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2018. 12. 10. 18:38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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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

■ 류시화

0 본명 안재찬. 경희대 국문과 졸

0 1980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 시 <아침>으로

0 시인이자 번역가

0 시집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을 것처럼. - 한 줄도 너무 길다. 등

0 명상집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 등

0 수필집

-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지구별 여행자. 외

0 번역서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외 다수

■ 들소와 천막이 사라진 어머니 대지에 울려 퍼지는

인디언들의 영혼과 대지의 이야기

인디언 그들은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아는 자연의 형제들이었으며,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들이었다. 자신들을 말살시키려는 문명의 거대한 폭력 잎에서도 어머니 대지를 먼저 생각했고, 사물의 본성을 알아 그것으로부터 음식과 옷, 약과 도구를 얻어낸 현자들이었다.

시애틀 추장, 조셉 추장, 앉은 소, 구르는 천둥, 빨간 윗도리, 검은 새, 열 마리 곰…….

이 책은 인디언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슬픈 역사를 담은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 모음집이다. 문명인임을 자랑하는 백인들의 위선에 찬 삶과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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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신세계를 지적하는 그들의 연설은 단순하고 시적이며, 화살처럼 듣는이의 가슴에 곧바로 날아와 꽂힌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오랜 침묵의 목소리는 대지 그 자신의 소리없는 목소리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오래된 지혜의 목소리가 다시금 세상에 울려퍼지고 있다.

■ 인디언의 혼을 갖고 태어나

첫 숨을 들이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우리 인디언은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았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넘쳐나고, 대지 전체가 곧 학교이며 교회였다. 우리의 삶 속에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었다. 그것은 기도의 의무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홀로 있음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성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필요없었다.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행복했다.

물질이나 소유는 우리가 쫓아다니는 것들이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침묵과 빛으로 채우는 일을 산성하게 여겼다. 이 대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잠시 빌린 것임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소중히 다뤄 다음 세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자연을 완성된 이름다움으로 여겼으며, 그것을 파괴하는 것을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약초를 캘 때도 처음 만나는 것은 캐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할아버지 약초로 여겼으며, 그에게 필요한 만큼만 땅에서 취하고, 취한 만큼 돌려주었다. 우리가 가진 것,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 대해 잊지 않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자연은 질서에 순종하지만 문명은 그 질서를 깨려고 노력한다. 자연은 순화하고 부드러우며, 생명력으로 넘치는 곳이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사람은 결코 공격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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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 시애틀 추장 - 수콰미쉬 족과 두와미쉬 족

우리 희망을 갖자.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과 얼굴 흰 형제들 사이의 적대감이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서로를 적대시 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기만 할 뿐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젊은 전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식들을 잃은 우리 늙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싸움을 통해선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지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따라서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겠다고 한 제의는 우리에게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들을 팔아 넘기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우리 대추장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그에게는 우리의 땅조각이 다른 땅 조각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땅을 손에 넣기 위해 한밤중에 찾아온 낯선자다. 대지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는 대지를 정복한 다음 그곳으로 이주한다. 그는 대지에 대해서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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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머니인 대지와 맏형인 하늘을 물건처럼 취급한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치워 사막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당신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당신들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대지에게 가해지는 일은 대지의 자식들에게도 가해진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는 것은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안다.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안다.

얼굴 흰 사람들의 신은 그의 얼굴 붉은 자식들을 사랑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다. 만일 서로 같은 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신은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어느 한쪽만을 편애하는 신이다. 그는 얼굴 흰 사람들에게만 왔다. 우리는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그는 얼굴 흰 사람들에게는 법을 내려주셨지만 하늘을 뒤덮은 별들처럼 이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얼굴 붉은 자식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의 부족과 우리 부족은 기원도 다르고 운명도 다르다. 이 두 부족사이에 공통점이란 없어 보인다. 밤과 낮은 한 집에 살 수 없다. 얼굴 붉은 사람들은 떠오르는 아침 태양에 새벽안개가 달아나듯, 얼굴 흰 사람들이 다가오면 뒤로 달아날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날들을 어디서 보내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울 것이다. 단 한 개의 밝은 별도 지평선에 걸려 있지 않다. 슬픈 목소리를 한 바람만이 멀리서 울부짖고 있다. 냉정한 복수의 여신이 얼굴 붉은 사람들의 오솔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느 곳으로 가든 우리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파괴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상처 입은 사슴이 사냥꾼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처럼.

몇 번의 달이 더 기울고 몇 차례의 겨울을 더 넘기고 나면, 한때 이 드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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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대지 위를 뛰어다니던, 위대한 정령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살던 힘센 부족의 아이들은 모두 무덤 속으로 걸어들어 갈 것이다. 한때는 당신보다 더 강하고 더 희망에 넘쳐 있던 부족의 아들들이.

당신들의 부족이 쓰러질 날이 지금으로선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얼굴 흰 사람들이라 해도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할 것이며. 결정이 나는 대로 알려주겠다. 하지만 우리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우리의 땅을 당신들에게 팔더라도 우리가 언제나 자유롭게 우리 조상들의 무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우리의 친구와 아이들의 무덤도.

지금 당신들이 서 있는 이 흙도 우리 부족의 발이 닿으면 훨씬 더 다정하게 반응한다. 이 흙은 우리 조상들의 맨발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죽은 자라고 해서 아무런 힘을 갖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을 사라져가는 우리 부족이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헌다, 그들은 단지 세상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지금 내가 ‘죽은자’라고 말했던가? 그렇지 않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시애틀 추장의 절친한 백인 친구였던 헨리 스미스가 이 연설을 기록했다. 시인이며 의사인 헨리 스미스는 2년에 걸쳐 드와미쉬 족 언어를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연설을 기록해 두었다가 30년이 지난 뒤 <시애틀 선데이 스타>지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자신이 받아 적은 내용은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시애틀 추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시애틀 추장의 원래 이름은 시앨트이며 두와미시족 어머니와 스콰미시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슈외베도 추장이었다. 하지만 인디언들에게 추장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단순한 역할에 불과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들을 필요가 있을 때만 추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3백 년이 지나 유럽인들이 미국 서부의 퓨젓 사운드에 도착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 후 70여 년이라는 한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그가 태어난 마을은 풍요로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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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꽃피어나던 장소에서 탐욕스런 이방인들에 의해 고유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장소로 변해갔다. 어른이 된 시애틀은 백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자신들의 땅과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인디언들에게 불어 닥친 강제적인 생활이 변화는 이미 누구도 되돌리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유럽인들에게서 옮은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부족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는 억압당했다.

그의 연설은 1971년 방송작가 테드 페리가 <집>이라는 제목의 환경 다큐멘터리 대본으로 사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환경 파괴에 대한 시애틀 추장의 예언은 놀랄 만큼 정확하며 세상 만물을 형제자매로 보는 시각은 부족을 막론하고 모든 인디언들이 공유하고 있던 사상이었다.

스콰미시족 출신의 아멜리아 스니틀럼은 그의 자서전에서 시애틀 추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천둥새와도 같은 힘을 지녔다. 그가 말을 하면 대지가 몸을 떨 정도였다." 추장의 아들 제임스 시애틀은 말했다.

"얼굴 흰 사람들은 결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시애틀은 가고 없어도 부족들은 그들의 추장을 기억할 것이고. 다가오는 세대들도 그를 존경할 것이다."

시애틀 추장은 죽어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썼던 스콰미시족의 땅에 묻혔다. 그의 묘지 건너편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 이 위대한 추장의 이름이 붙여진 거대한 시애틀 시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알마 후 시애틀 시에는 인디언이 거주할 수 없다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월등한 성능을 갖춘 무기, 인디언들이 면역력을 채 키우지 못한 전염병 그리고 속임수와 거짓 덕분이었다.

