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6. 14:54ㆍ독서후기
지성에서 영성으로
■ 이어령 지음
0 1934년 충남 온양 출생
0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중앙일보 상임고문, 문학사상 주간
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대회 조직의원장
0 88올림픽 개폐회식 및 식전 식후 행사 주관
0 초대 문화부 장관
0 저서 : 흙속에 저 바람속에, 축소 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각 등 다수
■ 서언 : 지성에서 영성으로
요즘 나는 70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삽니다. 세례를 받은 것과 시집을 낸 것이 그렇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그것을 점잖게 알츠하이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꼭 그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은 한 가지 이지만 묻는 사람들의 말투는 제각기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하는 안티크리스천들은 경멸조로 묻고, 카뮈의 경우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금시 혀라도 찰 듯이 혹은 한숨을 쉴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내뱉듯이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누구도 내 면전에다 대고 ‘글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어느 새 나를 ‘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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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30대에 쓴 글들인데 나는 그 책 제목 그대로 신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기성의 모든 권한에 대해 거부하는 몸짓으로 살아온 무신론자였지요. 저항과 부정(否定)의 삶 ‘허공을 향해 독침을 찌르고 땅위에 떨어져 죽은 웅봉(雄蜂)의 시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처절한 삶이었지요.
세례를 받기 전인데도 말입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생활하던 것처럼 일본 교토의 연구소에서 홀로 지내던 그 시절 남몰래 써 두었던 몇 편의 시를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일기를 쓰면서 간간이 써오던 시를 발표하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2008년에 처음 출간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였습니다.
50년 동안 언어 노동자로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시에 대해서만은 자의든 타의든 성역으로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세례와 시집을 통해서 한꺼번에 자신도 모르게 두 성역을 침범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신학적이든 미학적이든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누군가가 나무를 자르는데 여섯 시간을 나에게 준다면 나는 그중 네 시간을 도끼를 고르는데 쓰겠다”고 한 링컨의 말과는 정반대로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 두 성역의 높은 문지방 위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나에게 있어서 시와 종교는 동전의 안과 밖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던진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의 시작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세례를 받을 때까지의 내 일상을 수상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 이 책입니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인도한 내 딸 민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권말에 그 간증을 함께 엮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책 제목은 대담하게 붙였지만 나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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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교토에서 찾다
1. 쌀 한 자루 영혼 한 자루의 무게
과학의 실험에 의하면 영혼의 무게는 1온스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라면 한 젓가락의 무게 밖에 안 되는 영혼이 있기에 무신론자들도 이따금 기도를 한다. (1온스 = 28.3495g)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제가 세례를 받기 3년 전(2004) 일본 교토에서 쓴 글입니다. 남들은 시(詩)라고도 하지만 그저 내적 독백을 메모지에 옮겨 놓은 글이었지요. 수퍼에 가서 장도 보고 밥도 지어먹으면서 부산 피난 시절의 학생 때처럼 혼자 지내던 때의 일입니다. 하지 않던 일이라도 힘도 들고 혼자 지내는 것이 무척 외로웠었나 봅니다.
더구나 그날 저녁, 슈퍼에서 싸게 파는 특상품 쌀을 보고 앞뒤 가릴 것 없이 자루째 사들고 나온 것이지요. 택시로는 너무 가깝고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그런데도 택시를 타면 싸게 산 쌀값의 의미가 없어지니까 객기로 숙소까지 걷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손에 든 쌀자루는 그냥 가득한 바구니가 아니었지요. 손에 들어도 어께에 메어도 점점 무쇠처럼 무거워졌고 숙소 건물은 한 걸음 다가가면 두 발짝 물러선다는 마법의 성처럼 보였습니다.
그 쌀자루의 무게에 비해 내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멕시코의 감독이 만든 영화 <21그램>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인간 영혼의 무게는 라면 한 젓가락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이 있지요. 실제로 미국 매세추세스 병원에서는 임종 직전의 말기 결핵 환자를 3시간 40분 동안 체중의 변화를 관찰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숨을 거두는 순간 그 환자의 몸무게가 1.25온스 줄어든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2년 반 뒤에도 임종 직전의 다섯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해보았더니 역시 영혼의 평균 무게는 1온스였다는 것입니다.
꾸민 이야기가 아닌 모양입니다. 최근에도 스웨덴의 룬데 박사팀이 정밀 컴퓨터 제어장치로 그 실험의 진위를 검증해보았더니 임종시 환자의 체중 변동은 21.26214그램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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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왔는지는 몰라도 겨우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득 한 번도 펴보지 않던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21:28)
전등불이 별빛으로 보였습니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제단으로 보였습니다. 아무 장식도 걸리지 않은 벽이 장막처럼 쳐져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경건하게 무릎을 꿇었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무신론자들도 기도를 드린다는 모순 어법을 그때 찾았습니다. 쌀 한 자루의 무게와 영혼의 무게를 그때 처음으로 저울질 해 보았습니다. 빛의 무게, 향기의 무게, 공기의 무게, 영혼의 무게는 그냥 가벼운 것이 아니라 하늘로 상승하고 있었지요.
많은 사람들은 쌀자루를 채우기 위해서 기도를 드리지만 오히려 이 무신론자는 무거운 쌀자루를 비우고 내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방안을 물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채우기 위해서 기도를 올렸던 겁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내 방을 빛과 향기로 채우기 위해서.
2. 창조의 힘 흉내내기
나는 창조의 힘을 믿습니다.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신을 믿게 되고 신의 존재 즉 창조자로서의 힘을 결국 인정하게 됩니다.
조나단의 갈매기들처럼 사람들 역시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 저공비행을 합니다. 높이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서도 말입니다. 기도는 고공비행을 위한 비상(飛翔)입니다. 기도를 할 때 이상(李箱)의 <날개> 마지막 장면처럼 불현듯 내 겨드랑이가 가려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건 마감 시간에 쫓기며 쓰던 글과는 다른 것이었지요. 남 보라고 쓰는 글도 내가 보기 위해서 쓰는 글도 아니었습니다.
나만이 아닐 겁니다. 먹을 것이 족하고 목을 적실 물이 넘쳐나도 그리고 또 추위를 막아주는 단단한 벽이 있어도 어디엔가 나처럼 무거운 쌀자루를 내려놓고 빈방에 앉아서 몰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무신론자들이 많을 겁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체, 강한 체 오기를 부리다가도 누가 옆에서 조금만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면 금시 울음을 터뜨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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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 무신론자이기에 그 기도는 더욱 절실하고 더욱 높게 울릴 수 있지요.
지금까지 세계는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잖아요. 영혼과 육신, 지성과 영성, 마귀와 천사, 땅과 하늘, 순간과 영원 그리고 불신자와 신자. 하지만 저녁이 되고 황혼이 땅으로 내려앉으면 빛과 어둠의 경계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는 그레이존의 노을이 뜹니다. 마치 하나님의 영이 공허와 흑암의 물위를 떠다니시는 창세 이전의 공간과 비슷한 그런 시간 말입니다.
젊은 시절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창세기를 자주 읽었지요. 무엇보다도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는 구절이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돌연히 그것도 말씀 그대로 빛이 되는 창조의 순간. 그래요. 시인도 그러한 빛, 창조의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걸지요. 하지만 어느 말, 어느 음악, 어느 그림이 천지 창조 첫째 날 같은 감동을 자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대목을 보십시오. 창조는 바로 만족이요 그 기쁨이었던 것이지요. 아주 짧은 한마디 말이지만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조물에 대한 감상법. 하나님은 만드시는 분이요 동시에 그것을 감상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딱 한 번 만드시지요. 빛을 하늘을 그리고 땅을 두 번 만드시지 않아요. 인간은 하나님을 흉내내 무엇인가 만들지만, 똑같은 것들을 수십 번 수백 번 만들면서 그때마다 불만과 후회와 아쉬움에서 한숨을 쉽니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이를테면 창조한 것에 이름을 다는 명명작업(命名作業)으로 창조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시인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만들어진 낯선 것에 이름을 지어 부르시는 호명작용(呼名作用), 글 쓰는 사람들의 최고 최대의 꿈이 바로 새롭게 인식된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시를 안다면 시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이해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등을 돌리겠습니까? 무신론 유신론의 벽을 깨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도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창조주의 권능으로 별을 만들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이지요. 내 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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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가슴속에 존재하지 않는 별 하나를, 마음속에 반딧불 만한 별 하나라도 지닐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을 위해 내 안의 모든 말들을 다 바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무쇠처럼 굳어진 저 시장바닥의 사람들 가슴을 풍금처럼 울릴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쓰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천지 창조 엿샛날 같은 느낌으로 최초의 아담 같은 마음으로 시 한 줄을 쓸 수만 있다면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말입니다.
3. 메멘토모리
숨 쉴 때마다 그 호흡 속에 그분은 계신다.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를 때 그분은 그곳에 계신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왜 창조인가. 왜 인간이 창조를 말하는가.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것이 창조의 욕망입니다.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창조력입니다. 문학을 하게 된 것도 그리고 마지막에 세례를 받게 되는 것도 그것은 아마 여섯 살 때 체험한 ‘메멘토 모리’의 말 때문일지 모릅니다.
<메멘토 모리>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 죽음의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 / 아무리 부드러운 포대기로 감싸도 / 수의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 잠투정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한밤에 눈을 뜨면 / 어머니의 숨소리를 엿듣던 / 긴 겨울 밤 / 어머니 손 움켜 잡던 / 내 작은 다섯 손가락
애들은 미꾸라지 잡으러 냇가로 가고 / 애들은 새둥지 따러 산으로 가고 / 나 혼자 굴렁쇠 굴리던 보리밭 길
여섯 살배기 아이의 뺨에 무슨 연유로 / 눈물이 흘렀는가. / 너무 대낮이 눈부셨는가. / 너무 조용해 귀가 멍멍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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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렁쇠 굴리다 흐르던 눈물 / 무엇을 보았는가. / 메멘토 모리 / 훗날에야 알았네 / 메멘토 모리
‘메멘토(Memento)’는 라틴말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의 시에서 쓴 그대로 친구도 없이 혼자서 대낮 보리밭 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 가다가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여섯 살짜리 아이가 무엇 때문에 울었을까요. 그리고 비밀처럼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고 혼자 마음 속에 간직해 왔을까요.
메멘토 모리는 나와 나 아닌 사람 그리고 나와 나 아닌 사물들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지요. 아이에게는 신과 다름없는 어머니와 나에게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날의 눈물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밤에 혼자 눈을 뜨면 어머니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벽시계의 시계추소리만이 들려왔지요. 그럴 때면 몰래 주무시는 어머니의 코에 고사리같이 작은 손을 대봅니다. 그리고는 뜨거운 숨결을 느끼고 나서야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듭니다.
백년도 실지 못하는 인간들이 돌을 쌓아 천년가는 성과 도읍을 세우는 까닭도 생명이 쉬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때부터 나의 곁에는 늘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새끼손가락에 와 닿는 어머니의 입김을 느끼고 나서야 잠이 드는 여섯 살짜리, 그 양 볼에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된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를 통해 어머니와 나의 관계,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가까워집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모든 창조는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죽음의 의식 없이는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입니다. 죽음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 이 원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무신론자는 아멘이라고 하지 않고 메멘토 모리라고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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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교토 시절만 해도 나는 신 없는 이방의 사람으로 주님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만의 일이 아닐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죽는다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말끝마다 좋아죽겠다고 하고 슬퍼죽겠다고 우스워죽겠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배고파죽겠다고 하고 배가 부르면 이번에는 배불러 죽겠다고 하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런 동족들이 싫었고 부끄러웠지요. 하지만 죽음은 삶의 극한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메멘토 모리라는 것을 알았지요.
‘살기죽기’라고 하지 않고 ‘죽기살기’라고 말하는 사람들, 햄릿의 대사도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라고 번역하는 사람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인이야말로 메멘토 모리의 철학적 종교적 민족이 아니겠는가.
남의 나라 말에는 자기가 죽는 것과 남을 죽이는 것이 확연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한자어를 보세요. 죽는 것은 ‘사(死)’이고 죽이는 것은 ‘살(殺)’이지요. 일본 말로는 죽다는 ‘시누’이고 죽이는 것은 ‘고로스’입니다. 영어는 'dead'와 'kill‘, 불어는 ’mort'와 'tue‘이지요. 그런데 유독 한국말에는 그렇게 죽는다는 말을 많이 쓰면서도 ’살(殺)‘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죽인다‘는 ’죽다‘의 사역동사였던 것이지요. ’먹다‘와 ’먹이다‘처럼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널 죽인다‘라고 하지 않고 ’너 죽을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입니다.
감동적인 순간 최고의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순간 한국의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인다’ ‘죽여준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때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짜리의 종교적 충동을.
4. 아버지의 이름으로
“당신이 위키피디어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이 위키피디어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인터넷 백과사전의 이 선전문에 하나님이란 말을 대입해보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섬을 갖고 삽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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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교토생활 역시 그런 표류도에서의 삶이었고 그 섬을 통해서 조금씩 영성의 키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키는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가 봅니다.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이란 또 어찌하리오’라는 고려 때의 노래 청산별곡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백수연까지 치르신 아버지의 곁에는 텔레비전만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녁 뉴스 시간마다 아나운서가 나와 인사를 하면 아버지도 텔레비전 화면에 대고 “안녕 하슈”라고 인사를 나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텔레비전 앞에 돌아와 앉으시면 “미안하우”라고 또 인사를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젊은 애들은 치매에 걸리셨나 보다고 수군대기도 합니다.
“이 바보들아, 그것은 치매가 아니라 고독이라는 거다.” 이제야 나는 큰 소리로 외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리석은 녀석들을 꾸짖습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도 텔레비전 앞에 혼자 앉아서 아나운서와 눈을 맞춰 인사를 하시던 아버지와 똑같은 심심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완고한 유교 집안이었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노인정보다 그곳에서 보내시는 시간이 더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기도를 하실 때면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고 애썼지만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전통적인 기독교 정신은 바로 저런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도는 언제나 전쟁을 하거나 기근으로 죽어가는 먼 나라의 얘기부터 어느 날 태풍이나 홍수로 가족을 잃은 난민들을 보살펴 주라는 기도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긴 기도의 끝에 이르러서야 한국과 가족에 대한 기도를 하셨는데 그것도 아주 작고 멋쩍은 소리로 혹시 남은 복이 있으면 우리, 어린 손자들에게도 좀 나눠 줍시사라고 끝을 맺으십니다.
자기 애들한테는 보리밥 먹이고 모르는 손님한테는 쌀밥을 내놓는 마지막 한국인이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부터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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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입니다. 6·25의 피난길에서도 남의 밭을 밟지 않으시려고 먼 길로 돌아오시는 바람에 우리는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그 고독한 빈자리를 위하여 말할 사람이 없어 혼잣말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의 불빛을 위하여 나는 천한 노예처럼 책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럴 때 가끔 미국에 살고 있는 딸 민아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처음에는 반갑다가도 전화를 한참 하다보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오랜만인데도 민아는 내 이야기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지요.
“야 하나님 아버지만 아버지냐. 이 땅에 살고 있는 아버지도 있잖니?” 몇 번이고 긴 통화를 막고 핀잔을 주려다가 참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똑똑했던 아이가 어떻게 하다가 광신적인 아줌마와 다름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그것이 싫었습니다. 대학 전과목을 스트레이트A로, 그것도 영문과, 불문과 복수전공을 3년 만에 마치고 조기 졸업을 한 소문 난 재원이었지요. 압니다. 자식자랑 하는 것이 삼불출의 하나라는 것을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지금 자식자랑이 아니라 자식 흉을 보며 불평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영문학을 하겠다고 미국 유학을 가 석사까지 마치고 어느 날 갑자기 법대로 옮겼다는 거지요. 그리고 그 어려운 바 시험(변호사 자격시험)을 단번에 패스하여 로펌에 스카웃되어 변호사 일을 한다고 기뻐했더니 또 그 좋은 직장을 팽개치고는 TV드라마처럼 흉악범과 맞서 싸우는 여검사가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크리스천이 되어 오로지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혼자 아이들을 기르고 암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을 하고 있을 때도 지상의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란 텔레비전 앞에 앉으셔서 저녁 뉴스 시간마다 아나운서와 인사를 나누시고 말을 건네는 외로운 나의 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었지요. 남들이 망령 났다고 수근대던 그런 아버지 그래서 분노의 목소리로 아버지 대신 큰 소리로 이 바보들아 라고 외치고 싶었던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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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설거지를 할 때가 왔구나
불멸의 식욕을 만들어 내는 요리술이 연금술이라면 설거지는 버릴 것과 씻을 것을 가려내는 신판이요 판결이다.
