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6. 14:29ㆍ독서후기
왓 칭 <Watching> (2)
- 신이 부리는 요술 -
■ 김상운 지음
제2부 나를 바꿔 놓는 요술 일곱 가지
왓칭 요술 #4 지능을 껑충 높이려면
지극히 평범한 아이를 천재로 만들 수 있을까? 호기심을 못이긴 어느 심리학자가 보통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다.
“ 이 아이를 어떤 분야의 천재로 만들까? 과학? 수학? 음악가? 철학? 문학?”
고민 끝에 그는 첫 아이를 체스 천재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는 선천적으로 체스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해 있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체스 명인 가운데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그게 고정관념 때문이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다.
또한 그가 깨고 싶었던 것은 지능이 유전된다는 고정관념이었다. 그는 사실 체스엔 문외한이었다. 부인은 더더욱 체스엔 젬병이었다. 또 양가 선조들 가운데 체스 말을 만져본 사람조차 없었다. 따라서 만일 딸아이가 체스 천재가 된다면 그건 성별로 보나, 유전적으로 보나, 타고난 재능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그는 천재성을 이끌어 내는 가장 큰 힘은 동기유발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아이가 볼 때마다 너무나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혼자서 체스를 두었다. 호기심이 동한 아이가 다가와 체스 말을 만지면 이렇게 말했다.
“좀 참아, 이렇게 재밌는 건 좀 더 커야만 할 수 있단다.”
아이는 체스를 하고 싶어 도저히 못 견디고 마구 울곤 했다. 그는 그제야 조금씩 알려 주었다. 체스에 관한 그림책도 많이 사다 놓았다. 아이의 체스 실력은 쑥쑥 늘었다. 그 자신도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체스 공부에 전념했다. 체스에 관한 모든 책을 사다 아이와 함께 읽었다. 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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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대국 비디오도 많이 사다 보았다. 서가에는 어느새 만 권이나 되는 체스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부인과 함께 집에서 가르쳤다. 학교에 보내면 지능에 관한 유전적, 성별적, 고정관념에 물들어버릴 게 불을 보듯 뻔해서였다. 대신 집에서 국어, 수학, 과학, 외국어 등 다른 과목들을 틈틈이 가르쳤다. 주입식이 아니라 스스로 재미를 느껴 깨우치도록 자극만 주는 방식을 택했다. 5년 후 둘째 딸, 그리고 2년 뒤엔 셋째 딸도 태어났다. 그들에게도 똑 같은 방법으로 체스를 가르쳤다.
식구가 체스에 파묻혀 살았다. 세 딸들은 정말 체스 천재가 됐을까?
첫째 딸은 17세 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체스 명인전 예선 통과, 하지만 당시에는 여성에게는 본선 진출 자격을 주지 않았다. 2년 후엔 세 자매가 한 팀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했고, 다시 1년 후 첫째 딸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체스 명인이 됐다. 둘째 셋째도 역시 최고 명인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들은 지난 수년간 남녀를 통틀어 꼬박꼬박 세계 10위 안에 꼽힌다.
“어느 아이든 천재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보면 천재가 된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정확히 현실로 나타났다. 항가리의 교육 심리학자 폴카의 이야기다.
■ 지능에 대한 두 가지 착각
양자물리학자들은 지능에 대한 두 가지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첫째는 ‘지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둘째는 ‘지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 이란 고정관념이다. 이런 고정관념들이 지능을 고정시킨다.
1. ‘지능은 타고나는 것. 즉 고정된 것’으로 바라본다. : 관찰자 효과에 따라 지능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
2. ‘지능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바라본다. : 관찰자 효과에 따라 내 머릿속에 든 생각만 돌고 돈다. 새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착각을 떨쳐버리면 닫혀 있던 지능은 저절로 열리게 된다. 즉 ‘지능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변화하는 것, 지능은 내 머리 밖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고의 폭이 획기적으로 넓어지고 지능도 저절로 껑충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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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의 세계적인 신경생리학자 프리브램 교수는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환자들은 뇌의 상당 부분을 제거 했는데도 왜 기억의 일부가 손상되지 않는 거지?”
심지어 치매 환자들도 그랬다. 한 환자는 치매가 워낙 심해 마지막 십 년간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냈다. 아들들을 봐도 누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돌연 얼굴빛이 회색으로 변하더니 의자에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들이 의사를 부르려 하자 뜻밖에도 정신이 깜깜하던 아버지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들아 의사 부를 필요 없단다.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렴. 나는 괜찮다는 말도 함께.”
아버지가 숨을 거둔 직후 부검을 해보니 뇌세포 대부분이 치매로 파손돼 있었다. 사실상 두뇌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또한 영국의 뇌 과학자 로버 박사가 뇌세포의 90%가 파손된 뇌수종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지능지수는 놀랍게도 발병 이전과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두뇌는 지능이 생기는 곳이 아니라. 어디선가 지능을 받아들이는 기능만 하는 걸까?
두뇌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아인슈타인의 지능이 그의 두뇌에 들어 있을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 두뇌를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가 든 유리병에 넣어 보관해뒀다. 결국 나중에는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를 한다며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가졌다. 그럼 그의 지능도 여러 조각들로 나눠졌을까? 그의 지능은 그 중 어느 조각에 들어 있을까?
■ 창밖을 바라보면 왜 성적이 오를까?
이처럼 지능이 두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한 초등학교 이야기다. 그 학교는 창문이 거의 없는 낡은 건물이었다.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만큼 어두컴컴했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인다며 수업할 때 커튼까지 쳐놓곤 했다. 학생들의 성적은 전국에서 꼴찌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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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이렇게 한탄했다.
“이 아이들은 머리가 너무 나빠. 아무리 가르쳐도 따라가지 못해.”
얼마 후 창문이 널찍한 새 학교 건물로 이사를 갔다. 밖이 훤히 내다보였다. 학생들은 공부 하다가도 문득문득 무한히 펼쳐진 창공과 확 트인 들판을 바라보며 마음까지 확 트임을 느꼈다.
그러자 놀랍게도 1년 만에 학생들의 평균 성적이 20% 이상 수직 상승했다. 꼴찌였던 학교가 일등으로 올라섰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포오우크스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캐나다 앨버타 교육청도 다섯 개 초등학교에 일제히 널찍한 창문을 달도록 해보았다. 놀랍게도 똑 같은 결과가 나왔다. 성적만 좋아진 게 아니었다. 불과 2년 만에 학생들의 평균 키도 2Cm 넘게 쑥 커졌다. 충치 발생률은 9분의 1로 뚝 떨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북미의 초등학교들이 일제히 창문을 넓히기 시작했다.
고등학생들은 안 그럴까? 미시간 대학의 마쯔오카 교수는 101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해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창밖의 자연을 얼마나 많이 내다보느냐에 따라 성적도 들쭉날쭉 했다.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식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주 내다볼수록, 창문이 크면 클수록 학생들의 성적도 좋고, 대학 진학률도 놓았다.”
왜 창밖의 자연을 내다보면 성적이 오를까? 굳이 창밖이 아니라도 그렇다. 방 안에서 자연을 연상하기만 해도 지능이 오른다. 일본의 심리학자 시바타세이지와 스즈키 나오토는 어떤 사무실에는 화분을 놓아둔 반면 다른 사무실에는 전혀 놓지 않았다. 식물 대신 잡지 걸이를 놓아둔 사무실도 있었다. 그런 다음 직원들에게 다양한 창조적 활동을 해보도록 했다. 실험 결과, 식물을 바라본 직원들의 창조성이 단연 압도적으로 높았다.
택사스 A&M 대학의 윤리치 교수는 식물을 사무실에 놓아두면 아이디어 제안 건수가 15%나 증가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황량한 야외 공간보다는 식물이 가득한 뜰에서 놀게 했을 때 훨씬 더 창조적인 놀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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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창밖을 내다보거나 밖에 나가 자연을 바라보면 왜 머리가 더 잘 돌아가거나 생각이 더 잘 떠오를까?
한 신기한 자연현상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관상어 중에 ‘고아’라는 잉어가 있다. 고이는 작은 어항에 넣어 두면 5Cm 정도밖에 자라지 않지만 연못에 풀어 주면 25Cm까지 자라게 된다고 한다. 또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1m 안팎까지 자란다. 그런데 알고 보면 ‘고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금붕어도 큰 연못에 넣어 두면 40Cm가 넘게 자란다. 네델란드의 한 남성이 길렀던 금붕어는 47.4Cm나 자랐던 것으로 기네스북은 기록하고 있다. 그뿐인가? 큰 곳에 살면 수명도 늘어난다. 영국의 ‘티시’라는 금붕어는 무려 43년간이나 살아 역시 기네스북에 올랐다. 얼마나 넓고 멀리 바라보며 자라느냐에 따라 물고기의 크기가 스무 배나 넘게 차이 나고 수명도 부쩍부쩍 늘어난다.
