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2)

2014. 6. 9. 10:14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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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2)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

■ 김형경 지음

제3부 남자의 위험한 감정

◉ 남자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

■ 남자의 자존심

보살핌에 대한 무의식적 욕구는 남녀에게 모두 치명적인 취약점이다. 이십대나 삼십대 후배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 할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그들의 의존성이다. 그녀들은 자기뿐 아니라 자기 인생까지 짊어지고 가줄 짐꾼 배우자를 원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짐꾼이 능력 있고, 잘생기고, 인간성마저 좋기를 바라며, 그토록 드문 인간이 헌신적으로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그녀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실은 남자들이 더 의존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남자들은 식사, 옷차림, 정서적 지원, 자녀 양육의 문제를 어머니나 아내에게 의존한다. 아이를 출산, 양육하는 종족 보존의 문제도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려 있다. 남자는 여자에 의해서만 보살핌을 받고, 남자다움을 확인 받는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받는 것들 때문에 여자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런 문제들 때문에 여자에게 의존하는 일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지 않거나 논쟁하는 일, 돈이나 여자 문제를 꼬치꼬치 캐묻는 일, 제때에 식사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오해한 경우, 여자가 섹스를 거부할 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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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항목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남자들이 여자에게 폭력적이 되는 것은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여자가 돌봐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좌절당했을 때 남자들은 폭력을 휘두른다.

■ 마리아와 아기

중세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이탈리아 도시들을 여행할 때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예술작품이 있었다. ‘마리아와 아기’라는 제목의 조각이나 회화 작품이었다.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 작품은 우선 수가 많아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 작품들에서 내가 받는 특별한 느낌 때문에 자주 맞닥뜨린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리아와 아기’라는 예술 작품은 성(聖)스럽거나 포근한 감성을 표현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실제로는 그런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어떤 작품에서는 성(性)스럽거나 외설적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다. 어떤 아기는 풍만하게 드러난 마리아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있었고, 어떤 아기는 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성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해서, 혹은 내게 성적 억압이 있어서 멀쩡한 작품들이 왜곡되어 보이는가 싶었다. 그렇게 양보한다 해도 ‘마리아와 아기’가 그토록 다양한 형태로 형상화 되어 있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우리가 왜 그토록 의존적인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다. 인간은 포유류 중 부모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시간이 가장 긴 동물이다. 성장기 내내 부모에게 잘 의존하는 법을 주요 생존법으로 익힌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기시절 엄마와 함께 경험한 최초의 황홀한 공생 경험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그 시기가 안정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했을수록 의존성은 깊어진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속담처럼,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끼는 자식은 심리적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한다. 늙어서까지 부모 곁을 서성이면서, 지극히 효도하면서, 그때라도 못 받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사랑해서 키운 자식은 불효자가 된다’는 항간의 속설처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식은 씩씩하게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삶을 성취해 나간다. 그런 이들은 엄마에게 못 받은 것을 아내에게 기대하면서 폭력적으로 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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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남자들은 이제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내도, 애첩도, 심지어 진짜 어머니까지 그들의 심리적 엄마 노릇을 해주며 원하는 것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돈 받고 그런 써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시설만이 남았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야 한다지만 서글프고 딱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도, 답도 여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남자가 만들었을 것이다. 예전에 일본 여성들은 이상적인 남자 조건으로 ‘3고’를 꼽았다. 고신장, 고수입, 고학력이었다. 최근에는 이상적인 남성 조건이 ‘3C’로 바뀌었다. 편안한(comfortable), 소통이 잘 되는(communicative), 협력적인(cooperative) 남자라는 뜻이다.

1960년대에 등장한 페미니즘(feminism 남녀평등, 남녀 동권주의)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매사에 동등하고 자립적이기는 바란다. 미국 여자들은 남자가 보호자 역할을 하려고 하면 불쾌감을 느끼며 자기를 통제하려 한다고 여긴다. 그녀들은 ‘남자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을 삶의 중요한 모토로 삼는다. 하지만 유럽 여자들은 지금도 남자가 기사처럼 행동하면서 귀부인처럼 대접해주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 실내에 들어갈 때는 문을 열어주고, 식당에서는 의자를 빼주고, 코트를 벗으면 받아주는 것을 에티켓이라 여긴다.

짧은 기간에 급속히 변화한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더욱 복잡해 보인다. 일본 여성이 요구하는 편안하고 잘 소통되는 남자, 유럽 여자들이 원하는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남자. 미국 여자들이 원하는 동등하게 존중해 주는 남자를 모두 원하는 것 같다. 어떤 여자는 ‘나를 재미있게 해주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고, 어떤 여자는 명품 가방을 원한다. 그러니 한국 남자들의 입장은 더욱 딱하고 서글퍼 보인다.

◉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들

■ 남자의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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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초반의 여성 화가가 작업에 편리한 환경을 찾아 서울 근교 농가 주택으로 이사했다. 씽글이었던 그녀는 집을 손보고 이사하는 과정에서 마을 이장과 만나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더러 있었다. 텃세가 심하다는 시골 마을에 적응해 살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공손하게 처신하며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다.

- 마을 이장이라는 중년 남자, 일거리를 만들어 매일 찾아옴

- 처음에는 음식 대접을 하며 친절히 맞이함

- 어느 때 부턴가 저녁에도 찾아오고……

- 그는 짐을 꾸려 다시 서울로 떠났다.

그녀는 프리랜서 작가였다. 직업 특성상 국내나 국외로 여행하는 일이 잦았다. 그녀가 집을 비우는 동안 우편물을 관리하고 잡무를 처리하는 일을 아파트 경비실이 부탁해야 했다. 그런 일을 부탁할 때면 상냥하게 웃으며 청을 넣었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감사의 뜻을 담아 간단한 선물을 건네곤 했다. 어느날 부터 경비실 근무자 중 한 사람이 자주 그녀의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 그는 거의 매일 일거리를 만들어 그녀의 아파트 벨을 눌렀다.

- 그의 눈길은 늘 그녀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고

- 결국 그녀는 그가 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도 모르는 척 무시했다. 그는 서서히 그 행동을 중단했다.

“웨이트리스는 당신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다.”

이 문장은 미국 저널리스트 로저 로젠블랫의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 소개된 오십여가지 삶의 지침 중 하나다. 저 표제를 만났을 때 의아했던 점은, 그것이 표나게 내세울 만큼 보편적인 남자들의 행태일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저 제목 밑으로는 남자들이 웨이트리스가 웃기만 해도 자기를 좋아한다고 착각하여, 주문을 받은 후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와 사랑의 도피행을 꿈꾼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까페나 식당에 가면 남자 손님들은 주문받으러 온 여종업원의 낯빛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남자들이 그토록 유혹에 약한 이유는 그들이 치명적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남자의 나르시시즘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여자보다 더 큰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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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진 첫 번째 성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어떤 남자도 우리 사회의 두 번째 성인 여자보다는 우월하다고 느낀다. 여성 나르시시트 중에는 자신이 두 번째 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남성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들이 첫 번째 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이들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찬양하고 특별하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다.

■ 남자를 유혹하는 쉬운 방법

이십대 후반 시절, 동년배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선배가 연애 특강을 펼친 적이 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재로 ‘세 번의 시선’을 언급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멀리서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쪽에서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어김없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때 수줍은 듯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잠시 후 다시 그를 바라보며 아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게 세 차례만 남자의 시선을 끌어당기면 그가 다가와 말을 건넬 것이다.