* 신판(神判) : 어떤 주장이나 고발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방법 내지 판결의 한 종류, 신의 계시에 의존했던 고대적 판결행위의 하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창조의 시간과도 비슷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다못해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거기에는 날 것들이 불 속에서 서서히 변화해 가는 과정 그리고 전혀 다른 맛과 형태로 바뀌어 가는 생성의 즐거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만큼 만들 때와 먹고 난 뒤가 다른 것도 없을 것입니다. 포식 끝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음식 찌꺼기들은 더 이상 어떤 식욕의 대상도 아니고 창조의 상상력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물도 아닙니다.
설거지는 단지 어두운 하수구로 흘러가는 고통의 상징. 희망 없는 노동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엌일을 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먹어치운다’는 말은 아마도 한국어에만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본말에는 설거지라는 고유어가 없이 그냥 ‘사라 아라이(접시닦이)’라고 합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죠. 그러니 남의 나라 말에 어디 한국말 같이 먹어치운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귀찮아서 음식을 먹어치우는 이 기상천외한 일은 인간이 먹는 어떤 식사 행위의 항목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설거지는 가사노동 중 가장 불명예스런 일로, 그것은 소비와 부패에 관련되는 일입니다. 설거지에는 아주 작은 비전이나 상상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 설거지의 노동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먹어치우는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다. 잉여를 없애기 위한 식사……. 어쩌면 여기에 바로 현대인의 특성이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교토에 와서 꼭 한 달쯤 되던 날입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스 크루소와 여러모로 닮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죠. 연구소에서 도심지로 나가자면 버스로 족히 30분은 걸립니다. 가봤자 난파선으로 헤엄쳐 가서 찾는 물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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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있으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하는 로빈슨과 똑같은 짓을 합니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 것도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했던 일과 똑같습니다.
무엇보다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것 까지 같았지요. 로빈슨 크루소는 섬에 표류하자마자. 상인답게 매일 장부를 적듯 일어난 일들을 빼놓지 않고 적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생활할 때 본질적으로 겪는 고통은 혼자라는 사실이었지요. 인간사회에서 절연된 그 무인도에서는 런던에서 살았던 자신의 신분이나 배경과 같은 신분, 소속의 모든 것들이 아무 소용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절실히 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표류생활 중 가장 두렵고 놀라운 경험을 했던 것은 해안가에서 사람 발자국을 발견했을 때의 일이었지요. 그처럼 절실하게 사람을 찾고 그리워했는데 막상 사람의 발자국을 보았을 때 그는 공포로 온 몸이 얼어붙고 맙니다.
인간에 대한 똑같은 생각이 내 가슴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지요. 연구소 생활이 표류도처럼 느껴질 때 가장 그리운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말을 나누고 식사하고 즐겁게 놀고 싶어질 때가 있었던 것이지요.
한 옆으로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하면서 살아온 한 달, 동굴 벽에 가위표로 표시하듯 지나가는 날짜와 시간을 가슴 위에 칼질하면서 살아온 한 달, 한국이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들입니다. 이제 지금껏 내가 남긴 것들 내가 먹다 만 그 음식들을 설거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내가 그동안 벌여 놓았던 것들을 먹어치울 시간, 설거지를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이제 내 탐욕스러운 식탁을 깨끗이 치울것이며 테이블보를 더 정갈한 것으로 갈아야 할 것입니다.
무인도가 아닙니다. 로빈스 크루소의 움막집이 아니라 이제 정갈한 집을 꾸며서 마르타와 마리아처럼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내 일기장에 쓴 시가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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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 다만 숟가락 두 개만 놓을 수 있는 / 식탁만 한 집이면 족합니다. / 밤중에는 별이 보이고 / 낮에는 구름이 보이는 / 구멍 만한 창문이 있으면 족합니다.
비가 오면 작은 우산만 한 지붕을 / 바람이 불면 외투자락만 한 벽을 / 저녁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 놓을 때 / 작은 댓돌 하나만 있으면 족합니다.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 다만 당신을 맞이할 때 부끄럽지 않을 / 정갈한 집 한 채를 짓게 하소서 / 그리고 또 오래오래 / 당신이 머무를 수 있도록 작지만 흔들리지 않는 / 집을 짓게 하소서.
기울지도 / 쓰러지지도 않는 집을 /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는 집을 / 내 영혼의 집을 짓게 하소서.
6. 끈을 잘라라
개목걸이 같은 끈이 속박하거든 그 끈을 끊어버리라. 묶지도 말고 묶이지도 말자.
교토에 와서 생활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시작한 것입니다. 트레이닝 차림으로 심호흡을 하면 기도로 흘러들어가던 공기 방울들이 폐부에서 터지는 감촉을 느낍니다. 기체로 변한 청량음료입니다.
연구소 뒷문 산모롱이 길에는 개를 끌고 나온 아침 산책객들로 분빕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몸집이 작은 사람은 도사견 같이 큰 개를, 몸집이 큰 사람들은 발발이 같은 작은 개를 끌고 나오는 것이 이상합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사람들은 산책길에서 마주쳐도 예외 없이 골난 사람처럼 외면을 하지만 개들끼리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짖으며 달려가거나 싸움을 걸고 등에 올라타려고 하거나 혹은 빙빙 돌면서 서로 냄새를 맡으며 떠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그리고 남자든 여자든 개를 끌고 나온 산책객들의 보행은 개의 걸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가 다른 개를 보고 달려가거나, 길거리의 무엇을 보고 냄새를 맡거나 개가 배설을 할 때 그것을 치우기 위해 익숙한 솜씨로 뒷시중을 드는 것을 보면 누가 주인인지 구별하기 힘듭니다. 어쨌든 서로를 묶는 하나의 끈에 매달려 그들의 산책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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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이들처럼 끈에 매달려 살고 있지요. 나는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속에 얽매인 끈에서 벗어나 영혼을 해방시키려는 욕망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소유의 끈, 정의 끈, 육신의 끈 모든 욕망의 끈을 놓아야만 합니다. 내가 망명객처럼 잠시 내 집과 내 나라를 떠나 이곳에 온 까닭도 그러한 목걸이의 끈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같았으면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시선의 구속을 느꼈겠지만 여기서는 아주 자유롭습니다. 누구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들개처럼 뛰어 다닐 수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숲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목수가 아니라는 것을 신에게 감사합니다. 목수들은 숲을 보지 못합니다. 나무에서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책상이나 의자를 봅니다. 인간이 자연물을 무엇을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개목걸이의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나는 나무를 자유로운 거리에서 바라볼 수가 있듯이 이국의 모든 풍경과 뉴스와 그 이방의 사람들을 아무 부담 없이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 생활을 하는 지금의 내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지 겨우 하루가 지난 그때부터 새로 만나는 사람과 새로 구한 물건들로 나에게도 개목걸이의 끈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버리고 버려도 쓰레기통을 비우고 또 비워도 하루치씩 온갖 생의 찌꺼기들이 쌓여갑니다. 미구에 쓰레기가 될 물건들이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의 끈입니다. 사람들을 피해 이곳에 왔는데 사람들이 그리워 치와와 같은 애완용 개목걸이를 구하러 다닙니다. 개를 끌고 산책을 하는 저 많은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것 없이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7. 휴일에 갈 곳이 없는 사람들
빈 시간이 두려워 일을 합니다. 백지가 두려워 글을 씁니다. 일본인이 일 중독에 빠진 것과 크리스천이 전인구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함수관계
안식일, 노는 날, 공일, 홀리데이 - 웬만하면 일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공백의 날에 교회에 나가 파이프 오르간 소리라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안 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나는 신을 믿기에는 일상의 끈이 밧줄처럼 튼튼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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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달력에 무슨 성자의 이름이 찍힌 그런 노는 날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합니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이 두려워 혼자 걸어서 가 봅니다.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새들처럼 둥지로 돌아갑니다. 귀소 본능의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도심에서 외곽도로로 빠져나갑니다. 원래 세븐 일레븐은 아침 일곱 시에 문을 열고, 밤 열한 시에 문을 닫는다는 뜻으로 붙여진 미국 체인 편의점의 이름입니다. 열 시에 문을 열고, 저녁 여섯 시면 문을 닫아버리는 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에 들어오면 아예 24시간 영업으로 전향됩니다.
시간을 상품화하는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그것을 더욱 철저하게 개발해 ‘시아게(마무리)’한 것은 일본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로 미국 모회사를 삼켜버렸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세븐 일레븐에서는 상품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와 24시간 뜬눈으로 일하는 근로상품까지 끼워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본에는 참 많은 도시락이 있습니다. 미국, 중국, 이탈리아 음식까지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담는 방식과 용기를 일본식으로 개발해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오늘 저녁 나는 초밥 도시락이 아니라 식빵을 사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웬지 초밥을 사서 가면 내 자신의 모양이 궁상스러울 것 같아서입니다. 식빵은 그보다는 덜 산문적이지요. 만지는 감촉도 좋아요. 부드럽고 사람 살처럼 약간 탄력있는 식빵 봉지에서는 먼 곳에 있는 서양의 냄새가 납니다.
어렸을 적 위궤양으로 밥을 드시지 못하고 식빵을 잡수셨던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빵은 거룩한 성서에도 수없이 많이 나오고 대학시절 내 젊음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은 딜런 토머스의 시에서도 나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빵 덩어리지만 시인의 식탁에 오르면 호밀밭에 불던 바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붉은 포도주는 남국의 파란 하늘과 뜨거운 여름 햇볕으로 환원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살이요 피”라고 하던 예수님의 최후 만찬의 빵과 포도주의 성스러운 이미지는 인간의 육체와 그 관능의 뿌리를 적시는 섹스의 성적이미지와도 융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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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핑계 저핑계를 대봤지만 세븐 일레븐에서 빵을 산 것은 결국 예수님 최후 만찬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혼자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이것은 내 살이니라 이것이 내 피”라고 빵을 저미어 주는 예수님의 향기로운 손을 상상해 봅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일요일을 공일이라고 불렀던 생각납니다. 한자말인 공일은 텅 빈 날이라는 뜻입니다. 서양에서 노는 날은 성자들이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홀리데이(성스러운 날)이라고 부릅니다. 토요일처럼 반공일도 그들은 ‘하프 홀리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반만 성스러운 날이라니……. 그러면 반은 속된 날인가. 그러고 보면 확실히 무신론자들의 공일은 설자리가 없는가봅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빈 것을 견디지 못하지요. 그래서 무엇인가 의미로 채우려고 기를 씁니다. 일기를 쓴다는 것, 그것도 결국 빈 종이의 하얀 공백을 문자로, 의미로 메워가는 행위인 것입니다.
8. 신앙에 이르는 병
변고를 통해서 건강을 발견하는 것처럼 변고를 통해서 우리는 치유의 하나님을 만난다.
“감기에 걸렸다. 두려워하던 것이 왔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다음 월요일에도 일본은 공휴일이라 병원이 문을 닫는데 병에 걸린 것이다. 한국에서 지어가지고 온 감기약을 먹었다. 그러나 밤새도록 열 때문에 환몽속을 헤맨다. 가끔 꾸는 꿈이지만 아산 방조제 같이 바다로 뻗어 있는 뚝길을 걷는다. 좌우로 파도가 치는 험한 바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한발한발 나간다. 의지할 난간조차 없다. 그리고 건너야 할 뚝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열이나면 늘 이런 꿈을 꾼다.
교토에서 쓴 일기장을 뒤지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이방의 땅에 살면서 제일 무서웠던 것이 병나는 것이었던가 봅니다. 일기장에 는 거의 한 달 가까이나 병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지요 누구나 병에 걸리면 자신의 몸 전체를 느낍니다. 자기와 제일 가까운 것이 자기 몸입니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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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는 것은 바로 내 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제일 가깝다는 자기 몸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숙(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맑고 코막힌 소리도 나지 앟는 것을 보면 감기가 나았나 봅니다. 나만 아파하다가 인숙이의 병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자가 각자의 병을 앓습니다. 부부이면서도 남처럼 그렇게 자기 감기를 혼자서 앓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숙이의 맑은 목소리를 듣자 내 병이 난 것처럼 마음이 개운하고 생기가 돕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많이 걱정을 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부부란 너무 가까운 존재여서 나도 모르게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정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사랑은 외모로 말로 몸짓으로 나타나지만 정은 조용히 지열처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맨 밑바닥에서 타오릅니다.
감기가 아내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객지에서 한 달 가까이 혼자서 감기를 앓으면서 느낀 것은 인간은 혼자서 병을 앓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었지요.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자기 병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존재는 병이고 병을 통해서 우리는 남과 어울립니다. 병을 앓게 되면 자신이 혼자인가 아니면 남과 함께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호사다마가 아니라 다마호사도 있는 모양입니다.
앓고 나면 큰다지만 나도 이번 감기가 나으면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웃어봅니다. 기침을 하면서 아직 살아 숨쉬는 허파를 느끼면 즐겁게 웃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감기가 나아 병으로부터 벗어나면 새 구두라도 사 신고 예배당을 찾아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상온보다 높은 바이러스의 신열이 나와 아내를 그리고 나와 예수님을 가깝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 나이에 누구에겐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게지요.
결국 종교와 가장 가까운 것이 인간이 종교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병이라는 생각에 머리맡의 체온계를 치웠습니다. 모든 병 속에는 종교의 광맥이 묻혀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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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찐 새는 날지 못한다
비만은 나태인가. 나이가 들면 살이 찌는 것은 지방을 연소시키는 열정이 모자라서인가. 비만은 건강이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감기도 계절도 바뀌었습니다. 객지에 와도 철은 신기하게도 똑같이 바뀝니다. 겨울옷을 벗고 좀약 냄새가 날 것 같은 춘추복을 꺼내 입습니다. 묵은 옷이어서 쪼입니다. 한해가 지났는데 어느 새 몸이 또 불었나 봅니다. 이제 내 지방을 연소시킬 열정이 모자라 이렇게 살이 쩌 가는가 생각하니 나이 드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젊었던 시절 어떤 종교도 믿지 않던 내가 그래도 부처님보다 예수님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틴토레토의 그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화대 위에 가부좌를 하신 부처님과는 달리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너무 안타깝게도 갈비뼈가 드러나 보입니다.
우리는 연화대 위에 가부좌를 한 마른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부처님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고뇌와 해탈 - 나는 아직 고뇌의 편인데도 살이 많이 쪘으니 예수님 보기가 민망합니다. 젊었던 시절 나는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말라 있었지만 예수님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살이 찌고서야 예수님을 찾는 것이 보통 아이러니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나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본의 슈퍼에서는 ‘가데긴’ 이라는 신개발 음료수가 활개를 펴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지방을 분해해 마르게 하는 성분을 녹차에서 추출해 상품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후생성의 허가까지 받았다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 위를 축소하는 수술을 받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한국만의 애화(哀話)가 아닌 듯 싶습니다.
