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 소리

2017. 11. 7. 11:22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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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

■ 정민 (鄭珉)

0 충북 영동 생, 한양대 국문과, 한양대 교수, 한국한문학 전공

0 한시 미학 산책, 정민 선생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박지원의 문예 미학을 다룬 책), 새와 문학,

책 읽는 소리, 미쳐야 미친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죽비 소리를 듣고 싶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 이 책에는 선현들이 쓴 글의 원문이 한문으로 예시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 합니다.

■ 책 머리에

옛글을 읽다가 이따금 쾌재의 문장과 만난다. 어떤 때는 너무 기뻐 방안을 왔다 갔다 한다. 나른하던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마음속에 새기고 싶어 하나하나 갈무리해두었다. 기약하지 않았는데 책 한권이 되었다. 중국 사람의 금언을 모은 것도 적지 않다.

선인들의 옛 거울에 비춰 내 삶의 좌표를 가다듬는 일, 달아나기 쉬운 마음을 그때그때 붙잡아 두는 일, 얼룩을 깨끗이 닦아 본체가 늘 빛나게 하는 일. 농부의 마음으로 갈고 다듬고 살펴야 겠다. - 정민 -

◉ 회심(會心) : 마음에 흐뭇하게 느낌

회심의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 사물과 나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이 무너진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된다. 아무 거칠 것 없이 통쾌하다. 변한 것은 없는데 하나도 같지 않다.

■ 개심(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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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초 하나 바위 하나가 별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보았지만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리지 않았으나 그린 것이나 진배없을 따름입니다.

- 조희룡(趙熙龍, 1789~1866) 한와헌제화잡존 (漢瓦軒題畵雜存 )

누군가 축수(祝壽)의 그림을 청해 왔던 모양이다. 그리기는 해야겠는데 흥이 오르지 않는다. 공연히 먹을 갈아 붓을 끼적거려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붓하고 종이만 있으면 저절로 글씨가 써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아는 사람들은 이 마음을 잘 모른다. 흥이 돋아 붓끝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 삽시간에 몇 장이고 끝마칠 그림이, 몇 날 며칠을 끙끙대도 난초 하나 바위 하나 그릴 수가 없다. 오죽 괴로웠으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했을까? 결국 그림 한 장 그리지 못했지만 나는 벌써 수십 번도 더 그린 셈이니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예술을 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 인생을 산다는 것은 불현듯 다가오는 그 짧은 격정의 순간을 위한 기다림이도 하다.

■ 득음(得音)

송실솔은 젊어서부터 노래를 배웠다. 소리를 얻게 되자 세찬 폭포가 웅장하게 내리 찧어 바위를 울리는 곳으로 가서 날마다 노래를 불렀다. 한 해 남짓 되자 노래 소리만 있고, 폭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북악산 꼭대기로 갔다. 아득한 허공에 기대어 넋을 놓고 노래했다. 처음에는 소리가 갈라져서 한 곳으로 모을 수가 없었다. 한 해쯤 되자 돌개바람도 그 소리를 흩을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실솔이 방안에서 노래하면 그 소리가 들보 위를 맴돌았고, 앞이 터진 마루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대문가에 있었다. 배 위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돛대 위에 있었고, 골짝 시냇가에서 노래하면 소리가 구름 사이로 떠 돌았다.

- 이옥(李鈺, 1760~1812). <가자 송실솔전 歌者宋蟋蟀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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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실솔, 아마도 당시에는 송귀뚜리로 불렸을 명창이 소리공부하던 이야기다. 한 곳만 들이파면 어떤 철옹성도 뚫을 수가 있다. 하지만 외곬으로 빠지기 쉽다.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툭 터진 허공은 철옹성보다 더 뚫기가 어렵다.

그는 처음엔 귀를 멍멍하게 하는 폭포 앞에 서서 그 뚫을 수 없는 소리의 벽과 싸웠고. 그 다음엔 툭 터진 허공과 싸웠다. 소리와의 싸움은 소리로 이기지만 허공과의 싸움은 그렇지 않다. 집중이 있어야 확산이 된다.

나의 공부는 어떤가? 이것저것 욕심 사납게 벌여 놓기만 하고, 도무지 수렴할 줄 모른다. 갈라지고 탁한 소리만 낸다. 그것이 늘 부끄럽다.

■ 득의(得意)

새의 즐거움은 깊은 숲 속에 있고, 물고기의 즐거움은 깊은 물에 있다. 물고기가 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새까지 깊은 못으로 옮겨서도 안 된다. 새가 숲을 사랑함을 가지고 물고기마저 깊은 숲으로 옮겨서도 안 된다. 새로써 새를 길러 숲 속의 즐거움에 내맡겨두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를 알아 강호의 즐거움을 제멋대로 하도록 놓아두어, 한 물건이라도 있어야 할 곳을 잃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이 제각기 마땅함을 얻도록 해야 한다.

- 이자현(李資玄 1061~1125) <제이표 第二表>

나를 제발 내버려 두어다오. 숲에서 마음껏 노래하는 새처럼, 물 속에서 뛰노는 물고기처럼 기쁘게 살고 싶다. 물고기를 건져내 땅위에 두는 일, 물 속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며 새를 물 속에 집어 넣는 일 그런 일은 이제 너무 지겹다. 새는 창공에서 놀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논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끌어들이지 말아다오.

■ 승경(勝景)

봄물이 푸르고 햇빛이 환할 때면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무리지어서 노닌다. 그러다 서늘한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반쯤 지고, 서리 내려 물 맑으면 단풍은 양 언덕에서 물결위로 그림자를 드리워, 찬연하기가 마치 강물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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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을 빠는 듯하다. 이것이 모두 물가 정자가 승경이 되는 까닭이다.

- 이규보(李奎報, 1168~1241), <혁상인능파정기 赫上人凌波亭記>

따뜻한 봄날, 눈 녹아 불어난 초록 물결위로 햇살이 부서지면 그 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낱낱이 다 보인다. 마치 허공위에 떠 있는 것도 같아.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물고기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가을날 우수수 낙엽이 지면, 강위로 얼비친 붉은 단풍잎에 푸른 강물이 붉게 변한다. 그 위로 또 막막히 푸른 하늘과 덧없는 흰 구름이 겹쳐서 때아닌 빛깔들의 잔치가 베풀어진다. 물결과 햇살과 물고기와 단풍이 있어 물가의 정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이 있나? 나는 무엇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될까?

■ 낙엽(落葉)

묘향산 여행길, 토령을 올려다보니 5리쯤 되겠지 싶은데, 잎 다 진 단풍나무는 가시 같고(가지만 남고), 흘러내린 자갈이 길을 막는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가려 있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오는 바람에 자빠질 뻔하다가 일어났다. 그 바람에 손으로 진흙을 짚었다. 뒤따라오는 사람의 웃음꺼리가 될까봐 붉은 낙엽 하나를 주워들고서 기다렸다.

- 박제가(朴齊家 1750~1805)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

묘향산 여행길의 한 소묘다. 풍경에 담뿍 취해 낙엽인 줄 알고 밟은 무심한 발길이 그 속에 숨었던 돌부리에 걸려 휘청한다. 행여 누가 보았을까봐 짐짓 쑥스러워서 붉은 낙엽 하나를 집어들고 공연히 딴청을 한다. 진흙 묻은 손을 뒷짐진 채 붉은 잎을 투명한 가을 햇살에 비춰본다. 넘어진 게 아닐세. 넘어진 게 아니라구.

