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스타일이다(2)

2018. 4. 16. 09:00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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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스타일이다(2)

- 책읽기에서 글쓰기 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

■ 장석주 지음

Part 4 출구

◉ 작가의 길

■ 문체란 무엇인가

쓰다보면 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부족한 것을 알면 그걸 채우면 된다. 그러니 써야 한다. 백 마디 말을 해봤자 쓰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백날을 생각만 해봤자 기록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 쓴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쓰고 나면 기필코 보완해야 할 게 눈에 보인다.

멋진 문장을 쓰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실 되지 못한 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현란한 수사로 치장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고운 헝겊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보자기로 오물을 싸놓은 것처럼 흉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대개 현란한 수사는 사실을 흐릿하게 만들고, 진실을 장박으로 가린다. 늘 평이한 어휘들로 쉽고 간결하게 쓰는 버릇을 들이라. 간결하고 담백하며 함축적일 때 문장은 힘차고 읽을 만한 것이 된다.

스스로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 看書痴)’라고 자처했던 이덕무, 그는 엄청난 독서로 그 경지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을”정도였다. 경서(經書)는 물론이고, 제자백가, 역사, 문물제도, 음운학, 문자학, 역대 문집, 의서와 농서 등에 이르기까지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책이 좋아 평생 책과 더불어 산 사람답게 그의 성정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문장에 잘 드러난다. 일생을 책과 함께하다 보니 어디 한 군데 눌리고 일그러진 데 없이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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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체와 나

글은 사람을 문자로 나타낸 것이요. 글쓰기는 운명이다. 사나우면서도 아름다운 운명! 아주 많은 우연들이 뭉쳐서 운명을 만든다. 당신은 덧없는 그 운명에 호명을 받은 자이다. 당신은 쓰는 자로 당신의 정체성은 문체 속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모든 글에는 필적(筆跡)이 남듯이 당신이 쓴 글에도 문체라는 내면의 필적이 남는다. 똑같은 필적이 없듯이 똑같은 문체란 없다.

문체, 그것은 당신의 존재 증명이자 당신이 살아서 뭔가를 했다는 물증이며, 당신의 현존(現存)을 증명하는 패스포트이다. 문체는 피의 불가피한 기질, 삶의 현존을 반영한다. 문체는 선택의 소산이 아니다. 문체란 자기만의 어조,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문장의 특색이다. 그것은 문법적 요소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작가의 기질과 개성의 표현이다. 문체에는 불가피하게 그것을 쓴 사람이 타고난 본성과 취향, 인격과 스타일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모리스 블랑쇼는 문체가 피의 신비로움이나 본능에 연결된 불가피한 기질, 체액이 강요하는 필연, 제 내면에서 본성으로 작동하는 분노, 자기 자신과의 은밀한 가까움에서 유래하는 속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저마다 타고난 본성과 기질이 다르니 문체 역시 백인백색이다.

◯ 대가들도 알고 보면 이렇게 배웠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드 함순(Knut Hamsun, 1859~1951)과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Ivan Turgenev, 1818~1883)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고. 미국 소설가 랠프 앨리슨(Ralph Ellison, 1914~1994)은 헤밍웨이와 미국 소설가 거투르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의 책을 탐독하며 배웠다.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는 고대 로마시대의 역사가 살루스티우스에게서 저 유명한 경구적 문체를 배웠다.

좋은 글을 찾아보라. 좋은 글은 글쓴이의 의도가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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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진다. 좋은 글을 찾아 읽고 정확한 낱말과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라, 그 한 가지 방법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좋은 텍스트를 옮겨 쓰다보면 문장을 이루는 개별 요소들과 테크닉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많은 작가들이 습작 시절에 그런 방법으로 훈련을 해왔다. 오랜 훈련에서 이치에 들어맞는 문장을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힘찬 문장, 날렵한 문장, 우아한 문장, 장중한 문장, 감미로운 문장, 세련된 문장들까지 구사할 수 있다.

◯ 텍스트를 지배하는 원칙

좋은 문체는 사유와 감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좋은 문장의 전제조건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 세련된 언어 감수성이다. 문장의 적재적소에 언어를 배치할 수 있으려면 가용 언어의 범주도 넓어야만 한다. 그 모든 것들을 위해 사전을 적극적으로 할용하라. 사전은 말들의 보고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어휘들이 그 속에 다 있다.

의심쩍은 말이 나올 때마다 찾아서 확인하라. 유사어나 파생어, 그리고 활용의 예를 눈여겨보라. 그리고 그것을 노트에 옮겨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라. 그러면 문장을 쓸 때 무미함과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훨씬 더 다양한 어휘들, 생동감 넘치는 어휘들을 쓸 수 있는 연습이 쌓이고 쌓여 당신만의 스타일이 만들어 질 것이다.

스타일은 텍스트를 지배하는 심미적인 원칙이자 윤리적인 원칙이라는 것을.

내용과 형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스타일은 내용도 아니고 형식도 아니다. 스타일은 내용과 형식의 전체, 즉 복합물이다. 한마디로 스타일이란 자기 완결적인 ‘생겨먹은 꼴’이다. 사람마다 다른 ‘꼴’ 이 타고난 본성과 반복된 습관들이 복합되어 만들어지듯이 글쓰기 스타일 역시 글쓴이의 표면과 심연이 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서 나오는 결과이다.

당신만의 스타일로 쓰고 싶다면 먼저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어휘, 문장 구성법, 문체를 배우고 익혀라! 그들의 작품을 ‘스타일’로 보는 관점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 무의식, 나도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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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추론에 따르자면, 뭔가를 쓴다는 것은 기억의 부실함에 대한 보완이며, 모든 잊혀짐과 덧없음, 곧 사라지는 것에 대한 처절한 항거이다. 원시 인류가 동굴에 남긴 기호들과 그림들은 그 잊혀짐과 덧없음에 대한 저항의 한 형식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 주체가 달라지고, 주체가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 훌륭한 사람이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한 번 돌아보라. 말과 행동 사이에 얼마나 많은 불일치가 있는가. 쓴다는 것은 엄살떨거나 회피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쓰는 데 왕도란 없다. 쓴다는 것은 제 삶의 공백을 글쓰기라는 노동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왜 사람들은 쓰지 못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대단한 사람, 유식한 사람, 좋은 사람, 혹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데, 뭐 그렇게 대단한 게 있겠는가? 없는데 있는 척하고 살려니 인생이 무겁고 힘들어지는 거다. 그게 심하면 병도 난다. 그 겉치레 병, 남을 속이는 병, 위장하는 병, 그게 깨져야 ‘뭔가 있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가? 안은 텅 빈 채 껍데기만 있는데 누군가 자기를 대단한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마디로 뻔뻔하고 기만적인 삶이다. 그걸 가차 없이 깨고 자기 폭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쓴다. 쓰는 자만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

◯ 천재의 뿌리

작가들이란 언어와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면에서 천재들이다. 그 천재의 뿌리는 무엇일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것은 바로 무의식이다. 좋은 작가들은 무의식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작가의 근본 문제는 자신감, 자존감, 자유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수호정령은 무의식 속의 이런저런 유령들에게 붙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의식은 추상적이고 형체도 없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본성에 내재된 무서운 힘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완전히 분리된 채 다른 층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활동 자체 가운데서 공존한다. 무의식의 바닥으로부터 의식이 출현하는데, 즉 의식은 또 다른 또 다른 심연의 입구인 것이다.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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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들어서면, 그 안에 어마어마한 심연이 웅크리고 있다. 아주 깜깜한 심연의 어딘가에는 욕망, 진실, 상처, 잠재적인 기억과 이미지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우리 안에 깊숙이 숨어있는 일종의 광주리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의식할 수 없고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글을 잘 쓰려면 당면한 지식의 문지방 뒤에 자리하는 우리 본성이 거대하고 강력한 이 부분과 타협해야 한다. 즉 무의식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고치게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이성의 간섭에 짓눌리지 말고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서 글을 써보는 것이 좋다. 재능의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있다.

◯ 무의식 깊숙이 숨어 있는 욕망

작가의 과업을 ‘쓰다’라는 동사보다 더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을 찾기는 어렵다. ‘쓰다’라는 동사는 작가들이 따라야 할 궁극의 도(道)이다. 결국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실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쓰고야 말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글을 쓴다. 저를 드러내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자는 영원히 글을 쓸 수가 없다.

