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6. 15:53ㆍ독서후기
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 (2)
■ 박경철, 노회찬, 이지성 외 지음
■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나를 찾을 수 있다
◉ 손지애 : CNN 코리아 서울 지국장
0 전 세계 대표적인 뉴스채널인 CNN에서 한국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소 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의 한 사람
0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비즈니스 코리아>에서 기자 생활
0 1993년 뉴욕타임스 현지기자, CNN 서울 특파원을 거쳐 1995년 CNN서 울 지국장
0 19~20대 서울 외신 기자클럽 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등
0 저서 : CNN 손지애의 포인트 리스닝
“너 저고리 벗어라.”
내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책은 다소 선정적인 문구로 시작된다.
부모님을 따라 서울을 떠났던 일곱 살짜리 한국 소녀는 열두 살 때 미국 아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발령이 나자마자 미국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한국어는 쓸 수 없었다.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부모님은 어린 딸들이 미국 생활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언어를 영어로 바꾸었다. 그 덕분에 우리 네 자매는 스펀지처럼 영어를 빨아들였고 그와 동시에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나는 초등학교를 시작하면서 미국 친구들과 철자법부터 배웠고 그 사이에 영어는 나에게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도구가 되어 버렸다. 눈 깜짝할 새였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미국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마냥 자연스러웠던 영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미국에서 4년 넘게 살면서 독서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교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매일 책을 열권씩 빌려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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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사서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아이였다. 그야말로 책벌레였고, 그 타이틀은 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귀국하자마자 중학교 국어 시간을 기점으로 책과는 멀어지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지금이야 영어로 된 원서를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영어로 된 청소년 소설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국 책은 읽을 수 없으니 결국 아버지가 대학 시절에 읽던 세계 명작전집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한 동안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같은 책에 빠져 들었다. 나중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이르게 되었다. 명작 중의 명작이지만 열두 살짜리가 읽기에는 버거운 바로 그 책 말이다.
그렇게 지루하고 어려운 책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 경험은 독서를 인생의 낙으로 생각했던 내가 독서도 지루하고 재미없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근처 서점에서 문고판을 들춰보다가 김동인의 <젊은 그들>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도발적인 첫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날 밤 나는 새벽 4시까지 그 책을 읽었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한동안 외면하고 지냈던 책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절실하게 맛볼 수 있었다. 동이 터올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내 국어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고 국어와 영어가 나의 양 날개가 되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정복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젊은 그들>을 읽고 나서 당장 한국어 실력이 완벽해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의 모국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젊은 그들>을 서점에서 볼 때마다 설레곤 했다.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간 듯한 환희, 순수한 즐거움, 두려움의 해소, 자신감 …… 중학생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뒤섞여 물밀듯 밀려오곤 했다.
그때 필독서로 여겨졌던 그 책은 지금은 구하기 힘든 책이 외었다. 얼마 전에 나는 헌 책방을 뒤져가며 갈색으로 우아하게 바랜 그 책을 두 권이나 샀다. 한 권은 내 곁에 오래오래 보관할 것이고, 한 권은 내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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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는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간 소중한 흔적이다.
◉ 이상경 : 현대리서치연구소 대표이사
0 1955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
0 이화여고, 연세대 사회학과,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연세대 사회 학 박사과정 수료
0 1987년 현대리서치연구소 설립 대표이사,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 차 관급 비상임위원, 서울시 시정여론조사심의위원
0 여성발전기금관리위원, 한국조사협회부회장, 한국인터넷마케팅협회 회장
1974년 2월 어느 날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하기로 결심한 직후, 선배 한 분이 책 한권을 주었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이 쓴 <매혹된 영혼>이란 책이었는데, 500여 쪽이 넘는 세 권짜리 장편소설이었다. 이제 고교생도 대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가족 이외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내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재수를 결심했지만 다시 지루한 교과서들과의 전쟁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아 망연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막막함이 그 두툼한 세 권짜리 소설책에 몰두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그 책을 숨차게 읽어냈고, 여주인공에게 매혹되었다.
그리고 그 책은 고단한 재수 생활을 견디게 해 준 힘이 되었고. 대학 시절에도 나의 중심을 지키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다. 삶의 고비마다 나 자신에게 묻는 버릇이 생긴 것도 바로 그 책 때문이다.
‘자신을 극복하려면 자신과 싸워야 한다……. 상처야말로 삶이 내게 준 가장 귀한 것, 왜냐하면 그 하나하나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간 흔적이기 때문에.’
흔히 로맹 롤랑의 대표작을 말할 때 노벨상 수상작인 <장 크리스토프>를 떠올릴 것이다. <매혹된 영혼>은 그의 두 번째 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을 깊이 사랑했던 휴머니스트였고 인생과 예술을 깊이 고민했던 로맹 롤랑은 이 책을 통해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간 한 여인이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발표된 이 소설은 격동하는 유럽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당시 중산층 여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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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된 결혼을 통한 안온한 삶을 거부하고 자아의 자유를 위해 다난한 삶 속으로 뛰어든 여성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불안한 시대에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여성이 겪어내야만 하는 고단함은 상상할 수도 없다. <매혹된 영혼>의 주인공 앙네트는 가혹한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자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모성애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위대한 인류애로 확대된다. 이처럼 자기애를 뛰어넘어 모성애로, 인류애로 발전하는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앙네트를 떠올리며 나를 추스르곤 했다 그녀는 내 내면의 소리가 되어 주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가던 해 그 나이에 뭘 생각하고 느꼈는지를 떠올리며 그 책을 딸에게 권했다.
나는 내 딸이 강함과 유연함을 품은 여성이 되기를, 그리고 자기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이 책을 권한 것도 그런 메시지를 에둘러 전달한 것이었다. 내가 그랬듯이 내 딸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여러 고비를 만날 것이고, 그때마다 이 책이 작은 힘이 되어주리라 맏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읽었던 책들은 모두 다양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쁨의 말, 위안의 말, 슬픔의 말, 사랑의 말……. 그 중 삶의 한 고비에서 만났고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가도록 해준 책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이 로맹 롤랑의 <매혹된 영혼>이다.