살찐 새는 날지 못합니다. 날기 위해, 학이 되기 위해, 옛날 우리 선비님들처럼 약초나 캐먹고 살아가는 은둔처라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근심이 모자라면 가데긴 음료를 마셔서라도 학이 되는 거다.” 그때만 해도 마른 학이 되자고 했지 예수님처럼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가는 그 고뇌의 길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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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쪄서 행복한 것은 아마도 일본 씨름꾼 밖에는 없을 상 싶습니다. 일본에 와서 취미가 생긴 것은 일본 씨름 스모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의 스모는 명치유신 때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천장에 매단 지붕도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촬영을 위해 기둥을 잘라낸 것으로 최근에 꾸민 무대장치라고 합니다. 과거를 꾸며대는 것이 장기인 일본인들은 그래서 역사도 예사로 왜곡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쥐찬 소리개들아 배부르다 자랑마라
청강 여윈 학이 주리다 부를소냐
내 몸이 한가하야마는 살 못 진들 어떠랴
그러나 지금 읽어보면 이 시조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몸이 한가하기 때문에 살이 찝니다. 쥐를 잡으러 가는 소리개들은 오히려 살이 찌지 않고 청강에 한유자적하는 사람들이 살이 찌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반영이 인간을 게으르고 살찌게 합니다. 나도 그런 부류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뒤따르던 제자들은 어떠했을까. 다빈치가 그린 최후만찬의 제자들 모습을 보면 살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네로의 향연과는 아주 다릅니다.
땅의 모순이 하늘로 올라가면 야윈 자와 살찐 자들이 죄지은 자와 정의로운 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융합됩니다 살찐 자와 야윈 자의 편을 가르며 세상을 두 쪽 난 칸막이로 바라보았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인위적으로 살 뺄 생각을 버리고 살찐 사람까지도 끌어안는 방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고민하다보면 내 지방이 타버리고 체중이 가벼워질지 모릅니다.
로마 시대에 한낱 죄수로 십자가에 처형되었던 시골 나사렛 사람이 어떻게 2천 년도 더 이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그 존재의 빛을 발하실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무신론자 반기독교인이라도 조용히 자문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 수수께끼의 하나가 긍정의 힘이라고 봅니다. 성경구절을 보면 같은 말이라고 해도 긍정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지요. 낙타와 바늘귀의 비유처럼 어렵다고 하지 않고 쉽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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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개 없이 돌아온 탕자
여태까지 난 얘한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는데, 다른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가 이 아이를 이렇게 기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방학으로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 일주일쯤 쉬는 동안 민아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에 온다는 전화였는데 나는 반가운 김에 “한국에 와서 제일하고 싶은 것이 뭐니?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 줄게”라고 큰소릴 친 겁니다. 숲 속의 요정도 아닌 내가 아무 소원이나 다 들어주겠다니 - “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고 옆에서 아내가 핀잔을 줍니다. 미국으로 떠난 뒤 줄곧 떨어져 살면서 아무 것도 해준 일이 없었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 민아만 보면 늘 엉뚱한 약속을 했던 것이지요.
보통은 여기에서 끝나는 법입니다. “됐어요. 아빠 보는 게 내 소원인데 뭘.” 글쓰기 바쁜 아버지, 책읽기에 바쁜 아버지, 항상 회의에 참석하고 없는 그런 아버지기 보고 싶어 서재 방문을 열어보면 늘 비어 있거나 아니면 책상에 구부리고 앉아 있는 아빠의 등 뒤만 바라보았던 민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아버지를 잘 알고 있는터라 시간이 없어 늘 지키지 못하는 약속을 해놓고 쩔쩔매던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던 민아 -
그러나 그날만은 달랐지요. “아빠 정말이야!” 그러더니 나보고 하영조 목사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암과 투병을 하고 있을 때 LA한인 교회를 방문하셔서 자기에게 새로운 소망과 빛을 주신분이 바로 그 분이라는 겁니다. 가까이에서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뵙고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딱하게도 이 무신론자는 그때까지 그 유명한 하 목사님을 잘 몰랐던 것이지요.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라는 성경말씀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별 면식도 없으면서 염치없이 전화를 드렸더니 사역하시느라 그렇게 바쁘신 목사님께서 기회의 문을 열어주신 겁니다. 내 아내 그리고 민아와 함께 목사님을 모실 수 있었고 비록 민아를 위한 것이었지만 덩달아서 이 무신론자까지 목사님의 축도를 외상으로 받게 된 셈이지요. 마치 크리스천이나 된 것처럼 기도가 끝날 때에는 어색하지 않은 큰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힘차게 말했지요.
사실 나는 아무 뜻도 모르고 아멘 아멘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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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멘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했나 봅니다.
성경은 세계의 모든 말로 번역된 유일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멘이라는 말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번역하지 않고 히브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 구교이든 신교이든 교파가 무엇이든 크리스천이면 모두 아멘이라는 말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11:1-4)과 마태복음(6:5-15)에서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주기도문의 끝에는 원래 아멘 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 기도가 거짓이 아니라 진실 그대로라는 것을 다짐하고 확신하는 말로 후에 신도들이 그렇게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하 목사님은 나보고 예수님 믿으라는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우리 부녀 앞에 나타나신 겁니다. 그러기에 나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지요. 두 번 다시 하 목사님을 만나 뵐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갈 길은 아직도 멀었던 거지요. 목사님이 떠나고 딸이 떠나고 아멘도 순간의 감동도 내 마음에서 떠나고 눈앞에 없으면 없는 것이라는 내 유물적 습관은 다시 컴퓨터 앞에 돌아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지요. 사소한 것들을 위하여, 잊혀지는 것들을 위하여, 그때 쓴 시가 바로 <탕자의 노래>입니다.
탕자의 노래
내가 지금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 진실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멀리 떠나고 있는 까닭은 / 아름다운 순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 사랑을 알고 진실을 배우고 / 아름다움은 보았지만 / 나에게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나의 작은 집이 방황의 길 끝에 있습니다. / 날 위해 노래를 불러줘요. 집으로 갈 수 있게 / 믿음의 빛을 주어요./ 개구멍만한 내 집이 있기에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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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낙타의 눈물
낙타도 사람처럼 우는가. 사막의 가열한 상황에서 낙타가 정말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그것은 모성애를 되찾았을 때이다. 사막을 적시는 사랑의 눈물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 하 목사님으로 부터 플러그인이라는 특별 집회가 있는데 리더십이 무엇인지 믿지 않는 입장에서 이야기 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딸의 소망으로 하 목사님을 만난 것이 처음이 아니라 교토에서 한 발짝씩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영성의 계단을 향해 조금씩 발을 옮겨가는 그 발자국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여러 이야기를 덧붙이기 보다는 그때 믿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기독교적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강연한 그 내용을 정리한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더구나 어떤 종교도 믿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무신론자로서 기도 시(詩) 한 편을 쓴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하영조 목사님은 종교와 관계없이 한 인간으로서도 너무 존경하는 분이시고 제 딸 민아에게 빛이 되어주신 분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보답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저의 딸 민아의 서원은 저와 함께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은총 받고, 제가 크리스천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자주 읽습니다만 교회에 나간 것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따라 몇 번 놀러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이 과연 무엇인지 밝히기 전에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이상한 퀴즈 문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낙타도 인간처럼 눈물을 흘릴까요?”
어떻습니까.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는 영혼이 있는 인간만이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혹은 도수장으로 끌려갈 때 분명 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거나 들었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서양 속담도 있으니 감정이 없어도 우는 것처럼 보이는 짐승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낙타는 웁니다. 큰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슬피 웁니다. 몽골의 여자 감독이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장면에 실제로 그런 장면이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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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런데 낙타는 어느 때 그리고 왜 우느냐? 그것이 아주 극적입니다.
낙타는 특별한 생명장치를 지니고 있는 짐승입니다. 등에 물주머니 구실을 하는 혹, 모래바람을 막는 긴 눈썹 그리고 성격도 매우 특이하다고 합니다.
프랑스 말에도 ‘낙타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기주의자를 가리키는 욕이라고 해요. 저는 가끔 성서에 나오는 말을 검색하는 것을 즐기는데 언젠가 낙타라는 말을 찾아봤더니 60행에 걸쳐 63번이나 나오더군요. 별로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그 유명한 구절만 해도 낙타가 나올 자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으니까요. 원전대로 하자면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랍어로 밧줄은 ‘gamta'이고 낙타는 ’gamla'로 t와 l 글자 한 자의 차이로 밧줄은 낙타가 될 수도 있고, 낙타는 밧줄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그 때문에 그 한 자 차이의 잘못으로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니라”로 와전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밧줄이든 낙타이든, 낙타는 사막지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짐승인데도 양처럼 인기가 있는 짐승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새끼를 낳아 놓고서도 간혹 돌보지 않는 모성애 없는 이기적인 낙타들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어미에게 버림받은 새끼는 불쌍하게도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몽골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런 매정한 어미를 다스리는 독특한 비방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아주 놀랍게도 그 어미 낙타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몽골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마두금이라는 현악기를 낙타 앞에 놓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연주회를 엽니다.
그러면 마두금 연주와 할머니가 부르는 구슬픈 가락을 듣고 낙타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린 낙타는 모성애를 되찾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정을 들여 잘 키운다는 거지요. 감동이라는 말은 ‘느낄 감(感)’자에 ‘움직일 동(動)’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느껴야 움직입니다. 이 감동을 주는 힘이 바로 음악이요 예술입니다.
왜 교회에서 찬송가 소리가 울려 나오는지 아시겠지요. 찬송가 한 번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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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백번 기도하는 것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악에는 초월의 힘이 있어요. 생각의 힘보다 더 크고 깊은 느낌의 힘이 있습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서 박수를 치고 노래 할 때에 제일 먼저 찾아오는 변화가 바로 초월적인 감정입니다. 예술성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숨어 있던 사랑을 되찾고 되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모성애를 잃은 낙타를 울리는 음악이 하물며 믿음과 사랑이 크신 여러분들의 마음을 어찌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낙타의 눈물과 마두금이 음악-리더가 누군가를 이끌어 가려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영혼을 일깨워서 눈물을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돋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 무지개가 생깁니다.
12. 예술의 힘과 사막의 사자
권력과 금력 앞에서 사람들은 무릎을 꿇지만 스스로 좋아서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낙타는 무릎을 꿇고 더 무거운 짐을 지워달라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는 돈과 권력이 할 수 없는 특수한 힘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도 잘 묘사되어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학급을 지배하는 아이들은 대개 주먹이 센 아이들이었지요.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부잣집 아들 옆에 아이들이 꼬입니다. 중국집에 데려가 자장면도 사주고 영화관이나 비싼 물건도 구경시켜주니까 그런데 과연 그 아이들에게 무슨 지도력이 있어서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얼굴에 여드름이 돋고 청춘사업이 시작될 무렵의 아이들은 주먹이 세거나 혹은 부자인 친구보다 저에게 다가왔지요. 녀석들은 돈과 힘으로 좋아하는 여학생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지요. 나보고 연애편지를 써 달라는 거였어요. 돈으로 주먹으로 안 되는 게 사랑이니까 내 언어의 힘을 빌려야 여학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지도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CEO분들께 이야기를 할 때 저는 늘 문화 마인드를 가지고 매력 있는 인간이 되어야 회사도 소비자도 좋아한다라고 말합니다. 원래 문화란 말은 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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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文治敎化)의 준말입니다.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글(文)의 힘으로 상대방을 교화시켜 다스리는 방법이 곧 문화란 말의 원뜻이었습니다.
자식을 향해 발길질을 하는 낙타를 데려다가 누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까. 음악이라는 감동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노래였습니다. 이처럼, 미운 사람이나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지만 그것을 상상공간, 창조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면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처럼 여태껏 미움받던 쥐가 사랑과 꿈의 쥐로 바뀌면서 부까지 창출하게 됩니다.
저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신앙이라는 것과 문화, 예술이라는 것은 지극히 닮은 것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지요.
저 역시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키에르케고르의 미적단계 - 윤리적 단계 - 종교적 단계의 길로 향한 것이 아니라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의 손가락을 따라서 낙타 - 사자 - 유아의 삼단계 길로 간 것이지요.
낙타처럼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외로운 사막을 향해 갑니다. 더 많은 짐을 지고 가는 용기와 오기가 낙타를 사막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다 낙타는 그 사막에서 복종성, 긍정성, 그리고 수동성의 낙타의 정신에서 벗어나 부정의 정신, 용을 물어 죽이는 강력한 힘과 용기를 지닌 사자로 변신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제어하는 사막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니체의 길은 사자에서 낙타의 긍정도, 사자의 부정의 정신도 모두 지워버리고 망각 무구한 상태의 유아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왜 지도자가 될 수 없나를 말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인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지도력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은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지만 정작 자신은 사람하나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친구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보들레르나 랭보를 보더라도, 대개 예술가들은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에게 감동을 줍니다. 물귀신처럼 남을 자기 대신 어둠의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있지만 그곳에서 나와 구제의 높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없습니다. 예술가가 남 앞에 리더로 군림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 교향악단의 지휘자 정도입니다.
그런데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 보세요. 교향악단에서 지휘자는 어느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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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니까? 관객석에서는 지휘자의 등만 보입니다. 객석이 아니라 연주자 쪽만 보고 있기 때문이지요. 청중들의 표정이 어떤지 자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CEO가 회사를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큰일이 납니다. 저희는 생산만 했지, 소비자가 뭘 생각하는지 고객이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요. 연주가 다 끝나고 박수를 받을 때만이 관객석을 향합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박수를 받을 때만 관객석을 보는 지도자는 안됩니다. 또 자신들끼리만 서로 한 그룹을 이루고는 상대방이 기침 하나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악을 들으면서 기침 참는걸 보셨습니까? “좋다!”하고 추임새도 놓고 기침도 하고 별짓을 다 합니다. 음악은 연희자(행동과 대사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와 함께 있는 것이죠. 함께 음악 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판소리에서 최고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옆에서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춰주는 고수이지요. 그래서 일 고수, 이 명창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13. 양치기의 리더십
진정한 리더십은 앞에서도 아니고 뒤에서도 아니다. 그 한복판에서 양을 이끌어가는 양치기가 진정한 리더이다.
교회 지도자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청탁이었지요. 그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천년 동안 최고의 지도자 분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뭘 다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리더십이 무엇인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발자국만 좇아가면 될 일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 걸어가신 150Km의 그 길, 석가모니가 룸비니에서 갠지스강까지 걸어가신 500Km, 그것이 지도자의 길이었습니다. 양떼 모는 이야기에서 보듯, 그 길이 바로 지도자의 길이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양치는 목자로 비유할 경우 양을 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양치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알려져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양떼의 어디에 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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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지팡이 짚고, 양떼의 선두에서 걸어가면 뒤에서 양떼들이 졸졸졸 따라오지요. 목자는 리더, 양들은 팔로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양을 이끄는 지도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전지전능할 경우에만 보통의 경우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는 독재자가 아니면 독선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독재자도 못되는 지도자가 앞장서서 가다가는 낭떠러지에 모두 떨어져 죽거나 길을 잘못 들어 눈밖에 없는 설산에서 굶어 죽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와는 반대로 목자가 앞에서 양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모는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리더들은 문자 그대로 양떼를 뒤에서 몰아가는 백업형이지요. 앞장서서 양을 이끄는 목자의 지팡이는 방향을 알려주는 방향타요 비전의 빛이지만 뒤에서 몰아가는 목자들의 지팡이는 양을 관리하고 늑대를 쫓는 보호의 무기가 됩니다.
앞에서 이끄는 목자보다 훨씬 민주적인 지도자입니다. 좀 비근한 예를 들어봅시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중고등학교 시절에 컨닝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시험 시간에 앞에서 지켜보는 선생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 이쪽을 보면 저 쪽에서 컨닝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조금 지능적인 시험 감독들은 뒤에 가서 서 있습니다. 자신이 어딜 쳐다보는 지도 모르게 하는 거지요. 그러면 학생 전체에 감독관의 시선이 고루 퍼져 있게 됩니다. 실제로는 시선이 한곳에 있어도 말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힘이 골고루 미칩니다.
그러나 이 관리형 지도자에게도 한계는 있지요. 양에게 맡기고 뒤에서 양떼의 치다꺼리를 하는 지도자들은 엄격하게 말해서 리더가 아니라 매니저(관리자)라고 해야 옳습니다. 초원에 풀이 풍성하게 있을 때에는 충분히 양떼를 이끄는 지도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관리 능력만으로 새로운 초원으로 양떼를 끌고 갈 수는 없겠지요.
