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7. 15:17ㆍ독서후기
인문학 명강(2)
-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의 위대한 인생수업 (서양고전) -
02 운명을 사랑하다, 생을 찬미하다
◉ 고난의 운명을 사랑하라 ‘오디세이아’
■ 강대진
- 서울대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국민대학교 겸임교 수 역임
- 저서 : 비극의 비밀, 그리스 로마 서사시,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 튼 운명의 서사시.
- 역서 : 오이디푸스 왕 등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의 작품으로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니키아 문자(영어에서 사용하는 로마 문자의 기원)가 들어 온 뒤 처음으로 기록된 문서지요. 이 또한 고전을 읽는 데 부록처럼 따라오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 유럽의 문명과 문자
페니키아 문자가 들어오기 이전, 그리스 세계에 400년 가까이 글자가 없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때를 암흑기라고 하는데, 그 이전에 두 단계의 청동기 문명이 있었지요. 사실 오늘날 유럽의 서북쪽을 마치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것처럼 말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쪽은 캄캄한 암흑 속에 있었습니다. 반대로 오늘날 어려움에 빠져 어두컴컴한 유럽 동남부 지역이 오히려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지요. 오리엔트의 빛을 받은 동방에서 문명이 먼저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 문명은 동방과 근접해 그 영향을 손쉽게 받을 수 있었던 동남쪽 크레타에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발생한 문명을 전설적인 왕 미노스의 이름을 따서 미노아(Minoan) 문명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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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기원전 1500년경에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크레타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크레타에게서 영향을 받아 그리스 본토에도 문명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미케네(Mycenae) 문명이라고 합니다.
* 미노아, 미케네 문명에서 사용한 문자는 ‘선문자 B’인데 기원전 13세기 말 이 문자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짐, 그 원인은 도리스 인의 남하와 해양 민족이라 불리는 구약성서의 블레셋인에 의해 문명의 중심지가 소멸되면서 어려운 글자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짐
정리하면 유럽 중 가장 동쪽에 있는 크레타가 동방의 영향을 받아 가장 먼저 문명을 꽃피웠으며, 청동기 문명이 두 단계 있었는데 거기서 어려운 음절 문자가 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명의 소멸과 함께 문자가 모두 사라졌고, 400년 정도 지난 뒤 굉장히 쉬운 음소문자인 알파, 베타, 감마, 즉 페니키아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글자들로 처음 기록된 작품이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입니다.
■ ‘오디세이아’에 대한 편견과 오해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는 오늘날까지도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튼튼한 구조가 있는 작품의 특성상 아무래도 여러 사람의 합작품으로 보기보다는, 뛰어난 시인이 있어서 마지막 단계에 그가 전체를 정리하고 구조를 부여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저의 생각도 또한 그렇습니다. 전체 24권 중 네 권 정도에 걸쳐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제5권에 오디세우스가 등장하지만 괴물의 눈을 찌르는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전체 24권 중 8권이 지나서야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형식의 이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는 네 권 정도의 분량 동안 계속 됩니다. 그런 다음 12권의 이야기가 끝나고 13권에 들어서면서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도착하게 되고, 나머지 24권까지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에서 겪는 일들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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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읽어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어떤 오해에서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첫 번째 오해는 많은 사람들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리아스’가 1편, ‘오디세이아’가 2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오디세이아’를 읽기 전에 ‘일리아스’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에 비해 분량도 적고, 등장인물도 단순하며, 흥미진진한 요소도 매우 많기 때문에 읽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따라서 ‘오디세이아’를 먼저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두 번째 오해는 ‘오디세이아’가 모험과 복수라는 두 가지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한 가지 주제가 더 담겨 있습니다. 앞부분에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성장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권에서 4권까지는 젊은이의 성장에 대해, 5권에서 12권까지는 뱃사람의 모험이, 그리고 13권에서 24권 까지는 집을 떠났던 사람의 귀향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의 세 가지 주제입니다.
■ ‘오디세이아’의 모험 속으로
본격적으로 ‘오디세이아’의 모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오디세우스는 굉장히 많은 곳을 떠돌아다닙니다. 하지만 그냥 하는 여행이라면 별 의미가 없겠지요. 읽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디세이아’를 ‘오디세우스’가 모험과 여행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혹은 수많은 유혹과 위험을 겪음으로써 점점 더 완성된 존재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말하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터를 떠나 귀향길에 오릅니다. 우선 트로이 맞은편 지역의 땅을 약탈하게 되는데, 특별히 그 지역 제사장인 ‘마론’을 보호해 주게 됩니다. 그러자 이 제사장이 고맙다며 오디세우스에게 아주 값지고 독한 포도주를 선물합니다.
오디세우스는 포도주 자루를 받아 다시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합니다. 그러다 말레아 곶이라는 아주 악명 높은 지점에서 풍랑을 만나 9일 동안 떠밀려가게 됩니다. 그리스에서 ‘9’는 매우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9일 동안 떠밀려 갔다는 것은 다른 세계, 즉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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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먼저 당도한 곳은 ‘로토스(Lotos)’를 먹는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로토스는 굉장히 달콤하며 이것을 먹으면 고향에 가고 싶은 생각마저 잊게 되는 환각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상징하는 것은 ‘무책임의 유혹’, 즉 모든 것을 버리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그런 유혹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열매가 한 사람의 기억을 없애버리는 ‘위험’ 그 자체를 뜻한다고 말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마론에게서 받아온 포도주를 괴물 폴리페모스에게 건넵니다. 그러자 괴물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이 들게 되고, 오디세우스는 이때다 싶어 나무창으로 괴물의 눈을 찌르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한편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에게 술을 줄 때 그가 “네 이름이 뭐냐?”고 묻자 오디세우스는 “우티스(Oautis)”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 ‘nobody’라는 뜻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말이지요.
동굴을 빠져 나온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를 향해 소리칩니다. “야, 이 머저리야! 나는 우티스가 아니라 오디세우스다!” 이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 대가로 오디세우스는 나중에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오디세우스가 만난 사람은 바람의 왕 아이올로스입니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한 달간 머문 뒤 떠나려고 하자 바람자루를 줍니다. 좋은 바람, 즉 서풍 하나만 남겨 놓고 항해를 방해하는 나쁜 바람을 모두 담은 자루입니다. 그런데 9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해 몹시 피곤했던 그는 그만 잠이 들고 맙니다. 그러자 그 자루에 담긴 것이 궁금했던 부하들이 오디세우스가 잠든 틈을 타 바람자루를 열고 맙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온갖 나쁜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오디세우스 일행은 다시 아이올로스에게로 떠밀려 갑니다.