그럼 지능은 어떨까? 지능도 넓고 멀리 바라보면 부쩍부쩍 늘어날까? 사람도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방 안에 갇혀 지내면 지능이 떨어지고 확 트인 자연을 바라보면 지능이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럼 아예 자연이 아닌 우주를 바라보면 어떨까? 관찰자 효과에 따라 우주만큼 사고의 폭도 넓어지는 걸까?
■ 두뇌를 활짝 열어 놓아라
헤리포터 시리즈로 단숨에 세계적인 거부가 된 영국의 작가 롤링은 기자들이 어디서 영감을 얻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마치 누군가 내 머리에 아이디어를 확 집어넣는 것 같았어요. 그 아이디어가 전개 되는 걸 선명하게 볼 수 있었죠. 나는 보았던 걸 적어 놓은 것뿐이에요.”
미국의 시인인 롱펠로도 자신의 뛰어난 작품이 투지가 아니라 대부분 갑작스런 영감에 의해 탄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밤, 나는 12시가 넘도록 난롯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문득 ‘헤스페러스 호의 발라드’구상이 떠올랐다. 그 구상은 그림으로 생생하게 보였다. 그래서 얼른 써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은 안 오고 다른 생각들이 역시 그림으로 계속 떠올랐다. 그래 그 생각들을 또 추가했다. 전혀 어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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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몇 줄씩 떠오른 게 아니라 작품 전체가 통째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갑작스럽고 돌발적으로 떠오른다. 그 아이디어는 놀라운 힘으로 땅을 가르고 솟아올라 가지와 잎을 내밀며 꽃을 활짝 피운다.”
그것들을 생생하게 보았다는 말이다.
아버지를 따라 연주여행을 다니던 열네 살의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알레그리의 유명한 성가곡 ‘미제레레’를 단 한 번 듣고는 숙소에 돌아가 그대로 옮겨 적었다. 당시 교황은 이 아름다운 악보가 외부에 흘러나가는 걸 엄격히 금지 시키고 있었다. 만일 옮겨 적었다가 들키면 파문하겠다는 포고령까지 내렸다. 1년에 딱 한 주간만 연주하고는 악보를 금고에 넣어 잠가 두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기억만으로 교황청의 금기를 깨버렸다. 물리학자 라즐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 음악가들에게 그건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기발한 영감과 아이디어로 가득한 곳을 알고 있다. 그곳에서 그런 악보들을 끊임없이 본다. 그러니 쉽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UCLA 연구진이 천재들의 두뇌를 촬영해보니 그들은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순간 두뇌 에너지가 뚝 떨어졌다. 반면 보통 사람들은 애써 생각할 때마다 두뇌 에너지가 급증했다. 천재들은 두뇌를 열어놓고 우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지능은 내 머릿속에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요.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두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바라볼 때 저절로 흘러 들어온다. “난 그런 거 안 믿어.” 하고 가능성을 닫아버리면 관찰자 효과에 따라 지능도 닫혀버린다. 지능은 시야를 넓혀 바라보기만 하면 저절로 높아지는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다.
“나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그저 문제를 오래 생각할 다름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 지능에 대한 착각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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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만일 ‘내 지능은 타고난 것,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면 어떻게 될까? 관찰자 효과에 따라 내 지능은 정말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버릴까?
컬럼비아 대학의 드웩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생 400여명에게 간단한 문제들을 풀어보도록 한 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장으로 칭찬해 보았다.
“넌 참 똑똑하구나!” - ‘지능’을 칭찬해 주었다.
“넌 참 열심히 공부했구나!” - ‘노력’을 칭찬해 주었다.
‘지능’을 칭찬 받은 아이들과 ‘노력’을 칭찬 받은 아이들 간에 어떤 차이가 생겼을까? 드웩 교수는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시험해 보았다.
“여기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어떤 문제를 풀어 보겠나?”
어떤 칭찬을 들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노력’을 칭찬 받았던 아이들의 90%는 어려운 문제를 선택했다. 반면, ‘지능’을 칭찬 받았던 아이들은 대부분 쉬운 문제를 골랐다.
칭찬 한 마디가 왜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낼까?
‘지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지능’은 ‘타고 나는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능은 고정돼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어려운 문제를 기피하게 된다. 노력해도 문제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노력’을 칭찬 받은 아이들은 ‘지능은 노력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려운 문제가 두렵지 않다. 설사 지금 안 풀리더라도 노력하면 곧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는 나중에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아무리 IQ가 높은 사람도 ‘나는 IQ 천재’라고 바라보면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지능의 감옥에 갇혀 버린다. 세계에서 가장 IQ가 높은 미국의 사반트 라는 여성을 보자. 그녀는 영국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IQ기록 보유자로 기록된 사람이다. 10세 때 치른 IQ 시험성적이 228이었다. 그때부터 ‘난 IQ 천재’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왔다. 얼핏 생각하면 굉장한 칭찬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은 지능을 두뇌라는 비좁은 감옥에 집어 넣는 말이다. 그러면 ‘IQ 천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그녀는 벌서 중년이 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천재적 재능은 보이지 않는다. 한 잡지의 일요판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이따금 책을 쓰고 강연하는 게 고작이다. IQ 천재들이 대개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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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운명을 맞는다. 어릴 땐 천재로 반짝 유명세를 날리다가 나중엔 지능의 감옥에 갇혀버린다.
이렇게 보면 “난 머리가 나빠.”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안 돼.” “난 IQ 150이야.” “난 하버드 대학을 나온 사람이야.”하는 식의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지능을 무한한 우주를 향해 열어놓지 못하고 비좁은 두뇌에 가둬놓는 말들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완벽한 우주의 지능과 비교하면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너무도 무의미하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야말로 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왓칭 요술 #5, 부정적 생각 꺼버리기
■ 왜 자꾸만 휩싸이는 걸까?
미국 플로리다주의 어느 고등학교 2학년 제이슨 군이 물리 교사를 칼로 찌르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이슨은 전교수석으로 하버드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물리 시험에서 B를 받자 부엌칼을 가방에 숨기고 물리교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점수를 좀 올려주실 수 없나요? 다른 과목은 모두 A인데 물리만 B거든요.
“그렇게는 안 돼. 공정하게 채점한 점수야.”
“그럼 하버드 의대에 진학하려던 제 꿈은 물거품이 돼버려요.”
“그건 네 사정이고 점수를 그렇게 흥정해서 줄 수는 없어. 다른 학생들에게도 불공평하고.”
대화 직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양측의 진술이 엇갈렸다. 분명한 건 잠시 후 제이슨 군이 부엌칼로 교사의 빗장뼈 부위를 찔렀다는 것이다.
아무리 홧김이라지만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인생을 망치기까지 하는 걸까?
분노, 증오, 슬픔, 절망, 공포 등 모든 부정적 감정에 불을 댕기는 아미그달라(편도체)는 생존을 책임진 만큼, 두뇌 한가운데의 변연계 깊숙한 곳에 튼튼히 자리 잡고 있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나 원시시대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생존에 위험이 닥치면 현대인도 원시인도 똑같이 폭발하고,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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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고, 절망한다. 두뇌과학자들이 ‘원시적 두뇌’라고 부르는 이유다.
뇌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가지 상황을 겪게 된다고 한다. 아미그달라는 이 모든 상황을 늘 ‘내 편’과 ‘네 편’, ‘나’와 ‘너’의 두 가지로 분류해 두뇌 전체에 전달한다. 철저하게 나의 생존이라는 시각으로 모든 상황을 분류한다.
■ 아미그달라의 분류법
0 유쾌 : 생존에 위험이 없음.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 주고 높여주면 ‘유쾌’로 분류하고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한다.
0 불쾌 : 위험이 닥치거나 불안하게 느껴짐. 나를 무시하는 행위, 남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분노, 공포 등의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도록 한다. 불쾌로 분류된 사람은 잠재적 적으로 인식돼 기피하게 된다. 첫눈에 불쾌한 인상을 준 사람이 이유 없이 점점 싫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0 중립 : 유쾌도 불쾌도 아닌 상황으로 별 의미가 없다면 분류하지 않는다.
뉴욕 대학의 르두 박사는 쥐들에게 아미그달라를 마비시키고 고양이와 함께 두었다. 쥐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남가주 대학의 뇌신경과학자인 다마시오 박사는 아미그달라에 칼슘이 쌓여 기능을 못하는 환자에게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그런 비디오를 보면 보통 사람들은 바짝 몸을 움츠리며 함께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그 환자는 전혀 딴판이었다.
“왜 저러는 거죠?”
환자는 공포에 질린 여성의 표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시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던져도 화내는 일도 없었다. 아미그달라가 마비된 사람은 마치 불쾌한 감정의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 내 정신 연령은 5세 유아
이성과 첫눈이 마주치는 바로 그 순간 사실상 ‘저 여자는 마음에 안 들어’ 혹은 ‘휴, 오늘 데이트는 꽝이야’라고 판결을 내려버린 적 없는가? 낯선 남자를 만난 바로 그 순간 ‘이 남자는 왠지 가까이 하기 싫어’ 혹은 ‘이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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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괜찮아 보이는군’ 과 같은 식으로 심판해 버린 적이 없는가? 아미그달라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대번에 친구인지 적인지부터 가려내려 든다. 이렇게
첫눈에 호불호가 정해져 버리면 그대로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다.
