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10. 13:17ㆍ독서후기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3)
■ 이어령 지음
◉ 7 옹알이 고개
배냇말을 하는 우주인
■ 첫째 꼬부랑길 - 환한 밥 깜깜한 밥
01 “전쟁 후 끼니를 거르며 살던 때였지요. 하루는 아이가 ‘환한 밥! 환한 밥!’하면서 우는 거예요. 제 처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쌀밥이 먹고 싶다는 거래요. 아직 말을 잘 몰라서 꽁보리밥을 깜깜한 밥, 흰 쌀밥을 환한 밥이라고 했던 거죠.” “아이가 병으로 죽고 난 뒤, 환한 밥 환한 밥 하며 울던 애 울음소리가 들려 이를 악물고 일하며 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돈을 얼마 더 벌어야 그 한이 풀릴 수 있을까요.”
02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온 한국인의 ‘한 이야기’였지만 울며 박수치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까짓 쌀밥이 뭔데! 분한 눈물이 나다가도 쌀밥과 보리밥을 빛과 어둠으로 나타낸 말에 대해서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말고는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랴 셰익스피어도 이태백이도 울고 갈 일이다.
03 옹알이말, 유아어란 의미 이전에 소리만으로 어느 대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일종의 태생적 ‘배꼽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배꼽친구처럼 커서도 관계를 유지해 오는 것이 ‘오노마토피아’라고 하는 ‘의성어’다. 언어학자들은 이 의성어가 가장 발달한 말로 한국어를 꼽는다.
* 사전에 나와 있는 각국의 의성어 통계
한국 약 8,000개 일본 2,200개 독일어 541개
04 일본 역시도 서양의 다른 언어에 비하면 의성어를 많이 쓰는 편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각국어로 번역한 중에서 의성어를 살펴보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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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6개, 독일어에는 7개, 프랑스어에는 3개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어 번역에는 무려 34개의 의성어가 등장한다.
(히타미야 교수의 조사 결과)
05 한국의 의성, 의태어는 반드시 콜콜과 쿨쿨처럼 ‘ㅗ’는 ‘ㅜ’, ‘ㅏ’는 ‘ㅓ’의 양모음대 음모음의 모음조화로 구성되어 있다.
0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대응
- 깜깜한 밤과 껌껌한 밤,
- 살랑살랑과 설렁설렁,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깃발은 팔랑팔랑 날리고 설 렁설렁 불면 그것은 펄럭펄럭
- 물줄기의 7단계 : 콸콸, 좔좔, 줄줄, 졸졸, 촐촐, 조록조록, 뚝(끊김)
06 모음조화만이 아니라 자음까지 어울려 흐르는 물에는 ‘ㄹ’이 붙고, 막히고 끊기는 것엔 ‘ㄱ’‘ㄲ’의 폐색음이 따른다. 응가에 힘을 줘야 나오는 대변이 ‘끙가’이고 어른이 되어도 힘주어 일할 때는 ‘끙끙거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의 성공 법칙으로 꿈, 깡, 꾀, 끼, 꼴, 끈의 쌍기역 시리즈는 모두가 끙가의 배꼽 친구였던가 보다. 맞다. 태명부터 아이들에게 제일 소통되는 음이 된소리의 반복으로 쑥쑥이, 튼튼이에게 까꿍인 게다.
07 처음에는 아무 뜻도 없는 소리를 내다가 조금 크면 혼자 내던 소리에 뜻을 싫어 소통하려고 한다. 그것을 우리말로는 아기들이 옹알옹알 한다고 ‘옹알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배브배브’한다고 해서 ‘배블링’이라고 한다.
08 언어학자 베네딕트 드 부아송 바르디에는 태어나서 두 살까지의 영아들에게 어떻게 언어가 시작됐는지 실험한 적이 있다. 그 연구 결과에서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모국어로 옹알이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09-10 신생아의 울음소리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부모가 낳은 아이 30명과 독일 부모가 낳은 아이 30명의 울음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르면 생후 2일째부터 아기 울음에 부모가 말하는 언어의 ‘운율’이 드러났다고 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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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한 독일 연구진은 프랑스 아기의 울음 끝에는 상승조가, 독일 아기의 울음에는 하강조가 뚜렷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결과는 아기가 자궁에서 듣고 익힌 부모 발음의 영향으로 모방해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천부의 사실을 알려준다.
11 유아어의 특성은 오바마 같은 이름처럼 단순한 모음, 그리고 구순음 같은 것들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른데도 엄마, 아빠의 어린이 말은 에스페란토(인공언어) 와도 같다. 우리의 ‘엄마’와 ‘맘마’는 세계어디에서나 번역할 필요 없이 ‘마마’‘마미’‘마망’으로 통한다. 거의 모두가 ‘M’계열의 부드러운 구순음인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P’계열의 강한 파열음이다.
12 유아 언어의 소구력(수요자의 사고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큰 지는 오바마의 선거전에서도 나타난다. 오바마란 이름은 힐러리 클린턴이나 매캐인처럼 까다롭지 않아 젖먹이들도 따라 할 수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오바마라고 말하는 젖먹이들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13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쓰던 옹알이 말이 있다. 오늘날 트위터나 카카오톡이나 라인에서 문자를 보내는 아이들에게도 ‘이응’자가 남아 있다. 하숑 가송, 너랑 나랑 지금도 그 말이 쓰이듯이 의성어, 의태어를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다. 응애, 까꿍, 잼잼, 응가, 끙가, 이게 바로 이응 첨미소의 랑 효과. 알기 쉽게 ‘랑 효과’라고 하겠다.
14 언어는 우리 피를 통해서 마치 유전자처럼, 한국인의 얼굴처럼 한국인의 눈빛처럼, 그렇게 땅속의 수맥처럼 이어져 왔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명이다. 생물학적 유전자 속에 한국말의 씨앗이 있다면, 우리는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찍고 나온 것처럼 혀 속에 이미 옹알이의 성문을 달고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앞서 인용한 부아송 바르디에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구두끈을 매기 전부터 제 나라말을 배웠다.
15 이러한 우리 옹알이말에서 발생한 의성어의 음성묘사로 노랫말을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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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바람을 일으킨 것이 지금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그 <상어 가족>이다. 빌보드 차트까지 오르고, 이 유튜브 영상으로 회사 주가가 70%나 급등했다는 이야기다. 노래가 기막힌 것도 아니고 에니메이션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유가 뭘까?
<상어가족>의 특성은 한국 특유의 의성어 음성묘사의 매력 그 곡에 붙는 ‘뚜루루 뚜루’라는 의미 없는 옹알이 소리인게다.
16 의성어로 구성된 옹알이는 인류의 원초적인 말이다. 최초의 인간의 언어는 다 옹알이 같은 말이다.
17 <상어 가족>의 노랫말은 옹알이 같은 노랫말만이 아니라 그 내용도 먹는 것이다. ‘먹는다’는 말처럼 막 쓰는 말도 한국말 밖에 없을 것 같다. 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욕도 먹는다. 축구에서 점수를 잃어도 한 꼴 먹었다고 하는 사람들. <상어가족>도 모두 잡아먹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들어서는 안 될 정도로 엽기적이다.
■ 둘째 꼬부랑길 - 공당과 아리랑
01 종으로 그어진 시간으로 보자면 몇백 년 전 조선시대 어린 아이의 옹알이나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옹알이는 똑같다. 횡으로 그어진 시간 축에서도 동일하다. 어렸을 때 했던 옹알이의 흔적이 커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아이들이 트윗이나 문자를 보낼 마지막에 ‘이응 자’를 붙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감사합니당’ ‘나둥~’이렇게 끄트머리에 ‘ㅇ'을 붙인다. 종결 어미에 ’이응‘을 붙이는 한국인의 습성은 멀리 고불 맹사성시대로까지 간다.
02 비가 몹시 오는 날, 맹사성이 비각 속에 비를 피하려고 갔는데, 웬 젊은 선비가 거기에 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는 거다. 젊은이는 비를 맞아 후줄근한 노인이 들어오니까, 무시하면서 자리를 좀 비켜준다. 딱히 할 일도 없어 멍하게 비 그치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젊은이가 맹사성을 보고 시 짓기를 제안한다. 시 짓기라는 것은 원래 한자로 하는 건데 맹사성을 보고 시골 노인이 뭘 알겠느냐 싶어서 ‘공당’으로 하자고 그런 거다. 한자를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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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마치 선비들이 운을 달아서 시를 짓듯 이 말끝에다가 ‘공당공당’을 붙여 자기네들도 시 짓는 운을 따르는 것이 한 때 유행이었다. 이것은 <연려실기술>에 나온,s 이야기다. 젊은이와 맹사성이 주고 받은 ‘공당’시다.
