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2021. 8. 14. 12:35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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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 풀꽃 시인이 세상에 보내는 편지 -

■ 나태주 지음

0 초등학교 교사

0 1972 서울신문 신춘문예당선

0 공주 풀꽃문학관 운영

0 그의 꿈

1. 시인이 되는 것

2. 예쁜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것

3. 공주에서 사는 것, 모두를 이루었다.

0 저서 : 시집,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 등 150여권

0 2020년부터 한국 시인협회 회장

■ 그대의 시간을 축복합니다

- 나태주

젊고 어린 벗이여

나 지금 늙은 사람이지만

나도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소년이었고

청년이었고 장년이었다오.

그런데 누가 나를 이렇게

늙은 사람이 되게 했을까요?

우리 어머니였을까요?

아니면 우리 아버지였을까요?

아닙니다.

나 스스로 이렇게

늙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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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 시간은 어린 벗 그대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가 없고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빌려 올 수도 없고

나의 시간을 빌려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소중한 줄 알고 살면

그것 자체가 성공이고 행복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사십시오.

시간을 사랑하면서 사십시오.

그대 앞에 있는 광주리

그 광주리에 가득한

빛나는 시간을 축복합니다.

부디 그대의 시간을 껴안아 주십시오.

◎ 여는 글 : 선하신 귀의 주인이여

이 책의 독자는 젊은 세대들이고, 이 책의 저자는 늙은 사람이에요. 늙은 사람은 인생을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이지요. 그런대로 경험이 있을 것이고 보고 들은 것이 많을 거예요. 그 가운데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해보려고 그러는 것이에요.

일단 가까운 귀는 당신의 귀에요. 단수의 귀이지요. 그렇지만 그 하나의 귀가 여러 사람의 귀가되기를 소망해요. 귀에서 귀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고리를 소망하고, 그 귀를 가진 사람들의 가슴과 가슴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밭을 꿈꿔요.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우선은 도와줄 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당신 친구들이 도와주고 당신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또 도와줄 것이에요. 그렇게만 되면 나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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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 마음의 징검다리

■ 내 이름 나태주

 

내 이름은 나태주예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지요. 첫 이름은 수웅이였어요. 수웅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식 이름이 아니고 일본식 이름이에요. 태어난 것은 1945년 민족 광복의 해, 3월 16일. 그러니까 일본 식민지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지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초에 아버지가 이름을 고쳐주셨어요. 집안의 돌림자 항렬에 맞춰 ‘기둥 주(柱)’를 넣고 그 앞에 ‘클 태(泰)’ 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태주예요. 태주란 이름을 그 뜻을 풀면 ‘큰 기둥’이에요. 맏아들이기 때문에 집안의 큰 기둥이 되어달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초등학교 교사시절, 어느 비오는 날, 퇴근을 하려고 교무실에서 나와 운동장을 질러가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이 그러는 거예요. “나 좀 태워 주.” “나 좀 태워주세요.”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나중이 알고 보니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뒤 생각하게 되었지요. 내 이름이 ‘나 좀 태워주세요’니까 자동차 없이 살아도 좋겠구나. 그래서 나는 끝내 자동차 없이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을 하지요.

일종의 핑계이고 농담입니다. 나는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를 했어요 열 아홉 살 때부터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1971년부터 나는 시인이기도 했어요. 서울신문이란 중앙지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하여 시인으로 당선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 뒤로부터는 계속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시인이었어요.

어쨌든지 나는 스스로 교직은 직업이고 시인은 본업이라고 말하면서 살았어요. 이것은 궤변이나 마찬가지의 말이지요.

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나에겐 할 일이 남았지요. 시를 쓰는 일이고 시인으로서 사는 일입니다. 오히려 교직에서 물러난 뒤 더욱 열심히 시를 썼고 더 많은 책을 냈습니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된 셈이지요.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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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그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날들이었지요.

그래서 8년 동안이나 공주문화원 원장 일도 했는데 그건 내가 교직에 있었고 한 때 교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외할머니와 함께

나는 부모가 모두 계셨지만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의 손에 얹혀서 자랐습니다. 네 살 때부터 열두 살 때까지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초등학교 다니던 기간 동안, 사람의 일생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인데 그 기간을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겁니다. 어쩌면 내가 시인으로 일생을 살아야 했던 것이 그때부터 예약된 일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해요. 외할머니는 남편인 외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하나밖에 없는 따님인 우리 어머니를 출가 시키고 혼자 서만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나는 외할머니의 오로지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처럼, 막내둥이 아들처럼 자랐지요. 내 생애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걱정 없던 아름다운 시절을 손꼽으라면 서슴없이 나의 유년시절, 외할머니와 함께일 때입니다. 지금도 행복한 느낌의 꿈을 꾸면 으레 외갓집에서 외할머니와 더불어 사는 날들입니다.

외할머니는 학교에 다닌 분은 아니지만 한글을 읽을 줄 아셨어요. 그래서 밤이 되면 나에게 옛날이야기 책을 읽어주셨지요. 그것이 나의 문학적 소양의 기초가 되지 않았겠나 싶어요. 이야기책을 듣고 또 외할머니가 해 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꿈꾸는 아이, 상상하는 아이로 자랐던 게 아닌가 싶어요.

