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웃는 집

2009. 11. 15. 22:41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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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웃는 집


■ 법륜 스님


0 정토회 지도법사, 88년 정토회 설립

0 2000년 만해상 포교상, 2002년 라몬 막사이사이상

0 저서로 실천적 불교사상, 금강경 이야기, 반야심경 이야기, 붓다 나를 흔    들다 등


■ 행복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0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가까이 있는 사람 사이에서 더 많이 생깁니다. 그 사    람 성격이 나빠서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 가까이 있기 때    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 나와 가장 가까이 있어서 사    랑과 힘을 나누어야 할 가족, 친구, 동료와 갈등을 빚게 될까요. 왜 행복을    함께 누려야 할 가족과 다투게 될까요. 


0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 중심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    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자기중심성이란 사    물을 인식할 때 자기를 기준에 놓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 뒤,      좌, 우를 말할 때 실제 공간상에 앞이 있고 뒤가 있고, 좌가 있고 우가 있    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기준으로 한 앞과 뒤, 좌와 우가 있다고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기준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아내는 아내 기준에서 남편    은 남편 기준에서 부모님은 부모님 기준에서, 자식은 자식의 기준에서 세    상을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빠르니 늦니 하는 분별을 늘    합니다. 그런 분별의 기준은 자신입니다. 상대방도 자기 기준에 따라 분별    합니다. 이때 인식의 기준이 서로 다르니 분별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     갈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빠르고 더딘 게 본래 있는 게 아니고 빠르다느    니 더디다느니 하는 분별을 자기가 일으키고 있음을 알면 분별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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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라도 고집을 하지 않게 되므로 갈등은 해소됩니다.


0 하지만 우리는 내 기준만을 고집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화됩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가족과     갈등을 빚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내 배우자가, 내 부모가, 내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 ‘저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이렇게 됐으면 좋    겠다’ 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상대와 실재하는 상대는 같    지 않습니다. 그 간격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갈등이 심화됩니다. 


■ 인생에서 받는 첫 상처는 부모로부터 입니다.

 

0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아내는 나이 어린 아이들 앞에서 남편 욕    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 편에서 보면 아버지는 나쁜 사    람입니다. 이런 인상은 어머니가 심어준 것입니다. 남이 우리 아버지를 욕    했을 때는 아니라고 반박하면 끝이지만 어머니가 아버지를 욕하면 그건     진실이 됩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거짓말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0 머릿속에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박히면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    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니야, 아    버지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반대로 아버지를 욕하는 어머니가 문    제가 됩니다. 자기 자식에게 거짓말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    가 갈등을 일으키면 아이들은 거의 정신분열이 됩니다. 이것은 해결할 길    이 없습니다.

   부부 갈등이 자녀에게 주는 영향은 무척 큽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을 일    으키는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부모가 없는 것보다 훨씬 못합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은 부모를 그리워하기는 하지만 정신분열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 가깝더라도 거리를 유지하십시오.


0 자식 입장에서 부모를 볼 때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싸우든    때려 부수든 그것은 그들 부부 문제라고 생각하고 냉정해져야 합니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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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간에 사랑싸움을 하든 갈등을 일으키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    각해야 합니다. 어릴 때는 그게 안 된다 하더라도 어른이 된 지금은 ‘내가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내가 왜 관여를 해?’    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0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 중 한쪽 말만 듣고 그 말이 진짜    인 줄 믿어서 다른 한 쪽을 미워하게 됩니다. 대부분 아버지를 미워하는데 

  어릴 때는 아버지 말보다 어머니 말을 들을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    다고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도 답답한 나머지 어린 자식    에게 하소연한 것뿐입니다. 따라서 이 점을 이해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    됩니다. ‘부모 일을 가지고 쓸데없이 내가 고민했구나.’ 하고 놓아버려야     합니다.            


0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날에 간섭을 많이 했    더라도 지금은 끊어버려야 합니다. 부모가 됐든 자식이 됐든 자기들이야     싸우든지 말든지 부부 일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 부모와 자식이 함께 끊어야 할 습관 


0 부모님이란 존재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를 낳아 키    워 주고 보살펴 준 은혜로운 분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속박하는 분이라    는 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집과 같습니다. 집은 나를 보호해 주면서    나를 가둬 놓는 감옥과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0 부모님은 나를 보호해 주고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언제나 삼가는 마음이    생기고, 그런 부모님께 조금만 잘못해도 내 마음이 후회스러운, 그런 존재    입니다. 반면. 부모님을 생각하면 항상 간섭하고 속박하는 기분이 들어 탈    출하고 싶기도 합니다.

