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28. 20:16ㆍ독서후기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2)
■ 혜민 지음
4장 우정의 여러 가지 면
■ 삶에 힘이 되는 존재
선배스님들은 계(戒)를 받고 정식 승려가 되면 세속에서 귀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놓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1) 알록달록한 옷 대신 먹물색 승복으로 갈아입기
2) 무명초(無名草)라 일컫는 머리카락 자르기
3) 은사스님께서 지어준 법명으로 자신을 소개
4) 행동과 마음가짐을 수행자처럼 갖기
5) 속인으로 살 때 사귄 친구 버리기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옷이나 머리, 이름은 어렵지 않게 버릴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무 자르듯 댕강 잘라 마음대로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늦가을 무렵이었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고등학교 시절 줄곧 친하게 지냈던 민수에게서 소식이 도착해 있었다. 생각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이 비슷해 단짝으로 자주 어울려 다니던 민수였는데 내가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것이다. 내 첫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이름은 달랐지만 바로 나인 걸 알았다면 출판사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고 했다. 헤아려보니 민수를 마지막으로 본 지가 족히 20년은 된 듯했다. 나는 이메일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민수야, 나야, 우리 봐야지?”
내 익숙한 말투에 민수도 금방 편안해했고 우리는 예전처럼 고등학생 때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야, 오랜만이다. 우리도 이제 사십대, 중년이네. 고등학생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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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에서 학위를 마저 한다고 동분서주하는 동안 민수도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십여 년을 보냈다.
오랜 친구와의 이야기는 먼저 지난 일들을 하나씩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교내 중창단 그룹에서 노래했던 이야기, 정신세계사 책들을 열독한 이야기, 담임선생님 이야기, 친구들과 영화 보러 놀러 다닌 이야기 등. 그땐 참 앞이 캄캄하고 힘든 시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지금 사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러다 문득 민수가 말했다.
“넌 그때도 좀 평범하진 않았지. 다른 애들보다 용기가 많았잖아. 하고 싶으면 넌 바로 했으니까.”
내가 그랬나? 난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하고 무난한 사람이었다. 학교 자닐 땐 몰랐는데 민수도 가끔씩 절에 다니는 불자라고 했다.
해어질 무렵 민수는 돌연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혜민 스님, 요즘 현대인들 살기 참 힘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 주세요.“
갑자기 존댓말로 바뀌며 친구 민수가 아닌 한 사람의 불자로서 나에게 진정으로 부탁하는 것 같았다. 아, 그래야지. 민수도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데.
세상에서 정말로 행복한 순간 중 하나
: 친한 친구를 만나서 밤새도록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면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인생 목표 중에 하나를 친한 친구 열 명 만들기로 해보세요.
어찌 보면 성공이나 명예보다 좋은 친구들이 많은 것이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집과 일터 말고 나만의 휴식처로 공원이나 서점 같은 제3의 공간이 필요하듯 가족이나 동료 말고도 인생에는 친구가 참 중요합니다.
“좋은 친구는 마법사다. 내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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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웃을 확률이 30배 더 증가한데요. 정말로 웃긴 말 때문에 웃는 경우는 15%에만 해당하고 나머지는 앞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때 웃는대요.
웃음은 관계를 가깝게 하는 접착제입니다.
어떤 다른 목적 없이, 그냥 만남 자체가 목적인 만남, 만남에 다른 이유가 없을 때 사람 사이에 숨어 있던 행복이 미소를 짓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지 않고 앞담화를 한다.
다른 사람의 흠이나 단점을 말하는 순간, 내 안에 존재하는 그와 똑같은 단점이 말하는 도중에 더 강화된다. 이 간단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라.
남이 고집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에게도 고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집이 없으면 상대는 그냥 결단력과 추진력이 좋은 사람으로만 보여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일 중 하나는 남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스스로의 잘못을 살피는 일이다.
친구들 모임에 가서는 남 이야기보다 본인 이야기를 하세요. 그래야 친구들이 당신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준 만큼 그 친구들과 친해집니다.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힘든 거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도 털고 싶은 데 못하니까 힘든 거잖아요.
