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정원

2017. 9. 28. 08:40독서후기

반응형

지혜의 정원

■ 이용범

0 1985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당선

0 창작집 : 그 겨울의 일지, 꿈 없는 날들의 긴 잠

0 장편소설 : 열한 번째 사과나무, 꼬마 성자 몽몽

0 인문교양서 : 1만 년 동안의 화두, 인생의 참스승 선비, 인간 딜레마

<시장의 신화 : 시장의 탄생> <시장의 신화 : 자유주의 신화>

등 30여 종의 저서

■ 머리말 : 지혜의 정원에서 부치는 초대장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삶의 최고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행복의 원천을 자아실현에서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쾌락, 또 다른 이는 물질적 풍요에서 찾기도 합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도 행복은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그중 빈농 출신인 에피쿠로스는 행복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 견줄 만한 사상을 내 놓은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에피쿠로스는 “밥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기본적 욕구만 충족되면 충분하고 그 밖의 불필요한 욕망을 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가 특히 강조했던 것은 ‘현재를 즐기는 삶’입니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도 사실 에피쿠로스 학파였던 호라티우스의 송가에 나오는 라틴어 시 구절입니다.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갈구하느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인 셈이지요.

- 1 -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입니다. 또 여전히 완벽한 정답지를 구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쳐 쌓인 이야기 가운데,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는 작은 이야기를 모아 담았습니다.

◉ 1부 행복의 씨앗

-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인간의 마음은 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관용에 의해 정복될 수 있다. “ -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 : 윤리학이라는 뜻>에서

■ 두려움 없는 사랑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콜베 신부는 1922년 <성모의 기사>를 창간했고, 1927년 판잣집에서 시작한 ‘성모의 마을’이라는 믿음 공동체를 전 세계에 세웠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체포되어 파비악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폴란드의 한 수도원에 있던 콜베 신부는 수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죽인다 해도 천국으로 가는 무료 여행권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죽음에 임해서도 우리는 저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성모마리아의 은혜를 빌어 줄 수 있습니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얼마 후인 1941년 2월 17일, 게슈타포를 태운 검은색 승용차가 한적한 수도원 앞에 멈춰 섰다. 젊은 수사가 달려가 수도원장인 콜베 신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콜베 신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게슈타포를 만났다.

콜베 신부는 다른 신부 네 명과 함께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해 5월, 콜베 신부는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그는

- 2 -

흡혈귀라는 별명으로 악명 높은 크로트가 조장인 14호에 수감되었다. 가톨릭 신부를 혐오했던 크로트는 기다렸다는 듯 갖가지 악랄한 방법으로 콜베 신부를 괴롭혔다.

크로트는 콜베 신부가 조금만 비틀거려도 그가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채찍으로 내려치거나 발길질을 했다. 신부의 몸은 늘 피투성이였다.

부상이 심한 콜베 신부는 보름 정도 병원에 있다가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상태로 다른 환자들이 있는 수용소로 옮겨졌다. 노동을 할 수 없는 그곳 사람들에게는 음식이 절반만 지급되었다. 콜베 신부는 가까스로 연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지급 되는 음식마저 노동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콜베 신부는 다시 14호 수용실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생활하던 포로 한 명이 탈출한 것이다. 14호 사람들이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한 명의 이탈자가 생기면 같은 수용실에 있던 포로 열 명을 ‘죽음의 수용실에 가두고 굶겨 죽이는 것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14호 수용실의 포로들은 연병장에 불려 나왔다. “어제 탈주한 놈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놈이 잡힐 때까지 너희들은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

포로들은 한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차려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뎠다. 몇 시간이 지나자 나이가 많거나 몸이 약한 사람들이 한 명씩 픽픽 쓰러졌다. 나치 병사들은 쓰러진 사람들을 끌어내 벽돌처럼 포개 놓았다.

오후 세시가 되자 간수들은 포로들에게 약간의 수프를 주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마지막 식사인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친 후 포로들은 다시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수용소 소장 프리치는 야간 점호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 그들 앞에 나타났다. 소장이 입을 열었다.

“도망친 놈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들 중 열 명은 죽음의 수용실에 가야 한다. 그러고 나서도 그놈이 잡히지 않으면 스무 명이 더 가게 될 거야.”

- 3 -

죽음의 공포가 지나갔다 호명된 열 명은 ‘아사(餓死) 수용실 앞에 섰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다 생을 마감해야 했다. 즉, 시체가 되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콜베신부였다. 소장이 콜베에게 총을 겨누었다.

콜베 신부는 침착한 태도로 소장 앞에 서서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을 대신해서 죽겠소.”

“누구를 대신한다는 말이냐.”

소장의 신경질 적인 질문에 신부는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신부가 가리킨 것은 전장에서 포로가 된 폴란드 병사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가족을 거느리고 있었고 밤마다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흐느꼈다.

소장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너는 도대체 뭘 하는 놈이냐?”

“하나님을 섬기는 사제입니다.”

“좋다 함께 가라.”