■ 개벽(開闢)

한밤중이 되자 하늘과 땅이 환히 열려 넓은 들이 아득히 펼쳐졌다. 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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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골짝에 잠든 것이 마치 푸른 바다 조수 위의 수많은 포구로 흰 물결이 눈을 물고 오는 것만 같았다. 산봉우리가 드러난 것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듯하였다. 돈대에 기대어 올려다보고 굽어보노라니, 정신이 온통 서늘해져서 이 몸이 개벽하던 태초의 하늘 위에 있어 마음이 천지와 더불어 함께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 김일손(金馹孫 1464~1498) <두류기행록 頭流紀行錄>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밤을 지샐 때의 기록이다. 올라 올 때는 안개뿐이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는데, 한밤중에 하늘과 땅이 활짝 열렸다.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봉우리들이 마치 다도해의 섬 같다. 높은 데 올라서 하늘을 보고 발아래를 보노라니, 몸도 마음도 얼음장처럼 투명해져서, 창조의 그 새벽에 천지와 하나가 되어 흘러가던 내 모습을 보는 듯하였다.

서왕묘가 베푼 요지연의 잔치를 마치고, 백룡이 이끄는 오색 수레를 타고 저 구름바다 위를 훨훨 날아 하늘 위 백옥경(白玉京)으로 날아 오르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 무등(無等)

무등산은 높고도 넓어 걸쳐 있는 고을이 일곱이나 된다. 정상에 오르면 늘 흰 구름이 지키고 있다. 사당이 있는데 무당이 관리한다. 그의 말이, “우레나 번개가 치고 비와 구름이 일어나는 변화는 늘 산허리로부터 일어나 자욱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지요. 하지만 산 위에는 푸른 하늘 그대로 랍니다”라고 한다. 중봉의 꼭대기에 서면 표연히 세상을 가벼이 보고 홀로 신선이 되어 날아가고픈 마음이 일어나, 인생의 고락이란 마음에 둘 것이 못 됨을 깨닫게 되니, 나 또한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유서석산기 遊瑞石山記>

다산의 눈길에 비친 광주 무등산의 늠름한 자태다. 지상에는 천둥과 번개가 우르릉 꽝꽝 내리치는데, 산 위는 언제나 푸른 하늘 그대로다. 구름 위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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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솟아 늘 푸른 산, 비가 개면 서석(瑞石) 즉 무돌(무등은 향찰 표기)이 무지개를 뿜어내는 영험스런 산, 그 위에 서서 아스라이 사방을 내려다보면 양 겨드랑이 밑이 근질근질해지면서 날개가 돋아 훨훨 신선이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으리라. 구름장 아래서도 가슴 한 켠에는 늘 푸른 무등의 꿈을 간직하며 산다.

* 향찰 : 신라 때부터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

■ 공락(共樂)

가을볕이 방에 비친다. 그림을 펼쳐 놓고 정신으로 노닌다. 그림 속에는 꽃 나무가 그윽히 깊고, 안개 낀 강물은 둘레를 감돈다. 봄 숲에 아름다운 바위는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속에서 술동이를 놓고 들창을 열고 잇는 사람을 본다. 아! 어찌해야 이 사람과 더불어 이 즐거움을 함께 누려볼거나.

- 박제가 (朴齊家 1975~1805) <제문형산화첩후발 題文衡山畵帖後跋>

가을 볕이 내 방으로 슬그머니 걸어 들어오던 가을 햇살처럼 나도 그림 속의 그의 방안으로 놀러 가고 싶다. 아! 이 고마운 가을 날, 함께 볕바라기하며 한잔 술 나눌 친구, 한 두세 시간 쯤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올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는 어디에 있나.

■ 산중(山中)

두루 산세를 보니 사방에 터진 곳이 없었다. 지세는 높고 드넓은데, 절터는 평평하고 발라 가야산을 안산으로 삼고 있었다. 봉 머리엔 흰 구름이 감겼다 퍼지며 변화가 무상하였다. 앞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하루 종일 마주보매 의미가 무궁하니, 참으로 절경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머물고 싶었지만 갈 길에 얽매여 뜻을 이룰 수 없었으니 안타까웠다. 산승들은 모두 여름 땔감을 마련하러 나갔다. 인적이 없었다.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며 긴 하루를 보냈다.

- 정시한(丁時翰 1625~1707) <산중일기 山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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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성주의 수도암에서 보낸 하루를 적은 일기다. 긴긴 하루해를 구름

위의 신선같이 떠내려 보냈다. 속세의 시간이 멈춘 곳, 바쁜 것은 구름뿐이

다. 잠착히 앉았노라면 지나온 삶이 부끄럽게 떠오르고, 물끄러미 내면이

다 들여다뵌다.

■ 몰두(沒頭)

비록 작은 기예라도 잊는 바가 있은 뒤에야 능히 이룰 수가 있다. 하물며

큰 도이겠는가? 최흥효는 나라에서 글씨를 잘 쓰는 자이다. 일찍이 과거에

나아가 답안지를 쓰는데, 한 글자가 왕희지의 글씨와 비슷하게 되었다. 앉아서 하루종일 살펴보다가 차마 버릴 수가 없어, 답안지를 품에 넣고 돌아왔다. 이는 얻고 잃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라 말할 만하다.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형언도필첩서 炯言挑筆帖序>

자기를 온전히 잊는 몰두가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평소 수백 수천 번을 써도 흡족하게 써지지 않던 글씨가 제가 봐도 왕희지의 글씨와 흡사하게 써진 것이 그만 놀랍고도 신통해서,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과거 시험장에서 차마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품에 안고 나왔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그는 명필이 되었다. 적당히 해서는 이룰 수가 없다. 남들 하는 대로 해서는 희망이 없다.

◉ 경책(警策) :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

한번 나간 정신은 좀체 돌아오지 않는다. 매사 흐리멍덩해져 아무 의욕이 없다. 죽비 소리를 듣고 싶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은 어디에 있나.

■ 절조(節操)

정해년(1587)에 한강 정구 선생이 함안 군수로 있으면서 선생을 내방하였다. 이듬해 2월 최영경 선생이 한강을 답방하였다. 한강은 백매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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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한창 꽃망울을 터뜨려 온 좌중이 감탄하며 감상하고 있었다. 선생은 동자를 불러 도끼를 가져와 찍어버리게 하였다. 좌우에서 온통 만류하여 그만 두었다. 선생은 이에 매화를 경계하며 말했다. “너를 귀히 여기는 까닭은 단지 백설의 바위 골짜기에서 그 절조를 아낄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복사꽃 오얏꽃과 봄을 다투고 있으니 네 죄가 베어 마땅하다. 말리기에 그만 둔다. 이후로는 마땅히 경계할 줄 알아야 하리라.”

- 최영경(崔永慶 1529~2590) <행록 行錄, 수우당실기 守愚堂實記>

백 그루나 되는 매화를 심어놓고, 봄날 손님을 청해다가 잔치를 벌이던 주인을 나무란 글이다. “매화를 왜 심었던가요? 내 정신을 더 맑게 하고, 내 머리를 더 차갑게 해서 세상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늠연한 기상을 기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따뜻한 봄볕 아래 술잔이나 돌리면서 봄날을 노래하자고 매화를 심었답니까? 내 주인을 나무라진 못하겠고, 애꿎은 매화나 도륙내야겠습니다. 도끼를 내오시오. 주인은 뜨끔해져 등줄기에 진땀이 다 흘렀겠구나.