외할머니는 나에게만은 좋은 것을 먹이려고 했고 춥지 않게 덥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써주셨어요. 그래서 나는 가난한 집 아이였지만 가난하지 않은 아이로 자랐지요.

또 한 가지는 자연과 더불어 자랐다는 것입니다. 외갓집 동네는 적막한 시골마을이었지요. 그렇지만 나무와 풀들이 많았고 새들도 많았고 곤충들도 많았지요. 그 모든 자연조건이며 환경이 어린 나에게는 친구였으며 이웃이었지요. 어차피 나는 시골을 떠나서는 살지 못하도록 된 사람이었지요. 말하자면 촌놈 기질이 뼛속 깊이 박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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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어린 나를 ‘우리 애기’라고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한 다음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내가 나이를 먹고 변해도 외할머니 마음속에 들어있는 나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한 증거입니다. 이런 외할머니가 나에게 있었던 건 나로선 커다란 행운입니다.

■ 마이너 인생

어차피 나의 인생은 마이너 인생입니다. 그건 어린 시절부터 그러했고 성인이 된 다음에도 그러했고 오늘이 이르러서도 마찬가지 압니다. 조금은 어둑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앞자리가 아니라 뒷자리인 것이 나의 인생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열심히 하긴 하는데 그 성과가 어중간했고 겨우 남이 뒤나 따라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평생 갖가지 시험을 치렀는데 한 번도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운이 좋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지도자가 되지 못했고 철저한 추종자도 되지 못했습니다. 늘 외로운 아이였고 외톨이 아이였고 차라리 자발적인 왕따였습니다. 그러기에 생각이 많았고 망설임이 많았고 성취와 만족감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여기 없는 그 무엇, 먼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특별한 인생으로 몰아갔습니다.

청소년 시절 내가 가졌던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건 사실 보통의 소년들이 갖지 않는 소원이었지요. 첫째가 시인이 되는 것이었고, 둘째가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셋째가 공주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일생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시인이 된다는 것, 내가 앞에서 밝힌 대로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이 되었을 뿐더러 50년 동안 현역 시인으로 버티며 살았으니 시인이 되겠다는 소원은 그런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 다음 소원인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꿈도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오늘날 함께 사는 아내를 만나 그 또한 50년 가까이 살아 왔을 뿐더러 아이까지 둘 낳아 길렀고 또 그들도 결혼하여 각기 자식을 둔 입장이니 두 번째 소원도 이루어졌노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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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 번째 소원입니다. 공주에 살고 싶다는 꿈, 물론 1979년부터는 공주로 직장을 옮기고 잡을 얻어 살고 있으니 공주 사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주 사람들의 인정입니다. 조금은 고집이 있고 배타적인 일면이 있어서 공주 사람들은 내가 40년 넘게 살고 있어도 여전히 서천 사람이 공주에 와서 산다고 말합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공주에서 문화원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주변 친지들의 권유에 따라 문화원장에 출마, 당선되어 연임까지 하며 8년 동안 일했지요. 이로써 나는 명실상부 공주 사람이 되었고 공주 사람들로부터도 공주 사람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지요. 이로써 나는 청소년기에 가졌던 소원 세 가지를 모두 이루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된 셈입니다.

■ 내가 잘한 일

나를 키운 것은 마이너입니다. 결핍입니다. 부족함입니다. 실패가 나를 키웠고 마이너 요인들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해 주었습니다. 그 무엇도 좋은 것, 자신 있는 것, 내세울 만한 것, 자랑스러운 것이 못되었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반작용이라 할까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잘했노라, 내 세우는 항목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가 시를 한결같이 쓴 일, 둘째가 초등학교 선생을 계속해서 한 일, 셋째가 시골에서 계속 산 일, 넷째가 자동차 없이 산 일입니다. 이 네 가지는 결코 자랑이 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핍의 축복입니다. 마이너의 승리입니다.

 

시골살이를 계속한 일도 그렇습니다.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그럽니다. ‘도시를 만든 것인 인간이고, 시골을 만든 것은 신이다.’ 그렇군요. 내가 시골살이를 고집하는 건 실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든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이군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세상 전체가 편안해 집니다.

초등학교 선생을 끝까지 한 일도 그렇습니다. 내 또래 가운데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시험을 치러 중등학교로 옮겨가거나 학업을 계속해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간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한 나는 그냥 그대로 초등학교 교직을 고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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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덕분에 말년에 초등학교 아이들의 어법을 빌린 짧고도 단순하고도 쉬운 작품을 많이 써서 독자들로부터 지지 받는 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풀꽃>시가 그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야말로 내가 초등학교 교직에 오래 있음으로 해서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준 선물이지요.

마지막으로 자동차 없이 산 인생도 그렇습니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서 자동차 없이 살았고, 나이 들어서는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해서 자동차 없이 사는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나로 하여금 특별하면서도 좋은 인생을 주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태워주려고 애를 쓰는 것도 내가 자동차 없는 짐짝 같은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자동차 없이 살았으므로 줄겨 걷는 사람이 되었고 그로 하여 조금쯤 더 명상적인 사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봅니다. 공주에는 내가 세워서 운영하는 공주 풀꽃 문학관이 있습니다. 이 문학관 건물 앞에 나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으면 내가 문학관에 있는 날이고, 자전거가 없는 날이면 내가 없는 날이라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 앞으로 10년

실은 나는 학교에 다닐 때 한 번도 우등상 같은 것을 받아보지 못한 학생이었어요. 받았다 하면 품행방정상이었는데 이 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선행상 같은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행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다만 담임 선생님이 볼 때 다름 아이들은 왁살스러운데 나는 맨 앞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아이라서 그런 상을 주신 거예요.

