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식 Why? 사고법

2017. 1. 10. 17:05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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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식 Why? 사고법

-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 이시즈미 간지 지음

0 1974년 교토 생, 교토대학 재학 중 국가공무원 상급시험과 사법시험 합격

0 하버드대 로스쿨 석사, 박사

0 펜실바니아 대학 증권법 석사

0 현재 도쿄 치요다 국제경영 법률사무소 대표

0 베를린 레이든 이시즈미 법률사무소 대표

0 국제 변호사

0 저서 : 파이널 크러시, 일본인이 모르는 유대인, 유대인의 성공철학,

탈무드 금언집, 유대인들만 아는 부의 법칙

■ 권혜미 옮김

0 대학에서 건축공학 전공

0 바른 번역 아카데미에서 일본어 번역 전문 과정 수료

■ 시작하며 : 유대인이 뛰어난 사고력을 가진 이유

우리 동양인과 유대인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정서적, 현상적, 구체적, 세부적, 부분적이고 후자는 논리적, 본질적, 추상적, 전체적, 총체적이다.

비유하자면 동양인은 ‘형체의 민족’이고 유대인은 ‘사고의 민족’이다. 즉 동양인은 ‘눈에 보이는 것에 정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유대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추상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이치만 따지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업계와 증권업계, 할리우드는 물론이고 최근 IT업계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창업자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이고, 노벨상 수상자의 30~40%는 유대인이 차지하고 있다.

왜 유대인은 뛰어난 자적 생산 능력을 자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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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한 번만 식사를 같이 해 보면 그 이유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나의 본업은 유럽을 본거지로 한 국제 변호사이고, 과거 유대교로 개종하면서 유대인이 되었다. 현재는 유럽에 살고 있다.

유대교에는 코셔라고 불리는 엄격한 식사법이 있다. 율법에 의거한 합당한 음식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대부분 외식을 하지 않는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도 먹는 음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다지 즐거운 식사 자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민족들끼리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모이면 돌연 토론이 시작된다.

유대인에게 의견의 차이는 당연한 일이다. 유대인들은 이른바 반론을 대환영한다. 토론은 일종의 예술이고, 토론과 논쟁은 대뇌를 단련시켜 두뇌를 좋게 만드는 ‘Wisdom(지식)’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유대교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debating(토론)’이다.

토론은 대부분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에 관한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는 잘 알려진 대로 유대교의 경전으로 약 3,000년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세계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탈무드는 주로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 율법과 히브리 학자들의 토론을 집대성한 책으로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규범과 그것에 관한 토론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다. 약 1,500년 전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 되었다고 한다.

논리적인 이야기를 싫어하고 “이 새우튀김은 정말 맛있어.”라든가 프로야구나 예능 기사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들과 벌이는 토론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의 지적생산 능력이 뛰어난 이유는 그들이 ‘토론하고 사고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더욱 더 자세히 말하면 ‘왜(Why)’를 철저하게 생각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두뇌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가장 많이 움직인다. 감동하고 있을 때도, 화내고 있을 때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이 뛰어난 사고력을 자랑하는 이유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토론을 좋아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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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사고의 샘플 - 유대인은 4차원으로 생각한다

<토론샘플 A>

- 토론을 벌이지 않는 나라는 쇠퇴한다. 토론을 벌이지 않는 나라에서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토론을 벌이지 않는 나라는 진보하지 않는다.

- 토론이란 분위기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다. 토론이란 분위기를 깨드리는 것이다.

<토론샘플 B>

"일본의 외화준비액은 세계 최고이며, 그 양은 147조 엔에 달한다. 따라서 일본은 재정 파탄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 논법은 정당할까?

나는 이 논법에서 일본은 파탄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별 금 점유율을 보면, 일본의 금 보유율은 가장 많은 미국이 74.0%인데 반해서 2.5%로 매우 낮기 때문이다.

금은 모든 경제 가치의 원천이고 나아가서는 국가 존립의 원천이다. 따라서 금이 없는 외화준비는 아무 설득력이 없다. 이런 정도의 반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토론샘플 C>

“국가와 개인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지폐와 주식이 필요할까, 아니면 금은보석이 필요할까?”

유대인은 토론을 벌일 때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현재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몇 천 년이나 되는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역사 속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

유대인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적 사실, 경제적 사실, 통계적 사실 등 모든 사실을 찾아본 후 판단한다.

한편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론가가 말했으니까.’ ‘TV에서 말했으니까.’ ‘잡지 또는 신문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까.’라며 항상 현재의 분위기에 좌우되어 사물을 판단한다.

4차원적 사고란, 몇 천 년이라는 역사를 되짚어 보고 그 역사에 기초해 현재를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4차원적 사고란 어떤 의미에서는 신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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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토론을 피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근본을 생각하고, 토론을 벌이는 것 외에는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다. 우리는 개인도 사회도 국가까지도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주의다.’ ‘협조가 부족하다.’ ‘괴짜다.’ ‘독특하고 이례적이다.’라는 말을 들어야만 한다.

Lesson 0 지금 우리가 키워야 할 사고력이란

모든 것은 의문에서 시작된다

■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0 초끈이론의 권위자 미치오 가쿠라는 물리학자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고등 학교 때부터 천재로 소문났고 히브리 성서 주일학교에 다녔다.

6세 무렵 주일학교 선생에게 물어본 질문이다.

어린 가쿠 : “신의 엄마는 누구예요?”

선생 : “신에게 엄마는 없지 않을까?”

어린 가쿠 : “그럼, 신은 도대체 어디서 태어난 걸까요?”

유대교의 핵심은 ‘질문’이다. 유대인은 질문하는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린 가쿠처럼 선생의 가르침이나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그럴까?”하고 의문을 던져 볼 수는 없을까.

신이 지구를 창조할 때, 태양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놓았기 때문에 지구에 생명이 탄생할 수 있었고,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화성처럼 얼어버렸거나, 너무 가까웠더라면 금성처럼 뜨거운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가쿠는 이런 의문을 끊임없이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의문이 어린 가쿠를 우주물리학자로 이끌었고, 후에 천재 물리학자가 된 배경이 되었다.

■ 모든 것은 의문에서 시작된다

“왜?”라는 질문이 모든 사고의 발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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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서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말한다. “원숭이는 왜 펭귄으로 진화하지 않고 사람으로 진화한 거지?”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면 바퀴벌레로 진화했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이런 의문을 품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훗날 훌륭한 생물학자가 나올지 모른다. 예를 들어 “신의 엄마는 누구일까?”, “왜 원숭이는 펭귄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하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우리나라의 선생과 학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이상한 질문’을 한다며 진지하게 대답하지 않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더 나아가 수업을 방해 한다며 ‘문제아’낙인을 찍을지도 모른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막으려고 하지 말자. 의문을 막으면 사고도 정지하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에 나오는 설화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리고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녀에게 묻는다. 자녀가 대답을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부모는 또다시 질문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스스로 대답을 찾아내려고 열심히 생각을 한다.

아이들의 사고력은 부모와 토론을 통해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것. 우리는 우선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고력은 언제라도 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두뇌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의문이라도 좋다. 의문을 품지 않으면 사고는 정지한다. 유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자유로운 사고와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교과서처럼 탈무드를 읽는다.

PART 1 준비편 - 사고정지 상태에서 탈출하자

Lesson 1. 모든 것을 토론의 대상으로 삼자.

비판적 사고를 위한 기본

Practice 1. 물은 왜 투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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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중에, 어린 자녀가 컵 속의 물을 보고 “물은 왜 투명해?”라고 묻는다면 부모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 토론을 피하고만 있지는 않은가

“하늘은 왜 파란색이야?”, “새는 어떻게 하늘을 날아?”, “달은 왜 밝아?” “아저씨들은 왜 수염이 있어?”

아이들은 호기심이 왕성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흥미를 갖고 ‘왜?’. ‘어째서?’라는 질문을 한다.

‘물은 왜 투명해?’라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1) “식사 중에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야 떠들지 말고 빨리 밥이나 먹어” 라며 주의를 준다.

2) “물이니까 당연히 투명하지.”라며 물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3) “너는 왜 투명할 거라고 생각해?”라고 다시 질문하며 자녀와 함께 생각해 본다.

여기서 1)과 2)를 고른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사고가 정지 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 상식이라는 사고 정지 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굳이 깊이 사고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상식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일, 사회의 통념에는 일일이 의문을 품지 않아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일이 잘 해결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변사람들과 조화가 깨지고 다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왜?’라고 질문하면 “정말 피곤한 사람이야.”, “어른이 돼서 분위기 파악도 못하나.”라며 눈총받기만 할 뿐이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식사할 때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하고 식사예절을 질책하거나 “물이니까 당연히 투명하지.”라며 토론을 차단해 버린다. 이러한 태도는 모두 사고 정지 상태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 사고 정지가 초래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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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고 정지 상태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하나의 예가 2003년에 일어난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공중폭발 사고다. 컬럼비아호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기체가 폭발하면서 우주비행사 7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이 사건은 사고 정지가 초래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컬럼비아호 사고는 왜 일어났을까?

그 사고는 토론을 경시한 현장 분위기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물론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륙 시 기체에서 떨어져 나온 발포 전열체로, 우주왕복선 왼쪽 날개에 구멍이 생긴 것도 밝혀졌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컬럼비아호 우주비행선은 이륙하고 2주 후에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했다. 즉 기체 폭발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때 나사 내부에는 대참사의 위험성을 감지한 엔지니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주왕복선에 생긴 문제를 확인하고 수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상부에서는 엔지니어의 말을 기각해버렸다. 과거에 쏘아올린 우주왕복선에서도 발포체가 새어나와 기체에 손상을 준 적이 있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위험성을 제기한 엔지니어의 발언은 그 자리에서 무시되었고, 토론으로 발전되지 않았다. 그렇게 토론을 무시한 태도가 결과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 사고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

컬럼비아호 참사와 대조되는 것이 아폴로 13호의 생환이다. 1970년 아폴로 13호가 발사된 지 이틀 후 산소통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아폴로 13호의 지구 귀환이 어려워지자 나사 팀은 임기응변으로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비행사 전원을 무사히 귀환 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컬럼비아호와 아폴로 13호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우선 아폴로 13호의 경우는 팀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생각했던 아폴로 13호를 구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토론을 벌이려고 노력한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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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식 사고법을 배우는 첫걸음으로써 우선 토론부터 시작해보자. 특히 세상과 사회, 회사 내부나 동료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일 즉 예를 들면 이런 주제이다.

포경은 허용해야 하는가 / 딸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인가 / 종교를 무시하는 행동도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있을까 / 노벨상 수상자가 적은 나라는 열등한 국민일까 / ISIS의 잔혹성과 옛날 일본군의 잔혹성은 어떻게 다를까. 등

왜 공식적으로 토론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가족들과 먼저 토론해 보라고 하는 걸까. 그것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명확하게 구별되고, 토론이 과열되기 쉽기 때문이다. 과열이라는 뜻은 사고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WHY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특히 사회적으로 대립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토론을 벌이는 자세가 사고 정지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Practice 2 손과 발, 눈과 입,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디일까

어느 나라 왕이 불치병에 걸려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게 되었다.

이때 주술사가 찾아와 왕의 병을 살펴보았다.

“이 병의 치료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사납기로 소문난 어미 사자의 젖을 마시는 일입니다.”

왕은 “어미 사자의 젖을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어떤 포상도 내리겠다”며 포고를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젖을 구하러 갔지만 모두 새끼를 가진 어미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이때 시골에 사는 한 젊은 사내가 도전장을 내 밀었다. 그는 매일 양고기를 사자에게 주면서 한 걸음씩 사자에게 다가갔고 마침내 어미 사자의 경계심을 풀고 따뜻한 사자의 젖을 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왕에게 우유를 가져다주려고 할 때, 두 손과 두 다리와 두 눈이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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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눈 : 내가 어미 사자가 어디에 있는 지 확인하고 다가갔으니 내가 가 장 많은 포상을 받아야 해

- 두 다리 : 내가 있어서 사자에게 다가갈 수도 도망갈 수 있었던 거야. 그 러니까 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거지

- 두 손 : 내가 없이도 사자의 젖을 짤 수 있었을까?

-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입이 말했다. “너희는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포상은 내가 가장 많이 받아야 해.“ 입의 말에 눈과 손과 다리가 모두 반론했다.”무슨 소리야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잖아. 너에게는 포상을 조금도 줄 수 없어.“

<문제>

입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이 가장 많은 포상을 받아야 한다고 눈과 다리와 손을 설득시켰을까?

■ 모든 일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유대인

사람에게는 다리가 두 개, 손이 두 개, 귀가 두 개, 콧구멍이 두 개 있다. 이렇듯 중요한 기관은 모두 두 개씩 있다. 그러나 입은 하나밖에 없다. 당신은 이 사실에 “왜?”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가?

유대인은 이유는 몰라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는 ‘당연한’ 일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토론을 벌여왔다.

입이 하나밖에 없는 이유는, 입이 손과 발에 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한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는 ‘혀끝에 행복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은 많이 말하고, 많이 떠들고, 많이 주장하면 행복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침묵은 행복을 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도 사람이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슬쩍 이야기에 끼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토론은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벌이는 모습이 된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정말 입에서 태어난 민족이고. 토론과 언쟁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민족이다.

■ 토론과 언쟁은 유대인의 정체성

‘이스라엘’의 어원은 불평하는 사람, 토론하는 사람, 반항하는 사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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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이다. 히브리 성서를 읽어보면, 유대인이 상사(모세)이게 반항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부분이 나온다. 모세도 자신의 상사인 신에게 언쟁을 높이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신은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세와 유대인을 가엽게 여기고 기적을 일으켜 구원해준다. 그러나 이집트 군에 뒤쫓겨 위기에 봉작할 때마다 유대인은 이렇게 말한다.

“모세에게 속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는 게 좋았을 뻔했어. 이대로 사막에서 죽는다면 무덤에 묻히지도 못할 거야.”

이렇게 모세에게 대들었다. 불만을 해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만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유대인의 특징이다.

유대인들은 ‘불만을 말하지 않으면 신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 토론, 반론의 중요성

‘윗 사람에게도 불만을 말한다.’

이것이 유대인의 특징이다. 유대인들은 신에게까지 불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선배나 조직의 우두머리에게도 서슴지 않고 불만을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 사람 1만 명을 모으는 것보다 미국인 1백 명을 모으는 것이 어렵고, 미국인 1백 명을 통솔하는 것보다 유대인 5명을 지휘하는 것이 어렵다.

어미 사자 젖의 설화가 전해지는 이유도 입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그럼 당신은 어떠한 논리로써 다리와 손, 눈과 귀, 코에게 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득할 것인가.

설화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진다.

왕에게 어미 사자의 젖을 바칠 때, 입이 이렇게 외쳤다.

“왕이시여, 이것은 사자의 젖이 아니라 개의 젖입니다. 이 젖을 드셔도 왕은 병에서 나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크게 화를 냈다.

