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2)

2022. 11. 4. 15:21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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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2)

■ 지식 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 생각을 뒤집지 않으면 관계도 뒤틀립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생각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내 생각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참조하지 않고 내 생각으로 버티려고 합니다. 그 생각이 타성에 젖은 통념이거나 고정관념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치다 다츠루는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에서 내 생각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와서 주어진 난국을 돌파하는 능력을 논리성이라 정의합니다. 우리가 알던 논리성과는 다른 참신한 관점입니다.

대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으로 상대가 생각하는 관점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려고 할 때 소통보다 불통이 일어납니다.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다른 생각을 받아줄 때 통념에서 벗어나게 되고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른 생각과 마주치지 않으면 기존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끼리 오랫동안 만나면 편하기는 하지만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타성에 젖은 생활이 가져오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갈등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과 만나면 그 사람의 생각과 기존의 내 생각이 충돌합니다. 생각은 낯선 부딪침 속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재탄생됩니다. 내가 만든 통념에 시비를 거는 사람을 만나야 새로운 신념이 생깁니다.

■ 생각과 쓰기의 관계 : 생각만 하면 써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정리해서 쓰기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새로운 생각도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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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을 정리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뭔가를 표현하거나 쓸 때 깊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재료를 다듬고 정리해야 언어나 글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단 한 줄을 쓰면 두 번째 줄이 생각나고 그다음에는 글에 담긴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와 글을 계속 쓰게 만들어줍니다. 물론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이 필요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글은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생각만 거듭하다 보면 글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하얀 백지를 놓고 생각만 반복하면 머리도 하얘집니다. 생각은 행동을 만날 때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남들이 보면 창피한 수준이라는 생각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논리에 안 맞고 어설픈 생각이라도 일단 쓰고 나서 고치면 됩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뭔가를 모색하고 실험하면서 낯선 상황과 마주칠 때 더 좋은 생각이 납니다. 글을 직접 쓰면서 노력하고 애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이 글쓰기에 도움이 됩니다. 작가가 쓰는 글은 오랜 기간 숙고해서 생긴 생각의 자손입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무조건 쓰기 시작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또 다른 생각을 줄기차게 불러옵니다. 그래서 생각은 머리로 고민한 산물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한 결과입니다.

■ 배움과 행동의 순서 : 하다 보면 더 많이 배웁니다

“배워야만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배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워야만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배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분야에 본격적으로 몸담기 전에 ‘배우는’과정을 거칩니다.

아이들에게 전혀 해본 적도 없는 게임기를 주면 매뉴얼을 따라 공부하지 않고 게임기를 바로 꺼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게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에 반해 어른은 매뉴얼을 참고로 하나씩 배우면서 행동합니다.

사람은 안다고 해도 그것대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행일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순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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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실천하는 가운데 배웁니다. 앎과 삶이 독립적으로 선행되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삶이 곧 앎이고 앎이 곧 삶입니다. 실천하면서 익힌 전문성은 내 몸이 직접 깨달은 체험적 지혜라서 더욱 확신이 가고 강력한 신념으로 자리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내 몸으로 실험하고 검증하지 않으면 공허한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 바쁜 일상과 독서의 관계 : 읽지 않으면 바빠집니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읽지 않아서 바쁜 것입니다.”

한국 성인 10명 중에 4명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강국일지는 몰라도 사고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인 독서는 최빈국에 속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바빠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도 책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 습관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실천한 결과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바쁜 시간에도 책을 읽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을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냅니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스마트폰만 잠깐 내려놓아도 책 읽을 시간은 충분합니다.

