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2014. 5. 29. 11:25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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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

-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 -

■ 김형경 지음

- 1960년 강릉 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석사

- 1983 문예중앙 신인상 ‘시’

- 1985 문학사상 신인상 중편소설 ‘죽음잔치’ 당선

- 장편소설 :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 세월. 울지 말아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외출. 꽃피는 고래

- 소설집 : 단종은 키가 작다

- 시집 : 시에는 옷걸이가 없다

- 에세이 : 사람풍경. 천개의 공간. 만 가지 행동 등

- 제10회 무영 문학상

제1부 남자의 관계 맺기

◉ 남자에게는 세 여자가 있다

■ 남자의 여자

그는 내가 목격한 남자들 중 전형적인 경상도 가부장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현직 대학교수이지만 여전히 가문을 중요시하고, 가문의 영광을 의식하면서 행동의 많은 부분을 절제했다. 안동 지방에 뿌리를 둔 그의 가문은 그곳의 유력 가문들과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는 듯 했다. 그런 이야기는 사극에서나 보던 것이어서 시대를 거스르는 느낌이었지만 그에게는 피를 끓게 하는 생생한 현재였다.

안동에서 열린 어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친척뻘인 그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는 행사장에 가기 전에 먼저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엉거주춤 따라 들어간 집에서 그의 어머니를 뵈었을 때, 나는 놀라운 느낌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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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뵌 그 어머니는 모든 이들의 판타지 속에나 있을 법한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맑은 낯빛에 온유한 미소를 띤 채 조용하고 정겹게 말을 건넸다. 먼 길 온 아들에게 온전한 반가움을 보이며 자꾸만 음식을 권했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처음 뵙는 남의 어머니 손을 덥석 잡고 몇 번이나 쓸어 보았는지 모른다.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지인과 그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걷는데 뒤에서 그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아들 이름을 불렀다. 뒤돌아보자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니를 늘 귀애한데이.”

그것은 거의 당부 같은 말투였다. 그토록 정겨운 당부의 말투도 오랜만이었고, 귀애한다는 단어를 귀로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 말투에 담긴 간곡함에 가슴이 아려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어머니가 살아온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야기 하는 내내 그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걱정과 미안함이 배어나왔다.

어머니가 화제에 오르면 남자들은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얼굴을 드러내곤 한다. 남자들의 마음에는 어머니가 첫사랑이다. 어머니에 대한 화제가 끝나갈 즈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밖에서 자꾸 아내 흉을 보게 되는지 모르겠어. 안 그래야지 하는데도 나도 모르게 그러고는 놀라게 돼.”

나는 그에게 성장기를 통해 어머니를 미워하거나 어머니에게 반항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하긴, 그가 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 연민, 죄의식 등을 생각하면 당치도 않은 질문이었다. 삼강오륜을 하늘같이 떠받들고 있을 테니 더욱 그럴 것이다.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심지어 이상화시킨 아들은 연인이나 아내를 선택할 때 이상화 된 어머니 이미지를 투사한다. 어머니처럼 훌륭한 면모를 가진 여자를 선택하고 어머니에게 했듯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남편이 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아내를 존중하는 온순한 남편 역할을 하는 남자 중에는 분노를 자식들에게 표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장기에 아버지에게 자주 맞아 내면이 파괴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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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치유 과정에 대해 들은 일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식을 때린 행위는 마치 전쟁 중인 군인이 적군을 대하는 태도 같았다.

어머니, 아내, 자식에게도 내면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 남자들은 그 분노를 아주 먼 곳으로 돌린다.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는 여자에게, 자기가 정당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만 화를 낸다. 여자가 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든다느니,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운전을 하고 다닌다느니, 여자들은 출근을 하는 게 아니라 패션쇼를 하러 온다느니…… 예전에는 여성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남자를 보면 오직 불쾌감만 느꼈다. 요즈음은 이런 이들의 다른 면을 짐작해보게 된다. 그런 이들은 내면에서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 또 자기 비하감은 얼마나 클까.

■ 남자들의 첫 여자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 D. 쌜린저는 1919년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십대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유럽으로 보내 가업인 육류 및 유제품 사업을 체험하게 했다. 그러나 쌜린저는 결코 공장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 일로 아버지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창작 강의를 들었으나 입대 영장을 받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다시 유럽으로 갔다. 그는 연합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수많은 전우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해 신경쇠약에 시달려야 했다.

쌜린저는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하여 ‘호밀밭의 파수꾼’을 발표했다. 주인공 홀든은 자기가 왜 그토록 화가 나는지, 왜 세상의 모든 규범과 권위를 무조건 부정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한다. 부모와는 말이 통하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는 소외감을 느끼며, 바람에 날리는 휴지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그것은 전후 청춘들의 초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책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자 그는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 코니시로 거처를 옮겼다.

- 36세이 쌜린저는 19세의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 그리고 집 근처에 콘크리트 벙커를 짓고 칩거하며 글쓰기. 정신적 학대에 못이긴 아내와 이혼

- 53세의 쌜린저(1972년), 18세의 조이스 매이너드와 10개월간 연애

1977년에는 18세의 간호사 콜린 오닐을 만나 편지를 주고받다가 1980

년에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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쌜린저의 내면에는 나이를 먹지 않는 청년이 있었던 듯하다. 간혹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발생한 시기에 얼어붙은 ‘내면 아이’(혹은 무의식)를 데리고 산다. 쌜린저의 내면에 있는 아이는 아버지에 의해 유럽으로 보내진 시기, 혹은 전쟁터로 징집된 시기에 고착된 듯 보인다. 그는 연인을 선택할 때마다 내면 아이의 수준에서 친밀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의 세 신부들은 나이뿐 아니라 외모나 분위기도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의 첫사랑은 사춘기 때의 그녀가 아니다. 남자들의 첫사랑은 바로 그들의 엄마이다. 모든 남자에게 최초의 여자는 엄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엄마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간혹 엄마에 대한 분노가 극심하고 그것을 의식 차원에서 명확히 느끼는 사람은 엄마와 정반대로 생긴 여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분노의 뒷면에도 여전히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 남자가 꿈꾸는 여자는 없다

그는 내가 문학 창작을 공부하던 시기에 한 문학 써클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두해 선배였던 그는 문학을 공부하는 데 쏟는 시간보다 여자를 만나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기울이는 듯 보였다. 그 시기 청춘들이 청춘사업에 열중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의 태도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육 개월 단위로 여자를 갈아치웠기 때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친구들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친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육 개월 단위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행각을 3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이해하고자 애썼던 사람은 그 선배였다. 당시에는 그가 왜 그토록 자주 여자를 갈아치우는지, 그럼에도 거듭 절박한 태도로 여자를 갈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와 함께 있을 때 그는 행복하고 충만해 보였다.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하거나 불안정해 보였고, 가끔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언제나 그가 여자를 떠났으면서도 더 깊이 상처 입은 듯 보이는 쪽은 그 사람이었다.

나중에야 모든 바람둥이들이 절박하게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바로 그만한

강도로 여자로부터 달아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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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바람둥이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이 옳을 것이다.

여자의 삶에는 세 남자가 중요하다는 옛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노년에는 아들에 의해 여자의 인생이 결정된다. 보다 잘 의존하기 위해 어렸을 때는 착한 딸이 되고, 커서는 성적 매력을 가꾸고, 노년에 대비하기 위해 아들이 출세를 바란다. 그러니 여자가 원하는 남자는 사실 한 유형밖에 없다. 잘 의존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백마 탄 남자. 그리하여 여자들은 연인이나 남편이 내면에 있는 이상화된 아버지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남자친구가 이벤트를 해주지 않는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늘 불평한다.

남자에게도 여자는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사랑의 여자, 이상화되고 미화된 성스러운 여자, 퇴락하고 가치 하락되어 함부로 대하는 여자, 하지만 그녀들은 사실 최초의 여자인 엄마에게서 만들어 가진 남자들의 내면 이미지일 뿐이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게 된 오이디푸스 기의 소년은 유치원에 가서 첫사랑의 여자를 찾는다. 그 후로는 이상화된 연인을 찾아내어 숭배하거나, 가치 하락시킨 여자를 선택해서 파괴적으로 군다.

그러니 남자가 원하는 여자도 사실은 단 하나인 셈이다.