“이놈들을 당장 처형해라.”

두 눈, 두 다리, 두 손은 왕의 분노에 부들부들 떨면서 “이봐, 우리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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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사자의 젖을 가지고 왔잖아. 어서 그렇다고 말해.”라며 입에게 간절히 말했다.

입은 눈과 다리 손에게 말했다. “그것 봐, 입이 가장 중요하잖아. 포상을 전부 나한테 줘. 그럼 사실대로 말할게.” 두 눈, 두 다리, 두 손은 마지못해 포상을 전부 주겠다고 약속했다.

눈과 손, 다리에게도 얼마든지 다른 반론이 있을 수 있다.

■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모든 일에 의문을 가지고 “왜?”라고 질문하자.

평소에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던 일에도 “왜일까?”하고 의문을 품어보자. 작은 일에도 의문을 품는 습관이 사고력을 높인다. 예로 들어 유대인 가정에서는 부모가 세 살짜리 자녀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바람은 보이지도 않고, 모습도 없잖아.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바람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다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끼는 이유’를 각각 다른 발상으로 생각하면서 토론하는 힘을 키워주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 때 아버지에게 자석 세트를 선물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아버지와 같이 실험을 했다. 이 경험이 물리학을 공부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 생물학자 리처드 페이먼은 양자전자학력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박물관을 방문했고, 거기서 아버지와 나눈 토론이 훗날 과학자를 꿈꾸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다.

학문에서 훌륭한 업적을 새운 사람이나, 구글의 두 설립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인텔의 명예회장 앤디 그로브,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발머처럼 유대인이 획기적인 발상으로 사회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일에 의문을 품고 질문하는 자세, 토론을 좋아한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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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의 예외와 금기를 버려라

“왜?”라는 의문에 ‘예외’와 ‘금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20대 정도의 젊은 남성을 가리키며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머리카락이 없어?”라고 불었다고 하자. 대부분의 우리나라 엄마들은 “쉿! 그런 말을 하면 못써!”라며 자녀를 혼내고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인 엄마라면 “왜 그럴까?”라며 자녀에게 질문하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 상대방의 신체적 결함이든 무엇이든 “왜?”라는 질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라고 질문할 때마다 유대인 부모는 칭찬을 해준다.

"왜?“라는 질문을 잊을 때, 사고는 정지한다. ”그런 말은 실례이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 아니야.“라고 혼내는 순간, 더 이상 토론은 진행되지 않는다.

Why

모든 일에 의문을 가지고 “왜”라고 질문한다. 평소에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던 일에도 “왜일까?”하고 의문을 품어본다. 작은 일에도 의문을 품는 습관이 사고력을 높인다.

Practice 3 모세의 반론

히브리 성서 ‘출애굽기’ 시대에 노예였던 유대인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어느 날 이집트에서 도망친 모세 앞에 신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이집트로 돌아가 모든 유대인들을 구하라.” 이 말에 모세는 “저는 유대인을 수할 수가 없습니다.”하고 신에게 반론했다.

■ 신에게까지 반론하는 유대인

히브리 성서에는 모세와 신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있다. 신은 모세에게 “이집트로 돌아가 유대인을 데리고 요단강으로 가라.”하고 계시를 내리지만 모세는 반론한다.

만약 모세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신의 계시를 거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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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어떤 의문도 품지 않은 채 신의 계시를 따르지는 않았을까. 모세는 신에게 뭐라고 반론했을까.

모세 : 저는 유대인을 수할 수가 없습니다. 이름도 없는 제가 유대인에게 다가가서 당신들을 구하려고 왔노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신: 내가 구원할 테니 안심해라 너는 내가 이집트로 보내는 사자이니라.

모세 : 신이시여, 제발 농담을 거두어주세요 제가 이집트로 가 유대인 앞에서 “나는 신이 보낸 사자이다 내가 신을 대신해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고 말한다면, 유대인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신이라고? 난 그런 거 들어본 적도 없어. 신의 이름이 뭔데?”라며 화를 낼 것이 분명합니다.

신 : 신에게는 이름이 없다. 신은 신일 뿐이다.

모세 : 그런 대답으로는 유대인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신 : 걱정하지 마라. 내가 기적을 만들테니.

모세 : 저에게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능숙하게 하는 재능도 없습니다. 도저히 유대인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신 : 나는 인간에게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었다. 내가 인간에게 입을 주고 말을 주었다. 안심해라 너에게는 내가 있다.

이러한 대화가 신과 모세 사이에 7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당신이 신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모세의 이 말은 신에 대한 모욕이고 불손한 발언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까지 의심하고, 그 존재의 여부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것이 유대인 사고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하느님과 부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신앙심이 부족한 증거야.”하고 비난할 것이다.

신의 존재조차 의문을 가지고 “왜?”라고 생각해보자.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신의 존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신의 존재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상식과 여론, 권위에 의문을 품자

‘모세의 반론’은 설령 그것이 신의 계시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알려주는 설화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사고는 정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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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고가 정지하면 새로운 깨달음과 발상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식과 해석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시나고그(유대교의 회당)의 공부 모임에 모이면 유대인들은 항상 이런 토론을 벌인다.

설령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그 분야 전문가의 말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류대학의 어떤 교수가 말했으니까,’ ‘의사가 말했으니까,’ ‘공공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이니까,’ 그래서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권위 있는 이야기’에 약하지만, 누구의 발언이든지, 그 사람의 신분이 무엇이든지 “정말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의문은 교과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Practice 4 드보라의 도전

어느 마을에 드보라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토라(유대교의 성서)의 내용을 깊이 공부했다. 성년이 된 드보라는 부모님이 정해 놓은 청년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날 밤, 신랑이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몇 년 후 재혼을 했지만, 그 신랑 또한 갑자기 죽게 되었다. 세 번째 신랑마저 그렇게 죽자 드보라는 더 이상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얼마 후 먼 마을에 살고 있는 친척 아들이 찾아와 드보라를 아내로 맞겠다고 했지만 드보라의 부모는 드보라와 결혼한 신랑 셋이 모두 결혼식 날 죽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청년에게 결혼할 마음을 접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년은 “지금까지 저는 성실한 마음으로 신을 모셔왔습니다. 저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하고 말했다. 결국 부모는 뜻을 접고 그 청년과 결혼 시킨다.

결혼식 날, 신이 보낸 죽음의 천사가 신랑을 재촉하며 천국으로의 여행을 재촉했다. 그때 천사를 기다리고 있던 드보라가 나타났다.

드보라는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 토론이 길을 개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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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화에서 신은 사람의 목숨을 자유롭게 빼앗아 가는 ‘권력자’로 표현되고 있다. 권력자에게 신랑 세 명과 함께 행복을 빼앗긴 드보라. 이런 부당한 처사를 받고도 ‘신의 결정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해야 할까.

드보라는 신에게 홀로 맞섰다.

토라(유대교의 성서)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는 신부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어. 그래서 신은 내 신랑을 천국으로 데리고 갈 수 없어.

죽음의 천사 : 지금 신의 결정에 이의를 달고 도전하는 것이냐?

드보라 : 맞아! 토라에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일보다도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아내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어. 결혼식 날 내 남편을 납치하는 것은 토라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 아니냐! 토라의 가르침은 신이 만든 거 아니야! 신은 자신의 가르침을 짓밟았으니까, 나는 종교 재판소에 신을 피고로 고소할 거야.

죽음의 천사가 말했다. “드보라가 신을 법정에 세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음 내가 졌구나. 이제 드보라에게는 더 이상 가지 말거라.”

드보라는 의연함을 잃지 않고 신의 사자인 천사에게 토론으로 도전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어떠한 권위도 토론으로 맞서자. 이것이 유대인의 기르침이다.

■ 상식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행동을 꺼린다.

“이렇게 하는 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 하고 윗사람이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조직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앞으로 순탄치 않은 생활이 펼쳐지는 게 우리나라 조직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을 인재로 여길지 모르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수동적인 일에만 익숙해 져 있지는 않은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시키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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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시대였다. 우리나라는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세계 시장을 석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색이 없는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가진 신흥국으로 떠오르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수동적인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지금 우리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상대가 누구라도 토론을 피하지 말자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 교육 현장에서는 ‘상대가 누구라도 겁내지 말고 토론으로 도전하자.’는 유대인식 사고를 실천하고 권장한다. 선생의 말에도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지 고 질문해야 한다.

50분 수업 중에 40분은 선생에게 질문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가 질문을 하면 수업이 중단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지도 몰라.’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네 질문으로 수업 시간을 전부 잡아먹을 수는 없어.” 선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핀잔을 줘도 “이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고 물고 늘어져야 한다. 토론을 벌여야만 이해가 싶어지고 진실이 보이기 때문이다.

■ 토론이 미래를 개척한다

거래처인 대기업 담당자가 ‘이것이 회사의 방침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이게 관례입니다.’라고 보낸 일방적인 통보에, 부당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대로 받아들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때 유대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부당한 대우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내용이 회사의 방침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누가 그 방침을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과 직접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방침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관례라는 게 누가 언제 만든 건가요? 그 관례에 누가 합의 했습니까?”

직장인이라면 회사 사장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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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이 회사의 사장이 맞나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사장이 되었습니까? 재능 때문입니까, 아니면 운이 좋아서입니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사장이 되었나요?”

즉 모든 것을 토론의 대상으로 삼자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유대인은 직장 선배에게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 5명을 지휘하는 것보다 미국인 100명을 통솔하는 게 거 쉽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수동적인 사람은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을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가슴에 꼭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Why

아무리 상대방이 사장이나 선배라도, 의문을 느낀 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하고 토론을 벌여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문제해결과 혁신에 꼭 필요한 도구이다.

Lesson 2 논점을 꿰뚫자.

사물을 깊이 생각하기 위한 기본

Practice 5 파리를 주제로 어떤 토론을 벌였을까

■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지인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지인의 대학원에서 1년간 유학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들은 교수의 지도하에 연구 논문을 쓸 계획이었는데, 무엇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하는지 항상 교수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논문의 주제는 스스로 선택하세요.”하고 교수는 말했지만 “주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발 주제를 정해주세요”라며 의사들은 간절히 말했다고 한다.

어려운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그 나라에서는 엘리트 의사로 칭송받던 사람들이 주제를 정하지 못해 쩔쩔맸다니, 도저히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 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점을 정해 줘야 토론을 시작한다. 이렇게 스스로 논점을 찾자 못한다는 점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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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과 토론은 오락이다

그럼 Practice 5에서 다룬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당신이라면 식사 중에 날아온 파리를 보고 어떤 토론을 벌이겠는가.

“파리라고? 난 파리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데. 그리고 파리에 대해서 벌이는 토론이 무슨 의미가 있지? 도대체 왜 식사 중에 날아온 파리를 보고 토론을 벌여야 할까.”

어느 유대인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파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파리의 비행 속도를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파리의 뛰어난 비행능력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식사 내내 파리의 비행 능력을 주제로 한 토론이 벌어졌고, 실제로 그 자리에서 같이 식사하고 있던 우리나라 과학자가 진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프로야구 경기나 TV 예능 프로그램 또는 레스토랑의 맛을 평가하거나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좋아하는 것은 토론이다. 두뇌를 가장 많이 활성화시키는 일이 토론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파리 주제가 이끄는 사고의 넓이

파리의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자. 파리는 정지 상태에서 갑자기 날아오르거나, 영점 몇 초 만에 최고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속도를 비행기에 비교해 환산하면 프로펠러 비행기의(시속 700Km)에 상당하는 수준이다. 즉 파리의 비행 능력은 프로펠러 비행기가 활주로를 비행하지 않고 이륙한 후 곧바로 시속 700Km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과 같다는 것이다.

헬리콥터는 활주로 없이 날아오를 수 있지만 최고 속도가 시속 350~400Km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화제가 파리에서 ‘어떻게 하면 몇 초 만에 프로펠러 비행기의 최고 속도에 상당하는 비행물체를 개발할 수 있을까.’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주제가 아무리 하찮은 파리라도 절대 토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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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점에 따라 사고가 어떤 방향으로 넓어지고 발전할지 정해진다. 2014년 구글의 연구팀은 소형무인 비행기(드론)을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오스프리(배낭)를 뒤집은 모양으로 엔진이 상부에 달려 있다. 활주로 없이 수직 이륙이 가능하고, 속도도 상당하다고 한다. 마치 파리를 연상시키는 비행물체이다.

어느 날, 초등학생이 유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이런 질문을 했다.

“신은 왜 인간에게 피해만 끼치고, 인간을 귀찮게만 하는 파리를 만들었을까요?” 이 질문은 생태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곤충이 지구에 미치는 역할, 동물이 사체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파리와 곤충의 역할, 파리를 죽이기 위한 대량 살포제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아이도 초등학생이기는 하지만 역시 토론을 좋아하는 유대인이었다.

‘왜 그럴까,’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그런 것이 필요할까.’이런 의문과 문제의식이 존재해야 비로소 사고가 움직이기 시작된다. 논점은 토론하고, 깊이 사고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사고의 밑반찬을 없애자

유대인은 논점을 발견하는 데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 또한 대화할 때에도 주제와 핵심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매우 단도직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잡담을 나누거나, 주제와 핵심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밑반찬’이 없는 메인 요리와 같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답답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내가 대화 끝에 “그럼 검토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상대방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답을 듣고 싶다.’라는 내 의도를 파악하고 적당한 시기에 답장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언제까지 답변해 주세요.”라고 말해야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봤자 “도대체 무엇을 검토해 달라는 거지?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군.”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 유대인이 논점주의자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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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논점 주의자가 된 이유는 어렸을 때의 교육환경과 습관에 있다. 유대인들은 엄숙한 습관처럼 매주 토요일 안식일에 히브리 성서를 읽는다. 그들은 성서 전체를 54회로 나누어 1년 동안 읽는다. 그 주에 성서 어느 부분을 읽을지 미리 정해 놓는데, 그것을 ‘파라샤’라고 부른다. 파라샤는 세계 공통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전 세계 유대인들은 그 주에 성서의 같은 부분을 읽는다.

파라샤에는 성서를 읽는 부분만 아니라 논점도 정해져 있고, 그 논점은 탈무드에도 나와 있는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유대인들은 항상 논점을 의식하면서 성서를 읽는 태도 덕분에 토론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도 논점을 잘 파악하고, 논점을 따라가면서 깊은 토론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대인은 열다섯 살이 되면 종교 학교에서 히브리 성서를 쉽게 풀이한 탈무드를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의 논점과 사고력의 비결은 그들이 탈무드를 읽는 방식에 있다.

논점을 파악하는 힘은 직장인들이 꼭 배워야 할 사고력이기도 하다. 업무에 있어서 논점이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지 순위를 정하는 것을 우선순위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상사가 지시하는 일만을 하면 되었을지 모르지만, 현대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Practice 6 태초의 이야기

(“히브리 성서 ‘창세기’ 앞부분)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장 2절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외에 운행하시니라.

