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5. 14:56ㆍ독서후기
당신에겐 그런 사람 있나요?
■ 무무(木木) 지음
0 서른세 살 에세이스트
0 ‘사랑을 배우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100만부 이상
0 언론 및 기타 매체와의 인터뷰 거절. 오직 글로만 승부하는 은둔의 작가
0 저서 : 사랑을 배우다. 오늘, 뺄셈.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내 인생에 바 쁘다고 하지 않기 등
■ 양성희 옮김
0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수학
0 전문 번역가 : 도시를 생각하다. 내편이 아니어도 적을 만들지 말라. 인 생철학 51강. 대국굴기. 채근담 등
■ Prologue 사랑한다는 말로는 사랑할 수 없는 당신에게
난 여전히 내가 느끼는 것들을 온전히 설명할 줄 모른다. 사랑이란 태초부터 그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이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말하고 싶다. 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사랑한다는 말로는 사랑할 수 없었죠. 그래서 이 ‘사랑해’라는 말이 눈물겹고 부질없었죠. 사랑의 기쁨과 가슴 아픔,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당신, 그래요, 사랑이란 사랑을 하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 난 오늘도 이 바보 같은 사랑으로 사랑을 배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난 아직 당신에게 나의 전부를 주지 못했어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이 못난 말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당신에게 드립니다.
- 당신을 만난 후 어느 날 -
- 1 -
1. 가끔은 그날을 기억하게 될 거야
- 헤어짐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 조지 엘리엇 (George Eliot)
낡은 건물이 밀집한 이 동네는 철거가 시작된 지 이미 오래다. 무너진 담장과 벽 곳곳에 ‘철거’라는 붉은 글씨 위를 뚫고 나온 잡초가 무성하다. 골목 끝 아주 오래된 나무 한 그루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모두가 떠났지만 단 한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매일 자기 목숨처럼 나무를 지키는 할머니, 시청직원과 개발업자가 수차례 찾아와 더 좋은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우리 천(辰)을 기다려야 해요. 내가 여길 떠나면 천이 집을 찾을 수 없으니까. 난 떠날 수 없어요.”
천은 할머니의 첫사랑이자 짧은 결혼 생활을 함께 한 남편이다. 신혼 시절에 여행을 갔었다.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천이 사라졌다. 할머니는 천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계속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50년이 지났다. 할머니가 살던 골목에 할머니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었으므로 이제 천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번쯤 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잊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이사를 갈 수 없었다. 언젠가 먼지 쌓인 구레나룻을 기른 천이 밝게 웃으며 돌아와 이렇게 말하리라.
“미안해. 길을 잃었어.”
철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할머니는 애원했다.
“이 상사수(相思樹)만이라도 꼭 남겨주세요. 그래야 천이 집을 찾아올 수 있어요.”
시는 새로 건설될 은행 건물의 조경을 위해 이 나무를 남겨 놓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섰다. 할머니는 공사가 끝나자마자 상사수 나무 아래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더 기다렸고, 그 2년 동안 할
- 2 -
머니는 건강이 나빠졌다. 할머니는 은행 보안 요원에게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남기며 간곡히 부탁했다.
“구렛나룻을 기른 젊은 남자가 와서 나를 찾으면 꼭 이리로 전화해줘요.”
할머니가 기억하는 천은 아직 젊은 남자였다.
“네 걱정 마세요.”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행 로비에 서서 물끄러미 상사수를 쳐다보던 보안 요원의 눈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할머니의 부탁이 떠오른 보안 요원은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혹시 할아버지 이름이 천인가요?”
할아버지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눈빛으로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보안 요원은 서둘러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 천이 돌아왔어요! 아세요? 천은 이제 젊은 남자가 아니에요. 50년이나 지났잖아요. 하지만 결국 돌아왔어요.”
할머니는 한걸음에 달려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또 한 명의 백발 노인에게 달려들어 서럽게 울었다.
“어떻게 이렇게 무정할 수가 있어요. 어쩜 이렇게…….”
할아버지의 50년 전 사연은 이랬다. 산을 내려오던 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종종 아내가 꿈에 나타났지만, 꿈에서 깨면 다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아련한 눈빛만 생각날 뿐이었다.
그동안 기억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오래 전 신문을 열람하던 그는 사람을 찾는 광고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 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신이 이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니까, 더 빨리 오고 싶었는데 …….”
■ 소크라테스의 사랑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오랫동안 답을 얻지 못한 문제에 대한
- 3 -
가르침을 구했다. 플라톤을 가장 힘들게 한 문제는 바로 사랑이었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데리고 넓은 보리밭으로 나갔다.
“나는 이 보리밭 반대편 끝에 서 있을 테니, 너는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도록 해라. 오는 동안 이 보리밭에서 가장 크고 실한 이삭을 가져와야 한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절대 뒤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만 걸어가야 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보리밭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가 서 있는 반대편 끝에 도착했을 때,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보리 이삭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따지 못했습니다.”
“왜 따지 못했느냐?”
“생각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장 크고 실한 것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뒤돌아 갈 수 없으니, 괜찮다 싶은 것을 발견해도 혹시 저 앞에 더 크고 더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랬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걷는 데 처음에 발견했던 것만큼 크고 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빈 손으로 여기까지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얼마 뒤 플라톤이 다시 소크라테스를 찾아왔다. 이번에 가르침을 구할 문제는 결혼이었다.
“도대체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별 다른 설명 없이 이번에도 플라톤을 데리고 보리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 보리밭을 지나가도록 했다. 플라톤은 이번에는 보리이삭을 손에 쥐고 소크라테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가 가져온 보리 이삭은 별로 크지도 않고 실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
“이건 아주 평범해 보이는구나.”
“지난 번 경험을 교훈 삼아 신중했지만, 여전히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빈손으로 계속 걸어가려니 불안해서 일단 괜찮아 보이는 것을 땄습니다. 더 좋은 것이 있는지 계속 살폈지만, 없었습니다.”