■ 마음과 몸의 관계 ;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입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mind)이 몸(body)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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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마음이 몸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을 때는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즉 몸이 건강할 때입니다. 극한의 한계 상황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는 마음이 아무리 몸을 지배하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입니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집니다. 몸은 한계에 맞닥뜨리거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마음이 뭐라고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합니다. 마음은 몸이라는 집에서 살아갑니다. 집이 무너지면 마음이 거주할 집도 같이 없어집니다. 그때는 마음도 통제할 수 없는 난국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 피하기와 즐기기의 관계 : 즐기면서도 피할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아니라 즐기면 피할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듣고 참고 견디면서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피할 수 없어도 피하라.”라고 주장합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기다 오히려 내 몸만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선 마음으로 끌리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으니 몰입이 안 되고 몰입을 안 하니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뭔가를 성취하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성취가 나옵니다. 성공하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 재미와 의미도 인간관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추구하다 행복을 잃어버리고 의미를 추구하다 재미가 실종됩니다.

■ 방법과 실행의 문제 : 실행 속에 방법이 숨어 있습니다

“방법이 있어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을 하다 보면 방법이 생깁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을 추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못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방법은 실행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방법을 알아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다 보면 그 속에서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압니다. 시행착오를 겪어보고 실패 체험도 해보는 가운데 이전보다 더 잘하는 방법을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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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불확실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갑자기 부각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는 비결은, 어느 정도 방법을 구상하면 바로 실천에 옮기고 순간순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지혜를 축적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색다른 방법도 떠오릅니다.

“‘어떻게든’은 눈물겨운 것이다. 방법은 실행 속에 있다.”

이영광의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눈물겨운 실행 속에 눈물 나는 방법이 나에게 선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에 나오는 말입니다.

막상 시작해 보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요인은 위험하지 않으며, 고민거리로 작용했던 부분도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벽한 계획 후에 완벽하게 시작하려는 의도는 시작 자체를 할 수 없게 가로막는 원인입니다.

 

■ 힘든 일과 힘의 생성 : 힘들어야 힘이 들어갑니다

“힘이 있어야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힘든 일을 해 봐야 없었던 힘도 생깁니다.”

힘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힘든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 나를 던져보는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힘을 쓰다 보면 없던 힘도 생깁니다. 운동을 할 때도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보다 한 단계 높은 무게를 들고 반복해야 힘이 길러집니다.

힘든 일에 직면하면 없었던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힘들면 힘이 들어갑니다. 그러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할 힘이 생겨서 다른 어려운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힘을 기르고 나서 힘든 일을 하기보다는 힘든 일을 하는 가운데 힘이 생겨서 힘든 일을 극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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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은 몸을 쓰지 않고 의자에 앉아 모든 일을 처리하는 체어맨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만 힘든 일이 발생해도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인간이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힘들어야 힘이 들어가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집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도 곤경이 낳은 자식입니다.

■ 포기와 도전의 관계 : 가끔은 포기해야 길이 열립니다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습니다.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사회입니다. 중간에 포기하면 마치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과연 모든 상황에서 이 말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잘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 삶을 불행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다가 진짜 죽을 수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6박 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마라톤이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120Km 지점에서 모래언덕을 올라가다가 탈진 상태가 겹쳐 위기를 만났습니다. 고민하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남긴 세계적인 명언이 바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마라.”였습니다.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 공부는 육체노동입니다

“공부는 앎으로 삶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앎을 평가하는 과정입니다.”

공부는 책상에서 하는 ‘정신노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입니다. 진짜 공부는 책상에서 배운 앎으로 삶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건져 올린 체험적 깨달음으로 앎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입니다. 몸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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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관념적인 공부를 증오합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는 자기 전공을 나눠서 세부적으로 파고들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는 파편화된 앎을 거부합니다.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익히는 체화(體化)과정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집을 그리라고 하면 지붕부터 그리지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지붕부터 그리지 않습니다. 터를 닦고 뼈대를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평범한 논리는 현장 논리대로 배움을 만들어나갑니다. 책상 지식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하기보다 현장에서 온 몸으로 배운 깨달음으로 앎을 만들어나갑니다.

진정한 앎의 근원지는 삶입니다. 삶이 앎을 만들어내는 운동장이자 놀이터입니다. 삶과 무관한 차가운 논리로 재단하는 앎은 현실 변화에 무력한 관념적인 앎일 뿐입니다. 앎이 삶을 바꿀 수 없을 때 그 존재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제3부 뭔가 다른 이런 사람되세요

■ 뭔가 다른 사람은 뭐가 다른가요?