Part 3. Passion 꺼지지 않는 열정
■ 인생의 보물은 용기 있는 자의 몫이다
◉ 박경림 : 방송인
0 1979 서울생,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졸, 숭실대 국제통상대학원 석사,
0 연기자, 가수, 방송 MC, 라디오 DJ, 쇼핑몰 대표, 뮤지컬협력 프로듀서 등
0 2001 백상예술 대상, 2001 MBC 방송연예대상, 2001 KBS 라디오 Mc 상, 2002 골든 디스크상 특별상, 2006 MBC 연기대상 라디오보문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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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현재는 MBC 라디오 <박경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진행
0 저서 : 박경림의 사람, 박경림의 영어 성공기, 박경림의 뉴욕 스캔들 등
2003년 2월, 나는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연히 방송계에 입문한 뒤 참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운이 좋게 하는 일마다 잘됐다. 드라마도, 시트콤도, 음반도, 쇼프로도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내가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것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 그 어떤 ‘연’도 갖지 못했던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과연 꿈만 갖고 잘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문세’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분은 내가 잘되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더 큰 꿈들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하나 계획을 짜는 편이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1년의 계획, 3년의 계획, 5년의 계획 10년의 계획, 그런 목표의식이 나를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설령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길을 잃지 않고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고에게 주는 그 상(2006 MBC 연기대상)은 아직 맞을 준비도 채 안되었는데 너무 일찍 찾아든 손님과도 같았다. 정식으로 방송을 시작한지 4년 만이었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그리고 나중에 받고 싶었는데, 혹자는 나중에 또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나의 꿈들에 혼선이 빚어졌다.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뜬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계단으로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계단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하루 꿈을 좇다가 갑자기 방향을 잃은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자유가 있었고. 또 다른 열정이 있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까 싶어 여행도 자주 다니고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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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다른 세상에서의 꿈같은 시간이 어느덧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얼마간 잊고 지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나를 괴롭혔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약 두 달 전부터 그곳 비디오 가게에 가서 당시 인기 있는 쇼프로며 드라마를 죄다 빌려서 모니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자리에 나보다 잘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보면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과연 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쯤이었을까?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아는 언니 소개로 만나 신세를 졌던 혜령이가 미국에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그렇게 만나 3~4일 그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전날 밤, 혜령이가 짐을 싸다가 갑자기 내게 책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언니, 이 책이 참 재미있는데, 언니도 한 번 읽어보실래요?” “엄마한테 선물받은 책인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언니도 좋아할 거예요. 꼭 읽어보세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다음 날 혜령이는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파울로 코엘료는 양치기 산티아고의 여행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의 보물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가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려면 같은 자리에 머물지 말고 용기 있게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산티아고가 여행길에서 만난 집시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꿈을 포기하지 말고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여행을 계속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의 신화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 오던 바로 그것”이다. 노인은 또 “보물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표지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이 적어준 그 표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그 표지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익숙해져 있는 것과 가지고 싶은 것 사이에 하나를 선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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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가지고 싶은 것을 택했다. 양떼, 양털가게 주인 딸 파티마, 안달루시아 평원은 처음에는 가지고 싶은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곧 익숙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떠나기로 한 것이다. 시련, 좌절, 사랑, 행복, 돈…… 이런 것들은 모두 인생의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을 잃은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순간 순간 좌절도 하고 희망도 갖고, 쉬어도 가고 있지만, 나는 분명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주만물이 그렇게 나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 열망 없이 예술은 탄생하지 않는다
◉ 백은하 : 화가, 작가
0 꽃 그림 작가 : 한겨울의 꽃도둑전, 겨울 풀밭 전 등의 전시
0 그림뿐 아니라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0 저서 : <기차를 놓치고 천사를 만나다> <엄마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 지?> <이야기 꽃이 피었습니다> <사자야, 전화왔어> 등
기존에 만들어 놓은 비교적 안온한 길을 계속 걸을텐가 (작업의 변주나 해가며), 아니면 허공에 새로운 줄을 걸 것인가. 결정할 시점에 있었다.
처음 꽃잎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의 칭찬, 이전에 없던 장르를 만들었다고 박수쳐 주는 걸 좋아라 하며, 계속 같은 주제로 일관했다.
꽃잎그림 자체가 지루한 게 아니라 주제가 수년간 한결같아 스스로 지루했다. 정말 절실하게 표현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잘 그리는 주제로만 일관하려고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를 계속 그리고 있었다. 나는 칭찬이 좋았고 작업은 점점 패턴화 되어 갔다.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너무 잘 알고 ‘너무 잘’ 그리게 됐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내 속의 창조의지가 화를 내는 걸 느끼게 됐다. 고인 물은 썩으니까. 내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안 하니까 자꾸 쳇바퀴를 도니까.
그러다가 만난 책, 이번 원고 의뢰에, 보석처럼 숨어있는 지적인 책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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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는 허영심을 누르게 만든 책, 필리프 프티의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이다. 멋들어진 미치광이 필리프 프티가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었다. 땅이 아니라 공중을 . 필립은 공중곡예사인데, ‘서커스’가 아니라 ‘우아하게 공중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커스’와 ‘우아하게 공중을 걷는 것’사이의 차이는 뭘까.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자기는 시인이라고 공중의 작가라고.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고. 그는 가장 높았던 그 문명의 꼭대기 위에서 사람들을 비상하게 만들었다.
‘두 개의 빌딩만 보면 줄을 긋고 그 사이를 걷고 싶은’ 이 사내는 세계 곳곳의 건물 사이를 걸은 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이 건물을 보고 짝사랑에 빠진다. (그는 이미 노트르담 대성당 횡단(1971년)과 시드니항 철교 횡단(1973)에 성공한 바 있었고, 이어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택했다.)
이 건물 사이를 걷는 건 이제 그의 일생 일대의 소망이 된다. 몇 번을 ‘할거야’와 ‘못할 거야’를 반복하고 내린 결론은 ‘하고 싶어!’ 그 순전한 목적 하나에 충실하며 이 불가능한 실험을 준비해 간다. (참, 인간이란 얼마나 미치광이이고, 그래서 얼마나 무한한가!)
