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008. 11. 5. 19:23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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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


■ 정호승 : 1950년 대구생, 한국일보, 대한일보, 조선일보 신춘              문예, 시집 및 산문집 다수


■ 책을 펴 내며


0 살아 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버지처럼 큰 힘과 용기를      줄 때가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한 줄의 글귀가 어머니처럼 큰 위안과 위     로를 줄 때가 있습니다. 


 0 누구의 인생이든 쉽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습니다. 부자에서부터 가     난한 자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너무 고통     스러워 어떤 때는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듯할 때가 있고 광막한 광야     를 한 마리 벌레처럼 헤메는 듯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추운 겨울 저녁에     먹는 뜨끈한 국밥같은 위안과 격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 책에 있는 한마디 한 마디가 그러한 것들입니다.

    한 마디 말은 침묵보다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쓰면서 내내 잊지 않은 말입니다.



『 오늘은 나, 내일은 너 』


■  색채는 빛의 고통이다.


 0 이 말을 누가 한 말이라는 것은 (문호 괴테가 한 말입니다만) 이미 아무     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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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빛에게 고통이 있     다면 바로 어둠이라고 생각했으나, 빛의 고통은 오히려 아름다움이었습니     다.

    산과 바다가 산과 바다의 색깔을 내는 것이, 꽃과 노을이 꽃과 노을의      색깔을 내는 것이 모두 빛의 고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빛깔이 빛에 의     해서  그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아름다운 색채를      내기 위해 빛이 그토록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     니다.


 0 저는 제가 경험한 이 지구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들이 빛의 고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을 주도하는 고통이야말로 저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색채들도 빛의 고통에 의     해서 이루어지는데 보잘것 없는 제가 고통에 의해 인간이라는 색깔을 지     닌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0 인간도 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고통없는 인생     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말은 고통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같이     합니다. 고통이라는 말의 또 다른 낱말입니다.

    사랑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고통도 시작됩니      다. 고통이 없으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어느 대학의 강연장에서 강연을 하는 저에게 한 여대생이 “사랑을 하면     너무 고통스러워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건     배고플 때 밥을 먹지 않고 배부르기를 바라는 것과 똑 같다.”고 말했습니     다.               


 0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만물이 색채를 지닌다는 것은 바로 고통의 빛이 있다는 증거이며, 제 삶     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제가 인간으로서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     는 증거이자 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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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는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0 이 세상에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자기만의 십자가를 하나씩은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저 녀석(자식)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할 십자가야.”

    이렇게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모에게는 자식이 십자가입니다.

    “저이(아내 또는 남편)는 내 십자가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아내에게는 남편이 십자가입니다. 아니면 그 반대의 경     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라고 하면 사랑 보다 고통을 먼저 생각합니다. 도저히 감     당할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대로 버리고 싶으나 결코 버릴 수 없는 고통의 덩어리라고 생각합니다.


 0 십자가에는 고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랑도 있습니다. 고통과 동시에      사랑의 의미와 가치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0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고 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고통의 바위, 징벌     의 험산이라고 생각하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그러다가 너무 무겁고 힘에 부쳐 다른 사람이 대신 좀 지고 갔으면 하     고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아플 때 누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로 십자가는 누가 대신 지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0 그런데 서강대에 계신 송봉모 신부님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고 합니다. 십자가는 등에 지고 가거나 땅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정히 품에 안고 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등에 지고 가니까     힘이 든다는 겁니다. 등에 무거운 것을 고통스럽게 지고 가는 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겁니     다. 그런데 십자가를 품에 안고 가는 것은 고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     기 의지와 인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0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저는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거부하려고 애쓰지 말고 공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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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아 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왕 십자가를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등에 지고 가는 것보다 품에 안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것입     니다. 엄마가 젖은 먹일 때 아기를 품에 안고 먹이는 것처럼 자기 십자가     를 젖을 먹이는 아기와 같이 귀한 존재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작은 십자가든 큰 십자가든 십자가의 무게는 똑 같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자기 십자가 보다 더 작고 가볍다고 느낍니다. 저도 다     른 사람처럼 좀 가벼운 십자가를 지닐 수 있게 되기를 간구 하지만 그것     은 참으로 헛된 일입니다.