   부모와의 갈등은 나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이 간섭, 속박, 억압이라고 느    껴질 때 일어납니다. 부모님이 잘한다고 한 일이 자식에게는 속박이 되고    잔소리가 되고, 자식이 나름대로 잘한다고 하는 게 부모 입장에서 볼 때는    말 안 듣고 반항하고 부모 속상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모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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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부모가 볼 때는 속상한 것    입니다.


0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갓난아이 때는 돌봐 주고, 청소년일 때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가능한 한    자기가 알아서 하도록 해주고, 성년이 되면 완전히 자유를 주어 하나의 독    립된 인격체로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도 부모는 그렇게 안 합니다.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장애가 됨에도 불구하    고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바로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습    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릴 때는 부모가 있음으로 해서 자식에게 도움이 됐는데     커서는 부모 때문에 자식의 성장에 장애가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0 부모치고 자식의 성장에 장애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자식    의 성장에 장애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부    모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해보고, 결혼도 하고 싶은 대로 못 했    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에 대한 원망이 생깁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며 원망하는 경    우도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자식들이 부모 때문에 자    신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며 원망합니다. 실제로는 부모가 자식보다     베푼 게 훨씬 많고 큰데도 주로 자식이 부모를 원망합니다.


■ 혹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0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아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길 가다 보면 술 먹고 길에 쓰러져서 잠을    자거나, 토하거나, 전봇대를 잡고 오줌을 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은 자기 자신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더럽고    한심하다면서 그를 피하게 됩니다.

   세상살이에 항상 불평불만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며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도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입니다.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방황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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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빛깔과 형형색색의 꽃들과 파란 새싹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    난 복입니다. 부처님의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건 정말 큰 행복입니다. 봄에 향긋한 꽃향기    를 맡을 수 있다는 것, 갖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부드럽고 딱딱    하고, 거칠고 매끄러운 온갖 것들을 감촉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다리가 있어서 산에 오를 수 있고, 두 팔이 있어서 음식을 자    기 손으로 떠 넣을 수 있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요? 


0 남을 좋아하면 내가 즐겁고, 남을 사랑하면 내가 기쁘고, 남을 이해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할 것이며, 나도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남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    는데 이 세상에 누가 나를 소중하게 여겨 주겠으며 나도 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남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겠습니까?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남으로부터 내가 사랑받는 길이고, 내가 남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출발점입니다. 자기를 소중하게 여긴다. 즉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열등감을 갖지 않고, 현재에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0 우리의 위대한 스승들은 죽음 앞에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자    기 길을 갔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건 단지 저 바다에 파도가 일어났다 사    라지는 것과 같고,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    나 하나의 파도를 보면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생    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출렁거릴 뿐입니다. 그    래서 생도 없고 멸도 없다. 생멸이 본래 없다. 불생불멸이다. 다만 변화만    있을 뿐이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깊이


0 지장보살의 소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만약 부처님의 법을 들    을 수만 있다면 나는 지옥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 내가 만약 부처    님의 법을 들을 수 없다면 나는 천상의 삶도 원하지 않는다.” 천상과 지옥    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들을 수 있고 그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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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 수행할 수 있다면 조건이나 처지 같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    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발 천상에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빕니    다. 그것 때문에 부처님이 필요하지 안 그러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필요    하겠습니까? 부처님 믿으면 천상에 보내 준다니까. 부처님 믿으면 지옥에    안 간다니까 부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만 갈 수 있다면 부처님    안 믿어도 간다면 부처님도 필요 없고, 하느님 믿어서 간다면 하느님 믿는    것 아닌가요?


0 우리는 지금 부처님이 필요한 게 아니고 돈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돈이 목적이고 부처님은 수단입니다. 부처님 믿으면 돈 번다니까 부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느님 믿으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 내    일이라도 하느님 믿으러 가버립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의 유일한 종교는    ‘돈교’입니다. 불교냐 기독교냐 무슬림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일 위    에 있는 유일 종교는 돈이고 그 밑에 여러 개의 도매점을 벌여 놓은 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쪽 가게    가 더 싼가. 저쪽 가게가 더 싼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 믿고 있는 신앙이란 게 이렇습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


0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천하의 어떤 사람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내는 이    해해야 하고, 남편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세상살이는 천하가    다 이해할 수 있어도, 아내는 이해 못하고 남편은 이해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지간에 자유롭지 못한 원인입니다.