신입생들이 대학 4년간 친하게 지낼 친구를 선택하는 것도 학생들이 처음 대하는 교수들의 실력을 분간해 내는 것도, 직장 친구를 정하는 것도 불과 몇 초 만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토도로프 교수는 사람들에게 2000년, 2002년, 2004년 의회 선거 출마자들의 흑백 사진들을 1초씩 보여주었다. 낯익은 출마자들의 사진은 제외했다.
“얼굴 사진만 보고 당선됐는지 낙선 됐는지 알아 맞춰보세요.”
출마자들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전적으로 얼굴만 살짝 보고 당락 여부를 맞춰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예측은 얼마나 들어맞았을까? 놀랍게도 적중률이 무려 70%에 달했다. 그들은 뭘 보고 당락을 점쳤을까?
“능력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거든요.”
“경험도 많고 성숙한 인상을 풍겨요.”
아미그달라가 첫인상만으로 단숨에 내 편을 골라냈던 것이다.
철저하게 네 편과 내 편으로만 생각하려 드는 아미그달라의 정신연령은 그다지 높지 않다. 겨우 5세 유아 수준이다.
우리 두뇌는 5세 이전에는 아미그달라를 통해 분노, 증오, 절망 등 원시적 감정을 배우고 5세 부터는 대뇌피질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개념적인 걸언어로 배운다. 우리가 5세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5세 이전의 일들을 기억 못하는 현상을 ‘유아기 기억상실’이라고 불렀다. 두뇌과학자들은 기억력이 원시적 감정에서 개념적으로 바뀌는 5세를 ‘기억 전환 나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원시적 감정은 5세를 넘으면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5세 유아나 어른이나 원시적 감정은 똑같다. 제아무리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라도 분노나 절망, 증오 등의 감정에서 완전히 해방될 순 없다. 만일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면 그건 아미그달라가 고장 났다는 얘기다.
■ 해제신호를 보내주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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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영자야 네 남편 오늘 늘씬한 여자와 호텔서 나오더라.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어. 여자가 스스럼없이 팔장까지 끼던걸.”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 남편이 정말 맞느냐고 물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네 남편 오늘 빨간 넥타이 매고 나갔지? 양복은 짙은 감색이고?” 틀림없는 남편이었다.
“뻔뻔스러운 이중인격자! 더러운 철면피!”
그녀는 길가에 “퇘!”하고 냅다 침을 뱉었다. 집에 돌아가서도 도저히 남편과 가까이할 수 없었다. 잠도 따로 잤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아 하얗게 샜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도 도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그동안 속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오장이 뒤틀렸다. 그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언니, 형부가 어제 저녁 사줬어. 취직 축하한다고, 멋진 호텔에서.”
“멋진 호텔?”
알고 보니 동창이 목격한 바로 그 호텔이었다. 동창은 그녀의 동생을 바람피우는 늘씬한 여자로 오해했던 것이다. 오해가 풀어지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 어린아이가 켜 놓았던 빨간불도 즉각 꺼졌다.
머릿속 5세 유아는 이처럼 생존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빨간불을 켠다. 빨간불이 켜지면 머릿속에서는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생존을 위해 상상 가능한 온갖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병이 된다. 하지만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쉽게 꺼진다. 그러나 위험 해제 신호가 이처럼 명백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5세 유아를 달래줘야 한다. 달래주는 최선의 방법은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5세 유아의 빨간 불은 꺼진다.
■ 5세 유아의 ‘off’ 스위치
UCLA의 심리학자 리버만은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사람들에게 “이건 분노야”. “이건 스트레스야” 등의 식으로 딱지를 붙여 제3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랬더니 아미그달라는 거의 즉시 진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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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을 남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아미그달라는 식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바라보는 단순한 행위가 머릿속 어린 아이의 불쾌신호를 꺼주는 ‘off'’ 스위치라는 것입니다.”
■ 부정적 감정의 자연 수명은 90초
하버드 대학의 테일러 박사 역시 조용히 주시하는 것만으로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90초 내에 식어버린다고 말한다.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의 자연적 수명은 90초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순간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가는데, 90초가 지나면 저절로 완전히 사라진다.”
그래서 화는 뿌리 없는 나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같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꺼지게 돼 있다. 그런데도 분노가 90초 이상 지속하게 되는 건 우리 스스로 화에 기름을 붓기 때문이다.
■ 억누르면 병이 된다
중2때 상위권에 들던 현수는 웬일인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해 고1 때 급기야 전교 255명 중 200등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초조해진 엄마는 갈수록 발악에 가까운 잔소리를 해댔다. “그 모양으로 공부해서 대학에나 들어가겠니?”, “친구 아들은 또 전교 1등 했다더라.”, “다른 엄마들 만나기가 창피하다.” 등등 대부분 엄마들이 보통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그런 식으로 표출시킨다. 하지만 부정적 잔소리는 부정적인 감정만 부추긴다. 다행히 현수는 밖으로 나돌아다니지는 않았다.
나는 물론 정신과 의사는 아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나는 충격을 주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현수 성적이 떨어지는 건 어머님 때문이네요.”
그녀는 뒤통수에 한 방을 된 탕 맞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쉴 틈 없이 싫은 소리를 퍼부어대면 현수의 머릿속은 오로지 싫은 소리로 가득 찰 수밖에 없지요. 생각해보세요.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머리가 뭘 받아들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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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립보건원의 정신과 의사인 헤이즈 등 심리학자들은 100여 건이 넘는 연구보고서들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부정적 생각을 억누르려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 어떡하죠?”
“싫다는 생각부터 몽땅 털어내도록 해야죠. 그래야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설 틈이 생길 거 아닙니까?”
그녀도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몇 주 후 전화가 걸려왔다. 흥분한 목소리였다.
“선생님 작전이 주효했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전 그 후로 현수한테 공부하란 잔소리 절대 안 해요. 오히려 거꾸로 하죠. 좀 쉬면서 하라고.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현수가 완전 딴판이 됐어요!”
그날 이후로 현수는 표정이 점점 밝아져 갔다. 콕콕 찌르는 말 대신 온정어린 말이 들어가니 핏기 없던 얼굴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공부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좋아했다. 머릿속에 잔뜩 구겨 넣었던 ‘공부는 싫다’라는 생각 덩어리들을 끄집어내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니 저절로 사라졌던 것이다.
■ 응어리진 슬픔 울음으로 풀어 진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 중 하나가 맏딸을 지방대학에 입학시킨 뒤 갑자기 우울증에 걸렸다. 기운이 뚝 떨어지고 매사에 의욕을 잃었다. 새벽 늦게까지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곤 했다. 통통하던 얼굴도 쑥 빠져 홀쭉해 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녀였다.
“딸이 떨어져 나가 서운하긴 하지만, 내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그녀가 맥없이 말했다.
그녀는 돌연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이미 4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참 좋은 분이셨지. 내가 열두 살 때였어.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경주를 지켜보고 계셨어. 난 반드시 1등을 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
그녀가 힘을 다해서 달리던 중 어머니 쪽에서 돌연 소란이 이는 게 느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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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경주를 끝내고 가보니 어머니가 쓰러져 있었고,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접근하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막았다. 이 대목을 말하면서 그녀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때 난 들었어. 어머니가 사라져가는 목소리로 ‘누가 어서 신부님 좀 불러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을,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거든. 그게 내가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리였어.”
어머니는 급성 심장마비로 앰뷸런스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운동장에서 숨지고 말았다.
“내겐 한이 남아 있어. 어머니를 그렇게 비명에 잃고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도 없으니까. 아버지가 워낙 엄하셨거든, 너희 어머니는 너희가 우는 걸 원치 않아. 강인하게 살아야지‘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어. 그래서 우리는 장례식장에서조차 실컷 울어보지 못했어.”
그녀가 솟아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말했다.
“울음을 참지 마세요. 지금 맘껏 울어보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돌연 ‘헉’하는 소리와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참았던 울음이었을까?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봇물이 터진 듯 걷잡을 수 없었다. 어찌나 슬프게 우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그녀가 마침내 울음을 멈췄다.
“슬픔도 분노처럼 꽉 억눌러놓고 있으면 병이 된대요. 수십 년 전 장례식장에서 못 울었던 울음이 단 한 번으로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네요. 실컷 울어보세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울고, 어머니 묘지에 가서도 실컷 울어보세요.”
그러고 나서 2주가 흘렀다. 그녀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옛날처럼 생기에 넘쳤고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날 집에 돌아간 뒤 온종일 정말 목청이 터지도록 울었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남편과 딸아이들에게도 다 털어 놓고 그날 밤엔 울면서 잠들었지.”