1장 3절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장 4절 :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1장 5절 :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 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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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 1장 1절의 ‘태초(At the first)’란 무엇인가. 처음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뜻일까?

■ 다양한 각도에서 한 마디 한 구절에 의문을 품자

그들은 한 문장에 한 가지 혹은 몇 가지나 되는 논점을 찾고, 그 논점에 대해 토론 하면서 성서의 교훈을 깊게 이해하려고 한다.

학생들은 두 사람씩 조를 이루어 자리에 앉는다. 1대1 토론을 위해서다. 한 가지 주제에 매우 긴 시간을 들여 토론을 벌인다. 성서 1장 1절에 나오는 ‘At the first'에 대해서 종일 토론을 벌일 때도 있다.

학생 A : 'At the first'는 이 책(히브리 성서)의 태초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학생 B : 만약 그렇다면, 이 책의 태초라는 것을 굳이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학생 B : 나는 ‘At the first'가 모든 일의 태초를 의미한다고 생각해. 즉 신 이 우주창조를 시작할 때를 의미하는 거지.

학생 A : 만약 그렇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의미잖아. 그 이전이 무라 는 증거가 있을까?

학생 B : 시작의 태초라고 말하면 우주는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 되잖아. 조 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신은 전지전능하니까 지금까지 여 러개의 우주를 만든 거잖아.

‘At the first’의 토론은 우주론이나 우주물리학에 대한 토론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

‘At the first’는 단 세 개뿐인 단어지만, 그 단어에도 하루 종일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At the first‘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다. 그것은 자신들의 존재 의식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서 ’창세기‘에는 ’인간, 즉 유대인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묻고 있다. 그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신이 최초로 창조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정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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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히브리 성서에 나온 내용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면 좋을지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해 왔다. 그리고 그 내용이 탈무드에도 적혀 있다.

탈무드에는 ‘At the first’란 무엇의 태초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10가지 설이 몇 장에 걸쳐 쓰여 있다.

탈무드의 내용을 그대로 암기하는 것은 수업에 아무 의미가 없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 의견에 동의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해야 사고력이 높아진다.

탈무드는 한 가지 논점에 여러 가지 의견을 내 놓고 있다.

‘At the first’ 논점에 대해서는 ‘유대인 역사의 태초다.’ ‘지구 탄생의 태초다.’ ‘신이 선악을 만든 윤리의 태초다.’ 등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중에서도 ‘신이 천지를 창조한 태초다.’라는 의견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그러나 모든 설은 그것을 유일한 해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유대인들의 특징이다.

정답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토론을 통해 스스로 얻는 것이다. 한 가지 의견을 꼽아서 ‘이것이 정답이다.’ 하고 결정해 버리면 더 이상 토론은 진행되지 않는다.

유대인 종교학교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어떤 토론을 벌이고 있는지 선생은 알지 못한다. 넓은 교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토론이 진행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생이 어떤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토론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토론이 주는 두뇌 작용이다.

■ 한 마디 한 구절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꿰뚫을 때 사고는 깊어진다

우리는 문장을 읽을 때, 한 마디 한 구절을 차분히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논점을 파악하는 훈련을 실천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히브리 성서를 읽는 때처럼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이렇게 단언한 것일까?’ 등 의문을 품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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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을 계속 읽어보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여기서도 하루 종일 토론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논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without form' '혼돈’이다.

'without form' 이란 ‘형태가 없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질서가 없다’는 의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chaos(혼돈)’라는 뜻일까?

신이 만든 것인데 왜 형태가 없을까?

‘질서가 없다.’라는 뜻은 무질서 라는 의미일까?

신이 질서 없는 것을 만들었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나?

‘질서가 없는 것’에 신은 어떻게 해서든 질서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까?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왜 땅은 형태가 없었을까? ‘형태가 없다.’라는 것은 원래 어떤 의미였을까?‘ ’무‘라는 뜻이었을까?

천지를 창조할 때 땅에는 형태가 없었는데, 물은 있고 신의 존재는(영) 그 물의 표면을 걸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1장 3절에 ‘Let there be light'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 구절에서 자주 토론되는 내용은 ’왜 신은 여기서 말을 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다. 성서에 ’said'라는 단어가 적혀 있으니까 신이 직접 말한 것은 분명하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일일이 말하지 않고도 세상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신이 직접 말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천지를 창조하는데 왜 말이 필요했을까? 여기서 ‘말’이란 무엇일까?

우주창조는 물리적 자연현상일까 아니면 어떤 뜻이 있어서일까. 그 뜻이 의미하는 게 혹시 ‘말’은 아닐까?

그렇다면 ‘빛이 있으라’가 우주창조의 목적일까, 아니면 ‘빛이 있으라’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전지전능한 신조차 천지를 창조할 때 말이 필요했다. 하물며 인간에게 있어서 말은……. 토론은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토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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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서 우주 기원에 있어서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은 ‘말’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인간과 신이 주고받는 언어가 기도라면,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는 언어란 도대체 무엇일까? 명령일까, 부탁일까, 감동일까?

‘혀끝에 행복이 있다.’는 유대인 격언을 앞에서 소개했다. 이 격언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행복은 멀리 도망간다. 온갖 수단으로 언어를 구사해 행복을 끌어 모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은 많이 말하고, 많이 반론하고, 많이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히브리 성서 ‘창세기’ 1장 3절과 1장 5절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1장 3절에서 신은 ‘빛이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니 1장 5절에서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말했다. 즉 아침보다 밤이 먼저 태어났다고 쓰여 있는 것이다. 논리에 맞지 않는다.

여기서 왜 신은 ‘어둠이 있으라’라고 하지 않고 ‘빛이 있으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신이 만들려고 했던 빛이 있는 세계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이 논점이다.

스스로 논점을 찾고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논점을 찾는 방법을 일상생활에서도 꼭 실천해 보기 바란다. 책을 읽을 때나 뉴스를 볼 때 이전처럼 모든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한 마디 한 구절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져보자.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생각할 논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뉴스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본다. ‘뉴스는 사람이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에도 분명 작성자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신의 진리가 아니다.’ 이런 비판적인 시각을 참고하기 바란다.

Practice 7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까지 성실하게 공부해 온 모범생이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문이 살짝 열린 집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훔쳐 나왔다.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호기심’이라는 변호사의 말은 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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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퇴학 처분이 되고, 취직도 불가능하게 되자 이번에는 스스로 도둑이 되고 말았다. 결국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

<문제> 여기서 나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 근거를 들어 말해보자.

법률이 아닌 신의 논리와 문제로 토론해 보자.

■ 논점에서 본질에 가까워지는 방법

이 이야기는 랍비 헨리 노아가 유대교 수업시간에 내게 내 준 문제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학생이 나쁜 사람이다. 법률적으로도 ‘문을 잠그지 않은 사람’은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자일 뿐이다. 그러나 노아는 “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질문했다.

<Practice 7>의 문제를 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문을 잠그지 않은 사람’의 행동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는 견해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깜박하고 문을 잠그지 않은 행동이,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또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경찰의 출동, 재판, 교도소 등에서 소비된 세금의 낭비까지, 이 모든 원인은 문을 잠그지 않은 사람이 만든 것 아닐까.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의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있고,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행의 씨앗일 때도 있다. 반대로 위기가 기회일 때도 있다.

한 측면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으로 보는 시점이 신의 관점이다.

신의 관점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벽, 상식과 여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차원으로’ 생각하는 힘이다. 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생긴다.

■ 논점의 중요도를 파악하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논점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한 마디 한 구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잡은 논점이 요점에서 벗어나 있거나 중요도가 낮다면, 아무리 토론을 벌여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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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유익하고 효과적인 해결책도 보이지 않게 된다. 요점에서 벗어난 토론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사고를 정지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논점은 가능한 요점에서 벗어나지 않은, 중요도가 높은 것이어야 한다. 한 가지 측면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를 보고 여러 개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논점사고에 꼭 필요한 발상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자

학생 두 명이 같이 사막에 갔다. 한 학생은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만일을 대비해 물통을 챙겨왔다. 그리고 다른 학생은 물통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막에서 길을 잃어 헤매게 되었고, 결국 탈수 상태가 심해져 구조를 기다리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물통에는 한 사람의 목숨만 살릴 수 있는 물밖에 없다. 이때 다른 한 사람에게도 물은 나누어 줄 수는 없었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물을 나누어 주지 않은 청년이 구조되었다. 매스컴에서는 구조된 청년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 세웠다.

탈무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토론을 벌였을까?

매스컴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론을 한 가지만 내놓지 않았다. ‘물은 조심성이 많은 청년의 것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나누어 마실 필요는 없다. 두 사람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면 신은 준비성이 철저한 인간을 구할 것이다.’ 라는 설도 있다.

히브리 성서에는 신은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만을 구원한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도덕적으로 퇴폐한 소돔 마을을 유황불로 불태워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킬 때 탈출을 허락받은 롯의 가족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지켜 살아남았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봐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

신은 왜 조심성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신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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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3 사고의 틀을 깨자

유연한 사고를 지니기 위한 기본

Practice 8 목차는 왜 순서대로 나와 있는 걸까

■ 유연한 사고가 묻는 질문

일반적으로 학교 수업은 교과서에 적힌 목차대로 진행된다. 어렸을 때, 이런 순서에 의문을 품은 적은 없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의 순서에 의문을 품지 않고 공부해 왔다.

모든 것을 토론의 대상으로 삼는 유대인 아이들이라면 “왜 학교 수업은 교과서에 적힌 순서대로 하는 걸까?”하고 질문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1) “목차대로 수업하는 것은 당연하잖아.”라며 질문을 무시한다.

2) “쓸데 없는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하지 마라. 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수업을 따라오면 돼.”라며 집단 규율을 깨트린 행동에 주의를 준다.

3) “그럼 너는 수업을 어떤 순서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니?”하고 아이의 생각을 묻는다.

질문의 대답은 크게 두 가지다1) 정해진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2) “수업의 순서를 바꾸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다.

어렵지만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는 순서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교육의 참모습이다.

■ 틀에 박힌 생각이 유연한 사고를 방해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사고를 틀 안에 끼워놓고 있다. ‘굳어버린 사고’란 유연한 사고가 막힌 상태를 의미한다.

일상 대화를 생각해보자. “보통은 이렇잖아.”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데.”라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굳어버린 사고가 머릿속에 박혀 있을 가능상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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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전례와 관례, 성공사례, 경험측은 모두 사고에 틀을 끼워놓는 행동이다. 과거에는 전례와 경험이 따라 일을 진행해도 되는 시대였지만, 현대는 환경 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화시켜야 하는 시대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다.

■ 벼랑 끝에 선 인텔의 결단

인텔은 창업 초기 DRAM 등 메모리칩을 제조했다. 그리고 메모리칩은 인텔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기업 도시바, 히타치, NEC등이 메모리칩 제조 사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결국 인텔의 메모리칩 사업은 악화되어 갔다. 이대로 메모리칩 기업으로 연명할 것인지,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지 인텔은 기로에 서게 되었다.

마침내 인텔은 당시 전부라고 생각했던 메모리칩사업에서 물러나 새로운 사업 즉 CPU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컴퓨터 CPU는 사람으로 치면 대뇌 중추기관과 같다.

메모리칩 사업에서 물러난다는 선택은 유대인인 앤디 그로브에게 있어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과거의 업적과 경험을 버리고 ‘무’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런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인텔이 세계의 반도체 기업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 노예 60만 명이 모세에게 이끌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성서의 내용을 ‘출애굽기’ ‘탈 이집트’라고 한다. 사실 출애굽기는 유대인들에게 사고의 틀, 전통, 사고정지(이집트 노예 상태)에서 자신을 탈출(탈 이집트 = Exodus)시켜 정신의 자유와 혼의 자유를 이루자는 관심을 준다.

‘이집트’는 지명이기보다도 굳어버린 사고, 해방되지 않은 혼, 구폐답습, 도전하지 못하는 겁쟁이를 뜻할지도 모른다.

■ Practice 9 유월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유월절(passover)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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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하는 종교 행사다.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도망쳐야 했던 그들은 효모균을 가지고 나올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유월절에는 효모균을 넣지 않은 빵 즉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만든 모든 음식에 효모균을 넣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유월절을 맞이하는 유대인 가정에서는 효모가 묻어 있는 그릇과 조리도구는 물이 끓고 있는 커다란 솥에 넣어 삶으면서 효모균을 소독한다. 이렇게 말끔히 청소를 마쳐야만 유월절을 맞이할 수 있다.

■ 우선 No라고 말하자

유대인에게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No’라고 말하자. 먼저 No라고 말하면 며칠이 지난 후에 'Yes'라고 바꿀 수 있다. 먼저 ‘Yes‘라고 말하고 나중에 ’No' 라고 바꾸면 상대방은 화를 내지만, ‘No'를 ’Yes'로 바꾸면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No’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because'를 잘 설명해야 한다. 거절할 때에는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야 한다. 그리고 ’Yes'라고 말했다면 반드시 그 말을 지켜야 한다.

유대인들은 심술쟁이처럼 무엇이든지 No라고 말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그들이 심술궂지만은 않다.

‘No’에는 반드시 ‘because'라며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No'와 ’because'사고를 키우는 훈련을 한다. 아이가 “이 과자 먹고 싶어”라고 말하면 부모는 우성 ‘No’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왜 먹고 싶은데?”하고 아이에게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because’라는 먹고 싶은 이유를 이야기 한다. 부모를 납득시키는 이유가 아니면 아이는 과자를 먹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필사적으로 과자가 왜 먹고 싶은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No'라는 말은 상대방을 부정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Yes’라고 대답하지도 않는다. 먼저 나서서 이야기 하지 말고 그때의 분위기와 상황을 보고 어떤 결론이 나올지 지켜보자는 풍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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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No’라고 말해보자. 이것은 상대방을 부정하기 위한 'No‘가 아니다. ’because‘러고 말할 기회를 늘리기 위한 ’No‘이다.

아침에 결정한 일을 저녁에 바꾸는 일을 ‘조령모개’라고 한다. ‘아침에 명령을 내렸다가 저녁에 다시 고친다.’는 뜻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들릴지 모르지만, 중요한 방향성이나 방침에 있어서 조령모개는 절대 나쁘지 않다.

그것을 ‘천변만화’라고 한다. 저녁이 되어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연한 사고를 위해서는 ‘조령모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Practice 10 바다를 건넌 모세

열 개의 재앙이 눈앞에 닥치자 공포에 휩싸인 이집트 왕은 마침내 이스라엘 노예들을 풀어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를 떠난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이집트 왕은 노예들을 풀어 주겠다는 말을 번복했고, 이집트 군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 연안까지 도망쳤고, 이집트 군은 그들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이때 기적이 일어난다. 모세가 신에게 기도를 드리자 홍해가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사히 홍해를 건넜고 이집트 군은 전부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문제> 히브리 성서에 나온 이 기적을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만약 믿는다면 그 이유를 말해보자.