- 4 -
소크라테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플라톤이 다시 소크라테스를 찾아왔다. 이번에 답을 구할 문제는 행복이었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아무 말 없이 플라톤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보리밭입니까?”
“아니다. 하지만 방법은 똑같다. 뒤돌아가선 안 되고 반드시 앞으로만 가야 한다. 이 들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오너라. 난 반대편에 가 있겠다.
플라톤은 스승의 말에 따라 진지하게 꽃들을 살폈다. 들판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잠시 후 플라톤은 꽃 한 송이를 들고 소크라테스 앞에 도착했다.
“이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구나. 왜 이 꽃을 꺾어 왔느냐?”
“처음 봤을 때 정말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해서 꺾었습니다. 계속 걸어가다 보니 더 크고 화려한 꽃이 보였지만 제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끝까지 이 꽃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보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이 꽃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 내 마음 속에 네가 있으니까
두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둘은 가족이나 다름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같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느 날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왜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왜 여자들은 늘 연애에 목을 매는 거야? 넌 그러면 안 돼.”
“걱정 마. 그렇다고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
- 5 -
“……너, 그게 무슨 뜻이야?”
여자가 수줍게 웃었다.
“무슨 과야? 이름이 뭐야?”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자. 그때 직접 물어봐.”
얼마 뒤 셋은 밥을 같이 했다. 남자는 남자 친구를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남자 친구가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여자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그날 밤 남자는 기숙사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했던 약속 잊었어? 네가 그랬잖아. 내 신부가 되어서 영원히 함께 하자고 약속했잖아.”
“도대체 언제 얘길 하는 거야? 그건 어렸을 때……혹시 술 마셨어?”
“언제인지가 뭐가 중요해. 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넌 나랑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말도 안 돼.”
“왜 안 돼?”
“우린 서로 너무 잘 알잖아.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였어. 거의 가족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연인이 될 수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고 호기심도 없고 신비감도 없고,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없잖아.”
다음 날 아침, 술이 깨자마자 남자는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멍하니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겠지? 같이 영화보고, 쇼핑하고……이젠 할 수 없겠지?”
그랬다. 남자의 말처럼 두 사람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얼마 후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그 결혼 생활은 그녀가 꿈꾸던 생활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여자에게 준 것은 외로움뿐이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남자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둘은 결국 이혼을 했다.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됐다. 그리고 어릴 적 남자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결혼했다.
- 6 -
두 사람은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함께 카펫 위에 엎드려 책을 읽고, 소파에 앉아 나란히 영화를 보고, 같이 부엌에 들어가 저녁을 준비했다. 전남편이 키우고 있는 아이를 보러 갈 때도 함께 갔다. 어느 날 여자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아이 낳자.”
“이렇게 우리 둘이 사는 것도 좋은데.”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걱정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 아이를 갖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얼마 뒤 두 사람은 아이를 얻었다. 남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새 훌쩍 커버린 아들이 결혼을 하고 도시로 떠나면서 갑자기 집안이 허전해졌다. 이제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노인들처럼 쓸쓸해 하지 않았다.
“이것도 좋은데. 우리 두 사람만의 하루를 되찾았으니.”
두 사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늘 함께 인생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얼마 뒤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순간에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 고마워.”
“정말 너무해. 당신이 ‘사랑해’라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여자는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내가 평생 외롭지 않았던 건 모두 당신 덕분이야. 철없던 시절엔 가슴이 두근거려야 사랑인 줄 알았어. 당신이 가르쳐줬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야.”
“나도 고마워. 난 아직도 당신을 더 사랑하고 싶은데,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너무 짧았어. 그럴 수 있다면 우리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날까?”
남자는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번 생에 만난 건 어쩌면 전생의 약속이었는지도 몰라.”
- 7 -
“그래 어쩌면 내가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어서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나봐. 이번엔 절대 아무것도 지우지 않을래.”
“그래도 상관없어. 다음번에도 내가 당신을 찾아내면 되니까.”
“나 이제 정말 가.”
여자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졌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따라갈게.”
“아니야, 천천히 와. 땅 속은 너무 추우니까.”
남자가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같이 있으면 더 빨리 따뜻해질 거야.”
■ 장미를 건넨 손에는 향기가 남는다
아주 먼 옛날, 바다 한 가운데 아주 작고 아름다운 섬이 있었다. 이 섬에는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장미꽃을 좋아했다. 소녀는 여러 가지 색깔의 장미를 심었고 어느덧 섬은 장미 정원이 되었다. 소녀는 각각의 장미에 이름을 지어 주었다. 노란 장미는 우정, 분홍 장미는 가족의 사랑, 파란 장미는 그리움, 하얀 장미는 순결한 마음……. 그런데 유독 빨간 장미만 꽃이 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멋진 소년이 섬에 찾아왔다. 소녀와 소년은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졌다. 낮 동안 소년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소녀는 장미를 가꿨다. 저녁이 되면 어깨를 기대고 앉아 밤별을 헤아렸다. 소년과 소녀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세월이 흘렀고, 소년은 남자가,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의 마지막 얼굴은 미소를 머금은 편안한 모습이었다.
여자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여자는 두 번 다시 남자와 함께 별을 헤아릴 수 없었다. 여자의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여자는 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칼을 들고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여자가 서 있던 하얀 장미꽃 밭에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그 순간 새하얀 장미꽃이 빨간 장미로 바뀌었다.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빨간 장미의 꽃말이 이뤄졌다. 이제 여자는 다시 행복한 남자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전생의 인연으로 엮은 운명의 그물에 두 사람의 마음이 꼼짝없이 걸려든 것, 그것이 사랑
- 8 -
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그것이 빨간 장미의 의미이다.
* 빨간 장미의 꽃말 : 열정, 아름다움, 욕망, 기쁨, 절정
■ 할아버지의 시계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오직 사랑하며 살았던 시간뿐이다. - 헨리 드러먼드 (Henry Drummond)
할아버지는 조그마한 개인병원 의사였고, 할머니는 그 병원의 간호사였다. 두 사람은 50여 년을 함께 살았지만 자식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조문객을 맞던 할아버지는 시계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한 후로 지금까지 그 사람과 스물네 시간 이상 떨어져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제 어떻게 살지?”