여자가 꿈꾸는 남자도, 남자가 꿈꾸는 여자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여자의 일생에서 사라지는 남자들

■ 남자의 책임감

“레이철을 만나기 전까지, 결혼이란 남자가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여자의 욕구와 기호가 지배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 믿어왔다. 그녀를 만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결혼이란 이상적인 공동 사업이라고 믿게 되었다.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1987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남자에 대하여’라는 책에 실려 있다. 그 책은 여러 남성 필자들이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연재한 진솔한 자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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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를 엮은 것이다. 국내에는 1996년에 번역 출간 되었는데, 제목이 ‘여자에게’로 바뀌었다. 남자의 마음을 좀 알아봐달라고 호소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린다. 이 글의 필자는 대학교수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남자의 인생에서 연상의 여자는 그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존재가 아닐까’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유를 잃더라도 이상적인 공동 사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한다. 파트너인 레이철이 연상이면서 사회적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보장해줄 거라 기대한다. 그녀에게 네 살된 아기가 있고 결혼하면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조건에도 동의한다. 많은 가족이 함께 살고, 새롭게 아이가 태어나도 좁지 않을 집을 구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자신이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그녀가 찾아낸, 방이 열두 개나 되는 빅토리아 시대풍의 대저택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집의 규모만큼이나 큼지막하게 다가오는 미래의 무게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시 보였다. 먼 장래에 레이철의 늙어버린 모습과 대비되는 나의 젊고 패기에 찬 모습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결혼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글 말미에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시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그녀와 결혼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것은 영원히 해답을 알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여자가 달콤한 허니문을 꿈꿀 때 남자는 이제부터 한 사람의 인생과 한 가정의 미래를 어깨에 올려놓고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존경쟁 현장에서 숨 돌릴 틈 없이 뛸 각오를 해야 한다. 결혼하면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의 안정을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 되고, 남자로서 누렸던 모든 자유를 포기하고 가족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심지어 남자들은 ‘가족’이 된 아내에게 더 이상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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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감을 피하려는 남자들

나는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할 무슨 권리가 있는가. 지금 태어난 새 생명은 앞으로 어떤 고통을 겪으며 자기 인생을 살 것인가.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한 책임은 어떤 것인가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내가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 또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 아이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지금 나는 얼마나 무책임한 일을 벌인 것인가.

나는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하고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순수함에 연민을 느꼈고, 대부분 불만과 우울 속에서 보냈던 내 젊은 날들을 생각했고, 아이가 크면서 세상을 살아가며 겪어나가야 할 슬픔이나 고통 따위를 생각했다. 하나의 생명을 태어나게 한 것이 이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 나는 몰랐었다.

이 글은 ‘이프’에서 2002년에 출간한 ‘아빠 뭐해?’에 실려있다. 그 책은 16명의 필자들이 아버지 세대와는 달라져야 하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경험과 생각을 섞어 써내려간 글들을 싣고 있다.

아이를 갖게 된 남자의 복잡한 심경을 그토록 세밀하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신생아실에서 아들 얼굴을 본 후 병원 밖으로 나가 조그만 대폿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저토록 복잡한 상념에 잠긴다.

그 경험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분만 예정일 전날 술을 퍼마시고는 술이 깨지 않은 채 갓 태어난 아이 얼굴을 보고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아마도 첫아이 때 맞았던 것과 같은 휘몰아치는 감정적 경험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여자들이 자기가 얼마나 엄마 역할을 잘 하는지에 대해 자랑하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녀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가끔 그녀들이 자기 역할에 대해 말할 때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면서 뼈아프게 후회하는 경우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자주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해주는 것’을 염두에 둔다. 어떤 아버지들은 저녁에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퇴근해서 집에 갔을 때 온 가족이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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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너희들은 편안하구나……’

그것은 엄밀하게 따지면 억울함에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색내고 대접 받고 싶어한다. 요즈음은 자기가 얼마나 아버지 역할을 잘하는지 자랑하는 아버지들이 많이 보이면서 ‘딸바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짐작하건대, 자신의 가장 역할을 생색내는 아버지들의 마음속에는 절반쯤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 셔터맨의 가출

그와 그녀는 대학 시절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졸업 후 그녀는 개업 약사가 되었고, 그는 고시 준비생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 상태로 그들은 결혼했고, 아내는 남편이 고시 준비를 하는 동안 집안 경제와 생활을 책임졌다. 남편은 아내의 일을 일부분 도와주었는데, 어느 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셔터맨’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딸이 태어나 이미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의 고시 준비는 누구의 눈에도 명분밖에 없어 보였다.

그들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안정되고 평화로워보였고, 부부 모두 성품이 좋아서 이웃들이 칭찬하는 모범 가정이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도 너무나 고요해서 누구도 쉽사리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내는 오래도록 그것을 가출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고 믿었다. 휴대전화며 수첩이며 모든 중요한 물건들을 그대로 둔 채 지갑만 자기고 나갔기 때문이다. 며칠 후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고, 백방으로 남편을 수소문하고, 그가 다니던 등산로, 서점 등을 훑었으나 종적이 없었다.

아내는 여러 날을 눈물로 지새우다가, 맥없이 분노하다가 하면서 보냈다. 한 쪽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듯한 상태로 삼사년이 흘렀을 때, 바람결처럼 남편의 소식을 들었다. 여러 사람의 입을 건너온 그 소식은 남편이 미국에서 어떤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몇 다리 건너,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면서 친구가 들려준 풍문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셔터맨이 결코 꿈의 직업은 아닐거라 짐작되었다. 실제로 셔터맨이라는 직업으로 사는 남자가 있는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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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그런 이가 있다면 그의 내면은 책임감에 짓눌리는 보통 남자들보다 두배는 더 복잡할 것이 틀림없으리라.

남자들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때에야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처럼 느낄 수 있다. 남자의 인생이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과도한 책임을 떠안을 때가 아니라, 책임져야 할 대상도 역량도 없을 때일 것이다.

약사 아내의 셔터맨으로 살던 남편의 선택은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저기 존재를 증명하고 자기 가치를 만들어 낼 책임감이 절박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 여자를 만나 그녀에게 남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면서 새롭고 빛나는 인생을 시작했을 것이다.

◉ 남자는 진정 아들을 사랑하는가

■ 남자의 남자

그리스 신화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아들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최초의 신 우라노스는 아내 가이아의 출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지구의 거대한 몸뚱이 속에 가두어 빛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 가이아는 몹시 슬퍼했지만 아들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기만 했다. 막내 크로노스만이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를 제거하고 세상을 다스리며 새로운 신을 만들어 냈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한다. 레아 역시 대지의 여신이었고, 그의 아들역시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크로노스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삼켜버린다. 레아와 가이아는 지혜를 모아 막내 제우스를 멀리 보내 비밀리에 키워낸다. 성인이 된 제우스는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 결혼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를 살해하고 그가 삼킨 형제들을 구해낸다.

제우스는 여러 아내를 거느리며 무수히 많은 자식을 낳는다. 제우스 역시 그랬다.

그리스 신화뿐 아니라 세계의 신화에는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들들이 많이 등장한다.

저 유명한 오이디푸스도 그런 아들 중 한 명이다.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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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를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 책이다. 프로이트의 가설에 의하면 최초의 아버지는 모든 권력과 여자들을 독점하고 있었다. 성장한 아들들은 공모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땅과 여자를 나누어 갖는다. 자신들이 살해한 아버지를 위해 토템을 세우고 죽은 아버지를 숭상함으로써 아버지의 저주를 피하려한다.

이 오래된 신화는 불행하게도 현대인의 내면에서 반복 재현된다.

여성 심리학자 대프니 로즈 킹마의 저서 ‘우리가 몰랐던 성’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다. 내가 어릴 때 테니스 시합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이겼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이기자 그는 나와의 테니스를 영원히 그만 두었다. - 26세의 건축가 .”

모든 아버지들은 아들이 자라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실은 자신이 늙고 힘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들은 아들의 성장기에 자주 약속을 어기고, 거칠고 난폭하게 군림하고, 아버지 마음에 들어보려는 아들의 노력을 비웃는다.

“애들은 어른 반도 못돼.”

“너는 일흔 살이 되어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

“잔머리 굴려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어떤 아버지들은 아들이 자기 존재를 펼치려 하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꺾어 버린다. 때로는 충격적이고 잔인한 말들을 던지기도 한다.

아들의 성장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무의식 때문에 아들들은 위축된다. 아버지들은 아들이 자라 권력과 재산을 빼앗을까봐 두려워하고, 아들들은 충분히 자라 힘을 갖기 전에 아버지에게 쫓겨날까봐 두려워한다.

이름마저 똑같은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경쟁 관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19세기 중엽,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는 유럽과 미국 음악계 왈츠의 황제였다. 아버지는 그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아들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음악가가 되었다.

특히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의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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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장남을 상인으로 키우기 위해 경영학과 회계 업무 공부를 시킴

- 아들은 아버지 몰래 바이올린 공부

- 19세 때 야간 무도회를 개최하여 음악 활동을 계속하자 아버지는 미성년자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을 고발함

- 아버지와 아들의 경쟁 관계는 당시 호사가들의 좋은 이야깃거리

당시에는 대체로 관록이 두둑한 아버지의 승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왈츠의 황제가 되었고, 아버지 요한은 거의 잊혀졌다.