상장을 들고 집으로 가면 외할머니는 그랬어요. “너는 머리가 좋은 아이가 아니야. 노력을 하니까 그만큼이나 하는 거야.” 나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외할머니에게 섭섭했어요. 왜 “너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 더 노력하면 더 잘할거야”와 같은 말로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무조건 잘해주시는 외할머니인데 공부에 대해서만은 매우 야박하게 말씀하셨어요.

실은 그 말씀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엔 섭섭했지만 두고두고 생각해 볼 때 그 말씀이 나를 살렸다고 봐요. 나의 삶에 약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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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내가 원했던 대로 “너는 머리가 좋은 아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평

생을 두고 공부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결코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나의 생년월일은 1945년 3월 16일, 정식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려면 만 나이로 7세에 들어가야 하는데 6세에 들어갔어요. 그것도 풋감이 떨어질 무렵인 9월에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1학년 공부를 반밖에 못 한 거예요.

어린 시절 우리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첫 아이인 나를 다른 아이들보다 한 해 일찍 학교에 넣은 것이에요. 나중에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사범학교에 들어가게 한 것도 오직 아버지의 뜻이지요.

중학교 시절에도 성적이 그다지 우수하지 못했어요. 사범학교 다닐 때는 아주 성적이 바닥이었고요. 글을 쓴다고 학교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탓이에요. 오늘에 와서 창피한 일이지만 나의 성적은 50명 가운데 45등이에요. 그만큼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대신 나는 학교를 졸업하면서 마음속으로 결심했어요. 좋다. 오늘은 나의 성적이 45등이지만 10년 뒤에 다시 보자. 그때는 분명 내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열심히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베끼고 외우는 사람으로 계속 살았어요.

사범학교를 졸업한 것은 1963년 그 다음 해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지요. 그러고 나서 10년 뒤가 1973년인데 그때 이미 나는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시인이었고, 또 첫 시집을 낸 신진 시인이 되었지요.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10년 앞을 내다보며 살기 시작한 시초였어요. 10년 뒤에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사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의 꿈이고 소망이에요.

진정으로 하는 말이에요. 앞으로 10년, 자기 인생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사는 사람의 인생과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저냥 흐지부지 사는 사람의 인생은 분명그 결과가 다르게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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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바람의 징검다리

■ 안다는 것

지금부터는 내 입장보다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린사람이거나 젊은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배우는 일이고 또 학교에 다니는 일이에요. 인생 경로에서 20세 까지는 공부하는 시기지요.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몸이 자라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자라는 것이기도 해요. 마음이 자라려면 배워야 하지요.

이것을 공자님은 ‘학습(學習)’이라고 말씀 하셨어요. ‘학’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고, 선생님이 주는 것이고,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습’이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습은 안으로 들어온 학을 좀 더 완전하게 해주는 일이고,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안다고 말할 때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아요. 하나는 ‘지식으로 안다’이고 또 하나는 행동으로 ‘할 줄 안다’에요. 흔히 말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지요.

나는 젊은 시절 유교경전에 나오는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란 문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특히 처음 내용인 ’수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왜 마음인 ’수심(修心)‘이 아니고 몸인 ’수신(修身)‘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정말로 몸으로 아는 앎, 실천하는 앎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된 것은 나중에 나이 들어서의 일이에요.

■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는 누구나 하기 싫지요.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공부란 억지로 하는 것이에요. 해야만 하니까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래요 억지로 하다보면 그것이 버릇이 되고 조금쯤 손쉬워지는 것이고 친숙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건 독서도 그래요. 독서도 억지로 하는 거예요. 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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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하다보면 흥미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도움도 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는 말해요. 독서는 강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강제 독서다.

공부란 말도 한자로 써보면 좀 더 공부의 뜻에 가까이 갈 수 있어요. 공부(工夫), 장인 공(工)에 지아비 부(夫)자 예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같은 행동을 계속하고 같은 물건을 만들기를 계속해요. 그래서 끝내는 숙달하게 되어요. 공부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중국어로 공부란 단어는 중국 전통 무술인 쿵후와 발음이 같아요. 쿵후를 능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두 번 동작 연습으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아닐 거예요. 수없이 많은 반복이 있어야 하고 긴 시간의 고달픈 투자가 있어야 할 거예요.

공부를 이야기 할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말은 톨스토이의 권고에요. 세계적 문호요 러시아의 소설가인 톨스토이는 인생의 화두를 ‘성장’이라고 보았어요. ‘인간은 성장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변화하게 되어 있어요. 변화하는 중에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성장이라고 그래요.

이 성장을 위해서 톨스토이는 세 가지의 하위 개념을 말해요. 첫째가 소통, 둘째가 몰입, 셋째가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에요. 소통도 중요하고 죽음을 기억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은 몰입이에요. 몰입. 자아를 잃어버릴 정도로 어떠한 일에 열중하는 것을 말하지요.