뭔가 다른 사람은 남다른 사람이 아니라 색다른 사람입니다. 남다른 사람은 언제나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색다른 사람은 전보다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남다른 사람의 경쟁 상대는 언제나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지만 색다른 사람의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남다른 사람은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색다른 사람은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비상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냅니다. 식상한 상식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깨달음을 얻어냅니다. 구태의연한 생각에 갇혀 있지 않고 언제나 밖에서 뜻밖의 상식으로 생각해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어떤 일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또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들은 ‘생각을 다르게(think different)’하기 보다 아예 ‘다른 생각(different thinking)’을 하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어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 대안도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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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자세와 방식도 다릅니다. 강요하기 전에 뭔가 다른 내가 되어야 인간관계를 튼실하게 만드는 다리가 건설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땀을 흘립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침을 흘리지 않고 땀을 흘립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몸을 직접 움직여 땀을 흘릴 시간이 이전에 비하여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오랫동안 컴퓨터로 하는 정신노동은 늘어나고 있지만 몸을 움직여 육체노동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근육은 퇴화하고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 상황입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이 건강한 이유는 적당한 운동과 노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근육에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인 사람은 에너지원을 운동을 통해 만들어 갑니다. 땀을 흘리는 일이 고되기는 하지만, 그로부터 건강을 얻고, 결정적인 상황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이겨낼 수 있게 해 줍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면서 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남의 일에 열광하면서 침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땀과 침의 차이는 결국 열정과 열광의 차이입니다. 열정은 내 일에 몰입하는 것이고, 열광은 남의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땀은 수고와 정성에서 나오고 침은 시기와 질투로 인해 흐릅니다.

앉아서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보다 밖에 나가서 우유를 직접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이유는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땀을 흘리기 전까지는 수고스럽지만 흘리고 나면 가치가 올라가는 상징물입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겸손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 위에 ‘겸손’을 갖고 다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왼손과 오른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업적과 성취를 만들어 갑니다. 장인의 손에 있는 흉터는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전문성과 실력을 나타냅니다. 실력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몸으로 축적한 흔적입니다. 실력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숱한 도전과 과제를 넘으며 그 사람 특유의 전문성으로 축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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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 외에도 항상 한 가지 손을 더 갖고 다닙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려는 인간관계의 미덕입니다. 실력을 가진 사람이 겸손하면 더욱 빛나 보입니다. 겸손은 실력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적 가치입니다. 진짜 실력은 겸손한 미덕에서 나옵니다.

내가 가진 실력은 너의 노력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내 실력을 나 혼자만의 사투로 일궈낸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면 교만입니다. 이럴 경우 실력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행사될 뿐입니다.

실력은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나의 전문성이지만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실력은 상대와의 깊은 인간적 신뢰 속에서 축적되고 발휘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시간이 ‘나서’ 뭔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의도적으로 ‘내서’ 뭔가를 합니다. 시간이 ‘나서’ 하는 사람보다 시간을 ‘내서’ 하는 사람이 내일을 주도합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겠다는 사람과 바쁜 일을 처리하다 마침 자투리 시간이 남아서 뭔가를 하겠다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시간은 언제나 나지만 시간을 일부러 내는 사람이 뭔가를 합니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로 구분됩니다. 시간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내서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 3M(Make, Moment, Memorable)의 법칙

내가 보내는 매 순간(Moment)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Memorable)로 만들어(Make)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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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다른 사람은 ‘지금부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지금까지’보다 ‘지금부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보다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잘못했어도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대로 되지 않았으면 지금부터 다른 방식을 찾아 노력하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끄트머리’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곤 합니다. ‘끝에서 다시 시작(머리)’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끄트머리’는 끝에서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다시 도전하라는 용기를 전해 줍니다.