■ 뺏고 뺏기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내와 동등하게 가정을 이끌어가는 남편이라면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와 수유로 고단한 아내에게 힘을 보태주고 함께 아기를 돌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아버지들은 아기가 태어난 후 관심과 사랑을 다 빼앗겼다고 부끄러움도 없이 투덜거린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정신 분석학에서는 아기가 엄마와 맺은 애착관계를 끊어 주는 역할을 한다. 엄마와 행복한 애착관계를 맺고 있던 아기는 어느 날 엄마의 진정한 소유권을 가지고 가정을 지배하는 힘센 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의 힘, 질서, 규칙에 복종하면서 엄마를 아버지에게 양도하고 심리적 오이디푸스 단계를 넘어 선다.

아버지의 질시와 경쟁에서 살아남고, 아버지와 분리되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현대의 남자들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예전 아버지들이 행사했던 아버지 역할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학습해 가지고 있는 선개념들을 지워내는 일이다. 가정을 다스리는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풀며 분노와 비판의 잣대를 휘두르는 아버지 가장 역할을 포기한 채 술, 친구, 도락으로 도피하는 아버지 역할을 그대로 따를 수가 없다. 현대 여성들이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아버지’ 역할 모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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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버지라는 환상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저자가 1995년 3월, ABC 텔레비전의 토크쇼 ‘나이트라인’에 출연한 옛 스승 모리 슈워츠 선생님을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모리 선생님은 루게릭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상태이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고 음식 먹는 것도 힘겨워하지만, 그 상황에서 떠오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메모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메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동료 교수 한 사람이 그 글들을 ‘보스턴 글로브’지의 기자에게 보냈고, 그 기자는 모리 선생님에 대한 긴 글을 썼다. 그 기사 제목은 이랬다.

‘어느 교수의 마지막 강의 : 자신의 죽음’

기사를 인상적으로 본 ‘나이트라인’ 프로듀서는 카메라를 들고 모리 선생님을 방문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모리 선생님께 질문한다.

“천천히 쇠락해 가는 동안 가장 두려운 게 뭡니까?”

모리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소.”

미치 앨봄은 그 후 화요일 마다 스승을 만나러 갔다.

미치 외에도 많은 이들이 모리 선생님을 방문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모리 선생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그에게 마음을 써주려고 온 게 아니라 그가 써주는 마음에 끌려서 찾아왔다. 당신의 통증과 쇠락에도 불구하고, 이 조그만 노인은 사람들이 들어 주기 바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나는 누구나 선생님 같은 아버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리 선생님이 그토록 불편한 몸으로 좋은 아버지 역할을 떠맡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저녁 식사 후면 홀로 산책을 나가 거리의 가로등 불빛에 신문을 읽곤 했다. 어린 모리는 창으로 아버지를 내다보면서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와 자기에게 이야기를 걸어주기 바랐다, 하지만 한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는 자식을 안아주지도, 굿나이트 키스를 해주지도 않았다. 모리는 자기가 아버지가 되면 자식에게 꼭 그렇게 해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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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늘 맹세했고, 그것을 실행했다. 마침내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까지 그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스승을 떠나보낸 후 미치 앨봄은 그 경험을 써서 책으로 출판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1998년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크게 화제가 되었다. 같은 해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었을 때도 화제를 모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남자들이 꿈꾸는 ‘좋은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이 책이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남자는 기본적으로 경쟁자이다. 비록 그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감사하고 경탄하는 성숙한 남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적어도 중년의 시기가 되어야 자식이 책임이나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어머니도 딸과 경쟁심을 느낀다. 딸이 사윗감을 소개하려 하자 어떤 어머니는 피부과에 가서 젊어지는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어머니는 딸의 성공에 대해 대리만족조차 느끼지 못한다. “너는 교수도 되고 그러는데, 나는 이게 뭐냐.”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회가 없었던 어머니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딸과 경쟁하는 어머니 언어 중 가장 강력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너는 네 아버지 첩년 같구나.”

남자든 여자든 자녀에게 관대하게 할 수 있다면 그는 진정한 어른이 된 게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자녀에게 화를 내는 부모는 내면에서 미성숙한 아이가 투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자녀를, 자기보다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느끼는 자녀를 시기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 남자 화장실 소변기의 비밀

■ 남자의 경쟁심

지금도 나는 공공장소, 이를테면 수영장 같은 데 앉아 있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어야 느긋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다 다른 남자가 들어오면 우선 그가 물리적인 해를 가할 사람인지 아닌지, 그가 나를 기습해서 강탈할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점검한다. 어린 시절 이후 나를 헤치거나 강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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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항상 그런 식의 반응이 일어난다.

이윽고 그가 나보다 강한 사람인지, 더 나은 옷을 입고 더 건장한 체격을 가졌는지 따져보는 일로 들어간다. 만일 그가 여자와 함께 나타난다면 나는 그녀가 마음속으로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찾아본다. 만일 주차장이 보인다면 내 차와 비교하기 위해 그의 차를 유심히 훑어본다. 설사 그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바람에 대화를 하게 된다 해도 어떤 사람으로 나를 연출할까 하는 데에만 신경 쓴다. 나는 절대적이고 불안정한 경쟁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1994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간된 스티브 비덜프의 저서 ‘남성 심리학자가 남자에게 말하는 남자의 생’의 한 대목이다. 저자가 말한 “적대적이고 불안정한 경쟁 강박증‘은 비단 그의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많은 남자들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경쟁심을 느낀다.

남자에게 경쟁은 삶의 기본 속성이며, 유희이며, 일종의 의식이다. 그들의 놀이나 대화는 경쟁 요소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 조직의 위계질서를 정립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친구조차 자기와 비슷한 수준에서 경쟁할 만해야 친구로 삼는다. 경쟁이 너무나 중요한 아버지들은 아들이 친구에게 맞고 들어오면 달래주는 게 아니라 불같이 화를 낸다. 마치 자기가 패배한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경쟁적 언어의 본질을 잘못 알고 있다. 남자는 특정한 개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경쟁한다. 물론 여자도 포함된다. 여자는 항상 부당하게 공격당했다고 느끼며 모든 것을 성차별로 해석하는데, 실은 남자의 언어를 오해한 것이다. 남자는 모든 타인을 차별하는 것이지 특별히 여자만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남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남자와 연애할 때는 모욕당할 준비를 하라. 그들의 말이 황당하고 심지어 모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당신을 공격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남자들의 말투가 그럴 뿐이다.”

오래 전 읽은 어느 연애 지침서에서 읽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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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자의 눈에는 아무래도 이상해 보이는 남성 문화 중 한가지는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구조이다. 모든 건축물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안락함을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어가는 동안에도 그것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남자들의 몸에 밴 경쟁심 때문으로 보인다. 얕은 칸막이 너머로 상대의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상황에서 볼 일을 볼 때마다 남자들은 옆 사람을 곁눈질하면서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 이 세상 어떤 남자도 그 화장실 구조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경쟁심을 문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경쟁에서 생의 에너지를 얻으며, 경쟁자의 ‘속사정’을 알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느낀다.

경쟁은 남자의 유전자에 각인된 첫번째 생존법이다. 그들은 유구한 세월 동안 경쟁이라는 기본 법칙에 따라 살아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은 무수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전자들의 집합체이다. 현대사회가 그토록 경쟁적이고 현대인들이 그토록 공격적인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닐 것이다.

■ 잔혹한 경쟁의 역사

독일 작가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는 경쟁심을 극단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동생 토마스 만이 형 하인리히 만의 바이올린을 부숨, 그 이후로 15세, 11세 형제는 한 방에서 1년 동안 말을 안 함

- 1894년 형(23)세, 동생(19세)이 각각 첫 소설을 발표

- 동생 토마스 만이 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됨(1901)

- 형 하인리히도 연이어 세 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함

- 두 형제는 서로의 작품에 대해 살인적인 악평을 함

- 1924년 동생은 ‘마의 산’이 히트하고, 1929년 첫 번째 히트작 ‘부덴브로 크가의 사람들’로 노벨상 수상

- 형도 꾸준히 작품 활동 : 둘의 경쟁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됨

아들은 늙은 아버지에게 연민을 품을 수도 있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갖게도 되지만 형제간에는 그런 것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자매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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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는지, 누구에게 더 비싼 옷을 사주는지를 섬세하게 알아차린다. 그 모든 것을 세세하게 몸과 마음에 새겨놓는다. 작고 미묘한 경쟁심은 쌓이고 모여 파괴적인 시기심이 되기도 한다. 남자 형제가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것은 한 쪽의 완전한 복종이거나 기적일 것이다.

경쟁심은 출생 직후부터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산물만은 아니다. 성경에는 경쟁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때려죽인 형 카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전에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무한 경쟁을 벌였던 사촌 동생 데바닷타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승단을 빼앗기 위해 갖은 음모와 술책을 꾸몄다. 부처님을 죽이기 위해 언덕 위에서 돌을 굴리거나 손톱에 독을 묻혀 부처님을 찔러서 해치려고 시도한다.