오네이다 족 치료사 와나니체가 한 말이다.

"유럽인들이 농노와 노예제도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갈 때 이로쿼이족 인디언들은 6개 부족 연맹을 만들어 민주적인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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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헌법은 훗날 미합중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인디언들의 정신은 더 없이 심오하고 언제나 위대한 창조주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이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무시한 결과 사막은 넓어지고 대륙의 표토는 50%가 유실되었으며 불모의 땅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 대지를 잘 보아라. 우리는 대지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다. -오래된 인디언 격언

* 당신들이 보고 있는 이 흙은 평범한 흙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흙이다. 거죽에 있는 그 흙들을 파고 내려가야 당신은 비로소 자연의 흙을 만나게 될 것이다. 거죽에 있는 흙은 모두다 우리 인디언들이나 다름없다. 이 대지는 그 자체로 나의 피, 나의 유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성한 것이다. - 쉬즈히즈 / 레노 크로우 족

■ 이 대지 위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 빨간 윗도리(사고예와타), 세네카 족

형제여, 당신은 얼굴 흰자들이 보낸 한 사람의 선교사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만남은 당신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우리는 귀 기울여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은 또 우리에게 자유롭게 말할 것을 요청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당신 앞에 똑바로 서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한 말, 그리고 얼굴 흰 사람들로부터 들은 말들을 당신에게 들려줘야만 한다.

형제여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한 때 우리 조상들이 이 큰 섬을 소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세워놓은 인디언 천막이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위대한 정령은 얼굴 붉은 사람들이 사용하라고 이 대륙을 만들었으며 들판 가득 들소와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을 뿌려놓았다. 곰과 비바를 보내 우리가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을 수 있게 하고,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땅에선 옥수수가 자라게 했다. 위대한 정령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얼굴 붉은 자식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냥터를 놓고 조금이라도 다툼이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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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우리는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힘겨운 날들이 찾아왔다. 처음에 그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 그들은 박해자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한 뙈기의 땅만 내 달라고 사정했다.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청을 받아주었다.

우리는 그들을 친구로 맞이했으며 그들 역시 우리를 형제라 불렀다. 우리는 그들을 믿었고. 그들에게 더 넓은 지역을 내주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들은 더 많은 땅을 원했다. 나중에는 아예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전체를 손에 넣으려고 덤벼들었다. 우리는 눈이 번쩍 뜨였으며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곧이어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은 인디언들을 매수해 다른 인디언들과 싸우게 했으며, 그 결과 많은 인디언 부족이 멸종하기에 이르렀다. 또 그들은 독한 술을 들여와 우리더러 마시게 했다. 그 결과 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자리는 협소해지고 당신들의 자리는 거대해졌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 자신들의 종교까지 강요하고 있다.

얼굴 흰 사람들에게 수없이 속아온 우리가 어떻게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

그 종교는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일이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라 이르며,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일깨웠다.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란 사람 개개인과 신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제여 위대한 정령이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 우리는 당신의 종교를 파괴하거나 빼앗을 의도가 전혀 없다. 당신 역시 그런 의도를 가져선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종교를 원할 뿐이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우리에게 집을 짓는 법과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려 들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설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디언들은 언제나 농사를 지어 왔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결국 우리의 종교와 문화를 빼앗을 것이며, 끝없는 불행만을 안겨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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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데려가 당신들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들을 교육하고 당신들의 종교를 가르쳤다. 그 아이들은 그 후 가족에게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었다. 그들이 배운 기술은 사냥에는 아무 쓸모가 없고, 우리의 문화와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형제들에게선 찾아볼 수도 없는 쓸모없는 욕망에 길들여져 있었다. 이 숲 속에는 알려져 있지도 않은 악의 씨앗들을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이마신 것이다. 언제나 술에 취해있고, 방탕하며, 인디언들로부터는 무시당하고, 얼굴 흰자들로부터는 멸시 당한다. 어느 쪽 가치관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얼굴 흰 정착민들보다도 정직하지 않고, 어쩌면 훨씬 더 나쁜 물이 들었다.

형제여, 당신들에게는 당신들이 종교가 더 옳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종교는 당신들의 방식에 잘 어울린다. 당신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정령의 아이들을 죽였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이 이 먼 나라까지 와서 온갖 고난과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를 갈라 놓고 불행하게 만든다. 하지만 당신들의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인다면, 당신들은 훨씬 더 행복하고 위대한 정령이 보기에도 훨씬 합당한 인간이 될 것이다.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수도 없이 우리 인디언들 속으로 들어왔다. 달콤한 목소리와 미소짓는 얼굴을 하고서 그들은 우리에게 얼굴 흰 사람들의 종교를 가르친다. 동쪽 지역에 사는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신들의 아버지들이 믿던 종교를 버리고 얼굴 흰 사람들의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우리들보다 서로에게 더 친절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서로 갈라졌지만. 우리는 사랑과 애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날마다 독한 물을 마신다. 그리고 서로 속이는 법을 배웠으며, 얼굴 흰 사람들의 좋은 면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짓들만 골라서 따라하고 있다. 형제여, 우리가 이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 우리를 더 이상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 우리는 얼굴 흰 사람들이 하는 방식처럼 위대한 정령을 숭배하지 않는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자신들처럼 우리도 빛울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위대한 정령에게 기도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끼리 그 빛을 놓고 논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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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삼는 것에 대해선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이 우리에게 주는 그 빛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걸어온 똑바르고 단순한 길을 어둡고 무시무시한 길로 만들어 버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자들은 우리에게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누군가 그들을 먹여 살리지 않으면 굶어죽고 말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일 뿐, 농사도 짓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대한 정령께서 다 해 주실텐데 왜 끝없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

빨간 윗도리가 말을 마치자, 그 자리에 모인 인디언들은 악수를 하려고 백인 선교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조셉 크램이라는 그 젊은 선교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거부했다.

그는 하느님의 종교와 악령들 사이에는 우정이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말을 통역해 주자. 인디언들은 미소를 지으며 다만 평화롭게 그 자리를 떠났다.

검은 코트를 입고 찾아온 선교사들에게는 인디언들을 개종시키려고 하기 전에 백인 정착민들의 정신을 바로잡아 더 이상 인디언들을 속이지 않게 하라고 혼을 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꽃으로 나무를 판단하게 하고, 열매로 그 꽃을 판단하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지혜와는 거리가 먼 젊은 선교사 크램에게 빨간 윗도리는 말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온갖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그것으로 모자라 자신들이 교리를 인디언들의 입에 강제로 구겨 넣으려 하고 있다.”

1830년 들소 샛강 (버팔로 크리크)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빨간 윗도리는 백인들의 지배에 맞서 인디언의 문화와 종교를 지키는데 헌신했다. 죽기 전 마지막 연설에서 빨간 윗도리는 자신을 늙은 나무에 비교했다.

“나는 이제 그대들을 떠나려 한다. 내가 떠나고 나면 더 이상 내 경고를 들을 일도, 신경 쓸 일도 없을 것이다. 얼굴 흰자들의 탐욕과 속임수만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많은 겨울, 나는 온몸으로 북풍한설을 견뎌냈다. 하지만 난 이제 늙은 나무다.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다. 내 잎사귀는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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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나뭇가지는 시들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는 흔들린다. 머지않아 내 늙은 나무 둥치는 쓰러질 것이고. 기뻐하는 적들의 무수한 발자국이 그것을 밟고 지나갈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슬퍼한다고 여기지 말라. 나는 아버지들의 영혼을 만나러 간다. 그곳은 늙음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내 부족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곧 여기저기로 흔적도 없이 잊혀져 갈 그들을 생각하면.”