알아보면 성공한 사람들, 특출한 사람들은 모두가 이 몰입의 선수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몰입만 잘하면 성공하게 되어 있거든요. 몰입이야말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 성공이란

성공은 무엇일까요? 다들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가지 않는 길>이란 시로 유명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식으로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넓은 길로 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게 과연 성공일까? 무턱대고 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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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다니는 길로 가는 것이 성공일까? 흔히 요즘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의사나 법조인이나 방송인이 되라고 요구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고개는 갸우뚱해집니다.

그것이 정말로 성공일까? 비록 남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로 간다 해도 그 삶이 진정 자기가 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면 그것 자체로 성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슨 일을 하든 행복감을 갖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 아닐까 그런 생각입니다.

나의 생각은 그렇습니다. 성공이란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청소년 시절에 자기가 꿈꾸었던 자기를 늙은 나이에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도 지금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릿이라는 책을 쓴 미국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위스 교수는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인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열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성공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성공이란 청소년 시절에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어 그 일을 평생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늙은 사람이 되었을 때 자기가 꿈꾸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성공은 현재 진행형의 성공입니다.

잘하는 능력과 좋아하는 마음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내 생각으로는 좋아하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팔방미인이란 말이 있지요.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이런 팔방미인 가운데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은 그 일을 끝까지 계속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끔 주변의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너에게 재능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고 열정이 없음을 슬퍼해라.” 이쯤에서 우리는 또 세계적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충고를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라.

성공은 꼭 외형적으로 보아 그럴듯한 성취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 타인의 평가나 인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긍정과 인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은 또 만족감과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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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감과 통합니다. 만족과 행복이 없는 성공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공은 어떤 일이나 삶의 끝자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찾아가는 도중에도 있다고 봅니다.

■ 좋아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 그 마음은 마음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이지요. 누가 시켜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이지요.

공자님도 ‘나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아비생이지지자 我非生而知之者)’ 그러면서 공자님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호학 好學)’이라고까지 말씀하셨어요.

학자(學者), 그래요 여기 서도 배우는 사람이에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학자예요. 대학교 교수도 학자이고 연구가나 전문가도 학자이지요.

공자님은 또 말씀하셨어요.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고, 또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知者不如好者 好者不如樂者)’ 이를 더 알기 좋게 표시해보면 이래요. 지자 < 호자 < 낙자. 그러니까 즐기는 사람이 1등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2등이고, 아는 사람은 3등이란 말이에요.

생각해 보면 좋아한다는 것, 좋아하는 마음은 참 중요한 마음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일도 이룰 수 없어요. 이런 말이 있지요 ‘수학 성적을 높이고 싶으냐? 그렇다면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을 좋아해라.

나도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잘 쓰고 싶은 사람이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열다섯 살부터 시 쓰기를 좋아했는데 그 마음이 아직도 변함이 없어요. 시를 읽고 베끼고 쓰는 일이 즐겁고 좋아요. 그냥 좋아요. 그래서 시인인 거예요.

당신도 이쯤에서 자기가 무엇을 정말로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열정을 바칠 수 있냐를 생각해 보기 바라요 그리고 그 일을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다보면 성공하는 일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예요. 조금쯤 늦게 성공이 찾아오더라도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실망하지 않기만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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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한 번 더 공자님 이야기를 할게요. 공자님의 가르침을 적어놓은 책인 <논어>를 읽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글자 가운데 하나가 ‘즐거울 낙(樂)’자예요. 즐겁다! 공자님이라고 하면 ‘인(仁)’이라든가 ‘군자(君子)’와 같은 말이 떠오르지요. 그렇지만 공자님이 우리에게 권장한 삶은 즐거운 삶이에요. 그리고 기쁜 마음이에요.

공자님의 책 <논어>의 첫 문장이 이래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그다음도 이래요. 먼 곳으로부터 나의 벗이 스스로 찾아왔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결국, 두 문장의 끝에 남는 글자는 기쁘고 즐겁다 이에요.

다음엔 내가 평생을 두고 좋아하는 구상 선생님의 <꽃자리>라는 시 한편을 적어볼까 해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구상

이 시에 두 번이나 나오는 문장이 있어요.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요체라는 것이에요.

 

■ 너무 빠르다

내가 나이 많고 오래 산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서두는 경향이 있어요. 모두가 성급하지요. 그래서 여론이나 관심이 한 쪽으로 몰리는 쏠림현상이 있고 과열이 있지 않나 싶어요. 특히 도시인들의 미덕은 빠르기입니다. 무슨 일이든 빠르게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1994년이니까 벌써 27년 전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선생을 하고 있을 때 외국 여행을 간 일이 있었어요. 단체 여행이었는데 프랑스 파리 시내를 관광할 때 파리의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오며 “빨리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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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한국인이 가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빨리 빨리가 가고 있다’고 말한 셈이지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 빨리빨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근면의 상징이고 성취의 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스스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상실감, 박탈감, 소외감 같은 것들이 많이는 빨리 빨리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내가 자주하는 말이지만, 인생은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가 아니라 일인 경기라는 것!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는 오로지 이긴 사람만이 대접을 받고 영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일인 경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치면 쉬고 빠르면 속도를 조절하면 됩니다. 모두가 승자이고 일등입니다. 패자는 없습니다.