■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일까

히브리 성서에는 ‘초현실적 현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 있다. 누구나 ‘노아의 방주’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가 난 신이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켰고 신의 계시를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나무로 만든 거대한 방주에 올라 타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그 이외의 모든 인간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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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인가.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서에 쓰인 초현실적인 내용들을 전부 사실로 인정한다. 정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기적에는 반드시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큰 해일이 일어나 육지를 덮치기 직전에 바다의 수위를 놀라울 정도로 떨어트리는 거대한 썰물 현상이 일어나 바다 속이 훤히 노출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태일 때 유대인들은 바다가 갈라졌다며 홍해를 건넜고, 그 후에 반대로 해일이 일어나 바다를 건너고 있던 이집트 군은 파도에 휩쓸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실제로 태풍이나 허리케인으로 바다의 수위가 10m 이상 높아지거나 낮아진 관측 사례도 있다.)

■ 모든 일은 예상 가능하다

히브리 성서에는 이런 내용도 실려 있다. 신이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너의 아내 사라는 내년에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고, 사라는 89세였다. 그 말을 몰래 듣고 있던 사라는 ‘나도 남편도 이렇게 늙었는데, 아이를 낳을 거라니.’ 하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신이 말한 대로 사라는 임신을 했고 다음해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이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세기에서)

100세인 아브라함과 90세인 사라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유대인들은 성서에 나온 이이야기도 믿고 있다. 왜냐하면 신이 사라의 난자를 젊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적은 일어났다.

그밖에도 유대인들이 기적을 믿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라가 낳은 아들은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신과 씨름을 벌인 후에 새로 얻은 이름이다. 그래서 야곱은 유대인의 조상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역사가 4천 년이 넘었으니, 사라의 출산 이야기는 4천 년을 뛰어 넘어 현대의 유대인에게 까지 전해오는 설화다.

현대 유대인은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낸 이야기’라며 부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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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정말 있었던 이야기라며 믿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이야기의 연장선 위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도, 사라의 출산도, 바다를 건넌 모세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여긴다.

따라서 유대인의 머릿속에는 ‘예상 밖의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상 밖의 일’이 가득한 히브리 성서를 열독했기 때문이다. 큰 해일이 덮쳐 와도 유대인들은 “예상 밖의 일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말을 한다면 “너, 히브리 성서 안 읽었어? 그러고도 네가 유대인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 가능성을 부정한 순간 사고는 정지한다

모세가 바다를 건넜다는 이야기도, 사라가 90세에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하고 부정해버리는 순간 사고는 정지한다.

‘노아의 방주’를 예로 들어보자. 지상을 덮칠 홍수에 대비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

왜 신은 노아의 가족들에게 거대한 배를 만들라고 했을까. 그것은 지상에 있는 모든 동물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배에 타 살아 남은 사람은 노아 가족 다섯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동물이었다. 동물을 태운 것은 인간보다 동물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하늘과 땅을 만든 다음 동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그 후에 만들었다. 히브리 성서에도 동물이 인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럼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사(NASA)의 화성 이주 계획은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발상이 아닐까. 지구는 언젠가 멸망한다. 그때 인류의 존속을 위해 화성으로 보내질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우수한 학자부터 시작해 남녀 열 몇 명 그리고 동물과 식물일 것이다. 노아의 방주를 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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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문제 해결 편

싸우는 힘, 살아남는 힘을 배우자

Lesson 4 감정에 흔들리지 말자

문제를 냉정하게 생각하는 힘을 배우자

Practice 11 과연 정당한가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 아래로 뛰어든 청년이 달려오던 전철에 치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일어났다. 국가는 청년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며 표창을 했다.

당신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인명 구조에 나선 이 청년에게 국가가 표창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 매스컴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몇 십 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전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든 남성 두 명이 달려오던 전철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인 청년이었다. 이 두 명의 유가족은 일본 총리의 감사장을 받았다.

인명구조로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 국가가 표창을 수여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내가 강연을 시작할 때 청중에게 묻는 질문이다.

물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한 행동은 훌륭하다. 그러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한 행동과, 국가와 사회가 그 행동을 칭찬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두 문제를 따로 떨어트려 놓고 생각해야만 한다.

내가 강연할 때 묻는 이 질문은, 사람을 구한 행동의 옳고 그름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 행동에 국가가 표창을 하는 일에 대한 옳고 그름 즉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한 행동을 칭찬하는 사회가 옳은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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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를 묻는 질문이다.

나는 국가가 과도한 칭찬을 하지 않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 플랫폼에서 옆에 있던 사람이 실수로 선로에 떨어졌다. 플랫폼에는 나밖에 아무도 없다. 지금 전철이 선로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다. 선로로 뛰어 든다면 나의 목숨도 위험해진다.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들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행동을 칭찬하고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 흔들리지 않게 스스로 생각하자

탈무드에서도 위의 내용과 비슷한 토론이 벌어졌다.

어느 한 청년이 광대한 사막을 걷고 있었다. 그의 물통에는 다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아주 적은 물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 청년은 사막을 걷던 도중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를 만났다. 지친 여행자가 물을 나눠달라고 했다. 청년은 물을 나눠줘야 할까?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신은 왜 이 세상에 인간을 보냈을까?” 사막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신에게서 부여받은 임무가 있다. 임무 수행 중에 허무하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다. 즉 신이 바라는 사회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물을 얻지 못하면 여행자는 불쌍해진다.’는 감정론은 통하지 않는다.

유대교에는 정의가 무엇인지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히브리 성서가 있고, 탈무드에는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히브리 성서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종교에 기초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정의와 가치 기준이 그때그때 매스컴의 정보와 여론에 좌우 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냉정하게 사물을 판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철저하게 생각하며 여론과 세상의 공기에 좌우되지 않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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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12 어미 새와 새끼 새

히브리 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나온다.

“길을 걷다 새의 둥지를 발견할지라도, 어미 새가 새끼 새를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새끼 새를 잡아서는 안 된다.(다만 어미 새가 둥지를 떠난 뒤라면 새끼 새를 잡아도 된다.)”

<문제>

새의 둥지를 발견한 곳이 바다 한가운데라면, 둥지에 어미 새가 있어도 새끼 새를 잡을 수 있을까?

■ 불쌍하니까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도 탈무드에 나와 있는 토론 내용이다.

‘새의 둥지가 바다 한가운데 있는 거라면?’이라는 질문은 탈무드 특유의 기상천외함이 묻어 있다.

바다 한가운데 새의 둥지가 있을 리 없다. ‘상식에서 벗어난 문제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어렵고 기이한 문제에 어떠한 논리로 대응하는가이다. 두뇌 운동을 통해 명쾌하게 생각해보자.

‘만약 새의 둥지가 바다 한가운데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말은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어미 새가 있어도 새끼 새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심술궂은 질문이 된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히브리 성서는 길을 걸을 때만 금지하고 있다. 바다는 길이 없기 때문에 어미 새가 있어도 새끼 새를 잡을 수 있다.”

길 위에서는 어미 새 앞에서 새끼 새를 잡을 수 없다.‘는 원리 원칙에 따라 토론을 벌이기 위해서는 ’길‘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어떻게 넓혀가 바다에 적용해야 할까.

이 어렵고 기이한 문제를 논파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길은 육지에만 있을까? 바다에는 길이 없을까?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 한다면 상대방에게 반론할 여지를 주지 않고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예로 들어 유대인 학생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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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도 길이 있어요. 우리 유대인들은 홍해에 생긴 길을 건넜기 때문에 지금 여기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새끼 새를 잡으면 안돼요.

유대인들에게 히브리 성서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면 아무도 반론하지 못한다. 유대인들이 히브리 성서를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세계 리더 양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고 수업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이 정당한 행동이었는지’에 대한 주제로 수업이 진행된다.

원지폭탄 투하는 ‘정당한 행동’이라는 입장과 ‘대량학살’이라는 입장으로 나눠지고, 서로의 주장에 근거를 제시하면서 토론을 벌인다.

특히 우수한 학생을 양성하는 보딩스쿨(기숙사학교)이서는 이러한 수업이 주를 이룬다.

지도자란 원자폭탄 같은 대량 살생 무기를 사용해야 할지 사용하지 말아야할 지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량 살생 무기의 사용에 대한 주제는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 빠질 수 없는 토론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론클럽인 옥스퍼드 유니언이 있다. 옥스퍼드 유니언에서는 정기적으로 이러한 토론 대회가 열린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토론은 아주 유명한 간판 토론이지만, 최근에는 ‘이슬람교는 평화의 종교인가.’라는 토론이 진행되고 있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지도자 양성 학교뿐만 아니라 경영자 양성 학교에서도 이러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현장 효율 개선과 실적 개선에 대해 아무리 토론을 벌여봤자 지도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경영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Practice 13 여우와 포도밭

어느 날, 여우가 포도밭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우는 무척 탐스럽게 달려 있는 포도를 보고 밭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포도밭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뚱뚱한 여우는 울타리 사이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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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사냥을 포기하고 자신의 굴에서 며칠을 배고픔을 참으며 지냈다. 마침내 울타리를 통과해 배가 부르도록 포도를 먹었다. 여우는 포도로 잔뜩 부푼 배를 보고 울타리 사이를 빠져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때 여우는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1) 먹은 포도를 다 토해내 다시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2) 포도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포도밭에 들어올 때와 똑같이 살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여우는 어떤 방법을 선택할까?

■ 위험성을 파악한 사람은 전략을 세워놓는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 부모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우화중 하나다.

여우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지 자녀에게 생각을 물은 후 대답이 돌아오면 돌발질문을 해, 보다 좋은 선택은 없는지 판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1)과 2)중 무엇을 선택할까.

나의 예상이 맞는다면 독자 중의 80%가 2)를 선택할 것이다.

1)을 선택하면 사냥꾼에게 발각될 위험성은 줄어든다. 그러나 애써 먹은 포도를 토해내야 하고 한 번 거두어들인 결실을 포기하는 일도 힘든다.

2)는 잘 되든 못되든 이란 생각으로, 사냥꾼에게 발각될 위험은 크지만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상황에 대한 어떠한 준비도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유대인 부모는 1)과 2)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정답이라고 생각할까.

이 경우는 둘 다 정답이 아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이 질문에 이런 대답을 가장 많이 한다.

“울타리 사이를 빠져 나올 수 있을 만큼만 포도를 먹는다.”

“포도를 한 번에 많이 먹지 않고 며칠에 걸려 조금씩 먹는다.”

우리나라에도 ‘밥은 모자란 듯 먹는 게 좋다.’는 가르침이 있지만 이 경우는 조금 더 모자라는 듯 먹으라는 의미다. 정답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한다

다소의 위험성에서 눈을 돌리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며 운에 맡기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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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해 동양인의 선택이라면, 철저한 조사와 냉정한 판단으로 확실한 성과를 얻으려는 생각이 유대인을 비롯해 서양인의 선택이다. 이 생각의 차이는 크다.

국제 정치와 전쟁 역사를 봐도 ‘운’에 맡기는 동양인과 빈틈없는 위험성 분석과 현장분석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서양인의 결과에는 큰 차이가 있다.

■ 공상가에서 분석가로

어느 날, 랍비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분석적이지 못한 공상가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공상가란 현실적이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하버드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 일류 대학은 ‘분석적’인 것을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의 논문을 보면 ‘주관적인 견해는 많지만 분석적인 시점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기자가 쓴 기사와 우리나라의 기자가 쓴 기사에도 차이점이 많다고 랍비는 지적했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논하는 것이 서양의 기사다. 반면 우리나라 기사는 사실에 뒷받침 되는 자료조사는 제쳐 두고 기자의 주관주의적인 관점과 감정으로만 쓰여 있다.

분석적인 서양인과 공상가인 우리나라 사람. 이 차이가 국제 정치와 기업 경쟁, 교육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뒤져 있는 근본적인 요인 중의 하나이다. 특히 정보를 마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매스컴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학자의 발표를 무조건 믿고 보고하고 있는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가 철저하게 분석하면 매스컴에 선동되는 일이 없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이 분석적인 시점으로 정보를 확인해야만 한다.

Practice 14 인공 유산의 규율

유대인에게 임신 40일까지는 인공 유산을 해도 좋다는 의견이 있다.

(문제) 40일이라는 근거는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하고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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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를 생각한다

인공 유산과 관련된 토론은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의견이 대립되는 민감한 문제 중의 하나다. 인공 유산은 허용해야 할까. 만약 허용한다면 그 기간을 언제로 두어야 할까.

이 주제는 ‘인공 유산을 하면 태아가 불쌍하다.’는 감정론에 휩싸이기 쉬운 토론이다.

“태아가 불쌍하니까 인공 유산을 허용하면 안 돼.”

“아니 나는 태아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렇게 감정으로 대응하다 보면 토론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겠지만 ‘불쌍하다’와 같은 감정론은 논리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태아’의 정의는 이렇다. 임신 40일까지는 태아에게 손 발이 형성되지 않아 모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산모에게 맡긴다. 다만 40일이 지나면 태아는 산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 40일이 지나면 인공유산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로마 가톨릭에서는 40일 전후를 불문하고 인공 유산을 일절허용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태아를 수정될 때부터 모체와 별개인 생명이고 하나의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즉 유대인과 로마 가톨릭의 주장은 태아를 임신 40일 까지는 ‘산모의 일부’로 볼 것인지, 수정 단계부터 ‘하나의 생명(인간)’으로 볼 것인지의 차이에 있다.

■ 논리적인 사고는 정의에서 시작된다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한 사람은 대화할 때에도 말의 정의가 애매한 경향이 있다. 말의 정의가 애매하면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늘어나지만, 반대로 말의 정의가 명확하면 감정에 좌우되는 일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내 면전에 대고 “멍청이”하고 말했다면 나는 화를 낼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 나에게 ‘동양인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해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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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를 지목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가 있는 비난은 비판이다.

정의가 애매한 토론은 사고 훈련에 전혀 의미가 없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감정이 사고를 정지시켜 더 이상 깊이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흐름도 잃게 된다.

말의 정의가 명확해지면 토론의 기준도 명확해진다.

2017. 1. 9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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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식 Why? 사고법 (2)

- 유대인이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 이시즈미 간지 지음, 권혜미 옮김

Lesson 5 모든 것을 얻을 생각은 버리자.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자.

Practice 15 유대인은 뭐라고 했을까

당신은 사업차 유대인 회사를 방문했고, 유대인은 그곳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카페에서 커피를 사와 당신에게 주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갈 무렵, 유대인은 커피값에 대해 놀라운 발언을 했다. 그 말은 정말 유대인다운 발언이었다. 이 유대인은 도대체 뭐라고 말했을까?

■ 투자와 이익의 관점

위 이야기는 내가 유대인 사업 파트너와 회의를 할 때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뻔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님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굳이 커피값이 얼마인지 말하는 사람은 치사하다. 큰 사업을 위해서라면 커피값 정도는 당연히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 커피값은 당신을 위해 지불한 것이다. 당신은 커피값의 보답으로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이렇게 묻는다. 만약 커피값이 9천 원이라면, 이 회사에서 적어도 3만 원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단기 이익을 철저하게 추구한다.

