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8. 15:19ㆍ독서후기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
■ 김창옥 지음
0 제주도에서 공고 졸업
0 대학입시 실패 후 해병대 입대
0 경희대 성악과 입학
0 삼성전자, LG, 포스코, GS, 한화 등 기업과 정부기관, 학교 등 2,000여 곳에서 강의
0 서울여대 겸임교수
0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TvN <어쩌다 어른>,
KBS <아침마당>, <여유만만>, EBS <60분 부모> 등에 출연
0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 과정에 출강
■ 프롤로그 :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질문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무릎에 힘이 풀리듯 삶이 꺾일 때, 뭘 해도 행복하지 않을 때, 이제 그만 놓고 싶을 때, 그리고 일이 잘 풀리고 삶이 잘 나갈 때 역시 이 질문은 여지없이 찾아옵니다. 제 강의를 찾으시는 분들은 아마 이 질문을 맞이하신 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몇 년째 허리 디스크로 고생 중입니다. 퍼스널트레이너에게 재활운동 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매번 몇 번씩 몇 세트를 하라고 합니다.
“회원님, 바른 자세로 이 무게를 열두 번 하세요.”
시키는 대로하지만 열 번 정도 하면 한계가 찾아옵니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아 “더는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제가 잡아드릴 테니 그럼 버티기라도 하세요.”합니다. 그러곤 제 손에 양손을 대고 잡아주시지요.
그렇게 나머지 두 개를 했습니다.
“보세요. 회원님 하셨어요. 저는 살짝 손만 대고 있었어요. 제가 들지 않았어요. 회원님이 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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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으로 자기 한계를 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들 수 있습니다. 그때 알 수 있습니다. 제 머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제 멈이 실제로 해낼 수 있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힘이 생기려면 더 이상 못하겠다 싶을 때 한두 개를 더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그만두거나 힘들기 전에 딱 그만 둡니다. 그러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발전도 변화도 없는 것입니다.
신은 배우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스승을 보내줍니다. 살면서 별 문제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부러 고통과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 힘듦이라면, 혼자 겪어내지 말고 따뜻한 마음과 실력을 갖춘 이들에게 겸허히 보조해 달라고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삶의 변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 삶이 보내는 사인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날 때도 있고 좋아서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피아노 연주를 하는 후배와 함께 강연을 진행하다 눈물이 난 적이 있습니다. 그저 좋아서요. 좋아서 눈물이 날 때에는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신호인 것 같습니다.
위로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아픈지도 모릅니다. 정말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어보면 지금껏 자기가 먹어 온 음식들이 얼마나 허술하고 몸에 안 좋았는지 알게 됩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만 계속 먹으면 속이 부대낍니다. 그러다 편안한 음식을 먹어보면 ‘아, 그동안 먹은 음식이 몸에 안 좋았구나’ 알게 되지요. 휴식을 취해본적 없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짐을 내려놔 본 적 없는 사람은 자기 어깨에 얼마만큼의 무게가 실려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혼자 너무 짊어지지 마십시오. 자기 혼자 10년, 20년, 나 아니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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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거라고 생각해서 가족을 모두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습관이 돼서 내 짐을 남들과 나누기 힘들어집니다.
이젠 한계라고 삶이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운전을 할 때 우리는 수많은 신호를 봅니다. 저는 디스크 시술을 두 번 받았는데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몸이 아픈 것은 몸이 사인을 보내는 거예요. 자기 얘기 좀 들어 달라고.”
마음이 아플 때. / 몸이 아플 때. / 누군가의 이야기가 갑자기 잘 들릴 때 / 무언가 나에게서 빠져 나가고 떠날 때. / 내 몸에 힘이 없을 때. / 삶이 내게 보내는 사인을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최근에는 또 다른 사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제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직원들, 연구소에 들어 왔다가 짧으면 1년에서 3년, 길면 5년에서 6년 정도 있으면 저와 문제가 생기든 본인에게 문제가 생기든 떠나는 거예요.
처음에는 ‘왜 이러지? 뭔가 문제가 있는데, 원인이 뭐지? 왜 문제가 있는 사람만 들어오지? 나한테 잘못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번복되는 건 삶이 보내는 사인이라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서 먼저 찾아보는 게 순서입니다
지금은 제게 ‘소통전문가’란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예전에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겐 그런 배움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연을 할 때에는 인상도 쓰지 않을뿐더러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말할까?’만 생각하는데, 직원들 앞에서는 ‘나를 믿고 여기 온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이 중요한 걸 알아듣게 이야기하지?’ 라는 강한 중압감을 받았습니다.
직원들 앞에서 저는 과도한 오지랖을 부리곤 했던 것입니다. 직원들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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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죠.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정도는 전달됐을 테니까요. 하지만 버거웠겠죠. 그러다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반복을 끝에서 ‘이건 내 오지랖이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간 혼자 억울해한 거죠.
혹시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하다면 왜 억울한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억울한 사람들은 열심히 산 사람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띵까띵까 놀며 산 사람들은 덜 억울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열심히 산 사람일수록 ‘근데 내 주위에는 다 왜 이 모양이지? 난 정말 재수도 없고 인복도 없나? 난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걸 알아주지 않는 거지?’하고 억울해 합니다.
최근에 어떤 사인을 들으셨나요?
당신은 최근에 어떤 사인을 들으셨나요? 사인은 반응이 있어야 자주 보내줍니다. 사인을 보냈는데 우리가 자꾸 모른 척하면 삶은 더 이상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지 않아요. 그땐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사람 사는 게 뭐 대단한 게 있을까요. 어마어마하게 벌어도 어마어마하게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할까요?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큰 법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듭니다. 너무 혼자 낑낑대다 필요 이상의 억울함을 느끼지 마십시오. 그렇게 세상과 사랑을 믿지 않고 자기 혼자 회색빛 공간에서 살지 마십시오.
■ 그가 없는 곳에서도 그를 생각하나요?
미국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한 대학 교수님이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제 강의 평가가 좋지 않아 강의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게 이유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수님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로봇에게 가르쳐 주기 힘든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세요?”
어떤 대단한 것이기에 로봇에게 학습시키지 못할까 생각했는데, 대답은 의외로 ‘유머’였습니다. 감정이죠. 로봇이 인간의 유머 코드를 분석해서 표현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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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 전에 본 로봇 영화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천재 개발자인 한 남자가 깊은 산속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이 로봇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는 로봇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느낌으로써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지요. 어느 순간 프로그래머는 자신을 사랑하는 듯한 로봇의 애절한 눈빛을 보게 됩니다.
‘눈빛’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가까이 있는데도 멀리 있는 것을 보듯 지그시 바라본다고 합니다. 멀리 있는 것을 볼 때와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것을 볼 때 우리는 시선을 지그시 처리합니다. 가까이 있는데도 멀리 있는 듯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생각하나요? 당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나요?”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며 이 말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자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을 얻고 싶으신 분께, 혹은 지금 싱글이라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은 분께 권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영화 속에 나옵니다. 사람들은 대개 취업을 할 때 가장 먼저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 회사, 힘들어? 돈 많이 줘?”
하지만 힘이 들어야 힘이 생깁니다. 힘을 들이지 않고 힘 있는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합니다. ‘아니 불(不)’에 ‘땀 한(汗)’자를 써서 ‘땀을 흘리지 않고 무엇을 얻으려는’ 사람을 뜻하죠. 힘이 들어야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힘들어?”하고 묻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내 사랑인지를 물어봐야 합니다. 그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로봇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나를 생각하나요.”
저도 지금 그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없는 곳에서 생각하는 ‘그’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그’는 사람일수도 있고 춤일 수도 있고 악기 연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랑이 사람을 생기 있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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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 함께 있지 않아도
그것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당신에게 오기를 바랍니다.
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잘하건 잘하지 않건 사랑입니다. 뭔가를 잘 하고 1등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우승이고 승리입니다. 유럽 청소년 축구팀으로 간 한 소년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유럽 축구와 한국 축구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소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은 이기기 위해 축구를 하는 것 같고, 이곳은 즐기기 위해 축구를 하는 것 같아요.”
잘하려 하지 말고 사랑하려 하십시오. 잘하려 하기보단 사랑하려 할 때 진정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어떤 사랑이 있나요?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좋은 곳에 갔을 때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없는 곳에서도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찾을 때 당신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찾으십시오.
■ 두려움은 삶의 과속방지턱입니다
당신의 두려움은 당신 삶의 속도에 과속 방지턱이 되어줄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보고 속도를 줄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두려워할 줄 알 때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총알 없는 총과 비슷합니다. 실존이 아닌 내 생각일 뿐인데 그 두려움에 매몰되어 평생 두려움 안에서 살지는 마십시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두려움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실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죠. 눈 딱 뜨고 마주 보면 실상은 별 것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두려움이 주는 경고와 주의는 받아들이되, 그 기운에 밀리지는 마세요. 사회는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인데, 기죽고 두려움에 짓눌리면서 지금껏 어렵게 배워온 지식들도 아무 소용이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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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움을 위한 오늘의 실험
우리는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모두 다잘 살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잘 산다’는 걸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다 잘 사는 건 아닙니다. 돈이 많은데 잘 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돈은 없지만 잘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돈도 없고 잘살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죠. 뉴스를 한 번 보세요. 돈 많은 사람들이 계속 싸우잖아요.
‘왜 이렇게 아깝지?’ 하고 생각 되는 것, 당신에겐 무엇인가요?
제 경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부분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 ‘어 저거 비싼데, 어 저거 좋은 건데’라고 할 것들이죠. 예를 들면 차, 옷, 신발. 시계 등은 조금 비싸더라도 구입합니다.
반대로 정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면도날이나 날마다 쓰는 수건은 잘 사지 못합니다. 면도날 하나로 3개월을 버틴 적도 있습니다. 면도날 한 묶음에 만 원 정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비싸보였습니다. 또 저희 집 수건은 거의 다 누군가에게 받아서 기념 문구가 찍혀 있는 것들이고, 그나마 너무 오래 사용해서 낡았습니다. 새삼 알았습니다. 아, 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것,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매일매일 중요하게 써야 하는 것에는 인색하구나.
나에게 가장 인색했던 건 나 자신 아니었나요?
‘나는 왜 비싼 차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매일 사용하는 작은 것에는 인색한가?’ 차는 그렇게 비싼 걸 툭 사면서 수건은 아깝고 면도날도 아깝고 비싼 호텔비는 툭 결제하면서 물 한 통 사 마시는 것은 아깝고, 세상의 물건 중 에는 나를 케어(돌보아 주는 것)하는 것과 나를 과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간 나를 케어하는 물건에는 모질게 인색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당장 면도날을 샀습니다. 좋은 면도날, 피를 보지 않아도 되는 면도날!
부자가 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돈을 많이 벌면 부자일까요? 부자라고 다 풍요로운 삶을 살까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남의 시선에만 값을 지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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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 자신에게 인색하다면 그 사람은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들이 보지 않아도 나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나 자신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 나도 이제 좀 풍요로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새로움을 아끼지 말고 실험해 보세요.
사람들은 삶이 늘 똑같다고 말합니다. 삶이 갑자기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거든요. 저는 여러분께 사치를 권하는 게 아닙니다. 실험을 하지 않으면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려는 거예요.
실험을 해보세요.
아무리 좋은 강의를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어도 삶에서 실험을 해보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실험을 안 해보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접하면 오히려 독이 돼요.
세상에 ‘새것’은 없어요.
하지만 ‘새로워지는 것’은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실험할 때, 내 인생의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30대, 40대, 50대,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습니다. 우리가 실험을 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인생의 새로운 땅이 주어질 것입니다. 꼭 한 번 당신만의 실험을 해 보세요.
■ 정서적 허기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보단 해야 할 것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생각하지요. ‘내가 없으면 안돼, 내가 없으면 이 회사 안 돌아가,’ 하지만 내가 없으면 안 되던가요? 잘만 돌아갑니다. 그걸 알게 됐을 때 찾아오는 섭섭함, 헛헛함, 이걸 정서적 허기라고 말합니다.
옷장을 열어보세요. 입을 옷이 없지요? 들 가방도 신을 신발도 없어요. 그래서 사요. 하지만 내년엔 또 없을 거예요.
하루는 혜민 스님과 여러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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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오늘 옷장을 열었을 때 입을 옷이 있었던 사람은 혜민 스님밖에 없었을 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승복만 입으시니 입을 옷이 있지만, ‘오늘 혜민 스님을 만나러 가는데 무슨 옷을 입지?’하고 고민한 우리는 옷장을 열고 ‘아, 옷이 없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동의했죠.
마음의 목마름을 계속 물질로 채우면 그 허기는 평생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 셀프텔러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이야기를 들리게 하는 사람이 있고 들리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스님, 선생님이 강론이나 설교를 하는데 그 이야기가 안 들릴 때가 있어요. 소리가 안 들린다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안 들어오는 말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내 가슴으로 확 들어오는 말들도 있지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고 소화시키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야기도 다른 사람에게 잘 들리게 할 수 있어요. 잘 들린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고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제 아버지는 장손이었고 집안에 제사가 많았기 때문에 아들이 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지막이 형 하나, 누나 넷을 이어 태어났습니다. 제사를 돕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요.
당연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집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매님’이 교회에 있다는 사실에!
그때만 하더라도 남학생이 여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노는 아이’만 가능했기에 공식적으로 여학생을 만날 수 있는 교회는 저에게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문제가 생겼어요.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안 들려요. 무슨소린지. ‘학교에서도 힘든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교회에서까지 이렇게 고통 받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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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잘하시는 분들의 특징은 남들이 못 본 걸 자기가 먼저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보고 자기가 들은 걸 믿어요. 이 사람들이 먼저 치고 나가는 거예요. 반면 보여야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땐 시장이 꽉 차 있습니다.
자기 안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존재를 ‘셀프텔러(selfteller)’라고 합니다.
제가 돌이켜 봤을 때 셀프텔러는 두 가지 경우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는 뭔가를 선택할 때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중에는 자신 안에 있는 셀프텔러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제 강의를 찾아 들으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내 안이 목소리가 아직 희미하니까 분명한 목소리와 공명해서 증폭시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소리를 듣고 행동하지 않으면 ‘번민’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는 비록 보이진 않지만 우리에게 디테일(detail 세세한 정보, 구체적 내용)한 현실을 만들어 줍니다. 그 소리가 찾아오면 꼭 들으십시오. 그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응 하십시오.
그 소리는 전화를 끊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목사님께 가서 “저는 아무래도 신앙이 없어 하나님이 저를 잘 안 만나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만나실 때 제 이야기도 좀 해 주시고 그분께서 저에 대해 뭐라고 하시는지 제게 말씀도 좀 해 주십시오.”
며칠 뒤
“목사님 하나님을 만나셨어요?” “네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 대해 뭐라고 하시던가요?”
“선생님께서 계속 통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전화 좀 끊으시라고요.”
