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력

2009. 12. 2. 08:27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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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력 (讀書力)


■ 사이토 다카시 지음

0 도쿄대 법학부 졸, 同대학 교육학 박사과정 수료

0 일본 최고의 교육 심리학자이자 CEO들의 멘토

0 아사히 신문 등의 칼럼니스트, 현재 메이지 대 문학부 교수

0 회의 혁명, 질문의 힘, 일류의 조건, 코멘트 력 등의 저서


■ 황선종 옮김

0 한국외대 사학과, 일본 다이토 분카대학 일본어과 졸, 동 대학원 석사과정

0 전문 번역가

0 옮긴 책 : 질문력, 남자의 품격, 설명의 테크닉 등 다수 


■ 들어가며 - 독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 -


0 언제부터인지 책은 ‘당연히 읽어야 할’ 것에서 ‘굳이 읽지 않아도 되는’ 것    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것 또한 시대 변화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독서는 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습관화해야 할 ‘기술’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0 나 자신이 ‘자아형성’에 독서가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독서력’은 한    국가의 힘이기 때문이다. 꼭 국가에만 연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    는 이 사회의 존립 기반을 살펴보면 독서를 뿌리로 자라나는 배우려는 마    음과 호기심이 실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독서는 선택인가 필수인가?


0 내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면 나    중에 리포트에 “책을 읽느냐 마느냐는 자유니까 강요하지 마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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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내는 학생도 가끔 있다.

   그런데 정말 ‘책을 읽느냐 마느냐는 자유’인 걸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100퍼센트 독    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이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제는 “왜 독서를 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시대가 되    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하는 시대    이니 독서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0 책은 읽어도 되고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다. 독서로 길러진 사고력이 뭔가를 생각할 때 삶에 큰 힘이 되고 있으    며 대화를 나눌 때도 독서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독서력의 기준


0 ‘독서력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물음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독서를 즐긴다.’는 말과      ‘독서력이 있다.’는 말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일치하는 경우도 꽤 있지만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만을 읽는 사람은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독서력이 있다는 보증은 없다.  

  

0 독서력의 엄밀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문고본(문학작품) 100    권과, 신서본(교양서) 50권을 읽었다면 독서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독서    력은 곧 독서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설정한 기준이다.


* 여기서 말하는 일본의 문고본이란 추리소설이나 오락 본위의 책을 제외하    고 출판사인 신초사가 매년 선정하는 100권을 말하며 최근의 신초문고는    저자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보다 내용이 가볍다고 말하고 있음


* 신서본은 105×173mm 정도의 판형으로 한손에 들어오는 책. 주로 인문,    사회, 과학관련 내용 등 질 높은 지식 교양서를 꾸준히 공급하고 있음       

0 긴장하는 독서가 진짜 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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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는 ‘정신의 긴장을 동반하는 독서’를 권한다. 정신의 긴장이 동반    되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엄밀하게 잴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저자는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편이 바    람직하다.


0 ‘독서력이 있다’는 것은 독서 습관이 배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별 부담    없이 책을 잡을 수 있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독서가 습    관화된 힘. 바로 이것이 독서력이다.


0 독서력의 기준으로 문고본과 함께 신서본을 내 세운 까닭은 신서본에는     문학계열의 책과는 다른 지식과 정보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서본은    한층 광범위한 지식 체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준다. 한 권을 읽으면     보다 수준 높은 책을 두 권, 세 권 더 읽고 싶어진다. 그런 흡입력이 있다.    ‘지식욕’이란 것은 자극을 받으면 누구라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신서본은     그야말로 지식욕을 불러일으키고 촉진시키는데 으뜸이다. 


■ 과연 책은 비싼 것일까?


0 신서본은 그 내용에 비해 값이 저렴하다. 즉 비용대비 효과가 높다. 책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와 높은 문학적 가치에 비해 결코 비싼 것이 아    니다. 대학 1,2학년이라면 호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신서본 50권을 구입해    읽을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0 나는 책을 읽을 때면 저자가 직접 내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뛰    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단 둘 만의    공간에서 정중하게 내게 전해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비싼 책이    라도 지나친 가격이 아니다. 돈 몇 푼이 아깝다고 그런 훌륭한 얘기를 듣    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옛날 일본의 사제 관계처럼 스승과 단 둘이 앉아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분에 넘치는 시간이다.


0 혼자서 대가의 응축된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사치스런 시간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 신서본을 읽지 않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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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회는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그것은 구어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글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정신적인 긴장이     요구된다. 하지만 글에 익숙해지면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높은 영양가    에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는 기술이 자신의 세계    를 한없이 넓혀준다.


■ 요약할 수 있어야 읽은 것이다.


0 내용을 요약할 수 있으면 그 책을 읽은 것이다. 절반 밖에 읽지 않았어도    그 책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관심이 없는 부분은 건너    뛸 수도 있다. 대략 절반 이상 읽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요약할 수 있    다면 그 책을 읽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요약이 중    요한 것이 아니기에 제외하되 신서본이나 평론서는 절반 이상 읽고 요약    할 수 있으면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단정 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아무리 책장을 끝까지 넘겼    더라도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 없다면 독서한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요약’을 책을 읽은 조건으로 내세우면 늘 자신에게 요약할 수 있는지 묻    게 된다. 독서를 마친 후에 “그런데 어떤 내용이었지?” 라는 물음에 대략    적으로 답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독서    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 


0 대개 책은 똑같이 중요한 내용으로 전체가 채워져 있지 않다. 저자가 강조    하고 싶은 핵심이 있다. 가장 중요한 곳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훈련에는 역    시 신서본이 효과적이다. 


■ 독서력 검정 시험이 있다면


0 만약 내가 독서력 검정 시험을 실시한다면 방법은 이렇다. 전원에게 똑 같    은 신서본 몇 권을 내어준 다음 30분쯤 시간을 주고 요점에 밑줄을 긋게    한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사람은 한 권도 제대로 끝낼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독서력이 있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밑줄을 그어나갈 수 

  있다. 이는 속독법과는 좀 다르다. 책 한 권을 빨리 읽는 기술이라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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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효율적인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게 하면 책 읽는 능력이 겉으로 드러난다. 즉 밑    줄 그은 곳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내용을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핵심    이 아닌 부분에만 밑줄이 쳐져 있다면 독서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중요    한 주장을 빠트리지 않고 그 주장의 근거나 관련 사례까지 짚어내면 내용    을 확실하게 파악한 것이다.


0 책을 고를 때도 단시간에 내용을 파악하는 독서력이 요구된다. 독서력이     있는 사람은 요점 파악능력이 뛰어나기에 업무상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정확하다.  

   나는 입사시험이나 대학입시 등에 이 방식이 채용되기를 바란다. 현재의    대학입시 과목, 특히 사회 과목 등은 변함없이 하잘것없는 지식을 묻고 있    다. “시험공부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다. 대학 특    히 문과 계열의 공부는 책을 읽는 것이 핵심이다. 설사 이과 계열이라도     논리적인 사고를 단련하는 데 독서는 필수다. 수많은 논문을 읽고 정확하    게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대학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능력을 묻는 것이 이    상적인 입학시험이 아닐까?  


0 앞으로는 학교든 기업이든 소수 정예로 구성되는 곳이 늘어 날 것이다. 그    때 정말 실력 있는 사람을 찾는 유력한 방법으로 독서력 검정 시험을 권    하고 싶다. 이 검정 시험을 통과한 소수의 인재를 상대로 그와 관련된 소    논문을 쓰게 하거나 구두시험을 실시하면 된다. 한 권을 갖고 시험을 본다    면 어떤 분야의 책이냐에 따라 울고 웃는 사람이 나올 수 있지만 분야가    다른 다섯 권으로 시험을 치르면 본래의 실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    고 한 분야라도 뛰어난 독서력과 감각을 지닌 사람을 채용하고 싶다면 그    렇게 하면 그만이다. 