 0 한 학자가 블만에 찬 어조로 하느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합니다. 이것은 몹시 불공평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요르단 강변으로 불렀습니다. 요르단은      사람들이  세상살이를 마치고 건너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 지역이었습     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강을 건너 왔습니다.

    하느님은 그 학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들이 지고 온 십자가의 무게를 다 달아 보아라.”

   학자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강을 건넌 사람들의 십자가를 모두 달아 보     았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큰 십자가도 작은 십자가도     그 무게가 똑 같았습니다.           

    학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느님만 쳐다 보았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줄 때 누구 한테나 똑 같은 십자가를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면서 가볍게 안고 살고,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워하     면서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산다. 내가 늘 똑같이 공평하게 주지     만  이렇게 저마다 다 다르게 받는 것이 삶이라는 십자가다. ”


 0 이 우화는 누구의 고통이든 고통의 무게는 똑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우     화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가벼워 보이는데 왜 나의 고통은 이렇게     무겁고 힘드냐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에게 가장 알맞고 편     안한 십자가는 지금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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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


 0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무거운 짐을 지고 먼 사막의 길을 가는 낙타의 일     생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인데....’ 하는 생각     을 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까지 걸어 왔으면서     도 마지막 깃털같이 가벼운 짐 하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고 다시 힘을 내곤 합니다.


 0 제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대부분 깃털처럼 가벼운     짐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왔는가는 살펴보지 않고 갈 길이 얼마     나 남았는가를 살펴보다가 마지막 한 순간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     다.


0 <내등의 짐>   - 작자 미상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     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입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     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 진주에도 상처가 있다.


 0 원래 진주조개는 몸 속에 이물질이 들어오면 뱉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개껍데기와 같은 성분의 분비     물로 이물질의 둘레를 자꾸 감싸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꾸 쌓이고     쌓여 바닷속의 광물질과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진주가 됩니다.


    그러니까 진주는 조개가 모래알 같은 자극물에 의해 상처가 생겼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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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대한 내부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상처 회복에 필요한     온갖 성분이 상처 입은 부분으로 급히 보내지고 오랜 시간 동안 상처를     치유하다가  마지막으로 얻어지는 게 바로 진주입니다. 상처 입은 조개     가 그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영롱한 진주가 만     들어 지는 것입니다.


 0 나의 상처가 나의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상처의 고통을 이겨내는 적극적     인 인내의 힘이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나에게 왜 상처가 필     요한 것일까요. 왜 나에게 슬픔이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한 것일까요.그     것은 나에게도 진주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도 아름답기를 원     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창조는 상처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      다. 영롱한 진주도 처음에는 하나의 상처였습니다. 상처를 낸 침입자       모래알을 어떻게 밖으로 내보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방법이 있다면     체액으로 그 모래알을 두텁게 감싸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정성을 다해 상처를 보듬고 감싸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0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오늘 지금 생각하라. 그리고 1년     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 2년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10년 뒤에 내     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라. 그러면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 내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0 나의 미래는 자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다라 달     라집니다. 나의 미래는 나의 미래가 결정짓는 게 아니라 나의 오늘이 결     정 짓습니다.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


 0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결코 주지 않습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만 줍니다. 신은 인간이 고통스러워 할 때 언제나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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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손길을 늦추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너무 성급해서 신이 도움의 손     길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지 못할 뿐입니다.


 0 2차대전 때 유대인 의사 한 사람은 이대로 가스실로 끌려가 죽을 수 없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리조각 하나를 줍게 되었습     니다. 그는 매일 그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다졌     습니다. 나치는 매시간 가스실로 보낼 유대인들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젊은 의사를 끌고 갈 수는 없었     습니다. 그의 가스실행은 이렇게 하루 이틀 미루어지다가 마침내 독일이     패망의 날을 맞아 젊은 의사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     다.