   그럼 왜 부부지간에 이럴까요?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소유욕이 있기 때    문입니다. ‘넌 내 사람이다. 내 거다.’ 하는 소유욕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    람은 다른 어떤 사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것뿐    이지 내 것은 아닙니다.


0 더구나 불법을 공부한다면 내 몸이나 마음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    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무아(無我)’ 즉 나라고 할 게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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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입니다. ‘무소유’ 곧 내 것이라 할 게 없습니다. 이게 불교의 핵심 사상    입니다. 나도 나라고 할 게 없고 내 것이라고 할 게 없는데, 어떻게 남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0 지금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 중에 여러분 모르게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있    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또 반면에 여러    분이 의심하는 남편이나 아내 중에 실제로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배우    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면 피운 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까 실제로 그랬느냐 안 그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다고 믿고 의심    하는 내가 괴로워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정말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도 착한 사람이라면 용서를 구하는 대로 용서    해 주고, 더 이상 그걸 문제 삼지 말고 맡겨 놓으십시오.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고 내 가정에 이익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익이고 남편을 살리는    길입니다. 

   

0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야 할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    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괴롭히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나를 소중    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나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게 다 경계    에 팔려서 자기를 헤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 백마 탄 왕자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0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많은 계산을 합니다. 여자라면 자기 외적 조건이나    가정환경, 지식, 성격 같은 건 감안하지 않고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서 자    기를 데려갈 꿈에 부풀어 있고, 또 남자들도 잠자는 공주가 어느 날 일어    나서 자기를 따라올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상대편이 몸도 건강해    야 하고 외모도 잘 생겨야 하고 키도 커야 합니다. 거기다 성격도 좋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하고 직장도 괜찮아야 하고 학벌도 좋아야 하고 교양도    있어야 하는 등 원하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걸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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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래서 중매를 서는 사람은 상대편 얘기를 들어 보고 적당한 사람을 구해    서 가공을 하게 됩니다. 학벌도 조금 올리고 화장을 해서 본 모습도 약간    가리고 재산도 조금 부풀리고 직장도 좋은 직장으로 변경합니다. 성격도     좀 좋게 얘기 합니다. 이렇게 선을 볼 때도 자신을 포장하며 일종의 가식    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약 이런 가식이 결부되지 않았다면 결혼이 성    사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0 우리는 늘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잘 살펴보면    이런 원인들은 다 내가 좀 더 편하고 좀 더 많은 이익을 보려고 했기 때    문입니다. 사실은 출발부터 거짓이 개입돼 있었기 때문에 사랑으로 이루어    져야 할 결혼생활에 불신이 쌓이는 것입니다. 결혼 할 때는 정말 솔직하게    터놓고 서로를 아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어차피 살다 보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현실인데 우리 머릿속에는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소    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우리의 불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     다.


■ 남편이나 아내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닙니다.


0 결혼생활은 부부가 성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격적으로 서로 만족해야 합    니다.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어야 하는데 이게 사실은 굉장히 어렵    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    부는 서로 상대가 전지전능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다 자신에게 맞추    어 주기를 원하고 다 잘해 주기를 원하지만 그중의 몇 가지만 만족시키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다 보면 갈등이 축적되는데 그러면서도 아이들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함께 사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스스    로 억제하면서 살다 보니까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중    어느 한 부분이 터지면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0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내야 할까요? 물론 내 뜻에 안 맞는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같이 사는 게 행복하면  같이 살고,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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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져서 사는 게 행복하면 헤어져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은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도 어    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남편 책임이거나 아내 책    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발부터 우리의 욕심이 이런 문제를 야기했고,    또 살아가면서 늘 자기 입장만 고집하면서 이런 갈등이 증폭되었다는 사    실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     가정생활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요구하십시오. 서로 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불만족은 항상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도 이 세    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절에 다니    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게 해 달라고 비는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    입니다. 부부 사이의 욕구와 가치관, 취향이 서로 다른 것이니 서로 공유    할 수 있는 것은 공유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    니다.


■ 모두 나의 기대심입니다.