가장 쓰기 어려운 것이야말로 정말 써야 될 것이다. 정말 써야 될 것은 가슴 밑바닥에 눌러 붙어 있다. 그걸 끄집어내는 것, 이것이 내면에 숨은 자아를 만날 수 있는 통로이며 곧 무의식의 글쓰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 글쓰기와 집짓기

글쓰기는 일종의 집짓기이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것과 집을 짓는 과정은 닮아 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집을 지을까를 머릿속에 그려본 다음 집의 내부 구조, 창과 문의 위치 등 집의 모양을 구체화시킨 설계도가 필요하듯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만물을 품을 줄 알아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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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열린 마음에서 풍부한 상상력이 배양되는 법이다. 상상력은 밋밋한 사유에 강렬한 느낌을 접목시켜 최초의 착상들을 입체화시키고 더 큰 사유로 이끌어준다. 어울러 상상력은 남과 다른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낳는 기반이 된다. 이렇게 현실에 뿌리를 둔 상상력 없이는 좋은 건축도, 좋은 글도 나올 수 없다.

◯ 글쓰기로 건축하는 법

글쓰기는 집짓기와 정말이지 서로 닮아 있다. 목수의 망치, 광부의 곡괭이, 나무 판에 각(刻)하는 이의 손에 들린 끌은 ‘단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단어가 글쓰기의 도구라는 뜻이다. 집을 지을 때 설계에 따라 시공을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 있듯이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의도나 주제를 바꿀 수도 있고, 문장들과 단락들, 플롯. 글 자체의 형식도 바꿀 수 있다.

작가는 때때로 작품이 드러내는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혹은 완성된 작품의 지리멸렬함과 보잘것없음 앞에서 절망한다. 그럴 때는 망치로 건물 벽이나 지붕의 하중을 떠받치는 뼈대를 조심스럽게 두드려야 한다. 본래의 목적과 무관한 벽들은 헐어내야 한다.

실패했다는 판정을 내린 작품 중에서 일부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작가들은 자기 작업의 결과물에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앞에 쓴 것들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은 형벌과도 같다. 작가들은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 다시 망치와 끌을 잡고

모든 글쓰기가 “영감이 가득한 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작가에게 집필은 노동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매우 고되고 메마른 노동이다.

한 번 썼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뒤 지난한 수정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더 많이 고칠수록 문장이 더 윤택해지니 안 고칠 도리가 없다. 글쓰기란 그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수행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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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글쓰기 의 더딘 진행에 진저리가 나도록 불안해 질 때마다 스위스 철학자 아미엘의 말을 떠올린다.

“1,000걸음 나아가다 999걸음 물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전진이다.”글쓰기에서 ‘전진’이란 그런 것이다.

■ 몸으로 글쓰기

대가들은 글을 쓸 때 늘 ‘몸으로 써라!’라고 말한다. 몸은 살이고 피요, 더 나아가 물질, 실체, 자아를 아우르는 총체이다. 몸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요, 물질적 현전(눈 앞, 아주 가까운 장래)이다.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살아서 작동하는 몸을 글쓰기에 최적화된 상태로 정렬하는 것이고, 글쓰기 속으로 몸이 도래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가 육체를 통한 창조라는 것을 강조한다. “당신의 감정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잡고 있는 손, 그 손과 연결되는 팔, 이렇게 육체적으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마음과 육체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은 글을 쓰고 있는 육체를 행위를 통해 마음의 장벽을 능히 부술 수도 있다.

◯ 보다 깊은 글쓰기의 비밀

몸으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말 그대로 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 글쓰기는 무아지경에서 폭발하듯이 이루어진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 내리고 소화시켜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이라는 단계 밑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켜라.

둘째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몸으로 겪은 것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들, 즉 몸에 입력된 감각들로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란 몸을 통해서 존재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입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들로 글을 세우는데, 의식 표면의 것들을 글감 삼아 쓴 글들은 대체로 생각이 얕다. 머리로 쓴 글은 피상적인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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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외부에서 들어온 개념들이 주가 되기 마련인데, 자신의 통렬한 체험과 기억의 복합에서 나오는 절박함이 없기에 어떤 힘도 감동도 느낄 수 없다. 그보다는 의식의 표면 아래, 즉 무의식의 형태로 저장된 기억들을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보다 깊은 글쓰기가 이루어진다.

◯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몸 안에 살도록 ‘종신형을 선고’받은 존재이다. 몸이 삶의 기반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의 기반도 몸이다. 이때 몸이란 영(靈)과 육(肉 )의 합체이다.

머리(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게 몸(본능)이다. 몸은 한 마디로 정서(기억), 몸의 심층을 만드는 무의식이다. 몸으로 쓰라는 것은 생각을 폐기하고 몸(본능)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몸은 공작새가 펼치는 화려한 깃털같이 영혼, 느낌과 감정, 사유와 언어들을 제 속에 은닉하고 있다. 글쓰기란 숨기고 있던 그것들을 세계를 향해 활짝 펼치는 일이다. 몸은 의미의 촉매이고 의미가 파열하듯이 드러나는 영점(零點), 혹은 의미의 과녁이자 꿰뚫는 화살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온 감각과 신경을 집중하듯이 글을 쓸 때도 몸과 몸에 흘러 들어온 감각 입력들에 집중하라! 거침없이 심장으로 들어가라! 왜냐하면 “‘심장(heart)’ 안에는 예술(art)"이 있기 때문이다.

■ 등단을 꿈꾼다면

등단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들은 오늘도 혼자 골방에 들어가 내적 체험과 몽환, 미친 영감을 한데 넣고 뒤섞어 말랑말랑한 반죽을 만들고, 그 반죽에 마법을 일으키는 상상력을 넣어 작품을 빚을 것이다. 글쓰기는 밀실에서 본능과 꿈, 예감을 재료로 빚어 일구는 고독한 발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적인 일이다. 밀실의 음지에서 수공업적인 기예로 빚은 작품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햇빛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게 바로 신춘문예이다.

◯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순간

신춘문예는 한국에만 있는 아주 독특한 신인 등단제도이다. 신춘문예에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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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된다는 것은 어제까지 무명이었던 신인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새로운 작가로 등장하는 문학적 사건이다. 하루아침에 이름이 알려질 수 있고, 아무런 차별 없이 작품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매혹 때문에 문학청년들에게 신춘문예는 언제나 꿈의 무대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날마다 시립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서 햇빛이 기장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이나 꾸역꾸역 읽으며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시를 푸른 노트에 끼적이던 무명의 문학청년에서 당당하게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대도약이 순간을 맞은 것이다. 갑자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그때부터 편집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부르고 찾는 일들이 부쩍 잦아졌다. 그때 기회의 문들이 활짝 열리는 것을 실감했다.

◯ 국민 백일장 신춘문예

한국에서 신춘문예가 처음 선보였던 해는 1925년으로 <동아일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신춘문예를 공모하며 현상금 대신 ‘박사잔정(薄謝進呈)’을 내려줬다. 즉 당선자에게 사례로 약간의 돈이나 물품을 준 것이다. 이듬해부터 소설의 경우 1등 60원, 2등 30원의 현상금을 주었다. 당시 쌀 한 가마가 30원 택시요금이 1원 이었으니 상금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신춘문예가 시작된 지 이제 90년이 조금 넘었다.

◯ 문학청년에서 시인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20대 청년에서 신춘문예 심사를 보는 50대 중년 시인이 되었다. 대개 심사자들이 찾는 작품이란 천둥 같은 울림과 번개 같은 번쩍임을 일으키는 글이다. 시의 경우 열린 감각, 언어 감수성, 시상을 찾아내는 촉(觸)과 같은 시의 기본 재능을 두루 갖춘 시인을 뽑는다. 소설의 경우 사유의 격투가 오롯이 담겨 있고, 이전에 없는 새로운 개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일찍이 버나드 쇼(Bernard Shaw, 1856~1950) 는 "첫사랑은 작은 광기의 커다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작은 광기와 커다란 호기심에서 시작한 습작이 평생에 걸친 일이 되고 만다. 문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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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옥이거나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행복이다.

