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이건희처럼

2009. 5. 28. 20:56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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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 이지성 지음


0 꿈꾸는 다락방 1.2 .        피노키오 상담실 이야기 . 행복한 달인 .

  수호기사의 편지 등


■ 지극히 평범했던 이건희의 터닝 포인트 스물일곱


0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이지메를 당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규모의 레슬링 대회에서 입상    함으로써 창조적 상상력이나 리더십 보다는 운동에 재능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또 20세의 나이에는 “네 성격이 기업은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매스컴은     어떠냐.” 는 부친의 권유를 받았다. 와세다대 유학시절(23세까지), 공부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야쿠자와 친분을 맺었고, 조지 워싱턴대 경영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24-25세)에는 멕시코로 놀러 갔다가 비자가 만료되    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삼성 비서실 견습사원 시절    (26-27세) 에는 신문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찾아 밑줄을 긋는 업무를 맡    았다.


0 공식적인 첫 직장이었던 중앙일보ㆍ동양방송에 입사한 27세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부회장(38-46세)이 된 이후에도 최초로 벌인 공식적인    사업인 유공 인수에 실패했고,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와 벌인 원유공동개    발, 알래스카 탄전개발사업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3남의 신분으로 그룹승계    를 받는다는 이유로 많은 견제에 시달리고 미국 등을 떠돌면서 방랑의 세    월을 보냈다.

   1987년 46세의 나이로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이듬해 제2의 창업을    선언했지만 1992년까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때부터 체중이    10킬로그램이 줄고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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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삼성은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    기 시작했다.


      ≪ 지극히 평범했던 이건희 다시보기 ≫


■ 이건희는 평범했다, 아니 열등했다.


0 유치원생 이건희 : 당시로서는 구경하기 힘든 모형기차를 가지고 와서 놀    던 말없고 장난도 치지 않는 아이

0 초등 1-3학년 까지는 아예 일화가 없고 우등상 받은 일도 탁월한 리더십    도, 친구에게 별다른 기억을 심어주지도 못한 아이

0 초등 5학년 때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 는 아버지의 지시로 3년간 일본 유    학 ; 거기서도 그는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장학금을 받거나 하지 않고 애완    견을 기르고 골프를 배우고, 1200편이 넘는 영화를 본다. 사교적이지 못    하고 리더십은 없고, 혼자서 영화나 보는, 이지메 당하기에 딱 좋은 아이

0 귀국 후 서울사대부중 편입

0 서울사대부고 시절 전국규모 레슬링대회 입상 : 최초의 공식적인 입상


0 이건희의 고교 동기생 홍사덕 의원은 고교 시절의 이건희를 회고하면서     천재적인 데가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세상보기 안목이 있었다. 미국의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 미    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 안보가 튼튼해진다.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어떤 웅변보다도 애국하는 길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    는 기업은 사실상 나라를 좀먹는 존재다. 등등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그는 특유의 싱거운 표정으로 샘솟듯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    줬던 것이다. 어떤 때는 내가 한참씩 궁리해야 비로소 말뜻을 알아들을 때    가 허다했다.”


0 이병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건희를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보낸다. 그러    면서 “다시 선진국을 배우라.”고 당부한다. 그동안 새롭게 변한 일본을 배    우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과거에 3년간이나 유학을 해놓고 아무것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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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못했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배우라는 의미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조금 놀랍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람 보는    눈이 가장 뛰어 났다는 이병철이 이건희에게 “네 성격엔 기업이 맞지 않    는 것 같으니 매스컴은 어떠냐?” 라고 제안한 것이다. 이건희는 “좋습니     다” 라고 대답한다. 


0 이건희는 와세다 대학 시절 전자 제품을 사다가 뜯어보는 취미를 갖게 되    었으며, 이로 인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틈에 끼여 경쟁하려면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일류를 연구하고 배우기 위    해 일본의 일류들과 열심히 어울렸다고 주장한다.


0 와세다 대학을 마친 이건희는 미국 조지워싱턴 경영대학원에 들어간다. 이    시절에 특기할 만한 점은 자동차를 여섯 번 바꾸었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취미가 있었기도 했지만 자동차의 구조가 궁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별다른 특별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지워싱턴 경영    대학원생 이건희는 어느 날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서 미국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관광을 즐긴다. 당연히 미국 입국을 거부 받게 되고 이건희는 도쿄    로 간다. 이건희는 “나는 학교 공부에 정말 취미가 없다.”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아마도 경영대학원 공부를 그만두고 싶어서 일부러 멕시코로 놀러    갔던 게 아닌가 싶다.


0 도쿄에서 소일하던 이건희는 선을 보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리고, 삼성 비서실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간다.    이건희는 신문에서 삼성 관련 기사를 찾아서 밑줄을 긋는 업무를 맡는다.    물론 당시 삼성 회장이었던 이병철을 수행하는 업무도 병행하지만, 실제로    비서실에서 했던 일이 삼성 관련 기사에 밑줄 긋는 일이었다니 많이 당황    스럽다. 어쩌면 이때만 해도 이건희가 삼성을 맡을 만한 재목이 되지 못한    다고 판단한 것 같다.


0 약 2년 뒤인 1968년 “ 기업은 아닌 것 같으니 메스컴은 어떠냐?” 는 아    버지의 조언에 따라 중앙일보ㆍ동양방송(TBC) 이사로 입사하여 발군의 실    력을 발휘한다. 드라마 시청률에서 KBS, MBC를 앞지르고 아침 8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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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하여 밤 10시에 퇴근 함 : 물론 출연자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기도     했지만....


■ 과거의 틀을 깨고 비상하는 매처럼


0 1971년은 이건희가 30세 되던 해다. 이해 1월 이병철은 파격적인 결정을    한다. 삼성을 이건희에게 물려주겠다는...

   10년 전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네 성격엔 기업이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메스컴은 어떠냐?” 라고 말했을 때와 비교 한다면 정말 놀라운    결정이다. 이병철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건희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유학후 귀국해     보니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음을 깨닫고 그룹 경영    의 일선에 차츰 참여하게 되었다. 본인의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으    며, 열심히 참여하고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


0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세가지


1) 이건희는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현실감각을 갖추었다. 삼성그룹    의 현실을 깨달았다는 의미다.

2) 이건희는 고정관념을 성공관념으로 바꾸었다. 일에 대한 취미와 의향이     매스컴에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슨 일이든 다 잘할 수 있다는 성공    관념을 가졌다는 의미다.
3)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 교수의 강의를 듣고 필기를 하는 그런 공부가 아    니라 직접 경영 현장에 참여해서 몸으로 배우는 살아있는 공부를 했다는    의미다.


0 현실감각, 성공관념, 진짜공부.