03 “어찌하여 상경하려는공?” “벼슬을 구하러 올라 간당”“어느 벼슬인공?” “녹사 시험을 치르러 간당”
비가 그치고 그렇게 시 한 수를 주고받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한양에 올라온 젊은이는 녹사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기 위해 면접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면접관 중 한 사람이 “어떠한공?”하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때의 후줄근한 노인이 정승이었던 거다. 그래 당황해서 “죽여지이당”하고 답했다.
“지나가는 개에게도 배우는 거니라. 사람은 공손해야 공인이 되는 것이니라 그것만 알면 너를 붙여 주겠다.” 그래서 공당 놀이한 사람이 녹사에 합격한다.
04 옛날의 ‘공당 이야기’는 조선 시대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보자.
“머루랑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어리랐다. /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머루랑 다래랑’도 그러하듯 후렴구 ‘얄리얄리~~’에도 전부 ‘ㅇ(이응)’이 달려 있다. <정읍사>, <서경별곡> 등에도 후렴구들은 옹알이말처럼 뜻이 없는 말로 이응이 이어진다.
05 갓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한자로 ‘고고의 성’이라고 한다. 고고(呱呱)는 중국어의 의성어다. 우리는 아기가 울 때 ‘응애’하고 운다고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거꾸로 센 자음을 써서‘구아구아’라고한다. 원래 이 ‘구아구아’는 꽥꽥 소리를 내는 오리나 개구리 소리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선 ‘오갸~’라고 하고 영어권에서는 ’와와‘라고 한다.
06-07 우리가 좋아하는 ‘이응’ 붙은 단어가 또 있다.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나타나낸 ‘아리랑’이다. 막상 아리랑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여러 대답이 너울게다. 이를 궁금히 여긴 외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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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알려진 아리랑의 의미를 모아서 정리했다. 무려 아홉가지나 된다.
-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이름 알령에서 유래.
- 밀양부사의 딸 아랑에서 유래
-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노역으로 끌려온 인부들이 ‘내 귀는 먹었 소’라며 ‘아이롱(我耳聾)’이라 한데서 나온 말
- 한국 피리의 장전타음(長前打音)을 흉내 낸 의성어라는 설. 등
08 시가의 발생론으로 보면 아리랑은 무의미한 후렴구, 샤우트(큰 소리 지르다)하는 타잔처럼 의성어로 보는 게 맞다. 특히 아리랑이라는 말은 ‘공당놀이’처럼 ‘옹아리’말이다. 옹알이에는 의미가 없지만 인간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기쁨, 슬픔, 분노 등이 담겨 있다. 최초로 ‘옹알옹알’하면서 어머니한테 ‘나 슬퍼, 나 배고파, 나 즐거워’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백 년 내려온, 생명의 근원인 옹알이고 이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비어있는 잔처럼 특정한 뜻을 담고 있지 않기에 아리랑인 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아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민족의 정서와 애환이 아련하기 피어오른다.
09 아리랑은 살아있다.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옹알이처럼 한국인의 정서가 깊게 스며있다. 아리랑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때는 슬프고 어떤 때는 기쁘지 않은가?
2016년 스페인 마드리드 소극장에서 열린 난장 무대에서 아리랑을 들은 한 40대 중년 남성은 소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왠지 신 났는데도 슬펐다.”이런 복합 감정이 잘 드러나는 것이 ‘아리랑 쓰리랑’이다.
10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왜 아리랑만이 아니라 쓰리랑을 더했을까? 아리랑은 원래 슬픈 말도 기쁜 말도 아닌 아닌 그저 정서를 담고 있는 하나의 그릇인데, 사람들이 그 그릇에 자꾸 의미를 담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아리랑 쓰리랑’이 ‘아리다 쓰리다’는 의미를 입기도 한다. 억압받은 세월이 길었고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어내다 보니 아리고 쓰린 기억이 많아서인가 보다.
11 ‘아리다, 쓰리다’라는 단어는 아픈 감정을 소리로 드러내는 말 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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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아리다’는 말과 ‘쓰리다’란 말을 이어주는 음성상징어로 ‘랑’이 있다. 국어학자 양주동 박사는 아리랑의 랑은 “접속조사‘라’에 첨미소 ‘이응’을 붙인 형태”라고 했다. 특히 첨미소 ‘이응’은 “성조를 유려하게 한다.”고 했다. 이응이 첨가되면서 말맛이 살아, 거침없이 미끈하고 아름다워졌다는 게다.
12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아이들도 ‘감사해용’‘합니당’‘나둥’‘냉냉’하는‘이응’첨미소를 즐겨 붙인다. 아리랑 노래도 잘 부르지 않는 신인류가 오늘의 아이들인데도 SNS를 할 때는 말 끝마다 이응 첨미소를 붙인다. 천 년 전 고려가요의 공당과 아리랑과 오늘의 인터넷을 하는 엄지족들이 이렇게 천년을 이어오는 옹알이말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 셋째 꼬부랑길 - 너희들이 물불을 아느냐
01~02 사전 내의 한자어는 전체 어휘수의 52.11 % 내지 69.32%다. 그런데도 사용 빈도가 100개의 말 가운데서 한자어는 고작 16개 밖에 안 된다는 통계다. 내 몸부터 살펴보라 눈, 코, 입, 귀, 목, 손, 발, 배등 모두가 단음절로 된 순수한 우리 토박이 말이다. 한자 바이러스를 막는 면역체가 내 몸 안에 있었다는 증거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데도 일본 사람들은 동해를 통째로 한자말에 넘겨주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말끝에 끝내 토박이말을 붙여 ‘동해바다’라고 불렀다. 한두 개라면 틀린 말이라고 하겠지만 초가집, 처갓집, 역전앞, 황토흙, 거기에 일본말에서 온 ‘모찌떡, 외국어와 결합한‘빵떡’에 ‘라인 선상’ 까지 겹친 말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03 옹알이와 같은 소리만이 아니라, 의미의 세계에서도 한국말은 매우 구조적이다. 천지인 삼재 처럼 인체어도 ‘머리’‘허리’‘다리’의 ‘리’자 돌림의 삼원 구조로 되어 있고, 머리에서 갈라진 머리카락 손에서 갈라진 손가락 그리고 발에서 갈라진 발가락의 파생어까지도 절묘한 삼분 구조다. 제각기 따로 노는 영어의 ‘헤어’‘핑거’‘토우’와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세 살 때 몸에 밴 토박이말들은 배꼽 힘이 들어 있어 강하다. 최근 발견된 정조대왕의 어찰에서도 ‘뒤죽박죽’이라는 말만은 한글로 적혀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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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동양에서는 음양사상이, 서양(희람)에서는 ‘수성설’과 ‘화성설’이 ‘물’과 ‘불’로 철학의 기간을 삼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한국말의 ‘물’과 ‘불’처럼 짝을 이루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말처럼 음과 양이 모음조화로 이룬 의성어 체계, 머리, 허리, 다리 처럼 삼분관계로 구조화된 신체어, 거기에 물불처럼 선명한 대칭을 나타낸 말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05 ~ 06 물과 불은 분명 상극한다.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물은 하강하고 불은 거꾸로 상승한다. 그런데 물의 영혼은 반대로 김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불의 혼은 반대로 재가되어 거꾸로 땅속에 묻힌다.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고 갈등하던 물불이 조왕님이 계신 부엌에 들어오면 놀라운 조화의 힘으로 밥을 짓고 국과 찌개를 끓인다.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은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을 일으켰지만, 불과 물이 같이 있으면 이와는 다른 현상이 빚어진다. 상극은 상생으로 변해 날것도 아니요 탄 것도 아닌 맛있는 문명의 밥상이 차려진다.
07 한자말이 막말로 천기되던 토박이말을 압도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한자말에 먹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자말을 우리말 속에 융합해 버린다. 한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 천년 이상 사용해온 것으로 한국말이 된 것이다. 김삿갓은 단순한 방랑 시인이 아니라 한자말을 우리 고유어로 녹여 확장시킨 언어의 방랑자이기도 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무리지어 노는 것을 보고 시를 지을 때 한자로 수물수물(水物水物)이라고 묘사한다. 한자의 훈(뜻)으로 읽으면 당연히 물고기들은 물속에 있는 생물들로 수물(水物)이지만 음으로 읽으면 수물수물 물고기떼가 물에서 움직이는 우리 고유의 의태어가 되는 것이다.
