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5. 10:19ㆍ독서후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3)
-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
■ 김지수 지음
◎ 11. 스승의 눈물 한 방울
- 스스로 결점 없는 영웅보다 자기감정에 빠져 울거나 웃거나 추억에 젖기를 좋아하는 나의 스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수다스러워졌고 더 귀여워졌다. -
■ 눈물은 언제 방울지는가
이어령 선생님과 그의 아내인 강인숙 평론가의 이름을 딴 평창동 영인문학관에는 우리 시대의 문학을 이끌었던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가 끊이지 않고 열렸다. 코로나로 황량한 계절을 지나고 있어도 그곳에 발을 들이면 김채원, 서영은, 최인호 등 작가들의 육필 원고와 소지품, 젊은 날의 흑백 사진이 단정하게 내방객을 맞이했다. 이어령 선생의 자리는 지하의 가장 안쪽 구석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서 쓰던 앉은뱅이 나무 책상 하나와 <축소지향의 일본인> 여러 판본이 진열되어 있었다. 남편의 모든 것을 보존해서 보여주려는 아내 강인숙과 아무것도 두지 말라는 이어령의 합의한 자리가 문학관의 가장 조용한 곳에 여덟 평 정도의 공간이었다.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내 흉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내가 한사코 사양하니, 내 아들이 대신 모델을 서서 조각을 해 왔어. 집사람은 나랑 생각이 좀 다르지. 난 감투가 싫어서 대학에서 과장도 안 한 사람이야. 근래에 문학은 없고 이름만 있는 문학관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 끄는 이벤트지. 나는 그런 게 정말 싫어.
“옛날에는 아무리 못 살아도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었네. 요즘에는 천하 없는 재벌이라도 힘들어.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지. 살고 싶은 게 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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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탄생이 병이고 죽음이 병이냐고? 생사의 문제가 낯선 사람들의 공간에서 다뤄지니 안타까워. 공간의 쓰임도 그래. 외국은 교회에 무덤이 있고 공원에 무덤이 있지. 우리는 다들 아파트에 살면서 관 하나 들어오고 나갈 데가 없는 세상이 된 거야.”
“이제껏 쓴 내 글이 묘비명이고 무덤이고 기념관이니 묘비명도 쓸 거 없다고. 글 쓴 게 하루하루 죽음을 쓴 거잖아. 아무리 잡문이라도 나는 늘 마지막을 썼어. 죽음이라는 건 없어지라고 있는 거야. 사라져버리는 게 최고지.”
“이 시대는 핏방울도 땀방울도 아니고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하다네. 지금껏 살아보니 핏방울 땀방울은 너무 흔해. 서로 박터지게 싸우지. 피와 땀이 싸우면 피눈물밖에는 안 나와. 피와 땀을 붙여주는 게 눈물이야.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울려야 천 리를 달리는 한혈마가 나오는 거라네.”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한 것이 나오는 법이라네, 감상적이고 무력한 약자의 눈물이 가장 큰 힘이지. 프랑스인들은 자유평등의 기치를 걸고 혁명을 일으켰잖나. 그 그럴듯한 가치가 공포 정치로 엉망진창이 됐을 때. 박애가 나와서 혁명의 역사를 바꿨어. 자유와 평등은 끝 모르게 싸우지만, 그 사이에 박애가 들어서면 눈물 있는 자유, 눈물 있는 평등이 나오는 거라네.”
“그런데 그 눈물 한 방울이라는 게 제게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중요한 지적이네. 눈물 한 방울이라면 방울이 들어가 있잖나. 소리가 들어가 있는 거야. 눈물은 소리가 없는데도 우리말은 재밋게도 뚝뚝 흘린다고 해. 유명한 농담이 있어. ‘홍도야 울지마라’를 한 글자로 줄이면 뭐지?”
“뚝!”
“그렇지. 줄줄 흐르는 눈물이 있고 방울지는 눈물이 있네. 눈물 한 방울은 구슬이 되고 수정이 되고 진주가 되는 거야. 눈물방울은 눈물하고는 다른 걸세. 하나둘 셀 수 있어. 방울이 되면 음향이 되고 종소리기 되지.”
“이제 박쥐가 걸리던 코로나도 인간이 걸리고, 닭이 걸리던 조류인플루엔자도 인간이 걸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하겠나. 눈물이야. 짐승 중에 낙타나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어.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은 못 흘린다네.
영화 <터미네이터 2>를 보면 어린 존 코너가 우는 모습을 보고 터미네이터가 묻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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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뭐냐? 아프면 나오는 거니?’
고통은 알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개념은 모르는 거야. 이 영화의 엔딩이 기가 막히다네. 터미네이터는 인간과 우정을 나누면서 인간의 편이 되고, 자기 몸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칩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 안에 들어가거든 존은 아버지처럼 느껴지던 터미네이터가 사라지는 게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그때 이 로봇이 강철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래.
‘이제는 눈물이 뭔지 좀 알 것 같다’고.
■ 인사이트는 능력 바깥의 것
“나는 체력도 IQ도 남보다 대단히 뛰어나지 않아. 그러나 영성에 있어서는 남과 다른 무엇을 느낀다네. 사람의 능력을 따질 때 어릴 때는 먼저 체력을 보지. 어린아이는 키 큰 놈이 최고니까 키 잴 때 까치발 들잖아. 나는 키가 작아서 교실 맨 앞에 앉아서 선생님 침방울 꽤나 맞았다고. 큰 애들은 뒤에 앉아 도시락 먹고 화투 칠 때 말이야. 경쟁 능력의 80~90퍼센트는 어릴 때 체력에서 결정됐어. 그 다음엔 천자문, 구구단, 기억력, 아이큐 테스트를 하지.
body. mind. 다음이 spirit, 영성이야.