Practice 16 나폴레옹과 청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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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했을 때, 각 나라의 협력자에게 “너희에게 포상을 내리겠다. 원하는 것을 전부 말하여라.” 하고 말했다.

프랑스 사람은 ‘와인밭과 와인공장’을, 독일 사람은 ‘보리밭과 맥주공장’을, 이탈리아 사람은 ‘밀밭과 맛있는 파스타 공장’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청어 두 마리’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문제> 유대인은 포상으로 왜 청어 두 마리만 달라고 한 걸까.

■ 확실한 결과를 얻는 목표

결과적으로 포상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유대인뿐이었다. 나폴레옹은 그 자리에서 청어 두 마리를 내 주었고, 유대인은 그 청어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른 나라 협력자들의 원대한 소망은 그림의 떡으로 끝나고 말았다. 유럽 정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곧바로 이룰 수 있는 작은 소망부터 착실하게 실천한 유대인들만이 포상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식량을 살 돈이 필요했다. 돈을 벌려면 작은 이익부터 쌓아올려야 하고, 일확천금을 바라면 결국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비웃어도 곡식을 살 돈을 착실하게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나폴레옹 설화는 이러한 가르침을 준다. 또한 이 설화에 나폴레옹을 등장시킨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권력은 움직인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다.

■ 수비범위를 명확하게 정한다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확실히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유대인들은 그 수비범위가 분명하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유대인들은 특히 단기 이익을 철저하게 추구한다. 이스라엘에 스타트기업(신생 벤처기업)이 많은 이유도 유대인들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스타트 업에 강하며 스타트업으로 단기 이익을 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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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스타트업 기업을 창립만 할 뿐, 그 이후의 경영에 대해서는 손을 뗀다. 즉 사업을 발전시키고 확대 시키는 일에 뛰어난 미국 등 다른 기업에게 스타트업을 맡긴다. 기획 개발부터 제조, 판매, 애프터서비스까지 전부 자회사에서 처리하는 우리나라 기업들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대인들의 스타트업에는 목적과 수비 범위가 분명하다. 단기 매각한 후 그것을 자본으로 다른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모습은 매우 유대인다운 발상이다.

Practice 17 마법의 석류

어느 마을에 사이좋은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성인이 된 형제들은 각각 10년 동안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한 명은 동쪽으로, 한 명은 서쪽으로 한 명은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 자신이 발견한 가장 신비로운 물건을 가지고 십년 후에 다시 이집에서 만나자고 형제들은 맹세했다.

첫째는 동쪽으로 갔고 그곳에서 세계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신비한 거울을 샀다. 장남은 자신이 가진 거울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물건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둘째는 서쪽으로 갔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양탄자 상인을 만났다. 거기서 그는 새보다도 빨리 날 수 있는 양탄자를 샀다 그리고 이 양탄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셋째는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숲속 길을 걷다가 신비하게 생긴 석류나무를 만났다. 그 석류나무에는 꽃이 한가득 피어 있는데 열매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석류 열매를 따려고 손을 뻗자 저절로 손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그러자 또다시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석류나무에 피어 있던 꽃 하나가 갑자기 새빨갛게 변하더니 석류 열매로 바뀐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신비한 나무는 없을 거야. 이 나무를 가지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석류나무는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셋째는 다행히도 손바닥에 남은 석류 하나를 들고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갔다.

세 형제는 각각 가지고 온 물건을 서로에게 보여줬다.

세 형제들이 첫째가 기자고 온 거울을 들여다보자. 어느 나라의 공주가 병석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주 옆에서 왕이 한숨을 쉬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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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공주를 치료해 줄 사람이 없을까. 하루 빨리 공주를 치료하지 않으면 공주는 죽을지도 몰라.” 그 모습을 본 세 형제는 둘째가 가져온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공주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셋째는 이것을 먹으면 공주가 나을지도 모른다면 석류 열매를 반으로 잘라 공주에게 주었다. 공주가 석류 열매를 받아들고 한 입 두 입 베어 물자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고, 걸을 수조차 없었던 두 다리에 힘이 생겨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왕은 세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세 형제가 있었기에 공주가 나을 수 있었다. 너희 세 명 중 누구에게라도 공주와 결혼할 기회를 주겠다. 세 명이 이야기를 나눈 후 누가 공주와 결혼할 것인지 결정하여라.”

그러자 공주가 “저에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세요.” 하고 말했다. 공주는 우선 첫째에게 질문했다.

“그 망원경 같은 거울은 지금도 가지고 있나요?”

첫째 : “네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주 :“그럼 둘째에게 묻겠어요. 그 양탄자는 지금도 나를 수 있나요?”

둘째 : 네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지금도 하늘을 나를 수 있어요.“

공주 : “그럼 마지막으로 셋째에게 묻겠어요. 당신은 나에게 석류 열매를 줬고, 나는 그 열매를 먹고 나을 수 있었어요 그 석류 열매는 처음 모습과 다른가요?”

셋째 : 네, 공주님께서 석류 열매의 반을 드셨기 때문에 지금은 반밖에 남지 않았어요.

<문제> 공주가 결혼 상대자로 선택한 사람은 누구일까?

■ 버리는 것 없이 얻는 것도 없다.

이 이야기도 유대인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들려주는 설화다. 자녀에게 생각하고 대답하기 위한 시간을 주고, 자녀가 대답을 하면 ‘왜?' 하고 물은 후 그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공주가 결혼상대로 선택한 사람은 셋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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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셋째만이 공주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이 설화가 보여주는 것은 ‘버리는 것 없이 얻는 것도 없다.’라는 유대인의 가르침이다.

모세가 유대인을 데리고 이집트를 출발할 때, 유대인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요단강으로 향했다.

유대인들은 가지고 갈 수 없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입던 옷 그대로 떠났다.

그리고 40년 동안을 사막을 떠돌아 다녔다. 최고의 희생 끝에 약속의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잃는 것의 크기와 성공의 크기는 비례한다.”

버리는 시기도 중요하다. 무엇을 얻으려고 버리는 것이 아니다. 유대교에서는 버리는 일이 먼저라고 가르친다.

셋째가 석류 열매의 절반을 준 이유는, 석류 열매를 주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다. 공주를 돕기 위해 자신이 먼저 소중한 열매를 나눠준 것이다.

■ 선택과 집중을 생각한다

인텔이 지금의 성공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력 사업이었던 메모리 사업에서 CPU 사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인텔과 대조적으로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이 기울어 파산한 기업도 있다. 사진 필름업계의 최고 기업이었던 코닥은 필름사업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디지털화에 대응하지 못해 모든 것을 잃고 파산하고 말았다.

‘희생 없는 성공은 없다.’는 유대인의 가르침은 현대 사업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이 가르침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율법은 식사와 일상생활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 율법은 많은 금기 사항을 지키는 것으로 행복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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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일생 동안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 다섯 가지는 ‘탐욕, 태만, 방탕, 불섭생,(건강에 조심하지 않음), 허위’이다.

호텔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지 않아도 깨끗하게 세탁한 식탁보에 양초 두 개 그리고 유대인이 직접 만든 레드와인과 약간의 음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비싼 돈을 내고 여행을 가지 않아도 시나고그라는 허름하고 소박한 건물에서 탈무드 공부를 하거나 토론을 벌이면서 풍부한 사고력을 기른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생활방식이다.

유대인에게 엄격한 식사 율법이 있는 이유는 ‘삶의 목적이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데에 있지 않다.’는 깨달음을 매일매일 깨우쳐 주기 위해서다.

Lesson 6 ‘의문’에 눈을 돌리자

본질적인 가치에 접근하자

Practice 18 기술혁신

다음의 기술 중 어느 것을 기술의 혁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a) 출력한 서류를 책상까지 가져다주는 자주식 로봇 프린터

b) 혈당치를 눈물로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 혁신인가 자기만족인가

최근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자주식 로봇 프린터가 화제에 올랐다. 자주식 로봇 프린터란 컴퓨터가 출력지시를 내리면 서류를 출력해 직접 책상까지 가져다주는 로봇을 말한다. 일본의 모기업이 개발한 이 로봇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서류를 볼 수 없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로봇이 개발 명단에 오르지도 않는다. 출력한 서류는 공용 프린터가 있는 곳에 가서 가지고 오면 그만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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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일본이라는 특수한 시장에 맞춰 기술 개발에 몰두했지만, 그러한 기술에는 보편성이 없다.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다.”

반면에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혈당치 측정을 ‘웨어러블(옷이나 시계, 안경처럼 자유롭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것)’한 것으로 당뇨병 환자의 생활을 돕는 기술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구글이 개발했다.

지금까지 혈당치를 측정하려면 주사기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고통이 뒤따랐다. 몸 관리를 게을리하면 최악의 경우 목숨에 지장이 생길 위험이 있는 만큼, 당뇨병 환자에게 있어서 혈당치 측정이란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평소 혈당치를 측정할 때 동반되던 고통과 위험을 감소시키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콘택트렌즈 센서가 눈물을 측정하고 혈당치를 모니터링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당뇨병환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이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로봇 프린터와 같이 자기만족에 빠지기 쉬운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보다도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혁신적인 기술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삶에 영향을 주는 기술혁신

삶에 효과를 주는 기술혁신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이 개발한 리워크(Re Walk)로봇이다. 로봇이라고 하면 세계 첨단을 달리고 있는 혼다의 아시모(ASIMO)가 가장 유명하지만 현재까지 아시모가 사람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사업에 실용화 되었다는 이여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인공지능 관점에서 보면, 리워크는 아시모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로봇이다. 그러나 하반신 마비 환자는 리워크 덕분에 휠체어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생활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다. 아시모는 사람에 가까운 로봇이라는 개발 목표로 나날이 진화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기술을 위한 기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에 비해 리워크는 처음부터 휠체어 환자의 보행지원 로봇이라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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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대인

유대인들이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유도 평소의 사고 습관에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식사 율법 ‘코셔’에는 유대인이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 무엇은 먹지 마라.’는 성서의 말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왜 먹지 말라는 걸까?”하고 의문을 던진다.

코셔에서 금지하고 있는 음식은 돼지고기, 새우, 굴, 문어, 오징어 등 무수히 많다. 또한 소를 죽일 때에는 되도록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도살법이 규정되어 있을 정도로 코셔의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맹목적으로 지키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이 말에 아무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르다.

‘왜 성서에는 조개, 굴, 새우, 오징어, 문어, 가재, 해삼, 상어 지느러미, 자라, 사슴고기, apt돼지, 곰을 먹지 말라고 쓰여 있을까.’하고 생각한다.

■ 의문이 근본적인 가치를 이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해 생각하지만, 율법에 따르지 않겠다고 결론 내리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에 있어서 히브리 성서는 절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토론 그 자체를 원한다.

내 유대교 선생인 랍비가 가르쳐준 말이지만, 유대교의 본질은 ‘왜?’라는 물음에 있다.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왜?’하고 질문하는 사고가 유대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즉 이러한 것이다.

‘신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한 치의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하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은 ‘신’이라는 존재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왜?’라고 계속해서 의문을 품으면 비로소 ‘신’의 존재에 가까워진다.

유대교에 맹신자와 광신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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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라는 사고가 근본적인 가치를 이끈다

신은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기 위해 아담과 이브를 만들었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유대인들은 이 말에 또다시 ‘왜?’하고 의문을 던진다.

신은 왜 자신과 닮은 인간을 만들었을까?

이 토론에 얽힌 탈무드의 유명한 설화가 있다.

“신이 자신과 비슷한 인간을 만든 이유는 인간에게 신의 의지를 재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인간이 신의 의지를 체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보편적이 도덕을 배워야 한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해서 도덕을 배우기 시작했다.

창세기 시대에 신은 악인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 마을을 불태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성서에 쓰여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는 신은 화가 나 대홍수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수만 명이 익사했다.

이것은 ‘신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신의 메시지다. 이정도로 가혹한 신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신의 잔혹성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면 절대 신의 진의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 유대인은 생각했다.

"신은 왜 자신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사람을 불태웠을까?“

이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죽이는 것도 신의 뜻에 있다.”

인간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것은 신이다. 신 앞에서는 우구나 평등한 존재라는 뜻이다.

한편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일은 신만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들끼리는 서로 목숨의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즉 인간이 마음대로 ‘A의 목숨은 중요하지만 B의 목숨은 중요하지 않다.’고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고, 자살도 허용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 자살이 죄가 된 이유는 이러한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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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신의 행동에(대부분 자연현상이고 가끔은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가혹한 현상이다.) ‘왜?’하고 묻는 태도로 ‘인간이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왔다.

‘왜?’하고 의문을 품는 습관이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가치를 철저히 추구하는 유대인 기질을 낳는다.

Practice 19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히브리 성서 창세기 앞부분)

1장 3절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1장 4절 :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1장 5절 :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문제) 1장 4절대로 신은 왜 빛과 어둠을 나누었을까?

■ 의문을 철저하게 파고들자

신은 왜 빛과 어둠을 구별했을까?

생각에 따라서는 빛과 어둠을 구별하지 않고 한데 섞어서 달빛만큼만 밝은 세상을 만들어도 좋지 않았을까. 분리(division)가 아닌 혼합물(mixture)로 만들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 내용은 탈무드에서도 중요한 토론의 주제로 다뤄진다. 빛과 어둠은 대립하기 때문에 신은 그것을 구별했다. 그러면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대립’이란 무엇일까? 탈무드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빛(light)’이란 즉 ‘올바름(right)’이다. 선과 정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반면에 ‘어둠(dark)'은 ’악‘을 의미한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자비와 잔인함, 이 두 가지는 절대 같이 있을 수 없는 성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별해서 만든 것이다.

신은 ‘선=light’을 향해서는 ‘좋았더라(is was good.)'고 말했지만,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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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에 대해서는 ’좋았더라‘고 말하지 않았다. 즉 신은 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신은 왜 악의 존재를 남겨 두었을까. 신은 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악의 존재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선만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다. 신의 이런 태도는 모순 아닐까.

탈무드에는 “선만 있는 세상을 만들면 인간은 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인간에게 ‘선이란 무엇일까.’를 깨우쳐 주기 위해 굳이 악을 남겨 놓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은 ‘빛이 있으라. ’고 말하면서 빛을 만들었지만 ‘어둠이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즉 의도적으로 어둠을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어둠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이 질문에 대해 탈무드에서는 이런 설을 제기하고 있다.

“신이 빛을 만들 때,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 어둠이 생겼다.” 즉 어둠이란 빛이 닿지 않는 부분에 자연히 생긴 것이라는 뜻이다. 빛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있다. 또한 반대로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다. 빛과 어둠은 두 개이면서 하나다.

Practice 20 노아의 방주의 진실

신이 분노하여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켰을 때 남자와 여자, 동물도 수컷과 암컷 한 쌍씩, 노아의 방주에 올라탈 수 있었다.

