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9. 14:23ㆍ독서후기
죽비 소리(2)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
■ 정민 지음
◉ 분별(分別) : 이것과 저것 사이
이것과 저것 사이 나와 남의 나뉨. 옳고 그른 분별, 우리는 늘 판단을 강요받는다. 그 엇갈림의 중간은 어디일까?
■ 거폐(去蔽)
겨를 키질하다가 눈에 티가 들어가면 하늘과 땅이 뒤죽박죽이 된다. 손가락 하나로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 겨는 천지의 위치를 바꿔 놓을 수 없고, 손가락은 태산을 보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이 그 가림을 받게 되면 천지처럼 큰 것도 오히려 어두운 바가 되고, 태산같이 높은 것도 오히려 가리는 바가 된다. 어째서 그런가? 천지나 태산은 먼 곳에 있고, 겨나 손가락은 가까운 데 있기 때문이다.
- 신흠(申欽) <거폐편 去弊篇>
눈에 티가 들어가면 눈을 뜰 수가 없다. 눈물이 나고 따갑다. 두 다리가 멀쩡해도 걸을 수가 없다. 두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는다. 두 눈을 부릅떠도 마찬가지다. 티를 뽑아내고 가린 것을 치우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정상으로 돌아온다. 멀쩡한 사람이 뭔가에 가려지는 것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를 가리는 것은 언제나 가까운 데 있다. 자식에게 가려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위장전입을 하고, 촌지를 갖다 바친다. 친구에게 가려서 덮어놓고 뒤를 봐주다 자기가 하물을 뒤집어쓴다. 지연에 걸리고, 학연에 가려서 정상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뭔가에 가려지면 아무리 눈을 동그랗게 떠도 소용이 없다. 다리가 튼튼해도 나아가지 못한다. 가려짐을 조심하라. 가까운 것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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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引導)
이른바 이끈다는 것은 길을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큰길로 인도하면 평탄해서 쉽게 간다. 잘못된 길로 인도하면 걷기가 힘들고 나아가기도 어렵다. 비유하자면, 두 장님이 서로 붙들고 향할 바를 읽고 헤매는 것과 같다. 바위가 문을 막아서면 이를 차다가 발을 다친다. 나무가 길을 막으면 여기에 부딪쳐 머리가 깨진다. 앞에 천 길의 구덩이나 깊이를 알 길 없는 강물이 있더라도 또한 장차 달려들어 피할 줄을 모른다. 아! 슬픈 일이다. 만약 눈 밝은 자가 이를 인도한다면 이 같은 근심은 없을 것이다.
- 성현, <부휴자담론>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책만 보고 배울 수도 있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 혼자서 잘 할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진다. 스승을 잘못 만나면 차라리 배우지 않느니만 못하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오른다.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일인 줄 모르고 무턱대고 노력만 하는 것은 비극을 자초하는 일이다. 옆에서 툭 건드려주고. 시범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단박에 깨칠 수 있는 것을 10년씩 에돌아간다. 큰 길을 옆에 두고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 지미 (知味)
- 박제가, <시선서 詩選序>
단맛만 좋다 하고 신 맛은 찌푸리고, 매운 것을 즐긴다고 짠 것을 내친다면 맛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신맛 단맛 다 보고, 매운맛 짠맛 다 보아야, 짤 때 짜고 싱거울 때 싱겁고, 매울 때 맵고 담백할 때 담백할 줄 알아야 음식이 제 맛이 난다. 신맛이 싫다고 단맛을 섞고. 짠맛이 안 맞아 매운맛을 더하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고 만다. 시를 가려 뽑는 방법을 말한 것이지만, 어디 시만 그렇겠는가? 사람도 똑 같다. 올곧은 사람은 융통성이 부족하고, 순박한 사람은 대체로 멍청한 구석이 있다. 굳센 사람은 속이 좁고, 민첩한 사람은 뒤가 무르다. 말 잘하는 사람은 건방을 떨고, 입이 무거운 사람은 말에 얽매여 큰일을 하지 못한다. 올곧은 사람에게 융통성을 요구하고, 순박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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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면서 멍청함을 싫다하면 피곤해진다. 적재적소, 다소 부족한 점이 있어도 장점을 취해 마침맞게 제 맛을 내게 할 뿐이다.
■ 흑백 (黑白)
흰 것을 희다하는 것은 참이지만, 흰 것을 검다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 참과 거짓은 아녀자도 금세 알아본다. 하지만 장님은 알지 못한다. 종을 종이라 하는 것은 참이나, 종을 경(磬 경쇠 경, 돌을 치는 소리 경)이라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 참과 거짓은 하인들도 바로 구별한다. 그러나 귀머거리는 헷갈린다.
- 신흠, <핵위편>
누가 봐도 뻔히 그런 것을 자꾸 아니라고 우기면, 손가락질이 뒤따른다. 그런데 눈에 뭔가 씌면, 누가 봐도 뻔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욕심이 앞을 가려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고, 허영이 앞을 가려 가짜에게 제 몸을 망친다. 나중에 돌아보면 너무도 분명한 일인데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기꾼은 잡아서 가두면 되고, 못 잡더라도 재물의 손실은 시간을 두고 채워나갈 수 있지만, 나라의 일은 한 번 그르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 까마귀의 암수를 누가 구분하겠는가? 너나없이 자기가 어진 사람이라고 외쳐대는데, 진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저마다 우국충정을 말하고 애국의 결단을 외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시커먼 가짜다.
■ 중간(中間)
임백호(林白湖)가 말을 타려는데 하인이 나서며 말했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 짝씩 신으셨어요.” 백호가 꾸짖으며 말했다.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가죽신을 신었다 할 터이고, 길 왼편에 있는 자는 날더러 나막신을 신었다 할 터이니 무슨 관계란 말이냐!” 이로 말미암아 논하건대, 천하에 보기 쉬운 것에 발만한 것이 없지만, 보는 이가 같지 않게 되면 가죽신인지 나막신인지도 분별하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하고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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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낭환집서 蜋丸集序>
* 백호 임제(1549-1587), 1577 문과 급제, 벼슬을 버리고 전국 방랑,
당쟁을 꺼리고 많은 한시를 남김. 평양기생 한우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짐
바르고 참된 생각은 옳다 그르다 하는 그 가운데 있다. 짝짝이로 신은 임제(林悌)의 신발을 제대로 보려면, 길 왼편에서 보아도 안 되고 길 오른편에서 보아도 안된다. 왼편도 오른편도 아닌 정면에서 보아야 한다. 그냥 걸어가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짝짝이 신발도 말 위에 걸터앉고 보니 분간할 방법이 없다. 저마다 자기가 본 것만 옳다고 여겨 나막신입네 가죽신입네 하며싸운다. 막상 말에 내려서 보면 둘 다 틀렸다. 짝짝이 신발을 신었을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에 자기가 본 것만 고집한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듯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 너무도 많다.
이쪽과 저쪽의 문제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사태의 진상이 일목요연하게 파악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곳을 찾기가 참 어렵다.
■ 가짜
- 심노승, <여신생천능 與愼生千能>
미수 허목은 옛것을 좋아했다. 산문을 지었다 하면 <서경 書經>의 문체를 본받았고, 시는 으레 <시경 詩經>을 따랐다. 글씨는 지금은 쓰지 않는 전서, 그것도 통상적인 것이 아닌 아주 궁벽한 글자로 썼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주나라 사람이 되겠는가? 그렇게 하면 성인과 꼭같이 되는가? 글자를 써 놓아도 아무도 못 알아보는 글, 자기처럼 옛글에 능통하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글, 골동품 같고 나무로 깎아놓은 인형 같은 그런 글은 옛글인가 지금 글인가? 그는 지금 사람인데, 왜 지금 글을 쓰지 않고 옛글만 고집하는가? 활기(活氣) 즉 살아 있는 기운이 없고, 진의(眞意), 곧 참된 뜻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 겉모습이 주공이나 공자와 꼭같다 해도 그것은 목각인형이요 가짜 문장일 뿐이다. 나는 가짜는 하지 않겠다. 좀 못생기고 부족해도 펄펄 뛰는 진짜, 살아 숨쉬는 진짜를 하겠다.