영적인 면, 직관이 뚫려 있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느꼈다네. 최근에는 더 많이 느끼지. 내가 2020년 1월에 ‘메멘토 모리’를 방송하며 설날부터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2020년 한 해 인류가 코로나로 죽음을 대면했어.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 돈에 탐닉하다 마스크 한 장 앞에서 죽음을 느낀 거지.”
“매년 1월이면 언론에서 선생님 댁을 찾아와 한 해의 밑그림을 그려가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미래의 그림은 머릿속에서 순간 떠오르시는 거예요?”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인사이트는 내 능력 바깥의 일이라네. 이런 예기는 오늘 처음 하는데, 나는 전화가 오면 어디서 걸려온 건지 대충 알아. 거의 80퍼센트가 맞아 물론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 있겠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화살이 피해 가니까 산 거 아니겠나? 말 타고 화살 쏘는데 그, 사람의 화살이 피해 가는 사람이 있어. 진짜 무운이 있는 사람인 거야. 장비든 관우든 1백 번 싸우는데 화살을 어떻게 안 맞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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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운이 화살을 피하는 것이라면 문운은 대중의 가슴에 화살을 꽂는 것이겠군요. 그런 기회는 하늘이 주는 것일 테지요. 글로벌 트렌드의 중심을 관통해버린 BTS나 봉준호 감독처럼 말입니다.”
“기본적인 노력과 능력은 당연히 갖춰야겠지. 그런데 정말 크게 잘 되는 스타는 하늘이 도운 거야. 책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 되는 작가도 있고 안 되는 작가도 있어. 책을 아무리 지성과 정성을 다해서 써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개발새발 대충 쓴 것 같은데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있거든. 나중에 읽어보면 확실히 베스트셀러는 그때의 대중을 끄는 힘이 있어. 문운이야. 애 낳으면 천재도 낳고 둔재도 낳는 것처럼, 똑같은 사람 머리에서 똑같은 책을 읽고 써도 책마다 그 운이 다른 거야.”
■ 빛이 물처럼 덮치듯 신도 갑작스럽게 우리를 덮친다
“다시 영성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그러지. 영성을 이야기하면 나는 우리 딸 민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 우리 딸애가 나보다 공부도 훨씬 잘했어. 미국에서 그 어렵다는 법대 학점을 조기 이수하고 변호사 시험을 쳤지.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아이가 어느 날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네. 내 딸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존재를 느꼈다네. 영적인 사람은 신을 보는 거야. 꿀벌이 자외선 적외선을 보듯이 나도 사람의 기운은 느끼고 있네. 아무리 날 반가워해도 말문이 딱 막히는 사람이 있고. 초면인데도 죽마고우처럼 말문이 터지는 사람이 있어. 마음을 투시하고 초자연적인 것을 느끼는 것은 모두 영적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영적이야. 엄마가 떠나고 엄마를 여의는 것도 아이들은 느낌으로 알지. 어린 시절에 밤에 자다 깨면 나는 늘 어머니 코밑에 손을 갖다대곤 했네. 숨 쉬나 안 쉬나 조마조마해하면서. 그러더니 일찍 가셨어.”
내딸 민아는 죽기 전에 정말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네. 일 년간 한국에서 내 곁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지. 죽음에 맞서지 않고 행복하게 시간을 쓴 거야. 암에 걸렸어도 영적인 힘으로, 그 아픈 4기가 지나 온몸에 암세포가 퍼지는데도, 두세 시간을 강연을 했지. 육체가 소멸하기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했고. 기도드리고 쓰러져서 대여섯 시간 있다가 운명했다네.
“나도 그래. 다 죽어가다가도 ‘나 오늘 못해’하다가도 얘기 시작하면 샘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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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듯 나오잖아. 그건 내 힘이 아니야.”
그런데도 딸을 생각하면, 지금도 자꾸 미끄러지는 기분이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영성에서 지성으로
“가끔 저는 선생님이 웃으시는 모습에서 어린아이를 봅니다. 어린이의 세계와 초인의 세계가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가? 지금도 나는 글을 쓸 때 그런 어린아이의 세계를 느껴, 내 글 중에도 영감과 영성으로 쓰여진 글이 있고. 억지로 지식으로 짜맞춘 글이 있어.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신들린 듯이 쓴 글에는 영성의 빛이 있는데. 사방의 지식을 가지고 쓴 글은 아무리 절묘하게 썼어도 감동을 주지 않아. 글 쓰는 데도 운이 있고 영성의 담금질이 있는 걸세. 그건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의 공통의 경험이야. 깜깜한 공백 속에서 도저히 풀리지 않다가. 어느 순간 탁 빛줄기가 쏟아지지.”
스승은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지성은 은빛 화살이 하늘의 과녁을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진 영성의 부스러기라고.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 12. 눈부신 하루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 누가 짐승이 되고 누가 초인이 될까
코로나바이러스는 오래도록 수그러들지 않았다. 떠날 수 없고 모일 수 없자. 외식업계, 관광업계, 공연업계는 비명을 질렀다. 거리가 온통 을씨년스러운 가운데도 배우이자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을 총지휘했던 송승환이 정동극장에서 공연을 올린다고 알려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눈이 멀어가고 있었고 이 즈음 실명에 가까운 채 생활하고 있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 인연을 이어가던 나는 그의 실명 과정을 가까이서 찬찬히 지켜보게 되었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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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메뉴를 읽을 수 없었고, 그다음엔 접시에 놓인 샐러드를 집을 수 없었으며, 그다음엔 오직 목소리로만 사람을 구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찬란한 빛의 드론을 띄우며 감격해하던 그는,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시력을 잃어갈수록 더욱 명랑해지고 낙관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식사자리에선 낭만적인 제스처로 와인 잔을 부딪쳤고 세련된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다. 보이지 않는 채로도 대본을 외워 드라마에 출연했고, 정동극장 무대에서 <더 드레서> 라는 인생 역작을 무대에 올렸다. 그 옛날 연극 무대 <에쿠우스>에서 말의 눈을 찌른 소년은, 자라서 치매로 정신을 잃어가는 노배우로 실감나게 연기했다. 눈 먼 배우의 공연이라니!