‘선’이 방주에 오르려 하자 신은 ‘짝을 이루어야만 방주에 탈 수 있다.’고 말하고 ‘선’의 승선을 거절했다. 그래서 ‘선’은 다른 ‘선’을 데리고 왔지만, 신은 ‘선은 선끼리 짝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하면서 또다시 승선을 거절했다. 어쩔 수 없이 ‘선’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악’을 데리고 왔고, 신은 그제야 승선을 허락했다.

<문제> 신은 우리에게 ‘선’과 ‘악’의 관계를 무엇이라 가르쳐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 ‘왜?’라는 생각 끝에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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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에는 짝을 이룬 것들만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선과 악이, 고통과 즐거움이, 독과 약이, 축복과 재앙이, 부와 가난이 짝을 이루어 배에 올랐다. 모순되는 두 가지가 각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다닌다는 세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선은 승선을 거절당했지만 악을 데리고 와서 방주에 오를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이 악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선과 악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선과 악은 손을 맞잡은 상태로 존재한다. 즉 표리일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선과악은 각자 존재하면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의 얼굴 속에 선인의 얼굴과 악인의 얼굴이 같이 존재한다는 의미와 같다. 신이 만든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보자.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신이 왜 선과 악을 만들었는지 더욱 더 깊이 생각해보자.

‘에덴동산’ 이야기에 신의 의도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에덴동산’ 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금기의 나무 열매를 먹고 난 후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즉 신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된 인간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 살게 했고, 선택에 자유를 주었다.

인간에게는 선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졌고, 반대로 악을 선택할 자유도 주어졌다. 악을 선택하는 행동은 당연히 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신을 저버릴 자유도 주어진 것이다.

■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자

탈무드에서도 위의 내용과 비슷한 토론이 벌어졌다.

어느 청년이 광대한 사막을 걷고 있었다. 그의 물통에는 다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한 아주 적은 양의 물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 청년은 사막을 걷는 도중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는 여행자를 만났다.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어요. 목이 말라 죽을 거 같은데 그 물통의 물을 좀 나눠 마시면 안 될까요?”

청년은 물을 나눠줘야 할까요? 나눠주면 청년도 죽을지 모르는데....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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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이 세상에 인간을 보냈을까?”

사막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일까. 아니, 그렇기 않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신에게서 부여받은 임무가 있다. 임무 수행 중에 허무하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다. 즉 신이 바라는 사회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물을 얻어먹지 못하면 여행자는 불쌍해진다.’는 감정론은 통하지 않는다.

유대교에는 정의가 무엇인지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히브리 성서가 있고, 탈무드는 그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히브리 성서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이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종교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정의와 가치 기준이 그때그때의 매스컴 정보와 여론에 좌우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

냉정하게 사물을 파악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철저하게 생각하며 여론과 공기에 좌우되지 않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를 주었지만 신은 인간이 선을 선택하기를 기대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 인간을 살게 했지만 신은 인간이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했다.

신은 밝은 선과 어두운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인간을 기대했던 것이다.

■ How가 아닌 Why로 질문하자

지금까지 보았듯이 ‘왜? = Why’ 라는 물음으로 사물의 본질과 근본에 가까워지는 것이 유대인식 접근 방법이다. 반대로 ‘어떻게 = How’라고 묻는 것은 과학적 접근 방법이다.

예를 들어 ‘빅뱅은 어떻게 일어났을까?’를 해명하는 것은 과학이고, ‘빅뱅은 왜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종교다.

Lesson 2에서 소개한 로봇 프린터와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라는 생각 끝에 만들어진 것이 로봇프린터다.

로봇 프린터가 사람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사실 로봇 프린터는 없어도 상관없는 기술이다. 반면에 ‘왜?’라는 의문에서 개발된 것이 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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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콘택트랜즈다. 혈당치를 측정할 때 혈액이 필요하다는 상황을 감안해‘왜 혈액이어야만 할까?’ ‘혈액 말고 다른 것으로 혈당치를 측정하는 방법은 없을까?’

‘왜?’라는 의문으로 당뇨병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그 생각이 그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본질적인 가치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왜?’라고 묻는 습관이 중요하다.

■ Why 사고가 본질로 이끈다

‘왜?’라고 묻는 유대인 사고는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예로 들어 말하면, 우리나라 국회가 성립한 법률은 수만 가지가 넘는다. 그 법률을 전부 이해하고 기억하는 공부보다. ‘법률은 왜 존재하는가?’ ‘법이 지향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등 법철학을 공부해야 실천적인 변호사가 된다.

그 이유는 법철학을 공부하면 법률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질은 시간이 경과해도 변하지 않는다. 한편 수만 가지 법률은 매일매일 그 내용을 바꾼다.

본질적인 가치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왜?’라고 묻는 습관이 중요하다. 상식에도 의문을 품는 습관을 가져야 사물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볼 수 있게 되며, 본질은 시간이 경과해도 변하지 않는다.

Part 3 이노베이션 사고 편 : 미래를 이끄는 힘

Lesson 7 다른 차원으로 사물을 보자. 발상을 전환하자

Practice 21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졌을까

■ 뉴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 모습을 보고 ‘왜 사과가 떨어졌을까?’하고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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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영국사람(뉴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진 모습을 보고 가을의 쓸쓸함과 인생무상을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

유대인이라면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사과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땅으로 떨어졌을까?’

이런 생각이 발상의 전환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해가 동쪽으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을 보고 ‘왜 태양은 하늘 주변을 맴도는 걸까?’하고 생각하는 것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시초다.

유대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은하계에서 보면 태양과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 걸로 보일까?’

유대인들은 항상 남들과 다른 각도, 다른 태도로 사물을 바라본다. 이와 같은 의미로 우리도 자주 “사물을 다방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다방면’이란 같은 물체를 다양한 각도로 보는 것을 말한다. 예로 들어 컵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사각형으로 보인다. 즉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바뀐다는 뜻이다.

그러면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이, 반대로 나를 보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컵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생각이 주객전도 발상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발상이 바로 이런 주객전도 발상으로, 태양이 지구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낳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객전도 발상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시각도 상대방의 시각도 아닌, 이차원(異次元)에 자신과 상대방을 바라본다.

■ 역발상이 낳은 수많은 이노베이션

현재 자동차 산업의 주역인 전기자동차는 긴 충전 시간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고 고가의 충전지로 보급이 용이하지 않다. 우리의 발상으로 생각한다면 충전 시간을 줄이고 주행거리를 늘이는 방법에 집중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발상은 전혀 다르다. 충전 시간은 그대로 두고 전기 자동차 보급을 늘릴 생각을 한다. 이스라엘 벤처 기업은 다 쓴 전지를 자동차에서 떼어내 새로운 전지로 교환하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시간은 3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존의 전기 자동차들은 전지와 차체가 일체형이었다.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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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소개할 것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프린터다. 휴대용 프린터란 종이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프린터가 알아서 종이 위를 돌아다니며 인쇄하는 기계를 말한다.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인쇄가 가능하고, 프린터가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어떠한 크기의 종이도 문제없다.

이 휴대용 프린터도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개발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프린터는 부피가 커서 한곳에 놓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프린터를 손바닥만 한 모바일로 만들어 사무실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프린터가 작아 종이를 인쇄할 수 없다면, 프린터가 직접 움직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발상의 전환이다.

Practice 22 송아지와 족제비

도살장에서 민가로 도망쳐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암송아지가 있다. 그리고 때마침 숲속에서 길을 잃고 민가로 들어온 수컷 족제비가 있다.

<문제> 우리는 둘 중 어느 것을 구해줄 것인가?

■ 사고의 실마리가 되는 추상화

생각하기에 앞서 다음의 힌트들을 생각해 보자

<힌트>

1. 불쌍하다는 감정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뭐라고 할지 세상의 눈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사람의 정서, 감정, 이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2. 족제비를 파리로 바꿔 생각해보자. 그러면 대답이 바뀌는가?

3. 송아지와 족제비는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 이들을 추상화하면?

4. 송아지와 족제비를 구해주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 유대인이 이집트군에게 쫓겨가다가 홍해 연안에 다다랐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여기서 ‘바다가 갈라졌다’는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

■ 온갖 생각을 다해 활로를 찾자

유대인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키워준 토양 중의 하나가 수천 년에 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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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박해 역사다. 국토를 가지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직업을 규제 당할 정도로 극심한 차별을 받았고 저지르지도 않은 죗값을 치르는 박해에 시달렸다. 20세기에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이 이미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유대인 대학살’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신의 뜻이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우연과 기적 그리고 불행과 재난조차도 반드시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즉 신이 히틀러를 만든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활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노아의 방주와 같은 대홍수가 지금 지구를 덮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을 주제로 한 농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음 생에 만나자’며 기도를 드리고,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전 국민의 무덤을 효과적으로 팔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덤의 디자인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대책을 강구한다.

유대인들은 극한의 상태에 빠져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대신 살아남을 길을 모색한다. 그 불굴의 정신이 기사회생으로 이어지는 발상의 전환을 낳았다.

■ 어려움과 제약이 사고를 유연하게 한다

세계에서 제일 평화롭고 풍족한 나라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일 것이다. 일상에서 신변의 위험과 구사일생 같은 상황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항상 쾌적하고 음식에도 옷에도 제약이 없다. 이렇게 평온한 환경에 익숙해진 우리가 사고력이 퇴화되고 유연한 발상을 얻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에는 고대 유대인들이 불행과 재난을 이겨낸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현대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를 가지고 매일 토론을 벌이면서 선조가 겪은 비극과 고난을 체험하고, 그 고난에서 벗어나는 사고력을 단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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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유대인들의 사고력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이 유대교의 율법이다. 유대인에게는 식사 규정과 더불어 일상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이 많이 존재 한다.

율법은 일상에서의 자유와 쾌락을 빼앗는다. 물론 유대인에게도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고, 율법을 어겨도 누구 하나 벌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율법을 따른다.

■ 제약에서 태어난 비즈니스 모델

유대인의 율법 중에는 안식일에 절대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이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근로자 파견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유대인이 경영하는 호텔은 언제라도 손님을 맞아할 수 있도록 안식일에는 다른 종교 교인을 고용한다.

규제와 율법으로 가득 찬 일상생활과 하루 세 번의 기도 그리고 이틀(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하루 종일)동안 절대 일을 하면 안 되는 안식일까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효율성이 뛰어난 컴퓨터 업계, IT업계, 크라우드 업계와 꼭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콜센터, 테크니컬 서포트(제품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자나 판매자가 제품을 구입한 사람에게 주로 전화로 메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옮긴이) 백오피스 등은 모두 다른 종교 교인에게 맡긴다. 다른 종교 교인들이 많은 필리핀(가톨릭)과 인도(힌두교)에 사무실 업무를 통째로 위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들은 두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타트업, 기획 입안, 경영 전략에 특화할 수 있었다.

Practice 23 안식일일까 취직일까

어느 유대인 청년이 대학을 졸업했다. 취업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나자 입사지원을 한 천 여개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근무 조건에 토요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토요일은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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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안식일로 일을 하면 안 되는 날이었다.

<문제> 우리가 이 청년이라면 취직을 선택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 어떻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이란 절대적인 존재다. 안식일에 일을 한다는 것은 유대인이기를 포기하겠다는 뜻과 같다. 한편 취업난 속에서 1천 여 개의 기업에 지원한 후 겨우 얻어낸 기회다. 이 회사를 포기하면 언제 다시 취직될지도 모르고 1억 2천만 원이나 되는 학비를 지원해 준 부모님에게도 불효가 된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묻는 학생에게 랍비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해답을 내어 주지 않는다. 학생은 랍비와 토론을 하면서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이 유대인 학생은 이런 대답을 내 놓았다.

‘일단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안식일에 쉬는 회사를 하루 빨리 찾아 이직한다.’

유대인과 취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는 방법이다. 일시적으로는 유대교의 율법을 위반하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있다. 학생은 그렇게 활로를 찾았다.

■ 사고의 시간 축을 바꾸어라

근시안적인 사고로 보면 대립되거나 불리하게 보이는 일도 이차원에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그중의 하나가 긴 안목으로 보는 방법이다.

지금은 이렇지만 1년 후, 2년 후, 10년 후, 10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장기적인 시점에서 지금을 뒤돌아보면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바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상식도 사회의 풍조도 바뀐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 현실도 언젠가는 바뀐다. 이 사실만 알아도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바뀌고,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

1. 영국은 아랍제국과 함께 이스라엘과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찰스 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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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이슬람교의 모스크와 유대인의 시나고그에도 얼굴을 보인다.

2. 일본은 산유국만을 중시하여 이스라엘과의 우호관계를 멀리하고 있다.

3. 아랍제국과 이스라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 국가가 창립된 1948년 이후이다. 그 이전 약 1,800년 동안 유대인은 이슬람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4.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기독교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들을 국외로 추방했던 1492년 3월 31일 이후부터는 이슬람이 유대인을 보호해 주며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인정해 주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아랍제국과 이스라엘도 영국과 같은 현명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적 사실에서 추측하건대 아랍제국과 이스라엘이 장래에 화해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20년, 30년 이라는 단기적인 시각만으로는 시대의 갑작스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1천 년, 2천 년이라는 장기적인 시각인 ‘3차원 시간 축’을 키워야 한다.

■ 현재에서 벗어나자

사람은 무의식중에 여러 가지 일에 둘러싸이고 사로잡히며 속박당한다. 이것들은 모두 좁은 시야가 자신에게 주는 정신적인 속박 즉 아집일 뿐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속박과 아집에서 벗어나 무한하게 펼쳐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회전목마와 같다. 즉 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러한 가르침이 있다. 풍요로운 시대 뒤에는 가난한 시대가 오고, 호황 뒤에는 불황이 온다. 좋은 시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 장기적인 시점을 가진다는 것

유대인들은 7이라는 숫자를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신이 6일에 걸쳐 천지를 창조했고, 7일째 되는 날에는 휴식을 취했다는 히브리 성서의 유래에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주 6일제 근무를 실천한 사람이 바로 유대인이다. 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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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6년간 계속해서 작물을 재배하면 땅이 마른다. 그렇기 때문에 6년간 작물을 수확하고 7년째가 되는 해에는 농사를 쉬면서 땅을 기름지게 만든다. 경제 변동도 7년 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풍년과 흉년도, 호황과 불황도 7년 주기로 반복된다는 예측도 있다.

유대인들은 힘든 시기를 견뎌내기만 하면 봄이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황과 고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대책을 강구한다.

7년 주기로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유대교의 가르침은, 다가올 불황과 고난을 사전에 예방하고 만반의 준비로 그 시기를 뛰어넘자는 지혜이다.

Practice 24 두 명의 도둑

한 농부가 랍비를 찾아가 “저에게 탈무드를 가르쳐 주세요.” 하고 말했다.