용기를 준다고 한 말이 상대를 힘들게 하는 잔소리가 될 수 있어요. 대신
“많이 힘들구나. 내가 너라도 힘들 것 같아”라고 공감해 주세요.
만난 후 나쁜 감정만 남기는 만남은 되도록이면 자제하세요. 그런 만남이 아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지지와 응원을 주고받거나 내가 뭐라도 배우는 만남. 깊은 연결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만남을 가지세요.
불편한 마음이 드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한다면 그 사람의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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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이 보일 때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으면 그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됩니다.
장미꽃 같이 화려한 꽃을 방안에 놓으면 빨리 시들지만 들꽃 갗이 수수한 멋이 있는 꽃은 상당히 오래가요.
사람과의 관계도
아주 능력 있거나 외모가 화려한 사람과의 인연은 처음엔 좋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 같아요. 수수하게 자기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 좋은 인연 같아요.
좋은 친구는 만나고 나면 그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내가 나를 더 좋아하게 만든다.
“어떤 이는 성당의 신부님을 찾고, 또 어떤 이는 시(詩)를 찾지만 나는 내 친구들을 찾는다.” - 버지니아 울프 -
■ 나보다 그를 더 생각한 하루
우리가 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 문제점만을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프레임 안으로 나를 더 견고하게 가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땐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남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의 작은 도움으로 상대가 잘 되는 모습을 보면 내 자존감도 올라가고 세상과의 연결감도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남을 돕는 것은 내 상황이 좋아진 후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도움도 차일피일 미룬다. 내 코가 석 자야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상태가 완전히 좋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영영 누군가를 도울 만한 시절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괜찮은 상황이 와도 이것으로는 안 되고 더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좀 아프면 아픈 대로 내 사정에 맞게 조금씩이라도 남을 돕는 실천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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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를 치유하고 좀 더 완성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그 친구를 도왔다고 생각한 그날은 어쩌면 그 친구가 나를 돕고 치유한 날이었을지 모르겠다. 행복은 나에 대한 고민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안위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도와줄 때 커집니다.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는 본인이 평생 어떤 일을 성취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었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인이 전화를 하셔서 뭐 이런 일 가지고도 본인이 친구에게 사과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들어보니 지인에게는 별 일이 아니지만 친구분은 상처받을 수 있었겠다 싶었다.
상처를 준 사람의 입장에선 항상 별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상처 받았다는 사람은 많은 데 상처를 줬다는 사람은 없다.
눈이 왔을 때 바로 쓸면 쉽게 치울 수 있지만 다음 날 쓸려고 하면 얼어붙어서 치우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사람의 감정도 쌓여서 얼어붙기 전에 빨리 연락해서 풀어야지 한참 지나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무척 어렵습니다.
때를 종종 밀지 않으면 묵은 때가 살에 붙어 아주 세게 밀어야 합니다.
이처럼 감정의 때도 오래 묵히면 그걸 해결하는 데 엄청 아파요.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도 내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그대로예요. 그러니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든 상대에게 복수할 생각보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심신건강에 훨씬 이로워요.
크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피해야 할 것 : 자기 스타일 없이 남 따라 하기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피해야 할 것 : 자만심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 우물 밖에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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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지 않습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자신의 것이 세상에서 최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최고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나를 끊임없이 무시하고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멘탈(생각하거나 판단하는 정신)이 붕괴될 것 같으면 당당히 이야기 하세요.
“나는 당신이 그렇게 대할 만큼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당신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당신 안에 숨어 있는 열등감 때문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난 더 이상 못 참는다.”
치사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 힘으로 하겠다’ 마음먹으세요. 시작이 좀 초라하고 금방 뭔가가 막 이루어지지는 않아도 그 길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힘이 있다고 가진 힘을 백 퍼센트 다 써버리면 결국엔 큰 화근이 되어서 돌아온다. 지혜로운 이는 싸울 때도 3분의 2의 힘만 쓰고 상대의 마지막 체면은 지켜줄 줄 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하잖아요? 내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아이고 내게 복을 주려고 저 사람이 나타났구나’ 하십시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불행까지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상대를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넘지 않아야 하는 심리적 선을 지키세요.