■ 경박(輕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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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 <사소절>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쉴새없이 일을 벌인다. 눈은 언제나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무슨 일에든 끼어들지 못해 안달을 한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하고 뒤지는 것을 못 견딘다. 그러면서 자신이야말로 똑똑하고 날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자신만 못한 사람은 깔보고 무시한다. 무슨 일이건 느려터진 사람도 있다. 조금만 정신차리면 늦지 않을 일도 느지렁거리다 그르치고 만다.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잘못이 없고,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급한지 모르겠어!’ 한다. 경망과 총명은 다르다. 조급과 민첩은 다르다. 더딤과 두터움은 같지 않다. 둔함과 무거움도 같지 않다. 저 좋을 대로 생각하지 마라. 착각하지 마라.
■ 한가(閑暇)
- 이덕무, <원한 原閒 근원 원, 틈 한>
사람들은 누구나 한가로운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정작 한가로움을 잘 누릴 줄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가로움은 어디에 있는가. 한가로움을 어디서 찾을까? 한가로움은 강호에도 없고, 산림에도 없고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 밖이 소란해도 내 마음이 한가하면 그 시끄러움이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도 내 마음이 한가롭고 보니 마음에 조금의 일렁임이 없다. 사람들은 번잡함을 피해 자연을 찾고, 시끄러움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마음에 한가로움을 지니지 않았다면 깊은 산속의 고요는 오히려 내 마음에 망상과 잡념을 일으킬 뿐이다.
■ 지지(止止)
지지(止止)라는 것은 능히 멈춰야 할 곳을 알아 멈추는 것을 말한다. 멈춰야 할 곳이 아닌데도 멈추게 되면 그 멈춤은 멈출 곳에 멈춘 것이 아니다.
- 이규보 <지지헌기 止止軒記>
이규보가 지신의 거쳐 이름을 지지헌이라 짓고, 거기에 붙인 지지(止止)의 변이다. 주역의 건괘 초일(初一)에서 “그칠 곳에 그치니 속이 밝아 허물이 없다”라 한데서 따 왔다. 지지란 그칠 데 그치고 멈출 데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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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갑만 피우고 끊겠다는 맹세는 헛된 다짐이 되기 일쑤다. 그쳐야 할 때 그친다는 말은 그칠 수 있을 때 그친다는 말이다. 나중엔 그치고 싶어도 그칠 수가 없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머무는 것이 지지(止止)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을 알기가 참 어렵다. 서 있는 자리에서는 그 판단이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 자리는 제자리인가?
■ 물리(物理)
- 강희안(姜希顔 1417-1465) <양화해 養花解>
“왜 공부는 안 하고 꽃 기르는 일 같은 데 마음을 쏟고 시간을 낭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지요. 큰 도에 들어가는 입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들 막힌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지요.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지극한 이치를 담고 있지 않은 법이 없습니다. 꽃에는 꽃의 이치가 있고, 나비에는 나비의 이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있고 짐승에게는 짐승의 이치가 있지요. 그것들은 제가끔 따로인 것 같지만 또한 모두 하나입니다.
그래서 꽃의 이치를 보다가 나비의 이치를 깨닫게 되지요. 참된 깨달음은 분자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개화를 준비하는 꽃을 보며 게으른 제 자신을 반성하지요. 혹 열매 맺지 못하는 덧없는 향기는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뿐인가요. 흘러가는 강물 앞에 서면 고여 있는 제가 자꾸만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안 하다니요. 참 섭섭하신 말씀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데,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시간을 낭비한다니요.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 언어(言語) : 말이 그 사람이다
말 속에 그 사람이 있다.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다변은 공허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 전후좌우를 가르는 말
■ 언사(言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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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할 지어다. 많은 말을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고 일이 많으면 해가 많은 법이다. 안락을 반드시 경계하고 후회할 일은 하지를 말아라. 무슨 손해가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오래 가리라. 해될 게 무어냐고 말하지도 말이라. 그 화가 길고도 클 것이다. 듣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라 귀신이 사람을 엿보고 있나니 막 불이 붙기 시작할 때 끄지 않으면 활활 타오를 때야 어찌하리. 졸졸 흐르는 몰을 막지 않으면 마침내는 드넓은 강물이 되리라. 실낱같이 이어짐을 끊지 않으면 장차는 도끼를 찾아야 하리. 진실로 능히 삼가는 것이 복의 근원이 된다. 입은 무슨 해가 되는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인 것이다.
- 허목, <기언서 記言序>
■ 어묵(語嘿)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의당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반드시 마땅히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마땅히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일 것이다. 군자의 침묵은 현묘한 하늘 같고 깊은 연못 같고 진흙으로 빚은 소상(塑像 토우) 같다. 군자의 말은 구슬 같고 혜초(蕙草 난초의 일종)와 난초같고 종과 북 같다.
- 신흠, <어묵편 語嚜篇>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감히 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다가, 물러나 뒷자리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들은 남의 험담은 금세 저기 가서 옮기고, 함께 나누어야 할 이야기는 남들이 알까 걱정한다. 말해야 할 때 말하기와 침묵하기가 참 어렵다. 사람들은 맨날 거꾸로 한다. 진흙으로 빚어놓은 소상같은 침묵을 내 안에 깃들이고 싶다. 구슬처럼 영롱하고, 혜란처럼 향기나며, 종고(鍾鼓)처럼 맑게 울리는 그런 소리를 내고 싶다.
■ 칭찬(稱讚)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해도 안되고, 다들 나쁘다 해도 안된다.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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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좋다고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 이제현, <역옹패설 櫟翁稗說>
명나라 황순요는 자검록(自監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는데 남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해서는 안된다. 내게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데 남들이 나를 헐뜯는다고 해서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다 맞추려 들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
■ 의심(疑心)
귀에다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될 이야기는 하지도 말게,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하고 어이 듣는단 말인가?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 경계한다면 이것은 남을 의심하는 것일세. 그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한다면 멍청한 일이지.
- 박지원, <답중옥 答仲玉>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이야기 한다. 이건 비밀인데 자네만 알고 있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돼! 하지만 발 없는 말은 이 말까지 보태서 사방으로 달려 나간다. “여보게! 자네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나만 알고 있으라니 남에게 말하면 절대로 안된다니. 그런 말이거든 아예 내게도 하지 말게.
말이 말을 낳고 싸움을 낳는다. 말 때문에 말이 많아 세상이 참 시끄럽다.
■ 시비(是非)
일이 생기기 전에 말을 하면 요망한 말이라 하고, 일에 닥쳐서 말하면 헐뜯는 말이라 한다. 간사한 자를 총애함을 지적하면 무고하여 헐뜯는다고 배척하고, 감춰진 간특함을 논하면 올곧다는 명성을 사려 한다고 밀친다. 마땅히 옳다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반드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를 가지고 옳다고 하고 마땅히 그르다 할 것을 그르다 하면 그른 것이 아니라면서 반드시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 그르다 한다.