08 ~ 10 물과 불은 갈등과 대립을 나타내는 상극이 아니라 서로의 특성을 넘어 융합하고 조화하는 상생의 특성을 나타낸다. 유교적인 대와 도교적인 대가 어울린다. 여기에 불교 죽림사(竹林寺)의 대나무까지 함께 어울린다. 이항대립으로 치열한 대립과 갈등을 나타내는 물과 불의 상극 관계가 그 사이에 솥을 놓아 밥을 지어주는 상생의 힘으로 바뀐다. 아기가 말문을 연 그때부터 우리는 물불이라는 말을 통해서 상생과 상극의 어려운 사상을 몸에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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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옹알이말에서 엄마와 아빠로 그리고 그것이 물과 불로 이어지면서, 우주론의 음양 이론으로 거침없이 발전해 간다. 그러나 세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미음 대 비읍에 앞서 한국말에는 자음이전의 모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마와 파파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로 모음이 먼저 나오고 그것도 엄마는 음성모음, 아빠는 양성모음으로 대비된다.
이 태초의 발음, 모음 때문에 입술이나 구개의 모든 마찰음을 통합하는 힘을 갖는다. 옹알이를 하면서 말을 배우던 나의 한국말 속에는 배내 세상까지 들어 있다. 한자가 들어와도, 일본말이 들어와도, 그리고 알파벳이 들어와도 배냇말의 원초적인 모음 하늘처럼 동그란 그 ‘이응’자의 힘으로 물불을 가리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분열을 하나로 녹이는 조화를 터득한다. 누가 그것을 모음(어머니의 소리)이라고 이름 지었는가.
◉ 8 돌잡이 고개 - 돌잡이는 꿈잡이
■ 첫째 꼬부랑길 - 보행기에 갇힌 아이
01 인간의 직립자세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드의 말이다. 그것은 항문과 생식기가 있는 엉덩이와 얼굴이 있는 머리 사이를 되도록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자세라는 것이다.
02 물론 나도 이미 앞 글에서 기저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 상태에서 인간적 문화 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대소변 가리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결단코 프로이드와 같은 산문적이고 건조한 상상력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임신하는 것을 ‘아이가 선다’고 하지 않는가. 말의 이미지를 통해서 보면 한국의 아이들은 어머니 배속으로 강아지처럼 기어들어온 게 아니라 당당히 선 채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온 것이다.
03 실제로 한국 애들은 엎어 재운 서양 아이들과는 다르다. (엎어 재운 아이들이 질식사로 죽는 사고가 잇따르자 요즘 서양에서도 한국식으로 눕혀 재운다.) 한국 애들은 누워 지내던 태에서 엎어지는 운동을 하고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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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고 누에벌레처럼 배로 기어가는 단계에 이른다. 1년 가까이 그런 과정을 제 힘과 의지로 자연스럽게 통과해야만 두 발로 일어서는 마지막 봉우리에 이르게 된다.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엎드려 기어 다니는 이상으로 편한 자세는 없다. 이 세상의 어떤 의자나 책상도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는데 모험을 자청하는가. 더구나 한국의 장판은 양탄자가 깔린 서양이나 일본의 다다미방과는 다르다. 한 번 넘어지면 콘크리트 바닥이나 다름없다.
04 아이들은 무릎을 찧고 머리를 부딪쳐 울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유난히 정이 많은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인데도 아이가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만은 옆에 떨어져서 추임새만 한다. ‘따로~따로~따로’라고 외치면서 손뼉을 친다. 아이는 다시 일어서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선다. 한일(一)자의 땅바닥 위에 사람형상을 딴 ‘큰대(大)’자를 세워놓은 한자의 그 ‘설입(立)’자처럼 혹은 한 폭의 깃발처럼.
05 2002년 아일랜드의 매터병원에서 가래트 박사팀이 190명의 부모를 상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이들 가운데 102명(54%)이 보행기를 사용했다. 그 사용 기간을 중간치로 계산하면 생후 26주에서 54주까지 반년 이상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빨리 일어나 걷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인데, 실제로는 보통 애들보다도 오히려 서너달 더 늦어진다는 조사 결과다. 거기에 보행기가 굴러 떨어지는 사고도 많이 발생하여 캐나다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법으로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06 심각한 것은 제왕절개 수술로 탄생의 자유와 그 권리를 빼앗긴 것처럼 이번에도 일어서고자 하는 자율의 의지와 훈련이 보행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호사스러운 보행기 위에서 기기도 전에 먼저 걷는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서양 애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언제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는지 아이도 부모들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아버지 어머니들은 ‘따로 따로 따로’라는 전통적인 추임새 말조차 모른다. 그것은 곧 첫발을 떼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에 은은히 미소짓는 한국인의 모습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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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아기 보행기는 유럽에서 이미 15세기에 알려졌다. 네델란드의 기도서에는 나무 보행기를 탄 아기 예수가 묘사되어 있다.
캐나다의 전문 병원 부상보고 및 예방프로그램에 의하면 1990년 4월부터 2002년 4월까지 캐나다 전역의 16개 병원 보고서에서 아기 보행기 사고로 1,935건의 부상이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는 2004년 4월 7일 베에비 워커의 판매가 금지 되었다.
■ 둘째 꼬부랑 길 - 네 손으로 운명을 잡아라
01 출생 전 태중의 아이와 출생 후 갓난아이의 변화 가운데 하나가 손과 발의 관계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귀힘이 세다. 끈을 잡은 아이를 들어 올리면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린다. 그만큼 손 힘이 세다. 그리고 젖을 먹을 때나 뭘 할 때 꼭 손으로 쥐는데 그에 비해서 다리, 발은 돌쯤이나 돼야 힘이 불어 비로소 일어난다. 기는 것도 무릎으로 긴다.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제일 늦게 꼿꼿이 설 수 있는 직립동물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태내에서 나온 아이의 성장과정에서도 제일 마지막이 서는 단계이다. 다른 짐승과 마찬가지로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일어선다.
02 아이는 청각적으로 울거나 시각적으로 손을 써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리와 발로는 소통할 수 없다. 아이들은 언어를 알기 이전에 온 몸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데 다리로는 하지 못한다. 물론 더 크면 떼를 쓸 때 발을 구른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리를 쓰기는 하지만 보통 경우에는 거의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두 발로 일어서는 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가져오는 거다. 그래서 돌의 의미는 단지 한 바퀴 돌아서 생일이 됐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돌만 지나도 수족이나 몸 이런 것들이 인간의 기능이나 모습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이 세상으로 나와서 한 성원이 되는 첫 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03 ‘돌’은 주(周), 회(回)와 같은 뜻이다. 열두 달을 한 바퀴 돌았다는의미다. 첫돌은 태어나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다. 첫돌을 맞은 것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 찬치를 벌여 축하할 일이 아니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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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자연히 돌은 아이가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거기에 덧붙여 이제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부터는 한 사람으로 대우해 주겟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그래서 아이의 첫돌은 특별하다.
04 ~ 05
오랜만에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돌잡이만은 옛날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옛날 나의 돌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저렇게 돌상 앞에 앉아 있었겠지. 붓과 책, 그리고 무지개 같은 활, 장수를 기원하는 무한대의 기호 같은 실타래, 진주알처럼 쌓여 있는 만석꾼이 되라는 흰쌀 등이었다.
훗날 현실 속의 나에게 일깨워주신 어머니의 목소리는 “네가 돌상에서 맨 처음 잡은 것은 붓이었단다. 그리고 헤어진 천자문 책이었단다.”
06 부귀영화의 쌀과 돈, 권력의 활을 잡지 않고 붓 한 자루를 잡았던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신 어머니, 남의 나라처럼 그냥 첫 생일이라 부르지 않고 유별난 돌잡이 풍습을 만들어 준 나의 조국에, 그런 어머니의 아들과 그런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돌날 붓을 잡은 나는 정말 평생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칭기즈칸도 아인슈타인도 없는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07~09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돌잠이 순간이다. 돌상 위에는 돌잡이 용품으로 쌀, 붓, 책, 활, 돈, 국수, 무명실 등이 올려져 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아서 돌상 주위를 돌다가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집게 한다. 어떤 것을 집느냐에 따라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알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돌날은 그야말로 아이의 미래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날이다. ‘돌잡이는 꿈잡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라 할 수 있다.