   공부 방식은 시험 방식이 결정한다. 시험이 얄팍한 지식을 물으면 공부     방식도 자연스럽게 그리 될 수밖에 없다. 시험 방식과 공부 방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시험 방식이 바뀌면 공부 방    식이 바뀐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본격적인 독서력을 묻는 시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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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100 권인가?


0 독서력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문고본 100권과 신서본 50권을 내세웠는데    왜 문고본 100권을 기준으로 했을까?

   그것은 독서가 ‘기술’ 로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경계선이 얼추 100권    이기 때문이다.


0 ‘기술’이라 불리기 위한 조건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당연해    져야 한다. 또는 어떤 책이든 실패 없이 정확하고 일정하게 읽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을 100권 가량 소화해 내면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겨 두꺼운 책이든 얇은 책이든 개의치 않게 된다. 그러면 바쁜 가운데에    도 책을 읽는 일이 버겁지 않다. 독해력이란 관점에서도 100권 이상 읽어    낸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 단, 유효기간은 4년


0 100권은 대충 잡아 한 달에 두 권이면 4년, 네 권이면 2년이 걸리는 수치    이다. 중고등학교 때 문고본을 3,4년 안에 독파하고 이어서 신서본을 섭렵    하자. 이것이 교양을 쌓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면 국가 전체의 지반이 내려    앉고 있다는 불안을 일소시킬 것이다. 현재 중고생이 아니더라도 4년을 기    준으로 독서를 시작하기 바란다. 


0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을 100권 이상 읽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보기 바란다. 아마 100권 이상을 읽은 사람은 독서가 습관화되어 있    지 않을까? 그리고 대화를 나눠보면 100권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정확성    이나 설득력이 뛰어 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신서본을 포함하여       150권 이상을 읽은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지성이나 교양이 느껴진다.      150권을 읽었는데도 전혀 티 나지 않게 행동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일이     다.


■ 머리 좋은 사람이 책을 잘 읽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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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반적으로 운동신경이 발달한 사람은 이것저것 잘하는 운동이 많다. 독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독서는 운동과 달리 특별한 소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훈련 방법에 따라 누구라도 꽤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게다    가 독서를 통해 몸에 배는 힘은 매우 개성적이다.  


0 예전에 아사다 아키라의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가 프랑스 현대사상    을 취급한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보였다. 당시 어떤 실험에    서 아이큐는 높지만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혔더    니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때 그 사람은 “난 아이    큐가 꽤 높은 편인데 이해할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은 독서를 잘 모르기에 나온 말이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    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된 독서량으로 하는 것이다.


0 독서의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꾸준히 하는 것’이 힘이 된다. 그렇기 때문    에 150권이란 독서량을 독서력의 기준으로 세운 것이다. 그 정도 분량을    소화해낸 사람은 그만한 독서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 초등학교 시절에 독서가 취미였던 까닭은?


0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때는 독서가 취미였는데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왠지    책을 잡지 않게 된다. 문장을 읽는 힘은 당연히 초등학생보다 중고생이 뛰    어나다. 그런데 왜 독서량이 감소할까? 

   초등학교 때 독서가 취미였다는 말 속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 독서의 대부분이 아동도서라는 사실이다. 지금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책 중에는 하다못해 ‘쥐돌이 시리즈’ 같은 그림책이나 오락 본위의 도서가    많아서 성인의 독서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0 물론 초등학교 시절의 독서 습관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중고생이 되    어서 책과 담을 쌓는 현실을 보면 초등학생의 독서지도에 문제가 있는 것    이다. 중고생이 책을 멀리 하는 것은 독서 교육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서    다. 독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지도를 받    으면 상당수의 사람이 책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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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는 ‘아침 독서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아침에 10분    내지 20분 동안 책을 읽자는 운동이다. 책을 지정하지 않고 감상문을 요    구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제약 없이 가볍게 책을 읽는 시간만 확보해가는    것이다. 이 운동은 독서를 몸에 배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0 독서는 학교교육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퍼져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학교교육의 주된 목적을 독서력 형성으로 삼아서 교과 과정으로 정해야     한다. 심지어 나는 모든 교과가 독서력 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학교 시험에 독서 문제를 넣는다.


0 나는 무엇보다 ‘독서력 형성’이 학교교육의 최대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    서 내가 주최하는 교사 세미나의 참가자들에게 중간시험이나 기발 시험에    독서력과 관련된 문제를 넣으라고 당부한다.

   가령 100점 만점이라면 10점에서 15점은 독서 문제로 충당하는 것이다.    미리 책을 정해 놓고 그 책을 읽기만 하면 풀 수 있는 간단한 문제를 몇    개 준비하면 된다. 국어 과목이라면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의 범위와는 관    계없는 책이면 된다.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 과제 도서를 고르는 것이다.     다른 과목은 국어 과목보다는 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령 지    리나 역사라면 학습 내용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일반 도서를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수학 등 이과 과목도 마찬가지다. 수학사 등 이과 계열의 책    은 서점에 수북이 쌓여 있다.


0 호세이 대학 부속 제1중고등학교는 이런 시험을 3년째 실시하고 있다. 이    학교의 국어 교사인 이와이 아유미에 따르면 이런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독서력이 월등히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 학교는 3년 동안 문고본 20권에    신서본 두 권을 과제로 정했다. 반 학기에 대략 한 권이다.


* 학생들의 반응

- 솔직히 과제 도서를 읽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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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져드는 책이 많았기에 즐거웠다. 역시 독서를 하면 지식이 풍부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3년간 읽은 책을 세어보니 기뻤다. 처음 책을 손에    쥘 때는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한 장이 남으면 책에 대한 애    착이 생겼다. 하지만 책장에 진열해보니 의외로 읽은 책이 적어 허전했다.    친구가 별로 없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더욱 더 책을 읽어 독서의 세계    를 넓혀가고 싶었다.


- ‘강압적’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특별히 싫어하는 학생은 없었다. 나는 ‘프래    니와 주이’ 와 ‘독서와 사회과학’을 제외하고는 뭔가 마음에 남는 것을 느    꼈다. 좋아하는 책을 한 권 읽게 하고 감상을 400자쯤 쓰게 하는 시험을    치러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학생들은 그런 것을 좋아한다.


- 책은 한없이 깊은 지식의 연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난이도에 맞춰    순차적으로 읽게 함으로써 어려운 책도 읽게 되었다(술술 넘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 단계별 독서법


0 독서력은 이를테면 강한 이빨이나 턱과 같다. 딱딱한 음식물은 성장기에     이빨과 턱을 단련시켜준다. 그리고 단련된 이빨과 턱으로 그 이후의 삶을    헤쳐 나간다. 부드럽고 달콤한 음식만 먹으면 이빨이나 턱이 발달하지 않    아 영양 섭취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일이 독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0 딱딱한 책이 외면 받고 만화나 게임처럼 스스로 소화시킬 필요가 없는 부    드러운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다. 독서를 할 수 있는 이빨이    나 턱이 단련되지 않은 채 성인이 되는 일이 다반사다. 만화는 딱딱한 책    과 비교하면 스프에 해당된다. 아니면 과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만    화도 글자가 많은 것은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목하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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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독서를 할 수 있는 이빨과 턱을 성장기에 단련해두면 평생의 보물이 된다.    아동도서는 이를테면 이유식이다. 물론 질이 높은 아동도서도 있다. 질의    문제가 아니라 읽기 쉽다는 점에서 아동도서는 이유식이다. 물론 이유식으    로서의 아동도서는 필요하다. 게다가 거기서 흡수되는 영양은 풍부하다.     하지만 이 단계를 아무리 되풀이해도 이빨이나 턱은 강해지지 않는다. 이    유식 단계에서 멈춰버리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0 다음 단계로 추리소설, 역사소설, 잡지, 초단편소설 등 이해가 쉽고 읽기    쉬운 책이 있다. 이것은 젖니 수준의 책이다. 애초부터 독자가 즐길 수 있    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으면 유용하다거나 성장한다기보다는 재미    가 우선이다. 재미있고 읽기 쉬운 젖니 수준의 책을 읽으면 활자에는 익숙    해지지만 본격적인 독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은    흥미 본위의 책이 지닌 한계다.


