는 일 따위를 하지 않으셨더라면, 훨씬 더 오래 사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일찍 홀로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밉다.

그래서 나는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사람은 병이 있어야 오래 산다고.

젊었을 때의 건강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어른이 되면 건강은 상이고 질병은 벌이다. 그동안 어떤 생활을 해 왔느냐를 보여주는 성적표인 셈이다. 유전이 아니라 관리의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는 큰 병을 얻고 나서 비로소 자기 관리를 실천하면서 삶을 바꾸어 가는 분들도 있다.

어느 노인학의 대가는 이렇게 경고한다.

“병은 쾌락(快樂)의 이자(利子)다.”

‘병이 있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역설이 현실에서 종종 맞아떨어지는 것은, ‘결핍이 가져다 준 겸손함’ 때문일 것이다. 지병은 몸 앞에 겸손을 가르친다. 꾸준한 관리를 실천할 수 있게 한다. 지병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해 준다.

사람은 본디 ‘직접’ 그리고 겪지 않으면 학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누구나 꾸준한 자기 관리가 건강의 관건임을 알면서도, 당장 아프지 않으면 실천하지 못한다. ‘나는 아직 건강하다’는 자만이 건강에 대한 무관심과 나태를 부르고, 기어이 큰 병으로 이어지고 만다. 하지만 당장 아픈 곳이 있으면 어느 정도 자신을 채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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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더 나아가면 이는 꼭 건강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인과율이랄까? 다시 말해서 지병이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겸손함의 원천이라면 결핍은 탁월한 성취를 위한 분발의 계기가 된다.

고졸 학력으로 OB맥주 사장직에 올라 학벌 극복의 입지전을 쓴 장인수 대표는 인터뷰에서 부족함이 자신을 키웠다고 말했다.

“저는 남보다 모자란 게 많은 고졸 출신이라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에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선 ‘더’가 더 많이 필요했죠. 그만큼 더 긴장하고 더 노력하면서 달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건강이든 성공이든, 결국 열쇠는 자신의 결핍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아닐까?

종종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더 큰 해악이 된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요즘은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

그대의 지병은 무엇인가? 당신의 결함은 무엇인가? 그것을 겸손함으로 감싸 안아라. 그때 비로소 그대의 지병과 약점은 장수와 성공의 장해가 아닌 비결이 된다.

오늘도 나는 마음에 쓴다.

병이 있는 사람이 장수하고, 약점이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고.

■ 이제 인생시계는 던져버려라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인생시계’라는 개념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에피소드도 참 많다. 인생시계는 사람의 일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보고 현재의 나이를 시간으로 표시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 정도 되므로, 절반인 40세는 24시간의 절반인 12시, 50세는 오후 3시, 60세는 저녁 6시 하는 식이다. 이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눌 때. “인생시계로 12시 18분인 000입니다.” 하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도 자주 만났다.

어느 책에선가 “ 내 나이 마흔이고 하루로 치면 정오밖에 되지 않았는데……”라는 구절을 보고 ‘이걸 아예 시계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어렴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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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다. 책을 집필할 때 이 생각을 글로 썼는데, 이게 유명해지면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제야 찾아보니 한비야씨의 책에 나온 구절이었다.

책을 쓸 때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후일 한비야씨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 문제를 얘기 했더니 그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가 희망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내 불씨를 나누어 준다고 해서 내 밝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세계적인 봉사자다운 대답이었다. 그때 나는 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에게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빌려 한비야씨에게 못다한 감사를 거듭 전한다.

인생시계에 대한 뼈아픈 비판도 있었다. 요즘 여든 살 넘도록 정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럼 그들의 시간은도대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뽀~너쓰’지, 뭐.”

하고 질문하신 어르신께서 스스로 대답하며 유쾌하게 웃어주시기는 했지만, 나는 내내 죄송했다. 대한민국 평균수명에만 신경 쓴 나머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세대는 ‘살아갈수록 평균수명이 계속 길어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특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곧 그 ‘평균’도 90세를 향해 맹렬히 올라갈 것이다. 인생 90시대에 걸맞은, 뭔가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균수명이 90으로 늘어나면 인생시계의 계산법도 주금 바꾸면 된다. 분모만 80에서 90으로 하면 45세가 정오가 되고 1년에 16분씩 진행한다.

운동경기에 비유할 수도 있다. 먼저 생각해본 것이 축구경기다. 축구는 전후반 45분씩 90분을 경기하므로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쉽게 감이 온다. 예를 들면 35세면 전반 35분이고 60세면 후반 15분이다.

야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9회 말까지 90세를 나누면 1회 초는 4세까지 1회 발은 8~9세. 이렇게 계산하면 내가 지금 몇 회를 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90세가 넘으면 연장전으로 생각하면 된다.

30대 독자들이 편지에서 ‘이 책을 청춘일 때 만났더라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 것 같다’는 내용을 많이 접했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장했다.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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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은 항상 조금 늦게 오는 법이라고. 그러므로 지금 뭐든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다고……

당신이 몇 살이든 무엇을 꿈꾸든 아직 살아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 사실만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인생시계 따위는 이제 던져버려도 좋다.