■ 보고(報告)

조정애서 이정암(李廷馣) 공이 왜적에게 포위당했단 말을 듣고 상하가 모두 위태로움을 근심하였다. 이겼다는 보고가 도착했는데, 단지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한 것을 풀고 물러났나이다”라고만 했지. 일체의 장황한 말이 없었다. 논의하는 사람이 말했다. 적을 무리치기는 쉽다. 공을 자랑하지 않기가 더욱 어렵다.

- 김육(金堉 1580~1658) <해동명신록 海東名臣錄>

임진왜란 때 일이다 이정암이 황해도 연안을 지나다가 왜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성 안에는 5백의 군사가 있었고, 해주를 함락한 후 승승장구 쳐들어 온 왜병은 3천 명이 넘었다. 그는 섶을 쌓고 그 위에 앉아 지휘했다.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을 질러 타죽겠다고 했다. 합심하여 나흘간을 죽기 살기로 싸웠다. 이 연안성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거둔 몇 안되는 승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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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데 하나다. 마침내 그의 보고서가 조정에 도착했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에 풀고 떠나갔나이다.” 단 한 줄 뿐이었다. 이 열악한 전투에서 적에게 입힌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 입도 떼지 않았다. 이 융통성 없고 우직하기 짝이 없는 승전 보고서 때문에 나는 자꾸 그에게 관심이 간다.

■ 속물(俗物)

옛날에 백성의 기림을 받고자 하나 실은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었다. 일찍 이 문에다 방을 내 걸었다. “아무 날은 내 생일이니, 삼가 선물을 바치지 말도록 하라.” 이윽고 고을 사람을 모아놓고 백로를 제목 삼아 각각 시를 짓게 라였다. 대개 그 결백함을 칭송케 하려 함이었다. 한 사람이 문득 읊었다. “날아올 젠 학인가 여겼더니만 내려앉아 어느새 고기를 찾네.”

- 송시열 (宋時烈 1607~1689) <옥천군이망재기 沃川郡二罔齊記>

옆구리 찔러 절 받자는 수작이다.

“멀리서 뵈올 적에는 학처럼 고결하신 분인가 했더니, 자리를 잡자마자 먹을 것부터 챙기시는군요.” 입맛이 쓰다, 속물은 어딜 가나 속물이다.

■ 초상(肖像)

안평대군이 자신의 초상화를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일찍이 임술년(1442) 내 나이 스물 다섯 나던 해에 안견을 시켜 내 초상화를 그리게 했었지. 이제 벌써 7년이 되고 보니 내 모습이 이미 달라졌네 그려. 모습은 이미 같지 않건만 학문은 날로 진전되지 않았으니, 나를 위해 이를 적어 뒷날의 법도로 삼게 하게.”

- 신숙주(申叔舟 1417~1475) <비해당진찬 懈堂眞贊>

7년 전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얼굴이 변하는 동안 별 신통하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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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것이 없는 자신의 공부를 뒤돌아보던 안평대군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그릇

영남 사람들이 이원익(李元翼) 과 유성룡(柳成龍)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

- 유광익(柳光翼 1713~1780) <풍암집화 楓岩輯話>

병법에서는 불가기(不可欺) 즉 속일 수 없는 지장(智將)과

불인기(不忍欺) 곧 차마 못 속이는 덕장(德將) * 이원익

불감기(不敢欺) 즉 감히 못 속이는 맹장(猛將) * 유성룡

으로 지휘관은 나눈다.

나는 늘 궁금하다. 그래서 이원익과 관련된 자료를 꾸준히 모아오고 있다. 너무도 똘똘해서 속여먹을래야 속일 수가 없었다던 유성룡보다 이원익에게 자꾸 정이 간다.

■ 눈병

눈에 낀 백태가 나아짐이 없다시니 염려가 크실까 걱정입니다. 이런저런 약을 잡다하게 시험하지 마시고, 다만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생각을 맑게 한다’는 ‘제심징려(齊心澄慮)’의 네 글자를 처방으로 삼으시지요. 약을 쓰지 않고도 절로 들어맞는 효과가 있을 겝니다.

- 조희룡 <우봉척독 又峰尺牘>

‘제심징려’, 마음은 가지런히, 생각은 맑게, 눈병에 대한 처방이다. 자꾸 무얼 보고 헤아리고 따지려 들지 말고, 외물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안으로 돌려 마음의 자락이 가지런하도록 끝을 모으시지요. 나풀대는 잡념들을 걷어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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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히 내면으로 침잠한다면, 그깟 백태 끼어 잘 안 보이는 눈병쯤이야 무에 문제될 것이 있겠습니까? 한 번 시험해 보시지요.

■ 허실(虛實)

근자에 동네에 도둑이 많이 들었다. 중문(重門)에 담을 튼튼하게 둘러친 집치고 도둑질을 면한 경우가 드물었다. 다만 우리집처럼 담이 없는 집만은 도둑질을 면했다. 이는 병법에서 말하는 허허실실의 꾀라는 것이다. 제갈공명이 일찍이 성문을 활짝 열고서 거문고를 연주하니, 적군이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잡설 雜說>

솟을 대문에 높은 담을 둘러친 집은 도둑이 노리는 바가 된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이 활짝 열어둔 집은 도둑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소중한 재물 안 뺏기려 한 것이 도둑질의 빌미가 된다. 저 혼자만 누리려 드니 같이 누리자고 훔쳐간다. 다 가져가라 하면 가져갈 것도 없다며 그냥 지나간다.

높은 대문, 두터운 담장 안에 고작 재물이나 쌓아두고 큰소리쳐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도둑뿐이다.

■ 재물(財物)

무릇 재물을 간직하는 비결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불에 탈까 근심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 소나 말에 실어 옮기는 수고로움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능히 내 죽은 뒤에 꽃다운 이름을 천년토록 지닐 수 있으니 천하에 이처럼 큰 이익이 있겠는가? 단단히 쥐려들면 들수록 더욱 미끄러워 빠져나가니, 재물이라는 것은 메기다.

- 정약용(丁若鏞), <시이자가계 示二子家誡>

항상 재물이 문제다. 하나를 가지면 둘이 갖고 싶고, 둘을 갖고 나면 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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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열을 갖고 싶다. 그래서 재물 욕심은 가진 사람이 더하게 마련이다.

재물은 안 놓치려고 꽉 잡으면 잡을수록 미끌미끌 손 사이로 빠져 나가니, 재물은 미꾸라지인가, 메기인가?

■ 명념(名念)

내가 들은 이야기다. 이광사가 섬에 귀양 살면서 박을 심어 다 익으면 그 속을 파내고, 손수 자기가 지은 글을 써서 그 속에 집어넣고 밀랍으로 주둥이를 봉해 파도에 흘려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글을 쓰는 땅에서 얻어 보는 바가 있어 바다 동쪽에 이광사가 있으면 족하다.” 그 마음이 진실로 괴로웠다 할 만하다. 일체의 이름을 날리고픈 생각을 여태도 능히 스스로 잊지 못했던 것이다.