끝은 물리적으로 잠정적인 끝일 뿐입니다. 끝은 다시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입니다. 끝(end)과 끝(end)을 수없이 연결하는 ‘그리고(and)’가 있어서 우리의 삶 자체가 끝과 끝을 이어가는 ‘그리고’의 향연일지 모릅니다.

모든 일은 끝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라면 과거를 돌이켜 반성은 하되 후회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한 것을 너무 자랑하면 과거의 향수에 취한 꼰데가 되기 쉽습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잔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움직입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요리조리 머리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요리조리 머리를 쓰며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방법을 찾아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요리조리 쓰는 머리가 바꾸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몸이 바꿔나갑니다. ‘요리조리’는 잔머리에서 나옵니다. 책상에 앉아서 실행하지 않고 다양한 변수를 끌어다 놓고 조목조목 따져 봅니다.

‘요리조리’가 계속될수록 남는 것은 심한 두통뿐입니다. 골치가 아픈 이유는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실천하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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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 머리 쓰는 사람보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우직한 사람이 ‘뭔가 다르게’ 이뤄나갑니다.

“숙고하는 것이 손전등이라면 행동하는 것은 전조등이다. 행동의 빛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훨씬 더 멀리까지 비춘다. 그러므로 흥미롭고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려면 고민의 손전등을 꺼야 한다.”

롤프 도벨리의 <불행피하기 기술>에 나오는 말입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내려오는 연습을 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잘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내려온 사람입니다.”

 

진짜 성공한 사람은 잘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잘 내려온 사람입니다. 등반가의 성공은 등산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하산으로 완성됩니다. 등산을 아무리 잘했어도 하산을 못하면 등반가의 운명은 거기서 끝납니다. 올라갔지만 잘 내려오지 못하면 추락합니다. 잘 내려와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올라가는 능력보다 내려오는 능력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비행기도 이륙할 때보다 착륙할 때 사고가 많이 납니다. 이륙을 아무리 잘 했어도 목적지에 도착해서 착륙을 못하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거기서 끝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남보다 잘하기 위해 오늘도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목표 달성으로 느끼는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즐길 여유는 점점 더 없어집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정상에 시비를 겁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라 비정상(非正常)입니다.”

정상(頂上)에 간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생각으로 정상에 간 사람은 없습니다. 정상에 간 사람은 모두 ‘비정상(非正常)’입니다.

세계 최초로 높이뛰기를 반대 방향으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높이뛰기 선수는 모두 배가 땅을 향하도록 해서 앞으로 넘었습니다. 당시 앞으로 뛰어넘는 사람들의 한계는 2m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한 사람은 1968년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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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때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배가 하늘로 향하도록 해서 뒤로 넘는 높이뛰기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높이뛰기 의 전설, 딕 포스버리(Dick Fosbury)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은 포스버리 플롭, 즉 배면뛰기가 높이뛰기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하나같이 비정상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비정상적인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당했을 때 비로소 잉태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 구조상 2m는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상분포 곡선에 갇혀서 정상적인 사유와 상식, 그리고 타성과 고정관념에 얽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딕 포스버리 덕분에 인간의 높이뛰기 한계는 2m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꾸미지 않고 가꿉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가꾸는 사람입니다.”

꾸미는 사람은 자신만의 컬러와 스타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기 위해 위장하고 변장합니다. 그러나 ‘가꾸는 사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컬러와 스타일이 있기에 본질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꾸미면 자신의 본질이 감춰지지만 가꾸면 자신만의 색다름이 드러납니다. 꾸민다는 것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감추는 행위이지만 가꾼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나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어제와 다르게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꾸미는 사람도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결국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가꾸는 사람은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꾸미는 사람은 남다름을 추구하고 가꾸는 사람은 색다름을 추구합니다.