그가 하늘을 걷는 그 순간은 나도 기뻐서 몇 번 반복해 읽으며 눈물이 다 났다. 하지만 더 감동적인 건 그가 쌍둥이 빌딩을 조사하고 또 조사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한 지속적인 과정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이 건물을 몽땅 삼켜버릴 듯 연구한 수 개월, 그리고 장비의 실험과 고안의 여러 우여곡절, 공범이 되어 몰래 빌딩에 잠입하고 엄청난 무게의 쇠줄과 장비들을 숨겨 들어가는 과정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만, 그 지속적인 과정(무언가를 향해 줄기차게 순전하게 몰입하고 추구하는)은 일종의 ‘구도’ 같다. 만일 그가 다 만들어진 줄 위를 걸었다면 그 서커스에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들을 거쳐, 이 엄청난 일을 해 냈을 때엔 이건 이미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이며 예술이 됐다.
진정한 예술가들을 보면 그들이 그 표현을 위해 가진 과정의 철학을 보며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예술가는 먼저 철학하는 사람이라는 것. 말하고자 하는 내용(철학)이 중요하며, 그걸 표현하는 기술은 연마해야 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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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기술만 뛰어나면 그건 쇼지 예술이 아니다. 생각과 영혼 없이 잘 훈련된, 패턴화 된 기술로 몸만 휘두르고, 펜만 휘두르고 붓만 휘두른다면, 그것만큼 진부한 일이 또 있으며, 예술이라고 말하기 미안한 일이 또 있을까.
필리프 프티 그는 그 많은 어려움과 마지막 순간의 두려움까지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재주만으로 그 줄위에 섰다면, 빌딩과 빌딩 사이 410미터의 고공 위에서 46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왕복할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 줄 위에 눕고 새를 감상하고 춤을 추고 우아한 인사를 할 수 있었을까.
그 건물을 연구하며 건너기 위해 철저히 생각하고 고생하고 단단해졌기 때문에, 410미터 고공 속에서, 모든 뉴요커가 올려다보는 그 떨리는 순간에도 줄 하나에 의지해 발을 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준비하는 과정 동안 한 번도 회의하지 않았다. ‘왜 이걸 하지?’ ‘이걸하다 죽으면 어떡하지?’ 이런 회의나 물음표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고, 그 뒤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게 예술가가 모든 것을 이기는 천진난만한 단순성인 것 같다.
어떤 책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책이 적절한 시기에 뾰족한 자극이 되어, 그걸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나가게 된다면 결국은 점차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계기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개척자가 될 수 없다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 이상건 :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0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졸, 동부생명 근무
0 재태크 경제지, 경제 주간지 기자, 현재 미래에셋투자교육 연구소 이사
0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금융 콘텐츠 전문가
0 각종 칼럼집필과 라디오. TV출연
0 저서 : 돈 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부지들의 개인 도서관,
부자들의 생각을 읽는다 등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인물이나 사건 또는 운명처럼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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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깨달음이 드라마틱하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꾼 이야기를 기대하곤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을까?’라는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할 것이다. 먼저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것 같다.
‘추상명사로서의 책’이란 존재가 내 인생을 바꾼 것은 분명하지만 정말 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내 삶의 궤적에 영향을 준 ‘한 권의 책’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극적 긴장과 감동은 덜하지만 인생에서 조용한 가이드나 조언자 역할을 하는 책도 존재하는 법이다. 바로 한양대 명예교수인 윤석철 교수의 <경영학의 진리체계>가 내겐 이런 조언자와 같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친한 선배를 통해서였다. 같은 잡지사에 근무했던 직장 선배이자 베스트셀러 <사장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인 서광원씨다.
나는 이 책을 소개 받고도 한동안 읽지 못했다. 아니 읽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시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에서 경영학을 한다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그 불신의 첫번째 이유는 국내에서 경영학을 한다는 이들은 대개 미국 이론의 수입상이거나 앵글로색슨식의 경영을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는 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숫자를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손쉽게 구조조정을 하고, CEO의 가치만 높게 매길 뿐 근로자들의 몫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윤석철 교수의 책을 제대로 읽게 된 것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자발적 백수가 된 2003년인가 2004년도쯤이었다. 당시 나는 기존에 배우고 알아왔던 교과서적인 경제원리가 살아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 일종의 반감 섞인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경제신문에 연재되고 있었던 윤교수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래서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읽는 내내 감탄했고 한편으로 절망했다. 저자의 박학다식함과 치밀한 지적 글쓰기에 감탄했고, ‘나는 이렇게 쓸 수 없겠구나’ 라는 자각에 절망했다.
더 놀랐던 것은 이 책이 대학 교재라는 점이었다. 대학교재 하면 ‘재미없음’, ‘숫자’, ‘딱딱함’, ‘문제풀이’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데 이 책은 그런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한 인문학자의 통찰력이 담긴 삶과 경영에 관한 책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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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수의 <경영학의 진리체계>는 가뭄 뒤의 단비처럼 이런 갈증을 적셔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쟁이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배워왔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높은 점수를 얻거나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경쟁자들을 죽여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다고 세뇌 당해 왔다.
경쟁이 갖는 추상적이 가치가 현실과 만나는 순간,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 동물의 세계, 차가운 승자독식의 사회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고 배웠고, 그래서 처절하게 경쟁에서 이기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묵인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진정으로 올바르고 건강한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그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엔진은 경쟁이지만 경쟁에서 진정으로 이기는 것은 가급적 경쟁을 하지 않거나 경쟁을 피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모순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윤교수는 진화의 역사를 볼 때 “가장 앞서가는 선두주자가 된 것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기존의 세계를 떠나서 새로운 삶의 세계를 개척한 종(species)” 이었다고 얘기한다.
이런 진화의 역사가 곧 삶의 역사이고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기 때문에 현명한 전략은 과당 경쟁을 뒤로하고 경쟁이 없는 황무지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개척하는 생존 전략은 오늘날에도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인 것이다. 황무지 개척이 어려우면 차라리 3D의 길이 차선택일 수 있다. 3D란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하다(dangerous)는 세 단어의 첫 자음을 의미한다.