- 오디세우스는 바람의 왕 아이올로스에게 도움을 요청 했지만 거절 당함
- 노를 저어 항해하다 식인 거인을 만남
- 한참 도망을 가다가 마녀 키르케를 만남,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애인이 되어달라고 하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무력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마녀의 애인이 되어 1년을 머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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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마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만나자마자 남자들을 죽이거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며, 또 하나는 어느 정도 데리고 살다가 싫증나면 없애버리는 존재입니다. 키르케는 이 두 종류의 특성이 결합된 마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오디세우스는 저승에 다녀오는데, 당시의 이야기들은 주인공들이 꼭 한 번 저승에 다녀오는 스토리가 일반적이었고, 11권에는 온통 저승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갔다 오자 키르케는 앞으로 겪게 될 위험들과 세이렌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바로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요정들이지요.
세이렌은 예술이 가진 파괴적인 힘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일종의 죽음의 유혹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습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키르케가 시킨 대로 귀를 막아버립니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마법에 통하지 않자 죽어버리는 세이렌들도 있습니다. 보통 마법적인 존재들은 마법이 통하지 않으면 죽거나 마법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세이렌에게서 벗어난 오디세우스 일행은 머리 여섯 개 달린 괴물 스킬라가 있는 곳에 다다릅니다. 그곳에서 일행 여섯 명을 잃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태양신의 섬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태양신의 소를 잡아먹으면 집에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그냥 지나치자고 했으나 부하들의 성화에 그곳에 내리게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 부하들이 소를 잡아먹습니다. 태양신의 성화로 부하를 모두 잃은 오디세우스는 혼자서 작은 뗏목을 타고 항해를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바닷가로 떠밀려온 오디세우스는 그곳에서 나우시카라는 공주를 만나게 됩니다. 나우시카는 굉장히 솔직하고 똑똑한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런 나우시카의 이야기가 조금 짧다는 것이 독자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나우시카의 집에서 환대를 받습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누군가 찾아오면 상대방의 신분을 묻지 않고 일단 대접부터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나우시카의 아버지 알키노오스 왕은 오디세우스를 대접하기 위해 가객을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는데, 트로이 목마에 대한 노래를 부르자 듣고 있던 오디세우스가 그만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자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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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버지가 노래를 중단시키고는 그제야 당신은 누구냐고 묻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말 하고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바로 오디세우스가 나우시카와 그의 아버지에게 들려준 자신의 경험담입니다.
■ 오디세우스, 왕의 귀환
오디세우스는 나우시카 섬사람들이 내준 배를 타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드디어 고향 땅에 도착한 그는 아테네 여신을 만납니다. 아테네 여신은 그의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주고는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툭 치더니 그를 거지꼴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스무 살쯤 된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고, 아내 페넬로페가 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동안 페넬로페는 숱한 남성들로부터 구애를 받습니다. 페넬로페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데 정절을 지키며 남편만 기다리는 춘향이에 비교되기도 했다가, 오늘날에는 시쳇말로 ‘어장관리’를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거절도 아닌, 허락도 아닌 미묘한 행동으로 뭇 남성들을 밀고 당기며 계속해서 붙잡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그동안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떠나 있었습니다. 아테네 여신이 그에게 여행을 명했던 것이지요.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만나러 갈 때 아테네는 ‘멘토르’라는 사람으로 변신해 그와 동행합니다.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날 때 자신의 아들을 부탁했던 바로 그 친구입니다. 텔레마코스는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네의 활약으로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멘토(Mentor)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고향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이 이끄는 대로 자기 집이 아니라 돼지치기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뾰죽 모자를 쓰고 늙은 거지의 모습을 한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돼지치기가 자리를 비우자 아테네 여신은 오디세우스를 다시 멋진 중년신사로 변신시킵니다. 바로 여기서 영화 ‘스타워즈’의 그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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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사 “I'm your father.”가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던 아들도 그제야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아차립니다. 아마도 젊고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읽었던 것이겠지요.
아테네 여신은 오디세우스를 다시 늙은 거지꼴로 만든 다음 집으로 보냅니다. 20년 만에 거지꼴로 집에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아르고스라는 늙은 개만이 꼬리를 치며 주인을 알아봅니다.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늙은 거지인 척하며 기회를 틈타 밤중에 자기 아내와 면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거지 행색을 한 채 자신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네펠로페의 구혼자들에게서 놀림을 받기도 하고 구타를 당하기도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들이 하는 대로 묵묵히 따릅니다. 다음 날, 페넬로페가 남편이 두고 떠났던 활을 꺼내 구혼자들을 시험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활에 줄을 걸어 열두 개의 도끼를 꿰뚫는 사람과 결혼 하겠다고 말합니다. 막상 기회가 되자 줄을 걸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드디어 오디세우스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는 보란 듯이 줄을 걸어 열두 개의 도끼를 꿰뚫은 다음 화살을 날려 구혼자들을 모두 쏴 죽입니다.
