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서예치료의 현황과 전망

2007. 3. 18. 19:57서예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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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치료의 현황과 전망



                                                                 원광대   김 수 천


   

  요즘 서예인들을 만나면 대부분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예인구는 날로 감소되고 있고, 서예학원은 하루가 다르게 기울고 있으며, 대학 서예과 또한 존폐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서예는 존립할 수 있을까? 있다. “위기危機는 기회機會”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에 처한 서예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전쟁 때 명장名將이 나오고 난세에 영웅英雄이 나온다”는 진리를 배운다. 그런데 서예의 불경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서예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서예를 감싸고 있는 문화라는 큰 틀에서 서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화를 영어로 컬쳐(culture)라고 한다. 이 컬쳐라는 말의 의미 속에는 어려움을 돌파해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컬쳐는 경작耕作을 의미한다. 따라서, 컬쳐의 생리에 따른다면, 어떤 문화든지 강문화强文化가 되느냐 약문화弱文化가 되느냐 하는 것은 그 문화에 소속되어 있는 경작자가 얼마나 부지런히 경작을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서예를 강문화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소견이다. 논자는 서예를 강문화로 만들기 위한 대안을 서예치료에서 발견한다.     

  최근들어 치료학에 대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를 비롯하여 예술?드라마?놀이?명상?도자기?바둑?원예?웃음치료 등 다양한 문화들이 온통 치료학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렇게 치료학이 우후죽순雨後竹筍과도 같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의 공기가 혼탁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최근들어 서예치료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예의 치료적 효과에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수긍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이점은 다른 치료학 분야와 차별되는 점이다. 모필서사의 전통이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서예의 행위가 심신건강적인 측면에서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바탕하여 임상실험을 시작한 홍콩대학 심리학과 고상인高尙仁 교수는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서예행위가 심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과학적인 데이터를 산출한 바 있다. 30년 전 고상인 교수의 연구로 시작된 서예치료학은 최근들어 가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대만?홍콩학자들의 임상보고서에 의하면 서예행위는 고혈압환자, 당뇨병환자, 치매환자, 정신분열증환자, 신경증환자, 우울증환자, 자폐아동, 과잉행동아동 등에 특별한 효능이 있음이 밝혀졌다.