독일 시인 괴테는 이렇게 말했어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이다.’ 방향을 잘 정하고 빠르게 가는 건 좋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속도만 빠르게 하면 안 되지요. 그 결과는 빠르게 망하는 길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서 살다가 50대쯤 되어서야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인생은 이런 것이 아닌데 하면서 후회를 하고 궤도 수정 같은 걸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이미 시기로 보아서 많이 늦은 때이지요.

오늘날 우리들 삶의 현주소는 너무 빠르고 너무 높고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반짝입니다. 마땅히 조금씩 줄여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질 것입니다. 또 너그러워지고 만족이 오고 기쁨이 오고 또 자연스럽게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 ‘무엇’과 ‘어떻게’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묻곤 해요.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예전엔 대통령이나 장군, 장관, 국회의원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은 의사나 법조인이나 방송인을 가장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이들 돌잡이 행사 제일 앞자리에 놓이는 것이 방망이(법조인), 청진기(의사), 마이크(방송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떻게(how)’ 보다 ’무엇(what)‘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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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란 말이 나올 정도였지요. 여기서 편법이 생기고 지름길이 생기고 정직하지 못한 삶이 있었습니다. 불법만 아니면 불의한 일이라도 괜찮다는 참 나쁜 인식이 싹트게 된 것이지요.

나는 8년 동안이나 교장으로 일한 사람입니다. 교직생활의 마지막 학교에서학교 관리직에 있던 사람으로 그 학교 졸업생입니다. 나중에 내가 결혼식 주례를 서주기도 했지요. 그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간 뒤의 일입니다. 학교 곳곳에 쓰레기가 널리기 시작한 거예요.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교장인 나도 놀랐지요.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동안 우리 학교가 그토록 깨끗했던 것은 바로 그 젊은 직원 덕분이었다고. 그는 날마다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학교에 오기 전 한 시간 동안 그 직원이 학교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을 주웠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놀라웠고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요즘 언론에서 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들, 사회적으로 무게 있는 사람들, 일테면 지도자들이 국민의 비난을 받는 실례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입 따로 행동 따로’를 국민들이 눈감아 주지 않는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언행 불일치기 나쁜 것이지요. 예부터 훌륭한 어른들이 지행합일(知行合一),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을 부르짖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을 때도 너 커서 무엇이 될래, 하고 묻지 말고 너 커서 어떻게 살래, 하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삶의 방향도 ‘무엇(what)’에서 ‘어떻게(how)’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보다 더 가지런해지고 덜 고달파지고 덜 공소해질 것이라고 붑니다.

*공소 1. 내용이 별로 없고 짜임이 허술하다.

2. 텅 비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 결핍의 축복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결핍’이라는 말과 ‘궁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말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로서 그 바탕은 가난하고 부족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무늬는 서로 다릅니다.

궁핍은 애당초부터 없어서 가난하고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결핍은 본래는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져서 가난하고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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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결핍이 더욱 견디기 힘듭니다.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도 결핍입니다. 상대적 결핍이지요. 그 어떤 결핍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결핍입니다. 하지만 결핍은 역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기능도 있습니다. 결핍을 감내하거나 극복하면 그 다음에 좋은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실상 모든 좋은 것들은 이 결핍 다음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음식이 유독 맛있게 느껴지거나 진정 물을 마시고 싶은 때가 언제입니까? 배고플 때, 목마를 때입니다. 어디까지나 추운 겨울 다음에 오는 것이 봄입니다. 겨울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봄에 피는 꽃들은 화려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래전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시골학교였는데 출퇴근 때면 들판을 지나야 했습니다.

11월쯤 되는 어느 날이었을 것입니다. 비닐하우스의 비닐지붕이 옆으로 조금씩 벗겨져 있는 거예요. 의아한 마음에 농부에게 물었지요.

그때 대답이 그래요 “이거요. 딸기 잠재우는 거예요.”

딸기를 잠재운다? 비닐하우스에서 잘 자라난 딸기들입니다. 이제 꽃이 피어도 좋을 만큼 자랐습니다. 이때 딸기에게 겨울을 체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닐하우스 옆구리를 걷어 올려 찬바람을 일부러 집어넣어 준다는 것입니다. 가짜 겨울을 주는 것이지요.

이런 예도 있습니다. 호주의 남부 도시 시드니로 이민 가서 사는 우리나라 교포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보던 개나리가 좋아서 고국 방문길에 몇 도막을 잘라다가 시드니 자기 집 정원에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개나리가 자라기만하지 몇 해를 두고서도 꽃은 피우지 않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이 들어 식물에 대해 잘 아는 분에게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시드니에는 겨울이 없어서 자라기만 하지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봄을 마련하는 현상, 봄 되기 현상, 춘화(春化) 현상입니다. 그건 우리네 인생도 그렇습니다. 절대로 시련이나 결핍 없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도 암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들을 보면 알아요 그 사람, 이전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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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삶이 확연하게 달라졌어요. 무의미한 날들이 의미 있는 날로 바뀌고 무덤덤하고 권태로운 일상이 반짝이는 일상으로 바뀝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워지고 감사해지고 싱싱해집니다.

■ 터닝 포인트

이번에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이 또한 내가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해주는 얘기예요 우리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가 있을 수 있어요. 살아가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고 스스로 깨닫는 시점이 바로 터닝 포인트가 있어야 할 시점이에요.

