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11. 14:57ㆍ독서후기
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
◎ 집단 기억의 잔치, 카오스의 세상
■ 이어령지음
0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0 서울 문리대, 동 대학원 졸
0 서울대 재학시절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
기성문단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로 데뷔
0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
0 1966년 이화여대 교수 이래 30년간 교단생활
0 88 서울올림픽 행사총괄
0 1990 초대 문화부 장관 – 한국 예총 설립 및 국립국어원 발족
0 2021 금관 문화훈장
0 흙속에 저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지성에서 영성으로,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여 권의 저서
0 <거시기 머시기>는
말과 글과 책을 주제로 한 이어령의 강연 및 대담 모음집
0 시인, 소설가, 평론가, 기호학자. 문화기획자, 교육자, 장관 등….
■ 여는 글
한국말의 경우,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쓰는 ‘거시기 머시기’는 단순히 구멍난 기억력을 땜질하는 대용 언어가 아니다. 무슨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직접 대놓고 말하기가 거북할 때 쓰는 토박이말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다. 영어에서는 ‘그거 뭐라고 하지 What you may call it’의 준말인
‘whatchamacallit’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말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흑백의 경계를 넘어선 애매하고 이상한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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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다.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것을 뜻하는 ‘엇비슷’이 그렇고 서지도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이라는 말이 그렇다.
‘거시기 머시기’도 그런 탈경계를 나타내는 애매어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그것은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의 언어이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가 ‘거시기’이고 언어로는 줄 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횡단하는 행위의 술어가 ‘머시기’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특히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은 단지 이 두 마디 말만 가지고서도 서로의 복잡한 심정과 신기한 사건들을 교환할 줄 안다.
‘거시기 머시기’는 한국 민중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토착어다. 그것을 유럽 학술어로 나타내자면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만들고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들이 활용한‘카오스모스(chaosmosw)’라는 용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이분법으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그 경계의 반란자들과 동반자가 되고 혼란과 질서가 겹쳐진 그 상태에서 새로운 창조의 힘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니까 ‘거시기 머시기’나 ‘카오스모스’는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암호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생각 장치라 할 수 있다.
1. 헴록을 마신 뒤에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나
- 정보, 지식, 지혜 -
30대에 이미 두 권의 명저를 내어 유명 인사가 된 요제프 슘페터는 “당신은 진정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럽 미녀들 사이 최고 연인, 유럽 최고 승마인, 그다음으로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로 기억되고 싶다.”
그러나 하버드대학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던 무렵 똑같은 질문에 66세의 그는 다른 대답을 했습니다.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선생으로 남고 싶다. 나도 이제는 책이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람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책이나 이론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국 나이로 69세에 교단을 떠나는 이 자리에서 누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면 나는 슘페터와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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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지선다의 덫에 걸린 <진달래꽃>
이화대학 교수 생활은 내가 처음 대학 입학 시험감독을 맡았을 때 받았던 충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어 시험문제 가운데 김소월의 <진달래꽃> 주제를 묻는 문제가 사지선다형으로 출제되었는데, 놀랍게도 항목들 어느 것 하나도 선택하기 힘들었습니다. 모든 항목에 동그라미표를 달 수 있고 모든 항목에 가위표를 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수험생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정답을 찾아내 동그라미를 치고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사람을 놓고서는 맞선을 볼 수 없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사지선다형 시험만을 쳐 버릇해서 선을 볼 때에도 네 사람의 후보자가 앞에 있어야만 그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웃을 일이 아니지요. <진달래꽃>의 의미를 사지선다로 가린다는 것은 네 사람을 앉혀놓고 선을 보는 광경과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근대 산업주의 모델은 ‘공장’입니다. 공장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모여 컨베이어 벨트 작업 라인에서 일을 합니다. 프레더릭 테일러가 생각해 내고 헨리 포드가 실천했던 획일성, 반복성, 그리고 분업화와 규격화를 토대로 한 대량생산 체제입니다. 관현악단을 음악 공장이라고 불렀던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하자면 학교는 교육 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함께 모이는 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여라.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라는 동요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하여 대학교에 이르는 그 단계별 교육과정은 컨베이어 시스템 공정과 같습니다. 졸업장은 제품의 보증서와 같습니다.
학교가 공장과 다른 것이 있다면 반품을 받지 않는다는 점과 애프터서비스가 없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붕어빵 교육’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불을 끄고도 똑같은 모양으로 가래떡을 써는 한석봉의 어머니와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이 생긴 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벽돌 하나가 부서지면 규격이 같은 다른 벽돌로 갈아 끼울 수 있지만 돌 하나가 깨지면 그 자리만큼 지구는 비어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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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 시요,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법, 경제에서는 ‘베스트 원’을 추구하지만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온리 원’을 지향합니다. 장미를 맨 먼저 미녀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이지만 그것을 두 번째 말한 사람은 바보입니다.
제 말이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라파엘로 산치오의 일화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왕은 재상에게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라파엘로가 딛고 선 사다리를 잡아 주라고 했습니다. 재상이 불만을 토하자 왕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잔소리 말게 자네 목이 달아나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재상 자리를 대신할 수 있지만 라파엘로의 목이 부러지면 저 그림을 대신 그려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네.”