이튿날 그녀는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우울증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왓칭 요술 # 6,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 설득원리
머릿속의 5세 유아 아미그달라는 걸핏하면 ‘불쾌’ 신호를 켜댄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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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머릿속에 ‘불쾌’ 신호가 켜져 있으면 내가 아무리 그럴싸한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를 설득할 땐 ‘불쾌’ 신호를 꺼주는 게 최우선이다. 꺼주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불쾌한 감정을 바라보는 것, 즉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인정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설득의 핵심원리다. 이를 이용하면 구제불능의 위기 상황도 단숨에 값진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 C 학점을 A 학점으로 올려놓기
한 여학생이 내 반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선생님, 입사시험에서 또 떨어졌어요. 벌써 일곱 번째예요.”
그녀만 떨어진 게 아니었다. 대부분 학생들이 벌써 몇 차례씩 고배를 마셨다. 그해 웬만한 대기업들의 취업 경쟁률은 1,000대 1이 넘는 곳이 많았다.
여학생이 주저주저 물었다.
“선생님, 2학년 때 제 점수가 엉망이에요. 대부분 C 아니면 B거든요, 면접관이 제 성적이 왜 그리 나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죠?”
학생들에게 어떻게 그런 위기를 벗어나겠느냐고 되물었더니 대게 이런 식의 답변이었다.
“아버님 병구완 때문에....”
“학비를 벌려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느라고....” 등
이런 핑계에 면접관이 넘어갈까? 면접관이 성적을 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면접관의 5세 유아는 ‘성적이 저렇게 나쁘다니? 불성실한 학생 아니야?’하는 의구심으로 빨간불을 켜놓고 있다. 이 빨간불을 꺼놓지 않고 구구하게 설명해봐야 면접관의 귀에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제 점수가 나빠서 우려되시죠? 사실 저도 그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먼저 아미그달라를 달래줘야 한다. 이 간단한 한 마디로 빨간불이 꺼진다. 그런 다음 성적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언급하라.
“솔직히 분명한 인생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대학 공부도 피상적으로 보였죠. 그래서 대신 많은 책을 읽으며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 인생 목표가 뚜렷해졌고 더욱 강한 내가 될 수 있었어요. 학교 점수는 나빴지만 내면은 가득 차올랐죠. 그 방황기가 없었다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말을 듣고 누군들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치명적인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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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강점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이 학생은 정말 그 방법으로 다행히 다음 면접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머릿속의 5세 유아는 이처럼 단순하다.
출장을 보냈던 두 직원이 아주 흡사한 사고를 일으켰다. 첫째 직원은 돌아와 이렇게 인사를 한다.
“사장님 걱정 많으셨죠? 다행히 잘 해결됐습니다.”
둘째 직원은 첫 마디만 약간 다르다.
“사장님 걱정 마세요. 다행히 잘 해결됐습니다.”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당신의 무의식 속에는 두 직원에 대한 평가가 판이하게 갈린다. 첫째 직원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하게 된다. 왜 그럴까?
직원이 사고를 내면 당신의 아미그달라는 ‘불쾌’ 신호가 켜진다. “걱정 많으셨죠?” 라는 한마디는 그 불쾌한 감정을 바라보고 인정해주는 말이다. 불쾌감이 싹 지워지고 상대에 대한 호감이 솟아오른다. 반면 “걱정 마세요”라는 말은 불쾌감의 존재를 부정한다. 아미그달라의 ‘불쾌’ 신호가 여전히 켜져 있다.
■ 못난 외모를 장점으로 바꿔 놓는 한 마디
나도 언젠가 입사시험 면접관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외모가 많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을 게 뻔했다. 면접관의 아미그달라는 ‘저런 얼굴로 감히……’라는 ‘불쾌’ 신호를 켜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 첫인상을 보시고 실망하셨죠? 저런 얼굴로 어떻게 감히 방송국에 지원하나 하고요. 첫인상은 타고난거라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끝 인상만큼은 책임질 수 있습니다.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 뒷바라지가 필요한 일, 끝 인상을 책임질만한 일은 무조건 자신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녀는 그 몇 마디로 면접관들의 ‘불쾌’ 신호를 일거에 꺼버렸다. 그런 다음 자신의 외적인 약점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내적인 장점을 언급했다. 이것이 약점을 장점으로 뒤바꿔놓는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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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당당히 합격했고 지금도 그 부서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약점은 숨기려 들면 오히려 더 커 보인다. 반면 스스로 드러내면 솔직해 보일 뿐 아니라 강점으로 둔갑할 수 있다.
같은 물건을 경쟁사보다 30%나 비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1. “사실 이 신제품은 기존제품보다 30%나 비쌉니다. 하지만 훨씬 빠르고 공간도 덜 차지하죠.”
2. “사실 이 신제품은 기존제품보다 30%나 더 비쌉니다. 하지만 내구성과 전기사용량을 따지면 비싼 비용을 뽑고도 남죠.”
정답은 당연히 2번이다. 비용에 대한 단점을 언급했으면 역시 비용에 관한 장점을 언급해야만 객의 아미그달라에 켜진 불쾌 신호를 해제시킬 수 있다. 개인적인 실수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어물어물 덮어버리려들면 실수가 더 커져 보인다. 그보다는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면 실수가 오히려 재산이 된다.
■ 무경력을 최고 경력으로 둔갑시키기
30대 초반 주부.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10세, 12세 아이 둘을 둔 주부가 뒤늦게 취직하고자 하는데 최대 약점은 실무경력이 없다. 면접관은 그녀의 약점을 이렇게 말한다.
“이력서를 보니 일해 본 경력이 전혀 없으시네요?”
열쇄는 면접관의 머릿속에 든 아미그달라를 바라보고 달래주는 것이다.
“제가 직장생활 경험이 없어 우려하시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직장경험이 없는 게 사실이죠.”
이 단순한 한 마디로 면접관의 아미그달라에 켜졌던 빨간불은 꺼진다. 당신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그러려면 직장경험보다 한 차원 높은 경험을 언급하라.
“아기 둘을 키우면서 틈틈이 공부해 방송통신대학도 졸업하고 취업준비도 해왔어요 직장경험은 없지만, 아이 둘을 키우고 살림을 책임지면서 끈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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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사랑, 인내 등 더욱 값진 인간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직장 경험보다는 인간적 경험이 한 차원 높게 들린다. 논리가 아니라 가슴에 호소하는 것이다. 또한 정직하고 성실하며 신뢰감을 주는 답변이기도 하다.
■ 불명예 퇴직을 장점으로 돌려놓기
상사와의 말다툼 끝에 직장을 때려치운 한 선배가 있었다. 그는 젊은 혈기에 바른말을 하고 뛰쳐나갔지만, 막상 새 직장을 잡으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면접시험을 볼 때마다 그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 좋은 직장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왜 그만둔 거죠? 잘린 건가요?”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이 질문에 당신이 그 선배였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약점을 통해 과거의 ‘철없던 나’가 현재의 ‘더 나은 나’로 변신했음을 납득시키는 일이다.
“사실 저는 당시 경험도 없고 독선적이고 남의 의견을 경청할 줄도 몰랐습니다. 설사 상사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해도 상사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함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과거의 뼈아픈 실수는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모나지 않고 남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더 나은 지금의 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직장에서 잘렸던 게 안 잘렸던 것보다 오히려 장점으로 비친다. 상대의 머릿속에 든 5세 어린아이는 마치 전기 스위치 같다. 불쾌하면 켜지고 바라보면 꺼지니 말이다.
■ 상대가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한 마디
벵케 교수가 실시한 실험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그는 A그룹의 대학생들에게 BMW 자동차 회사의 이런 광고를 보여주었다.
“BMW와 벤츠 중 어느 자동차를 타시겠습니까? BMW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열 가지를 대보시겠습니까?”
B그룹의 대학생들에게도 비슷한 문구의 광고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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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와 벤츠 중 어느 차를 타시겠습니까? BMW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딱 한 가지만 대보시겠습니까?”
어느 그룹이 BMW를 더 많이 타겠다고 대답했을까? B그룹에서 BMW를 타겠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왜 그랬을까?
광고 문구는 비슷하지만 풍기는 이미지가 다르다. “좋아하는 이유 열 가지를 대보라”고 하면 골치 아프다는 이미지가 형성된다. 아미그달라에 불쾌 신호가 들어온다. 반면 “딱 한 가지만 대보라”고 하면 정말 좋아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미그달라에 유쾌 신호가 켜진다. 사람들은 이처럼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좋아한다.
발음도 그렇다. 사람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나 이름보다 발음하기 쉬운 단어나 이름을 더 좋아한다. 똑같은 편지라도 필체가 나쁠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쁜 필체에 대한 거부감을 편지 내용이 어려운 탓이라고 착각한다. 또한 똑같은 말이라도 운율에 맞는 말이 내용도 맞는 것처럼 들린다. 아미그달라는 지극히 단순한 잣대로 ‘유쾌’와 ‘불쾌’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내 요청을 꼼짝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법
집에 있는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 내 힘으로는 고칠 수 없다. 그래서 기술자인 이웃집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어떤 말로 도움을 청해야 할까?
부탁1 : “저희 집 수도꼭지가 고장 났는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웃집 아저씨는 아마도“그것 고치려면 시간 좀 걸릴 텐데요. 수선공을 불러보시지 그러세요?” 하고 말할 공산이 크다. 도와달라는 말은 곧 와서 해달라는 강요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의 아미그달라에 ‘불쾌’신호가 켜진다.