일단 살아가다가 터닝 포인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여행을 해 보는 것이 좋아요. 여행을 하면서 지나온 날들, 자기 삶을 솔직히 내려놓고 돌아보는 거예요. 반성이지요. 그래서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거예요. 터닝 포인트를 갖자고.

그건 나도 그랬어요. 꼭 나이 50세 때였어요. 어려서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고 초등학교 교직에서 승진도 하고 싶었지요. 그래서 26세 때 시인이 되었고, 44세 때 초등학교 교감이 되었고, 그다음 해에 전문직인 장학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길이 시인으로서는 내리막길인 거예요.

그때 나는 유럽여행을 떠났지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세 나라, 최초로 떠난 외국 여행이었는데 그때 11박 12일 동안 나는 나에게 타이르고 타일렀지요.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고.

밤마다 낯선 나라 낯선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나 자신을 설득하고 마침내 굴복을 받아냈지요. 그렇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가면 절대로 지금처럼은 살지 않는다. 어떻게든 새롭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다음 학기에 시골 초등학교 교감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거기서부터 나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지요.

우선 잡문을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신문이나 잡지의 청탁으로 쓰는 글말이에요. 그리고 문인들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책도 잡지를 읽지 않고 고전을 일기로 했어요.

만약 그때 내가 그런 터닝 포인트를 갖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나의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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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만큼 그때의 터닝 포인트가 나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 준 것이지요.

터닝 포인트는 유턴하고는 달라요. 유턴이 가던 길을 돌아서 오는 것이라면, 터닝 포인트는 가던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면서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는 그 어떤 계기를 말해요. 터닝 포인트가 열어주는 길은 처음 가는 길이고 낯선 길이고, 그러므로 눈부신 길이고 놀라운 길이에요. 누구나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인생과 축복을 만날 거예요. 윤동주 선생의 이런 시를 읽으면 터닝 포인트에 대한 생각이 좀 더 확실해질 거예요.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 까치가 날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 <새로운 길>

■ 좋은 친구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해요. ‘좋은 친구는 한 사람도 많다.’ 말로는 쉽지만 현실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에요 이런 말도 있어요. 이번에는 인디언 속담입니다. ‘친구란 나의 슬픔을 대신 지고 가 주는 자이다.’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적이고 좋은 말이에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고 내가 그 누구에겐가 한 번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지 못했다는 게 또 문제지요.

<명심보감>이란 책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술과 밥 먹으면서 형이요 아우요 하는 사람은 천 사람이 있을지라도 내가 급하고 어려운 일 당했을 때 진정으로 걱정하고 도와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수 있다.’ 역시 가슴이 찔리는 말이에요.

과연 나에겐 이런 사람이 있는가? 나는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었는가.

사람들이 톨스토이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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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기 답했습니다. “첫째는 지금, 여기. 둘째는 옆에 있는 사람. 셋째는 그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말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래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금 여기 나하고 같이 있는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이다.”그렇게 지금 곁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친구는 나를 이끌어주는 또 하나의 나입니다. 나의 분신이며 가장 좋은 나의 동행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의 사상가 이탁오는 ‘사우(師友)’란 말로 스승과 제자를 설명했습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친구면서 배울 바가 없다면 그 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탁견인가요! 그럼 여기서 함석헌 선생의 시 한 편을 읽어보기로 합시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 리 길 나서는 길 / 처자를 내 맡기며 /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요’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를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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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우리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가장 복잡한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본래 좋은 느낌에서 출발합니다. 호감, 친밀감, 친애감, 염려, 걱정, 동질감 같은 감정들이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밝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성향을 띱니다.

하지만 이것이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곧바로 미움, 혐오, 기피, 증오와 같은 마음으로 바뀌고 맙니다. 이걸 애증이란 말로 표현해요. 가까웠던 마음이 매우 멀어지고 한 몸이나 한마음같이 느껴지던 상태에서 천리만리나 멀어진 것같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사랑의 원본은 엄마가 아기를 위하는 마음이나 태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조건 주고 싶은 마음, 또 거기에서 출발해서 나오는 엄마의 모든 행동이 사랑의 원형이지요. 이런 사랑을 우리가 경험하고 살았기에 그래도 세상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어요.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같은 방향을 내다 보는 것이다,’

매우 좋은 말이에요. 사실이 또 그렇고요. 마주보고 있으면 대결구도가 생겨 분위기가 팽팽해집니다. 그러나 옆자리에 나란히 앉으면 수평구도로서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생깁니다. 동질감을 느껴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은 대결이 아니라 평화라는 것.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너무 성급하지 않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가까이에 있지 않아도 늘 마음속 깊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걱정하고 응원하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까지 사랑해 주는 사랑을 생각합니다. 이런 사랑을 나는 ‘페키지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물건이며 사람까지 더불어 사랑해 주는 사랑, 그런 사랑이 바로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시 <소네트 19>를 보면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식, 사랑, 시’ 세 가지라고 해요.

여기서 세 번째가 ‘시’라는 건 좀 이해가 필요해요.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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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표현하면 그 시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사는 것이 된다는 설명이에요. 그만큼 사랑이란 감정은 크고도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지요.

