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7. 15:19ㆍ서예이론
《書譜》釋文
夫自古之善書者,漢魏有鍾、張之絕,晉末稱二王之妙。王羲之云:「頃尋諸名書,鍾張信為絕倫,其餘不足觀。」可謂鍾、張云沒,而羲、獻繼之。
대저 자고로 서를 선(善잘)한 자로는 漢魏때에 종요(鍾繇)와 장지(張芝)서예의 절(絶빼어남)이 있고 晉末에는 2王의 묘(妙묘함)를 든다. 왕희지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명 서가를 찾아보건대 종요와 張芝는 진실로 絶倫하다고 할 것이며 그 밖에는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르기를 鐘繇와 張芝의 死後에는 나와 아들 獻之 만이 이을 것이라고 했다.
又云:「吾書比之鍾張,鍾當抗行,或謂過之。張草猶當雁行。然張精熟,池水盡墨,假令寡人耽之若此,未必謝之。」此乃推張邁鍾之意也。考其專擅,雖未果於前規;摭以兼通,故無慚於即事。評者云:「彼之四賢,古今特絕;而今不逮古,古質而今研。」
또 이르기를 나의 서를 鐘繇와 장지에 비교하면 종요에게는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거나 혹은 내가 우위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張芝의 초서에는 내가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張芝가 정숙(精熟정밀,익숙)한 것은 종이가 새까맣 토록 연습을 거듭한 때문이다. 가령 내가 그토록 맹연습을 했다면 장지에 미치지 못 할 바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가 곧 장지가 鐘繇보다 우위라고 생각한다. 그 정진함을 보면 내가 종요와 장지의 솜씨에는 못 미치지만 2가의 장점을 취하여 能通함으로 일상의 문서를 쓰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평자(評者)들은 말하길 저들 4현(종료,장지,희지,헌지)은 고금의 서예에 있어 특출하고 절륜(絶倫)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옛 것에 미치지 못하니 고인은 질박(質朴본질이소박함)을 今人은 연려(姸麗)를 崇尙하기 때문이다.
夫質以代興,妍因俗易。雖書契之作,適以記言;而淳醨一遷,質文三變,馳騖沿革,物理常然。貴能古不乖時,今不同弊,所謂「文質彬彬。然後君子。」何必易雕宮於穴處,反玉輅於椎輪者乎!又云:「子敬之不及逸少,猶逸少之不及鍾張。」意者以為評得其綱紀,而未詳其始卒也。且元常專工于隸書,伯英尤精於草體,彼之二美,而逸少兼之。擬草則餘真,比真則長草,雖專工小劣,而博涉多優。總其終始,匪無乖互。
대개 요즘사람은 질(質본질)은 시대를 이어 흥(興)하고 연(姸)은 세속에 因緣하여 變化한다. 계문(契文글씨)은 비록 단순한 언어표시의 기술이었지만 순.리(淳.醨순박함)가 일천(一遷한번바뀌면)하면 질.문(質.文)이 삼변(三變)하여 변천을 거듭 발전하여 오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다. 고법(古法)을 배우되 시대에 違背되지 않고 時代를 따르되 해가 되지 않아 문(文)과 질(質)을 갖추어야 비로서 君子라 할 수 있다. 하필이면 조궁(雕宮)을 용처(冗處)로 바꾸며 옥로(玉輅)를 추륜(椎輪)으로 바꾸어 탈 필요는 없다. 또 평자는 말하기를 자경(子敬)이 일소(逸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일소가 종요와 장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평(評)은 대강에 있어서는 맞는 말이나 그 시말(始末)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원상(元常:종요)은 예서(隸書)에 뛰어 났고 백영(伯英:장지)은 초서(草書)가 정묘(精妙)했다. 그들의 이미(二美)두 가지 아름다움으로 그러나 逸少는 예초(隸草)를 다 겸비했다. 張芝의 초서에 비의하면 逸少(희지) 쪽은 眞書을 여분으로 갖추었고 眞書에 비하면 草書가 뛰어나다. 두 사람의 전문적인 書體는 조금 못 할지라도 各體를 兼함에 있어서는 일소(羲之)가 우수하다. 시종(始終)을 묶어서 볼 때 羲之가 못하다는 평은 적절치 못하다.
謝安素善尺牘,而輕子敬之書。子敬嘗作佳書與之,謂必存錄,安輒題後答之,甚以為恨。安嘗問敬:「卿書何如右軍?」」答云:「.故當勝。」安云:「物論殊不爾。」子敬又答:「時人那得知!」敬雖權以此辭折安所鑒,自稱勝父,不亦過乎!且立身揚名,事資尊顯,勝母之里,曾參不入。
사안(謝安:王安石)은 본래 척독(尺牘)을 잘 썼는데 자경(獻之)의 글씨를 경시했다. 獻之가 솜씨 껏 아름다운 글씨를 써서 射安에게 보냈다. 그런대 당연히 잘 보관하여 두려니 했는데 정작 射安은 子敬이 보낸 가서(佳書)의 여백에 대수롭지 않게 글을 써서 보내었다. 子敬은 몹씨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射安이 子敬에게 묻기를 그대와 우군(右軍)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子敬이 답하기를 물론 내가 더 났다라고 답했다. 사안이 말하길 세간의 評은 그렇지 않다 하고 묻자 요즘 시속인(時俗人)이 무엇을 알겠느냐고 대답하였다. 子敬의 말이 비록 射安의 감식안(鑑識眼)을 꺾기 위한 一時의 위세적인 말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父親보다 더 우위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또한 立身揚名은 곧 先祖를 後世에 빛나게 하는 것이다. 증참(曾參증자:효자)은 勝母里(승모리)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거늘