■ 흑과 백 사이, 그레이 존
그래서 나는 교양 국어나 시론 시간에는 으레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진달래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이면 백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별을 노래한 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의 국어 실력 정도만 가지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조심스럽게 이 시를 다시 읽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이별가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진달래꽃>은 모든 시제가 미래추정형이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이 그렇고, “말없이 고이 보내오리다”가 그렇습니다. “뿌리우리다” “흘리우리다”모두 예외 없이 미래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를 노래하고 있는 화자는 이별과는 정반대로 열렬한 사랑을 하는 중입니다. 현재의 임은 역겨워하지도, 떠나지도 않았지요. 영어로 번역할 때 분명 “If you go away” 즉 If 가정법으로 시작하는 시입니다.
말하자면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치는 ‘지동격서(指東擊西)’ 구조의 시인 것입니다. 종래의 <가시리>형의 이별가로 고쳐 쓴다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임이여,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옵니다.” 아니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 그대를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었지요”와 같이 현재형이나 과거형 진술일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이별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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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래추정형의 가정적 체험을 읊은 <진달래꽃>은 현실적으로는 이별 아닌 사랑 체험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가 아니라 러브레터에 이 같은 사연이 적혀 있다면 누구나 이별의 슬픔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고백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김소월은 <진달래꽃>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시에서 반대의 일치를 노래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시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높이 평가받는 국민적인 시인이 된 것입니다. ‘피다’와 ‘지다’는 흑백 양분법의 세계에서는 서로 양립 불가능한 반대말입니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적 공간인 ‘청산’에 들어오면 ‘피다’와 ‘지다’는 동일어가 되고 맙니다.
그 유명한 <산유화>의 시작 연에는 “꽃이 피네 꽃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되어 있고. 끝 연에는 정반대로 “꽃이 지네 꽃 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
피고 지는 것이 하나가 되는 김소월의 청산 구조 속에서는 만남도 이별도, 삶과 죽음도 하나가 됩니다. 이 ‘반대의 일치’는 임과 만나던 때도 비단 안개였고 임과 헤어지던 때도 비단 안개라고 말한 시 구절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비단 안개라는 하나의 촉매어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때의 비단 안개는 기쁨인가요, 슬픔인가요. 김소월의 시는 ‘ㅇ,ⅹ’로 답할 수 없는 그레이 존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 가위의 역할
어렸을 때부터 어떤 틀이나 일정한 이데올로기를 통해 문학을 읽도록 훈련된 사람들에게 흑백논리의 가시철망을 끊고 무한한 상상의 벌판으로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가위바위보의 그 가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를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뉴턴 물리학은 주먹과 보자기 같은 이자 간의 천체 운동을 법칙화한 것입니다. 그것은 숫자에 의해서 계산되고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공식화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먹과 보자기의 가운데에 가위가 낀 삼자(三者) 사이의 운동은 숫자로 기술하거나 하나의 공식으로 묶어둘 수가 없는 것이지요. 앙리 푸앙카레는 그것을 풀어보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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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는 주먹을 이기고 주먹은 가위를 이깁니다. 거꾸로, 가위는 주먹을 이긴 보자기를 이깁니다. ‘가위바위보’에는 관계만이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정상에 선 절대적인 승자는 될 수 없습니다.”
가위 바위 보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건너간 거의 유일한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늘날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한국 홈페이지에는 눈에 별로 띄지 않지만 영어 홈페이지에는 ‘tell and show’라는 키워드로 제법 많이 뜨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위 바위 보 놀이가 유치원 아이들에게 서로 상대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의 네트워크 사회를 인식시키고 체험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용되기도 하고,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변해가는 문명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한 정신치료의 요법으로 응용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이화에서 30년 이상 해온 문학 강의 또는 그 문화론들은 최루탄과 대자보 사이에서 잠시도 편할 날이 없었던 학원에서는 흑백 아니고는 어디에도 발을 디딜만한 그레이존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적 아이러니와 복합적인 언어 체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역사적 체험에서 도피하는 것이며, 치열한 흑백 대결 속에서 기회를 엿보는 비겁한 회색분자로 오해되거나 지탄받기 쉽습니다.
거기에 평화의 길을 놓는 것은 ‘역(逆) 박쥐’의 역할입니다.
새들에게는 쥐처럼 생겼지만 그들은 같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물에게는 새처럼 생겼지만 그들과 같은 짐승의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새와 동물 속에 있는 그레이존으로 그들을 융합하고 화합하여 좀 더 넓은 생명의 계보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역박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보입니다.
“역박쥐는 새와 동물 속에 있는 그레이존으로 그들을 융합하고 화합하여 더 넓은 생명의 계보에 이르게 합니다.
■ 역설의 발상
한국인들은 기쁠 때도 슬플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슬퍼 죽겠다“는 말과 함께 ‘좋아 죽겠다” 라는 말도 씁니다. 때로 죽음은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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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아니라 극상의 긍정어가 되기도 합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을 보거나 감동적인 광경을 볼 때 한국인의 감탄사는 “죽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말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거나 최상급의 상태로 말할 때에 ‘죽는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진달래 꽃>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죽음’이란 말은 어느 나라에서도 조금씩은 다 금기어로 되어있습니다. 아침에는 “졸려 죽겠다”고 말하면서 일어나고 저녁에는 “피곤해 죽겠다”고 말하며 직장에서 돌아오는 한국인들도 4층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일이 많습니다. 4층의 4가 ‘사(死)’와 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금기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극약처방 과도 같은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보면 정몽주 선생의 <단심가>야말로 <진달래 꽃>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심가>를 다시 한번 읊어 보십시오. 대체 죽음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는가.