무엇이 나를 문학으로 이끌었을까. 삶이 그러하듯 예술은 불멸을 흉내 낸다. 그 불가능한 불멸에의 꿈이 나를 문학으로 이끌었고 아직 이것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글쓰기의 과정은 지난하고, 유일한 위안은 강요되지 않은 노동이란 점뿐이다. 보상은 작고 수고는 크더라도, 써야만 한다. 쓰고, 쓰고, 끊임없이 쓸 뿐이다.

■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시는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을 호명하는 일이고, 쓸 수 없는 것들을 쓰는 하염없는 짓이다. 시는 투쟁이고, 영혼의 내전(內戰)이며, 수수께끼에의 투신이다. 또 한편으로 시는 묘사이거나 사실의 자명함을 드러내거나,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한 감탄이다.

시는 더도 덜도 아닌 전쟁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라는 이 끝나지 않은 전쟁에 즐겁게 참전한다. 우리는 그들을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은 시라는 전선에서 복무하는 보병이다. 철학이 강의실이나 카페에서 나오고, 역사가 ‘감옥’이나 ‘광장’에서 나온다면, 시는 오로지 제가 머무는 골방을 ‘전선’으로 삼은 ‘전쟁’에서만 나온다. 그런 점에서 철학의 이성, 역사의 피, 시의 언어는 하나이다. 목숨을 걸고 쓸 때, 즉 시가 전대미문의 전투일 때 시는 참되다. 모든 위대한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온다.

시는 깨달음을 목적하거나 의미를 겨냥하지 않는다. 시가 반드시 교훈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을 필요도 없다. 시는 즐거움을 주는 언어의 놀이이다. 있음의 오롯함이고, 그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떤 시는 사물을 꿰뚫고 지나가는 직관의 순간을 보여주고 어떤 시는 상상력의 다채로움과 오묘함을 보여준다. 시는 칼날 없는 칼이요. 실제가 없이 춤추는 그림자이다.

◯ 창작이라는 수원지에 도달하는 법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에 대해 “어떤 것의 존재를 지우면서도 그것을 읽기 쉽게 유지하는 몸짓의 이름”이라고 했다. 시를 쓰는 것 역시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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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존재를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존재를 세우려는 몸짓일 테다. 그렇다면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평소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1. 새로운 존재를 세우려는 몸짓을 보여라.

2. 단단한 시를 보여라

새롭게 찾은 사물의 성질, 감각의 명징함, 모국어를 최적화할 수 있는 약동, “진탕만탕 생명력의 잔치”(보들레르)들이 잘 어우러진 시라야 야무진 시라고 할 수 있다.

3. 남다른 상상력을 보여라.

익숙함에서 익숙하지 않음을, 하찮은 것에서 하찮지 않음을 찾아내는 비범한 눈을 길러라.

4. 통념을 깨고 명징성을 보여라.

통념을 깨는 상징을 찾아라. 감각의 명징성을 보여라. 생명의 도약에 공감하라. 세계의 찰나를 경이로써 보여주라. 이런 것들이 좋은 시의 덕목으로 꼽을 만한 것들이다.

5. 현실의 중력을 뚫고 나가라.

상상력이 현실 세계에 작동하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시들은 그만큼 시적 매혹이 부족하다.

◯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

시의 다른 미덕은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예술에서 “가장 고상하고 의미심장한 가치”이자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투명하게 써라.

◯ 위대한 시인의 질문

시는 대상을 향한 끝없는 물음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도마뱀, 소금, 석탄, 꿀벌, 소나무, 오렌지, 연기들, 뿌리들, 별, 전갈, 거북, 그늘, 빗방울, 새 나뭇잎들은 그것들 자체로 경이이고, 숭고한 물음들이다.

질문이란 모름을 모름으로 오롯하게 남겨 주는 것, 아울러 존재에 대한 관습적 이해를 깨고 존재를 처음으로 돌려놓는 행위이다. 형이상학적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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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존재는 태고의 자신으로 돌아가 새롭게 자신을 연다. 시인은 질문을 던지는 자이고, 질문들은 저마다 답을 품고 있다.

파블로 네루다는 질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답을 얻었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사람이란 결국 이 세상에 와서 질문하다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 문학이 가르쳐준 것들

문학은 삶이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져 묻는 작업이다. 문학 그 위대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자주 의문에 빠뜨렸던 과연 삶은 살만한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 마주 서게 한다. 우리를 진정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의문들이다. 문학은 온 사방에 스며들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에서나 문학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항상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있다. 문학은 세상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빠진 우리에게 숨은 진실을 보라고 말한다. 그렇다. 진실이다. 사람이 따르고 가야 할 길은 바로 그 진실로 뻗어 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의 체험을 엿봄으로써 간접적으로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문학은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결국에는 사회를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꾼다. 사람 그 자체가 사회활동의 총체라면 사람이 바뀜으로써 사회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써먹지 못함을 써먹는 것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새로운 사유로 이끈다. 즉 무엇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문학은 권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도 아니요. 출세의 방편도 아니다. 더구나 굶주린 자의 굶주림을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문학은 역설적으로 그 써먹지 못함을 써먹는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으므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들의 부정적 힘을 드러낸다. 그 부정적인 힘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세계가 바뀌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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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당위를 도드라지게 한다. 문학은 그 사실을 논리로서가 아니라 “감동이나 혼의 울림”으로 보여준다.

문학은 권력과 부와 기득권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이면에 어떤 야합과 부정한 거래가 이루어졌는가를 폭로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그들이 어떻게 가로챘는가를 증거한다. 그래서 문학은 “불행의 증거이며, 고독의 표상이고 저주의 외침”이다. 문학은 인간의 불행과 고독과 저주를 먹이 삼아 제 몸피를 키울 뿐만 아니라. 결국 불행의 증거로, 고독의 표상으로, 저주의 외침으로 이미 있는 것들의 세계를 통째로 부정하고 전복함으로써 제 존재를 정당화한다.

언어로 지은 성, 그 상상 공간을 우리는 문학이라 부른다. 그 상상 공간은 소설가 모리스 블랑쇼가 말했듯이 “어쩌면 아무것도 없고, 어쩌면 모든 것이 있는 심연, 심오한 부재”의 자리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향유로 독자를 이끈다. 문학은 세상의 대의들과 강령들을 외치지 않고 다만 있는 그것, 즉 삶과 세계를, 혹은 있을 수 있는 형태로 지시하고 보여준다. 현실을 깐깐하게 따지고, 양심에 고발하고, 모두가 대의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의심하고 물음을 던진다. 문학은 본질적 고독에서 잉태한다. 고독 속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른다. 문학은 소통하는 것, 나와 다른 사람들의 뜻과 정서로 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는 시간

문학이 나아가는 길은 노래, 자발성, 찬미, 환희의 오솔길이다. 문학은 아주 오래 된 것! 그만큼 그 존재 가치를 충분히 증명해 왔다. 이 창조된 것 속에 나와 다른 타자들의 경험이 뒤섞이고 발효해서 지혜를 만들어 낸다.

문학은 3천 년이 넘는 동안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세대’에서 ‘저 세대’로 이어진 인간 경험의 총체이자 그 안에서 만들어진 지혜의 집약이다. 문학은 건반 없는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고, 언어로 된 존재의 거푸집을 짓는 일이다. 그렇게 문학은 언어라는 기반 위에 의미의 제국을 건설한다.

문학이 가리키는 것은 달이다.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바로 쓰는 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을 바라본다. 문학은 가리킨다. 달을! 혹은 세상의 저편, 또 안 보이는 저 너머를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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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광장

◉ 글쓰기 스타일

■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문장은 그것을 쓴 사람이 살아온 방식들, 내면에 쌓인 지식의 질과 양, 기운과 아우라(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다 반영한다. 그러므로 문장은 쓰는 사람마다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문장을 쓸 때 어떤 사람은 우아함과 심원함을 취하고 어떤 사람은 간결함과 명쾌함을 취한다. 어떤 사람의 문장은 화려하고, 또 어떤 사람의 문장은 기발하다. 문체의 차이는 바로 스타일의 차이다. 일반적으로 스타일은 남과 다른 독특한 멋스러움이나 태(態)나 맵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패션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스타일’이란 말은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쓰인다. 문학에서 스타일은 형식이고, 그 형식을 제약하는 내용이며, 그 둘이 결합하는 방식 그 자체를 포괄한다.

직조 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른 직물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일의 차이에서 다른 문학이 나온다.