그를 돕다가 내가 점점 불행해지면 처음의 선의가 원망으로 변합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세 번만 돈 꿔달라고 하면 나쁜 관계가 되고
아무리 나쁜 관계라도 세 번만 계속해서 도와주면 좋은 관계가 됩니다.
이처럼 원래부터 좋은 관계도 반대로 나쁜 관계도 세상엔 없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나면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갑에서 을이 된다.
의리 때문에 불공평한 거래를 계속해서 감행하지 마세요. 상대도 의리가 있다면 내가 문제를 제기 했을 때 바꿔주거나 내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리도 돈도 다 잃게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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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외로움에 관한 생각
■ 우리가 외로운 이유
사람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외로움을 종종 느낀다. 같이 사는 부모나 배우자, 아이들이 있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사람이라 해도 매일 보는 직장 동료도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사람 속에 살아도 우리는 여전히 외롭다. 돈이나 권력, 유명세가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해 더 외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마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곁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왜 그런 걸까?
인간 중심 상담의 창시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우리가 외로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상대가 수용해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만약 그랬을 때 상대가 나를 따뜻하게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닌 내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고 상처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다닐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진짜 자기 모습을 감춘 채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비난받지 않을 수준에서 피상적인 만남만을 가지는 것이다.
칼 로저스에 의하면 부모로부터 안전한 분위기에서 수용적인 지지와 긍정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 아이들에게 그러한 심리적 벽이 생긴다고 한 다. 그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로부터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아이의 생각이나 결정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컨트롤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행동 했을 때만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아이는 언제부턴가 자기 스스로의 느낌이나 결정을 신뢰하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나 지시를 더 살피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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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부모 앞에서 자기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게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감정을 숨기고 모든 것이 문제없는 듯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그런데 만약 부모나 형제, 가까운 친구가 네 모습을 자기 기준대로 재단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면 우리는 감정이나 생각을 가면 뒤로 숨길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존중받을 만한 것, 그리고 문제가 없는 것이었구나’ 하는 자각이 찾아오며 자신감과 자기 신뢰감이 높아진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존중을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존중을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이도 존중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존중 받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아이는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 삶의 꽃을 활짝 피운다. 그런 아이는 자기의 선택을 긍정하며 다른 이들의 의견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곧 회복한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특히 자기의 진실 된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찬바람이 부는 이 겨울에 혹시라도 친한 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속 이야기를 나누길 시도한다면 내 기준으로 섣불리 재단하지 말고 따뜻하게 경청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 마음의 닫힌 문들을 조금씩 열어 상대에게 이야기 한다면 상대 역시 자신의 문을 열면서 좀 더 깊은 관계로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 상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내말 좀 들어보라고 하지만 서로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해 결국엔 더 멀어져요.
외롭다 했더니 원래 다 외롭단다. 그런 말 들으려 말한 것이 아닌데 말하기 전보다 더 위로워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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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받을 때 타인과 연결감을 느낍니다. 내가 던진 이야기를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으면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도 속이 허한 것이, 외롭다 느낍니다.
몸이 아프면 전문의를 만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데 마음이 아프면 자기 혼자 해결하려다 병을 키운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의심으로 인해 남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외로워진다. 자신이 매우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외로워한다.
우리가 외로운 까닭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들을 향한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 마음을 열고 말을 걸어보세요. 서로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행복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조건’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내 주변 상황과 사람이 그 틀에 딱 맞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 틀이 있는 한 행복할 수 없어요. 내가 붙인 조건, 내가 만든 틀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로움과 홀로 있음은 차이가 있어요. 외로움은 혼자 있지만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상태이고 홀로 있음은 혼자지만 혼자 있는 것이 평온한 상태입니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마음 상태에 따라 외로움은 불행하다고 느끼고 홀로 있음은 편안하다고 느껴요.
홀로 있는 것이 가진 좋은 점들이 사실 많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 내면을 온전히 들여다 볼 수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몰랐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남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할 수 있고 온전히 쉴 수도 있어요.
우리는 심심한 것을 두고 외롭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심한 것은 달리 보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할 일 없다고 무조건 외롭다는 말을 붙이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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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괴로움은 주어진 현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의 해석이 가져옵니다.