- 심노숭(沈魯崇 1762~1837) <산해필희 山海筆戱>

호남의 신지도에 귀양가 있던 이광사는 결국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가 정성껏 박을 길러, 조심조심 그 속을 파낸 뒤 써 넣은 글은 과연 어떤 글이었을까? 나는 그 내용이 궁금하다.

“잘 가거라! 흘러흘러 중국 땅까지 가서 세상을 사랑한 죄로 벌을 받아 고독과 절망 속에 늙어간 짐승 같은 사내가 있었음을 그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게 해 다오.” 나는 그의 이런 행동이 명예를 탐하는 것이었다고 결코 생각할 수가 없다. 요컨대 그는 미치도록 사람이 그리웠던 것이다.

◉ 관물(觀物) : 삼라만상이 스승이다

사물은 좀체 제 속살을 내보이지 않는다. 한 눈에 간파되지 않는다. 단번에 핵심을 꿰뚫는 안목, 행간을 남김없이 읽어내는 눈, 삼라만상이 내 스승이다.

■ 공평(公平)

천지는 만물에 있어 좋은 것만 다 가질 수는 없게 하였다. 때문에 뿔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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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이빨이 없고, 날개가 있으면 다리가 두 개 뿐이다.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채색구름은 쉬 흩어진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다 기특한 재주와 빼어난 기예로 뛰어나게 되면 공명이 떠나가 함께 하지 않는 이치가 그러하다.

- 이인로(李仁老 1512~1220) <파한집 破閑集>

뿔이 있는 소는 윗니가 없다.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범은 뿔이 없다. 예쁜 꽃치고 열매가 변변한 것이 없다. 열매가 귀한 것은 대개는 꽃이 시원찮다. 날개 달린 새짐승은 다리가 두 개 뿐이다. 저녁노을은 금세 스러지기에 더욱 아름답다. 1년 내내 핀 꽃은 고마운 줄 모른다. 좋은 것만 골라서 한 몸에 다 지니는 이치는 어디에도 없다. 뛰어난 재주와 부귀영화는 함께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빼어난 재주와 부귀영화는 함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빼어난 기예는 공명(功名)과는 인연이 멀다. 한꺼번에 누리려 하지 마라. 지금 가졌던 것마저 잃게 된다. 다 가지려 들지 마라. 손에 든 것을 놓아야 새것을 쥘 수 있는 법.

■ 심지

공주의 초는 나라에서 유명한 것이다. 근래 누가 보내준 것이 있길래 밝혀서 책을 비추었더니 어두워 글씨를 분간할 수 없었다. 문제는 심지가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마음이 거친 자는 비록 좋은 재료와 도구를 지녔다 해도 사물을 관찱 할 수 없음을 말이다.

- 홍길주(洪吉周 1786~1841) <수여연필 睡餘演筆>

공주산의 밀초는 맑고 투명해서 그것으로 전국에 이름이 높았다. 그런데 그 투명한 밀초로 불을 밝혔는데, 정작 불빛은 환하지 않았다. 깨끗한 기름을 써서 정밀한 솜씨로 만들었지만, 나쁜 심지를 쓰는 바람에 앞서의 모든 공이 빛을 바래고 말았다. 다 좋았는데 심지가 올바로 박히지 않았던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남들이 부러워할 자태를 지녔다 해도 마음이 올바로 박히지 않으면 그 지닌바 물질이나 지위로 인해 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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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이 되고, 남에게 해악을 끼친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손가락질을 받는다. 사람도 심지가 옳게 박혀야 한다.

■ 이해(利害)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계단이나 뜰 사이에 숨는다. 닭들이 마구 뒤져 잡히기만 하면 죽는다. 나는 말한다. 왜 수풀 사이에 가만 있지 아니하고, 인가에 가까이 와서 재앙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생각건대 사람 가까운 곳에는 땅이 기름지고 벌레가 많으니 개구리는 벌레를 쫓아온 것이었다. 아!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다는 말은 이에 있어 징험(徵驗, 어떤 징조를 경험함)할 수 있겠다.

- 이익(李瀷 1681~1763) <관물편 觀物篇>

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얻고 잃는 즈음에 손익의 계산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일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해로움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세상에도 인간 개구리들이 너무 많다.

■ 이기(理氣)

향초를 불에 태우면 그 향기가 아름답고, 누린내 나는 풀을 태우면 그 냄새가 고약하다. 짚을 태우면 불기운이 시들하나, 뽕나무를 태우면 불꽃이 성대하다. 향초와 누린 풀, 짚과 뽕나무에서 모두 불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이(理)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고약하고 쇠잔하고 성대한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기(氣)가 다른 까닭이다. 이(理)는 통하지만 기(氣)는 국한되는 것을 이것을 보고 알 수 있다.

- 최유지(崔攸之 1603~1673) <노화설 爐火說>

사람은 처음부터 향초였던 사람도 없고, 애초에 누린 풀이었던 사람도 없다. 젊어서 누린풀로 물가에서 덩굴지며 악취만 풍기다가, 뒤늦게 향기를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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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사람도 있다. 한때 아름다운 향기로 사람들을 매혹 시키다가 어느 순간 고리삭은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나는 누린내 나는 풀이기보다는 향초이고 싶고, 짚단 보다는 뽕나무이고 싶다.

■ 법도(法度)

벌 한 통을 오동나무 그늘에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가서 살펴보니 법도가 몹시 엄격합니다. 나라꼴이 벌만도 못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풀이 꺾이게 하는 구려

- 허균(許筠 1569~1618) <복남궁생 復南宮生 >

함열 땅에 유배가 있을 때 쓴 편지다. 속도 상하고 무료하기도 했겠지. 뜨락에 벌통 하나 들여다 놓고 아침에도 살펴보고 저녁에도 살펴보곤 하지요. 처음엔 제멋대로 나고 드는 줄 알았지요. 가만 보니 그런 것이 아닙디다. 차례는 어찌 그리 정연하고, 질서는 얼마나 짜여 있던지요.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위계도 정연하구요.

그런데, 민생은 언제나 뒷전이고 달콤한 꿀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파리떼처럼 달려드는 나라꼴 그 생각만 하면 입맛이 떨어지고, 한마디로 김이 팍 샙니다.

■ 정기(精氣)

빛을 받아 모아, 둥근 유리알에 이를 받아 그 정채로운 빛을 콩알만하게 만들면, 처음에는 내리쬐어 반짝반짝 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어나 타오른다. 어째서일까? 빛이 전일하여 흩어지지 않고 정기가 한데 모여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 박지원(朴趾源) <능양시집서 菱陽詩集序>

해는 젖은 땅을 말려주고, 어둠을 밝혀주지만 나무를 사르지 못한다. 쇠를 녹이지도 못한다. 흩어진 빛으로는 불 붙일 수가 없다. 공부도 한 가지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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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으로 집중되지 않는 독서는 결코 오늘 내 오성을 불 붙이지 못한다. 쇠를 녹이는 열정과 나무를 사르는 힘은 집중에서 나온다. 그저 이 책 저 책 닥치는 대로 읽는 박람(博覽)만으로는 사람 똑똑하단 말밖에 들을 게 없다. 널리 본 것을 모아 집중할 때, 생각지 못한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 실로(失路)

작년에 산사에 놀러갔다가 길을 잃고 깎아지른 벼랑으로 잘못들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등나무를 더위 잡아 산도 물도 다 한 곳에 이르니, 단지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옷도 흐트러진 채 이리저리 방황해도 더 나아갈 곳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구름 위로부터 종소리가 들려와 나를 이끄는 안내자가 되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다시금 묏부리 하나를 올라가니 푸른 전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산에 들어 길을 잃음을 유감으로 알지 말라. 여태껏 못 본 산을 수도 없이 볼 터이니”라고 한 것은 그래서 지은 시다. 잘못해서 나쁜 길로 들어가 온갖 괴로움을 다 겪은 뒤에야 바야흐로 바른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단 참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문과 서화도 그러하다.