자신을 꾸미면 꾸밀수록 꿈에서 멀어지고 가꾸면 가꿀수록 꿈이 점차 가까워집니다. 꾸미는 사람은 자기 색깔을 감출 수 있는 컬러링(coloring)을 좋아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컬러풀(colorfull)을 선호합니다. 컬러(color)에서 나온 두 기지 형용사, 즉 자신을 위장하는 컬러링과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컬러풀은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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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다른 사람은 거울과 창문을 다르게 활용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거울과 창문을 사용하는 방법도 남다릅니다.”

훌륭한 리더는 ‘거울과 창문’을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때문에’라는 말모다 ‘덕분에’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훌륭한 리더는 뭔가 잘못되었거나 기대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반성을 합니다.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 풀릴 때는 ‘창문’을 내다봅니다. 바깥 환경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준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울은 자기반성의 도구이고 창문은 밖을 내다보는 문입니다. 거울은 나를 들여다보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내 얼굴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거울을 반성과 성찰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거울을 보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를 점검합니다.

■ 상대의 흥을 돋우는 사람이 되세요

“맞장구를 쳐주면 상대는 더욱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흥’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혼자만 흥이 나는 경우와 더불어 흥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혼자 흥이 나는 경우는 다소 난감합니다. 혼자 흥분해서 말하면 상대는 전혀 감흥이 없는데, 혼자서만 신나서 떠들어댑니다.

서로가 서로의 흥을 돋우는 진정한 소통이 되려면 맞장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공감대역이 넓어지면서 맞장구가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내 이야기가 상대에게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 역시 마음을 열고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몸에서 느끼는 언어가 말에 담길 때라야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 지적하기보다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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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을 강화해 주는 소통은 상대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줍니다.”

허물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선물이자 보물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허물은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고 인정하기도 힘듭니다. 인간미는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가운데 나옵니다. 또 상대의 허물을 눈감아 주고 인정해줄 때 연대가 생깁니다.

단점을 지적하면 의기소침해지지만 장점을 지적하면 자기만의 지도를 갖고 미비의 세계로 탐험을 떠납니다. 끊어진 단점의 고리를 연결하기보다 이미 굳건하게 연결된 장점의 고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조언을 해야 합니다. 약점을 지적해서 보완한다고 해도 강점을 보유한 사람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주고 칭찬해 주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장점을 강화해 주는 소통이야말로 상대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줍니다. 가능하다고 믿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동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사람이 되세요

“입으로 한 가지 말할 때 귀로 두 가지를 들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유독 뒤에서 다른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남의 험담은 우선 듣기가 싫습니다. 혹시라도 만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중한 예의를 갖추고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전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갖고 담백하게 전달하는 게 좋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나 험담이 당사자에게 다시 전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험담을 일삼는 사람들은 SNS에서도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흉을 봅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에게 빈축을 샀다는 둥, 도대체 그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둥, 자신의 이야기보다 남을 깎아내리는 발언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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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내가 통제할 수 있지만 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입으로는 가급적 적게 말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귀로는 많이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널리 존경받는 사람은 입담보다 경청의 달인입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도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적게 말하되 핵심을 말하고 많이 듣되 마음을 다해서 들어주어야 합니다.

‘귀(貴)’하게 대접받고 싶으면 ‘귀(耳)’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를 열려면 입을 닫아야 합니다. 적게 말하면 내 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적어집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의 말을 경청할수록 상대가 높아지고 덩달아서 나도 높아집니다.

 

■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세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마음을 훔치는 사람입니다”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습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성인은 흥미를 돋우거나 재미를 유발하는 글과 말에 끌립니다. 재미없는 말이나 글은 아예 듣거나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뇌는 한정된 시간에 선택적으로 지각되는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머리로 이해한 내용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는 3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30cm 거리를 좁히는 데 무려 3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논리적 설명이 감성적 설득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마음 도둑’입니다. 의미를 머리에 꽂으려고 하면 골치 아파하지만, 의미를 심장에 꽂으면 ‘의미심장’해집니다. 그만큼 마음으로 들어와야 순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설명하면 사회적 양식이 되지만 설득하면 사회적 상식이 됩니다. 양식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상식을 어루만져줄 때 사람은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결연한 행동을 시작합니다.