똑 같은 상황인데도 내 마음의 해석에 따라 괜찮을 수도 있고 엄청난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되도록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세요.
속으로 따라 해보세요.
“더 나빴을 수도 있었는데 이만하니 다행입니다. 이만해서 감사합니다. 제 자신을 위해 남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남은 생 의미 있게 살겠습니다.”
삶은 우리를 여러 방식으로 외롭게 만들어서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이끈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중에서
■ 새로운 고독의 시대
언제부턴가 나도 목소리를 나누는 전화 통화보다 문자로 이어지는 소통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화보다 문자가 여러 면에서 더 편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전화 통화의 경우 일단 벨 소리가 울리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멈춰야만 통화가 가능하다. 누군가와 대화중이라면 양해를 구하고 대화를 끊어야 하고, 밥을 먹는 중이라면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기차 안이나 도서관, 회의 장소처럼 조용한 곳이면 벨 소리나 통화 소리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자리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에 반해 문자 소통은 내가 짬이 나는 시간에 조용히 확인하고 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상황과 스케줄을 상대에게 당장 맞추지 않아도 된다. 또한 문자는 간결하게 요점만 전달하기 쉽기 때문에 전화를 했을 때 처음 얼마간 진행되는 인사치레의 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적다. 여러 사람에게 동일한 말을 전할 때는 일일이 전화하지 않아도 되고 한 번에 손쉽게 그룹 채팅을 할 수도 있다.
이젠 문자 소통이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소통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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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삶에 녹아든 문자 중심의 대화가 편리하고 감정 소모가 적다고 과연 다 좋기만 한 것일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과 문자 소통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보가 더 고독감을 느끼며 쉽게 우울해 한다. 잠시라도 짬이 생길라치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사람들과 접속 가능한 인터넷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정서적인 단절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듯하다. 도대체 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미극 MIT대학교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은 지금의 형상을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Alone Together" 상태라고 설명한다. 즉 같은 공간에 있긴 하지만 우리 각자의 마음은 스마트폰을 통해 모두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문자, SNS에 몰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디.
셰리 터클 교수에 따르면 이런 인터넷 상에서의 접속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다른 것이라고 단언한다. 문자를 통한 접속은 언제라도 개인이 불편하다고 느끼면 쉽게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한 실제 대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대화에선 내가 상대에게 실수로라도 상처 주는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아픔을 느끼는지 그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등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 폰을 통한 문자 소통은 상대의 아픔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극심하게 괴롭혀 놓고도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상대가 싫거나 불편하면 그냥 차단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소통은 면대 면으로 만났을 때 좋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박탈해 버린다. 우리가 함께 한다는 느낌 내가 이해받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 깊은 곳에서 상대를 알아간다는 느낌, 아픔이 치유되고 관계가 회복되는 느낌, 관계의 밀도가 높아졌을 때만 열어 보이는 하기 힘든 이야기, 남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 긴한 정보 등은 모두 면대 면의 만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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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대인들이 느끼는 새로운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밖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소통해야 하는 것 같다. 나아가 스마트 폰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일기장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책상 속에 숨기고 열쇄까지 채웠는데 지금은 SNS로 자신의 하루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낱낱이 알리는 시대네요. 조금은 아이러니 합니다.
상대의 얼굴을 맞대고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면 SNS에 올리면 안 된다고 봐요. 툭 던진 비판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상처를 줄 수 있거든요.
가까이 가고 싶지만 가까운 것이 왠지 좀 부담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저만 느끼는 감정인가요?
해외여행 중에 찍었던 멋있는 사진 한 장을 SNS에 올렸더니 부럽다고 난리가 났다. 사실 그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진을 날려야 했고, 날파리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얼마나 배가 고프고 몸이 힘들었는지는 사진에 나오지 않았다.
혹시 나와 같이 할 친구가 없어 외로운 이유가 한 친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와 성격도 맞아야 하고, 사는 수준이나 정치 성향도 비슷해야 하고 등등. 나와 맞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친구와는 만나서 그 부분만을 함께 하면 됩니다.