■ 행복이란

물질적으로, 사회적 지위로 아주 떵떵 거리며 잘 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집도 좋고 그의 자동차도 비싼 것입니다. 그는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부러운 사람일지는 몰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러움은 남의 것이고, 행복은 나의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이것을 혼동하는 것 같아요.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이자 세계적인 영적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한국인 부유한 것은 맞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매우 따가운 지적입니다. 왜 한국인은 잘사는 데도 불구하고 행복이 부족할까요? 그건 만족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족이 있어야 행복감이 노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은 바라는 것이 너무도 높고 멀고 큽니다. 그러니 자기가 이미 기진 것, 주변에 있는 것들은 양이 차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하니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이 만족하는 마음을 데리고 옵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하는 마음은 만족하는 마음의 마중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만족하는 마음을 불러오면 인간은 저절로 기쁜 마음에 이릅니다. 이 기쁜 마음이 바로 행복을 초대해 오는 원동력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이 기쁜가 생각해 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인 것, 무슨 일인가를 하는 것, 누군가를 만나는 것, 어딘가를 가는 것, 그렇다면 내가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 까닭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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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구름의 징검다리

■ 중학생들과의 만남

중학생, 대개 이 시기에 사춘기를 맞아요.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출렁거려요. 마치 바다에 세찬 파도가 일어 일렁이는 것 같아요. 사춘기란 어린이이가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를 말해요. 신체적으로 우선 어른이 되어가면서 정신적으로도 어른이 되어 가는데, 때로 정신적인 면에서 이를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요.

사춘기를 성에 눈 뜨는 시기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자아가 눈뜨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중학교 시절이 중요해요. 가소성이 강한 시기이지요. 교육학에서 가소성이란 ‘주물러서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는 성질’을 말해요.

문학 강연을 할 때도 중학생을 상대로 할 때는 살짝 긴장이 돼요. 특히 중학교 2학년이 부담스러워요. 중학교 학생들 가운데서도 제일 요란스런 아이들이 바로 중학교 2학년생이거든요. 사람들은 말해요. ‘중학교 2학년 아이들 무서워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중학교 아이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아이들이라고….

그런데 말이지요. 이렇게 요란스러운 아이들도 시를 읽기만 하면 얌전해지고 차분해져요. 그건 참 놀라운 변화예요.

한 번은 제주도의 어느 중학교에 강의 갔을 때 한 여학생이 사인을 받으면서 내 시 한 편을 외우는 거예요. 그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거예요 <혼자서>란 시였는데 시의 마지막 구절 ‘너 오늘 혼자 외롭게 /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 힘들어 하지 말아라.’가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었지요. “그래 너희들도 힘든 일 있니?” 그랬더니 대뜸 “네”하고 답하면서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울먹거려요. 나는 그때 그 아이를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알게 되었지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 주고 달래줄 수 있는 시를 써야겠구나! 그런 다짐을 하기도 했지요.

다시 어느 중학교에 갔을 때 길게 줄을 서서 나의 사인을 받고난 한 아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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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요. 사인을 해 주었는데도 아이가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다가와 말하는 거예요. “선생님 제가 안아 봐도 될까요?” 그러더니 나를 덥썩 안고는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려고 해요.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큰 감동을 받아요. 무언가 주기 위해서 강연하러 갔는데 오히려 많은 걸 받아가지고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바로 중학생들과의 만남이에요.

■ 쏠림현상

1947년 미국의 코닐리어스 오스굿이라는 인류학자가 우리나라의 경기도 강화도 선두리 마을에서 한국인들의 정서적 특성을 연구한 일이 있다고 그래요. 그때 오스굿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세계가 매우 감정적이고 격정적이며 불안정한 구석이 있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이성적인 잉글랜드 사람에 비해 격정적인 아일랜드 사람에 가깝다고 하여 한국인을 ‘오리엔탈 아이리시’라고 명명하고 구강 가학적 민족이라고 말했어요.

한국인들은 입으로 먹고 마시고 말하는 것을 매우 격렬하게 한다는 것이에요. 술이나 음식도 격하게 먹고, 말하거나 노래를 하는 것도 화끈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인 한류 문화도 가능했다고 설명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욱하는 성격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설명해요.

한 곳으로 기우는 이 외통수, 외골수 기질을 우리 젊은 세대들은 조금씩 안 그런 쪽으로 고쳐주었으면 싶어요. 느긋하게 관찰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대처하는 성숙한 마음씨를 가지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오히려 길어요. 지나치게 서둘러서 모든 걸 쉽게 결단 지을 일이 아니에요. 젊은 세대들의 아름답고 여유 있는 내일의 삶이 참으로 보고 싶어요.

■ 취업과 결혼

젊은 시절,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가 무엇일까요? 뭐니 뭐니 해도그것은 먼저 취업의 문제일 거예요. 직장을 갖는 것이지요. 일단은 직장을 가져야 앞날의 삶을 열어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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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젊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여러분이 고민하고 또 노력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일 거예요. 한 때는 대기업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은 공무원으로 몰리는 경향이 강해요.

젊은 시절 취업과 함께 또 중요한 문제는 결혼이에요. 잘 알다시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결혼이지요. 결혼이야말로 인간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예요. 옛날 어른들도 결혼은 ‘관혼상제’ 가운데 하나라고 해서 중요시했지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라고 까지 말했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안타까운 심정이에요. 정말로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에요. 사람은 적절한 시기에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면서 살아야 해요. 그래야만 완전한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연애와 결혼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에요. 연애는 남녀가 서로 이성적 끌림에 의해서 단순하게 좋아하는 상태를 말해요. 특별한 제약도 없고 책임도 없지요. 자유롭지요. 사귀다가 마음에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되는 인간관계지요. 상호간 상처가 남기는 하겠지만 조금은 가볍고 선택의 폭이 넓은 관계이지요.