以子敬之豪翰,紹右軍之筆札,雖復粗傳楷則,實恐未克箕裘。況乃假託神仙,恥崇家範,以斯成學,孰愈面牆!後羲之往都,臨行題壁。子敬密拭除之,輒書易其處,私為不惡。羲之還見,乃歎曰:「吾去時真大醉也!」敬乃內慚。是知逸少之比鍾張,則專博斯別;子敬之不及逸少,無或疑焉。
獻之가 호서(毫書)로 右軍의 필찰(筆札=書法)을 이어받아 대개의 해칙(楷則=法則)은 전승(傳乘)하였을 터이지만 실로 미처 父親의 진수도 體得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神仙의 가탁(假託거짓으로의탁)을 빙자하여 가범(家範)을 부끄럽게 여기는 태도로 수학(修學)하였으니 그것은 마치 벽에 부딪친 것과 같이 見聞이 없는 것이다. 그 후 어느 날 右軍이 都城에 갈 때 벽에 글씨를 써 놓았는데 獻之가 보고 몰래 그 글씨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의 글씨를 써 놓고 마음속으로 대견해 하였다. 右軍이 돌아와 이것을 보고 歎息하여 말하기를 내가 떠 날 때 무척 취했나보구나 라고 하였다. 자경은 내심으로 크게 부끄러워했다. 이렇듯이 羲之와 鐘繇.張芝를 비교해보면 그들의 專門의 글씨에서 逸少는 다소 뒤지지만 各體를 兼해서는 다르다. 또한 子敬이 逸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余志學之年,留心翰墨,味鍾張之餘烈,挹羲獻之前規,極慮專精,時逾二紀。有乖入木之術,無間臨池之志。觀夫懸針垂露之異,奔雷墜石之奇,鴻飛獸駭之資,鸞舞蛇驚之態,絕岸頹峰之勢,臨危據槁之形;或重若崩雲,或輕如蟬翼;導之則泉注,頓之則山安;纖纖乎似初月之出天涯,落落乎猶眾星之列河漢;同自然之妙有,非力運之能成;信可謂智巧兼優,心手雙暢,翰不虛動,下必有由。一畫之間,變起伏於鋒杪;一點之內,殊衄挫於毫芒。
나는 學文을 할 나이(15세) 때부터 書藝에 마음을 두어 鐘繇와 張芝의 書法을 완미(玩味)하고 또한 逸少와 子敬의 筆法을 예의전심(銳意專心깊이생각)하기 20여년이 지났다. 아직 (왕희지)입목지술(入木之術=서법)의 깊은 경지를 터득하지는 못하였을망정 임지(臨池)의 뜻만은 장지에 못지않아서 잠시라도 쉰 적이 없다. 造形變化 와 懸針垂露 (현침수로)의 다름을 관찰하여 분뢰추석(奔雷墜石)의 기묘함, 홍비수해(鴻飛獸駭)의 자질, 난무사경(鸞舞蛇驚)의 형태, 절안퇴봉(絶岸頹峯)의 세력, 임위거고(臨危據槁) 의 획을 관찰하여보면 혹은 장중하기가 붕운(崩雲)같고, 輕妙(경묘)하기가 매미의 날개 같고, 샘물의 흐름과 같으며, 둔중(鈍重)하기로는 泰山의 앉음새 같고, 섬섬(纖纖가볍기는)하기는 초생 달이 하늘 저쪽에 걸린 것 같고, 낙낙(落落흩어짐)하기는 뭇 별이 은하에 열(列나열됨)함과 같아 자연의 묘유(妙有)와 같아서 힘으로 움직여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智慧와 技巧가 兼하여 優秀하고 마음과 손이 창달(暢達)되며 用筆에 빈틈이 없이 움직이고, 반드시 法則에 따르고, 일획(一劃)의 사이에도 筆鋒의 기복이 있는 變化와 한 점(點)안에도 꺾어 앉힘(衄挫 뉵좌)과, 삐침(豪芒 호망)의 묘가 따라야 한다.
況云積其畫,乃成其字;曾不傍窺尺犢,俯習寸陰;引班超以為辭,援項籍而自滿;任筆為體,聚墨成形;心昏擬效之方,手迷揮運之理,求其妍妙,不亦謬哉!
하물며 點畫을 긋기만 하면 글씨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古人의 筆札을 살피고 寸陰을 가려 練習하지도 않고 반초(班超한나라장수)나 항우(項羽)의 고사를 빙자하여 자만하고 붓끗에 맡겨 임의 글체를 삼고 먹물을 드려 形象을 이루고, 마음은 의효(擬效헤아리고본받음)의 방법에 어둡고, 손은 휘운(揮運)의 이치에 다다르지도 못하고서 그 연묘(姸妙)함을 얻고자 하는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닌가.
然君子立身,務修其本。楊雄謂:詩賦小道,壯夫不為。況複溺思毫釐,淪精翰墨者也!夫潛神對奕,猶標坐隱之名;樂志垂綸,尚體行藏之趣。詎若功宣禮樂,妙擬神仙,猶埏埴之罔窮,與工鑪而並運。好異尚奇之士;翫體勢之多方;窮微測妙之夫,得推移之奧賾。著述者假其糟粕,藻鑒者挹其菁華,固義理之會歸,信賢達之兼善者矣。存精寓賞,豈徒然歟?
그러나 君子의 立身은 人間의 根本을 닦는 일일 것이다. 한(漢)의 양웅(揚雄)은 시부(詩賦)는 소도(小道)요, 丈夫의 할 바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하물며 붓끝에 耽溺하여 있는 한묵객(翰墨客)에랴 더 비 할 바가 있겠는가. 대저 精神을 모아 바둑 두면 앉아 있는 은자(隱者)라 하였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자락(自樂)하는 것도 趣味 때문이다. 서(書)의 효용(效用)과 예악(禮樂)을 베풀고 서의 妙味가 神仙의 경지에 이름은 마치 흙으로 도기를 빗고 줄로 器物을 만드는 天地運行造化의 묘(妙)와 같을 것이다. 기이(奇異)함을 崇尙하는 사람은 書體의 變化가 많은 것에 마음이 끌리고 심원한 묘취(妙趣)를 즐기는 사람은 깊은 내면적인 變化를 추구한다. 著述가들은 그 조박(糟粕자연의모든것)하기가 이를 데 없고 감상(鑑賞)에 精通한 사람은 그 眞髓를 터득한다.