0 그다음 단계로 영구치 수준의 독서가 있다. 치아가 다시 돋아나는 독서라    는 뜻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나, 헤세도 젖니를 영구치로 바꾸는 데 공헌하    는 작가가. 좀 딱딱하고 진지하지만 영양가가 있고 익숙해지면 재미있다.    편안한 정신의 긴장을 맛볼 수 있다. 그런 새로운 감각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영구치 수준의 독서이다. 


0 흥미 본위의 독서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책만이 독서력    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동도서를 읽느냐 마느냐가 결정    적인 영향을 준다기보다 영구치를 만들어주는 독서를 하느냐 마느냐가 이    후 독서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어렸을 때 책을 그다지 읽지 않았    어도 중고생시절에  적절한 계기를 통해 성인의 독서에 발을 디디게 된다    면 이후에는 순조롭게 독서의 세계로 나아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 세계문학의 위력


0 일본인의 높았던 독서력을 나타내는 기준으로서 세계 명작전집이나 사상    계 전집의 높은 판매량을 들 수 있다. 한창 독서량이 많았을 때 전집의 발    매부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집집마다 백과사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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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질씩 있었다.’는 시절이다. 교양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현재 70    대 이상인 사람에게 물어보면 어렸을 때 명작 전집을 읽은 이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특히 세계문학이 미친 영향이 크다. 괴테나 스탕달 등의 작    품이 포함된 세계문학 전집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즐겨 읽었던 것이다.     세계문학을 읽는 습관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일본 문화의 큰 특징을     하나 잃어버린 것과 같다.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작가는     미국에서는 그다지 읽히지 않는다. 아니, 러시아 국내에서도 국민 모두가    즐겨 읽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일본에서는 러시아 문호들    이 높은 인기를 끌었다. 괴테, 토마스 만, 헤세 등 독일 작가 들이나 칸트,    니체 같은 독일 철학자의 저서도 학생들의 기본 도서였다. 다시 말해 세계    문학과 철학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해왔다고 할 수 있다.


■ 독서력은 보이지 않는 자산


0 경제를 국제적으로 평가할 때 ‘펀더멘털’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기초조건    이란 뜻인데 일본 경제는 지금까지 축적된 힘이 있어서 어느 선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일본의 문화뿐만이 아니라 경    제를 평가할 때도 일본인의 높은 독서력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인정받았다.

   의레 일본의 교육 수준이 경제 평가에 포함되어왔고 이 높은 교육수준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 독서력이다. 높은 독서력이 고도의 정보처리 능력이나    배우려는 마음을 대외적으로 알려 주었다. 하지만 갈수록 독서력이 낮아지    고 있다. 책을 읽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의 50대, 60대들이 대학    생 무렵에 읽은 책과 현재의 대학생이 읽는 책을 비교하면 전자가 많다.


0 그렇다면 독서력을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나는 독서력을 다시 갖추는    길이 한 국가의 추락을 막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독서는 배우려는    마음 그 자체다. 동시에 독서는 배우려는 마음을 북돋우기도 한다. 국민     모두가 높은 독서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잠재력이 있고 박력이 넘쳐난    다. 독서를 통해 정보처리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자아를 형    성함으로써 국가의 장기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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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본의 경우는 고급 독자층이 고밀도로 집중되어 있다. 근대적인 출판 산    업이 갖춰져 있고 고도로 정비된 세련된 출판업계가 책을 공급하여 연간    4만여 종, 15억 권의 책이 생산되고 있다. 출판사도 약 5000여 개에 이른    다. 국민들은 수많은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독자의    문화 수용도가 높고 독서에서 정보를 얻는 것. 또는 독서로 인식을 높이는    것을 의무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대학이나 학교의 권    위도 절대성을 띠고 있다. 


■ 책 중의 책


0 일본에는 ‘성서’와 같은 절대적인 책 즉, ‘책 중의 책 The book of book'’    이 없기 때문에 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것은 재미있는     관점이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책이 있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 책 한 권만 읽으    면 된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책이 없다면 되도록 많은 책으로부터 가치관    이나 윤리관을 흡수해야 한다. 확실하게 종교를 공유하고 있다면 국민의     기초적인 윤리관은 거기서 육성된다. 매주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으면 기    본적인 윤리관이 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독서가 종교에 의한 윤리 교육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윤리관이나 신념은 문화나 경제의 근원이다. ‘멋진 것을 만들고 싶     다.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 는 강한 신념이 문화나 경제 활    동을 활성화시킨다. 그 근원이 되는 윤리관이나 이해력을 많은 책을 읽으    면서 길러왔다. 절대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기에 잡다할 정도로 많은 책을    적극적으로 읽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0 절대적인 책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책에 의해 자아를 형성하고 가치관    을 세우고 이해력을 넓혀온 역사가 일본에는 있다. 게다가 국내외의 책을    적극적으로 읽어왔다. 동서양의 뛰어난 지식을 배우려고 애를 썼다. 성서    와 같은 책이 없다는 사실이 보다 절실하게 폭넓은 독서를 권하는 배경이    되었다.

   높은 독서력이 윤리관이나  이해력을 길러 주었다면 현재 윤리관이 무너    지는 것은 독서력의 저하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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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있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고 있다. 그 교양    속에는 사물에 대한 판단력이나 향학열, 그리고 넓은 의미의 윤리관도 포    함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반드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길러가는 것이     중요하다.  


■ 복잡성을 공존시키는 폭넓은 독서


0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나는 바로 “자신을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렇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 엄격하고도     즐거운 자아 형성을 근래에 들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80    년대 이후에는 자아형성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내용은     없어도 된다. 진지한 건 재미가 없다’는 풍조가 만연했다. 


0 하지만 자아를 형성하는 문제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    서를 통해 진지하게 자아를 형성할 필요는 없다. 재미있게 살아가면 그만    이다.’라는 풍조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형성의 과정을 때로는 위험한 종교    단체에서 찾는 젊은이들도 있다.

   분명히 자아란 것은 확고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험과 사고를    쌓아가면서 정체성이 중충적으로 쌓여가며 안정되어 간다. 그것이 일반적    인 경향이다.    

   독서의 폭이 좁으면 한 가지 사실을 절대시하게 된다. 교양이 있다는 것    은 폭넓은 독서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눈앞의 한 가    지 신비에 마음을 빼앗겨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은 지성이나    교양이 있다고 할 수 없다.


0 나는 대학 시절에 신비주의 단체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그런 단체의 교리    를 철저히 믿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    다. 절대적인 가치관을 하나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것은 부정하는 사고방식    에 빠져 있었다. 독서의 폭도 한정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교양에 맞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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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하고 장려했다. 그런 책 외에는 나쁜 책으로 여겨 공격했다. 세계문학    을 폭넓게 읽어가며 이해력을 기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철학    적인 문제에는 강한 면을 보이지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음미하는 관용적    인 태도를 볼 수 없었고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모범으로 삼는 경향이 강    했다.

   사고가 정지해 있는 모습을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딱딱하고 허    약한 모습이다.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부드러    움. 이것이 독서로 가꿔지는 강인한 자아의 모습니다. 


■ 자아형성을 위한 교양


0 교양이란 말은 빌둥(Bildung)이란 독일어에서 유래했다. 독일어 빌둥에는    자아 형성이란 뉘앙스가 짙게 풍긴다. 이제는 교양이라면 폭넓은 문화적     지식을 가리키지만 한 때 일본에서도 교양이라면 자아형성을 위한 지식이    란 사고방식이 널리 공유되던 시대가 있었다.