장례를 마친 후 할아버지는 신문에 구인 광고를 냈다. ‘50년간의 사랑이야기’를 대필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조건은 파격적이었고, 글 좀 쓴다는 사람, 기자, 심지어 유명 작가들까지 몰려들었다.
할아버지는 최적의 사람을 가리기 위해 몇날 며칠 동안 면접을 했다. 얘기를 하다보면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흥분해서 손짓발짓을 하기도 했다. 가슴이 아파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최종 면접에 합격한 사람은 기자 출신의 여성 작가였다. 하지만 이 작가는 물론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있었으니, 할아버지가 50년간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장장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끝난 후 원고를 정리하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고를 읽어 본 할아버지는 좋다, 나쁘다 한 마디 없이 사례를 했고, 자신이 조금 손을 보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던 해, 드디어 할아버지의 책이 출간 되었다. 할아버지는 무려 7년 가까이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그 7년 동안 할머니와 함께 했던 50년간을 하나하나 되새겨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죽기 전에는 24시간 이상 떨
- 9 -
어져본 적이 없었고, 할머니가 죽은 후엔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그래서 가장 쓸쓸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얼마 뒤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2.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은 말들의 역사
-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셍텍쥐페리
- 사랑은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을 기다리는 일.
사랑은 늦은 첫눈을 아쉬워하는 일. - 무무(木木)
-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거란다. 너에게는 너만이 완성할 수 있는 삶의 목적이 있고, 그것은 네 사랑으로 채워야 할 것이지 누군가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사랑이란 오직 사랑을 하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 - 무무
- 남자 :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받는 방법도…….
여자 : 그 사람은 나에게서 사랑을 배웠대. 나는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그 사람에게 했을 뿐인데. - 영화 ‘이프온리(if only)’ 중에서
-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이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약은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 가을이 슬픈 건 당연한 거야. 잎이 지고 가지가 앙상해질 때 우리의 일부도 죽기 때문이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 그래서이겠지.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봄을 선물하고 싶어. 한 겨울에도 화사한 봄을 입혀주고 싶어 당신이 그 어떤 일에도 슬퍼하지 않도록. - 무무
- 10 -
- 사랑은 약속이며 한 번 잡으면 놓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문신이다.
- 존 레논(John Lennon)
-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만 생각하고, 정작 자신이 한 약속에는 무심하다. - 무무
- 사랑은 그저 미친 짓.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예술가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 - 무무
- 두 문명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미묘하다. 그 만남은 기존 체제에 대한 검토를 일으키는 위대한 순간이다.
- 이별이란 나를 비춰주던 거울이 내 앞에서 사라지는 것.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의 끝일 뿐 아니라 나의 끝.
-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 사랑은 있거나, 없다. 둘 중 하나다. -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 폴 틸리히(Paul Tillich
- 사람들은 자기 발 바로 앞일은 보지 않고 하늘의 일만 뒤져본다.
- 키케로 (Cicero)
- 아픔을 느낄 만큼 사랑하라! 그러면 어느덧 아픔은 사라지고 더 큰 사랑이 생겨난다. - 마더 테레사(Teresa)
- 사랑을 하면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된다. - 무무
- 11 -
- 인생의 반은 미친 수작이고 나머지 반은 예지이다. - 몽테뉴(Montaigne)
-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깨우친 가장 큰 교훈은 믿을 만한 사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신뢰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드는 확실한 방법은 그를 불신하고 그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
-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아인슈타인) 모든 것은 성(性)이다.(프로이트)
모든 것은 경제이다.(마르크스)
- 여자는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 흘릴 수 있는 눈물을 준비하고 있다.
- 유베날리스(Juvennalis)
- 여행이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것
-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 원하는 것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사람에게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탈무드
- 행복하면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고, 불행하면 100년을 살아도 허무하다.
- 무무
- 모든 짐승은 교미를 끝낸 후에는 슬프다. - 갈레노스 (Galenos)
- 나는 그대와 운명을 같이하고 형벌을 같이 하련다. 만일 죽음이 그대와 짝짓는다면 죽음은 내개 생명이리라 - 존 밀턴 (John Milton)
3.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
■ 어느 구두 수선공의 기적
18세기 스위스 북부의 도시 바젤에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있었다. 그는
- 12 -
황량한 공터 한 쪽에 작은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하루 종일 열심히 구두를 고쳐서 번 돈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어느 봄 날 아침, 어디선가 날아온 제비 한 마리가 수선공의 판잣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다. 수선공은 초라한 판잣집에 날아온 제비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제비가 날아온 그 순간부터 수선공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이 솟았다.
‘제비가 왔으니, 이제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그날 이후 수선공은 더 열심히 일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매일 제비에게 하루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제비는 날아가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제비가 사라졌다. 겨울 내내 수선공은 빈 둥지를 보며 제비를 그리워했다.
‘제비는 이 추운 겨울을 어디서 지내고 있을까? 차가운 얼음 밑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얼어 죽으면 어쩌지?’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제비는 얼어붙은 늪 아래서 겨울잠을 잔다”는 옛 말을 믿고 있었다.
이듬해 봄 제비가 다시 돌아왔다. 수선공은 반가워하며 제비에게 말했다.
“제비야, 어서 오렴. 환영해, 나의 친구.”
또 다시 가을이 되었고 수선공은 작은 나뭇가지를 모아 제비집을 에워쌌다. 따뜻하게 해주면 제비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제비는 떠났다.
수선공은 직접 제비를 찾아 나섰다. 늪지를 돌아다니며 호미로 얼음을 깨뜨리며 살폈다. 하지만 제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제비가 다시 돌아왔다. 제비가 떠날 때가 가까워졌을 무렵, 수선공은 제비가 어디에서 겨울을 보내는지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비 다리에 작은 쪽지를 매달았다.