10 그러나 요즘은 무엇을 잡아도 플라스틱 세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꿈도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마이크나 청진기 같은 것이 나온다. 마이크는 연예인이 되고 청진기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다. 망치도 나오는데, 이는 법관이 되라는 의미다. 의사, 법관, 연예인이 되라는 꿈도 이렇게 플라스틱 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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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그러나 항상 ‘한국인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꽤 인기 있는 동영상을 보면 어머니가 클레이(점토)로 리본이나 연필을 직접 만들고, 아이의 꿈도 직접 만든다. 어머니가 만든 연필로 예전에 없던 세상에서 유일한 것으로 이렇게 직접 아이의 꿈을 만드는 것이다.
■ 셋째 꼬부랑길 - 달라지는 돌상 삼국지
01 2013년 7월, 책의 해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나는 다치바나 다가시와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라는 주제로 발표와 대담을 했다. 그날 나의 첫마디는 “나는 한 살 때부터 책을 손에 잡은 사람”이었다. 나는 80년 동안 책과 함께 살아왔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책은 돌상에서 집은 책이고, 책을 읽어주신 어머니가 나의 두 번째 책이다. 어머니의 말,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그 많은 모음과 자음에서 상상력을 길렀다. 내 최초의 책은 어머니의 몸이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돌잡이로 집어 들던 그 책,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의 음성으로 듣던 책, 그 책이 내 창조력의 씨앗이다.
02 처음엔 ‘한 살짜리가 무슨 책이야’라고 비웃었지만, 돌날 ‘책을 잡았다’는 말에 일본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일본의 돌잡이는 평생 먹을 양식을 상징하는 ‘떡’을 짊어지고 다다미 위의 돌 사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잇쇼모찌는 인간의 일생을 상징하는 떡이다. 일생이란 말과 잇쇼모찌를 만들 때 쓰는 쌀 한 홉의 발음이 같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로 둘러맨 배낭이나 자루에 떡을 넣어주면 아이는 뒤뚱뒤뚱 돌잠이 용품을 향해 걸어간다. 아이가 걸어가는 쪽 물건으로 미래를 점친다.
0 3 지금은 한국인이 일본인 보다 책을 덜 읽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를 보면 책과 연관된 단어가 많다. 일본 사람은 ‘쓰꾸에’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은 ‘책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남편을 서방(書房)이라고 부른다. 남편을 책방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만큼 책을 귀하게 여긴 민족인거다.
04 예나 지금이나 돌상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래의 비전을 잡는 한국인의 모습, 그 시작 속에 우리 문화를 읽는 암호가 숨어 있다. 우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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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일본의 돌잡이 풍속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첫째는 상(床)문화다. 한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 아니라‘돌상’에서 ‘제상’까지다. 그 사이에 초례청, 결혼상이 있고 환갑상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이 아니라 다다미방에 돌잔치 물건을 진열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돌상에 오를 수 없는 칼(사무라이 문화)이나 주판(상인 문화) 같은 것들이다.
05 둘째는 앉는 문화다. 상 앞에서는 서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된다. 한국인의 좌식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우리 돌잡이는 앉아 있고, 일본의 돌잡이는 같은 좌식문화에 인데도 돌상을 앉아서 받지 않고 서서 걷는다. ‘앉다’와 ‘서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선 자세’는 대립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서 있는 자세가 전투적, 행동적, 외향적인데 반해 앉아 있는 자세는 평화적, 명상적, 내향적인 것에 가깝다.
06 한국 문화와 서양 문화를 가르는 잣대 중의 하나가 좌식과 입식의 생활 양식이다. 돌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이가 좌식문화의 기본을 배우는 의식이기도 하다.
07 셋째는 잡는 문화다. ‘잡다’와 ‘집다’는 ‘손잡이’‘손잡고’처럼 손 전체를 사용한다. 그러나 ‘집다’는 손이 아니라 손가락이나 다른 물건으로 쥐는 것을 가리킨다. 붓은 ‘잡’지만 음식은 ‘집’어 먹는다. 고기는 ‘잡’지만 콩은 집는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이라 해도 일본에는 돌잡이 개념이 없다.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돌떡을 발로 밟게 한다. 한국에서는 ‘잼잼’과 ‘곤지곤지’ 같은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잡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08 ~09 글쓰기의 시작은 잡는 것이다. 우리는 돌잡이 때 훈련과 준비를 했다. 돌잡이는 최초의 생각하는 법과 글쓰기의 몸짓이었다는 게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입문이다. ‘잡다’가 명사형으로 된 이름들을 생각해
보면 안다. 칼잡이, 바람잡이처럼 그 사람의 직업명이 된다. 선비의 문화는 ‘붓잡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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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오늘을 잡아라!”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쥐라’는 뜻이다. 우리는 기회를 잡고, 사랑을 잡고, 운명을 잡는다. 더 나아가 세계를 잡기도 한다. ‘받는다’는 수동적 의미가 아니라 제 손을 뻗어서 제 손에 넣는 것이 잡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한국인만큼 잡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민족도 드물다. 첫 생일을 맞은 아이를 ‘돌잡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돌상 앞에서 무엇인가를 잡는 것으로 인생을 출발 한다. 내 운명을 내가 잡는 것이다.
◉ 세 살 고개 - 공자님의 삼년 이야기
■ 첫째 꼬부랑 길 - 숫자 셋의 마법
01 드디어 세살 고개에 이르렀다. 태내에서 생활하던 생명이 아기집을 떠나 삼을 가른 뒤 배꼽 떼고 젖 떼고 기저귀 떼고 홀로 일어서 발을 떼고 말을 배워 입을 떼고 드디어 세 살배기로 한 인간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근대 사상을 지배한 프로이드는 바로 이 젖 떼고 기저귀 떼는 상태가 원활치 않을 경우 트라우마가 생겨 일생동안 그 정신에 영향을 입는다고 했다. 우리도 어느새 트라우마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원래 ‘상처’를 의미하는 그리스말이었던 게다. 프로이트는 마음속에 상처를 입는다는 심리용어로 트라우마라는 말을 썼지만 우리말로 쉽게 하면 ‘속(內) 상(傷)’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아의 트라우마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으로 하면 대충 프로이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 풀린다.
02~04 삼(三)를 세워봐라. 그게 로마숫자 표기로는 ‘Ⅲ’이 된다. 로마의 열주랑, 우람한 석조기둥이 늘어서 있는 회랑 말이다. 개미의 행렬이 삽시간에 롬멜 군단의 행렬로 바뀌어버린 게다. 그냥 작대기를 그어 숫자를 표기한 것인데도 세워서 쓰면 판테온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직선으로 솟은 빌딩이 보이고 눕혀서 쓰면 끝없는 수평선으로 뻗어가는 자금성 궁성들이 펼쳐진다. 동과 서, 밤과 낮만 거꾸로 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거다. 아라비아 숫자로 쓰면 아라비아 이야기가 나오고, 로마의 숫자로 쓰면 로마의 이야기가 생긴다. 그리고 한자로 쓰면 우리 귀에 익숙한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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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서방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천지인 ‘三’을 한 줄로 꿴 것이 ‘王’자라고 유교 국교화의 길을 연 동중서가 말하지 않았던가.
05 우리가 삼천리(三千里) 금수강산에 태어난 것도 삼신할머니 덕분인데 이때의 삼신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를 어우른다. 어느 종교와 관계없이 그 중심에 하늘, 땅,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삼재(三才)사상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국기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지만 일상생활 속의 부채에는 삼태극(三太極)모양이 그려진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서울올림픽 엠블럼도 삼태극이 아닌가. 서양에서 기독교가 들어와도 낯설지가 않다. 삼위일체의 그 교리는 우리가 먼저 안다.
06 “도에서 하나가 생기고, 하나에서 둘이 생기고, 둘에서 셋이 생겼다. 셋에서 만물이 생겼느니라.”노자가 <도덕경>에서 한 이 말도 일찍이 터득한 한국인들이 아니었나. 천 하나의 수에서 <아라비안나이트>가 나왔다면 셋에서 발생한 것이 코리안 나이트의 건국이야기다. 삼위태백에 천부인 3개, 환웅이 거느리고 내려온 3,000명의 무리, 그리고 거기에 또 풍백, 우사, 운사……. 끝없는 3자 행렬이다.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인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금기한 끝에 삼칠일 만에 아리따운 웅녀로 현신한 것도 3자로 계산한 시간이 아닌가. 삼칠일이란 3에 7을 곱한 수로 21일이라는 뜻이다. 시간도 3을 단위로 쪼개어 기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3자 밈이 수천년 동안 내려와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문에 금줄을 치고 삼칠일을 금기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07 ‘3’이란 숫자는 어디에서나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한국인만큼 셋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그건 그냥 돈이나 물건을 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항대립이 아니라 삼항 순환의 오묘한 사고체계를 공유하는 거다. 그것도 일본 아이들은 동전 던지기처럼 단판으로 하는데 한국 애들은 보통 삼세판이다.