과연 學文眞理에 回歸하는 것은 현달겸선(賢達兼善현덕과통달이함께선함)한 사람만의 일이다. 온 마음을 기울인 감상(鑑賞)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而東晉士人,互相陶淬。至於王謝之族,郗庾之倫,縱不盡其神奇,咸亦挹其風味。去之滋永,斯道愈微。方復聞疑稱疑,得末行末,古今阻絕,無所質問;設有所會,緘秘已深;遂令學者茫然,莫知領要,徒見成功之美,不悟所致之由。或乃就分布于累年,向規矩而猶遠,圖真不悟,習草將迷。
그러나 동진(東晉)의 선비들은 서로 硏究하고 硏磨하였다. 王.謝.郗.庾씨 사람들은 더욱 뛰어 났으나 神奇한 境地를 體得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서의 風味는 갖추었다. 時代가 지날수록 서도(書道)는 衰美해지고 야릇한 書論만이 나돌아 盛行하고 古代와 現代는 斷切되어 서의 本質을 물을 곳이 없다. 설사 精通한 사람이 있다 해도 입을 다물고 傳授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배우는 사람은 要領을 터득 치 못하고 다만 훌륭한 글을 볼 수 있을 뿐이고 이것이 이루어지기까지의 事由를 알지 못한다. 혹은 분포(分布=間架結構)에 대하여 數年의 힘을 기우려 왔어도 그 법칙(法則=規矩)을 體得하기에는 까마득하여 진서(眞書)을 씀에도 깨달음이 없으며 草書를 익힘에 있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假令薄解草書,粗傳隸法,則好溺偏固,自閡通規。詎知心手會歸,若同源而異派;轉用之術,猶共樹而分條者乎?加以趨吏適時,行書為要;題勒方幅,真乃居先。草不兼真,殆於專謹;真不通草,殊非翰札,真以點畫為形質,使轉為情性;草以點畫為情性,使轉為形質。草乖使轉,不能成字;真虧點畫,猶可記文。廻互雖殊,大體相涉。
가령 草書를 조금 깨치고 隸書技法을 그런대로 傳承하였다 해도 편고(偏固)에 빠져서 제 스스로 바른 法則을 익히는데 妨害가 될 뿐이다. 마치 심수(心手)의 일치가 마치 같은 수원(水源)에서 다른 물줄기가 갈라지는 것 같이 전용(轉用)의 技法도 흡사 같은 줄기에서 가지가 나뉘는 理致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관리가 사무를 처리하는 데는 行書가 적당하고 글 ,제목, 비문, 편액등을 쓸 때는 眞書가 으뜸이다. 眞書을 익히지 않고 草書에 專念할 수 없고, 眞書만 익히고 草書에 서투르면 편지를 쓰는데 부적당하다. 眞書는 점획(點劃)으로서 形態와 本質이 되고 運筆로서 感情을 表現 한다. 반대로 草書는 點과 劃으로서 感情을 나타내고 運筆은 오히려 形態와 本質을 나타낸다. 草書는 運筆의 音律 感에 소홀이 하면 글자의 形態를 이루지 못하지만 眞書는 點劃을 결하여도 오히려 기문(記文)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眞草의 상관관계는 相反되지만 대체적으로 서로 作用이 같다
故亦傍通二篆,俯貫八分,包括篇章,涵泳飛白。若毫釐不察,則胡越殊風者焉。至如鍾繇隸奇,張芝草聖,此乃專精一體,以致絕倫。伯英不真,而點畫狼藉;元常不草,使轉縱橫。自茲已降,不能兼善者,有所不逮,非專精也。
이와 비슷한 方法으로 이전(二篆)에 통하며 八分體 을 꿰뚫는다. 章草(木牘竹簡)을 포괄하여 비백체(飛白體한예서)에 함영(涵泳빠지다)한다. 이때 붓 끗의 터럭 하나에도 소홀이 하면 自由自在의 풍도(風度)를 이룰 수 없다. 鐘繇는 眞書의 奇妙함과 張之의 草書의 境地에서는 전정(專精)이 一體가 되어 절륜(絶倫뛰어남)을 이루었다. 張芝의 點劃을 어지럽게 運用하되 眞書를 이루지 않았고 鍾繇는 草書가 아니지만 그 運筆의 音律을 縱橫無盡(自由奔放)으로 썼다. 이렇게 하여 兼善(두가지겸한) 능서(能書)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정(專精)을 잘 習得하지 못한 때문이다.
雖篆隸草章,工用多變,濟成厥美,各有攸宜。篆尚婉而通,隸欲精而密,草貴流而暢,章務檢而便。然後凜之以風神,溫之以妍潤,鼓之以枯勁,和之以閒雅。故可達其情性,形其哀樂,驗燥濕之殊節,千古依然。體老壯之異時,百齡俄頃。嗟呼!不入其門,詎窺其奧者也。
篆.隸.草.章草가 모두 工巧, 運妙의 變化가 無窮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거두어 잘 다스리는 데는 各各의 長點이 있다. 篆書는 완곡하면서 通達함을 崇尙하고, 隸書는 精巧하면서 稠密함을 요구하고, 초서는 유창(流暢)함을 귀중히 여기고, 章草는 간결하며 便利함을 중히 여긴다. 그러한 然後에 이것을 름(凜)하는데 풍신(風神)으로서 하고 이것을 온(溫)하는데 연윤(姸潤)으로 하고 이것을 고(鼓맥박이고동치듯이)하는데 고경(枯勁)으로 하고 이것을 화(和)하는데 한아(閑雅,우아함)로써 하여 습득하면 참으로 그 가슴의 정성(情性본성)에 다다라 그 哀樂 까지도 필단(筆端)에 담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습한난(燥濕寒暖용묵,농담)을 되풀이하는 대 자연은 千古토록 依然하여 永久不變하나 人間은 老年壯年의 差異는 다소 있을지언정 百年의 壽命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人生에 書道를 참으로 體得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書道에 入門하지 않으면 어찌 그 內面을 엿 볼 수 있겠는가.
又一時而書,有乖有合,合則流媚,乖則彫疏,略言其由,各有其五:神怡務閑,一合也;感惠徇知,二合也;時和氣潤,三合也;紙墨相發,四合也;偶然欲書,五合也。心遽體留,一乖也;意違勢屈,二乖也;風燥日炎,三乖也;紙墨不稱,四乖也;情怠手闌,五乖也。乖合之際,優劣互差。得時不如得器,得器不如得志,若五乖同萃,思遏手蒙;五合交臻,神融筆暢。暢無不適,蒙無所從。當仁者得意忘言,罕陳其要;企學者希風敘妙,雖述猶疏。徒立其工,未敷厥旨。不揆庸昧,輒效所明;庶欲弘既往之風規,導將來之器識,除繁去濫,覩跡明心者焉。
또 같은 사람이 쓴 것도 때에 따라 환경이나 氣分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이것을 합(合)이라 하고 괴(乖)라 한다. 즉 합하면 그 글이 유미(流媚아름답고)하고 어그러지면 生氣가 없고 조소(彫疎거칠고성기게)된다.