절차는 간단했다. 보좌관이 병사의 수인번호를 지우고 그 위에 산부의 수인번호 16670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신부를 포함한 열 사람은 아사 수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수용실에 들어가 옷을 벗자 곧이어 문이 닫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사 수용실에서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화답이라도 하듯 그 옆의 감방에서도 또 그 옆의 감방에서도, 가늘지만 우렁찬 성가가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죽음의 지하 감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성전으로 변했다. 콜베 신부는 사람들이 쓰러져 체처럼 누워 있을 때도, 물을 달라고 울부짖을 때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기도를 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이었다. 아사 수용실에서 살아남은 건 이제 네 사람뿐이었고 콜베 신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쇠약한 몸으로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았다.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곁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소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콜베 신부를 처리하기 위해 간수들이 수용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수용실의 구석에 앉아

- 4 -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한 간수의 손에 들린 주사기를 보자 신부는 말없이 팔을 내밀었다. 그 주사기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콜베 신부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얼굴은 맑게 빛났다.

“ 이 지상에서 우리는 한쪽 손으로만 일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가 더 이상 타락하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미끄러질 염려도 없고, 타락할 염려도 없습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두 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막시밀리안 콜베

■ 마호메트와 유대인

위대한 예언자 마호메트는 아침 일찍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산책 코스는 마을 밖 오아시스까지였다. 오아시스 까지 가려면 유대인 마을을 반드시 지나야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이슬람교가 태동하던 그때 아랍인과 유대인의 반목은 무척 심했다. 때문에 새벽마다 유대인 거리를 지나는 마호메트를 곱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한 유대인이 마호메트가 자신의 집 앞을 지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열고 쓰레기를 쏟아부었다. 마호메트가 화를 내면 한바탕 붙어 볼 속셈이었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열린 창문을 잠시 일별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뒤집어 쓴 쓰레기를 툭툭 털어내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유대인은 마호메트가 화를 내지 않자 더욱 약이 올랐다.

“저런 겁쟁이 같으니라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유대인의 쓰레기 세례는 한 달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호메트는 산책을 하다가 유대인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시간이면 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쓰레기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방문이 열려 있어 마호메트는 유대인 집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병이든 유대인이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 5 -

못하고 있었다. 그가 유대인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었다.

“왜 오늘은 쓰레기를 쏟지 않았습니까?”

병들어 누워있던 유대인은 마호메트의 말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유대인은 훗날 마호메트의 열렬한 제자가 되어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일에 앞장섰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 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 하여라. - 성경

■ 침묵의 힘

마하트마 간디가 펼친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인도 전역에서 사람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한 시크교도들은 간디의 정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종교 부흥 운동을 일으켰으며 성소(聖所)를 지키기 위해 영국과의 항전도 불사했다.

암리차르 근처의 성전에서 시크교도들의 평화적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교도들은 날마다 100여 명의 지원자를 선발했다. 선발된 사람들은 절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과 끝까지 저항할 것을 서약했다.

영국 경찰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시작되었지만 행렬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쓰러지고 나면 다음날 다시 100여명의 시위대가 찾아왔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질지언정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 몽둥이를 맞고 쓰러졌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친구이자 간디의 전기 작가 C. F. 앤드류스는 이 사건을 목격했다. 영국인 선교사였던 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들은 나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상기시켜 주었다. 고뇌를 통해 얻은 하나의 새로운 영웅주의가 이 지상에 태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정신의 싸움이!”

-로망 롤랑의, 마하트마 간디>에서 - 6 -

■ 악마의 섬에서 돌아온 신부

1899년 프랑스 어느 성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성당에는 성당 건물을 새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 애를 쓰는 뒤믈린이라는 신부가 있었다. 어느 날 신부는 가정 방문을 하려고 외출을 했다.

뒤믈린 신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성당 문지기가 달려와 고해성사를 청했다.

“신부님 제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한 할머니가 전 재산을 성당 건축비로 바친다고 가지고 왔는데 제가 그만 욕심에 눈이 멀어 그녀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문지기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부의 방에는 성당에서 신심이 깊기로 유명한 할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채 Tm러져 있었고, 신부가 확인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일에 크게 놀란 신부는 문지기에게 경찰에 자수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으라고 권면했다. 하지만 그는 도망가고 말았다.

곧 할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경찰이 들이 닥쳤고 경찰의 거듭되는 추궁에도 신부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고해성사는 사제 앞에서 신도가 하느님께 죄를 고하는 것이므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야했기 때문이다.

결백을 주장하지 못한 신부는 결국 법정에 섰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악마의 섬으로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파리의 한 빈민촌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한 한 노인이 이런 유언을 남겼다.

“25년 전 성당 살인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바로 범인입니다. 뒤믈린 신부님은 이 못난 인간의 자백을 고해성사라 생각해 끝까지 지켜준 죄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25년 전 성당 살인 사건의 전모가 이로써 밝혀졌고 뒤믈린 산부는 무죄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신부의 몸은 25년 동안의 중노동으로 이미 초죽음이 되었고,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성당은 텅비어 있었다. 뒤믈린 신부를 욕하며 떠났던 신자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된 뒤 신부의 얼굴을 보려고 하나 둘 성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7 -

뒤믈린 신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당을 등지고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죽음의 섬에서 돌아온 신부는 자신을 흠숭하는 신자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다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하나의 밝은 등불은 다른 수천 개의 등불에 불꽃을 옮겨 주어도 자신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보살이 수많은 중생을 보살의 길로 인도한다 해도 보리심을 향한 깨달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유마경>

■ 남의 밭에 거름을 주다

중국 양나라에 송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초나라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이었다. 당시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참외를 길렀다.