부탁2 : “저희 집 수도꼭지가 고장 났는데 저희 식구들 힘으로는 도저히 못 고쳐요. 혹시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아세요.”
이 말을 들으면 이웃집 아저씨는 내심 우쭐해질 것이다. 그의 아미그달라에 ‘유쾌’ 신호가 켜진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이 띄워주기 때문이다. ‘내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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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지 않으면 꼼짝 못할 사람들이군. 불가피한 상황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했을 때 남성승객들은 겨우 20%밖에 구조되지 않았지만 여성들은 70%나 구조됐다고 한다. 또한 3등실 승객들보다 1등실 승객들이 구조된 경우가 2.5배나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3등실 여성이 구조된 비율이 1등실 남성이 구조된 비율보다 31% 더 높았다. 건장한 남성들보다 나약한 여성들이 도움의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할 거라는 인식이 낳은 차이였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책임규범’이라고 일컫는다.
왓칭 요술 # 7, 상보성 원리로 인생이 갈린다
■ 인생을 가르는 건 단순한 시각 차이
20여년 전 앞집과 뒷집에 두 아기 엄마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앞집 사는 엄마의 말투는 늘 긍정적이었다.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말했다. 반면 뒷집 엄마는 늘 부정적이었다. ‘할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춰 말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 놀러가고 싶다고 했다. 뒷집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 “엄마 놀이터에 놀러가도 돼?”
엄마 : “안 돼. 아직 숙제도 안 했잖아.”
똑 같은 내용의 말을 앞집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 “놀이터에 놀러가도 돼?”
엄마 : “그럼 숙제 하고 가면 되지.”
이번에는 아이들이 친구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했다.
뒷집 엄마는
아이 : “엄마, 나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돼?”
엄마 : “안 돼. 5분쯤 있다가 점심 먹어야 해.”
앞집 엄마는
아이 : “엄마, 나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돼?”
엄마 : “그럼, 물론이지. 5분 뒤 점심 먹고 실컷 놀아라.”
20여 년이 지난 후 두 집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기막힌 우연의 일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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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두 청년 모두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됐고 각기 병원도 개업했다.
그런데 뒷집 청년이 말기 암환자와 주고 받는 대화는 부정적이었다.
환자 : “저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의사 : “잘해야 6개월밖에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이번에는 앞집 청년이 말기 암환자와 주고 받는 대화는 영 달랐다.
환자 : “저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의사 : “잘하면 6개월간 가족과 행복한 순간들을 즐길 수 있으실 겁니다.”
얼마 후 뒷집 청년이 운영하던 병원은 문을 닫았다. 환자들이 모두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앞집 청년의 병원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 긍정을 바라보면 부정은 보이지 않는다
실패는 더 배우라는 우주의 신호다. 모든 실패에는 어김없이 교훈이 들어 있다. 교훈을 잘 배우면 실패 수업은 곧 끝나지만, 교훈을 못 배우면 실패 수업은 자꾸만 되풀이된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루보미르스키는 고등학고 졸업반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을 지원했다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는 “제 인생은 너무나 행복해요” 라거나. 정반대로 “제 인생은 너무나 불행해요‘ 라고 시각이 분명한 학생들만 골라 조사해 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미국 최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과 일종의 안전판으로 무명의 한 지방 대학에 동시에 지원서를 냈다고 치자. 결과를 보니 프린스턴 대학에는 떨어지고 지방 대학에는 붙었다. 이럴 경우 평소 불행하다는 학생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난 역시 프린스턴 대학 수준은 안 돼. 수준 낮은 무명 대학에나 가는 수밖에 없어.”
쉽게 말해 불행한 학생들은 가장 어두운 면에만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실력과 자신이 다니게 될 학교를 전보다 오히려 더 낮게 평가했다.
그럼 평소 행복 하다는 학생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프린스턴 대학에 못 들어가면 어때? 지방 대학도 알고 보니 재미난 점이 너무 많은 걸. 집에서 다니기도 가깝고 오히려 잘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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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불행한 학생들과는 정반대로 가장 밝은 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교수는 행복과 불행은 이처럼 환경이나 운, 혹은 머리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조해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밝은 면에만 초점을 맞춰 놓았던 사람들이다. 잘 알려진 대로 링컨은 40대 후반까지 무려 여덟 번이나 선거에 낙선했고. 사업이나 해볼까 시도했지만 두 번 모두 실패했다. 발명왕 에디슨은 평생 1,093가지나 되는 발명품을 만들어 냈지만, 그걸 위해 수십만 차례나 실패했다. 특히 축전지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려 5만 번의 실패를 극복해야 했다. 농구 환제 마이클 조던은 자서전에서 고등학교 농구팀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하자 집에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종일 울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저는 선수 생활 중 9,000번이나 넘는 슛에 실패했고. 300차례의 경기에서 졌습니다. 제 손에 동점골을 깨라는 기회가 주어진 게 26차례나 됐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평생 수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슛을 잘 날릴 수 있게 됐습니다.
톨스토이가 죽은 뒤 그의 방을 정리하던 사람들이 방 안에 빼곡하게 쌓여 있는 실패작들을 보고 놀랐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셰익스피어도 평생 154편의 시를 썼는데 성공한 몇 편을 빼고는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또 다윈은 ‘진화론’ 말고 평생 119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프로이트는 650편이나 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음악 신동의 대명사인 모차르트도 평생 무려 600편이나 되는 곡들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작품성이 형편없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이렇게 심혈을 쏟아 만들어낸 작품들의 99% 이상이 졸작으로 사장되고, 겨우 나머지 1% 정도만 인정받아 위대한 인물로 기억되는 것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둠 속에 숨겨진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춰놓고 몰입했다. 그러다 보면 맑은 면이 점점 커져서 어두운 면을 완전히 덮어버리게 된다.
■ 장점만 바라보면 장점이 점점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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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직원들을 뽑을 때 학력을 보지 않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 가지만 본다고 한다. 그건 바로 창의력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된 직원들에게는 최고의 근무 환경을 만들어 주고, 능력보상제도인 스톡옵션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입사한 사람들 중 2천 명 이상이 2년 만에 백만장자가 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주당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근무 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학력과 창의력과는 큰 관련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평범한 대학에서 오히려 더 많이 배출된다. 2007년 이후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25명의 학력을 보면,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MIT 등 알려진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여덟 명뿐이다. 나머지는 안티오크 칼리지, 워싱턴, 드포우, 캔터키 유니온, 홀리크로스, 헌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출신들이 많다. 노벨화학상은 어떨까? 역시 명문대 출신은 예닐곱 명 정도다. 나머지는 네브래스카, 베레아, 아우스버그, 호프 등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15명 중 열 명이 홋카이도 등 지방대 출신이다.
창의성은 암기식 학교성적이 좌우하는 게 아니다. 가능성 역시 학벌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10년 후, 20년 후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잘하는 단 한 가지 강점에 미친 듯이 파고드는 사람이 10년 후, 20년 후에 그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건 분명하다.
■ 진실에 초점을 맞추면 독설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상보성의 원리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한밤중에 이웃집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 잠을 설친 적이 있죠? 아니면 도서관에서 누가 눈치 없이 계속 떠들어대 몹시 짜증났던 일?”
모두들 “네” 하고 대답했다.
“그건 우리가 습관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여서 그래요. 개 짖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 배후에 깔려 있는 침묵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개 짖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는 저절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남이 내게 독설을 쏟아 부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설에만 귀를 기울이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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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히 견디기 힘들고 나도 모르게 흥분해 같이 진흙탕에 뛰어들게 된다. 하지만 독설 대신 독설 속에 숨겨진 진실을 캐내겠다고 마음먹으면 독설은 시냇물처럼 그냥 흘러가 버려 들리지 않게 된다.
“상사가 화를 낼 때 절대로 방어하려 들지 마세요. 화낼 때 방어하는 건 휩쓸려 드는 겁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있나요?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화내는 그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완전히 잊고 그에게 초점을 맞춰보세요. 그가 왜 화내는지 꼬치꼬치 묻고 또 물어서 진실의 알갱이가 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겁니다. 철저히 그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철저하게 묻고 듣기만 하는 겁니다. 그의 말 속에 과연 내가 건질만한 진실의 알갱이가 들어 있는지 열심히 들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진실을 캐내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자연히 나를 잊게 된다. 나를 잊으면 화에 휘말려 들지 않는다.
싸움이 그렇다. 싸움이 끝나고 나면 화를 터뜨렸던 쪽이 되레 자괴감과 패배감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싸움이나 비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비난은 아주 쉽게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나 자신이 아무 존재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 된다.”
■ 남 탓은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파묻혀 딸아이 우유 살 돈은커녕 버스 토큰 살 돈조차 없었던 한 여인이 옆집 아줌마에게 토큰 세 개를 빌려 찾아간 곳이 바로 화장품회사였다.
영업사원 교육시간에 사장은 정신교육부터 시켰다.