- 신흠, <치란평 治亂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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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생기기 전에 충고해 주면 재수 없는 소리 말라고 타박하고, 일이 닥친 뒤에 말하면 지금까지 뭘 하다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느냐고 한다.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하면, 왜 남을 헐뜯느냐고 하고, 바른 충고를 하면 너 잘났다 한다. 옳은 것을 옳다 하면, 그것이 어째 옳으냐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면 그것이 어째서 그르냐 한다.
옛 시조에,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조홰라”라는 것이 있다. 말 때문에 상처받고, 말 때문에 피 흘린다 무심히 하는 한 마디가 아픈 생채기를 내고, 뜻없이 던진 한 한마디가 비수로 가 꽂힌다.
■ 자명(自銘)
말은 행동을 가리지 못했고, 행동을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 한갓 시끄럽게 성현의 말씀을 즐겨 읽었지만, 허물을 고친 것은 하나도 없다. 돌에다 써서 뒷사람을 경계한다.
- 허목, <허미수자명 許眉叟自銘>
허목이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내린 평가다. “나는 늘 말이 행동보다 앞섰다. 자꾸 떠벌리기만 했지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경전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지만, 그 말씀이 내 삶 속에 녹아들진 않았다. 말씀 따로 나 따로 각자 놀았다. 나는 이것이 부끄럽다.
나 죽으면 이글을 돌에다 새겨 내 무덤 앞에 묻으라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자신을 바꿀 수 있도록.“
■ 희로(喜怒)
기쁠 때의 말은 신의를 잃기 쉽고, 성났을 때의 말은 체모를 잃기 쉽다.
- 유계(兪棨 1607-1664) <잡지 雜識> *識 : 알 식, 적을 지, 기 치
* 알다. 분별하다. / 기록하다, 적다 / 깃발, 깃대에 표적을 달다
기쁜 일이 있어 기분이 좋을 때는 마음이 들떠 지키지도 못할 말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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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화가 나서 평정을 잃으면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넘치게 해서 체모를 잃는다.
청나라 주석수(朱錫綬)는 <유몽속영 幽夢續影>에서 “근심이 있을 때는 술을 함부로 먹지말고, 성났을 때는 편지를 쓰지 말라”고 했지요. 또 “잠깐의 분노로 남을 꾸짖지 말고, 잠시 기쁘다고 덜컥 승낙하지 말라”고도 했다. 다 같은 말이다. 감정이 고조 되었을 때의 판단은 믿을 수가 없다. 한 때의 기분에 좌우되어 큰일을 그르치기 쉽다. 감정은 조절할 줄 알 때 빛이 난다.
■ 자계(自誡)
가깝고 친하다 해서 나의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된다. 사랑하는 아내, 아끼는 첩이 잠자리는 같이 해도 품은 생각은 다른 법이다. 부리는 종이라 해서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된다.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 같아도 속에는 다른 마음이 있다. 하물며 나와 가깝지도 않고, 부리는 사람도 아닐 경우에랴.
- 이규보 <자계명 自誡銘>
자신을 경계하는 글이다. 말세를 살아가는 전전긍긍이 묻어난다. 동상이몽,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꿍꿍잇속은 제가끔이다. 면종복배, 면전에선 굽신거려도 속으로는 두고 보자 한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 겉만 보고 경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지 마라. 가깝다고 무심히 비춘 속내가 돌이킬 수 없는 후환을 부른다.
■ 권위(權威)
문경공 김굉필(金宏弼)이 맛난 음식을 얻어, 장차 어머님께 받들어 보내려 하였는데 지키는 자가 조심하지 않다가 고양이가 낚아채가는 바가 되었다. 공이 자못 매서운 소리로 나무랐다. 조광조(趙光祖)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어버이를 봉양하시는 정성이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하지만 군자의 말기운은 잠시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김굉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 앞에 놓인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스승이 아니라, 네가 참으로 내 스승이로구나.” 하루 종일 칭찬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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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 <심곡서원강당기 深谷書院講堂記>
연산군 때 김굉필이 평안도 희천땅에 귀양가 있을 때 일이다. 이때 조광조는 아버지가 희천 근처 어천에서고을살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김굉필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조광조의 나이 17세 때다. 구하기 힘든 맛난 음식을 얻은 자식은 멀리 집에 계신 노모 생각이 나서 집으로 보내려 했다. 그런데 하인이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고양이란 놈이 먹어 치워버렸다. 화가 난 그는 하인을 불러 불같이 호령하며 야단을 쳤다. 가만히 있던 제자(조광조)가 나서며 말했다.
권위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둘러봐도 권위는 찾을 길이 없고, 권위주의만 판을 치는 세상이다.
■ 정좌(靜坐)
신흠 <휘언 彙言> *彙 무리, 동류,
주자(朱子)의 글에 반일정좌, 반일독서라는 말이 있다. 하루의 반을 갈라 반나절은 고요히 앉아 내면을 응시하고, 반나절은 옛 성현의 말씀을 읽는다. 그러면 마음속에 차곡차곡 내려앉아 쌓이는 것이 있다. 쌓여도 찌꺼기는 남지 않고 투명한 울림만 남긴다. 생활 속에서 고요를 잊은 지가 참 오래되었다. 잠시도 가만 앉아 있질 못하고 바시닥거린다. 무슨 일이든지 꾸미지 않고는 외려 불안하다. 밤에 잘 때도 온갖 생각이 들끓어 낮에 못다 한 일이 꿈에서도 이어지고, 가위에 눌려 잠꼬대를 한다. 내 삶에 고요를 깃들이면 정신이 응고된다. 하지만 딱딱해지지 않고 단단해진다, 정신이 단단해지면 들먹들먹하던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가볍게 날리던 생각이 차분해진다. 문제는 고요다. 문제는 침묵이다.
◉ 경계(警戒) : 앉은 자리를 돌아보다
앉은 자리를 돌아보면 부끄럽다. 무심한 일상 속에 놓쳐버린 생각들 타성과 편견으로 무뎌진 마음을 자꾸 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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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소 (强笑)
뜻을 감춘 억지 웃음은 짓지를 말고 까닭 없이 격분하지도 말라. 모름지기 일에 앞서 의심 많은 것을 막고, 훗날 한갓 후회할 것을 염려하라.
- 이덕무 <사소절>
속에 감춘 뜻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웃는 체한다. 눈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 좋게 웃고는 있지만 속에는 남모르는 꿍꿍잇속이 있다. 그러다가 까닭 없이 격분하여 종내는 일을 그르친다.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을 늘 하며 사는 인생이다. 잠시만 돌아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일도 그때는 보이지 않는다. 내 삶 속에서 속을 숨긴 웃음, 까닭 없는 분노, 일에 앞선 의심, 다음 날의 후회 같은 것을 걷어냈으면 한다.
■ 충고(忠告)
근래 배우는 자들을 보면, 손으로는 소제하는 범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말하곤 합니다. 이름을 훔쳐 이것으로 남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남에게 중상 모략을 입고 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지요. 선생 같은 어른이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아서가 아니겠습니까?
- 조식 <여퇴계서 與退溪書)
글 속에 불편한 심사가 묻어난다. 퇴계 선생에게 제자들 교육 잘하라고 나무란 글이다. 내 학생이 잘못하면 내가 욕을 먹는다. 내가 잘못하면 내 부모 내 스승이 손가락질을 받는다. 편지를 받아든 퇴계는 몹시 기분이 나빴겠지. 하지만 선생은 제자 이굉중(李宏仲)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말에 비록 병통이 있지만, 우리가 통렬히 경계하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크게 받아들였다. 맵게 충고하고 달게 받았다.