  이건희는 이 세 가지를 갖춤으로 인해 평범 또는 열등했던 과거의 틀을     깨뜨리고 비범한 존재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알 껍질을 깨고 나와서    힘차게 비상하는 새처럼 말이다. 이건희의 자기변화가 30대부터 본격적으    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준다. 그의 삶은 말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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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있다.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가장 눈부신 삶의 비상을 할 수 있는 시간임을.


0 이건희는 30대에 자신의 전 인생을 건 승부수를 던진다. 1974년, 그는 당    시 파산에 직면했던 한국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삼성 회장 이병철과 삼성 임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이건희는 사재    를 털어서 한국 반도체를 인수한다. 이때의 이건희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순간에도 역시 ‘현실감각’, ‘성공관념’,‘진짜공부’라는 삼각형의 기반 위에서    일을 벌였음을 알 수 있다.


0 이건희는 미국에서 돌아온 뒤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후계자가 되기로 작정했던 것처럼, 제1차 석유파동    의 와중에 석유 의존산업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현실을 깨    닫는다. 그리고 하이테크 산업, 즉 반도체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첫째, 이건희의 표현대로 한국반도체는 이름만 반도체지 실제로는 전자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준의 집적회로를 만드는 회사였다.

   둘째, 한국 토종기업이 아니라 한미합작기업으로 인수에 걸림돌이 많았     다. 

   셋째, 삼성 경영진의 강한 반대였다. “아직 TV도 못 만드는데 어떻게 최    첨단 기술인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었다.

   넷째, 일본 미츠비시 연구소의 반대가 있었다. 그들은 반대의 다섯가지     근거를 내 놓았다. 


1) 반도체 사업은 기본적인 국내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1인당 GNP가 고작    600달러인 한국에 반도체 수요가 생길 리 없다.               

2) 국내 수요가 없을 경우 전량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    라가 가전제품도 못 만드는 한국의 반도체를 사겠는가? 

3)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그들의 뛰어 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현실적    으로 불가능하다.                        

4) 반도체 공장은 투자비만 10억 달러 넘게 든다. 그런데 삼성전자 총 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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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은 1억 달러도 되지 못한다. 도대체 투자비는 어디서 조달한단 말인가?

5) 반도체 공장은 전기와 물이 1년 365일 내내 단 1초도 끊기지 않고 공급    되어야 하는데 당시 한국은 절수운동에 한 등 켜기 운동 등으로 물과 전    기 어느 것도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0 이 어마어마한 반대들을 이건희는 성공관념으로 돌파했다. 그의 머릿속에    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단 1%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1) 이름뿐인 한국 반도체는 이름에 걸맞은 회사로 만들면 된다.

2) 인수의 걸림돌은 하나씩 제거하면 된다.

3) 경영진이 반대하면 사재를 털어서 하면 된다.

4) 한국은 오래지 않아 GNP가 1500달러를 돌파할 것이고 전자제품 수요도    10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5) 세계 각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인재들을 국내로 스카우트해서 기술을     개발하면 언젠가는 선진국을 앞서갈 수 있고 당연히 수출의 길이 열린다.

6) 부족한 투자금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된다.

7) 반도체 공장에 전기와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게 만들면 된다.


0 반도체 공장을 인수한 이건희는 거의 한주도 거르지 않고 일본으로 날아    갔다. 그는 일본 반도체 기술자란 기술자는 다 만났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배웠다. 반도체에 대해서 아랫사람을 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공부한 것이다. 즉 진짜 공부를 한 것이다. 이건희는 잘    알고 있었다. 강의실의 백 마디보다 현장 전문가의 한 마디가 더 중요 하    다는 것을. 현장 전문가의 말을 들으려면 자리를 박차고 현장으로 가야 한    다는 것을. 게을러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성공할 사람이 가진 특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배움을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0 이건희는 고백했다. 자신은 물론이고 한국 반도체 전체가 진짜 공부를 시    작한지 몇 년 만에 차원이 다른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냈다고. 전자     손목시계용 반도체나 만들던 기업이 3년 만에 흑백 TV용 트랜지스터, 다    시 4년 만에 컬러 TV용 집적회로, 여기서 2년 만에 64K D램 개발에 성    공하는 기업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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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부신 미래를 꿈꾸는 당신에게 ≫


■ 성실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국 시카고 대학의 벤자민 블룸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각 분야의 정상에    오른 사람들 100여 명을 조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본래 평범하    였거나 심지어는 열등하기까지 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변화가 필요하다는 현실을 철저히 깨닫고    비록 지금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지만 반드시 최고가 될 수 있    다는 확신 위에,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방면의 전문가로부터 지도를 받    았기 때문이다. 벤자민 블룸 교수뿐만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연    구한 다른 많은 자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현실감각, 성공관념, 진짜공부 이 세 가    지를 갖추면 반드시 성공한다. ‘비범한 존재’ ‘특별한 사람’이라는 수식어    는  그 때 당신에게 따라온다.


■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돌파하라.


0 현실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당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는 게 아니다. 당신이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찐 다람쥐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두려    움을 품는 것도 아니다. 현실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건희가 현실을 깨닫고 고민하고 방황한 게 아니라 적    극적인 행동에 돌입한 것처럼 다람쥐의 삶을 버리고 사자의 삶으로 과감    히 돌진하는 것이다.


0 만일 지금껏 회사에서 CEO로부터 “자네, 내가 우리 회사를 어떤 방향으    로 이끌어 가면 좋겠나? 나는 지금 자네의 조언이 필요하네.” 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거나 앞으로도 들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CEO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20, 30 대에 세상을 뒤흔들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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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20대부터 철저하게    CEO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20, 30대에 외    면만 직원이었지 내면은 CEO였던 셈이다.


0 성공한 사람들은 20, 30대에 하루하루를 전투하듯이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꾸만 소극적으로 되려고 하고, 나태해지려 하고, 배우지 않으려 하    고, 어제와 똑 같은 오늘을 살려고 하는 자기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하면    서 살았다는 의미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성공을 바란다면 뜨겁지 않은 삶과는 영    원히 안녕해야 한다. 가슴속에 오직 꿈과 열정과 이상과 희망만을 품어야    한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회식 자리에서든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    야 한다. 당신이 머물렀던 자리, 당신이 지나간 자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자극하는 열기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회사가 당신을 뜨겁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지 마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당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당    신이 회사를 뜨겁게 만들어야 한다. 상사든, 동료든, 부하든, 거래처 사람    이든, 고객이든 당신 자신이 화염이 되어 불태워 버려라.


0 처음에는 인간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인간을 만든다.

   딱 90일만 적극적으로 살아보라. 회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부터 만나    는 모든 사람에게 활기찬 인사를 건네 보라. 문서 한 장을 작성해도 혼을    불어 넣어 보라. 회사 복도에 휴지가 있거든 얼른 달려가서 휴지통에 버려    보라. 부하 직원들을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격려해줘 보라. 상사에게 불평    할 시간이 있거든 그를 불쌍하게 보고 어깨라도 시원하게 주물러줘 보라.