-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무턱대고 실수를 두려워 할 것은 아니다. 실수는 내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역사상의 수많은 발명과 발견들은 실수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실수를 발전의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 있고, 실수를 곧바로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 길을 잘못 들어 절망적으로 헤매돈 사람만이 바른 길이 얼마나 고마운 줄 알게 된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로만 걸어가면 순조롭기야 하겠지만 큰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역경이 순경(順境)이요 순경이 역경이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큰불행이라고 한 옛 사람의 말도 있다.

■ 백운(白雲)

내가 깊은 산속에 살다보니,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절로 끊겼다. 홀로 집 안에 앉아 하루 종일 구름을 보면 변하는 모습이 진실로 끝이 없다.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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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지도 않고, 비를 머금지도 않으며, 해를 가리지도 않고, 땅에 드리우지도 않으면서, 짙고도 포근하게 어여쁘면서도 풍요롭게, 곱고도 자옥한 것이, 한 곳에 머물 때면 눈이 쌓인 것만 같고 옆으로 펼쳐졌을 때는 베를 펼쳐 넌 것 같다. 성대한 기운은 연기와 같고, 가볍고 흰 것이 솜과 같은 것은 특히나 구름의 한가로운 자태다.

- 권근(權近 1352~1409) <백운헌기 白雲軒記>

산 높은 곳에 있는 흰 구름의 집 ‘백운헌 白雲軒’에 기문을 청하면서 평(坪)스님이 권근에게 한 말이다. 하루종일 사람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외딴 암자. 새벽 예불을 마치고 돌아서면 산 아래서 흰 구름이 놀고 있다. 낮에는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쌓인 눈처럼 포개지고, 저물녘에는 양떼구름이 되고 새털구름이 되어 하늘에 솜이불을 덮는다. 나는 하루종일 구름과 벗삼아 논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천태만상의 변화는 꼭 내 마음 같다. 본체는 하나인데 형상은 천변만화다.

산이 높으면 중턱에 걸려 쉬고, 바람이 바르면 그 바람을 타고 골을 넘어간다. 몸이 쓸데없이 무거워지면 비를 뿌려 가볍게 흩어진다. 걸림이 없이 자재롭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고 싶다.

■ 등산(登山)

처음 위쪽을 오를 때는 한 걸음에서 다시 한 걸음 딛기가 어렵더니, 아래 쪽으로 내려 올 때는 그저 발만 드는데도 몸이 절로 흘러내려왔다. 어찌 선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따름은 무너져 내림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 조식(曺植 1501~1572) <유두류록 遊頭流錄)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선행을 쌓아 덕망을 갖추기는 쉽지 않지만, 한순간의 실수는 평생 이룬 것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산을 등반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삶의 자리를 돌아보았다. 허투루 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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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유(交遊) :갈림길의 나침반

벗은 제2의 나다. 친구를 보아 그 사람을 안다. 캄캄한 세상. 벗은 등불이다. 벗은 갈림길의 나침반, 슬픔의 위로가 여기서 나온다.

■ 탁옥 (琢玉)

북산의 나무가 비록 아름다워도 성대한 궁전에 쓰려면 반드시 깎아내고 다듬어야만 한다. 곤륜산의 옥이 비록 훌륭해도 제후들이 장식하는 옥으로 사용하자면 반드시 쪼아내고 갈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의 자질이 비록 빼어나도 큰 일을 할 그릇으로 쓰려면 반드시 벗이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어질지 않은 사람과 벗을 사귀면서 서툰 목수가 목재를 다듬거나 용렬한 장인이 옥을 다듬는 것과 같아서 성취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 신흠(申欽 1566~1628) <택교편 擇交篇>

사람이 아무리 잘 나도 저 혼자서는 안된다. 유익한 벗이 있어서 곁에서 밀어주고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훌륭한 재목이 못난 목수를 만나는 것은 재앙이다. 멋진 옥이 안목 없는 장인과 만나면 그냥 돌과 같이 취급되어 가져간 사람의 뒤꿈치만 잘리게 된다. 알아보더라도 안목과 솜씨가 없으면 귀한 재료를 이리 깎고 저리 깎아 못쓰게 만들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도 나쁜 친구와 만나면 함께 진흙탕에 뒹굴게 된다. 벗 사귐을 어이 함부로 하랴.

■ 외양(外樣)

말을 살핌은 비쩍 마른데서 놓치게 되고, 선비를 알아봄은 가난에서 실수가 생긴다.

- 김득신 (金得臣) <종남총지 終南叢志>

세상에 천리마가 없던 적은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伯樂)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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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 뿐이다. 혈통 좋은 천리마도 기르는 사람을 잘못 만나면 비루먹어 못난 말이 된다. 겉만 보고는 잘 알 수가 없다. 비쩍 말랐다고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은 말 속에 명마가 있다. 꾀죄죄한 행색 때문에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는 가난한 선비 가운데 숨은 그릇이 있다. 하지만 우리 눈은 언제나 껍데기만 쫓아다닌다. 번드르한 겉모습에 번번이 현혹된다.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 백락 : 말을 잘 고르는 사람 이름

■ 택교 (擇交)

사람은 벗을 가려 사귀지 않을 수 없다. 벗이란 나의 어짊을 돕고 나의 덕을 도와주는 존재다. 유익한 벗과 지내면 배움이 날로 밝아지고, 학업이 날로 진보한다. 부족한 자와 지내면 이름이 절로 낮아지고, 몸이 절로 천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개와 개가 사귀면 측간으로 이끌고, 돼지와 돼지가 어울리면 돼지 우리로 이끄는 것과 같다.

- 성현(成俔 1439~1504) <부휴자담론 浮休子談論>

좋은 벗은 나의 삶을 향상시킨다. 좋은 벗 만나기가 참 어렵다. 내가 잘 못 판단할 때 바루어주고, 지나칠 때 충고해 주는 벗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적절한 충고에 발끈 성을 내고, 잘못을 지적하면 부끄러워 화를 내며 그렇지 않다고 강변한다.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의 탓이다. 나는 옳은데 그가 옳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곁에 있던 좋은 벗을 제 손으로 다 물리쳐 놓고, 돌아앉아선 좋은 벗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탄식한다. 내 비위를 잘 맞추어주고,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아첨꾼을 지기(知己)라 하면서 늦게 만난 것을 탄식한다. 그래서 둘이 함께 측간에 가 뒹굴고 돼지우리에 가서 뒹군다.