    “하느님은 결코 도움을 늦추지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하느님이 도와주실 때까지 참지 못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젊은 의사의 말입니다.     


0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고통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공이라는 글자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수없이     작은 실패가 개미처럼 많이 기어다닙니다.


    경복궁을 복원한 도편수 신응수 선생은 “소나무 중에서 제일은 적송      (赤松)이다. 적송은 나이테가 좁으며 붉다. 나이테가 넓으면 쉽게 자란     나무여서 곧 속이 무르고 쉽게 터진다. 험한 환경에서 자라야 적송처럼     나이테가 좁고 강도가 단단하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고 한 적이 있습     니다.


    이처럼 고통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우리가 고통 없이 자라는 나무라     면 속이 무르고 쉽게 터지는 나무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     고생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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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선암사 해우소 건물은 다른 절간의 해우소 건물과는 달리 우아하고 고풍     스런 기개가 엿보였습니다. 얼핏 ‘뒷간’이라는 글씨만 보이지 않는다     면 부처님을 모셔놓은 법당이라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것 같지 않았습     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암사 해우소 건물은 지은 지 사백년이나     되는 건축미가  뛰어난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는 땅에      굵은 가지를 떨어뜨리고 누워 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소나     무가 해우소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축복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     습니다.


 0 저는 마침 소변이 보고 싶어 해우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오의 맑은     햇살이 엷게 해우소 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룻바닥이 삐걱거리     는데다 아래가 너무 깊어 혹시 발이라도 헛디뎌 떨어지기라도 할까봐 조     심조심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시선이 닿는 곳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인 낡은 종잇장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세요.”


    저는 그 글을 읽는 순간, 분뇨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은은히 나는 선     암사 해우소 안이 마치 내 늙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니, 부처님의 품속같이 느껴졌습니다.


 0 문득 생전에 딱 두 번 주례를 선 성철 스님의 주례사가 떠 올랏습니다.

    “서로 덕을 보자는 마음으로 결혼하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 가기 때문     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손해 볼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이, 아내는 남편에     게 덕 보자고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고 하는 마음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     고나 결혼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고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골라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결혼하는 이 순간부터 덕 보겠다는 생     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     을까. 내가 그래도 저분하고 살면서, 저 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덕     좀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지 되지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하면 사     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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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요즘도 소변을 볼 때마다 번뇌와 망상을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하니     까 어느 정도 번뇌와 망상이 버려지는 듯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     암사 해우소 덕분입니다.

    선암사 해우소에게 감사!


■ 과거는 현재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다.


 0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     도 않은 미래 때문에 나의 현재를 망칠 순 없다.


 0 성철 스님 맞은편에 앉아 공양을 끝낸 한 사람이 스님께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천천히 입을 열     었습니다.

    “공양이 끝났는가?”

    “예, 큰 스님!”

    “그럼 바리때를 씻거라.”


    저는 성철 스님의 이 말씀도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0 어제를 힘들어 하면 오늘도 힘이 듭니다. 과거를 미워하면 현재도 미워     집니다. 과거 속에 가두어 놓고 바라보는 미운 사람은 오늘 현재 속에서     도 미워집니다. 그래서 서로 과거의 감옥에 갇혀 사랑할 수 없게 됩니      다.


 0 오늘 현재에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행복은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지금     만나고 사랑하는 이들한테 있지, 어제 내가 지니고 있던 것, 어제 내가     하던 일, 어제 내가 사랑하던 이들한테 있는 게 아닙니다. 어제와 똑 같     은 해가 오늘도 떠 오르고, 어제와 똑 같은 바람이 오늘도 불어올 것 같     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어제와 다릅니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의 바람이 불어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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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과거의 고통을 오늘의 디딤돌로 삼고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보석으로 삼     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 할지라도 긍정     하고 받아들이면 오늘의 자양분이 됩니다.


 0 ‘첫 마음으로 돌아가라.’ ‘초발심을 잊지 말라.’는 말도‘오늘 여기     에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과거로 돌아가 예전에 처음 먹은 마음을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살고 싶     어했던 내일이다.