0 어느 날 한 분이 찾아와서 이혼을 해야겠다면서 제게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냐. 직장이 없냐. 집에서 때리거나 욕설을 하냐    고 물었더니 전부 “아니오”라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냐?”라고 물었    더니 남편이 멋이 없다고 합니다. 낭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단적인 예로. 자기는 비 오는     날이면 창밖에 비 내리는 걸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남편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하면. “비 오는데 뭐 하러 나가느냐. 뭐 하러 돈 주고 사먹느냐.” 고 하니    너무 답답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못 살겠다고 하니까 친정 식구들이 난리라고 합니다. 남편이 뭐가    문제냐. 학벌도 좋고, 직장도 괜찮고, 퇴근하면 일찍 들어오고, 집안일도     도와주고, 나무랄 데가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남편이 좀 늦    게 들어와도 되고 설령  바람을 피운다고 해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저 뭔가 멋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겨울 바닷가를 산책한다든    지 비 오는 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해야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남편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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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래서 남자를 하나 사귀었답니다. 나이가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남    자고, 직장도 없는 남자라고 합니다. 옆에서 볼 때는 완전히 사기당한 건    데 당사자는 그 남자가 바로 비 오는 날 커피도 마실 줄 알고 겨울 바닷    가를 산책할 줄도 아는 멋있는 남자라는 거예요.

   이 분을 두고 당신 잘했네. 잘 못했네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업식이라    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게 좋다고 하니 방법이 없습니다. 천하가 미쳤다고    하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남편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남편의 문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남편의 그런    다정다감하지 못한 점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애정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다정다감하지 못한 것을 빼고는 좋은 사람인데    이만한 일로 헤어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 아무리 작은 번뇌라도 중히 다스리십시오.


0 이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백일 정도만 해 보십시     오. ‘여보 당신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성실한 분입니다. 제    가 내 업식. 내 카르마에 사로잡혀서 때때로 사소한 일로 당신을 원망했습    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 기도를 하면 이 업식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은 참 가지각색입니다. 그래서 어떤 하나를 두고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갖는 고민을 두고 그 고민이 크다 작다 말    할 수 없습니다.


0 옛날 우리 할머니 세대에는 밥 먹고 사는 게 문제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남편이 출장을 다니면서 두 집 살림을 해도 본처를 안 버리고 집에 생활    비만 보내 주면 아무 말 안 하고 살림을 차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    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서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바    람피우는 것까지는 이해를 해도 살림 차리는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그     다음 여러분 세대에 와서는 바람피우는 건 절대로 안 되는 것으로 바뀌었    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 온 과정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것과 관    련이 있습니다. 지금은 먹고살 만하니까 ‘남편이 무심하다’는 게 이슈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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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것입니다.


0 이제 자신의 입장을 객관화시켜 바라보십시오. 자꾸 남편이 밉고 섭섭하다    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아이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즉, 내 마음에서 일    어난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나와 남편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고 반드시    자식에게 과보가 따르게 됩니다.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    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이 문제를 넘어서서 내 마음으로 말미암아 과보    가 따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이해하고 좋은 점    을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남편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참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좋고 남편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    치게 됩니다.   


■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마음의 처방전’


0 불법의 원리대로 말하면 이 몸은 공(空)한 것입니다 이 몸은 신성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공한 것입니다. 제법(諸法)이 공하다는 것이지    요. 그런데 이 몸에 집착함으로써 결혼을 하기 전에는 신성한 몸이고 결혼    을 하면 더러워진다든지.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신성한 몸    이고 손이 한 번 닿으면 더러운 몸이 된다든지 하는, 정(淨)과 부정(不淨)    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우리 몸은 아무리 성스럽게 하려고    해도 성스러워질 수도 없고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러워질 수가 없습니    다. 몸은 단지 몸일 뿐입니다. 


0 그렇다면 더러워지고 성스러워지는 것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바로 이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우리가 늘 외우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있    는 말씀입니다. “제법(諸法)은 공하다. 공의 세계에서 볼 때는 불생불멸(不    生不滅)이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요. 부증불감(不增不感)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야심경’을 늘 독송하면서도 이 몸은 깨끗한 것    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릅니다.


■ 꿈속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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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래의 어떤 생각, 미래에 대한 일을 미리 생각해서 현재 일어난 일처럼     착각할 때 일어나는 것이 근심, 걱정입니다. 

   조금 어렵지만 심리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TV 드    라마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가 죽으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덩달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이때 전기를 끄면 그저 텔레비전이라는     물건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TV 드라마에 몰입할 때 그 드라마에    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0 우리는 꿈을 꿀 때 그것을 사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꿈속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게 꿈이 아니라 현실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나머    지 꿈속에서 울기도 하고 두려워서 도망치고 귀한 보물이 아까워 안 내     놓으려고 합니다.