08 그러고 보면 웅녀 이야기는 신화라기보다 핏덩이로 태어난 한 생명체가 어떻게 사람이 되고 한국인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실험보고서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날것을 ‘생 生’이라고도 한다. 흙에서 막 뽑은 무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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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고 하고, 익히지 않은 쌀을 ‘생쌀’이라고 한다. 그런 말투가 남아서 ‘생쑈’라는 점잖지 않은 말까지 나왔다. 그러기 때문에 곰과 같은 생물(生物)을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면 날(生) 것(物)이 된다. 이 날 것이 김장독 같은 동굴 속에서 발효돼 잘 익어야 비로소 맛이 든다. 그러면 ‘생(生)’자에 사람인자가 붙어 人生이 되는 것이다.
■ 둘째 꼬부랑길 : 우리 아기 몇 살
01 “우리 아기 몇 살?”엄마가 물으면 아기는 어렵게 세 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세~살”이라고 말한다. 그냥 재롱으로 보이지만 실은 한국인이 되는 첫 무턱의 시험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 그대로 세 살의 문턱만 넘으면 거기 일생의 길이 열리는 거다. 그런데 왜 그것이 하필 세 살인가? 그렇게 삼세 번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인데도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이 흔치 않다.
02 <논어>를 끼고 산 옛날 선비라도 잘 몰랐을 아주 낯설고 어색한 장면이 <논어>의 ‘양화’편 21장을 펴보면 나온다. 공자님의 제자인 재아가 한판 붙는 요즘 같아도 보기 힘든 계급장 떼고 맞장 뜨는 일이 벌어진 거다. 골자는 ‘부모님의 삼년상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군자도 삼년상을 지내다보면 일반 예법을 잊게 되고 음악 연주자도 삼년상을 치르고 나면 몸에 밴 음악을 모르게 될 것이 아니냐. 해마다 묵은 곡식이 없어지고 새 곡식이 나오며, 불을 지피는 나무도 바뀌어 진다. 공자가 정한 예법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게다.
03 공자님은 따지는 재아에게 묻는다. “그래, 자신은 얼마 정도면 된다고 행각하느냐?”재아는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1년이면 족하다는 게다. “그러면 그리 하거라”제아가 나가자 공자님은 한숨을 쉬고 말씀하신다. “재아는 어질지 못한 자로다. 어린애는 세상에 태어나서 3년이 지나야 겨우 부모품속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부모가 돌아가시면 이번에는 자신이 3년 동안 그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제아인들 3년 동안 부모품에 안겨 자라지 않았겠는가.”왜 삼년상인가 왜 세 살인가. 그에 대한 공자님의 생각은 확고하고 아주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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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어찌하랴 공자님 말씀대로 천하의 모든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3년 동안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자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르는 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실은 그 반대다. 왜냐하면 서양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스와들링에 묶여 분리되고, 보행기에 갇혀 모든 것이 모자분리 원칙에 따라 자랐기 때문이다. 3년 동안 부모 곁애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자란 유교문화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배속 아이처럼 태어나서 서로 밀착한 상태에서 3년간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자랐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우리도 부모 곁을 지키는 3년상의 의무가 있었다.
06 일본의 경우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이를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교가 들어오면서 도쿠가와 시대에 법으로 금지하였다. 공자의 기역도 모르던 에도 시대 때의 일본 농촌에서는 흉년이 들거나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하면 낳은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을 그들은 아이를 내리신 신에게 되돌려준다고 해서 ‘고가에시’라고 불렀고 푸성귀를 솎아낸다는 뜻으로 ‘마비키’라고도 했다. 죽이는 방법도 비정하기 짝이 없다. 맷돌로 눌러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묻힌 창호지응 코에 붙여 질식시켜 죽이거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굶겨 죽이기도 했다. 일본의 산파는 역시 분만만 도운 것은 아니었던것 같다. 애를 받자마자 하는 일이 “애를 무를까요?”하고 묻는 일이었다고 한다. 택배 기사가 “반품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예 무르세요.”눈짓하면 아이를 푸로다운 솜씨로 그 자리에서 감쪽같이 처치한다.
07 일본만 그러했던 게 아니다. <아동의 탄생>으로 서구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던 필립 아리에스는 그리스 로마로부터 시작되는 천년의 유럽 역사를 사생활을 통해서 서술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런데 그 첫권 첫 페이지가 애를 죽이는 그리스 로마 시민들의 탄생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고가에시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와 똑같은 놀라움이다.
08 그랬다 유럽 문화와 문명의 위대한 원조인 그리스 로마 시민들은 태어난 제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충격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셈이다. “로마인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인 사실이 아니었다. 신생아는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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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다는 차라리 가장의 결정에 따라 사회속에 받아들여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09 로마 문화는 그리스 문화를 본받은 짝퉁 문화라 하지 않던가. 그리스에서는 사내아이보다는 계집아이를 더 많이 버렸다는 것만 다를 뿐 이하 동문이다. “남자애를 낳으면 훌륭하게 잘 기르고 여자애면 소쿠리에 담아 강물에 띄우시오”라고 한 편지가 발견돼 여러 문헌에 단골 메뉴로 인용되고 있다. 그리스의 여아 살해의 짝퉁 문화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동북아시아로 와도 낯설지 않다.
10 일본의 여자애들이 공을 치며 무심히 부르는 옛 민요의 노랫말이 똑같다. “애를 배걸랑 주인님께 여쭤보라지. 어쩔거냐고. 좋지 좋아 애를 낳아야지. 계집애면 거적에 담아 냇물에 버려. 사내애면 절간에 보내 글 배워 동승이 되라.” 또 아리에스의 그 책에는 무심히 적은 한 줄이 있는데 이게 나에게는 경천동지의 벼락소리처럼 들렸던 거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낳은 애를 모두 다 기르는 유대인이나 이집트 사람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이상한 대목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그들은 애를 낳아 다 기른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고 한 것이 정상적이었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11 그리스인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고 지중해변의 도시국가로 번성했던 페니키아인들이 영아 살해의 원조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남아 전해진다. 그들이 믿는 바알신에게 영아를 제물로 바치던 곳에는 지금도 아이의 미라가 줄줄이 발굴된다. 그들은 로마인들의 철저한 보복으로 지구상에서 자취가 사라진다.
12 신라 때의 봉덕사 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부른 이야기는 그 애절한 종소리의 여운을 타고 천년도 넘게 우리의 가슴을 적시지 않는가. 우리인들 아이를 인주(人柱)로 바치는 일이 왜 없었겠는가. 심청이 공양미 300석 이야기도 효 지상주의 시대에 사람을 시주로 바친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유불선 3교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 한 가닥 슬픈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비교해보면 알 거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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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자식을 낳으면 잡아 삼켜버리고 또 살아남은 자식이 이번에는 아비를 죽이는 이야기 이것이 올림포스 동산의 제우스의 탄생이야기다.
13 그토록 우리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 개화문명인들의 얼굴이 다름 아닌 저 일본 에마(신사나 절에 기원함)에 감춰진 뿔달린 도깨비, 제 자식을 목 졸라 ‘마비키’하는 일본 여성의 모습이었던 게다.
내가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감사할 곳은 그래도 그 옛날의 한국이었을 것이다.
■ 셋째 꼬부랑길 - 세 살 마을로 가는 길
01 내가 문학을 하고 여러 국가 행사도 기획하고 별의별 일을 다 했지만 ‘세살마을’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모두 부정적 시선이었다. “아니 무슨 육아문제까지 하시려고 그러세요.” 이 반대에는 육아문제는 어머니만의 일, 여자만의 일, 그리고 좀 더 나아간다고 해도 한 가족의 일로만 생각하는 사회의 인식이 깔려 있다.