데바닷타는 자신이 부처님보다 수행이 높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면서 승단 대중 5백여명을 꾀어 떠나기도 한다.

‘법화경’에는 구제할 수 없는 악인처럼 보이는 데바닷타도 결국은 성불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데바닷타는 실은 전생에 석가모니 부처님께 법화경을 설해준 스승이었다. 전생에는 자신을 시봉하면서 가르침을 받던 제자가 앞서 수행을 완성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그 경쟁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의 경쟁심은 전생 인연들까지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 여자와 경쟁하는 남자

그는 어렸을 때 늘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 자랐다.

“내가 네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 텐데.”

그의 어머니는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 직후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학교에 사표 낼 것을 종용했다. 남자 선생님들과 시시덕거리고 의자에 엉덩이를 나란히 붙이고 앉아 피아노를 치는 꼴을 봐줄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강요 때문에 퇴직 후 곧바로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음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급기야 자신의 삶을 애통해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가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이라고 후회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성장기 동안 어머니를 보면서 결심했다. 결혼한다면 아내의 사회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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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적극 지지해주는 남편이 되어야겠다고. 그런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의젓한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전문직 여성과 결혼했고, 아내의 사회생활을 적극 지지했으며, 대화가 통하고 능력 있는 아내를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아내가 집안 살림을 전담하지 않아 초래되는 불편은 감수할 수 있었다. 대신 경제적 여유가 있었고, 재능있는 한 여성을 지원해 준다는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내의 시간을 자신보다 아내의 상사가 더 많이 사용하는 것에 화가 났다.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활짝 웃고 있는 아내의 엠티 사진을 볼 때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승진하면서 지방으로 발령 나자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때까지 그는 한번도 아내를 경쟁 상대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직장생활을 지지할 때도 자기가 아내를 배려하고 보살핀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내의 승진과 지방 발령 앞에서 그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놀랐다. 아내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한다면 그것은 집안의 기둥이 자신이 아니라 아내라는 증거 같았다.

최근 들어 남자들이 가장 난감해 하는 대목은 여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리적인 힘으로 하면 한주먹감도 안되는 여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성적 대상일 뿐인 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적으로 남자의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여자가 이제는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 상대가 된 것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여자가 경쟁자가 된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여자를 상사로 모시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여자 상사와 함께 일하게 된 남자들은 온갖 고약한 방법을 동원해 여자 상사의 업무 수행에 걸림돌을 놓기도 한다. 권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여자 상사도 남자 부하를 다루기 어려워한다. 여자들의 승진은 자주 단발성 의례처럼 보인다.

사회에서 여자와 경쟁해야 하는 것보다 고약한 일이 남자들에게 또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여자들의 무의식에 있는 ‘페니스 엔비’와도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니스 엔비’는 서너살 무렵의 여아들이 자기에게 고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갖게 되는 특별한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남아 선호 사상이 뚜렷한 사회에서 남자 형제와 비교, 차별당하면서 자란 여성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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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서양 정신분석 이론이 없어도 이해할 만한 시기심이 쌓이게 마련이다.

성장기에 남자 형제를 향해 만들어 가진, 그러나 표현하지 못한 경쟁심은 결혼 후 남편을 향해 터져 나온다. 내면에 억압된 페니스 엔비 때문에 어떤 아내들은 남편의 성공조차 기뻐하지 못한다.

“남편이 승진하는 것보다 내가 아름다운 문장을 한 줄 쓰는 게 더 중요해.”

소설가인 친구의 고백이다. 또 다른 친구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할 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남편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놀란다고 한다.

“저따위 인간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하다니…….”

◉ 파트타임 결혼을 꿈꾸는 남자

■ 남자의 결혼

그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였다. 십대인 두 아이와 아내를 영국으로 유학 보내고 덩그러니 큰 집에 혼자 남았다. 아이들을 따라 간 아내도 그곳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혼자 남은 그는 한 지방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영국에 있는 세 가족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부쳤다. 그는 외로워 보였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도 반마디도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대학 후배였다. 동문 모임에서 가끔 볼 때마다 얼굴이 까맣고 까칠하게 변해갔다. 경제적인 압박도 부담이 되고 있었다.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놨는데 부동산 경기는 침체되고, 지나치게 예술적으로 지어진 집도 문제여서 물건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영국에 있는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공부도 잘해서 아주 보람있어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전공을 찾아낸 아내도 만족스러워 했다. 모든 가족이 행복한데 그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만이 힘없고 지쳐 보였다. 하루빨리 집이라도 팔리면 한숨 돌릴 텐데……하고 그의 동기가 곁에서 거들었다.

그는 가부장제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 세대의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들은 가족에 대한 무한 책임은 있지만 그에 따르는 권리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가족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다보니 아내는 남편을 편하게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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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물류창고 쯤으로 여긴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워서,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요즈음 자주 외롭고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예전의 가부장제하에서 아버지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조건으로 무한 권력을 누렸다. 가족들의 복종과 존경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고,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도 있었다. 능력만 되면 첩을 얼마든지 거느려도 좋았다. 결혼제도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교환이어서, 다른 생존법이 없던 그 시절의 여자들은 경제력 있는 남자의 다섯째 부인이라도 되어야 했다. 그런 관행 속에서 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의 가슴은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본처의 자녀가 엄마 심부름으로 어떤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광경을 목격한 충격, 아버지가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던 날의 눈이 멀 것 같은 햇살, 아버지의 외도는 특히 딸의 정체성 형성에 해악을 끼친다.

물론 애첩들의 자식도 고통받는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유 없는 비난과 비밀의 분위기를 몸에 두른 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혹을 갖는다.

한때는 나도 남편의 어깨에 걸터앉아 가부장제의 단물만 빼먹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편이 땀 흘려 산 집을 내 명의로 해 놓고, 남편의 급여 통장을 관리하면서 용돈만 지급하는 일은 얼마나 고소할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애초에 왜 남자들은 그토록 모든 것이 가장에게 집중된 가부장제를 만들어냈는가 질문하고 싶지만, 질문하기도 전에 한 동년배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가부장제, 그거 우리가 만든 거 아니야.”

사실 가정의 운영 방식은 국가의 통치체제를 모방한다고 한다. 군주제나 일인독재 시대의 가족제도는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방식이 된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후 가부장제는 해체되고 있으며, 집안 권력은 가족구성원 모두에게 민주적으로 분산되어 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책임과 의무만은 나뉘지 않아 여전히 가장의 어깨에만 유독 무거운 짐이 놓여 있는 듯하다. 남자들이 여성에게 권위를 나누어주기 두려워하는 심리도 한 이유일 것이다.

■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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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무렵 소개팅으로 만난 한 남자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단지 식사만 함께 했을 뿐인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안 썼으면 좋겠는데……”

또 다른 사람은 두 번째 만남에서 결혼에 대한 환상을 펼쳐보였다. 그가 결혼 후 가장 원하는 것은 ‘아내가 아침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속맘으로 슬그머니 그를 딱지 놓았다.

또 한 남자는 첫 만남을 약속한 후 그날 만날 때까지 한시간 반 동안 다섯차례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출발 한다고…, 차가 막힌다고…, 이제 차가 잘 빠진다고…, 등등, 나는 그를 만나기도 전에 속으로 퇴짜를 놓았다.

성장기에 권위적이고 통제하는 아버지 밑에서 참고 희생하며 사는 엄마들을 보며 우리 세대 여성들은 이렇게 다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우리 세대보다 한층 귀하게 자란 후배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남편으로부터 공주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 귀하게 자란 아들들도 물론 왕자 대접을 원한다. 아버지처럼 살고자 하는 남자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여자가 만나 결혼하면 그들은 어김없이 이혼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미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는 1970년대에 미국 사회에서 이혼이 증가하는 현상을 개인들의 나르시시즘(자기애, 자기도취) 때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어느 집에서나 자녀들을 금쪽처럼 키우는데 결혼 후 여자들은 성장하는 동안 배운 적 없는 헌신, 배려, 시중들기를 해야 하니, 그것을 잘 해 낼 리가 없다.

물론 가부장제의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장으로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아버지 세대의 삶을 답습할 수 없다. 더 솔직한 고백에 따르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중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가족을 심하게 통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처럼 될까봐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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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남자의 생존법

얼마 전, 한 문단 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그 무렵 환갑을 넘긴 한 원로 작가 선생님이 분위기가 편안해지자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평생 남자인 척하며 살기가 참 힘들었어.”

그분의 목소리는 담담한 편이었는데 그 순간 어쩌자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절절한 이해와 공감의 마음이 일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나왔다.

“선생님, 저는 평생 여자인 척하면서 사는 게 힘들었어요.”