■ 수졸(守拙)
* 拙 : 솜씨가 서투르다. 어리석다. 자신의 것에 대한 겸사의 말(졸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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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拙)한 것은 교묘한 것의 반대다. 임기응변의 교묘한 짓을 하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크나큰 근심이다. 남들은 이로움을 즐겨하여 구하려 나아가도,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 그 의로움을 지키는 것이 ‘졸’이다. 남들은 속임수를 즐겨 교묘한 짓을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알아 그 참됨을 지키는 것 또한 ‘졸’이다. 졸이란 남들은 버려도 나는 취하는 것이다.
- 권근 <졸재기 拙齋記>
세상 살면서‘졸拙’을 지켜가기가 교묘하게 살기보다 더 어렵다. ‘수졸(守拙)’은 옛 사람들이 꿈꾸었던 삶이기도 하다. 그때그때 속여서 모면하고, 내게 이득이 된다면 남을 속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이란 없다. 내 손에 쥐느냐 놓치느냐의 가늠만 있을 뿐이다. 졸함을 지키려면 때로 ‘저거 바보 아냐?’하는 손가락질과, ‘정말 잘났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한다. 졸함을 지킨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간직하는 것이다.
당장에 큰 이익이 눈에 보여도 가서 안 될 길은 가지 않는다. 잠깐 눈을 질끈 감으면 다 속아 넘어갈 일인데도 나 자신만은 차마 속일 수가 없다. 아무리 거들떠보지 않는 의로움을 지키고 참됨을 간직하는 일, 남들은 다 가지 않는데 나는 굳이 찾아가는 길, 그 길이 바로 졸의 길이다.
■ 위엄(威嚴)
삼가면 뉘우침이 적고, 청렴하면 위엄이 선다. 지극히 험한 일이 닥쳐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여기라. 몸가짐에 줏대가 있으면 마침내 바르게 되리. 양덕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 맡은 일 찬찬히 살피시게나.
- 권상하(權尙夏 1641~1721) <증신정언연행 贈申正言燕行>
중국 사신 길에 오르면서 한마디 덕담을 부탁하자, 써준 글이다. “자네! 먼길 떠나니 부디 귀중한 몸 보중하시게. 더욱이 아랫사람 이끌고 가는 길이 아닌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삼가고 삼가시게. 그래야만 후회할 일이 적을 것이야. 혼자 다하겠다는 생각,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 잠시 접어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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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연히 재물 욕심일랑 아예 부리지도 말게, 윗사람이 탐욕스러우면 아랫사람에게 위엄이 서지 않는 법이라네.
음덕이야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겠지만, 양덕은 밖으로 환한 빛을 발하게 마련일세. 자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어느 것 하나 소홀히하지 말고 꼼꼼이 살피시게나. 돌아오는 날 모두들 자네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싶네.“
■ 양심(養心)
맹자(孟子)는 “마음을 기르는 데는 욕심이 적음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대저 능히 욕심을 적게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은 저절로 맑아진다. 그 마음이 맑아지면 온갖 선이 생겨난다. 마음을 맑게 함이 지극해지면 마음이 환하고 맑아져서 인욕은 사라지고 천리가 행하여진다.
진실로 좋지 않은 한 생각이 마음에 싹터나 떠나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음산한 구름이 맑은 하늘을 가리거나, 흙탕물이 맑은 물결을 흐려놓은 것과 같다. 눈은 여색을 탐하고, 입은 맛난 음식을 욕심내서, 내 마음의 밝음이 날로 어둡게 되고, 정욕과 이해의 사사로움이 어지러이 움터나서, 거의 금수와 다름없게 된다.
- 권근, <양심당기 養心堂記>
화초만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기를 수가 있다. 마음에 필요한 영양제는 다름아닌 과욕(寡慾), 즉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다. 욕심은 마음을 좀먹고 뿌리를 상하게 하는 잡초요 독이다.
마음속에 미움과 시샘, 탐욕과 정욕을 향한 생각이 싹터나오면 맑고 투명하던 하늘은 음산한 구름에 가려지고, 바닥이 보이던 맑은 강물엔 흙탕물이 콸콸 넘쳐흐른다.
발정난 짐승이나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대는 짐승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다.
■ 소일(消日)
눈도 밝고 두 손도 멀쩡하면서 게으름 부리기를 즐기는 자는 툭하면 '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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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한다. '소일' 즉 '날을 보낸다'는 두 글자는 석음(惜陰)곧 '촌음을 아낀다는 말과는 반대가 되니 크게 상서롭지 못한 말이다. 내가 비록 부족하지만 일찍이 이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 이덕무, <사소절>
'소일(消日)이란 말 그대로 날을 소비하는 것이다. 빈둥거리며 하루를 때우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놀고 먹으며 지내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석음(惜陰)'은 촌음의 짧은 시간도 아낀다는 말이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으니 짧은 시간도 아깝기 짝이 없다. 특히나 젊은 날의 시간은 금쪽보다 귀하다. "아유 심심해 뭐 좋은 건수라도 없어?" 젊은 사람이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다.
소일을 하는 것과 여가를 갖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그저 시간을 죽이는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충전이기 때문이다.
■ 가석(可惜)
정신은 쉬 소모되고, 세월은 금세 지나가 버린다. 천지간에 가장 애석한 일은 오직 이 두 가지 뿐이다,
- 이덕무, <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
총명하던 정신은 금세 흐리멍덩해지고, 세월은 귓가에 쌩하는 소리를 남기고 지나가 버린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연못가 봄풀의 꿈이 깨지도 않았는데 섬돌 앞에는 어느새 오동잎이 진다. 잠깐 왔다 가는 세상, 그나마 멍청히 넋 놓다 지나쳐 버린다면 애석하지 않으랴. 오늘 놀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문득 내 자신을 바른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나이 들어 정신의 긴장이 풀어지면 지겹도록 더디 가는 시간이지만, 젊은 날의 시간은 고밀도로 농축된 시간이다. 젊은 날의 시간은 아깝고, 쏜살같은 세월이 아쉽다.
■ 차마(借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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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이 가난해 말이 없으므로 혹 빌려서 타곤 한다. 노둔하고 비루먹은 말을 빌려 타게 되면 일이 비록 다급해도 감히 채찍질을 못하고 금세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조심조심 탄다. 도랑이나 구덩이를 만나게 되면 아예 말에서 내렸다. 그래서인지 불미스런 일은 별로 없었다.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한 준마를 타게 되면 의기가 양양해서 뜻을 교만히 하고 채찍을 잡고 고삐를 풀어 언덕과 골짜기도 평지처럼 보며 매우 통쾌해하였다. 하지만 혹 위험하여 추락하는 근심을 면치 못하였다.
- 이곡, (李穀 1298~1351) <차마설, 借馬說>
잠깐 빌려 탄 말등에서도 생각이 이렇듯 팥죽 끓듯 변한다. 실제로 내가 소유한 물건이라면 어떻겠는가?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맞추어 살게 되어 있다.
■ 자극(刺戟)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은 사람에게 좋지 않다. 먹어도 또한 맛이 없다. 담백한 음식을 오래 먹다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사람에게 해로울 것이 별로 없다.
- 장붕익 (張鵬翼 1646~1735) <병세재언록 幷世才彦錄)
며칠을 담백한 음식만 먹다가 가끔 가다 한번씩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면 모두들 달고 맛있어 한다. 하지만 그 단 음식도 매일 똑같이 먹으면 질리고 물려서 젓가락이 가질 않는다. 더욱이 진한 맛의 음식은 사람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기름이 끼게 하여, 부족하니만 못하게 되기 쉽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매일매일이 신나는 모험이고, 경험해 보지 못한 자극의 연속일 수는 없다. 평범한 나날들 속에 불시에 끼어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삶의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매일매일이 모험이라면 그것은 이미 전쟁이지 신나는 그 무엇일 수는 없다.