내가 ‘세살마을’을 시작하기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유학생 한 명이 어린아이를 낳았는데, 시청에서 나와 아이 체중을 달아주고 건강을 체크해 주더란다. 그때 처음으로 공동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단다. 자국 국민도 아닌 외국 유학생이 아이를 낳았는데도 내 나라에서 탄생한 생명이나 똑같이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고 사회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생명체 캐나다의 생명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공동체는 모든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02 위스콘신 대학교의 발달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1958년에 갓 태어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철사로 만든 인형에는 새끼들이 빨아먹을 수 있는 우유병이 달려 있었다. 또 하나는 나무위에 부드러운 천으로 덧씌운 인형의 모습은 어미를 닮았지만, 새끼들에게 물질적인 자양분은 전혀 줄 수 없었다. 새끼들이라면 영양을 공급하는 철사 엄마에게 매달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젓도 주지 않는 헝겊 엄마 품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했다. 할로우 부부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정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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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품에서 떼어내 시설에서 키우더라도 어머니를 대신할 포대기 엄마와 음식을 잘 주는 사람만 있으면 어머니의 애정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03 실험이 진행된 지 17년이 지난 뒤 할로우 부부는 그동안 원숭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재 실험을 했다. 스킨십 대리모가 키운 원숭이들을 공동체 우리에 넣자 원숭이들은 사나운 성질에 노이로제 증세와 자폐증, 불안증 등의 병리 현상을 나타냈다. 성적으로 성숙했을 때도 암수가 서로 죽도록 물어뜯기만 했다. 수컷은 부정적이고 반항적이었고, 암컷은 수컷이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 인공수정으로 낳은 새끼는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엄마 원숭이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괴물이 된 이 원숭이들의 실상이 알려진 뒤 미국에선 원숭이 실험을 금지 했다.
04 18, 19세기 서구의 고아원의 경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시설 생활을 채 1년을 못 넘기고 사망할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 이런 심리적 고통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메마른 정서 통제 불가능한 정서적 균형 상실, 범죄적 성향까지도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다.
05 우리 민족을 끌고 온 원동력이 산업화와 민주화였다면, 미래 시대는 생명화 시대, 생명이 자본이 되는 시대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다. 전통적으로 태어나 세 살까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미 잘 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시아의 생명사상, 자연사상을 어떻게 융합하며 새 길을 찾을 수 있을까를 가장 큰 화두로 살아왔다.
06 새천년준비위원장을 맡았을 때다. 2,000년 1월1일 밀레니엄의 첫날, 전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전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할까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은 아기의 첫 울음소리였다. 전 인류가 맞이하는 첫 새벽에 새로운 미래, 새로운 천년을 향해 대한민국 즈ams둥이의 우렁찬 첫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자는 취지였다. 무수한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마침내 카운트다운 직후 0.1초 차이로 즈믄둥이의 탄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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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 때 정적 속에 굴렁쇠 소년의 모습을 선보였던 것처럼 새천년에는 갖 태어난 즈믄둥이를 세계 대축제의 이벤트로 내보였다. 다른 나라가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눈에 보이는 거대한 조형물을 세울 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몇 조의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생명의 울음으로 새천년을 열었다.
07 “사람 마음의 원형은 태어나사 1~2년 안에 거의 다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그 시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시기에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보듬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기에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거나 병원에 내버려두면 유아의 내부에서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배선이 제대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 돌이킬 수 없게 된다.
08 부모의 품 안에서 길러진 습관이나 버릇은 고스란히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두 살도 아닌 세 살이 인간의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뇌과학에서 밝혀진 이야기지만, 한국 나이로 세살이 되면 거의 80% 이상의 뇌 발달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미래가 세 살에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나들이 고개 - 집을 나가야 크는 아이
■ 첫째 꼬부랑길 - 자장가의 끝, 일어나거라
01 “당신은 몇 살 때부터의 일을 기억하는가.”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순간 환한 전기 불빛을 보고 전구의 상표까지 기억했다는 귄터 그라스의 허풍스러운 소설이 아니라면 그 대답은 뻔할 것 같다. 출생 전 기억은 덮어 두고라도 돌날 자신이 무엇을 잡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유아의 인지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출생 후 최초의 기억은 뇌가 알이서 모두 깨끗이 지워버린다고 한다. 전문 용어로 유년 건망현상이라는 거다 건망증은 노인네들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아기들 머릿속에 그런 지우개 장치가 있었다니 충격이다.
02 너무 걱정할 것 없다. 퍼너 연구팀의 오심실험 결과를 보면 아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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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의 문턱을 넘어 네뎃 살이 되면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제대로 기억하고, 그 전후 내용에 잘못된 것까지 가려낼 수 있게 된다니 말이다.
남에게 묻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언제 자명종 소리가 아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눈떠 일어났는지 기억해 보면 된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어도 ‘일어나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던 날 아침이 바로 의식의 햇빛이 최초로 내 어두운 뇌 속에 들어와 꽂히던 순간일 게다.
03 그건 자장가를 불러주시던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또 다른 목소리다. 날 깨우려 흔드는 엄마의 손은 포대기 위로 토닥거리던 그 손과는 또 다른 손인 거다. ‘일어나라’는 그 말은 탯줄을 끊던 또 하나의 명주실, 부드러우면서도 칼날 같은 언어인 것이다.
04 ‘일어나라’라는 한국 고유의 말 속에는 단순히 ‘눈 뜨고 깨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눈 뜨고 일어나서 나가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 말을 자세히 뜯어보면 ‘일어나다’와 ‘나가다’의 두 동사가 합쳐진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제 침략 밑에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햇던 ‘독립’이란 말. 민족 ‘궐기’란 한자어보다도 ‘일어나라’고 외치는 이 토박이말이 더 실감 있고 힘차게 들렸던 이유다.
05 우리는 듣는다. 방안에 누워서 찬장만 올려다 볼 때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길가다 주저앉고 엎어지는 위태로운 순간마다 최초의 기억 속에 꽂혔던 어머니의 말 “일어나라! 일어서서 나가라”는 그 목소리다.
07 ‘일어서는 것’과 ‘나가는 것’의 반대말을 한데 결합한 동사가 바로 ‘일어나다’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들어오다’와 ‘눕다’가 한데 합쳐진 ‘드러눕다’란 말과 절묘한 반대 교합의 짝을 이룰 때 ‘일어나다’라는 한국 특유의 그 말이 완성된다. 잠에서 깨면 일어나서 밖을 나가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누워 잠잔다. 나감과 돌아옴, 바깥과 안, 노동과 휴식, 대낮과 한밤의 반대 개념이 등을 맞대고 한 몸이 되는 마법의 말이다.
07 또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일어나다’와 ‘드러눕다’또 다시 합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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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라는 말이 탄생한다. 나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하나가 되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이어가 숨을 쉰다. 그렇게 해서 한국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뜻이 깊은 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나들이’라는 말을 고를 것이다. 뜻 이전에 그 소리부터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삼 음절의 세 글자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의 혈족에서부터 진달래, 살구꽃, 아리랑, 쓰리랑, 꼬부랑, 보리밭, 오솔길, 나그네의 꽃과 노래와 풍경까지 그리고 그리움이란 말까지,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자택일이 아니라 이자병합의 마술적 힘을 가진 것이 ‘나들이’인 게다. 이분법적 배제적 사고 시스템 속에서 끝없이 이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어렸을 때 잘 쓰던 ‘나들이’라는 말을 만나면 반갑고 그립다.
08 어머니가 밖에 나가면 서양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그 방대한 마르샐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맨 첫머리가 그렇게 시작한다. 한국의 소설에서는 눈 씻고 보려고 해도 그런 이야기를 쓴 소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가장 단순하다. 한국의 아이들은 ‘나들이’란 말을 알기 때문이다. 나들이의 집합 기억이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다.
09 - 11 “엄마야 엄마야 어디로 갔나 / 빨간 금붕어하고 놀아야지 / 엄마는 왜 안 오나 쓸쓸하구나 / 금붕어 한 마리를 찔러 죽인다.”
붕어와 놀며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는 시간이 자나면서 점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쓸쓸하고 화나고 배가 고파지면 그럴 때마다 아이는 한 마리, 두 마리 금붕어를 잡아 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번뜩이는 금붕어 눈을 마주보며 무서움에 오들오들 떤다.
기타하라 하쿠슈의 <금붕어>에서
12 1930년대, 거의 같은 무렵 한국 아이들이 부르던 민요는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 어머니는 건넛마을 아저씨 댁에 / 고추 먹고 맴맴 담배먹고 맴맴” 나귀를 타고 가는 거라면 결코 가까운 장터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한 사흘 장 본다는 핑계로 집을 비울 수 있다. 그런데 또 어머니는 왜 이웃 마을도 아닌 먼 건넛마을로 가고 그것도 아주머니 할머니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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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아닌 아저씨 댁으로 간 것일까. 불안해 할 요인이 충분하다. 어쩌면 영영 빈집을 지키고 아빠 엄마를 기다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애들은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어른이 없는 틈을 타서 자유를 즐기는 것 같다. 그러기에 어른들이 피우는 담배와 고추를 먹고 맴맴하고 노는 게다.