스타일은 작품 요소들의 독특한 배열이고 구조이며 그것을 전체로 포괄하는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한 작품의 개별성을 인식하게 이끄는 표지(標識)이자 작품을 각인하게 만드는 기억 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일이 강렬한 예술 작품이 사람을 매혹시키고,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좋은 스타일이다.

◯ 마음의 무늬, 사상의 실체

글쓰기에서 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첫 번째 요소는 문체이다. 스타일이란 제각기 갖고 있는 고유한 색체이고, 저마다 다른 원 체험이며, 생각의 방식과 특성이 반영된 그 무엇이다. 문장에는 삶의 리듬이 녹아든다.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첫 소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재즈의 리듬’에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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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말한다. 그 당시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손님이 주문하는 대로 칵테일을 만들고, 카페 바닥을 쓸고 닦으며 종일 재즈를 들었다.

생활이 바뀌면 문체도 바뀌는 것일까? 그렇다. 먹고 마시는 습관, 잠드는 시각, 직업과 취향, 가치관들이 어우러져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내면 지형이 바뀌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문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글에서 스타일이란 문체의 결정(結晶)으로, 문체란 다른 어떤 요소보다 더욱 작가와 작품에 밀착되는 요소이다. 문체에는 마음의 무늬가 나타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실체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문체로 구현된 성격과 기질이고, 무의식으로 반복되는 의미의 망이다.

다른 말로 문체는 문장의 리듬이고 기풍이며, 문장에 서린 풍격(풍체와 품격)이다.

스타일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바탕과 관련이 있다. 당연히 스타일은 작가의 개성과 기질의 차이에서 달라진다. 스타일은 그런 바탕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스타일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 문체는 곧 작가의 모든 것

동양 고전으로 중국의 문학 비평서인 <문심조롱>에서 작가인 유협은 "재능과 성격은 사람마다 달라 문장의 풍격도 여러 가지다.“라고 말한다. 유협은 크게 여덟 가지의 문체를 든다.

1. 전아(典雅) : 우아함 2. 원오(遠娛) : 심원함 3. 정약(精約) : 간결함

4. 현부(顯附) : 명쾌함 5. 번욕(繁褥) : 화려함 6. 장려(壯麗) : 웅장함

7. 신기(新奇) : 새롭고 기발함 8. 경미(輕微) : 가볍고 자잘함

이 그것이다. 물론 유협이 가름한 문체의 다양한 종류들은 아주 오래전의 것으로 현대 작가들의 문체적 특성들을 다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고전에서 말하는 문체의 유형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문체란 한 사람의 내면세계를 쌓아 올린 벽돌 들이고, 그것의 구축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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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포괄하는 그 무엇이다. 단, 한 사람에게 여러 재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체는 여럿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을 쓰는가에 따라 문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 글쓰기에 미친다는 것

- 문장은 감각적인 디테일이다 -

◯ 김연수의 문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열망했던 헤밍웨이와 같이, 작업실에서 날마다 10시간씩 글을 썼던 오르한 파묵과 같이, 한 단락을 쓴 뒤 종일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썼던 폴 오스터와 같이 김연수는 끊임없이 퇴고하는 작가이다. 그는 날마다 문장을 갈고 닦는다. 그의 글쓰기는 불가사의한 인생의 찰나들에 대한 집요한 탐색이자 삶의 속살들을 더듬어 존재의 비의(秘意)를 찾는 탐험이다.

문장이란 시간의 압축이고, 시간의 경과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의 메아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그것은 욕망과 동기들의 화음을 듣고 받아 적는 일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작가란 날마다 무엇인가를 쓰고 고치는 사람을 뜻한다. 헤밍웨이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부분을 마흔 네 번이나 고쳐 썼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고쳐 썼느냐고 묻자, 그는 올바른 낱말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심장이 뛰고 있는 한 끊임없이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김연수는 소설을 쓸 때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생각을 생각할 겨를도 주지 말고 문장을 쓰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법

김연수는

- 김천 어느 빵집 막내아들로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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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한 계간지에 장편 소설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시작으로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세계의 끝여자 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같은 인상적인 소설의 작가

- 소문난 달리기 광

◯ 소설가의 일

두말할 것도 없이 작가란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다. 독일의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이야기는 사물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생명을 하나로 융화시킨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꺼내 놓는 사람은 곧 자기 생명의 일부를 꺼내 놓는 것과도 같다. 좋은 작가들은 제 경험 속에서 이야기의 윤곽을 담금질해서 한 편의 소설을 정제해 놓는다. 작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량원다오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무수한 별들 속에서 별자리를 그려내는 것과 같다.

◯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에서는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 일과 무관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삶과 일어난 뒤의 삶을 동시적으로 살아낸다. 그 일들은 그 무엇의 몰락이나 소멸과 관련이 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집단, 하나의 관계는 갑작스럽게 무너지기 마련이고 소설이란 그 덧없는 몰락과 소멸 붕괴를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삶이 그렇듯 이야기들은 어떤 자취만 남기고 휘발할 수밖에 없다. 진실이 견뎌야 하는 중압감이 될 때 그 견딤은 지독한 슬픔으로 발효한다. 그 반대로 거짓이 견뎌야 하는 사실이 될 때 그 견딤은 지독한 모멸로 발효한다.

■ 비정한 문체

- 하드보일드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스타일이다.

◯ 헤밍웨이의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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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는 저보다 앞선 작가들 중에서 배울만한 전범을 찾는다. 헤밍웨이에게 어떤 작가에게 가장 많이 배웠는가 하고 물었을 때, 수없이 많은 작가의 이름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가 열거한 이름 중에는 작가들뿐만 아니라 화가 음악가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는 일찍부터 예술을 즐기며 수많은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무임을 알았고, 마침내 그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미리 전체 얼개를 짜놓기보다는 날마다 문장을 써 나가면서 사건을 만들고 조금씩 얼개를 구축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의 문장들은 군더더기 없이 짧고 냉정한 ‘비장한 문체’ 즉 현실의 냉혹함과 비정함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하게 표현한 하드보일드(hard- boiled)문체이다. 하드보일드는 본디 ‘비정, 냉정’이란 뜻을 가진 문학 용어로 픽션의 세계에서 무감정으로 일관하며 사실을 직시하고 그 이외의 수사들을 생략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하드보일드야말로 문체 그 자체, 즉 스타일이다.

◯ 내가 지금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불과 18세의 나이로 캔자스시티 <스타>지에서 시작한 기자 이력은 유럽을 무대로 장년기까지 이어졌는데, 이 기자 생활을 통해 헤밍웨이는 단문으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그의 문체는 수정처럼 단단했다. 그것은 오로지 글쓰기에 엄격하고 타협하지 않은 고된 수련을 통해 얻어낸 것이기도 했다.

그는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읽지 않았다. 한 번 글쓰기를 시작하면 온전하게 몰입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술도 마시기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그저 평화로운 순간과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라고 할 만큼 그는 글 쓰는 걸 행복해했다.

헤밍웨이는 날마다 HB연필 일곱 자루를 뭉툭하게 만들만큼 초고를 쓰고 그것을 다시 타자기로 옮겼다. 그 작업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매일 아침 동이 트자마자 쓰기 시작해 정오 무렵 글쓰기를 끝냈다.

헤밍웨이는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탈진 상태가 되었다. 텅 빈 내면을

다시 채우기 위해 종군 기자로 전쟁에 참여하고, 멋진 여자들과 연애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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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청새치 낚시를 하러 바다에 가거나 사냥을 하러 아프리카로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책을 읽었다. 가능한 한 많이, 다른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자신의 재능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재능은 ‘빌어먹을 상황들을 발견하는 장치’라고 꼽았던 그는 “글쓰기가 항상 힘들고 종종 불가능했었다.”라고 고백했다. 세계적인 작가에게조차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는 신체적 강인함을 동경하고 평생 글쓰기 못지않게 강인한 신체를 만드는 일에 몰입했다.

◯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노인과 바다>는 15년 이상이나 구상하고 200번 이상 고쳐 쓴 걸로 유명하다. 늙은 어부에게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뼈대로 삼은 이 소설은 당시 <라이프>지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불과 이틀 만에 530만부나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독자들은 열광했고, 헤밍웨이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여기저기에서 상찬이 쏟아져 나왔고, “미국 소설의 가장 위대한 장인”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노인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노인은 겸손하고 금욕주의적인 현자이다. 노인은 거대한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지만 결코 노여워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이 놀라운 초연함은 그가 현자요, 도인이라는 증거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조롱당하지만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그것을 묵묵하게 극복한다.