그다지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마주 앉은 그분과 나는 공감의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예술가는 내면의 여성성, 남성성을 모두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은 남자인 척하기 힘든 만큼 보통 남자보다 여성성이 많이 의식화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자인 척하기 힘들 만큼 내면에서 남성성으로 분류되는 요소가 자주 발현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측면들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할 뿐 아니라, 심지어 참하고 온순한 여자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삼십대 내내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태도를 취할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상냥하고 온순하고 순종적이고 등등의 모습을 갖출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내가 선택한 생존법은 ‘가만히 있기’였다. 문단 행사나 뒤풀이 자리에 가면 입에 지퍼를 닫고 구석 자리에 찌그러져 있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느끼고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이지 동년배 남성들이 농담처럼 ‘문단에서 재미없는 여자 베스트 3’을 뽑았는데 영광스럽게도 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내 고충을 길게 나열한 이유는 남성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만큼 스스로에게 ‘남자다움의 짐’을 부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책임과 의무, 용기와 기백, 상명하복과 무리에 헌신하기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힘이 세고 싸움을 잘하고, 아프거나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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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도 울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바보 같은 음담패설도 잘하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등등. 인류 역사와 함께 이어져온 ‘남자답다’는 말 속에는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미지도 들어 있다. 전쟁이 없는 현대에는 경쟁이서 승리하는 것을 남성다움이라 여긴다.

물론 여자들도 ‘여자답다’는 말에 묶여 왜곡되어 있다. 비현실적인 몸매를 꿈꾸고 자연스러운 본성을 억누르면서 교태의 콧소리를 익힌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나라일수록 여성들이 더욱 ‘여자다워’ 보인다. 화장을 짙게 하고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옷차림을 한다.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보장된 나라 여성들은 옷차림이 실용적이고 화장도 연해 보인다.

■ 역할에 매달리는 남자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는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아이가 무엇을 하든 불안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물려준다.

어린 시절부터 남자들은 부모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한다. 가족을 구원하는 작은 영웅이 되고자 하고, 엄마를 즐겁게 하는 마스코트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하지 않는 엄마의 남편 역할을 대신 하고자 한다. 가끔은 반항아, 가족의 희생양 역할을 떠맡기도 한다. 그것이 어떤 역할이든 아이들은 그 가족 속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성인이 되면 남자는 자기가 하는 역할을 통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기 역할을 정해 놓고 그것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가 그의 정체성이 되고, 직장에서 하는 일이 그를 정의하는 언어가 된다. 결혼하면 가장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어떤 남자들은 역할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군인, 교사, 목사는 역할을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그가 교사라면 자기가 옳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누구든 가르치려 들 것이다. 그가 군인이라면 강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식들이 강하게 자라도록 몰아세울 것이다. 그가 목사라면 자신이 옳고 바르다는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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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가족들을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다. 그들이 자녀들은 부모에게 적응하여 무기력한 모범생이 되거나, 부모에게 반항하여 자립심 강한 문제아가 되거나 한다.

물론 여자들도 가끔 역할과 사랑을 혼동한다. 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편을 사랑했는데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지 조목조목 꼽으며 말했다. 그녀의 역할 수행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만 그녀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듯 했다. 밥상을 차리고 와이셔츠를 다리는 게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손을 잡고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그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힘들다고 말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사랑과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은 아내로서의 역할 이행과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 부모 그 지독한 영향

앞서 언급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을 때, 글의 초입부터 품었던 의문이 있었다. 모리 선생님은 왜 병으로 파괴되어가는 육체를, 죽어가는 자기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온 국민에게 드러내고 싶어했을까. ‘나이트라인’은 그의 인터뷰를 방영한 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자 그의 근황을 두번 더 취재 방영했다. 그러니까 모리 선생님은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병에 의해 허물어져가는 육신을 전국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나는 한 개인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스승 중 한 분은 연세가 들어 바른 모습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일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절제미에 매료되어 나도 그렇게 나이 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모리 선생님의 태도가 다소 의아했을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 의문에 대한 답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 모리가 8세 때 입원해 있던 어머니의 사망 전보를 받음. 러시아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영어를 몰라 모리가 사망 통지서를 읽음

- 그 후 모리의 아버지는 강도를 만나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시체 안치소로 가서 아버지 시신을 확인하면서 결심

누구든 포옹과 키스와 작별인사 없이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화나 전보를 받고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그는 남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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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지인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살면서 형성되는 정체성의 절반은 부모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생의 목표는 대부분 부모의 꿈이거나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보상받고자 하는 노력이다.

후배 여성들을 보면 그들의 성장 환경과 생존법이 보인다.

- 양귀비꽃처럼 꾸미고 과도하게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옷차림으로 모든 이들을 유혹하려는 여성 : 내면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 가시 돋친 모습으로 꾸미고 자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함 : 누구의 도움도 사랑도 필요 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절실히 외부 도움을 필요로 함

-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의 여성 : 이상화된 부모의 이미지를 스스로 체현

강압적이고 지배하는 부모는 아들에게 소심한 성격을 부여하고, 관대하고 허용적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는 아이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아이가 무엇을 하든 불안해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물려준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자신이 성취하는 것들을 통해 부모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성인이 된 후 사회에서 권위자의 인정과 지지받기를 그토록 원하는 것도 그같은 유년기 욕망의 연장이다.

남자답다는 환상을 이루려는 노력도,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노력도 참 고된 일로 보인다. 남자들의 그런 노력이 언제나 어떤 대상을 향해 안간힘을 쓰며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게 애써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고작 실존에 대한 증명과 외부의 인정이라니. 그런 것 없이도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좋을 텐데 싶다.

한 외국 정신과 의사의 책에서 읽은 글이 기억난다. 그의 남성 내담자들은 “요즈음 기분이 어떠세요?” 하고 물으면 하나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그 질문을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며 그런 것은 왜 묻느냐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사실 내면에는 남자들은 너무나 사랑을 갈구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면 남자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감정을 억눌러왔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법이라고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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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불이 나면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보다는 뛰어 들어가 아이를 구한다든가, 수술대에서 칼을 휘두르면서도 두려움으로 뻣뻣해지는 일이 없다든가, 자식과 아내를 위해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면서도 자신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남자들의 큰 장점이다. 그들은 무감각함으로써 이득을 볼 수가 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감정을 배제하면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스티브 비덜프의 ‘남성심리학자가 남자에게 말하는 생’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남자들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여자들의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더 자상하게 언어로 감정을 표현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섣부른 요구는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맞는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남자의 언어는 경쟁이나 공격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 그 남자가 달리는 이유

남자들은 언어나 눈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거나, 잇몸에 피가 나도록 양치질을 한다. 일요 축구회나 동네 스포츠 모임, 등산모임은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여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의식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정서를 치유한다.

실제로 한 지인은 일요 축구회에서 뛸 때마다 몸에 부상을 입곤 했다. 조심해야지 다짐하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져서 본인뿐 아니라 상대 선수까지 부상을 입혔다. 경기가 끝나면 미안해서 거듭 사과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또다시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그는 몸에 무수한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일요 축구회에서 제명당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야 그는 자신이 내면에 분노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에는 지나치게 온순하고 예의바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분노는 오직 축구장에서 표출되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남자 출연자들이 떼거리로 등장해서 달리고, 숨고, 찾아내고, 또 달리고……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처음 그 프로그램을 봤을 때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만나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 ‘달리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껏 동네를 누비면서 뛰노는 어린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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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지 못한 젊은이들의 놀이인가 싶었다. 무조건적인 경쟁에 몰두하는 남자들의 무의식을 표현하여 시청자들을 사로잡는가 싶기도 했다.

더 나중에야 그것이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달리는 그들의 행위 속에 감정의 모든 요소가 표현되고 있었다. 호의와 신뢰, 배신과 분노, 환희와 좌절 등이 화면 전체에 흘러넘치는 것이 보였다. 직접 운동장을 달리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들도 모르는 내면 감정들과 무의식적으로 접촉하는 듯 했다.

■ 술과 함께 삼키는 것

한 남자가 아버지를 잃은 친구를 위로하는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다. 그 남자는 친구를 찾아가서 침묵 속에 잠시 앉아 있다가, “술이나 하자”면서 그를 술집으로 데려가서는 “한잔해라”면서 술잔 가득 술을 부어주었다. 그러고는 정치와 스포츠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워나갔다. 장례는 잘 치렀는지, 마음이 어떤지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것으로 모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술을 따라주는 것이 안부를 묻는 일이고, 술잔을 서로 부딪치면서 상대를 위로하고, 각자 자기 잔의 술을 마심으로서 슬픔을 느낀다. 술자리에 마주 앉기, 함께 술 마시기, 함께 취하기,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남자는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할 줄 모르고, 상대방을 감싸안아 편안하게 해주는 행동을 할 줄 모른다.

술자리는 그 자체로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그들은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 술을 마시고, 기쁘다고 말하는 대신 노래방에 가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른다. 우리나라 특산품인 ‘폭탄주’의 이름은 그 술잔을 돌릴 때 남자들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은유이다. 남자들은 감정의 폐쇄회로를 열면 공포, 분노, 슬픔 같은 것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과 접촉하면 고통스럽고 아픈 나머지 통제력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억압된 내면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폭탄 같은 감정들과 맞닥뜨릴까봐 겁낸다.