대략 그 境遇를 말하자면 合과 乖에는 各各 5가지가 있다. 심신(心神정신)이 유쾌하고 신심(身心)이 여유로움이 일합(一合)이다. 感覺을 알고 智識을 이해하고 順應하는 것이 2合이다. 氣候가 좋을 때 아름다운 경치에서 글을 쓰면 3合이다. 紙墨종이와먹이 좋은 것이 融和되어 나타나는 것이 4合이요. 우연히 쓰고 싶어서 쓰는 경우가 5合이다. 5乖는 마음이 초조하고 일에 얽혀 자유롭지 못한 것이 1乖요, 마음이 動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가 2乖이다. 뜨거운 바람이 强하게 불거나 더위 등으로 日氣가 좋지 않을 때 쓰는 것은 3乖이다. 紙墨이 좋지 않은 것이 4乖요, 마음이 내키지 않고 손이 피곤한 것이 5乖이다. 合과 乖에 따라 매우 큰 優劣의 差異가 생긴다. 때보다 기구가 낫고 기구보다 뜻(意志)을 두는 것이 더 났다. 만약 5乖가 함께 모이면 마음은 막히고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반대로 5合이 함께 이르면 精神은 愉快하고 붓은 잘 運用된다. 붓이 잘 뻣으면 즐겁고 붓이 뭉치면 제대로 글이 될 리가 없다. 古來의 鍾繇, 張芝 王羲之, 獻之등 大家들은 글씨의 眞髓를 터득하였으나 그 오묘함에 대하여 말한 바가 없고 後世의 書 學者 들은 이 大家들의 風趣를 바라고 글씨의 奧妙함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아직 그 數가 적고 微微하다. 즉 여러 가지로 말은 하고 있으나 要點이 充分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本人의 어리석음을 뒤로하고 글에 대한 所見을 말 하고자 이 서보(書寶)를 記述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前代 大家의 풍규(風規)를 밝힐 수가 있고 將來의 認識 있는 사람들을 이끄는데 번거로움과 지나침을 줄이고자 한다.
代有《筆陣圖》七行,中畫執筆三手,圖貌乖舛,點畫湮訛。頃見南北流傳,疑是右軍所製。雖則未詳真偽,尚可發啟童蒙。既常俗所存,不藉編錄。至於諸家勢評,多涉浮華,莫不外狀其形,內迷其理,今之所撰,亦無取焉。
세상에 필진도(筆陣圖)라는 것이 있다. 제 7行에 세 개의 執筆의 손이 中間에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에 어그러짐이 있고 點劃에 缺點이 있으나 이 무렵 양자강의 南北에 일반적으로 流通되고 있었다. 이것은 右軍의 作品인지 疑心이 간다. 아직 眞僞는 알 수 없으나 어린이를 위한 體本 으로는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俗間에 流布되고 있는 흔한 것으로 여기에 記錄하지는 않겠다. 예부터 여러 사람들의 서평(書評)이 있으나 대개가 것 치레에 치우칠 뿐 內面的인 道理를 풀어내지 못하고 昏迷하기 때문에 지금 이 書譜를 만드는데 쓰지 않겠다.
若乃師宜官之高名,徒彰史牒;邯鄲淳之令範,空著縑緗。暨乎崔、杜以來,蕭、羊已往,代祀綿遠,名氏滋繁。或藉甚不渝,人亡業顯;或憑附增價,身謝道衰。加以糜蠹不傳,搜秘將盡,偶逢緘賞,時亦罕窺,優劣紛紜,殆難覼縷。其有顯聞當代,遺跡見存,無俟抑揚,自標先後。
且六文之作,肇自軒轅;八體之興,始於嬴正。其來尚矣,厥用斯弘。但今古不同,妍質懸隔,既非所習,又亦略諸。複有龍蛇雲露之流,龜鶴花英之類,乍圖真於率爾,或寫瑞於當年,巧涉丹青,工虧翰墨,異夫楷式,非所詳焉。代傳羲之與子敬筆勢論十章,文鄙理疏,意乖言拙,詳其旨越,殊非右軍。
後漢時代의 師宜官의 高名함은 사첩(史牒역사책)에 나타났고 위의 邯鄲淳의 영범(令範뛰어난글씨)은 헛되이 비단폭 表紙 에 나타났으나 이 두 사람의 筆跡은 전해진 것이 없다. 이 밖에 崔援, 杜度 以來의 漢에서 六朝에 걸쳐서 羊欣 蕭子雲 등 書名이 높은 사람이 적지 않다. 時代를 오래 지내면서 많은 사람이 名聲을 높이기도 하고, 죽은 뒤에 眞價가 나타나거나 價値가 떨어지기도 하나 좀이 슬거나 벌레에 먹혀 眞蹟이 전해지지 않고 그 비급을 찾을 길이 없다. 혹 감상가가 있다 하여도 그 作品을 엿볼 수가 없다. 世評이 분분하여 優劣를 가리기 어렵다. 그중에는 有名한 當代의 유적(遺跡)이 現存하는 것은 다른 이의 批評에 의할 것도 없이 作品 그 자체가 優劣을 결정하는 指標가 될 것이다. 육문(六文육서) 즉 문자의 起源은 멀리 軒轅氏로 부터 시작하여 진(秦)에 이르러 8體(大篆,小篆,刻符,蟲書,摹印,署書,역書,隸書)를 制定하였다. 그 歷史는 오래되고 그의 쓰임은 넓지만 現在와 過去는 書體도 다르고 연질(姸質연려함과질박함)도 懸隔(구별이있다)하여 내가 硏究한바가 아니므로 이것은 省略하기로 한다. 또 용서(龍書), 사서(蛇書), 수운전(垂雲篆), 수로전(垂露篆)과 구서(龜書), 학서(鶴書), 화영서(花影書)의 種類가 있으나 이것은 그 形態를 그리거나 좋은 부분만 베낀 것이어서 그 技巧는 단청(丹靑)에 가깝고 翰墨으로서는 질이 떨어지고 글로서는 전혀 달라서 상세히 論할 것이 아니다. 세상에 王羲之가 그의 아들 獻之에게 주었다고 하는 필세론(筆勢論)10章이전해지고 있으나 文章은 卑俗하고 이치에 미흡한 것으로 뜻은 어그러지고 未熟하여 王羲之의 作品이 아니다.