“자네 얘기를 듣고 보니, 그 친구의 실명은 그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 준 모양이네. 실명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세계로 여행을 떠난 게로구만. 인간은 극심한 고난에 처하면 자기가 몰랐던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네.
나치수용소의 체험을 기록한 빅터 프랭클의 <밤과 안개>를 보면 손에 물 한 번 묻혀본 적이 없는 상류층 부인이, 그 참혹한 캠프에서 씩씩하게 살아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했을 때 빅터 프랭클이 물어.”
“‘고생 한 번 못 해본 사람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느냐?’
그 부인이 기쁜 얼굴로 고백했네. 자기는 평생 남들 도움만 받고 살아서 진짜 인생을 모르고 살았노라고. 하마터면 인간이 어떻게 밥 먹고 어떻게 싸우고 살아가는지 모르고 죽을 뻔했다고. 가장 밑바닥에서 그걸 알게 해준 신에게 감사한다는 거지. 인간은 고난을 통해서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그 모습이 비참이든 숭고든. 고난이라는 실전을 통해서만.”
“고난에 처했을 때 인간은 비참해지거나 숭고해지거나 두 부류로 갈린다네. 그것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영의 일이라네. 보통 때 사람은 육체와 지성, body와 mind로 살아가는데 극한에 처했을 때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 spirit 영적인 면이 되살아나는 거야. 내가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딸과 손자를 다 먼저 보내는 극한 고난을 겪었기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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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는 스승이시니까요. 그런 선생님도 스승이 있겠지요? 그 스승에게는 무엇을 묻고 싶으세요?”
“글세….스승이 있으면 내가 글을 썼겠나? 스승에게 묻고 스승의 글을 읽고 끝났겠지.”
아무도 만족할 만한 답변을 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글 쓰고 꿈을 꾸었다고 했다. 나아가 인간에게 무슨 스승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생님! 스승을 원하기에 제가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건네주는 스승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이성복 시인이 그러더군요.”
“스승이 있으면 외롭지 않겠지. 스승을 키우면 그 존재가 신이라네. 우리가 말하는 스승은 스님이라는 뜻이야. 스님이 커지면 부처가 돼. 제일 아래 단계가 스승이야. 이승에 스승이 없으니 죽고 하늘에 올라가 저승에서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건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네.”
“어려운 일이야. 성인군자의 아들도 나쁜 짓을 해. 아버지의 선한 피를 받았는데도 교화가 안 되지. 공자님은 아들을 가르치지 않았어. 가르칠 수 없는 거지. 가장 가까운 피붙이조차 가르칠 수 없어. 결국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엉터리라네. 남을 가르칠 수도 없고 남에게 배울 수도 없어. 인간이 그런 존재야.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하네. 그게 실존이야. 군중은 남이 이 말 하면 이리로 가고, 남이 저 말 하면 저리로 가지. 휩쓸려 다녀. 자기가 없으니까 자꾸 변하는 거라네.”
“자기는 남에게 배울 것도 없고 남을 가르칠 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나’라고 할 수 있지.”
“허허.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남이 이랬다고 화내고 남이 저랬다고 감동해서 그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게 아니란 말일세. 남하고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를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해. 군자가 되는 것이 동양인들의 꿈이었지.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고. 스스로 알고 깨닫는 자. 홀로 자족할 수밖에 없는 자… 그래서 군자는 필연적으로 외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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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 그리고 자족의 경지
“그런데 성경을 놓고 보면 예수야말로 완전한 스승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기에 가능한 경지겠지요. 선생님이 성경에서 감정이입을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예수, 욥 그리고 예언자들이지.”
“욥의 어떤 면이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욥은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신까지 저주하잖나. 내가 그렇게 열심히 믿었는데 왜 불행해야 하냐는 거지. 전 생애를 믿었는데 부정을 하지 않나, 부정의 극치까지 가니 하나님이 내려와 구제를 해주었네. 다른 사람은 어떤가. 그저 덮어놓고 믿지. 욥은 고통을 통과하면서 신을 보니, 신이 원망스러운 거야. 마지막에 입을 열어 신을 저주하니, 그때 비로소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지.”
나는 문 앞에 문지기처럼 도열한 슬리퍼를 가리키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슬리퍼가 참 많네요.”
“(잠시 침묵하다) 그렇군. 슬리퍼를 잔뜩 놔둔 걸 보니 혼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양이야. 저 슬리퍼도 내가 사오라고 했거든.”
아무도 방문하지 말라고 있는 약속도 캔슬했으면서 내심 사람을 기다렸던 모양이라고 그가 감상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렇게 골격이 좋은 왕골 슬리퍼는 처음 봅니다.”
“남대문 시장에 딱 한 군데 있어서 사오라고 했지. 단단한 짚신같은 거야. 가죽 슬리퍼는 서양 문화야. 가축 길러 피 먹고 가죽옷 입는 유목민들의 문화지. 우리는 초식동물, 지푸라기 민족이잖나. 지푸라기가 얼마나 따듯한지 아나?”