하지만 네펠로페는 달려가 남편을 포옹하기는커녕 오디세우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자신이 내준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남편으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그저 하녀들에게 안에 있는 침대를 끌어내 저분의 잠자리를 보아드리라고만 합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버럭 화를 냅니다. 그 침대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인데 누가 그것을 움직이려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 침대는 땅에서 자란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다듬은 뒤 거기에 세 개의 기둥을 더 세워 만든 움직이지 못하는 침대였던 것이지요. 그 전에 먼저 담을 둘렀기 때문에 이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부부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땅에 굳게 뿌리박힌 이 침대는 부부간의 신뢰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페넬로페는 바로 그 침대 이야기를 수수께끼로 냈고, 남편인 오디세우스는 그 수수께끼를 풀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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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펠로페 역시 근동에서 섬기던 여신의 후예인데 침대로 사용한 나무가 바
로 그 여신의 나무이며, 아직도 그 나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음날 오디세우스는 교외에 나가 자신의 아버지를 만납니다. 아버지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과수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만나 목욕을 하고나자 아버지는 다시 젊음을 되찾고, 심지어 원수들 중 한 명을 쓰러뜨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싸움을 말리고는, 오디세우스를 왕으로 섬기며 평화롭게 살라고 말하는 것으로 오디세이아의 방대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
그렇다면 오디세우스의 정체성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기억이 합쳐진 기억. 한 마디로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도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완성되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 혹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아’에는 여러 단계의 사회가 등장합니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질서를 지닌 사회가 어떤 것인지 탐색하는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그 질서는 특히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대접하는 지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존재,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존재, 친절하지만 남들과 교류하지 않는 존재 등이 있습니다. 그 모든 곳을 경험한 오디세우스는 질서만 회복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암흑기를 뚫고 새롭게 질서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이루어 나갈지 모색하는 것, 그것이 ‘오디세이아’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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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 빛과 색으로 물들다 ‘신곡’
■ 박상진
- 부산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교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문학박사학위
- 저서 : 단테 신곡 연구. 이탈리아 문학사. 비동일화의 지평 등
- 역서 : 신곡
단테의 ‘신곡’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곡’에 대해 할 수 있는 논의가 약간 과장하자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에서 ‘단테’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면 단행본만 12,000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단테에 대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테의 ‘천국’은 마냥 행복한 빛으로 둘러싸인 그런 곳은 아닙니다. 이 글의 제목에 ‘빛과 색’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천국은 빛으로만 가득 찬 세계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색으로 물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국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천국으로 올라간 단테는 태양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빛으로만 가득한 그 세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단테는 태양을 응시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성을 벗어던져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단테는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유일하게 내세, 즉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 지옥 :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영원한 절망의 세계
- 연옥 : 시간이 지나면 죄를 씻을 수 있는 곳,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닮음
단테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 그리고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를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 고민이 바로 이 글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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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 중세와 근대를 읽는 다리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 앞에는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60년 이탈리아는 독립과 통일을 이루게 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민족의 선각자로 추앙받는 단테의 상을 세운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단테에 대해 “그는 중세의 시인인 동시에 최초의 근대 시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눌 때 ‘중세와 근대에 걸친 인물’이라는 점은 경탄할 만한 찬사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단테를 말할 때, ‘다리’라는 단어를 수식어를 붙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중세와 근대를 잇는 다리였던 셈이지요. 56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거대한 두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토마스 엘리엇은 “서양의 근대화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양분된다. 그 사이에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는 “단테의 문학은 모든 문학의 절정이다.”라고 말했으며 괴테 역시 “단테의 문학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다”라며 단테를 찬미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단테의 생애
- 첫 번째는 그가 태어나서 서른 살이 되기까지의 기간으로 ‘청신체파’라는 문학 동인을 만들어 활동하던 시기로, ‘청신체(淸新體)’는 맑고 새로운 문체를 구사하는 시인들의 모임이며 맑다는 것은 이탈리아어로 ‘젠탈레(Gentile)’ 영어로는 ‘젠틀(Gentle)’입니다.
젠틀이 상징하는 바는 맑고 부드러운 것, 곧 사랑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청신체파는 여성에 대한 사랑을 새로운 문체로 표현하는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여성은 천사와도 같은 여성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그냥 여성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주는 것은 물론, 온 인류를 구원하고 이끄는 천사의 상징입니다.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18세 때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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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해 줄 천사의 죽음은 단테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자 고통이었습니다. 단테는 이후 청신파의 활동을 대표하는 여덟 명의 최고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기에 이릅니다. 단테는 굉장히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파벌 사이의 쟁투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단테로서는 더할 수 없는 시련의 시기였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다행이기도 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테의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쓰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시간이었던 것이지요.
이 후 단테는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한 번도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피렌체는 당시 이미 유명한 시인이자 권위 있는 지식인인 단테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올 것을 종용합니다. 하지만 단테는 이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단테의 편지들을 모은 ‘서간문’에서 단테는 그 제의에 대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래의 글은 자유로운 사고와 불굴의 의지를 지녀야 할 지식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 어디에 있건 나는 태양과 별빛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불명예스럽게, 아니 치욕적으로 국민과 조국 앞에 서지 않고도 어디서나 고귀한 진리를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내게는 빵조차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결국 단테는 정처 없이 이탈리아를 떠돌다 라벤나라는 곳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울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외롭고 쓸쓸한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단테는 그 모든 고통을 견디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임무는 ‘피렌체라는 특정 공동체’가 아닌 ‘인류라는 보다 더 보편적이고 보다 큰 대상’을 향해 있다는 의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세계 시민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던 셈입니다.
■ ‘새로운 삶’에서 ‘향연’에 이르기까지
- 신곡 : 내세를 순례하고 하느님에 대한 구원의 열망을 다룬 시
- 새로운 삶 : 정신체의 문체로 베아트리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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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어론 : 서민들이 잘 모르는 어려운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속어)로 쓴 작품
- 신곡을 이탈리아어로 집필(1300년대 초반), 이후 700년 동안 이탈리아어가 정착됨, 단테가 이탈리아어를 완벽한 언어로 만들었다는 의미임
- 제정론 : 황제권과 교황권의 대립을 다룸, 보편적이고 적법한 권력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논함, 마키아벨리보다 200년 앞섬
- 향연 : 지식의 잔치, 주로 철학적인 내용, 이탈리아어(속어)로 쓰임
- 서간문 : 편지 모음집
- 물과 땅과 장소와 형태 : 자연 현상의 과학적 분석, 단테는 자연과학자 이기도 함
다시 단테의 ‘신곡’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 이렇게 세 편으로 이루어진 시입니다. 각 편은 모두 33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옥’편은 서곡까지 포함해 34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전체가 100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신곡’은 전 세계인의 필독서로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흔히 고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읽히는 책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0년 전에도 혹은 100년 뒤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는 그런 힘을 가진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단테의 신곡이 보편적인 이유는 그 안에 다루고 있는 주제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주제들, 예를 들어 정의, 사랑, 구원 또는 공동체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주제들은 우리에게 삶에 대해 계속해서 날선 문제들을 던지도록 하는 일종의 도전 의지를 만들어 줍니다.