“이 몸이 죽고 죽어”라고 반복하고서도 부족하여 “일백 번 고쳐” 죽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의 증폭 장치는 바로 “임 향한 일편단심”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정몽주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은 백골과 진토를 불사르며 붉게 타오릅니다.
서구 사람들은 신을 두고 맹세하지만 한국 사람은 죽음을 두고 맹세하는 일이 많습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앞으로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라든가 “죽어도 널 버리지 않겠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언어 습관을 보아도 한국말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서열상 앞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어에서는 생사결단이라고 하지 않고 ‘사생결단’이라고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도 한국말로 번역하면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로 바뀝니다. 그래야 자연스러운 한국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언어 문화권이라고 하는 일본이지만 명번역이라고 하는 쓰보우치의 <햄릿> 번역본에는 한국어 번역본과 달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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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까지 ‘먹는’ 한국인
이와 같이 ‘죽음’을 이용하여 무엇을 강조하거나 그 극한적인 부정을 통해서 오히려 긍정을 끌어내는 역설을 나는 ‘햄록 효과’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햄록은 아시다시피 소크라테스가 처형될 때 마신 독약 이름입니다. 한국말로는 ‘독미나리’라고 부르지만 유럽이 원산지인 햄록은 진통제로 쓰이는 약초입니다.
“‘죽다’의 반대말은 ‘살다’이고 ‘살다’의 구체적인 행위는 먹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헴록은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면서도 그 정반대의 삶의 동사인 ‘먹다’와 관련됩니다. 헴록은 죽는 것이며 동시에 먹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교환구조 역시 ‘먹다’의 동사로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남녀의 육체를 매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피의 교환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밥을 먹는 일, 말하자면 ‘한 솥의 밥을 먹는 식구’입니다. 가족을 의미하는 식구(食口)는 곧 ‘먹는 입’이 아니겠습니까. 동지를 뜻하는 영어의 컴패니언(Companion)’도 마찬가지입니다. ‘com’은 ‘함께’를 나타내는 말이고 ‘panion’은‘pan’, 즉 빵을 의미하는 말로 ‘빵을 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화폐를 통하여 물질을 교환하는 시장 구조입니다.
세 번째는 언어를 통해서 마음을 교환하는 지식, 정보, 지혜의 소통 공간 구조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 역시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나는 이래서 한국에 절망하다가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마음까지 먹고 사는’ 것이 한국인입니다.
아이가 돌을 맞으면 으레 온 마을에 밤새도록 떡을 돌립니다. 이때의 떡은 단순한 떡이 아니라 하나의 정보요, 마음의 덩어리인 것입니다. 떡을 보고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야”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떡이 누구네 집 아이의 돌떡이라고 합니다. “어, 그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컸나.” 이렇게 해서 온 동네 사람이 돌을 축복하면서 떡이 아니라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족의 피도, 시장의 화폐도 이 언어의 교환 원리인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 소크라테스의 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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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사회가 피의 원리, 산업사회가 화폐의 시장 원리에 의존하여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정보•지식 사회의 원리는 마음을 교환하는 소통원리에 의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크게 떠오르는 것이 ‘헴록 효과’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열었을 때 빵과 포도주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옥중에서 역시 그의 제자들과 최후의 담론을 나눈 헴록,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지식 정보의 소통인 ‘마음을 먹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의 최후 만찬의 빵과 포도주는 여럿이서 나눠 먹을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성찬식으로 되풀이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가 마신 헴록은 분명 먹는 것이면서도 절대로 남과 함께 나눠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여럿이 함께 있지만 혼자 마셔야 하는 것이 아주 특이한 ‘헴록 효과’입니다.
한국의 선비들 가운데, 특히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선비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는 사약을 받고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사약 문화가 곧 지식인의 문화였던 한국인에게 있어서 더욱 헴록의 담론과 그 효과는 지식인이 대학에서 다루어야 하는 최종적인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크리톤은 “옥리가 아까부터 나에게 부탁한 것인데, 자네가 독약을 마신 뒤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라는 걸세. 말을 하면 열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독약의 힘이 잘 듣지 않아 두 배 혹은 세배까지 마셔야 한다는군”이라고 소크라테스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헴록을 건네준 옥리가 했다는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플라톤의 <파이돈 :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담론을 적은 책>에는 ‘독약’이란 말이 열여덟 번이나 등장하고 담론을 이어가는 중요한 숨은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철학자에게 있어 헴록이 얼마나 무력한 것이며 무의미한 것인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 그의 마지막 강연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최후를 그린<파이돈>은 헴록과의 게임이요, 그 행동이었던 것이지요.
■ 죽음을 연습하는 철학자
착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헴록을 마시고 말을 많이 하게 되면 그 효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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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나타나 그만큼 고통을 더 겪어야 한다는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헴록과의 게임에서 소크라테스가 이기는 것보다, 즉 철인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마음씨 착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겪을 육신의 고통을 1초라도 더 덜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값진 옷이나 신발이나 혹은 이 밖의 여러 가지 몸치장을 야단스럽게 추구하며 그것에 가치를 둘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이런 것들을 경시해야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철학자는 어디에 속해있는 사람인지 묻습니다.