“내 생각이 머무는 곳에 내 인생이 있고 현재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내 탓입니다. 남을 탓하는 습관부터 버리세요!”
이 말이 어찌나 정곡을 찔렀던지 교육도중 그녀는 화장실에 달려가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자나 깨나 남만 탓하던 시각이 자신을 탓하는 시각으로 돌아섰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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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니 숨어 있던 능력이 튀어 나왔다. 마침내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됐던 것이다.
첫 보름 동안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지만 그녀는 남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때로는 음식점 종업원들을 상대로, 때로는 밤을 새가며 세일즈 연습을 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그녀는 세일즈 여왕이 됐고 입사 12년 만에 부회장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우리나라 화장품 업계의 신화로 통하는 박형미 씨가 29살에 겪었던 일이다. 내가 그녀를 만났던 건 2000년대 중반, 그녀가 연봉12억 원의 화진화장품 부회장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겨우 두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 년 후 그녀는 파코메리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해 단숨에 월매출 150억원이 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20년 전, 인생의 벼랑 끝에서 떨고 있던 그녀였다. 다른 비결은 없다. 단지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돌린 것뿐이다.
한 여류 작가의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작가가 되기 전 그녀는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 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면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 오두막집에 달랑 혼자 남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모래바람이 불어닥쳐 입안에서 모래알이 씹히고, 음식은 금방 쉬어 버렸다. 뱀과 도마뱀이 기어 다녔다. 몇 달 만에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마침내 고향 부모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나아요. 정말 지옥이에요.”
그러나 아버지의 답장에는 다음과 같은 두 줄만 적혀 있었다.
“감옥 문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두 죄수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는 흙탕길을 본다.”
이 두 줄의 글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녀는 기피했던 인디언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로부터 공예품 만드는 기술과 멍석 짜기를 배웠다. 사막의 식물들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선인장, 유카식물, 여호수아나무 등, 살펴보니 그것들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빨갛게 저무는 사막의 저녁노을에도 신비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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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펴냈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소설거로 변신한 것이었다.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내 생각만 변했다. 생각을 돌리면 비참한 경험이 가장 흥미로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막은 지옥이 아니라 온갖 경이로움과 평화가 가득한 천국이었다. 지옥은 스스로 세운 것이었다. 미국의 델마 톰슨의 이야기다.
제3부 나 이상의 나 바라보기
■ 관찰자는 누구인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관찰자는 대체 누구인가?”
“넓게 바라볼수록 왜 지능도 점점 높아질까?”
“지능이 우주에서 무한하게 흘러나온다면 우주에 있는 ‘완벽한 지능’의 소유자는 대체 누구인가?”
짐작대로다. 관찰자는 바로 영혼이다. 하지만 당신은 영혼의 정체를 알고 있는가? 학기가 끝나갈 때쯤. 학생들에게 “영혼은 어디에 들어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당연히 머릿속에 들어 있겠죠.”라는 식의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영적 깨달음을 얻은 극소수를 빼 놓고는 모두가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수천 년간 그랬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전한 양자물리학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마침내 이런 착각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영혼은 두뇌 밖에 있다. 관찰자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넓게 바라볼수록 지능이 높아지는 것도, 지능이 우주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모두 완벽한 지능을 지닌 영혼이 두뇌 밖의 우주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는군!”
육신 속에 갇혀 살아온 당신은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혼은 두뇌 밖의 우주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순간 당신은 비좁은 육신의 한계에서 벗어나 더욱 폭넓은 변화를 겪게 된다. 그 한계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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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좁은 나로부터의 탈출
한 청년이 깊은 계곡에서 등반을 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계곡 수십 미터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때 바위 덩어리가 굴러 내려와 오른 손에 떨어진 것이다. 피범벅이 된 손을 빼내려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바위에 짓눌린 손을 빼낼 재간이 없었다. 외질 대로 외진 계곡 아래에 어떤 도움의 손길이 닿을 리도 만무했다.
‘꼼짝없이 이렇게 죽게 됐구나.’
거센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먹을 거라곤 작은 빵조각 두 개와 1리터의 물이 다였다. 그것도 닷새가 지나자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 닷새 동안 그는 손을 빼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작은 휴대용 칼이 다 닳도록 바위를 쪼아보기도 하고, 죽을힘을 다해 바위를 밀어보기도 했다. 손을 빼내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될 판이었다.
그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무뎌진 칼로 벽에다 자신의 생년월일과 죽는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는 가족에게 남길 유언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엔 죽음의 공포에 떨었는데 모든 걸 체념하니 이상하게도 평화가 찾아왔어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으니 육신에 대한 모든 집착이 떨어져 나갔다. 자신을 텅 비우자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마치 남을 바라보듯 조용히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은 누구인가?
“제 육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그게 바로 제 영혼이었어요.”
한 쪽 팔이 사라진다고 해서 영혼도 줄어드는가? 영혼, 즉 ‘진정한 나’는 육신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팔은 나’라고 바라보니, 팔이 바위에 깔려 꼼짝 못하자 ‘나’도 꼼짝 못했다. 그러나 이제 팔은 영혼을 담는 그릇의 한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자유로이 살아갈 기쁨에 비하면 팔 하나쯤 없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 낳아 행복하게 사는 제 미래의 모습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세 살배기 아들을 한 팔로 껴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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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도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졌지요.”
그는 일단 등반 로프로 바위에 짓눌린 팔을 단단히 묶어 지혈시켰다. 그리고는 무뎌질 대로 무뎌진 칼로 지혈된 부위 아래를 자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는 바위를 벗어나 몇 시간 동안 걸어가다가 구조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걸 보았다.. 미국에 사는 롤스턴 씨의 실화다.
그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육신 속에 든 게 바로 나’라는 착각 속에 일생을 살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사고를 계기로 ‘나는 육신 이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인생이 놀랍도록 행복해졌고, 사고의 폭도 경이롭도록 넓어졌다.
■ 몸 밖의 나는 누구인가?
뇌세포를 최대한 확대해보자. 초고성능 전자현미경은 상을 수백만 배까지 확대할 수 있다. 뇌세포의 섬유질을 확대해 살펴보면 분자가 보인다. 분자를 확대해 보면 허공뿐이다.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도 그렇다. 원자의 지름이 10미터가 되도록 1만 배 크기로 확대해보면 폭 1밀리미터에 불과한 핵이 한 가운데에 보인다. 원자를 미식축구장만 하게 더 부풀려 놓으면 나머지는 온통 비어있고 0.001%도 안 되는 쌀알만한 핵이 보인다.
그나마 핵도 더 확대해 보면 텅 빈 공간이 나온다. 핵을 둘러싼 원자, 궤도에서 돌고 있는 전자들도 확대할 수 없을 때까지 확대해보면 역시 빈 공간이다. 전자고 원자고 모두가 파동일 뿐이다. 모든 세포가 마찬가지다. 쪼개보면 빈 공간이다. 두뇌고 몸뚱이고 텅텅 비어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일찌감치 “우리는 시각적 착각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양자물리학자인 틸러 박사는 “인간의 99.9999%는 빈 공간”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양자물리학자인 울프 박사도 “영혼의 0.0001%만 육신 속에 들어 있고 나머지 99.9999%는 육신 밖의 우주에 퍼져 있다” 고 말한다. 쉽게 말해 우주가 곧 영혼이며, 육신 속에는 육신의 부피에 해당하는 만큼의 영혼만 들어 있다는 뜻이다. 믿기지 않는가?
영혼은 육신이 죽어도 끄떡없이 살아 있는 미립자인 게 틀림 없다. 이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꽁꽁 얼어 죽는 절대영도 섭씨 영하273.15도에서도,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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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진공 생태에서도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이다. 미립자로 만들어진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 쉬운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보라. 수십억, 수백억 개가 넘는 무수한 별빛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별빛이 내 눈에 도달하는 데는 수백만 년씩 걸리기도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먼 거리를 수백만 년간 날아오면서 소멸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얘기다. 그 빛은 나를 통과한 뒤에도 수백만 년. 수억 년간 소멸되지 않고 반짝거리며 우주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빛은 무엇인가? 빛을 구성하는 미립자(광자)나 영혼을 구성하는 미립자나 다 같은 미립자다. 미립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죽지 않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 훨씬 전인 반세기 전 이미 이런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언젠가 한 랍비가 16살 동생의 죽음에 파묻혀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열아홉 살의 딸을 도대체 어떻게 달래야 하느냐고 묻는 편지를 그에게 보냈다. 그때 아인슈타인의 답신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인간은 우주라 불리는 천체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자신을 우주와 분리된 개체로 보며 살아가지만 그건 시각적 착각일 뿐이지요. 이런 착각이 인간을 고통의 바다에 빠트립니다. 이 비좁은 감옥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를 연민의 감정으로 껴안고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완전한 경지에 이를 사람은 없겠지만, 비좁은 감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자체만으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육신이 죽어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미립자 에너지 형태로 영원히 존재함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의 눈엔 육신이 스쳐가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토록 슬퍼할 이유가 있느냐고 완곡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 영혼은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
미립자 차원의 우주를 양자물리학자들은 영점공간이라 부른다. 미립자들은 절대 영도에서도 살아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절대영도에서도 진동에너지가 가득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독일어로 영점에너지라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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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립자들은 모든 정보, 지혜, 사랑, 에너지를 다 갖고 있다. 모르는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래서 물리학자인 라즐로 박사는 미립자들이 가득한 영점공간을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라고 정의한다. 무한한 정보창고, 영혼의 공간, 신의 마음, 신의 공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요 종교들이 말하는 영원, 구원, 해탈 등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바로 여기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양자물리학자의 아버지격인 막스 플랑크는 “영점공간은 적어도 형체를 지닌 모든 것에 대한 설계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내 키는 얼마나 클 것인지. 얼굴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등이 이미 그려져 있다는 얘기다. 또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일하다 몇 세에 죽을 것인지도 몽땅 담겨 있다.