且右軍位重才高,調清詞雅,聲塵未泯,翰櫝仍存。觀夫致一書,陳一事,造次之際,稽古斯在;豈有貽謀令嗣,道叶義方,章則頓虧,一至於此!又云與張伯英同學,斯乃更彰虛誕。若指漢末伯英,時代全不相接;必有晉人同號,史傳何其寂寥!非訓非經,宜從棄擇。夫心之所達,不易盡于名言;言之所通,尚難形於紙墨。粗可髣髴其狀,綱紀其辭。冀酌希夷,取會佳境。闕而末逮,請俟將來。
王羲之는 地位가 중하고 재주가 높고 격조가 맑고 文體는 端雅하여 성망사적(聲望事蹟명망은속세에남음)이 남아 척독(尺牘서찰필적) 또한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의 尺牘(편지)을 쓰고 한가지 일을 서술하는데 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옛 것을 찾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의 아들에게 가르치는데 정아(精雅)의 風趣를 소홀히 하고 문리(文理)가 조잡할 리가 있겠는가. 또 王羲之가 張伯英과 함께 배웠다고 하나 이것은 지어낸 말일 것이다. 만약 漢末의 張伯英을 가리킨다면 時代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반드시 진대에 같은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歷史에 전하는 것에는 어찌 그 고요하면서 들리지 않는가? 이것은 후대사람들에게 가리킬 것도 못되고, 또한 훌륭한 것도 못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 대저 마음으로 通達한 바를 좋은 말로 다 表現하기는 쉽지 않고, 말이 통하는 바도 오히려 종이와 묵으로 써내기도 어렵다. 여기서는 대체적으로만 그것의 狀況이 비슷한 것을 가려 그 말의 要旨를 대강 가릴 수 있으니 참작하여 아름다운 것만을 모아둔다. 빠져서 아직 미치지 못한 곳은 다시 장래를 기다린다.
今撰執使轉用之由,以袪未悟。執謂深淺長短之類是也;使謂縱橫牽掣之類是也;轉謂鉤環盤紆之類是也;用謂點畫向背之類是也。方復會其數法,歸於一途;編列眾工,錯綜群妙,舉前人之未及,啟後學於成規,窮其根源,析其枝派。貴使文約理贍,跡顯心通;披卷可明,下筆無滯。詭辭異說,非所詳焉。
이제 執.使.轉.用의 이유를 敍述하여 아직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일깨워주려고 한다. 執은 붓을 잡을 때에 깊고 얕음이 길고 짧게 잡는것이 이것이다 . 使(시킨다)는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이 이것이다. 轉행필 은 갈고리를 曲勢로 돌리는 것을 말하며, 用결구 은 點劃의 向勢와 背勢 등이 이것이다. 다시 거기에 몇 가지의 方法으로 보충하되 한가지의 길로 돌아가며, 여러 名家의 工巧로운 方法을 列擧하고, 여러 가지 정묘함을 엮어, 선대의 현인들이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을 들추어내어 法度를 만들어 後學들을 啓導하고 그 根源을 살피고 그 流波를 分析한다.
글은 간결하게 하여 理致를 볼수 있게 하고 , 自跡이 나타나면 마음이 通하고 책을 열면 分明할수 있어야 하며, 붓을 댄것이 막힘이 없게 한 것을 貴하게 여긴다. 괴상한 말과 이상한 說들은 詳細하게 말할 바가 아니다.
然今之所陳,務裨學者。但右軍之書,代多稱習,良可據為宗匠,取立指歸。豈惟會古通今,亦乃情深調合。致使摹搨日廣,研習歲滋,先後著名,多從散落;歷代孤紹,非其効歟?
그러나 지금은 애써서 學者를 비익(裨益도움)하는데 重點을 두려 한다. 王羲之의 서는 역대 많은 사람들이 學習하여 模範으로 삼고 종장(宗匠최고)으로 하였다. 아마 右軍의 서는 유독 옛 것과 一致하고 現在와 통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趣味와 性情(본성)에도 잘 合致한다. 그러므로 그의 書를 모사하여 硏究하는 사람이 많다.
다른 著名한 사람의 書籍은 드물게 남아 있어 그 足跡이 끊어져 버렸으나 王羲之의 서만은 歷代 지금까지 傳해지고 있는데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試言其由,略陳數意:止如《樂毅論》《黃庭經》《東方朔畫贊》《太史箴》《蘭亭集序》《告誓文》,斯並代俗所傳,真行絕致者也。寫《樂毅》則情多佛鬱;書《畫贊》則意涉瑰奇;《黃庭經》則怡懌虛無;《太史箴》又縱橫爭折;暨乎《蘭亭》興集,思逸神超,私門誡誓,情拘志慘。所謂涉樂方笑,言哀已歎。豈惟駐想流波,將貽嘽噯之奏;馳神睢渙,方思藻繪之文。雖其目擊道存,尚或心迷義舛。莫不強名為體,共習分區。豈知情動形言,取會風騷之意;陽舒陰慘,本乎天地之心。既失其情,理乖其實,原夫所致,安有體哉!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言及하고자 한다. 락의론(樂毅論),황정경(黃庭經),동방삭화찬(東方朔畵讚), 태사함(太師箴),난정집서(蘭亭集序)고서문(告誓文)같은 것은 모두 世俗에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眞行草書의 매우 아름다운 것들이다. 王羲之가쓴 락의론(樂毅論)은 정감이 답답하고 우울함이 많고 동방삭화찬(東方朔畵讚)은 정의(情意뜻이밝고)가 奇異해진다. 황정경(黃庭經)은 기쁨을 주나 虛無하고 태사잠(太師箴)은 종횡(자유분망함)이 다투어 꺾기고 난정서(蘭亭集序)는 생각이 편하고 神奇함을 넘어선다. 家門의 계서(誡誓서약과맹서)는 뜻이 곧고 意志가 確固하다. 이것은 정이 침중하게 拘束되고 뜻은 처량하고 비참한데, 마치 사람이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우는 것 같이 쓸 때의 기분이 뜻대로 글에 나타난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어서 무슨 流波만 생각하고 매달리거나 싫어하고 精神을 못 차려 비단에 쓴 글씨만을 제일인양 생각한다.