왕골 슬리퍼를 사다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이어령과 짚풀 더미에 앉아 햇빛을 쬐며 자족하는 이어령, 모든 것에 감사하고 받은 은혜가 깊고 크다고 했다가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심술궂어진다고 고백하는 이어령, 가슴을 치는 호통과 보석처럼 깎아낸 눈물 한 방울을 동시에 쏟아내는 이어령, 지식을 묻지 말라고 나무라고는 3초 만에 묻지도 않은 폭풍 같은 지식을 쏟아내서 기가 질리게 만드는 이어령 낙차가 크고 깊은 이 어른이 나의 스승인 것이 웬지 감격스러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햇빛이 왕골 슬리퍼 안에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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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지혜를 가진 죽는 자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 작은 죽음들의 시간, 정적
병환이 깊어질수록 선생님은 밤이나 낮이나 소파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가 앉았던 자리는 움푹 파여 있었고. 체온이 남아 따뜻했다. 나는 스승의 체온과 체적을 느끼며 그가 머물렀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듣곤 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기사로 나눴던 ‘라스트 인터뷰’를 회상하는 걸 즐거워 했다.
정작 나는 선생님과 나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도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정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자로서 그는 용기백배했고, 듣고 정리하는 자로서 나는 가끔 허둥거렸다. 어떤 피드백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매주 화요일 그가 가장 귀한 것을 줄 거라 믿었고 그는 내가 가장 ‘촉촉한’ 이어령을 써낼 것이라고 믿었다.
선생 앞에 앉아 있으면 나는 늘 눈이 부셨다. 죽음을 이야기 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으나. 그가 환자나 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더욱 싱싱한 감각으로 죽음을 감각화 하는 그의 지력에 인중에 땀이 고였다. 안개 속에 있던 죽음이 생의 지각속에 정밀해질수록 머리가 맑아졌다. 끝을 알수록 삶이 선명해졌다. 기이한 노릇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합창하다가 내가 돌을 던지면 일제히 딱 멈춰. 그러면 나는 눈 감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 같아.”
“놀이에 빠져서요?”
“아니, 아무 소리도 없는 정적. 그 정적에 반한 거야.”
“그 장면이 떠오르세요?”
“개구리 이야기로 돌아가면, 정적에 반하셨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합창하는 개구리들에게 돌을 던지면 순식간에 고요해지거든, 그때 적막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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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네. 시골의 하늘은 맑고 밤의 모판에는 별빛이 내려앉아. 논두렁 물에 하늘의 별이 비치는 거야. 별빛 뒤에 숨어서 울던 개구리들이 돌을 던지면 일제히 딱 멈추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침묵이 생겨났어. 평소에는 침묵이 안 들려. 그런데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리 사이에 생기는 그 침묵, 그 침묵만큼은 들을 수가 있어. 개골개골 울다가 돌을 던지면 면도날로 자르듯 생겨난 그 침묵은 참으로 신비로웠네.”
그때의 침묵이 굴렁쇠의 침묵으로 되살아 났다고 했다.
“제 기억으로는 88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던 것 같습니다.”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 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시끄럽던 운동장이 조용해지고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듣던 정적에서 나온 거라네.”
“침묵의 힘이 엄청나군요!”
“침묵을 만들고 침묵을 견딘다는 건 긴 내공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낯선 시간을 자주 감각하는 사람이 예술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어린 날의 운동회는 생의 모든 밝은 소란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지요.”
“햇빛이 있고 만국기가 날리고 시끄럽고, 그런 축제 분위기만 기억난다면 그립지 않을 거야. 내 코끝을 찡하게 하는 건 다른 이미지라네. 그런 운동회 날은 언제나 교실이 텅 비어 있어. 자네도 생각날 테지? 전교생들이 다 바깥에 나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는데, 교실은 완전히 비어 있잖나.
평소엔 그 반대거든. 교실에서 텅 비고 조용한 운동장을 바라보곤 했지. 빈 철봉대에 햇빛이 고여 있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포플러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운동장이 공백의 공간이지. 그런데 운동회는 거꾸로 된 거야. 침묵하던 운동장에 온갖 사람들, 소리들이 죄다 몰려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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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지? 나는 왜 즐거운 그 운동회 날 아무도 없는 교실이 그리웠는지 몰라.” 머리가 커질수록 머릿속을 채우는 건 빈 교실의 이미지 라고 했다.
■ 네 개의 눈
정신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네. 정신분열증과 편집증이야. 흩어지는 게 정신분열이고, 집중하는 게 편집증이라네. 모든 인간은 다 정신분열과 편집증 적인 증세가 있어. 심각하냐 그렇지 않으냐만 다르지. 자네가 지금 이야기하는시야. 시계는 그것과 관련이 있네.
편집증적인 면이 강하면 시야가 좁아. 하나의 점을 향하지. 눈이 앞에 달린 사람들 있지? 예를 들면 사자는 먹이를 쫓아갈 때 전부를 쫓지 않아. 한 마리만 쫓아가지. 눈이 앞에 헤드라이트처럼 달려 있는 거야. 반면 사슴, 소, 말은 옆에 달려 있어. 쫓는 놈은 목표물을 향해 달리지만 도망가는 놈은 이리저리 봐야 해.
독재자는 모두 편집증이야. 먹이, 국가, 목표… 이런 단일한 목표를 획일적으로 좇아. 보통 사람은 무리지어 살고 도망가는 초식동물에 가까우니 눈이 흩어져 있어.
“시야가 사방에 흩어져서 훑고 다니는 초식동물과와 한 점으로 쏠려서 목표만 보고 달리는 맹수과가 다르군요. 기질에 따라 보이는 ‘시계’가 달라진다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다르다네. 대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은 물어보면 어릴 때부터 꿈이 대통령이었어. 어릴 때부터 ‘나 대통령 될래’ ‘나 장군 될래’ 이렇게 목표지점이 명확한 사람이 있어. 반면 어쩌다 공무원처럼, 건성건성 두루두루, 양들이 이리저리 다니면서 풀을 뜯듯이 하다 보니 지금 직업을 갖게 된 사람이 있지.”