오늘의 시대에는 독선적인 지도자도 관리형 지도자도 양떼들을 몰기 힘듭니다. 양떼들은 침묵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진정한 양치기는 앞에도 뒤에도 서지 않습니다. 양떼들의 한복판에서 함께 움직입니다. 뒤에도 앞에도 아닌 무리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지도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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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앙소르라고 하는 벨기에 작가가 1889년에 그린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이라는 그림에는 예수님의 재림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데 군중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나 옛 성당의 그림처럼 예수님이 한가운데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중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예수, 그러나 손을 내밀면 그가 예수라는 증거인 창 자국을 만질 수 있는 예수,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은 군중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바로 내 곁에 있는 분입니다.
자신을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고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양떼를 이끌고 모세처럼 사막을 건너 가나안의 땅에 이르는 지도자의 힘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요청되는 리더십의 특성이 제각기 다르지만 예수님은 우리들 앞에서 뒤에서 그리고 나의 옆, 바로 무리의 한가운데 묻혀 있으십니다.
낙타는 사자가 아니라 양이 되어 사막을 건너 생명의 초원으로 가는 것이지요.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가 아니라 그 초원에서 하나님을 다시 찾고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지요. 다시 모성애를 찾고 사랑으로 젖을 먹이는 착한 낙타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14. 먹는다는 것, 최후만찬
교토의 눈은 일본말로, 한국의 눈은 한국말로 내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문이 온통 한 장의 연하장처럼 하얀 설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캠코더로 교토의 설경을 찍으려다가 곧 생각을 바꿨어요. 한 번도 설경을 캠코더로 찍어 아름답게 나온 적이 없었기에 말입니다. <닥터 지바고>의 바리키노씬처럼 환상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영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아닙니다. 원래 설경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각자가 마음 속에 지닌 추억, 어렸을 적에 처음 설경을 보았을 때의 그 경이로운 잔상효과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설경을 보면서 연상 작용을 합니다. 교토의 눈을 보면서 나는 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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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온양의 설화산 등성이에 내리는 눈송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장독대에 소복이 쌓인 눈과 초가지붕의 고드름 사이로 하얀 마당과 담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부르던 일본 동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유끼야 꽁꽁 아라레야 꽁꽁” 불행한 식민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는 일본말로 내리는 눈송이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토의 눈은 일본말로 이야기하고 한국의 눈을 한국말로 이야기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에스키모 인들의 얼음집에 내리는 눈은 우리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에스키모 사람의 토착어로 내릴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디지털 캠코더로 찍어서 보면 언어와 추억과 시간에서 단절된 사물만이 비쳐지게 마련입니다. 아름답거나 그리움 같은 것은 광학적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그 차가운 렌즈로 기억들을 잡아 재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축복처럼 내려주신 눈 내리는 교토의 벌판을 바라보면서 헛기침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봅니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무리 부정해도 내 가족 내 고향 말고 은둔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할퀴고 침뱉고 아우성쳐도 눈도 한국말로 내리는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깊은 애정, 가위 바위 보의 문명론을 탈고 했으니 내 DNA에 찍혀진 포토필리아에 내 몸을 맡겨야 한다. 한국말로 내리는 설경을 보기 위해서 어서 짐을 싸자.
제2부 하와이에서 만나자
15. 전화 한 통으로 바뀐 세상
빛 속에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 빛이 있다. 처음부터 앞을 못 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 사람은 빛도 어둠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교토의 1년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향한 첫 번째 계단이기도 했지요. 그 첫 계단은 평지와 이어져 있어서 그 높이도 그 턱도 의식할 수 없었어요. 서울에 돌아와 나는 옛날의 나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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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지어먹거나 쌀자루를 메고 밤길을 걸어 빈방을 찾아가는 그런 허망한 일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런던의 일상생활로 돌아온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랬지요. 누웠던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처럼 개키지 않은 내 묵은 체온 속으로 파묻혀 편안한 잠을 잤던 것이지요. 알고 보니 회개 없이 돌아온 탕자였던 겁니다.
그럴 즈음 다시 땅에 스치는 예수님의 옷자락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역시 내 딸 민아의 전화를 받고서였습니다. 마치 교토에 있을 때처럼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수화기를 들고 무심껏 여보세요! 라고 말한다. 그때 수화기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전화 한 통 받기 전과 받은 후 몇 초 동안에 모든 삶의 내용이 바뀐다. 그것은 대체로 행복한 뉴스가 아니라 불행한 것, 꿈이었으면 싶은 전화일 경우가 많다.
그날도 꼭 그랬습니다.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여 받았더니 민아가 실명 위기에 있어서 한 달 가까이 집안에서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민아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그냥 몸이 불편해 쉬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지요. 민아는 늘 그래요. 과민한 어머니 아버지가 걱정할까봐 궂은 소식은 한 번도 알려오는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폭풍이 지난 다음에야 뒤늦게 소식이 전해집니다. 암에 걸려 수술하였을 때에도 아이가 학교를 하와이로 옮겨 임시로 거처를 옮긴 것도 모두 다음에야 안 일들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다른 경로로 민아가 망막박리로 얼마 안 있어 실명하게 될 것이라는 믿기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워낙 약시라서 컨텍트 랜즈를 끼고도 책을 코에 붙이고 읽던 민아였지만 박리로 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지요. 아내와 함께 급히 달려갔던 날 하와이는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웠지요.
그날 나는 민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호동그란 눈을 뜨고 미소 짓던 아이, 강보에 싸인 민아의 맑은 눈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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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오, 하나님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 애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머니의 웃는 얼굴, 아버지의 미소를 보지 못한다면 이 집에 있는 모든 것, 산과 바다 길거리 색채가 있는 모든 것,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주님의 딸에게 어찌 그러실 수 있습니까어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민아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걱정 마요. 아무개 목사님은 어려서 실명하신 분인데도 우리보다 더 잘 보셔.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다고 했어요. 늘 밤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 깜깜한 세상에서도 낮에 본 모든 형상과 빛이 보이지 않나요? 아버지의 얼굴, 어머니의 손, 소리가 말해주고 냄새가 느끼게 하는 걸요. 아빠 엄마가 걱정할까봐서 그렇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날 저녁 민아 컴퓨터를 보니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이 보통 것보다 3~4배는 커요. 그래서 얘가 아직도 컴퓨터를 잘 못하나 싶어 해상도를 바꿔 정상 사이즈로 해 놓았지요. 그랬더니 민아가 “아빠, 눈이 발 안보여서 일부러 크게 해 놓은 건데”라고 말하더군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딸의 눈이 아파서 왔다는 애비가 눈이 아픈 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이 세속에 있어서의 아버지와 딸의 만남이구나. 그 애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버지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 아버지는 샅샅이 딸의 아픈 모공 하나하나 끼지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쓰다듬어 주실 것이다. 그래서 민아가 지상의 아버지보다는 하늘이 아버지에게 더 의존하는 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무심한 내 자신을 탓했습니다.
그날 민아가 교회에 같이 가자는 겁니다. 하와이 교회에는 한국인들이 없어서 아무도 아버지를 알아보는 사람 없으니 놀러가는 샘치고 동행하자는 거지요.
나는 무엇이든 민아를 위해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주로 섬 원주민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지요.
한국의 어느 교회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옆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들은 모두 자기보다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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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도와달라고 빕니다.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들을 어이할꼬. 그 실망과 절망을 어이할꼬.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습니다. 민아가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된다면 무엇이 남을까.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발 민아를 위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하나님은 계셔야 한다고 황급히 무릎을 꿇었지요.
“하나님 이 찬란한 빛과 아름다운 풍경, 생명이 넘쳐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당신께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딸 민아에게 그 빛을 거두려 하십니까. 만약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고저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교토에서 드린 무신론자의 기도와는 밀도도 차원도 다른 경건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눈을 젖어 있었고 내 무릎은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아에게 말했습니다. 한국으로 가자. 한국의 의사들은 손이 작아 수술도 잘하고 인정도 많아 위험부담이 커도 너를 도와줄 것이다.
민아는 웃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온 것, 그리고 내 입에서 주님이라는 말, 하나님이란 말이 나온 것이 너무나 신기했던가봅니다. “아빠 너무 재밋어.” 민아의 말에 나는 조금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바보야. 너에게 이런 고통을 내려 계속 시험을 하시는 주님이 그렇게도 좋으냐.
나는 지금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너의 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래서 믿지도 않은 낯선 하나님을 향해 약속을 한 건데 너는 그게 그렇게도 좋으냐.
그러나 나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분 우주보다 큰 분에게 약속을 하고 만 것입니다. 다만 나는 딸을 사랑했기에 믿지 않았던 주님에게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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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38)
무신론자인 나는 내 딸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였기에 그런 기도와 약속을 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나는 예수님보다 딸을 더 사랑한 그래서 예수님에게 합당치 않은 기도를 하고 만 것입니다.
16. 그날 새벽이 그렇게 빛나지만 않았더라면
이제 손을 놓을 때가 되었는데 두렵기에 믿지 못하겠기에 옛것에 매달려 저 빛 속으로 뛰어들지 못합니다.
민아는 서울에 왔고 수술을 받기위해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뜻밖에도 망막박리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반이 박리되었다던 망막이 말짱하다는 것과 붙은 흔적도 없어 처음부터 망막 박리가 아니었다는 의사선생님의 설명입니다. 하와이의 의사들이 오진을 한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한 달 못가서 실명을 한다던 민아가 무사 판정을 받고 S대학병원에서 전화를 건 것입니다. “아빠 수술 안 받아도 된데, 망막에 이상이 없다네.” 반이 박리되어 검은 장막같이 보인다고 한 민아를 내가 알고 있는데 그곳 의사가 오진을 한 것이라고 말하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민아는 자기의 눈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하게 자기 몸으로 직접 받은 그 기적에 대해서 흥분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가슴이 폭발하는 기쁨과 함께 가슴이 천근 무개로 철썩 떨어지는 불안을 동시에 느꼈지요. 망막박리로 실명하리라던 민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빛을 잃지 않게 되었다 하니 그랬고 또 다른 면에서는 민아가 실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내 여생을 바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는 예수님을 영접하시야지요.” 라고 말하시는 하영조 목사님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목사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오만을 용서하세요. 그러나 아직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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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했지만 세례를 받는 교인은 되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 시각장애자들이 모두 눈을 뜨지 않은 한 내 딸이 혼자 눈을 떴다고 해서 기뻐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당장 SDHD증후군(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주의력 저하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으로 하와이의 대안학교에 와있는 내 손자 말입니다. 지금 우리 손자와 같은 아이들이 미국의 경우 백 명 중에 한 명 골로 나타납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도 다 그런 증세가 있었지요. 그것은 확실한 원인이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공해로 인한 내분비 장애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 교회에 가서 구제를 청하는 것보다 빠릅니다.
세례도 받지 않고 교회를 다니지 않고 몰래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라 하 목사님에게도 세례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딴 전을 피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다음 날 새벽 모든 것이 반전되고 맙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거부해도 한 발짝씩 나의 발길은 높은 곳으로 향한 계단을 오르고 있었으며 하나님은 비정하리만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순서대로 이 세상일을 관장하여 그렇게 운전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민아가 미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새벽이었습니다. 나는 민아가 교회의 새벽 기도회에 나간다고 가벼운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너 교회에 가니?” 큰 소리로 말합니다. 민아가 뒤돌아봅니다.
그때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민아야, 나 세례받는다고 해 목사님께 말해.” 만약 내가 세례를 받는다고 하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민아에게 줄 수 있다. 완벽한 아침 완벽한 삶을, 그래 거짓말이면 어떠냐.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그 완벽한 행복을 내 한마디면 줄 수가 있다. “민아야, 나 세례받는다고 해.” 나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습니다.
그랬지요. 4월의 새벽 봄빛이 그렇게 빛나지만 않았더라면, 새벽 공기가 그렇게 푸성귀처럼 풋풋하지만 않았더라면 결코 나는 그렇게 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 세례받는다”고 아! 하나님 어쩌자고 자신도 없으면서 이런 맹세를 했지요.
먼데서도 민아의 눈에 아침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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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땅에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산 하나님을 향해 내 딸 민아는 그렇게 외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보는 그 햇빛을 내가 보고 내가 숨쉬는 새벽공기를 그 애가 호흡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함께 그리고 서로를 마주보며 오늘을 이야기 한다는 것. 마치 천지창조의 엿새 날 아침과도 같은 신선한 우주 속에서 나는 그만 지고(至高)의 감동을 위해서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딸에게 목사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모든 나무와 새들에게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17.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아침 뉴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우연은 믿을 것이다.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많은 의미와 행동을, 그 우연이 필연이 될 때 하나님과 만난다.
새벽잠이 없습니다. 저는 조간신문 보다 언제나 먼저 눈을 뜨지요 그날도 머리맡에서 기침소리와 신문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듣습니다. 민아가 떠난 바로 다음날 아침이지요. 신문을 펼쳤습니다. 신문지를 넘기다 말고 내 입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나왔지요.
이런 세상에 - 머리기사에 커다란 활자로 찍힌 생생한 내 이름을 보고 놀란 것이지요. 지성에서 영성으로 - 눈을 의심했지만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가 한 면을 거의 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기사를 한 자 고치지 않고 그대로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이성’을 넘어 ‘영성’으로
영원한 문화인, 통섭(通攝)의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73, 사진) 전 문화부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했다. 개신교에 귀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온 그였다. 종교를 논했지만 신앙인은 아니었고, 성서를 읽었지만 열정의 시선은 아니었다. 기독교방송에서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와 1년간 성서를 놓고 대담도 했다. 그러나 늘 제 3자, 객관적 시각으로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하는데 주력했던 그다.
그런 이 전 장관이 기독교를 선택하기까지는 딸 민아(47) 씨에게 지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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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문제를 다뤘던 딸이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다.
민아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상선 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나 재발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 아들이 특수 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나면서 “지닌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없었습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약물 치료를 요구하는 학교와의 싸움, 기도 끝에 변호사 사무실까지 문을 닫고 아이 치료를 위해 무조건 하와이로 건너간 사연,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미국인 학교의 목사 앞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어린양을 받아 달라”고 통곡했던 일, 하와이에서 자신의 망막이 파열되 시력을 잃었던 기억,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던 일…….
“아버님이 하와이에 오셨는데 제가 눈이 안 보여 설거지를 못하자 맘이 몹시 상하셨어요.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수술을 못한다. 한국으로 가자,’해서 결국 한국에 왔지요, 한국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았는데 망막이 나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의사가 혹시 미국 사람이 영어를 빨리 해서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민아씨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새벽기도에서 공개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30여 분 동안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교회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는 “아직 교리문답도, 세례도 받지 않았다”면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못해준 것을 해준 분이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며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다.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는 그가 7월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아일보 2007.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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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내가 지성인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더구나 지성에서 영성으로 가는 차비나 그런 스케줄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쓰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내 생각의 세계도 업그레이드 됩니다. 지성의 레벨에서 나오는 소리와 영성이 소리에서 나오는 글은 다르지요.
하지만 나보다 앞질러 나의 크리스천의 길이 먼저 열린 것입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예정된 길임을 보고 조용히 기도를 했지요.
“이제는 거짓말 하지 않고 자신만이라도 설득할 수 있는 믿음을 내려주소서 믿음은 제가 하는 것이고 구하는 것도 제가 하는 일인 줄은 잘 압니다. 그러나 두드리지 않아도 문을 열어주시고 구하지 않고 도망쳐도 길을 막아 저에게 영성의 길을 열어주소서.”
“그러나 하나님 내가 아는 사람들과도 사랑을 제대로 못한 내가 어떻게 영성을 지닌 낯선 것들과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방황하게 하소서. 내 거처를 찾을 때까지 길에 노숙자로 버려두지 마시고 옛집 뜨락에서 조금만 더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준비가 안 된 채 신문 기사를 보면서 저는 조금 당황하면서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18. 버려진 돌로 만드는 신전
삶이란 혼합되어 있는 만두 같은 것이어서 통째로 씹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례를 받는 동안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어금니로 씹었다.