단테가 ‘신곡’의 제목으로 처음 정했던 것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입니다. ‘코메디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희극이라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단테가 ‘코메디아’라는 용어를 제목으로 붙이게 된 연유는 그 자신이 ‘서간문’에서 밝혔듯이 “비참한 시작에서 행복한 결말로 이르는 내용”이라 점, 비극과 달리 이탈리아 속어로 쓰였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평범한 사람들이 대세를 이룬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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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단테 학자 조반니 보카치오는 제목 앞에 거룩하다는 뜻의 ‘디바나(divina)’를 붙여 “거룩한 코메디아”라 부름
-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에서 신곡(神曲)으로 번역했는데 이 제목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음
■ ‘신곡’, 운율과 알레고리 그리고 내세
* 알레고리(Allegory)
-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비유법
단테는 신곡이라는 책에서 지옥과 연옥, 천국 그리고 현세 이야기를 모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신곡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주로 베아트리체를 통해 사랑이 표현되는데, 베아트리체는 인간과 신을 연결시키는 천사입니다. 또한 뮤즈이기도 하지요. 뮤즈는 창작의 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작가들은 뮤즈의 힘을 빌려 창작의 혼을 불태웠습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바로 그런 존재였지요.
‘신곡’의 주요 주제 중 또 하나는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길잡이를 필요로 합니다. 단테를 구원으로 이끄는 대표적인 존재는 바로 베르길리우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베르길리우스를 이성의 상징으로, 베아트리체를 신성의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연옥까지만 안내합니다. 그는 천국에 올라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 로마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몰랐고 당연히 세례를 받지 못했으므로 지옥에 있게 됩니다. 이 부분을 사람들이 지나친 기독교 중심주의라고 해서 논란이 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신곡’의 또 하나의 주제는 ‘공동체’입니다. 단테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평화로운 공동체를 영위할 수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그 다음 주제는 ‘기억’입니다. 단테는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는 동안 필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행을 마치고 나서 오직 기억에 의지해 글을 썼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곡입니다.
다음 주제는 ‘정의’입니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한마디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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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의란 끊임없이 물어야 할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주제인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디를 걷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의 길은 어디인가. 이렇게 단테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이처럼 신곡에는 오묘하고도 깊이 있으며 보편적이고도 다양한 주제들이 어우러져 있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고전으로서의 위엄을 떨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신곡은 시(詩)입니다
신곡은 한 행마다 11음절로 되어 있습니다. 총 1만 4233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이 모든 행이 모두 11음절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형식 속에 앞서 언급한 주제들을 모두 담아냈으니 실로 엄청난 설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테에게 중요한 것 중 또 하나는 알레고리입니다. 알레고리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의미 말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작품은 1층, 2층, 3층, 4층 계속 이어지는 아주 중층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단테에게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신곡’의 원래 제목이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였던 것처럼 단테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웠습니다. ‘나의 희극’이란 말이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는 개인적인 체험, 개인적인 순례 등을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기억과 자신의 정신으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신곡’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단테가 여행했던 내세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운데 지구가 있고, 그 아래로 깔때기처럼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를 데리고 지옥을 돌아본 다음 연옥으로 올라갑니다. 연옥이 맨 꼭대기에는 지상 낙원이 있습니다. 지상낙원에는 레테 강과 에우노에 강이 있는데, 레테 강은 기억을 없애주는 강이고, 에우노에 강은 선행의 기억을 일깨우는 강입니다. 연옥이라는 장소 자체가 죄를 씻는다는 의미이듯 순수해지고 깨끗해져서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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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보다 더 밝은 빛은 없다
신곡은 천국만이 아니라 당연히 지옥까지도 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지옥으로 인해 천국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단테가 지옥을 여행하지 않고 천국만 여행했다면 우리는 구원의 의미를 그만큼 강하게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단테는 색채의 이미지, 또 지옥의 이미지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천국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헤겔의 지적처럼 지옥의 감성이라든가 체험의 느낌을 그대로 지닌 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던 단테는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스스로의 경험을 총동원했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인간을 초월한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끝내 그것을 이루어낸 작가의 역량이 우리로 하여금 깊이 사고하도록 만드는 힘이 된 것입니다. 저는 단테가 바로 천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베아트리체는 우리를 하느님에게로 이끌어주는 존재이지만, 정작 그녀가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사람은 바로 단테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작가로서의 단테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작품 속에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 것은 바로 단테입니다. 자신을 이끌어주는 길잡이지만 그녀를 길잡이로 삼은 사람은 누구도 아닌 단테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단테는 이 엄청난 구원을 스스로 기획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신곡’ 내에서는 하나의 등장인물이지요. 그 엄청난 구원을 기획한 존재가 바로 단테입니다.
단테의 작품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서양 전체와 동아시아 등지의 모든 세계인들이 읽는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읽게 될 독자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단테가 다시 돌아온 이유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음으로써 구원이 무엇이며 우리의 길이 무엇인지, 또 정의가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단테가 다시 돌아와 이 책을 쓴 궁극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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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가.
셰익스피어의 ‘햄릿’
■ 이종숙
-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 저서 : 벤 존슨의 시학(역사와 이상의 문학적 변증법), 셰익스피어식 상호 텍스트성과 감정 재현의 기술, 영국에서 온 유리피디즈 등
비극이란 무엇인가? 왜 비극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왜 ‘햄릿’이라는 비극에 대해 듣고 얘기하려 하는지, 여러분들 자신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극의 원형인 그리스 비극은 경쾌한 위안, 근거 없는 낙관 달콤한 도덕주의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비극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나 ‘슬픈’ 이야기를 다루는 게 아니라 위기와 영웅적 인물들에 의해 벌어지는 예외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수퍼사이즈의 영웅적 인간들이 저지르는 수퍼사이즈의 잘못된 행동, 그들의 격정, 분노, 욕망에 의해 빚어지는 위기에 대한 이야기, 그런 위기에서 생겨나는 지독한 고통, 광란,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눈을 찌르고, 목을 매며 분노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왜 이런 광경을 연기했고, 왜 한데 모여 그 모진 광경을 구경했을까요?
■ 기독교 시대의 비극
비극은 서양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서양 정신의 역사에서 비극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잇다는 얘기입니다. 그리스 비극이 고대 그리스에서 끝나지 않고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 서양 정신의 역사에서 비극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증언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 비극이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과정을 잠깐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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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의 비극은 주로 성경극이며 연극으로서의 비극은 없어졌음
- 운명의 수레바퀴와 그 수레바퀴를 쉴 새 없이 돌리는 눈먼 여신이야기 - 그 수레바퀴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은 반드시 아래로 떨어지고 떨어진 사람은 계속해서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타고 다시 올라갈 기회를 갖게 됨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생각은 기독교 이전의 이미지인데 여기에 기독교적 윤리가 덧붙여지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고통을 이제까지와 다른 각도에서 보고, 그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입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통을 거치면서 다시 상승하게 된다는 생각이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이미지에 내장되어 있고,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이 구원을 얻게 되듯 인간의 고통에도 분명 궁극적인 보상이 따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고통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이 출현한 것입니다.