   언제나 웃는 얼굴로, 언제나 밝은 미소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대해 보라.    딱 90일만 그렇게 행동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변화할 것    이고, 반드시 행복해 질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감동한 CEO가 당신을 찾아와 조언을 구하    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거친 20, 30대의 삶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현실을 인식했다면, 이제 뜨거운 행    동으로 현실을 타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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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을 만드는 사고방식은  따로 있다


0 성공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65세에 파산하고 알    거지가 된 노인이 있었다. 충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노인은 정신병원에 입    원까지 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정신없이 방황하던 노인의 귓가에     문득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이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가보니 작은    교회였다. 노인은 그곳에서 정말 오랜만에 무릎을 꿇었다.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노인은 더 이상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미친 사람이 되    었다. 작은 시골 모텔 하나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해 파산한 사람이 세계     수십 개국에 자신의 사업체를 세우겠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그    길로 사업 자금을 대줄 사람을 찾아 나섰다.                      

  

0 당신 앞에 파산하고 정신병원에 다녀온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에게 투자    하라. 그러면 수년 내에 몇 배로 불려서 돌려주겠다고, 반드시 성공할 자    신이 있다.” 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노인은 노숙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트럭에서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세    수하고, 그렇게 매일 매일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하면서 투자자를    만나러 다녔다. 다들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100명, 200명...... 노인은 무려 1,101번의 거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신들린 사람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꿈을 이루    었다. 당신도 한번쯤은 그 가게에 들어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노인이 세    운 가게의 이름은 KFC이다. 


0 성공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KFC의 창업자 커넬 샌더스처럼 산다는 것이     다. 미친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세상사람 모두가 “그 일은 100% 안 된     다.” 라고 말할 때, 당신은 혼자서 “1,000퍼센트 된다.”라고 말하며 밀어    붙인다는 것이다.  

   최면보다 강력한 암시가 있다. 그것은 사고방식이다. 사고방식은 자기 암    시라고 할 수 있다. 사고방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성공을 만드는 사고방    식과 실패를 만드는 사고방식, 전자는 성공관념이고 후자는 실패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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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0 잘 나가던 일류 인재나 기업이 한 번 패배해서 이류 인생, 이류 기업이      되고 나면 다시 일류로 올라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패     배 자체의 타격보다 패배의식이 심중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     후의 잿더미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동안 만난      외국의 여러 인사들은 이런 성장과 발전을 기적이라고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와 같은 기적에 바탕이 되었던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         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런데 패배의식은 이런 가능성을 잠재운     다. 패배의식이 공포를 불러오고 의지와 행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어    느 국가, 사회, 기업을 막론하고 진정한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며, 그 힘      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 성공한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아가 직접 배운다.


0 나는 20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나에게    멘토가 되어 달라고 메일을 보내오는데 대부분 거절한다. 다행스럽게도 거    절 답장을 받은 99%는 다시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1%의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도전한다. 메일을 다시 보내는 것은 물    론이고 출판사로 편지를 보내고 강연회에 찾아오고, 심지어는 어떻게 알았    는지 내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온다. 처음에는 스토커 성향이 있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직업은 대표이사 지점    장 등이었다. 


0 나는 그들을 만나고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오    히려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그들을 내 마음속의 멘토로 모시게 되었    다. 그냥 간단하게 부하 직원을 시켜서 초청 강연을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면 멘토를 감동 시킬 수 없고, 멘토로부터 진정한 배움을 이끌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도 따로 시간을 내서 직접 찾아 왔다는 그들    이야말로 내가 무릎을 꿇고서 배워야 할 사람들이었다.


0 정말이지 성공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다. 평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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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힘이 있다.    나는 그들을 만나고서 이렇게 독백했다.

   “남 다른 배움을 얻기 위해서 이토록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어떻    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0 성공한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문가에게 배우는 대가로 보수를 지    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배움을 위해서는 대    출을 받아서라도 배운다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알게 된 한 자수성가한  사람은 50대 후반의 CEO인데, 술    을 마시는 데는 몇 만 원 쓰는 것도 아까워하지만 전문가에게 배우는 데    는 수천만 원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작년 한 해만 해도 그는 전문가 세 사    람에게 일대 일로 배우는 데 사비로 800만 원을 썼다. 그렇다고 오랜 시    간을 배운 것도 아니다. 한 달에 약 6-10시간씩 9개월 정도 배우는 데 이    정도 돈을 썼다.


   화들짝 놀란 내가 돈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전문가가 작게    는 10년 많게는 수십 년에 걸쳐서 쌓아 올린 노하우를 고작 그 정도 비용    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다면 싼 거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전문가    에게 800만 원을 쓰고 나면 언젠가는 8천만 원 또는 8억 원 이상으로 돌    아 온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다고 덧붙였    다.


   그는 30대 중반에, 언제까지 남의 밑에서 일할 수는 없고 언젠가는 독립    을 해야 하는데 ‘사업을 하려면 최소한 자금 때문에 힘들지는 않아야 한     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부동산 업계에서 전설적인 명성을 휘날리던    부동산 투자 전문가를 찾아가서 죽자 살자 매달린 끝에 약 3년 동안 개인    교습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3년 동안 스승에게 1,500만 원을 술값으로    지출했다고 한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가 스승의 술값을 마련하느라    1천만 원을 대출 받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출을 받아서 대학원에 가는 것보다는 대출을 받아서 전문    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일대 일로 배우는 게 훨씬 낫다. 어쩌면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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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이 계산법에 정통했기 때문에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전문가에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 진짜 공부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기


1) 전문가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당신 옆에서 당신보다 나은 실적을 올리    는 사람, 그가 바로 전문가다.

2) 당신에게 감동을 준 사람은 모두 전문가다. 그들의 남다른 점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하라.  

3)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 보라.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당    신이 하기에 달려 있다. 최정상에 선 사람일수록 인간적으로 외롭다는 사    실을 알아야 한다.

4) 전문가를 직접 고용해서 일대 일 교습을 받아보라. 그들에게 일대 일로     배울 때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은 노트와 녹음기 이다. 그들의 말 한 마디는    돈 보다 소중하다. 전문가의 말을 얼마만큼 소화하고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어 진다.


■ 귀찮거나 혹은 주눅 들거나


0 진짜공부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전문가를 찾아 가는     것은 고사하고 전문가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조차도 주저하고 귀찮아 하    는 당신 자신이다. 회사 특강 시간에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들이 와서 주옥    같은 강연을 펼칠 때 이 기회에 저 분과 인연의 끈을 만들어야겠다며 적    극적으로 행동하기는커녕 질문 시간에 손들고 묻는 것조차 하니 않는 소    극적이고 나약한 당신 자신이다.