王羲之의 글은 삼사에 따라 用筆을 變更하고 形態에 拘束되지 않지만 一見해서 道德이 갖춰져 있음에도 어떤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고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해 억지로 이름을 붙이고 체를 나누어 파를 가르기도 한다. 어찌 알소냐. 정(情)이 動하여 표현한 國風과 이소같이 體制가 다르지만 부쳐진 뜻은 같은 것이나 , 따뜻한 날에는 마음이 펼쳐지고 음산한날에는 마음이 서글퍼지지는 것이 모두 天地自然의 秩序에 根本 한다고 하는 것을 알겠는가.(억지로 체를 만들고 이름을 붙인다면) 이미 그 精을 잃게 되고 연원에 違背 되게 되니 書法의 本源에 의거해서 말하자면 어디에 한정된 體가 있겠는가?
夫運用之方,雖由己出,規模所設,信屬目前,差之一豪,失之千里,苟知其術,適可兼通。心不厭精,手不忘熟。若運用盡於精熟,規矩諳于胸襟,自然容與徘徊,意先筆後,瀟灑流落,翰逸神飛,亦猶弘羊之心,預乎無際;庖丁之目,不見全牛。嘗有好事,就吾求習,吾乃粗舉綱要,隨而授之,無不心悟手從,言忘意得,縱未窮於眾術,斷可極於所詣矣。
若思通楷則,少不如老;學成規矩,老不如少。思則老而愈妙,學乃少而可勉。勉之不已,抑有三時;時然一變,極其分矣。至如初學分佈,但求平正;既知平正,務追險絕,既能險絕,復歸平正。初謂未及,中則過之,後乃通會,通會之際,人書俱老。
대저運用의 妙는 자기의 心性感情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敎本으로서는 2왕의 筆跡등 자기 주변에 있으므로 거기에서 規範을 찾아야 한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 隔差는 말할 수 없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열리고 손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마음은 고요함을 싫어하지 않고 손은 익숙함을 잃지 않고 精熟을 다하면 붓이 부드러워 신비(神飛)의 묘경에 이를 것이다. 마치 한나라의 桑弘羊이 무제 때의 經濟 을 내다보듯 또한 庖丁의 눈이 소 전체를 보지 않듯 入門의 境地에 이를 것이다.
언젠가 어느 선비가 나에게 글을 배우려 한일이 있다. 그래서 나는 書法에 대한 대강을 말해주고 가르쳤던바 그가 마음에 깨닫고 손이 따르므로 議論은 잊고 마음속에 書法의 奧妙함을 깨닫게 되었다. 書體 등을 아직 硏究하지 않았다 해도 臨書하여 배우고 자신을 가질 때 까지 열심을 다해야 한다. 書法의 이해는 少年보다 老年이 빠르지만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老年이 少年에 당하지 못한다. 글을 감상하고 理解하는 것은 나이가 늙을수록 잘한다. 글은 少年時代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書를 배워서 점점 進步해 갈 때 3가지 段階가 있다. 처음 분포(分布)를 배움에 있어 평정(平正)하여야 하고 이미 平正을 알면 험절(險絶)을 추구하고, 이미 험절에 能하게 되면 다시 平正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3단계를 통과해야 書學은 비로서 大成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컨데 書를 배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平正에서 險絶, 險絶에서 다시 平正으로 循環의 道를 體得하면 수심양지(手心兩志)의 三昧境에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關門을 通過하는 것은 그다지 용이하지 않다. 거기까지 갔을 때는 書도 老熟하지만 사람도 老境에 들어간다.
仲尼云:五十知命,七十從心。故以達夷險之情,體權變之道,亦猶謀而後動,動不失宜;時然後言,言必中理矣。是以右軍之書,末年多妙,當緣思慮通審,志氣和平,不激不厲,而風規自遠。子敬已下,莫不鼓努為力,標置成體,豈獨工用不侔,亦乃神情懸隔者也。或有鄙其所作,或乃矜其所運。自矜者將窮性域,絕於誘進之途;自鄙者尚屈情涯,必有可通之理。嗟乎,蓋有學而不能,未有不學而能者也。考之即事,斷可明焉。
孔子가 말하기를 나이50에 天命을 알고 70에 마음대로 하여도 法道를 넘지 않았다 고하였다. 또한 생각한 후에 움직이고 당연함을 잃지 않고 때가 되어서 말을 하면 반드시 理致에 到達한다고 했다. 이로서 右軍의 書藝는 晩年에 묘적이 많은데 思慮가 원숙하고 意氣가 和平하여 과격하지도 어지럽지도 않아 風貌와 法度가 자원(自遠)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희지 以下에 이르러서는 堅固하게 힘으로 쓰고 目標를 높게 두고 있으나 그 차가 심한 것은 공용(工用만들고사용함)이 모자랄 뿐 아니라 신정(神情정신)이 懸隔깊이 통하게 하기 때문이다. 書의 品位라는 것은 쓰는 사람의 人品에 따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세상에는 자기의 서를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그 運筆의 妙를 자부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자부하는 자는 發展의 여지가 적고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지도받고 熟達시킬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타고난 天分이 있어서 아무리 배워도 進步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아직 배우지도 않고 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日常에서 살펴보면 分明한 理致이다.