철학자는 영혼에 마음을 쓰고 육체에 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 그래서 보통 사람이 보면 처음부터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육체의 쾌락도 느끼지 사람의 인생이란 살 만한 것이 못 되며, 육체적인 쾌락을 모르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자는 신체에서 분리되기 위해서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연습을 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나는 매일매일 죽는다.”는 사도 바울의 말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말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예술을 부정하고 시인을 그들의 공화국에서 추방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예술이 이데아의 산물이 아니라 신체의 감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햄록과의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체성(육신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멸각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영혼과 신체성을 철저하게 분리해야만 헴록에 의해서 멸해지는 것이 신체일 뿐 영혼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영혼을 신체와 분리하고 그와 대립시킬 때 우리는 비로소 헴록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역시 헴록을 마시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합니다. 발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배로, 배에서 심장으로 서서히 올라오는 죽음의 마비를 지켜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헴록을 마시고 난 뒤에 말한 것은 “크리톤, 내가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진 것이 있네. 기억해 두엇다가 갚아주게나”라는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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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헴록은 신체만 죽일 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스클레피오스는 사람이 아니라 희랍 신화에 나오는 의신(醫神)이었던 거지요. 희랍 사람들은 병을 고쳐주는 의사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에 닭 한 마리씩을 바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헴록을 마신 뒤 숨을 거두면서 닭 한 마리를 의신의 신전에 바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은 처음으로 영혼의 신이 아닌 신체의 신(육체의 병을 고치는 신)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려고 했다는 말이 됩니다.
의신에게 닭 한 마리를 공양해 달라는 소크라테스의 헴록 효과가 무엇인지, 소크라테스가 헴록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죽은 것, 그 이전에는 사형언도를 받고 도망칠 수 있음에도 법을 그대로 따른 이유가 모두 이 말 한 마디를 남긴 그의 태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적인 순교라고나 할까요. 영혼을 오히려 흐리게 하고, 방해하는 것을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신체의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 순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옥중 강의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담론으로 일관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양극화한 투쟁 속에서 사람들이 민중문학을 운운할 때, 나는 집단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인간의 완결성과 지존함을 이야기하려 했으며, 친체제와 반체제의 ‘◌,Ⅹ’ 시험 답안이 강요되는 세상에서 나는 친도 반도 아닌 비체제의 새로운 답지를 만들어 넣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거문고를 부수어 장작불을 지피는 사람들 사이에 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역사의식이란 장작과 재 사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었던 것이지요. 장작만 보는 사람이나 타고난 재만을 보는 사람에게 있어 나는 역사의식이 없는 정적주의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불은 타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유의 언어만으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재하는 것과 다름없게 보였을 것입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소외된 작은 섬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조류가 바삐 내 곁을 스쳐 지나고 있을 때 나만이 한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고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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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의 지팡이를 놓으며
“나에게 만약 건드리는 것마다 금덩이로 변화시키는 지팡이가 있다면, 나는 지식이라는 금덩이가 아니라 지식을 창조하는 상상력의 지팡이, 지혜의 지팡이를 놓고 가려고 합니다.”
◎ 2. 동과 서, 두 길이 만나는 새로운 책의 탄생
- 천의 강물에 비치는 달그림자 -
세계의 출판인들이 이곳 한국의 서울에서 제28차 총회를 열게 된 것을 마음속 깊이 환영합니다. 더욱 축하를 드려야 할 것은 여러분을 맞는 오늘이 공교롭게도 불교의 가장 큰 축제인 석가탄생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불교는 인쇄문화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귀중한 발자취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한 비구니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그리고 2010년, 1천 년을 맞게 된 고려팔만대장경 역시 목판인쇄술의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로 현존해 있습니다.
■ 한 여인의 서원으로부터 시작된 세계 최고의 활자본
한국인에게 책의 길은 부국강병의 길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의 위협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책의 힘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그들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책은 병과(兵戈) 앞에 그들을 떨게 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책의 힘을 믿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구텐베르크의 활자본보다 70년이나 앞서 발간된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보물이지만, 권말에 명기된 대로 묘덕(妙德)이라는 평범한 한 비구니의 발원으로 청주 지방의 흥덕사에서 활자를 주조하고 인쇄해 간행된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책의 길은 부국강병의 길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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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책의 힘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책 자체가 성스러운 예배 대상이 되는 아우라는 불교만의 일이 아닙니다. 도교나 유교에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의 ‘클래식’은 한자로는 ‘고전’이라고 하는데, 문자대로 직역하면 오래(古)된 책이라는 뜻이고, 그 경위의 ‘전(典)’자는 보통 책이 아니라 책상 위에 제사를 지내듯 모셔두는 책의 모습을 본뜬 글자입니다.
■ 제왕의 길과 책의 길
황제의 길과 책의 길은 서로 어긋나 있었기에 진시황이 의약(醫藥) 등의 실용 서적을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살랐던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아시아의 선비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많은 해충 가운데 책의 종이를 먹는 좀벌레(bookworm)를 제일 경계하고 멸시했으며, 탐관오리의 권력자나 악덕 상인들이 바로 그 좀벌레로 비유해 왔습니다.
흉맹한 야만족은 그리스의 도시를 침공하여 많은 문명의 산물들을 가차 없이 약탈했지만 유독 책만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갔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리스인들을 겁쟁이 약골로 만든 것이 다름 아닌 그 책들이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에서나 책의 탄생은 <직지심체요절>이나 고려팔만대장경과 같이 현실에 없는 것을 갈구하고 예배하는 대상으로 출현했던 것입니다. 14세기 때 처음으로 ‘출판(publication)’ 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인쇄의 복제 기술로 책이 다량 생산된 다음에도 여전히 오래된 그 아우라(부국강병의 핏줄은 문화가 아니라 야만적 힘에 속한다는)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책이 아니라 책을 만든 비용에 대해서 그 댓가를 치러온 것인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가격 시스템이 아니라 가치 시스템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요.