양나라 사람들은 참외밭에 물과 거름을 주며 열심히 보살폈다. 때문에 양나라에서 나는 참외는 모양이 예쁘고 맛도 좋았다.

반면에 초나라 사람들은 참외밭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초나라에서 수확한 참외는 모양이 신통치 않고 맛도 형편없었다. 어느 날 초나라 사람들이 국경을 몰래 넘어 양나라 사람들의 참외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쳤다.

양나라 사람들은 고을 현령 송취를 찾아갔다. 사람들이 말했다.

“우리도 똑같이 되갚아 주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송취는 말했다. “복수는 결국 화를 부를 뿐이오.”

송취는 그들을 만류하며 자신이 생각한 비책을 알려주었다. 양나라 사람들은 어둠을 틈타 국경을 몰래 넘었다. 그리고 초나라 사람들의 참외밭에 물과 거름을 듬뿍주고 돌아온 것이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얼마 후, 초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깊은 뜻을 알고 얼굴을 붉혔다. 그 후 두나라에는 평화와 웃음이 찾아왔다. - 유향, <설원>

* 유향은 전한 말기의 학자. <설원>은 그의 저서임

- 8 -

■ 아리스토텔레스와 페리클레스

고대 아테네의 장치가 아리스테이데스는 올림픽 경기의 꽃인 마라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마라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플라톤이 “아테네에서 머리를 숙일 수 인물은 오직 한 사람 아리스테이데스 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지참금이 없어 두 딸을 시집보내지 못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청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아테네에는 공공에 해를 끼치는 위험인물을 뽑아 추방하는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한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도자기 조각에 각각 추방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었는데 이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은 국외로 추방되어 10년 동안 아테네로 돌아올 수 없었다.

어느 날 도편추방제 투표가 있는 날이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광장 한 구석에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때 글을 모르는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여기에다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적어주시겠습니까?”

깜짝 놀란 아리스테이데스가 그에게 되물었다. “왜요? 그가 당신에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어딜 가도 그 사람 얘기뿐이거든요. 정의의 수호자, 정의의 수호자! 이젠 그 소리는 듣기도 싫어요.”

아리스테이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가 내민 도자기 조각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그리스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그는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드물게 철학과 예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페리클레스가 출근을 하던 길이었다. 한 남자가 그의 뒤를 따라오며 욕설을 퍼부었다.

집으로 돌아 올 때도 아침의 그 남자가 다가와 또 욕설을 퍼부었다. 페리클레스는 조금도 피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 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문득 뒤돌아서서 하인에게 말했다.

“길이 어두우니 횃불을 밝혀 저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주게.”

<플루타르크영웅전>

- 9 -

“사랑은 그 무엇보다 사람을 현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만이 인간과 사물의 본질에 대해, 또 이를 위해 무엇을 행할 지 가장 올바른 방법을 통찰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가장 현명한 길이 무엇인가 라고 묻기보다는 가장 깊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낫다.

- 칼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텃밭과 베틀을 버리다

어느 날 중국 노나라의 재상 공의휴의 밥상에 집 앞 텃밭에서 정성스럽게 키운 채소 한 접시가 올랐다. 채소는 텃밭에서 갓 딴 것이라 아주 싱싱하고 맛있었다. 채소를 맛본 그가 하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집 앞 텃밭을 모두 없애버려라.” 하인들은 채소가 맛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텃밭을 모두 없앴다.

하루는 공의휴가 외출했다 돌아오니 하녀가 베를 짜고 있는데 한눈에도 그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베를 확인한 그는 이 하녀를 집에서 내보내고 베틀은 불살라버려라.“

사람들은 공의휴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겼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한 사람이 그 이유를 물었다.

“대감의 텃밭에서 자란 채소는 맛있기로 소문이 났고, 하녀의 베 짜는 솜씨는 아주 훌륭했는데 무엇 때문에 텃밭을 없애고 하녀를 내보냈습니까?”

공의휴가 대답했다.

“나는 이 나라의 재상이요. 먹고 살 만큼의 녹봉을 나라에서 받고 있지요. 그런데 채소를 사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채소를 사지 않고 옷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베를 짜서 옷을 해 입는다면 농부나 베를 짜는 사람은 어디에서 돈을 벌 수 있겠소.”

- 사마천 <사기>

■ 원수와 친구 사이

어느 날 중국 위나라 문후가 해호에게 물었다.

“서하 지방을 지킬 태수 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누가 좋겠소?”

해호가 대답했다.

- 10 -

“형백류 라는 사람이 적임자입니다.

임금이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

“임금님께서는 제게 적임자를 물으셨지 원수가 누구인지 물으신 건 아닙니다.” 임금은 속으로 해호의 도량에 크게 감탄하며 형백류를 서하의 태수로 삼았다.

형백류는 뜻밖에도 원수인 해호가 자신을 천거한 것을 알고 해호를 찾아가 사죄했다. 그걸 본 해호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를 원수로 여기는 건 나의 사적인 일이고, 태수 임명은 공적인 일이오, 그러니 그대가 아직 나의 원수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 유향 <신서>

.

■ 고백과 용서

위인이라고 해서 어린 시절에 모두 착하고 비범한 행동만 했던 건 아니다. 인도의 위대한 사상가 간디의 어린 시절은 작은 범행들로 얼룩져 있었다.