제 인생을 가만히 살펴보니 가장 친하게 지내는 단짝 친구는 대략 5년에서 7년 주기로 바뀌는 것 같아요. 이사를 가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거나, 직장을 이동하거나, 일이 매우 바빠져 만나기 어렵거나 등등의 이유로 친구와 멀어져 외롭다고 느낀다면,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우주는 새로운 좋은 친구를 한 명 또 보내줍니다.
성공한 사람을 많이 만나본 기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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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을 아무리 만나도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가만 보면 기회나 아이디어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다가 발견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우정은 그런 기회를 더 만들어 주고요
진정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에게 지혜를 줄 사람, 좋은 에너지를 나누어 줄 사람을 내가 찾아가야 합니다. 내가 움직여야 새로운 세상도 만나게 되고 인생의 전환점도 생깁니다.
그가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면 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그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내가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기대를 하니까 자꾸 실망하지. 심적 결핍과 외로움을 남에게 채워달라고 하면 넌 자꾸 실망할거야. 네 스스로가 깨닫고 변해야 해.
성격이 정반대인 사람과 같이 일하려면 힘이 들어요.
성격을 맞춰 친구처럼 지내려 하지 말고 일을 통해서 신뢰를 쌓으려 하세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일단 신뢰가 쌓이면 이 관계도 꽤 괜찮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좀 혼자 있고 싶어지고. 막상 혼자 있으면 어느 순간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혼자 있어서나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는 것이 싫고 함께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 이내 불편한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 습관에 있지 않을까요?
외로움의 근본 원인은 혼자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혼자 있는 시간엔 항상 외로워야 하는데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외로움의 근본 원인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믿게 되면 지금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부족한 결핍감이 외로움을 만듭니다.
진정한 내가 무엇인 지 정확하게 깨닫기 전까지는 아무리 좋은 환경과 관계 속에 있어도 어딘지 모르게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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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영국에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이 생겼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얼마 전에 접했다. 외로움으로 인해 고통 받는 영국인이 무려 9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런 장관이 생길법도 하다. 외로움이 주는 정신적인 고통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정도의 해를 우리 몸에 끼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전체가구 형태 중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는 통계가 연일 보도된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젊은 사람뿐 아니라 연세 드신 분들도 혼자 사는 경우가 크게 증가해 오랫동안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살다 고독하게 사망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고 하니 외로움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선 외로움의 근본 원인이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함께할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 외롭다고 말한다. 즉 외로운 이유가 혼자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이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면 누군가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군중 속이 고독이라는 말처럼 외로움은 누가 곁에 있어도 찾아오는 것이기에 꼭 혼자라서 외로운 건 아닌 것 같다.
만약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움을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이라고 한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항상 외로움의 고통이 동반돼야 하는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만 해도 혼자 있는 시간이 선물같이 느껴질 때가 훨씬 더 많다. 다른 이들도 오히려 혼자 있으니 남 눈치 안 봐도 되고 홀가분하니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외로움의 원인은 단순히 혼자여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근본 원인일까? 계속해서 마음을 들여다보니 외로움에 대한 작은 알아차림이 있었는데, 바로 ‘외롭다는 생각’이다. 즉 외로움의 정체는 혼자라는 외적 상황보다 혼자여서 문제라는 내면의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결국 상황이 아닌,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 우리를 괴롭혔던 것이다.