然消息多方,性情不一,乍剛柔以合體,忽勞逸而分驅。或恬憺雍容,內涵筋骨;或折挫槎枿,外曜鋒芒。察之者尚精,擬之者貴似。況擬不能似,察不能精,分佈猶疏,形骸未撿;躍泉之態,未覩其妍,窺井之談,已聞其醜。縱欲唐突羲獻,誣罔鍾張,安能掩當年之目,杜將來之口!慕習之輩,尤宜慎諸。至有未悟淹留,偏追勁疾;不能迅速,翻效遲重。夫勁速者,超逸之機,遲留者,賞會之致。將反其速,行臻會美之方;專溺於遲,終爽絕倫之妙。能速不速,所謂淹留;因遲就遲,詎名賞會!非其心閑手敏,難以兼通者焉。
그러나 書藝의 소식(消息나가고물러감)은 다양한 方法이 있어서 그 性情이 일정치 않다. 혹은 강유(剛柔)를 겸하고 혹은 노력과 쉬는 것을 나누어 하고 혹은 淡白하거나, 혹은 內面에 굳세고 강직함을 머금고, 혹은 꺾여 어긋나게 쓰는 등 그러므로 이를 感想하고 觀察함에는 精密함이 必要하고 이를 배움에는 模倣을 귀히 여긴다. 만약 이를 배워서 類似하게 하지 못하고 이를 잘 觀察하고 硏究하여 精密하지 못하면 分布는 여전히 허술하고 모습 또한 잘 結束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천(躍泉용이연못에뛰어오르고)의 姿態가 있다 하더라도 연미(姸美고운모습)로 칭하기 어렵고 소위 우물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격이니 이러한 무리들이 멋대로 2왕 을 당돌하게보고 鍾繇와 張芝의 글씨를 하잖게 여긴다고 해도 그 時代 의 눈을 가리고 後世의 批評의 입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古人의 書를 배우려는 자는 充分히 삼가고 어디까지나 謙虛한 마음으로 臨해야 한다. 아직 엄류(淹留:글씨를 빨리 쓸수 있는 사람이 천천이 쓰는것)를 깨닫지 못하고 빠른것 만을 쫓거나 運筆을 빠르게 하지 못하면서 더디고 둔하게 하는것 만을 본받는다. 대저 경속(勁速견고함과 빠름:외부의눈을즐겁게함)은 초일(超逸초탈하고편안함)의 기틀이 되고, 지류(遲留더디고 머물음)은 상회(賞會:감상할만한것)에 이르는 것이다. 장차 빠른 것을 돌이켜 천천히 쓰게 되면 여러 가지 美를 모으는 方法에 到達하게 되지만 오로지 더딤에 빠지면 爽快한 절륜(絶倫뛰어남)의 묘를 잃게 될 것이다. 빠름을 능히 하면서 빠르지 않는 것은 소위 엄류(淹留)이다. 더딤에 의하여 더딤은 어찌 상회(賞會감상할만한것)라고 칭하겠는가. 運筆의 지속(遲速)을 體得하기는 어려운 일이며 마음이 한가하고 손이 敏捷해 지지 못한다면 遲速을 兼備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假令眾妙攸歸,務存骨氣;骨既存矣,而遒潤加之。亦猶枝幹扶疏,淩霜雪而彌勁;花葉鮮茂,與雲日而相暉。如其骨力偏多,遒麗蓋少,則若枯槎架險,巨石當路,雖妍媚云闕,而體質存焉。若遒麗居優,骨氣將劣,譬夫芳林落蕊,空照灼而無依;蘭沼漂萍,徒青翠而奚托。是知偏工易就,盡善難求。
가령 여러 가지 묘에 들어가는바 골기(骨氣)가 있어야 한다. 이미 골기가 있고 筋(근) 굳셈과 윤택함이 가해지면 마치 소나무 가지가 서리와 눈을 견디어 더욱 堅固하고 花木에서는 그 꽃과 잎이 선명하고 茂盛하여 구름과 햇빛에 어울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가령 골기만 많고 굳세고 美麗함이 不足하면 그것은 枯木이 험한 절벽에 걸려있고 큰 바위가 길바닥 에 누어있는 것과 같고 體와 質은 있으나 연미(姸美고운모습)의 자태에 있어서는 不足함이 있는 것이다. 만약 굳셈과 미려함이 뛰어나나 골기가 不足한 것은 比喩하자면 마치 꽃동산에 떨어진 꽃이 의지 할 데 없이 떠다니는 것과 같고 浮萍草가 떠 있으나 依託 할 데가 없는 것과 같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한쪽에 치우쳐 技巧를 부리는 것은 쉬우나 참되고 아름다움에 到達하는 것은 至極히 어렵다는 것이다.
雖學宗一家,而變成多體,莫不隨其性欲,便以為姿:質直者則徑侹不遒;剛佷者又倔強無潤;矜斂者弊於拘束;脫易者失於規矩;溫柔者傷於軟緩,躁勇者過於剽迫;狐疑者溺於滯澀;遲重者終於蹇鈍;輕瑣者染於俗吏。斯皆獨行之士,偏玩所乖。
비록 一家의 서를 宗으로 하여 배워도 배우는 사람의 性格에 따라 變하여 多樣한 書가 되고 姿態가 다른 것이 된다. 바탕이 곧은 사람은 꼿꼿하여 美麗하지 않고, 强하여 모가 나는 사람은 潤澤함이 없고, 肯志가 강한 사람의 書는 너무 拘束되고, 마음이 너무 自由로우면 規則을 지키지 않고, 溫柔한 사람의 書는 軟弱하고, 躁急한 사람의 書는 사납고 急迫함이 지나치고, 고독한 사람의 書는 막힘이 있고, 더디고 愼重한 사람의 書는 느리고 둔하고, 輕薄한 사람의 書는 속된 趣向을 갖게 되는 등 모두 그 사람의 性格에 따라 書가 치우치게 된다.
《易》曰:「觀乎天文,以察時變;觀乎人文,以化成天下。」況書之為妙,近取諸身。假令運用未周,尚虧工于秘奧;而波瀾之際,已浚發於靈臺。必能傍通點畫之情,博究始終之理,鎔鑄蟲篆,陶均草隸。體五材之並用,儀形不極;象八音之迭起,感會無方。至若數畫並施,其形各異;眾點齊列,為體互乖。一點成一字之規,一字乃終篇之准。違而不犯,和而不同;留不常遲,遣不恒疾;帶燥方潤,將濃遂枯;泯規矩於方圓,遁鉤繩之曲直;乍顯乍晦,若行若藏;窮變態於毫端,合情調於紙上;無間心手,忘懷楷則;自可背羲獻而無失,違鍾張而尚工。譬夫絳樹青琴,殊姿共艶;隋珠和璧,異質同妍。何必刻鶴圖龍,竟慚真體;得魚獲兔,猶恡筌蹄。
周易에 말하기를 天文을 보고 때의 變化를 觀察하고 사람과 글을 보고 天下를 敎化하고 育成한다고 하였는데 書藝는 직접 身邊에서 體驗하는 것으로서 가령 運用은 未熟하고 奧妙한 境地에 未達하였다 해도 이미 이것을 배우려는 것이 그 사람의 요구이므로 더욱 點劃 이나 시종(始終기필과수필)의 이치를 넓게 硏究하고 충전(蟲篆충서와전서)도 融合해내고 익히며 또 草書 隸書 등도 참작하여 오재 (금목피옥토金木皮玉土)를 倂用하고 音樂의 8악기(金,石,絲,竹,匏,土,革,木)를 써서 演奏하는 것과 같으면 感懷가 無限한 글씨를 쓸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 획을 나란히 써도 그 획은 하나도 同一한 것이 없고, 많은 點을 같이 늘어놓아도 그 形態는 同一한 것이 없고, 한 點이 한글자의 法度를 이루고, 한 글자가 全體의 基準이 된다. 어긋나되 侵犯하지 않고, 造化를 이루되 한결 같지 않으며, 運筆이 머물러 있되 恒常 더디지 않으며 쓸 때도 恒常 빠른 것이 아니고, 마른듯하면서도 潤澤하고, 짙은듯하면서도 엷고, 둥글거나 모나 는 것을 融合하면서 曲線과 直線을 造化롭게 하고, 갑자기 나타났다가도 금방 없어지고 가는 것 같이 숨기는 것 같이 變化를 붓끝에 주어 정조(情調감정의조화)를 종이 위에 合하여 마음과 손이 一致하여 書法을 一體 잊어버리게 되면 王羲之 獻之에 違背되고 鍾繇와 張之가 違背된 데가 있어도 이에 더 秋稼할 것이 없을 것이다. 미녀 강수와 청금은 모습은 달랐으나 다 같이 곱고 아름다웠다. 또 隨氏의 구슬과 和氏의 玉은 質은 달랐지만 다 함께 고왔던 것과 마찬가지다. 어찌 학(鶴)을 刻하고 龍을 그려 實物과 틀렸다고 부끄러워하고 물고기를 얻고 토끼를 잡은 後까지도 통발과 덫을 아끼고 미련을 두겠는가?