그 소리는 전화를 끊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전화를 끊는다는 것은 외적 소음과 내적 소음 모두를 말합니다. 부산하고 바쁜 사람은 삶이 자신에게 건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합니다. 혹은 두 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려 소음이 돼버립니다. 그래서 안 들리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소리를 듣는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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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는 사장이 아닙니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인생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그 소리’가 찾아오는 두 번째 경우는 삶이 위험하고 힘들 때입니다. 사업하는 지인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했다가 몇 달 만에 큰 적자를 보고 철수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차피 제가 판단을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니 실패가 아니라 삶의 레슨이라 생각하려고요.”
우리는 살다보면 망할 수도 실패할 수도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이건 내 삶에 중요한 자산이 될 거야”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살아서 뭐해, 나는 정말 되는 일이 없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 무엇이든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고 한동안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러다 교육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연구소 직원이면서 제자가 될 사람을 받게 되었습니다. 직원을 받고 저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한 번 헤아려 봤습니다. ‘ 몇 명이 연구소를 거쳐 갔나.’ 예닐곱 명이 제 연구소를 거쳐 갔습니다. 출근해서 하루 만에, 또는 1년, 2년, 5년, 6년…….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연구소를 떠날 때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동안 쌓인 사랑과 추억이 꽤 많은데 그런 사람이 떠나게 되면, 가장 먼저 셀프텔러(자기 안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존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집어치워! 그냥 혼자 해.”
직원이 떠날 때면 고용한 사람도 만만치 않게 마음이 힘듭니다. ‘그냥 혼자 할까? 내가 리더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역시 나는 혼자 뭔가를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 사람들을 이끄는 건 아직 역부족이야.’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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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명의 성악 동기 중 몇 명이 끝까지 노래를 하고 있을까
대학 때 전공한 성악을 생각해보니, 성악 전공자가 40명이면 노래를 끝까지 하면서 벌이를 하는 사람이 네댓 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가게를 오픈한 분께 물어봤습니다.
"원장님, 처음에 이 일을 함께 시작한 직원들이 몇 명 정도 남았나요?“
“글쎄요, 한 10% 정도인 것 같아요.”
그곳도 10%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100명이 시작하면 90명이 나가는데, 너도 10명의 직원이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100명은 경험해 봐야 해. 90명이 들어왔다 나간다 해도 평균의 승률은 한 거야. 그러니 절망하기엔 아직 일러.”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지 봤더니,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사람일수록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 ‘한 번에 되지 않는 것’에 극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우리는 사업이 얼마나 잘되는가. 얼마나 유명한가. 그래서 월매출이 얼마나 되는가. 직원이 몇 명인가 등 그 사람이 가진 것과 이룬 성과로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그런 것들로 평가 받아야 하는 존재인가요?
비록 삶이 내 뜻대로 안 되더라도
저희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미안해하십니다.
“엄마가 해준 것도 없고 항상 미안해. 이름도 못 쓰는 엄마가. 엄마가 너에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해!”
항상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저를 키우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만의 캔버스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잘나가는 분이 아니셨기에 역설적으로 제가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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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이 좋은 집에서 살면 그 형편대로 감사하며 살면 됩니다. 그렇지 못할 환경이면 그 안에서 살 방향을 스스로 찾아 나서면 됩니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100가지 중 1가지가 잘 되지 않았다고 99가지 경우의 수를 다 잃어버린다면, 그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한 번에 되지 않는다고 그 앞에 주자 앉아 오랫동안 슬퍼하면 나를 둘러싸고 이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가 형성됩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했는데, 그 닫힌 문 앞에 계속 주저앉아 있으니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삶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여러 가능성을 안고 흘러갈 것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뜻은 너무 한정적이어서 세상에는 내 뜻을 벗어난 일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 꿈을 이루기 전까지의 삶은 내 삶이 아닌가요?
저는 지금껏 5천여 번의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강의가 끝날 때마다 후회합니다. ‘아까 그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걸 왜 그런 식으로 말했나. 그 표현을 듣고 누군가는 불쾌했을지 몰라.’ 5첨 번의 강의를 했다는 것은 5천 번의 실수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자주 봅니다. 삶도 공사중입니다.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5천 번을 해도 안 되더군요. 하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꿈 이전의 꿈, 꿈 너머의 꿈이 있습니다.
삶의 장난에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속으로 말을 걸어봅니다.
“창옥아, 삶을 살아야지. 너 지금 목표 지점에 가려고 굉장히 열심히 사는 것 같지? 너는 지금 뭔가에 속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 지점에 가기 전에는 네 삶이 없는 거니?”
사람들은 정상에 올라갈 때가 아니라 정상에서 내려올 때 사고를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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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안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올라갈 때 무리된다 싶으면 마지막고비를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여기서 포기해? 정상을 밟아야지’ 하고 오르는 겁니다. 정상에 도달했다는 순간의 기쁨을 살짝 맛보고 내려가다 컨트롤하는 힘이 없어 사고를 당합니다.
한 번에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실패해도, 창피를 당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워도 괜찮습니다. 그건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을 알고 느낄 수 있어 삶의 더 좋은 지점으로 갈 수 있으니까요.
■ 내 마음의 봄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윌리엄 라섹(William D. Lass다)교수는 자신의 저서 <왜 여성은 지방이 필요한가>에서 여성의 허벅지와 엉덩이는 아이의 뇌를 발달시키는 영양분 저장소라고 말하며 하반신 지방이 모유 수유를 통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돼 지능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신기하지요? 남성이 경우에도 힘이 좋은 분들을 보면 엉덩이와 허벅지가 튼튼합니다.
대학교 다닐 때 ‘가정과 결혼’이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말씀 중 사람이 임신했을 때 칼슙 섭취가 적으면 아이에게 필요한 칼슙을 엄마 뼈에서 다 가져간다고 해요. 그 옛날, 아기도 많이 낳고 제때 적절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했던 엄마들은 골다공증에 걸려서 추운 겨울에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 으스러집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은, 특히 출산을 한 분들은 살이 적당히 있는 게 건강에 좋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괜히 다이어트 하지 마세요. 특히 10대 때요. 10대 때 잘 못 먹으면 평생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어릴수록 다이어트 마세요. 한 가지 음식만 먹는 기이한 다이어트요. 조금 통통하더라도 살은 커서 뺀다고 생각하고 10대 때는 무조건 절 먹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아무리 칼슘제를 먹어도 흡수시키지 못하고 소변으로 다 나가버리니까요.
어려서 잘 먹은 사람이 건강합니다. 철학, 예술 등의 지식과 학문도 언제 잘 받는 줄 아세요? 사람 마음이 어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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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는 것은 부드럽다는 의미입니다. 부드러울 때 무엇이든 잘 흡수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오히려 순수하게 다 듣고 다 알고 다 생각합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으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지켜야 하는 것은 동안(童顔)이 아니라 동심(童心)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야 몸에 영양분이 되는 것처럼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리 마음에 영양분이 됩니다. 강의를 들을 때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것이 제 말이 그분에게 흡수됐다는 겁니다.
그 끄덕거림이 적어지는 건 우리 마음이 조금씩 굳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끄덕거리지 않는 것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 사람은 자기 경험만으로 세상을 판단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과 이야기할 때 빽빽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이상 대화하려 하지 않지요. 그냥 정보를 주고받을 뿐입니다.
봄, 봄이 오려고 합니다
시간을 돌아보세요. 당신의 과거를 돌아보세요. 당신 마음에 씨앗이 뿌려진 것이 언제인지. 언제 셀프텔러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살펴보세요. 힘들면 봄이 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아닙니다. 각자가 믿는 소망입니다. 누군가는 그렇다고 믿고, 누군가는 그냥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하는 겁니다. 우리 각자의 선택이죠. 우리가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당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좀 더 강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좀 더 할 수 있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이 시기를 잘 이겨내시면 좋겠습니다.
■ 삶의 맹물을 마시세요
하루에 물을 2리터 이상 마시면 건강에 매우 이롭다고 합니다. 그럼 생수가 좋을까요, 정수기 물이 좋을까요. 지하수가 좋을까요? 실험 결과 그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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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물을 마셔야 하나요? 그냥 맹물을 마셔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 커피 속의 카페인이 오히려 몸속 수분을 빼앗아갑니다. 즉 커피를 마신 것은 물을 마신 게 아닌 거지요. 탄산음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몸은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피가 찐득해져서 혈관을 통한 에너지,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분이 부족해지면 몸은 그 수분을 세포에서 충당한대요. 세포의 상당 부분 또한 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러면 수분이 사라진 세포에 노폐물이 쌓여 온몸이 무기력해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삶에서도 맹물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 삶에도 생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몸만 적당한 수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도 물을 마셔야 합니다. 살면서 당장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은 마치 맹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강연은 지금 듣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듣는다고 갑자기 뭔가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곧바로 효력이 발휘되는 것도 아니지요. 시나 소설, 에세이, 인문, 철학 서적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업그레이드 되지는 않습니다.
종교도 오늘 믿는다고 내일 갑자기 천국에 가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맹물을 잘 못 마십니다.
저도 하루에 물을 2리터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쉬운 게 아니더군요. 화장실도 자주가고, 처음에는 마시는 것 자체가 버거웠습니다. 물이 잘 안 넘어갔습니다. 물을 마셔본 습관이 없어서 어렵더군요. 그래도 의지를 갖고 마셨습니다. 우리 뇌는 배고픔과 목마름의 신호를 혼돈한다고 합니다. 목이 마른건데 배가 고프다고 생각해 음식을 먹습니다. 목마름이 먼저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서도 목이 마른 건데 엉뚱한 걸로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예들아, 인생이 어려울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단다”라고 말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너희들은 알 것 없어”하며 차단하는 집이 있습니다. 후자의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받았어야 할 생수를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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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생수 같은 물을 안 마시면, 삶의 사막화가 찾아옵니다.
사하라 사막을 뛰는 오지 레이스가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레이스 도중 갑자기 사망하기도 하는데, 사인은 탈수입니다. 그런데 물이 없어서 탈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해요. 레이서들이 분명 물통을 가지고 있는데도 극한의 탈수 증상에 이르러 갑자기 사망하는 거지요. 사막이 낮에는 너무 건조하고 더우니까 달리는 도중 땀이 나자마자 그 즉시 말라버린대요. 레이스를 하는 사람은 자기가 땀을 흘린 줄도 모르는 거지요. 흘린 땀만큼 물을 마셔줘야 하는데, 얼마나 땀을 흘린 줄 모르니 필요한 양의 물을 마시지 못한 겁니다. 수분이 부족한지 모르고 있다가 한 번에 픽하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너무 힘들고, 너무 위로를 못 받으면 자기가 힘든 줄도 모릅니다.
찬찬히 생각해 보십시오. 나에게는 어떤 물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물을 어떻게 마시고 있는가? 나는 탄산음료에 찌들었는데, 커피에 찌들었는데, 그렇게 자책하다가 갑자기 물을 마시지 마십시오. 그러면 욕구불만으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커피 못 마시는 금단 현상으로 예민해지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세요. 커피 한 잔 마시고 물 두 잔 드세요.
그리고 갑자기 너무 좋은 것을 많이 보려 하지 마세요. 기존에 마시던 거 있으면 그거 드시면서 꾸준하게 의지를 발휘해 맹물이지만 시원한 내 삶의 물을 지혜롭게 판단해서 마시면 좋겠습니다.
■ 진정 낫고 싶으신가요?
사람이 유머가 있으려면 몸이 건강해야 해요. 강의를 심각하게 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을 얘기해도 다 쿨쿨 주무시니까 저는 항상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재미는 에피소드 내용만으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감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웃기지 않고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됩니다.
어느 날 나를 찾아온 분의 얼굴에서는 유머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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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분이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강사님, 저희 남편이 좀 오랫동안 세상에 안 나와요.”
무슨 말씀인지 되물었더니, 남편분이 사회에 적응도 잘 못하고 사람 만나기를 어려워해 병원도 다니고 약도 오래 먹었지만 낫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제 강연에 왔는데, 남편이 그렇게 많이 웃는 걸 20년 만에 처음 보셨대요. 그러면서 저에게 남편을 한 번만 만나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 그러면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했지요.
그는 아내보다 더 얼굴이 말라 있으시더군요.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얼굴이었어요. 아내 분이 나중에 얘기해 주셨는데 오랫동안 고시를 준비하다가 결국 포기하셨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의 웅덩이에 깊이 빠지신 것 같았어요.
몇 주 후에도 두 분이 나란히 제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물어봤어요.
“아버님, 계속 계셨던 그 동굴에서 나오고 싶으십니까?”
“……네.”
“그러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이 나오고 싶다고 하시니까요.”
“선생님은 거기서 나오고 싶으십니까?”
물 없는 웅덩이에 빠진 사람들이 제 강의를 많이 듣습니다. 어쩌면 저에게위로 받고 싶으신 걸지도 몰라요.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거기서 나오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계속 주변에서 던져주는 비상용 위문품을 받고 웅덩이 안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나와야죠. 그리고 물 없는 웅덩이에 빠진 다른 사람을 도와야죠. 그게 괜찮은 삶인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위로를 받겠습니까?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다시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 주저앉아 있을 건가요? 저는 그분께 작게나마 이 이야기를 헌정하고 싶습니다.
나오고 싶다고 하신 그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 세 가지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제 강연 많이 보지 마시고, 도움이 된다면 하루에 한 편만 보기, 두 번째, 밥맛이 없어도 끼니 거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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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세 번째, 하루에 한 번 5분, 10분이라도 산책하기.”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쭈니 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나의 중심과 연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 근육은 과거와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모가 서로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보고 자라는 것, 그리고 부모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내가 본 책, 내가 들은 말, 내가 만난 사람, 내가 한 경험이 최종적으로 현재의 나를 만듭니다. 내 중심 근육이 되어주는 거지요. 그리고 이 근육은 보이지 않아도 나의 행동, 말투, 인지를 다 결정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근본을 봐야 합니다.
일어서서 나오십시오
일어서는 데 그렇게 큰 힘이 드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 힘 좀 쓰십시오. 자기 자신을 위해 돈도 좀 쓰십시오.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조금 쓰십시오. 일단 일어나서 힘이 좀 나면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보일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꼭 당신의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고스톱을 잘 치려면
삶이 고스톱이라면, 일단 패를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도 잘 써야 합니다. 홍단, 청단을 먼저 먹을지, 피를 먹을지 머리를 잘 굴려야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열심히 쳐도 고스톱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뒤패입니다. 뒤패가 잘 맞아야 승자가 될 수 있지요.
인생 고스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 치면 뭐합니까. 뒤패가 안 맞으면 서너 장이 쌓이고 애먼 놈이 그걸 다 가져가지요. 저는 뒤패를 종교적 언어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삶은 단순히 나 혼자 잘나서 잘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첫 패와 기술, 그리고 뒤패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자기가 똑똑하고 잘 나도 겸허해야 합니다. 나 혼자 잘해서 잘되는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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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패를 잊지 마세요. 그럴수록 감사의 마음도, 내 주변을 챙기는 마음도 마르지 않을 겁니다.