이해는 가지만 와닿지 않는 경우, 사람은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계산을 시작합니다. 머리로 올라간 생각은 가끔 거짓말도 하고 포장하고 위장하기도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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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해타산을 따져보고 수지가 맞을 경우 비로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설명은 이해를 불러오지만 이해가 무조건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들어가 설득을 하면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동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행동하게 만들려면 감동시키면 됩니다.상대를 감동시키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 말한 대로 살아가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되세요

“말한 대로 살아가는 메신저의 진정성이 모든 것을 인도합니다. ”

박용하 시인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주는 증표입니다. 눈에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는 이유는 심리적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눈이기 때문입니다.

눈 맞은 남녀가 보내는 눈빛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장애물도 필요 없고 높은 장벽도 단번에 무너집니다.

눈은 눈빛으로 말을 하고 입은 진심으로 말을 합니다. 진심은 ‘참된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원천은 따뜻한 가슴입니다. 언어의 무게가 없는 사람의 말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냅니다. 체중이 실리지 않은 언어는 어딘가에 꽂히지 않고 바람에 날리며 정처 없이 떠다닙니다. 언어의 무게는 진심의 무게입니다.

신뢰는 몸으로 말해야 생깁니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몸은 중심을 잃고 휘청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설득을 할 때는 인간적인 신뢰감에 해당하는 ‘에토스(ethos)’와 감성적 설득력에 해당하는 ‘파토스(pathos)’, 그리고 논리적 설명력에 해당하는 ‘로고스(logos)’가 각각 6:3:1의 비중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괴테는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자주 가는 곳, 내가 읽는 책들이 나를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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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만나는 사람, 나의 체험,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을 물어보면 됩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서 어떤 체험을 하고, 무슨 책을 읽고 무엇을 깨달았는지가 나를 결정합니다. 사람은 인간관계의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미래는 손에 거머쥘 수 없는 것이며, 우리를 엄습하여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이다.”

레마누엘 레비나스가 쓴 <시간과 타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미래’라는 타자, 어떤 미래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점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나는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기하게도 나와 비슷한 고민으로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놀랍게도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지향하는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 한두 마디 해보면 인생에서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는 사람과 조우한 것입니다. 나와 코드가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보다 큰 기쁨을 느낍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필요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의 특이함을 공유하는 만남은 샤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으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레비나스가 말하는 ‘나의 미래를 바꾸는 진정한 타자’입니다. 나는 나의 미래가 결정하고 나의 미래는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가 결정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 또 다른 타자와의 우연한 마주침이 결정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지금 여기서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 마주침은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매일 만나도 늘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관계가 진정한 인간관계를 통해 배움이 일어나는 관계입니다. 타자 없이는 펼쳐지지 않는 나의 미래는 지금 여기서는 알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세계입니다. 다만 내가 알아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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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실은 나를 새로운 가능 세계로 이끌어줄 타자와의 만남으로 나의 미래가 이전과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타자와의 관계가 가져올 미래는 레비나스가 말했듯이 손으로 거머쥘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입니다.

다람쥐 쳇바퀴는 아무리 돌려도 늘 그 자리에서 뱅뱅 돕니다. 다람쥐 쳇바퀴는 어제와 차이가 없는 무한 반복하는 동일성의 패러다임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해진 네트워크 안이나 기존의 인맥 안에 있는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다 보면 색다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에 반해서 나선형을 그리면서 파고들거나 어제와 다른 반경을 그리는 동심원은 어제와 전혀 다른 곳으로 심화 되거나 확산됩니다.

인간관계도 똑같은 사람을 반복해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은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나 또한 어제의 나와 다른 사람입니다. 같은 사람을 다르게 만나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의 깊이를 심화시키고 넓혀나가는 과정이 차이를 만드는 패러다임입니다.