어느 자리에선가 한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남자들은 술자리에서 왜 그토록 여자를 필요로 하는지. 그 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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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단 둘이 있을 때, 혹은 남자들끼리만 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얼마나 파괴적이 되는지 말해주었다. 화제는 저열한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작은 일로도 극단까지 대립하며, 곧잘 파괴적인 분위기로 치닫는다. 하지만 그곳에 단 한명이라도 여자가 있으면 남자들은 부드러워지고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여자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게임의 룰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남자들은 술자리라는 감정 표현 방식에서조차 자신과 상대를 보호할 안전장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좋아하면서 자기들의 언어가 여자들의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자기들의 언어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데 반해 여자들의 언어는 산만하고 무질서하다고 폄하한다. 남자들이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말은 부드러운 위로와 사랑의 말일 것이다.

◉ 남자가 자동차를 사랑할 때

■ 남자의 사물

허준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는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 영화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했던 역할, 상대를 유혹해서 적당히 지내다가 홀연히 떠나는 행위를 여주인공이 맡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의 권력을 여주인공이 쥐고 있었다. 그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지위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성 관객들이 환호했던 것만큼 남성 관객들은 노골적으로 그 영화를 기피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나란히 앉아 있는 남자에게 처음 건네는 유혹의 언어는 이렇다.

“소화기 사용법 알아요?”

남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소화기 겉면에 씌어 있는 사용법을 읽어준다. 그렇게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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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애가 끝난 후 여주인공은 또 다른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소화기 사용법 알아요?”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언어는 권력자인 남성들의 것이다. 보통의 여자는 남자를 유혹할 때 대체로 상대를 칭찬해서 남자의 영웅심을 자극하는 말을 건넨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해서 남자를 권력자라고 느끼게 하거나, 상대방에게 무조건 동의하면서 상대가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유혹의 기교를 사용한다. 어떤 여자도 유혹하는 상대에게 감히 이것 아느냐, 저것 아느냐고 질문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자서전, 회고록뿐 아니라 소설, 드라마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심지어 그런 저열한 문화를 가까이 하지 않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느낌까지 담아 말한다. 대신 그들은 사물들에 대해 말한다. 사물들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의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들, 애착, 애통함, 아쉬움, 거부감, 부러움 등을 담는지 모르는 채 자기들이 감정을 훌륭하게 감추고 있다고 믿는다.

어릴 때 읽었던 연애 지침서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자가 말을 걸기 쉽도록 물건들을 가지고 다녀라. 산책을 갈 때는 애완견을, 거리를 걸을 때는 주간지를, 하다못해 옷깃에 눈에 띄는 장신구라도 달고 다녀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저 내용을, 남자들이 사물을 매개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 사물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여자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지만 그것은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보석류, 명품 가방, 옷과 구두, 그것은 대체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할 물건들에 애착을 보인다. 시계, 안경, 만년필, 오디오, 레코드 골프 클럽, 장인이 만든 칼이나 구식 사냥총 등등. 요즈음 젊은이들 중에는 프라모델(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부품들을 조립하여 완성시키는 장난감)을 모으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작은 사람들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마음껏 조종,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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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여자끼리 모여서 ‘결혼해서 안 되는 남자는?’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통적으로 1순위에 올린 남자는 ‘마마보이’였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남편이라는 아이를 키워야 할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와도 갈등을 겪어야 할 게 뻔하다. 특히 그런 이들의 내면에 만들어져 있는 ‘이상화되고 미화된 어머니의 환상’이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그밖에 바람둥이 남자, 폼생폼사 남자, 취미생활이 과도한 남자, 예술가 등의 답이 있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동업자 부류가 결혼 기피대상이 된 점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여성들은 예술가가 지닌 비현실적 면과 경제적 무력함을 언급했다. 눈치 빠른 여성들은 예술가가 절박하게 자기표현을 필요로 하는, 이미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게 틀림없었다.

그 중 의외의 답은 ‘특정한 사물에 수집 취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본질을 꿰뚫는 여자들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저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을 모시고 숭배한다면 자칫 사물들을 물신의 자리에 세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은 대체로 내면 어딘가에 결코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구멍이 있어 그것을 메우려는 노력으로 사물을 끌어 모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사랑하는 이들이고, 사람과 나누어야 할 애착을 사물에게 쏟는 것이다.

■ 자동차라는 숭배의 대상

한 때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이십년 쯤 된 자동차를 소유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는 자동차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지, 비가 오면 지하주차장으로 옮겨서 비를 맞지 않게 하고, 해가 나면 지상으로 옮겨 햇빛과 바람을 쐬게 해주었다. 물론 사람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춥거나 더운 날에도 자동차를 지하로 옮겼다. 지상에서건 지하에서건 할아버지는 자동차를 소중히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관리했다. 가끔은 멋을 낸 옷차림에 백구두를 신고 그 연회색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그 아파트에는 또 유모차 비슷하게 생긴 노인용 보행기를 몰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은 아파트 화단 한켠에 플라스틱 화분과 스티로폼 상자를 늘어놓고 고추며 상추를 가꾸곤 했다. 할머니의 채소들이 푸르게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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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을 보고 한번은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말을 붙였다.

“어쩌면 채소를 이렇게 잘 키우셨어요?”

할머니는 조용히 웃으셨다. “손길이 많아 가겠어요”라고 덧붙여도 구개를 끄덕이기만 하셨다. 그러더니 문득 “그때 다시 영감 집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하고 여쭈어 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하셨다.

할머니의 남편은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평생 수시로 매를 맞아 왔는데, 늘그막에 노인회관에서 만난 ‘젊은 할망구’와 바람이 나서는 더 심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할머니는 맞다가, 맞다가…… 죽을 것 같아서“ 아들네 집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컵라면에 소주만 먹고 있더라”는 딸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고는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때 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그때 더 지독하게 맞아서 몸이 다 망가졌지.”

짐작하셨겠지만, 자동차를 애지중지 쓰다듬고 관리하는 그 할아버지와 망가진 몸으로 채소를 가꾸는 할머니는 부부였다. 할아버지의 자동차는 연식에 비해 새 차처럼 반짝거렸지만,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보였다. 할아버지가 자동차에 쏟는 사랑과 보살핌의 절반 만이라도 할머니에게 쏟았다면 그들 부부의 노년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남자들에게 자동차는 애인이나 물신에 가까운 애착과 숭배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남자에게 자동차 운전대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일은 마치 아내를 빌려 주는 일과 같다. 자동차에 흠집이 났다는 것은 심장에 쇠못이 박힌 것과 비견될 만한 일이다. 여자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가방이 있다면 남자에게는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든 핸드백이든 그것이 그저 사용하는 물건일 뿐이고, 그것도 편하고자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 여자 몸을 바라본다는 것

■ 남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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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을 목격한 것은 대학 입학 직후, 낯선 서울의 적막한 한낮 거리를 걸을 때였다. 이차선 도로 앞으로 죽 늘어서 있는 상가들 앞길을 지나다가 잡화점 앞 양지쪽에 쪼그려 앉은 노인을 보았다. 그는 작고 마른 몸피에, 얼굴과 손은 주름과 검버섯으로 덮여 있었다. 허리가 굽어 의자에 앉는 것조차 불편한 듯 곁에 나무의자를 두고도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그런 자세로 허공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마치 태양으로부터 하루치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듯했다. 허공 한 지점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얼핏 태양신을 경배하는 듯 경건해 보이기도 했고, 마지막 생명을 소중히 음미하는 듯 간곡해 보이기도 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노인의 시선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듯 시선뿐 아니라 고개도 천천히 돌려지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젊은 여성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살랑거리는 짧은 봄치마 차림이었다. 얇은 원피스 끝자락이 허벅지에 닿아 찰랑거릴 때마다 햇살이 함께 튕겨 나왔고, 햇살은 다시 스커트 밑으로 뻗은 다리를 타고 날렵하게 미끄러져내렸다.

노인은 간절하고도 경건한 눈빛으로, 그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의 움직임을 좇아 노인의 고개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아간 후에도 여자의 뒷모습이 거리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당시 성인의 문턱에 막 들어선 나는 그 장면에서 어떤 충격을 받았다. 걸을 힘조차 없어 보이는 노인에게도 여자의 몸을 보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구나. 여자의 몸을 보는 동안은 놀라운 집중력과 경건함을 발휘하는구나. 그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 암각화처럼 기억에 새겨졌고, 한없이 쓸쓸하면서도 비루한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표상처럼 여겨졌다.