■ 열등감의 가죽을 벗겨내기 위해
어린 시절은 참 촌스러웠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은 많지만 저처럼 뱀 잡아다 용돈 벌이 한 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부모님이 용돈을 안 주시니 뱀을 잡아다 약 달이는 곳에 팔았지요. 뱀을 어떻게 잡느냐고요? 뱀 입에 사람의 침이 들어가면 뱀이 힘을 못 써요. 그래서 뱀을 발견하면 나무 막대기로 힘을 빼놓죠. 힘이 빠졌을 때 나무 막대기로 입을 벌려 그 위에 침을 뱉는 거지요. 그렇게 힘이 쪽 빠진 뱀을 소주 됫병에 넣어 파는 겁니다.
20대 중반에 종로 3가에서 뱀 장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뱀장수 아저씨가 빨간 양파 자루에 독사와 구렁이를 넣고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더군요.
아저씨가 독사를 꺼내 목을 누르니 송곳니 두 개가 드러납니다. 핀셋을 이빨에 대자 독이 묻어나왔고요. 이 아저씨가 그걸 들이 밀면서 “먹어볼 사람 먹어볼 사람”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뒷걸은 쳤지요 아저씨는 “그럼 내가 먹어봐” 하면서 날름 먹는 가예요.
그러고 면도날로 뱀의 목에 살살 흠집을 내더니 쫙하고 껍질을 벗겨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작고 노란 덩어리 몇 개를 꺼냈습니다.
그걸 깨니 노란 즙이 흘러나오고 아저씨는 또 “먹어볼 사람. 먹어볼 사람” 하다가 자기가 날름 먹었습니다. 이어 말하길 “뱀을 먹을 때는 뱀의 몸을 먹는 게 아니라 요 안에 있는 이 보약을 먹어야 해.”
“내가 하루에 이것을 여섯 개 먹으니 와이프가…….”
그러니 아저씨들이 지갑을 꺼내 너도나도 모두 그걸 사는 거예요. 소쿠리에는 금방 만원짜리가 그득해지고 정체모를 그 노란 덩어리는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세 동이났습니다.
사람에게도 자기 피부처럼 붙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 피부처럼 붙어 있는 열등감 , 상처, 우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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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이나 상처, 우울함이 내 피부같이 나에게 완전히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사소한 열등감에 불과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나랑 딱 붙어 있는 거예요. 아예 나예요. 나, 누구는 외모 콤플렉스 누구는 학력 콤플렉스, 누구는 부모가 이혼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 등 나에게 붙어 있는 콤플렉스가 너무 수치스럽습니다. 이걸 벗겨내고 싶은데 내 몸에 딱 달라붙어 뗄 수가 없는 거예요.
하루는 강연 바로 직전에 고향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큰누나였는데,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자꾸 행패를 부리시니까 알코올 중독 요양원 같은 기관에 보내야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사시는 걸까?’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가죽은 언제 벗겨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안 벗겨지려나? 왜 갈수록 더 심해지나?’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와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는 나를 보게 됩니다.
부모의 역사는 마치 내 가죽처럼 몸에 딱 붙어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당신 곁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해요. 그런데 나는 억울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거든요. 뱀이 뭘 해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나요? 그냥 나타나면 무서워하는 거죠. 뱀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갈 길 가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똬리를 틀고 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으아 뱀이다!” 하면서 놀라요. 그래서 뱀도 놀라서 순간 자기를 방어하려고 꽉 물어버리는 거예요.
삶도 그러합니다. 나는 내 길을 가고 있는데, 똬리를 틀고 쉬고 있는데 사람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나를 무서워하거나 기피하거나 나를 보며 놀랍니다. 그러면 나도 놀라는 그 사람들을 보고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는 거예요.
나도 나를 방어하려고 상대방을 꽉 물어버리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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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과 상처,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과거의 일들이 내 피부처럼 붙어 있어서
사람들과 점점 멀어집니다.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서 살게 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붙어 있는 그 가죽을 벗겨내 재품을 만든다면, 최상의 상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뱀 가죽의 가치는 높이 사는 것처럼요. 당신에게도 피부처럼 붙어 있는 무엇이 있을 겁니다. 살다보면 생기거든요. 세상과 삶에 완전히 등지고 구석에서 살다가 가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완전히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 가죽을 벗고 최상의 상품으로 만들어 낼 것인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대사처럼 “몸에서 살을 베어내면서 피를 흘리지 않을 순 없습니다.” 내 피부를 벗겨내는 데 그것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열등감의 가죽을 벗겨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심하게 긁어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뱀 장수가 뱀 가죽을 벗겨낼 때 예리한 면도날로 살살 긁어내듯이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열등감과 상처의 가죽은 한 번에 벗겨지지 않습니다.
시기가 되면 하십시오.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뭔가 차올라오면 하십시오.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붙어 있다고 생각한 그것들은 언젠가 시기가 됐을 때 벗겨 낼 허물인 채로 놔두지 말고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자신의 열등감, 우울함, 상처를 아주 좋은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도 줄 수 있습니다.
삶은 환경에 대한 자기의 자세와 태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환경 때문에 우리가 끝장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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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곱하기가 되고 나누기가 되고 더하기가 되고 빼기가 돼서 삶의 결과물로 나타날 것입니다.
■ 삶의 새로운 언어를 배워라
대한민국 사교육 중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분야가 영어입니다. 강연 중에 영어 학원을 다녔거나 학습지를 했거나 영어 공부 CD를 구입했거나 외국인과 전화통화학습을 했거나 해외 연수를 갔던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손을 듭니다. 반면, 지금이라도 외국인을 만나면 어렵지 않게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면 백여 명 중 한둘만 손을 듭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 편하게 영어를 쓰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기 부모에게 배운 언어를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쓰지만 제대로 그 언어를 습득하는 사람은 백에 한둘도 안 됩니다.
우리에겐 모국어가 있습니다.
모국어(母國語). 한 글자씩 풀면 ‘엄마 나라의 말’이 됩니다. 내 부모가 썼던 언어가 모국어가 된다는 거지요. 여기서 의미하는 ‘말’은 단지 음성 기호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언어 중 가장 강력한 언어는 행동입니다. 그렇게 볼 때 부모의 행동과 살아가는 방식 모두가 우리의 모국어가 됩니다.
부모가 살았던 삶의 모습, 그 자체가 우리 삶의 모국어가 됩니다. 모국어는 절대 속일 수 없는 자신의 핏줄입니다.
영어를 공부했지만 영어를 자신의 일상 언어로 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처럼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삶의 언어를 터득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명쾌하게 답변합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 보는 것, 또는 그 나라 사람과 결혼하거나 연애 하는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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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바꾸고 싶어 할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환경을 바꾸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을 바꿨는데 여전히 새로운 언어를 못 배우는 현상입니다. 언어를 배우겠다고 외국에 갔는데 전혀 늘지가 않습니다. 미국까지 갔는데 왜 새로운 언어를 못 배울까요? 한국 사람만 만나고, 비즈니스하고, 한국 사람하고만 교류하는 거예요.
미국에 가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거든요. 외국 사람만 보면 말이 안 나와요. 일단 쫄아요. 그러고는 거기서 한인들끼리만 사는 거죠. 결국 고립된 섬에 살게 됩니다. 영어 쓰는 거대한 땅에서 한국 말 쓰는 섬에 살게 돼요. 한국 보다 더 작은 그 섬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면 우리가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외국 연수 안 가고도 한국에서 배워 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꼭 환경을 바꾸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겁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삶의 언어를 바꾸고 싶다고 부모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삶은 3단계로 변화합니다. 먼저 우리는 ‘인식’ 해야 합니다.
“저희 엄마는 입에 욕을 달고 사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전 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50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욕을 하진 않지만 문득 제가 엄마의 말투, 퉁명스럽고 공격적인 성향을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노름하는 모습을 봐왔고 어머니가 늘 살기 싫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그다지 좋은 모국어를 접했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앞 서 말씀하신 여성분도 저도 부모로부터 객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식’이지요. 인식하지 못했다면 부모님이 했던 그대로 생각 없이 따라 갔을 겁니다.
두 번째는 ‘인정’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이 나를 있게 한 것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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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첫째는 나의 두 번째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가르쳐주신 ‘독서’, 그리고 두 번째는 ‘진실’이다. 진실은 사실과 다르다. 사실은 일어난 사건이고 진실은 일어난 사건을 인정하는 힘이다.” 우리가 새 삶의 언어를 익히고 싶다면 말이 거칠었던 엄마를 인정하고 노름하던 우리 아버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이 안 되면 다음 계단인 수정으로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수정이 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정’ 하십시오
수정은 나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자세와 태도가 바뀌면 거의 100% 환경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거울이나 빛 앞에 서보십시오. 빛이 있어야 먼지가 날아다닌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거울 앞에 서야 ‘아, 내가 이렇구나’ 하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정하십시오. ‘ 어 그래, 내가 이런 모습이구나’, ‘우리 부모님이 이렇구나’ 여기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인식과 인정에는 마음의 힘이 필요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언어를 바꾸고자 한다면 인식하고 인정하고 수정하십시오. 당신이 당신 세대의 변화의 주체가 되십시오.
바꾸고 싶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서른한 살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그전에 사람들이 면허를 왜 안 따느냐고 물어보면 제 대답은 항상 간단했어요.
“운전할 일이 없어. 그리고 나 차 살 돈 없어.”
이게 바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는 사람의 똑같은 변명입니다.
“나 그 언어 쓸 일 없어.”
그런데 놀랍게도 파티 그레스를 준비하면 파티 갈 일이 생깁니다. 영어를 배우면 영어 쓸 일이 생깁니다. 외국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의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삶을 마주하고 새로운 언어를 쓸 일이 반드시 생깁니다.
실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실망은 죽기 살기로 해본 떳떳한 사람만이 그 끝에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망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아이러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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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나는 그렇게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용기 있는 자, 끝까지 욕심내는 자, 고집 있는 자,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도 용기도 고집도 그 아무 것도 없다면 부모로부터 받은 그 언어로 나도 살게 되고 내 자녀도 본 그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바꾸고 싶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 아직도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당신에게
진짜 어른을, 본 적 있습니까?
집안에 ‘어른’이 있는 집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의 최고봉은 학문이 아니라 태어나서 한번이라도 어른을 봤느냐에 있습니다. 어른하고 살아봤느냐. 어른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봤느냐가 중요합니다. 가까운 사람의 ‘앞모습’만으로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앞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 다시 말하면 , 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족은 ‘뒷모습’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한집에 사니 말과 행동이 여실히 보이지요. 아이들에게 교육이 되는 것은 앞모습이 아니라 이런 뒷모습입니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모순이 되는 사람은 아이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버겁습니다. 그럴싸한 앞모습만 보여준다고 해서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제대로 된 뒷모습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뒷모습은 바로 ‘어른의 뒷모습’입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야 합니다.
어른에 대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나이가 아닙니다.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이일 때 생기지 않습니다. 어른이 어른이어도 생기지 않죠. 문제는 아이가 어른일 때, 그리고 어른이 아이일 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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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투정하는 아이를 가장 빠른 시간에 효과적으로 잠잠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공갈 젖꼭지입니다. 공갈 젖꼭지. 아시죠? 아이 입에다 물려주는 가짜 젖꼭지입니다. 그걸 아이에게 물려주면 빨리 잠들곤 합니다.
구강기 아이들에게 빨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주면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합니다. 다만 공갈 젖꼭지를 너무 오래 쓰면 입에 염증이 생기고 치아가 고르게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강기가 지났는데도 공갈 젖꼭지를 떼지 않으면 치아와 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이렇게 부작용이 생깁니다. 그래서 공갈 젖꼭지를 제때 떼 줘야 합니다. 그런데 떼려고 하면 아이가 엄청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너무 힘이 들지요. 자다가도 공갈 젖꼭지가 입에서 빠지면 기가 막히게 알고 웁니다.
사람마다 공갈 젖꼭지가 있습니다.
어른들의 욕구를 잠재우는 희한한 공갈 젖꼭지도 있습니다.
이 공갈 젖꼭지는 욕망을 다스리는 데 순간적으로 매우 좋은 효과를 보입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가짜’입니다. 거짓입니다. 아무리 공갈 젖꼭지를 빨아도 영양분은 공급되지 않고 그저 가짜 만족만 느낄 뿐입니다.
뭔가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짜증 나고 화가 날 때, 욕구불만으로 괴팍해질 때 우리는 잠들지 못하는 아이처럼 공갈 젖꼭지를 입에 뭅니다.
당신의 공갈 젖꼭지는 무엇입니까? 쇼핑, 게임, 음식, 남 흉보기, 이성, 성형, 드라마, 자동차, 술, 담배, 스포츠, 명예, 권력 등등.
나이를 먹어도 이 공갈 젖꼭지를 계속 물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어른이 아닙니다.
이제 가짜는 떼버리십시오.
공갈 젖꼭지를 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내 안의 아이가 울고 짜증냅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야 합니다. 이 시기를 건너지 않으면 스무 살, 쉰 살이 돼도 짜증나고 힘들 때마다 공갈 젖꼭지를 물게 됩니다.
자꾸 고통을 회피하기만 하면 나이 들어 삶의 직책은 분명 어른인데 여전히 아이의 내면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는 성장하기 시작하면 공갈 젖꼭지가 유치하고 우스워 보입니다. 당신은 몇 살입니까? 당신은 과연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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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회사에서 당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어른이 되십시오 아이에게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 되십시오.
물론 상처가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워터저브볼(water zorb ball) 이란 게 있습니다. 커다란 볼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물위를 걸어가는 레저입니다. 저브볼 안에 들어가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못 가고 헤매게 됩니다. 큰 공 안에 들어가 허우적대며 걷는 것이 마치 열등감과 상처 안에서 사는 우리 모습과 똑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건강해지면 공 밖으로 나와서 그 공을 자기 손으로 가지고 놀게 됩니다. 마치 저글링 하는 것처럼요. 상처와 열등감을 저글링 공삼아 놀이를 즐깁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저글링을 잘 합니다. ‘나는 소중하다’라는 마음이 자존감입니다.
상처나 열등감을 지켜야 할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놓고 문 앞에 덩치 좋은 문지기를 둡니다. 내 안에 있는 열등감과 우울함을 타인이 나를 공격해올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계속 감추고 지키려고만 합니다. 그러고는 그 안에 갇혀 상처, 열등감과 함께 살아가지요. 하지만 상처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 문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문이 됩니다.
삶의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안전히 없애는 데 에너지를 쓰지 말고 그것을 이용해 보십시오. 열등감과 상처를 잘 사용하면 좋은 에너지원이 됩니다. 당신 안의 열등감과 우울함의 공에서 빠져나와 그 공으로 저글링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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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매일 1도씩 움직이세요.