0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의 발톱으로부터 소중한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신의 미래    를 열어줄 수 있는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을 부지런히 찾아    다니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다들 바쁘고, 배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어    쩌면 냉혹해 보일수도 있다 그렇다고 주눅 들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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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건희를 생각해 보라. 재벌 2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매주 다른 나라로 날아가 일개 기술자에게 머리    숙이면서 배움을 청하는 모습을 말이다. 나는 우리가 이건희에게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 회사 몰래 일본 기술자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기    술을 가르치게 한 그 열정을 생각해 보라. 한 번도 안 들켰기에 망정이지    만일 들켰다면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재벌 2세가 산업    스파이 짓을 했다는 소식은 세계적인 뉴스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이건희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과감히 전문가를 찾아    갔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그런데 당시의 이건희 보다     훨씬 불안한 환경에 처해 있는 한국의 많은 20, 30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    고 있다. 과거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두렵기 그지없는 일이다.  


* 이재용 전무가 상무보로 첫 출근을 했을 때 이건희는 아들에게 삼고초려    (三顧草廬)라는 휘호를 써 주었다.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 찾아가서 배우라    는.... 아는 사람을 예우하고 배울 때는 머리를 숙이라는...



    ≪ 13년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다 ≫


■ 실패한 CEO와 구제불능의 기업


0 1979년 2월, 이건희는 삼성그룹 부회장이 된다.

   혹시라도 이 문장을 읽고서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역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볼 일이다. 단지 삼성 가문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서른여덟에 재벌기업 부회장이 되다니. 평범한 집안에 태어난    나로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렇다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또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현대그    룹, 롯데그룹, 교보그룹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창업한 사람들은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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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정으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나약한 생각일랑 집어    치워야 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세상의 그 누가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는 정주영을 보고 세계적인    재벌이 되리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돈이 없어서 우유 배달을 하던 신격호는 어떤가? 그 누가 우유 배달부가    롯데그룹 창업자가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다락방 같은 사무실을     빌려서 사업을 시작한 무일푼의 청년이 교보그룹의 창업자가 되리라고 생    각했겠는가?


   그런데도 이 세 사람은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    은 “왜 나는 재벌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는가?” 하는 대신 “나도 재벌     그룹을 창업하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생각을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0 이건희 이야기로 돌아가자. 삼성그룹 부회장이 된 이건희는 의욕적으로 사    업을 시작했다. 그는 삼성의 세계화를 목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책임    을 져야하는 ‘해외사업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당시 중화학    공업 중심이었던 삼성이 해외로 나가려면 원유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위원    장 이건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홍하상의 ‘이건희’에 나오는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이건희의 활약상을 재    구성해 보겠다.

   첫째, 이건희는 삼성의 최고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 삼성물산, 삼성중공     업, 삼성조선, 삼성종합건설 등 여섯 개 계열사 사장들과 삼성그룹 비서실    장, 기획조정실장을 휘하에 두었다.

   둘째, 해외 및 국내에서 활동하는 각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세    계 은행에 근무하던 국제금융전문가 박윤식 박사를 초빙해서 기획조정실    장을 맡겼는가 하면 한국과학기술원의 안용옥 박사를 불러들여 중화학ㆍ    석유 부분을 맡겼고, 보스턴대학교 교수 장유상 박사에게는 경영관리, 호    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웅서 박사에게 회장 고문 자리를 맡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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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건희는 드림팀의 막강한 지원을 받으면서 세계를 휘젓고 다녔다. 멕시코    로 날아가서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서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로 날아가서 원유 협상을 주도했다. 덕분에     멕시코와 말레이시아의 원유가 한국에 공급됐다. 그런데 ‘해외사업추진위    원회’의 목표는 국책기업 ‘유공’을 인수하는 것이었고, 이건희는 발 벗고     뛰었지만 유공을 인수하지는 못했다. 유공은 선경그룹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가 삼성에 들어와서 공식적으로 벌인 첫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    고 말레이시아와 합작해서 벌인 원유개발사업과 알래스카 탄전개발 사업    등 의욕적으로 벌인 모든 사업에 실패한 이건희는 약 5년 동안 암울한 세    월을 보내게 된다. 한국을 떠나 미국을 떠돌아야 했을 정도로 실패가 남긴    후유증은 크고 깊었다.


0 1987년 12월 1일, 이건희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선대회장 아버지    이병철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듬해 3월, 이건희는 제2의 창업을 선    언한다.


0 “변화와 개혁”

   이건희가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외친 말이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5년간이나. 많은 사람들은 삼성의 변화와    개혁이 그가 취임하자마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    다. 신임회장 이건희로 하여금 불면증에 걸리게 하고, 몸무게를 10킬로그    램 이상 빠지게 할 정도로 5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아니 그가 회    장에 취임한지 4년째인 1991년에는 매출은 늘었는데 순이익은 감소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이건희가 부회장으로 일한 8년, 회장으로 일한 5년, 총 13년 동안 쓰디    쓴 실패의 잔을 들이키면서 절치부심하고 있을 때 삼성은 일본,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의 가전제품 매장 구석에 수년째 처박혀서 먼지만 잔뜩 뒤집    어 쓰고 있는 그런 제품들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고객용 주차장에 버젓이 차를 주차하는 황당한 직원들이 있    었는가 하면 세탁기 부품의 규격이 맞지 않자 이를 칼로 깎아내서 조립하    는 놀라운(?) 직원들도 있었고, 경쟁사의 공장에 들어가서 기술을 빼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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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 적발되어 형사 입건된 직원들과 1년 전에 만든 양복을 올해 만든 것    이라고 속여서 판매하다가 적발되자, 양복은 음식처럼 소비자가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배짱 좋은(?) 직원들도 있    었다. 이건희식 표현법을 쓰자면 당시 삼성은 구제불능의 기업이었던 셈이    다.


   그런데 이건희는 이 구제불능의 기업을 불과 몇 년 만에 전 세계가 주목    하는 기업으로 바꿔놓는다. 철저하게 실패한 CEO였던 자신을 눈부시게 성    공한 CEO로 변화시켰음은 물론이다.   

   이건희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 우리는 성공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0 1993년은 이건희 자신이 파격적으로 변화한 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1993년 1월, 신년사에서 지금 당장 변화하지 않으면 ‘삼성은 곧 망한다.’    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그룹전체에 전달했다.

2) 1993년 2월, 삼성그룹 사장단을 이끌고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서 전자부    품 수출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열었다. 세계 일류 제품들과 삼성 제품들    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자리였다. 말이 비교하는 자리지 삼성이 얼마나    수준 낮은 초라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철저하게 깨닫는 자기비판의 자    리였다. 그리고 세계 각국 제품들이 전시된 매장을 들러서 삼성 제품이 뽀    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3) 1993년 3월, 삼성 임원진을 도쿄로 데리고 갔다. 삼성제품이 LA에서와     마찬가지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임원진과 함께 무    려 12시간의 토론을 벌였다.              

4)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신경영을 출범시켰다.