1620년 12월 21일. 이 부족들 중 하나인 왐파노그족 마을로 배 한 척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배의 이름은 오월의 꽃, 메이플라워였다. 하지만 이름과는 거리가 멀게 그 배는 다 낡고 악취가 풍기는 180톤 급 선박으로, 노르웨이로부터 생선과 기름을 비롯해 온갖 냄새나는 화물들을 실어나르던 배였다. 배 갑판 아래 어둡고 메스꺼운 공간에는 102명의 승객이 발 디딜 틈도 없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엄격한 종교적 규율을 설교했기 때문에 청교도라 불렸으며,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기 위해 영국을 떠나 새롭고 낯선 대륙으로 이주해 온 것이었다.

왐파그족 인디언들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몸을 떨며 그 배가 플리머스라고 이름 붙여진 바위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느님을 믿는 청교도들과 인디언들의 만남은 불행히도 반가움의 악수로 시작되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모습을 발견한 청교도단의 목사 한 명이 배 위에서 구식 소총인 머스켓 총을 발사했다. 왐파노그족 사람들은 황급히 숲 속으로 피했다. 그렇게 첫 접촉은 적대적인 총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총성은 그날 이후 거북이 섬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들은 이듬해 4월 배가 떠날 때까지 메이플라워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배에서 내려 몰래 인디언 마을로 잠입해 먹을 것을 훔쳐갔다. 인디언들은 그 사실을 다 알면서도 묵인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훔쳐가겠는가 하고, 인디언들은 동정을 표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인디안 사회에서는 먹을 것을 훔치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배 안에서의 비좁고 불결한 생활은 곧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져 괴혈병,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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렴, 결핵으로 청교도들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마사소이트 추장이 이끄는 왐파노그족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나머지 절반도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언덕배기에 옥수수 심는 법과 강에서 물고기를 유인해서 잡는 법을 가르쳤다. 청어를 제물로 바쳐 땅을 비옥하게 하는 의식까지도 일러주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납치되어 유럽으로 팔려갔다가 극적으로 돌아온 한 인디언은 그동안 익힌 영어로 이 새 이주자들의 입과 귀가 되어 주었다.

원주민들의 아낌없는 도움을 받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이주자들은 큰 강을 따라 플리머스 식민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작업은 곧바로 진행되었다. 대포를 설치하고 공동주택을 지었으며 각자 구획을 정해 땅을 나눠 가졌다.

왐파노그족 인디언들은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 이 새로운 정착민들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부족의 추장 마사소이트는 백인들로부터 한 쌍의 칼과 비스켓, 그리고 독한 물 한 병(위스키)을 선물 받았다. 그로부터 40년 뒤 추장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왐파노그족은 단 한 차례도 이 조약을 깨트리지 않았다.

더 많은 이주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머스켓 총을 들고서, 그들은 빠른 속도로 마을과 도시를 건설해 나갔다.

마사소이트 추장은 우정과 평화를 실천하자는 조약을 끝까지 지키며 많은 땅을 백인에게 내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땅에 대한 소유개념이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내 준 땅을 자기들 소유라고 주장하며 울타리를 박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시각은 달랐다. 땅을 제공한 것은 백인들도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땅을 함께 나눠 쓰자는 뜻이었다. 무엇보다도 땅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생각을 인디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세네키족 추장 빨간 윗도리가 세상을 떠나고 백년이 지난 1927년 아메리카 인디언 전체 부족회의에서 인디언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모습대로 만들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파괴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우리가 자신들에게 동화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처럼 만족스럽게 살 것이라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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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물질과 욕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우리는 얼굴 흰 사람들에게 흡수되기보다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그들의 시설물을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원치 않으며, 우리의 종교와 우리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아이들을 키우기를 원한다.

“얼굴 흰 사람들은 모두를 위해 자유와 정의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그 자유와 정의가 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처음 우리가 당신들을 알았을 때, 당신들은 연약한 한 포기 풀과 같아서 뿌리를 내릴 작은 땅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땅을 당신들에게 주었다. 우리는 그 풀을 발로 밟아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는 대신 물을 주고 보호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 당신들은 커다란 나무로 자라서 꼭대기가 구름에 가닿고, 그 가지로는 대륙 전체를 뒤덮었다. 반면에 숲속의 커다란 소나무였던 우리는 연약한 한 포기 풀이 되어 당신들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 빨간 윗도리 / 세네카 족

백인들은 걸핏하면 우리 고유의 생활을 버리고 자기들처럼 살라고 강요한다. 농사를 지으라느니 악착같이 일하라느니, 인디언들은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거꾸로 우리가 백인들에게 인디언 식으로 살라고 강요했다면 그들도 저항했을 것이다. 왜 바꿔 생각하지 못하는가? - 큰 독수리(왐브디 탕카) / 산티 수우 족

백인들은 왜가리를 보호하고, 하와이에 있는 거위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런데 왜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을 보호하려고는 하지 않는가?

- 환경보호 세미나에 참석한 어느 인디언

■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

- 시애틀 추장 / 수콰미시족과 두와미쉬 족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를 쓰러뜨린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면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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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한가? 얼굴 흰 사람들의 도시 풍경은 얼굴 붉은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의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곳이 없다. 봄의 나뭇잎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만한 곳이 없다.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은 물웅덩이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내린 비에 씻긴 바람 그 자체의 냄새를 좋아한다. 소나무 향기도 마찬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공기는 더 없이 소중한 것! 동물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똑같은 숨결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사람처럼 당신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악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계속 파헤치고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인가 당신들은 스스로의 폐허에서 숨이 막혀 깨어날 것이다.

들소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들은 모두 길들여지고, 숲의 은밀한 구석까지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하다. 들짐승이 자라지면 인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당신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사냥이니 날쌘 동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굳이 작별을 고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아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에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는 더 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연어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 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이 연설은 1850년 여름, 황금을 찾아 엘리엇 만 해안에 도착한 한 무리의 백인들에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디언 전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주의깊게 정리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젊었을 때 곧잘 침묵의 장소에 가서 며칠이고 명상에 잠기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디언들의 어려서부터의 전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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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니 족(또는 쇼와노 족) 전사 푸른 윗도리(블루 재킷)는 부족을 방문한 백인 선교사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이 삶에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신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쫓듯이 부와 권력을 따라 뛰어 다닌다. 그러나 손에 움켜잡는 순간 그것들은 힘없이 부서져 버린다. 당신들은 사랑을 말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약속을 말하지만 그것도 분명하지 않다.

17세기 백인들을 따라 프랑스, 뉴욕, 캐나다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휴론족 추장 콘디아론크는 백인 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문명인들을 삶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말할 수 없이 불행한 자들이다. 유럽인들은 강요를 받아야 선한 행위를 하며 처벌이 두려워 마지못해 악을 멀리한다. 만일 내가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으면, 당신들은 프랑스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비버에 가깝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단순히 두 다리로 걷고, 글을 쓰거나 읽을 줄 알고, 수천가지 다른 일을 할 줄 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 아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이미 백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고상한 체하는 야만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오늘날 환경 운동가들은 그들을 최초의 생태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서부 개척의 산 증인이었던 프레데릭 레밍턴은 말했다.

“늙은 인디언들과 만남을 갖다보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엄 때문에 마치 한겨울의 숲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퀘이커교 지도자 윌리엄 펜(펜실베니아주는 그의 이름을 딴 것임)의 고백이다.

“자연인! 그것은 내가 인디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다. 그들은 우아하고 열정적으로, 그러나 결코 장황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말들로 진리를 이야기 한다. 그들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현자들이다.”