0 내가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서 그 기억이 내 머릿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순간 그건 현실의 일이 되고 맙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것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순간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따    라서 이런 현상은 모두 마음의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0 과거의 기억 속에 사는 사람은 꿈속에 사는 사람이고 미래의 염려 속에     사는 사람도 꿈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결코 현재를 사는 사람이 아    니며 꿈속에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상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뇌라고 하는데 이 번뇌에서 벗어나야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0 부처님은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없다고 하셨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며 한밤의 꿈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꿈을 움켜쥐고 있습니    다. 난 어렸을 때 보리밥만 먹었다. 뭘 어쨌다 하면서 과거를 움켜쥐고 있    는 것입니다.

   제사나 명절 같은 때 흔히들 싸움이 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제사    때 모두 모여 음복을 하게 되면 과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다 보면 서    로 상처를 입은 기억을 떠올리게 되어 ‘오빠가 부모님께 그럴 수 있느냐.    출가외인인 네가 왜 끼어드느냐’ 하면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새로운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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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과거의 기억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    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청소해야 합니다.


0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거기에 집착하면 큰일이 되고 아무리 큰일이라도     집착하지 않으면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나로부터 일    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에 집착하고 있으며 집착 때문에 일을 그르    치고 있구나.’ 하고 자각한다면 곧 놓아버리게 됩니다. 마치 쥐가 쥐약인     줄 알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놓습니까?”

   “그냥 놓습니다.”

   이게 전통적인 불교의 해답입니다. 예컨대 이 컵이 아주 뜨겁다고 합시     다. 그럼 이 컵을 쥔 사람은 “앗, 뜨거워”하고 그냥 놓아 버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걸 어떻게 놓았습니까?”하고 물으면 “뜨거워서 그냥 놨습    니다.”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뜨겁다고 하면서도 어떻게 놓아야 할지를 묻는다면 놓는 방법을 몰    라서가 아니라 놓기 싫어서 놓지 않는 것입니다.        

 

0 불교에는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놓으라는 뜻입니다.    괴롭다면 그냥 놓는 것입니다. 뜨거운 줄 알면 그냥 놓듯이 거기에 어떤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법을 깨달으면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    니다. 그럴 때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 몸이 아픈 건 심각하게, 정신이 아픈 건 가볍게 생각하는 오     류


0 불교에서는 모든 게 집착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너무 한 가지 생각에 골    똘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정신 질병에 대한 인식이 조금 잘못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픈    것은 사실 별것 아닌 것도 심각하게 여깁니다. 그런 나머지 병원을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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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고 지나치게 걱정하며 약물을 필요 이상으로 복용합니다. 반대로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본인조차 잘 알아채지 못하고 알    아도 숨기려고 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육신이 멀쩡하기 때문에 병이 있다    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0 정신 질환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닌 데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 질환을 수    치로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정신질환도 발목이 삐었거나 팔을 다친 것    처럼 마음의 일부가 고장 난 것에 불과한 것인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치명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한 나머지    초기에 상담하거나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단계를 놓치면     나중에는 제대로 치료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열 명 중 한두 명 꼴은 우울증 환자라는 말이 있습니    다. 아마 경쟁이 치열하고 사회에서 다들 자기 울타리를 치고 사니까 외롭    고 소외감을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0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가 죽었을 때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상실감에 빠    지는데, 이럴 때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부처님 법을 알게 되면 극복이    가능합니다. 태어난 자가 죽고 생겨난 것이 멸하는 것은 하나의 자연현상    입니다. 

   봄에 잎이 나면 가을에는 낙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고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항상(恒常)한 것으로 착각하면 마음의    병이 됩니다. 꽃이 피면 계속 피어 있어야 한다든지, 한번 잎이 피면 계속    푸르러야 한다든지 태어난 자는 영원히 살아야 한다든지, 한번 내 것이 되    었으면 계속 내 것으로 있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일종의 착각이고 그    착각에 따른 집착입니다. 

   이런 집착이 지나치면 그것을 상실했을 때 받는 충격이 큽니다. 그래서     세월의 무상함, 자연의 무상함, 인생의 무상함, 재물의 무상함, 마음의 무    상함 등 이 무상한 진리를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0 이 우주(물질)는 이루어지고 머물렀다가 흩어져 사라집니다(成住壤空). 이    육신(생명)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어 갑니다(生老病死). 이 마음(정신)    은 일어나고 머무르고 달라지고 사라집니다(生住異滅). 저 높은 산도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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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깎여서 모래와 흙으로 돌아가고 그것이 퇴적되어 굳어서 다시 바위가    되고 산이 됩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항상한 것은 없습니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한 줄    알면 허무주의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상한 줄 모르기 때문에 변할 때    충격이 와서 허무주의가 됩니다.