학습 내용을 실습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정도 싸인만으로도 남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야 그녀가 욕망하는 시선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생활에 응용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것이 시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그보다 조금 나중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삼십대 초반 여성들이 주제로 삼는 이야기 가운데 ‘방청객 마인드’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무슨 이유를 대든 차나 밥 먹는 자리를 마련해. 일단 남자랑 마주 앉으면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최고라는 느낌이 들게 해줘.” 즉 방청객이 스타를 대하는 것과 같은 리액션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웨슬러의 ‘내 남자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기대하는 사랑의 표정은 남성 심리에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것 중 하나다. 남자들은 사랑의 표정을 갈망한다. 이 표정은 남자들이 자신을 소중하고, 가치있으며, 명예롭고, 필요한 존재이며, 스마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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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또한 섹시하다고 인식하게 하는 강력한 거울 역할을 한다.”

남자들이 그토록 떠받들어주기를 원하는 이유도 그들의 나르시시즘과 관련있다. 남자들은 자기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어야만 힘이 난다.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남아 선호 문화와도 관계가 깊다. 태어나면서부터 특별 대접을 받으며 양육되는 남자 아이들은 자기가 특별하다는 인식이 정체성의 핵심요소가 된다. 장남이거나 외아들이면 그런 인식이 더욱 강화되고, 학창 시절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나르시시즘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다. 사회적 성취까지 이룬다면 나르시시즘은 구제불능 수준에 이르러,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과장된 수사법이다.

후배 여성들이 선정한 ‘남자들이 원하는 것 베스트 7’이다. 남자와 데이트할 때 이런 요소만 충족시켜 주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이다.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것,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것,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 감탄하고 찬탄하는 것, 그의 제안에 묵묵히 따르는 것, 그가 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저런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그녀들은 자신들이 남자들에게 바로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남자들이 그녀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그녀들 역시 남자에게 터무니없는 것을 기대해왔고, 말도 안 되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불평 분노했음을 깨달았다.

■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남자들

남자들이 심리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먼저 자기 내면을 보기 두려워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치명적인 이유는 자신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늘, 반드시, 기필코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자신이 옳고 정당하다고 믿는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인류의 역사와 뿌리를 같이한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원죄를 범할 때도 사악한 이브의 유혹에 넘어갔을 뿐이지 자기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자의 심리를 주제로 다루는 책을 읽을 때 자주 의문에 빠졌던 대목이 있다. 왜 남자들은 항상 ‘배 째라!’는 식인가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원래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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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이다’라는 식의 내용을 나열해두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남자는 원래 자기보다 강한 여자를 싫어하니, 남자를 떠나보내지 않으려면 그 앞에서 힘을 자랑하지 말라.”

“남자는 원래 철이 안 드는 종족이니 영원히 아들 보살피듯 그들을 보살펴라.”

“당신의 남편 혹은 남자 친구는 인생에서 넘버원으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남자가 혼자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그 부분을 집요하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내가 느끼기에 저 말투는 중세 영주가 집안 노비들에게 내리는 지침처럼 들린다. 사실 오래도록 남자는 저런 지위에서 거기에 맞는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옳고 선하고 우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그들에게 맞추어야만 살 수 있었던 여자들은 그런 감정을 부추기고 강화시켰을 것이다.

“대단히 사려 깊고 용기 있는 남자만이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 문장은 쓸쓸하다. 여자로서, 우리가 어울려 사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저렇다는 사실은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저 문장은 명백히 진실일 것이다. 나 역시 생을 통틀어 자기 내면을 토로하면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남자를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 세대를 넘어 흘러가는 용암

■ 남자의 불안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고등학교 과학 선생님이셨다. 아버지는 성장기의 자녀에게 시계나 라디오를 분해해 보여주셨고, 과학실 현미경 사용법을 알려 주셨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과학 지식을 전수해주셨다. 그런 지식을 말씀하실 때 아버지는 자신감이 있었고,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애로움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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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일기장’ 첫 페이지부터 외롭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아니, 페이지마다 ‘외롭다’는 단어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울먹이고 있었고 어떤 때는 무서워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슬프다고……마음이 훤하게 비었다고도 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는 왜 그동안 우리에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도 울 수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아버지도 무언가 부족하고, 무섬을 타며, 울고 싶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홀로 울어야 했고, 가슴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기장에 ‘사람에게는 왜 날개가 없나. 날개가 있다면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프고 외롭고 허전하고 무서웠을까요?

신달자 선생님의 에세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의 한 대목이다. 선생님은 이 글 바로 앞 대목에서 아버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던 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돈도 많고 건강하고 잘생기고 멋있었다. 공장 일꾼들은 늘 아버지에게 복종했고, 안주머니에는 돈이 가득 있어서 언제든 척척 돈을 꺼내 주셨다. 딸은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남자라고 이상화해 두고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고 충격 받았다.

“아버지가 그렇게 약한 남자라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큰소리치고, 당당했으며 적군이라도 쳐부술 남자였으니까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 아버지가 일기를 쓰셨다면 아마도 저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내 아버지는 신달자 선생님의 아버님처럼 겉으로 큰소리치지도 않으셨다. 가끔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노래 부를 때를 제외하고 아버지가 우리에게 고함친 기억도 없는 것을 보면 아버지는 겉으로도 그렇게 강한 척한 적은 없는 것 같다.

헤르만 에만의 ‘남자를 두렵게 하는 것들’은 남자가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독일 전역에서 실시한 광범위한 현장조사와 방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했다. 그는 남자들의 두려움이 한결 세밀하고 훨씬 강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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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한 권에 걸쳐 사정없이 남자들의 두려움을 파헤친다. 남자답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성적 능력과 성적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 여성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두려움, 권위에 복종하면서 자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질병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 신과 악마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는 남자들이 이 책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그 역시 동료 남성의 저항이 염려되었던 모양이다.

위와 같이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불안 외에도 우리사회에만 만연한 특별한 두려움이 있다. 1930년대 한국문학을 통해 여성의 삶을 연구하는 문학평론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는, 식민지 시대 남편 살해율이 세계 최고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그렇다면 남편들이 아내에게 가한 폭력은 그것을 훨씬 능가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것은 남편의 폭력을 참고 참다가, 혹은 자식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식민지 사회에서 남자들이 느꼈을 불안, 분노, 좌절감 등이 극단까지 차올라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스스로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을 수시로 아내를 향해 표출했을 것이다.

전철에 앉아 피곤한 기색으로 졸고 있는 청년의 다리를 발끝으로 툭툭 차면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노인을 볼 때, 이제는 그들을 이해할 것 같다.

그들은 불행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 관대함이 없다는 것을, 내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 분노, 결핍감만 가득하리라는 것을.

■ 불안의 대물림

전쟁 세대 부모를 둔 자녀들은 지금 대체로 삼십대에서 사십대 사이에 걸쳐 있다. 함께 독서 모임을 하는 여성 중에는 전쟁 세대 부모를 둔 이들이 유독 많다. 그들을 통해 전해 듣는 전쟁 세대 부모들의 부적절한 양육 방식은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 물리적인 폭력이 단연 으뜸이다. 몽둥이나 주먹으로 때리는 행위뿐 아니라 겨울밤에 아이를 발가벗겨 내쫓는 경우도 있다. 돈을 감추어 두고 자녀에게 학비를 대주지 않은 인색한 아버지, 늙어 의지할 장남만 소중히 여기고 나머지 자식들은 ‘찌끄러기’라 부르며 박해한 아버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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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들은 내면의 불안과 접촉하지도, 인식하지도 않은 채 그것을 모두 자식에게 쏟아낸다. 그들은 자기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건네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도 받은 게 없기 때문에 자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고,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자녀에게 어떻게 위로의 손길을 보내야 하는지 모른다. 그들 세대가 지금 무력감과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삼십대, 사십대를 만들었고, 그들의 자녀가 지금 등교를 거부하는 15만 청소년이 되어 있다.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청년실업 100만 이라는 현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않은 그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을 불안하고 자기파괴적으로 만든 부모의 문제이며, 그 해결의 열쇠 역시 부모의 태도변화에 달려 있다. 텔레비전에서 부모의 양육방식과 자녀의 심리 형성에 대해 설명해주는 텔레비전프로그램을 본 후 한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때는 몰라서 그랬다. 미안하다. 너희는 이제 알았으니 너희 자식들은 잘 키우도록 해라.”