프레데릭 터너 3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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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의 오랜 침묵의 목소리는 대지 그 자신의 소리 없는 목소리다. 인디언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삶이 자연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약과 같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1584년 버지니아 지역에 도착한 영국의 탐험가 월터롤리는 그곳 인디언들에 대해 ‘지상에서 이보다 더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탐험가들도 ‘여기 오염되지 않은 종족이 있다. 이들은 에덴동산의 타락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임에 틀림없다’고 고백했다. 인간애와 자비로써 도움을 베푼 원주민이 아니었다면 초기 정착민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1830년대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그림을 그린 영국인 화가 조지 캐틀린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과 문화를 기록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인디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솔직하고 진실한 고백을 남겼다.

“나는 보았다. 밤의 죽은 자와 같이 문명이 접근해 올 때, 그 사악함에 놀라 인디언들이 움츠리는 모습을 놀란 사슴처럼 응시하다가 뒷걸음치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언제나 큰 소동을 일삼고, 분주하고, 시끄럽고. 소음을 일으키고, 뛰어다니고, 거만하고, 의기양양하게 구는 백인들이 접근해 오는 모습을, 아무데나 파헤치고, 용감한 인디언 전사들의 무덤을 마구 짓밟는 그들의 천박한 모습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나를 맞이해 준 인디언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들은 법 없이도 정직하고, 감옥도 없으며, 가난한 집도 없다. 헛되이 신의 이름을 들먹이지도 않는다. 성경책 없이도 신을 믿으며, 신 역시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적대감이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나를 공격하 거나 내 물건을 훔친 적도 없다. 죄인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것도 없다. 자신의 땅이 아닌 곳에서는 백인들과 싸움을 벌인 적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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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타쿠예 오야신

- 오히예사 (찰스 이스트먼) / 다코다 족

처음에 우리에게 온 선교사들은 좋은 사람들이긴 했지만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교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라고 우리를 몰아세웠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신은 전부 가짜이니 빨리 내던져 버리고 자신들의 성스런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우리가 자신들의 믿음과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협박하기가지 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군원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 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은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위대한 신비’그 영원한 존재에 대해 인디언들은 매우 분명하고 고귀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 위대한 신비에게 바치는 인디언들의 예배는 침묵과 홀로 있음 속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이기적인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없는 찬양 속에서 신에게로 올라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 있음 속에서 가능하다고 우리 인디언 들은 믿었다.

우리를 만드신 이와 우리 사이에 어떤 성직자도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교적 체험에 대해 참견하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 우리들 각자 신이 창조한 자식들이고, 모두가 그 안에 신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라 마음 상태였다. 자연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는 사원도 신전도 없었다. 자연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매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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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었다. 말할 수 없이 신비한 원시림의 그늘진 오솔길에서, 처녀와도 같은 평원의 햇빛 비치는 가슴위에서, 현기증 나는 산 정상과 벌거벗은 바위가 우뚝 솟은 뾰족 산봉우리 위에서 보석 박힌 드넓은 밤하늘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는 그 거대한 절대자를 위해 손바닥만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신을 모독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증조할아버지인 태양이 저녁 모닥불을 피우고 세상 가장자리에서 구름의 엷은 옷을 입고 있는 위대한 정령, 북쪽의 혹독한 바람을 타고 다니는가 하면 남쪽의 향기로운 공기들 속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그분, 거대한 강들과 육지 속 바다에 배를 띄우고 있는 그런 이에게 인간이 세운 보잘것없는 교회와 성당이 필요할 리 없다.

홀로 있음 속에서 그 보이지 않는 절대 존재와 침묵으로 소통하는 일이야말로 인디언들의 종교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함베데이>는 인디언의 말로 ‘신비한 체험’이라는 뜻이며 ‘금식 수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곧 ‘자신 안의 신을 체험하는 일’로 풀이할 수 있다.

- 함베데이 : 생애 최초의 종교적인 수행, 때가 되면 인디언 아이는 땀 천막에서 수증기로 몸을 정화하고 모카신과 허리에 두르는 천 만을 감고 산에 올라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이틀 밤낮 또는 며칠씩 그렇게 서서 위대한 신비와 마주했다.

인디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죄악이었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은 전통적으로 마음을 영적인 마음과 육체적인 마음으로 나누었다. 금식과 힘든 일로 육체를 단련하듯 영적인 기도를 통해 마음을 키웠다.

육체적인 마음은 낮은 차원의 일로서 사냥이나 전투에서 성공하고, 병을 치료하고, 소중한 목숨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일들이었다.

얼굴 흰 사람들이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디언들은 영적인 마음을 키우기 위해 태양을 숭배했다. 태양과 대지는 인디언들의 눈에는 명백히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과학적인 진리이면서 동시에 시적인 은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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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순수한 이유에 따라 각기 다양하게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안의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분명한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광대무변한 자연의 세계와 그것들이 지닌 수많은 경이로움들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측량하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제한된 사고방식은 인디언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에서 기적을 발견했다. 씨앗과 알 속에서 생명의 기적을, 번개와 불어나는 강물에서 죽음의 신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장엄한 법칙을 발견하더라도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생명의 원리를 간직한 궁극의 기적과 마주해야 한다. 이 궁극의 신비가 바로 기도의 본질이며 그것 없이는 종교가 있을 수 없다. 이 신비 앞에서 모든 사람은 인디언과 같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인디언들은 모든 창조물 속에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갖고 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우리에게 많은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선교사들과 그 신도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이 종교에 대해 냉담한 마음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무조건 남을 개종시키려들고, 자기 종교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교를 드러내 놓고 무시한다. 우리가 보기엔 직업적인 목사들, 돈을 받고 하는 설교, 물질을 모으기에 급급한 교회들은 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우리 자랑스러운 야만인들이 영혼은 우리를 개종시키려고 찾아온 그들을 은근히 경멸했다.

인디언들이 가장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점은 얼굴 흰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보다도 우월한 안종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그들 중 대부분이 종교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 흰 자들은 모든 것을 사고판다. 시간, 노동, 개인의 자유, 여인의 사랑, 심지어 자신들의 신성한 목사직까지도! 이론적으로는 맨 첫 번째에 속하는 고결하고 영적인 삶은 실제로는 맨 나중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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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을 지배하려 드는 얼굴 흰 자들의 그 두드러진 성향이 온유하고 가난한 예수의 정신과는 너무도 대비된다는 사실을 느겼다.

워싱턴의 얼굴 흰자들의 대추장(대통령)은 특별히 국가적인 명예를 걸고 인디언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리인들을 보냈지만 일단 조약서가 작성되면 부끄럼 없이 약속을 어겼고, 그들은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백인 역사학자들조차도 인디언이 먼저 약속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인디언은 생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종교적이었다. 인디언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순결한 명상과 명상을 통해 아이의 영혼에게 그가 위대한 신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쳤다. 그녀는 거대한 삼림의 정적 속에서, 또는 인적이 드문 평원의 가슴 위에서 홀로 산책하곤 했다. 그리고는 시적인 마음을 통해 정차 위대한 영혼이 자신의 몸에서 태어나리라고 상상했다. 원시의 숨결이 어린 대자연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상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가끔씩 들리는 소나무의 한숨소리나 멀리 떨어진 폭포 소리만이 그녀의 상상을 일깨울 뿐이었다.