남자가 무엇을 바라볼 때, 그것은 욕망하는 대상이 된다. 남자는 욕망하는 대상을 찾기 위해, 호감이 가고 매력을 느끼는 여자를 찾기 위해 사냥꾼이 사냥감을 찾듯 두리번거린다. 거리를 걸으면 수많은 남자들의 시선이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 시선이 어떤 변별점을 갖는가도 알 수 있다.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외출하면 얼굴에 와닿은 시선이 오래 머무르고, 화장기 없이 부스스한 차림으로 외출하면 얼굴에 와닿은 시선이 그냥 미끄러져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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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자도 무엇을 바라본다. 여자가 무엇을 바라볼 때도 그것을 욕망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남자든, 명품 가방이든, 호화주택이든,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와 여자가 남자를 바라볼 때는 의미가 달라진다.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길을 걸으며 쇼윈도우를 바라 볼 때 두 사람은 각각 보는 대상이 다르다. 남자는 비록 옆에 여자가 있어도 쇼윈도우 안에 있는 점원 여성을 바라본다. 물론 욕망하면서. 여자는 쇼윈도우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을 욕망의 대상에 올려놓은 채. 여자들은 같은 여자를 볼 때에도 그녀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누구의 연인인가. 얼마나 힘있는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인가. 얼마나 돈 많은 남자를 애인으로 가지고 있는가.

■ 대놓고 즐기는 쾌락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그곳의 어학원에서 열 살 이상 어린 젊은이들과 어울려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체로 동양권 나라에서 유학 온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은 금요일 저녁이면 클럽에 몰려가곤 했다.

학생들이 가벼운 알코올음료를 주문한 후 작정한 듯 플로어네 나가 춤을 추었다. 요가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몸의 움직임을 즐기듯 그들도 댄스 자체를 즐겼다. 그것이 외롭고 막막한 이국생활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그들만의 방법이라는 사실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이미 관절이 녹슨 듯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끼던 나는 거의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그 사내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모두들 플로어로 나가고 나면 주변 테이블에 남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 역시 나처럼 젊은이들의 동작을 감탄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고, 나처럼 플로어에서 춤추는 이들보다 열 살 이상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그 역시 나처럼 안경을 쓰고 있었고, 어딘가 먹물이 밴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시선에 담긴 리비도의 분량이었다. 시선에 담긴 리비도의 분량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래 전 골목에 쭈그리고 앉은 노인의 눈빛에서 간절한 그것을 본 이후, 그런 눈빛의 공통점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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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시선 중에서도 즐기는 시선, 음미하는 시선, 집어삼킬 듯 한 시선의 강도와 질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늘 젊은 여자의 몸이 있었고, 그 몸이 관능적인 요소가 담긴 동작을 취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의 몸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붙박인 듯 긴장되고 고정된 자세를 유지한 채 오직 시선만으로 모든 향락을 즐겼다. 그의 눈빛은 보고 있는 대상을 꼭꼭 씹어서 음미한 후 꿀꺽 삼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두꺼비집 퓨즈가 끊어지듯 눈을 감으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럴 때면 마치 백 미터 달리기를 전속력으로 마친 사람처럼 거센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그곳을 방문한 세차례 모두 그는 그곳에 있었다. 그는 늘 혼자 그곳을 찾는 듯 했고, 그 의식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듯 보였다.

고사성어 ‘견물생심(見物生心)’의 그 ‘생심’이 곧 리비도의 생성, 향유, 분출의 싸이클이라는 사실을 그를 통해 자세히 확인한 듯하다. 프로이트적 발달단계에서, 온 몸에 퍼져 있던 리비도가 성기에 모이지 않고 퇴행하여 특정 신체기관인 시선에 고착된 것을 관음증이라 한다. 유아기에 시각적으로 과다한 성적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그 기관이 영구적으로 성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눈은 성적 장기가 되고, ‘본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사실을 넘어 쾌락 그 자체가 된다.

비단 그 사내만이 아닐 것이다. ‘본다는 것’은 현대 남성들이 대놓고 자유롭게 누리는 쾌락으로 보인다. 사진이나 영화는 모두 관음증에 부응하여 발전해 가고 있는 문화적 산물이 아닐까 싶다. 걸 그룹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삼촌 부대 역시 본다는 것의 쾌락을 즐기고 그것에 길들여지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 모든 응시는 사악하다

오래 외국에 살다 온 한 남성 지인이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들에게 느낀 불편함에 대해 불평한 일이 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훑듯이 바라보기까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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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을 결례로 여기는 문화가 많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타인을 유심히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칠 때면 우연히 스쳤다는 듯 빨리 시선을 피하거나, 웃음을 띠며 ‘나는 당신에게 적의가 없습니다’하는 정보를 보낸다. 우리가 자주 거리에서 만나는 것과 같은 무뚝뚝하고 화난 듯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불평이 두 번, 세 번 반복되자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가 타인들의 시선에 대해 가진 특별한 감정 그것은 대체로 유아기에 만들어진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근거 없는 것이다.

“있잖아, 오래도록 나는 길을 가다가 누가 나를 쳐다보면, 아, 내가 예뻐서 바라보는구나, 생각했어.”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것 역시 내가 유아기에 만들어 가진 오류이고 정신 분석을 받은 후에야 알아차린 무의식이었다.

하지만 시선에 담긴 인지 왜곡과 견물생심의 요소를 제거하더라도 여전히 ‘본다는 것’에는 박해의 요소가 있다. 청소년들이 패싸움을 한 이유를 듣다보면 그들이 단순히 ‘쳐다봤다’거나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싸움 상대를 제압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도 ‘눈 깔아’이다. 본다는 것이 본래 리비도적 요소인 것처럼 그 속에는 본래 공격적인 요소가 있다. 에로스(사랑의 욕구)와 타나소스(죽음의 욕구)가 등을 기대고 있는 한몸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관음증에도 당연히 가학증, 피학증이 뒤섞여 있었다.

히틀러의 총통 관저에서 밤을 보낸 후 르네 뮐러가 차이슬러 감독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녀는 히틀러와 함께 있었고 그가 자기와 성 관계를 가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은 둘 다 옷을 벗었고, 침대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히틀러가 마룻바닥에 엎드리더니 자기를 발로 차라고 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럴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거듭 간청하였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비난하고, 스스로에게 모든 종류의 죄명을 퍼붓고, 고통스럽게 기어다녔다.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그를 발로 찼다. 그러자 그는 매우 흥분되었다. 그는 더욱더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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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탐욕을 낳고, 탐욕은 시기심을 낳으며, 시기심은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성을 낳는다.

◉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창구

■ 남자의 성적 관계

이집트 룩소르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카르나크 신전을 관람하고 있는데, 이집트인 청년들이 다가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무슨 말인가를 건넸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인줄 알고, 알았다고 하면서 카메라를 건네받을 시늉을 했다 그러자 청년은 그게 아니라고 손짓하면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보디랭귀지를 전했다.

손가락을 내 쪽으로 가리키며 “나랑 사진을 찍자고?” 하고 물었더니 환하게 웃으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순진해 보이는 십대들이었다. 물론 거절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 사진이 어떻게 쓰일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인에게서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선배는 최근에 네팔 여행을 다녀왔는데, 현지인 여행 가이드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젊은 청년인 가이드는 선배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그 청년이 한국인 여성과 나란히 서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사진 속 여자는 선배도 알만한 여성 작가였다. 청년은 사진 속 여자를 가리키며 자기 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와 뜨겁고 행복한 밤을 보냈다고도 했다. 선배는 네팔인 청년의 말을 믿었던 듯하다. 그러니 여행에서 돌아와 어느 자리에선가 그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테고, 지인은 그것을 내게 전했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던 이집트 청년들이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면 그 역시 친구들과 한국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와 함께 황홀한 밤을 보냈다고 떠벌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자들의 에너지가 본질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곳이 성적 관계인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자끄 라깡은 남자의 특성을 요약하는 한 단어를 제안했다.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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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parade), 즉 구애용 과시이다. 수컷 두꺼비가 몸을 부풀리거나 수컷 공작이 깃털을 펼쳐 보이는 행위 같은 것, 평범한 남자도 제복을 입고, 어깨에 견장을 달고, 머리에 높은 모자를 쓰고, 요란한 음악에 맞추어 과장된 걸음으로 걸으면 자기가 멋지게 느껴지고, 여자 눈에도 ‘있어 보인다’

남자들이 성에 대해 그토록 과장되게 떠벌리는 첫 번째 이유는 구애용 과시일 것이다. 자기와 잔 여자의 수를 부풀려 말하는 배경에는 성적 능력에 대한 불안감, 남자들끼리 느끼는 경쟁심도 작용할 것이다. 실망감을 준 섹스에 대한 보상 행위에서 환상적인 섹스를 지어 말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마다 편안하게 욕구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 여자에 대한 복수심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 유혹하거나 유혹 당하거나

내게는 여자를 유혹하는 일이 스포츠 경기나 시시한 일상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면서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여자를 꼬일 때 처음부터 솔직하게 내 소개를 했다. 그 일에 자신을 걸었기 때문에 명예를 걸고 도전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기 위한 장소로 곧잘 공원을 선택하곤 했다. 도시 한복판에서부터 줄곧 뒤쫓던 여자를 유혹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과, 실패했을 때 혼자서 넓디넓은 도시 어딘가를 정처없이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는 쓸쓸함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위 문장은 삐에르 쌍소의 ‘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의 한 대목이다. 그 책은 2002년 프랑스에서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2003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까사노바, 돈 후안을 잇는 21세기형 유혹자의 일기 같은 이 책에서 저자는 “가면 뒤에 자신을 숨기는 유혹자가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유혹자의 삶을 선택했다”고 천명했다.