■ 누군가에겐 운명의 벽이라면 나에겐 열어야 할 문이다
◉ 서진규 : 국제외교사박사
0 1948 부산동래생, 서울 풍문여고 졸,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 0 1971년 가정부 모집 광고보고 단신 도미, 1975년 결혼 이듬해 미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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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입대, 미국, 독일, 한국, 일본 등지에서 근무
0 1972년 퀸스대학을 시작으로 여섯 군데의 대학을 거쳐 1987년 16년 만 에 메릴랜드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0 1990년 43세에 하버드 석사과정 입학, 군인과 학자의 길을 함께 걷다. 1996 소령 예편, 16년 만에 하버드 석사 학위 받음
0 저서 :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서진규의 희망 등
암행어사 출두야!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후련하고 통쾌한 정의의 외침이다. 내가 바로 이 외침의 주인공이 되어야 겠다는 결심이 있었기에 나는 수많은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짓눌리지 않고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결심이 어린 시절에 접한 만화책에서 시작된 것이고 보면 한 권의 책이 사람에게 미치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위로 언니 오빠와 밑으로 남동생 셋이 있었다. 충북 제천의 말단 공무원인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여덟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술장사였다. 바쁜 어머니를 도와 초등학교를 졸업한 언니가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던 것이 딸이었지만 어머니는 가시나를 유난히 싫어했다. 외할아버지가 첩을 얻어 살면서 외할머니를 무척 고생 시켰는데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에 한이 맺힌 탓이었다. “가시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가시나는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하며 집안 살림이나 하다가 시집가면 된다고 믿었다. 화를 자주내고 구박과 손찌검을 하는 어머니가 나는 무서웠다.
6학년이 되던 해, 내 바람막이 같던 언니가 시집을 가버렸다. 큰 말이 없으면 작은 말이 한다는 속담을 증명이라고 하듯 온 집안 살림은 내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당시의 힘든 일상을 견뎌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설거지를 다 한 후에야 학교에 갔다. 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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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후 집에 오면 청소와 저녁준비 설거지 등등 온갖 집안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밤 근무를 나가시면 거의 어김없이 어머니의 술주정이 이어졌고 그것을 받아내는 것 역시 내 몫이었다.
나는 오빠와 남동생들이 부러우면서도 미웠다. 단지 가시나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만 집안일을 시키는 어머니가 미웠고, 우리를 가난하게 살게 한 아버지의 무능력이 원망스러웠다. 남녀 차별과 직업 차별, 그리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함부로 멸시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화 <암행어사 박문수>를 읽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같은 반 친구가 그 책을 보고 있었다. 원체 만화를 좋아하던 나는 친구에게 그 책을 빌려 쉬는 시간마다 읽어 나갔다. 부당한 사회제도 속에서 죄 없 이 억울하게 고통받는 약자들의 얘기가 마치 내 얘기처럼 다가왔다. 탐관오리들의 만행과 횡포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의의 사도 암행어사 출두! 통쾌한 복수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희열을 느꼈다.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는 암행어사 박문수도 나처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나한테는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의 용기와 성취 그리고 정의의 암행어사 사명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 암행어사가 되자. 그래서 잘못된 사회를 고쳐서 나처럼 억울하게 설움을 받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구하자.
멋진 꿈과 목표를 마음속에 새겼고 그것들을 이룬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힘든 나날을 견디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나는 것은 그 꿈들이 모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내 삶 속에서 여러 번 마패를 높이 들고 암행어사 출두를 외쳐왔다.
미군 장교로서 일본에 근무할 때, 그리고 한국에 드나들면서 겪었던 운전기사들의 부당한 행동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서류 공증을 받으면서 차별을 받았던 담당 공무원을 깨우쳐서 사과하게 한 일, 그리고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했던 상황에서 미 육군성 담당자를 찾아가 당당하게 따지고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 등, 많은 상황에서 어릴 적에 읽은 암행어사 만화 이야기는 무관하지 않았다.
앞에 소개한 그의 약력은 그러한 꿈을 이루기 위한 평생의 열정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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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판타지는 마지막 결승점에서 펼쳐진다
◉ 배한성 : 성우
0 서라벌예술대학 방송학과 2학년 때인 1966년, TBC 동양방송 2기 성우로 데뷔
0 형사 콜롬보, 맥가이버, 형사 가제트 등 인기 외화 시리즈 및 에니메이션 주인공 목소리는 거의 그의 차지
0 별명 : 목소리의 마법사, 천의 목소리 등
0 여러 분야의 칼럼니스트 및 각종 강연활동
0 국제기아 대책기구, 생명의 전화.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의 단체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
0 한국 성우협회 이사장,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
0 저서 : <열정을 담은 천의 목소리, 배한성> 등
디오게네스에게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그만 쉬엄쉬엄 편하게 지내시지요.”
“천만에! 경주마차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보인다고 별안간 천천히 달리면 되겠는가? 오히려 더 속력을 내야지!”
나한테도 후배들이 비슷한 말을 한다. 나이 생각해서 이제는 살살하라고.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내가 하는 일을 신나게 즐기는 편이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영화 <대부>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마이클의 성우 연기를 할 때, 주인공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힘든다는 것 자체를 즐겼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녹음할 때는, 모차르트 역을 연기한 톰 헐스의 천방지축, 천재적인 변신에 숨이 턱턱 막히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하지만 영화속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던 열패감 따위는 내게 없었다. 톰 헐스와 마치 기(氣) 싸움이라도 하듯 눈을 부릅뜨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의 썼다, 그럴수록 그는 나를 조롱하듯 예측불허의 요술 연기로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나 또한 그에게 신들린 듯 대들 수밖에 없었다.