인디언은 아이의 출산은 어머니 혼자서 맞이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고 여겼다. 타인의 호기심과 동정심은 방해만 돨 뿐이었다. 대자연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이것은 사랑의 힘이다! 이것은 사랑의 완성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세 가지 기준은 침묵, 사랑, 경외감이었다. 아이가 좀 더 성장하면 자비심, 용기, 순결의 기준이 따랐다. 인디언 어머니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충실했다. 우리 부족의 이름난 어떤 추장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남자들은 서로를 죽이 수 있지만, 여자를 이길 순 없다. 왜냐하면 여자의 무릎에 아이가 누워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없애 버릴 수도 있겠지만, 똑같은 무릎에 또 다른 아이가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정령이 주시는 선물이며, 남자는 단지 협력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야생의 평원에 사는 아이들만큼 오감을 잘 사용하기란 불가능하다. 인디언들은 누구보다도 잘 보고 듣고 냄새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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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잘 보고 듣는 것만큼 깊이 느끼고 깊이 맛보았다. 야생의 생활보다 기억력을 발달시키는 생활은 없다.

인디언 아이들은 문명 세계의 아이들이 법률가나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듯이 용기 있는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인디언의 삶속에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었다. 그것은 기도의 의무였다.

인디언은 굳이 일주인 중 하루를 신성한 날로 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신이 준 날이기에!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은 종교적인 마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 점에서 인디언들은 누구보다 탁월하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인 신의 작품을 똑같이 흉내내거나, 모방이 불가능한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도 않았다. 아름다운 것은 상품으로 만들어 거래를 해선 안 되며, 오직 존경받고 찬양받아야 한다. 그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정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얼굴 흰 사람들이 그곳에 걸린 그림들을 뛰어난 천재의 작품이며 훌륭한 예술품으로 여긴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자 한 늙은 추장이 말했다.

“참말로 얼굴 흰 사람들의 철학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자부심과 위엄을 간직한 채 수 세기 동안 서 있어 온 숲들을 넘어뜨리고 어머니 대지의 가슴을 마구 파헤치며, 은빛 물줄기들을 가차 없이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신의 그림들과 걸작품들을 가차없이 파괴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작은 사각의 종이에 수없이 많은 물감을 발라 그것을 걸작품이라 찬양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타고난 예술가들이었다. 다만 관점이 다를 뿐이었다. 우리의 눈에는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새롭고 살아 있는 것이었다. 위대한 신비인 신조차도 매 계절마다 세상을 새옷으로 갈아 입히지 않는가.

어릴 때 나는 남에게 베푸는 법을 알았다. 그런데 문명인이 된 다음부터 그 아름다움을 잊어버렸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무엇보다도 겸허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특히 영적인 자만심은 인디언의 성격이나 가르침 그 어디에서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디언은 자신의 말솜씨가 뛰어나다고 해서 얼굴 흰 사람들처럼 상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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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어리석은 야만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위험한 재능으로 여겼다. 우리 인디언들은 침묵의 힘을 믿었으며 만일 침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침묵은 위대한 신비 그 자체다. 성스런 침묵은 신이 목소리이니까?”

또 만일 당신이 “그 침묵의 열매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침묵의 열매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 진정한 용기와 인내, 위엄, 그리고 존경심이다. 침묵은 인격의 받침돌이다.”

늙은 추장 와비사는 말했다.

“젊었을 때 그대의 혀를 잘 지키라. 그러면 늙어서 그대의 부족에게 도움이 될 한 가지 생각이 그대 안에서 익어갈 것이다.”

인디언 남자는 이따금씩 짧은 기간 동안 금식을 행했으며 격렬한 달리기와 수영, 또는 땀천막 의식 등으로 넘쳐나는 기운을 소모시켰다. 특히 금식 수행과 함께 육체를 지치게 함으로써 지나친 성적 욕망을 치유할 수 있었다. 우리 인디언들은 어려서부터 완벽한 자기 절제 훈련을 쌓았으며, 얼굴 흰 사람들이 밀려오기 전까지는 부자연스럽거나 지나친 욕망에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었다. 물질적인 길을 뒤쫓으면 머지않아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 따라서 인디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비심의 미덕을 배웠다.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도록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래서 일찍부터 주는 것의 기쁨을 알았다.

모든 종교는 그 나름대로의 성서를 갖고 있다. 우리의 성서는 시, 역사, 예언, 격언, 민간 설화 등이 뒤섞여 있으며, 기독교의 성경책에 적힌 것과 비슷한 가르침들을 우리 역시 갖고 있다. 인디언들이 가진 문학 전체가 곧 우리의 성서이다. 그 책은 가장 지혜로운 현자들에 의해 소중한 씨앗이 뿌려지고 어린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입술과 호기심에 찬 눈동자 속에서 새롭게 되살아나는 살아 있는 책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며 성스럽게 간직되어 온 금언, 우화, 신비한 전설과 설화들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화와 철학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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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디언은 자신의 재산이나 노동에 값을 매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베풀 따름이었다. 힘들고 위험한 일에 자신이 선택되는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단 하나 예외는 음식을 훔치는 일이었다. 배가 고픈데 아무도 먹을 걸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집에는 문도 자물쇠도 없었으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활짝 열려있었다.

따라서 서로를 죽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부족간에 전투가 벌어져 누군가를 죽게 하면 그 전사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머리를 산발한 채 30일 동안 슬픔에 잠겨 지냈다.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죄인에게 홀로 30일 동안 슬피 울라고 판결을 내린 뒤 풀어주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살인자의 가까운 가족에게 그를 사형에 처할 권한이 주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에서 추방시키는 것을 벌을 대신했다.

우리 인디언들을 배신자, 피에 굶주린 자들, 잔인한 야만인들이라고 왜곡시키는 얼굴 흰 자들조차도 인디언이 가진 용기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우리의 용기가 단지 무지하고 야만적이고 비현실적으로만 보인다. 인디언 들은 용기를 최고의 도덕적인 가치로 여겼다.

용기는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한 영웅의 높이에까지 이른다.

“어떤 추위와 배고픔, 어떤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이빨을 곤두세우고 덤벼드는 위험과 죽음 앞에서도 선한 일을 하려는 그대의 의지를 포기하지 말라.”

인디언들의 민주적인 정신 속에서 어머니 대지는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 있으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가난하거나 노예로 만들지 않는다. 대지의 좋은 것들은 우리 혼자만 독차지할 것들이 아니라 우리의 누이와 형제들과 즐겁게 나눠 가져야 할 것들이다. 나눠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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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상과 문학, 삶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오히예사(찰스 이스트먼)은 1858년 겨울, 지금의 미네소타 주에 있는 삼나무 폭포 근처의 들소 가죽 천막 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불쌍한 막내’라는 뜻의 하카다였다. 3남 1녀의 막내였으며 태어난 직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이 되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돌연 죽었다던 그의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왔다. 많은 번개(타와칸데오타)라는 이름이었던 아버지는 백인들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여 이름을 제이콥 이스트먼으로 바꾸었으며, 이제 아들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

찰스 이스트먼으로 이름이 바뀐 오히예사는 최고의 연사로 상장까지 받으며 보스턴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사우스다코다의 소나무 능선(파인릿지)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정부 파견 의사로 첫 일자리를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운디드니 대학살 사건으로 부상한 인디언들을 치료했다.

오히예사는 인디언들 고유의 정신을 지키면서 다양한 문화 속의 하나로 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 정신과 인디언 정신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똑같은 위대한 신비로부터 나왔다고 믿었다. 그런 그의 사상은 만은 기독교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오히예사는 1928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아름다운 언덕, 바위, 강이 있는 호수 근처에 그리고 생을 마칠 때까지, 여행을하거나 강연을 하지 않을 때면 그곳에 손수 지은 작은 오두막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순결한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원시적인 인디언의 삶을 살았다. 그는 1939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오히예사가 속한 다코다 족(다 함께 연결된 사람들)인디언의 인사말은 ‘미타쿠에’또는 미타구예 오야신!’이다. 그것은‘모두가 나의 친척’이라는 뜻이다. 노스다코다 주의 인디언 학교 교사, 론 제일린저는 그 인사말이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의 영적인 통찰력에서 얻은 선물과 같다고 말한다.