집단적 정보가 영점공간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은 1920년대 하버드 대학의 맥두걸교수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그는 쥐들이 미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어미 쥐들은 무려 165번의 실패를 거친 뒤에야 헤매지 않고 미로를 완벽히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미 쥐들이 새끼를 낳았고, 새끼들이 자라 어미 쥐만큼 커졌다. 그 새끼 쥐들은 몇 번 만에 미로를 찾아갔을까?
“어, 이럴수가! 120번 만에 찾아가네.”
새끼 쥐들이 성장해 또 새끼를 낳았다. 몇 세대를 지나자 쥐들은 불과 20번의 시행착오만 거친 뒤 미로를 찾아 갔다. 놀라운 사실은 아무도 새로 태어난 새끼 쥐들에게 미로를 찾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새끼 쥐들은 세대를 거치면서 선조들이 터득한 미로 찾기 정보와 지혜가 영점공간에 저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시간 대학 심리학자 니스벳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 유산은 수세대가 지나도 지속됩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유전자가 달라진 것도 아니고, 옛 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아닌데.”
양자물리학자들은 영점공간에 저장된 선조들의 문화적 정보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쥐들이 영점공간에 저장된 집단 정보를 자자손손 물려받듯이 말이다. 내 영혼은 이 모든 걸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른 채 살아가는 건 하늘과 땅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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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효과 때문이다.
“내 영혼은 내 육신 속에 들어 있다”고 바라본다. : 관찰자 효과에 따라 비좁은 내 육신이 내 능력의 한계가 된다.
“내 영혼은 육신 밖의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바라본다. : 관찰자 효과에 따라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다.
우리가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하는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실체를 깨닫기 전까지는 인생의 낙오자였다. 어린 시절엔 바보로 낙인 찍혔다. 네 살이 될 때까지 말도 못했고, 일곱 살이 돼서야 겨우 글을 깨우쳤다. 아홉 살이 돼서도 말이 어눌하고 너무 느렸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 하는 말더듬 증세까지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참다 못한 교장이 부모를 불러 선언했다.
“이 아이는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없습니다. 차라리 노동을 시키는 게 나아요.”
그는 취리히의 폴리테크닉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직을 못해 백수생활을 해야 했다. 생활비가 바닥나 자신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보험회사에 간신히 취직했으나 거기서도 곧 해고당했다. 어린 시절 아들이 저능아가 아닌가 걱정했던 아버지도 “내 아들은 인생의 낙오자”라고 한탄하며 돌연 세상을 떠났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에는 그가 자살 충동까지 느꼈다고 적혀 있다.
그를 절망의 벼랑 끝에서 구해준 건 또 다른 대학친구였다. 친구가 그를 스위스 특허청 하급직원으로 추천해준 거였다. 그게 돌파구였다. 그는 거기서 특허관련 업무를 일찌감치 해치운 뒤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오던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빛과 우주에 대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빛을 연구하면서 자연히 영혼의 실체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사고의 폭도 폭발적으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제2장 육신과 영혼의 숨바꼭질
■ 양심을 지키면 손해일까?
영혼여행을 경험한 전 세계의 임사체험자들, 최면치료를 받다가 영계를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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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 깊은 영적 깨달음을 얻어 영계와 물질계를 드나드는 사람들, 수십 년간 영혼을 연구해온 정신의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악한 마음을 품고 사느냐, 선한 마음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눈빛과 인상이 달라지는 것도 우리의 속마음이 시나브로 얼굴에 낱낱이 기록돼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을 지켜서, 혹은 남을 돕다가 손해를 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떻게 내게 이득으로 되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후일 수도, 100년 후의 내세일 수도, 영계일수도 있다. 우주엔 시공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질서는 톱니바퀴보다 더 정교하게 돌아간다. 우주를 구성하는 미립자들이 사람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읽어내지 않는가? 따라서 만일 내가 선행을 한다면 그 보답도 반드시 돌아온다. 미립자들에 저장된 선행의 정보는 영구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 베풂은 건강으로 되돌아 온다
한 요양원에 65세가 넘는 노인들이 입주해 있었다. 그런데 요양원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던 노인들이 어느 날 술렁대기 시작했다. 원장이 새로운 생활지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1층 노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여러분께서는 모든 걸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먼저 일주일에 한 번씩 보여드리는 영화관람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또 정원의 식물 돌보는 일도 여러분이 알아서 책임져 주십시오. 물을 주고, 풀을 뽑고, 가지를 치는 일도 여러분이 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손을 떼겠습니다.”
이번엔 2층 노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저희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영화관람도 가장 편안한 시간으로 저희가 정해 드리겠습니다. 정원관리도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여러분께선 그저 각자의 몸만 잘 챙기시면 됩니다.”
그로부터 18개월 후 노인들의 건강상태를 검사해보니, 1층 노인들과 2층 노인들 사이엔 놀라운 차이가 나타났다. 1층 노인들의 몸엔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들고 복용하던 약도 크게 줄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의 움직임도 기민해졌다. 1층 노인들의 93%는 건강이 좋아졌다.
그러나 2층 노인들의 얼굴에선 생기가 사라졌다. 검진결과 71%가 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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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허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사실은 2층 노인들의 사망률이 1층 노인들의 두 배나 됐다는 것이다. 그 실험을 주도한 예일대학의 로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몸뚱이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면 모든 게 나 하나로 좁혀집니다. 나의 벽을 세우는 거죠. 반면 나무 한 그루라도 키우면 벽이 열리게 됩니다.”
‘나’의 벽이 세워지면 우주로부터 아무것도 흘러 들어오지 못한다. 반면 벽이 허물어지면 우주로부터 사랑과 지혜, 에너지가 가득 흘러나온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셔비츠 교수는 나에 집착하며 사는 게 얼마나 해로운지 알아보기 위해 600명의 대화를 녹음해 봤다. 그리고 녹음 태이프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들이 ‘나’ ‘나의’ ‘나를’ ‘내 것’ 등의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세어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나’에 관한 말수와 심장병 위험성이 정확하게 일치하네!”
말끝마다 ‘나’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심장병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었다. ‘나’에 집착한 나머지 ‘남’을 모르고 ‘내 것’만을 최고로 여겼다.
“나를 열고 남에게 베푸세요. 그게 무병장수의 비결입니다.”
셔비츠 교수의 결론이다.
미시간 대학의 브라운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남한테 받기만 하는 사람 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은 드물죠. 남에게 주기만 하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득을 보는 겁니다.”
놀라운 사실은 남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보다 건강에 더 이로운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 영계에 올라가면 오로지 사랑을 얼마나 베풀었느냐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은 지상에서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
■ 진공묘유(眞空妙有) :
나를 텅 비우면 오묘한 일들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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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식의 표면은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늘 뒤덮여 있다. 주로 ‘나’와 관련된 생각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조용하 바라보면 그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무한한 공간, 무(無)가 드러난다. 그 공간은 생각들이 싹트기 전부터 존재해 왔고 생각들이 사라진 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 즉, 나는 늘 생각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텅 빈 무한한 공간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의 말대로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런데 텅 빈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또 누구인가? 몸속의 ‘나’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가? 그건 몸 밖의 나이다. 몸 밖에 있는 나도 텅 비어 있다. 어떤 방법으로 보든, 진정한 나는 텅 비어 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많은 연습을 통해 텅 비어 있는 상태를 마음대로 장시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에게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별의별 오묘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왜 그러냐고? 텅 빈 공간 즉 영점공간에는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원하는 바를 그리면 곧바로 현실로 나타난다. 앞서 몇 차례 언급한 UCLA의 생리학 교수인 헌트 박사의 예를 들어보자. 그녀는 지난 50여 년간 기 에너지 연구에 몰입해 온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다. 그녀는 자신을 텅 비우는 방법을 완전히 몸에 익히면서 저절로 신비한 힘을 얻었다.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방 한복판 바닥에 손을 짚고 거꾸로 설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읽을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사람의 질병도 치료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텅 비우는 순간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천 리 밖을 내다보는 능력, 마음으로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 만 리 밖에서 마음으로 대화하는 능력, 숨어 있던 이 모든 능력이 깨어나게 되죠.”