0 상실감이란 길 가다가 넘어졌는데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쓰러져 우    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전생에 내가 죄를 많이 지었나. 하느님이 벌주    나. 내 팔자가 나쁜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데, 이것은 넘어졌을 때    일어나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데서 생긴 문제입니다.

   벌떡 일어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번에 넘어진 것을 계기로    ‘발밑을 좀 잘 봐야 되겠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지나간 것을 문제 삼지 말    고 그걸 교훈 삼아서 미래의 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것이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적극적 사고방식입니다.


■ 존재에는 열등한 것도 우월한 것도 없습니다.


0 우월의식이 저 잘난 맛 때문에 생긴다면 열등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등감    도 자기가 잘나고 싶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쁜 여자    들이 얼굴에 대한 열등감이 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 잘났는데 눈 하나,    코 하나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등한 것과 열등의식은 별개입니    다. 열등해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정신작용이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모습과는 별개입니다. 옛날에 나왔    던 조사 결과인데, 우리 사회에서 열등의식이 가장 심한 집단이 바로 서울    대학교 인문사회계열 국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    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항상 1등만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박사학위를 땄다는 이유로 외국 박사에 대한 열등의식이 심하다고 합니다.    요즘은 조금 개선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공계보다 문과가 심하다는 것입    니다. 이런 현상은 마치 미인 축에 드는 여자가 신체적으로 어떤 열등의식    이 심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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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열등의식은 허구이며 잘못된 생각에 불과한 것이니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    니다. 신체장애는 신체가 열등한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일 뿐입니다. 한쪽     다리가 없어서 불편하다면 의족을 하든지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면 됩니다.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열등한 게 아니라 불편한 겁니다. 요즘에는 안경    덕분에 눈 나쁘다고 열등의식 갖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런     열등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    니다.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은 어떤 것에 집착할 때 생깁니다. 돈에 집착하면 돈    문제에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기고, 얼굴에 집착하면 외모로 우월의    식과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이러한 의식이 무지나 환경으로부터 형성된 것    이라는 것과, 본래 존재가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라는 것만 확실히    알아도 여기에 사로잡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열등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십시오. 


■ 아이들은 물드는 존재입니다.


0 아이들의 특징은 부모를 그대로 본받는데 있습니다. 마치 하얀 종이를 검    은 잉크에 집어넣으면 검은 색깔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에서 느끼는 감촉 그대로 따라 배우는 존재입    니다. 쉽게 말하면 물드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서 자라면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자라면    일본식이 되고, 미국 가서 자라면 미국식이 됩니다. 태어나서 한 달도 안    되어 미국에 입양되었다면 얼굴 모양만 한국 사람이지 사고방식은 한국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0 또한 아이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많이 닮습니다. 어릴 때 엄마 품    에서 자라기 때문에 엄마를 많이 닮는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돼지우리에    서 자라면 돼지 흉내를 내고 늑대 우리에서 자라면 늑대 흉내를 내게 됩    니다. 한국말을 한다. 영어를 한다.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 어떤 식으로 웃    는다 하는 것도 다 따라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길들여져서 생긴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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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엄마의 프로그램을 아이의 심성에 까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낳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키우면 그 사람 프로그램을    까는 것이 됩니다. 미국에 입양시켜서 미국 사람이 안고 키우면 미국사람    프로그램이 깔리는 것이고 할머니가 안고 키우면 할머니 프로그램이 깔리    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세 살 때까지 형성된, 정신작용의 가장 근본에 해당되는 이 프    로그램은 사실 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이것을 천성이라    고 했습니다. 타고 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천성이 변하면 죽는다고 했습    니다. 그 말은 천성은 죽을 때나 변하지 그 전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    니다. 그만큼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하고 뱃    속에 있을 때, 그리고 낳아서 세 살 때까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0 옛날 어르신들은 아기 가졌을 때는 나쁜 것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나쁜     걸 보면 그게 다 마음의 상처가 되고,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좋은 아들, 좋은 딸을 낳기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    고 좋은 날을 잡아서 합방을 시켰습니다. 이를 종교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아내와 남편이 어떤 좋은 마음을 갖고 내느냐에 따라 수많은 영가 중에서    선신을 부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기    와 인연이 있는 선신을 부르는데, 그중 양쪽에 겹치는 좋은 인연을 잉태하    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 쓰면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처럼 신체는 정신의 영향을 받습    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 몸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태아는 엄    마의 몸과 정신의 영향을 받습니다. 