그 말을 전하는 딸은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태도는 좀 달랐다.

“이제 와서 다 지난 얘기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거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또 어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고생해서 키워놨더니, 이제 별 이상한 소리를 다한다.” “왜 우리나라만 심리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냐? 다른 나라는 그런 얘기가 없지 않냐?” 그런 아버지들은 여전히 불안해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질 줄도 모른다.

■ 폭력이 자살을 낳는다

거세불안을 넘어서지 못한 남자들은 권위자를 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상사가 말만 걸어와도 긴장하고, 상사에게 보고할 사안이 있어 그에게 다가갈 때도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남자들의 내면에는 가학적이고 난폭한 아버지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희화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하면, 남자들은 그런 일들 앞에서 ‘고추가 떨어질지도 모르는’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들의 분리불안을 넘어서게 하기 위해 숨바꼭질 놀이가 고안되었다면, 거세불안을 넘어서게 하기 위해 예전에 할머니들은 그렇게도 사내아이만 보면 ‘고추 따먹자’고 덤볐던 것 같다. 후루룩 쩝쩝 맛나게도 고추를 따먹던 할머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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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면 그 앞에 서 있던 꼬마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짐작해보게 된다.

자살에 대해 이십년 동안 연구한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자살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요소가 일치할 때 자살을 감행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결여, 주변 사람에 대한 부채감, 폭력에 대한 내성, 세 조건 중 한 가지만 충족되지 않아도 자살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그것은 어디선가 불안하고 폭력적인 부모세대가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패면, 그 아들은 돌아서서 동생을 패거나 밖에 나가서 후배들을 팬다. 그것도 못하는 아이는 자기 자신을 죽인다. 육체에 폭력의 경험이 전혀 없다면 그 어린 청소년들이 자기 몸에 대해 그토록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소견이지만, 우리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황금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 세대가 먼저 달라지는 것이다. 부모 세대가 자신의 불안 분노를 더 이상 자녀에게 집어 던지지 않는 일이다. 자녀를 끌고 가서 상담실에 밀어 넣을 게 아니라 부모가 먼저 상담실을 방문해서 자기 내면의 불안과 분노를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 남자는 두려운 대상을 비난한다

■ 남자의 방어기제

‘외면일기’는 프랑스 작가 미셸 뚜르니에의 산문집이다. 작가는 오랜 기간 시골 마을에 살면서 여기저기를 오가고, 변화하는 하늘의 모습을 눈여겨 관찰하고,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면서 메모, 삽화 등을 기록해 두었다가 책으로 출간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밖에서 마주친 사물들, 동물들, 사람들이 내게는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보다 항상 더 흥미롭게 여겨졌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말이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령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창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이와 찬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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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혼자 슬그머니 웃었다. 자기 내면을 보지 않으려 하는 남자들의 속성을 저토록 극명하게 표현한 문장을 만나다니, 미셸 뚜르니에의 표현대로 경이와 찬미가 나오려 했다.

남자들은 자기 내면의 불안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감정 전체를 콘크리트로 밀봉해놓고 지낸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수록 성숙한 사회인이라 생각한다. 어쩌다 감정을 표현하면 그것을 나약함이라 인식하거나 심지어 패배감으로 느끼기도 한다. 미셸 뚜르니에의 책 서문에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을 ‘징징거리는 행위’라고 서술하고 있다.

■ 밖으로 집어던진 감정

저스틴 A. 프랭크의 ‘부시의 정신분석’을 읽어보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불안한 인물의 대표 격으로 보인다. 그는 불안감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알코올, 약물, 종교 등에 차례로 매달린다. 그는 아내가 곁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 아버지의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에 이틀 이상 부인 로라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거부했을 정도였다.

조지 부시는 자기 내면의 공포를 외부 탓으로 돌리기 위해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낸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시민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입한다. 겁이 난다는 사실을 겁내고, 또 겁이 난 것처럼 남에게 보이는 것을 겁낸다. 저자는 부시가 미국인 중에서 가장 겁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일 거라 말하면서 그를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싸디스트’라고 정의한다.

미국을 전쟁으로 몰고 가기 한참 전부터 조지 부시는 파괴욕을 드러냈다. 어릴 때 부시는 개구리들의 몸속에 폭죽을 쑤셔박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몸통을 박살냈다. 예일대 재학 시절 비밀 동아리 회장으로 있을 때 신입회원들에게 불에 달군 철사로 낙인을 찍었다. 텍사스 주 주지사 시절에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사형수들의 처형을 지켜보았다.

미셸 뚜르니에처럼 승화적으로 내면 감정을 표현하는 길을 찾지 못한 많은 남성들은 대체로 조지 부시처럼 자기감정을 처리한다. 내면 감정과 접촉하지도, 그것을 인식하지도 않은 채 통째로 외부로 집어던지는 것이다. 투사는 남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어 기제이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보는 대신 늘 가족, 회사, 국가, 민족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내면에 억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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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 것이 타인에게서 보일 때 가차없이 그들을 공격한다. 약하거나 슬픈 모습을 보이는 이를 경멸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 냉혹하게 비난한다.

헤르만 에만은 남자들의 불안감을 연구한 책 ‘남자를 두렵게 하는 것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성들은 흔히 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헐뜯는다. 혹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양 기독교 역사 전체가 그런 예들로 가득 차 있다.

- 우구스티누스 : 여자 너는 순수한 우연의 산물, 창조주의 실수다.

- 토마스 폰 아퀴나스 : 여자는 부차적이고 우연한 존재

- 고위 성직자인 테르톨리아누스 : 여자여, 너는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다.

- 중세에 벌어진 마녀사냥은 또 어땠는가? 그처럼 끔찍한 만행을 불러일으킨 유발인자는 바로 남성들의 두려움이었다.

그 책에는 또한 1902년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여자란 반드시 열쇠를 채워 보관해야 할 소유물이자, 시중을 드는 용도로 창조된 존재이자 예속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에 이를 수 있는 존재이다. 남자들이여, 여자를 찾아갈 때면 채찍을 가져가는 것을 잊지 말라!

니체는 여성 혐오주의자였다고 한다.

물론 여자들도 불안하고 방어적이다. 내면의 불안과 닿지 않기 위해 쇼핑하고, 수다 떨고, 폭식한다. 내면의 불안을 억압하는 어떤 여자들은 주변에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 듯 살아가고, 어떤 여자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 소극적 공격을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여성들이 보이는 방어적 태도에 대해 2백 퍼센트 공감하는 쪽이다. 여성들과 속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버지, 오빠, 남편뿐 아니라 연장자나 동년배 남상들에게 받은 피해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유아기 경험이어서 무의식이 되어 있기도 하고, 바로 전날 경험이어서 생생하게 피가 흐르기도 한다.

남자든 여자든,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욕하는 대신 ‘그 일은 내가 잘못했다’ 고 말할 수 있으면 그는 발전할 것이다. 아내를 비난하는 대신 ‘내가 아내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다’고 인정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화를 내는 대신 ‘내가 아이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구나’ 인정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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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을 모르는 남자

부부 싸움은 대체로 남편의 말투에서 비롯된다. 아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 남편들은 언제나 심판관의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당신이 잘못했구먼.” 아내는 그저 일과를 이야기할 뿐인데 남편은 판관으로 해법을 제시한다. “다음부터는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아내가 재미있는 일을 해도 남편은 그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심지어 자기가 아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때로는 아내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듯 반문한다. “정말이야?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아내들은 저런 말투를 가진 남편들과 맞추어 살기 위해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실상을 얘기해봐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감정을 표현하면 오히려 화를 내고, 자기가 옳다는 완고한 입장에서 같은 주장만 되풀이 할 테니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내보낸다.