■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사람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만나 내일의 내가 됩니다. 여기서 ‘만난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일 수도, 책이나 영화를 만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남이 있다는 것은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제가 경험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마주한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화가 친구가 저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초상화 속의 저는 고단해 보였고 부자연스러운 데다 촌스럽고 나이 들어 보였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표현했지? 아무래도 생경해…. 의도 한 바는 아니었지만 얼마 후부터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즈음 제 개인 강연쇼 ‘포프리쇼’후원사인 포프리 사장님과도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한 후 헤어지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강의를 오랫동안 듣던 한 어머니께서 필리핀에서 유학중이던 중학생 아들과 함께 제 강의에 찾아왔습니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 제 강연 영상을 보내주곤 했는데, 한국에 들어온 김에 함께 오신거죠. 강연이 끝나고 어머님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직접 보니까 어떠니?”
“음, 나는 저 선생님 강의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는데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아. 엄마.” 그 얼마 후부터 간간이 주고받던 그 어머니와도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그렇게 세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을 당시만 해도 몰랐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차이가 크면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때 제게 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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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옥아, 너 그래.” “김선생, 당신 이 모습이에요.” 하물며 중학생 아이까지 “선생님 이런 모습이에요.”라고 말해 주었지만 저는 저에 대한 사랑과 저에 대한 자존심이 강해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과 단절한 거지요.
한 사람이 당신에게 뭐라고 하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말하면 차분히 앉아서 들어봐야 합니다. 저도 한 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진짜 나한테 왜 이래. 내 주위 완전 짜증 나. 그래도 나 좋아한다는 사람 있어. 그 사람들하고 놀면 돼.’
하지만 제가 제 모습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모두에게 사과했습니다.
누군가 너를 그려줬다면, ‘내 모습이 정말 그런가?’하고 바라보세요.
초상화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고 그려지는 모델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화가처럼 누군가를 그리고, 또 누군가의 모델이 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배우자나 친구, 직장동료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실 거예요. ‘이 사람은 이런 느낌이야’하고요.
누군가 그려준 그림을 보고 외면하지 마십시오. 잠시 자신에 대한 사랑을 덜어내고 ‘내가 정말 저 모습인가?“하고 바라보십시오. 비록 그 모습이 내가 인정하기 싫은 소심하고 나약하고 비겁한 모습이라 하더라도요.
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예쁘게 그려주세요”라고 하지요. 예쁘게 그려주지 않으면 저처럼 서운해 하고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있는 그대로 그려주세요.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할 건가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힙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시작됩니다.
열매 안에는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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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자존심의 상징입니다.
자존심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존심이 꺾이는 계절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인격이라는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씨앗에서 또 꽃이 납니다.
꽃이 떨어진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꽃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히고,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 삶은 오늘도 ‘공사 중’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유학 가고 싶었던 학교가 누욕에 있었지요. 그 학교를 가보고 싶은 마음에 겸사겸사 일정을 잡았습니다. 뉴욕에 오래 거주하신 분께서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주셨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교수님, 제가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뉴욕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야경이 정말 멋있어요. 그래서 낯선 남녀라 해도 이 야경을 보고 있으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지요. 두 번째, 뉴욕의 실상인 바닥을 바라보면 대부분의 시내가 좀 더러워요. 지저분하고 사건 사고가 많아요. 앰뷸런스 소리를 자주 듣게 돼요.”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체플린의 말이 뉴욕 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뉴욕이라고 하면 패션의 도시,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등 활기차고 아름답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상은 조금 혼란스럽고 지저분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늘 공사 중이라는 것이에요.”
마냥 순하기만 해서는 발전하거나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라이 없는 조직은 발전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또라이 질량보존의법칙’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하나씩 삶의 비극적 요소들을 알기 시작합니다. 뉴욕처럼 내 삶의 앰뷸런스가 찾아오는 일도 너무 많아요. 내가 실수를 했건 누군가 내게 와서 실수를 했건 삶의 앰뷸런스를 탈 일, 관계의 앰뷸런스를 탈 일, 실패와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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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앰뷸런스를 탈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욕처럼 우리 삶도 계속 공사중입니다.
지금 불편한 까닭은 공사중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회사, 완벽한 남자, 완벽한 아내, 완벽한 상사…본 적이 있나요? 오히려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나와 안 맞는 것, 내 눈에 안 차는 것’이 더 많은 법입니다. 안목이 열린 사람일수록 부족한 부분, 마음에 안 드는 곳이 가장 빨리 보이는 법입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판단부터 합니다.
한국엔 백 년 넘은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신생 기업이에요. 뉴욕처럼 계속 공사할 게 있습니다. 발전할수록 공사에 박차를 가합니다. 그곳에 있는 우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회사에 있으면서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맘에 안 드는 건, 회사도 나처럼 지금 공사 중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에 완벽하게 건설된 도시가 아닙니다.
삶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입니다. 우리 회사는 힘든 게 없고 복지가 좋은 꿈의 회사다. 라고 말하는 것도 다 거짓말입니다. 평생 행복하게 해준다는 사람의 말도 믿을 게 못 됩니다. 삶 자체가, 결혼 자체가, 직장생활이 그렇게 될 수가 없거든요.
자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관심사, 자신이 집중하고 반복하게 되는 것, 그런 사랑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삶은 비극이 됩니다.
그런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살아갈수록 ‘변화’하지 않고 ‘변질’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게 아니라 믿지 않게 되는 거예요. 꿈도 비전도 사랑도 믿지 않아요. 그러니 보상으로 살고자 하는 겁니다. 자신의 영혼의 땅, 사랑의 땅을 뺏겨버렸거든요.
심장이 뛰는가?
지금 내 눈이 반짝이는가?
반복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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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쓰게 되고 관심이 가는가?
그것이 내 삶을 빛나게 해 주는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랑을 찾으세요.
보위를 빼앗긴 왕의 슬픔
저에겐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첫째가 어느 날 갑자기 쌍둥이 동생이 생기
자 전에는 하지 않던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독차지하던
사랑을 갑자기 둘씩이나 생긴 동생들에게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사람들은 이
것을 ‘보위를 빼앗긴 왕의 슬픔’에 비유하더근요. 그토록 강한 상실감이라고 합니다.
삶이 힘든 순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제 아이가 무엇을 잘 해서 소중한 게 아니 듯,
당신도 뭔가를 잘해서, 세상에 쓸모가 있어서 소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합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 잠깐! 촬영만큼 중요한 편집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겉에서 보면 멀쩡한데 내면이 조금씩 썩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또렷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때가 있지요. 저도 1,2년 전부턴가 제 안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하다. 재미가 없다. 기운이 없다. 별로 행복하지 않다…하는 느낌.’
저같이 강의하는 사람이 제일 하기 어려운 말이 ‘힘들다. 어렵다, 재미없다, 행복하지 않다’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통해 즐겁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동기부여를 받고 싶어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누구에게도 이런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알게 된 한 영화배우의 도움으로 영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 강의를 봐서 저를 알고 있다는 영화감독님을 만나 감사하게도 작은 배역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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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역은 조직 깡패의 타락한 회계사였지요. 깡패의 돈을 건드린 게 발각되어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역할이었습니다. 촬영은 시멘트 공장에서 새벽1시부터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시궁창에 담겼다 빼졌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결국 죽는 장면이었습니다. 날씨는 춥고 몇 번이나 반복되는 촬영에 매 맞는 장면에서는 잘못 맞아 입안에서 피가 터졌고 코뼈까지 부러졌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죠.
하지만 영화 개봉 전, 감독님으로부터 ‘액션은 너무 좋았지만 등급 선정의 문제로 그 부분이 통편집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이럴 수도 있구나. 이렇게 편집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제 인생 일부분이 편집돼 없어져 버린 듯한 허탈감을 맛봤습니다.
인생은 촬영에서 끝이 아닙니다. 편집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자기가 산 삶으로만 생각해요. 즉 내가 찍은 분량만 생각하지요. 그래서 내 인생을 내가 살아온 30평생, 40평생, 50평생으로 끝났다고 생각해요. 왜냐? 그렇게 찍었으니까.
하지만 제가 보기에 삶은 영화와 같아서 촬영이 있고 종합 편집이 있습니다. 음악, 자막을 어떻게 넣고, 어디를 잘라서 어디에 붙여야 할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떤 스토리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편집.
연기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요.
이미 산 삶을 바꿀 수는 없어요. 못 돌려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후회와 원망.
그 사건을 일으킨 인간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내 삶을 깎아 먹고 있어요.
하지만 그 삶에 대한 종합 편집권은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추천드려요.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꾸시라고. 할 수 있는 거라면 하시라고. 그리고 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면 살아온 인생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종합 편집을 해보시라고. 당신의 삶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런 게 있습니다. 내 머리에 인두로 찍힌 것 같은 그 무엇.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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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지우려 해도 상처의 흔적까지는 지울 수 없는 그 무엇, 인간관계의 문제든 부모자녀 사이의 문제든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상처의 문제든 잊을 수 없는 기억의 문제든.
■ 난 놈보다 된 놈이 되십시오
삶은 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받지 못한 끼는 자신의 영혼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끼는 하늘에서 받거나 부모로부터 받은 거니까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난 놈이냐, 아니냐’를 매우 신경씁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재능이 있으면 자신이 낫다는 것에 필요 이상의 우월의식을 가집니다.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타고난 사람은 자기가 봐도 놀랍니다. 조금만 공부해도 장학금을 타고, 조금만 운동해도 메달을 따고, 조금만 일해도 돈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난 놈’인데, ‘된 놈’이 안 됩니다. 난 놈이 된 놈이 안 되면,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합니다.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자신이죠. 칼이 예리한데 칼집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검일수록 칼집이 좋습니다. 싼 칼일수록 칼집이 없습니다. 난 사람이 되는 것은 예리한 칼날을 갖는 것과 같고, 된 사람이 되는 것은 칼집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예리한 실력의 칼을 하늘로부터 부모로부터 받았는데 된 놈이 못 된 거죠. 그러면 결국 그 날카로운 칼로 자신을 베고, 칼 자랑을 하다가 다른 사람도 다치게 합니다.
칼을 받았으면 된 놈이 되어야 합니다.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철학 없는 기술은 삼류입니다. 그런 칼은 어디에 써 먹지도 못합니다. 가진자가, 받은 자가 더 겸손하게 무릎 꿇고, 연습하고, 훈련받고, 스승을 찾아야 하고, 삶의 시스템에 귀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원리입니다.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선물을 줍니다.
돌이 금이 되게 하는 것도 연금술이지만
최고의 연금술은 이미 우리 삶이
상당히 좋은 금이라는 걸 깨닫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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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가 기적 같은 삶을 선물로 받고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간 최고의 연금술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변화를 가져 올 수 있고, 변화되어서도 자만하거나 홀로 높아지지 않습니다.
■ 위로하는 법
영화 <밀양>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전도연이 아이 엄마로 나오는데, 아이가 살해를 당합니다. 극도의 절망에 빠져 살던 전도연이 가까스로 신앙의 끈을 붙잡지요. 그리고 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해주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전도연을 돕는 역할로 나오는 송강호는 굳이 거기 가서 뭘 용서를 하느냐, 그냥 마음으로 용서하라고 하는데, 전도연은 꼭 그 사람을 보고 용서해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갔더니 살인범의 얼굴이 너무 편안해져 있어요. 그리고 살인범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당신이 용서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미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때 전도연이 확 돌아버리죠.
누군가 상처를 받고, 그 결핍이 에너지가 되어 건강하게 사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그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하지는 마십시오.
“너의 결핍이 오늘의 너를 낳은 거야.”
타인의 결핍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는 이런 것이죠. “너 그래서 얼마나 힘들었니.”
그 공감의 마음으로 상처받은 이의 곁에 있어주는 게 위로입니다. 좋은 마음으로든 나쁜 마음으로든 우리는 가까운 이들에게 힘을 준답시고 그런 우를 범하게 됩니다. 진정한 위로는 마음을 알아주고 표현하는 겁니다. 해답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감싸주세요. 그것이 위로입니다.
2016. 11. 26.
* 다음에 후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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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2)
■ 김창옥 지음
■당신은 아무 일 없었던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주변에서 저에게 상담을 청하는 분이 많습니다. 사람과 일에 대한 상담을 주로 해오는데, 사람에 대한 상담은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겠는지, 혹은 이런 남자와 더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흔히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상대방의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 맞는 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불행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랑이 변했을 때도 참 아픕니다.
저는 디스크로 허리가 오래 아프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디스크는 회복이 잘 안됩니다. 제 CT를 보면 척추 4번, 5번이 검정색입니다. 의사 세계의 말로는 죽었다고 표현한데요. 회복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의사는 딱 잘라 말하더군요. “디스크는 회복되는 게 아닙니다. 관리하셔야 합니다.” 마치 떠나간 사람의 마음처럼요. 떠나간 사람의 마음이 쉽사리 회복되던가요? 제가 보기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한 번 마음이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꼭 디스크 같아요.
디스크가 제 역할을 해줄 때는 충격을 잘 못 느낍니다. 완충 역할을 잘하니까요, 남녀 사이에 사랑이 있을 땐 상대방이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해줍니다.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뭐”하면서 웃어넘기지요. 왜냐하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기능이 있으니까요.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마음의 디스크가 좋으면 아이들이 말썽을 피워도 괜찮아요. 그냥 넘겨줘요. “그래 괜찮아, 애들은 다 그렇게 크는 거야.” 그러면 아이는 ‘우리 엄마는 참 너그럽구나’하고 엄마를 보고 배우며 잘 성장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 완충작용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어요. 예민해져서 아이들이 조금만 신경을 거슬리게 해도 화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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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디스크가 정상적일 때는 주변 사람들이 실수해도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게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요. 그런데 어느 날 마음의 디스크가 죽어가기 시작한 거예요. 경화(硬化)라고 하지요. 말랑말랑하던 마음의 디스크가 딱딱하게 굳어가며 죽기 시작한 거지요. 원인이 무엇인지는 콕 집어 말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마음의 디스크가 죽어서 자꾸 아프고 고통스럽고 짜증이 많아지니까 주변 사람들도 슬슬 받아주기 어려워하는 눈치입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저렇게 아프고 힘들다고 유난이냐며 비난하게 되지요.
살다보니 마음의 디스크가 죽어버렸습니다.
삶의 디스크가 죽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움직이기도 싫습니다. 열정과 사랑이라는 디스크는 식어버리고 죽어버려 웬만해서는 잘 살아나지 않습니다. 괜히 화가 나고 모든 것이 싫어집니다. 더 이상 희망을 꿈꾸지 않는 허무주의가 되고 사랑을 믿지 않는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려요. 사는 게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고 철이 없는, 세상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요.
관리가 필요했던 겁니다. 몰랐을 뿐이죠.
