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갑골문(甲骨文) |
갑골문의 다른 명칭은 어떤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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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甲骨文)은 명칭이 정말 다양한데, 주 재료가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였기 때문에 귀(龜), 귀갑(龜甲),
귀갑수골(龜甲獸骨), 귀판문(龜版文), 귀갑문자(龜甲文字), 골각문자(骨刻文字), 귀갑수골문자(龜甲獸骨文字)라고 불렀고, 거북 껍질이나 짐승
뼈에 주로 칼로 새긴 글자였기 때문에 계문(契文), 서계(書契), 도필문자(刀筆文字)라고도 했다. 또한 점친 기록을 적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복사(卜辭), 정복문자(貞卜文字)라고도 했고, 출토된 위치가 은허(殷墟)였기 때문에 그 지명을 따서 은허문자(殷墟書契), 은계(殷契),
은허정복문자(殷墟貞卜文字), 은허복사(殷墟卜辭)라고도 불렀다. 그러다가 1921년 육무덕(陸懋德)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갑골문(甲骨文)이라는
명칭을 썼고, 그 이후 여러 갑골문 연구의 대가들이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점차 보편화되어, 현재에는 갑골문(甲骨文) 혹은
갑골문자(甲骨文字)라는 용어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은상대(殷商代)의
갑골편(甲骨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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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의 주재료로는 어떤 것이 쓰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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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甲骨文)의 주재료는 거북껍질과 짐승 뼈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껍질은 피부껍질이 아니라 거북의 등딱지와 배딱지이며, 그 중
등딱지는 너무 단단하여 글자를 새기기 어려웠기 때문에 재료로는 대부분 배딱지가 사용되었다. 짐승 뼈로는 소의 어깨쭉지뼈, 즉
우견갑골(牛肩胛骨)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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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에 새겨진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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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甲骨文)은 일반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된 문자가 아니라 오로지 조상신이나 자연신의 생각을 묻기 위해 상대(商代)
왕실에서 점을 친 내용 및 점친 날짜와 점친 사람, 점괘에 대한 판단, 그 점괘가 실제로 맞아 떨어졌는지에 대한 결과 여부 등을 기록해 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아주 제한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상대(商代) 왕실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들, 예를
들면 왕이 조상신이나 자연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제수품은 어떤 것을 얼마나 사용하면 좋을지, 어떠어떠한 제사를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을지, 올
한해 농사는 풍년이 들지, 주변 국가와의 전쟁이나 교섭에 있어 길할지 흉할지, 왕이 사냥이나 행차를 나가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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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괜찮을지, 왕이 병에 걸렸는데 괜찮을지, 왕비가 임신을 했는데 아들을 낳을지, 심지어는
오늘 날씨가 어떨지의 여부와 앞으로 열흘 간의 전반적인 운세가 길할지 흉할지 등 다양한 사건에 관해 점을 쳤기 때문에 그 내용은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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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에 새겨진 글자의 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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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가 있는 10만여 편의 갑골편(甲骨片)에서 중복되는 글자를 제외하고 통계를 내보면 갑골문(甲骨文) 낱글자의 수량은 총
4600여 자라고 하는데, 이 중 고석(考釋)된 글자는 1700여 자이고, 나머지 2900여 자는 아직까지도 어떠한 의미와 독음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 편찬된 자전(字典)에 수록된 글자수가 5만여 자에서 8만여 자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4600여 자라는 글자수는 너무나 적은 숫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명대(明代)부터 용골(龍骨)이라는 약재로 거래되었던 갑골편(甲骨片)은 표면에 뭔가가 새겨져 있는 경우 값을 낮게 쳤기 때문에 갑골편(甲骨片)을
발견한 사람들은 약재상에 넘길 때 표면의 글자들을 긁어낸 후 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20세기 들어 이것이 중요한 고문자(古文字)
재료라는 것이 밝혀지고 학자들이 고가(高價)에 사들이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허(殷墟) 지역에서 갑골편(甲骨片)을 파냈는데, 앞다투어
마구잡이식으로 파냈기 때문에 안그래도 부서지기 쉬운 갑골편(甲骨片)은 더더욱 훼손되고 조각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갑골문(甲骨文)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아직 지하 세계에서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4600여 자라는 수량은 아주 유동적인 숫자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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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甲骨文)의 자형상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림의 성격, 즉 회화성(繪畵性)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다음 사진은 제남(濟南) 산동성박물관(山東省博物館)에 소장된 유물로, 청동으로 만든 월(鉞)이라는 고대 무기의 도끼날 부분인데, 사람
모양을 본떠 장식으로 삼은 것이다. 이 사진과 함께 갑골문의 “목(目)”, “이(耳)”, “치(齒)”, “미(眉)”자를 한번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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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진을 보자. 갑골문(甲骨文)에서 “배”를 의미하는 “주(舟)”자는 등으로 썼는데, 배 모양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오른쪽 사진과 비교해 보면 그 형태가 얼마나
비슷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갑골문(甲骨文)에는 사물의 형상 그대로를 본 떠 만든 글자가 많기 때문에 갑골문(甲骨文)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도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것이 어떤 글자인지 추측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우리도 그 상상의 세계에 한번 동참해보는 의미에서 다음
질문에 답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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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회화성(繪畵性), 상형성(象形性)으로 인해 갑골문(甲骨文)에는 상당히 많은 이체자(異體字)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체자(異體字)란 말 그대로 형체(자형)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한 글자인데, 사물의 형체를 본떠 글자를 만들다 보면 사물 중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가, 혹은 사물을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에 따라 다양한 형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문자의 상형성(象形性)과 이체자는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어(魚)”자와 “구(龜)”자의 다른 자형들을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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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甲骨文)이 성숙한 문자 체계를 갖추고는 있다고 하나, 형태가 규범화되고 정형화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기 때문에
갑골문(甲骨文) 중에는 일정한 형식이 없이 방향을 다르게 쓴다거나, 좌우를 바꿔 쓴다거나, 上下를 바꿔 쓰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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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 부분을 강조하여 “본다”는 의미를 나타낸 ‘견(見)’자인데, 왼쪽 방향을
향한 자형도 있고 오른쪽 방향을 향한 자형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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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북채를 쥐고 악기를 두드리는 모양을 본 떠 만든 ‘고(鼓)’자인데, 북 모양의
자형과 손과 북채 모양의 자형이 자유롭게 뒤바뀌어 사용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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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모양과 쟁기 모양을 합쳐 밭을 갈며 일하는 사람, 즉 “남자”를 나타낸
‘남(男)’자인데 밭과 쟁기 형태가 위아래로 뒤바뀌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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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갑골문(甲骨文) 자형의 특징이라면, 갑골문(甲骨文)은 대부분이 칼로 새긴 문자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음 갑골편(甲骨片)을 보면 대부분의 글자가 날카롭고 직선적인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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