0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괴테, 칸트, 니체 등 문학과 철학을 중심으로 인    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저자들의 책이 교양서로 자리 잡고 있던 시    기가 바로 교양주의 시대였다. 기본적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워    했고 그런 의식이 학생들 간의 긴장을 높였다. 지금은 뭔가 몰라도 창피하    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은 얄팍한 지식에 수치심을 느끼고 공부를 해야 서로 향상되는 법    인데 ‘철학이나 문학 따위는 안 읽어도 된다.’는 안이한 방향으로 모두가     발맞추어 나아가고 있기에 전체적으로 정신적인 긴장을 느낄 수가 없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듣도 보도 못한 책에 대한 이야기    가 나와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이 장단을 맞춰 놓고 나중에 부랴부랴     읽는, 안쓰러운 노력을 자주했다. 그러다 보면 모두가 그 집단에서 가장     수준 높은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각자가 안간힘을 써가며    마음을 다잡고 경쟁하기에 더욱더 책을 읽게 된다.  


0 70년대 이후부터 책보다 음악, 스포츠, 차 등에 관한 잡지나 만화가 영향    력을 갖기 시작했다. 고전문학보다 서브컬쳐라 불리는 가벼운 오락 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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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에게 중시되어 갔다.

   1980년 이후 방송이나 광고 문화가 일반인에게 깊숙이 침투하면서 어려    운 것보다 쉬운 것, 품질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확대되었다.    젊은이들이 명품을 선호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고전으로 분류되는     교양서를 읽으면서 자아를 형성하려는 사람을 고지식하게 여기는 반면 명    품을 즐기고 세련된 가게를 환히 꿰고 있는 사람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거품경제 시기에는 그런 경향과 함께 성실하게 일하는 것보다는 잔머리    를 굴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야 재산을 쉽게 늘릴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책을 읽고 자신을    갈고닦는 일은 설 자리를 잃었다.


0 대학생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대학생이 독서    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확실히 한 국가의 추락을 의미한다. 대학    생의 교양주의가 쇠퇴한 25여 년 간 전체적으로 느슨해진 정신 상태가 현    재 일본의 어려움을 초래했다.  


■ 혼자가 되는 시간의 즐거움을 알자.


0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물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인간성을 갈고 닦을 수 있겠지만 혼    자 조용히 자신과 마주 서는 시간이 자아 형성에는 필요하다. 음악을 들으    면서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도 즐거운 법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긴장을 필요로 한다. 이 적절한 긴장이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독서는 혼자 하는 듯싶지만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쓴     사람과 함께하는 둘 만의 시간이다. 저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부    담이 없다. 하지만 조용하고 깊숙이 말을 걸어온다. 뛰어난 인물이 공들여    조탁한 문장을 혼자 음미하는 시간, 이런 시간에 얻게 되는 것은 이루 헤    아릴 수 없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 책 읽는 시간의 풍요로움을     잘 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을 정보로 인식하는 경향이 한층 강해지고    있다. 신속하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 종합하는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딘가에 쓰기 위해 단편적인 정보만 처리한다면 인간성이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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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양될 수 없다.  


0 독서력만 갖추면 다양한 분야의 뛰어난 사람에게서 조용히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단 실제 얼굴을 마주 보고 듣는 것보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문장    을 이해해야 하기에 긴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독서를 계속할 수 없다. 적극    적으로 의미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독서가 되지 않는다. 독서 습관    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태도를 길러준다.


■ 자신과 마주서게 해 주는 독서


0 자신의 내면만 주시해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독서는 열어준다.     언어의 힘은 그 말을 내 뱉은 사람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정보만 달랑    주어질 경우 이렇다 할 영향력이 없을지라도 그 정보가 누군가 알고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또 다른 살아있는 의미를 갖게 된다. 평범한 표현이라도    셰익스피어의 대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떠지게 마련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말보다 책에 적혀 있는, 저자가 직접 생    각을 정리해 주는 말이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한 저자의 생각에 반해 잇    달아 그의 책을 탐독하는 것도 어느 시기의 독서법으로 효과적이다. 그러    면 독서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    다.


0 하루 종일 자신과 마주 서는 시간이 전혀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다. 텔레비    전만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다.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    램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마주 설 필요가 없다. 또 텔레비전이 그런 시간    을 주지도 않는다. 자신과 마주 서는 것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은 드    물게 마련이다.   


■ 책은 스스로 선택하라


0 나는 수업 안내서에 “혼자 문을 두드리라.”는 말을 내 걸었다. 요컨대 무    리지어 오지 말라는 뜻인데 사실 혼자가 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그런데    독서가 몸에 밴 사람은 쉽게 혼자가 된다.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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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 독서는 원래 저자와 일대일로 마주 선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의 독서는 혼자 하는 것이    기본이다.  


0 뛰어난 학문의 선구자에게 스스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훈련이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한께    수업을 듣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아무리 지식을 흡수해도 꽃피우기 힘들다.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서 문을 두드리고 청해 듣는 말이어야만 몸속 깊숙    이 파고드는 법이다.

   “서점에 가서 주머니를 털어 책을 사라.”고 학생들에게 당부 한다. 자신    이 직접 제 돈으로 사서 읽어야 그 안에 실려 있는 말이 몸속에 쉽게 스    며들기 때문이다.


0 책은 물건일 뿐이라는 생각도 물론 갖고 있다. 하지만 책을 저자 그 자체    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그 책의 효과를 한층 높여 준다. 그 저자와 일대일    로 지낸 시간은 내 삶의 귀중한 부분이 되어 준다. 독서는 뛰어난 사람과    만나는 경험을 쌓아준다.


■ 수많은 표현의 보물창고


0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생각하는 행위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혼자    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도 기본적으로 언어로 생각한다. 알고 있는 단어의    수가 적으면 자연스럽게 사고는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사고를 지탱하는     것은 풍부한 어휘력이다.


0 말할 때 쓰는 표현은 한정되어 있다. 일상생활에 어려운 단어는 필요 없     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속의 언어만으로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사고 자체가    단순해진다. 표현이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지고 마는 것이다. 반대로     다양한 표현을 알고 있으면 감정이나 사고 자체가 복잡해지고 치밀해진다.    이것이 문어체 표현의 효용이다. 글에는 말에는 없는 다양성이 있다.         수많은 표현을 알기 위해서는 독서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 독서가 좋    은가?” 라는 물음에 “다양한 표현을 알 수 있어서”라는 대답은 단순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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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싶지만 정확한 대답이다. 


■ 자신의 책장을 지니는 기쁨


0 얼마 전에 “자신을 찾자.” 는 말이 유행했었다. 하지만 내게는 “자신을 만    들자.”라는 말이 더 와 닿는다. 세상 어딘가로 자신을 찾으러 가는 것보다    는 경험을 쌓아 올리는 모습이 나의 이미지와 가깝다. 물론 두 표현이 말    하고자 하는 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만남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자아를 혼자서 만들 수는 없다.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    어가는 것이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자아’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다양한 측면이 형성되어간다.    


0 독서는 지성을 갈고닦고 정감을 풍부하게 하는 동시에 뛰어난 사람들을     자신의 내면에 살게 한다. 정보를 손에 넣는 것만이 독서의 목적이 아니     다. 

  

0 종류가 다양한 책을 광범위하게 읽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에게 직접 생각을 듣지 않더라    도 지금까지 읽어 온 책을 살펴보기만 하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책장을 꾸미는 일은 즐겁기 그지없다. 자신의 세계가 확대되는 모    습이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장이란 길이가 1미터 쯤 되고 높이가 6단쯤 되는 책꽂이를 의    미한다. 4인 가족이라면 적어도 네 개의 큰 책장이 제각각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읽어온 책을 훑어보는 일은 굉장한 기쁨을 안겨준다. 과거의 자    신과 현재의 자신이 책장을 통해 연결된다. 책장에는 자신이 거쳐 온 독서    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뛰어난 저자와의 만남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    생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 꼬리를 물고 변화해 가는 독서


0 한 저자의 책만을 탐독하다 보면 낭비가 많은 듯싶지만 실은 그 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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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내면에 깊이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사진의 경우 얼굴을 여러 각    도에서 찍는 것이 한 각도에서 찍는 것보다 실제 얼굴의 이미지에 가까워    지는 법이다. 책도 한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어나가면 그의 인격이나 생    각이 내면으로 스며 들어온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을 때 마치 스승의 얘    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0 한 사람의 저자가 계기가 되어 책의 그물망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 책에     대한 관심도 미묘하게 변화가 일어나면서 넓어진다. 이것이 세계관을 형성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명의 저자만을 편애해서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자연스럽게 관심 분야를 바꿔가면서 확장시키는 것이 자아를 만드는 독    서의 요령이다.