랍비는 알겠노라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어느 날 굴뚝을 통해 거실로 도둑 두 명이 들어왔다. 도둑 중 한 명은 얼굴이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변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에 그을음이 끼이지 않아 새하얗다.

<문제> 둘 중 어떤 도둑이 세수를 했을까?

■ 판단, 사실, 진리를 구별하자

이 이야기는 유대인 부모가 초등학생 자녀에게 들려주는 설화인 동시에 자녀의 사고력을 높여주는 질문이다. 도둑 중 한 명은 얼굴이 그을음으로 더러워졌고, 나머지 한명은 얼굴이 깨끗했다. 이 상황에서 누가 세수를 할지 묻고 있다.

설화에 나온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 세수를 했겠지요.” 분명 이 농부처럼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랍비는 정답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음 농부는 또다시 랍비를 찾아갔다.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두 도둑 모두 자신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상대방의 얼굴은 볼 수 있다. 얼굴이 깨끗한 도둑은 더러운 도둑을 보고 ‘내 얼굴에도 그을음이 묻었을지 몰라.’ 라며 세수를 한 게 틀림없다. 즉 도둑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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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상상한 것이다.

농부의 대답을 들은 랍비는 그 대답도 정답이 아니라고 말했다.

유대인에게 이 설화는 좀 더 깊은 목표가 숨어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판단’ ‘사실’ 진리‘의 차이를 가르쳐 주기 위한 설화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차원에 따라 달라진다는 가르침을 알려주기도 한다.

얼굴이 더러운 도둑이 A, 얼굴이 깨끗한 도둑이 B라고 해보자. A도둑은 얼굴이 깨끗한 B 도둑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더러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B 도둑은 A 도둑의 더러워진 얼굴을 보고 ‘내 얼굴도 저렇게 더럽겠지 하고 생각한다.

즉 도둑 A는 “두 사람 모두 얼굴이 깨끗하다.”고 판단하고, 도둑 B는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더럽다고 판단한다.

상대방과의 관계성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행동을 ‘2차원 관점’이라고 부른다. 2차원 관점으로는 사물을 어느 각도로 보는지에 따라서 사실을 받아들이는 판단이 달라진다.

도둑 A와 도둑 B의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무대 위의 도둑 A와 B를 관객석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것을 ‘관객의 관점’이라한다.

관객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도둑 A, B 중 누구의 얼굴이 더럽고 누구의 얼굴이 깨끗한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사실과 판단의 문제다.

사실을 규명한 뒤 진리를 파악하게 위해서는 더욱 더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 점이 랍비가 마지막에 지적한 말이다. 두 도둑은 같은 굴뚝을 통해서 거실로 들어왔다. 같은 굴뚝으로 들어온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에만 그을음이 묻었다는 건 자연스럽지 못한 견해다.

사실 무대의 부자연스러움(진리)을 깨닫기 위해서는 관객을 관찰하는 다른 관객 즉 관객의 관객이 필요하다. 관객의 시각보다 더욱더 다른 차원에서 보는 것을 ‘신의 관점’이라고 부른다.

■ 관객의 시각을 초월해 신의 관점을 가지자

우리는 대부분을 2차원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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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자신의 상황에 유리하게 판단하며 늘 똑같은 사고 유형에 빠져서 과감한 발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두뇌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관객의 관점과 신의 관점을 의식하는 사고력이 중요하다. ‘두 명의 도둑’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도둑이 서로 얼굴을 보는 2차원의 관점에서 시작해 도둑을 멀리서 바라보는 관객의 관점, 그리고 관객의 관점을 초월해 도둑과 관객을 다fms 차원에서 바라보는 신의 관점 즉 관객의 관객을 의식해 보아야 한다.

‘사과는 왜 떨어진 걸까?’하고 생각한 영국 사람과 사과가 떨어진 모습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낀 우리나라 사람은 둘 다 자신의 눈으로 지상에 놓인 사과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다 그에 비해‘사과가 하늘로 올라갈 가능성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유대인은 떨어진다는 것을 상하가 아닌 횡으로 즉, 하늘과 땅을 전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신의 관점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모습을 보고 고대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판단은 지상에 있는 자신의 시각으로 태양을 바라본 2차원 관점이다. 그러나 태양의 시각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고 판단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사실인지 규명하기 위해서는 태양과 지구를 다른 차원(관객석)에서 보아야 한다. 관객석(태양의 바깥차원)에서 보아야 비로소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양과 지구를 포함해 은하계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이 신의 관점 즉 유대인적 발상이다.

Practice 25 병사와 여권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1980년대 말 에티오피아 군사정권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전부 체포해 교도소에 감금시켰다. 사형만 내리지 않았을 뿐, 음식을 주지 않아 많은 유대인들이 아사 직전에 놓였다.

체포된 유대인들 중에는 랍비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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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홀한 감시를 틈타 도망 - 낮에는 농가에 숨고 밤에는 국경쪽으로 도망 - 교도소에서 좀 멀어졌을 때 그는 버스를 타고 감 - 랍비가 탄 버스가 국경으로 가던 중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음 - 병사가 버스에 올라와 여권을 내 놓으라고 함 - 뒷자리에 있던 랍비는 벌떡 일어나 뒷자리부터 여권을 거두어 앞의 병사에게 보여주고 모면함, 물론 자신의 여권은 없었음

■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판단력

이 이야기는 교도소에서 탈출한 랍비가 나에게 직접 들려준 실화다. 유대인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결코 포기를 하지 않는다. 두뇌를 회전시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낸다.

랍비의 행동은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상대방에게 사실과 다른 판단을 얼마든지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은 보여준 사례다. 사물을 보는 각도와 차원이 바뀌면 판단도 바뀐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한 대범한 발상이었다.

이 기발함은 평소 다른 차원으로 사물을 보는 습관, 즉 2차원 관점에서부터 신의 관점까지 자유자제로 구사할 수 있는 사고력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신의 관점이 랍비를 궁지에서 구해줬다.

■ 적은 정말 적일까

언뜻 보면 적인 관계도 신의 관점으로 보면 내편인 경우가 많이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아직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품을 판매할 경우, 경쟁기업들이 서로를 견제하기보다는 업계 전체가 협력관계를 구축해 시장 전체에 상품을 알려야 모든 기업에 이익이 생긴다.

이른바 ‘윈윈관계’ 라는 뜻이다.

적대 관계를 협력 관계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은, 대립구조가 낳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비장의 카드를 얻는 힘이 되기도 한다.

■ 사고를 향상 시키는 것은

기존의 항암제는 경구복용 또는 정맥주사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체에 약을 투여해 암세포만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분자표적 약이 대부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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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약은 암세포뿐만 아니라 암세포와 비슷하게 생긴 정상 세포까지 공격했기 때문에 부작용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항암제를 만들 수 있을지가 현재까지의 항암제 개발의 주된 목표였다.

그러나 유대인 연구자는 반대로 생각했다. 암세포를 적으로 보지 않고 협력자로 만들어 암세포가 스스로 항암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암세포는 체내에서 주변 영양소를 강력하게 흡수해 스스로 세포 수를 증식시킨다. 유대인 연구자는 암세포의 이러한 특성을 역이용해 암세포 속에 항암제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다. 나노테크놀로지 물질을 암세포에 심으면 암세포는 항암제 제조 공장으로 변신한다. 이렇게 되면 암세포는 자신이 만든 항암제로 허무하게 죽고 말 것이다.

지금 새로운 유형의 치료방법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투자가를 모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치료방법의 개발도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Practice 26 궁지에 몰린 유대인의 묘책

유럽 각지에서 차별받던 유대인들은 그곳의 영주에게 횡포를 당하거나 누명을 덮어쓰고 형벌을 받을 때가 많이 있었다.

어느 유대인이 무고죄로 체포되었고, 재판관이자 영주인 사내가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들은 너희 신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여기 종이가 들은 봉투 두 개가 있다. 그 종이에 하나는 ‘무죄’ 하나는 ‘사형’ 이라고 쓰여 있다. 너희의 그 대단한 신이 너에게 기적을 일으켜 주리라 ale는다. 봉투를 골라봐라. 나는 그 봉투에 쓰여 있는 대로 따르겠다.

궁지에 몰린 유대인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문제>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 가망이 없는 승부라면 규칙을 바꾸어라

만약 두 봉투 모두‘사형’이라고 쓰여 있다면, 어느 봉투를 골라도 사형을 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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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대인은 봉투 하나를 집어 들고 구긴 다음 자신의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그리고 영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영주님 제가 고른 봉투 안에 쓰여 있던 글씨는 여기 남은 봉투 안에 쓰여 있던 글씨와 반대일 것입니다. 남아 있는 봉투 안에 ‘사형’이라고 쓰여 있다면 저는 무죄가 됩니다. 영주님, 남아 있는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유대인의 생각대로 두 봉투 모두에 ‘사형’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만든 법칙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칙을 바꾸면 된다. ‘신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법칙을 바꾸는 일 또한 가능하다

■ 규칙, 전제를 없애고 생각하라

일에 익숙해지거나 계속해서 성공이 이어지면 그 상황의 법칙과 전제를 버리지 못하게 된다. 굳어진 법칙과 전제만을 고수하면 시대에 뒤처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격렬한 경쟁에 휘말려 기업도 사람도 몹시 지치게 된다. 굳어진 법칙과 전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인텔의 예>

- 메모리 사업에서 CPU사업으로 전환 - 확고한 입지 확립 - 인텔의 칩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가도 상승 -그러나 문제는 소비전력이 올라가 발열량이 증가 하는 문제점 발생

- 인텔의 간부가 칩의 속도만을 중시하는 방침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에 반해 이스라엘 개발팀은 전력이 낮은 칩의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여기에도 다른 차원의 관점이 존재한다. 간부는 회사의 주가만 보고 있었다. 그것에 비해 이스라엘 개발팀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음 시대로 예측되는 모바일 시대에 요구되는 칩이란 무엇인지를 넓은 시야로 보고 있었다. 그 결과 칩의 속도로 인정받던 업계의 상식을 깨부수고 소비전력이 낮은 칩에 성능을 맞추는 새로운 상식을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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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8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자.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고 실현하자

Practice 27 루브르 박물관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인 ‘모나리자’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과거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던 남자가 휴관일 전날 박물관에 잠입했다가 이튿날 관내 수리로 어수선한 틈을 타 그림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수께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박물관의 간판작품인 모나리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입장객 수가 전 년에 비해 몇 배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제> 입장객이 늘어난 이유는?

■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가

그림이 진짜 도난당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세기의 불가사의한 사건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진상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가 사라진 공허한 벽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로 발 다달 틈 없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모나리자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비슷한 일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케이크 가게를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 맛있기로 유명한 케이크 가게는 대부분 오전 중에 케이크가 다 팔려 오후에는 가게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써 케이크를 사러 갔는데 이미 다 팔려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조기 품절이 상품의 희소가치를 높였는지 ‘어떻게 해서든지 꼭 먹고 싶다.’고 갈망하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현상도 이것과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언제나 관람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물건에는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보다도 마음대로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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넣을 수 없는 물건에 흥미를 느끼며 소유하고 싶다고 열망한다. 모나리자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 행동으로 희소가치를 높였고 그런 행동이 결과적으로 루브르 박물관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원인이 되었다.

■ 비즈니스 스쿨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비즈니스 핵심

유대인들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토론을 벌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영자 양성 학교에 다니며 마케팅 이론과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론이야말로 마케팅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경영이란 사람을 상대로 벌이는 행동이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할 때 가장 좋은 마케팅을 구사할 수 있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왜 그 상품과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상대방을 이해한 후 그 사람의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까지 이해하는 사고력이다.

■ 계획을 잘 세우는 유대인

현대사회에서 산업의 기반이 되는 업종 즉 금융, 보험, 할리우드 영화, 정보, 통신, 백화점, 의류와 화장품 브랜드, 귀금속 등은 전부 유대인이 쌓아올린 업적이다.

예를 들어 로스차일드, 델, 메이시, 시어즈,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에스더 로더, 디비아이……그리고 헐리우드 영화는 전부 유대계 자본가로 이루어져 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광범위한 분야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유대인들은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는데, 히브리 성서를 매일같이 공부하는 유대인들은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 히브리 성서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그린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비록 성서는 4천 년 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지금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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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ctice 28 당당한 유대인의 조건

유대인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요단강을 향해 사막을 방랑하던 중 인구조사를 벌였다. 모세는 한 사람당 1셰켈(이스라엘 통화단위)의 반인 하프셰켈씩 돈을 걷었다. 그러자 나름대로 돈이 모아졌고, 그 돈은 요단강에 신전을 건설하는 자금으로 쓰여졌다.

<문제> 사람들은 왜 돈을 냈을까.

■ 사람을 움직이는 모금함이 가진 힘

모세가 한 사람당 하프셰켈씩 걷은 인구조사에는 ‘왜?’라는 의문점이 많이 생긴다. 인구조사를 하는데 왜 돈을 걷어야 했을까? 돈을 내야만 유대인으로 인정해준다는 뜻일까? 왜 하프셰켈일까? 돈을 모은 목적은 무엇일까?

돈을 걷은 이유 중에 하나로, 유대인 집단으로서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돈을 걷었다는 견해가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해 요단강에 정착할 때까지 40년이나 사막을 떠돌아 다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질서가 흐트러져 집단의 존속에 위기가 생길 위험이 있다. 이 견해는 지역 사회의 일원인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누구나 낼 수 있는 금액을 지불하게 했다는 의미다.

한편 아주 약간의 금액을 지불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 공공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지불을 거부한 유대인도 있다고 한다. (모금을 거부한 사람은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지역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이것과 비슷한 습관이 유대인들에게 아직도 남아 있다.

시나고그에 설치된 모금함은 우리나라 교회와 절의 모금함처럼 외부에 설치되어 있지 않고, 신자만 알 수 있도록 건물 내부에 설치되어 있다. 마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기부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와 같다.

약자를 위해 기부하라고 배운 유대인들은 그 말을 아주 잘 따르고 있다.

■ 말 뒤에 숨은 심리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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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인간의 본질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교과서지만, 우리 주변에도 ‘살아 있는’ 교과서가 있다. 가족과 친구, 동료, 선배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배움의 대상이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면에 숨은 심리를 꿰뚫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 고가 브랜드의 가방이나 스위스제 명품 시계 또는 까르띠에 목걸이나 반지를 사람들은 왜 갖고 싶어 하는 지 생각해보자. 실용성만 놓고 보면 다른 제품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몇십 배 혹은 몇백 배가 넘는 돈을 지불하며 명품을 구입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정한 생각’에 다다르면 ‘대가의 상대성(싸고 비싸고의 감각)’에 대한 판단이 전혀 달라진다. 그 ‘생각’을 어떻게 이끌어 내면 좋을까?

유대인들은 약자에게 기부하는 행동을 신앙에 따른 의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 성서는 약자에게 기부할 때에도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통찰력에 기초해 배려하는 방법과 기부하는 방법이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약자에게 돈을 베풀 때에는 돈이 필요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돈을 베풀어야 한다. 또한 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로 들어 유대인의 결혼식에는 축의금을 받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피로회장의 한 구석에 놓인 상자에 축의금을 넣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 상자를 감시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돈을 줄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기부를 하라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부를 하는 입장 즉 베푸는 쪽에 서 있는 상태이다.