■ 인간관계가 바뀌어야 변화가 완성됩니다

예측할 수 없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관계 속의 사람을 바꾸어 나갑니다 사람의 변화는 곧 관계의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인간관계의 깊이가 성장할 수 있는 인간의 높이를 결정합니다. 존재가 관계를 결정하지 않고 관계가 존재를 결정합니다. 같은 키의 벼가 관계를 포기하고 자기 혼자 독불장군으로 자라면 바람에 휘말려 줄기가 꺾이고 맙니다. 어깨동무하는 잔디가 자기 욕심대로 혼자 높이 자라면 잔디 깎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베이고 맙니다.

나는 혼자 성장하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성장하는 ‘관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나의 실력도 나 혼자 발휘하는 독립적 역량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선물입니다.

“다른 사람과 아무런 내왕이 없는 ‘순수한 개인’이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소설 속에나 있는 것이며, 천재란 그것이 어느 개인이나 순간의 독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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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오랜 중지(衆智)의 집성이며 협동의 결정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입니다.

■ 진정한 인간관계는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기쁜 인간관계는 만남 자체만으로도 기쁘지만 재미있는 인간관계는 만나면서 상대를 재미있게 만들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기쁜 인간관계는 이전과 비교해서 뭔가를 더 요구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인간관계는 비슷한 재미로는 상대를 웃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재미를 요구합니다. 더 많이 웃으려면 더 재미있는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전과 비교해서 재미있지 않으면 재미있는 인간관계는 거기서 끊어집니다.

반면 기쁜 인간관계는 뭔가를 제공해주어서 기쁜 게 아니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기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가 뭔가를 더 하려고 할 때는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기쁜 인간관계는 거래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소중함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반면에 재미있는 인간관계는 더 재미있는 걸로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상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기존의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더 재미있는 걸 보여주는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새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엄기호는 재미있는 인간관계의 끝을 예언해 줍니다.

“재밌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존재감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존재감을 위해 관심을 끌어야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재밌는 인간이 되어야 하고, 재밌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플레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관계가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밑바탕을 송두리째 흔듭니다. 재미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고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서 나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네트워크 공간에서 재미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원료삼아 재생산되고 무한 공유됩니다. 따라서 어떤 인간관계를 통해 재미가 아니라 기쁨을 주는 사이로 바꿔나갈 것인지가 우리의 숙제입니다.

■ 행복한 관계는 함께 만들어 가는 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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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려고 할까요? 인정받고 존중받는 관계가 퍼져나갈 때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속의 인간관계 역시 겸손과 존중의 관계로 발전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하려는 이유는 같이 지내면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삶의 충만감입니다. 행복한 관계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의 노력 덕분입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찾아가서 상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문제든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꼭 뭔가를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기보다 나로 하여금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극을 주거나 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나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가 전경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수많은 은인들 덕분입니다. 인간관계는 전경과 배경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어두운 배경에는 밝은 전경을 낳고, 걸림돌이라는 배경이 디딤돌이라는 전경을 낳으며, 밑바닥 좌절이라는 배경이 정상에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전경을 낳습니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가 돋보이도록 도움을 주는 어시스트의 존재가 인간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입니다.

■ 스치면 인연이 되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한 사람이 사람이 되는 과정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삶은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우리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1>에 나오는 첫 문장입니다..

<총,균,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문장에 영감을 얻어 다음 문장으로 바꿔서 사용했습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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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사람과의 만남에 대입해서 바꿔 써도 여전히 문맥은 통합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엇비슷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각입니다. 사람은 만나면서 사람이 됩니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거나 어떤 노력을 통해서 획득해야 되는 본질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사람다움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인정해줌으로서 생긴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람다워지려고 노력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람’으로 바뀌려면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가 이름을 불러주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군중이나 무리일 뿐입니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도종환 시인의 <가구>라는 시에 보면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라는 시구가 나옵니다. 사랑이 식으면 가구처럼 방에 존재하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구가 되면 서로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관심이 무관심으로 전락하고 관계가 경계로 변질되면서 사랑도 메말라갑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든 사랑은 관계 사이로 흐르는 윤활유입니다.