■ 납의 주조 군단과 한국의 동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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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銅)활자는 구텐베르크의 26명의 납 병정(알파벳 활자의 모양)과는 전혀 인상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꽃 튀는 전쟁터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활자를 주조한 동은 범종을 만드는 바로 그 동과 같습니다. 조용한 기도와 찬미의 여운으로 잔잔하게 번져갔습니다. 그것은 전쟁터의 군사가 아니라, 천(千)의 강에 비치는 달 모양입니다. 고려 사람들에게 동활자는 달이고, 그것을 인쇄하는 종이는 강물이었으며, 나오는 글자들은 그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달그림자였던 것입니다.
달은 하나지만 천의 강물 위에 똑같이 비칩니다. 부처님도 하나지만 달처럼 만물 속에 똑같이 비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월인천강(月印千江)’이요. 불서를 인쇄하여 공양하는 정신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등장했던 바로 그 무렵(1447년) 조선조의 세종대왕은 세상을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당시 왕자였던 세조에게 불서를 편찬하도록 명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한글과 한자 혼합의 고탁(高卓)한 활자 인쇄술로 제작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이고 <월인석보(月印釋譜)입니다.
“서구의 활자가 무엇과 싸우는 납 병정들의 모습이었다면 한국의 그것은 천의 강물에 똑같은 모습으로 찍히는 달그림자로서의 월인입니다.”
■ 똑같은 것을 만들려는 책의 욕망
물론 서구에서도 처음 인쇄 기술이 나오게 된 것은 대량생산 보다는 카드 뒷면의 모양을 똑같이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세 때 시작한 카드 놀이는 뒷면 모양이 똑같아야만 점을 치거나 게임을 할 때 유효하게 됩니다.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여러 개로 있는 것, 하나밖에 없는 원본을 일란성 쌍둥이처럼 증식시키고 재생하는 것, 그래서 완벽한 일체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인쇄물을 만들어 내는 원(元)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쇄의 혼입니다.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는 양산의 한계뿐 아니라, 원본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사본은 필사자에 따라서 탈자와 오자 그리고 첨삭에 의한 오기 등으로 원래의 내용과 다른 책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목판 인쇄는 여러 장을 한꺼번에 찍을 수 있다는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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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보다도 여러 사람에 의한 필사 과정에서 부득이 발생하는 오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정확도에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오류를 고치자면 필사본에서 목판본으로, 목판본에서 다시 활자본으로 복사 기술을 고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필사나 목판 인쇄의 한계를 뛰어넘어 원고와 다름없는 정확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이 활자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한국의 금속활자 발명 그 자체가 다량 복제가 아니라 오자를 교정하여 좀 더 정확한 원전을 만들려는 욕망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추리할 수도 있습니다.”
■ 상(聖)과 속(俗)의 텍스트
“인쇄가 종교의식의 차원으로 치우치면 읽는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인쇄가 다량 생산의 시장성으로 치우치면 책은 슈퍼마켓에서 소비되는 상품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 디지털 시대의 출판 양식
우리는 퍽 먼 길을 돌아서 이곳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론은 디지털 시대 출판의 새로운 환경에서는 전범성(典範 : 본보기가 될만한 모범)을 생명으로 한 한국의 금속활자 문화로 된 책의 길과, 다량 생산으로 시장주의와 산업주의를 연 구텐베르크-마누티누스의 책의 길이 서로 만나 공생을 하자는 것입니다.
출판의 힘은 매스미디어나 블로그 같은 개인 미디어에서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출판의 욕망은 산업시대 매스의 양에서 하나의 달(月)이 개개인의 강(江)에 분산되어 떠오른 월인(月印)의 네트워크 형태로 변해 갑니다.
복사기나 팩스에 복사되어 나오는 문자나 그래픽은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본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클론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더구나 팩스나 복사기 같은 것은 알파벳 문화권이 아니라 한자 문화권의 개발품이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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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힐의 네 개의 눈
한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전설의 인물, 창힐(蒼頡)의 눈은 네 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눈은 빛입니다. 빛은 어둠은 정복합니다. 창힐이 한자를 모두 완성하자 어둠 속으로부터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문자가 만들어 짐으로써 어둠을 지배하는 귀신은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이러한 창힐의 전설은 중국인을 비롯하여 한자 문화권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문자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과 빛과 문자는 하나로 연결되어 암흑의 세계를 빛으로 바꾸게 됩니다.
말을 문자로 옮긴다는 것은 혼돈의 어둠에서 질서의 빛 세계로 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붕괴되어 가는 소리의 연약함에 모양과 견고함을 주는 것, 시간에 대항하는 용기와 그 장소를 주는 것, 물건을 가리키는 손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의 흔적을 밝히는 빛. 그것이 바로 네 개의 눈에서 생겨난 아이콘 문자들입니다.
“망각하고 묻히고 순간 속에 현존하는 것을 아이콘의 형상 속에 가두어 두려는 욕망이 바로 인쇄의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악보와 같이 소리들을 가두어 두었다가 재현하는 부호 이상의 것입니다. 저장에서 연주로 이행하려는 것이 악보의 욕망이며 유혹입니다.