■ 소중히 쟁여놓은 외할머니의 빨간 내복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마친 후, 외할머니의 유품을 거두려 댁에 갔다. 나는 마루를 치우고 어머니는 장롱을 정리하고 계셨는데, 방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뛰어들어가보니 어머니께서 흐느끼고 계셨다. 장례식 내내 꿋꿋했던 어머니였기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무엇이 저렇게 어머니를 오열하게 했을까?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겨울용 빨간 내복을 손에 들고 계셨다. 장롱 서랍속에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내복 댓벌 가량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늘 소매가 나달나달해진 내복을 입고 계셨다. 그게 보기 흉했던 이모, 외숙모들이 찾아뵐 때마다 새 내복을 사다드렸는데, 외할머니는 그것들을 포장도 뜯지 않고 장롱 속에 고이고이 쟁여두셨던 것이다. 운명하실 때까지도 외할머니는 소매가 해진 내복을 입고 계셨다.

“얼마나 사신다고, 이걸 이리 아껴두셨담!” 내가 열심히 등을 쓸어드렸지만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며 이후로도 방 안에서 한참을 우셨다.

방을 옮기느라 책상 서랍 구석구석을 뒤지다보니 별게 다 나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옛날에 선물로 받은 볼펜 세트,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주거나 나중에 쓰려고 아껴뒀는데, 막상 지금 꺼내니 잉크가 말라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때 쓸 걸! 불현듯 외할머니 내복 생각이 났다.

좀 더 생각해보니 언젠가, 언젠가 하면서 쟁여놓기만 한 것이 볼펜만은 아닌 것 같다. 주말이 오면, 방학이 되면, 연구년을 맞으면, 은퇴하고 나면…… 이런 마음의 꼬리표를 붙여놓은 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놓기만 한 계획들, 목표들, 꿈들, 그래서 쇠도 뜨거울 때 두들기라고 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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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마음의 서랍을 열어보라. 무엇이 들어 있는가?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면서 쌓아놓은 청춘의 꿈들이 아직 거기 있지 않은가? 혹시 차갑게 식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지금 꺼내라. 먼지를 털고, 물을 주고, 불기를 지펴, 묵혀뒀던 그대의 그 꿈에 다시 온기가 돌게 하라.

언제까지 미뤄두기만 할 것인가? 저질러라 아니면 망설이며 미적거렸던 그 계획들이 우리 죽는 날, 한 줌 재 되어 연기와 함께 날아가버릴테니, 외할머니의 내복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처럼.

■ 생의 반환점에 들어서려는 그대에게

인생과 가장 많이 비견되는 스포츠는 마라톤일 것이다.

인생, 그 가볍지 않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릴 적 보았던 ‘My Way’라는 영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줄거리는 거의 잊었지만. 프랭크 시내트라의 그 유명한 노래가 흐를 때 힘겹게 외로이 달려가는 한 사내의 이미지가 퇴근길의 내 뒷모습과 겹쳐진다.

실제로 마라톤은 우리 삶과 많이 닮았다. 42.195Km의 긴 거리를 홀로 완주해야 하는 여정이 그렇고, 한순간의 오버페이스가 다른 순간의 슬럼프로 이어지는 것이 그러하며, 매 순간 힘겨운 걸음걸음이지만 달리다보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즉 열심히 달리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또 그렇다.

어른이 된다는 걸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반환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반환점, 반환점을 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라토너들의 말을 들어보면 반환점을 돌 때 가장 힘이 난다고 한다. 이제 지나온 길보다 남아 있는 길이 짧다는 의미이기에, ‘완주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가장 커지는 시점이니까. 반환점을 돌고 나면 힘은 더 들지만 막막함은 줄어든단다. 어디에 굽이가 있고, 어디에 오르막이 있는지 알게 된 까닭이다.

재미있는 것은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라는 점이다. 올라올 때 힘든 언덕이었을수록 내려갈 때는 한결 수월하다.

김훈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오르막과 내리막은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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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굳이 인생에 대입하면 생의 역경을 잘 헤치고 온 사람일수록 수월하게 후반부 레이스를 마칠 수 있다. 그래서 삶이 공평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반환점은 역순이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처음을 향해 다시 뛰어가는 것이다. 역순에는 뜻이 많다. 처음을 향해 뛴다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도 있고,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맨손을 다시 준비하자는 의미도 있으며, 경험했던 길이니 이번엔 좀 실수를 좀 줄여보자는 의미도 있다.

한번 갔던 길을 다시 뛰자면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다시 새롭다. 한결 익숙해진 탓에 처음에 놓쳤던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까닭이다. 고은 시인은 노래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 석 줄은 시의 일부가 아니다. ‘그 꽃’이라는 시의 전문(全文)이다. 하지만 이 짧은 열다섯 글자만큼 반환점의 의미를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그렇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생의 반환점을 돌아나간다는 것은, 달려올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을 본다는 일이다.

여기 묻는다. 그대가 보지 못했던 ‘그 꽃’은 무엇인가?

집 한 칸 마련한다고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하고, 입고 싶은 것 입지 못했던’ 음식이며 옷들인가. 자식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학원이며 길거리에 쏟아부은 시간들인가.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등졌던 가족들인가. 성공에 눈이 어두워 상처주고 등한시 했던 소중한 이들과의 관계인가.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애써 덮어두어야 했던 청춘의 꿈들인가.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반환점을 돌며 보아야 할 그 꽃이란, 내가 이루지 못해 아쉬운 것들이 아니라,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그 소중한 것들이라고.

이제 생의 반환점에 들어서려는 그대여.

저기 당신의 ‘그 꽃’이 보이는가? 그 ‘소중한 것’을 부여잡을 용기를 챙겼는가? 건투를 빈다.

2012. 11. 15 다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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