■ 종경(鐘磬)

나는 무엇인가? 쇠북이요 경쇠다. 쇠북이나 경쇠란 것은 두드려야 운다. 두드리지 않으면 비록 1년 내내 울지 않아도 괜찮다. 옛날엔 형님인 남유상(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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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常)이 두드리고, 오원(吳瑗)이 두드리면 내가 울었다. 두 사람이 죽고 나서 나는 울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 <임계백시발 臨溪百詩跋>

예전 내 형님이 나를 두드리고, 오원(吳瑗)이 나를 두드리면 나는 서슴없이 우렁우렁한 큰소리를 내며 허공에 울리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울 수가 없구나. 나를 두드려줄 공이가 없어졌으니 누가 나를 좀 두드려다오.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 두드리듯 하는 두드림 말고 한 번 울리면 좀체 그 여운이 가라앉지 않는 그런 큰 공이로 나를 두드려 다오. 꽝꽝 두드려 다오. 안으로 안으로만 머금는 침묵은 너무 외롭다.

■ 강정

한과 중에 강정이란 것이 있다. 눈처럼 뽀얀 것이 참 먹음직스럽다. 막상 한입 깨물면 그저 푹 꺼져서 이빨 사이에 들러붙기나 할 뿐 별맛이 없다. 많이 먹으면 입맛만 깔깔해지고 배도 부르지 않다. 그저 손님과 다과상에 눈요깃거리로나 알맞은 과자다. 세상에는 속 빈 강정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겉은 번드드르해서 뭔가 있어 보이는데, 막상 두드려보면 속에 든 것이 없다. 예쁘고 아름다운데 두어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면 머리가 텅 비었다. 내실은 없이 겉꾸미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작은 시련에도 쉽게 부서져서 자취도 없이 스러지고 만다. 식탁만 지저분하게 한다.

- 박지원 <순패서 旬牌序 >

■ 차거(此居)

집 이름을 싱겁게 ‘차거 此居’ 즉 ‘이 집’으로 지어놓고 글을 부탁해오자 그 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이것이 전문이다. 전부 53자인데 그 중에 ‘차此’ 자만 무려 아홉 번을 사용했다. 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이 사람의 집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 나이 젊고 아는 것 많고, 옛글을 좋아하는 기이한 사람이다. 이 집은 어디 있나? 이 나라, 이 고장, 이 마을에 있다. 구체적으로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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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고? 굳이 따져 알려 하지 마라. 제 집 이름도 ‘이 집(此居)’이라고 짓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를 만나고 싶은가? 소용없을 것이다. 아무리 다녀봤자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만날 수가 없을테니까. 그러면 어찌할까? 이 글 속으로 들어오라. 그러면 그와 만날 수가 있다.

걸핏하면 집안을 따지고 학벌을 묻고 지연(地緣)을 살피는 그런 수작들이 그는 아주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런 것 다 제쳐놓고 오직 그 사람 자체만으로 볼 수는 없는가? 꼭 어느 고을 사는 어떤 벼슬에 있는 어느 학교를 졸업한 누구라야 인정할 텐가?

■ 구안(具眼)

속된 사람은 구안(具眼), 즉 안목을 갖춘 사람이 없다. 또 구이(具耳), 곧 귀가 제대로 뚫린 사람도 없다. 오직 시대의 선후와 사람의 귀하고 천함만을 가지고 무게를 잰다. 비록 니백(李白)이나 두보(杜甫)가 다시 난다고 해도 만약 낮은 부류 속에 묻혀 있다면 또한 반드시 가벼이 보아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세상의 도가 개탄할 만하다.

- 김득신, <종남총지>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리면서,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한다. 껍데기만 보이고 쭉정이만 잡힌다. 정말 뛰어난 재능을 품고도 세상 사람들의 경박한 저울질에 밀려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스러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다. 안목 갖춘 눈앞에서는 여지없이 본색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구안(具眼)의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 취장(取長)

감나무를 심었다. 열매가 많은 것은 알이 작았고, 열매가 드문 것은 알이 굵었다. 나중에는 같이 잘 자라 그늘이 지기에 하나를 베어버리려 하니, 알이 굵은 것은 아까웠다. 내가 말했다.

“둘 다 그대로 두어라. 비록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을 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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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관물편>

감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나무는 알이 작고, 드문드문 달리는 나무는 알도 굵으면서 열매도 주렁주렁 달리는 그런 감나무는 없을까?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게 마련이다.

빛깔이 화려한 꽃은 향기가 짙지 않은 법이다. 꽃도 예쁘고 향기도 짙고 열매도 좋은 그런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장미는 아프게 찌르는 가시가 있고, 꽃이 열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무화과 같은 나무도 있다. 성격이 시원시원한 사람은 일처리가 빠르지만 뒷마무리가 성글고, 신중한 사람은 맡은 일을 야무지게 해내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세상에는 자기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고, 장점을 깎아 단점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 청차 (請茶)

나는 스님을 보고 싶지도 않고, 스님의 편지 또한 보고 싶지 않소. 다만 차에 얽힌 인연만은 없앨 수가 없고 바수어버릴 수도 없구려. 이에 또 차를 내놓으라고 재촉하니, 편지는 쓸 것이 없고, 다만 두 해 동안 쌓인 빚을 한꺼번에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마조스님의 할과 덕산 스님의 몽둥이를 받아 마땅할 것이외다. 이 한 번의 할과 이 한 방의 몽둥이는 수백 수천 겁이라도 피할 길이 없을 것일세. 다 미루고 예는 갖추지 않네.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여초의 與艸衣)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수십 통이 편지 중에 하나다. 몇 번 편지를 보내도 쓰다 달다 말이 없자 괜스레 호통 겸해서 보낸 편지다.

인이 박혀 도무지 차를 마시지 않고는 정신이 들지 않으니 답장은 받고 싶지도 않고, 자네도 보고 싶은 맘 조금치도 없으니 그저 딴소리 말고 잘 덕은 차나 작년치까지 쳐서 곱쟁이로 보내게.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일세.

다음 편지를 보면 초의는 인편에 차와 편지를 보내오는데 추사가 그 편지를 받고 쓴 편지는 이렇다. “느닷없이 배달하는 인편으로 편지와 차포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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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소. 차의 향기에 감촉되어 문득 눈이 열림을 깨닫겠구려. 편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살펴보지도 않았다네.

◉ 지신(持身) : 몸가짐은 마음가짐에서

지신, 즉 몸가짐을 어찌할까? 몸가짐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몸은 마음의 어릿광대다. 시키는 대로 한다. 마음이 떠나면 몸도 제멋대로 논다.

■ 명결(明潔)

문순공 이황이 단양 군수로 있다가 떠나갔을 때 이야기다. 아전이 관사를 수리하려고 들어가 방을 보니, 도배한 종이가 맑고도 깨끗하여 새것 같았다. 요만큼의 얼룩도 묻은 곳이 없었다. 아전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다.

- 이식(李植 1584~1647) <택당집 澤堂潗>

늘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아전과 백성들이 기뻐했다니 무엇이 기뻤던 것일까? 몇 년을 거쳐했던 방인데, 마치 어제 도배한 방처럼 깨끗했다. 그의 성리학에 대한 도저한 학설보다, 신화처럼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보다, 이런 작은 기록들을 통해 나는 퇴계 선생의 진면목을 본다.

이덕무도 <사소절 士小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 껍질을 산채로 벗기지 말고, 새털도 산채로 뽑지 말라. 벽을 더럽히지 말고, 기둥이나 문지방에 새기지 말라.” 삼가고 또 삼가고, 생명 있는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 득실(得失)

정승 남지(南智)는 정승 남재(南在)의 손자였다. 음직으로 감찰이 되었다 퇴근하면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일한 것을 물었다. 하루는 돌아와 이렇게 여쭈었다. “하급 관리가 창고에 들어가더니 몰래 비단을 품고 나왔습니다. 도로 창고에 들어가게 했는데 이같이 하기를 세 번을 했더니, 관리가 그 뜻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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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차리고 비단을 두고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어린 나이에 벼슬을 하므로 매번 물어 잘 하는지 못하는지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묻지 않아도 되겠다.”