제비는 수선공의 바람이 담긴 쪽지를 달고 멀리 날아갔다. 수선공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 봄이 찾아왔다. 제비는 어김없이 수선공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리에 새로운 쪽지가 달려 있었다.
‘당신의 친구는 아테네의 앙트완씨 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그는 잘 지내고 있어요.’
- 13 -
제비가 그렇게 멀리 날아간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곳에도 제비를 아껴주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기뻤다.
구두 수선공과 제비의 이야기는 널리 퍼져나갔고, 이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 박물학자 뷔풍의 귀에도 들어갔다. 뷔풍은 오래 전부터 제비의 동면설을 의심해 왔다. 예전에 제비 다섯 마리를 잡아 얼음 동굴에 넣었는데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뷔풍은 당장 수선공을 찾아가 직접 쪽지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구실로 돌아와 여러 마리의 제비에 특별한 표식을 해 두고 날려 보냈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제비 이동의 특징이 조금씩 밝혀졌다. 뷔퐁의 연구가 성공하면서 구두수선공의 이름도 유명해졌다.
오랫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고민해온 수수께끼를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풀어냈다. 그 시작은 제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었다. 만약 그가 제비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제비의 이동 경로와 특징을 밝히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구두 수선공은 그렇게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오직 사랑 때문일 것이다.
■ 여자의 일생
화이트데이가 되자 거리엔 연인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로 칠십을 넘긴 할아버지가 장미를 들고 지나간다.
할아버지는 40년이 넘도록 함께 한 아내에게 줄 장미꽃을 사기로 했다. 꽃집 여주인은 할아버지가 평생 처음으로 아내에게 꽃 선물을 한다는 말을 듣고 가장 좋은 장미들을 골라 정성껏 가지를 다듬고 예쁘게 포장했다.
“할머님은 정말 좋으시겠어요.”
할아버지는 멋쩍어 하며 서둘러 아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꽃다발을 들고 가는 것이 어색했는지, 집 주위의 시선에 너무 창피했다. 집 앞에 다다를 때쯤에는,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다 늙어서 무슨 꽃이냐며 놀리기도 했다.
“역시 글쟁이는 다르네.”
“그러게 서양 기념일도 챙기는 멋쟁이야.”
주변의 관심에 할아버지는 오히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장미꽃을 사기엔 너무 늦은 건가?’
- 14 -
그동안 아내는 늘 다른 남자들이 하는 것 좀 보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작은 선물이라도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여유가 생겼지만, 젊은 시절엔 살기가 정말 힘들었다. 돈이 곤궁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본래 물건 사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한 번 제대로 기억해 본 적 없었으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기념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탐스럽고 싱싱한 장미꽃을 들고 돌아왔다. 할머니는 너무 놀랍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할머니는 장미꽃을 가슴에 품기도 하고, 꽃다발에 얼굴을 묻고 가슴 깊이 향기를 들이마셨다. 할머니는 꽃병에 물을 담고 한 송이 한 송이를 정성껏 꽃병에 꽂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침대맡에 꽃병을 올려놓았다.
그날 할머니는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물끄러미 장미꽃을 바라보며 은은한 향기에 취했다.
며칠 후 장미꽃이 다 시들었지만 할머니는 차마 그것을 버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기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할머니를 위로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니, 앞으로 자주 사다줄게.”
하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청춘을 되돌릴 수 없지요 만약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에게 해마다 장미꽃을 선물해 달라고 할 거예요. 이런 기쁨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달팽이
달팽이 두 마리가 마주쳤다. 어쩌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재회인지도 모른다. 한 마리가 먼저 더듬이를 쭉 펴고 느릿느릿 춤추듯 흔들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상대의 인사를 확인하고 역시 더듬이를 쭉 펴고 흔들며 화답했다.
곧이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됐다. 한 마리가 먼저 단단한 껍질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다른 한 마리도 역시 껍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 얼싸안고 뒤엉켜 하나가 됐다. 밝은 햇살이 비추자 두 마리 달팽이의 투명한 몸체가 수정처럼 빛나기 시작했고, 이제 그들은 완전히 하나가 됐다.
- 15 -
잠시 후 서로에게서 떨어진 달팽이 두 마리는 조금 있다 다시 다가가 하나가 됐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재회한 연인처럼 서로를 안고 쓰다듬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진심을 털어 놓는 것처럼 보였다.
프랑스의 영화배우 겸 감독인 자끄 페렝이 더빙한 다큐멘터리 영화 ‘마이크로코스모스’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길어야 몇 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선물
오래전에 귀를 뚫었지만 마음에 드는 귀고리를 찾지 못했다. 귀고리 대신 빨간 실을 끼웠다. 걸을 때마다 흔들거렸지만 반짝거리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귀찮을 땐 실을 빼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면 구멍이 메워지기 때문에 다시 바늘을 들어야 한다. 알코올로 바늘 끝을 소독하고 구멍에 찔러 넣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됐고, 그때마다 남자는 여자를 곁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남자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남자는 근육이 탄탄하긴 했지만 등이 좀 굽었다. 10년 넘게 맥주 공장 창고에서 묵묵히 짐을 날랐다. 남자에겐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가 계셨고, 매달 월급의 일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얼마 전부터 남자가 이상했다. 밥도 잘 못 먹고, 자주 토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며칠 쉬는 게 좋겠어요.”
“그럴 수 있나. 나가야지. 그런데……요즘 어떤 귀고리가 유행인가?”
“ 글쎄요. 순금이 제일 좋죠. 그런 건 왜 물어요?”
남자는 처음 만남을 시작했을 때처럼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웃기만 했다.
그날 저녁 남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로 여자를 불렀다. 남자가 자랑스럽게 내민 손에는 눈부시게 반짝이는 순금 귀고리가 있었다. 여자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젖은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이게 뭐예요? 당신이 어떻게…….”
여자는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기만 할 뿐, 귀고리를 만지지도 못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 16 -
“당신이 필요할 거 같아서…. 당신은 바보라서 직접 사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무슨 돈으로 이걸 샀어요?”