13 엄마도 아빠도 나들이 간 것이니까, 기다리면 온다는 믿음이 있는 게다. 금붕어도 죽일 필요가 없다.
14 세상은 변한다. 이제는 한국의 아이들도 ‘빈 둥지’ 현상 속에서 자라고 있다. ‘나들이’란 말도 좀처럼 아이들 말에서 들을 수 없는 시어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토박이말과 한국인 이야기의 집합 기억속에 ‘일어나다’와 ‘드러눕다’의 말이 짝을 이루며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한 그리고 ‘나들이’란 말이 끝없이 반복하고 순환하는 한 한국의 아이들은 금붕어의 눈을 찔러 죽이는 일은 없다.
15 - 16
태어나 집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고향이라는 것이 생각난다. 시간이 멈춰버린 고향집 사랑채는 허물리고 안채만 겨우 남아 있는 옛날 집을 향해 ‘어이’하고 부르면 뚜껑머리 한 소년이 달려 나온다. 두레박줄 보다 언제나 더 깊었던 우물, 맨드라미 꽃과 고추추잠자리가 날던 장독대, 뒤꼍 문으로 나가 설화산 골짝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 외갓집이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으로 나들이를 떠났던 곳이다. 온돌이 있는 안방이 겨울이라면 대청마르는 여름이다. 안방이 어머니의 공간이라면 사랑방은 아버지의 공간이다. 앞마당이 도시로 나가는 열린 문명의 공간이라면 뒤꼍은 외가로 가는 산골짝의 닫힌 자연의 공간이다.
■ 둘째 꼬부랑길 - 외갓집으로 가는 길
01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은 어미 닭을 쫓아서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우리도 그랬다. 한국인의 삶은 노란 햇병아리들처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바깥 세상과 만난다. 그리고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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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들이’라고 불렀다. 이 말 역시 나가고 들어오는 반대어가 하나로 융합된 한국 아니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토박이 말이다.
02 나의 삶도 예외없이 그랬다. 어머니는 나의 작은 손을 잡으신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몸에서는 레몬 파파야나 박하분 냄새가 났다. 나들이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보리밭 사잇길과 산모롱이 마찻길, 신작로 이렇게 작은 길에서 점점 나들이 길은 넓어진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다주신 작은 가죽구두 구겨지는 소리가 아니라 눈부신 바깥 공간으로 나가는 내 작은 심장이 뛰는 소리다.
03 역시 나들이의 절정은 10리쯤 떨어진 외갓집을 찾아갈 때다. 그곳에 가려면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 고개를 넘어야 한다. 거기는 유난히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많았고 그 나무가 우거진 곳에 외가가 있었다. 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과 십장생이 그려진 어머니의 장롱 속 같은 안채로 들어가면 정말 믿기지 않도록 늙으신 외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04 미숫가루도 외가에서 타주는 맛은 달랐다. 사랑채를 지나 일각대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없는 남새밭이 있었고, 한 구석 빈터에는 양 모양을 새긴 이상한 돌들이 널려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무덤에 쓸 석물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외할머니라는 것, 그리고 외할머니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외갓집 사람들에게는 할아버지도 삼촌도 사촌누이와 동생도 모드 다 ‘외’자가 붙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05 외갓집은 시간도 달랐다. 벽시계의 모양도 그렇고 시간마다 치는 종소리도 다른 소리를 냈다. 외갓집 시간은 기왓골의 이끼처럼 훨씬 오래된 시간이라 이곳에 오면 어머니도 나처럼 작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떠날 때가 되면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서낭당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서 계시고 뒤돌아 볼 때마다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방식으로 이별한다.
06 늦은 날에는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그림책에서 본 것 같은 큰 달이 뜨고 나들이로 나의 장딴지에는 조금 알이 밴다. 키도 한 치나 더 자랐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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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나들이에서 떠나는 것은 돌아오는 것,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다 같다.
07 - 08 뒤꼍으로 향한 외갓집 나들이와 달리 앞대문을 통해 아버지를 따라가는 나들이는 그 반대 방향의 도시로 향한다. 아버지와의 나들이는 낯선 손님들의 신발이 놓인 사랑채 댓돌에서 시작한다.
09-10 외갓집에 가려면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고개를 지나야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가는 도시 나들이는 청당이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흙속에 저바람 속에>의 맨 첫 장에 나오는 그 장면의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고갯길의 의미를 알 것이다. 차를 비킬 줄 모르는 시골 노부부가 지프의 경적 소리에 놀라 오리들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모습,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 놓치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은 손, 천 년을 그렇게 쫓기며 살아온 한국인의 뒷모습을 보았다고 한 그 고갯길이다. 그 고개를 넘으면 뽀족하고 빨간 삼각형 지붕이 하늘로 솟은 저금통 같은 작은 역사가 있고, 거기에는 많은 도시와 서울로 이어져 있는 검은 철길이 있다.“기차는 떠나간다. 보슬비를 헤치고….”어른들 앞에서 늘 부르던 노래지만, 처음 타보는 기차 여행이었다.
11 떠나는 날 어머니는 나에게 여행용 트렁크 모양의 작은 가죽 가방을 주셨다. “엄마가 없어도 이 요술 가방만 있으면 되지요. 여기다 대고 말만하면 뭐든지 다 나오는 요술상자니까.” 그래도 시무룩한 나를 웃기시려고 마술사 흉내는 내신다. “칫솔 나와러 뚝딱!”
12 객기를 부리다 막상 어머니 곁을 떠날 생각을 하니 울음이 터져 나올것만 같다. “엄마 보고 싶으면 여기다 대고 말해요. 엄마 나와라 뚝딱!”어머니는 장난감 여행 가방을 들려주시며 등을 떠밀었다. 한 마디만 더하면 서울이고 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일이다. 너무 어린 나이였으니까 객기를 부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아버지 하고만 떠나는 나들이가 너무 먼 여행이었으니까.
13 화신백화점에서 목마를 탈 때도, 사람에 뒤섞여 길을 건널 때마다 나는 꾸 중을 들으면서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가방을 꼭 가슴에 안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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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버지의 손을 놓치고 끝내 길을 잃고 만다. 아버지는 아저씨들
과 전차를 기다리면서 이야기하고 계셨다. 그때 누군가 “저기 오는 전차를 타시죠” 하고 말했다. 나는 그 말만 듣고 전차가 내 앞에 서자마자 재빨리 올라탔다.
14 아버지가 없다. 아저씨들도 없다.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속으로만 훌쩍거린다.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데도 나는 계속 작은 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15 제복을 입은 차장이 달려와 몸부림치는 날 안아주면서 말했다. “아가야 괜찮다. 곧 너의 엄마가 찾으러 올 게다”그러고는 전차가 정거장에 설 때마다 내 겨드랑이를 붙잡고 번쩍 들어 차문 밖으로 내 보이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
16 “길을 잃으면 꼭 아버지 성함부터 대고 주소를 말해야 한다.” 조건반사였나 훌쩍거리던 울음을 멈추고 어머니 말을 따라 연습하던 대로 꼬박꼬박 “아산군 온양면 좌부리”큰소리로 번지수까지 틀리지 않고 외웠다. 한 자 한 자 도장을 찍듯이. “그녀석 참 똘똘하네”전차안의 시선이 내게 쏠리면서 칭찬 한 마디씩 한다. 그 바람에 미아라는 사실도 잊고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17-18 전차는 몇 바퀴 돌았는지 다시 종점에 도착했고, 으스름한 가로등이 켜진 그곳에 아버지의 일행이 기다리고 계셨다.
19 -21 “호마는 언제나 북쪽 바람을 향해 서고 남쪽 월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으로 향한 가지를 골라 앉는다.”고 했다. 또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태어난 쪽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낯익은 수구초심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하지만 한 번 떠난 고향은 한 방향의 가지에 앉는 것으로는 돌아가기 힘들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도 장차 황폐하게 될 고향을 노래했고 <향수>를 쓴 정지용 역시 “고 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22 반대편으로 향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서로 다른 나들이길이 하나로 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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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진정한 귀향은 가능해진다. 그것이 유년 시절에 배운 나들이의 원체험이다. 그때 아버지가 전차 종점에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았더라면, 외갓집 나 들이에서 돌아오던 그날 저녁처럼 달덩어리 같은 큰 가로등불이 가는 길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나들이’라는 말은 내 기억속에 영영 지워지고 말았을 것이다.
