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초서편> 통일후의 진나라 草體
2007. 3. 1. 23:52ㆍ서예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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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고 서동문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내용은 두가지
하나는 이사(李斯)등 사람들이 정체(正體)에 대해서 정리하고 보급하는것 즉 대전을 소전으로 정리한것
하나는 정막(程邈)이 초서체(草體)에 대해 정리하고 보급한것 그이름을 예서라고 하였음
진나라때 왜 초서체를 예서(隷書)라고 하였는가?
첫째, 전서를 간단하게 빨리쓰고 보좌해주는 서체다
둘째, 간단한 내용을 적고 하급 관노들이 쓰는 서체다
예서의 이 두 특점은 고문의 "예"자의 뜻과 꼭같으며
그래서 옛사람들이 "예"자로 이름을 진것이 전서의 초체에 아주 어울린다
그럼 정막이 정리한 예서는 과연 어떤 것이였을까?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한 백서(帛書)에서 <<오십이병방 五十二病方>>과
그와 연대가 가까운 <<노자갑,을본 老子甲,乙本>>이 그에 비슷할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서의 자유롭고 편한 특점으로 그의 생명력이 매우 강하였고 후의 역사발전과정중에서
각종서체와 서로 어울려 획과 글형이 새로운 모양으로 변하여 행서로 발전하였고
또 행서의 기초위에서 해서로 점점 연화되였다
딴 쪽으로는 더 한층 빨리 써서 장초(章草)로 발전되였고 나아서 장초가 금초(今草)로 발전되였다
부:<<노자갑,을본>>
출처 : 우석서예연구원
글쓴이 : 無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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