◎ 3. 페이퍼 로드에서 디지로그로
- 종이의 과거와 미래 -
반갑습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인문학이나 문학 쪽 관계자는 없고 전부 디자인 쪽, 특히 시각디자인 쪽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이’하면 나는 우선 ‘글 쓰는 사람들의 원고지’를 생각하는데, 역시 나는 늙었구나, 요즘 종이는 원고지로 대표되지 않는구나 싶어 좀 당혹스러우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선 내 개인적인 종이 여행 이야기부터 할게요.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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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나의 개인적인 종이 여행은 이떻게 시작되었고, 지금 그 여행은 어디쯤 왔는가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겠습니다.
■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아주 단순하게 나의 종이 여행, 특히 지적인 종이 여행은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지(知)를 개발한 유교에 따르면 공자께서는 인간을 셋으로 그러니까 세 가지 길로 나누었습니다.
유교의 <논어> 중 ‘옹야’편에 “지지자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겨하는 자만 못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 어떤 것에 대하여 내가 지지자인지, 호지자인지, 낙지자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식을 인간이 가는 길, 그 즐거운 길을 가는 데 있어 최하위가 지지자예요.
낙지자는 누가 있건 없건, 혼자서건 여러 사람하고건 술을 조금씩 즐기는 사람이죠. 술 속에 그가 있고 그 사람 속에 술이 있는, 술과 함께 하는 람이죠.
종이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종이의 발상은 지지자의 뜻이요. 지성의 길이에요. 지지자는 기록을 위한 종이, 즉 종이의 기록성을 봅니다. 호지자는 종이를 좋아해요.
종이 여행의 출발점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이지만, 우리가 종이 여행속으로 들어가서 ‘종이가 뭐냐’라고 할 때는 파피루스는 양피지에 밀렸고 양피지는 종이에 밀렸다. 고 할 수 있습니다.
■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
지자의 길을 볼 때 파피루스나 양피지는 지자에게 좋은 파트너가 아니었어요. 지자의 길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글이 없었다면 파피루스, 양피지 같은 것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겠죠.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글을 쓰긴 썼지만, 글이라는 것은 한번 써놓으면 시간과 공간 대상이 없이 추상화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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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는 습기에 약해 잘 썩습니다. 보존성이 아주 나빠요. 이집트는 건조하기 때문에 파피루스가 살아남지만 로마-그리스인이 파피루스에 쓴 글은 전부 사라져버립니다.
양피지는 어떠냐 하면, 양피지는 터키쪽에서 왔습니다. 양피지는 양가죽이기 때문에 무거워서 책으로 만들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놀랍게도 양피지는 당시 지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에 가까웠어요. 두루마리로 된 파피루스는 말 수밖에 없어요. 죽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양피지는 어쨌든 가죽이기 때문에 두꺼워도 꺾을 수가 있어요. 접을 수기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무겁기 때문에 사방을 잡아당겨서 얇게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늘날 코덱스라고 하는 종이 형태의 사각형 페이지가 생겨난 거예요.
■ 정보의 분절, 디지털의 시작
아날로그라는 것은 이어져 있기 때문에 두루마리로, 페이지 없이 쭉 이어지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1페이지, 2페이지 하는 식으로 하나의 사상이 페이지에 의해 분절되는 것은 디지털화라고 할 수 있어요. 파피루스와 양피지 시대에 벌써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싸움이 일어난 거예요. 쭉 이어지는 방식에서 페이지로 분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사고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보도 디지털 정보, 아날로그 정보가 있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인간의 문화가 표현될 때부터 등장했어요. 지식이 되는 모든 것은 분절돼요. 그래서 오늘날 문자는 훨씬 디지털화하기 쉬워요. 카운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 백지의 공포
흰종이가 앞에 있을 때 지식인에게는 그것을 메워야 할 의무가 있어요. <모비딕>에서 흰고래를 쫓아가지요. 왜 죽여야 하는지도 모르고 흰고래를 쫓아가서 막 죽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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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작가란, 시인이란, 지식인이란 ‘모비딕‘과 같은 거예요. 백지를 문자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게 <모비딕>의 흰고래의 공포이고 흰고래는 죽이고자 하고 대결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지식인에게는 백지라고 하는 종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를 만난 것이죠.
최초에 우리는 동굴 속 바위 같은 곳에 그림을 그렸어요. 바위는 보존성은 있어도 무거워서 가지고 다닐 수가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가볍고 보존성이 있는 책의 형태를 찾게 되는데, 기원전 1세기에 오늘날의 책 형태처럼 손으로 들 수 있는 양피지 책이 나옵니다. 그 시대 양피지 책에 마르티알리스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썼어요.
“무거운 책은 다 서재에 두고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책, 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반려가 될 수 있는 책, 그것을 사라.”
자기 책이죠. 마르틸리아스는 양피지를 아주 얇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런 양피지로 만든 책을 사라고 한 거죠.
■ 종이, 지지자의 길에서 시작하다
“지지자가 뭐냐, 호지자가 뭐냐, 낙지자가 뭐냐, 하는 것은 종이가 어떻게 변천해서 종이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왜 인간의 문명이 달라졌는가를 묻는 것과 같아요.”
즉 인간의 문명은 종이 발달사에 둘러싸여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서양 학문인 이데아론의 생각과 전 세계에 종이를 퍼뜨린 아시아의 이데아론은 대단히 다릅니다.
지식인 지지자만 알고 호지자와 낙지자를 모르는 문화권에서는 종이의 발달사도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종이를 누가 만들었어요? 채륜이 만들었다면 거짓말이죠. 그 이전에도 종이가 있었어요. 물론 종이로서가 아니라 넝마를 값싸게 눌러놓은 게 있었죠. 그것을 종이로, 기록물로 응용한 사람이 채륜이에요. 채륜이 만든 게 아니에요.