■ 각고(刻苦)
* 각고 : 온갖 고생을 견뎌내며 몹시 애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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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되는대로 아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배우는 자의 가장 큰 병통이다. 만약 이러한 병통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높은 재주와 아름다운 자질을 지녔다 해도 결코 성취할 가망은 없는 것이다. ‘각고(刻苦)’란 두 글자가 어찌 이러한 병통에 꼭 맞는 훌륭한 처방이 아니랴!
- 권상하 (權尙夏) <우암선생수필>
송시열의 제자 유명뢰(兪命賚)가 스승에게서 받은 ‘각고’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려 글을 청하자 이에 대해 써준 글자의 첫대목이 ‘오늘만 놀고 내일부터’라든가. ‘이번은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같은 다짐은 늘 공부하는 사람의 발목을 낚아채는 덫이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내일도 없고 다음도 없다. 다만 오늘과 지금과 여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자면 손가락질과 질시가 따른다. 하지만 그 손가락질, 그 질시를 달게 받을망정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는 것만은 견딜 수가 없다. 공부는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갈 길이 바쁜데, 남의 일에 공연히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목숨 걸고 해도 될까말까한데 느긋하게 되는 대로란 참을 수 없다.
각고의 노력 없는 성취란 공염불이다. 뛰어난 자질을 타고 났으면서도 게으름과 무기력으로 결국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다가 공연히 자신에게 향해야 할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퍼붓는 경우를 많이 본다.
◉ 통찰(洞察) : 삶의 표정을 꿰뚫는 안목
인생의 의미, 삶의 표정을 꿰뚫는 안목이 필요하다.
제대로 보고 나대로 보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 달사(達士)
통달한 사살은 괴이한 바가 없지만 속인은 의심스러운 바가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고 보니 괴이한 것도 많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달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 마다 눈으로 직접 보았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앞에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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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떠오르고 백 가지가 베풀어져, 천 가지 괴이함과 만 가지 기이함이 도로 사물에 부딪쳐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때문에 마음이 한가로워 여유가 있고 응수함이 다함이 없다. 그러나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절로 괴이할 것이 없건만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만물을 온통 의심한다.
- 박지원, <능양시집서>
꼭 제 눈으로 직접 보아야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알고, 열을 알아 백을 헤아리는 지혜가 툭 터져야 한다. 처음 보는 것도 낯설지 않고, 처음 듣는 것도 겁날 게 없다. 이 사물을 미루어 저 사물을 헤아리니. 나는 그저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가교일 뿐 그 사이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언제 어떤 상황에 놓여도 두렵지 않고, 익숙히 아는 일처럼 척척 처리해낸다. 이런 사람을 달사(達士), 즉 선비라 한다.
■ 본체(本體)
남쪽으로 가는 배는 달을 보며 남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가는 배도 달을 보며 북쪽으로 간다. 하지만 하나의 달이란 본체는 남과 북의 구분이 없다.
- 권근 <회월헌기 淮月軒記>
달 보며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도 달빛은 날 따라오고, 달 보며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달빛은 날 따라온다. 남쪽으로 날 따라 내려간 달빛과, 북쪽으로 날 따라 올라온 달빛은 같은 달빛인가 아닌가? 달은 그저 중천에 높이 떠 있는데, 저마다 저 있는 자리에서 그 달을 보며 제 생각을 한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천개의 강물 위로 도장 찍힌 달빛은 진짜 달일까 아닐까? 강물 위에 비친 그림자가 허상일 뿐이라면, 진짜 달은 허공에만 붙박여 있는 걸까?
하늘에 뜬 달과 강물에 비친 달의 거리는 아득히 먼데, 맑은 강물 위에 어린 밝은 달빛은 그 아득한 거리를 아랑곳 않는다. 물위에 비친 달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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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치에서 나와 1천 개 1만 개로 나뉘어지는 일리만수(一理萬殊)의 간격 없음을 생각한다. 한 깨달음이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와 내 모든 행동으로 옮겨지고, 그것이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옮겨지는 그 아름다운 감염의 경로를 생각한다.
■ 속임
사람이 나서 살아가는 동안에 귀하게 여길 것은 성실에 있다. 어떤 것도 속일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다.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며, 농사꾼이 동료를 속이거나 장사꾼이 동업자를 속임에 이르러서는 모두 죄에 빠져 어그러지게 되고 만다. 오직 한 가지만은 속일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입이다.
- 정약용, <우시이자가계 又示二子家誡>
성실은 가장 든든한 나의 동반자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된다. 하지만 제 입을 속이고, 제 눈을 속이고, 제 몸을 속이는 것은 괜찮다. 상추 잎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밥을 한 숟갈 듬뿍 얹는다. 그 위에 장을 두고 주먹만하게 싸사 한 입에 우겨넣는다. 두 볼이 미어지게 우물거리다 보면, 다른 반찬 하나 없어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이것이 가난하여 먹을 것 없던 다산 선생이 유배지에서 개발한 입 속이는 방법이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정신의 넉넉함을 잃어버리는 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되고 명예의 종이 되어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는 일이다. 거친 밥, 헤진 옷, 초라한 집은 내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다.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속여 먹을 수가 있다.
■ 외모(外貌)
문절공 주열은 용모가 추했다. 코가 마치 썩어문드러진 귤 같았다. 충렬왕의 왕비인 안평공주가 처음 왔을 때 일이다. 여러 신하들과 전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공이 일어나 축수를 올리자 공주가 왕에게 말했다. "어찌 갑자기 늙고 추한 귀신으로 하여금 앞으로 다가오게 하십니까?" 왕이 말했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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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추하기가 귀신같지만, 마음은 맑기가 물과 같지요." 공주가 낯빛을 고쳐 예로 대하였다.
* 고려의 충선왕, 충렬왕 등 충자가 붙은 왕은 왕비를 원나라에서 데려옴
- 이제현. <역옹패설>
사람들은 늘 겉만 본다. 겉모양에 팔려 늘 핵심을 놓친다. 번드르한 외양에 자꾸 속는다. 포장술에 속아 물건을 사고, 말쏨씨에 혹해 사기를 당한다. 외모는 추악한 늙은 귀신 같아도 물처럼 맑은 마음을 지녔던 주열, '심청여수 心淸如水)란 말이 마음에 닿는다. 겉모습에 현혹됨이 없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는 언제나 생길까?
■ 안목(眼目)
그림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 아끼는 사람, 소장하는 사람이 안다.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慨之)의 그림을 부엌에 걸거나, 왕애(王涯)의 그림을 벽에다 꾸미는 사람은 오직 소장한 것일 뿐이니 반드시 능히 그 그림을 볼 자격이 없다.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외형이나 법도 같은 것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오묘한 이치와 아득한 조화속에서 마음으로 만난다. 그런 까닭에 그림 감상의 묘는 소장하거나 바라보거나 아끼는 세 부류의 껍데기에 있지 않고, 알아봄에 있는 것이다. 알게 되면 참으로 아끼게 되고, 아끼면 참으로 볼 수 있게 되며, 보이게 되면 이를 소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는 다르다.
- 유한준 (兪漢儁 1732~1811), <석농화원발 石農畵苑跋>
그림을 보는데도 수준이 있다. 그저 값만 따져 아무데나 걸어 놓는 사람이 있다 화장실에도 걸어 놓고, 부엌에도 걸어 놓고, '저게 얼마짜린데' 한다. 돈을 걸아 놓은 것이지 그림을 걸어 놓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재산 가치만을 따질 뿐 정작 그림은 안중에도 없다.