‘베푸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한다.’는 긍지를 가지게 되어 누군가를 돕는다는 우월감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베풂을 받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까? 고맙다고 느끼는 반면,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돈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른다. 베푸는 쪽에서는 이러한 심경을 이해하기 힘들다. 축의금도 이와 똑같이 생각하면 된다. 가난한 사람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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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축의금을 강요하지 않는다.

히브리 성서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돈을 받는 사람의 비참한 심경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사람에게만 돈을 줄 경우는 ‘빌려 준다’는 태도를 보이라고 충고한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관계는 동등한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빌리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돈을 받아도 비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 대신에 빌려준 돈은 다시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설령 빌린 사람이 돈을 돌려줄 때에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히브리 성서에서는 가르친다.

유대인의 가르침에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는 근본이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베풂을 숨겨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는다. 강자에게 존엄이 있듯이 약자에게도 존엄이 있다. 그러나 강자는 자칫하면 약자의 존엄을 보지 못하고 무시할 우려가 있다. 히브리 성서가 철저하게 약자의 편에서는 이유는 유대인이 이집트 노예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한 누군가의 마음과 심리를 이해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Practice 29 두 명의 걸인

중세 시대에 유대인 두 명이 프랑스의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다. 그들은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문제> 유대인 걸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모았을까?

■ 심리전을 준비하자

이 이야기는 ‘걸인이 돈을 번 방법’이라는 유대인의 설화다.

두 걸인의 작전은 이러했다.

한 사람은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놓고, 다른 한 사람은 십자가를 담요 위에 올려놓은 후 길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방법이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기독교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사람들이 십자가를 놓은 걸인에게 돈을 던졌다. 십자가를 가진 걸인은 돈이 많이 모이면 다윗의 별을 가진 걸인에게 걸어가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게 슬쩍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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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넸다. 다윗의 별을 가진 걸인에게는 돈이 산처럼 쌓여 있지만, 십자가를 가진 걸인에게는 동전이 하나도 없다는 상황을 일부러 만든 것이다.

마침 지나가던 기독교 신부가 “내가 유대인 걸인에게 지지 않을 만큼 돈을 주겠습니다.”하고는 다윗의 별을 가진 걸인보다 더 많은 동전을 십자가를 가진 걸인에게 주고 갔다.

이러한 행동을 며칠 동안 반복하자 두 걸인은 작은 상점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았다고 한다.

■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에 주목하자

우리는 좋은 제품을 싸게 팔고, 양심적으로 만드는 것이 기업이 올바른 자세라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유대인 걸인들이 돈을 번 방법은 정당하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돈을 버는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며 ‘공정하지 못하다’ ‘깨끗한 방법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유대인의 방법과 사람을 속여서 돈을 버는 방법을 혼동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전부 ‘현명하지 못한 방법’ ‘더러운 방법’이라는 말로 한데 묶어서 혐오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두 명의 걸인’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효과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지 계획을 짜야만 한다. 걸인 두 명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획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래된 방법만을 고수하는 사람과 경쟁이 난립한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의미가 다르다.

■ 계획을 세우는 사고법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을 아깝다고 생각한다. 세금을 내는 사람은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동시에 사회전체의 세수를 늘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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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유대인의 체다카(기부관습)의 비율은 좋은 가르침이 된다. 유대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수입의 10%를 기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의 발상으로 보면 누진세를 적용해 세율을 최고 50%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며, 부유층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누진세를 적용해 부유층에게 50% 정도의 세금을 걷는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도 부유층은 일반 서민에 비해 많은 이익을 챙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유층의 시각에서 보면 50%나 되는 세금을 착취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종교를 개종하거나 탈세를 선택하는 사람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결국은 부유층에서 걷어야 할 세금은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

세타카는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한 결과물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지속적으로 기부할 수 있게 만든 제도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업 분야에도 새로운 계획을 만들었다. 스카이프와 구글, 페이스북, 드롭박스, 에버노트 등이 서비스를 무료화해서 소비자를 모은 후 광고 수입만으로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무료화로 돈을 번다’는 모순된 견해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그 모순된 견해는 지금까지도 정보통신의 수많은 영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일단 입장만 하고 나면 나머지는 가는 곳마다 돈을 내야만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또 다시 올지 모르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계획이다.

Lesson 9 철학의 배경을 파악하자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자

Practice 30 포경국가의 반론

많은 나라들이 포경을 허용한 나라를 격렬하게 비난한다. 포경국가는 다른 나라의 비난에 어떻게 반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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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反) 포경국가도 이전에는 고래를 잡은 사실이 있다.

b) 반포경 국가도 사슴이나 캥거루를 죽여 고기로 먹고 있다. 그것과 포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c) 멸종 위기에 처하지 않은 고래만을 잡기 때문에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보 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d) 고래는 포경 국가의 식문화다. 그래서 포경은 반드시 필요하다.

e) 반포경 국가는 자신들이 종교적 가치관으로 다른 나라의 행동을 비난하 고 있다.

f) a부터 e의 대답은 모두 정당한 반론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 게 반론할 것인가?

■왜 논점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는 것일까

한 일본인의 반론을 예로 들어보자.

“고래나 돌고래를 먹는 것과 소와 양을 먹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고래나 돌고래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이라고 말하는데, 그럼 개를 먹는 나라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캥거루나 사슴을 먹는 나라는 왜 비난하지 않느냐?”

다시 말하겠지만 위의 반론은 모두 논점에서 벗어난 주장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이러한 반론은 ‘초등학생 이하의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로 들면 과속 위반으로 잡힌 사람이 “내 앞에 가던 자동차가 더 빨리 달렸는데 왜 나만 잡는 거예요?” 하고 경찰에게 항의하는 행동과 똑같다. 이러한 반론으로는 신호 위반 딱지를 끊으려는 경찰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다른 사람도 똑같이 했으니까.’라는 반론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전혀 효과가 없는 행동이다.

■ 문제의 진짜 논점이란

많은 서양국가가 반포경 국가가 된 배경에는 히브리 성서의 철학이 숨어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중심인 히브리 성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서양과 이슬람 사회에서도 큰 가르침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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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남기고 있다. 기독교의 성서중 하나인 구약성서는 히브리 성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히브리 성서의 주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물을 학대하지 말라’는 동물중시 사상이다. 천지가 창조될 때 동물은 인간보다 먼자 만들어졌다. 동물이 인간보다 중시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인간이 먹어도 되는 동물은 집에서 기르는 소와 염소, 그리고 양밖에 없다고 한다. ‘코셔’에서 규정하고 있는 도축방법이 절대적인 조건으로, 짧은 순간이나마 가축이 고통을 받고 도축되었다면 그 가축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

즉 인간이 먹기 위해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동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코셔 :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는 정결한 음식, 육류와 유제품을 섞어서 사용하지 않음, 십일조를 내지 않은 이스라엘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 등......

이슬람교의 할람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도 마찬가지다. 가축에게 고통을 주는 총, 전기, 물 등은 도축도구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고래를 잡는 방법은 작살로 고래등을 찌른다. 고래의 몸은 거대하기 때문에 한 번으로 쉽게 죽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번 작살을 내리 찍는 방법으로 아주 고통스럽게 고래를 죽인다.

많은 반포경 국가들이 문제시 하고 있는 점은 고래나 돌고래를 포획하는 행위가 아니라 잔인하게 죽이는 살해방식에 있다. 포경의 잔혹성이 이 문제의 진짜 논점이다. 이러한 논점을 알아야 포경 국가들은 반포경 국가를 상대로 그럴싸한 반론을 펼칠 수 있다. 앞에서 들은 a)에서 e)까지의 반론은 모두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포경국가가 내세워야 하는 반론은, 포경의 잔혹성에 대한 자신들의 정당성을 논리 정연하게 펼치는 주장이다.

Practice 31 고대 유대인의 이혼장

고대 유대인들은 이혼이 성립되는 조건을 이렇게 정했다.

‘종이에 쓴 이혼장을 아내에게 건네면 이혼이 성립된다.’

■ 무엇을 위한 토론인지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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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장을 작성하고, 아내에게 작성했다고 말만 했을 뿐 실제로 이혼장을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혼 의사만은 확실하게 밝혔다. 이 상황에서 이혼은 성립될까?

‘이혼장을 아내에게 건네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해야만 이혼이 성립된다. 따라서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다. 즉 이 단계에서는 아직 남편이 아내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그럼 이혼 성립의 정의에 배경이 되는 철학은 무엇일까. 이혼을 증명하는 이혼장이 아내의 손에 들어오면 아내는 이튿날부터 자유롭게 재혼할 수가 있다. 반면에 “오늘부터 이론이야!”라고 말만 할 뿐 아내의 손에 이혼장을 쥐어주지 않으면 아내의 인생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 Practice 32 소와 당나귀

토라의 가르침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 소와 당나귀를 동시에 한 멍에에 메워서 쟁기를 끌게 할 수는 없다.’

<문제)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철학의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라

왜 소와 당나귀를 한 멍에에 묶어서 농지를 경작하지 말라는 것일까.

꼭 소와 당나귀가 아니라도, 같은 종이지만 힘이 다른 가축을 한 멍에에 묶으면 발이 맞지 않아 소와 당나귀를 묶었을 때와 같이 농지를 경작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한 멍에에 묶인 두 가축 모두 금방 지쳐버리게 된다. 특히 작고 힘이 약한 가축에게는 과도한 힘이 가해져 그만큼 고통도 커진다.

힘이 약한 당나귀를 한 멍에에 묶으면 힘이 약한 당나귀는 힘이 센 소에게 끌려 다니느라 고통을 받게 된다.

‘한 멍에에 메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의 근본은 약자보호에 있다.

사회에는 힘이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힘이 약한 사람도 있다. 걸음이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음이 느린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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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다른 능력과 다른 체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약자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약자에게 맞춰야 한다는 견해가 약자보호 사고다.

■ 표면적인 이해로는 생각을 전하지 못한다

사실관계에 의거해 올바른 의견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토론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이유는 전부 논점에서 벗어난 의견을 말했기 때문이다. 주장이 논점에서 벗어났을 경우, 이런 주장을 아무리 강조해도 상대방을 설득 시킬 수 없고, 심한 경우에는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상대해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는 위안부제도를 놓고 일본에게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논점에서 벗어난 주장만을 펼친다. 논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한 증거도 사실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위안부 제도는 나쁘지 않다.’고 일본 정부는 주장한다. 이러한 정부의 발언은 ‘강제였는지, 강제가 아니었는지’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과연 문제의 논점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강제가 아니라면 위안부 제도는 정당화 될 수 있는지?’에 있다.

위안부 제도의 진짜 논점은 강제였는지 강제가 아니었는지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 진짜 메시지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둔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왕국(원제 Frozen)>을 예로 들어 말해보자.

주인공이 부른 노래인 ‘Letc It Go’를 흥얼거려도 좋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을 벌여보면 어떨까. 헐리우드가 만든 영화 속에는 항상 어떠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

헐리우드 영화에는 유대인이 생각하는 미래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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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가 전 세계를 향해 던지는 <겨울왕국>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여동생인 안나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언니인 엘사를 구하려고 한 마지막 부분이다. 안나는 엘사를 내리치는 칼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얼음덩어리로 만든다. 그리고 얼었던 안나이 몸이 녹았을 때 엘사는 이렇게 말한다.

“날 위해서 네 자신을 희생한 거야? (You sacrifice for myself.)"

그러자 안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언니를 사랑하니까.(Because I love you.)"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이 아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언니를 구한 헌신이 가족 간의 진짜 사랑이다.

이것이 유대인이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이고, 형제자매 간의 사랑의 존엄성을 알려주기 위해 만든 영화다.

또한 잃은 것 없이 얻는 것도 없다는 유대인의 철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겨울왕국>에서 잃은 것은 자기 자신이고, 얻은 것이란 엘사의 목숨 즉 언니다. 이 가족애가 유대인 이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Practice 34 성스러운 송아지는 어느 쪽일까

토라에서는 ‘소가 처음 낳는 송아지는 신의 자손으로, 신에게 바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 족제비가 임신한 암소의 뱃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입으로 태아를 꺼냈다 그리고 그 태아를 다른 암소의 몸속에 넣었다면, 이 암소에게서 태어난 송아지를 성스러운 송아지라 할 수 있을까?

■ 추상화된 생각이란

현실에서는 이러한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다.

이 이야기는 ‘출산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즉 자연의 힘이 아닌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서 태어난 아이라도 ‘성스러운 자’라고 할 수 있을지를 묻는 토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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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유대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만이 유대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수정과 대리모 문제는 항상 심각한 주제로 다뤄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리모 문제는 가장 어려운 토론 주제다.

히브리 성서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눈과 이가 무엇을 비유하는지 모르면 ‘눈이 뽑힌 사람에게 똑같이 눈을 뽑아야 하고, 이가 부러진 사람은 그 사람에게 가 똑같이 이를 부러트려야 한다는 의미로, 보복을 해도 좋다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히브리 성서에 대한 모욕이다. 눈과 입은 모두 비유된 표현으로 처음에 쓰인 눈은 자신이 받은 피해이고, 두 번째에 쓰인 눈은 금전배상의 정도를 말한다. 처음에 쓰인 이는 자신이 받은 또 다른 피해이고 두 번째에 쓰인 이는 그 피해에 맞는 금전배상의 금액을 말한다.

즉 남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금전으로 피해 정도에 맞는 배상을 해야 한다는 유대교의 법률이다.

■ 옮긴이의 말 : 토론과 끈기의 차이

세계적으로 유대인이 뛰어난 두뇌를 자랑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런 뛰어난 두뇌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계에서 뒤지지 않을 정도의 두뇌를 자랑한다. 그리고 우리도 어쩌면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뛰어난 두뇌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후천적인 노력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끈기’로 뛰어난 두뇌를 만들었다면, 유대인들은 ‘토론하는 습관’으로 뛰어난 두뇌를 만들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철저하게 다수결의 원리를 따른다. 이렇듯 우리의 사고에는 특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르다.

유대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토론을 벌여왔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과 오래전부터 굳어져 내려오는 관습에까지 의문을 품고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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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이런 토론 습관은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우리는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왜?’라는 질문을 귀찮게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 자신도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나머지 ‘왜?’라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토론’보다 ‘끈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 책에는 유대인들이 토론 습관을 통해 사고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고력이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유대인들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일상에서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까지 토론을 벌인다. 이러한 습관이 유대인들을 세계 최고이 인재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가정에서도 끊임없이 사고력을 키어주려고 노력해보자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세상에 이끌리지 않고, 주도적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기 위해 우리 모두 유대인식 사고력을 키워보자.

- 옮긴이 권혜미 -

2017. 1. 19.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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