묵묵히 참고 사는 게 가정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라 믿는다. 하지만 몇몇 다혈질인 아내들이 입을 다물지 않아 평범하게 시작된 대화가 커다란 부부 싸움으로 번진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갈등 많은 부부에게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는 장면을 본 일이 있다. 강사는 남편들에게 아내와 대화할 때 사용할 언어를 알려주면서 따라 하라고 지시했다. 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됐어?”

강사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은 뉘앙스까지 설명하면서 아내가 어떤 말을 하든 남편은 저 대사를 말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오래도록 나 역시 저런 말투를 사용하는 남자 앞에서 입 다물고 조용히 들어주는 생존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점점 인내심이 부족해지는지 저런 말을 듣고 있기 어려워진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우위에 선 듯 지시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남의 인생에 충고하는 이를 만나면 속이 불편하다. 최근에는 진짜 실수를 범한 일도 있다.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계속 내 말에 대해 판단하고 해석하는 내용의 말을 건네는 선배에게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진화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방어적이라고 한다. 남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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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유전자 속에는 항상 주위 사방을 경계하는 특성이 만들어져 있다. 남녀가 함께 호텔에 들어갔을 때 판이하게 다른 두 성의 반응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여자는 욕실을 점검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탄력을 느끼며 실내의 안락함에 심취한다. 남자는 복도의 비상구를 확인하고, 객실 창을 열어 바깥을 살피며 퇴로를 생각하고, 산책을 나가면 호텔 주변을 한바퀴 돌며 사위를 경계한다.

그들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늘 방어 상태에 있는 듯하다.

◉ 눈알이 빨간 괴물

■ 남자의 질투

앞서 언급한 ‘여자에게’라는 책에는 ‘아내가 직업을 가진 후에’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유대교 랍비가 쓴 글이다. 그는 자녀들이 모두 대학생이 된 후 아내에게 직업을 갖도록 권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내의 재능을 살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는 아내가 이십 이년 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왔음을 알고 있었다. 수천 번에 이르는 쇼핑과 요리를 하고, 수백만 마일에 이르는 지동차 운전을 하고, 늘 가정을 지켰다. 남편의 직업상 필요한 사교 모임에서는 항상 웃는 얼굴로 옆자리에 있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아내가 능력을 펼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증권회사 딜러로 일하기 시작한 후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세상을 만났다. 그것은 단지 슈퍼마켓, 세탁소, 은행 등에 직접 들러야 하는 생활의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불안과 의심, 또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동반한 질투나 분노의 감정”이 자주 내면에서 올라왔다. 그것이 고스란히 얼굴에 나타나 아내의 말을 듣기가 어려웠다.

“오늘은 말이죠. 직장 동료인 톰하고 조지, 스티브와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아주 훌륭한 식당에 갔죠. 그 자리에서 조지가 말이죠. 우리가 함께 일하면 멋진 팀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

그는 아내가 이야기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온통 남자들 이름뿐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내 인생에 새로 나타난 남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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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는 자신의 의구심과 불안을 웃음으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이 여행이나 회의, 강연 등으로 낯선 도시를 방문해 호텔 방에 혼자 있을 때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 궁금했을까? 일시적으로 마음을 흔드는 의심에 시달렸을까. 그는 불과 한 달도 그런 의혹과 불안에 견딜 수 없는데 어떻게 아내는 그토록 오래 참아왔을까 싶었다.

그는 일일이 입 밖에 내어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아내가 자기 요청보다 상사의 명령을 우선 처리할 때 가슴에 추가 얹히는 듯했다. 아내가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갈 때마다 절망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이 글의 필자는 점잖게 얘기하지만 실제로 주변 여성들 삶 속에서 만나는 남편의 질투는 일상적이다.

■ 의심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한다

남자의 질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격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오셀로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는 그가 가장 불행한 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의 불행감이 작품에 배어 있는 까닭인지 그 인물 오셀로는 불안과 의심으로 인해 극단까지 고통을 받는다.

오셀로는 전쟁에서 무수히 공을 세운 흑인 장군이다. 베니스 공국 원로원 의원인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모험담을 듣고 그를 동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 데스데모나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관습에 어긋나는 결혼 거행

- 데스데모나는 훗날 출전하는 오셀로를 따라나섬

- 오셀로의 기수 이아고는 부관자리를 카시오에게 빼앗기고 승진에서 제외되자 복수 결심

- 여러 가지 음모로 오셀로는 그의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되고 그의 이성은 휘몰아치는 망상에 의해 마비되어 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깊이 사랑하지만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의심하면서도 열렬히 사랑한다.”

그렇게 탄식하면서 그는 계속 미쳐가고, 감정 조절능력을 상실한다. 마침내 그는 침실에서 아내의 목을 조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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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성욕이 약해질수록 남자들은 더 많이 의심하고 질투한다. 폭력 남편을 피해 쉼터로 피신한 여성들은 예외 없이 남편의 질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질투는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중요한 이유이며, 아내 살해의 주요 동기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이별을 통보하면 그 행위를 즉각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별에 따르는 각종 폭력 행위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그녀를 소유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담긴 행동이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은 친밀한 상대의 손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낯선 사람에게 살해당할 위험보다 세배나 높다고 한다. 배우자에 의한 살해는 아홉배라고 한다.

물론 남자만 질투하고 스토킹하는 것은 아니다.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위험한 정사’는 여성의 질투, 집착, 스토킹, 복수가 절정으로 어우러진 영화이다. 성공한 변호사 댄은 출판사 부편집장 알렉스를 만나 하룻밤 열정적인 외도를 경험한다.

그의 행위는 처음부터 가벼운 외도였지만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사랑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집착하자 그는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그녀와 헤어지려 한다. 그때부터 알렉스의 스토킹과 북수가 시작된다.

* 스토킹 : 상대방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의적으로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여자들은 성적 자율성이 침해당할 때 분노하거나 좌절한다. 남편이 원치 않는 섹스를 강요할 때, 성적으로 놀림당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껴질 때 상대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남편들은 아내가 성적 요구를 거절할 때 더 많이 화를 낸다. 늘 바깥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다주며 그토록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럴 때 남편들의 분노에는 아내가 자기에게 주지 않은 성적관계를 다른 남자에게는 허용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질투도 포함되어 있다.

◉ 남자가 숨겨둔 마지막 진실

■ 남자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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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거짓말은 그가 사용하는 방어기제이다. 남자들은 상대방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연인을 두고 다른 여성을 만날 때, 아내가 싫

어하는 지인과 등산이나 골프를 하러 갈 때 남자들은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면 연인은 떠나겠다고 협박할 것이고, 아내는 폭풍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 싸우거나 도망치거나(fight or flight)'는 경쟁을 기본 원칙으로 살아가는 남자들이 중요하게 사용하는 생존법이다. 딱 봐서 상대가 만만해 보이면 한판 붙고, 게임이 안 된다 싶으면 재빨리 도망쳤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 유전자는 그 방식을 최고의 생존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21세기에도 ‘파이트 오어 플라이트’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모든 상황에서 사용하는 생존법으로 보인다. 아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남편들은 신속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플라이트’ 기법을 사용한다. 가끔 남편들은 아내의 잔소리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파이트’하게 대응하게 될까봐, 그러니까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연인이나 아내 입장에서는 남자의 플라이트가 가장 속 터지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불안한 아내들은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데, 남편들은 이야기가 심각해진다. 싶으면 재빨리 자리를 뜨거나 끝까지 진실을 내놓지 않는다. 거짓말, 핑계대기, 침묵 등은 남자들이 사용하는 심리적 플라이트 방식이다.