불교의 고승들은 이미 수천 년 전, 생각을 텅 비우면 오묘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불렀다. 수천 년 전 인도의 파탄잘리도 “마음속의 잔물결을 잠재우면 모든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또, 예수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했던 것도 마음을 완전히 비우면 실제로 천국이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 천국이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안에 있다. 누구나 마음을 비우는 연습만 충분히 하면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의 99.9%는 지능이란 능력, 한계가 대개 엇비슷하다. 그런데 0.1%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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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저 멀리 앞서 있다. 선천적으로 능력을 타고난 게 아니다.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두뇌를 이리저리 분석해 봤지만 그건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뇌세포 덩어리였다.
능력의 크기는 단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결정짓는다. 내 모든 능력은 내 육신 속에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나는 우주만큼 무한한 존재’라고 바라보면 능력도 무한하게 쏟아져 나온다. 단순한 시각의 차이로 인생이 갈린다.
육신과 영혼은 늘 숨바꼭질한다. 육신이 눈을 뜨면 영혼이 잠들고, 영혼이 눈을 뜨면 육신이 잠든다. 그래서 돈과 권력, 명예 등 육신의 욕망에 집착하면 영혼이 눈멀고, 영혼의 실체를 깨달으면 그런 욕망에서 저절로 멀어진다. 동시에 두 가지를 바라볼 수는 없다. 상보성의 원리 때문이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 영혼에 눈뜨고 살면 기적 같은 나날이 꼬리를 문다.
■ 나를 타인처럼 바라보며 살아라
영혼에 눈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를 남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육신의 눈은 나를 남처럼 바라보지 못한다. 하지만 텅 빈 무한한 공간, 우주에 퍼진 영혼은 나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는 순간 영혼은 저절로 눈뜨기 시작한다. 영혼을 거대한 우주 거울로 삼아 나를 남처럼 비춰가며 살면 영혼이 지닌 양심, 사랑, 평화, 연민, 지능, 에너지가 저절로 흘러들어온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흔한 유리 거울로 자신을 비춰도 영혼이 삐쭉 고개를 든다. 나를 남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디너 교수는 어떤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마주 본 채 문제를 풀도록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거울을 등지고 풀도록 해보았다.
이윽고 시험 종료를 알리는 “따르릉” 소리가 울렸다. “따르릉”소리가 났는데도 문제를 푸는 건 부정행위다. 하지만 거울을 등진 학생들은 한 문제라도 더 풀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반면 거울을 마주 한 학생들은 순순히 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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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심리학자도 이와 비슷한 실험을 했다. 교실로 어린이들은 모이게 한 다음, 커다란 사탕 그릇을 보여주며 “한 사람당 사탕 하나씩만 가져가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리를 떴다. 어린이들은 시키는 대로 하나씩만 가져갔을까? 아니다. 전체의 34%가 두 개 이상 집어갔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탕그릇 옆에 큰 거울을 비스듬히 세워 놓고 다른 아이들에게 똑같이 “한 사람당 하나씩만”이라고 말했다. 두 개 이상 집어간 비율이 1/4로 뚝 떨어졌다.
거울에 자신을 자주 비춰보는 사람일수록 더 양심껏 행동하게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살을 뺄 수도 있다. 부엌에 거울을 놓아두는 것이다. 그럼 훨씬 덜 먹게 된다. 이처럼 자신을 거울로 비춰보듯 남으로 바라보는 순간, 영혼과 육신간의 숨바꼭질에서 영혼이 이기게 된다.
영국 뉴캐슬 대학 연구진이 무인판매대를 세워 놓고 유사한 실험을 했다.
커피, 차, 우유 등을 준비하고 그 옆 포스터에는 예쁜 꽃 그림과 함께 가격을 적어 놓았다.
직원들 가운데 정식으로 값을 지불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에는 꽃 그림 대신 사람의 눈 한 쌍이 크게 그려진 안내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돈을 제대로 낸 사람은 그 전보다 무려 3배나 더 많았다.
실험을 이끈 베이트슨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비록 사람의 눈이 그려진 그림에 불과할지라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자신을 남의 눈으로 좀 더 깊이 바라보는 방법도 있다. 자신의 묘비명을 써놓고 사는 것이다.
네바다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헤이즈가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묘비명을 쓰도록 했더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묘비명을 쓰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술과 마약, 섹스에 중독됐거나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던 청소년들이 돌연 새 삶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며 묘비명을 쓸 수 있는 건 누구인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영혼에 눈을 뜨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집착적 삶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시간 대학의 피터슨 교수는 자신의 묘비명에 인생 목표를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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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유도하면 목표달성도가 부쩍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인슈타인은 늘 자신을 영혼의 거울에 비춰가며 살았다. 그래서 잡념이 없었고, 오로지 과학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화는 바보들의 가슴 속에나 존재한다.”
화를 못 다스리는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 아니었다. 화는 거울처럼 비춰주기만 하면 사라지는 건데, 거기에 파묻혀버리는 행위가 바보스럽다는 얘기였다. 그는 자신을 우주 거울에 완전히 열어놓고 우주와 하나가 됐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76세가 되던 해인 1955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다. 복부 동맥류가 터져 심한 출혈이 일어난 것이었다. 내로라하는 의사들이 긴급히 달려와 수술하자고 했지만 그는 뜻밖에도 단호히 손을 내저었다.
“제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습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아요. 제 몫을 살았고, 갈 때가 됐으니 조용히 가고 싶습니다.”
수술만 하면 더 살 수 있었는데도 거부한 것이었다. 그가 남긴 유언도 이례적이었다. 시신을 화장해 연구실 주변에 뿌릴 것, 묘지나 묘비는 절대 만들지 말 것, 장례식도 치르지 말 것, 두뇌를 제거해 과학발전에 이용토록 할 것 등이었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그토록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보통 사람들은 육신이 자신의 전부라고 믿는다. 육신 속에 자신의 모든 게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음은 ‘나의 영원한 끝장’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인생이 끝장나게 되니 한이 맺혀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으면서도 후손들이 장례식을 성대히 치러주고 묘지도 근사하게 세워놓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게 육신은 영혼이 잠시 발을 걸치고 사는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는 대지로부터 잠시 껍데기를 빌려 쓰다가 되돌려줄 뿐이라 생각했다. 영혼은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니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할 필요도 없었고, 장례식도, 모지도, 묘비도 다 부질없고 헛될 뿐이었다.
한 설문조사 결과, 80세 이상 노인들의 90%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후회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뭘 가장 후회하느냐는 물음에 “내가 꼭 하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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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못했어요.”라고 응답했다. “꼭 하고 싶었던 게 뭡니까?” 라고 물으니 대답은 뜻밖에도 세계 여행이나 많은 돈, 출세 등 거창한 게 전혀 아니었다.
“내 아이가 소원했던 걸 해줄 수 있었더라면………”
“가족에게 좀 더 따뜻한 말을 건네며 살았더라면 ……”
“돌아가신 어머니께 좀 더 친절하게 대해 드렸더라면 ……”
쉽게 말해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살았던 걸 가장 후회했다. 사랑은 영혼의 본질이다. 나를 비우고 남에게 베풀면 영혼이 열린다. 하지만 영혼에 눈을 못 뜨고 살다 보니 사랑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겨우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급하게 영혼을 찾고 사랑을 찾는다. 한 세상 다 살고 나서야 “내가 누구지?” 하고 두리번거린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뭔지 알고 살다 죽었다. 우주를 사랑했고, 인생을 사랑했다. 누구에게나 똑 같은 선택이 주어진다. 아인슈타인처럼 내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살다 죽을 것인지. 아니면 누군지도 모른 채 허둥지둥 바삐 살다 후회 속에 죽을 것인지.
■ 에필로그
고통은 고통을 통해 영혼을 갈고 닦으라는 우주의 신호다. 그래서 고통은 외면하려 들면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거꾸로 “이 고통을 통해 뭘 깨달을 수 있지?” 하고 받아들여 깊이 바라보면 거짓말처럼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고 값진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들은 왓칭을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에 최고 5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10%만 쓸모 있는 것이고, 나머지 90% 이상은 부정적인 것이라 한다. 교토 대학의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20대에 고민했던 생각들이 정말 가치가 있었습니까?”하고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5% 정도만 가치 있는 생각이었고 나머지는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었다”고 응답했다. 즉 우리는 깨어 있는 인생의 90-95%를 아무 쓸모도 없는 부정적인 생각에 허비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바라보지 못하고 그 속에 파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소모적이고 불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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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은 내 안에 들어 있다. 내 마음속 관찰자가 바로 그
거울이다. 생각이 나를 버려도 관찰자는 변함없이 따뜻한 어머니처럼 언제나 미소 지으며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준다. 유혹에 흔들리고 있을 때 바라보면 그 유혹 떨어져 나간다. 끙끙 앓던 문제도 실마리가 풀린다. 무엇보다도 우주만큼 넓고 깊게 바라보게 해준다. 나만의 이득에 집착하기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연민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삶도 그만큼 넓고 깊고 풍성해진다.
2012. 2. 10. 다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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