■ 보존성과 기록성 사이에서
종이라고 하는 것의 첫 번째 특성이 기록성이에요. 그런데 이 기록성에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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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담겨 있어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기록하는 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봐야 하니까. 그 대신 무조건 보존성이 있어야 된다. 기록이라는 것은 오래오래 보존해야 하는 거니까.
보존성과 기록성성의 모순에서 탄생한 아이가 바로 ’가벼운‘ 종이예요. 이 ’가볍다‘는 성질 덕분에 종이가 다른 것을 무찌를 수 있었어요.
양피지는 두꺼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파피루스는 보존성이 없어요。꼭 여러분들 스마트폰의 모순과 똑같아요. 액정은 넓어야 하고 가지고 다니기는 편해야 하고…. 이거 미치는 거 아니에요?
지자의 길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 산업 사회의 원고지 인쇄예요. 인쇄하는 것. 책을 만드는 것, 심지어 사전과 같은 용량의 종이를 만드는 것, 이러한 것들이 우세하던 시대가 이제 겨우 한 세기 지났어요. 그렇다면 지지자의 세계도 지났다는 거예요.
이제는 계산하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종이가 아니라는 거죠. 이제 호지자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순서상으로 보면 거꾸로 종이 여행을 했어요.
“보존성과 기록성의 모순에서 탄생한 아이가 바로 ’가벼운 종이예요. 이 성질 덕분에 종이가 다른 것을 무찌를 수 있었어요. 기록성과 보존성을 고루 충족시키는 것은 종이뿐이에요.”
옛날 선비들은 말이죠. 책 속의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다 외워가지고 말이죠. 착 찢어가지고 입에다 넣었어요. 양들처럼, 진짜예요.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먹지만 종이도 먹었어요.
이건 다른 얘기인데, 달에 대해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시를 썼지만 한국 사람이 쓴 달에 관한 시에는 못 당하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달을 눈으로 보고 아릅답다고 해요. 또 달빛에 목욕을 한다는 식의 신체성을 가져요.
그런데 한국의 달은 먹는 달이에요. 술잔에 뜬 달을 마시는 것이고, 내 배속에 달이 들어가서 환하게 비춘다 이거예요. 외국 사람의 시 중에서 이런 시를 아직 내가 못 봤어요. 달을 먹어버린다.
■ 종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호지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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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어떻게 발달했느냐로 들어가면, 호지자의 종이는 이미 기록성, 보존성을 넘어서 패키징하는 거예요. 쌀 수 있다는 것, 래핑(포장, 포장지, 싸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참 상징적이에요. 디자인을 하건 포장을 하건, 실제로 포장을 안 해도 디자인이라는 것은 포장하는 거예요. 어떤 개념을, 오락을, 철학을 포장하는 거예요.
동양의 도시는 래핑이에요. 사람이 있고 도시가 싸는 거예요. 그런데 서양은 미리 도시를 만들어놓고 사람이 들어가요. 그것이 늘 얘기하는 보자가와 트렁크의 차이예요.
내가 어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자기를 가지고 다녔어요. 도시 사람은 란도셀 (일본의 초등학생용 가방)을 가지고 다녔죠. 나는 시골 아이라서 학교에 갈 때 책을 보자기에 싸서 다녔어요.
넣는 것과 싸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아세요? 서양은 싸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 속에 넣는 것이에요. 넣는 것, 말하자면 들어가는 거예요. 옷으로 따지면 한복은 전부 싸는 거예요. 양복은 넣는 거죠. 그래서 양복은 걸어 놓으면 사람처럼 보이죠. 한복은 걸어 놓을 수가 없죠. 이게 중요한 차이예요.
종이는 부드럽기 때문에 래핑(포장, 포장지, 싸는 것)이 가능해요. 래핑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 속에 개어놓느냐 걸어놓느냐의 차이예요. 싸는 것은 별 규격이 필요 없어요.
“얼굴을 가릴 수도 있고, 말 수도 있고, 멜 수도 있는 보자기를 보세요. 자유자제예요. 뭐든지 래핑할 수 있어요. 종이에 자유롭게 인쇄할 수 있게 되면서 호지자는 뭐든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접고 찢고 별짓 다 할 수 있어요.”
한국 최초로 신문이 나왔을 때 “신문 사세요.”하면 아무도 안 샀는데 “이것을 가져가면 뭐도 할 수 있고, 뭐도 할 수 있어요”라고 해서 신문을 팔았어요. 신문을 읽으려고 사가는 것이 아니라 그걸 거지고 가서 보자기처람 덥기도 하고 깔기도 하면 아주 편리하니까.
지지자는 신문을 읽지만 호지자는 여러가자로 쓰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초기의 한국 신문은 주로 래핑물이었다는 거죠.
낙지자로 가면 놀랍게도 아까 양피지와 파피루스로 다시 관심이 돌아가요. 보존성을 따지자면 종이는 몇 년 못가지만 양피지는 1천 년을 가요, 보존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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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하죠. 게다가 흡수성이 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 넣으면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
■ 쓰고 버리는 것, 낙지자의 길
호지자가 종이를 자유롭게 사용했다면 낙지자는 종이를 버리지요. 기록성과 정반대예요. 한국 사람들은 버린다는 말을 잘 써요. “버려버려” 그러잖아요. 이게 바로 낙지자예요. 인생의 모든 가치가 쓰고 버리는 거예요.