“그동안 모은 비상금이 좀 있었어.”
거짓말이다 당장 먹고 살 돈도 부족했는데 어떻게 비상금을 모은단 말인가? 여자는 남자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남자의 비밀을 캐냈다. 그리고 그날 여자는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남자가 집에 돌아왔고 여자는 그의 가슴을 때리며 또 울었다.
“왜 이렇게 멍청해? 당신 정말 바보야?”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남자는 반 년 동안 피를 팔았다. 보름에 한 번씩 불법 채혈소를 들렀다. 다니던 채혈소가 단속에 걸리면 또 다른 불법 채혈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새로 찾아간 채혈소에서 남자의 피를 사 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간염에 감염돼 있었다.
여자는 누렇게 뜬 남자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난 괜찮아. 바보처럼 울긴…. 귀고리, 당신이 하니까 참 이쁘다.”
그날 이후 여자는 귀고리를 하지 않았다. 여자는 귀고리를 종이로 잘 싸서 서랍에 넣어 두었다.
남자가 물었다. “왜 안 해? 종이에 싸서 두면 뭐하려고?”
“안 해도 되니까. 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귀고리를 가지고 있어. 그걸로 충분해.
여자는 못 다한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바보 같은 남자, 당신이 바로 그 귀고리야.’
■ 짝사랑
우연히 그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면 온몸이 떨린다. 나 혼자 좋아한다는 것은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그 사람이 영원히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면 어쩌나 걱정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 17 -
그 사람이 내 존재를 알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일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사람,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마치 내가 안 보이는 것처럼, 그냥 지나쳐 간다. 언젠가는 우연히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기쁨에 들떠 밤새도록 그가 했던 말들을 수없이 떠올릴 것이다. 몇 백 번이고 곱씹어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그 사람이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떨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그 사람이 어디를 가는지, 누굴 만나는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오간다.
짝사랑에 빠지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 그 사람의 작은 손짓 하나까지 꼼꼼히 관찰하고 기억한다. 이때는 완벽한 첩보원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이 알지 못하게,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하고 관심 없는 척 연기해야 한다. 이때 가능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에게 주목할 수 있도록 해야 다른 사람들 틈에서 맘껏 그 사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마음에 깊이 새긴다. 이렇게 쌓인 정보들을 한 줄로 꿰면 그 사람을 분석하기 위한 대략적인 틀이 짜인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의 인생에 등장한 모든 길, 그 길의 나무, 그 나무의 모든 이파리까지,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짝사랑에 빠지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평가한다.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갈팡질팡. 가끔은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최악의 결과가 될 그 말을 들을까 두려워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이 다 불만스럽다. 왜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까? 난 왜 이렇게 잘나지 못 했을까? 고백하는 게 옳은 걸까? 하지만 역시 용기가 없다. 결국 입으로도, 눈으로도 말하지 못했지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온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가도록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마음은
- 18 -
포도주처럼 기약 없이 숙성되고 있다. 가끔 뚜껑을 열어보면 깊고 은은한 향이 전해져 온다. 짝사랑은 모든 것을 나 혼자 진행하는 1인극이다. 그 사람이 내 존재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짝사랑이 요리라면, 만드는 사람도 나고 먹는 사람도 나다.
■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배우자를 찾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상담실에 들어서니 정면에 작은 문 두 개가 있었다. 한쪽에는 ‘아름다운’, 다른 한 쪽에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라고 씌어 있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아름다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젊은’과 ‘별로 젊지 않은’이라는 두 개의 문이 또 있었다. 남자는 생각할 것도 없이 ‘젊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남자는 이런 식으로 총 9개의 문을 통과 했다. 남자가 선택한 문은 각각 아름다운, 젊은, 착한, 자상한, 부유한, 진실한, 성실한, 똑똑한, 건강한, 위트 있는 이었다. 남자가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앞에 이런 문구가 씌어 있었다.
‘당신의 이상형은 너무 완벽하군요. 그런 사람은 인간 세상에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불완전한 사랑과 결혼에 대처하는 유형은 대략 다음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죽을 때까지 이상형을 기다리는 사람.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배우자 모델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두 번째는 오랫동안 기다리다 포기하고 이상형과 다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 이런 사람은 이상형의 기준으로 현실의 배우자를 평가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마지막은 지금 내 곁에 있는 배우자가 이상형과 다름을 인정하고 현실에 충실한 사람. 이런 사람은 배우자의 장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 19 -
4. 운명적인 사랑이 있을까?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은 있는 것 같아!
■ 집
우리는 도시라는 커다란 숲에 기생하는 작고 힘없는 동물이다.
해가 뜨면 밖으로 나가 먹이를 찾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뻔히 천적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이면 집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그 나약한 동물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이곳에서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위로한다.
집들의 창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따뜻하다.
■ 결혼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사랑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실이다.
결혼이 아니면 우리의 몸과 영혼은 돌아갈 곳이 없다.
■ 운명
“운명적인 사랑이 있을까?”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은 있는 것 같아!”
■ 들풀
왜 상처가 나기 전에 행복을 찾지 않는가?
사람은 칼날에 마음을 베인 후에야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들풀도 꽃을 피운다. 다만 우리가 살피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 마음속에는 나 자신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고 낯선 이도 있다.
그 중 누구를 떠올리느냐에 따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가 결정된다.
- 20 -
■ 3가지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는 깊은 인연이 필요하다.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사랑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 넓은 가슴이 필요하다.
■ 1가지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모든 사랑은 저마다 가야 할 길이 다르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만들어 간다.
사랑은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나만의 인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권태
권태란 누군가를 역겨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피곤해 하는 감정.
인생에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찾아오는 법이니,
사랑에도 즐거움이 지나고 위태로움이 지난다.
■ 고독
외롭다고 사랑을 시작하지 마라!
단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시작한다면,
정작 상처받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일 것이다.