간디는 열두 살 때 담배를 사려고 하인의 옷에서 동전을 훔쳤고, 15세에는 육식에 빠져 형의 팔찌에서 금 한 조각을 몰래 떼어 팔아먹었다.

간디는 도둑질 했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병상의아버지에게 밤새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아버지가 편지를 읽는 동안 간디는 안절부절 못했다. 호통과 질책을 각오하고 아버지가 편지를 다 읽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편지를 다 읽은 아버지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말없이 아들의 편지를 찢었다.

그 때 목격한 아버지의 눈물이 간디의 삶을 변화시켰다. 눈물과 사랑이 그 어떤 벌이나 질책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후일 간디는 이렇게 고백했다.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화살을 맞아본 자만이 그 힘을 알 수 있다.“

간디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유복한 삶을

- 11 -

포기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서 인종 차별과 인도인 이주민, 그리고 노동자들을 위해 20년 넘게 헌신했다.

1920년, 간디는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누는 삶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농업 공동체로 톨스토이 농장을 만들었다. 어느 날 그는 공동체의 학생 두 명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디는 깊은 고민 끝에 단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간디는 7일간의 단식과 네 달 반 동안 하루 한 끼만 먹는 참회 단식에 돌입했다. 한 동료가 간디를 말리러 왔다가 그의 고행에 동참했다.

그의 참회단식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체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죄가 얼마나 비참한 행위인지 모두 알게 된 것이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하던 날에도 간디는 단식 중이었다. <간디 자서전>

■ 자식을 사랑하는 법

공자에게 백어라는 아들이 있었다. 공자의 제자 진항은 배움에 욕심이 많아서 혹시 스승이 아들에게만 뭔가 특별한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어느 날 진항이 백어에게 물었다.

“혹시 스승께서 자네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는 모습을 보시고는 시를 배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번은 저에게 예를 배웠느냐고 하셨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 앞에 나설 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따로 들은 것은 이 두 가지뿐입니다.

진항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했다.

- 12 -

“한 가지를 물었다가 세 가지를 알게 되었구나. 시에 관한 것을 알았고, 예에 관한 것을 알았고, 또 군자가 자신의 아들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공자 <논어>

■ 어머니와 꽃다발

한 청년이 모처럼 2주 간의 휴가를 얻었다. 그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가서 즐거운 파티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청년은 차에 짐을 모두 실은 뒤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 오늘부터 보름 동안 휴가예요. 친구들이랑 바다에 가서 놀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얘야, 집에는 언제 올 거니?” 청년은 가볍게 대꾸했다.

“휴가 끝나면 갈게요.”

그러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청년은 자동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던 청년은 오늘이 어머니의 생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얘야 집에는 언제 올 거니?’

청년은 그제야 어머니가 아까 왜 그렇게 물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작은 마을 앞을 지나다가 도로변 꽃집에 차를 세웠다.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대신 어머니에게 예쁜 꽃다발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꽃집 앞에 꼬마가 울면서 서 있었다.

“얘야 무슨 일이니?” 꼬마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오늘 우리 엄마 생일이거든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장미 다섯 송이를 선물하고 싶은데 10 센트로는 살 수가 없대요.”

꼬마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혼자 쓸쓸히 시골집을 지키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청년은 꽃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말했다.

“저 꼬마가 원하는 만큼 장미꽃을 주세요. 돈은 제가 낼 테니까요.”

주인이 꼬마에게 장미 다섯 송이를 건네자 꼬마는 청년과 꽃집 주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꽃집 주인에게 꽃을 소포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서는 청년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는 어머니의 생일을 늦지 않게 기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13 -

자동차가 마을 앞 공동묘지를 지날 때였다.

조금 전 꽃집에서 보았던 꼬마가 작은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청년은 차를 세우고 공동묘지로 다가갔다. 꼬마가 청년을 보고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계신 곳이에요. 엄마가 아저씨에게 무척 고마워 할 거예요.”

꼬마의 말을 들은 청년은 가슴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청년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갑자기 자동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아까 들렀던 꽃집으로 달려갔다. 꽃집 문을 벌컥 연 청년은 주인에게 물었다.

“아까 제가 부탁한 꽃다발 벌써 보냈습니까?”

“아직 보내지 못했는데요.”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 꽃다발 그냥 주세요. 제가 직접 가지고 갈 겁니다.”

- C. W. 맥콜 <어머니를 위한 장미>

■ 웰링턴 장군의 담뱃갑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웅으로 추앙된 웰링턴 장군은 영국 수상 자리에 올랐다. 그는 매년 6월이면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승전 기념일 파티를 열었다.

어느 날 파티에서 기분이 고조된 웰링턴은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고가의 담뱃갑을 자랑했다. 그런데 파티도중 확인해 보니 담뱃갑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모두 검사합시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초라한 옷차림을 한 나이 많은 퇴역 장병이 큰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나라의 명예를 위해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호주머니를 검사한다는 것은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웰링턴은 그렇게 하자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담뱃갑을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주머니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파티는 파장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 14 -

이듬해 다시 승전 기념일 파티가 열렸다. 만찬 준비를 하던 웰링턴은 옷장에서 지난해 입었던 군복을 입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담뱃갑이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웰링턴은 지난해 만찬장에서 소지품 검사를 극구 반대하던 퇴역 장병의 얼굴을 떠올렸다. 웰링턴은 백방으로 수소문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낡고 비좁은 다락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지난해 만찬장에서 결례했던 일을 사과하러 왔습니다.”