■ 사람다워지려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자기 자리는 자신이 있으면 돋보이는 ‘제자리’이고, 자신이 마땅히 ‘설 자리’이자 내가 살아갈 ‘살 자리’입니다. 제자리가 아닌데 자기 자리로 착각하거나 설 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 그리고 내가 살아갈 자리가 아닌데 거기서 버티려고 할 때 사람은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제자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따라서 나의 무게 중심은 그쪽으로 쏠립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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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기웁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습니다. 기름을 물밑으로 붓더라도 물 위로 솟아오르고 물은 기름 위로 붓더라도 기름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런 질서가 덜한 곳에는 불안하고 질서가 잡히면 평온합니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자체 무게로 인해 본래 자기가 있었던 제자리를 향해서 움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기 무게가 정착하고 싶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사과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있을 때보다 땅으로 떨어져야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온천수는 땅속에 잠복하고 있을 때보다 땅 위로 치솟았을 때 유익합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는 제자리를 찾아가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때 나타납니다.

돌을 허공에 던지면 아래로 떨어지고,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이면 불기둥은 위로 치솟으며, 촛불은 바람결에 좌우로 흔들립니다. 본래의 자기 자리를 찾아 그쪽을 향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바람개비도 바람을 거슬러 역풍을 타야 회전운동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면 불안정해지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면 놀라운 정도로 편안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사랑을 무게로 표현한 이유도 내가 사랑하는 만큼 무게가 나가고, 그 무게가 지향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라는 구절이 바로 인간의 사랑과, 사랑으로 끌려가는 인간적 본질을 보여줍니다.

느끼는 사람이라야 다른 존재를 사랑으로 끌어안습니다.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사람입니다. 존재감의 무게는 내가 사람이나 사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결정합니다. 스치면 어쩌다 만난 인연으로 끝나지만 스미면 인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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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 사랑은 혁명을 시작하는 신호탄입니다. -

사람과 삶이 만나면 따뜻한 사랑의 싹이 자랍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본래 의견이 다르고 주장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다 보면 갈등과 충돌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사랑의 둥근 ‘ㅇ’이 생긴 원동력은 사람의 ‘ㅁ’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갈등과 충돌 덕분입니다. 바닷가의 둥근 돌멩이도 처음에는 모가 난 돌멩이끼리 부딪치며 주고받은 상처 덕분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저마다의 다른 탄생 배경과 사연을 갖고 살아갑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나도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색다른 삶으로 거듭납니다. 오늘도 사람을 만나고 내일도 사람을 만납니다. 만남 속에서 오가는 다른 생각과 의견이 오늘과 다른 나를 내일로 데려갑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따뜻한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가지만 어떤 사람은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갑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지만 어떤 사람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을 주지만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던져놓고 갑니다. 사람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기는 인간관계의 얼룩과 무늬가 만든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싹이 트는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정’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을 낳고 내가 사랑하는 일에도 몰입과 집중을 가져옵니다.

<사랑의 급진성>을 쓴 크로아티아의 철학자 스레츠코 호바르트에 따르면, 사랑은 우연한 ‘빠져듦(fall)’이고 그것은 곧 ‘혁명’입니다 한번 빠져들면 위험해집니다. 그때부터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멀쩡하던 자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혁명과 사랑은 모두 우연한 빠져듦으로 시작하는 위험한 몰입입니다. 빠져든 사랑은 다가올 위험을 무릅쓰고 일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혁명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할 수 있으며, 힘겹고 어렵지만 같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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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가치를 가슴에 품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합니다. 같은 사람을 오늘 만나고 내일 만나도 언제나 남다른 설렘이 있다면 매 순간이 경이로운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으로 다가갈 때 타자는 나를 괴롭히는 지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다른 나로 이끌어주는 디딤돌이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동의 느낌표가 축적되면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혁명은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입니다. 사랑은 아픔과 슬픔을 희망과 용기로 변신시켜주는 촉매제입니다.

- 2022. 11.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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