디스크가 죽으면 다시 살리긴 어렵지만 디스크를 대신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디스크 주변 근육을 키우면 됩니다. 근육을 잘 훈련하고 키우면 평생 충격 없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 주변 근육은 무엇으로 이루어 졌을까요?
사람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사는 모습, 그리고 자기를 대하는 모습을 수십 년간 봐왔습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자존감을 형성합니다. 봐왔던 그대로 자기 자신을 대합니다.
인간의 시간이 천천히 흐를 때는 나에게 사랑이 다가올 때와 충격이 가해질 때입니다. 사랑하던 연인이 자주 입었던 셔츠의 패턴, 향기, 버릇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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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오래 기억됩니다. 충격을 받았을 때는 더 강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계속 과거를 원망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지나간 시간을 원망하고 있을 건가요? 언제까지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들에게 핑계를 돌리고, 그 핑계 뒤에 숨어 살 건가요? 내 소중한 삶을 그렇게 놓아두지 마세요. 우리의 소중한 삶을 위해서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디스크가 상했다면 우리는 근육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근육을 키우겠다면서 정작 본인은 힘을 안 쓰고 누군가 내 몸을 눌러주고 만져주고 힘을 가해 치료해주길 바랍니다. 스스로 힘을 써야 합니다. 땀 나도록 힘을 써야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을 키울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몸이 굳어 있다며 마사지 받기를 좋아합니다. 마사지는 그때만 시원합니다. 안 받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스스로 힘을 써서 나의 온전한 치료를 위한 근육을 만드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는 게 아닙니다.
어색하다고요? 어색할수록 힘이 센 말입니다.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면 괜찮아집니다.
그러면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십시오.
장애를 갖고 수영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가 의족이었는데,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이 쇠로 된 다리를 막대기로 때린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그 친구들을 찾아가 왜 그랬는지 물었더니 “쟤 다리는 쇠니까 안 아프잖아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엄마는 지혜롭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프진 않지만 얘가 놀랐잖니. 너희들이 다리를 때렸을 때 쇠니까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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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않았을지언정, 무섭고 놀랐을 거야.”
우리는 쇠로 만들어진 것처럼 강해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라고 무섭고 외로울 순 있습니다.
■ 나에겐 어떤 냄새가 나나요?
저와 동갑인 유명인 중에 박찬호 선수가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는 저에게 열등감을 안겨주는 대표주자였습니다. 전 스물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스물다섯 살에 미국 메이저 리그에 선발되었으니까요. 당시 찍혔던 한 카드회사 광고가 기억나는 데, 박찬호 선수가 연미복을 입고 달려오면, 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박찬호 선수를 잡으려고 뒤따라오는 거였어요. 그때 저는 그 카드회사에서 하루 두세 번씩 연체된 카드대금 납부하라는 전화를 받고 있었거든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랑 동갑인 저 사람은 미국에서 잘나가고 키도 크고 잘생기고 돈도 잘 벌고 여자들이 정말 최고로 좋아하는 신랑감인데 나는 도대체 뭐지?
최근 우연히 박찬호 선수와 같은 강연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연이 끝나면 보통 자리를 뜨는데 그날은 남아서 박찬호 선수가 강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1994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데뷔했을 때 인종 차별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살아본 분은 알겠지만 엄청나게 돈이 많거나 엄청나게 언어를 잘하는 게 아니면 무시당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단한 거니 정도가 심했겠지요.
하루는 스페인 선수가 씹고 있던 껌을 박찬호 선수에게 뱉었다고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죠. 락커룸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감독 방에 들어가 해명을 하려는데 영어를 못하니 의사소통이 안 되었어요.
너무 억울해서 스페인 선수를 가리키면서 “배드보이, 배드보이!”를 다섯 번 외쳤대요. 자기 혼자 패널티를 먹고 출전정지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그만하고 집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리려 전화를 했는데 차마 돌아가겠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데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왜 외국 선수들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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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더니, 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마늘 냄새 김치 냄새가 외국 손수들에게는 너무 독했던 거예요. 원래 박찬호 선수는 경기가 안 풀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한국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고 해요. 고된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보내준 장아찌, 신 김치, 마늘, 라면 등을 배불리 먹는 게 유일한 행복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날 냉장고에 있는 모든 한국 음식을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치즈, 햄, 스파게티 등을 잔뜩 사서 토가 나올 때까지 먹었다고 해요. 그렇게 계속 먹으니까 점차 외국 선수들이 냄새 난다는 소리를 하지 않더랍니다.
두 번째로 이전에는 항상 통역사와 같이 다녔는데 통역사 없이 외국 선수들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락커룸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 이젠 눈이 마주치는 선수마다 그리고 감독 방에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며 열심히 영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여자 골퍼 박인비 선수는 마지막 타를 일부러 실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승하면 전 세계 취재진들이 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그게 두려워서 마지막 타를 일부러 잘못 친 거죠.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했다는 것을요.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때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 몸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냄새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사람의 냄새는 원래 그 사람의 냄새도 있겠지만 주로 먹은 음식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먹고 귀로도 먹습니다. 슬픈 장면을 너무 많이 본 사람은 그 사람 몸에서 슬픈 냄새가 납니다. 좋은 음식과 책을 많이 먹은 사람에게는 좋은 향이 납니다. 사람은 눈으로 코로, 피부로, 입으로 먹습니다. 그렇게 먹은 것들로 인해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목소리, 표정, 행동에서 내 냄새를 맡습니다. 내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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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남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걸 기억해 주세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내 존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사실을요.
부모님들께
진한 향수를 뿌리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불쾌해 합니다. 반면 아련한 향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누의 잔향이 나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슬며시 나는 비누향이 가장 좋은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좋은 향이 나는 사람도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악취가 됩니다.
조금 멀어져 내 향을 좋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멀어짐으로써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 부모와 거리를 두려고 하면 그들의 공간을 내어 주십시오. 자녀기 어느 정도 성장하면, 이미 독립된 성의 성주입니다. 그들의 공간을 인정해 주세요.
그리고 기다려주십시오.
사람은 각각 다른 물질입니다. 그래서 끓는 온도가 다릅니다. 누구는 100도에 끓고, 누구는 200도에 끓어오릅니다. 또 누구는 70, 80도면 끓기 시작합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보다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는데도 모르는 척 기다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당신을 보고 배울 것입니다. 틀림없이요.
■ 모니터 스피커가 필요한 사람
음향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방송, 공연, 관련 건물이나 공간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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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질 때 음향기기 등 소리관련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지요.
음향컨설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컨설팅의 시작은 공간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컨설팅을 할 건물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홀 안에 들어가 박수를 쳐보는 거래요. 그 박수의 울림으로 공간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이지요.
둘째로 공간에 적합한 음향시스템을 정하는 거라고 합니다. 나쁜 컨설팅 업체는 클라이언트에게 “무조건 최고급 장비로 설치해야 합니다”라고 얘기 한 대요.
마지막으로, 반드시 모니터스피커를 만든다고 합니다. 원래 스피커는 관중 쪽으로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모니터 스피커는 말하는 사람방향으로 두 개에서 네 개의 스피커를 돌려두는 것을 말합니다. 가수나 강연자를 위한 스피커지요. 그렇게 두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말하는 사람이 듣는 소리와 관객이 듣는 소리가 달라집니다.
소리와 삶도 참 유사합니다.
한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3인실을 썼습니다. 그런데 돈을 더 써서라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환자들, 그들의 보호자, 간병인 분들 과거사까지 다 알게 되더라고요. 저는 편안하게 쉬고 싶은데, 옆 침대 간병인 아주머니가 자기가 나온 고등학교 얘기부터 시작해서 자기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까지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제 바로 뒤에 계신 전라도에서 사업하시는 사장님의 사업규모까지 알게 되더군요. 그러니 쉴 수가 없는 겁니다. 과한 거지요. 사람이 소리로 인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을 찾는 건 웬만한 행운으로는 어렵습니다.
유럽의 좋은 성당은 성당을 짓기 전에 먼저 파이프 오르간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오르간의 규모와 소리에 맞춰 건물을 짓습니다. 음향이 중요하니까요.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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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나는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우주가 딱 들어맞을 수 있겠어요. 사랑해서 만났지만 서로 맞지 않아 헤어집니다.
우리는 거울을 미워하는 게 아닙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삶에도 모니터스피커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평상시 내 목소리 같지 않고 이상하게 들립니다. 그런 데 다른 사람들은 녹음된 소리가 내 목소리랑 똑같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것, 남들이 나라고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삶의 모니터스피커가 있어 자기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왜 좋은 곳을 여행하고 좋은 책을 찾아보고 좋은 강연을 듣고 좋은 사람을 만나려 할까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니터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책과 강연을 보며 ‘아, 이게 내 모습이고 이런 걸 놓치고 살았구나’ 알게 되고, 낯선 곳을 여행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며 ‘어,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랑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자신을 알아 달라 인정해 달라는 몸짓입니다. 내가 내 세울 게 별로 없으면 자녀자랑, 남편자랑, 사업 자랑을 합니다. 그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이런 뜻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라는 걸 알아 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외롭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서지 못해서 외롭다고 했습니다.
홀로서면 더불어 지낼 수도 있습니다.
남의 공간도 지켜줄 수 있습니다.
모니터 스피커는 돈이 많을수록, 고집이 셀수록, 남의 말을 안 들을수록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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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이가 꽤나 들었다면, 이제 내 얘기에 감히 토달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더 모니터 스피커를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공간에 들어가 자신의 음향을 체크해보세요.
그리고 적정한 볼륨을 찾아보십시오.
정정한 거리, 적정한 소리가 아름다운 법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그것이
우리가 먼저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떤 상황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 상황을 힘들어하고 싫어하지만 익숙해졌다는 뜻입니다.
길들여짐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만나야 하는 관계의 핵심은 편안함입니다. 배우자가 큰 돈을 벌어오지 못해도 함께 있을 때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과 함께여도 괜찮습니다.
누군가를 내가 구원해 줘야 한다는 착각인 메시아 콤플렉스는 대개 과거에서 비롯됩니다. 누군가를 구원하려 하지 말고, 메시아 콤플렉스를 갖게 한 과거의 힘들었던 자신을 감싸 안아주세요.
진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 긴장하지 말라는 말에 더 긴장할 때
극심한 허리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유명하다는 한방 병원에 도착해 의사를 만났는데, 너무 아프니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군요. 딱 한 마디만 들렸습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 ‘긴장하지 마세요’가 더 긴장하게 만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긴장하지 마세요. 대침 들어갑니다.”손바닥 길이만 한 대침이 들어온다는데 긴장하지 말라니요.
아니 자기가 다 긴장하게 만들어 놓고 긴장하지 말라고 하면 그게 되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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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사람 사이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친구끼리, 연인끼리 긴장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이야기만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긴장 하지마,
겁먹지 마.’이러면서 되레 겁먹게 만듭니다.
결국 아는 분이 소개해준 병원으로 바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곳 의사 선생님은 저를 바라보며 “어? 병원에서 보면 안 되는 분인데, 에휴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하시더군요.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까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아이고, 그러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하십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긴장이 풀리더군요. 제 허리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도 해 주었고요.
어디가 문제고 무엇이 문제인지를요. 그러고는 덧붙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제 통증 환자의 30%는 우울증입니다. 통증은 결국 뇌에서 감지하는 건데, 마음이 우울하면 통증은 곱하기가 됩니다.”
다음날 CT 촬영을 하며 주사를 놓는 시술을 하였습니다.
회복실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선생님, 몸이 파업한 겁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요. 몸도 빌려 쓰는 거니까 잘 좀 관리해 주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건강해지실 겁니다.”
어느 순간 힘든 날이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날이 오지요. 그럴 때 반응하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더 긴장시키는 경우가 있고, 긴장하지 말라는 말은 곧이 하지 않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하루 이틀 장사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 벌써 엄마 역할 몇 년째야.’ ‘나 벌써 사업 몇 년째야’ 하면서 ‘꾼’이 돼버리면 마음의 시선이 끊어집니다. 제가 경계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쟤는 이제 강의하는 꾼이구나. 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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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이 됐네. 쟤는 이제 마음도 없고 시선도 없구나. 쟤는 기술로 장사를 하는구나”라고 평가받는 것입니다. ‘꾼’이 되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사람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꾼’이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면 사람들은 경직될 뿐입니다.
프로는 돼야 하지만 꾼이 되어선 안 됩니다.
■ 삶의 중심으로 이사 가세요
사람은 자기중심을 찾아 이사를 합니다. 제가 했던 최초의 이사는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을 때입니다. 고시원이었죠. 방세가 한 달에 10만원 정도였습니다. 고시원에서 석 달만 살면 제정신으로 지내기 어렵습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에 책상위로 의자를 위로 올려놓아야 그 아래서 잘 수 있습니다. 창문도 없고 옆방 코고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곳입니다. 제가 그 좁은 방에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제 중심을 찾아 이사왔기 때문입니다. 성악을 하기 위해서요.
제주도에서 알던 분이 소개해준 성악 선생님께 배우기 위해서요. 저는 그분을 통해 처음으로 열정이라는 걸 보게 됐습니다.
우리가 삶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을 배워 자기 삶에서 실험하기 위함입니다. 요즘은 배고파서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점차 비대해져 갈 뿐 진정한 영양분은 흡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의 가르침에서 열정의 실존을 봤습니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 이사를 와야겠다!’
최근에 이사한 적 있나요.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이사를 했나요?
엄마들은 학군 때문에 이사를 합니다.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야 내 아이가 잘될 거라는 생각에서죠. 젊은 사람들일수록 경제 중심, 교육 중심으로 이사를 가고 나이 드신 분들은 조용하고 자연이 있는 시골이나 외곽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중심으로 이사하고 있나요? 자기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이 없으면 이슈가 나타날 때마다 쏠립니다. 번번이 생각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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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뭐라고 하면 ‘아 그런 건가?’ 저 사람이 뭐라고 하면 ‘아 저런 건가?’합니다. 나도 힘들고 주변 사람 또한 힘들게 합니다. 반면 중심이 있는 사람은 매력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부처도 생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안 힘들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입니다.
그런데 이 힘든 세상 중간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오아시스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아시스가 있는 사람은 힘든 사막과 같은 인생의 길목에서 가끔 쉬며 물도 한 잔 마시고 기운도 보충해서 다시 길을 떠납니다.
오아시스는 자기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오아시스로 귀결되고, 오아시스 덕에 삽니다.
오아시스에 가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 재고 저것 재서는 새로운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완벽한 준비를 마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준비만 되면 출발 하십시오.
당신은 삶의 중심 동네에 살고 있나요?
중심으로 이동하려면 지금의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마음의 이사가 필요합니다. 비록 조그만 집이라도 마음의 중심 동네로 이사 가 그곳에서 사십시오.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스스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 내가 자꾸 내 삶의 외곽에서 맴돌고 있는지, 그리고 내 삶의 중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 지 생각해보세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용기가 있다면 원하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크게 시작할 생각 말고, 월세로, 작게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려 하면 영원히 그곳에 가지 못합니다.