나의 일생이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너도 쓸모가 있으니 이런 데 와서 일해라.” 그렇게 사역을 주셨다면 자부심을 갖겠지요. 그런데 암만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고, 내가 뒤늦게 “하나님 한 번 봐주세요. 내가 이런 일을 할게요”라고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접시도 깨뜨리고 물도 엎지르고 하지 않겠습니까? 평화로운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공연히 부산을 떨며 자리를 어지럽히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그럼 나는 왜 칠십이 훨씬 넘어 이제야 여기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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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처럼 사람을 잘 쓰시는 분이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냥은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평생 돌아다니다가 뒤늦게 깨달은 것을 얘기하면 믿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너는 좀 늦게 써 먹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만두를 먹을 때 껍질 따로 만두속 따로 먹지 않습니다. 통째로 입안에 넣고 씹어 먹습니다. 그동안 나는 만두 껍질 벗겨 먹고 속을 먹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속 하나하나의 재료를 구분해서 그 하나하나의 맛을 분석해서 먹으려 했지요. 삶은 맛을 잃고 영원히 복합적인 만두 속의 맛을 제대로 씹지 못한 채 평생을 허송했다고나 할까요.
삶이란 여러 개의 자료가 혼합된 만두 같은 것이어서 통째로 씹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세ㅔ례를 받을 생각을 하고 나서야 성경을 통째로 씹어먹는 독해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 목사님에게 갔지요. 청이 있다고 말입니다. 한국에서 세례를 받으면 여러 사람들이 보고 매스컴에서도 보도될 것인데 그러면 세례를 받고나서도 광야의 시간을 보내게 될 터이니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외국에서 받고 싶다고 말이지요. 어차피 러브 소나타의 행사 때 일본의 CEO포럼에서 강연하게 되어 있으니 그때 호텔방을 빌려 세례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사실은 일을 더 크게 벌이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겁니다. 러브 소나타는 일본인만 참여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5천명이나 한국의 신도들이 그 집회에 참여하였고 제가 세례를 받는 호텔 홀에는 백 명도 넘는 신도들이 입회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보도진들의 카메라와 TV카메라가 대기하고 있었구요.
그렇게 많은 사람 앞인데도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몰래 숨겼을 눈물을 그냥 쏟았습니다.
왜 울까. 슬픔인가 감동인가 회개인가, 혹은 감사인가, 모릅니다. 지금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싸움을 하다 코피가 터졌을 때도 울지 않던 아이가 누군가 옆에서 역성을 들어주거나 편을 들어주면 그 순간 왕 하고 눈물이 터지지요. 꼭 그런 거였어요. 혼자 싸워왔는데 주님께서 내 편을 들어주시면서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털어주시고 깨진 무릎을 호호 불어주시는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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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이웃이 되고 저의 부친께서 드리셨던 기도처럼 멀리 있기에 더욱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천 년을 2천 년을 멸하지 않고 한 종족의 종교가 아니라 인류의 종교로 생명줄로 이어져 온 기독교의 비밀이지요.
그때 세례를 받으려고 결심하고 쓴 시가 바로 <길가에 버려진 돌>이라는 시였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돌
길가에 버려진 돌 / 잊혀진 돌 / 비가 오면 풀보다 먼저 젖는 돌
바람 부는 날에는 풀도 일어나 외치지만 / 나는 길 가에 버려진 돌 / 조용히 눈 감고 입 다문 돌
가끔 나그네의 발부리에 채여 / 노여움과 아픔을 주는 돌 / 걸림돌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보았네 / 먼 곳에서 온 길손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 여기 귓돌이 있다 하셨네 /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을 / 귀한 귓돌이 여기 있다 하셨네
그 길손이 지나고 난 뒤부터 / 나는 일어섰네 / 눈을 부릅뜨고 / 입 열고 일어선 돌이 되었네
아침 해가 뜰 때 / 제일 먼저 번쩍이는 / 돌 / 일어서 외치는 돌이 되었네
* 귓돌 : 척추동물의 안귀에서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석회질의 단단한 돌
2017. 3. 19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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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2)
■ 이어령 지음
19. 세례는 씻는 것이 아니라 캐내는 것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가지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는 그냥 세례를 받은 평범한 한 신자로서 기억해 주십시오.
기자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생각지도 않던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CEO의 포럼에서 강연을 하러 가는 거였는데 뜻밖에 세례를 받기 위한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더구나 아프간에서 테러범들에게 봉사활동 중이던 신도들이 납치를 당해 국내외로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치는 그 태풍의 눈 속에서 말입니다. 그때의 내 마음, 생각 그리고 세례받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이야기를 여기에 모두 다 옮길 수는 없습니다. 각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대로 게재하려고 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2007년 7월 24일 세례를 받았다. 일본 복음화를 위한 문화선교 집회인 ‘러브소나타’ 도쿄대회 현장에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평생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뒤로하고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을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천 이어령, 무엇이 그를 이성과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떠나게 만들었을까. 세례를 받은 다음날인 25일 도쿄 프린스 파크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세례 받은 것을 축하드립니다. 세례받기 전과 비교해 삶을 대하는 태도나 느낌이 다르지 않습니까?
세례를 받았다는 것과 제가 참신자가 되어 믿음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례 자체가 영적 세계에서의 승리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막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졸업 후의 포부를 말할 수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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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치지요. 중도에 낙제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 합격통지서를 받은 학생과 같습니다. 아직 입학도 안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도, 사역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해야지요.
어떻게 예수를 인격적인 주님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하게 되셨습니까?
딸 민아는 암과 시력장애,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모두 신앙심으로 극복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피와 살을 물려준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지요. 그동안 딸에게 해 준 것이 없었습니다. 일찍 등단하면서 가족들에게 많이 베풀지 못했고 아이들은 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민아에게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아의 문병을 갔던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저는 처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딸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나이다’라고요.
세례를 받고 영성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해서 과거 지성과 이성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이성의 삶을 살아 왔는데 영성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젊은 시절 제 사진과 지금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젊은 사람도 저이며 여기 있는 일흔 다섯된 늙은이도 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옛 바탕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속에 묻혀 있던 영성이 이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술가적 기질과 초월적 영성의 기질이 있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영성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해서 지성과 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합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나 제자들에 비해서 지성과 이성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과 베드로를 모두 쓰셨습니다. 믿는 일이야 고기 잡는 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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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낫겠지만 복음 전하는 일은 바울 같은 사람이 더 잘 합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바울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자기 절망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기 쉽지 않은데요.
그렇습니다.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파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듭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편안한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이 땅에는 빛 뿐 아니라 어둠도 필요합니다.
영어에‘플런지(Plun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팍 던져 넣는다’라는 의미입니다. 영성의 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 넣어지는 것입니다.
세례받으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영상을 보니 충격적이었습니다. 죄수 같았습니다. 기쁨 보다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왜 우는지, 세례를 받으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본인이 직접 절망한 적은 없지 않았습니까? 딸의 절망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경험은 아니었는데요.
딸이 남이라면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동일합니다. 내가 타인과 동일한 체험을 할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딸의 체험은 저의 체험입니다. 저는 딸을 사랑하니까요.
사실 기독교적 발상은 20대부터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아내가 모태신앙인이었지만 지난날 내가 교회에 가지 않았던 것은 교회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신앙과 관련된 좋은 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도 아끼지 말아야겠고요.
이제 저는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상대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저는 더 이상 교회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입니다. 아웃사이더가 하는 말은 비판입니다. 인사이더가 ‘우리 의식’을 갖고 하는 말은 비판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우리는 ‘먹어버려’‘가버려’라는 말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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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한국 교회는 버려야 삽니다. 역사상 예수님만큼 많이 버린 사람은 없습니다.
<국민일보 이태형 기자(기독교 연구소장) 인터뷰 2007. 7. 25>
인터뷰를 하고난 뒤 나는 다시 내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세례란 물로 씻는 의식이 아니라 가슴 깊이 묻혀있었던 온천수의 뜨거운 수맥을 퍼 올리는 것이다. 그것이 그때 흘린 눈물이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20. 이마를 짚는 손
목숨을 건 남녀 간의 사랑이든, 모자지간이 사랑이든,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혼자일 수밖에 없다. 너와 나의 얇은 막을 찢을 힘이 인간에는 없다.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랑을 준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은 주고 받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그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빈 틈이 생깁니다. 전위적인 화가 마르셀 뒤상은 그것을 ‘앵프라맹스’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그 자신이 꾸며낸 말이지요. 앵프라맹스라고 하면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超薄形 매우 얇은)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 됩니다. 그는 비로드 천이 스칠때 나는 미묘한 소리 같은 것을 앵프하맹스라고 불렀습니다. 시인 김광균의 <설야>에서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와 같은 것이 한국적인 앵프라맹스의 정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청각적 : 비로드 바지가 스치면서 나는 휘파람 같은 소리
- 후각적 : 담배 연기가 그것을 내뿜는 입과 똑같은 냄새를 지닐 때
- 촉각적 : 애무, 사람이 일어선 자리에 앉을 때의 미지근한 체온이 깔려 있는 것
사람들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합니다. 나는 타자와 하나가 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고 끌어안습니다. 그럴수록 어쩔 수 없이 너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틈새를 발견하고 안타까워하지요. 애타는 절망이 또다시 남에게 다가서는 욕망을 일으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이라고도, 그리고 그리움이라고도 합니다. 보이고 잡히는데도 아주 얇은 앵프라맹스가 그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찢을 수도 녹이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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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감기에 걸려 열이 막 나는데 기다려도 어머니가 오시지 않아 혼자 누워서 앓고 있었지요. 천장의 그림들이 괴물처럼 보이고, 무섭고, 외롭고, 열에 들 떠 헛소리까지 할 지경이 되었어요.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리맡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어머니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습니다. 나는 그냥 눈을 감은채로 있었거든요. “네가 이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이제야 왔구나” 하시면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있는 내 이마를 짚어주셨습니다. 그때였지요. 어머니의 그 차가운 손과 열이 오른 내 뜨거운 이마사이, 그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에 아주 엷은 막이 느껴지는 겁니다.
냉기와 온기 사이의 아주 얇은 틈. 그게 뒤상이 말하는 앵프라맹스라는 것을 안 것은 훨씬 뒤 대학에 다니면서 였지요.
내가 어머니를 그렇게 그리워하는데 어머니가 날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앵프라맹스의 단층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남녀 사이에도 의리를 따지는 친구지간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조금 전 자기와 지금의 자기 사이에도 있지요.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그리고 매 순간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어머니와 형제가 찾는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누가 내 가족이라고 하느냐.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유교의 가족 원리에서만 살아온 저에게는 참으로 차갑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지요. 집을 나가 가족을 돌보지 않고 평생동안 바깥에서 떠돌아 다녔던 예수님의 행적이 비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지요. 원전에는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어머니를 향하여 “저 여인을 -”이라고 지칭한 대목에서도 낯설음을 느꼈지요.
그런데 동경의 러브 소나타 행사에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어머니가 나에게 주셨던 사랑, 내가 어머니를 향해 있던 사랑을 더 완전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들고 다닌 등불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영성의 불빛이었던 것이지요. 그 영성의 불빛만이 인간과 모든 사물의 사이에 있는 앵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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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맹스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마를 짚는 손, 인간은 절대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앵프라맹스의 얇은 막을 찢거나 넘어설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그 틈을 없앨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월의 힘이요 영성의 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기천사에게 지상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시니 아기천사는 겁에 질려 “하나님 사람들이 사는 지상에는 도둑도 많고 위험한 차도 많이 다니고 전쟁도 있다는데 제가 어떻게 인간이 사는 땅에 나려가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에게는 항상 너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아기천사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지요. “하나님 하나님” 아기천사는 하나님을 다급하게 부르면서 이렇게 소리쳤지요. “수호천사의 이름을 가르쳐 주셔야 만날 수 있지요.”
하나님은 크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수호천사의 이름은 ‘어머니’라고 부른단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면서 /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 그 상처를 조금 만져 볼 수 있게 하소서 /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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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었느냐고 /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 네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21. 어머니의 글
귤이라고 똑같은 귤이 아니다. 사랑이 담겨 있는 귤은 나무가 아니라, 가슴 속에서 열린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 어머니는 서울로 가셨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이 한참 고비였던 때라 마취제도 변변히 쓰시지 못한 채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경황에서도 어머니는 예쁜 필통을 사 보내 주셨다. 필통은 입원하시기 전에 손수 골라서 사신 것이지만 귤은 전시에 어렵게 구해서 병문안 온 손님들이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목이 타시는데도 귀한 것이라고 잡수시지 않으시고 그냥 머리맡에 두고 보셨다고 한다. 퇴원하실 때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 노란 귤과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형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래서 향기로운 그 몇 알의 귤은 누구도 먹지 못한 채로 어머니와 함께 흙에 묻혔다.
서울로 떠나시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나보고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열한 살이었으니까. 막내아들이라고 그러셨는지 혹은 내 손을 가까이 느끼시며 마지막 작별을 하려고 하신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때 어머니의 얼굴은 외로워 보였다.
왜 그랬던가. 그날따라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려 제대로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도 못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산소에 갈 때마다 꼭 귤을 산다. 홍동백서의 색깔에는 없는 과일이지만 상석에다가 진설하기 위해서이다. 길을 가다가 좌판에 수북이 쌓여 그렇게 지천으로 흔한 귤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아두고 가신 그 귤이 그렇게 흔한 귤이어서는 안 된다. 지폐 몇 장으로 함부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 어디에 가 그 귤을 구할 것이며 내 이제 어디에 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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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가강 많이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가족주의적 시각에서 본 예수님의 행적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실 때의 골고다 장면을 묘사한 요한복은 19장 25-27절을 읽어보세요.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나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우선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천하의 불효라는 것이지요.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예수는 분명 한국의 가족윤리로 보면 반발을 살 만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테복음에 나오는 구절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0장 34-38절)
그러나 이 충격을 좀더 정독을 하게 되면 어머니를 여자라고 한 것은 가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 전환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처럼 비칭이 아니라 원전의 뜻대로 하면 중립적인 호칭이라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왜 중립적인 호칭을 하였는가. 이 대목을 모르면 영원히 한국인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식의 죽음을 앞에 놓고 마리아의 슬픔이 어떠했을까 더 보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죽음으로 어머니와 작별하는 예수님의 가슴이 얼마나 애절했을 것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물로 정감으로 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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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진리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고 슬픔을 뛰어넘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아주 짤막한 단어로 말입니다. “Woman, behold thy son!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기의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렇게 어머니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만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들도 당신의 아들입니다. 아들이 죽었다고 잃은 것이 아니니 슬퍼하지 마세요. 이렇게나 많은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어머니로 섬길 것이니까요.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의 사형장에서 아들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아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Behold thy Mother! 보아라 너의 어머니를!”
혈육의 낡은 가정관을 사랑과 믿음,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장하고 승화한 것이 예수님의 가정관이었고 기독교의 가족관입니다.
더 큰 가족 더 신성하고 사랑과 믿음으로 뭉친 공동체, 그것이 때로는 불경으로 들리고 가족 경시로 오해된 것이지요.
22. 인력거를 탄 어머니의 부활
누군가 죽음보다 강한 어머니의 사랑을 나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곧 어머니의 영원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쯤 되었을 것입니다. 보통고개를 넘어 학교를 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온천읍으로 가는 신작로 앞에 웬 인력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수술을 받으시기 위해서 서울로 떠나시던 날에 그런 인력거를 타시고 읍내로 떠나셨지요. 그런데 신작로 길로 오던 그 인력거가 나를 앞질러 가더니 갑자기 멈추는 거예요. 검은 돛을 단 죽음의 배처럼 포장이 흔들리던 인력거의 불길한 잔상이 남아 있어서 외면을 한 채 그냥 달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불러요. 인력거에서 내린 모분단 두루마기를 입은 귀부인이었습니다.