인디언들의 시간 개념은 백인들과 사뭇 달랐다. 백인들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직선적인 것으로 이해하지만, 인디언들은 시간을 하나의 순환으로 이해했다. 지나간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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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그들은 믿었다. 사람 역시 죽으면 멀리 가버리는 대신 조상들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 ‘우리와는 조금 다른 상태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아주 오래된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콜럼부스가 우리를 ‘발견’하기 이전의 우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동물과 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할 줄 알았다. 그들은 새에게 말을 걸고 나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동물은 모습을 바꿔 사람들의 세계속으로 들어 왔으며, 사람도 동물로 둔갑할 수 있었다. 그때는 대지가 아직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전이었다. 수많은 종류의 산맥들과 시냇물, 동물들과 나무들이 자연의 계획에 따라 하나둘씩 탄생할 때였다. 우리 인디언들은 이 세상과 우주 전체를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영원한 순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순환 속에서 인간 역시 하나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소와 코요테는 우리의 형제들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들꽃조차도 우리의 친척들이다. 우리는 기도를 드릴 때 ‘미야쿠 오야신’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친척들’이란 뜻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8세기의 한 유렵 상인은 이로쿼이 족(기다란 집을 가진 사람들) 인디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 글은 온치오타에 있는 6개 부족 인디언 연맹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인디언들은 전능한 힘을 가진 위대한 정령과 , 영혼의 불멸설과 삶이 영원이 이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생명 가진 것들이 모두 한 형제임을 믿었다.

인디언들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곧 기도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굳이 위대한 창조주에게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지혜 속에서 무엇이 옳고 최선의 길인가를 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실되고 명예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일이라고 믿었으며, 거짓말 하는 것은 겁쟁이나 하는 행동이라 여겼다. 그들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켰다. 거짓말쟁이를 경멸했으며 모든 거짓됨은 허약함에서 나오는 것이라 판단했다.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의 부모를 공경했다. 또한 그들은 평화를 믿었다.

인디언들에게는 남을 친절하게 대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누구도 그들보다 더 자비로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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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보다 가난의 신성함을 믿었다. 초기 인디언 사회에는 도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몸의 청결함과 마음의 정화를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순수성을 간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이 믿음이었다.

대지는 모든 생명체들의 어머니이며, 따라서 누구도 땅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 오히예사의 삼촌 (다코다 족)

얼굴 흰 사람들은 가슴을 갖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 부족의 어떤 사람을 하인으로 부린다. 그렇다.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얼굴 흰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두고 있다. 그들은 온 세상을 저 혼자 독차지하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해 왔다. 마침내 우리가 말을 듣지 않자 군인들을 보내 강제로 땅을 빼앗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아름다운 땅으로부터 쫓겨났다.

그들의 대추장(대통령)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과 물건에 대해 세금을 물린다고 들었다.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그런 법 아래선 도저히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전투를 할 때도 병사들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며, 일반 병사들만 영양떼처럼 앞으로 내몰려져 전투를 벌인다. 그들이 그런 방식의 전투를 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용기와 정당한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해 싸움터에 나오기 때문이다.

얼굴 흰 사람들은 은행이라는 큰 집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찾아간다. 그러나 우리 인디언에게는 은행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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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은행인 셈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삶의 기준을 돈에다 두고 있으며, 진실과 거짓조차도 돈 앞에서 그 위치가 뒤바뀐다.

우리는 진리의 책(성경 등)이라는 걸 가져본 역사가 없으며,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다 적어 놓고 찬양하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곧 삶이다. 진리로부터 멀어진 삶은 죽음이며, 그런 삶을 사는 자에게는 진리의 책도 아무 소용없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오히예사의 삼촌은 할머니 품에서 자라는 오히예사(찰수 이스트먼)에게 강한 인디언 정신을 불어넣은 사람이다. 훗날 오히예사가 아메리카 인디언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손꼽히게 된 것도 이 훌륭한 삼촌 덕분이었으며, 조카에게 오히예사(승리자)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바로 그였다.

“나는 일전에 워싱턴에 있는 얼굴 흰 대추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의 만찬에도 참석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의 방식은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담배를 피운 뒤 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초대한 사람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얼굴 흰 사람들의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어리석은 우스갯소리를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초대한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나를 초대한 사람은 우리 인디언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이야기들을 여러 권의 노트에 깨알같이 적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얼굴 흰 사람들의 방식이다. 그들은 뭐듣지 글로 기록하며, 그래서 항상 종이를 갖고 다닌다. 하지만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워싱턴에는 그들이 우리 인디언들에게 약속한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들 중 누구 한 사람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얼굴 흰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면 항상 종이에 적는 일이 시작된다. 설탕이나 차를 사라가도 백인 장사꾼은 장부에다 열심히 기록한다. 의사들까지도 환자가 옆에 있으면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으려고 연필부터 집어든다. 얼굴 흰 사람들은 종이에 있는 어떤 신비한 힘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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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인디언은 종이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 반면 얼굴 흰 사람들은 한번 서류를 잃어버렸다 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땅을 빼앗고, 욕망에 따라 무분별하게 행동하고, 모두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고, 게다가 신을 들먹이며 종교를 강요하기까지 하는 그들의 행동은 인디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은 그리스도교 자체에 대해선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의 가르침과 인디언들의 사상이 일치한다고 여겼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설교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선교사들과 그 신도들의 위선적인 행동이었다.

“얼굴 흰 자들은 신이 그들에게 주었다는 위대한 책에 대해 늘 말하곤 했다. 만일 그들이 정말로 믿음대로 살고 우리에게 들려준 좋은 말에 따라 행동했다면 우리도 그 책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들은 한 손에는 그 두꺼운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우리 가난한 인디언들을 죽이기 위해 총과 칼 등 잔인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그 책을 믿는 인디언들까지도 죽였다.”

당신은 또 태초에 천사들이 창조되었으며 그들 중에 말을 듣지 않은 천사들은 지옥에 던져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땅이 창조되기도 전에 천사들이 벌을 받았다고 하면서. 지옥은 땅 속 깊은 곳에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당신은 한 번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출현하는 지옥의 마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을 내 나쁜 머리로 어떻게 이해하면 좋단 말인가?

여기 인디언들이 십계명이 있다.

1.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2.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3. 위대한 신비를 향해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4.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5.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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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7.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신비에게 감사하라.

8.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선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9.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

10.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

우리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그 백인은 어찌나 지저분한지 코를 푼 손수건을 호주머니 속에 고이 모셔 갖고 다닌다. 마치 소중한 것을 바깥에 풀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듯이. - 하늘의 삼광(피어포트) / 크리 족 추장

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몇 해 전 백인 하나가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감리교 신자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다른 백인이 와서 설득하는 바람에 침례교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또 장로교인이 되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외서 나더러 성공회 신자가 되라고 설득하고 있다.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굴 흰 자들은 교육도 많이 받고, 책도 많이 읽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둘 만 모여도 항상 의견이 다르고 멱살을 잡고 싸운다.