그림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붓의 터치가 어떻고, 종이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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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떻고, 구도는 어떻고, 모양은 어떻고 에만 관심을 가진다.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만 본다. 정작 그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 그림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다. 그들의 시선은 색채나 법식 따위를 넘어선다. 그들은 그림에서 정신을 본다. 그림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수를 빨아들이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림과 하나가 되어서 논다.
그림을 벽에 걸어놓는 행위는 다 같지만 차이가 있고 수준이 다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삶 속으로 들어온 그림은 그 자체로 내 삶의 일부가 된다.
■ 시청(視聽)
남을 살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살피고, 남에 대해 듣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들으라.
- 위백규(魏伯珪 1727~1798) <좌우명 座右銘>
열 살 때 지었다는 좌우명이다. 그 조숙함이 참 맹랑하다. 자꾸 눈길을 밖으로 향해 기웃거릴 것 없다. 남 잘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오고, 제 허물은 덮어 가린다. 남 비방하는 말은 솔깃해서 듣고, 남이 제 말 하는 것은 못 견딘다. 반대로 하면 어떨까?
공연히 바깥 말에 혹해 솔깃하기보다, 내 눈을 똑바로 뜨고 내가 나를 보고, 내 귀를 열어놓고 내가 듣는 것이 백 번 낫지 않을까?
■ 재기(才器)
사람의 재주와 능력은 능하고 능하지 못함이 있다. 농부는 농사 일에 밝지만 농사일을 맡는 관리가 될 수는 없다. 장시치는 물건 파는 데는 능해도 장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될 수는 없다. 물건 만드는 사람은 물건 만드는 데는 띄어나나 물건 만드는 일을 맡는 관리가 되지는 못한다. 이것은 제가끔 자신의 재주를 지녀 서로 섞여 쓸 수 없음을 말한다.
- 성현, <부휴자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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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을 자리를 보고 뻗어야 한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힘들이지 않고도 성취의 보람을 나타낼 수가 있다. 길이 아닌데 굳이 고집을 부리면 죽을 고생을 하고도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한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나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임을 깨달아’, 어릴 적 외웠던 <국민 교육헌장>의 한 대목이다.
■ 안분(安分)
천하의 큰 죄악과 큰 재앙은 모두 능히 담박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가운데서 나오게 마련이다. <중용>에는 “빈천에 처하면 빈천을 편안히 여기고, 환난을 마주하면 환난을 편안히 여기라”고 했다.
- 이덕무, <사소절>
담박(욕심이 없고 순박함)을 즐길 줄 알면 적빈(赤貧 매우 가난함)도 기쁘다.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여기서 죄악과 재앙이 싹튼다. 조금 뜻을 꺾어 재물을 취하면 더 많이 갖고 싶고, 이내 그 욕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끝간데를 모르게 된다.
광해군 때 윤인은 이이첨(李爾瞻)의 심복 노릇을 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니며 폐모론을 주장했다. 그가 인조반정 후 참형을 당할 적에, “배 고프고 추운 것을 10년만 참았더라면 어찌 오늘 같은 일이 있었겠는가?”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깨달음은 후회보다 언제나 반걸음 뒤미처 온다. 깨달았을 때는 돌이킬 수가 없다.
■ 새해
6,7세나 8,9세 때는 섣달 그믐이나 설날만 되면 어찌 그리 좋았던지. 길게 늘인 운장건(雲長巾)을 쓰고, 총각머리를 묶고, 초록색 작은 솜옷을 입고 붉은 비단 띠에 붉은 가죽신을 신고서 밤에는 윷놀이하고 낮에는 종이연을 날렸다. 어른 들게 세배를 가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셨다. 이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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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쭐한 기분이 막 일어나 바람처럼 내달리니 머리카락이 온통 날리었었다. 천하에 좋은 시절은 이날보다 좋은 때가 없었다. 이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설레며 움직인다. 제 몸을 돌아보면 벌써 7척이나 되고 높은 관은 키(箕 키 기, 대나무로 만든 곡식을 까부는 키)와 같고, 수염은 거뭇거뭇 하다. 도리어 시새워 말하기를 “너희들도 이제 머지않아서 턱에 거뭇한 수염이 날 테니 네 때때옷은 어디다 쓰겠니?” 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반드시 믿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 이덕무 <이목구심서>
고려 때 진각국사(眞覺國師)는 설날 법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한 살을 더 먹기를 바라고, 늙은이는 한 살 더 줄기를 바랄 것이다. 누가 한 해라는 시간을 정해 놓았더냐. 차라리 한 해라는 시간을 없애버림은 어떨꼬?”
◉ 군자(君子) : 가슴 속에 떳떳함을 지닌 사람
세상은 군자와 소인 두 부류로 나뉜다. 둘은 늘 대비된다.
가슴 속에 떳떳함을 지닌 사람이 군자다.
소인은 조금 얻으려다 다 잃는 사람이다. 나는 군자인가, 소인인가?
■ 안면(顔面)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으면 네가 반드시 먼저 빛깔이 새빨갛게 되고 진땀이 물처럼 흐른다. 사람과 마주해서 고개도 못 들고, 비스듬히 돌려 숙여 피한다. 마음이 하는 것은 네게로 옮겨간다. 무릇 모든 군자들아! 의로움을 행하고 위의(威儀)를 지녀라. 마음속에 능히 거리낌이 없어 너로 하여 부끄럼이 없게끔 하라.
- 이규보 <면잠 面箴>
마음의 생각이 얼굴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얼굴은 ‘얼의 꼴’, 마음의 창이 다. 표정이란 말도 정(情), 즉 마음속 생각이 겉(表 )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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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생긴대로 논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마음속 생각에 따라 표정도 이랬다저랬다 한다. 부끄러운 짓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흐른다.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상대의 눈빛을 마주볼 수가 없다. 자랑스런 일을 하면 어깨가 펴지고, 눈빛을 맞출 그 누군가를 찾아 눈길이 왔다갔다 한다.
중년 이후에는 얼굴이 책임을 지라는 말도 있다. 살아온 삶의 이력이 그 위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얼굴은 삶의 성적표다. 부끄러움 없는 얼굴은 맑게 갠 하늘같다. 먹구름이 몰려와 그 하늘을 찌푸리게 하지 않도록 마음의 창을 닦고 또 닦아야겠다.
■ 소인(小人)
군자가 소인을 다스림은 언제나 느슨하다. 그래서 소인은 틈을 엿보아 다시 일어난다. 소인이 군자를 해침은 무자비하다. 그래서 남김없이 일망타진한다. 쇠미한 세상에서는 소인을 제거하는 자도 소인이다. 한 소인이 물러나면 다른 소인이 나온다. 이기고 지는 것이 모두 소인들뿐이다.
- 신흠, <휘언>
소인들끼리 치고 받고 다 해먹는 세상은 희망이 없다. 군자는 이미 씨가 말라 찾아볼 수가 없다. 간혹 군자가 다스리는 세상이 되어도 그들은 소인을 감싸안고 함께 가려하므로, 결국에는 소인의 책략에 걸려 희생되고 만다. 나중에는 소인들만 남아서 자기들끼리 뺏기고 빼앗고 한다. 잔머리 굴리는 것을 국가를 위한 책략으로 착각하고, 남 해치는 것을 나라의 우환을 제거키 위한 충정으로 미화한다. 그 싸움이서 이긴 자도 소인이고, 잔 자도 소인이다. 똑 같은 놈들이 똑같은 일만 되풀이 하다 같이 망한다. 슬픈 것은 이들이 망할 때는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가 함께 망하게 한다는 점이다.