聞夫家有南威之容,乃可論於淑媛;有龍泉之利,然後議於斷割。語過其分,實累樞機。吾嘗盡思作書,謂為甚合,時稱識者,輒以引示:其中巧麗,曾不留目;或有誤失,翻被嗟賞。既昧所見,尤喻所聞;或以年職自高,輕致凌誚。余乃假之以湘縹,題之以古目:則賢者改觀,愚夫繼聲,競賞豪末之奇,罕議鋒端之失;猶惠侯之好偽,似葉公之懼真。是知伯子之息流波,蓋有由矣。夫蔡邕不謬賞,孫陽不妄顧者,以其玄鑒精通,故不滯於耳目也。向使奇音在爨,庸聽驚其妙響;逸足伏櫪,凡識知其絕群,則伯喈不足稱,伯樂未可尚也。
듣건대 대저 집에 남위(南威)와 같은 미모가 있어야 비로소 숙녀를 이야기 할 수 있고 용천(龍泉)과 같은 검이 있어야 비로소 銳利함을 論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글씨에 正統해야만 비로소 批評할수 있는 資格을 가 질수 있는 것이다. 批評하는 말이 분에 지나치면 그 말은 오히려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내가 언젠가 精神을 다하여 글을 쓰고 회심의 作品이 되었기에 식견이 있는 자라고 稱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批評을 구하였더니 개중에 잘된 것에는 눈도 주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것만 稱讚 하며 자기의 所信은 없고 他人의 說에만 움직이는 무리들뿐이다. 또 나이가 많고 官職이 높은 자는 사람을 내려 보고 업신여기고 트집 잡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써서 비단으로 包裝을 하여 名家의 이름을 써서 보였더니 賢者는 태도를 바꿔 들여다보고 愚昧한자는 感歎하고 다투어 자세한 점까지 稱讚하고 붓끝의 잘못을 말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이는 마치 혜후가 2왕의 書를 좋아해서 가짜를 많이 所藏한 것과 같고 섭공이 龍을 좋아해서 집안 아무데나 龍을 그렸다가 진짜 天龍을 보고 놀라 기절했던 것도 같다.
이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가 琴을 다시는 타지 않았다는 理由를 알게 되었다. 音樂의 대가인 蔡邕은 잘못 感想하지 않고 말의 相을 잘 보는 孫陽(백락)이 말을 함부로 보지 않았던 것은 그 鑑識力이 높아서 눈과 귀의 感覺作用에 拘束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가마솥 밑에서 타는 오동나무의 기음이나 마구간에 엎드려 있는 駿馬의 絶群함을 凡識의 아무라도 안다면 백개(伯喈채옹)도 칭찬할 것이 못되고 백락(伯樂)도 尊敬할 일이 못 된다.
至若老姥遇題扇,初怨而後請;門生獲書机,父削而子懊;知與不知也。夫士屈於不知己,而申於知己;彼不知也,曷足怪乎!故莊子曰:「朝菌不知晦朔,蟪蛄不知春秋。」老子云:「下士聞道,大笑之;不笑之則不足以為道也。」豈可執冰而咎夏蟲哉!
부채를 파는 老婆의 부채에 王羲之가 글씨를 써주어 처음에는 화를 냈었는데 나중에는 부채가잘 팔리니 懇請한 일, 門生의 책상에 글씨를 써 주었는데 父親이 깎아버려 아들이 고민한 일 등은 이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差異이다. 대저 선비는 자기를 몰라주는 자에게는 굽히고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펼치는 것인데 저 모르는 사람을 어찌 理想하다고 하겠는가? 莊子에 말하기를 아침에 나와 저녁에 죽는 버섯은 그뭄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여름에 나서 가을에 죽는 매미는 四季節을 알지 못한다. 老子는 낮은 선비는 道를 듣고 크게 비웃는다. 낮은 선비가 크게 웃을 정도가 아니면 참다운 道가 아니다 말 하였고 또 莊子 추수 편에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서 모른다고 힐책하지 말라고 하였듯이 書藝를 모르는 자를 힐책할 일이 아니다.
自漢魏已來, 論書者多矣, 姸蚩雜糅,條目糾紛:或重術舊章, 了不殊於旣往:或苟興新說,竟無益於將來:道使繁者彌繁,闕者仍闕.今撰爲六篇,分成兩卷,第其工用,名曰書譜,庶使一家後進,奉以規模:四海知音,或存觀省:緘秘之旨,余無取焉,垂拱三年寫記.
漢魏로부터 이제 까지 書를 論한 자는 많으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있고 혹은 그저 古人의 說을 引用할 뿐으로 아무 새로운 硏究도 하지 않고 되지 않는 신설(新說)을 시도하는 것도 있고 將來 사람들 에게는 有益한 것도 없고 한갓 번잡한 것을 더욱 번잡하게 하고 한편 必要한 것도 빠져 있다.
지금 6편을 編纂하여 2권으로 나누고 좋은 것을 차례로 整理하여 이름을 書譜라고 했다 .원하건대 우리 집의 子弟가 서를 배우는데 參考가 되고 또 天下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도 살펴 觀覽해 주기를 기대한다. 나는 스스로 體得한 비책을 他人에게 보이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수공3년(687)에 써서 記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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