이처럼 삶은 인간이 처한 조건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고투로 이루어진다. “일찍이 나는 하나의 어두운 지점, 곧 자궁에서 벗어나와 이제 또 하나의 어두운 지점, 곧 무덤으로 나아간다. 하나의 힘이 나를 어두운 구덩이로부터 집어 내 던지고, 또 하나의 힘이 나를 어두운 구덩이를 향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끔 질질 끌고 간다.”고 얘기한 작가의 말처럼 삶은 어두운 심연과 심연 사이에서 벌이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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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가 표현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바로 패배 속의 승리이다.

패배는 재앙이 아니라 끝없이 채우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바로 재앙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억지로 잡으려 하는 자는 끝내 잡지 못한다. 인위의 욕심을 버리고 비운 자만이 초연해질 수 있다. 노인은 이기고 지는 것에 초연한 사람, 즉 비운 사람이다.

◯ 문체처럼 하드보일드한 삶

헤밍웨이는 살아 있을 때 대단한 명성을 얻은 작가였지만 그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명성을 얻은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그는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시간에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도록 강요받지 않으며, 자신에게 제시된 이미 검증된 지식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헤밍웨이는 살아생전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영웅 신화’를 만들었지만 실제 삶은 모순과 다중적인 모습으로 파열음을 냈다. 그렇게 수많은 작품들을 쓰며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마저 거머쥐면서 금세기 최고의 문학가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삶은 이런저런 사고와 질병들로 가득했다. 그는 용맹한 작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 안의 비겁함과 자살에의 유혹과 싸워야만 했고, 그로 인해 내면은 악몽으로 얼룩져 있었다.

말년에는 우울증과 편집증, 고혈압, 당뇨, 간염. 신장염 따위의 병마와 싸워야 했다. 결국 그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1961년 7월 2일, 아이다호의 자택에서 제 머리에 엽총을 쏘아 자기를 죽인 것이다.

■ 강건한 탐미주의의 문체

- 잉여를 배제하고 사실과 사실을 잇다.

◯ 김훈의 문체

저무는 해가 마지막 노을에 반짝이던 물비늘을 걷어 가면 바다는 캄캄하게 어두워갔고, 밀물로 달려들어 해안 단애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어둠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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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채었다. 시선은 어둠의 절벽 앞에서 꺾여지고, 목측(目測)으로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 캄캄한 물마루 쪽 바다로부터 산더미 같은 총포와 창검으로 무장한 적의 함대는 또다시 날개를 펼치고 몰려온다. 나는 적의(敵意의 근거를 알 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니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 있고 함대는 없다.<김훈, 칼의노래 중에서)

그의 문체는 사실과 사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힐 때 더욱 삼업하게 건조해진다. 말들은 사막에 뒹구는 뼈와 같이 살점하나 붙이지 않은 채 가파른 뜻으로 선다. 그러나 허무를 드러낼 때 건조함이 누그러진다. 허무를 말할 때 그의 문체는 가장 화사해지는데, 그때 작가의 심장의 결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문체는 강을 건너기 위한 나룻배이지만 때때로 나룻배가 아니라 강 노릇을 한다.

◯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유물론적 언어 감각

처음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때 이것은 ‘이순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김훈’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박물관의 인물이고, ‘김훈’은 살아있는 욕망의 현재이다. 역사적인 인물 ‘이순신’은 자연에 속하는 ‘김훈’의 대리인으로 읽혀진다. 작중화자의 사유, 고뇌, 외로움, 불안, 절망은 박제된 역사적 인물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구체적 현전이다.

그는 첨단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쓰는 사람이다. 요즘 작가들은 대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지만 김훈은 여전히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간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으면 한 줄도 쓰지 못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노트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서 사실들의 연관 관계가 명료한 문장들을 써낸다. 김훈 스타일은 어쩌면 그런 첨단기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는 아날로그 방식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 사실성에 바탕을 둔 소설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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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다. 이미 지나온 길을 시시콜콜하게 적는 것은 역사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역사가 소설이 되려면 상상과 허구가 섞여야 한다. 지나온 길이 지나갈 길이 되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나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것을 다시 보기한 것이다.

■ 감각적인 너무나 감각적인

- 문장을 재즈 리듬으로 연주하다

◯ 하루키의 문체

음악과 문장의 공통점은 그 바탕에 리듬이 흐른다는 것이다. 리듬의 예술인 음악은 인생을 명랑하고 흥에 겨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술이다. 특히 재즈 공연을 보고 있을 때 절로 흥이 나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거나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문장을 쓸 때 이 재즈의 기분 좋은 리듬을 살려 쓰는 작가가 있다. 바로 일본의 현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는 평생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워온 작가이다. 하루키의 감각적인 너무나 감각적인 문장들은 자유로운 리듬을 타는 재즈와 너무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독자에게 재즈 공연처럼 들려준다. 그게 바로 하루키만의 스타일이다.

◯ 뭔가를 쓸 수 있을 때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들을 읽었다.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의 역사> 같은 책들을 즐겨 읽었고, 열다섯 살에는 카프카의 <성>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신문부 편집장이 되어 기사를 썼다.

하루키는 재수 끝에 1968년 봄,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입학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작가의 꿈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키는 학교 북쪽의 사설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 했는데, 바로 <노르웨이의 숲>의 작중 인물이 묵었던 그 기숙사이다. 그 당시 하루키는 대학공부에 흥미를 잃고 신주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재즈 카페에 틀어박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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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세 살 때부터 재즈를 듣기 시작해 용돈을 모아 재즈 레코드를 사 모았는데, 음악은 줄곧 가장 좋은 친구였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레코드 가게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재즈 카페를 열었다.

어느 날 서른을 코앞에 둔 하루키는 문득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재즈 카페의 일을 마친 새벽마다 식탁위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씩 맥주를 마시며 한 장씩 소설을 써나간 끝에 40개의 짧은 장들로 이루어진 중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탈고했다.

하루키는 이 소설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등단한다.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대학 시절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 무렵 하루키의 말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래 거의 펜을 잡은 일도 없어서 처음에는 글을 쓰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남과 다른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남과 다른 말로 이야기해라.’라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구만이 내게 유일한 의지가 되었는데, 사실 그런 것이 말처럼 그리 간단히 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흔 살이 되면 조금은 더 나은걸 쓸 수 있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수상한 일은 대단히 기쁘지만, 형태가 있는 것에 구애 받고 싶지 않고, 또 이제는 그럴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즐겨 읽고 잘 아는 서구 작가들의 스타일, 구조 등에서 빌려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그 결과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그의 스타일은 일본 문학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하루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우쿠타가와 상’에 두 번이나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그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일본 문단이 그 낯선 감성과 스타일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문인이자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하루키의 초기 소설을 두고 “시적인 감각, 참신한 문장”은 높이 평가했지만, 미국 문학의 모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 오직 나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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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재즈 카페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하루키는 <양을 둘러싼 모험>, <중국행 슬로 보트>, <캥거루 날씨>,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를 연이어 내 놓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1986년부터 일본을 벗어나 외국 여기저기를 떠돌며 작업을 했다. 그는 약 10년간을 일본과 유럽을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노르웨이의 숲>도 이때 나왔다.

일찍이 재즈에 열광하고 포스트모던 문학을 즐겨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온 하루키에게서 일본의 문화와 문학적 전통과는 다른 무국적성, 도시적 감성, 탈이념, 탈현실의 문학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그가 즐겨 접한 것은 “서양 문화, 재즈 음악, 도스트 예프스키, 카프카, 레이먼드 챈들러 였고, 그것들의 영향 아래서 하루키는 제 감성과 취향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등단 후에도 일본 문단이나 작가들과의 교류를 일체 갖지 않고, 대신에 혼자 글을 쓰고, 남은 시간에는 고양이를 돌보거나 음악을 듣고, 수영을 하거나 조깅을 한다.

하루키는 집단이나 유파에 소속되는 걸 한사코 피하며 자폐적 이라고 할 만큼 ‘개인’으로 지내며 자유롭게 사는 걸 지향한다.