■ 셋째 꼬부랑길 - 달래마늘의 향기
01 ‘푸르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생겨난 말이다. 작가 프루스트는 마들렌(과자)를 적신 홍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별안간 자신도 모르던 이상한 쾌감과 희열에 쌓인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여름방학 휴가를 지내던 콩부레 마을의 기억들이 되살아 난 거다. 이 작은 경험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깨우고 원고지 2만 매가 넘는 방대한 소설로 태어난다.
02 프루스트는 그것을 “한 잔의 찻잔 속에서 나온 도시와 뜰”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은 푸루스트 효과하고 불렀다.
나의 프루스트 효과는 다른 말로는 절대 번역 불가능한 매콤하고 쌉
쌀한 달래 마늘의 향기이고 그 맛이었던 거다.
03 푸루스트 효과가 아니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오래전 한흑구 작가도 그랬다. “마늘 같이 냄새는 없어도 매운듯한 달래만이 가지고 있는 맛을 씹으면서 채 녹지 앉은 벌판에 나가 달래를 캐는 처녀애들을 연상하였다. 미당 역시 ”밤이 깊으면 너를 생각한다. 숙아! 달래마늘처럼 쬐그만 숙아!“라고 노래 불렀다. 달래 마늘의 향기 속에서 아내의 이름과 그 모습을 보고 야생의 들판을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의 집합 기억의 하나요. 문화 원형의 하나였던 거다. 그건 내게 누나와의 봄나들이에서 얻은 프루스트 효과보다도 더 멀고 아득한 시간 여행이었다.
04 얼었던 냇물이 풀리고 논밭에 쌓였던 눈이 녹으면 꽃보다 먼저 나물 캐는 아기씨들이 아지랑이가 오르는 들판을 수놓는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었지만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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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매는 노동과는 다른 나들이요 축제인 거다. 특히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옛날 봉건 시대의 처녀들에게는 나물 캐는 풍습이야말로 유일하게 허락된 봄의 로맨스이고, 젊음을 표출할 수 있는 열려진 들판은 야생적 무대 공간이었다.
05 - 07 내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달래 마늘은 아지랑이 처럼 하얗게 아른거린다. 맞다. 그거다. 분명히 코 끝에 그냥 흙냄새도 풀냄새도 아닌 매콤한 향기 .양념간장 종지에서 풍기던 바로 그 냄새였다. 아! 저렇게도 가늘고 쬐그만 실낱같은 것이 무슨힘으로 얼음장 같이 차고 딱딱한 흙바닥을 뚫고 솟아났는가. 다른 풀들이 모두 잘 때 세상 밖으로 나들이를 나왔는가 물론 의식이 들고 난 뒤의 이야기요, 의미 부여이지만 그것은 분명 다섯 살배기의 나들이 경험과 달래마늘의 향기를 맡지 않고서는 절대로 탄생할 수 없는 생각이요 이야기일 것이다.
08 한국인은 봄 소식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아니다. 아직 덜 녹은 차가운 흙 속에서 막 돋아나는 봄나물을 코로, 입으로 미리 감지한다. 하지만 달래 향기가 전하는 프루스트 효과는 계절의 변화나 유년 시절의 잃어버린 시간보다 훨씬 더 먼 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09 서양에서는 독초로 분류되는 고사리도 한국에 오면 나물 중의 나물이 되고, 같은 콩도 한국의 방 안에 들어오면 시루 속의 콩나물로 변신한다. 콩잎까지 먹는다. 중국 사람은 네발 달린 것이면 책상만 빼놓고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한국 사람은 풀이름에 ‘나물’자만 붙이면 못 먹는 것이 없다. 국어대사전에 ‘나물’자가 붙은 낱말을 검색해보면 무려 300종 까지 나온다. 물론 그중에 못 먹는 것도 섞여 있지만, 이만하면 가히 우리를 ‘나물민족’이라고 불러도 시비할 사람은 없다.
10 전국에 퍼져있는 나물타령을 들어보면, 그게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기아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과 한국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나물타령 같은 즐거운 민요의 흥가락이 전국 각지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겠는가.
“칩다 꺾어 고사리 / 나림 꺾어 고사리 / 이영꾸부정 활나물 / 한푼 두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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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나물 / 매끈매끈 기름나물 / 돌돌말아 고비나물 / 칭칭감아 감둘레 / 집어 뜯어 꽃다지 / 쑥쑥 뽑아 나생이 / 어영 저영 말맹이 / 이개 저개 지치기 / 진미백승 잦나물 / 만병통치 삽주나물 / 향기만구 시금치 / 사시장춘 대나물” 나물 하나하나의 특성과 그 효험이 귀한 선약의 양초와 다를 게 없다.
11 가장 신성하고 지성으로 올리는 조상님들 제상에 누가 잡초를 뽑아 제물로 올리겠는가. 한국인에게 나물의 품격이 기름진 육류보다 높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이어가는 시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냉이 씀바퀴 도라지 같은 뿌리 나물은 할아버지, 고사리 벼룩나물 돌나물 같은 줄기 나물은 아버지, 곰취 미나리 같은 이파리 나물은 손자, 이렇게 세 세대를 상징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조(祖)-부(父)-손(孫)의 삼세(三世)의 의미로 대대손손 만세를 누리는 타임터널인 것이다.
12 제상에 오른 나물이 조상들의 옛 시간을 불러오듯이, 쑥과 달래마늘의 나물을 올린 밥상은 웅녀와 만나는 신화시대의 시간으로 굴러간다. 조그마한 간장 종지에서 누나의 나물바구니의 쑥과 달래마늘이 나오면 그 향기와 맛이 프루스트 효과를 일으켜 태초의 동굴이 출현한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곰이 먹어야 했던 것이 누이의 나물바구니에서 나온 그 쑥과 달래마늘이 아니겠는가.
13 -14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판을 울긋불긋한 원색 치마저고리로 수놓은 누이들이야말로 다름 아닌 웅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프루스트의 작위적인 메타포가 아니라 자연에 가까운 환유법이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누이들에게 겨우내 갇혀있던 그 골방은 바로 그 곰의 어두운 동굴이 아니겠는가. 쑥과 마늘은 눈부신 봄 들판으로 뛰쳐나온 누이들의 나물바구니 바로 그 쑥이요 달래마늘이었기 때문이다.
15 왜 마늘을 달래마늘이라고 하는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이 재배한 그냥 마늘이 아니라 야생의 달래마늘이라야 그 신화의 이야기와 아귀가 맞는다. <삼국유사>의 그 대목에서도 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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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것은 애(艾)와 산(蒜)이라고 되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애’는 쑥이라 되어 있고, ‘산’은 달래, 작은 마늘, 냄새나는 마늘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마늘이 한국에 들어온 것이 통일 신라 시대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쓴 맛이 나는 쑥과 씀바귀 그리고 매운맛이 나는 달래마늘, 이 야생의 나물 맛, 그 후각과 미각이야말로 언어를 초월해 웅녀의 신화시대까지 올라가는 한국특유의 집단 기억을 만들어낸 거다.
16 - 17 농경 시대의 호미는 한국인이 만든 최악의 농기구로 저주의 대상잉었다.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중국도 자루가 긴 괭이로 밭일을 한다. 호미로 밭을 매려면 쪼그리고 앉아서 일할 수밖에 없어 행동의 폭도 제한된다. 논밭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18 그런데 나물을 캘 때는 어떤가. 그 괭이나 삽으로 나물을 캘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농업을 하는 데는 최악의 도구지만 채집을 하는 데는 최상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호미는 정원을 가꾸는 서양인들에게 지금까지 보고 듣지 못한 편리한 도구로 명품 대우를 받는다. 아마존 닷컴에서 한국 호미는 대박이다. 바깥 시장에서 한국 가격의 17배로 거래되는 상픔은 호미 말고는 없다.
19 나물캐는 한국 여인의 손길을 닮은 호미다. 날이 있으나 낫처럼 날이 서 살생하는 게 아니다. 뭉툭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호미날로 생명을 기르는 생명화 시대의 도구 모델을 알아야 한다. 트랙터로 나물을 찾으랴. 드론을 띄워 나물을 찾으랴. 제초제로 잡초를 제거해 나물을 얻으랴. 잡초가 약초가 되는 한류, 나물 문화의 호미에서 우리는 ‘오래된 미래’의 21세기를 본다.
202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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