■ 지혜자 혹은 광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나도 이렇게 외로운데 신은 얼마나 더 외로울까? 자네가 하느님의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게. 얼마나 외롭겠나.”
“인간의 외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지. 그래서 ‘하나님 동무해 드릴까요? 외로운 시간에 등이라도 긁어드릴까요? 옷자락이라도 들어 드릴까요?’ 이렇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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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본다네. 허허. 내가 느끼는 하나님의 존재는 절대 고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피조 세계 위에 홀로 서 계시잖나.
그와 비교하면 희랍 신은 동네 친구들이지. 죽지만 않지 인간하고 똑같잖아. 기독교의 하나님은 창조주야. 저 풀을, 저 하늘을, 나를 있게 한, 내가 듣고 보고 느끼고 소유하는 저 바깥의 존재. 그분은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크고 얼마나 외로울까. 피조 세계는 강물도 있고 새도 날아다니지만, 하나님은 그 세계를 공허, 카오스 위에서 지었다는 거 아닌가. <창세기> 1장을 보게. 어둑어둑한 물 위에서 영이 움직였다고 돼 있거든. 그게 하나님이야. 우주조차 당신이 만들었으니, 신은 그 바깥에 있는 거거든. 내가 책상을 만들었다고 책상이 나는 아니잖아. 만드는 사람에게 친구는 정적밖에 없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있지 않습니까?”
“보시기에 좋았더라… 혼자 그런 마음을 먹었는데 혼자 하면 뭘 하겟나? 그래서 인간을 만든 거지. ‘내가 보기에 어떠냐? 좋지?’ 중간자를 만들어 놓은 거야. 아담에게 당신이 만든 것들의 이름을 지어 보라고 하잖아. 하나님도 외로워서 분신이 필요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해. 그런데 그렇게 만든 인간이 말썽을 좀 피웠나? 다른 피조물은 다 그대로 사는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께 대들어.”
“신을 본따서 만든 분신이기 때문이겠지요.”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 14. 또 한 번의 봄
“황금은 황금의 길, 피는 피의 길, 언어는 언어의 길,
제 각자의 길을 열어줘야 하네.”
■ 의식주의 언어. 진선미의 언어
그 사이에 봄이 왔다. 북악산에 눈이 녹고 꽃이 피었다. 공기는 순해졌다. 3월이면 내가 없을 거라던, 선생님의 말은 봄눈처럼 녹아내리고, 어느 새 또 한번의 진달래가 지천을 덮었다. 색색깔 봄의 노래에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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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묵은 겨울 때를 벗은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육성이 아지랑이 피는 봄 공기를 뚫고 날아왔다. 요즘엔 자신에 대해 쓴 가족들의 글을 읽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어떤 부분이 흥미로우세요?”
“집 사람이 나에 대한 평을 쓴 글을 가져왔어. 그 사람이 나를 보헤미안이라고 썼더구만. 영국 것, 프랑스 것, 국적 거리지 않고 취한다고. 자기는 골동품을 좋아하는 데 나는 골동품을 아주 싫어한다는 거야. 나는 컴퓨터 같은 첨단 사물만 좋아하는 매우 추상적인 인간이라고 썼어. 생활감, 현실감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고.”
“동의하세요?”
“정확한 지적이야. 그런데 … ”
“스포츠로 예를 들어볼까? 가령 농구선수는 필드에서 뛰는 선수고. 코치는 바깥에서 플레이에 참여하는 메타선수인 거야. 내가 추상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보자기론’이나 ‘가위바위보론’을 썼겠나? 그렇게 아내의 글에 응수를 해봤지.”
(………)
“마지막으로 아내가 ‘내 남편은 일밖에 모른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도 교정보고 글 쓰고, 아버지 제삿날에도 돌아와 일을 한다’고 하지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여보, 죽기 전까지 바느질하는 샤넬보고 주위에서 ’좀 쉬세요‘ 걱정했더니 샤넬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너희들은 이게 일로 보이니? 나는 이게 노는 거고 쉬는 거야.’
기가 막힌 이야기야. 노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야. 노동에서 벗어나는 걸 쉰다고 하지. 내 일이 나한테는 노는 거였어.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재미에 빠진 인간이었다니까. 허허.”
■ 돈의 길, 피의 길, 언어의 길
“선생님도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내 되시는 강인숙선생님은 그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돈에 대해서도 난 좀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네. 대학 다닐 때였어, 집사람하고 나는 명동의 토양이라는 찻집에 들러서 차를 마셨지. 그런데 돈을 내려고 보니 지갑이 빈거야.”
“저런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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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다녀올 데가 있으니 음악이나 듣고 있으라고 하고는 집에 갔지. 유일하게 현찰이 될만한 물건이 영어 사전이었어. 그걸 전당포 대신 고물 책방에 갖다 주면 당장 찻값, 우동값 정도는 나오거든. 그걸로 데이트 비용을 썼지. 그렇다고 내가 ‘젊은 나이에 돈이 없어서 사전 팔다니 비참하다.’ 그랬을 것 같아? 아니야 사전 팔아 우동 한 그릇 먹었으니 셰익스피어가 쓴 것보다 더 많은 영어 단어를 내가 다 먹어 치웠다고 기고만장했지. 몇 십만 영어 단어가 내 뱃속으로 싹 들어갔잖아. 그러고 놀았단 말이야.”