웰링턴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늙은 퇴역 장병은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아닙니다.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웰링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담뱃갑을 훔치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소지품 검사를 반대하셨습니까?”

그 말에 퇴역 장병은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때 제 주머니에는 만찬장에서 몰래 챙긴 음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며칠째 굶고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웰링턴은 그 말에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그러다 문득 그를 와락 껴 안았다.

“용서하시오. 모든 게 나이 불찰이었소.”

그후 웰링턴에 의해 참전 용사들을 위한 복지 특례법이 제정되었다.

■ 군인과 아버지

“저는 군인이라는 사실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습니다.

군인은 건설하기 위해서 파괴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건설하려는 사람입니다.

군인은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생명과 창조를 잉태합니다.

죽음의 군대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생명의 군대는 그보다 더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요.

- 15 -

제가 가진 작은 소망중 하나는 제가 세상을 떠난 뒤 제 아이가 저를 전투 지휘관으로서가 아니라 매일 함께 기도하던 아버지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 1943년 연합국의 태평양 공격을 이끌던 중

‘올해의 아버지’로 선정된 맥아더 장군의 수상소감

■ 자아의 감옥

너무나 강한 자아는 자신에게 감옥이 된다.

인생을 즐기려면 이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자아의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만이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줄 때

최상의 사랑에 이를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 시인과 철학자의 사랑

◈ 시인 하이네

독일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하이네는 어느 날 프랑스 파리의 한 신발 가게에 들렀다가 그곳 점원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아름답고 명랑한 스무살의 아가씨인 그녀의 이름은 마틸다였다. 하이네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매일같이 신발 가게를 들락거렸다. 가난한 시인의 신발장에는 새 구두가 하나씩 늘었다. 어느 날 하이네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흐르는 내 눈물은 / 꽃이 되어 피어나고 /

내가 쉬는 한숨은 / 노래되어 울린다

그대 나를 사랑하면 / 온갖 꽃을 보내 드리리 /

그대의 집 창가에서 / 노래하게 하리라

오십 켤레 째 구두를 사러간 날, 하이네는 마틸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 16 -

그녀가 병이 나서 가게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 하이네는 열이 펄펄 끓는 그녀를 지극정성을 간호했다.

이튿날 아침, 마틸다는 간병하다 지쳐 침대 발치에 쓰러져 있는 하이네를 발견했다. 그 모습에 감동한 그녀는 시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수많은 사람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부터는 당신에게 슬리퍼를 신겨 주겠어요.”

1841년 하이네는 마틸다와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함께했다.

◈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평소 칸트가 호감을 품고 있던 한 여성이 칸트에게 청혼을 했다. 칸트는 기쁘면서도 한편 고민에 빠졌다.

“시간을 좀 주십시오. 깊이 생각하고 나서 답하겠습니다.”

그날 이후 칸트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가서 사랑과 결혼에 관한 책을 모조리 찾아 읽고, 결혼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사랑과 결혼에 대한 분석을 끝낸 칸트는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에게 청혼했던 여자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 없었다. 대신 그의 어머니가 칸트를 만났다.

“너무 늦게 오셨네요. 내 딸은 그동안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관중은 집이 가난해서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포숙 몰래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포숙은 이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관중의 몫을 더 챙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나보다 가난하지 않은가?”

포숙은 관중이 장사에 번번이 실패해도 단 한 번도 깎아 내리는 일이 없이 용기를 주었다.

- 17 -

“세상일이란 다 그런 것일세. 장사란 잘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지 않은가?”

또 관중은 세 번이나 관직에 올랐지만 세 번 모두 주군의 눈밖에 나서 쫓겨났다. 그때도 포숙은 친구를 위로하며 말했다.

“자네가 덕이 없어서가 아닐세. 아직 적당한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관중이 전쟁터에 나가 세 번이나 도망쳤을 때에도 포숙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비겁해서 그런 것이 아닐세. 자네는 모셔야 할 노모가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관중을 비난할 때마다 포숙은 관중을 감쌌다.

제나라에는 양공의 뒤를 이을 사람으로 규와 소백이 있었다. 둘 다 서출이었는데 둘 중 한 사람이 제나라 왕위를 잇게 되었다. 친구였던 관중과 포숙, 소홀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맏아들 규 보다는 차남 소백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홀이 먼저 신의 뜻을 밝혔다.

“우리 셋 중 한 사람이라도 떠나면 뜻을 이룰 수 없네. 소백은 차남이라 왕위에 오르기 힘드니 차라리 우리 셋이 함께 규를 섬기면 제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관중이 나섰다.

“나는 그렇게 생하지 않네. 백성들은 규의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니 우리 중 한사람은 소백을 섬기는 것이 좋을듯하네. 결국 규와 소백 중 한사람이 왕위에 오를테니, 그때 우리가 힘을 합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포숙이 소백을 섬기고, 관중과 소홀이 함께 규를 섬기게 되었다.

내란 등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소백이 제나라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춘추 5패 중의 한 사람인 환공이다. 환공이 공을 세운 포숙을 재상으로 임명하려하자 포숙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천하의 패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관중이 아니면 안 됩니다.”