■ 책장을 바라보는 것도 독서다.


0 책은 내용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의 모양새가 중요하다는 사람도 있다.

   책꽂이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그중에는 아직 잡아보지 않은 책도 섞    여 있다. 하지만 그 모양새만 눈에 들어와도 자극이 된다. 설사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도 구입해서 책장에 진열해 두고 있을 정도이니 어떤 책인지    는  알고 있을 것이다. 책장 속에 책이란 형태로 저자가 존재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 것이다.

   특히 전집은 눈에 확 들어온다. 전집을 첫 권에서부터 마지막 권까지 죄    다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집을 갖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0 책은 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사서 읽는 것이라는 내 신념은 이 책장에 꽂    혀 있는 책에 근거한다. 모처럼 읽었어도 책이 없으면 그 경험을 돌이켜보    기 어렵다. 책을 읽은 행위 자체를 떠올리기 어렵게 된다. 두뇌를 늘 활성    화시키기는 힘든 법이다.

   그런 점에서 책장을 바라보면서 긴장을 높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    다. 읽은 책이든 읽지 않은 책이든 방에 오랫동안 놓아두면 자신의 책이     된다. 책장이 자신의 세계를 안내하는 지도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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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감이 생긴다.”는 말은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생각이 우러나온다는 뜻이    다.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책장에서 받는 영감은 의식적으로 찾을 때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책이 보기 좋게 나열된 책장을 감상하기 위해서라도 책은 빌리지 말고     사서 읽어야 한다.


0 책은 꼼꼼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계보’를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다.    계보란 책과 책 사이의 혈통과 같다. 저자끼리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독자인 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저자와 저 저    자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느끼면 그것을 하나의 계보로 보는 것이다.

   책과 책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습관은 독서력을 한층 높여준다. 읽는 책의    폭을 넓혀주고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되기 쉽다. 고립된 것은 기억하    기 어렵다. 기억은 관계나 연상 속에서 강화된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책    을 선택하면 기대가 빗나가는 일이 적다.

   설령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뒤죽박죽으로 배열된 듯이 보일지라    도 당사자에게는 여러 책이 이어져 있는 것이라면 그 책장은 그 사람의     세계관을 나타낸다. 서점의 진열 방식과는 다른 자신만의 진열 방식을 만    들어가는  작업은 즐겁다.


■ 도서관은 책의 세계를 그려주는 성소


0 나는 기본적으로 책을 사서 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경우가 별    로 없다. 하지만 도서관도 효용가치가 크다. 무엇보다도 지도를 만들 수     있다. 도서관에는 실로 다양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게다가 효율적으로    분류되어 있다. 형식을 중시한 분류일지 모르지만 초심자는 책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기 쉽다.

   일반 서점과는 달리 도서관에는 절판된 책도 만날 수 있다. 현재 출판업    계에서는 책이 상당히 빨리 절판되는 추세다. 대형 출판사의 장편 시리즈    물중에도 절판된 것이 많다. 그런데 헌책방이나 도서관에는 절판된 책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0 책은 사서 보는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까닭은 독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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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출판 문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책은 아무리 좋아도    품절되고 절판되는 운명에 놓인다. 책의 ‘좋고 나쁨’과 ‘팔리고 안 팔리고’    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훌륭한 책이 잇달아 시중에서 사라지는 판국이    다. 독서력이 없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내용이 깊고 딱딱한 책은 팔리지 않    게 된다. 그러면 그런 책은 절판은커녕 애초에 출판조차 되지 않는다.


■ 경험을 확인한다.


0 ‘독서는 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는 책을 읽는 것보다 직접 체험하는 것    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책 읽는 습관이 있으면 체험에 나서기가 어렵    다는 말일까? 하지만 이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체험을 하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불타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을 읽고 아시아 여행을 꿈꾸는 젊    은이가 있다. 책에 이끌려 여행에 나서는 경우는 흔하다. 또는 고고학 책    을 읽고 실제 유적 발굴을 도우러 가는 사람도 있다. 독서가 계기가 되어    체험하는 세계가 확대되는 것이다.

   자신이 체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의미가 독서로 분명해지는 경우    도 있다. 나는 독서를 통해 “그게 이런 의미였구나.”하며 절로 고개가 끄    덕여지는 경험을 수없이 많이 했다.  

 

0 ‘암묵지’ 라는 표현이 있다. 자신은 좀처럼 의식할 수 없지만 무의식이나    몸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빙산에 비유하면 그런     암묵지가 수면 밑에 잠긴 거대한 부분이고 그 일부가 명확하게 언어화되    어 표면에 나와 있다고 하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책을 읽으면 이 암묵지    의 세계가 분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일이 훌륭한    저자의 표현에 의해 명확하게 언어화 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공감을 느    끼고 밑줄을 긋고 싶어진다.

 

■ 고통을 극복하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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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살아가는 힘은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나온다. 소년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    면 소년 범죄를 일으키는 아이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칭찬받은 경험    이 별로 없다고 한다.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긍정해준    다는 얘기다. 긍정이 축적되면 세상을 살아갈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것이 삶의 활력이 된다. 자신과 같은 경험과 생각을 지닌 저자와 만남    으로써 자신이 긍정될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괴로운 경험이 적혀 있    는 책을 읽으면서 차분하게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도 있다.

   가령 실연이나 사별, 또는 낙방 등 괴로운 경험을 했다고 하자. 그와 같    은 경험을 한층 더 비참하게 겪은 사람의 책을 읽으면 자신의 경험 따위    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위안 받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유일하고 절대    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0 책을 멀리하는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체험이나 경험을 절대적인 근거로 인    식하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체험을 절대시 하는 경향    은 편협한 생각을 낳는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이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힘으로 삼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공통된 경험이 있다면 상상력을 빌려 한결 큰 경험의 세계로    자신을 인도할 수 있다. 독서는 자신의 좁은 세계에 틀어박혀 옹고집이 되    거나 자신의 불행에 마음을 모두 빼앗기는 그런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게 해주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 다양한 인간상이 존재하는 곳


0 독서는 인간의 폭을 확장시켜 주고 그릇을 키워준다. 그것은 뛰어난 사람    들을 자신의 마음속에 수없이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아니, 뛰어난    사람들뿐만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에 나오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나    거짓말쟁이,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호색한 사람 등 극단적인 인물을 알아가    는 것도 독서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캐릭터가 분명하다. 그들은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뚜렷한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 비하면 평범해 보인다.    그만큼 소설이나 전기에서 그려지는 인물상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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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책에 등장하는 인간은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직접 위해를 가할 수는 없    다. 그래서 여유롭게 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강렬한 인물 유형이 마    음속에 하나둘 생성되어 가면 현실 속의 인간은 그 유형의 조합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폭넓게 인물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독서를 통해 다양한 인간상을 미리 알아두면 현실에서의 관계가 매끄러    워진다. 자신과 다른 감성이나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과 만나도 대뜸 거부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사귈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출 수 있다. 이런 바    탕을 독서를 통해 기를 수 있는 것이다.