 0 깊은 밤, 하루 종일 밥 세끼를 먹은 일 외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지      못했다고 여겨질 때 이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뻥뚫린 듯 허전하고 부끄     럽습니다. 내가 이렇게 불성실하게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간절한 내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직 부끄러울 다름     입니다.


 0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오늘이라고 해서 나의 것이 아닙    니다. 어제 죽은이들의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     끼고 또 나누어야 합니다. 오늘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이     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입니다.

    누구의 시인지 모르지만 이말을 다시 한 번 조용히 읽어봅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입니다.

     시간의 아침은 오늘을 밝히지만

     마음의 아침은 내일을 밝힙니다.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샅은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이며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웁니다.

     부족한 사람에게는 부족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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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웁니다.

     스스로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짜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3%의 좋은 생각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에 박혀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 살이 박여 있었다.


 0 예수는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대패질과 못질을 하고 산 노동자 였습니     다. 그의 손은 목수 일로 생긴 굳은 살이 딱딱하게 박여 있는 노동자의     손이었습니다. 예수의 손에는 십자가에 박혀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 살이 박여 있었습니다. 


 0 예수는 죽음을 통하여 사랑의 완성을 보여준 것도 위대하지만 손에 굳은     살이 박일 정도로 대패질을 하면서 인류를 구원할 준비의 시간을 지녔다     는 사실이 더 위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준비 기간이 없었다면 예수     는 어쩌면 인류를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릴 수 없었을런지    도 모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함으     로써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고 육체적 고통에 몸부림치며 하느님을 원망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0 아무런 준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까지도 준비      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었습니다.


     「 빈   손 」     - 정 호 승 -


     

                            - 11 -

     나 아기로 태어나 엄마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나의 손은 빈손이었으나

     내가 아버지가 되어 아기 손을 처음 잡았을 때도

     나의 손은 따스한 빈손이었으나

     예수의 손도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기 전에

     목수로 일하면서 생긴

     굳은 살이 박여 있는 빈손이었으나

     

     지금 나의 손은 누구의 손도 다정히 잡아주지 못하고

     첫서리가 내린 가을 들판의 볏단처럼

     고요히 머리 숙여 기도하지 못하고

     얼음처럼 차고 산처럼 무겁다.


     나 아기로 태어나

     처음 엄마 손을 잡았을 때는 빈손이었으나

     내 손을 잡아준 엄마도 결국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셨으나


■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0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할 리 있나. 좋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 잘 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이런 생각이야말로 자기 비하의 극치입니다. 자기 비하는 인간의 영혼     을 썩게 하거나 파괴시켜버리는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인간을     절망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악마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 단죄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0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사     람의 인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0 저는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큰 약점을 작게 생각하고    

                            - 12 -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살펴 봅니다. 어쩌다가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     면 그 마음을 자기애의 마음으로 곧 전환시킵니다. 자기를 스스로 보살     피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책임질 줄 아     는 마음이 있을 때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저는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해 왔습니다.


■ 대패질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0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할 때는 죽은 묵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목수가 더     이상 대패질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시인이 되길 원      하지 않는다면 괜찮으나 불행히도 저는 시인이길 원합니다.

    그동안 저는 잘 갈아 준비한, 날 선 대패 하나가 제 손에 들려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게으르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시의 대패질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대패질을 하는데만 마음을 쏟았지 정작 대     패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대팻날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뎌져 있었습니다.


 0 저는 단 한 번의 대패질을 위해서라도 다시 노력이라는 대팻날을 갈아야     합니다. 시는 나 자신만을 위한 배설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     한 소통의 언어이므로 항상 새로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0 무슨 일을 하다 보면 열심히 하는데도 일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     럴 때 ‘아, 내가 지금 대팻날을 더 갈아야할 때구나.‘ 하고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대패질을 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     간이 더 길수도 있습니다. 붓을 들어 글씨를 쓰는 시간 보다 먹을 가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습니다.