처음 글쓰기를 결심했을 때는 작가로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믿을 만한 실력도 없었지만 그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음악을 연주하듯이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있었을 뿐이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그 기초에는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 하루키는 문장 속에서도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리듬을 살려 넣는다. 그래서일까,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연주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직관적인 문체

- 낯설고 기이한 삶의 기표를 좇다.

◯ 허먼 멜빌의 문체

1891년 뉴욕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활엽수의 잎들이 누렇게 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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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바람은 갈수록 차가워졌다. 그해 가을 풍경처럼 쓸쓸한 죽음이 신문의 부고란에 단 몇 줄로 소개되었다. “어제 조용한 주택에서 한 사람이 작고했다. 과거 16년 동안 거의 문학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일찍이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던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약간의 문명(文名)이 있는 사람, 죽은 뒤 30여 년 동안 미국 문학사에서 해양 모험담을 쓴 군소 작가 중 한 명쯤으로 여겨진 소설가, 바로 허먼 멜빌(Hermam Melville. 1819~1891)이다.

허먼 멜빌은 <모비딕>이라는 경이로운 소ttjf을 써 냈지만, 당대 독자들에게는 차가운 외면을 당한다. 훗날 서머셋 모음(Somerset Maugham, 1874~1965)이 세계 10대 소설 중 한권으로 꼽은 이 소설이 당시 그런 대우를 받았던 것은 독자들의 취향과 정서가 달랐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도 적대적인 비평들이 쏟아졌다. 그는 울분과 소외감 속에서 고립되었다. 작가의 신념을 상실할 만큼 비평의 끝자락에서 비틀거렸다. 결국 소설을 펴낼 출판사를 찾기도 어려울 정도의 곤경에 빠졌고, 사후 30년이 지나 <모비딕>이 재평가되기까지 긴 망각 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 성서적이자 서사적이고, 철학적이자 서정적인

허먼 멜빌은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3세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은행과 상점의 심부름꾼 농장 일 등을 전전하다가 20세에 선상 객실 보조로 일하면서 영국의 리버풀까지 항해했다. 2년 뒤 포경선을 타고 남태평양 등지를 항해하고, 포경선에서 고래잡이에 나섰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해양 소설 몇 편을 쓴 뒤 마침내 <모비딕>을 써냈다. 뉴욕의 3층 방에 틀어박혀 쓴 이 소설은 1851년 11월 중순 하퍼 앤 브라더스 사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나이 32세 때의 일이다. 이 기이하고 낯선 소설이 당대 문단이나 대중들에게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비딕>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나는 데에는 한 세대가 지나가야만 했다. 1921년 한 연구가에 의해 <모비딕>이 대단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온 뒤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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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은 스물한 살 청년 이슈마엘의 모험담이다. 이슈마엘이란 이름의 기원은 ‘성경’에서 비롯되는데, 아브라함의 하녀에게서 낳은 아들로 황야를 떠도는 집 없는 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허먼 멜빌이 작중 화자에게 이 이름을 부여한 것은 상징적이다. 이슈마엘은 이러저러한 일을 해 보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은 뒤 결국 고래잡이 배를 타기로 결심한다. 무일푼에다가 영혼은 “축축하게 젖어 있는 동짓달”같은 청년의 독백과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 우주와 자연,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

<모비딕>의 무대는 너른 바다이다. 바다는 잔잔하다가도 갑자기 폭우와 태풍에 휘말리며 요동치는 예측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 변화무쌍한 바다는 즉 삶이 펼쳐지는 세상에 대한 은유이다. 우리는 이 바다에서 저마다 흰 고래를 쫓는다. 흰 고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이 세계를 좇는 이념이고 푯대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것, 흰 고래는 신일수도 있고, 인위나 도덕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원시의 한을 품은 자연 그 자체이며, 동양 철학자들이 말하는 도(道)일 수도 있다. 에이해브 선장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 다의적 의미체, 즉 모비딕을 향하여 거침없이 나아간다. 마치 지옥의 끝까지라도 기꺼이 따라갈 기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에이해브 선장의 무모한 도전을 “악마의 광란”이라고 말한다. 에이해브 선장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흰 고래를 잡는 목표는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그의 삶이 헛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비딕>의 전언은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묻고 있는 것은 에이해브 선장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가령 안전한 장소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미쳐 날뛰는 넓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물음 말이다.

인생에는 두 가지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있다. 하나는 기회가 왔을 때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요. 다른 하나는 시도하고 실패해 버린 것에 대한 후회이다. 평생에 걸쳐 더 깊은 후회를 남기는 것은 전자의 경우이다. 기회가 왔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흘려보낸 것은 평생 회한과 상처를 남긴다. 원하는 것이 있는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 자는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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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쳐 날뛰는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만이 제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법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저마다 무언가를 쫓는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목표는 숭고하다. 에이해브 선장에게서 배울 것은 인생에서 웅대한 목표를 갖는 것, 그 목표를 향해 자신의 역량과 시간을 집중하는 자세이다.

■ 담백한 문체

- 무욕을 꿈꾸는 자의 세상보기

◯ 피천득의 문체

가벼운 구어체 문장들, 짧고 행갈이가 잦은 문장들, 비속어와 은어가 남발하는 문장들, 언어의 압축 기호화를 보여주는 이모티콘의 사용 증가……최근 젊은이들이 쓰는 문장에서 이런 경박함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사회가 경박하고 세태가 수상하니 문법을 어긴 문장들이 널리 퍼지고, 기율을 잃고 무잡해진 문장들이 득세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엄격한 질서를 지키며 품격을 드러낸 문장, 존재의 심연에 반향하는 깊은 사유가 담긴 문장을 찾아 읽는 일은 소중한 경험이다. 바로 피천득의 문장이 그렇다.

그의 문장은 담백하고 간결하며,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명료하다. 추싱과 현학 없이 항상 핵심을 직격한다. 이러한 피천득의 문장은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 문장 중의 문장, 즉 문장의 궁극으로 통한다. 닮고자 하는 문장의 모범이요, 배워 익히고자 하는 문장의 표본이다.

피천득의 문장은 그 간결함에서 독보적이다. 일체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불필요한 요소들이 없다. ‘간결함’이란 “말해야 할 것을 적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야 할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피천득의 호는 금아(琴兒)이다. ‘가야금 타는 아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평화를 동경하는 마음이 담긴 호라고 볼 수 있다. 피천득은 자신이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살지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지도 못했다고 말하며, 다만 “가끔 한숨을 쉬면서 뒷골목을 걸어오며 늙었다.” 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문장들은 그의 삶만큼이나 단정하고 고아하다. 그것으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으뜸으로 꼽을 만한 문필가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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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 5. 29 서울 종로에서 출생.

- 서울 제일고보, 상해 후장 대학교 영문학과.

- 해방 되던 해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1974년 퇴직 때까지 39년 동안

- 일생동안 단 세 권의 책 : 1947년 <서정시집>, 1960년 <금아시문선>,

1969년 <산호와 진주>

그는 글을 아껴 적게 썼을 뿐 아니라, 말년에는 이마저도 손에서 놓았다.

◯ 좋은 글이라는 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문체는 곧 사람이다 그의 사람됨은 담백하고 무욕하며 깨끗했다. 피천득표 문장 역시 청신하고 담백하고 꾸밈없이 조촐했다. 마치 어휘가 모자란 듯 최소한의 언어로 그는 쓰고 싶은 것들을 다 썼다.

5월에 태어난 그는 누구보다도 봄을 사랑했다. 봄에 대한 글들도 여러 편 썼다. ‘신춘’이나 ‘조춘’이라는 말은 좋아했지만, ‘춘궁(春窮)이란 말은 싫어했다. 겨우내 양식을 다 먹은 뒤라 봄이 되면 쌀독이 비었다. 봄마다 굶는 이웃들이 많아 ’춘궁‘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피천득은 희망찬 봄에 가난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가 사랑하고 동경한 것은 봄과 젊음이었다. 빨리 사라지는 것이기에 더 빛나고 아름다운 것들……. 일찍이 인생의 유한함을 알고 그 본질이 무(無)라는 사실도 꿰뚫어 보았다. 인생이 빈 술잔이고, 주단 깔지 않은 층계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일지라도 쉽게 체념했다. 체념하는 것이 마음을 초조와 번뇌에 놓아주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연>은 ‘아사코’라는 여성과의 인연을 담백하게 털어놓은 글이다. 그 여성을 마음으로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아사코는 자라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고 누군가와 만나 결혼을 하고 백합같이 시들어 간다. 그 인연의 내력을 털어 놓은 뒤 그는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썼다. 젊음의 풋풋함과 눈부신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것에 대한 슬픔을 그토록 절제된 문장에 녹여낸 것이다. 그게 그의 문장이고 사람됨이다. 다들 웅장하고 화려한 것들에 눈길을 줄 때 피천득은 보드랍고 윤기 있는 나뭇잎들, 웃음, 피아노 소리, 고운 화롯불 재와 같아 감각적인 기쁨을 주는 것들에 마음을 주었다. 이는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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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욕한 세계속에서 인생의 참다운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증거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 제 것을 불릴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가 가진 것을 뽐낼 줄도 몰랐던 사람이다.