- 안종화(安鍾和 1860~1924) <국조인물지 國朝人物志>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다. 마침내 그 손자도 할아버지를 이어 정승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아랫사람의 잘못을 보고 그 자리에서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

불같은 노여움은 불평과 불만을 사서 앞에서만 굽신대는 면종복배(面從腹背)를 불러오지만, 침묵의 일깨움은 두려움과 공경심으로 아랫사람이 마음으로 복종하게 한다.

■ 물욕(物慾)

여헌 장현광(張顯光)은 젊은 시절 호방하였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깜깜한 밤중에 그 집을 찾았지만 문은 벌써 잠겨 있었다. 인하여 문밖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맑은 못이 거울 같은데, 가을 달빛이 일렁이고 나무 그림자가 들쭉날쭉하여 수면을 번갈아가며 가리는 것을 보았다.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본시 고요한 것인데, 물욕 때문에 미끄러져 어지럽게 되는구나.” 즉시 옷소매를 떨치고 돌아왔다.

- 박재형(朴在馨 1838~1900) <해동속소학 海東續小學>

거울 같은 맑은 연못 위로 가을 달빛이 노란빛을 물들이며 일렁인다. 마음이 덩달아 설렌다. 못 가를 둘러선 나무 그림자들은 기우는 달빛에 들쭉 날쭉 그림자를 드리워 그 달빛을 가려 선다. 일렁이는 달빛, 흔들리는 그림자. 본래 고요하던 연못은 달빛과 나무 그림자의 드잡이질에 실랑이가 한창이다.

연못은 본디 고요했는데, 외물이 들어와 그 평정을 깨트려 버렸다. 본디 마음은 고요했는데 욕망이 들어와 흔들어버렸다. 해 뜨고 나면 달빛도 그림자도 흔적도 없을 것을 백주 대낮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온통 부끄러워 얼굴도 들 수 없을 것을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옷소매를 탁탁 털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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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학(貪虐)

중종 때 정평부사 구세장은 탐욕이 끝이 없었다. 말안장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관아로 들어오게 하여, 직접 가격을 따지며 싸니 비싸니 야단한 것이 여러 날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관가의 대금으로 이것을 샀다. 광대가 정초에 그 형상을 놀이로 공연하였다. 임금께서 물으시자 이렇게 대답했다. “정평 부사가 말안장 사던 일이옵니다.” 마침내 잡아오라 하여 심문케 하고 장물죄로 처벌하였다. 광대 같은 자도 능히 탐관오리를 공박할 수가 있다.

- 어숙권(魚叔權 생몰 미상( <패관잡기 稗官雜記>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말안장 사겠다고 장사치를 직접 불러다 며칠을 값 깎자고 실랑이 하다가 그나마 공금으로 대납하였다. 하도 더러운 꼴을 보다보니, 사람들이 침 뱉고 욕했겠지. 그 소문이 금세 쫙 퍼졌겠지. 그걸 광대는 코미디로 만들어 공연으로 올리고, 왕은 격분하여 당사자를 잡아들이고 이렇게 해서 구세장 그의 이름은 길이길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 자세(姿勢)

집안 사람인 이광석(李光錫)은 길을 갈 때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아침 나절에는 왼쪽으로 갔고, 저녁에는 길 오른편으로 갔다. 갈 때는 반드시 두 손을 모두어 잡고 척추를 곧추 세웠다. 일찍이 함께 3,40리를 가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사소절 士小節>

옛 그림을 보면 절대로 그림자를 그리는 법이 없다. 구름도 그리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허상이기 때문이다. 항상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집안 사람 이광석은 제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그림자를 밟는 것은 결국은 저 자신을 밟는 것이고 저 자신을 거리낌 없이 밟는다면 남도 서슴지 않고 밟을 수 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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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第一)

수많은 사람의 바다에 노닐면서 으뜸가는 사람과 벗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 으뜸가는 사람이 된 뒤라야 일류의 사람이 내게 이른다. 일류의 사람과 사귀고 싶다면 마땅히 먼저 스스로 으뜸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일이라는 것 또한 한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 짓는데 으뜸가는 것도 제일이요. 재주가 으뜸가는 것도 제일이며, 기술이 최고인 것도 제일이고, 모습이 가장 잘난 것도 제일이고, 말을 최고로 잘하는 것도 제일이다. 제일인 것은 한가지지만 이런 것은 모두 내가 말하는 제일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제일은 오직 덕이 제일인 것과 학문이 제일인 것을 말한다.

- 신흠, <택교편>

내가 가까이 하고 싶은 최고는 사람을 감싸안는 덕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학식이 으뜸인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벗삼고 싶다. 최고를 벗으로 삼으려면 무엇보다 내 자신이 최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최고가 되기 위해 나는 날마다 덕을 쌓고 학문을 연마할 뿐이다.

■ 자재 (自在)

- 신대우(申大羽 1735~1809) <호암기 蒿菴記>

내 품은 재주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섭섭하다. 마음껏 포부를 펼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그저 깊은 계곡 시냇가의 소나무로 하늘을 우러러 길게 손을 뻗을 뿐이다. 하기사 안목 있는 목수의 눈에 띄어 궁궐의 대들보로 쓰인다 한들 그것은 내 목숨을 버리는 일이다. 나무의 쓰임은 베어져 기둥이 되는데 있는가? 아니면 타고난 수명을 마음껏 누리며 숲 속의 삶을 즐기는 데 있는가? 아니면 제 타고난 삶을 기뻐하며 인간다운 나날을 누리는 데 있는가? 썩은 흙 속에서 새 싹을 틔워 억새나 다북쑥과 키를 겨루지는 않겠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좀 알아달라고 아등바등 대는 것처럼 민망한 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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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경(自警)

경박함은 중후함으로 바로잡고, 급한 성격은 느긋함으로 고치며, 치우침은 너그러움으로 바루고, 조급함은 고요함으로 다스린다. 사나움은 온화함으로 다잡고 거친 것은 섬세함으로 고쳐나간다.

- 상진(尙震 1493~1564) <자경명 自警銘)

상진이 자신의 좌우명으로 세운 다짐이다. 그는 이 글 36자를 직접 써서 자손에게 물려주었다.

■ 병통(病痛)

- 황상(黃裳 1788~1863) <임술기 壬戌記>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강진 유배시절 허름한 주막집에 하숙하고 있던 자신을 찾은 열다섯 살 난 소년 황상에게 써준 글의 내용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 뒤도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 같은 사람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잔뜩 주눅이 든 소년에게 선생은 기를 북돋워준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항상 문제는 제가 민첩하다고 생각하고 총명하다고 생각하는데서 생긴단다. 한번만 보면 척척 외우는 아이들은 그 뜻을 깊이 음미할 줄 모르니 금새 잊고 말지.”