■ 독서 자체가 체험이 되는 독서


0 체험과 독서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고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대해 앞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체험 지상주의는 경험의 세계를 협소하게     만든다. 실제로 체험을 하기 전에 책을 읽음으로써 체험의 질이 낮아지기    는커녕 오히려 높아진다. 선입견 없이 사물을 대하자는 말은 듣기는 좋지    만 지식이 얄팍한 상태로는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가 많다.

  

0 독서와 체험의 관계는 이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    은 점은 독서 자체가 유익한 체험이 되는 그런 독서가 있다는 사실이다.

   독서가 체험이 되어 몸과 마음에 각인되게 하려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 당시의 생활과 함께 떠올릴 수 있어야한다.

  

■ 위인전의 효용


0 자아를 형성하는 독서라는 점에서 위인전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초등학생    이라면 누구나 위인전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은 모    양이다. 

   위인전은 어린 학생들을 영웅주의에 빠지게 하는 입신출세담에 불과하므    로 강제로 읽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 위인이라 불    리는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재능이나 에너지가 특출하다.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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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위인전을 읽었다고 해서 모두가 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경심은 보통 사람들에게 활력소가 된다. 마이클 조던    의 경기를 보고 농구를 시작하는 소년이나 마라도나나 지단의 경기를 보    고 축구에 몰두하는 소년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웅들은 현실에 영향    을 미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0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아이들에게 올바른 윤리관을 지니게 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절대적    인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앞에서 종교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 독서라고 언급한바 있는데 위인전은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고 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때 다양한 위인전을 읽어 두면 실보다는     득이 많다. 물론 위인전 특유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아이도 개중에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다. 종교나 도덕 교육이 얄팍해진 현실에서     올바른 길을 추구한 인물들을 한번쯤 마음속에 심어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 고민과 사유의 힘


0 독서를 통해 그 책의 내용을 확신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없다. 오히려 책을 읽고 혼란을 느끼거나 그런 혼란을 내면에 담아    두는 방법을 익혔을 때 자신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하나하나의 사실이 상대화된다. 차분하게 다양한 사상    과 주장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읽기만 해서는 이    생각 저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의 기술이 단련되지 않는다. 아    주 간단하게 저자와 동일화 되어 우쭐대는 것을 자아 형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아 형성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방황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괴테는    “사람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절대적인 한 권의 책    을 만들어놓는다면 그것은 종교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요약 능력을 지닌     채 다양한 주장이 실려 있는 책을 읽어나가면 세계관을 갈고 다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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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방황이란 말에는 부정적인 울림이 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생각 사    이에서 방황하다 보면 내면에 힘이 축적된다. 하나의 사실을 옳다고 믿으    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쉽다. 사고를 정지시키지 않고    계속 음미하는 관정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힘을 축적할 수 있다.

   

0 독서는 완전히 자신과 일치하는 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면의 마찰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법을 연습하기 위한 행위다. 이를 통    해 자신과 다른 의견도 마음에 담아 둘 수 있게 된다. 그런 포용력을 갖추    게 되면 도량이 넓고 강력한 지성이 단련된다.

   갈팡질팡하거나 결단을 못 내리고 마음에 담아두는 모습을 비효율적이라    고 배제하는 풍조가 강해지고 있다. 10대 후반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    을 음미해야 하는데 너무나 바쁜 요즘 10대들은 방황의 의미를 잊고 있     다. 독서는 이런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내면에 담아두는 기술을 배울 수 있    는 최고의 방법이다.


■ 기술로서의 독서


0 독서가 그렇게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제대로 훈련만 하면 수개월 안에 대    부분의 책을 독파할 수 있다. 내가 ‘독서는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까닭은     독서에는 스포츠와 비슷한 숙달 과정이 있고 독서 또한 신체적인 행위이    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일단 독서를 스포츠로 인식하면 지금까지 독서    를 멀리하던 사람들이 한결 쉽게 책에 다가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0 내 강의실은 운동부 학생들로 붐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책을 거의 잡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역시 대학생인 만큼 나와 함께 독서 토론회를 하다 보    면 석 달 안에 도스토옙스키나 니체 등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일주일 안    에 너끈하게 읽게 된다. 운동부 학생들은 단조로운 기본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일단 흥미를 가지면 금    새 독서에 익숙해진다.

 

0 내 생각으로는 초,중,고등학교 때는 학생 전원이 독서부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 생활을 12년간 하면 마치 12년간 농구부로 활동한 학생처럼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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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과 체력이 몸에 붙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책 읽는 습관    이 갖춰지지 않거나 책 한 권도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학교교육이 잘    못되었기 때문이다.


《 독서의 4단계 》


■ 1단계 : 책 읽는 소리를 들어라.


0 누군가 책을 읽어주면 즐겁다. 이런 즐거움은 젖먹이 때도 맛볼 수 있다.    생후 1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라도 그림책을 읽어주면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글 읽는 소리가 리듬 있게 귀청을 울리면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라도 신나는 법이다. 아이들은 반복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책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주라. 그사이에 아이는 자연    스럽게 문장을 외워버리게 된다.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기억하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러    운 일이다. 그림책을 정성껏 골라 읽어주면 좀 더 읽어달라는 아이의 욕구    가 점점 높아진다. 평소에 주고받는 말을 들을 때와는 다른 기쁨이 있다.    그림책 중에는 상당히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어른이 봐도 재미있는 그림    이나 얘기가 담겨 있는 책이 수없이 출간된다. 독서의 기쁨은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0 긴 이야기를 눈으로 좇지 않고 귀로만 듣는 일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귀로 들어온 문장을 바탕으로 머릿속에 영상을 그    려나간다. 눈으로 읽고 머리에 떠 올리는 것보다 부담이 적고 잠자기 전의    두뇌에 딱 좋다. 마음껏 이미지를 그려나가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    드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처럼 책은 상상력을 길러준다. 단순히 지식만    을 얻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듣고 이미지, 소리, 냄새 등을 상상하는 일은    몹시 인간적이다. 이렇게 지극히 인간적인 요소인 ‘이미지화 능력’을 독서    가 단련시켜 준다.    


0 제작자의 상상력을 드러낸 영상물은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아    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애니메이션 작품에 익숙해진 사람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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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이가 수두룩하다. 언어만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이미지화 능력은 뛰어난 영상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오    히려 약해지는 것이 아닐까?

 

■ 2단계 : 소리를 내어 읽어라


0 다른 사람이 읽어 주는 책을 듣는 것이 1단계라면 직접 소리 내어 읽는     것이 2단계다.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소독 (素讀 :    의미나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 시절에는 의미를 자세하게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음독을 중시했다. 음    독을 여러 번 하게 되면 문장이 몸에 배게 된다. 본래 자신의 외면에 존재    하던 생소하고 어려운 문장이 서서히 내면에 들어오게 되고 자신의 것이    란 느낌이 들게 된다. 그렇게 언어를 ‘신체화’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음    독이었다. 


0 요즘 독서는 묵독 중심이다. 하지만 한 때는 음독이 주류였던 시대가 있었    다.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누군가가 책 한 권을 소리 높이 읽어주고 다른    사람들이 듣는 방식이 책을 즐기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아니 신문조차     음독을 즐기던 세대도 있다.

   언어를 기억해가는 단계에서는 특히 음독이 효과적이다. 자신이 내뱉고     자신의 귀에 들어간 표현은 기억되기 쉽다. 음독을 하면 주의력이 높아진    다. 묵독을 하면 그냥 읽고 흘려버릴 문장도 음독을 하면 빠트리지 않고     인식하게 된다.

   아이들의 경우는 묵독을 하면 의식이 몽롱해지기 쉬우므로 처음에는 음    독으로 의식을 지속시키는 힘을 기르는 것도 독서력 향상을 위한 한 방법    이라 하겠다. 


0 대학생을 가르치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교재를 낭독시키자 어이가 없    을 정도로 서투르게 읽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자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문장 자체를 술술 읽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 문장씩 돌    아가며 읽게 했는데 절반 이상이 반드시 어딘가에서 막히거나 잘못 읽었    다. 결코 대학생의 학습능력이 낮은 편이 아니었기에 음독에 대한 훈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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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매끄럽게 읽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자신이 읽고 있는 부분의 앞부분까지 시선이 가야 한다. 이    폭이 넓으면 시야가 넓은 것이다.