5) 1993년 6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런던,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를 오가    면서 임직원들과 해외 간담회를 가졌다.

6) 대학, 기관, 매스컴 등에 나가서 강연과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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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93년의 이건희의 외침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1992년에    있다. 이건희는 1993년 행한 간담회와 1997년에 출간한 에세이에서        1992년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작년 1월(1992년)부터 내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작년 8월부터는 잠이     오지 않더라. 매일 책 보고, 물어보고 조사시키고 했다. 10월부터 뭔가 해    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199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 가다    가는 사업 한 두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때는 하루 네 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다.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 내가 식욕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를 간신이 먹을 정도였다. 그 해에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줄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건희의 강력한 자기변화가 다음 세 가지 경로를 밟아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 미래를 놓고 몸이 마를 정도로 고민했다.

2) 책을 읽고, 전문가들에게 묻고, 성공한 기업을 조사했다.

3) 세상(삼성)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서 변화시    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행동으로 연결시켰다.


0 이건희가 강력한 자기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본적인 자기계발    노하우를 실천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데 있다. 과거의 나 자신과 결별    하고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서 불면증에 걸리고, 체중이 확 줄 정도로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갔다는 데 있다. 


■ 미친듯이 지독하게


0 처절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해 가면서 자기변화를 이룩한 이건희는 구제    불능 기업 삼성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이건희는 일갈했다.      “전자는 암에 걸렸다. 중공업은 영양실조다. 건설은 영양실조에 당뇨까    지 겹쳤다. 종합화학은 선천성 기형이요. 물산은 전자와 종합화학을 나눈    정도의 병이다.”

   그러면 도대체 삼성은 어떤 기업이었을까? 이건희가 과장급 이상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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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들에게 회람을 지시한 일본인 기술고문들이 지적한 삼성의 문제점들    중 몇 가지를 보자.

1) 창조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다.

2)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

3) 실적과 결과에만 연연한다.

4) 일본도 살아남기 위해서 일벌레처럼 일하고 연구하는데, 삼성은 그렇지     않다.


0 이건희의 표현에 따르면 삼성은 1987년에 이미 망한 기업이었고, 회장으    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체면 안 구기고 기업의 문을 닫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든 기업이었다. 그럼 삼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중 가장 강력하게 시도했던 것은 ‘강의’를 통한 의식의 변    화였다.

   이건희는 지독한 강연가로 변신했다. 1993년 2월, 그는 사장단에게 공식    적인 첫 강연을 했는데, 무려 9시간이 걸렸다. 도쿄에서는 12시간이었다.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역사적인 신경영 선언을 한 뒤에는 강    의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런던, 오사카, 후쿠오카, 도쿄를 오가며 68일 동    안 사장단을 대상으로는 800시간, 임직원 1,800명을 대상으로는 350시간    동안 강의 했다.


0 이건희는 강의에 광적으로 몰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신경영을 선언하고 신경영 대장정이라고 불렸던 간담회를 가진 것    은 구조적인 문제는 그 근본부터 해결해야 하고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속    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희는 사람이든 조직이든 변화하려면 무엇보다 사고방식(마    음)이 변해야 하는데, 오직 ‘강의’를 통해서만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건희가 삼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강의에 목숨을 걸었다    는 것은 이건희가 강의에 쓴 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이건희는 신    경영 선언 이후 68일 동안 일본에서만 약 1억 달러, 그러니까 당시 환율    로 보면 대략 1천억 원 가까이 썼다. 단지 교육과 강의를 위해서 그렇게     쓴 것이다. 전년도 삼성그룹 총 매출이 38조 2,100억 원이었고, 이익은     2,935억 원이었다. 즉 이건희는 그룹 전체 수입의 3분의 1을 회사의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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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발을 위해 쓴 것이다.           


0 일부 사장단과 임직원들은 ‘우리 회장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 하는    표정으로 특강을 들었다. 이건희 특강의 핵심 내용인 “우리도 변화를 선택    하면 소니, 도요타, GE, BMW 같은 초일류 기업들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메시지 자체가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삼성에는 이사급 임원이 800명 있다. 이 중 내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귀 기울이는 사람은 10% 남짓 될까 말까 한다. 부장급도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10%가 안 된다. 삼성에서 회장과 위기의식    을 공유하는 사람이 5% 있으면 많이 있는 거다.”

   이건희 자신이 이렇게 탄식했을 정도로 삼성은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언론이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비서실이 반발하면 반발할수록 삼성 사람들    이 자신을 미친놈으로 보면 볼수록 이건희는 강의에 열정을 불살랐다. 8시    간, 12시간, 심지어는 18시간씩 강의를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삼성이 바    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의 자기계발을 위해 쓴 비용 1억 달러는 삼성    그룹 시가총액이 1988년 1조 원에서 2007년 140조 원으로 무려 140배    나 상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목숨 걸고 자기계발에 몰두하라.


0 이건희의 지독한 특강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기계발에 목숨 걸      자.’이다. 삼성 사람들 각자가 자기계발에 몰두하면 삼성은 저절로 바뀌고    세계 일류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건희가 신경영 초기에 삼    성그룹 전체를 들볶다시피 해서 정착시켰던 ‘7ㆍ4제’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7ㆍ4제’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것인데, 목적은 자    기계발이다. 6시에 퇴근하면 바로 저녁식사를 하게 되고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소화도 시킬 겸 커피를 한 잔 하거나 하면 금세 7,8시가 된다. 퇴근시    간까지 고려하면 자기계발에 쓸 시간은 없다. 

   삼성은 이건희의 지시에 따라 임직원들의 자기계발 비용을 대주고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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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에 ‘21세기 리더 과정’ ‘21세기 CEO 과정’ 등 다양한 형태의 자기계발    과정을 만들었다. 


0 어찌됐든 분명한 사실은 성실을 넘어 성공으로 옮겨가는 삶을 산 임원들    은 자기계발에 충실했고, 성실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던 직원들은 자기계발    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기업 임원들의 대다수는 자기계발에 미친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 중 많    은 수가 재벌 총수의 가신으로 사는 데 만족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나라를 망치고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만 주는 시스템을 굳건히 하는 데 일    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물론 이런 비판은 다음 사실을 크게 고려하    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55개의 상장기업 대표이사 1,000여 명 중에 10    년 안에 옷을 벗는 CEO가 780명에 이르고, 고작 220여 명 정도가 살아    남는데 그 중 190여 명이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친인척인 현실을, 즉 순수    CEO의 생존율은 겨우 3%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부터 뼛속까지 바꿔라.

          

0 이건희는 1993년에 삼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1,200여 시간에 이르는 강의    를 했다. 200페이지 책으로 따지면 약 45권에 가까운 분량이었다고 한다.    메시지는 늘 동일했다.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였다. 그렇다면 이건희는    왜 이토록 집요하게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했던 걸까?