환공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관중은 내 원수요. 내게 화살을 쏜 자가 아닌가?”

포숙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관중은 자신이 섬기는 사람을 위해 폐하께 화살을 쏘았습니다. 만일 그를

- 18 -

얻으신다며 앞으로 그는 폐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쏠 것입니다.”

환공은 포숙을 재상에 앉히려 했으나 그는 끝내 거부했다. 환공은 할 수 없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관중이 환공을 모시고 재상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후 병이 들었을 때 환공이 포숙에게 물었다.

“그대의 후임으로 포숙을 임명하는 것이 어떤가?”

하지만 관중은 반대했다. 친구를 시기해서가 아니라 포숙의 사람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숙은 군자 중의 군자였기 때문에 간신들을 미워하고 백성을 제 몸처럼 사랑했다. 그런 친구가 재상이 되면 신하들과 사사건건 대립하느라 말년이 불행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관중이 환공에게 한 말을 간신 역아에게 고자질 했다. 역아는 즉시 포숙을 찾아가 일러바쳤다.

“관중이 재상이 된 것은 모두 당신 덕분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포숙이 대답했다.

“만일 내가 재상이 되었다면 이 나라 간신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오.”

역아는 가슴이 뜨끔하여 물러났다. 훗날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내 친구 포숙이었다.”

■ 타인을 사랑하는 법

어떤 사람이 한나라 문제에게 천리마를 선물하고자 했다. 문제는 이를 사양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민심을 살피고자 순행할 때 하루에 30리를 달렸고, 전쟁에서 적과 싸울 때 하루에 50리를 달렸다. 또 내가 수레를 타고 갈 때는 모든 수레가 내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제 내게 천리마가 있어 하루에 천 리를 달린들 홀로 어디를 갈 수 있겠는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는 아흔이 가까워진 나이에도 방에 들어앉아 하루 종일 책을 보는 날이 많았다.

- 19 -

하루는 뜰에 복숭아가 벌겋게 익었는데 이웃집 아이들이 몰래 들어와 복숭아를 따 먹느라 소란이었다. 아이들이 극성을 부리자 황희는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다 따가지는 말아라. 나도 맛 좀 보자꾸나.”

끼니 때 밥 거르는 아이를 보면 그는 자기 밥을 덜어 내주었다. 하루는 황희가 밥상을 받았는데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이 맨발로 달려들어 수염을 잡아 당기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다. 그래도 황희는 “아야, 아야!‘ 아픈 시늉만 할 뿐, 아이들을 꾸짖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모두 하인의 자식이었다.

성현, <용재총화>

땅을 갈거나 씨앗을 심고, 질그릇을 굽거나 고기 잡는 이에서부터 한 나라의 왕에 이르기까지 남에게 얻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남에게 얻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곧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과 같으니, 군자는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2부 지혜의 이파리 - 오늘을 누리는 삶

■ 구두쇠의 유서

어느 구두쇠가 고리대금으로 엄청난 돈을 모았다. 그에게는 평생 편히 먹고 살 수 있는 넒은 땅과 대 저택 그리고 엄청난 재물이 있었다. 그는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너무 열심히 일했어. 이제부터는 돈도 펑펑 쓰고 안락한 생활을 누려야지.”

하지만 그의 결심이 너무 늦었는지 이를 실행으로 넘기기도 전에 저승사자가 찾아오고 말았다. 저승사자를 보자 구두쇠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일만 하느라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는데. 재산을 그대로 두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분했던 것이다.

구두쇠는 저승사자를 붙들고 애원했다.

“제발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껏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

- 20 -

은 옷을 입지 않고 오직 일만 했습니다.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저승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두쇠는 다시 조건을 제시했다.

“더도 덜도 말고 사흘만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제가 가진 재산의 3분의 1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틀만 시간을 주십시오. 제 재산의 2/3를 드리겠습니다.

역시 저승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구두쇠는 울면서 저승사자에게 매달렸다.

“그럼 제 재산을 다 드릴 테니 딱 하루만 주십시오.”

하지만 저승사자는 냉담했다. 구두쇠는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럼 제게 글 한 줄 쓸 시간이라도 주시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선심 쓰듯 그에게 한 줄 쓸 시간을 허락했다.

구두쇠는 펜을 찾을 시간도 없어서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다.

“사람들아 자신의 인생을 살라. 나는 300만 냥이나 갖고 있으면서 단 한 시간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

- 이드레스 샤흐, <수피의 가르침>

가난은 일시적인 결함이지만 지나친 부는 영원한 질병이다. 자신의 필요를 넘어서는 참된 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 칼릴 지브란, <아홉 가지 슬픔에 관한 명상>

■ 대왕을 가르친 족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정복 후 동방을 정벌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가 조그만 마을에 도착해 부족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이나 오락과 거리를 두고, 인생의 즐거움은 모르는 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집 앞에 무덤을 파고 매일 참배했으며 땅에서 나는 채소만 먹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마을의 족장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은 왜 집 앞에 무덤을 파는가?”

족장이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 21 -

“죽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은 늘 죽음과 내세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현세에 대한 집착과 번뇌가 사라지게 되지요.”