■ 감옥
아무리 단단한 족쇄와 울타리라도 마음만 먹으면 깨부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우울의 그늘에 갇힌 사람은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괴롭히는 인생이다.
■ 현실
현실은 사랑을 담아낼 수 있지만
사랑은 모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간혹 사랑과 현실의 위치가 뒤바뀐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 21 -
■ 환상
사랑은 환상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현실이 된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손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고
그의 미소가 예전처럼 눈부시지 않다.
그 떨리던 사랑은 차츰차츰 하루하루 퇴색해 가고
우리는 그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괴물이 되어 간다.
사랑도 피어나고 시들어 떨어진다.
낙엽처럼, 꽃잎처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 동전
사랑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적이다.
눈물을 흘리다보면 기쁨이 찾아오고
기쁨에 겨워하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게 된다.
■ 검
사랑은 양날의 검.
한 쪽은 행복이고, 한 쪽은 고통인 양날의 검.
잘못 휘둘렀다간 마음에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검.
■ 인생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과 부딪치면서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 동안의 노력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닿을 수 없는 성공을 저 멀리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제자리걸음인 자신을 원망한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 청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청춘.
아직 세상사에 서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농락당하고 상처받기 쉽다.
- 22 -
그러나 남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더 큰 상처로 갚아 주려고 하면
자신의 상처만 더 깊어질 뿐.
화(火)의 화살은 어김없이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넘어진다면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
가슴이 아프다면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청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꿈꾸는 시간, 청춘.
진심을 다하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청춘.
■ 1/2
최고의 사랑은 두 사람이 각각 절반을 담당하는 것.
구속하지 않고, 귀찮게 하지 않고, 소유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특별한 의미를 캐내려 하지 않는 것.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삭막한 세상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
■ 상처
대부분의 상처는 완치되고 사라지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상처도 있다.
이미 상처가 생겼다면 시간이 흘러
고통이 사라지고 저절로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
상처가 난 직후에 잘못 만지면 덧나는 법이다.
■ 실패
사실 대부분의 사랑은 실패한다.
결혼에 골인하지 못해 헤어져야 하고,
결혼했으나 권태를 이기지 못해 도중하차하기도 한다.
사랑은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지만 결국 바다까지 흘러간다.
인생과 사랑은 단순히 성공과 실패 여부만 따져서는 안 된다.
■ 어린 시절 우리는
사랑이 진실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허세를 부렸고,
- 23 -
이성이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 간혹 거짓말을 했고,
상대를 위한 것이라며 포기하고 돌아섰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랑을 통해 선택과 포기를 반복하며 인생을 배워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 다시 사랑을 한다.
■ 사랑한 뒤로는
세상의 어떤 남자도 당신 같지 않아요.
세상의 어떤 여자도 당신 같지 않아요.
5. 고요한 인생은 외롭지 않다
■ 꿈
난 플라스틱 병이다. 여러 음료를 담아 봤다. 이런저런 다양한 맛을 경험했지만 늘 뭔가 부족하다.
난 사람들이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꿈이라는 건 내 안에 담길 수 없는 걸까? 도대체 꿈이란 건 어떤 맛일까?
난 또 빈병으로 버려졌다. 이번엔 또 어떤 운명으로 재활용될까? 그때 큰 비가 내렸다. 거센 바람이 불었다. 난 빗물에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다음 날 태양이 떠오르고 난 기분 좋게 태양을 쪼이며 몸을 말렸다. 상쾌한 기분으로 또 한 번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깨끗하고 좋은데!”
날 들어 올린 손은 햇볕처럼 따뜻했다. 그 손은 날 작은 집으로 데려가 깨끗한 물로 다시 헹군 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 위에는 나와 같은 플라스틱 병과 알루미늄 병이 아주 많았다. 난 그들 중에서 내가 단연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손은 책상위에서 펜을 들고 작은 천에 글씨를 써내려갔다. 난 나의 새로운 임무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그 손이 날 다시 들어올렸다. 방금 뭔가를 적은 천을 내 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다시 촛농으로 밀봉했다.
그 후 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커다란 포대에 담겼다. 그리고 누군가 포대를 메고 이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걸음을 멈추고 포대를 내려놓았다.
- 24 -
잠시 후 세상이 다시 밝아졌고 바람결에 바다 냄새가 실려왔다. 그 손이 병을 하나하나 꺼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됐을 때 난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너희들은 꿈이야. 자, 너희가 가야 할 그곳으로 가렴!”
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닷물로 떨어졌다. 처음엔 여러 동료들이 가까이 있었지만 큰 파도가 몇 번 지나간 후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남은 난 파도를 타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누군가의 꿈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난 열심히 파도를 따라 바람을 따라 앞으로 나갔다. 육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이 말한 ‘내가 가야 할 그곳’에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큰 파도에 내 몸이 공중으로 솟구쳐 암초 위로 떨어져 깨질 뻔 했고, 거대한 풍랑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뻔 했지만, 죽을 힘을 다해 수면 위로 몸을 내밀고 계속 전진했다.
때로는 아름다운 밤도 있었다. 날치 떼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갔고, 은은한 달빛이 수면 위에 부서져 내리면 난 포근한 누군가의 품에 안긴 것처럼 편안하게 잠들었다.
물론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일이 더 많았다. 이름 모를 큰 물고기 입속에 빨려 들어갔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난 생각했다. 내 안에 담긴 간절한 꿈을…….
수많은 날이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모두 이겨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힘껏 전진했다. 해안가에 가까워지자 파도가 잔잔해졌다. 그렇게 난 육지의 품에 안겼고, 안도감 에 잠이 들었다.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손이 나를 들어올렸다. 난 그 전에 경험했던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했다. 날 데려온 손은 밀봉을 제거하고 뚜껑을 열어 천을 꺼냈다. 그리고 소리쳤다.
“세상에! 이 병이 대서양을 건너왔어.”
이렇게 해서 난 대서양 해류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가 되었다. 동시에 아주 귀한 몸이 되었다. 난 대서양 건너편 나라의 박물관에 보내졌다.