만약 정말로 주변에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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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서는 것이 좋다. 다양한 공부 모임, 운동 모임, 종교 모임, 독서 모임처럼 자기에게 잘 맞으면서도 본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어르신의 경우 복지관에서 새롭게 뭔가를 배우거나 서울에 사신다면 시에서 하는 50플러스 캠퍼스 등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약간의 노력과 처음의 불편한 느낌을 이겨내면 이내 같이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금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면서 최근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 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세상도 내 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6장 마음을 닦는다는 것
■ 같이 잘 사는 법
가을 안거 결제에 동참하기 위해 봉암사에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윤달이 있는 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은 100여명의 스님이 올 가을 안거에 방부를 들여 수행중이다. 이 많은 스님가운데는 예전에 다른 대중 처소에서 함께 살았던 반가운 얼굴들도 있지만, 전혀 일면식이 없는 스님들과도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은 스님들 역시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처음엔 좀 어색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해야 대중이 서로 마음을 맞춰 잘 살 수 있는지, 서로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
전국 각지에서 사셨던 스님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다보면 좀 재미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님들의 염불 소리를 들어보면 속도나 톤이 제각각이다. 송광사 염불소리는 느리고 차분한데 반해, 해인사 스님들은 가야산 산세만큼이나 염불 소리 또한 빠르고 기운차다. 처음 염불을 어디에서 배웠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염불소리의 기준이 정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기준이 너무 강해 서로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불협화음에 엇박자인 아주 듣기 싫은 염불 소리가 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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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뭔가를 할 때는, 자신에게 익숙한 기준을 스스로 먼저 양보하고 조정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다음은 ‘내가 조금 더 일하겠다고 처음부터 마음먹기’이다. 보통 안거가 시작되기 전날에 대중이 모여 개별 소임을 결정한다. 부엌에서 밥을 하는 공양주 소임부터 법당이나 선방을 청소하는 소임, 주변 산을 보호하는 산감 소임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럴 경우 잘못하면 시비가 생기기 쉽다. 며칠 일을 하다보면 꼭 다fms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더 일을 하는 것 같고 어떤 이들은 일을 건성으로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나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의 모습을 못 보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처음부터 ‘내가 조금 더 일해야지’하고 마음먹으면 내 마음이 편안하다.
또 하나는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이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거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흠은 어떻게 보면 내 마음 거울에 비친 내 흠이기도 하다. 이런 때일수록 공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초발심으로 돌아가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내 일을 해나가면 된다.
배움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책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머리로 분석하면서 얻는 배움과 본인이 직접 몸으로 뛰면서 참고 고생하면서 얻는 배움.
온몸으로 배운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아도 왠지 믿음이 가고, 대화를 나누면 그 깊이가 전해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구체적이면서 실용적이다.
똑같은 일을 했는데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되는데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똑같은 일을 했어도 흠이 보이고 용서가 되지 않아요. 희한해요. 우리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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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 부모는 이래야 하고 학생은 저래야 한다. 정치인은 이래야 하고 종교인은 저래야 한다. 우리는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만들어 낸 기준으로 분별한 후 그 기준에 잘 부합하면 훌륭하다고 한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면, 상대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정말로 상대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칭찬을 하게 한 후 개선하길 바라는 점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말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남을 비판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내가 자주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건 내 안에 깊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을 소중하게 여겨요.
일이 되게 하려면. 자기 입장만 백날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한 후 그것과 내 요구가 어떻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 설득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변화가 없다면 상대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세요.
나는 바꾸지 않고 세상이 내 마음에 맞게 바뀌길 원하기 때문에 삶이 고생스럽다.
누구를 미워하면 내가 가장 힘들어요. 그 미움을 극복하는 길은 그 대상을 향해 ‘그가 행복해지길’하고 속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올라오지 않더라도 축복의 말을 그냥 해보세요. 내 마음 속 미움이 그 말을 전해주는 축복 에너지로 점점 녹아요. 그 사람이 행복했다면 나에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미움을 같은 마음으로 상대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고통은 지속됩니다. 이해와 사랑만이 미움의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몇 천 년을 내려온 이 간단하지만 심오한 진리에 머리를 숙입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내 생각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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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원래 물 위에 쓴 글씨처럼 잠시 모양을 드러냈다가 자국을 남기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이내 사라질 생각을 붙잡고 되새김질 하면서 괴로워지지 마세요.
잘못된 한 생각이 올라오면 태산 같은 걱정과 두려움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잘못된 그 생각이 지나가면 걱정 없는 마음 하늘 푸르게 드러나네. 그러니 잘못된 생각, 믿지 말고 놓아주소.
생각에도 연료가 있습니다. 바로 감정이라는 연료입니다. 감정의 연료가 소진되면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생각 아래에 있는 감정을 누르지 말고 글이나 그림, 춤이나 상담을 통해 표현해보세요.
본래 하늘은 동서남북 없이 하나인데 우리 생각으로 동서남북이라 이름 지어 갈라놓고 그 속에서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며 싸웁니다.