“그럼 왜 체소만 먹고 사는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내장을 산짐승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을 짐승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먹는 즐거움이란 결국 혀끝과 목구멍의 사치일 뿐입니다.”

족장은 두 개골 두 개를 꺼내 그 중 하나를 알레산드로스 앞에 내 밀었다.

“왕이시여! 이 해골이 누구의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글쎄.”

족장은 해골을 쓰다듬으며 “이것은 옛날 최고의 영광을 누리고 백성을 학대하던 왕의 해골입니다.”

“그런 이 두 번째 해골은 누구의 것인가?”

“이것은 가장 현명했던 왕의 해골입니다. 그는 신하와 백성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했습니다. 그 역시 죽음에게 영혼을 빼앗겼으나 천국을 영원한 집으로 삼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족장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가야 할 것은 해골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페르시아와 동방을 점령하고 그 영토를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달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말없이 족장을 바라보았다. 족장의 얼굴은 몹시 평온했고 눈빛은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족장에게 경의를 표한 뒤 조용히 그 마을을 떠났다.

- <아라비안나이트>

■ 거리의 철학자

기원전 5세기경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전 재산은 호박으로 만든 그릇 하나와 누더기 한 벌 뿐이었다. 그는 낮이면 거리를 쏘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밤이 되면 구석진 곳 아무데나 굴러다니는 나무통 속에 몸을 뉘었다. 그는 환한 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다가 사람들이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현자를 찾고 있다오.”

- 22 -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구걸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때, 한 어린이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을 보고는 무릎을 치며 외쳤다.

“이제 보니 밥그릇도 필요 없잖아!”

그는 호박으로 만든 그릇을 멀리 던져 버렸다.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동시대에 살았다. 그 무렵 알렉산드로스는 동방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의 명성을 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날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찾아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만은 왕을 알현하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는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왔다. 그때 디오게네스는 웃통을 벗고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초라한 행색을 하고도 태평하기 짝이 없는 디오게네스의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다.

내일이면 다시 세상의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자신보다 아무 것도 없는 그가 더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가난한 철학자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싶어 물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디오게네스는 잠시 알렉산드로스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당대 최고의 권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햇살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알렉산드로스를 바라보더니 이내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비켜 주시오. 당신이 햇살을 막고 있지 않소!”

기가 막힌 알렉산드로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처럼 살고 싶군.”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대꾸했다.

“난 다시 태어나더라도 당신처럼 살기는 싫소.”

<플루타르크 영웅전>

천 칸이나 되는 큰 집이라도 잠을 자는 자리는 여덟 자 뿐이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나 되어도 하루에 먹을 것은 곡식 두 되 뿐이다.

- 추적, <명심보감>

- 23 -

■ 돈보다 소중한 것

어느 마을에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살고 있었다. 그는 늘 나무망치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일했다. 그의 이웃에는 돈 많은 은행가가 살고 있었다. 은행가는 늘상 바빴다. 그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고 잠시 눈을 붙인 다음 부리나케 일어나 일터로 갔다.

은행가는 늘 잠이 모자랐는데, 새벽마다 들리는 구두 수선공의 노랫소리 때문에 일찍 잠을 깨는 날이면 하루가 더 피곤했다.

참다못한 은행가가 구두수선공을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거만한 태도로 물었다.

“당신은 일 년에 얼마 정도를 벌고 있소?”

구두 수선공은 그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였다.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죠. 전 돈을 모으거나 얼마를 벌었는지 계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날 번 돈으로 그날 생활하니까요.

“그래도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 대강은 알지 않소?”

“많이 버는 날도 있고 조금 버는 날도 있죠. 하지만 많이 벌면 많이 먹고 적게 벌면 조금만 먹으면 되니까 문제될 건 없어요. 곤란한 건 노는 날이지요 수입이 없으니까요. 그런 날은 성당에 갑니다.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어요. 배는 고픈데 사제의 설교는 길고, 그는 늘 성인들에 대한 이야기만 하거든요.”

은행가는 그의 선량함과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구두 수선공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내가 자네에게 돈을 좀 주겠네. 앞으로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걸세. 단 새벽에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는 데 방해가 되거든.”

구두 수선공은 은행가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는 은행가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는 고민 끝에 벽에 구멍을 뚫고 돈을 숨겼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구두 수선공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부자인 체하나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가난한 체하나 재물이 많은 자가 있다.

- 24 -

재산은 사람의 목숨을 보장해 주지만

가난한 이는 협박을 들을 일도 없다. -<성경>

■ 술지게미와 쌀겨

후한 시대에 송홍은 후한의 첫 왕자인 광무제가 즉위한 뒤 대사공의 벼슬에까지 오를 만큼 인품과 덕망이 높았다.

광무제에게는 과부가 된 호양이라는 누이가 있었다. 광무제는 누이를 안타깝게 여겨 좋은 신랑감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는 호양공주를 덕망이 높은 송홍과 맺어주고 싶었지만 송홍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가 공주를 불러 송홍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슬쩍 떠보았다.

“대사공 송홍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광무제의 질문에 공주는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그는 얼굴도 위엄이 있고 덕까지 갖추고 있어 그를 능가할 신하가 없습니다.”

누이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황제는 그날 밤 궁궐로 송홍을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 놓고 송홍의 인품을 실험해 보았다.