 0 박완서 선생도 마흔이 넘어서야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시작했     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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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     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0 준비가 없으면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습니다. 준비가 부족한데 어     떻게 일이 잘될 수 있겠습니까. 일이 잘 안된다고 해서 자신을 힐난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대패질을 할 대가 아니라, 대팻날     을 갈아야 할 때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우리의 인     생 전체일 수 있습니다. 


■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0 당시 저는 해인사에서 발간되는 월간 ‘해인(海印)’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한 번은 큰 스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등골이 송연해 졌습니다.

   ‘아, 나는 아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아     직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에 그토록 연연하는가.’

    누가 죽비로 제 마음을 강하게 내리친 것 같아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자     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0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마저 내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     나 내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얻으려고만 한 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 어머니가 제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0 한 청년이 아가씨를 사랑했습니다.그런데 그 아가씨는 얼굴과 다르게 아     주 독한 마음씨를 가진 아가씨였습니다. 그녀는 청년의 사랑을 확인한다     면서 청년에게 자기를 사랑한다면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자기 앞에 가     져 오라고 했습니다 . 사랑에 눈먼 청년은 그녀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     다.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어 두 손에 들고 아가씨의 사랑을 얻게 된 기     쁨에 힘껏 달려 갔습니다.그러다가 너무 서두른 나머지 돌부리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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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심장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습니다.그     때 어머니의 심장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얘야, 어디 다치지 않았니? 조심하거라.”


    저는 그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치 그 청년이 제 자신인 것만 같     아 한 동안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말씀이 부처님 말씀인 줄 물랐습     니다.


 0      「 그리운 부석사 」    -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 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을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서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위에 절 하나 짓네


■ 제비꽃은 제비꽃 답게 피면 됩니다.


 0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비꽃은 결코 진달래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달래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한 껏 꽃피우다가 떠날 시간이 되면 아무 말 없이 떠나 갑니다. 만일 제     비꽃이 진달래를 부러워하고 진달래가 장미를 부러워한다면 꽃들의 세계     에서도 인간들과 똑 같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0 어떤 꽃을 보고 ‘예쁘다, 예쁘지 않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꽃들이 아     닙니다. 바로 인간들입니다. 인간들이 인간의 잣대로 자기 중심적인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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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를 한 것일 뿐입니다. 벌레들을 보고 해충이니 익충이니 구분하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꽃들은 그런 이기적인 평가를 내리는 인간들 앞에서     도 그저 스스로 아름다울 뿐입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으로써 인간을 아름     답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해줍니다.


 0 획일은 추함입니다. 아름다움에서 벗어날 때 획일이 생깁니다. 아름다움     을 위해서는 획일보다 조화가 더 중요합니다.

    꽃밭이 아름답기 위해서도 조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비꽃이 혼자 아     름답다고 해서 꽃밭 전체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전체와 어울리     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통해 비로소 제비꽃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     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비꽃이 진달래를 부러워하거나 닮고 싶어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0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됩니다. 세     상에서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 인생의 무게와 가치는 똑 같습니다. 다만 내가 나     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뿐입니다.


 0      「 만일 당신이 」     - 더글러스  밀로크 -


     만일 당신이 산꼭대기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소나무가 되라

     그러나 골짜기에서 제일가는 소나무가 되라

     만일 당신이 나무가 될 수 없다면 덤불이 되라

     만일 당신이 덤불이 될 수 없다면 풀이 되라

     그리고 도로변을 행복하게 만들어라

     만일 당신이 풀이 될 수 없다면 이끼가 되라

     그러나 호수에서 가장 생기찬 이끼가 되라

     우리는 다 선장이 될 수 없다

     선원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쓸모 있는 존재다.

     해야 할 큰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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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작은 일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까이에 있다.