“돈 때문에 배를 곯으신 적은 없으시고요?”
“돈에 궁색했던 적은 말할 것도 없지. 다만 돈 때문에 내가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든지 그런 적은 없어. 그게 하나님께 감사한 점이야.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든가. 그런 일은 없었어.”
“세상이 복잡해 보여도 피, 언어, 돈 이 세가지가 교환 기축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어. 돈이 없으면 시장이 성립이 안 되고. 피가 없으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생길 수 없고, 언어가 없으면 사상이나 정의, 선, 가치는 다룰 수 없겠지. 내 말이 아니라네.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가 문화인류학에서 설명한 인류사의 3대 교환구조지.
피, 언어, 돈을 기억하게. 그렇다면 돈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해. 내가 돈의 주인이 되면 돈은 나의 최고 협력자고, 하인이 되면 나는 최악의 인간이 되는 걸세.”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살면서 돈의 하인 노릇을 하신 적은 없다는 거군요!”
“황금은 황금의 길, 피는 피의 길, 언어는 언어의 길, 제 각자의 길을 열어줘야 하네. 언어 교환도 돈이 명령하면 서글퍼져. 나는 이렇게 쓰고 싶은데 출판사는 저렇게 쓰라고 하면 작가는 의욕을 잃어버리거든 출판사나 영화사에서 ‘저거 자르시오, 안 팔려요’ 하면 작가나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잘라야지. 그러니까 감독판이 따로 나오잖나.”
“피, 돈, 언어가 각자 제 갈 길을 가야 하는데, 현대사회는 돈이 가장 큰 힘으로 모든 길을 빨아들이니 큰일입니다.”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돌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노래를 가르치지 말고 ‘황금을 황금으로 보고, 돈을 돈으로 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라’고 가르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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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라네. 나는 성경에서<고린도전서>가 최고라고 생각하네.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지혜의 편지를 썼어. 참으로 아름답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고, 성내지 않는 것이며…불구덩이에 뛰어 들어갈 용기가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래서 나는 성경 앞에서 모자를 벗을 수밖에 없어. 사도 바울은 사랑을 하면 몇 백번이 아니라 천 번을 용서하라고 했어. 기독교의 교리는 사랑의 교리지만 그 사랑은 용서와 통하는 걸세.”
“남을 용서하려면 커야 되고 높아야 되고 힘이 있어야 하지, 용서하는 사람이 진정한 강자라네. 가장 큰 용서의 존재가 누구겠나? 신이야 하나님이지. 주기도문에도 나오잖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게 기독교야. 기독교는 하나님이 끝없이 인간을 용서하는 종교일세. 하나님만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어. 교황이 그것을 할 수 있나? 안돼. 면죄부 팔다 딱 걸렸잖아.”
“선생님께서는 혹시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용서라는 말을 쓰지 않아. 나는 용서받을 사람이지 용서해줄 사람이 아니야. 백 번 생각해도 다르지 않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고 저 사람이 나를 용서해야지….”
‘나는 용서할 사람이 아니라 용서받을 사람’이라는 선생의 말이 칼날처럼 머리에 박혔다. 피조물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속에 자신을 던져넣고 보는 당신의 선험적 겸손에 나는 또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 15. 또 한 번의 여름 – 생육하고 번성하라
“예수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 죽고 나서 돌무덤으로 가서 부활한 예수를 발견한 사람은 힘없는 여자였어. 잘난 남자들은 다 어디 가고 왜 여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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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 꼬리와 묵은지
봄에서 초여름으로 계절은 이음새도 없이 넘어갔다. 가지마다 도톰하게 살이 오른 나무들이 보기 좋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새는 저희끼리 소곤거렸고 생명의 양감은 짙어졌다.
‘선생님이 어떤 말이라도 해주셨으면….’
선생님의 육성을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기업과 대학 등 지식산업계가 앞다퉈 평창동을 노크했다. 투병 와중에도 지적 폭발은 멈추지 않는 선생 곁에 있었기에 내가 그 다리가 되어 몇몇 프로젝트에 대담자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침대 위에서, 태블릿 PC를 켜고 유튜브와 댓글, 여려 신문사의 뉴스를 샅샅이 살폈다.
상기된 목소리로 스승이 입을 열었다.
“나는 항상 언어로 시대를 예지해왔네. 언어를 파고들면 다 그 안에 있어. 그런데 아쉽게도 디지털, 아날로그라는 말도 그 계통을 제대로 이해해서 쓰는 사람이 없다네.”
“흔히들 온라인 오프라인 개념으로 쓰고 있는데요.”
“이번 기회에 정확히 설명해 주겠네. 여기 뱀 한 마리가 있다고 치세. 어디서부터가 꼬리인가?”
“글쎄요. 한 10센티 정도 끝부분이 꼬리인가요?”
“아니야. 뱀은 전체가 꼬리야. 연속체지. 그게 아날로그일세.”
“아하! 뱀이 아날로그면 디지털은 뭐죠?”
“디지털은 도마뱀이야.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도망가. 정확히 꼬리의 경계가 있어. 셀 수 있게 분할이 되어 있으면 그게 디지털이야. 아날로그는 연속된 흐름, 파장이야. 반면 디지털은 계량화 된 수치, 입자라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돼 있어.
더 쉽게 얘기해볼까? 산동네 위의 집이라도 올라가는 방법이 다르지.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선이 죽 이어져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야.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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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이 있지? 뽕도 따고 님도 보고. 이거 제일 잘하는 사람이 한국인이야. ‘이거냐? 저거냐?’가 아니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지’ 외국인들은 디지털이면 디지털, 아날로그면 아날로그, 경계가 뚜렷해. 그런 이원론으로 과학과 합리주의를 만들고 메뉴얼과 원칙을 만들어 세계를 리드했지. 하지만 한국인은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것 원칙과 직관을 융합해버려. 그래서 조직도 오거나이즈가(organize 조직, 단결) 잘 되는 시스템보다 비상시에 만드는 임시조직이 더 잘 굴러가. 한국 사람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는데, 위기에 강한 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거라네.”