  

0 속독을 익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독에서 묵독으로 바꿔야 한다. 입술을     움직이면 빨리 읽을 수 없다. 하지만 숙달되는 과정으로 음독을 먼저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물 흐르듯 음독을 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야를     넓히는 훈련이 이루어져 시선을 앞으로 빨리 보내는 일에 익숙해진다.

   음독과 독서력은 관계가 깊다. 학생들을 비교해보면 독서량이 적을 경우    소리 내어 술술 읽지 못한다. 정확하고 빠르게 혀를 놀리는 훈련은 뇌를     활성화시켜 묵독으로 대량의 책을 소화시키는 독서력의 기초를 다져준다.

 

0 독서는 전형적인 정신적 활동으로 여겨져왔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독서    는 고도로 지적인 행위인 동시에 신체적 행위다. 눈을 움직이며 책장을 넘    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리 내어 읽는다. 장시간의 독서에는 일정시간 같    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독서를 방해 받는 경우도 있다.

 

■ 3단계 :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라.


0 어렸을 때 소리 내어 책을 읽었던 사람이라도 보통 밑줄을 긋는 단계로는    이행되지 않는다. 단지 눈으로 글자를 좇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밑줄을 그으면서 읽는 것이 효과적    이라고 생각한다. 밑줄을 긋는 일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책 속의 내용과 연    결시키는 행동이다. 단지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 변화가 없기에 독서는 수    동적인 행위가 되기 쉽다. 어디에 밑줄을 그을지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때    비로소 독서는 적극적인 행위가 된다.

  

0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책 속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중요    한 문장을 발견하는 일이다. 단 한 줄도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이 없다면    그 책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하는 문장을 만    날 수 있다. 우선 그런 부분부터 밑줄을 긋는다. 타인의 시선은 의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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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고 과감하게 용기를 가지고 밑줄을 긋는다. 밑줄을 긋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밑줄을 그으면 그 책은 자신의 것이 된다. 다른 사람이 밑줄을 그어    놓은 책은 읽기가 고통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표시가 담긴 책은 사랑스럽    다.


0 이 책은 일생에 단 한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자세로 읽으면 독서의 질이    높아진다. 언제라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책의 이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긴장감이 높아진다. 밑줄을 그을 때도 설사 다른 사람에게는 이 부분이 중    요하지 않더라도 내게는 중요한 곳이라고 확신하면서 긋는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렇게 수없이 자신의 판단력을 바탕으로 밑줄을 그은 책은 나중에 다시    읽어볼 때 막강한 효력을 발생한다. 처음 읽었을 때 들인 시간의 몇 분의    일, 아니 10분의 1만으로도 훑어 볼 수 있다. 밑줄을 전혀 긋지 않고 읽은    책은 다시 읽어봐도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군데    군데 분명하게 밑줄을 그어 놓으면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처음 읽었을 때    의 기억을 되살리기 쉬워진다. 그리고 밑줄을 그은 곳만 읽으면 일단 내용    은 파악할 수 있다. 이 작업에는 거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0 나는 밑줄을 그을 때 세 가지 색깔의 볼펜으로 구별해서 긋는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객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고 초록색이 주관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한 곳이다. 객관적으로 중요한 곳은 파란색으로 밑줄을 긋고 책의 주    제상 특히 중요한 곳은 빨간색으로 밑줄을 긋는다. 빨간색만 따라가면 책    의 기본적인 요점은 알 수 있게 해 놓는다. ‘객관적으로 중요한 곳’이란 독    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는 것이    다.  저자가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짜고짜     빨간색으로 밑줄을 그으려면 긴장이 되어 좀처럼 손이 나가지 않기에 먼    저 파란색으로 표시하면서 대강의 요점이나 줄거리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찾아내면 효율적이다.

  

0 책을 요약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독해의 기본이다. 요약 능력이 없으면 책    을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독서를 통해 요약 능력을 단련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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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한다.


■ 4단계 : 속도를 조절하라.


0 독서라고 하면 일정한 속도로 읽어나가는 방식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독서에 익숙한 사람은 책 읽는 속도가 몇 단계로 나뉘어 있다. 다    양한 기어를 보유한 채 책마다 기어를 바꿔가며 읽는다고 할 수 있다. 책    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읽는 것, 이것이 바로 4단계다.

0 천천히 밑줄을 그으면서 읽거나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한    편으로는 띄엄띄엄 건너뛰면서 읽어도 되는 책도 있다. 정독이냐 다독이냐    로 분명히 나눌 필요가 없다. 정독할 수 있는 힘과 다독할 수 있는 힘은     모순되지 않는다. ‘좁고 깊게’냐. ‘넓고 얕게’냐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넓    게 읽다 보면 깊게 읽을 수 있게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0 동시에 여러 권 읽기

- 일방적으로 쉬운 책만 읽으면 기어가 바뀌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어렵고    두꺼운 책을 다 읽은 다음 쉬운 책을 읽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읽힌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효과가 어려운 책이나 두꺼운 책에는 들어     있다.

  

- 독서의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4단계)을 구사할 수 있게 되면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게 된다. 책 한 권으로 머리가 꽉 차는 것이 아니    라 머릿속에 책마다 다른 방을 마련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단선 선로가    아니라 복선 선로가 깔린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기어를 바꿔가며 읽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뇌    의 용량이 커져 생각할 때 여유가 생긴다. 독서의 단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의식이 부드럽게 강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 맥락과 키워드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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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무엇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을 읽으면 어떤 능력이 생기는가? 앞    에서도 말했듯이 독서는 자아를 형성해주는 힘이 있다. 그와 동시에 강조    해 두고 싶은 점은 독서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더라도 독서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대화가 질적으로 다르다.

 

0 그렇다면 맥락이 있는 대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상대가     하는 말의 요점을 파악하고 그 요점을 자신의 각도에서 말해줄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일반적으로 말 속에는 줄기와 잔가지가 있다. 상대가 하는    말의 줄기를 확실히 파악하고 그 줄기를  토대로 가지를 쳐가듯이 얘기를    하는 것이 대화의 요령이다. 그 줄기를 파악하는 힘은 독서를 통해 요약     능력을 훈련하면 크게 향상된다.

   대화는 허공 속을 흘러가는 바람과 같기에 잡을 수가 없다. 반면 책은 내    용이 활자로 고정되어 있으므로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쉽게 요점을 찾을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요점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사람은 질 높    은 대화를 할 수 없다. 대화를 나눌 때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여 능숙하게    되받아넘기는 일은 마치 어떤 코스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받아치는 것    과 같다. 반면 책은 글자로 고정되어 있기에 어디로 공이 날아올 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책을 통해 요약 능력을 쌓으면 실제 대화에서 요    점을 파악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0 자신의 말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고 상대에게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식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때 대화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이    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은 상대의 말 속에 자신이 한 말의 키워드    가 들어 있는가의 여부이다. 자신의 말 중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    (키워드)를 상대가 사용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대화에 불이 붙는다.

   나는 가볍게 대화를 나눌 때도 간단히 메모를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경우    도 있다. 메모를 해두면 상대가 하는 말의 핵심을 쉽게 잡을 수 있다. 창    조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와 상대의 사고를 혼합시켜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대화를 끝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    다. 이는 생각을 비교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메모하    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는 일이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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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책의 저자들은 각각 나름의 주장이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저자들을 만남으로써 듣는 능력이 강화된다. 책에 따라서는 상당히     제멋대로인 저자도 있다. 게다가 저자들은 대개 개성이 뚜렷하다. 다양한    저자들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독자는 단련되어 간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성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 글을 쓰듯 말을 하라.