     만일 당신이 고속도로가 될 수 없다면 오솔길이 되라

     만일 당신이 해가 될 수 없다면 별이 되라

     승리와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최선을 다하라


■ 오늘은 나, 내일은 너


 0 스웨덴 도심 공동묘지 입구에 동판으로 새겨진 문장은

   “오늘은 나, 내인은 너”

   

    통역의 입에서 간단히 이말이 떨어졌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사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통절한 메시지가 어두운 내 눈을 찔렀던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나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     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죽음을 진정으로 자신의 일     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0 죽은 이들의 저 소중한 침묵의 가르침,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말 속에는 열심히 후회없는 삶을 살라는 교훈의 의미가 더 크다. ‘나만     죽느냐, 두고 보자. 너도 죽는다.’는 힐난의 의미보다는 언젠가는 모두     다 죽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라는 당     부의 뜻이 담겨 있다.  


 0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할 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준비입니다.     죽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사는 생은 가짜 보석과 같습니다. 어느 호스피     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세마디는 “그때     좀 참을 걸, 그때 좀 베풀 걸, 그때 좀 재미있게 살 걸”이라고 합니다.     임종하는 순간에 “사업에 좀더 많은 시간을 쏟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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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리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     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라고 쓴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 오릅니다. 스     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사색하며 부처님도 타인이라고 여기시는데 저야      오죽하겠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결국 사랑하는 가족마저도 타인이 아니     겠습니까.


■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0 저는 지금까지 직선적인 삶을 지향해왔습니다. 이리저리 휘돌아가는 곡     선적인 삶보다 한 걸음에 앞으로 내 달릴 수 있는 직선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강물처럼 이리저리 굽이치는 사람이 되기보다 절벽 아래     로 꼿꼿하게 떨어지는 폭포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직 직     선적 삶만이 시간을 절약해주고 목적하는 바를 보다 빨리 이루어 주는      효과적인 삶의 태도라고 믿어 왔습니다.


 0 재가 아무리 직선적인 삶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때가 되면 인생은 꼭 견     디기 어려운 일들로 방향을 틀어 곡선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이     루어진 곡선은 되풀이해서 다른 고통의 곡선을 이루었습니다. 인생은 근     본적으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직선을     지향하더라도 곡선으로 직선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 젊은 때일수록 직선 속에 곡선을 포함하려는 의지가 요구 됩니다. 곡선     은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좌절과 도전이 되풀이되는 곡선     속에서 젊음의 꿈은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곡선 없는 직선은 불안정합니다. 탁자 모서리에 놓인 언제 떨어질지 모     르는 유리병처럼 불안합니다. 직선은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참고 견     디는 인내의 힘과 부드러움의 힘이 부족합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      다. 그러나 곡선에 의해 이루어진 직선이라면 튼튼하고 안정적입니다.


 0 사력(沙礫)댐인 강원도 소양댐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력댐은 흙과 모래     와 자갈을 일정 비율로 섞어 마치 고물떡을 찔 때처럼 켜켜이 쌓아 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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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데  콘크리트 댐보다 훨씬 더 강하고 튼튼합니다. 콘크리트가 직선이     라면 흙과 모래와 자갈은 부드러운 곡선입니다.


 0 곡선만이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선물합니다. 마음을 낮추게 하고 굽히     게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으려는 마음은 직선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     음을 참는 마음이 곡선의 마음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성경의     말씀도 결국 곡선의 마음을 강조한 말씁입니다.

    사랑은 곡선입니다. 곡선으로 만든 직선입니다. 아버지가 직선이라면      어머니는 곡선입니다. 이 직선과 곡선의 조화에서 우러나온 사랑이 우리     삶의 원동력입니다. 

     세상의 모든 강은 곡선으로 흐릅니다. 바다의 수평선도 곡선으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초가 지붕은 그 얼마나 부드러운 곡선입니까. 산 중턱에     있는 무덤의 곡선 또한 얼마나 평화롭고 아늑합니까.


■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다시 붙이려 하지 말라


 0 부서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는 인생이란 없습니다. 무사한 인생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인생이든 어느 시점에 반드시 망가지거나     부서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본질입니다. 다만 어느 때 어떻게     그것이 찾아오느냐 하는 것만이 저마다 다를 뿐입니다. 만일 망가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습니다.