나의 성우 생활은 늘 그랬다. 주어진 배역의 캐릭터와 양보할 수 없는 한 판 승부를 벌이곤 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우라는 직업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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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목소리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이 필요하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표준어에 익숙했고, 목소리도 얼마만큼 행운이 따라주었다. 이 두가지 조건은 분명 성우가 되기에 좋은 요소였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연기력, 그것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성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경쟁력은 상상과 공상, 괴상한 망상 능력이 바탕이 된 연기력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내가 성우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 내 열정적 공상과 상상에 결정적인 불꾳을 피워준 것이 바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여름 방학 때 소설로 <돈키호테>를 접하게 되었다. 황당무계함의 극치인 돈키호테는 호기심 천국으로 똘똘 몽쳐 있던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이 소설을 1605년에 썼다고 한다. 어떤 천재 기인이기에 그 시대에 천방지축, 종횡무진, 무한 상상력으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물론 당시 스페인에는 기사도의 무용담이 유행했다. 그렇다고 하더하도 무려 400년 전에 세르반테스는 기사도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패러디하는 기발함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패러디하는 기발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싸움 예기만 지루하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감성인 러브 로망도 있다. 돈키호테가 열렬히 사모하는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궁금증이 더해지고 자연스레 돈키호테의 러브스토리를 갈망하게 된다. 그 타이밍에 맞추듯 둘시네아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는 평범한 이웃마을 농부의 딸이었으나 돈키호테에게는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보다 더 아름답고 지성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이 얼마나 기발한가! ‘감성의 호소’에서 무료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돈키호테>는 더 넓은 ‘감성의 바다’로 곧장 뛰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니후 나는 세르반테스의 삶 자체가 소설 못지않게 다채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페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지만 그는 정식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해적들에게 납치당해 5년간 노예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1605년 <돈키호테>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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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4월 23일,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굴곡 많은 삶을 마감했는데, 공교롭게도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두 작가는 하늘나라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신이 위대해지는 것보다 타인을 위대하게 해주는 것이 진정 위대한 것이라 했던가!
두 작가는 위대한 작품을 남김으로써 후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돈키호테>라는 소설이 보여준 상상, 공상의 스펙트럼은 시공을 초월하여 나의 목소리 연기를 빛내준 근원이었다.
젊음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나이듦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나이의 숫자는 늘어가지만 공상과 상상, 때로는 환상을 즐기는 나는 아직도 ‘피터팬’처럼 소년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디오게네스처럼 결승점이 가깝다고 생각되면 더 속력을 내고 싶다. 그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과정을 즐기면 삶의 모든 것이 신나는 작업으로 변하는 신비한 환상을 경험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Part 4 Change 변화의 첫걸음
■ 꿈을 포기하고 이룬 성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문용린
0 전 교육부 장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0 다중지능 이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 앞으로 아이들의 경쟁력은 도덕지능이 될 것이라고 강조
0 저서 :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 부모가 반드시 기억 해야 할 쓴 소리, 열 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라
7~8년 쯤 되었을까 새로 나온 책을 찾아 읽기를 즐기던 나는 늘 하던 대로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 서점을 찾았다. 신간 코너에 서서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유한 노예>. ‘노예가 부유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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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에 맞지 않는 단어 조합이 재미있어 누가 썼는지 저자 이름을 보니 로버트 라이시였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1급 경제 참모로 새 정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노동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아닌가?
그의 주장은 이랬다.
현대인들은 출세와 성공, 특히 경제적 성공과 부를 위해서 삶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으며, 자신의 삶의 가치와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노예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옛날의 노예는 가난했지만, 현대인이 지향하는 노예는 부유한 노예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반발심 반, 호기심 반으로 그날 저녁부터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책을 파고 들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책을 정독하면서 더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마치 나 한 사람을 겨냥한 책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책을 읽는 동안 야심에 찬 출세와 성공을 위한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온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른 즈음부터 게으름은 죄악이라는 핑계로 분초를 따지며 강의를 준비하고 연구 프로젝트 준비로 밤을 새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결혼기념일은 물론 아이들이 생일도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이것이 과연 내가 원했던 삶인가.
책 곳곳에서 라이시는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묻고 있었다.
“당신의 삶은 이미 균형을 잃었다. 온종일 일만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과연 행복한가?”
<부유한 노예>를 통한 이런 깨달음은 내 지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적인 발전을 위해, 또 막 교육학에 발을 디딘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지만 실상 그것은 균형을 잃은 삶에 불과했다.
열심히 일해 가정을 지키고 출세도 하고 남들로부터 소위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라이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가족과 친구와의 정감 어린 교분, 나의 내면을 채우는 자아실현, 그리고 내 것을 나누고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오는 충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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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가 내게 준 충격은 이렇듯 도미노처럼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전까지 한 편의 멋진 그림이었던 내 삶이 어느 덧 퍼즐조각이 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이제 어쩔 것인가. 그 뒤로도 며칠 속을 앓던 나는 어느 날 새벽 정신을 차렸다.
‘조각난 퍼즐은 다시 맞추면 된다.’
그 뒤 나는 하루 24시간 중에 연구와 강의, 원고 집필에 쓰는 데는 딱 8시간만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다.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집에 일찍 돌아와 가족과 친구, 이웃과 함께 보내겠다는 결심도 했다. 건강을 위해서 억지로라도 충분히 잠을 자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삶 자체를 새롭게 리모델링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라이시는 부유해질수록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 그래서 삶이 더 여유로워질 것이라는 케인스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100년 전보다 수십 배나 더 부유해진 오늘날의 미국 중산층들이 일에 발목 잡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부유한 노예>는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킨 소중한 한 권의 책으로 남아 있다.
■ 평생의 시간을 돈과 맞바꾸는 삶에서 벗어나라
◉ 박현정 : 크래디트스위스 기업 커뮤니케이션 이사
0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홍보학 석사학위
0 PR 및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15년간 기업체에서 활동
0 글로벌 PR회사인 호프만 에이전시 한국 지사장
0 현재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의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로 재직
0 2005 한경닷컴 ‘올해의 칼럼니스트 신인상’ 서울신문 칼럼니스트로 활약
0 저서 : <나는 세계다> 등
‘직장인들에게 어떤 미fork 있는가’라는 부재를 단 <코끼리와 벼룩>은 영국의 경제 평론가이자 사회철학자인 찰스 핸디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핸디는 특유의 관조적 어조로 코끼리로 상장되는 소수의 거대 기업과 창의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다수의 벼룩으로 양분화 할 앞으로의 세상을 예견하고 있다. 특히 그 스스로 벼룩이 되는 과정을 통해 깨달은, 성공적인 벼룩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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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포트폴리오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생의 시간을 미리 회사에다 팔아넘기고 그 대신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그런 형태의 직장문화는 앞으로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평생의 시간을 미리 회사에다 팔아넘기고…….” 평소 아무런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기존의 가치관이 전복되는 순간을 책에서 만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두 사람의 신경증이 결합된 상태다”라는 정신분석학자의 낯선 정의를 만났을 때 같은 당혹스러운 순간 말이다. 내겐 바로 이 표현이 그랬다.