고전시대의 비극이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16세기의 비극은 역사에 나오는 역사시대의 인물들을 그립니다. 16세기의 비극은 인간의 고통을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려 한다기보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분석의 주된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은 ‘고통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햄릿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왕자라는 점에서는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과 흡사하지만, 국가라는 체제 안에서 한 개인이 겪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다면 세속화된 그리스 비극, 또는 탈 기독교화 된 중세 비극의 고통 받는 한 인간의 범주에 속합니다.
■ ‘햄릿’과 셰익스피어의 생애
셰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가죽 장갑을 만드는 장인으로서 성공하여 그 도시의 시의원이 되기도 하니 시민계급의 가정에서 자란 셈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세워진 그래머스쿨(공립학교)에서 아주 좋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인문주의자인 스승의 지도 아래 인문학 교육을 정식으로 받아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읽을 수 있었고 여러 고전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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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되던 1582년에 셰익스피어는 자기보다 여덟 살 위인 앤헤서웨이와 결혼, 여섯 달 뒤에 딸 수잔나를 낳게 됩니다. 그 후 이 년 뒤인 1585년에는 이란성 쌍둥이 주디스와 햄닛(Hamnet)을 낳게 되는데, ‘햄닛’을 당대에는 ‘햄릿’으로 발음했다고 합니다. 햄닛은 11살이 되던 1596년에 사망하고 1601년에는 세익스피어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가 사망합니다. 1601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햄릿’이 이 두 사람의 죽음과 관계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1585년에서 1592년 사이 어느 지점에 런던의 극장가에 나타나, 1594년에는 자신이 속한 극단의 주주가 되고 우리가 걸작이라고 찬양하는 작품들을 일 년에 거의 두 편씩 생산하게 됩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가 아니라 기존의 작품, 전래하는 이야기, 역사책에서 따온 이야기를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빚어내는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저작권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세익스피어는 잘 팔리는 작가여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고향에 커다란 집을 사고 은퇴했다가 1616년 3월 23일 사망하여 근처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히게 됩니다. 그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보게 친구, 빌건대.
여기 묻힌 흙을 파헤치지 마시게.
이 돌을 그대로 뇌두는 이에게는 축복이,
내 뼈를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그때만 해도 무덤은 한 사람이 독차지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덤은 내가 맡아 놓은 것이니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경고를 써붙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진짜 묘비는 따로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사후 칠 년째 되던 해인 1623년에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동료 배우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펴냅니다.
책머리에 실린 벤 존슨의 헌시에는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칭송합니다.
“그대는 무덤 없는 기념비이어라 / 그대의 책이 살아 있는 한 그대는 언제나 살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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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기념비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있는 묘비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책이라고 해야겠습니다.
■ 햄릿의 내면성
‘햄릿’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햄릿’이 서양의 근대를 만들어 낸 기반 텍스트라는 해석은 이제 거의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햄릿은 복수극입니다.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이 시대의 여러 작가들이 복수극을 썼는데 이들 복수극의 대표로 흔히 햄릿을 손꼽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좀 특이한 복수극입니다. 시작은 다른 복수극들과 아주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햄릿은 정통 복수극처럼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작 복수는 빨리 행해지지 않습니다 .복수가 실행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막 후 극의 흐름은 복수의 실행이 아닌 다른 쪽으로 계속 흘러갑니다. 극의 초점이 모이는 곳은 복수라는 행동이 아니라 복수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복수자 햄릿의 내면이 됩니다. 결국 햄릿이라는 등장인물이, 그리고 그 등장인물의 성격이 이 작품의 초점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바꿔 말하면, 햄릿이 복수를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실행 과정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햄릿이 복수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햄릿이라는 인물이 워낙 감성적이고 여린 인간이기 때문에 복수자로서는 우유부단하게 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햄릿에 대해 마치 옆집 사람 얘기하듯이, 햄릿이 작품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실존하는 사람인 것처럼 얘기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795년 괴테는 “햄릿이 너무 고결하고 너무나 도덕적이어서 복수자로서는 적당치 않은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괴테의 이 말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여 낭만주의 시대의 햄릿상을 결정합니다.
햄릿이 감성적인 인간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햄릿은 감성적일 뿐 아니라 지성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콜리지는 ‘햄릿’은 지성적 인간의 비극이라고 정의 합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극이라는 거지요. 드디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햄릿상이 완성된 겁니다.
20세기 최고의 셰익스피어 학자라 할 만한 브래들리는 햄릿은 분열된 자아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거의 병적이라 할 만큼 분열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거지요. 이쯤 되면 햄릿은 정신분석의 대상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로 1900년 프로이트는 햄릿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햄릿’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바탕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는 이론을 만들어 냅니다. 이 이론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기반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이론입니다.
사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빌리지 않고 현대인의 심리구조를 이야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학문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바로 ‘햄릿’이니 결국 ‘햄릿’이 현대인의 심리구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햄릿은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자극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와 똑같은 심리구조를 가진 실존 인물로서 그를 생각하고 이해하게끔 만들고 그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경향은 20세기에도,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햄릿이 관중이나 독자들이 햄릿이라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유독히 강하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햄릿이 서양문화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햄릿과 자기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흔히 들먹이는 대사가 있습니다. 3막 1장에 나오는 여러분들에게도 잘 알려진 바로 그 대사입니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되는 그 대사 말입니다.
저는 그것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살 것인가”와 “살지 않을 것인가”의 대조를 강조하기 위해 “살 것인가, 살지 않을 것인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살 것인가, 살지 않을 것인가-그것이 문제로구나.