 0 “아까와 하지 마세요. 저렇게 깨어지고 버려지는 도자기가 있기 때문에     훌륭하게 완성되는 도자기가 있는 겁니다. 저것들은 저것들대로 자기 소     임을 다하기 위해 저기 저렇게 있는 겁니다.”

    저는 그말을 듣고 깨어지고 버려졌다고 해서 그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연탄재 한 장도 비     오는 날이면 웅덩이를 메우는 데 쓰이거나 겨울 날 빙판길의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0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돌멩이가 항아리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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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 위에 떨어져도 그것은 항아리의 불행이다. 이유야 어쨌든 항아리     의 불행이다.’

    저는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불행을 주워 담아 퍼     즐 맞추듯  자꾸 맞추어 원형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금이 간 종은 깨진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려 놓으면 모든     하나하나의 쇳조각은 맑은 소리를 낸다.”

    항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진  항아리 조각 하나하나도 햇살은 외     면하지 않습니다.


■ 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용서하지 않는다.


 0 한 악마가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사용해왔던 도구를 팔려고 시장에 내 놓     았습니다. 도구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악마가 사용하는 도구답     게 흉악하고 괴상망측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열된 도구들     한쪽에 값을 매기지 않은 작은 쐐기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건 뭐죠? 왜 값을 매기지 않았어요?”

    물건을 사러 온 다른 악마가 물었습니다.

    “응 그건 절망이라는 도구인데, 파는 게 아니야. 난 저걸로 틈을 벌려      강하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도 쓰러 드리지. 그건 내가 가장 즐겨 사용      하는 것이거든.”


 0 저는 오른쪽 주먹에 작은 흉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젊은 날에     절망에 빠져 골목의 시멘트벽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을 때 생긴 것입니     다. 저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추스릅니      다.

    신이 희망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야 합니     다. 절망이라는 죄는 신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0 쥐 한 마리를 캄캄한 독 속에 집어 넣으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지만,     그 독 속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가면 적어도 36시간은 죽지 않고 견     딥니다. 희망은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지켜내는 강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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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부랑아와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산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는 “어떤 이들     이 자살하는 지경까지 가는 것은, 그들에게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은 버틸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용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     핍된 것은 사랑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햇빛이 계속되면 사막이 되어 버린다.


 0 몽골 남부에 있는 고비 사막에 갔을 때 햇볕이 너무 뜨거워 지프차의 양     쪽 문짝을 떼어 내고 달렸습니다. 저는 그날 왜 사막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0 고비는 비가 너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비는 신에게 햇볕을 쬐     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신은 ‘다시는 비가 오게 해 달라고 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고비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햇볕이 너무 간절     한 나머지 신의 조건을 수락한 고비는 한동안은 찬란한 햇빛과 쾌적한      환경속에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일정기간이 지나자 고비는 말라가     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막이 되어 갔지만 고비는 비를 오게 해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0 저는 지금도 저의 삶에 비보다는 햇빛이 들기만을 바랍니다. 햇빛이란      좋은 일, 복된 일,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일 등을 의미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하고, 돈 많이     벌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자식들 잘 자라고 공부 잘하고, 오래오래 병     들지 않고 잘살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될 리도 없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     면 어떻게 될까요? 그게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을 사랑     하는 신은 결코 인간에게 그러한 삶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인     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과 불행을,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알맞게 적절히     섞어 선물해 줍니다.              


0 지금 자신의 삶이 사막과 같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너무 좋은 일만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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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일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햇빛뿐만 아니라 비가 오기를 원해야 합     니다. 비가 오더러도 비바람이 몰아쳐야 되고 눈이 오더라도 눈보라가      몰아쳐야 됩니다.   


■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라 


 0 참 우스운 일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에게도 이런 좋은 일이 일     어난다.’고 생각하면서, 나쁜 일이 일어나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     이 일어나느냐’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 마음이면 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     에 사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오만함     입니다.

 

 0 한 번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겠다고 모     두 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천사에게 달려 갔습니      다. 그런데 천사는 이상하게도 ‘행복 바구니와’ 함께 ‘불행 바구니’     도 한 개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행복을 나누어 주겠다고 해놓고 왜 불행을 나누어 주는 겁니까?”