내 마음을 지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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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강의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병원의 원장님은 수녀님이셨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식사를 하러 구내식당으로 가려는데 원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 데 지금은 제 기도 시간입니다. 죄송하지만 교무처장님하고 같이 식사를 하시죠.”
알고 보니 그분은 누가 와도 자신의 기도 시간만큼은 방해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도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거지요.
이 병원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의 힘이 바로 기도 시간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다고요.
우리만의 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교적인 기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무엇, 철저하게 내가 지켜내는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아예 그런 기도가 없는 사람, 그리고 힘들 때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작은 일 하나를 해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각을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추에 물을 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느질을 합니다.
그 기도하는 마음이 어려운 날 반드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 완벽한 전문가는 없습니다
처음 돈 같은 돈을 번 것이 학교를 졸업하고 스피치 학원에서 강사를 할 때였습니다. 시간당 2만원을 받았죠. 보통 두 시간 강의, 일주일에 두 번 그래서 한 달 월급이 32만원 이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죠. 생활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 것은 기업에 강의를 나가면서부터 였습니다. 기업은 시간당 20만원을 줬거든요. 특강은 보통 두 시간입니다. 그러니 한 번 나가면 40만 원을 받았지요. 그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시간당 20만 원이라면, 열 시간도 할 수 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요? 예를 들어 정신없이 명품을 산다.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 드린다. 적금을 들기 시작한다.
저는 정신없이 명품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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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있는 백화점에 갔습니다. 저는 브랜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품은 안 샀습니다. 브랜드 로고가 눈에 확 띄게 크게 박혀 있는 걸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요, 하나 사니 목이 마르고 두 개 사도 목이 말라요. 그렇게 1년 6개월 동안 명품을 사들이고, 딱 그만 두었습니다. 그만 두게 되더라고요. 사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돈도 벌어본 사람이 벌 줄 알고 써본 사람이 쓸 줄 압니다.
명품 사들이기를 졸업한 후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유학을 가려고 모았습니다. 오백만 원, 천만 원, 이천만 원. 총각이 돈 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이 차곡차곡 모였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뜻대로 되던가요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빚이 있다는 거예요. 수천만 원. 왜 그런 빚이 생겼느냐고 물으니 우리 키우느라 쌓아놨던 빚이라는 겁니다. 제가 모아둔 돈을 다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3일 우셨다고 합니다. 많은 의미를 담은 눈물이었겠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빚들이 터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모아둔 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조언을 하더군요.
“적당히 선을 긋는 것도 필요합니다. 매달 정해진 용돈을 드리세요. 그러면 부모님께서 알아서 쓰시게 되어 있습니다.”
전문가는 헛똑똑이와 같은 말일지 모릅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전문가’라는 말을 들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 앞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전문가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도 저에게 조언을 하지 않았죠. 왜냐, 저는 부동산학과에서도 강의를 하고 시청 건축과, 도청에서도 강의를 하고 공인회계사 모임, 재무설계사 모임에서도 강의를 하니까 제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겁니다.
아마추어보다 전문가가 더 위험한 게 있습니다. 사기를 가장 많이 당하는 직업군이 선생님, 공무원, 은행원, 군인, 경찰, 법조계 공무원, 연예인 등이라고 합니다. 평생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린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루에 7시간씩 공부하면 사하라 사막의 모래알만큼 있는 세상의 지식 중 모래 한 알을 알고 죽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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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는 건 어떤 면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전문가는 하나를 알고 아홉을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건지.
아니면 뭔가를 이뤄내서 마음이 높아져 있는 건지
늘 따져봐야 합니다. 섬세히 돌아봐야 합니다.
마음이 높아져 있을수록 사고가 날 확률이 높습니다.
내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면 더 조심하십시오.
때론 수혈이 필요합니다.
수혈은 나의 길과 반대되는 길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업무와 반대되는 것에서 수혈을 받으세요. 업무와 상반되는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수혈을 받으면 힘이 나실 겁니다. 그러면 하는 일을 좀 더 너끈히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침을 받으러 가고, 영업하는 사람은 영업을 당하러 가고, 무대에 서는 사람은 관객석에 앉아보세요.
남에게 피를 나눠주는 사람들은 반드시 새로운 피를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자기 피가 다 빠져 나가서 죽어버립니다. 저는 강의를 하고 나서 아예 말을 안 하거나 강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합니다. 제 나름대로 수혈을 받는 거지요.
쉬려고 일하지 마십시오.
일도 삶이고, 쉼도 삶입니다.
■ 감정의 변비를 해결하라
사람에게는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감정에도 배설이 필요합니다. 눈과 귀로 감정을 먹고, 좋은 감정은 소화시켜 마음의 영양분으로 삼고 나쁜 감정은 배설해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말해 ‘착한 사람’이 이 감정의 배설을 잘 못합니다.
‘나만 참으면 돼’ 하면서 자기감정을 억압하지요. 화를 잘 안 내는 겁니다. 유교문화권에서 성장한 여성들이 특히 잘 못합니다. “어디서 여자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자란 여성은 감정의 변을 보기 어려워합니다. 큰딸, 큰아들도 그럽니다. “네가 잘돼야 동생들도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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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의 변비에 걸립니다. 오도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여잔데, 나 큰아들인데, 나 신앙인인데’ 하면서 변을 계속 장에 쌓아놓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변비가 생기면 배설물이 마음의 장에 쌓여 점차 굳습니다. 소화가 안 되죠. 결국 어떻게 될까요? 일단 삶의 식욕이 없어집니다.
감정의 변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먼저 ‘나는 누구이니까, 똥을 싸면 안 돼’라는 그 마음을 없애십시오.
화가 나거나 기분이 언짢거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그것을 인정해 주십시오. ‘나는 그러면 안 돼’ 라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 억눌린 감정이 방귀를 참은 사람처럼 곧 티가 날 것입니다. 상대방도 ‘아, 저 사람은 참으면서 일부러 친절한 척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챕니다.
우리는 먹은 만큼 반드시 배설합니다.
그리고 배설해야만 합니다. 내가 배설한다는 것을 인정해주세요.
당신은 어디에서 배설하십니까? 당신이 방귀를 뀌어도 그것을 유머로 받아들일 친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럭키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방귀를 뀌어도 같이 장단을 맞춰줄 그런 친구가 있다면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배설해야 합니다.
감정의 배출에 어려움을 느껴왔다면, 일상의 소박한 여행부터 시작하십시오.
1박 2일도 괜찮고 한나절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십시오. 건물보다 자연이 있는 곳도 좋고, 건물이 있어도 인간의 예술작품이 있는 곳이 좋습니다. 음악, 미술, 사진, 무용, 무엇이든 좋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어도 충분합니다. 핸드폰을 끄고 혼자서 고요히 소박한 여행을 떠나 보십시오. 논길 같은 데를 걸어도 좋습니다. 작은 실천이 행동의 근육을 만들어 줍니다.
삶은 고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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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을 어떻게 빼 먹나요? 젓가락으로 파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려요. 바늘이나 이쑤시개 같은 걸로 빼내야 쏙 빠집니다. 큰 걸로 삶을 파내려고 하면 더 들어가 버립니다. 바늘처럼 얇은 것으로 삶을 파내야 합니다. 삶은 작은 용기와 실천으로 성장합니다. 내 집 앞, 아파트, 화단이 있는 곳, 집 근처 공원부터 시작하세요.
당신의 깊은 산속 옹달샘
깨끗한 물에 검은색 잉크를 떨어뜨렸습니다. 금세 검은 물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깨끗한 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물을 버린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습포지 같은 것으로 흡수시킨다지요? 한계가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깨끗한 물을 계속 부어서 물을 희석시키면 됩니다.
사람은 겸허한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깨끗한 물을 자신에게 부어야 합니다. 종교가 됐든, 책이 됐든 강연이 됐든 자신만의 깨끗한 물을 찾아서 부어주세요. 여러분의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아주세요. 그 깨끗한 옹달샘의 샘물을 내게 부어주는 겁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아가야 합니다. 목마를 때만 가서는 안 됩니다. 정기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넉넉해지실 겁니다. 좋은 물을 마시면 배설도 잘 됩니다. 배설하시고, 건강해지세요. 그리고 당신의 깊은 산속 옹달샘을 사람들과 나누며 사십시오. 방귀 잘 뀌시고 똥도 잘 싸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여기까지 참 잘 오셨습니다
■ 원 없는 삶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네다섯 살이 되면 신의 음성을 들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신의 대리인처럼 짧고 강렬한 말을 툭툭 던질 때가 있어요. 하루는 제 딸이 저에게 묻더군요.
“아빠, 아빠는 커서 뭐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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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빠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이 질문이 제게 상당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신의 음성처럼요. 그 말이 며칠 동안 뇌리에서 맴돌았습니다.
당신은 커서 뭐가 되고 싶으셨나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시나요?
애완견을 키우는 분들에게는 성대수술과 중성화 수술이 선택을 넘어 필수가 돼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 개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기에 적합한 개가 되어 가는 겁니다. 개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람 입장에서 판단한 것이지요. 이 개들은 평생 자신의 목소리로 짓지도 못하고 자신을 닮은 새끼도 낳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개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개개인의 마음속에는 생명의 씨앗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전, 꿈, 가치가 바로 그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생명의 씨앗을 스스로 거세해 버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도시에서 살기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거지요. 꿈을 포기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순응하면서요.
원 없는 삶을 산다는 것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원 없는 삶’입니다. 사람들에게 ‘원’이 생기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원이 쌓이면 ‘한’이 됩니다. 합쳐 말하면 ‘원한’이지요. 그렇게 원한이 생겨서 구천을 떠돌 듯 인생을 떠돌며 삽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혼이 바라는 것들을 거세하셨나요? 아니면 뭔가 불편하고 때로는 실수를 하고 어딘가 어색해도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나요? 그 소리를 따라가는 사람을 우리는 ‘살아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더 늦기 전에 크든 작든 당신의 원을 알고 당신의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 구석구석이 아파올 것입니다.
마른 사람은 점점 살이 빠지고 퉁퉁한 사람은 점점 살이 찔 거예요. 얼굴의 혈색도 당연히 없어지지요.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느껴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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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아니니까, 억지로 가는 직장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울고 싶은데 웃어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영혼 없이 자리만 지킨 채 앉아 속으로는 ‘다음 달에 제주도 놀러가야지’하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고생에 보상을 받고 싶어 하지요.
가장 최고의 여행은 자기 인생으로의 여행입니다. 자기 삶의 길을 걷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지, 스위스를 간다든지, 제주도를 간다든지, 이런 것은 떠나고 싶다는 마음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거 아세요? 우주로 간 사람은 많지만 지구의 심해를 탐험하러 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달에는 가고 싶어 하지만
심해, 자기 마음의 심해를 탐구하는 데에는 인색합니다.
내 삶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입니다.
■ 당신의 표정은 어떤가요?
발레는 중력에 반하는 동작이 많습니다. 아래로 떨어지려는 걸 위로 올리려는 점프 동작을 계속하는 거죠. 발레가 보기에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그 장면을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몸은 극도로 힘이 듭니다. 무대 정면을 향할 때에는 밝은 표정을 짓지만 뒤로 돌아서는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단장님은 “힘든 티 내지마, 힘든 티 내지마”라고 주문했습니다. 특히 무용수들이 동작을 할 때면 동작에 대해 지적하기보다 “표정! 표정 밝게!”라고 소리쳤습니다. 궁금해서 단장님께 물어봤습니다.
“단장님, 발레리나, 발레리노를 하려면 신체조건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저는 신체조건이 좀 안 돼도 표정이 있는 무용수를 뽑을 겁니다.”
아무리 신체 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동작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표정이 없으면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발레는 예술입니다. 예술의 완성은 표정입니다.
힘든데 힘든 티를 내지 말라고 하네요. 인생이.
사는 건 힘이 듭니다. 근데 삶은 내가 뭔가를 해보려고 할수록 힘들어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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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저항이 찾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뭔가를 해보려고만 하면 인생이 계속 저항합니다. 마치 무용수처럼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듦이 있어요. 자연스럽지 않은 게 있어요. 우린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자연스럽게 이뤄내고 싶은데 아등바등 해야만 원하는 걸 겨우 이룰 수 있어요.
속이 문드러져도 표정은 밝아야 합니다. 이게 인생이에요. 힘든 티 안내는 사람들이 뒤에서는 더 많이 웁니다. 더욱 티내기 싫은 사람은 오히려 남을 웃겨주려 합니다.
저희 집 뒤에는 산이 있습니다. 등산을 끝내고 에너지가 빠져나간 만큼 좋은 음식으로 몸을 채우는 순간만큼 든든할 때도 없습니다. 힘들게 뭔가를 해서 비워진 부분만큼 좋은 걸 먹으면 우리 몸은 더 좋아집니다. 하지만 무용수들은 힘들게 연습하고 좋은 음식도 배불리 먹지 못합니다.
착한 사람이 우울증 걸립니다.
어설프게 착한 사람이 마음의 병을 쉽게 앓는 것 같습니다. 자기 성격대로 표현하는 사람에겐 우울증이 잘 안 옵니다. 시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도 배울 만큼 배운 여자예요. 뭐 그렇게 대단한 아들 두셨다고 그러세요?”라고 말하는 며느리라면 속병 걸리지 않아요. 시어머니만 화병 걸리겠지요.
‘내가 할 말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식으로든 표출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강의만 했다면 정신적인 문제가 더 빨리 찾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강의를 잘 한다는 건 많은 사람의 눈치를 매우 빨리 본다는 뜻과 같습니다. 강연장에서 말하는 건 절대 편안하지 않아요. 편안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계속해서 청중의 눈치를 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어떤 분이 소외받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계속 뭔가를 하죠.
제가 대범해 보이지만 매우 소심한 거죠. 그게 어떤 상황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쉽게 찾아올 수도 있는 터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성향을 가진 분이라면 반드시 표출할 수 있는 다른 창구를 찾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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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요.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요리사가 그 냄새에 질려 정작 자기는 먹지 못하잖아요. 밝고 좋은 기운만 차려내다가 정작 자신의 영혼은 허기질 수 있습니다.
힘든 티 다 내고 살 수 없다면 마음에 좋은 것을 정기적으로 드세요.
힘든 티 다 내고 살 순 없잖아요. 인생이 그렇잖아요.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발레리나처럼 안 먹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힘든데 표정을 아름답게 지어야 하고 내 주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마음에 좋은 것을 정기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작은 역할이지만 영화배우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강의만 하다가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배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대사와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지에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강연 무대에서는 좋은 말로하면 ‘배려’지만 사실 센스 있게 눈치 보는 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제가 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도 그런 창구를 하나씩 마련하세요.