“쓰고 버리는 것, 그런데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것. 이젠 종이라는 것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인 거죠.”
디자이너가 최대로 꿈꾸는 것, 낙지자의 종이를 만드는 것이 여기에서 시작됐어요. 여러분, 디지털이 왜 재밌어요? 켰다가 끄면 없어지고, 얼마든지 변천하고 말이죠. 반도체를 통한 새로운 기술이지만 보존성은 양피지만도 못해요.
◎ 4. 시의 정체성과 소통
- 시는 언제 필요하고 언제 쓰는가. -
■ 시란 무엇인가
시인들은 시에 대한 정의나 자신의 입장을 직접 시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ars poetica ’(시작법)라는 말을 시의 표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요. 난해한 시를 써온 말라르메가 그랬어요. 직접 시론을 쓰기도 했지만 시 작품을 통해 시의 구절 속에 ”오 돈키호테여 너의 생애는 한 편의 시니라“라는 말을 넣어 간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지요.
시 쓰는 행위 자체가 ‘시란 무엇인가?’ 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막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네가 한 번 살아봐”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너도 시를 써봐”라고 체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요.
흔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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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종교라고 말이지요.
“시 쓰는 행위 자체가 ‘시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막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네가 한 번 살아봐”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너도 시를 써봐”라고 체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요.
오죽했으면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시란 무엇인가를 시적 이미지와 은유로 표현하면서 “시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 어려운 시, 쉬운 시
이야기를 좀 좁혀서 하면 시인이 자기와는 소통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어요. 남하고의 소통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내가 나와 소통이 되는지. 왜냐하면 김소월만 해도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는 말처럼 나는 말 바깥에 존재해요. 생각의 바깥 존재의 바깥.
나의 주체가 일치하지 않고 늘 간극이 있지요. 시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아주 옛날 문인들도 언어가 끊긴 상태. ‘언어도단’이라는 말을 썼어요.
시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생각과 언어의 간극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해 왔지요. 말은 내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유물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말이 위조지폐가 아니라는 것을 공언받고 싶은 거죠.
그래서 언제나 독자, 혹은 자기라고 해도 됩니다. 그 눈치를 보는 거죠. 아무리 강심장의 나르시스라 해도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요.
세상에 쉬운 시란 없어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를 예로 들어 볼게요. “이런 시는 쉬워?”하고 물으면 “그야 애들 동요 같은 건데 그걸 모를 사람이 있겠어요?”라고 반문하거든요. “그럼 왜 하필 엄마, 누나야? 아빠, 형님은 어디로 갔어?” 라고 물으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그렇구나. 왜 ‘아빠야 형님아’하지 않고 ‘엄마야 누나야’라고 했을까. 대답을 못합니다. ‘엄마야 누나야’는 시적 젠더의 공간이에요. 강변은 생식과 자궁의 공간, 생명의 장소입니다. 아버지, 형님의 공간은 역사와 사회의 투쟁 공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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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거나 경쟁을 하는 불모의 도시예요.
이렇게 시적 공간이란 창조된 공간이므로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적인 공간하고는 거리가 있지요. 이 거리가 바로 난해성을 낳게 하는 공간 DMZ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도 1천 년 전 고전들을 읽으면서 여전히 우리는 감동을 받죠. 감동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그 고전처럼 쓰려고 하지 않아요. 고려청자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현대의 도예가는 고려청자를 재생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면 모방이겠죠.”
본인이 쓰는 시가 어째서 서정주의 시처럼 쓸 수 없는가. 거기에서 나만의 세대가 갖고 있는 시의 목소리를 스스로 발견할 수 없는가라는 이야기지요.
■ 한국 시의 미래
좀 딱딱한 말로 내 소감을 말하고 싶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평문에서 “오늘의 문학은 앞에서 사회와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선단(先端)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말하면서 “이런 사태를 실감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 그 문학이 급격하게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어요.
그 이유를 영상 문화가 우세해지고 활자 문화가 위축되고 상업주의의 물결에서 문학이 몰락하고 있는 2000년대 중반 한국 시의 상황을 두고 한 소리라고 어느 비평가가 토를 달았지요. 1970년대의 민중 참여, 199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같은 것이 한 시대의 지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시인을 평가할 경우 작품 자체보다 먼저 그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를 먼저 따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2000년대 이전 한국 문학은 외상치료 같은 것이었지요. 칼이나 총탄에 맞은 외상 말입니다. 그리고 문학은 거기에 붙이는 고약과 붕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외부의 정치적 독재와 경제적 빈곤이 있었기에 문학은 그만큼 영향력을 갖고, 그러한 체제에 저항하는 힘이 생겼던 것이지요. 그래서 외부의 상처에 바르는 고약과 같은, 붕대와 같은 언어가 절실히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가 다 같이 그 유효 한계에 이르자, 이제는 위기가 안이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의 경계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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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국민병처럼 번지고 있는 아토피성 피부 질환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토피는 희랍어로 장소를 뜻하는 포토스에 부정사기 붙은 단어입니다. 일정한 장소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문화의 문제와 글로벌리즘에 의한 로컬 문화의 붕괴, 다양성과 혼돈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요즘, 문자 그대로 아토피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토피에는 별 신통한 약이 없지요.
“이 시대의 시인들은 면역 이상으로 생긴 거절 형상을 소거해 바깥에서 들어온 이물질을 융합,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세포)의 창조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2022. 4. 30.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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