그 귀부인은 내 손을 잡고 “네가 용인댁 다섯째지?” 라고 물으셨어요. 그냥 나는 머리로만 끄덕이었지요. 혼잣말처럼 무어라고 몇 마디 하시고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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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보자”라고 내 책보를 끌러서는 도시락을 열어 보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잡곡이 얼마나 섞였는지 반찬으로 무엇을 넣었는지를 샅샅이 살펴보십니다. 조금 눈에 이슬이 맺히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알았다! 학교 늦을라. 어이 가봐라. 잘 커서 다음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너의 어머니가 먼 세상에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알고 계신지 새마을 쪽을 건너다보시면서 인력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몇 번 손짓을 하시더니 인력거가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시던 그날처럼 인력거는 아침햇살에 은빛 바퀴살을 반짝이면서 읍내 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요. 어린 아이를 놔두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분 같았습니다.
나는 내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신 그 여인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 여인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나는 묻지도 알지도 않았습니다. 확실한 것은 만약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 길목에서 나를 만나셨더라면 그 여인과 똑같이 내 손을 잡고 그리고 내 책보를 끌러보시면서 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살펴주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시며 “보아라 여기 너의 어머니가 있다”고 말한 바로 그 만인의 세계의 우주의 어머니가 인력거에 타고 계셨던 것이지요. 자기 자식만이 아니라 이웃으로 쏠린 사랑과 정의 근원에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도시락 뚜껑을 열던 그 여인의 손끝에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의 이슬 맺힌 축축한 눈에서 어머니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어머니를 섬기면서 함께 주 예수를 맞이하게 된 근거일 것입니다. 육신의 어머니를 버려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주라면 나는 백번 천번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제3부 한국에서 행하다
23. 일곱 빛깔 무지개와 칠일 간의 천지창조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세상, 진리,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느끼고 감각하는 문화의 필터를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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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무지개는 일억 몇천만 색깔이지 일곱색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패티 김의 노래에도 나오지만, ‘오색 무지개’라고 그러거든요. 희랍의 철학가 크세노폰의 글을 보면 무지개 색깔은 네 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섯 색깔로 보았고 그 후에 세네카가 여섯 색깔이라고 보았고 죽 여섯 색깔로 내려왔어요. 그래서 옛날 서양 책을 보면, 노아의 홍수 끝에 찬란함 무지개가 피었다 할 때의 무지개를 꼭 여섯 색깔로 그립니다. 문화가 다르면 무지개 색깔이 달리 보인다는 거예요. 무지개의 색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사람들이 분할을 하는 겁니다. 다섯으로도, 일곱으로도 분할을 하는 겁니다.
또 조각을 잘 하기로 유명한 아프리카의 쇼나족들에게는 무지개 색깔이 두 색깔로 보입니다. 붉은 계통하고 파란 계통,두 색깔이지요. 그러면 언제부터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이 되었을까요?
뉴턴이 처음으로 프리즘 연구를 해서 분광기에다 대고 비춰보니 무지개 색깔이 일곱 색깔로 보이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일곱 가지 쌕깔로 세계적으로 통용되게 된 것입니다.
뉴턴이 처음으로 프리즘 연구를 해서 분광기에다 대고 비춰보니 무지개 색깔이 일곱 색깔로 보이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일곱 가지 색깔로 세계적으로 통용하게 된 것입니다. 근거가 아무 것도 없어요. 실제로 무지개 색깔을 세어보면 절대 일곱 색깔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왜 과학자인 뉴턴은 일곱 색깔로 보았을까요? 바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7일 만에 창조하셨어요. 일주일도 7일이지요. 이렇게 모두 일곱 개로 보이는 겁니다. 기독교적 멘탈리티지요.
한국 사람들은 파란색하고 초록색을 구별하지 않지요. 그래서 하늘도 푸르고 나무도 땅도 푸르다고 하지요. 파란색으로 다 통해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신호등도 빨강, 노랑, 파랑으로 되어 있는데 서양에 가서 ‘블루 사인’이라고 하면 절대 못 알아듣습니다. ‘그린 사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파란불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세상, 진리,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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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감각하는 문화의 필터를 통해서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 문화라고 하는 색안경을 쓰고 있는 셈이죠. 그걸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소위 문화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문화상대주의라고 하는 것은 제가끔 있었던 하나의 분절에 불과한 것이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무지개 색깔 정도에서 끝나면 간단합니다만. 실제로는 그리 간단치가 얺습니다.
아이들에게 해를 그려보라고 하면 한국과 일본 아이들은 빨갛게, 서양 아이들은 오랜지빛으로 노랗게, 반면 중국에서는 청천백일기, 하얗게 그립니다. 이처럼 문화라 하는 것은 현실의 해석에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태양을 붉게 표현하는 문화권과 노랗게 표현하는 문화권 중 어떤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상이한 그룹이 있을 때 타 종교를 배척하려는 것, 실은 이런 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같습니다. 자동차는 당연히 빠른 게 좋죠. 이슬람 수학하고 기독교 수학이 다릅니까? 자동차 속도를 재면 이슬람 문화권, 유교문화권, 기독교 문화권이 다릅니까? 문명은 같은데 문화가 다른 것이지요. 이것이 맞지 않을 때, 지구화되고 접촉이 빈번해질수록 갈등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하면요. 에디슨이 발명한 옛날 축음기를 보면 나팔이 그려져 있고 “he's master's voice"라고 쓰여 있는 옆을 개가 기웃거리고 있어요. 그 개가 런던에 살던 형 에디슨이 기르던 니프라는 개예요. 형이 화가였는데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늘 개가 옆에 있었어요. 심심하니까 에디슨 축음기를 틀어놓고요. 그 개는 주인과 함께 늘 음악을 들었던 거죠. 그런데 형이 죽고 나서 동생이 개를 데리고 왔는데 레코드를 틀 때마다 옆에 와서 귀를 기울이더라는 것이지요. 축음기 제작자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상표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개가 무슨 음악을 듣느냐면서 내쳤는데 라이벌 회사인 ICA사에 팔아서 대히트를 하고 이 축음기가 나중에는 콜럼비아 소유가 됩니다.
그런데 이 축음기 상표가 못 들어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슬람권 나라들입니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가 도망 다닐 때 개가 짖어서 붙잡혔다고 해서 개를 악마로 봅니다. 그래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도 이슬람권에서는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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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내야 해요. 그 다음에 이 축음기가 못 들어가는 나라는 이탈리아예요. 이탈리아에는 개처럼 노래한다는 속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축음기를 누가 사겠습니까?
이것이 문화입니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남자 권한이 막강합니다.
문화는 만인이 고루 누리는 보편주의적인 것인가. 가치관처럼 상대적인 것인가. 여자들이 베일을 쓰고 다니는 것은 우리가 불편하게 볼 뿐, 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얼굴 벗고 다니는 것이 망측한 것이죠.
문화보편주의와 문화 상대주의의 싸움은 한국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야 되느냐 마느냐, 조상신이라는 것도 일종의 우상이 아니냐. 그러니까 제사 못 지낸다. 초기 기독교는 한국에 와서 이 제사 문제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형식을 따르자니 내용이 울고, 내용을 따르자니 형식이 울게 됩니다. 기독교는 제가끔 문화에 의해서 변형이 됐는데, 한국에 와서 기독교는 어떻게 변형 되는가? 변형돼도 되는가? 소위 말하듯 기독교를 토착화 해야 되는가. 혹은 있는 그대로 발생한 그대로 가져와야 되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늘 갈등의 요소를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문학을 했기 때문에, 목사님들처럼 몇 절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성서를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보다는 언제나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싱에는 반(反) 기독교인이 있고, 비(非) 기독교인이 있고, 친(親) 기독교인이 있는데 나는 미(未)기독교인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가 좋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안 믿습니다. 자기가 기독교 신자니까 저런 소리를 한다고 하지요.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면 대개 승복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제가 미기독교인의 사명이 있구나, 봉사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24. 문화를 뛰어 넘는 위대한 균형의 힘
내가 지금 방황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헤매고 있는 까닭은 진실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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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번역된 기독교 성서 중에서 아주 특이한 번역이 한국 성서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하고 한국의 신자들이 모여서 번역한 것이 독특한 존재라니 믿기지 않겠죠. 성서는 히브리어인데 오리지널 텍스트보다 한국말로 읽으면 하나님의 복음이 더 친숙하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2절을 비교해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영어 성경을 보면 “The earth was formless" 즉 땅이 ”형태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혼돈’이라고 했습니다. ‘혼’과 ‘돈’은 똑같은 말이에요. 다음 구절도 ‘공허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공’도 빈 것이고 ’허‘도 빈 거예요. 그 다음 ’암흑‘도 그렇습니다. ’암‘에다가 ’흑‘이 붙은 거예요
최후의 만찬의 의미는 함께 나누어 먹는 그 일이 새로운 구제의 세계로 부활을 예증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먹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꽃을 보고 냄새 맡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언어로 듣거나 냄새로 맡는 것이 아니라, 빵이나 포도주처럼 내 살과 피가 하나가 되는 세계, 그것이 참된 예수님과의 결합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원래 성서는 각 나라에 가서 그 문화에 따라 삼나무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하와이처럼 하나의 꽃이 되기도 합니다. 세계의 크리스마스가 다 다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갖기 때문에 자기 문화로 해석할 뿐이지 어떤 문화의 기독교가 모범이라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이스라엘 문화, 로마 사람에게는 로마 문화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 문화를 통한, 그 문화를 뛰어 넘는 기독교 정신을 통해서 세계가 형제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위대성은 밸런스 파워, 모든 이미지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서에 아흔아홉 마리의 양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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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이 무슨 말씀인지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갔다가 아흔아홉 마저 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리로 가느냐? 그러나 양치기의 마음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없어지더라도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죠. 양치는 사람들은 무릎을 치면서 맞다고 하지만 우리는 암만해도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성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여기에도 문화에 대한 서로 다른 충의가 있습니다. 그걸 없앤 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에 보면 아주 농후하게 나타나요. 이방인에 대한 차별이라든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제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의 홍수를 보세요. 하나님이 생물을 모두 멸하고 다시 만든 제2의 창세기입니다. 그런데 바다 속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 고기들은 방주가 필요 없습니다. 모든 생물이라 해놓고 바다 생물을 제쳐 놓은 거예요. 온 생물은 노아의 방주 속에 넣어 놓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생물이 됐다고 합니다.
물론 성서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성서 역시 사람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서는 성서 이상의 메타로 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인 일신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종교적 충돌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한국적 전통문화 또한 서구의 기독교 문화는 일신교이고 우리는 다신교이기 때문에 편협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성서의 어디를 봐도, 이방인이나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이웃이라고 했을 때의 이웃은 무한한 이웃이지 어느 특정한 이웃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사과의 겉은 빨간색. 노란색이 있지만 사과 껍질을 벗겨 놓고 보면 같습니다. 껍질을 깎아서 우리 입에 넣을 때의 사과는 같은 사랑이요, 이웃이지 빨간 사과, 노란 사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25. 예수님의 두 손, 바위와 보자기
받아들이는 손과 악을 상징하는 손, 사랑의 손과 정의의 손, 이것을 결합한 것이 그 위에 후광이 퍼져나가는 예수님의 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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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우리는 서양이다 동양이다 하는 그 칸막이 때문에 이웃이다, 이웃이 아니다 하는 싸움을 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바로 이방인을, 나와 다른 이들을, 나와 가치가 다른 자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오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식이 아니라, 이방인도 올 수 있고, 죄 지은 자도 올 수 있고, 저 같은 사람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웃의 이름으로 허락해주고, 사랑의 이름으로 감싸주는 교회 말입니다.
이것이 리더십이고 이것이 세계를 제패하는 가장 큰 힘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에게 담을 쌓고, 배제하고, 배타하고, 길 가는 사람에게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넓음이라고 하면, ‘플라떼르니떼 fraternite'는 형제애입니다. 남자끼리의 사랑을 플라떼르니떼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박애라고 합니다. 자유 평등의 플라떼르니떼는 편협한 겁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기독교인이 다 죽였습니다. 교황청에서 그들도 인간이라고 이야기하고 오늘날 흑인과 인디언의 권익이 높아진 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점차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즉 플라떼르니떼, 형제애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람에게 독일인은 동지가 아니고, 일본사람에게 한국인은 동무가 아니고, 남자에게 여자는 동무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자유와 평등은 더욱 갈등하게 됩니다. 자유는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경쟁을 하는 무한 경쟁이고, 평등은 더불어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자유와 평등을 하나가 되게끔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박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메시지가 있음으로 해서, 자유 평등이라고 하는 인류의 영원한 보편적 가치가 사랑에 의해서 이 모순이 결합할 수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은 끌고 갈 때와 뒤에서 밀어줄 때가 확연히 다른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에는 식탁에 올려놓은 예수의 두 손이 그려져 있습니다.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있고, 또 한 손은 손바닥을 펴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하는 가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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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 치자면 예수는 유다를 향해 주먹과 보자기를 동시에 내민 것입니다.
예수는 유다에게 두 주먹을 쥐지도 않았고, 두 손을 모두 펴지도 않았습니다. 주먹과 보자기, 그러니까 그는 생의 가위바위보에서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주먹의 언어와, 보자기의 언어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시인은 예수처럼 슬프고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는 그 끔찍한 가위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분할하고 토막내고 갈가리 찢어버리는 가위의 언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단지 방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와도 같은 보자기의 품안에, 자신이 내민 주먹까지도 감싸 버립니다.
한 쪽은 받아들이는 손이고 한쪽은 악을 징벌하는 유다를 향해서 너 할 바를 하라고 하며 유다를 징벌하는 손입니다. 정의의 손과 사랑의 손, 이 두 개의 손이 있는 것이죠. 이것을 결합한 것이 그 위에 후광이 퍼져 나가는 예수님의 몸이십니다.
한 손에 주먹을 쥐고, 한 손은 벌리는 이 모순되는 것을 합치고 있는 문화가 한국문화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양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라고 하지요. 위로 ‘올라간다’는 뜻만 담고 있을 뿐 ‘내려간다’는 뜻은 없습니다. “나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갈게”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 올라가는 거 타고 내려갈게”라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거든요.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도 하는 ‘승강기’라고 하지요.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뜻이죠. 또 한 가지 예로 ‘서랍’은 빼는 거예요. 그런데 빼고 안 닫습니까? 일본도 ‘히키다시’, 빼는 것이고, 중국에서도 ‘슈체’ 뺀다고 합니다. 한국만은 빼고 닫아서 ‘빼닫이’라고 합니다. 양면성을 갖는 것이죠. 십자가가 바로 그런 것이죠. 하나는 수평이고 하나는 수직이지요.
26. 제비가 물어다준 신앙의 박씨
제비가 흥부에게 물어다 준 박씨는 재물이었지만 나에게 물어다 준 제비의 박씨는 신앙의 씨앗이었다.
세례를 받고 처음 강단에 서서 간증한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세례전에 쓴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강연은 왜 교회에 나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답을 대신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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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에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배가 고프면 어디에 갑니까?”
“식당에 가죠.”
“뭔가 지적인 갈증을 느낄 때는 어디로 갑니까?”
“도서관 가죠.”
“몸이 아프면 어디에 갑니까?”
“병원에 갑니다.”
“심심하고 마음이 고플 때에는?”
“노래방도 가고 극장가서 영화 보고 그러죠.”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먹어도 배고프고 노래를 불러도 가슴이 풀리지 않을 때에는, 영혼이 목마르다 할 때에는? 식당이나 극장, 그리고 도서관으로도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교회에 갑니다.”
초등학교 2,3학년쯤이었던 듯합니다. 선생님이 흑판에 그림을 그려놨어요. 기차, 솔개, 까마귀와 같은 여러 새들을 그려 놓고 빠르기의 순위를 매겨놓았는데 최고로 빠른 게 제비였습니다. 당시에 한국에서 만주까지 가는 급행열차 중에 제일 빠른 것은 ‘제비’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니까요. 제비는 시속 얼마의 빠르기로 난다. 학교에서 이걸 가르쳐 줬는데, 이것이 바로 지식의 시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을 배우면서 별 웃기는 것을 다 가르친다고 생각했지요. 빠른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새들은 다 사람을 피해서 도망을 가는데 왜 제비는 사람 집에다 자기 집을 짓는지. 제비는 또 새끼들에게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는데 새끼들은 어미가 올 때마다 입을 쫙 벌리는데 어미 제비는 배고픈 새끼를 어떻게 알고 차례대로 먹이는지? 이런 걸 물으면 꾸중을 들었지요.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배고픈 제비 새끼가 주둥이를 제일 크게 벌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 먹으면 아무리 크게 입을 벌리려 해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어미는 입을 크게 벌린 녀석한테 먹이를 계속 주면 되는 것이지요.