■ 엄마의 무조건적인 마음


0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세 살까지 보고 듣는 것 모두가 그대로 아이의 심    성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기를 낳은 뒤에도 죽기 살기로 싸우곤 합니    다. 아기가 그런 싸움을 보고 듣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그 정도 수준이라면 차라리 안 낳는 게 좋습니다. 낳으려면 적어도 아기가    세 살까지는 가정이 화목해야 하고 반드시 어머니가 키워야 합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직장에 다닌다 해도 자기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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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직접 키워야 합니다. 직장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휴직을 해서라    도 세 갈까지는 키워야 합니다. 부모로서 그 정도 희생도 하지 않는데 어    떻게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엄마라면서 낳아 놓기만    하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나 하고, 좋은 옷 사서 입히고 좋은 우유만 사다     준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성들은 그건 사회적인 문제라고 반박합니다. 하지    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이는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기본적인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보호받을 권리는 팽개치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건 모순입니다.  

   그리고 내 아이라면 나를 닮아야 하지 않겠어요? 내 아이인데 다른 사람    을 닮으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닮아야 하니 아이는 자기가 키워    야 하고, 내 나쁜 점을 안 닮았으면 좋겠다 싶으면 부모는 수행을 해야 합    니다.


0 아기를 낳아서 키우려면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데 요즘 엄마들은 희생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젖이라는 건 아이에게 모    유를 먹이라고 생긴 건데 모양이 나빠진다며 젖도 안 주는 세상입니다. 엄    마 젖을 만지고 빨아먹으며 자라는 게 아이인데 그걸 못하게 한다면 엄마    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어머니는 아이에게 요구하는 게 없습니다. 밥상머리 앞에서 울어도    밥 먹는 데 시끄럽게 군다는 소리도 안 하고 잠자다가 오줌을 싸도 짜증    을 내지 않습니다. 오직 아이를 예뻐하고 걱정해 줄 뿐입니다. 이렇게 자    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무조건적입니다. 그런 무조건적인 마음이 맨     처음 아이 심성의 프로그램으로 깔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가장 밑    바닥에 양심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먼저 형성되는 마음이 바로    양심입니다. 그러나 이 양심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 부모보다 훌륭한 상담가 조력가는 없다.


0 남편이 애를 먹여도 살기가 힘든데 자식이 애를 먹이면 남편보다 더 힘이    든다고 합니다. 남편이 애를 먹여서 도저히 살지 못하겠으면 헤어지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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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겠지만 자식과는 헤어질 방법마저 없습니다. 화가 나면 “이놈의 자식 당    장 나가”라고 악담을 하지만 자식이 집을 나가자마자 걱정이 되고 혹시나    사고 날까 다칠까 싶어 전전긍긍합니다. 이게 부모 심정입니다. 그래서 자    식한테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합니다. 결국은 자식 뜻대로 하게 됩니다.


0 아이를 가장 잘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부모보다 더 훌륭한     상담가와 조력가는 없습니다. 청소년 전문 상담가나 심리학자 등 다른 사    람에게서는 약간의 조언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말썽을    피우면 대부분의 부모는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유학을 보내든지     대안학교를 보내든지 남이 좀 책임져 주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    식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0 아이에게 엄마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여자는 인간이지만 엄마는 신입니    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아이의 모든 것을 보살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    니다. 그것이 엄마가 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부부싸움이나 하고 괴로워하    고 한탄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옷 입히고, 맛있는 것 사주며 돈으로 문    제를 풀려고 합니다. 그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버지가 훌륭하면 자녀도 그 영향을 고스란    히 받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화합해야 아이의 마음도 편안해 집니다. 따    라서 적어도 아이를 편안하고 훌륭하게 키우려면 부모부터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 마음의 병은 어디에서 오는가.


0 몸의 병처럼 마음의 병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분류하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마음의 병은 가짓수가 너무너무 많아서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이라고도 했    고 그걸 좀 줄여서 ‘백팔번뇌’ 라고도 했습니다. 그걸 좀 더 줄여서 말하면    ‘팔고(八苦)’ 더 줄여서 ‘사고(四苦)’더 줄이면 그냥 ‘고(苦)’입니다.