발레리나처럼 사는 건 힘이 듭니다. 평생 현역으로 사는 것도 힘이 듭니다. 세상에 뭔가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에 병이 생기고, 좋은 일을 하려다가 그로 인해 회의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다가 힘들면 잠시 주저앉아 있어도 좋습니다. 너무 급하게 벌떡 일어서려고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려고 하는 곳을 바라보는 그 시선만 놓지 않는다면요.
가장 좋은 걸 나에게 주십시오
사람마다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하려고 했던 일을 해야만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배웠던 일을 해야만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배웠던 일을 중간에 그만두면 더욱 잘 맞는 일을 찾으면 되는데 실패하고 도태됐다고 생각하는 거죠.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직장에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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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으니 내 인생은 실패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거죠.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적합한 행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요즘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은 스스로 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집을 분양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걸음걸이도 얼마나 당당한가요. 그런데 남편들은 그 반대죠. 기가 죽어 잔뜩 움츠린 채 ‘잠만 자고 얼른 나가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사람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개는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이 원래 서로에게 나누어야 했을 관심과 사랑을 개에게만큼은 한정 없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개에게는 성과를 바라지 않습니다. 배변만 가려도 칭찬하고 응원합니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예쁘다고 말해주고 목욕시켜주고 항상 웃어주고요. 그러니 개의 자존감, 스스로의 존재 가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의 상황은 나 자신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알아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거죠. 우리가 왜 좋은 책을 보고, 종교활동을 하고, 숲과 바다를 찾고, 명상을 할까요? 모두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알아주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챙기기 위한 마중물이 돼주는 것이지요. 삶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 두십시오.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나의 내면을 지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가장 좋은 걸 나에게 주십시오.
■ 삶에서 남는 장사를 하세요
한 해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 해가 지나가는데 올해 나에게 뭐가 남았지?’
뿌듯하게 한 해를 돌아보면 내게 남은 것들을 되새기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바쁘게 살았는데 남은 게 없어 분주하게 살았지만 이뤄놓은 게 없어’하고 힘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올 해 나에게 무엇이 남았나’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대학생활을 정말 바쁘기는 한데 남는 것 없이 보냈습니다. 졸업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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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고 보모님은 제게 도움을 줄 수 없고, 음악대학만 들어오면 뭔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 실력을 알게 되어 암담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 1년 동안 휴학도 하고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와도 이별하게 되었지요. 반복되는 고민으로 얻은 것은 상실과 초조함뿐이었습니다.
후일 내가 강의를 하게 되면서 근본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음대시절이었습니다. 교수님께 정기적 레슨을 받은 것, 1년에 두 번씩 오페라 제작에 참여해서 소품 만들기에서 주연까지 했던 것. 교수님께서 다른 사람을 레슨 할 때 어떻게 코칭하는지 곁에서 노트를 작성한 것, 지휘법 수업과 연기수업 받으러 대학로에 다닌 것 등이 큰 배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것만이 남습니다.
삶은 핑계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못 했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못한 것’은 남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것’만이 남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을 적어보세요.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근심하고 고민해서 남은 것은 더 나빠진 상황밖에 없고 정기적으로 받은 레슨만이 삶에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레슨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고, 학생이어서 해야 했고, 어렸으니까 해야 했습니다.
코에 코뚜레를 끼고 성장하는 어른이 되세요.
하루에 물 1.5리터 이상 마시기, 하루에 책이나 영화대본 30분 이상 보기, 하루에 30분 이상 운동을 주 5회 하기 등등, 직원들에게 같이 하자고 해 놓고 안 할 수 없으니 70% 이상은 실행하고 있습니다. 어려분도 이런 리스트를 작성해 보세요. 어쩔 수 없이라도 하기 위해서 말이죠.
무언가를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자신의 코에 코뚜레를 끼는 방법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성징은 하지 않고 머리만 커진 이상한 어른이 되고 맙니다. 어쩔 수 없더라도, 불편하더라도, 성장하기 위해 코뚜레를 끼우세요. 그렇게 성장하는 어른이 되세요. 그게 우리 삶에서 가장 남는 장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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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싶다면, 선생님을 찾고 배우십시오.
자신에게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좋은 책이나 선생님을 믿으세요. 신뢰할 만한 기관이나 단체, 멘토를 두고 그분을 따르세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의 분별력이 생기면, 그때는 우리의 빛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대학교 시절에 만난 교수님이 계십니다. 동기들은 예술고등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다가 입학한 갓 스물의 친구들이었는데, 저는 공업고등학교에서 납땜을 하다가 입문자용 바이엘을 겨우 치는 수준에, 나이도 스물다섯이었거든요.
눈과 어깨에 함을 딱 주고 노래 부르는 제 모습을 보시고, “놔 놓고 해.” 저는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투덜거렸습니다.
하루는 가을이었고, 학교 캠퍼스가 참 예뻤습니다. 교수님께서 창밖을 가리키며, “창옥이, 가을 보여?”라고 물으시더군요. 저는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수업을 진행하시기를 바랐지요. “너는 지금 노래를 아무리 해도안돼. 노래는 보여주는 게 아니야. 보여 지는 거지. 노래는 들려주는 게 아니야. 들려지는 거야. 창옥아 나가서 가을을 보고 와.” 저는 또 어리둥절하면서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왔지요.
그렇게 다음 해가 되자, 드디어 가을이 보이더군요.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좋아지면서 목소리도 함께 좋아졌습니다.
지난 어느 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제 몸에 들어와 발현되더니 그제야 선생님이 보이기 시작했고 선생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사람들을 안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변화하는 것을 돕고 싶다.’ 그렇게 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마치 항해사가 빛나는 별을 보고 나의 위치를 정하고 내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 인생에 스타가 필요합니다.
‘빛나는 별’
그것을 보고 내 위치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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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 근육 키우기
주제넘지만 강의 잘하는 비법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영업을 잘하는 방법과도 비슷합니다. 사실 저는 제 강의를 한 번도 강의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전공 교육자도 아니고, 제가 전달하는 콘텐츠가 남들이 전혀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다 알 법한 이야기, 일상에서 어느 정도 봤고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강의를 수천 번 했지만 제가 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경험한 이야기, 함께 공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흔히 ‘유통’되고 있는 거지요. 즉 강의나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감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감정, 그 근육을 키워보세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은 ‘감정근육’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감정근육, 감정근육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로만 사람을 만납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자신의 ‘지금’ 감정 상태로만 사람을 대합니다. 그렇게 감정대로 행동해 놓고 본인은 이것을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 리액션이 좋은 사람
굉장히 간단한 기술인데요. 사람들은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과 중장기적 관계를 가지려 합니다. 여기서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콧소리 가득 넣은 애교 섞인 말을 하려는 게 어닙니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리액션’이 좋다는 걸 뜻합니다.
남편이 “여보 오늘 매운탕 먹을까?”라고 했을 때, 매운탕이 먹기 싫으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어떡하지? 집에 마땅한 재료가 없네”라고 말하면 됩니다. 이런 리액션은 ‘내가 너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다만 상황이 안 좋을 뿐이야’라는 의미를 전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생활에서도 사회생할에서도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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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고,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리액션이 좋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감정 근육입니다.
감정근육이 좋으면 감정의 저항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질적인 인간의 사회활동이고, 인간관계의 비밀입니다.
가령 고객이 나를 거부해도 다가가는 사람이 있어요. 감정 근육이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감정 근육이 좋지 않은 사람은 고객이 날 외면했다고 속으로 구시렁댑니다.
근육을 못 쓰면 저항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오른쪽 손목을 다쳤어요. 오른쪽 손목 관절이 상해서 근육을 못 쓰니 오른손만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균형 감각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강연 마이크를 드는 가벼운 저항도 이기질 못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 감정은 다양한 이유로 다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고, 어린 시절 한창 예쁨 받아야 할 때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내 존재를 깎아내리는 말을 들었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감정근육이 상처받으면 본능적으로 감정근육을 사용하는 걸 싫어하게 됩니다.
감정근육 재활운동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감정이 상할 때가 올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미움받을 수 있겠죠. 때로는 나 지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내가 정말로 원하던 일이 안 될 수도 있고요. 이 모든 것이 가정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감정이 어그러지는 순간, 의도치 않은 일을 홧김에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거지요. 정리가 되고 나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일이었어요. 내 마음이 누그러지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일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화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사랑마저 강한 분노로 바꾸어 버립니다.
지금 당신의 감정은 어떠한가요? 당신의 감정은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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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감정 근육이 상처받아 힘들다면 이 점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운동 선수에게는 근육 부상이 가장 치명적이지만, 그렇게 찢어졌다 붙었다 하며 더 강한 근육을 만들기도 합니다. 근육이 다쳤을 때 내가 왜 다쳤을까. 어디가 다쳤을까를 알아내고 재활운동을 하고 치료를 하면 더 강한 근육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감정의 팽이치기
감정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합니다. 팽이를 돌릴 때랑 똑같습니다. 팽이가 잘 돌아가지 않고 쓰러질 것 같을 때는 힘껏 쳐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팽이가 돌아가면 편안하게 놔두어야 하지요. 계속해서 팽이를 치면, 되레 쓰러지고 맙니다.
감정도 삶도 완급 조절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팽이가 돌아가면, 편안하게 가세요.
■ 진정한 휴가를 떠나십시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에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충전이 됩니다. 좋아하면 집중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기도하거나 명상할 때 인간의 뇌파와 호르몬은 상당히 안정됩니다. 최근 뇌과학자들은 명상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뇌파와 호르몬이 안정되는 경우가 바로 ‘감사함을 느낄 때’라고 밝혀냈습니다. 고맙다고 느낄 때, 비가 오더라도, ‘아, 눈 내리는 풍경이 참 좋네’라고 말할 때 인간의 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우리는 좋아할 때 집중합니다. ‘집중’을 쉽게 풀어 말하면, 몸도 여기 있고, 마음도 여기 있는 겁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있는 상태지요.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때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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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바닷가에서 자란 까닭인지 자연에 있을 때, 동물을 만날 때,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를 좋아합니다. 이럴 때 충전이 되지요. 그런데 인간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했다고 착각하는 오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걸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던 거죠.
강의를 위해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도로 옆 시골 마을을 보며 ‘아, 저기 참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브레이크를 밟거나 방향을 틀지는 못합니다. 바쁜 일정만 소화하고 올라오기 일쑤지요.
어딘가로 향하는 큰 도로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은 도로로 오는 데 걸린 시간이 10년, 대단한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거리도 아닌데 왜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오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걸까요? 저는 왜 충전이 이토록 어색했을까요?
어린 시절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는, 비가 와서 일이 없는 날이 휴가였습니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노름을 하고 어머니와 다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비오는 날, 눈 오는 날은 다 슬픔이었고 어린 창옥이의 무의식에 ‘휴가’는 곧 불안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어린 시절에서 이미 멀리 벗어났으면서도 두려웠나 봅니다. 차로 1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오는 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었으니.
남해에서 머문 펜션에 이런 시가 적혀 있더군요.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아, 내가 충전이 두려웠구나. 여유가 낯설었구나.’
그걸 깨달은 것이 최근 제 삶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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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일하면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억울해 지고. 화가 납니다.
우리 모두 휴가 갑시다. 지금 바쁘다고, 아니면 저처럼 휴가가 낯설어서 안 가시면 나중에 인생이 억울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곤 이렇게 생각하겠죠. ‘난 제대로 된 휴가 한번 간 적 없어. 죽어라 일만 했어. 아이만 봤어. 나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돼.’
하지만 내가 없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갑니다. 죽을 둥 살 둥 해봐야 들려 오는 건 험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럼 인생 참 억울해 집니다.
혹시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잘 삐치나요?
그건 힘들고 슬프고 외롭다는 표현입니다.
지금 뭔가 화가 나고 억울한가요?
그건 당신도 힘들고 슬프고 외롭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 내 마음에 툇마루가 있다면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 설계를 하는 젊은 건축가 백희성 씨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들려준 건축 이야기 속에서 몇 가지 사람의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건축에는 사람의 기를 죽이는 건축이 있다고 합니다. 일단 출입문의 높이를 높이면 사람이 위축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더군요.
“저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하고 싶지, 사람의 기를 죽이는 건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주로 회장이나 사장이 건축을 의뢰한다고 해요. 사전 미팅에 가서 건축주에게 먼저 부탁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물건이나 가구가 있다면 그걸 보여 달라고요. 건축주의 취향을 파악해 설계하려는 의도지요. 그러나 대부분 딱 잘라 답한다고 합니다. “그런 건 없어. 내가 프랑스 잡지를 봤는데 이 집이 마음에 드네. 이렇게 해주게”라고요. 그러면 그 친구는 “저는 조수가 아닙니다. 저는 건축가입니다. 저는 건축주와 상의해서 건축주가 원하는 세계를 구현하고 싶지 잡지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집을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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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입니다.
백희성 건축가가 회장실의 특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회장실은 일단 굉장히 넓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넓은 공간에 회장 책상과 의자만 있습니다. 마치 ‘보고 했으면 얼른 나가’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넓은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마음 편히 앉을 의자가 없어서 서 있어야 하니 불안 하지요. 저는 지금까지 공간의 넓이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잠시 앉아 쉴 의자를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당신 안에는 당신이 쉴 의자가 있나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잠시 와 쉴 의자가 있나요?
편히 앉을 의자 하나 없는 공간만 넓은 마음이라면……황량한 인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당신 안에는 다른 이가 앉을 의자가 있나요? 어차피 다 손님입니다. 자식도 손님, 남편도 손님, 아내도 손님, 부모님도 손님, 친구들도 손님입니다. 내 마음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한 의자가 충분히 있나요? 아니, 그 전에 나 자신이 앉을 의자는 마련되어 있나요? 저는 제가 앉을 의자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간은 꽤 넓어졌지만, 정작 내가 편히 앉을 의자는 없더군요.
그 친구는 덧붙여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 한국의 건축 문화 중에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툇마루입니다. 방과 마당 사이에 있는 좁은 마루, 툇마루 말입니다. 사람들이 남의 집에 오자마자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기가 불편하잖아요. 그러니 신을 신은 채로 이 툇마루에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마음이 열리면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게 한국의 건축 철학입니다. 주인과 손님 모두를 배려하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거지요.”
사람의 마음에도 툇마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 돌아보세요. 내 마음에 툇마루가 있는지 없는지. 나 자신이 쉴만한 공간이 있는지, 그리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 잠시 앉아 쉬었다 갈 공간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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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반갑지 않은 손님도 찾아옵니다. 권태도 손님, 무기력도 손님, 열정이 식는 것도 다 손님입니다.
힘들고 지친, 부정적이고 어두운 손님이 찾아올 때 우리 마음의 툇마루에 잠시 앉았다 가시라고 하세요.