- 25 -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발길을 멈춰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이게 세계 초초로 해류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병이래.”
난 이곳에서 기분 좋게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 내리막길
내리막길에서는 남과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남을 무시하지 말고, 잘난 척 하지도 마라. 내리막길에서 복수를 꿈꾸지 말고, 오르막길에서 사치하지 마라. 물질 때문에 기뻐하지 말고 자신 때문에 슬퍼하지 마라. 얻어도 기뻐하지 말고, 잃어도 눈물 흘리지 마라. 인생은 매 순간의 만남을 즐기는 여행이다.
■ 에스키모
에스키모는 전통적으로 하루를 일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 개념이 없다. 에스키모에게 나이를 물으면 그들은 한참 생각하다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의 전통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것이고,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난 하루를 살아요.”
그들은 잠자리에 들면 죽고, 다음날 아침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매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루를 일생처럼 사는 사람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도 바로 지금뿐이다.
■ 하느님
언젠가 머리카락을 요란하게 염색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뒤로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할머니도 보였다.
잠시 후 모두들 건널목을 건너기 시작했다. 신호등에 표시된 남은 시간이 10초대로 떨어지자 좌우에 늘어선 차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 26 -
때 할머니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터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던 귤들이 사방으로 굴러 떨어졌다.
“여기!” 먼저 발견한 아이가 친구들을 향해 소리치며 재빨리 귤을 줍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돌아서서 귤을 주웠다. 아이들은 재빨리 움직여 불과 1~2초 만에 일을 끝냈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아이들이, 그것도 알록달록하게 머리카락을 물들인 아이들이, 자기를 도와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터진 비닐봉지를 수습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손이 느리고 서툴기도 했지만 당황하고 다급해서 더 힘들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할머니에게서 비닐봉지를 빼앗아 야무진 손놀림으로 매듭을 짓고 그 안에 다시 귤을 담았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길을 건너자마자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하느님이 될 수 있다. 사랑을 담은 따뜻한 말 한 마디, 정다운 손길, 그것이 하느님의 방주이다.
■ 책임
미국인 심리학자가 중국 친구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친구의 두 살배기 아들이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아이 엄마가 달려왔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달래며 한 손으로 의자를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기, 울지 마. 엄마가 나쁜 의자 혼내줄 게. 너 왜 우리 아기를 넘어뜨렸니?”
미국인 심리학자의 눈에는 이 모습이 너무 우습고 이상해보였다. 잠시 후 아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넘어진 것은 의자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조심하지 않아서예요. 아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지 의자가 잘못한 게 아니죠. 어머니는 아이에게 그 점을 분명히 알려줘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돼요.”
사범대학을 마친 후 나는 대부분의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답답함이 가득했다.
- 27 -
대충 수업준비를 하고 대충 수업시간을 보냈다. 다른 선생님 수업을 참관하거나 동료 교사들과 특별히 교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몰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글을 인정해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난 세상을, 편집장들을 원망했다.
어느 날 난 친구에게 내 불운한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동정도 위로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한참 침묵하더니 진지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넌 왜 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
“지금까지 계속 내 얘기 했잖아.”
“내가 들은 건 전부 다른 사람의 잘못과 책임에 대한 것뿐인데? 넌 온통 불만과 원망뿐이야. 정작 너 자신은 네 인생을 위해 뭘 했어? 네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어?”
나도 한참을 침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위안과 도움을 얻고 싶어 한다. 또 누군가 거센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길 바란다. 물론 살다보면 이런 도움을 한 두 번은 받을 수 있겠지만, 늘 곁에서 당신을 지켜줄 사람은 없다.
만약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다면 당연할 것이다. 날 지킬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이다.
■ 행복
아들은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지적장애아 부모와 달리 아들을 장애시설에 보내거나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게 하지 않았다. 어딜 가나 꼭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는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며 아들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언젠가부터 아들은 그림의 매력에 푹 빠졌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본 것을 종이에 그렸는데 꽤 실력이 좋았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발견해 내는 실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아들은 어느 덧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증상에 효과가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 28 -
“수술이 성공할 경우 효과는 대단히 클 겁니다. 일상 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지금의 인지 능력까지 사라질 거예요.”
아버지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때 아들의 여동생이 말했다.
“오빠가 왜 그렇게 위험한 수술을 해야 해요? 지금 오빠는 아주 행복해요. 그렇지 않나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들의 치료법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 아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딸은 어릴 때부터 오빠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딸의 눈에는 오빠가 아주 행복해 보였던 것이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여동생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들의 그림 속에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주인공은 언제나 동생이었다.
■ 가족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단 둘이 살아가는 모자가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아들을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스님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아들아, 그게 어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이겠니? 만에 하나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 네 어미는 혼자 어떻게 사니?”
아들은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머니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저는 내일 떠나기로 결심 했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따라 나와 작은 간식 보따리를 건넸다.
“아들아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너라. 이 어미는 언제나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길을 떠난 아들은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높은 덕을 쌓아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한 고승을 찾아갔다.
“스님의 명망을 듣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불법의 가르침을 구합니다. 저는 하루 빨리 득도하여 스님과 같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부처인가, 신선인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그렇
- 29 -
게 큰 존경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인간 세상의 부처, 인간 세상의 신선이란 말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겠느냐? 불법을 구할 때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향에서 지낸 20년 동안 스님처럼 덕이 높은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대의 수행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무슨 뜻입니까?”
아들은 고승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대가 진정 인간 세상의 부처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야.”
“스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 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부터 자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그동안 묵었던 곳의 문을 두드리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나와 그대를 맞이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인간 세상이 부처라네. 그곳이 그대의 영혼이 쉬어갈 곳이라네.”
아들은 고승에게 감사 인사 올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온 길을 되짚었다. 그러나 고승이 말한 부처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 곧 고향집에 도착할 텐데…….’
피곤에 지친 아들은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사실 아들은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었다.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서성였다.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누구요? 아들? 우리 아들이니?”