그는 보라, 자주, 초록 같은 황홀한 색깔을 좋아하고 또한 아름다운 빛들을 사랑했다. 진주 빛, 비둘기 빛, 오래된 가구의 마호가니 및, 늙은 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의 빛깔을 아름답다고 여겼다. 젊은 웃음소리, 딸의 귓속말을 사랑했다. 저녁 때 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 새로운 양서(洋書) 냄새, 털옷 냄새, 커피 끓이는 냄새, 라일락 짙은 냄새, 국화·수선화·소나무의 향기, 봄의 흙냄새를 좋아했다. 사과와 호두와 잣과 꿀을 좋아했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주고 사랑하던 피천득은 사랑하는 것들의 세목(細目)을 길게 썼다.

◯ 읽을수록 향기가 나는 글

무욕하고 고매한 인격은 담담한 문장 속에서 찬연한 빛을 뿌리며 여지없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남의 고운 얼굴을 바라다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자기 것으로 가지려고 한다. 너도 나도 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하는 까닭이다.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대신 빼앗아 거머쥐려고 한다. 학벌을 위조하고 없는 공적을 지어낸다. 이것이 탐욕의 실상이고, 탐욕이 지배하는 세태 풍경이다. 피천득은 세태를 거슬러 다름 사람을 살고자 했다. 작은 소유에 자족하고 소박한 것들에 깃든 아름다운 자취에서 기쁨의 근거를 찾아냈다.

■ 청춘의 문장들

- 자유와 탐미를 겨냥하다

◯ 최인호의 문체

2013년 11월의 주말, 당진 문화원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 위해 당진으로 갔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주말 정체를 염려해서 일찍 나온 탓에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일렀다. 강연장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우연히 성당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즈넉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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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뜰에는 거목으로 자란 은행나무 한주가 우뚝 서 있었다. 수령이 5백 년은 넘어 보이는 은행나무였다. 나는 갑자기 청춘 시절을 건너뛰고 장년이 되어 성당의 긴 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누구나 늙고 병들어 간다. 우리 모두는 시간 여행자들이다. “누구나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이 곧 삶이다. 서로 다른 풍경 속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건너간다.” 새벽에 읽은 책의 구절이 스쳐간다. 그렇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 그 순간 가을이 막 시작될 무렵 세상을 뜬 한 작가가 떠올랐다. 그도 우리와 다름없는 시간 여행자 중의 하나였다.

◯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

2013년 9월 25일 저녁, 5년 동안 암 투병을 하던 작가 최인호가 세상을 떴다. 항상 재기 발랄한 청년의 이미지를 가진 작가였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놀랍고 안타까웠다. 영원히 늙지 않고 청년으로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작가가 죽었다는 것은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언의 신호였다. 20대 ‘문청(문학청년)’ 에게 최인호는 우상이었다.

- 해방둥이 : 1945년 10월 평양 출생. 3남 3녀 중 차남.

- 1963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 196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1972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 일간지들에 장편 <별들의 고향>, <내마음의 풍차>, <바보들의 행진>등을 연재하고, 단편 <황진이>, <전람회의 그림>, 중편 <무서운 복수>등을 연이어 내 놓음

최인호의 문학은 1970년대 창공에 쏘아올린 새로운 문학의 신호탄이자, 청년 문화 논쟁을 일으킨 전위의 상징이었다. “네 길을 머뭇거리지도, 망설이지도 말고 가라! 기성세대가 만든 세계란 ‘불한당들의 소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따위 세상의 규범들에 얽매이지 말고 네 멋대로 살아라!” 최인호의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바로 영화화 되었다. 대중은 감수성의 혁신을 보여준 신인 작가의 소설에 열광했다.

최인호는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환자>가 당선 되면서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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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문단에 나왔다. 당시 그는 공군에 갓 입대한 말단 사병이었다. 그의 문장은 가벼움, 재치, 유머로 가득 차 있었다. 당대의 독자들은 최인호의 문학을 ‘감수성의 혁신’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문학의 물결로 받아들였다.

◯ 청춘의 한 시기를 함께 했던 작가

<겨울 나그네>를 다시 읽어보니 옛날과 같이 가슴이 두근대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암울했던 20대의 기억과 겹쳐지며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주인공에 대한 연민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작품은 최인호가 1984년 동아일보에 1년 여 동안 연재했던 소설인데, 제목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빌려왔다.

청춘이란 “한때는 찬란했던 빛”이다. 그 빛도 시간이 지나면 덧없이 스러져

시든다. <겨울 나그네>는 그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자 “꽃의

영광”같던 청춘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낸다.

엄밀히 말하면<겨울 나그네는 최인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100쇄 이상을 찍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겨울 나그네>는 텔레비전의 미니 시리즈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새파랗게 젊은 작가가 “청춘의 초상을 새롭게 선보이겠다”는 야심으로 썼던 <겨울 나그네>는 흩어져 덧없이 져버리는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한 순간도 시들지 않는 푸른 창작열을 불태웠던 최인호는 ‘영원한 청년 작가’로 여전히 우리 기억에 살아 숨쉬고 있다.

■ 모성성의 문체

- 세상을 품고 아우르다

◯ 박경리의 문체

20세기 한반도에 살았던 이들은 일제 강점기, 분단, 전쟁, 혁명, 독재 정권과의 투쟁 유혈 항쟁 등으로 마음이 찢기고 눌렸으며 삶은 일그러졌다. 찢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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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눌린 마음에는 울혈이 생기고, 풀길 없는 한과 슬픔이 누적되었다. 이 마음이 악물고 펴지려면, 독일 작가 괴테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라고 말했듯이 ’여성적인 것‘ 정수(精髓)로서의 모성이 필요했다. 모성을 가진 것들만이 생명을 품어 안고 수유한다. 모성은 생명 지향을 하는 그 무엇이고, 측은지심으로 만물을 품는 따뜻한 우주적 성질의 응결이다. 모성은 죽은 걸 살릴 수 없으되 미약하게 산 것의 숨결은 북돋울 수가 있다. 시들고 사라지는 것마저 기꺼운 마음으로 품는 모성이 미치는 범주는 넓고도 깊다. 여기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근대사를 모성으로 품고, 파란과 격동을 뚫고 여성에서 여성으로 생명 계보를 이어가는 대하소설을 쓴 한 작가가 있다.

생명을 품고 기르는 모성성의 문체로 우뚝 선 작가, 바로 박경리이다.

박경리는 우연히 김동리를 만나 습작을 보인 뒤 “소설을 계속 써 보라”는 격려를 받는다. 1955년 월간지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과 <흑흑 백백>이 추천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토지>는 박경리가 43세 이던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연재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그 뒤로 <문학 사상>, <정경문화>, <문화일보>를 거쳐 25년 만인 1994년 8월, 2백자 원고지 3만 1천 2백 매 분량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문학사에서 그야말로 장강(長江)같이 펼쳐진 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작이자 총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토지는 한 만석꾼 대지주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9세기 말에 시작해 해방공간까지 끌어안고 경상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와 서울 도쿄 등지로 공간적 배경을 넓혀간 소설이다.

이 대하소설에는 격동 치는 시대와 함께 부딪치고 흔들리며 삶을 견뎌야 했던 대지주, 포수, 무당, 목수, 농사꾼, 장사치, 훈장, 스님, 친일파, 동학접주, 의병, 독립군, 같은 온갖 계층의 사람들, 악인과 선인, 장삼이사들이 다 어우러진다. 이들은 먹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만주 간도와 같이 낯설고 물설은 남의 나라 땅을 유랑하며 살다가 생을 마쳤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만 무려 8백여 명인데 각각의 인물들은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온갖 욕망들, 사랑과 죽음, 만남과 이별, 따위에서 빚어지는 오욕칠정의 다채로움과 얽히고 설킨 운명의 부침을, 작가는 치밀하게 그려낸다. <토>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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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고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한국인의 삶과 그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큰 강과 같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대하소설이다. 남자에서 남자로 이어지는 재래 혈통 계승의 인습을 깨고,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여성 혈통 계승의 가족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특이 하다면 특이하다.