핸디의 책이 내게 준 반향은 엄청났고. 난 한 동안 ‘평생의 시간을 회사에 팔아넘긴’이란 문구를 곱씹곤 했다. 하지만 곧 핸디의 포트폴리오 인생관을 잊어버렸다.
난 기업 세계 한가운데에 놓인 매혹적인 사다리를 위를 계속해서 올라갔다. 30대 중반 외국계 PR 회사의 한국 지사장이 되었을 때 솔직히 난 내 직업적 성취에 감격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이후 2년간이라는 기간은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나는 심신이 너무 지쳐 있었다. 안식년을 결심했다.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쉼표를 목표했던 시간이었지만, 막상 코끼리에 의지해 살다 허허벌판 외로운 벼룩이 되자 매일 매일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반전의 연속으로 가득했다. 우습지만 나 없이도 너무나 멀쩡히 잘 돌아가는 떠난 회사와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허망함이 가장 컸다. 조직의 후광에서 벗어났을 때 직업인으로서의 내 존재감에 대해서도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혼란스러움이란 그동안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내가 충성했던 세상에 대한 촌체적 인식의 전환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직장인으로 살았던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에 맡겨진다는 것 역시 형용하기 힘든 희열이자 동시에 버거운 자유다. 내 시간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은 적당한 속박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것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든 일이다. 난 화사를 그만 둔 후 과연 내가 얼마나 자율적 인간인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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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에서 그가 말하는 벼룩의 삶은 실감나는 현실이자 앞으로의 직업적 삶을 설계하라는 다그침이었다. 그가 말하는 벼룩의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자신의 시간을 돈 버는 일을 위한 시간, 가족과 여가를 위한 시간, 봉사를 위한 시간, 자기계발과 학습을 위한 시간으로 구체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생활방식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 코끼리와 공생하는 유능한 벼룩의 라이프스타일이다.
핸디가 얘기하는 포트폴리오 인생관은 ‘회사인간이 되지 마라’, ‘자신의 브랜드를 쌓아라’, 프리랜서로 성공하라‘ 같은 얄팍한 성공 지침이 아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삶이 아닌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시간에 대한 주권을 맘껏 행사하는 삶, 덜 의존적인 삶,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과 타협보다는 도전과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젊은 사람의 방식 말이다.
■ 꿈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성장과 함께 진화한다.
◉ 김민주 : 리드앤리더컨설팅 대표
0 서울대, 시카고대학원에서 경제학 전공
0 한국은행, SK그룹, SK에너지를 거쳐 골든민커뮤니케이션대표, 유달리커뮤 니케이션스 대표, 현재는 컨설팅 회사인 (주)리드앤리더 대표이사
0 저서 : 2008 트랜드 키워드, 커피 경제학,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성공하는 기업에는 스토리가 있다. 마케팅 어드 벤쳐 1,2 등
고등학교 2학년 때다. 대학 입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서가 구석에 꽂혀 있던 <경제학 대사전>이 문득 내 눈에 들어왔다. 경제학은 내가 무척 어려워했던 과목이었지만 그날은 주저 없이 그 책을 꺼내 들었다. 하드커버에 두툼하고 묵직한 책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내가 궁금해 하던 경제 이론과 경제 학자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을 열심히 읽은 덕분에 나는 우리반에서 경제학에 가장 통달한 학생이 되었다.
이 책에는 사연이 있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 군대에 간 형이 근무 중 불의의 총기 사고로 사망하자 형이 쓰던 모든 것을 다 불태우던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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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 책은 태우기 아까워 그냥 서가에 꽂아두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계열별로 지원을 하고 2학년 때 전공학과를 결정했다. 시회계열이었던 나는 사회학, 사학, 심리학, 경제학 중에서 전공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그때 나는 사회학에도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고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인플레이션 율 또한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경제에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 이론 외에도 현실경제기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는 경제신문도 열심히 읽어보고 역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매형의 권유로 주식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주식을 사고 경제신문과, TV뉴스를 보면서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현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보았다. 덕분에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주식에 투자해 얻은 수익으로 대학 생활을 풍족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일찍이 형이 대학 때 공부했던 <경제학 대사전>이 서사 한 귀퉁이에 꽂혀 있다가 우연히 나의 눈에 띄었고, 그 만남을 계기로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후 경제학을 거쳐 마케팅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지만 결국 경제학적 접근방법이 현재 나의 마케팅 접근방법에 영향을 준 셈이다. 미시적인 마케팅이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마케팅 말이다. 이처럼 예전의 <경제학 대사전>은 흘러흘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 생각을 실천에 옮기면 자신감이 따라온다.
◉ 한만청 : 전 서울대 병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0 1934 서울생, 서울대 의대, 서울대 의학 박사, 미국 하버드 의대 펠로를 거쳐 서울대 의대 병원장
0 서울대 의대 병원장 시절 연구중심 환자중심 병원으로의 개혁
0 체계화된 의료서비스 시스템 정착
0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북미, 일본, 유럽 방사선의학회 명예회원, 한국 방사 선의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정착
0 저서 : 진단 방사선 과학, 인체단면 해부학, 중재적 방사선과학,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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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고난 활자 중독증 환자다.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다’고 할 만큼 신문이며 잡지, 학술논문, 단행본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읽기도 재능에 속한다면 내게 읽는 능력을 준 신에게 무척 감사한다. 이순을 한참 넘긴 지금도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 젊은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것, 여전히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호기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무엇보다 삶의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내 철학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평생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암에 걸려 화학 치료를 받을 당시에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 걸을 힘조차 없을 만큼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어 있던 내게 책을 읽는 것은 유일한 여가이자 유희였고, 암과의 외로운 싸움에서 내 일상을 지켜준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내가 일평생 책을 통해 인생의 많은 교훈을 얻은 것처럼, 내 경험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병상에서 일어난 뒤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다. 후배나 제자들이 성공과 행복의 비결을 물을 때 나는 주저 없이 말하곤 한다.
“하루 한 시간 책읽는 습관을 들이면 인생이 바뀔 걸세”
70년 동안 읽은 수많은 책 중에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책이 몇 있다. 그중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 문학계의 거목 시바료타로가 쓴 화신(花神)이라는 장편소설을 들고 싶다. 이 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그러니까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이다.