사실 여성들은 남자의 사소한 거짓말을 대체로 알고 있다. 남자들의 거짓말 창작 능력에 대응해서 여자들이 발전시켜온 능력이 있다면 거짓말을 간파하는 직관이다. 언젠가 몇몇 여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여성이 남자들이 늘어놓는 사소한 거짓말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은 일이 있다. 그녀는 남자들이 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거짓말을 하는지, 사실을 말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텐데도 지래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어했다. 그때 연배 놓은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남자가 거짓말을 하면 그냥 속아줘. 그건 너에게 잘 보이고 싶고,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뜻이잖아.”

불평을 늘어놓던 여성은 놀란 듯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질문했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행동하는데요?”

그러면 솔직하게 말하겠지. “다른 여자 만났다고, 룸살롱에 갔다고.”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여성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선배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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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자들도 거짓말을 한다. 여자들이 남자 친구나 남편을 속이는 대목은 주로 쇼핑에 관한 것이다. 어떤 여자는 쇼핑한 물건을 이웃집에 맡겨놓고 필요할 때만 가져다 사용하고, 어떤 여성은 물건값을 속여 말한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여자들이 물건값을 적에 말할 때는 20~30%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거의 90%에 가깝게 값을 줄여서 말한다. 30만원짜리 물건을 3만원짜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쨌거나 그것 역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니, 피장파장인 셈이다.

■ 약한 남자의 생존법

루쏘의 ‘고백록’에는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자성예언 같은 게 있다. 그는 나무에 돌멩이를 던져 나무를 맞히면 지금부터 그의 삶이 다 잘되어갈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지만 돌멩이는 빗나간다. 그는 속으로 그것은 워밍업이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돌멩이를 주워든 다음 나무 쪽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간다. 이번이 진짜야, 생각하며 돌을 던지지만 돌멩이는 또 빗나가고 만다. 다시 그것을 연습게임이었다고 생각하고 나무 쪽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간다. 이번이 진짜야, 하면서 나무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지만 이번에도 맞히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마지막 워밍업이었다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확실히 하기 위해 나무 바로 앞까지 걸어간다. 나무에서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곳, 팔을 뻗으면 나무를 만질 수 있는 곳에 선다. 그곳에서 천천히 돌을 던져 정확하게 나무 둥치에 맞힌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성공했어. 이제부터 내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나아질 거야.”

나는 저 이야기를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우연의 음악’에서 읽었다.

내게도 루쏘가 했던 것과 같은 경험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자성예언 같은 것을 해두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를 세거나, 아카시아 나뭇잎을 따거나 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나중에는 원하는 패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화투장을 뒤집기도 했다.

남자들은 경쟁 사회에서 자기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내는 것을 전장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는 행위쯤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털어놓은 비밀이나 사생활이 언젠가는 경쟁자에 의해 자신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될지도 모른다고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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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한다. 무난한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필요하고, 타인의 거짓말을 적절히 눈감아주는 아량도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거짓말은 약자의 생존법이다. 솔직하게 사실을 말했다가 오히려 된통 야단을 맞은 성장기 에피소드를 누구나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 그 시절에 사로잡혀 있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고, 거짓말을 완성시키기 위해 연쇄적인 거짓말의 철로를 이어간다.

방어기제로 사용하는 생존법들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든다. 생의 주도권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믿는 태도이고, 상대를 조종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미숙한 태도이다.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여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힘이 없다고 느끼는 자의 방식이다. 관점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의 내면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쏘는 정직해서 루쏘가 되었을 것이다.

제4부 남자의 삶과 변화

◉ 남자,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남자의 정체성

그는 겉보기에는 나무랄 데 없이 성공한 중년변호사였다. 그가 정신과 의사를 찾은 이유는 표면적으로 아내와의 갈등, 자기 파괴 충동, 성 불능의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석가와 함께 내면을 성찰해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이 한 번도 자기 자신으로 산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사귄 친구를 어머니는 만나지 못하게 했다. 흑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중학교에 들어가 그림에 흥미를 보였을 때 어머니는 또 반대했다. 불안정한 예술가의 삶을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에 몰두했을 때는 법대에 진학하여 가업을 잇도록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주문했다.

대학에 진학하여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때는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의 어머니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조건으로 유럽 여행을 제안했다. 한 번도 어머니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기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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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는 여자 친구와 유럽 여행을 맞바꾸었다.

결국 그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변호사가 되었고, 좋은 조건의 여성과 결혼해 누가 보기에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우리 삶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살았지만 그의 내면은 늘 공허했다. 행복감이나 성취감도 느낄 수 없었고, 아내와의 관계는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삶을 통해 무엇을 잃어왔는지 알아차리지 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가 삶의 역사에서 잃은 것들은 비단 좋아하던 사람이나 취미가 아니었다. 친구를 잃었다는 것은 친구와 애착을 나누고 동일시하면서 성장할 기회를 잃은 거였다. 그림을 그만 둔 것은 좋아하는 일에 도전하여 성취감을 맛보고 작은 실패를 이겨내는 용기를 얻을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농구를 못한 것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잃은 거였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은 사랑을 통해 내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생의 충만감을 누릴 기회를 잃은 셈이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만들어갈 기회를 거듭 잃었다는 뜻이었다.

대신 그의 내면에는 상실감과 박탈감, 돌보지 못한 슬픔과 분노만 쌓여갔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 수 없었다. 이 사례는 ‘자기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정신 분석가 에릭 에릭슨이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사례이다.

자기 정체성은 사춘기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지는 개념으로,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여 자신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남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해주었다.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어 어떤 일을 하는가가 한 사람을 설명하는 핵심 언어가 되었다. 어느 집안 무슨 파 몇대 손이거나, 어느 대학, 무슨 학과 몇 학번 등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공동체가 남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표도 부과해 주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살거나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살면 되었다.

공동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남자들은 직장을 떠도는 도시 유목민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규정하기 어려워졌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부모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살거나,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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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가끔씩 이게 삶의 전부인가? 자문하면서.

■ 괴로워하는 카멜레온

대니얼은 쉰 세 살의 성공한 변호사이다. 그는 “사람들은 내게 매혹되지만 나는 그들에게 휘말려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 사실에 자부심을 드러냈고, 그와 같은 자부심 덕분에 더욱 성공한다고 믿었다.

- 대니얼은 스스로 말하는 기계라 생각하고 완벽한 일처리에 골몰

- 아내는 그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이라는 생각으로 생활,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들도 그의 곁을 떠남

그는 하루 24시간 관중이 필요했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는 자기가 간절히 원하고 또 충분히 받을 만하다고 생각될 때 여자들의 인정이 없으면 화를 내고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우울해졌다. 그는 새 여자를 사귀는 방식에 대해 “그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척한다”고 털어 놓았다.

이 사례는 제임스 F. 매스터슨의 ‘참 자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자기가 훼손된 상태를 거짓 자기, 과대 자기, 위축된 자기 등으로 정의한다. 이 책에는 거짓 자기를 만들어가는 젊은 경영인의 말도 인용되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 앞에서 내 소망을 꺾는 경우가 많아요. 생활 방식을 바꿔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난 카멜레온 같아요. 환경에 맞추고,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모든 곳에 적응합니다. 일생 동안 덫에 갇힌 듯 고통스러운 내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며 질식해 가고 있어요.”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부모에게 적응하느라 위축된 자기를 가진 30대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생존법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도록 행동하는 것, 상대의 마음에 들도록 좋은 모습을 꾸미는 것이었다. 그녀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 이렇게 말했다.