 

하지만 결혼은 달라요. 연애가 감성에 기초한다면, 결혼은 이성에 기초해야 해요. 우선 결혼은 생활이에요. 그것도 공동생활이에요. 가족 공동체이고 경제 공동체이지요. 그러므로 상당부분 제약이 따르고, 책임이 따르고, 약속 이행이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도 성실성이 요구돼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있어야 해요. 연애할 때는 감성적인 사랑만으로 충분하지만 결혼 생활에서의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사랑이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어야 해요.

나는 사랑의 단계가 호기심, 신뢰, 존경으로 발전하고 성장한다고 보는데, 존경의 단계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신뢰까지는 가야만 결혼 생활이 원활하게 유지된다고 봐요. 바로 이 신뢰가 무너져서 결혼의 파탄이 오지요.

■ 인생 사계

혹시 ‘인생사계’라는 말 들어 봤는지요? 대뜸 사계라고 하면 네 개의 계절을 말하는 사계(四季)를 떠올렸을 거예요. 그렇지만 여기서는 인생에 네 가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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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있다는 뜻으로 사계(四計)예요.

이 사계란 용어는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말이에요. 국어사전의 풀이를 한 번 보지요. ‘사계(四計) : 삶에서의 네 가지 계획. 곧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한 집안의 계획은 화목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먼저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말이에요.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있다는 말은 봄에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일을 준비하라는 말이에요. 아마도 우리민족이 농경민족이었기 때문이 나온 말일 거예요.

세 번째로 일생의 계획은 부지런함에 있다는 말은 포괄적이고 원대한 말이에요, 구체적인 어떤 계획보다는 인생 태도를 말하지요. 이런 말이 있어요.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이 만들어준다.’ 그만큼 부지런함이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마지막은 더욱 깊고 부드러운 부탁이에요. 한 집안의 계획은 화목함에 있다는 말씀. 이 얼마나 좋은 말씀인지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같은 말도 이쯤에서 생기는 말이에요.

■ 헝그리와 앵그리

나는 19세부터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경기도의 비무장지대 가까운 곳, 시골학교에서 2년 반 정도 선생을 하다가 군대에 입대하여 3년 복무하고 돌아와 다시 교직에 복직하였지요. 그것이 1969년.

그때의 내 나이 26세. 결혼을 하고 싶었지요. 요즘 세상은 안 그렇지만 그 시절 26세는 결혼 연령으로는 좀 늦은 나이였습니다. 같은 직업인 여교사를 적극적으로 좋아했는데 그만 버림을 받고 그 극복 과정에서 시인이 되었지요.

1971년 시인으로 등단한 뒤 조금쯤 사회와 세상에 대한 안목이 열리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회 정의나 그런 큰 문제에까지는 관심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삶을 이끌고 가는 힘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헝그리와 앵그리. 그것이 젊은 시절의 추동력이고 큰 두 바퀴이지요.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은 많은 것들에 대한 욕구와 함께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데서 오는 미달감,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있지요. 말하자면 결핍입니다. 이것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헝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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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관심 영역이 자기 자신에서 확대되어 사회나 세상으로 향할 때 앵그리가 됩니다. 사회정의를 생각하고 사회변화를 꿈꾸며 그것을 요구하지요. 헝그리가 강한 젊은이는 개인 지향이 되고 생활의 안정과 행복을 추구하는 반면, 앵그리가 강한 쪽은 집단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념 중심으로 생각하고 정의감 실현을 목표로 둡니다.

젊은 시절 나는 헝그리 쪽의 젊은이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달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어떻게 하든지 자신을 채우고 세워야겠다는 심정하나로 살았지요. 무엇보다도 빈한한 삶이 힘들었습니다. 직위도 낮았고 사는 환경도 좋지 않았지요. 그렇지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꿈꾸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정직한 삶이었습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내가 좋아했던 말은 ‘빈이무첨(貧而無諂) 부이무교(富而無驕)’였습니다. 이 또한 옛날 어른들 말씀인데 이런 뜻입니다. ’나 비록 가난하지만 아부하지 않고, 나 비록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겠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인데 이 말은 나에게 큰 위로와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시절 나를 지켜준 고마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먼 길입니다. 아름답고 좋을 때도 있습니다. 현재의 처지가 힘들다고 처음부터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인생한테 미안한 일이고 죄 짓는 일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한 발자국씩 노력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라고만 말하고 싶어요.

나의 삶의 지향은 매우 소박합니다. 날마다 욕 안 얻어먹기와 밥 안 얻어먹기가 내 삶의 목표입니다. 그 두 가지만 실천하면서 살기에도 나의 삶은 힘이 듭니다.

여기에 더한다면 요구하지 않기와 거절하지 않기입니다. 보통은 거절하고 요구하는 삶입니다. 이걸 좀 바꿀 수 없을까가 나의 소망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정직하고 솔직하며, 나 자신에게는 청렴하고 결백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보다 더 좋은 삶의 무기는 없다고 봅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021. 8. 5.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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