난폭한 운명의 화살과 돌팔매질을 정신으로 견딜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바다와 전쟁을 벌이고
저항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것인가.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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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햄릿’이 생산된 영국의 16~17세기는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유럽의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갑작스런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유럽대륙에서 일어난 종교개혁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0 1534년 헨리 8세의 수장령으로 종교개혁 단행,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 적 이유에서
- 아들을 낳지 못하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에 반기
- 1536~1539 3년 동안 수많은 수녀원과 수도원 철폐
- 아들을 얻기 위해 새로 결혼한 왕비 앤 볼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간통죄로 죽임
0 1547년 에드워드 6세 즉위
0 1553년 메리여왕 즉위 , 가톨릭 국가로 복귀
0 1558년 엘리자베스 즉위 이후 신교로 환원
0 1603년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영국 왕위에 올라 제임스 1세가 됨
■ 기억의 두 방향
1막 1장에서 우리는 이미 죽은 과거가 살아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막 2장은 궁정 장면인데, 거기에 새로운 덴마크 왕 클로디어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죽은 왕의 비, 즉 형수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새 왕은 신하들에게 “사랑하는 형 햄릿의 죽음이 아직 / 기억이 생생하지만 (……) 이제 나 자신을 기억하면서도 / 현명하게 슬퍼하며 가신 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오”라고 말합니다. 죽은 형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이제는 슬픔을 현명하게 조절할 때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현명하게 슬퍼하고, 현명하게 기억을 조절하자는 이야기지요.
그는 햄릿에게도 이렇게 훈계합니다. “너의 아버지도 아버지를 잃었고, 그 잃은 아버지 역시 아버지를 잃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흔해 빠진 일인데 왜 너만 그토록 유별나게 구느냐는 것이지요. 그렇지 만 햄릿은 이것저것 다 싫으니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햄릿은 죽는 것조차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죄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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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유령은 햄릿에게 자신을 기억하고 자신을 위해 복수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너에게 천륜의 정이 있다면 이것을 참지 말거라” 또는 “날 기억해 다오”라는 유령의 말에는 복수와 기억이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햄릿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등장합니다. 그중 특히 중요한 것이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전통과 연결된 말들입니다. 메멘토모리를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네가 죽으리라는 것을 기억하라”입니다 .이 말을 풀이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죽으므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삶과 구원이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비극적 정신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아킬레우스의 영혼은 지하 세계로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빛나는 오디세우스여, 내 죽음을 위로하려 하지 마오.
나는 죽은 자들 모두의 왕이 되기보다도
가진 땅도 별로 없고 먹고 살 곳도 별로 없는
그런 사람의 노예가 되어 쟁기 뒤를 따라가는 것을 선택하겠소.
영웅적 죽음을 선택했던 것을 후회하는 아킬레우스의 이 말은 얼핏 서사시적 정신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비극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말을 꼭 그렇게만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삶이 그토록 귀중하고, 살아서 햇볕을 쬐는 일이 그렇게 절대적인 가치라면, 인간의 고통을 부정하고 잊어야 하는지, 아니면 고통의 광경을 기억하고 고통과 죽음이 인생의 핵심적인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가 하는 비극의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을 향해 인간이 과연 무엇인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죽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묻는 일은 반드시 햄릿이나 비극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세네카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신성에 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며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몫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이야기를 그냥 듣는 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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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마시고 ‘햄릿’을 다시 꺼내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햄릿과 함께 죽음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이며, 왜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03 인류를 뒤흔든 위대한 유산을 만나다
◉ 천재들의 비밀, 뉴턴과 이인슈타인
■ 홍성욱
-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동대학교 대학원에서 과학사 박사학위
- 1992년 슈만상과 1996년 IEEE 종신회원상
- 저서 :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 예술, 과학과 만나다(공저).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조성 등
서양 고전의 이야기하는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라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뉴턴은 실제 고전이라 불릴 만한 저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1687년에 출간된 뉴턴의 유명한 물리학 책 ‘프린키피아’와 1704년에 출간된 빛과 색깔에 관한 ‘광학’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과학에 있어서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릴 만큼 과학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번째로 이야기할 아인슈타인은 사실 고전이라고 할 만한 저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중을 위해 ‘상대론’이란 책을 썼지만 그 책이 과학에 있어서 고전의 위치에 있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아인슈타인을 말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은 각각 1905년 1916년에 10여 페이지 정도의 짧은 논문의 형태로 출판되었습니다.
서양고전은 대개가 방대합니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에서 그런 책들은 어느 시점에 사라지고 간략한 논문 형태의 내용만 남게 됩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발견, 즉 생명체에 있는 DNA가 이중 나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이 발견을 보고한 논문은 불과 두 장 분량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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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점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서양 고전과는 차별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과학에서 고전은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고 어떻게 더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삶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이 인문학의 고전과 약간의 차별성을 갖는 점입니다.
■ 뉴턴이여, 있으라!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특히 광학과 역학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입니다. 많은 역사학자나 과학자들은 뉴턴을 17세기 서양 과학혁명의 완성자라고 말합니다. 요즘 말로하자면 과학혁명의 ‘종결자’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턴이 사망한 뒤 그의 추종자였던 알렉산더 포프 경은 뉴턴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추모시를 남겼습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네
신이 말하길, 뉴턴이여 있으라
그러자 모두 광명이었네
뉴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참 전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몇 가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이 코페르니쿠스(1473~1543)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 혹은 태양중심설의 이론을 처음으로 제창한 천문학자입니다. 물론 서양과학자를 통틀어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거나 혹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고 말았지요.
0 코페르니쿠스 이론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의문점
1. 1일 1회 자전을 사람들은 왜 못 느끼는가?
2. 지구위의 물체들이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하는데도 왜 튕겨나가지 않는가?
3. 지구는 왜 태양에서 멀어지거나 도망가지 않는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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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 갈릴레오(1564~1642)입니다. 갈릴레오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물리학자로 코페르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으며, 그 이론이 제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대 역학의 기초가 되는 세 가지 법칙을 제시합니다. 관성의 법칙, 운동의 상대성 이론, 운동의 중합(重合) 법칙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할 법칙이 운동의 상대성 이론입니다. 이는 등속으로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사실 정지하고 있는 물체와 구별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 시속 100Km의 차안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차의 움직임을 못 느낌.
- 등속 운동 = 상대적 운동.
- 곧 지구와 사람이 함께 돌고 있으므로 못 느낌
관성의 법칙은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해서 움직이려 하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현상을 말합니다.