“한국인들은 미리 계산하고 계획하고 자로 잰 듯 원칙에 맞게 행동하지 않고, 흐르듯이 상황에 맞춰 직관적으로 반응한다는 거지요?”
“그렇지. 우리말에 버려두라는 말이 있지? 버리는 것과 두라는 것의 중간이야. 그런데 버려두면 김치가 묵은지가 되고 누룽지가 숭늉이 되잖아. 버리지 말고 버려두면, 부풀고 발효가 되고, 생명의 흐름대로 순리에 맞게 생명 자본으로 가게 된다네. 그게 살아있는 것들의 힘이야.
버려두는 건, 그 흐름대로 그냥 두는 거야. 코로나도 버려두면 백신이 되는 거야. 재생이 되는 거라고. 그게 생명이 자본이 되는 원리야.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힘이지.”
■ 리더는 사잇꾼, 너와 나의 목을 잇는 사람들
“대적이 아니라 ‘경협(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그렇지, 에너미(enemy)는 라이벌(rival)이어야지. 라이벌의 어원이 리버(river)야.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서로 사이가 나빠. 그런데도 같은 물을 먹잖아. 그 물이 마르고 독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다 죽으니,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그게 디지로그 정신이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줄 아나? 인터페이스야. 위치로 보면 목!”
“목이요? 머리와 가슴을 이어주는 목?”
“그렇지! 목! 분리 하면서도 이어주는 목!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 손과 팔을 잇는 손목, 발과 다리를 잇는 발목, 모든 국가, 모든 기업, 모든 개인은 이 ‘목’이 가장 중요해.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할 때 어떻게 하나? 목에 칼을 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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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손목에 수갑 채우고, 발목에 쇠고랑 채우지. 인터체인지를 묶는 거야. 우리가 어릴 때 놀 때 어른들이 ”사이좋게 놀아라“그러잖아. 그 사이가 ‘목’이야.”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리더고 인재라네. 어느 조직이든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조직은 망하지 않아. 그 사람이 인재고 리더야. 리더라면 그런 ‘사잇군’이 되어야 하네. 큰 소리치고 이간질 하는 ‘사기꾼’이 아니라 여기저기 오가며 함께 뛰는 ‘사잇꾼’이 되어야 해.”
“조직에서는 한 마리 양이나 아흔아홉 마리 양이나 똑같아. 경중이 없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버려두고 한 마리 찾는다는 이야기는 기업에 적용해도 다르지 않아. 아흔아홉 마리는 이 세상에 없어. 오직 한 마리 양만 있지. 천 명 다니는 대기업도 한 사람이고. 열 명이 다니는 벤처기업도 한 사람이야. 스스로 일어설 줄 아는 한 마리 양이 자기 인생 자기 조직의 리더가 되는 거라네.”
■ 목자(牧者), 인류 최고의 생명자본
피를 토하듯 말을 토한 후 선생은 오래도록 기침을 했다. 낯빛이 창백한 채로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곧 나는 ’아프러 들어가겠다‘고 농담을 했다. 마이크를 빼면서 혼잣말 하듯 허공을 향해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혼자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예수 한 분 뿐이었다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 됐어. 다른 이들은 죽기전에 제자들이라도 찾아와 울고 불고 했지. 예수 돌아가실 땐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 죽고나서 돌무덤으로 가서 부활한 예수를 발견한 사람은 여자였어. 죽은 예수가 불쌍해서 찾아간 힘 없는 여자지. 잘난 남자들은 다 어디가고 왜 여자였을까? 생명자본…….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여자들은 끝없이 생명을 낳고 일으킨다네.”
조명은 꺼졌고, 선생은 땀에 젖은 흰옷을 입은 채 오래도록 눈을 감고 계셨다.
◎ 16. 작별인사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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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가장 먼저 머리를 쳐드는 새, 부지런함이 아닌 예민함
인터뷰를 위해 선생을 뵙는 마지막 날이었다. 사진작가 김용호가 이어령선생님을 간절히 찍고 싶어 했기에 사전에 양해를 드리고 평창동을 방문했다.
이어령 선생님은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 위로 정갈한 재색 수트 차림이었다. 풍기는 위용은 여전했으나 그 사이 더 살이 빠져 다리가 양복바지 안에서 휘적거렸다. 손수 잘라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 말끔했다. 아내와 며느리가 나서면 너무 정식으로 자를 것 같아서 당신이 서둘러 가위를 잡아 이발한 머리라며 멋쩍어했다. 목덜미 사이로 가윗날이 지나간 자리가 벌초한 자리처럼 표가 났다.
정원에는 이어령 선생의 시가 조각된 붉은 양철 깃발이 부드러운 바람 사이에 우뚝했고, 실내에는 선생의 소설 <장군의 수염>이 한 글자 한 글자 아로새겨진 초상화 작품이 새로 자리했다. 임옥상 작가가 ’스승의 날‘에 선물한 작품이라고 했다. 동상이든 초상이든 동시대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이어령이라는 거인을 기록하려고 열을 올렸으나. 스승은 자신을 향한 칭송에는 항상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사진 작가의 요청에 따라 검은 터틀넥으로 갈아입은 그가 조명기 아래 섰다. 먹색 배경천 앞에 선 선생을 보니 천공으로 발사되기 작전의 우주선 같았다. 감정의 물성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선생은 가만히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조명이 닿아 선생의 머리털이 고양이 털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셔터 소리에 그가 움츠려들지 않도록 가만가만 말을 건넸다.