‘못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잘 해내자.’ 라는 마음으로 영상의학과(방사선학과) 라는 좀은 생소한 분야의 3년 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맞닥뜨린 현실은 장애물 투성이였다. 우선 연구를 위한 시설이 너무 낙후했다. 방사선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려면 장비가 필요한데, 신축 병원 건축계획이 늦어지고 있었다. 꿈은 원대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조건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가졌던 의욕을 어디로 갔는지 나는 주어진 현실 앞에 조금씩 화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당시 일본 국립암센터 방사선 부장이던 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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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쓰야 박사가 인편으로 책 한 권을 보내왔다. 그 책이 바로 ‘화신’이다. ‘화신’은 중국 고어(古語)에서 유래한 말로 봄에 들과 산에 꽃을 피게 하는 신령을 뜻한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오무라 마스지로는 한의사 출신으로 메이지 유신에서 군사전략가 및 총사령관으로도 지대한 공헌을 하는 한편, 그는 또 화신(花神)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주인공 오무라 마스지로는 스승인 오가다 고앙 밑에서 재능을 꽃피워 당대 일본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된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 화란어를 배우고 영국 세력이 강대해지자 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화신을 읽으며 바닥으로 치닫는 마음을 다잡고 미국 유학을 떠날 때의 초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머릿속에 꿈꾸어왔던 것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물론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과가 크게 발전하고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논문을 가장 많이 내놓게 되기까지 나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힘이 있었다. 나보다 더 힘들게 영상의학을 공부한 선배도 있었고, 내 뒤를 이어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국제적인 성과를 거둔 후배와 제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내 인생의 황금기인 40대 초반에 이 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전문의로서, 대학교수로서, 또 학회 임원으로써 평생 전공인 영상의학의 발전에 미력하게나마 공헌했다면, 이 한 권의 소설로부터 받은 영감과 힘이 적지 않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한창 후학을 양성하고 학회 발전을 도모할 무렵 나는 <화신>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인생은 행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 그리고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되고 성공하게 된다는 것을 거듭 깨달았다.
■ 사람의 움직이는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 황은우 : 삼일교회 부목사
0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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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현재 1만 6,000명이 모이는 삼일교회 부목사
0 유학생들의 집회인 코스타(KOSTA)의 강사, 현장을 중시하는 목회자
0 저서 : 삼일교회 청년부흥 보고서, 크리스천 청년들을 위한 예배하심,
처음 만나는 기도, 하나님이 돈을 맡긴 사람들 등
어떤 분야든 명인들에게는 노하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이 노하우는 오랜 연습이 낳은 열매이자 기본에 충실히 임한 경과물로서 자신의 분야를 더욱 완성시키는 것이리라. 목사도 예외는 아니l다. 그런데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함은 단연 설교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잡지에 실린 한 설문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다닐 교회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데 목회자들은 대개 ‘설교’를 꼽았다. 현대 사회가 주는 많은 문제와 스트레스로 우울하게 사는 이 시대 사람들이 영적 안위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실한 설교, 생명있는 설교, 암울한 자신을 밝게 비춰줄 설교를 듣고 싶어한다.
목사의 설교는 일반 사람들에게 삶의 중요 지표가 되고 그들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칠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래서 한 교회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를 몇 년간 꾸준히 들으면 그런 삶을 살고 그 가치관에 따라 생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은 듣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설교를 한 것은 스물다섯 살 때였다. 당시 나는 신학생이었는데 담임 목사님이 몇 명의 신학생들에게 설교를 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설교하는 날 나는 그곳에 올라가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딱 해치우고 내려왔다. 13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설교할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는데 하는 족족 실패했다. 담인 목사님은 성경분석이 부족하다. 독서가 부족하다, 적용이 마음대로다 등등 지적을 했다.
어느 날 철야 설교를 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도 나를 측은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싫었다. 수술에 실패한 의사처럼 영혼을 치료하지 못한 의사가 된 듯 망연자실했다.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기가 힘겨워 나는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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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다. 앞에 있던 책장이 눈에 들어왔고 절로 책들을 훑게 됐다 그때 로이스 존스 목사 지음 <목사와 설교>라는 책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자리에 앉아 천천히 다시 읽어 가는데 눈앞이 환히 열리는 것 같았다.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교는 ‘주고받는(give and take)‘ 요소가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설교자들이 주고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듣는 대상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일방 통행식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겨운 훈계를 듣거나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구태의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설교하고 있네” 라고 비꼬아 말한다. 좋은 설교가 되려면 설교하는 사람이 먼저 즐거워진다고 했다.
책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좋은 설교자만이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멋들어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훌륭한 설교가 아니다. 설교는 내뱉는 말이 아니라 설교자의 삶 자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당장의 설교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두 가지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첫째는 좋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 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둘째는 어떻게 하면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를 사는 나에게 설교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었고, 기독교 선배들의 설교에 대한 기본을 알려주는 귀한 자산이 되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큰 축복이다.
“설교의 기술, 말의 기술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삶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하자.”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편협한 설교자가 되었을지 모른다. 일반 대중 강연자처럼 우스갯소리를 늘어 놓거나 감동적인 이야기에 성경을 가미해서 설교를 하는 우를 범했을지 모른다. 핵심이 빠진 그런 설교자가 될 뻔했다.
■ 나를 변화시키는 힘은 내 안에 있다.
◉ 노한균 :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0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사회발전학 석사학위, 경영학 박사학위
0 제 35회 행정고시 합격, 경제 관료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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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루넬 대학교 경영학 교수, 현재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0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표준 제정에 초기단계부터 한국 대표로 활동
1983년 대입 시험을 앞둔 전날 밤 나는 삶의 방향을 잃은 듯한 경함을 했다. (그게 누군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짜 놓은 삶을 그저 충실하게 따라온 나는, 그날 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편안함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매달렸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아무 의미없는 백지 상태로 돌아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난생 처음 갖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 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 경제학을 배웠고, 방향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은 그 후로도 문득문득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11월부터 상공부(지식경제부)에 근무하면서 바쁜 삶을 살았지만 이때도 가끔 방향 상실감이 머리를 들이밀곤 했다.