0 “말하듯이 글을 쓰라.” 는 말을 종종 접한다. 하지만 “글을 쓰듯이 말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책 같은 것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터무니없    고 비겁한 행위인 것처럼 독서를 많이 하고 책까지 쓰는 사람이 “말하듯    이 글을 쓰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독서 습관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문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다.

 

0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과 문맥에서 일부러 벗어나는 능력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라도 원래의 문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인식력이 있을    수록 두려움 없이 이야기를 비약시켜 나갈 수 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 양쪽 모두 논리적으로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으면 대화가 지    리멸렬해 진다.

   

■ 책을 인용한 대화


0 현학적이라는 말은 학문이나 교양을 필요 이상으로 과시하는 태도를 이른    다. 이는 우리말로 해도 될 것을 굳이 프랑스어로 한다거나 아무도 읽지     않을 듯한 책을 들먹거리는 등 자신의 교양을 뽐내는, 혐오스러운 태도를    비판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표현 자체가 많이 쓰이지 않    게 되었다. 이는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 자체가 없어졌기 때    문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이상 누가 아무리 교양을 들먹이며 잰체해도    듣는 쪽은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공부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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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도 아니다. 교양 있는 모습을 존경하고 책을 읽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    는 문화가 있었기에 의미 없이 지식을 자랑하는 행위도 비판받았던 것이    다.


0 요즘에는 대화할 때 책에 관한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에게 물    어 봐도 친구끼리 진지하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예전의 대학생    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책에 관해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당연한 모습이 젊은이들 사이    에서 보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은 위기감을 일으킨다. 나는 대학생들에게      “친구끼리 만나면 요즘 읽은 책이나 현재 읽는 책에 대해 대화하라.”고 당    부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게 되면 독서욕이 높아진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요즘 무슨 책 읽었어?” 라며 마치 날씨 얘기를 하듯 넌지시     묻곤 했다. 적어도 대학생들 사이에는 책이 대화의 중심에 있어야하지 않    을까?


0 책이나 강연회 중에는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그 자리에서 끝나고 마는 것    이 있다. 아무 자극도 주지 못하고 행동을 촉발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영향력’ 이라는 면에서는 부족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들으    면 들을수록 혼자가 되었을 때 책이 읽고 싶어져야 한다. 그렇게 독서의욕    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나 강연회는 자신을 폭넓게 만들어 준다.


■ 독서 토론 문화의 부활


0 같은 책을 읽은 사람끼리 만나면 대화 중간중간에 책 구절이 인용되면서    얘기가 원활하게 진행된다. 공통된 독서 경험이 있으면 다양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이를 의식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독서토론회다.

   예전에는 독서토론회가 하나의 문화였다. 대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모여    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는 누구의 강요 없이도 꾸준히 지속된 문화였다.     시대에 따라서는 마르크스주의의 도서를 읽는 모임처럼 사상적인 색체가    농후한 독서토론회도 있었다. 그 정도로 본격적인 토론회는 아니어도 다른    친구와 둘이 모여 각각 책을 정해 읽고 나서 얘기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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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는 독서토론회라는 말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똑    같은 책을 읽은 후 모여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    다.

   세미나 형태의 수업을 통해 시도해보기는 하지만 학생들끼리 자주적으로    즐겁게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문화적 토양은 바짝 말라버렸다.


■ 읽은 내용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라.


0 책을 읽은 후 다른 사람에게 그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 좋다. 읽은 직후이    거나 읽는 도중이라면 그런대로 책의 내용을 기억하게 마련이다. 지식이     아직 머릿속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진다. 읽은 후 즉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    면 머릿속에 각인된다. 될 수 있으면 서넛 이상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얘기    를 한다. 그러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기억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해서 말한 내용은 좀처럼 잊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0 단 한 문장이라도 좋다.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긴 문장을 외워두었다가 이    사람 저사람 만날 때마다 이야기 하자.

  

■ 독서 트레이너


0 스포츠에 코치가 있듯이 독서 코치가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독서가    좋은지 싫은지를 떠나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    다. 그들에게 관심 분야와 능력에 맞는 책을 골라 준다면 그때부터 독서는    즐거운 일이라는 인식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초보일 때는 일반적으    로 이러이러한 책이 재미있다고 조언해주면 된다. 하지만 운동선수를 가르    칠 때 일반적인 지도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선수의 특성을 파악하여 조언    해주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0 독서의 경우에도 그 사람의 연령이나 관심 분야, 독서력에 따라 추천하는    책이 달라져야 한다. 상대의 상황을 파악한 후 가장 알맞은 책을 골라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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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바로 이것이 독서 트레이너가 할 일이다.

   나는 실제로 독서 트레이너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학생에게 기본    적인 도서를 추천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    눈 다음 그에게 맞는 책을 소개해주는 경우도 많다.

 

0 나는 교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나중에 교사가 되면 수    업에 들어가 처음 3분 정도는 반드시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라    고 가르치고 있다. 늘 현재진행형으로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는 교사 자신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된다.

 

0 폭넓게 독서를 한 사람이라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람에게 어    울릴 만한 책을 골라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원봉사자로서 독서    트레이너가 되어 준다면 책을 읽을 기회가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물론     전문적인 독서 트레이너가 생겨난다면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 책 선물


0 나는 고등학교 때 약간 다른 방식의 책 선물을 받았다. 오쿠라라는 국어     선생님이 학기가 끝나갈 무렵 문고본을 한 아름 안고 교실로 들어와서 교    탁위에 펼쳐 놓았다. 그러더니 “마음에 드는 것을 가져가라!”고 했다. 모두    우르르 교탁으로 몰려나가 책을 골랐다.

   책 선물은 받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    런데 선생님은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씩 골라 가라고 함으로써 선물 받    는 측의 의사까지도 선물에 반영했다. 그 책들은 선별된 문고본이었기 때    문에 한결같이 수준이 높았다. 고등학생이라면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책도 많았다.


0 그때 선생님에게서 받은 책에 큰 은혜를 입었기에 나 또한 대학 시절에     가르쳤던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해 주었다. 가방에 내가 읽    은 문고본을 가득 넣어가서 내가 책을 선물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교탁    위에 쭉 늘어놓았다. 그리고 모두 나와서 좋아하는 책을 가져가게 했다.     나는 헌책방에는 책을 팔지 않는다. 내가 읽은 책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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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방이 좁아져서 곤란하더라도 여간해서는 책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성    격이다. 그래도 그때는 단 한 권이지만 선생님에게서 책을 받음으로써 어    린 학생들의 독서의욕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읽은 책인 데다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이라면 서점에 놓여 있는    책과는 사뭇 의미가 다르다. 책장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볼 때마다 독서의    중요성을 새로 깨우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으로 그 사람의 독서 의욕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효과적인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0 나는 책을 단순한 소비재로 취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충 읽은 후 헌책    방에 팔아넘기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 굳이 책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내    가 한없이 빠져들었던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다.    ‘자신의 손으로 고를 수 있는 책’을 선물하는 것은 양쪽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훌륭한 독서지도법이다.

  

0 책을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줄이 평생의 보물이    되기도 한다. 완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선뜻 책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이    다. 인상에 남을 한 줄의 문장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도 독    서의 요령이다.

   책을 선물할 때도 상대가 그 책을 끝까지 읽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곳에 쪽지 등을 붙여 선물한다.    그 한마디를 읽어 주기를 바라며 책을 간직하고 있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선물하는 편이 상대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아주 유별난 책    이거나 선물한 사람을 싫어한다면 몰라도 한 줄의 문장과 그 앞 뒤 문장    을 읽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한 부분을 읽은 것만으로도 그 책    은 가치가 있다. 책을 앞장부터 뒷장까지 샅샅이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책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0 책을 읽어 대화의 질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책에 대해 대     화를 나누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 가고 싶다. 어른들에게는 굳은 신념을    갖고 독서 문화를 부흥시킬 책임이 있다. ‘독서력’이라는 개념이 독서 문화    의 부흥에 일조한다면 기쁘기 한량없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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