0 이 모든 마음의 병은 자기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괴로움이 누군가로부터 온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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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니다. 사람들은 괴롭다고 말할 때 ‘남편 때문에 못 살겠다. 자식 때문에    못 살겠다. 부모 때문에 못 살겠다’라는 식으로 어떤 이유를 댑니다. 그 이    유라는 게 다 자기 주변에 있는 인간의 문제. 아니면 재물의 문제입니다.    학생이라면 공부 때문에 못 살겠다. 친구 때문에 못 살겠다 등 여러 가지    가 있겠지요.

   이걸 한 마디로 하면 ‘괴로움은 경계(境界)로부터 온다’가 되겠습니다. 경    계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머리로 이런저런 알음알이를    하는 대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꼴은 보기가 싫고, 그런 소리는 듣기    가 싫고, 그런 냄새는 맡기가 싫고, 그런 건 먹기가 싫고, 그런 건 하기가    싫고, 어떤 것은 생각도 하기 싫게 됩니다. 


0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잘 살펴보면 사실은 다 자기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데 바깥으로부터 온다고 잘못 생각하고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    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해결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잡초를 뿌리 뽑아야 하는 데 잘라 버리니까 다 제거된 것 같지만 시    간이 지나면 싹이 또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뿌리째    뽑으려면 이것의 원인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걸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도몽상(顚倒夢想), 무지, 무명’이라고 부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해서 그 근    본 원인을 소멸해야 합니다. 


0 모든 것은 다 내가 옳다는 데서 일어납니다. 이것만 내려놓으면 괴로울 일    이 없습니다. 그걸 아는데도 실제로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보는 습관에 젖어 있기 때    문입니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앞뒤로 나누고, 좌우로 나누고, 동서로 나누고, 남북    으로 나누고, 옳고 그름을 나누고, 빠르고 더딤을 나누고 무겁고 가벼움을    나눕니다. 그래서 똑 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무겁네”라고     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무겁긴 뭐가 무거워”라고 합니다. 빠르고 더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뒤에서 보면 서두르는 것    처럼 보여 빨리 간다고 하고, 앞에 가는 사람은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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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오는 사람을 보고 느리다고 합니다. 부부가 외출할 때도 남편은 일찌감    치 문 밖에 나가서 아내에게 꾸물대지 말고 빨리 좀 나오라고 합니다. 그    럼 아내는 남편이 늘 서두른다고 투덜댑니다.


0 이렇게 우리는 늘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객관적    으로 양쪽 사람을 다 본 입장에서는 이 사람도 옳은 게 아니고 저 사람도    옳은 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중심으로 놓고 세계를 보고 옳으니 그르니     하며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합니다. 모두 나를 중심에 놓고 세계    를 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미워함이 일어나는 원인은 나    를 중심에 놓고 내 견해를 고집하기 때문이니 ‘아, 내가 또 고집을 부리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경계에 끄달려서 한참 가다가 ‘아, 이게 내 갈     길이 아니구나’ 하며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과정에 있    는 것입니다.


0 우리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접하면서 좋다 나쁘다. 빠르다 더    디다. 시끄럽다 조용하다 하며 자꾸 자기 카르마를 중심으로 시비분별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바로 번뇌입니다. 그러니까 번뇌가 일어날 때는, 그렇    게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 지금까지 경험해 온 내 카르마가 작용하는 것이    란 걸 알아서 고집하지 말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면 번뇌    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 감사의 기도를


0 우리는 지위가 높은데도 고개를 숙이는 사람에게는 겸손하다고 하고, 고개    를 쳐들고 싶은데 지위가 낮아서 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비굴하다    고 합니다. 또 가진 게 많은데도 검소하게 살면 청빈하다고 하고, 떵떵거    리고 살고는 싶은데 가진 게 없어 쩔쩔 매면 극빈이라고 합니다. 즉, 두     사람이 똑 같이 사는데 스스로 고개를 숙이면 ‘겸손’한 게 되고, 할 수 없    어서 고개를 숙이면 ‘비굴’한 게 됩니다. 스스로 가난하게 살면 ‘청빈’한     게 되고, 할 수 없어서 가난하게 살면 ‘극빈’한 게 됩니다. 왜 자신을 비굴    하게 만들고 극빈자로 만들려고 합니까. 스스로 청빈하고 겸손하게 살 때    자신이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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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능력이 안 되는데 욕심을 내면 자기만 피곤하고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세상을 원망한다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    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고 소중하게 여기    겠습니까. 

   그러니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부처님, 저는 참 행복합니다. 저는 몸    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직    장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 생활에    만족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세요. 스스로에게 불만을 가지면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만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감사의 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좋은 일도 생깁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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