“그게 왜 거짓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기가 하는 거짓말에 대해서도 다만 상대가 화낼까봐 사실과 다르게 말했을 뿐이고,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돌려 말했을 뿐이라고 믿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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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면서 내면에서는 늘 주변 사람들에 대해 박해감을 느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심리상담가를 찾아가 상담실 의자에 앉아서도 오래도록 꾸며낸 좋은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흐른 후에야 그녀는 거짓된 삶을 꾸리는 데 시간, 돈, 정열을 낭비해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유는 하나였다. 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자기의 삶이 거짓투성이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인지 모르겠어요.”

비로소 자기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녀와 같은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만난다. 그들은 그동안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 가진 삶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살아왔다. 외부에 있는 힘있는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권위자의 인정을 받기위해 살아간다. 스물아홉,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 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타인의 감탄이나 찬사를 받는 것이 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부모를 포함한 위 세대의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으면 불필요한 고통, 헛된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알고 보니 내 불안감의 절반은 엄마한테서 온 거였어요.” 라거나, “아빠의 결핍이 내 꿈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어깨가 가벼워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진짜 자기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남자는 어떻게 어fms이 되는가

■ 남자의 통과의례

세계의 모든 신화와 동화는 대체로 아이가 부모의 집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것은 안락한 어머니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의 모든 통과의례에도 동일한 단계가 있다. 성인식을 집행하는 어른들은 소년을 어머니에게서 데리고 나와 숲이나 황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나이 든 어른들은 소년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것은 남성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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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들이 성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어른들의 삶으로 안내하는 경험이다.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기’는 남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 성취해야하는 첫 번째 도전이다.

자녀만 부모에게 집착하는 건 아니다. 불안한 현대의 부모는 자녀와 심각한 상호의존 관계에 있어 결코 자식을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농담이겠지만, 자식을 결혼시키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살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그런 이들에게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잘 키워서 잘 떠나보내는 것이라고 말하면 문득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본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았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냐는 눈빛이 확연하다.

■ 무쇠 한스 이야기

그림형제가 채록한 동화 ‘무쇠 한스’ 이야기는 한 소년이 털북숭이 거인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집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년은 왕자인데, 아버지인 왕이 생포해 김옥에 가두어둔 거인에게 열쇠를 훔쳐다 준다. 소년을 숲으로 데려간 털북숭이 거인은 그를 땅위에 내려놓고 말한다.

“이제 너는 부모를 영원토록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를 보살펴 주마. 너는 나를 풀어주었으니까. 내 말대로 하면 걱정 없단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부자인 무쇠 한스니까.”

거인은 소년이 누워 잘 수 있도록 이끼 침대를 만들어 주고, 아침이 되자 샘으로 데려가 샘을 지키도록 한다. 그 샘은 황금샘이었다.

- 며칠 뒤 무쇠 한스는 가난을 배우게 하려고 소년을 세상으로 내 보냄.

-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숲에 와서 무쇠 한스를 부르게 함

- 소년은 큰 도시의 성에 들어가 요리사, 정원사 등의 일을 하며 호기심 많은 공주의 관심을 받기도 함.

-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자 무쇠 한스를 찾고, 싸움 말 한 필과 무수히 많은 신비의 전사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 위기에 처한 왕을 구함. 그리고 무쇠 한스의 도움으로 공주와 결혼하게 됨

그 자리에 무쇠 한스가 등장한다. 그는 멋진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 젊은 신랑을 포옹하며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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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법에 걸려 털북숭이 거인으로 변한 무쇠 한스라오. 당신은 나를 마법에서 풀어주었소.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이제부터 당신 것이오.”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는 독일 전래동화 ‘무쇠 한스’를 융 학파 심리학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남자의 성장과 통과의례에 대한 책을 썼다. 1990년에 발간된 그의 책 ‘무쇠 한스 이야기’는 큰 화제를 일으켜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었다.

무쇠 한스 이야기는 성인식의 두 번째 단계에 대한 은유이다. 소년을 집에서 데리고 나온 남자 어른들은 숲이나 사막으로 가서 소년에게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전수해준다. 가면과 춤, 마법적 가르침, 토템의 사용 등은 젊은이에게 강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심어준다. 진정한 남자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어느 문화에서든 아이의 성장을 돕는 통과의례를 주도하는 어른이 있다. 그들의 보호와 도움 아래서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는다. 어른이 먼저 사랑, 용기, 인내, 관대함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아이의 미숙함을 수용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어른들은 아이를 자기 뜻대로 만들려 하지 말고, 아이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시도를 지켜봐 주어야 한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어른들의 도움으로 세상의 법칙을 배운 아이는 ‘무쇠 한스’가 되어 다음 세대를 도와줄 수 있다.

로버트 블라이는 현대사회에는 바로 ‘무쇠 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 한다. 아이의 성장을 돕는 조력자가 없다. 그것을 ‘아버지 결핍증’이라고 부른다.

◉ 중년 남자가 도달해야 하는 곳

■ 남자의 중년 위기

그는 뉴욕의 메이저급 잡지사의 유능한 편집장이었다. 정기적인 마감 스트레스와 실적 위주의 회사 생활을 견뎌내던 중, 사십 세가 되던 날 회사에 사표를 냈다. 아내에게도 이혼해줄 것을 부탁하여 살던 집과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20달러짜리 구두 상자 하나를 채울 정도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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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만을 지참하고 미국 서부 해안도시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토록 꿈꾸던 고요하고 한적한 삶을 살아간다.

그가 하는 주된 일은 ‘비치코밍(beachcombing)’이다. 아침이면 바닷가를 천천히 걸으며 밤새 파도에 밀려온 물건들을 줍는다. 해변에서 주운 물건들을 활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만든다. 바다가 선물한 기묘한 사물들은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자기만의 글쓰기를 시작한다. 낮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저녁이면 다시 바닷가를 산책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는 평화롭고 만족스러웠다.

그런 생활이 한두해쯤 지났을 때, 그의 글들을 모은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은 1996년에 출간된 리처드 보드의 ‘넓고 넓은 바닷가에’이다. 그 책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될 만큼 미국에서 크게 회제를 일으켰다. 그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킨 배경에는 사십 세, 중년의 위기, 삶의 변환 등의 키워드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 세를 넘어서는 고비에서 삶의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어렸을 때 꿈꾸던 것을 이룬 이들은 그들대로 허무하고, 이제는 결코 꿈을 이룰 수 없게 된 이들도 그 앞에서 좌절한다. 중년 여성들의 ‘빈 둥지 증후군’도 비슷한 심리적 현상이다. 남편과 자녀에게 자기 생을 온통 투자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자녀들이 성장해 떠나면 거부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년 남자들도 자기 생이 억울하다고 느낀다. 술에 취한 채 잠들었다가 술이 깨면서 잠에서 깨는 새벽 서너시쯤, 부엌에서 물 한 잔 찾아 마신 후 거실에 앉아 있으면 두통과 함께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 인생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가족에게 돈 벌어다 주는 기계인가?’

그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없다고 느낀다. 그토록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도 집에는 위안이 없다. 반찬은 입에 맞지 않고, 아내는 잠자리를 거부하고, 아이들은 제멋대로 군다.

중년의 위기는 그렇게 마술이 풀린 듯 찾아온다. 화려한 경력, 아름다운 아내. 평화로운 가정이 한순간 눈앞에서 사라진다. 삶에 의미가 없어지고 삶에서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자문한다. 무기력해지고 창의성이 고갈되고 삶의 가능성이 축소되어 보인다. 삶이 무거워진 중년 남성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마누라가 콧소리를 내는 게 애교스러웠는데 이제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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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담이 된다. 징징거리면서 요구하기만 하는 아내가 버겁다. 중년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남편이 집에 들어와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진다. 예전에는 자기 멋대로 집안을 이끌고 가려는 태도가 싫었는데, 중년이 되면 제발 예전처럼 자신있게 해줬으면 싶은 마음이다.