■ 치란(治亂)
- 신흠, <휘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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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와 난세의 구분은 어떻게 하나? 소인이 판을 치면 그것이 난세요. 군자가 역량을 발휘하면 그것이 치세다. 소인과 군자는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소인만 눈에 보이고, 세상이 다스려지면 소인은 달아나 보이지 않는다. 난세의 군자는 핍박받아 불우를 곱씹지만, 치세의 소인은 그늘에서 못된 짓으로 여전히 제 잇속을 챙긴다. 치세에도 군자는 늘 호시탐탐 덫을 쳐놓고 노리는 소인배의 술수 속에 노출되어 있다. 횡행하는 소인배들의 소음 속에서 세상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한 것을 본다.
■ 정신 (精神)
- 최영경, <수우당실기>
최영경이 정여립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하는 장면의 기록이다. 신문을 받으며 “이제 도리어 간흉들의 모함을 받게 되었으니 만 번 죽더러도 속죄하기 어렵다” 하자. 신문하던 정철이 ‘간악한 무리는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냐’고 묻자, 그를 똑바로 쏘아보며 “바로 그대 같은 무리들이다”라고 했다. 긴 수감 생활과 고문으로 죽기 전, 그는 꺼져가는 숨을 가다듬고 ‘정 正’자 한 글자 한 글자를 쓰고 세상을 떴다. ‘나는 바르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 죽음 앞에서 쓴 그 바를 정(正)자 한 글자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나는 붓을 들어 무슨 글자를 쓸 수 있을까?
■ 기예(技藝)
무릇 사람의 기예는 비록 같다 해도 마음 씀씀이는 다르다. 군자는 기예에 뜻을 의탁할 뿐이다. 하지만 소인은 기예에 뜻을 뺏기고 만다. 기예에 뜻을 뺏기는 것은 물건 만드는 장인처럼 기술을 팔고 힘으로 먹고 사는 자나 하는 일이다. 기예에 뜻을 의탁하는 것은 뜻 높고 깨끗한 선비로 마음속에서 묘한 이치를 찾는 사람이 하는 바다.
- 강희맹 (姜希孟 1424~1483) <답이평중서 答李平仲書)
우의(寓意)와 유의(留意)의 차이가 예술과 기술의 차이를 낳는다. 우의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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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뜻을 깃들이는 것이다. 뜻을 깃들인다는 말은 그 기예를 통해 내 삶을 좀 더 기름지게 하고, 숨을 통하게 할 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유의는 뜻을 머물게 하는 것이다. 뜻이 머물면 그것만 생각하고 집착하게 된다. 나는 없어지고 기예만 남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다. 기예에 정신이 팔려 나를 잃고 끌려다니면, 기술이야 늘겠지만 정신에는 도움이 안된다.
■ 선비
몸에 역량을 간직하고 나라에 쓰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선지다. 선비는 뜻
을 숭상하고, 배움을 도타이하며, 예를 밝히고, 의리를 붙들고, 청렴을 뽐내
고, 부끄러워 할 줄 안다 하지만 또 세상에 흔하지가 않다.
- 신흠, <사습편 士習篇)
선비란 올바른 뜻을 지니려 노력하는 자다. 이를 위해 그는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환히 밝혀 그 잘못된 까닭을 살핀다. 그의 행동은 의로움에 바탕하며, 욕심을 부려 탐욕에 물들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에는 부끄러워할 줄 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 마음밭은 돌보지 않고, 새로운 배움에는 관심이 없다. 늘 하던 대로만 하고, 제게 좋은 일이면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에게서 예의의 정당힌 기준을 찾기 힘들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소인이다.
■ 호연(浩然)
비 갠 뒤의 바람, 맑고 시원하다. 구름을 뚫고 나온 달빛, 곱고도 깨끗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면 금세 부끄럽고, 해서는 안될 일이었던 적이 너무도 많다. 괜찮겠지 싶었는데 지날수록 마음에 켕기는 일이 자꾸 생긴다. 화를 내자니 너무 박절한 것 같고, 가만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심광체반(心廣體胖)이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말이다. 마음은 툭 터져서 걸림이 없고, 신체는 건강해서 기름기가 돈다. 거칠 것이 없고 겁 날 것이 없다. 거기서 솟아나는 기운이 바로 호연지기다. 호연지기는 어디에서 생기나. 내가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아, 남 앞에 공연히 주눅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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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위축되지 않을 때 생긴다. 툭툭 털어도 숨길 것 없이 떳떳하여 불의가 침범하지 못하고, 유혹이 날 흔들지 못할 때 생긴다. 하지만 구름은 자꾸만 달빛을 가리고, 비는 툭하면 바람을 적신다. 잘하다가도 한번만 삐끗하면 물거품이 된다.
■ 검신(檢身)
자기의 허물은 살피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것은 군자다. 남의 허물은 보면서 자기의 허물은 살피지 않는 것은 소인이다. 자신을 점검함을 진실로 성실하게 한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제 앞에 보일 터이니,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만 살피는 자는 자신을 검속함이 성실치 못한 자다. 자기의 잘못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은 살피며,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남의 허물은 들춰내니, 이야말로 허물 중에 큰 허물이다. 자기의 허물을 능히 고치는 사람은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만하다.
- 신흠, <검신편 檢身篇>
■ 강하(江河)
제 힘만 믿고 날뛰는 사람은 제 명에 죽지 못한다. 이기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수를 만나게 된다. 도둑은 주인을 미워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원망한다. 군자는 천하의 위가 될 수 없음을 알아 아래에 처하고, 뭇 사람의 선두가 될 수 없음을 알므로 뒤에 선다. 강하가 비록 아래로 흐르지만, 온갖 시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자기를 낮추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친함이 없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 경계할 지어다.
- 허목, <기언서>
남을 꺾기 좋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적수를 만나 큰코다치게 된다. 지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은 마침내 제 발등을 찍고 만다. 도둑이 주인을 미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훔치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하(江河)는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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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면서도 모든 시냇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낮추면 높이자고, 높이면 낮아진다. 하늘의 도는 특별히 편애함이 없다. 다만 착한 사람 편에 설 뿐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 슬픔
영의정 김전(金銓)이 그 아들의 제문에 이렇게 썼다.
“지난해엔 네가 아들을 잃더니만, 금년엔 내가 너를 잃었다. 부자간의 정리를 네가 먼저 알았구나. 상향.”
단지 두어 마디 말을 썼을 뿐인데, 마음속 정이 깃들여 있어, 읽으매 슬퍼할 만하다.
- 이숙권, <패관잡기 稗官雜記>
장성한 아들을 앞세우는 그 슬픔이 어떠할까만 단지 18자만 쓰고 붓을 놓았다. 지극한 슬픔은 오히려 차분하다. 통곡하고 몸부림치는 것은 얕은 슬픔이다. 말 속으로 눈물이 골골 타고 넘어 간다. 표정을 잃은 그 앞에선 침묵만 맴돈다. 아들아! 자식 떠나보내는 슬픔을 네가 나보다 먼저 맛보았구나. 그때의 네 마음을 내가 이제야 알겠구나! 아, 슬프다. 상향.
◉ 통변(通辯) : 변해야 남는다
하늘 아래에 변치 않는 것이 없다. 하지만 막상 변한 것도 없다. 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변화하는 것들 속에서 변치 않을 가치를 찾자.