제비가 입을 크게 벌린다는 이치를 알아야 왜 제비의 개체수가 점점 줄어드는지 알게 됩니다. 슬픈 일이지요. 농약을 뿌리고 곤충들이 없어지니까.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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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에는 빠르면 10초 간격으로 먹이를 물어다 주었지만 지금은 10분, 20분 걸려야 겨우 먹이를 물어다 줄 수 있게 되었고, 먼저 먹은 녀석은 그새 소화가 되어서 안 먹은 녀석과 독같이 주둥이를 크게 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노이즈(noise)'라고 합니다. 가짜 정보가 진짜 정보로 위장해 소통이 되면 시스템은 파괴되고 맙니다.
27.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모든 짐승은 사람을 피하는데 제비는 왜 인간이 사는 집안에 집을 짓고 사나. 인간을 믿는 제비의 마음 때문에 인간은 제비를 해하지 않는다.
왜 제비만은 사람을 믿고 날 잡아먹으라는 듯 사람들이 사는 집에 집을 지을까요? 사람을 믿고 의지하면 천적들이 덤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의문을 품는 자는 도망가고 믿는 자는 인간의 보호를 받는 것인데, 과학은 이런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목사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믿고 안심하고 잡아먹힐 각오를 하고 제일 가까운 안채에 떡하니 집을 짓는 것이지요. 사람을 믿고 와서 둥지를 트는데 어떻게 잡아먹겠습니까?
의문은 지성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습니다.
제비가 사람 사는 집에 둥지를 트는 것처럼, 하늘나라의 하나님 집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집을 지어 놓으면 해로운 것들이 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알을 낳으면 하나님의 섭리대로 먹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시편 84장 3절에 제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하물며 인간이 제단 옆에 둥지를 틀지 않겠습니까?
시편을 다시 보면, “제단 옆에 제비처럼 믿고 둥지를 틀면 독사도 까마귀도 독수리도 오지 못한다. 내 알은 틀림없이 부화할 것이고 내 새끼는 하늘을 나는 날개를 얻을 수 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8장 7절을 보세요.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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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는 제비 자체가 영성, 하나님, 육체를 가진 예수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제비가 “콘솔 콘솔”하고 울었다고 합니다. 콘솔은 울음소리의 의태어입니다.
위로한다는 뜻으로 제비울음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지요. “걱정마라. 걱정마라.” 부활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에서 제비는 비둘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그 자체입니다.
사막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굶주림과 갈증이 정신적으로 승화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성서는 일관해서 가장 굶주린 단계인 배고픔부터 가르쳐주고, 거기에서 나아가 또 다fms 배고픔과 갈증을 가르쳐주고, 마지막에는 영성에 도달하는 갈증을 가르쳐줍니다. 내가 성서에서 발견한 것은 갈증과 굶주림이 영성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갈증과 굶주림은 지적인 것이었지만, 영적인 굶주림과 갈증은 누가 채우고 풀어주는가. 백과사전이나 내 서가에 있는 책들이 풀어 줄 수 있는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사실 구약은 시편 말고는 잘 읽지 않고 신약만 읽던 사람인데, 알고 보니 신구약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고, 구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원수를 대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 25장 21절을 보십시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구약이든 신약이든 생명에 관한 한 원수에게라도 사랑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영성을 위해 배고파하는 사람에게는 빵을 주고 목말라하는 자에게는 물을 주라는 말과 통하는 것입니다.
원수라할지라도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면, 먹을 것은 또 찾습니다. 그건 이미 육체의 배고픔이 아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으려는 영혼의 갈증, 영혼의 굶주림이지요.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먹을 것을 넘어서,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까지 내놓는 단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그 단계가 아주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옛언약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28. 내 눈물이 나의 양식이 되었도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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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장 1절에서 3절까지를 보십시오. 참으로 기가 막힌 말이 나옵니다. 난 여길 보면 정말로 눈물이 나옵니다.
한 번 보십시오. 예전에 내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성서의 문구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신 하나님을 갈망 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갈급이라는 말, 목마름이라는 말을 보십시오. 사슴은 원래 암사슴입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내 영원히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여기에서 생존이라고 하지 말고 ‘리빙 갓 living God’,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해보십시오, 눈앞에 하나님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대학에서 보들레르의 시를 가르쳤는데 그중 참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아무런 증오감 없이 / 나는 지팡이로 너를 치리라. / 마치 모세처럼 /
그래서 네가 흘리는 눈물로 / 내 마음의 사하라 사막을 적실 것이니라.
<자기 자신을 벌하는 사람>이라는 시인데, 애인을 때려서 흐르는 눈물, 즉 여인의 마음을 바위에 비유한 것이지요. 모세가 딱딱한 바위를 쳐서 물을 흘리게 했듯이 여인을 쳐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보들레르가 얼마나 영혼의 갈증을 느꼈으면 ‘너를 때린다’라고 노래했을까요. 바위 같은 너를, 감동도 감수성도 없고, 나를 사랑하지도 않은 너를 때리면, 혹시 기적처럼 나를 사랑해줄지, 하는 마음이죠. 아파서 흘리는 네 눈물이 사랑의 눈물로 변하면, 내 가슴, 그 황량한 사하라사막을 너의 눈물로 적시리라. 이런 시는 갈증에서 나옵니다.
지성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영성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비를, 보들레르를 압니다. 아모스서 8장 11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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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날이 이를지라”가 아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언뜻 보면 참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아모스서 다음 구절을 보실까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리고 이사야서 5장 12,13절에도 나옵니다.
그들의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룰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다
먹을 것이 있고 노래가 있는데 주리고 목말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이 바로 그래요. 물질적으로는 풍요해졌지만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 영혼의 빈곤입니다.
29. 아버지 없는 사회
어머니의 몸과 아버지의 이름, 이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21세기 문명 상황입니다.
짐승들에게는 떼(群)는 있어도 가족은 없다고 합니다. 동시에 동물의 세계에는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는 있어도 인간과 같은 아버지의 존재는 드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족제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창조한 그 순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남성 우월주의에서 나온 학설이 아닙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출산 능력을 지닌 어머니를 자연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아버지는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만 그 지위가 보장되는 문화 사회적 허구의 존재라는 겁니다.
생물학적인 생식 차원으로 볼 때 남성들의 힘은 여성에 비해 한없이 왜소하고 그 지위는 미미하기 짝이 없지만 문화사회, 문명적 문맥에서 보면 오히려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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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희랍인들이 여성과 노예를 무시한 것은 주로 그들의 관심과 하는 일이 개인이 먹고 살아가는 가사의 생계노동에 속해 있었던 까닭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급속히 변화해 가고 있는 아버지의 지위와 권위의 하락 그리고 그 역할의 왜소화는 퍼블릭이라고 하는 공적 공간이 사라지고 사적 공간, 먹고 자고 입는 일상의 생활을 위한 노동만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공공의 것, 정의 명예 공동체의 비전 이런 것을 위한 공론의 장이 빙산처럼 녹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가부장제도의 붕괴나 남녀평등의 젠더 혁명의 문제로는 풀이 되지 않은 현상입니다.
한마디로 옛날 같으면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라고 욕하던 사회와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사생아의 사회란 공론의 장이 소멸되고 공공 영역의 활동이 모두 자기 입만 걱정하는 사적인 노동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아버지 없는 사회’ 현상은 지금까지 인류를 떠받쳐왔던 부父-모母-자子의 삼각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가족 자체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학부형회’라는 말이 ‘자모회’로 바뀌었다는 것은 교육의 주도권이 남성에서 여성주도로 넘어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없는 학생은 사생아의 경우처럼 공교육에서 사교육의 학생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상입니다. 한국의 남성(아버지)이 죽은 것은 월급봉투가 온라인으로 아내에게 직접 송금되었던 그날 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교육도 경제권도 모두 아내가 장악하면서 남자는 ‘가시고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없는 사회의 비극은 남성의 소외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아이를 포함한 인류 모두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단순히 짐승 같은 ‘떼'가 되고 ’활동‘은 노동이 되고 그동안 쌓아올린 문화의 창조는 자연의 황무지로 되돌아갑니다. 인간이 추락하면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이하가 된다는 것이 아버지 없는 사회의 위기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쇠퇴와 아버지의 관계는 더욱 깊습니다. 기도문을 보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몸과 아버지의 이름, 이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문명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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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사회 아버지의 권능이 무력해진 사회에서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지상에 있는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같은 이미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구실을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30. 참된 포도, 시지 않는 포도의 수확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잎만 무성한 포도밭이 되지 말라”
한밤중이 글을 쓰다가 외로우면 창문을 열고 밖을 봅니다. 한 시, 두 시가 넘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창문에 불이 꺼지지 않은 집들이 몇 있어요. 누가 아픈지, 시험공부를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슬퍼서 그러는지 남들이 다 자고 있는데 몇몇 집들이 불이 켜져 있어요. 저쪽 집에서도 올려다보면 내 집 창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볼 수 있겠지요.
한밤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합니다.
“주님 이 밤중에 잠들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 불끄고 편한 잠을 자지 못하는 그들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소서.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 부족한 대로 또 사람의 아들로 조금씩 쌓아가며 어제보다는 나은 삶을 살게 하소서“라고 빌어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모두 끊어버리고, 모두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일 먼저 부모와 가정을 버리시고, 모든 가진 것을 버리시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구하려고만 하는데 그분은 계속 버리셨어요. 적어도 종교적 지도자가 되려면 버리지 않고는 안 되는데, 버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와 가까운 목사님에게 농담조로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모든 걸 버리고 주님과 하나님 곁으로 점프하셨어요? 떨어지면 죽는 골짜기로 정말 점프하셨어요? 사실은 그냥 뛰어 내린 게 아니라 번지점프 하셨죠?” 우리가 지금 번지 점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저 자신을 비롯해서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정말 모든 것을 끊고 저 심연 속으로 하나님 품으로, 하나님 세계로 뛰어내린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오늘 저는, 포도이야기를 통해, 우리 교회가 지금보다 더 융성하고, 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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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핍박을 받지 아니하고 ‘워십’, 즉 존경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믿게 될 것인가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알다시피 기독교는 사막의 체험에서 비롯된 종교입니다. 사막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 물이 귀한 황무지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갈증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포도는 가장 척박한 땅에서 자라납니다. 풀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황무지에서 자라지요. 보통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포도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성서를 보면 포도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시편에도 “이 포도나무 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필 때 나는 너에게 사랑을 말하노라”라는 구절이 있지요. 신부를 맞이하는 사랑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포도원에서 할까요? 왜 예수님이 포도일까요? 왜 우리가 포도원의 나뭇가지일까요?
사막의 마른 땅에는 물이 귀하지요. 그래서 포도 뿌리는 몇십 미터 암반을 뚫고 들어가서 물을 빨아올립니다. 뿌리의 그 갈증이 얼마나 깊고 심하면, 땅을 파고 들어가서 반석 밑 암반수에 뿌리가 닿는 걸까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최후의 갈증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의 아들로서 못 박혀, 그 마지막 갈증이 십자가에서 타오르는데, 한 모금의 포도주도 인색하여 신포도주를 드립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는 가장 향기로운 포도주를 빚어놓고 그분을 맞아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포도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어 봐도 다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가 따먹는 포도를 이야기합니다. 포도가 너무 높이 있어서 못 따 먹으니까 따먹으나 마나 신포도야 하고 갔다는 여우, 그걸 자기합리화라고 하죠. 프로이트는 이것을 ‘자기방어기재’ 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절망하면 너무 비참하니까 욕망이 좌절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남이 볼 때에는 자기합리화이고, 자기중심에서 말하자면 자기기만이지요. 사실 무력, 권력이 좋은데, 못 얻으니까 ‘황금을 돌같이 보라’ ‘권력 별 거 아니다’ ‘나는 청렴결백하다’ ‘세속적이지 않다’ ‘나는 믿는 사람이라 부럽지 않다’라고 합니다. 자기기만이지요.
사실은 가지고 싶은데, 교회에 가서도 목자가 되고서도 여전히 욕망이 있는데,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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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인간은 시간으로 재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재신다
늦게 와 일한 자에게도 같은 품삯을 주는 이유, 맹목의 믿음보다 죄인의 회개가 더 귀하다.
대낮에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왜 일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일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일하냐고 대꾸합니다. 그래서 포도원 지기가 그에게 일거리를 주겠다고 하니 고분고분 따라와 일을 합니다. 하지만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때이라 얼마 일을 하지도 못했는데 품삯 주는 걸보니까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나, 불과 몇 시간 동안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주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일꾼이 있었지요. 그때 포도원 지기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돈 들여 품삯을 주는 것인데 너희들이 무슨 참견이냐.(여기서 포도원 지기는 하나님을 비유한 것이죠) 너희들의 마음이나 생각으로 나를 헤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은총은 내 권한이다. 땅의 논리가 아니다. 너희들은 일을 시간으로 재지만 나는 마음으로 잰다. 준다니까 그냥 와서 포도 가꾸는 일꾼들은 기계적으로 그냥 일을 합니다.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하지만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일거리를 주면 얼마나 고맙게 여기며 일을 하느냐. 너희는 돈을 바라보고 일했지만 이자는 한 시간을 일해도 자기를 써준 것을 감사히 여기며 일을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앞에 온자가 뒤에 서고 뒤에 선자가 앞에 서느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겨우 포도밭에 왔는데 나에게도 똑같이 품삯을 주시는 하나님, 뒤늦게 왔는데 앞장을 서는 하늘나라. 이런 횡재가 어디있겠습니까. 제가 늦게 왔지만 하나님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그동안 못한 일을 열심히 하면 틀림없이 그 포도원지기처럼 저에게도 같은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선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포도넝쿨이 뻗어가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포도넝쿨처럼 자꾸 뻗어서 땅 끝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최초의 기적을 보이신 것은 포도주가 없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돌 항아리에 물을 그득히 담으라고 하시고 그 맹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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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로 바꾸십니다. 여기에서 잠깐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포도껍질에 붙어 있는 미생물들은 발효가 되는 과정에서 다른 미생물들을 잡아먹습니다. 즉 포도가 발효한다는 것은 포도주가 된다는 것은 효모균에 의해 불필요한 균들이 퇴치되는 과정이지요. 악이 전부 퇴치된, 순수한 효모에 의해서 깨끗해진 술, 그래서 옛날에는 포도주를 주사액으로까지 썼다고 합니다. 또 사마리아 사람을 기름과 포도주로 치유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포도주의 발효과정처럼 우리 영혼 속에 있는 혼탁한 마귀의 생각인 미생물들을 하나님의 힘으로 모두 퇴치하여 순수한 영광만을 남겨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이지요.
요즘 이솝우화는 이렇습니다. 목마른 여우가 포도를 따먹어보니 진짜 신포도였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안 따먹어야 되는데, 옆에 있는 여우들이 부러워하고 침을 흘리니까 우쭐해서 신포도라고 말을 못하는 겁니다. “아, 달다”고 하고, 옆에서 박수치면 또 따 먹고……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행복한 척 하고 따먹어요.
교회 바깥에 나가보면 이런 여우들이 많습니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행복한 가정인 것처럼 하고 있는데, 속으로 울고 있어요. 그 사장 자리가, 그 장관 자리가, 세상이 이런 줄 알았으면 누가 했겠나. 그런데 아무개 아들이 회장, 장관 아들이라 그러니까 참는 거죠. 그렇게 계속 맛있는 것처럼 신포도를 따먹고 속은 위궤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 현대인의 이솝우화지요.