    두 바구니를 받은 사람들이 천사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싫다면 모두 돌아       가십시오.” 

  

 0 거울을 바라볼 때 우리의 모습이 비치는 것은 유리 뒤에 칠한 수은 때문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마음 뒤에 칠해진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     은 보지 못하고 나만 보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불행해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불행이 인생의 어     느 시기에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 속     에는 안정과 평화의 삶이 작고 낮고 느리게 찾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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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갑에 돈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방안에 책을 가득 채우는 게 더 낫다


 0 책이 없는 집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물이 없거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집과 같습니다. 영혼이 없는 쓸쓸한 육체와 같습니다.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는 그 집에 있는 책을 통해 집 주인의 정신세계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최신식 가전제품은 있어도 책이 없는 경우 저는 은근히     그 집주인과 가까이 하기를 꺼립니다.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친     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0 추사 김정희는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으며 저의 스승이었던 소설가 황순원 선생께     서는 ”되읽고 싶은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     다.“고 하셨습니다.


 0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책을 쓰다듬기라도 하라.‘ 는 말이 충분히 이     해되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책입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합니      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구 넘겨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습니다. 연애 편지를 읽을      때 청년은 급하게 읽고, 중년은 차근차근 읽고, 노년은 읽고 또 읽습니     다. 책도 이와 같습니다. 


■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0 부끄럽게도 제가 이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것     은 어떻게 내가 나를 용서한단 말인가, 내 잘못을 용서해 주는 주체는      타자가 아닌가, 남이 나를 용서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0 그런데 내게 어떠한 잘못이 있을 경우 먼저 나를 용사하는 일이 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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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그것은 송봉모 신부님이 쓰신 책 ‘상처와 용서’에서 ‘내게 상처 준      자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글을     읽다가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점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     람은 똑같이 스승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수제자답게 교     회의 반석이 되었고, 유다는 스스로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을 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통곡과 회계 끝에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고 그용서를      바탕으로 무서운 박해 가운데서도 스승의 말씀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그     러다가 처형을 당하게 되자 “나는 스승을 배반한 자이니 십자가에 거꾸     로 못박혀 죽겠다.”고 자청하는 위대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스승을 팔아 얻은 돈을 자신     이 갖지는 않았습니다. 은전 30량을 제사장들에게 집어 던졌습니다. 분     명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그러한 행위를     부추긴 제사장들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지는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똑같이 회개와 통곡은      있었지만 자신을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자살로 끝을 내고 만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그 돈으로 밭을 사, 피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 ‘피밭’이     라고 했으며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했습니다.)


 0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임종 무렵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왜 그때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았던가.’하는 것입니     다. 아마 그것은 죽음에 이르도록 남을 용서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용서     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슴니다. 자신에 대한 용서야말로 모든 용서의 출     발점이기 때문입니다. 


■ 천년을 함께 있어도


 0 한 번은 이별해야 합니다.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습니다.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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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이별을 전제로 합니다. 만남 속에는 이별의 날카로운 얼굴이 숨어 있     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별의 얼굴은 더 날카로워져 이별의      순간만을 엿봅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이별의 얼굴이 지닌 눈빛은      날카롭습니다.


 0 만해 한용운 시인도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남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     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     아 님은 갔습니다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하면     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0 저는 누구보다도 어머니 아버지와 이별할 생각을 하면 슬픕니다. 그때마     다 저는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을 이별해야 한다.’는 중국의 중운     지휘 선사가 이별의 슬픔에 우는 제자 언초에게 읊은 게송인 이 말씀을     늘 생각합니다. ‘천 년을 함께 살 수 없지만 설령 함께 산다고 해도 결     국 한 번은 이별해햐 한다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이별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생깁니다.


 0 생각해 보면 이별은 우리들 삶의 일상이자 본질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서로 사랑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랑은 오늘 하는 것이지 내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고자 합니     다.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 하루의 만남에서 영     원을 찾고자 합니다.

    천 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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