  국내에서 서예치료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예의 심신수양적 전통을 계승한 한국의 서예인들은 예술치료나 미술치료라는 용어조차존재하기 않았던 때부터 서예를 심신치료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활용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교도소와 소년원에서 교화적 차원으로 서예반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서예가 치료학에 대한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1년 7월 28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서예치료학회”가 발족되었다. 이어서 2002년 원광대학교 보건행정 대학원에 예술치료학과에 서예치료학 과목이 개설되었고, 2003년 10월에는 세계전북서예비엔날레에서 서예치료학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된 바 있다. 비엔날레에서 발표된 고상인 교수의 「서법심리와 서예치료」, 조영랑 선생의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서예치료 임상사례 연구」, 문계성 선생의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성향이 있는 아동에 대한 서예치료 결과보고」, 김병기 교수의「서예는 곧 사람이다」, 김수천 교수의 「서예치료의 이론적 근거」는 한국서예치료학의 첫 출항을 알리는 뜻깊은 발표회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엔날레 발표에 이어 한국서예학회에서는 학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2003년 12월부터 3개월 과정으로 대전 청유서당에서 서예치료 전문가 초급과정을 실시한 바 있다. 치료학에 대한 학문적 바탕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치 황무지를 개척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한국서예치료학회”는 요즘들어 조금씩 연구의 초점을 잡아가고 있다. 3달 만에 한번 가졌던 학회 모임은 올해부터 매월 모임을 갖는 월례회로 성격을 바꾸었고, 개별적인 연구이전에 공동연구테마가 있어야 한다는 안이 채택되어 올 한해는 회원 모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노인서예치료”를 하기로 하고, 현재 노인복지회관을 중심으로 노인서예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하여 4년전 출범한 서예치료학회는 이제 조금씩 사회적인 관심을 얻고 있다. 2005년 2월에는 민서협에서 문예진흥원에 제출한 “장애우를 위한 서예체험”이 채택되어 현재 서울?부산?대전?전주?목포에서 장애인복지관을 중심으로 서예치료가 실시되고 있다. 2005년 3월에는 서예치료학회와 민서협 공동으로 “재소자를 위한 서예체험프로그램” 을 문예진흥원에 올렸는데, 그 안이 통과되어 서예치료는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재소자를 위한 서예체험프로그램”이 국가의 지원금을 받음에 따라 그를 위한 전문프로그램과 교재개발 그리고 지도강사가 양성되어야 한다. 올해부터 시작된 노인서예치료, 장애우를 위한 서예체험, 재소자를 위한 서예체험은 보다 많은 서예인들이 서예치료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서예치료는 일반 서예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첫째, 서예치료는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눈높이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설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의 서예학원을 중심으로 한 서예교육프로그램은 내용면에서 피교육자를 고려하여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피교육자의 연령?성격?취미?개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으로 시행된 비과학적인 서예교육방식은 서예가 이 사회에서 외면당하게 된 하나의 큰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몇 년간 서예치료학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임상 연구된 바에 의하면, 기존의 임서를 위주로 한 서예교육프로그램만으로는 서예치료가 요구하는 학습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서예치료는 강의의 시작부터 종료에 이르기까지 내담자(치료대상자)의 치료효과를 고려하여 프로그램이 짜여져야 하기 때문에 무계획적인 서예교육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 하나 관조觀照하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서예치료는 무엇보다도 감수성 높은 서예교육프로그램 개발에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서예치료는 서예인들의 마음을 수양하는 측면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예는 본래 심신을 수양하는 효능이 있으니 수십년간 서예의 내공을 닦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서예치료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서예치료에 접하다보면 그러한 생각에 편차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어느 치료학을 막론하고 치료학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이야기는 남을 치료하기 전에 자기가 치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자의 인격이 고양되어 있을 때, 내담자의 병이 낳는다는 것은 치료학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래서 치료학에 관심을 둔 예술치료사와 미술치료사는 처음에 남을 고치겠다는 마음으로 출발을 하다가, 치료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자기내면에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치료에 더 중점을 두게 된다. 최근의 의학자료에 의하면, “약을 누가 환자에게 권하느냐에 따라 약의 효능이 13%정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에 문제가 생긴 내담자를 치료하는 경우 치료사의 마음은 이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서예인들이 서예치료사가 될 때 마음공부의 약효가 어느 정도 미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서예를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하여 치료사가 갖추어야 할 마음공부가 잘 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서예인들은 “예술을 하면서 인격이 오히려 더 피폐해질 수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상기하면서 자기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 서예치료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남을 치유해주겠다는 마음보다는 자기결함을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서예치료의 기본적인 태도는 겸허하고 정화된 서단을 이루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예치료는 서예인들에게 교양의 폭을 확장시켜줄 것이다. 서예치료는 서예학원처럼 서예기법만을 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서예는 내담자와 소통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서예치료에서 서예기법을 지도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담이다. 내담자와 상담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교양이 어느정도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들어 알콜중독자가 내담자가 되었을 경우에는 알콜과 알콜중독에 대한 공부가 되어있어야 한다. 서로의 대화가 통할 때, 내담자는 자기도 모르게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 바로 여기로부터 내담자는 자기치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위에서 거론한 것 이외에도 서예의 치료적 접근은 여러 가지 면에서 21세기의 서예발전에 새로운 힘을 제공할 것이다. 서예치료학에 대한 연구는 이미 자리를 잡은 치료학 분야에 비한다면 아직 초보단계이다. 그러나 적은 연륜에 비하여 사회의 호응도가 의외로 빠른 편이다. 그것은 현재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서예치료연구자들의 성실한 노력과 조상 대대로 내려온 모필서사의 전통과 저력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미술평론가는 “서예치료는 어떤 치료학보다도 경쟁력을 지닐 것이며, 서예치료는 치료학의 챔피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동아시아에 잠재되어 있는 서예라는 황금대어黃金大魚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는 것, 그것은 이 시대 서예인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서예인들의 서예치료에 대한 관심은 잠재된 서예을 소생하게 하고, 현재 침체일로에 있는 서예에 희망의 빛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몫은 고양된 마인드(mind)와 철저한 자기정화의 바탕위에서 비로서 실현될 수 있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기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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