◯ 인내와 집념으로 일궈낸 삶

박경리는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로 박경리는 김동리가 소설 추천을 하면서 지어준 필명이다.

방랑 기질이 있던 아버지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딴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홀 어머니 밑에 자랐다. 학비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따귀를 맞고 돌아온 뒤부터 다시는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진주여고 졸업, 인천전매국에 다니던 김행도와 결혼 1949년 서울 흑석동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다. 한국 전쟁이 터지고 황해도 연안 여중 교사로 발령받은 남편이 부역 혐의로 투옥되자, 어린 딸을 데리고 통영으로 내려와 수예점을 낸다. 그의 삶은 불행했으나 그 불행을 딛고 당당하게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

1971년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작가는 수술 자리를 붕대로 동여맨 채 <토지>의 집필을 이어갔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은 어느 연말 송년의 어수선함 속에서 고적했던 밤의 통곡이다. 마음 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마치 창자가 끊어질 듯, 가슴이 터져 버릴 듯 통곡하시던 그 음산한 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작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딸 김영주는 ‘곁에서 지켜본 토지’라는 글에서 창자가 끊어질 듯 아프게 통곡하는 작가를 잊지 못한다고 썼다. 그 통곡에 서린 한과 고독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으나 숙연함과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참혹함에 전율을 느꼈다. <토지>는 그렇게 스물다섯 해 동안 참척의 아픔을 속으로 삭인 채 고독과 병마와 목숨을 걸고 싸우며 거둔 민족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 오래 보고 고요히 생각하며

박경리는 2008년 5월 5일에 세상을 떴다. 작가의 5주기 제사가 있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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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늦은 봄 나는 원주의 토지문학관에 입주 작가로 머물고 있었다. 저녁 무렵 서울, 통영, 부산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자정 무렵 한반도 남쪽 지방의 전통의례에 따른 제사가 시작되었다. 제주(祭酒)는 토지문학관의 관장 이자 딸인 김영주가 맡았고, 사위 김지하 시인은 불편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서서 제사를 지켜보았다. 외부 인사들과 러시아, 싱가포르, 프랑스, 스페인에서 온 네 명의 외국 기자들을 포함한 스무 명 남짓한 입주 작가들이 제사에 참여 했다. 오월의 밤은 깊고, 멀리서는 소쩍새가 울었다. 제사가 끝난 뒤 김지하 시인과 마주 앉아 맑은 술 몇 잔을 받고 덕담을 들었다.

박경리는 1980년 서울을 떠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으로 이사한 뒤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의 끝의 끝 갔다던 집에서 작가는 혼자 고양이 몇 마리와 정 붙이고 살며, 텃밭에 엎드려 밭을 일궈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어 스스로 입에 들어갈 것을 구했다. 작가는 수난과 고통으로 얼룩진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 수난과 고통으로 위대한 작품을 빚는 놀라운 연금술을 보여주었다. 말년에 남긴 시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 젊은 눈망울들 /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일 잘하는 사내>

박경리는 위대한 작가이기에 앞서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한 여인이었다. 금생에서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이 작고 소박한 꿈을 글쓰기와 맞바꾸었다. <토지>의 헤아릴 길 없는 산고(産苦), 그 스물다섯 해 동안의 시련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었으니 그것을 읽고 감동하는 보람과 기쁨은 독자의 몫이리라.

■ 부조리의 문체

- 삶이라는 백일몽을 찢고 나가다

◯ 카뮈의 문체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문장에는 생명의 기쁨과 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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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드러난다. 그는 어린 시절을 알제리의 바닷가에서 보냈다. 카뮈의 놀라운 긍정주의, 열정, 예민한 감수성은 알제리의 눈부신 태양과 바다가 키워준 것들이 다. 카뮈의 문장에는 알제리의 눈부신 햇빛, 출렁이는 바다, 폐허에 핀 꽃무더기들, 그 빛과 향기들로 넘친다. 그것들로 인해 세계는 마치 “금빛으로 익은” 듯 보인다. 그 속에서 열광하는 영혼은 이미 그 안에 태양, 관능, 육체, 죽음, 젊음, 상처, 고독, 질병을 하나로 끌어 안아 다 품는다. 카뮈가 쓴 저 유명한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의 일부를 살펴보자.

봄이면 티파사는 신들의 거주지가 된다. 신들은 태양 속에서, 그리고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 철갑을 두른 바다, 날 것 그대로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와, 돌 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들끓는 빛 속에서 말을 한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태양으로 컴컴해진다. 두 눈은 헛되이 무엇인가를 붙잡으러 애쓰지만, 보이는 것은 속눈썹 언저리에서 떨고 있는 빛과 색채의 작은 반점들 뿐,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기로운 식물들의 덩이진 냄새가 목구멍을 긁고 숨을 틀어막는다.

이것이 바로 카뮈의 문체이다. 오감을 행복하게 만들면서도 인간의 부조리함을 명석하게 꿰뚫는 카뮈의 문체는 바로 그런 영혼에서 잉태된 것이다.

- 2013년 카뮈 출생 100주년,

- 알제리 극빈층 출생, 청각 장애를 지닌 어머니와 가난한 유년 시절

- 청년기에 폐결핵으로 고생, 첫 번째 아내는 마약 중독,두 번째 아내는 신 경 쇠약으로 자살 시도 등 불운과 불행으로 점철된 삶

- 삶과 고투하며 지중해 특유의 긍정과 낙관으로 난관을 극복

- 44세 <이방인>으로 노벨문학상

■ 낭만적 영혼의 문체

- ‘나’를 찾아가는 구도의 문장들

◯ 헤세의 문체

20세기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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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1962)는 사후 반세기가 더 지난 뒤에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들이 속속 영화화되고, 50여개 이상의 나라말로 번역되어 수천만 권이나 팔린 것이 그 증거이다.

특히 1960년대 말, 미국 대학가의 서점에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갑자기 헤세의 소설들이 불티나게 팔렸던 것이다. 헤세의 소설을 사려는 사람들로 서점이 북적였고, 소설들은 품절되기 일쑤였다. 헤세 선풍의 중심에는 <황야의 이리>와 <싯다르타>가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에 대한 회의가 번져가며 반전 운동과 기성세대에 저항 하는 히피운동이 막 불을 지피고 있었다.

히피들과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헤세의 소설들은 경전이 되었다. 헤세의 소설들에 담긴 “반전사상, 교양 속물들에 대한 신랄한 비평, 서양 문명의 몰락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 기존의 위선적인 생활 방식에 대한 저항, 환각이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형상화”등이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 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 즉 황야의 이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반항적인 젊은이들은 그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받들자는 ‘성(聖 ) 헤세’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미국에서는 ‘데미안 지하 술집’, ‘싯다르타 주점’, ‘황야의 이리 집’등 헤세 작품의 제목을 간판으로 단 대학생 술집들이 속속 생겨났다.

헤르만 헤세

- 신학교에서 퇴학, 서점 점원,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세 번 결혼 등 역경과 실패의 연속.

- 20세기 문명의 질병과 위기를 고발한 용기 있는 지성인

- 폭력과 전쟁을 반대한 휴머니스트

그의 작품 <데미안>은 선과 악,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는 싱클레어의 성장기이다. 누구나 겪는 성장의 고통, 즉 “나를 찾아가는 길“의 지난함을 다룬다.

어린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어린 아이는 꿈을 꾸지만 어른이 되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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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어린 아이는 성장하지만 어른은 쇠락한다. 꿈은 미결정의 그 무엇, 즉 소망, 가능성, 탈출구이자 본질에서 무엇이 되고자 함이다.

꿈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진정한 자기에게 이르는 것이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데미안의 주인공은 이렇게 독백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그것은 다른 아무것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는 꿈이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자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라는 대목이다.

헤르만 헤세, 그는 1946년 69세 때,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그리고 1962년 8월8일 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2018. 4.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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