- 점박이 꼬리(스포티드 테일 / 라코타 족

얼굴 흰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내 가슴속에서 말하게 하라. 당신들이 신은 잔인하며, 전능한 신도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언제나 악마를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은 전능하며, 선한 신이다.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저세상에는 지옥이란 없다. 나는 당신들의 종교로 바꾸기 보다는 내 종교와 신에게 남아 있는 쪽을 택하겠다. 당신들의 종교보다 우리의 종교 속에 더 많은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 호피족 어른이 선교사에게 한 말

■ 고귀한 붉은 얼굴의 연설

- 조셉 추장(힌무투야랄라트) / 네즈파스 족

오늘 당신들로부터 내 가슴을 열어 보이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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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게 되어 무척 기쁘다. 나는 얼굴 흰 사람들이 나의 부족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내가 하는 말은 내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똑바른 혀를 갖고 말할 것이다. 아쿰키니마메훗(위대한 정령)이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그분도 지금 내 말을 듣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많은 법을 내려 주었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그 법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들이다. 그 법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상대방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으로 우리 역시 그들을 대하라고. 우리가 먼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가장 사람답지 못한 행위이며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또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남의 아내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위라고 그 법은 가르쳤다.

내가 얼굴 흰 사람들의 학교를 마다하는 이유가 있다. 학교를 세우면 얼굴 흰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끝없이 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어느 곳을 가나 카톨릭은 개신교와 끝없이 싸운다. 우리는 그런 걸 원치 않는다.

대지는 태양의 도움을 받아 창조되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대지와 나는 한 몸이다. 대지의 가치와 우리 몸의 가치는 똑같다. 원래 경계선 같은 것은 없었다. 땅을 갈라 이리붙이고 저리 붙이고 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는 그 위에 금을 그을 권리가 없다.

이 나라 어딜 가나 얼굴 흰 자들은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없는 땅만 주고 있다. 아마도 당신들은 창조주이신 위대한 정령이 당신들 마음대로 우리를 처리 하라고 당신들을 이 땅에 보낸줄 아는 모양이다.

19세기 말 와바나키 족 추장 큰 천둥(베다기)은 기도했다.

위대한 정령이여,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가슴을 주소서.

우리가 주는 것만큼만 대지의 아름다움을 가져가도록

욕심에 눈이 멀어 마구 파괴하지 않도록

대지를 아름답게 하는 일에 기꺼이 우리의 일손을 빌려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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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대지로부터 빼앗지 않도록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가슴을 주소서.

대지의 음악을 파괴하는 것은 곧 혼란을 가져 온다는 것을

대지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눈을 멀게 해

아름다움마저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무분별하게 대지의 향기를 더럽히는 것은

집안에 독한 냄새를 들여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우리가 대지를 보살필 때 대지가 우리를 보살핀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했습니다.

단지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만 대지를 착취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을 잘못 사용했습니다.

우리의 힘을 함부로 썼습니다.

위대한 정령이여, 당신의 메마른 대지가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대지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발견하게 하소서

당신의 아름다운 대지는 마구 파헤쳐져서 흉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들에게

아름다움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길을 우리가 발견하게 하소서.

위대한 정령이여, 당신이 지으신 만물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찾을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들은 이기심과 욕망에 물들었습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하소서.

위대한 정령이여, 바람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숨결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이여, 이 기도를 들으소서.

당신의 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가 아름다움 속에서 걸을 수 있게 하소서.

우리는 그 관리에게 우리를 산 속에 있는 우리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부족은 소나무 숲이 있고.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우리는 언제나 건강했다. 모두가 먹을 식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얼굴 흰 군대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전까지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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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행복했다. 그런데 남쪽으로 옮겨 온 그해에 우리들 중 많은 숫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곳은 우리에게 좋은 장소가 아니다. 너무 덥고 먼지가 많으며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산 속에 잇는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당신들이 우리를 되돌려 보낼 권한이 없다면 우리가 직접 워싱턴으로 가서 상황을 말할 수 있게 해달라. 또 한 해를 이곳에서 보낼 순 없다. 우리는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 또 한 해가 가기도 전에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북쪽으로 떠날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 어린늑대(리틀 울프) / 북부 사이엔 족

당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에 와서 작은 땅에다 금을 긋고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면서 우리더러 그 안으로 들어가 살라고 말한다. 붉은 강(레드리버)에서 콜로라도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전체가 세세토록 우리의 땅인 걸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대통령이 한 번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강제로 그 좁은 울타리 안으로 쫓겨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 사나코 / 페나데카 족

오 태양이여, 그대는 영원하리.

그러나 우리 카이젠코는 죽어야 한다.

오 대지여 그대는 영원하라.

그러나 우리 카이젠코는 사라져야 한다. - 사탕크 / 카이오와 족 추장

우리의 땅은 당신들의 돈보다 소중하다. 대지는 영원하다. 그것은 불길에 의해서도 멸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빛나고 강이 흐르는 한 이 대지는 이곳에서 인간과 동물에게 생명을 줄 것이다.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돈 받고 팔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을 팔 수 없다. 당신들은 돈을 셀 수 있고, 들소가 한 번 머리를 끄덕이는 사이에 그것들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직 위대한 정령만이 모래알의 숫자와 이 평원에 자란 풀줄기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당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져가도 좋다. 그것이 우리가 당신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땅은 결코 안 된다.

- 북부 검은 발 족 추장 /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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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돈은 아무 가치가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돈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아무리 꼬드겨도 우리는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땅을 절대로 팔 생각이 없다. 우리는 다만 당신네 이주민들이 하루 속히 이곳을 떠나 평화가 되찾아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 얼굴 흰 이주민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오하이오에서 이곳까지 살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겠다는 그 큰돈을 그 이주민들에게 나눠 주라. 당신들이 주려고 하는 땅 대신에 그들은 그 돈을 얼른 받아 챙길 것이다.

- 인디언들이 1793년에 보낸 편지 / 캐나다 7개 부족 연맹

할아버지여.

부서져 버린 우리를 보소서.

모든 창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성스런 길에서 벗어났음을 우리는 압니다.

오직 인간만이 서로를 나눈 채

살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다시 하나로 돌아가

성스런 길을 걸어야 함을 우리는 압니다.

할아버지여. 성스런이여.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와 존중심을 가르쳐 주소서.

우리가 이 대지를 치료하고 서로를 치료할 수 있도록.

- 오지부웨 족 기도문

■ 평원에서 생을 마치다

- 열 마리 곰(파라와사멘) / 얌파리카 코만치 족

나의 부족은 얼굴 흰 사람들에게 먼저 화살을 당기거나 총을 쏜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신들과 우리들 사이에 줄곧 다툼이 있어 왔고, 나의 젊은이들은 전사의 춤을 추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우리가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 먼저 병사들을 보낸 것은 당신들이었고, 우리는 그 다음에 보냈을 뿐이다.

두 해 전 우리는 들소들을 따라 이 길 쪽으로 왔다. 우리의 아내와 아이들은 볼이 통통해지고 몸의 냉기를 물리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당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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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다짜고짜 우리에게 총질을 해댔다. 그때 이후로 천둥소리 같은 소음들이 끊이질 않았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슬픔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파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쳐들어와서는 모닥불을 피우듯 우리의 천막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동물을 사냥하는 대신 나의 용감한 젊은이들을 죽였다. 부족의 전사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얼굴 흰 자들은 우리의 천막 안에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몰아넣었다. 우리는 암소를 잃은 들소들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 백인 병사들을 보자 우리는 순식간에 그들을 무찔렀고, 그들의 머리를 우리 천막에 매달았다.

우리 코만치 인디언들은 허약하지 않다. 그 어떤 인디언 부족보다 강하다. 또한 난지 열흘밖에 안 되는 강아지처럼 눈이 어둡지도 않다. 코만치 족은 야생마처럼 강하고 들판 멀리까지 볼 줄 안다. 우리는 얼굴 흰자들의 길을 빼앗고 그 길을 걸어갔다. 얼굴 흰 자들의 여인네들은 울부짖었고, 우리의 여인들은 웃었다.