곧이어 불이 켜지고 후다닥 뛰어 오는 소리.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다급하게 뛰어나오는 사람, 바로 어머니였다.
“힘들었지? 이제 편히 쉬렴.”
■ 관용
아주 먼 옛날 인도 갠지스 강변에 보리수 두 그루가 있었다. 매년 석가모니
- 30 -
탄생일이 되면 저절로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빈 가지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맺힌다. 마치 나무가 눈물을 흘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보리수 아래에서 밤새도록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꽃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경전을 읊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보리수 가지에 새 잎이 돋았고, 나무는 순식간에 며칠 전보다 더 푸르고 풍성해졌다.
당시 인도를 지배한 아소카 왕(Ashoka. 고대 인도 마우리아 왕조 3대왕)은 불법을 믿지 않는 폭군이었다. 그는 전국에 있는 석가모니 유적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갠지스 강변의 보리수 두 그루는 첫 번째 목표물이 됐다. 아소카 왕은 신하들과 장수들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보리수 앞에 도착해 나무를 베라고 지시했다.
이 보리수가 아무리 굵고 크더라도 수많은 병사의 도끼질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보리수를 베어낸 후 아소카 왕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신하들과 함께 밤늦도록 춤과 노래를 즐겼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아소카 왕은 눈을 뜨자마자 반듯하게 베인 그루터기 위에 잎이 풍성한 보리수 두 그루가 새로 자라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소카 왕은 다시 장수와 병사들을 이끌고 새로 자란 보리수 두 그루를 베러갔다. 이번에는 베어낸 나무통과 나뭇가지, 뿌리를 죄다 쌓아 놓고 태워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잿더미 속에서 보리수 두 그루가 다시 자라났다. 이 신비로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과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아소카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소카 왕은 그동안 오만방자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참회했다. 이후 아소카 왕은 성실하게 석가모니를 공양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이름난 고승을 초청해 보리수 아래에서 불법을 강의하도록 하고, 불도를 널리 알리는데 앞장섰다.
그러던 어느 날 아소카 왕에게 적의를 품은 간신이 한밤중에 보리수 두 그루를 다시 베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리수가 자라나지 않았다 아소카 왕은 심장이 찢어질 듯 괴로웠다. 그러나 이미 깊은 불심을 가진 아소카 왕은 간신을 벌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고승들과 함께 보리수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열심히 불공을 드렸다. 그는 자신의 진심이 부처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 31 -
아소카 왕의 정성은 결국 부처를 감동시켰고,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돋아났다. 해질 무렵엔 예전처럼 잎이 풍성하고 튼튼한 보리수 두 그루가 그곳에 서 있었다. 간신은 아소카 왕의 너그러움에 감동했고 충직한 신하가 되었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추궁하기보다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하자. 관용은 타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마음이자 기회이다.
■ 가비지 타임
농구, 야구, 배구와 같은 구기 종목에서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승패가 결정 난 경우가 있다. 이기고 있는 팀과 지고 있는 팀 모두 더 이상 승패가 뒤집힐 여지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이때부터 남은 경기는 가비지 타임(GarbageTime. 미국 프로농구에서 유래한 용어로 주전 선수를 빼고 후보 선수를 투입해 경기를 진행하는 시간대)에 들어간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껴 다음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후보 선수나 신인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다. 감독들도 옥석을 가리기 위해 테스트하며 선수들의 기량을 살핀다.
승패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관중들이 흥미를 잃은 이 시간, 관중석은 하나 둘씩 비어가지만 모처럼 기회를 얻은 선수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만약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가비지, 즉 쓰레기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선수라면, 그는 앞으로 출전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 스타플레이어로 불리는 선수 중 상당수가 가비지 타임을 통해 성장했다. 축구황제 펠레와 마라도나, 지금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축구 천재 메시, NBA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등등. 이들은 환호가 사라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 재능을 발휘했고, 결국 팀의 간판선수로,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어쩌면 젊음이란 가비지 타임 일지도 모른다. 홀로 분투하는 시간, 그 시간을 견디는 힘이 내일을 결정한다.
■ 무지개
한 젊은이가 출근을 하면서 매일 같은 길을 지나는데, 그 길에는 항상 같은
- 32 -
자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낡은 집 처마 아래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젊은이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다. 옷은 다 낡았고,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리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제가 매일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 어르신을 뵈었는데요, 항상 즐거워 보이세요.”
“난 매일 무지개를 보고 있거든.”
“무지개요? 매일이요?”
젊은이는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젊은이의 표정을 읽은 할아버지가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무지개가 없는 날은 없어, 하지만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눈은 볼 수 없지. 눈물을 흘려본 사람의 눈에는 매일 무지개가 뜬다네.”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단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무언가를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지금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고통과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기쁨과 행복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인생의 무지개는 매일 떠오른다. 눈물로 씻어낸 맑은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볼 수 있을 뿐이다.
■ 젊음
문득 나도 더 이산 젊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슬프고 쓸쓸하다. 하지만 이 순간은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인생의 관문, 인생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지만, 그 중간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오늘은 언제나 내일보다 젊다.
■ 욕망
아주 먼 옛날, 한 고승이 제자들에게 ‘욕망’에 대해 강론을 펼쳤는데. 제자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승은 특별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절 앞 공터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고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는 사람에게 이 땅을 주겠음”이라는 팻말을 세웠다.
얼마 뒤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이곳을 지나다가 팻말을 발견했다.
- 33 -
‘땅 주인은 어차피 이 땅을 누군가에게 줄 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가져야지. 난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으니, 땅 주인이 말한 조건에도 딱 맞잖아.’
부자는 절 안으로 들어가 땅을 달라고 말했다. 고승은 부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에 정말 100% 만족합니까?”
“물론이죠. 난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졌어요.”
부자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모든 걸 다 가졌고 100% 만족하는데 이 땅이 왜 필요합니까?”
부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자가 나간 후 고승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욕망이다. 이제 알겠느냐?”
제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2014. 5. 12. 끝
- 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