■ 흉내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고, 지금은 후세의 옛날이다. 옛날이 옛날로 되는 것은 연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말로는 전해 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옛것은 귀히 여기면서 지금 것은 천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리를 아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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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량호 (洪量浩 1724~1802) <계고당기 稽古堂記)
옛날은 그때의 지금이요. 지금은 후세의 옛날이다. 참 멋있는 말이다. 옛 것을 사모하는 지금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옛날로 돌아가 1주일만 살다 오라고 한다면 넌덜머리를 내며 고개를 젓고 돌아올 것이다. 매일 머리도 못 감고 샤워도 할 수 없고, 더군다나 화장실은 재래식에다, 빨래를 맨손으로 세제도 없이 얼음을 깨고 해와서 고드름이 송송 맺힌 채 동태 말리듯 몇 날을 말려야 한다면 죽어도 못한다고 달아날 것이다. 그런데 옛것은 우아하고 지금 것은 천박하다고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든 옛날은 실제의 옛날이 아니라 관념화된 추상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옛날도 그때에는 변화해 가는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지금이 모여 옛날이 된다. 지금이 지금 다울 때 옛날이 된다. 지금이 옛날을 본뜨면, 그것은 훗날에는 옛날이 되지 않고, 옛날을 흉내낸 가짜가 될 뿐이다.
■ 조예(造詣)
시문이나 그림은 오로지 그 조예가 어떠한가를 살필 뿐 옛것이냐 지금 것이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고금이란 두 글자가 사람의 안목을 낮게 만든다”고 내가 말한 바 있고, 장자 또한 “옛것에 가려 지금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 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
후고박급(厚古薄今), 옛것이면 좋고 지금 것이면 나쁘다는 생각은 그 연원이 오래다. 옛날은 완전했는데, 시대가 내려올수록 불완전해졌다는 생각은 뿌리깊은 상고주의(尙古主義)와 무관치 않다. 시는 이백 두보에서 끝났고, 문장은 사마천에서 완성되었다. 정치는 언제나 요순시절을 꿈꾼다. 후대는 어찌하면 멀어진 원형에 다가설 것인가로 고민한다. 하지만 그런가? 그것도 그때엔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다.
■ 고금(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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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로 지금을 보면 지금이 진실로 형편없다. 하지만 옛 사람이 자신을 보 며 스스로 예스럽다 여기지는 않았을 터이다. 당시에 보던 자 또한 하나의 지금으로 여겼을 뿐이리라. 그런 까닭에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한다. 아침에 술 마시던 자는 저녁에 그 장막을 떠난다. 천추만세는 지금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 박지원 <영처고서 嬰處稿序>
젊은이들의 생각과 태도는 왠지 마음에 안 든다. 도무지 버릇이 없다. 지금 세상은 늘 말세다. 금세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내가 저만했을 때는 안그랬는데 하는 말은 기성세대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가?
역사의 무대에는 주인공이 매일 바뀐다. 흘러간 레퍼토리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추억 속에서만 반짝인다. 옛날은 어디에 있나?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옛날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된다. 내가 내가 될 때 훗날은 그것을 옛날이라 한다. 옛사람 흉내나 내서는 옛날이 될 수 없다. 배울 것이 없게 된다.
■ 고식(姑息)
하던 대로 따라하고, 잠시의 편안함만 취하며, 구차하게 놀고 임시변통으로 떼운다. 천하의 온갖 일이 이 때문에 허물어지고 만다.
- 박종채 <과정록>
인순고식(因循姑息)이란 예전 해오던 대로 그대로 따라하고, 잠시 제 몸 편안한 것만 생각하여 바꿀 생각이 없고, 향상할 욕구도 없는 상태다. 그저 세 끼 밥이 입에 들어가니 사는 것이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더 뭘 바라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구차미봉(苟且彌縫)은 그러다가 일이 생기면 정면을 돌파할 생각은 않고 어찌어찌 술수를 부려 그저 넘어갈 궁리만 하고, 임시변통으로 대충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는 태도다.
변화할 줄 모르는 삶, 향상을 거부하는 삶은 밥벌레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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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用意)
소동파가 말했다. “물건을 사려하면 돈이 필요하듯, 글을 지으려면 뜻을 써야 한다.” 참으로 맛있는 말이다. 대저 시장 가운데 물건이 숱하게 많지만, 돈이 없고 보면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옛 사람의 책 속에 문자가 수도 dqjt지만 뜻이 없으면 내가 가져다 쓰지 못한다. 뜻을 버리고서 옛책을 읽는 것은 돈 없이 저자의 가게를 어슬렁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임상덕, <통론독서작문지법>
돈으로 물건을 사듯 뜻을 써서 글을 짓는다. 참 맛이 있는 말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이는 시장통을 백날 어슬렁거려봐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을 수도 없다. 생각 없이 그저 읽기만 해서는 백 권 천 권을 읽어도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뜻이 없이는 소용이 없다.
정신을 딴 데 두고 하는 공부는 백날 해봤자 도로아미타불이다.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 법고(法古)
- 박지원, <초정집서 楚亭集序>
옛날을 본받자고 죽자고 따라만 하고, 자기 길을 가겠다며 괴상망측한 짓만 한다. 따라만 하는 옛날은 죽은 옛날이고, 듣도 보도 못한 지금은 미친 지금이다. 나는 없고 옛날만 있으면, 굳이 내가 할 이유가 없다. 남이 못 알아들을 나만 있으면 굳이 남 보라고 내 놓을 까닭이 없다. 옛날에서 가져와도 지금에 맞게 바꾸고, 새것을 만들어도 바탕이 있다면, 굳이 지금이니 옛날이니를 따질 필요가 없다.
■ 미봉(彌縫)
하는 일마다 미봉책을 써서 부딪치는 곳마다 파탄을 일으키는 자는 재주 없는 소인이다. 단지 새로 알게 된 사람을 농락하려 드는 까닭에 몇 달 가는 벗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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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 <사소절>
카드 빚에 몰린 사람은 새로 카드를 만들어 대출받아 앞선 빚을 갚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새 카드를 만들다가 마침내는 파탄에 이른다. 목돈을 손에 쥐려고 자동차를 할부로 사서 사자마자 되파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것이 미봉이다. 우선 급한 김에 눈앞의 불을 끄기에 급급해서, 이러한 되풀이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 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외면한다.
이런 소인들은 자꾸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만, 접근의 의도가 불순하므로 단물이 빠지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알아채고 멀리한다.
■ 상하(上下)
위아래는 정해진 위치가 없고, 낮고 높음은 일정한 이름이 없다. 아래가 있으면 반드시 위가 있기 마련이다. 낮은 것이 없고 보면 어찌 높은 것이 있겠는가?
- 강희맹 <승목설 升木說>
위아래는 상대적인 이름이다. 누구 누구보다 얼마나 더 높고 낮은지를 따지는 것은 그래서 쓸데없는 짓이 된다. 누구에 비해 얼마나 더 높고 낮은지는 또 다른 누구 앞에 서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가장 높았던 사람이 저기서는 가장 낮은 사람이 된다. 동네에서 폼 잡다가 큰물에 나가 망신만 당한다. 스스로 높다고 생각해 젠체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 없다. 내가 힘겹고 어려우면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내가 넉넉하여 힘이 생겨도 저 밑바닥 시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야 옛말하며 살 때가 있게 된다. 조금만 힘들어도 남 원망이나 하고 못 참고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사람이 있다. 향상의 기회를 제발로 차버리는 사람이 있다. 높아지려 하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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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轉新)
- 조희룡,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워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물건이야 전에 없던 것들이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세상 사는 이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정말 새로워 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옛것을 적당히 바꿔 새롭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이다. 어떤 새롭고 유용한 것도 옛것 속에 이미 다 들어 있다. 파천황의 새것은 어디에도 없다. 고치고 다듬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 끝 -
2017.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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