“더우니까 얼른 들어와.” 상대방을 배려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바로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당신의 아이가, 당신의 연인이, 배우자가, 동료가 당신 마음 앞에서 머뭇대고 있다면 기다려줘야 합니다. 내 마음 공간 넉넉하니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도 툇마루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공간이 있고,
편하게 쉴만한 의자 한 두 개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는 툇마루를 놓아두고요.
■ 집주인과 세입자
‘편안’과 ‘평안’은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평안한 상태가 있고, 편안한 상태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면 편안해 집니다. 집안 일하는 전문 인력을 둘 수도 있고, 가전제품을 더 편리한 것으로 바꿀 수고 있지요. 차도 더 좋은 것을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편안이 반드시 평안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전보다 훨씬 편안해 졌는데 평안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반면 불편해졌는데, 평안할 수도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상태가 아마 최상이겠지요.
삶에는 집주인처럼 사는 삶과 세입자처럼 사는 삶이 있습니다.
삶의 집주인은 안 보이던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사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장은 회사에 문 열고 들어오는 순간 시정해야 할 부분들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직원 눈에는 어제에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터일 뿐이지요. 갑자기 사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장이 보는 걸 보는 사람은 사장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직원일 때부터 사장 눈에만 보이는 것을 같이 보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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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만 들리는 것을 같이 듣습니다. 사장 말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살면 다른 것들이 보이고 들린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새롭고 신비로운 존재가 됩니다.
내 삶을 월세로 살지 마십시오.
세상을 월세같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얹혀사는 사람, 배우자나 자식에게 얹혀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습관이 돼서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자꾸 누군가에게 얹혀살려고 합니다. 조금 모자라도 내 힘으로 살면 좋은데 그 습관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삶은 소중합니다. 당신의 삶을 월세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집의 주인이거든요. 관리, 우리가 하는 겁니다. 주인으로 사는 게 언뜻 불편해 보일지 몰라도, 주인으로 사는 삶이 편안합니다. 월세처럼 살면 눈치 보며 사는 거지요.
때로는 집주인처럼 살고, 때로는 세입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고, 또 때로는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 70년, 80년 전세 살다가 가는 거지’라며 마음을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식도 잠시 나에게 온 겁니다. 전세 들어왔다가 곧 스스로 독립할 겁니다. 그렇게 보면, 내게 오는 모든 관계가 귀한 손님입니다. ‘내 거다’ 라는 집착이 사라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집 주인으로 살고 있나요.
세입자로 살고 있나요.
우리 삶은 주인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세입자처럼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인처럼 살아야 할 때 주변인 마냥 빙빙 삶 주위를 돌고 있지는 않나요? 주인처럼 안 살다가 정작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때 주인 행세 하느라 내 마음, 남의 마음 가릴 것 없이 상하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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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처럼 살 때와 세입자처럼 살 때를 스스로 구분할 수 있을 때 괜찮은 삶이 시작됩니다.
■ 불우한 나를 도웁시다
잘하는 건 매우 간단합니다. 다만, 알면서도 하지 않은 거지요.
저는 20년 가까이 노래를 했는데도 노래를 하라고 하면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불편한데 왜 저는 졸업하고 10년 넘게 시간과 돈을 들여서 레슨을 받았을까요? 가만 보니, 노래를 정말 잘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더군요. 첫째 정확한 음정, 박자를 알아야 합니다. 음감이 머리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성악가는 주로 외국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그 나라 말의 뉘앙스를 알아야 합니다. 감동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 노래할 때 사용하는 근육들을 운동선수처럼 계속 훈련해야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를 하나도 안 했더라고요.
약간의 재주를 갖고 흉내 내서 입시를 통과하고 시립합창단에도 흉내 내서 들어간 거예요. 저는 언어를 모릅니다. 이탈리아 노래는 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 말은 모릅니다. 곡만 외웁니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 노래 속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저는, 소리 내는 근육을 별로 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딱 거기까지인 것입니다. 정말 잘하는 음악가가 못되는 거죠.
내가 가고 싶은 지점은 저 높은 곳인데 그곳으로 가기 위한 대가는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그렇다면 그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기왓장 봉납만 열심히 합니다. 예수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헌금만 열심히 합니다. 십일조도 합니다. 졸아도 교회에 가서 존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자기가 자기를 도와 줘야 할 부분은 안 도와주고 세월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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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신이 나를 도와준다 해도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그 힘이 나에게 올 수 없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나를 도와줘도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그 힘이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수십억을 상속해 줘도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그 돈은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나를 먼저 도와줘야 합니다.
저같이 사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해야 할, 정작 도와줘야 자기 자신을 돕지 않는 거지요.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 앞으로도 피아노도 배우고, 근육 훈련도 하고, 이탈리아 말도 배울래? 아니면 계속 이렇게 레슨만 다닐래? 계속 레슨만 할 거라면 이제 노래를 그만둬라. 무엇 때문에 10년을 붙잡고 있냐. 그 자존심은 뭐냐.”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악은 그만하자. 이제 놔줘야 되겠다. 10년의 자존심을.’
당신은 무엇을 10년 동안 붙잡고 있었나요?
그리고 왜 그걸 놔주지 않고 있나요?
여러분도 힘든 거 좀 놔주십시오. 삶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저희에게 내일을 약속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지 모릅니다.
당신은 뭘 그렇게 오랜 세월 붙잡고 있으신가요?
이미 당신을 떠난 사람입니까?
아니면 당신을 떠날 것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자존심 입니까?
당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을 놔주십시오.
정말 그것을 해야겠다면, 당신 자신을 도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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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콩고기로 대접하라
아이를 낳고 길러본 부모들은 잘 아실 겁니다. 세상에 날 때부터 골고루 잘 먹는 아이는 없다는 것을요. 아이가 어릴수록 다양한 맛보다는 달콤한 맛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을 잘 안 먹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부모는 영양상 먹어야 할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합니다. 가령 채소 같은 것을요.
제가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 프랑스에 있는 한 수도원에 갔습니다. 절에서 하는 수도원이었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든 가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승려가 아닌 일반인도 많이 방문하니 식단이 죄다 풀뿐이면 장기간 머무는 일이 어렵고 그렇다고 절에서 고기를 줄 수는 없고 그래서 나름의 방법으로 콩으로 만든 고기를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 딸이 채소도 안 먹고 두부도 안 먹으니 그때의 콩고기가 생각났습니다.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아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있습니다. 어렸을 적 깍두기를 먹다가 목에 막혀 토를 했는데 아이들이 그게 더럽다고 놀리자 그 이후 그는 평생 깍두기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깍두기를 잘 먹지 못합니다.
한 친구는 어렸을 때 형들이 우악스럽게 김치를 먹으러고 한 기억 때문에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김치를 먹지 않습니다.
“이거 너에게 꼭 필요한 거야. 근데 왜 안 먹어?” 내가 삶에서 꼭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타인의 입에 강제로 넣지 마세요.
가만히 보니, 제가 그렇게 살았더군요. 강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항상 유머러스한 말을 하려하고, 강연 중에 밝은 표정을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따로 관리고 받고, 강연 전날에는 크게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에너지를 모아야 하니까요. 메시지도 조심스럽게 전할 뿐이지, ‘반드시 이렇게 사십시오’ 하면서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랑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깍두기를 억지로 먹이는 성향이 있습니다. 삶에 좋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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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생각되는 것들을 강요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말 들어. 나는 너에게 좋은 것만 주는 거야. 내 말대로 하면 잘 되게 되어 있어.”
내가 왜 그렇게 하고 사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모르거든요. 자신이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태도자체를요. 사람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사람은 바뀌기도 합니다. 첫 걸음은 거울에든 빛에든 자신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삶의 거울을 보십시오. 나를 보고 ‘내가 이렇게 사는구나. 내가 이렇게 살아서 내 얼굴이 이렇게 됐구나.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은 이거구나’하고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거 나누시고 싶으시다면, 콩고기로 준비하십시오.
나를 지키면서 남을 배려하세요.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세요.
플라톤은 자식에게 체육과 음악을 함께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체육만 배우면 몸에 근육만 생겨 짐승처럼 된다고 하면서요. 근육이 강해진다는 건 힘이 세진다는 거잖아요. 그것을 컨트롤하는 건 지식이 아니라 감성입니다. 그런데 음악만 하고 체육을 안 하면 아이가 유들유들해집니다. 균형을 위해서 근육과 감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 말도 잘 씹어 먹어야 소화가 됩니다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인사말이 있습니다. 인도의 인사말 ‘나마스떼’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아프리카 마사이 족은 자신의 침을 상대방의 얼굴에 뱉는다고 하죠. 그리고 그것을 닦아내면 환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닦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안녕’이라고 인사하는데 이 인사는 평안한지, 별일 없는지, 괜찮은 지를 묻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인사말을 보면 왜 그 말을 사용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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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 “별일 없으시죠?”라고 인사했던 것은 별일이 너무 많은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고, “식사하셨어요?” 라고 인사했던 것은 밥 먹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절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사말은 반가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말도 씹어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치아가 좋지 않으면 치아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제대로 씹지 못하면 뇌로 올라가는 혈관에 혈액이 잘 공급되지 않아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전체적으로 기능이 떨어집니다.”
장수하는 어르신들의 특징 중 하나가 치아가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잘 씹는 건 그만큼 중요합니다.
음식을 씹는 것도 씹는 거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말을 씹어내는 힘인 것 같습니다.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었다는 말처럼요. 어떻게 하면 잘 씹어 소화시킬 수 있을까요?
마음의 양치질을 하십시오. 내가 씻을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씻으십시오.
사람의 몸 안에는 많은 세균이 있다고 하죠. 건강할 때는 세균이 입속 환경과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피곤하거나 양치를 게을리 하거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균형이 깨지면서 세균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양치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때 다른 것들을 다 지워버립니다. 다른 생각이 안 듭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죠. 이것이 마음의 양치인 것 같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과정을 먹으며 찌꺼기를 쌓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것, 돈을 번다는 것, 아이를 낳는 다는 것,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 이 피할 수 없는 일들을 할 때 마음이 찌꺼기가 생깁니다. 심지어 사랑을 할 때도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찌꺼기가 낍니다.
그 찌꺼기가 부드러울 때 얼른 씻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그때 마음의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찌꺼기가 쌓여서 그것이 치석이 되고 잇몸을 상하게 하고 치아를 망치고, 나중에는 입안에 있는 모든 세균의 균형을 깨뜨려 오염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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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만남’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책이나 강연을 접하는 것도 좋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강연을 보십시오. 그렇게 작은 경험을 만나고 찾다보면 알음알음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절대 처음부터 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관심이 생겼다면 일단 그것을 해보는 겁니다.
아무리 남이 엄청난 걸 해놓았다 해도
자기가 자기 손으로 일군 것이 경이로운 법입니다.
자기 손으로 일구십시오.
아주 작은 일이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것이
재미의 집중을 찾아줍니다.
■ 삶이 가장 맛있을 때
제 강연을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은 삶이 잘 풀리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들이 아닙니다. 삶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관계가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만 갈 때, 뭔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찾아오십니다. 이럴 때 팁 하나 줄 수 없느냐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음식에 비유해 답변을 드리곤 합니다.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었나요?
생각해보니 저는 라면을 먹은 세 번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2교시가 끝나고 빛의 속도로 매점으로 뛰어가 후루룩 먹은 육개장, 두 번째 라면은 군복무 시절 먹은 ‘뽀글이’ 세 번째는 아프리카에서 먹은 라면입니다.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제일 힘든 게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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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맛있게 먹은 세 번의 순간을 살펴보니 상황이 유사하더군요. 고등학교 때, 군대에 있을 때, 아프리카에 있을 때의 공통점은 모두 몸에 기름기가 쫙 빠졌을 때였습니다. 아무리 밥을 맛있게 준다 해도 군대 음식은 밖에서 먹는 음식하고는 그 기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을 지내는 동안 기름기가 쪽 빠졌었습니다.
삶의 기름기가 빠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는 위험한 기회입니다.
위험한 기회, 그래서 ‘위기’라고 하는 겁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이곳에서 숨은 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고급 음식을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느끼지만 제 경험상 음식이 정말 맛있을 때는 몸에 기름기가 없는 경우였습니다. 어쩌면 삶의 기름기가 빠진 위기의 순간은 삶의 맛을 가장 맛있게 느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내 영혼의 목소리는 마음의 기름기가 없을 때 더 잘 들립니다. 책을 보고 강연을 들어도 그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어옵니다. 마음이 풍족하여 기름기가 좔좔 넘쳐흐르면 그런 이야기가 잘 안 들어옵니다. ‘인생의 말’은 우리 마음에 기름기가 말라버렸을 때 더 잘 흡수됩니다.
기름기가 없는 순간에 세상을 원망하고 화를 내고 내내 불편해하면 기름기도 빠지고 맛도 못 느낍니다. 둘 다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느껴야 하는 데 불평불만만 하다 모두를 놓칩니다. 참 희한하게도 원망만 하면 안 좋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진짜 그렇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삶에 기름기가 빠져 있다고 생각되면 일단 먼저 숨을 고르십시오.
삶이 맛있는 사람이 있고 삶을 그냥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간 맛있어지겠지, 하며 맛도 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으며 삶을 ‘그냥’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지나가면 다 좋아질 거야. 지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하며 지금을 살지 않고 그다음 시간만 고대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애가 조금만 크면 편해질 거야’, ‘제대만 하면 다 좋아질 거야’, ‘합격만 하면 다 해결될 거야’하고 말이죠.
지금 이 순간의 삶의 맛을 느낄 수 없다면, 다 헛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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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삶을 살 수 없으면 나중에도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금 여기밖에 없다.’ 하버드대학교 화장실에 써 있는 낙서입니다.‘
지금을 사세요. 지금의 시기를 잘 사세요. 소중한 우리의 삶을 스스로 속이고 자꾸 뒤로 미루면 삶은 결국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비록 힘듦이 있는 삶이더라도, 맛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격이 있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살라 ]
우리는 살면서 떨어지고 또 떨어집니다. 일도, 인간관계도, 사업도.
지금 당신도 뭔가에 자꾸 떨어지고 있다면 마흔 번은 해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하려 합니다. 이 끝이 어딘지 가보고 싶습니다. 힘이 들겠지만요.
오디션에, 혹은 내가 원하는 곳에 합격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내 삶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디션을 준비하는 시간은 소중하지 않나요? 목표를 위해서만 준비하는 시간, 합격 이전의 삶은 내 삶이 아닌가요?
■ 에필로그
저는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께 졸리면 주무시라고 말씀 드립니다. 메모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 단 한 줄이라도 마음속에 남은 말이 있다면 전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게 참 비슷합니다.
그런데도 진실하게 꺼내 놓기가 너무 힘들지요.
살다보면 장마도 찾아오고 곰팡이도 피어날 것입니다.
가끔씩 나를 햇볕에 말리면 좋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삶의 곰팡이를 꺼내 햇볕에 쪼이고 바람도 통하게 해 주십시오. 책을 덮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사람도 찾으십시오.
마음을 산책 시키십시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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