참된 포도, 시지 않는 포도를 우리는 수확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 포도원 사람들만이라도 넝쿨을 뻗어가야 합니다.
제4부 아버지와 딸의 만남
민아의 편지
빨간 우체통의 작은 기적
아빠 저예요 오랜만에 이메일이 아니라 펜으로 쓰는 편지예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빨간 우편함 앞에서 매일같이 기다리던 아버지의 편지가 프랑스에서 도착하던 날, 하얀 봉투를 찢지 못한 채 그냥 가슴만 두근댔던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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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분이 딱 그래요. 10년 동안 소망해 오던 제 기도가 거짓말처럼 전부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아팠던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가망이 없다던 내 눈이 이제는 밤에도 혼자 운전을 할 만큼 밝아졌어요. 더구나 애 아빠의 신앙심에도 불이 붙었어요.
그것보다도 늘 기다려 오던 소망대로 아빠가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정말 기뻐요. 아무라도 붙잡고 소리치고 싶어요. 내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에 계신 내 영혼의 아버지가 저를 버리지 않고 이 날까지 기다려 주신거지요. 그 깊으신 사랑을 알고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내가 혼자였다는 생각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게 된 거지요.
아빠 정말 그렇죠. ‘사랑’은 ‘설명’이 아니지요? 외쳐야만 되돌아오는 산울림 소리가 아니지요? 잘났든 못났든 아빠가 절 사랑해 주시는 것은 복잡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딸이니까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처럼 우리에게 생명과 영혼을 주신 하느님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다만 제가 아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를 제대로 느낄 줄 몰랐던 것뿐이지요.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편안한 삶이 돌아오게 된 것이지요.
3년 전 일이에요. 저를 보러 헌팅턴 베이에 오셨을 때 “너만 행복하다면 무얼 못해 주겠니”라고 하시며 교회에 가는 저를 묵묵히 따라 오셨던 것 기억나세요. 그 고맙고 찬란한 동행의 기쁨 그 사랑을. 그때는 교회에 다니기 싫어하는 아빠가 그냥 밉기만 했었지요. 아빠 미안! 오늘에서야 실토하는 거예요.
아빠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 주님의 이름 받들어 축하드려요. 민아 올림
아버지의 편지
너는 나의 동행자
너의 편지 겨우 다 읽었다. 여기저기 편지글이 눈물로 번져 있더구나. 이국땅에서 혼자 살아갈 때에도 너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검사생활을 그만 두고 암과 투병을 할 때에도 그랬고, 변호사 생활을 접고 아이의 교육 문제로 단신 하와이로 떠났을 때에도 그랬다. 다 그만두고 의사로부터 실명할 우려가 있다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고서도 너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나를 처음 바라보던 네 최초의 미소, 그것을 너는 늘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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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네가 지금 모든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웬일로 그렇게 많이 울었느냐. 네 마음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사랑의 불꽃은 연기가 되고 연기는 다시 재로 변한다는 슬픔, 그리고 아무리 불러도 빈 들에 나 혼자라는 것, 새삼스럽게 그런 일로 흘린 눈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너의 가슴은 지금 넘쳐나는 사랑과 떨리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비가 오고 난 뒤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선 것처럼…….
더구나 오늘은 너의 생일이고 우연히도 내가 세례를 받는 날이다. 네가 그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너에게 최고의 생일선물을 준 것 같구나. 아니지. 네가 나에게 선물을 준 것이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너의 어둠으로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 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 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너의 기도가 문지방을 넘게 했다. 가족만이 아니다. 너는 법정에서 그동안 죄지은 불쌍한 젊은이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애써왔다. 이제는 법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랑과 은총의 힘으로 가난한 이웃, 애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동행해야 할 것이다. 힘든 길이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제 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혼자가 아니다. 너의 곁에서 주님이 늘 함께 하시듯이 아버지도 이제 너를 혼자 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함께 가는 거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약속한다. 아주 어려울 때를 위해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를 위해서 주님께 드리는 기도는 남겨두기로 하자.
서울에서 아버지로부터
32. 믿음의 시작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딸 이민아의 이야기입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에서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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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은 나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하나님이 맞춰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불평을 하게 되죠. 제가 서른 두 살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도 10년 동안은 제 생각의 틀에 하나님을 맞추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제 생각대로 해 주시면 하나님 좋아하고,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무서우신 하나님인가 보다고 생각을 했어요.
92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3개월밖에 안된 92년 7월 11일. 저는 간단한 종양 제거하는 수술인줄 알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일단 열어보니까 그 안에 현대의학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갑상선 암이 갑상선 안에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그래서 갑상선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 깨어났을 때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네가 믿는 하나님, 네가 믿는 신이 있느냐?”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지 얼마 안됐다고 얘기 하니까. 이 유대인 의사가 “네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하나님이다. 암이 갑상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몰려 있는 것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임파선으로 퍼지지 않게,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갑상선을 보자기처럼 싸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갑상선을 들어낸 이후에 임파선까지는 퍼지지 않았지만 갑상선 암 중에서도 악성이었다고 의사가 얘길 했습니다.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방사능 치료를 받은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년 후인 96년 9월에 병원에 정기진단을 갔을 때, 암이 재발했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성경을 읽고 ,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96년에 QT를 하기 시작했어요. 자매님들과 함께 목요일 마다 QT를 하는 동안 성경책에 있는 말씀들이 한마디씩 살아나서 생명으로, 생명의 떡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이 더 먼저인, 하나님의 말씀이 더 배고파지는 그러한 마음, 그러한 은혜가 제게 임했던 것 같아요.
2002년까지 6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QT 중심의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아이가 자폐증상과 과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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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것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다섯 살 때부터 2002년에 열 살이 될 때까지, 유치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가 힘든 기간이었어요.
아이도 돌보면서 말씀도 열심히 읽었지만 아이는 나아지지 않고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서 2002년에 저에게 다시 한 번 신앙의 큰 변화가 왔습니다. 제가 10년 동인 해오던 검사직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잘 기르고 또 시간을 좀 많이 보내려고 변호사로 직장을 바꾼 게 2002년 2월이었어요. 그때 한 아이가 인디아나주에 가서 말썽을 자꾸 부려서 기숙사 학교에 넣어놓았는데 추운 날씨에 런닝셔츠만 입고 도망을 갔어요.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이가 죽을까봐 너무 걱정을 하면서 저를 찾아왔어요.
그때는 제가 검사직을 사직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검사는 변호사를 겸해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못한다고 거절했어요.
그런데 만나보지도 못했던 아이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간절했던 어머니 아버지의 음성이 자꾸 떠나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검사를 사직하고 이 케이스를 맡은 다음에 다시 또 돌아가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사직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때를 돌아봤을 대,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됐어요.
그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우리 아들 유진이도 갱단이라든가 마약을 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쫓겨났다던가, 말썽을 부리는 애들을 우리 집에서 머물게 했어요. 처음에는 그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될까봐 밉고 싫었는데 어느 날 유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세상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이 아이들이 갈 데가 없는데, 얘들을 내보내면 길거리에서 자는 거 알면서, 내 아들만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유진이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자, 그것이 성령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네 아들만 사랑하면 세상 사람과 다를 게 뭐냐. 네 아이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사랑해 달라는 부탁 같았어요.
그때까지는 내 아이들, 나와 내 가정밖에 몰랐던 제가 저의 고객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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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처럼 품고 기도하는 중보자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케이스 하나하나 맡을 때마다 그 아이들의 엄마의 마음이 제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많이 행해 주셨습니다. 감옥에 가서 10년, 20년 지내야 하는 중범을 저지른 아이들도 중보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때, 아이들도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3년 동안 변호사 일을 하면서 많은 선교단체와 마약퇴치 일을 하는 센터와 청소년 선도 단체를 운영하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춘기 반항하는 아이와 또 자폐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는 두 아들 사이에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습니다. 저의 아이보다 더 힘들어 하는 아이들, 제 아들보다 더 소망이 없는 그 아이들을 돌보면서“내 양을 먹여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저를 회복시키려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어요.
제5부 문지방 위의 대화
대화1.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버리는 것이 바로 얻는 것이니
기적과 구원의 의미이고 죄를 버려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팔로워십(리더십의 반대말로, 따르는, 추종하는의 뜻)은 사실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 기독교가 이 사회에서 좀 더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독교의 원리는 우선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버리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마침내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버리셨지요. 그래서 십자가는 버림의 극한이고 그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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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을 통해서 예수님은 부활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적과 구원의 의미이고 죄를 버려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너무 많이 소유합니다.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메시지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도
가장 귀중한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나눔, 사랑, 관용(용서), 이것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겠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 5 : 3-10)
대화2,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선 영화관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로맹 롤랑은 인생이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놓쳐버린 15분의 줄거리를 찾기 위해 신앙을 가지고 철학에 매달리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번뜩이는 감각, 냉철한 비판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거꾸로입니다. 내 작은 머리에서 나온 언어와 판단이 더 큰 영성에 의지한다면 지성이나 두뇌 순발력이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지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거니까요.
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백 퍼센트 신자는 못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밤에 잠을 자다가도 불현듯 회의와 참회를 되풀이 하면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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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대화3. 초월적 영성으로 만난 하나님
성서의 말씀을 조각내면 하나도 믿을게 없지만
전체로 읽고 느끼면 초월적 영성이 다가옵니다.
저는 선생님이 한국에서 사도 바울 역할을 하셔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신앙심으로 말하면 베드로를 따를 사람이 없죠. 사실 바울은 예수와 기독교를 탄압했던 사람이고 지성인입니다. ‘바울의 가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회심해서 이름도 바꾸고 사도로서 위대한 일을 했지만 끝내 바울의 가시, 아픔, 고통이라는 그 가시를 빼지 못했지요. 그런데 오늘날 베드로 역할을 하실 분들은 참 많습니다.
누가 그래요. 당신은 문학평론을 하고 지금까지 이성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니 이것 좀 해석해봐라. 노아의 방주에 모든 생물들이 쌍으로 들어갔다는데 그게 다 들어가지나? 몇 종류가 들어갔어? 얘기 좀 해봐. 그리고 물고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홍수가 나면 땅에 있는 것, 하늘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멸한다 했는데 물고기는 생명이 아니냐? 천지창조 때 안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런데 홍수나면 물고기들 안 죽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전에는 제가 그런 짓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답변합니다. ‘그런 게 아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분 부분 보면 절대 코끼리를 모른다.’
임파테이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예수님, 하나님의 일부분이 내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송두리째 그 예수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것이 나의 몸뚱이요, 내 피니라. 먹어라” 라고 그랬잖아요. 그건 나를 이해해라 내 메시지를 이해하라 라는 뜻이에요.
물이든 음식이든 저 밖에 있지만 그걸 먹고 마시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게 임파테이션입니다. 그러니까 성서나 기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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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성서의 말씀을 조각내서 보면 하나도 믿을 게 없지만 전체를 읽고 느끼면 하나하나 아귀가 맞아서 초월적인 영성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대화4.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
나는 자신을 토끼인줄로 알고 살았는데 거북이 임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오만에서 벗어나는 것, 휴먼 프라이드를 버리는 것, 그것이 기독교인들의 가장 위대한 변화입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로 협력하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협력하실 건가요?
사람들이 그래요 “당신 위선자 아니냐, 당신 같은 사람은 그저 성서보고 신학책 읽고 기도드리면 됐지, 왜 교회에 나가서 나 예수 믿는다고 떠드느냐. 차라리 무교주의자가 되지” 그래요 그때 내가 비유로 말했어요.
<워싱턴 포스트>에서 사람들이 정말 음악을 알아듣는 귀가 있나를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에게 거리의 악사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3백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시시한 깽깽이처럼 들고 연주해 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네가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워싱턴 한복판에서 말이죠. 조슈아 벨은 연주회 입장권이 수천 달러나 하는 스타니까 사람들이 사인해 달라고 마구 덤비면 어떡하나 걱정까지 했지요.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시 반까지 출근 시간에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조슈아 벨을 알아보기는커녕 그 아름다운 음악을 귀담아 듣는 사람조차 없더랍니다.
다들 휴대전화로 통화하느라 정신없고 바빠 출근하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구두닦이만이 그 음악을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조슈아 벨인지는 모르고 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거죠.
교회는 어디에나 있지만 조슈아 벨 연주를 듣기 위해 티켓을 사서 들어가는 공간처럼 교회 역시 누구나 선망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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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5.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자 먼저 된다
지나온 지적인 삶을 결산하고 고해성사하듯 거듭난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보는 자연, 인간, 사랑을 소박하기 써 나가고 싶습니다.
5차방정식이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해준 것처럼, 인간의 구원은 인간으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깨달음이 결국 선생님께서 신앙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은 세례까지 받았으니까. 신앙이 확실하다고 하지만, 솔직한 제 고백은 아직 광야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평생 수제자를 했지만 결국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부정하고 도망갔잖아요. 눈으로 본 베드로도 그랬는데, 어떻게 제가 지금 자신 있게 신앙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가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먼저 된 자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늦게 들어가서 일을 해도 같은 돈을 주신다는 말씀이 저에게는 고마운 말씀입니다.
평화를 얻고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절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5차방정식입니다. 그건 영성으로 해야 합니다. 생명의 떡인 성경입니다.
대화6. 지성을 넘어 영성의 두드림으로
자신이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열어줄 수 없습니다.
지성이라고 하는 욕망이 두드리려고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안 주는 것이지, 지성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두드리면 다 열어주십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성의 대표적인 인물이 영성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지성과 상치된다거나 대립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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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예수님이 세 가지 것을 믿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중 하나가 인카네이션(성육화)된 육체를 가진 예수님입니다. 육체를 가졌다는 것은 감각을 가졌다는 것이고 썩어지고 망가지는 소멸되는 예수님, 우리와 똑같은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것부터 믿으라 하셨는데 그게 지성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영체, 즉 영성이지요. 그것은 몸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해체를 하지 않고서는, 지적인 내가 강하면 강할수록, 육체를 가진 예수님은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비교적 지적이 아닌 사람, 육체의 질서, 인간의 경험이라든지, 분석적분해라든지 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쉽게 de passe. 즉 횡단할 수 있지요.
‘그 나이에 뭐가 답답해서 세례받는 거냐?’라고 묻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명예 달라면서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기더라. 돈 벌려고 애쓰니까 되더라. 또 병 때문에 병원 다니니까 나아지더라.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외로워서 무엇을 하든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세상에 나 혼자구나 싶었습니다.
영혼이 갈구할 때, 목마를 때, 수돗물이든, 1급수든, 2급수든, 보통 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갈증을 느낄 때 어디로 갑니까? 물론 그런 영혼의 아픔과 갈증이 교회에 간다고 해결되진 않지요. 하지만 식당에 가면 만날 맛있는 음식, 입에 맞는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도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갈 수밖에요.
대화7.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혼자 너무 외로워서 못 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따님의 이유도 있으셨겠지만, 어찌할 수 없는 존재적 외로움도 있으셨던 것 같은데요. 신앙으로 해서 이런 것을 얻고 싶다는 것이 있으신지요?
내 문학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분이라면 딸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됐다는 것은 근인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20대부터 나는 돈이나 가난, 또는 권력, 전쟁에서 비롯된 생명이나 안일에 대한 결핍에서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절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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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내가 혼자라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이것은 나만의 고독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고독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지요.
나는 아직도 문지방에 서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착한 신도, 교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갈구하는 중이지요. 정말 하나가 되더냐고 묻는다면 기도를 하니까 앵프라맹스, 그 아플 때 어머니의 차가운 손에서 느꼈던 영원히 찢을 수 없는 엷은 막이 찢겨지더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뿐입니다. 소위 하나의 구제를 받은 사람, 진정 희열에 가득 찬 사람은, ‘oneness(단일성, 통일성, 동일성)’를 알게 된 사람은,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밥을 굶든, 사랑을 하든, 배신을 당하든, 어떤 제왕보다도 권력이 있고 어떤 부자보다도 부자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으니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램 29:11)
2017. 3. 30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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