세 번째인 운동의 중합법칙은 두 개의 운동이 하나의 물체에 합쳐질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운동을 하는 물체를 두 개 이상의 운동 성분으로 나눌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갈릴레오의 이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짚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 케플러(1571~1630)라는 천문학자입니다. 고대부터 케플러까지 사람들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원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는 행성들은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원으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
- 1609년 케플러가 타원의 법칙을 제시했지만 행성의 궤도가 왜 타원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함
■ 프린키피아 그리고 만유인력의 원리
1687년 어느 날, 뉴턴은 80년간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했던 타원 법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냅니다. 뉴턴의 가장 중요한,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업적은 행성의 운동이 타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풀어낸 최초의 과학자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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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뉴턴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문제를 풀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뉴턴이 대학생이던 시절 흑사병이 돌게 되고 학교를 휴교를 하자 그는 집에 내려와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에 있는 잔디밭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달의 운동을 관찰하게 됩니다. 순간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그는 달이 지구 주위를 돌게 하는 그 힘과 사과를 끌어당겨 지구로 떨어지게 하는 힘이 같은 것이라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내고, 그것을 통해 결국 많은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과학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상당부분 와전되었다는 데 동의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뉴턴이 집에 내려와 있던 1665년경에 뉴턴이 남긴 여러 형태의 자료에는 거기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수가 된 이후인 1970년대에 몇 년간 연금술 실험에 깊이 몰두합니다. 당시 연금술사들은 이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어떤 종류의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뉴턴은 그 힘의 존재를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우주 공간에는 그것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종류의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 “행성이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돈다”는 캐플러의 법칙을 80년 만에 증명함
- “물체는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그리며 운동 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밝혀냄
- 이 발견으로 뉴턴은 유럽 최고의 물리학자 반열에 오름
사람들은 뉴턴이 수학과 실험을 결합함으로써 이를 과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뉴턴은 수학과 실험을 통합해 근대 과학의 가장 놀라운 힘, 가장 놀라운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나약하고 미약한 인간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뉴턴의 추종자들만큼이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뉴턴이 이 세상을 차가운 기계적 세계관으로 설명함으로써 원래 자연에 있었던 아름다움, 질,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감 등을 모두 사라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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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뉴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그들은 심지어 뉴턴을 인간의 위치보다 신의 영역에 더 가까운 존재로 칭송하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뉴턴과 함께 살았던 프랑스의 수학자 로피탈은 뉴턴이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입고, 농담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뉴턴은 사람들에게 신격화된 존재였습니다 .
■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기념비적인 이론을 만들어낸 물리학자이지요.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특수 상대성 이론의 가장 핵심은 시간에 대한 관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라는 것은 우주 전체를 통해 일정하게 흘러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모두에게 그리 평등하지 만은 않지요. 누군가는 엄청난 부자로 태어나는가 하면 누군가는 더할 나위 없는 가난뱅이로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뛰어난 머리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모든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고 똑같이 흐른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아무리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무리 미모가 뛰어난 사람도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는 것이 수천 년간 사람들이 가졌던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람들을 지배해왔던 이런 생각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깨지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전 우주를 통해 일정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에 대해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지금도 물리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뉴턴은 도대체 만유인력이 왜 생기는지, 중력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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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 답은 지구나 태양처럼 무게를 가진 물체가 있을 때 그 물체의 주변 공간이 휘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물체가 무거울수록 그 물체의 주변 공간은 더 휘어지고 다른 물체들은 그 휘어진 공간에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중력에 이끌려 운동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답입니다. 중력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운동의 원인이 아니라 운동의 효과이고 결과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런 혁명적인 생각은 세상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19년, 에딩턴이라는 영국의 천문학자가 일식을 관찰하던 도중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근거를 찾아냅니다. 이를 계기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받아들여지게 되고 이로써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고 물리학자로 탄생하게 되며, 이는 우주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아인슈타인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아인슈타인에 대해서는 그 명성만큼이나 오해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상대성 이론이 너무 어려워 당시에 이를 이해하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았고 또 충분히 이해되고 논의 되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제기하는 함의와 결론이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혁명적이고 급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듯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이었을 테니까요.
아인슈타인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그의 뇌가 일반인과 달리 특이할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뇌를 분석했다는 근거는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주치의는 아인슈타인인 사망한 직후 수술을 통해 그의 뇌를 척출합니다. 그리고 그 뇌를 자신이 보관하는데, 후에 이 일이 문제가 됩니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는 질문에 주치의는 아인슈타인 생전에 동의했던 일이라며 그가 남긴 유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 담긴 문서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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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상황을 종합한 결과 아인슈타인이 그런 유언을 했을 리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주치의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각내 버립니다. 그러고는 아인수타인의 뇌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전 세계에 공고합니다. 그러자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아인슈타인의 뇌는 다수의 연구자들에게 보내져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뇌는 우리나라에도 잠깐 왔었습니다. 2005년 아인슈타인 100주년 기념전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크기의 뇌 조각이 전시되었었지요. 그때 일본에서 한국으로 그 뇌 조각을 공수해 우리나라에 전시했다가 다시 일본으로 가지고 갔더군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방법으로 뇌 조각을 조사했지만 이렇다 할 특별함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0 아인슈타인의 생활사 단편들
- 대학시절의 꿈 : 중등학교 교사
- 대학을 졸업하고 조교로 남으려 했으나 실패
-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 키울 형편이 안 되어 입양시킴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 그들의 편지에서 딸아이의 이야기가 등장)
- 등대지기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진, 과학보다 철학을 좋아하던 소년
- 스위스 베른의 조그마한 특허국에 취직, 약혼녀를 데려와 결혼생활
-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스터디그룹을 운영하면서 독서, 토론, 바이올린 연주 등의 학문 연구 및 취미활동
-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발표
■ 자연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상대성 이론은 나와 무관한 학문이 아닙니다. “그런 거 몰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 없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론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미 우리 삶 속에 늘 함께 있어 왔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문학의 형태일 수도 있고, 그림의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이론들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는 그 시인이 쓴 시를 감상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상대성 이론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음악이나 미술, 예술을 통해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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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특히 자연과학을 통해 감동을 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술분야에서의 감동과는 다르지만 과학이나 지식, 학문 체계에서도 특화된 즐거움과 감동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따릅니다. 그렇다보니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그와 같은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기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과학사적 고전을 알아야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과학의 역사를 거슬러 훑어봄으로써 대리만족을 하듯 여러 학자들의 엄청난 창의성과 발견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깨달아가며 즐거움과 환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무의식과 인간본성 ‘꿈의 해석’
■ 김석
- 건국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 파리 제8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
- 저서 : 에크리-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무의식에로의 초대, 인간본성에 대한 철학 이야기(공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성(Sexuality)에 대한 강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를 읽다보면 성의 해방이나 혹은 인간의 성적 측면을 과도하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은 자기 몸을 통해 느끼는 여러 쾌락과 관련된 것으로 남녀 간의 고정화된 성 관계 등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자신의 손가락을 빠는 것,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또 아이에게 최초로 성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엄마라는 점에서 역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아이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애착’이라고 부릅니다. 엄마가 아이를 안아주고 감싸주는 육체적인 교감을 통해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전달하고 느끼는 것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성’입니다.