나는 이 대지 위의 풀들이 사람이 흘린 피로 물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이 대지가 순수하고 순결하게 남아 있기를 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평화롭게- 우리 부족과 만날 수 있고,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당신들이 우리에게 한 말에 대해 나는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다. 그것은 설탕처럼 달지 않고 조롱박처럼 쓰다. 당신들은 우리더러 인디언 보호구역 안으로 옮겨 가서 살라고 한다.

내가 워싱턴의 얼굴 흰 대추장을 만났을 때 그는 모든 코만치 족의 땅은 다 우리의 것이며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우리더러 이 강과 이 태양, 이 바람을 떠나 울타리 안에 갇혀 살라고 강요하는가? 우리는 길들인 양을 위해 야생의 들소떼를 포기할 순 없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 얘길 듣고 슬픔과 분노에 젖었다. 더 이상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말라.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이 침입해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늘 평화로웠을 것이다. 당신들은 지금 우리에게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럴 순 없다. 당신들은 이 평원의 무성한 식물들과 삼림을 다 차지해버렸다. 우리에게는 당신들이 대지 위의 모든 것, 숲과 새, 강과 나무, 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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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까지도 미워하는 듯이 보인다.

우리가 아직도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사랑하던 대지는 얼굴 흰자들의 손에 들어가 있고, 우리는 다만 죽을 때까지 이 평원 위에서 방랑하다가 생을 마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사라기보다는 시인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진 열 마리 곰(텐 베어즈, 파라와사멘)은 코만치 족 인디언들 사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였다. 그는 부족 대표자로서 1867년 캔자스 주의 메디신 로지에서 백인들과의 조약에 서명했다. 이 연설은 바로 그 자리에서 행해진 것이다. 아라파호 족, 샤이엔 족, 카이오와 족, 코만치 족, 평원아파치 족을 포함해 4천 명의 인디언들이 그 자리에 모여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연설을 경청했다. 조약이 이루어지고 난 지 5년 뒤 열 마리 곰은 세상을 떠났다.

코만치 족(언제나 우리와 싸우려고 덤비는 자들이란 뜻)은 지금의 캔자스 주 (라코다 족 어로 남풍이 부는 곳의 사람들)와 텍사스(친구들)지역을 방랑하며 사냥을 위주로 생활했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들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말타기 명수들이었으며, 남서부 대평원에거 따를 자가없는 강력한 부족이었다.

어려서부터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란 백인 처녀 주먹 쥐고 일어서 (스탠즈 위드 어 피스트)와 결혼해 인디언 전사로 변신한 백인 병사 존 듀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의 배경이 바로 이 코만치 족 사회다. 그 영화의 후속 이야기에서 백인들은 결국 열 마리 곰의 마을을 덮쳐 부족의 절반을 죽이고, 주먹 쥐고 일어서와 그녀의 어린 딸을 ‘야만인들로부터 구출’했다.

세상이 창조된 이후 대대로 그렇게 살아왔듯이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막힌 곳 없는 그곳에서 자신의 부족이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 열 마리 곰의 간절한 희망과는 달리. 이 메디신 로지 조약에 의해 부족 사람들은 모두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갇힌 자유 잃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옛날의 영광은 아득히 먼 것이 되었다.

고고학저들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만 년에서 2만 년 전 사이에 작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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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아시아인들이 걸어서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로 건너왔다. 그 무렵은 아직 빙하기였기 때문에 육지와 물이 많이 얼고 해수면이 낮아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맘모스나 땅나무 늘보, 자이언트 들소 같은 동물들의 사냥에 의존해서 살아가던 이 아시아인들은 사냥감들을 따라 해협을 건너게 되었고, 북미 대륙을 거쳐 중남미까지 내려갔다. 이것이 ‘인디언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이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 교과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온 것은 불과 2천 년 전이라고 가르쳤다. 인디언들의 장구한 역사를 무시하고, 그 대륙에 ‘조금 늦게’ 도착한 유럽인들과 별 차이가 없는 이주민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이 인디언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조금씩 시대가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5천년에서 1만 년 전 사이로

- 멕시코 고생물학자 후안 알멘의 멕시코 푸에블로 근처 발굴로 2만 7천 년 전의 것으로 밝혀짐

-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등장한 것은 약 4만 년 전으로 확인

- 고고학자 제프리 굿맨은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서 발견된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현생 인류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했으며 결과적으로 아시아 지역까지 건너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대부분의 고고학자 들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혈액검사를 통한 연구가 그 증거를 제시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A, B, O형의 혈액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이동에 의해 인류의 피가 뒤섞이기 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살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증거다.

인디언들의 창조 설화와 신화들도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태초 이래로 아메리카 대륙은 단 한 번도 무인 지대였던 적이 없으며, 그곳 대지의 자궁에서 얼굴 붉은 인간이 탄생했다고.

인디언들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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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은 우리가 빙하기 때 베링 해협을 건너 아시아에서 이곳으로 건너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 반대는 생각하지 않는가? 왜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빙하기 때 아시아지역으로 퍼져 나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1.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학설이 제각각이다. 1600년대에 한 유태인 탐험가는 남미 대륙을 여행한 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사라진 유태인 지파라고 주장했다. 그 후 200년 동안 유럽인들 대부분이 이 근거 없는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2. 이집트인들이 갈대배를 타고 신세계를 여행한 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이집트인들의 후손으로 주장, 멕시코에 있는 피라미드와 거대도시 유적군의 영향

3. 고대 페니키아 상인들이 풍랑을 만나 중앙아메리카에 도착해 원주민이 되었다는 설

4.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토착민들에게 자연주의 사상을 전했다는 설

5. 사라진 아틀란티스 주민들이었다는 주장

6. 무 대륙의 후손이었다는 설

7. 시리우스와 오리온성좌에서 온 외계문명인들이라는 설

이 모든 주장들에 대한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한 가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무지한 야만인에 불과한 인디언들이 독자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탄생해 그토록 고상한 철학과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디언들은 말한다. 우리는 태초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어디서도 오지 않았으며, 이 대지와 함께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내가 관찰한 바로는 당신들이 군대를 갖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된다. 군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것은 신화, 설화, 전설, 우화, 구전문학으로 불린다. 군대가 조착하는 순간부터 q2l로소 역사가 되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 땅에 군대를 끌고 와서는, 그 이전의 것은 전혀 역사가 아니라고 우겼다.

파울라 건 알랜 / 라구나 푸에블로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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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을 인공적인 기술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다. 진보란 몇몇 선택된 사람들에게 삶의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 진정한 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기술문명을 건설하는 일이다. 인디언들이 대지를 활용하는 방법과 얼굴 흰 사람들이 대지를 이용하는 방법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인디언들은 대지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얼굴 흰 사람들은 대지를 파괴한다. 그들은 어머니 지구를 망가뜨린다.

바인 델러리아 부니어 / 서 있는 바위 수우족

때로 나는 얼굴 흰 사람들이 우리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 속에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우리를 게으르다고 비난하면서 우리에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우리에게 돈을 가르쳐 준 것이 누구인가?”그것은 얼굴 흰 사람들이다.

- 마가렛 시월레이 / 눅소크(벨라쿨라) 족

태초에 우리는 들었다. 땅 위를 걸어다니는 인간 존재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받게 되리라고. 또한 서로 사랑하고, 이 대지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을 존중하라고 우리는 배웠다. 우리가 잘 사는 길은 식물들이 잘 사는 것에 달려 있으며, 우리는 네 발 달린 동물들과 가까운 친척이라고 배웠다.

- 호데노쇼니 족

* 2018. 12. 8. 다음에 2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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