인간 발달단계를 나눌 때, 심리적으로는 중년을 35세부터 55세나 60세까지로 본다. 그 중 중년의 위기, 혹은 중년의 전환기라 불리는 심리적 격변을 경험하는 나이는 대체로 35~43세 정도라고 한다. 그 시기에는 쉽게 우울해 보이거나 병든 듯 무력해 보인다. 자기 삶에 의문을 갖고, 삶을 수정하고 싶어한다.

■ 중년의 열정이 향하는 곳

중년의 전환기에서 삶의 판을 뒤엎고 자기 인생을 찾아 멀리 떠나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온건한 해결책은 열정을 쏟을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는 일이다. 많은 남자들이 중년이 되면 뒤늦게 취미활동에 몰두한다. 음악에 심취하거나 등산, 낚시에 몰두한다. 어떤 이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주말답사 여행을 따라나선다.

주변 지인 중에, 중년이 되자 열정을 쏟을 특정한 대상에 몰두한 사례로 목조 주택 짓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이가 있다.

또 다른 지인은 집보다 조금 작은 대상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마흔살 무렵부터 목공예를 시작해 조각품이나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여 제작했다.

중년의 위기에서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우고자 할 때 남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실은 외도이다. 그 사례는 흔하고 흔해서 여기서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성적 능력이 감퇴되는 징조만큼 중년 남자를 두렵게 하는 것은 없다. 그들은 젊은 여자와 함께라면 젊은 시절의 짜릿한 감성을 되살리고 활기찬 삶을 꽃피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외도는 가장 보편적이면서 파괴적인 방법이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들은 그때부터 지옥을 경험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다. ‘여자를 미치게 하는 남자들의 이상심리’의 저자 제드 다이아몬드는 중년 아내들에게 이런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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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남편은 지금 당신이 싫어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자기에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젊은 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아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믿을 수 없는 또 한가지 사실은 외도하는 남성들이 죄의식이나 미안함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의 성적 능력을 되살리는 일이 너무 다급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여타 감정을 되돌아볼 겨를이 없다.

■ 내면의 타나토스와 화해하기

제드 다이아몬드는 남자들의 갱년기에 대해 연구하는 심리치료사이다. 그는 남성 갱년기를 40세에서 55세 전후로 보는데, 여성의 폐경기와 유사한 호르몬 변화에 따른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남성 갱년기를 겪는 남성들의 변화는 15세에서 25세 성년기로 접어드는 남성들이 겪는 변화와 흡사하다고 한 다 두 집단 모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감정 기복이 크다. 두 집단 모두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는 문제와 맞닥뜨리며, 또한 중요한 성적 변화를 경험한다고 한다.

자끄 라깡은 중년기의 중심 과제를 내면의 타나토스, 즉 파괴적 속성과 화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도 알아차리지 못한 파괴 본능이 모르는 새에 주변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안함을 느끼거나, 그것이 자기 삶을 파괴적인 곳으로 이끌어 갔음을 직사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중년의 위기에서 남자들이 꾀하는 해결책들은 그 뒤에 상처 입는 가족을 남긴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옥을 경험하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년의 위기에서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문제를 찾는 일이다. 그동안 회피해온 감정 영역을 점검하고, 덜 발현된 인간성의 좋은 면을 알아차리고 개발해야 한다. 그것이 뒤늦게라도 성장하고 싶은 욕구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중년이 되면 삶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삶이란 유아기의 욕망과 결핍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진정한 본질은 이타성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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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알아차려야 한다. 사실 우리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가장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주부는 가족을 위해 요리와 청소를 한다. 그것을 억울하다고 느낀다면 여전히 ‘아기’ 상태라는 의미일 것이다.

◉ 남자 안의 여자 살려내기

■ 남자의 여성성

독일의 유명한 재상 비스마르크와 황제 빌헬름 1세는 단짝이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이 강성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비스마르크라는 훌륭한 재상뿐 아니라 도량이 넓은 황제 빌헬름 1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빌헬름 1세는 후궁에 돌아오면 종종 화를 내며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찻잔을 깨뜨리곤 했다. 한번은 아주 진귀한 그릇을 던져 깨뜨리자 황후가 말했다.

“당신 또 비스마르크라는 늙은이로부터 욕을 먹었군요?”

빌헬름 1세가 퉁명스레 “그렇소”라고 답하자 황후가 “당신은 왜 늘 그에게 욕을 먹으면서 참기만 하는 거예요?” 하고 다시 물었다.

빌렐름 1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 사람은 재상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있으니 자기 아래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욕을 다 먹어야 해요. 그가 그렇게 욕을 먹고 나서 어디다 풀겠소? 나한테 풀 수밖에 없지 않겠소. 황제인 나는 또 어디다 물겠소? 접시를 던질 수밖에 더 있겠소.”

이 황제와 재상 덕분에 독일은 그렇게 강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이야기가 있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황후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주원장이 황제가 된 후, 어느 날 후궁에서 황후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고는 “나 주원장이 황제가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지!” 하고 말했다. 이어 기쁜 듯 뛰어 일어나 춤을 추면서 변변치 못했던 옛 시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마디로 대단한 추태를 부린 셈이었다.

그때 두 명의 관리가 그 옆에 있었는데 황제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미쳐 신경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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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주원장이 나가자 황후는 즉시 두 관리에게 일렀다.

“황제가 곧 돌아오신다. 너희들 중 하나는 벙어리 행세를 하고, 하나는 귀머거리 행세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둘은 목숨이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과연 황제가 밖에 나가 자기가 한 짓을 생각해보니 대단히 부끄러웠다. 그런 추태가 두 관리들에 의해 밖으로 소문이 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는 급히 후궁으로 돌아가 관리들을 확인했다. 하나는 귀머거리이고 하나는 벙어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안심하여 아무 일도 없게 되었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대만 법사 난화이진 선생의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에서 인용했다.

비스마르크도, 빌헬름 1세도 분노를 아래로 투사하지 않고 오히려 아래에서 오는 분노를 끌어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보다 뜻깊은 대목은 빌헬름 1세도 주원장도 자기의 내밀한 감정을 토로할 때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아내만을 어디에서도 말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속내를 토로할 수 있는 안전한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남성’의 저자 로즈 킹마는 오직 여성만이 남성을 도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남자에게 감성적 요소가 없다고 진단한다. 명목상으로는 그것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십년간 치료 현장에서 남성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단정한다. 남성이 여성을 계속 실망시키는 것은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처 갖지 못한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일 뿐이라고 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괴테가 남긴 말이다. 괴테도, 로즈 킹마 박사도 어쩌면 그리스 신화를 참고했는지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싸울 때 그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자이다. 사실 남자는 늘 여자를 필요로 한다.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절박하게, 삶이 이어지고 인류가 살아남도록 돕는 일도 언제나 여자의 몫이었다.

■ 수다 떠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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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여름쯤, 빠리행 떼제베 열차에서 본 광경이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가 앉은 좌석 건너편에 두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환하게 웃음 띤 얼굴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정다움, 편안함, 행복감 같은 분위기가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전까지 목격한 남성들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 내가 본 남자들의 주로 술자리에서 선배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정치풍토와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 술에 취해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목표를 성취했을 때 큰 소리로 승리감에 취하는 것 등이 전부였다. 뜻밖에도 나는 남자들이 조용히 대화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외국을 여행 할 때면 외국인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편안하게 친밀감을 나누는 광경에 유독 눈길이 간다.