나는 가만히 스승의 처진 눈꺼풀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빛과 어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어린 새의 살갗같은 눈거풀, 차가운 한 방울의 눈물을 짜내는 헐거운 거즈 같은 눈꺼풀.
■ 가장 슬픈 것은 그때 그 말을 못 한 것
“선생님 새벽에 먼저 깨어 홀로 우는 자로 살아보니 어떠셨나요?”
“글쎄. 그보다 무리 가운데 끼어서 참새처럼 비슷하게 짹짹거리는 걸 체질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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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못 견뎠다는 게 맞겠지. 나는 장관할 때 국무회의 자리에서도 눈을 감고 있었다네. ‘회의 나와서 밤낮 주무시오?’ 할 정도였지. 나는 자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싸울 일이 생기면 또 달려들어. 나는 교수 회의 할 때도 쭉 둘러앉아 순번대로 말하는 게 싫어서 안 간 사람이야.”
“저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자리가 회의 시간이에요(웃음). 요즘엔 식구들과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최근에는 가족들과 서로 오해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고 했어.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 걸. 그때 고맙다고 할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그래서 너희들도 아버지한테 ‘이 말은 꼭 해야지’ 싶은 게 있다면 빨리 해라. 지금 해야지 죽고 나서 그 말이 생각나면 . 니들 자꾸 울어.”
“나는 자연과 문명의 얇은 막을 찢고 나온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르네. 이 문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한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지.”
“하지만 선생님! 디지털 신세계를 보는 지금 세대야말로 진정한 문명의 신기원을 경험하는 세대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네. 디지털 문명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유성기에서 최초로 사람 목소리가 나왔을 때의 놀라움과는 비교가 안 돼. 사람이 없는데 사람 소리가 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 내 또래 사람들은 자동차가 지나가면 뒤를 쫓아가면서 냄새를 맡았어. 우리는 찔레꽃 향기를 맡고, 별 향기를 맡고 두엄 냄새를 맡았지만 휘발유 타는 냄새는 처음 맡아본 거야. 지금은 공해에 불과한 그 어지러운 냄새에 경이를 느낀 거지. 그렇게 청각으로, 후각으로 직접적으로 문명이 우리에게 왔다네.
옛날 사람들은 기계문명도 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관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우리 뇌가 얼마나 썩었는지 모르네. 역설적으로 옛날 사람들은 뇌가 덜 오염됐어. 제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건 못받아들였지.”
선생과 나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가만가만 셔터를 누르던 사진작가가 찍었던 사진을 정리해서 선생님 무릎 위에 놓아드렸다. ‘어떻게 순간순간 내 마음을 찍었느냐’고 스승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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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내 모습은 코만 남았네. 늙어서 눈은 다 죽고 코만 살았어. 그래도 손이 맘에 들어. 손이 꼭 날개 같구만.”
■ 마지막 선물
“누군가 그립다 해도 예전보다는 감정이 많이 무뎌졌어. 못 견디게 보고 싶던 사람들인데 무뎌지더라고.”
“그리움도 무뎌진다고요?”
“그렇다네. 분노도 그리움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못 견딜 것 같고, 격한 감정이 오래가면 어떻게 살겠나? 격한 감정은 몇 초 지나면 사라져.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그 슬픔은 아주 가끔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네. 슬픔의 감정, 절망의 감정, 분노의 감정이 오래가면 인간은 다 자살하고 말 걸세. 별똥별이 훅 하고 떨어지듯 그리움도 슬픔도 그렇게 찰나를 지나가버려. 하지만 ‘왜 그렇게 보고 싶어 했을까?’ 이런 감정은 오래 남는다네.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그가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비밀이요…?”
“지금껏 살아온 중에 제일 감각이 느리고 정서가 느린 게 지금이라네.”
“후회되는 일은 있으신지요?”
“한 시간 강연만 하고 나와도 밤에 자다가 악 소리를 내는 사람이 나야. 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갔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했구나….”
“후회해도 또 저희를 위해 꾸준히 새로운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글 쓰고 후회하고 또 쓰고 후회하고. 책 나올 때마다 후회한다고 내가.”
“선생님, 이번 책의 제목을 ‘아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할까 합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살았을 때는 내지마. 저 세상으로 갈 즈음에 이 책을 내게나. 라스트 인터뷰에서 자네가 썼잖아. 내가 사라진 극장에 ‘앤드 마크’ 대신 꽃 한 송이를 올려 놓겠다던 얘기를. 나는 자네의 그런 맥락을 좋아한다네.”
헤어지기 전 우리는 다정하게 어깨를 붙이고 기념 촬영을 했다. 창밖에는 오후의 빛이 저물어가고 있었고 선생과 나는 흑백사진 속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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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 에필로그
선생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끝내고 나는 한동안 허둥거렸다. 넘치는 지혜의 꿀물을 들이켜다 흥분해서 종종 사레가 들렸고, 불현듯 덮쳐오는 공허감에 새벽에 깨어 오래 앉아 있었다. 그럴 땐 선생의 쓸쓸한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인간은 지혜를 아는 죽은 자야. 그래서 슬픈 거라네.’
만개한 꽃을 바라보듯 그가 웃으며 독백처럼 말을 마쳤을 때, 내 두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책상 앞 통유리 너머로 6월의 장미꽃 몇 송이가 바람에 산들거렸다.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분,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엔드 마크 대신 장미꽃 한 송이를 올려놓겠다’던 그의 말이 그렇게 실현되었다.
“나 절대로 안 죽어.”
- 끝 -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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