“제목만 주면 글을 지어내는 사람들은 똑똑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저도 모르게 경박하고 들뜨게 되는 것이 문제다. 한마디만 던져 주면 금새 말귀를 알아 듣는 사람들은 곱씹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지. 너처럼 둔한 아이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니? 둔한 끝으로 구멍을 뚫기는 힘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릴 게다. 꼭 막혔다가 뻥 뚫리면 아무런 거칠 것이 없겠지. 미욱한 것을 닦고 또 닦으면 마침내 그 광채가 눈부시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첫째도 부지런 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며,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해라. 어떻게 하면 부지런 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나지 않도록 꼭 붙들어매야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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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1년이 지난 76세의 나이가 되도록 스승이 남겨주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자나깨나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노라고 눈물겹게 고백하고 있다. 따듯한 가르침은 이렇듯 깊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 독서(讀書) : 타는 목마름을 식혀준다

독서는 두레박질이다. 타는 목마름을 식혀준다. 활자로 된 것만 책이 아니다. 천지간의 모든 사물이 다 책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다 독서다.

■ 용심(用心)

시험삼아 옛사람의 좋은 문장을 살펴보면 쓰고 있는 문자의 종류가 모두 평범하게 알 수 있는 것들이지 별도로 심오하고 어려운 글자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꺼내와 토론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절로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이는 다만 그 마음씀과 뜻을 둠이 우리들 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법은 반드시 그 마음과 뜻의 묘한 곳을 얻어 안 뒤에라야 효과를 볼 수 있다.

- 임상덕(林象德 1683~1719) <통론독서작문지법 通論讀書作文之法>

심입천출(深入淺出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다) 이라고 했다. 깊이 들어가 얕게 나온다는 말이다. 고수들의 말은 어렵지가 않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하수들의 말은 현란하고 어렵다 그럴듯하기는 한데 듣고 나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자기가 완전히 소화하고 나면 설명이 쉬워진다. 저도 모르니까 말이 어려워진다.

■ 인기(忍饑) *饑 주릴 기, 흉년기

고라니와 사슴의 무리, 쑥대로 이은 집,

창 밝고 사람은 고요한데, 배고픔을 참고서 책을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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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 <서화상자경 書畵像自警)

송시열이 자신의 초상화에 얹은 글이다. 산야에 묻혀 쑥대집에 산다. 밤중에도 창밖은 달빛으로 훤하다. 사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방안에선 묵묵히 책장 넘어가는 소리, 이따금 뱃속에선 꼬르륵 하는 소리. 배가 고프다. 속이 텅 비니, 깊은 밤중의 독서는 투명하고 명료하다. 비쩍 마른 몸에 이룬 것 없는 학문, 임금의 부름도 저버리고, 성인의 말씀도 따르지 못한 삶이 자꾸만 부끄럽다. 이대로 틀어앉아 책만 읽으며 이 삶을 마치리라. 그의 이 글을 읽노라면 자꾸만 그날 밤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곤 한다.

■ 문장(文章)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했다. “이것은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책을 읽었다.

- 박지원, <답경지지이 答京之之二>

글자에 머리를 처박는 것은 독서가 아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긴다고 책 읽은 것이 아니다. 내 잠든 정신을 깨우지 못하고 내 삶에 기쁨이 되지 못하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쓸모 없는 지식, 죽은 정보는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 문자로 된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가 아니다. 아침 출근길의 짧은 일별(一瞥), 이전에 무심히 지나치던 사물과의 느닷없는 만남,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에서 발견하는 낯섦, 아니면 아침에 들창을 열었을 때 내 귀를 울리던 새소리의 새삼스런 감동, 이런 것들이 진짜 독서다.

책을 읽어 삶이 향상될 수 없다면 그런 책은 읽어 무엇 하겠는가?

■ 심취(心醉)

대저 사람의 취함은 어떻게 취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반드시 술 마신 뒤를 기다릴 것은 없다. 책 한 권이 사람을 달콤하게 취하게 하며 몽롱하게 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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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어찌 한 섬이나 다섯 말 술만 못하겠는가?

- 이옥 (李鈺 1769~1815) <묵취향서 墨醉香序>

귀양지에서 술을 사 마실 돈도 없고, 책 한 권 빌려볼 데 없던 무료함 속에서 때마침 이웃에서 책을 선물한다. 술꾼이 여러 날 술에 굶주리다가 술 단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겠지, 정신없이 책에 빠져 열심히 읽다보니 “눈에서는 꽃이 피고 입에서는 향기가 나와, 위장 속의 더러운 피를 닦아내고 마음속에 쌓인 때를 씻어주어 정신이 편안하고 몸을 개운하게 하였다.”

술 먹고 취하는 것만이 취하는 것이 아니다. 꽃에 취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에 취하는 것도 취하는 것이지만, 이토록 책에 달게 취해 몽롱한 흥취를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정말 거나하게 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일 슬에만 취하고 여색에만 취하는 주정뱅이 호색한은 이 거나한 흥취를 알 길이 없으리라.

■ 영단(靈丹)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만약 묵은 생각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보면 넘실대는 성인의 말씀이 어느 것 하나 질병을 물리치는 영약(靈藥)이 아님이 없다.

- 김굉(1739~1816) <각재하공행장 覺齋河公行狀)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런데 그 길을 오래 방치해 두니, 온통 가시덤불로 막힌 길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앉아,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건 무슨 뜻일까? 하며 내 거울에 찬찬히 비추어 보면 준열한 나무람에 정신이 화들짝 돌아온다.

■ 삼요(三要)

- 허균, <답이생서 答李生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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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학력(學力)이 있어야 한다. 배우지 않고 저절로 알 수는 없다. 책속에 배움의 길이 있다. 옛 글을 많이 읽어, 그 글 속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길이 바른지 판단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판단과 안목은 식견이라 한다. 무조건 외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는 잘 풀 수 있을지 몰라도 식견은 생각나지 않는다. 식견이 없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말과 같다.

그 다음은 배운 것을 온축하여 내 삶 속에 젖어들게 하는 과정이다. 알아 듣는 것은 잠깐이지만 내 몸에 배게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니까 좋은 글을 쓰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 배우되 그냥 배워서는 안 되고 올바른 스승의 인도에 따라 단계를 맞추어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식견이 생긴다. 식견이 없이는 판단할 힘이 생기지 않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 숙독(熟讀)

지극히 오묘한 말은 오래 되어야 맛을 알게 되고, 낮고 가벼운 작품은 언뜻 보기에는 좋아보인다. 배우는 사람은 책을 볼 때, 마땅히 되풀이해 읽고 깊이 생각하여 글쓴이의 뜻을 얻으려고 기약해야 한다.

이제현 (李齊賢 1287~1367) <보한집 補閑集>

첫눈에 반해버리는 사랑을 믿지 마라 뒤따르는 실망이 크다. 설탕참외는 싫다. 처음에 떨떠름해도 길게 뒷맛을 남기는 감람(橄欖)같은 과일이 되고 싶다. 대번에 제 속을 다 털어 보여주는 경박스러움은 불편하다. 조금씩 다가서도 자꾸만 멀어지는, 보일듯 보이지 않는 경지와 만나고 싶다. 한꺼번에 통째로 말고, 바람결에 은은히,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사라지고 없는 그런 향기를 전해다오. 곱씹어 음미할수록 깊은 울림을 남기는 말, 글쓴이의 마음자락이 느껴질 듯 말 듯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처음엔 눈길을 확 끌어당기지만 되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글, 한 번 더 읽으면 천박한 밑바탕이 훤히 들여다 뵈는 글, 그런 글이 아니길 원한다.

201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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