“사람의 신분이 상승하면 친구를 바꾸고, 형편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오. 이는 사람의 본성이 다 그렇기 때문 아니겠소?”

그러자 송홍이 대답했다.

소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일수록 잊어서는 안 되며, 술 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쫓아내지 않는다’는 말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송홍이 후처를 얻을 생각이 전혀 없음을 알아차렸다. 송홍을 보내고 나서 황제는 난처한 얼굴로 공주에게 말했다.

“일이 여의치 않으니 어찌해야 하겠소?”

‘조강지처’라는 고사성어는 그렇게 생겨났다.

- 이한, <몽구>

사랑 어린 푸성귀 음식이 미움 섞인 살찐 황소고기 보다 낫다. - 성경

- 25 -

■ 열자의 혜안

기원전 400년 경 전국 시대의 사상가 열자는 도가를 연구하여 뛰어난 경전까지 남긴 사람이다. 그는 정나라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이름 없는 선비였는데, 마을 사람들조차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열자가 몹시 곤궁하여 얼굴에 굶주린 기색이 완연할 때의 일이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이 정나라의 군주인 자양에게 가서 말했다.

“열자는 끊임없는 공부로 자신의 세계에서 도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데 농사짓는 솜씨는 서툴러 끼니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을 예우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날 것입니다.”

자양은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열자에게 곡식 한 자루를 보냈다 하지만 열자는 그 곡식을 돌려보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가 탄식했다.

“도를 얻은 사람의 아내기 되면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끼니도 잇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다행히 당신의 이름이 늦게나마 알려져 군주께서 곡식을 보내 주었는데 그것마저 받지 않으시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열자가 아내에게 말했다.

“자양은 내가 도를 얻었음을 알고 곡식을 보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듣고 보낸 것이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남을 평가하는 사람은 남을 탓할 때도 반드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이오. 그런 사람이라면 나중에 남의 말만 듣고 죄를 뒤집어 씌우고도 남으니 그가 보낸 곡식은 받지 않는 것이 옳소.”

아내의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열자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백성들이 난을 일으켰다. 성난 백성들은 자양을 잡아 죽이고, 나라로부터 녹을 받은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열자의 부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편의 현명한 판단을 고마워했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자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에 있다. 그러니 올바르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 구름과 같다. - 공자 <논어>

- 26 -

■ 명의 화타와 두 장수

화타는 중국 후한 말 모든 방면의 의술에 뛰어난 의사로 유명한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음의 두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1. 관우

관우가 조조의 아우 조인과 전투를 하다가 오른쪽 팔에 독화살을 맞았다.

그의 상처는 갈수록 악화되어 나중에는 살이 썩고 고름이 쏟아지고 독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관우가 고통을 참으려고 부하인 마량과 바둑을 두고 있을 때 화타가 찾아왔다.

화타가 상처를 보고 말했다. 수술을 하려면 먼저 기둥을 세우고 큰 쇠고리를 박을 겁니다. 그리고 그 쇠고리에 팔을 단단히 묶고 얼굴을 천으로 가려야 합니다. 그러고선 칼로 상처를 발라내고 뼈를 드러낸 후 독기를 긁어내야 합니다. 문제는 고통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그까짓 일에 기둥과 쇠고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소. 내가 바둑을 두는 동안 수술을 하시오.” 관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화타가 수술을 하는 동안 관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2. 조조

조조는 자주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다. 보다 못한 신하들이 명의 화타를 천거했다. 화타가 조조를 진맥한 뒤 말했다.

“대왕의 머리가 아픈 것은 뇌에 풍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병이 뇌수에까지 뻗쳐 있으니 탕약으로서는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온몸을 마취시키는 마패탕을 드시고 난 후 뇌수에 고여 있는 풍을 씻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조가 화타를 꾸짖었다.

“네 놈이 나를 죽일 작정이로구나!”

성질이 급한 조조가 화타를 옥에 가두었다.

화타는 죽을 때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옥졸을 불러 말했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 하지만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비법이 적힌

- 27 -

<청낭서>를 전수할 제자를 얻지 못한 것이 유일한 한이오. 내가 편지를 써줄 테니 그대는 우리 집에 가서 그 책을 받아 오시오.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의술을 가르쳐 세상에 전하게 하겠소.“

옥졸은 화타의 집으로 달려가 청낭서를 가져왔다. 화타는 그것을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정독한 뒤 옥졸에게 맡겼다. 열흘 후 화타는 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옥졸이 화타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순간 옥졸은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고 말았다. 아내가 불쏘시게로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청낭서였던 것이다.

책은 이미 다 타고 마지막 두 장만 남아 있었다.

옥졸이 몸을 부르르 떨며 아내를 꾸짖었다.

그러자 아내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딴 걸 배워서 뭘 해요?”

“그딴 거라니! 나도 화타 같은 천하의 명의가 되어 우리 집안을 일으킬 수도 있었는데!”

남편의 말을 듣고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요 하지만 화타가 옥에서 비참하게 죽은 것도 명의였기 때문이 아닌가요?”

- 나관중 <삼국지>

2017. 9. 27

- 28 -


반응형

'독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무 살 아들에게  (0) 2017.10.13
지혜의 정원(2)  (0) 2017.10.08
언어의 온도(2)   (0) 2017.09.22
언어의 온도   (0) 2017.09.22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0) 2017.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