남자들도 수다를 떨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든 내면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통이 덜해질 것이다. 남자다움 밑에 숨겨둔 연약함, 두려움, 친밀감 등이 살아난다면 한결 매력적인 남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한껏 부러워했던 그 장면들을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가끔 목격한다. 남자들이 야외 찻집에 앉아 편안한 낯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광경을 보면 이상한 감동까지 느껴진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자들이 수다를 떨고, 자기 이야기를 토로하고, 가끔은 힘들다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남성들도 언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 남자들이 많아지면 양성이 지금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성급한 기대도 품어본다.

남자들은 이제 외부에서 여자를 찾아다니기보다 자기 내면에서 여성성을 찾아내야 한다. 남상다움의 가면 밑에 억압해둔 여성적 요소를 되살려내어 의식 속으로 통합해야 한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워지는 길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미 오래전에 여성 속의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남성 속의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이름 붙였다. 누구든 내면에서 반대 성의 요소를 더 많이 의식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더 많이 통합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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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마초처럼 살았던 사람도 중년이 되면 변화한다. 생물학적으로 중년기에는 남성들도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어 모든 면에서 부드럽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보다 내성적이 되고, 자기주장도 약해지고, 환경과 주변 사람을 통제하려는 성향도 줄어든다. 급기야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남성성과 여성성, 젊음과 늙음, 의존성과 자율성 등 양가적 특성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천천히 통합되어 간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축복이라 여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싶다.

* 마초 : 남자다움을 지나치게 과시하거나 우월하게 여기는 남자

- 예 :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그는 마초의 성향이 짙다.

◉ 남자와 여자가 사이좋게 지내기

■ 남자의 변화

“우리나라 여자들은 왜 그렇게 남자 빰을 철썩철썩 때리는 거지?”

몇해 전, 한 문학평론가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대체 어떤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린다는 거지? 혼자 자문할 때 그분이 부연했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런 장면이 많이 나와. 여자들이 남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하루에 한두번은 꼭 만나지.” 그 후 드라마를 유심히 봤더니 실제로 여자가 남자 뺨을 찰지게 때리는 장면이나 남자에게 폭력적 언행을 가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대부분의 폭력, 강도, 연쇄살인 사건은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범죄들인데, 드라마에 나오는 폭력은 대체로 여성이 남성에게 행하고 있었다. 그것은 드라마를 만들고 시청하는 동시대 여성들의 판타지이자 소극적 복수 같아보였고,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불편함을 조성하여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 공격성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듯했다.

기어이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게 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큰 격차로 벌어져 있었던 여성의 지위와 권익을 아주 조금 보완했을 뿐인데도, 수백 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누려오던 권리를 양보하는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도 있을 듯 했다.

우리 여성들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불편한 삶,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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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쏟느라 미처 남자들의 입장을 헤아려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여성들이 주도해나가는 변화에 대해 남자들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회 한켠에서 늘 여자에게 분노하는 남성들이 있었고, 그들은 여자들에게 온갖 나쁜 것들을 퍼부어대곤 했으니까. 그들이 그토록 무서운 것을 쏟아내는 이유가 그들도 내면에서는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우리 여성들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지레, 남자들은 마지못해 여성들의 요구에 응한 것일 뿐 스스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심지어 남자들은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그녀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바터제로 변화를 수용하는 듯 보였다. 여자를 달래기 위해 특정 제스처를 취하고 마지못해 양보할 뿐 결코 여자들이 주도하는 변화를 수용할 마음이 없다고 믿었다.

■ 남자들에게 기회를

외국 심리학 책을 읽다보면 ‘양성 간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여성들이 자기 권익을 주장하고 자기 욕구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자들은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곤경에 처한 것 같다. 예전에는 남자가 가정을 책임지고 여자는 보조자 역할을 하면 되었다. 남자는 무거운 책임을 맡은 대신 아내와 자식에게 더 큰 권력과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여자는 보살피고 헌신하는 역할을 떠맡은 대신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울타리를 하나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예전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남녀 역할 분담 구조가 약화되면서 남성도 여성도 각각의 역할에 혼란을 느낀다. 특히 남자들의 눈에는 여자들이 사사건건 트집 잡는 것처럼 보인다. 치약 짜는 방법이나 변기 사용법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양성평등법이나 유산 분배에 이르기까지, 어떤 남자들은 여자가 싸움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남자들은 이중 부담을 짊어지는 것도 같다. 한편으로는 가정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자가 요구하는 민감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내라는 거지? 남자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그대로 달려나가며 어디 안전하게 멈출 지지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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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남자들의 치유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토록 힘을 쥐려고 하는 이유가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단계부터 벽에 부딪힐 것이다. 치료되기 위한 필수 과정으로써 약하고 부족하고 못난 곳으로 퇴행하는 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들의 나르시시즘은 인류의 역사와 뿌리를 함께하는 굳건한 것이므로, 잘못의 절반은 우리 여성에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의 수다 떨기에 남성들을 끼워주지 않아서, 그들이 늘 강하고 과묵하고 의젓하기를 바라서, 툭하면 그들에게 의지하고 징징거려서, 남자들에게 수다 떨고, 약해지고, 징징거릴 기회를 주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미안한 마음이다.

■ 각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

남녀 간의 불화의 원인은 오직 각 개인들의 미숙함에 있다. 남성들이 불편을 겪는 이유도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 아기처럼 원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만나는 후배 여성들도 그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편을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아빠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남편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남자 친구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요.”

믿어지지 않지만, 내가 만나는 모든 여성들이 처음에 저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자는 결핍을 널리 공표함으로써 사랑받으려 한다는 프로이트의 정의가 절로 이해된다. 개중에는 남자 친구가 너무 힘들게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회사 동료 때문에 미치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스무 살이 넘으면 타인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징징거리기를 중단해야 하고, 자기 생의 문제를 타인을 탓하는 방식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생존법도 모르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자 친구가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헤어질 수가 없다고도 했다. 헤어지자고 말하면 그가 폭력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무서워서 계속 만나준다고 했다. 그녀는 말갛게 눈을 뜨고 아이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헤어지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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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주기적으로 남자 친구를 만나 데이트하고 있었고, 그만큼 남자 친구를 다양한 용도로 알뜰하게 사용했다. 운전기사, 심부름꾼, 경호원, 감정 쓰레기 하치장, 심심풀이 땅콩 등으로 남자가 변덕스러운 여자에게 지쳐 멀리 떠났을 때는 적극적으로 따라가서 다시 유혹해 오기도 했다. 물론 무의식적 행위여서 그녀는 자기가 그런 일은 한 적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를 못마땅해 하고, 그가 집착해서 헤어질 수 없다고 하고 그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었다. 여러 해 동안 혼란스러운 관계를 이어가면서 두 사람은 각자 고통스러워했다.

상당 기간의 심리치료 끝에 그녀는 이상화해둔 자기 이미지가 깨어지는 고통, 내면의 파괴적 감정들을 경험하는 고통, 유아기 불안을 재체험하는 고통 들을 거친 다음 그녀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내 쪽에서 먼저 교묘하게 그를 공격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의 공격 반응을 기대하면서요. 내가 착취적으로 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내쪽에서 그를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기적이고 가학적인 나를, 긴 시간 동안, 그는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어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위 남성과 지인의 경우처럼, 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각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생존법, 성격의 왜곡된 측면을 알아차려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면의 불편이 해소되고 관계가 개선된다.

자기 마음이나 행동은 볼 줄 모르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던 태도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더 큰 사회든 똑같은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처음부터 남녀는 필요한 부분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불편한 것들을 투사해왔으므로 그래도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보인다. 개인 들이 사적인 관계에서 잘 지내는 길에는 명백히 검증된 방법이 있다. 그 방식을 더 큰 단위로 확장시켜 적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또 순간의 환상을 꽃피워본다.

2014. 6. 8.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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