스티븐 코비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만난 것은 상공부에 입사한지 3년이 채 안된 1994년 6월, 태어나 처음으로 사직서를 쓴 날이었다.
“젊은 경제학도로서 합리성과 이상을 현실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으나 현실에 한계를 느낀다는 내용으로 장장 A4, 3장 분량의 사직서를 썼으나 같은 부처 선배의 만류로 가둬들여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들른 과천 청사 구내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왜 그날 코비의 책을 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책이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호기심이 발동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시에는 ‘성공하는’이란 수식어가 붙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나도 성공하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일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나는 코비의 책을 읽고 몇 가지 중요한 노력들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나는 우선 자기사명 선언서를 직접 써 보았다. 코비는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해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것은 그동안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코비의 책에서 상상력과 시각화를 활용한, 구체적인 제안을 접했을 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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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명 구체화에 바로 뛰어들 수 있었다. 그때 만들어진 사명은 아직도 내 인생의 소중한 가치로 남아, 가끔 길을 잃고 헤맬 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영국의 한 경영대학 교수로 일자리를 옮길즈음 우리 부부는 큰 아이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종잡을 수 없었다. 아이와의 갈등이 오래 가면서 집안에는 활기가 사라졌다. 그것은 아내와도 갈등을 빚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자기만의 담을 높이 쌓아가고 있었다. 그때 다시 읽은 코비의 책에서 만난 한 구절이 혼란스럽던 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모든 것은 두 번 창조 된다.”
집을 짓기 전에 머릿속으로 지을 집을 미리 그려보듯이 사람이 어떤 행동에 임할 때는 우선 내적 자세를 갖게 마련인데, 드러나는 결과가 좋지 못한 이유는 대개 내적 자세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것이란 믿음은 내가 바라는 관심의 영역이지만, 내 삶을 거기에만 맞출 경우 나는 불행할 수도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신이 원하는 관심의 영역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영향력의 영역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이에 대한 나의 관심이 내 영향력의 밖에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아이에게 자꾸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코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시간과 관심을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자 우리 가족이 겪은 어려움은 보다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을 넘어 삶의 중심에는 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책 속의 글들은 움직이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이것이 아마도 코비가 전하고자 했던 주도적 삶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단기적으로 많은 성과를 내더라도, 장기적인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활동은 공허하다. 그리고 그 장기적 목적을 정하는 것은 행동하고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목적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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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뜻이 아니다. 목적을 정하고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는 것도 행동하는 내가 할 일이다. 코비의 책은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열정이 없는 사람은 기회를 행운으로 바꾸지 못한다
◉ 이구용 : (주)임프리마코리아 상무이사, 출판 칼럼니스트
0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1995년부터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국내외 의 다양한 출판 저작물의 판권을 수출입,
0 현재는 소설가 김영하, 조경린, 한강, 신경숙 등의 작품을 소개히고 있음
대학교 1학년 말이었던 것 같다. 남들처럼 <뉴스위크>니 <타임>이니 하며 영어 잡지를 읽고 토플을 공부하는 게 재미없어졌다.
학교 앞 다방이나 카페를 찾아 차 한 잔 값의 자릿세를 내고영미 소설을 읽는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에드거 엘런포, 너새니얼 호손, 윌리엄 포크너, 셔우드 앤더슨 등의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 나갔다. 단편에 이어 점차로 장편소설까지 읽어나갔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 토마스 하디의 <비운의 주드>, 그리고 이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희극, 사극, 그리고 소네트까지.
이렇게 2년을 했다. 그러나 시간은 걸렸지만 작품 읽는 재미는 제법 쏠쏠 했다. 한 문장, 한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를 찾아내고 작가의 의도를 각각 나름대로 풀어 해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피력하는 것은 문학 읽기 재미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런데 어쩌다가 기회가 되어 동기생들과 함께 토플 문제를 풀어보면 나는 그들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오답도 더 많이 나왔다. 이거야 원.
그러는 가운데 어느새 3학년 겨울방학을 맞았다. 남들은 취직을 할 생각으로 열심히 토플 공부를 하는데, 나는 3년이 되도록 그 흔한 토플 책 한권 끝까지 마스터하지 못했으니 긴장감마저 들었다. 졸업 1년을 남겨두고 입대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학과 교수님을 찾아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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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다른 학생들은 모두 토플 공부를 하는데 저는 여태 그걸 한 권도 다 본 적이 없거든요.”
내 첫 질문이었다. 교수님의 대답은 이랬다.
“토플 같은 것으로 공부하지 말고 영문 소설을 읽는 게 어떨까. 한 줄 한 중 꼼꼼히 읽어가면서 모르는 단어 나오면 사전 찾아 노트에 정리도 하고 말이야. 내 생각엔 그게 가장 좋은 영어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교수는 그날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속>을 소개받았다.
이 작품은 커츠라는 백인이 고상한 사명을 띠고 아프리카 콩고 지역으로 들어가지만, 결국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의 노예가 되어가는 타락의 과정과 그곳 오지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실상들을 담고 있는데…….
나는 그날 주저할 것 없이 콘래드의 <어둠의 속>을 구입했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그 책부터 펼쳤다. 나는 속으로 입대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품을 다 읽어야지 은근히 다짐했다. 그날부터 그 책과 영어사전, 노트 한 권을 가방에 넣어 다니며, 틈만 나면 읽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결국 나는 그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27개월의 복무를 하고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
나는 곧바로 입대 전 다 읽지 못한 그 소설을 다시 읽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읽기를 마쳤다. ‘아아, 이렇구나. 이런 작품이니까…….’ 나는 그제야 이 작품을 추천한 교수님의 뜻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전 교수님의 지도하에 <조셉 콘레드의 소설에 나타난 제국의 언어>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한 학기 쉬면서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생뚱맞은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대학원 의 한 선배(지금 동종의 일을 하고 있는 김두환씨가 바로 그다)가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1년 정도만 일하고 다시 박사과정에 돌아오겠다는 속셈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그렇게 1995년 3월 16일 현재의 (주)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를 했고 지금까지 15년간 줄곧 이 일을 해 오고 있다. 결국 나는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속>을 좋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영미 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문학을 열심히 읽으며 그것들을 해외에 소개하는 에이전트가 되었다. - 2017. 8.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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