  

0 미국의 자기계발 작가들이 발견한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바꾸    려면 약 1톤 정도의 긍정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 대략 1톤 분량의 자기계발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으면 박정희 또는 정주영 같은 불굴의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소리일까? 책    한 권이 대략 500그램 정도니까 약 2천 권 정도를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0 ‘자기계발’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 보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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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다.  퇴근 후에 영어 공부를 하거나  헬스를 하는 것을 자기계발로 착각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공부와 운동이지 자기계발이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이 자기계발이라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나 근육질로 단련    된 바디빌더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해 있어야 한다. 이건희가 임직원    들에게 영어공부를 하라든가 헬스를 하라고 다그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건희는 무엇보다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    했다. ‘자기계발’의 본질을 정확이 꿰뚫은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0 자기계발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직원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CEO    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겨우 수천만 원 정도의    돈을 벌 아이디어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는 사람을 수십억 원대의 돈을 벌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건희가 신경영 선언이후 퇴임할 때까지 15년간 자기계발 메시지를 지    속적으로 보냈지만 삼성 임직원들의 사고방식은 신경영 선언이후 3개월     동안 접한 1,200시간의 회장 직강으로 인해 거의 완벽하게 바뀌었다고 보    는 게 맞을 것이다. 


0 이건희는 말했다.

   “내가 말한 것, 100번쯤 비디오를 틀어 놓고 들으면 귀가 뚫리고 행동으    로 옮겨질 것이다.”

   “보잉 747이든 인공위성이든 일단 활주로를 뜨면 대기권에 진입할 때까    지 가야 한다. 중간에서 멈추면 추락하거나 공중 폭발한다.”

   이건희는 알았던 것이다.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할 수 있다!’는 메    시지를 100번만 접하면 실제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한 번 시작    한 자기계발은 거대한 성공을 거둘 때까지 목숨을 걸고 계속해야지 그렇    지 않으면 추락하거나 폭발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 경쟁의 숲에서 제대로 일 하는 법 ≫


■ 지식 사회엔 정주영이 아니라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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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93년 7월, 이건희는 오사카에서 특강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 손을 묶고 24시간 살아봐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    봐라. 나는 해봤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쾌감을 느끼고 승리감을 얻게 되    고, 재미를 느끼고 그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건희 시대’라는 책에서 이 발언을 두고서 ‘엽기적’이며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 이 말을 접 했을 때 좀 황당    했다. 변화를 강조한 의미로 한 이야기인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좀 비    상식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0 NLP 이론


- Neuro-Linguistic  programming : 신경-언어 프로그래밍

- 리처드 밴들러 및 존 그린더에 의해 개발

- 엔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책에 의해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

- 핵심내용은 ‘성공하고 싶으면 성공한 사람을 따라서 하라, 성공자의 사고    방식, 행동, 인맥관리, 성공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따라하면 성공    한 사람이 된다.’ 


0 이건희는 신경영 선언이후 삼성그룹이 각 분야별로 벤치마킹해야 할 세계    초일류 기업을 12개 선정했다. 고객서비스는 노드스트롬과 제록스를 따라    할 것, 마케팅은 마이크로소프트, 신제품 개발은 모토로라를 따라할 것 등    어떤 분야에서 어떤 기업의 어떤 부분을 따라해야 할 것인가를 세심하게    선별해서 전사적인 벤치마킹을 지시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삼성은 초일류 기업이 되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04년도의 순이익이 마    이크로소프트보다 높았을 정도였다.


0 “성공한 사람들은 벤치마킹에 열심이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이건희의 스타일은    참으로 독특하다. 박정희식 또는 정주영식 모델이 전부였던 우리나라에 새    로운 자기계발 모델을 만들어 냈다고나할까. 전자가 산업사회 스타일이라    면 후자는 지식사회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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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적 자기계발 모델에 적합한 인물로 이건희 이상 가는 인물은 없다.


0 이건희의 일하는 법

1) 일의 목적을 명확하게 안다.

2) 일의 본질(업의 개념)을 파악한다.

3)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본다.

4) 일의 본질에 바탕을 두고 우선순위를 판단한다.

5) 정보를 확인하고 활용한다.

6) 최종 결심을 한다.

7) 일이 되도록 진행시킨다.

 (1과 2를 ‘일하는 원칙’이라 하고 3을 ‘일하는 습관’이라 한다.)


■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


0 일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1) 과거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하고,  2) 원점 사고로 현재를 바라볼 수 있    어야 하며,  3) 일의 본질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세 가지 전제를 만    족 시켜야 한다.


0 이건희는 일본의 혼다 사가 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당시의 일화를 예로 들    어 설명

- 당시 일본 혼다 사의  간부들은 그들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부    정적으로 생각 함, 품질은 최상급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만들 방법    이 없었음

- 모두가 포기하자는 말에 CEO가 한마디 던졌다.

   “자동차가 별건가? 오토바이 두 대를 쇠파이프로 연결하고 뚜껑을 덮었    을 뿐인데....”

- 간부들은 이 말에 충격을 받고 그때까지의 서양의 자동차 제작 방식과는    다른 혼다식 자동차 제작을 창안하고 가격 경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냄


0 이건희가 종교적 수준에 준하는 열정을 가지고 삼성의 변화를 외칠 수 있    었던 것도 신경영이라는 일의 목적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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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건희는

1) 더 이상 과거의 삼성이 했던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못 박고

2) 원점사고에 입각해서 삼성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로는 오래 전에 망    한 기업이라는 현실을 직시 했고

3) 신경영의 본질이 단지 삼성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서 인류사    회에 공헌하는 데 있다는 사실, 즉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 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0 일의 본질을 간파하는 이건희식 질문법

1) 이 일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2) 이 일의 뿌리는 무엇인가?

3) 이 일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

4) 이 일의 핵심 기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5) 이 일에서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6) 이 일의 고객은 누구인가?

7) 고객의 기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0 이건희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여 기업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물    론이고 영원토록 세계 1위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업은 결국 사람이다. 아니 CEO다. 이 말을 삼성에 적용하면 삼성은 결    국 이건희다. 쉽기 말해서 초일류 기업 삼성은 이건희가 설계하고 만들었    다는 의미다.


■ 세계적인 경영자들은 질문을 좋아한다.


0 이건희의 일의 본질 파악하기는 결국 질문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적    인 경영자들과 기업들은 소위 질문광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잭 웰치 같은    경영자는 이렇게 말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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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나는 한 자리에서    1만 8천 번이나 질문하고, 그래도 일어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틴 적이 있    다. 또한 나에게는 창조성은 별로 없지만 그것을 간파하는 능력은 있다.”