우리 마음도 원래 나뉨이 없이 하나인데 생각으로 ‘나’라는 모습에 집착해 세상의 여러 모습들과 옳다 그르다 싸웁니다.
승려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산에서 도나 닦지 뭐하러 속세 일에 끼어드냐며 땡중이라 하고, 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중생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느냐고 이기적인 중이라 한다. 이 사이에서 스님들은 고민한다.
바람은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사라지고 나면 소리가 남지 않으며
기러기가 찬 연못을 건너 날아도 건너고 나면 그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 빈다. -<채근담> 중에서
텅 빈 큰 공간에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모양 있는 의자만 의식하고 모양 없는 텅 빈 큰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의자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이라는 텅빈 공간 안에 한 생각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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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우리는 생각만 의식하고 생각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텅 빈 마음 공간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현재로 오면 생각이 멈추고 고요해집니다. 그 고요함은 텅 빈 채로 밝으면서도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 깊이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모든 생각들은 이 깊은 마음의 바다로부터 잠시 모양을 밖으로 드러낸 파도와 같을 뿐, 이 깊고 충만한 마음 바다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 마음바다 이야기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세상과 분리감을 만드는 주된 요인이 바로 생각입니다.
마음속에 올라온 생각에 집착하면서 그 속에 빠져 있으면 그 생각의 노예가 됩니다. 숨이 깊고 편안해질수록, 내 주의가 숨에 집중할수록 생각이 줄어들게 됩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포함한 마음이 있고, 생각과 느낌이 사라지고 난 후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 텅 비고 고요한 마음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수행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상과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습니다.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무르익게 되면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이 둘이 아니고 놀랍게도 하나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내 의식이 성숙해질수록 내가 아는 하나님, 부처님도 성숙해집니다. 다른 말로하면, 그분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내 의식의 성숙도에 정비례합니다.
종교의 상징이 가리키는 깊은 뜻을 숙고하거나 영적 경험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종교 간의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상징 자체에 묶여 차이점 밖에는 안 보여 타 종교를 쉽게 폄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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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들이 아니고. 인간의 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물고기는 바다가 자기 고향이지만 헤엄을 치기 시작하면서 바다의 존재를 느낍니다. 새는 하늘이 삶의 무대이지만 날기 시작하면서 하늘의 존재를 비로소 압니다.
형상이 있는 세상에 사는 우리 역시 형상의 집착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종국에는 형상이 없는 근원의 세계를 찾고 있다가 비로소 자신이 그 근원의 세계 안에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 저는 당신을 사원 안에 있는 신성한 상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그 다음엔 큰스님이나 구루 같은 영적 스승에서 찾으려 했고요. 그 다음엔 당신을 고대 경전 말씀을 통해 찾으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존재를 어디서나 느껴요. 마치 햇살처럼 저희를 항상 고요하면서도 밝게 비춰주고 계셔요.
진리는 이미 아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아요.
왜냐면 내 이야기라서 그래요 하지만 다시 들었을 때 새롭게 깊어짐이 있습니다.
지성이 깨어날 때의 기쁨은 세상을 얻은 것같이 마음 부자가 된 느낌이고, 영성이 깨어날 때의 즐거움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지성이 깨어나면 내 안에 가치 기준이 생겨 더 이상 남들 기준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영성이 깨어나면 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 두 번 다시 현혹되지 않습니다.
마음은 텅 빈 하늘과 같아서 많은 생각과 감정의 구름을 만들지만 그 구름들이 마음하늘 공간을 영원히 어지럽히거나 더럽힐 수 없어요. 그러므로 마음 본바탕은 텅 빈 채로 영원히 청정하면서도 이미 해탈한 고요의 상태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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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히 앉아보고 나니
평소의 내 기운이 들떠 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켜보고 나니
일상의 내 말들이 시끄러웠음을 알았네
지난 일을 살펴보고 나니
한가로이 내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네
세상의 문을 닫아보고 나니
이전의 내 사람 사귐이 과했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이고 나니
평소에 나에게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가까이 하고 나니
예전의 내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 명나라 문인 진계유(陳繼儒)
201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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