많은 여자를 뒤쫓아다닌 그가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인간으로서 서로 이해받는 일이었다고 한 다 그는 친밀한 관계, 이해받고 소통하는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 보면 그는 관계를 파괴하고 떠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유혹의 모든 계곡과 해변을 거닐어본 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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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쓰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덧없는 유혹의 유희를 그만 두련다.”

저자는 모든 행위를 그만두고 첫사랑의 경험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생의 시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남성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만약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다음 두 가지의 경우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좋은가? 첫째, 집 안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식탁에는 맛난 저녁상이 차려져 있는데, 아내가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은 채 부스스한 모양새를 하고 있을 경우, 둘째, 집 안은 난장판이고 물 한 모금 마실 게 없지만 아내가 막 샤워를 끝낸 모습으로 향기를 풍기며 웃어주는 경우.’

질문하는 상대에 따라 수사나 과장법의 차이는 있지만 질문의 의도는 같았다. 식욕, 성욕, 안정감에 대한 욕구 등 인간의 세 가지 기본 욕구 중 성욕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남자들이 성욕, 성기능을 자기 정체성만큼 중요시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질문 받은 남성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두번째 경우를 선택했다. 대체로 뭐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보느냐는 투였다. 특별히 나르시시스트인 사람은 내 질문을 자기에게 건네는 유혹의 언어로 오해하기도 했다.

남자들에게 성적 능력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가끔 궁금했다. 그들에게는 왜 성적 능력과 자신감이 비례하는지, 왜 성적 능력을 사회적 역량이나 정서적 안정감과 같은 것으로 느끼는지, 성욕을 해소하지 못한 남자는 왜 로켓포처럼 위험해지는지, 왜 어떤 남자들은 성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공격성까지 동원하는지, 왜 성적으로 거절당한 남자는 간혹 상대를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기까지 하는지, 한 진화심리학자는 남자의 성욕과 성기관의 작동 방식에 대해 ‘자연의 유일한 실수’라고 표현했다.

섹스는 남자들이 모든 감정과 욕구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창구이다. 그들은 섹스를 함으로써 안정감, 이해받는 느낌,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불안하고 우울할 때뿐 아니라 외로울 때, 파트너와 화해하고자 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여자가 요구하는 친밀한 감정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을 때 섹스를 한다. 그토록 다양한 의미를 담아 두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는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일이 절박하다. 가끔 남자들도 자기의 성기관을 불편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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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다. ‘불수의근(의지와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근육)’이라는 책임 회피성 이름을 붙이고 그것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움직인다고 발뺌하고자 한다. 그들은 감정 표출을 두려워하면서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욕에 대해서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 분노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 남자의 폭력성

남자들 사이에는 ‘먼저 도장 찍는 놈이 임자다’라는 속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거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도 말한다.

“여자들이 ‘노’라고 말하는 것은 ‘예스’의 다른 표현이다”라고 믿는 남자도 있다. 저 모든 표현들에 담긴 행위가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남자들은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성적 관계 바로 뒤에 이어 폭력성을 말하는 것은 남자의 성이 자주 폭력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성욕과 공격성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어서, 성폭행처럼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삼년쯤 전 한 지방 도시 기차역 통로에 커다랗게 걸린 플래카드를 본 일이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성폭행은 범죄입니다.”

처음에는 잘못 읽었는가 싶었다. 국어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면 온 국민이 성폭행이 범죄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뜻이었다. 진실은 후자였다. 우리 사회는 여자를 상대로 하는 각종 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는 중이고, 그러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 것도 최근의 일이다.

나는 가끔 ‘남자답다’는 말의 가장 큰 희생자는 남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자다움 속에는 얼마간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고, 그 폭력성은 부메랑처럼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간다. 대부분의 황혼 이혼은 남편의 폭력을 참아온 아내들의 결정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데이트 강간으로 결혼한 사람의 비중도 높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폭력의 징후들은 자녀에게 대물림되어 자녀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만들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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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폭력과 사랑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집에 바래다주겠다며 줄레줄레 따라와 차 한 잔만 마시자고 겨울 밤거리에서 삼삽분 이상 실랑이하는 남자의 행위도 자칫 사랑이라고 믿는다. 원한 적이 없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내밀고는 보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불같이 화를 내거나 자해 소동을 벌이는 남자들에 대해서도 여자들은 마음이 약해진다. ‘얼마나 내가 좋으면 저럴까.’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도 남편이 꽃을 선물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대로 용서한다. 폭력의 강도가 심할수록 선물이 비싸져서, 아내들은 그것을 또 사랑의 강도라 느낀다. 심지어 남편의 폭력과 행패를 피해 쉼터로 피신 온 여성도 하룻밤 자고나면 퍼렇게 멍든 눈두덩을 문지르며 남편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랑처럼 이야기한다. 자기가 당한 폭력은 남편이 자기를 ‘너무 사랑해서’그랬다고 믿는다.

2012년 겨울에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역사와 치유’라는 주제의 강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 그중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가 ‘폭력 사회, 폭력 가정’이라는 주제로 2회에 걸쳐 강의했다. 그는 수많은 범죄자를 프로파일링한 결과 모든 범죄자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선과 악, 죄와 벌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혼돈을 맞았다고 말했다. 강의에서 그는 여성단체에서 규정한 데이트 폭력 위험요소를 소개했다.

1.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을 요구한다.

2. 질투심이 강하다. 이성 친구와 교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3. 빈번하게 전화나 문자를 하고, 바로 답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4. 옷이나 마리 스타일에서 자기 취향을 강요한다.

5. 데이트 내용을 전부 본인이 결정한다.

6. 손을 잡거나 팔장을 끼거나 항상 만지자고 한다.

■ 폭력은 범죄입니다

나의 여성 지인 한 사람은 자신의 자동차를 왕국처럼 치장해 가지고 다닌다. 그녀의 자동차에는 한 달쯤 집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일체 생활용품이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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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분 속옷 및 겉옷, 몇 켤레의 구두, 특수 제작한 접이식 책상, 노트북, 카메라, 몇 권의 책, 음악 CD, DMB TV, 쿠션 담요 등.

“나는 여차하면 지갑과 자동차 키만 가지고 튀어.”

‘여차하면’이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 걸까 생각하는데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그것도 못 챙길 때에 대비해서 자동차 키와 신용카드 한 장을 옆집 아줌마한테 맡겨뒀어.”

그녀의 남편은 결혼 전에는 폭력적인 기미가 전혀 없는 점잖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으로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사정은 잘라졌다. 그는 성적으로 심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고 서서히 폭력의 징후를 보이더니 마침내 아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여성단체에서 규정한 폭력 위험요소는 다음과 같다.

7. 여자의 의견, 주장을 못 받아들인다.

8. 교제 상대를 소유물처럼 여긴다.

9. 콘돔 사용을 꺼린다.

10. 여자의 가족을 욕한다.

11. ‘너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며 상대를 협박한다.

12.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하면서 화를 낸다.

여성단체에서는 위의 열두 가지 요소 중 세 가지 성향 이상이 보이면 데이트를 중단하고 헤어지라고 권유한다.

남성 중심 사회가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물화시키는 폭력성 외에도, 우리처럼 위계질서가 엄격한 나라의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특별한 폭력성이 있다. 그것은 폭력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현상이다.

강원도 지방 아리랑에 이런 곡조가 있다.

“아범은 어멈치고, 어멈은 아(아이) 치고, 아는 개체고, 개는 꼬리 치고.”

사랑도 폭력도 낮은 곳으로 흐른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 아팠던 대목은 ‘개는 꼬리 치고’였다. 폭력을 당하고도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꼬리를 쳐야 하다니. 그 행위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섞여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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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싶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대체로 자기들보다 지위가 낮다고 여기는 여자에게 돌아간다. 아범은 어멈을 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아내에게 자주 화를 내는, 세 살 아래인 남자에게 왜 그렇게 아내에게 화를 내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의 행위를 알아차리고 그 원인을 찾아내어 개선했으면 싶어서 건넨 말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마누라한테 화 좀 낼 수도 있는 거지. 그럼 어디 가서 화를 내겠어요?”

그는 폭력의 물 흐름 현상을 깊이 체현하고 있었다.

2014. 5. 28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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