0 멕시코의 중소기업이었던 세멕스사

- 일하기 전에 다섯 번 이상 “Why? 라고 묻기”를 실천해서 세계 최고의 레    미콘 업체가 됨

- 1985년 세멕스의 CEO로 취임한 로렌소 삼보라노는 품질개선, 배송혁신,    고객서비스 혁명의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사원에게 ‘왜’라는     질문을 실천하게 함  


0 개인에게 적용하는 이건희의 질문법

1) 나의 습성과 성격은 무엇인가?

2) 나의 습성과 성격이 나온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3) 이런 습성과 성격을 보다 나은 것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내가 모델로 삼을 만한 습성과 성격을 가진 사람은 누구이며 그에게 무    엇을 배울 것인가?

 

   쉽게 말해서 대충, 생각 없이, 어제와 똑같이 살지 말고 자신에게 치열하    게 질문하고 도전하는 삶을 갈라는 것이다. 이건희는 이를 자기극복 과정    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고 완벽    하게 알게 되면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0 이건희는 국내 최고 재벌기업 2세로 태어나서 자랐고, 국내 최고 기업의    회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1,2년은 내다    볼 수 있어도, 5년 10년은 내다볼 수 없고 생존이 불가능하다. 일류가 되    지 못하고 이류, 삼류가 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망하게 된다.” 면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불어 넣으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    으려 노력했다. 


■ 나무보다 숲을 먼저 보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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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고, 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이건희의 일하는    원칙이라면,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은 이건희의 일하는 습관이다.    내가 보기에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바꾸자 경영’도 이건희    의 일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삼성의 변화는 곧 이건희의 변화로부    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이건희가 ‘삼성이    변하려면 회장인 나부터 변해야 한다.’ 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삼성의    변화는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0 이건희의 대단한 점은 “삼성이 변하는 걸 원합니까? 그럼 회장 당신부터    먼저 변하십시오!” 같은 뼈아픈 조언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이 전무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즉 가신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내가 먼저 변하지 않으    면 안 된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건희는 ‘변화’에 생계가 걸려 있기는커녕 굳이 변화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변화를 거부하고 눌러 앉아서 이자의 이자만 받아먹고 살아도 몇    대가 놀 수 있는 그런 재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는 깨달음을 얻어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처절하    게 스스로 변화했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0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습관을 삼성에 적용해서 “삼성이 변하려면     개인이 변해야 하는데 서로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    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 이건희는 이 습관을 다시 개인에 적용해서 회장,    사장, 임원, 간부 순으로 변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이건희    의 말을 들어 보자.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삼성사람 전체가 동시에 다 변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했다. 결론은 회장인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임원, 간부가 변해야 한다. 이렇게 자꾸자꾸 늘어나야하    는 것이다.”


0 만일 이건희가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습관을 갖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건희는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자기 자신은 볼 줄 모르고 애꿋    은 아랫사람들만 다그쳤을 것이다. 왜 변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물    론 그랬다면 삼성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삼류 기업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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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인하는 백화점 VS 교육하는 백화점


0 이건희는 기업 경쟁력의 본질이란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들어서 고객에게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고객으로부터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최고의    기업경쟁력을 갖춘 것이라고 했다. 이런 기업경쟁력 역시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습관으로 얻을 수 있다.


0 여기서 백화점을 숲으로 보고 소매점을 나무로 보자. 백화점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소매점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소매점을 다시 숲으로 보자. 그럼 나무는 무엇일까? 소매점에서 직    접 고객을 상대하는 판매원이다. 즉 이건희의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는    습관을 백화점의 기업경쟁력에 적용하면 판매원들의 경쟁력이 곧 백화점    의  경쟁력이다. 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0 신문 전면을 가득 채운 백화점 광고, 경품행사, 50% 세일 등에 진심으로 감사를 느끼는 고객이 있을까? 그 백화점 판매원들로부터 어떤 진실한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있을까? 반면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고객과 가슴으로 만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근무하는 소매점의 제품을 고객에게 전문가 수준으로 설명할 줄 알고,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싼 가격에 가장 신속하게 제공할 줄 아는 노하우를 가진 판매원들로 채워진 백화점은 어떨까? 언제나 충성스런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고객들은 그곳에서 언제나 뜨거운 감동을 얻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발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0 1977-1987 기간 중 삼선전자는 매년 200억 내지 300억 원씩 이익을 내    고 있는데도 이건희는 불량률을 거론하면서 “이대로 가면 망한다.”고 했     다.

   “내가 회장 취임 후 제일 먼저 이야기 한 것은 삼성은 질 위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50년 동안 굳어져 온 양 중심의 관행과 사고의 틀을 깨    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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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무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말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건희의 시각    으로 보면 작은 이익을 계속 내고 있는 사람 즉 월급의 일부를 착실히 저    축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래도 내가 남들보다는 못하지 않다고     은근히 자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하기 일보 직전에 와 있는 것이다.


0 50년 동안 굳어 온 양적 사고와 관행, 작은 이익에 안주하는 것은 암의     초기 증세였다. 그것을 깨뜨리고 질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회장을 비롯해    서 삼성이 목숨을 걸고 추구해야할 우선 순위였다.


0 이건희는 ‘삼성 신경영’에서 이렇게 말했다.

   “골치 아픈 것도 훈련하면 된다. 2킬로미터를 뛰다가 3킬로미터, 4킬로미    터를 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갑자기 4킬로미터를 뛰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아내와 자식에 대해 골치 아프게 분석하다 보면 내가 분석    되고 회사와 동료, 선후배도 분석된다. 육체적 몸살을 앓는 것에서 벗어나    정신적 몸살을 앓을 정도로 고민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건희도 아내와 자식부터 시작해서 삼성과 우리나라와 세계에 대해서     몸살을 앓을 정도로 고민하고 분석한 결과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 재    벌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고 살다가 연이어 뼈아픈 실패를 경험    한 뒤 체중이 확 줄고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자신을 몰아간 끝에, 일의 본    질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법을 깨우쳐서 삼성에 ‘질 경영’이라    는 절대 과제를 제시했다.       

   당신도 하면 된다.


■ 내가 활용할 수 없다면 정보가 아니다


   이건희는 사실과 정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은 ‘바로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고, 정보는 ‘그    사실을 내가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희는 사실과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    한다.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보는 관점을 달리하고, 이를 의사결    정에 반영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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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할수록 단순하게 사고하고 승부하라.


0 이건희의 최종 결심은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진행 되는데 1)단순하게    생각하라.  2) 도약(월반, 越班)하라는 두 가지 원칙하에 이루어진다.


0 1987년 4메가 D램 개발방식의 선택

- 한 번 투자에 수조 원이 드는 결정

- 미국 일본 업체도 최종 결정을 못 내림

- 이건희는 스택(회로를 위로 쌓아 올리는 방식)과 트랜치(그 반대)중 스택    을 선택

- 이건희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쌓아 올리는 것이 지하로 파고들어     가는 것보다 훨씬 쉽고, 또 문제가 생겨도 위로 노출된 회로를 고치는 게    지하로 숨어버린 회로를 고치는 것보다 편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후일 이건희의 선택은 올바른 것으로 판명 되었고 이 결정으로 삼성전자    는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다.    