■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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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1856~1939)가 이야기하는 ‘무의식’은 결국 진정한 나를 찾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도 나 자신을 모를 수 있는데, 그것이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는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서구 지성사의 3대 혁명으로 지칭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사상적 혁명입니다.
세 가지 혁명 중 첫 번째는 지동설을 발표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적 형명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통해 중세적 사고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신 중심의 세계를 인간 중심의 세계로 바꿔놓음으로써 뉴턴과 이인슈타인 등 근대 자연과학과 물리학에 토대를 제공합니다.
두 번째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혁명입니다. 찰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발표하는데,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뇌과학, 행동주의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의지적인 존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 역시 자연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세 번째는 인간의 정신은 의식이라는 관념을 뒤엎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혁명입니다. 프로이트는 1899년에 ‘꿈의 해석’을 완성했지만 의도적으로 1900년에 출판합니다. 자신의 책이 20세기를 여는 새로운 키워드가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매진된 것과 달리 ‘꿈의 해석’은 800부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당시 프로이트의 사상은 성과 관련해 상당 부분 오해를 받았고, 심지어 거부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의 서구사상이 지배해온 이성 중심의 사고관을 뒤집어엎고 욕망하는 인간, 즉 이성 뒤에 가려져 있는 무의식적이고 육체적이고 충동적인 요소들을 강조한 프로이트의 무의식 혁명은 계속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을 직관적 해석이 아니라 나름의 원리와 개념을 바탕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꿈 해몽과는 아주 다릅니다. 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꿈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보여주면서 인간 본질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니다.
‘정신분석’이라는 용어는 1896년에 프로이트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는 메타사이콜로지라고도 일컫는데, 의식 너머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을 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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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과 그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그 뒤에 가려 있지만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무의식을 연구해 이를 ‘사이에, 뒤에, 넘어서’라는 뜻을 가진 메타와 심리학을 뜻하는 사이콜로지를 결합해 메타사이콜로지, 즉 메타심리학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프로이트는 세 가지 전제를 통해 메타심리학을 설명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지형학 원리입니다. 지형학 원리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아(Ego,), 초자아(Super Ego), 이드(Id)가 모여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처럼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전제는 경제성 원리입니다. 흔히 리비도(Libido) 경제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리비도라는 에너지가 양적으로 증감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예를 들어 100이라고 했을 때 120이나 130의 에너지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잉으로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럴 때는 30정도의 에너지를 덜어 내야 합니다. 반대로 에너지가 모자라면 보충해야 하는데, 이렇게 양적으로 증감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경제성 원리라고 하며, 프로이트는 이를 쾌락 원리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원리는 철학에서 말하는 쾌락주의와는 다릅니다. 리비도를 조절하는 것과 관계된 것이지, 쾌락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인간의 행동을 절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는 역동성 원리입니다. 이는 자아, 초자아, 이드가 계속해서 서로 갈등하고 타협하는 것을 통해 개인의 심리는 물론 사회적 심리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아가 강한 사람은 매우 합리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자아는 현실을 대변하니까요. 또 초자아가 강한 사람은 매우 도덕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드가 강한 사람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다른 측면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 세 가지는 계속해서 갈등하지만 어느 하나를 완전히 무(無)화 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사회에 적용시키면 ‘갈등이 있는 사회는 지극히 정상이다’가 됩니다. 우리는 갈등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만, 실은 갈등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나름대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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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음의 뿌리라고 하는 ‘이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이드는 본능과 충동의 저장고이며 근원적인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드를 마음의 원래 현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쉽기 말해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리면 됩니다. 배고프면 울고, 졸리면 자는 것처럼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욕망, 이것이 바로 이드적인 것입니다. 이드의 근원에는 공격성과 성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격성과 성욕은 무제한을 추구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만족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드를 만족시켜 잠재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식하며 활동하는 모든 것들은 다 이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드가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드의 욕구가 무제한으로 발산되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드는 자신을 좀 더 잘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도와줄 마음의 또 다른 부분을 필요로 하는데, 이때 이드에서 분화된 것이 바로‘자아’입니다. 자아는 이드에서 분화된 것으로 현실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다음 초자아는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부모 개인이 아니라 대대로 부모를 통해 물려받은 목소리, 즉 사회를 통해 계승되어온 목소리가 아이의 내부에 자리잡은 것이 바로 초자아입니다. 그래서 초자아는 흔히 양심, 도덕 등을 대변합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이드적인 것들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관계 속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니까요. 그러므로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자와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초자아가 필요합니다.
■ 진정한 자아찾기
정신분석은 실제가 아니라 심리적 현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정신이란 완전한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 말하는 리얼리티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심리가 만들어낸 리얼리티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것들이 모여 사회적 리얼리티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의미의 대한민국은 아닐 것입니다. 개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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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라 모두 다르게 받아들이지요. 완벽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무의식은 정신의 본질이며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진실입니다. 무의식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감추고 싶고 억압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 얼굴을 내미니 싫어질 수밖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듣기 싫어하고, 정신분석은 성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한물 간 과학이며 인간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신분석에 있어서 대중적으로 오해가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은 유아기에 매달리는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부모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남근기 때나 구순기 때, 항문기 때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과도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음을 전제로 합니다. 과거의 기억은 영상테이프처럼 저장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과 현재의 기억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기억입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종종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합니다. 실제 그 시절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의 못마땅한 것들이 과거에 자꾸 투영되어 기억이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항상 꿈꾸는 존재, 환상을 품는 존재이지만 망상이나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망상과 환상은 엄연히 다릅니다. 환상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만 망상은 과도한 신경증자나 도착증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꿈꾸는 존재여야 하지만 동시에 이 꿈이 망상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결국 정신 분석은 나를 찾는 일입니다. 실제로 무의식은 자신을 안정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 또 우리가 평소 품고 있는 생각의 정서적인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또는 얼마나 우리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지를 여러 가지 실체적 증상, 정신적 증상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 욕망에 시달리며 갈등하고 좌절하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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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무의식이 필요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통해 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인격은 어쩌면 페르소나(persona : 가면,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가면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무의식을 통해 우리는 그 가면 뒤의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정신분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014. 5. 3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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