  

0 1993년 삼성 반도체 생산을 8인치 웨이퍼 라인으로 변경

- 당시 세계 표준은 8인치가 아닌 6인치

- 8인치로 할 경우 6인치 보다 두 배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으나 기업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 선진국들도 기피하고 있었음

- 이건희는 피를 말리는 고민 끝에 8인치를 선택했다. 세계 1위로 발돋움하    려면 당시 세계 1위의 기업들조차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도전을 해야 한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희에게도 두려움은 있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종류가 좀 달랐다. 지금 도약하지 못하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으    로 머물러 있게 된다는 건설적인 두려움이었다. 실패하면 1조 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되는 결정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이건희는     ‘도약하라’는 원칙에 따라 8인치를 선택하기로 최종 결심을 하고 밀어 붙    였다.


  이 결정으로 삼성전자는 16메가 D램 개발은 일본과 거의 동시에 했지만     생산력에 있어서 일본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 결과 1993년 10월에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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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분야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 설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기로 한 결심 또한 앞서 말한 두 가지    원칙하에 진행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때도 이건희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불면증에 시달리고, 몸무게가 10킬    로그램 이상 빠지는, 소위 피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그리    고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원칙에 따라 삼성에 아주 단순한 메시지 즉 “나    부터 변해야 한다.”를 전파했고, ‘도약하라’는 원칙에 따라 ‘세계 삼류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라는 비전을 세우고 앞장서 나갔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세상에서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건희처럼 진짜 대단    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이점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다. 성공은 피를 말    리는 고통을 이겨 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임을.


■ 일이 되도록 진행 시켜라


0 1995년 3월 9일에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품질    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쓰인 현수막 아래 ‘품질확보’라고 적힌    띠를 이마에 두른 2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중 몇 명의 손에는    해머가 들려 있었다.

   잠시 후 운동장 하늘은 기계가 박살날 때 나오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    날  삼성전자 직원들은 무려 15만 대의 휴대폰이 해머에 맞아 폐품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마침내 모든 제품이 박살나자 그 위로 휘    발유가 뿌려졌고 이어 불이 붙었다. 그날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진 제품은    대략 500억 원 어치였다. 

   연초부터 판매한 약 15만 대의 휴대폰에 불량품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건희가 시중에 나간 제품을 전부 회수하도록 한 뒤 취한 조치였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부터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국내 4위에서 세계 1위로 방    향을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0 이건희는 생산 공정 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든지 그 생산라인을 멈추    고 며칠이 걸리든 몇 달이 걸리든, 그리고 그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생산    라인을 멈춤으로 인해 손해가 얼마나 발생하든, 전 직원이 달라붙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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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도록 지시 했다. 물론 회장의 지시 한 번으로 기술    자들이 생산 라인을 스톱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건희는 라    인스톱제가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 했다. 라인스톱제가     생산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순간부터 삼성전자는 빠른 속도로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0 그리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삼성 임직원들에게 세부 전략을 가르    쳤다. 하지만 ‘에니콜 화형식’과 ‘라인스톱제’라는 회사의 운명을 건 행동    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즉 ‘일(질 경영)이 되도록 진행’ 시키지 못했더라면    과연 이 놀라운 세부 전략들이 삼성 임직원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달리 말해서 오늘날의 삼성이 존재할 수 있었    을까.


0 진정으로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참으로 독한 결단을 내려야 한    다. 과거의 당신을 가차없이 화형시키는 그런 결단 말이다. 과거의 당신이    죽지 못했는데 새로운 당신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결단    과 의식(儀式)없이 진행되는 자기계발은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 미래를 준비하는 이건희처럼 ≫ 


■ 초일류 경영자를 이끈 두 개의 별


0 이건희이게는 두 명의 스승이 있었다. 한 사람은 삼성 창업자 이병철이었    고, 다른 한 사람은 중앙일보 회장 홍진기였다. 이건희는 두 사람으로부터    약 20여 년간 배웠고, 이 배움을 통해 세계적인 경영자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교육 목표는‘최고의 CEO 만들기’에 있었던 것 같    다. 이병철은 이건희를 경영일선에 항상 데리고 다녔고, 홍진기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기업경영과 연관시켜서 이건희에게 전수했기 때문이다.  

0 이건희의 강점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생각’은 미래    가 어떻게 변화할지 내다보고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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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는 자신의 생각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    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다름이 아닌    아버지 이병철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병철은 처음부터 이건희를 삼성의 실질적인 최고 경영자로 키우기 위    해 노력했는데, 재미있게도 그의 가르침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이건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선친은 경영일선에 항상 나를 동반하셨고 많은 일을 내게 직접 해보라    고 주문하셨다.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셨    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처리하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0 이건희는 삼성 사내교육 자료 ‘삼성 신경영’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룩하여 후세에 넘겨주어야 할 지고의 가치이자 목표다.     나는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나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명예를 다 바칠 것    을 분명히 약속한다.” 


0 홍진기는 이건희에게 이병철과는 사뭇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그는 이건희    에게 정치, 경제, 법률, 행정 등 기업경영과 관련된 것들 위주로 문답식으    로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이건희의 설명에 따르면 홍진기는 기    업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전문지식들과 그 활용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이건희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업경영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게 되었    고, 깊이 있는 경영이론의 바탕위에서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게 문제를 해    결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 50시간 연속 꿈의 시간을 확보하라


0 2002년은 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긴 해다. 당시 삼성은 기업 창립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삼성을 경    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희는 그 빛나는 순간의 정점에 위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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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건희는 바로 그 순간 사장단을 데리고 ‘50시간 연속 회의’에 돌입했다.    그리고 2010년까지 삼상전자를 GE, SONY와 동등한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나는 삼성전자가 현재까지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    경 중 하나를 2002년의 ‘50시간 연속회의’를 들고 싶다. 만일 당시에 이    건희가 성공에 취해서 사장단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트렸다면 알게 모르게    다들 정신적으로 느슨해졌을 테고 그 여파는 그룹 전체에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삼성은 서서히 퇴보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0 이건희의 공부는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뒤에도 멈출 줄을 모른다. 삼    선전자가 소니를 지치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을 때 이건희는 샴페인을     터트리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는 한 달 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일본의 경제인과 학자들을 만나서 공부했다. 그리고 도쿄의 최    신 전자제품 매장을 수시로 둘러보면서 삼성이 벤치마킹해야 할 것들을     직접 체크했다. 또 자기 자신에게  1) 한국기업이 과연 일본 전자 기업을    앞서갈 수 있는가?  2) 일본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3) 삼성이 글로벌 리딩 컴퍼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는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분투했다. 그 결과 ‘준비경    영’이라는 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삼성은 한 때의 성공에 자    만하지 않고 침착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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