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2018. 3. 15. 17:16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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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

■ 정문정 지음

0 대구 출생

0 대학에서 사회학 전공, 잡지사 기자로 출발

0 현재 <대학 내일> 디지털 미디어 편집장

0 on Style TV <열정 같은 소리>에 고정 패널로 출연

0 저서 : 별로여도 좋아 해줘

■ 프롤로그

-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례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흔한 토크쇼 형식으로 여러 출연자가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남자 연예인이 코미디언 김숙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남자 같이 생겼어.” 그는 평소에도 속물적이거나 무례한 질문을 막 던짐으로써 출연자들을 당황케 하는 게 특기였다. 이럴 때 보통은 그냥 웃고 넘기거나 자신이 외모를 더 희화화하며 맞장구치는데, 김숙은 그러지 않았다. 말한 사람을 지그시 쳐다본 뒤 “어? 상처주네?” 하고 짧게 한마디 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말투였다. 그러자 상대가 농담이라며 사과했고, 김숙도 미소 지으며 곧바로 “괜찮아요”하고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여자들은 일상에서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에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더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의 대립구도를 자주 활용한다. 외모가 아름다워서 칭찬 받는 여성, 그리고 그와 비교되는 외모로 남성들에게 놀림 받는 여성의 구도다.

특히 나이 어린 여성일수록 권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우리 문화에서 자기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상처받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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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군대식 문화에 익숙한 남성에 비해 ‘조직 생활에 맞지 않는다’거나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평가를 받게 될까 봐 속마음을 숨긴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곱씹는 것이다.

곱씹다 보면 결론은 늘 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내가 오해 살만한 행동을 했을 거야.’ ‘그 사람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닐까?’ 하는 식이다.

한국 정서상 연장자나 상사에게는 불만스런 표현을 더더욱 하기 힘들다. 논쟁 끝에 상대를 비난하는 말하기의 길로 빠지거나 분에 못 이겨 화를 내며 엉엉 울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참고 참다 그냥 관계 자체를 끊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단호하면서도 센스있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김숙의 “상처 주네?” 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건 그래서였다. 김숙 뿐 아니라 방송인 이효리에게서도 매력적인 화법을 보았다. 이효리가 한 예능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핑클로 활동하던 당시의 춤과 노래를 보여달라고 했다. 사전 조율이 없었던 것 같았고 상당히 집요한 요구였다. 이효리는 그런 그에게 “옛날 스타일의 진행을 아직도 하시네요” 라며 웃은 후, 요즘 사람들은 핑클 노래 잘 몰라요“하고 덧붙여 자연스럽게 그 요구를 비껴갔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을 많이 만난다. 사람마다 관계마다 심리적 거리가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고, 갑자기 선을 훅 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감정의 동요 없이 “금 밟으셨어요”하고 알려줄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알려주고자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화내거나 울지 않고도 나의 입장을 관철하는 방법이 있다 이 책에는 내가 시도한 훈련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담았다.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도 기죽지 말자. 웃으면서 우아하게 경고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으니까. 이 책이 무례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ART 1.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

■ 갑질은 계속된다.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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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세계를 봤다. 김무성 의원이 선보인 ‘노 룩 패스(no look pass)'이야기다. 그가 공항 입국장에서 수행원에게 캐리어를 밀어 보낸 영상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그를 맞이하는 수행원이 고개 숙여 인사했지만, 김 의원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쪽으로 가방만 굴려 보냈다.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데도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약간의 연기조차 할 필요를 못 느꼈을 정도로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후 논란을 해명하는 요청을 받자 “그게 왜 문제가 되냐? 바쁜 시간에 쓸데없는 일 가지고…”라고 응수했다.

영상이 검색어 상위에 오르며 논란이 됐던 건 아마 숙였던 고개를 들자마자 황급히 가방을 잡아내던 수행원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맛, 모멸감의 맛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모멸감의 뜻은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습관처럼 곱씹던 밤이 있었다. 터벅터벅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도 밖에서 묻힌 부정적인 말들은 털리지 않고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대학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이면 영화관, 호프집, 패밀리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에겐 긴장된 일터가 손님들에겐 서비스를 받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힐링의 장소였다.

“머리가 나쁘니까 이런 데서 일하지” 같은 말을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대학 때 사귀던 연상의 남자 친구는 “넌 여자가 기가 너무 세서 문제야”라고 말했다. 강의 중 “여자들은 이기적이라 기업이 싫어한다” 라고 한 교수도 있었다.

덩치 큰 여자 후배가 치마를 입고 온 날, 남자 선배가 낄낄대며 말했다. “이야 너 용기 있다!” 물론 그중엔 악의 없는 농담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말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패배감을 쌓아갔고, 그렇게 모인 좌절감은 나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갑질의 낙수효과다. 모두에게 친절한 것이 능사가 아니란 건 한 기업에서도 증명했다.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에게 두 차례 경고한 후, 그치지 않으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어라>” 2012년 현대카드가 전화상담 직원에게 내린 지침이다. 2016년부터는 폭언과 성희롱 외에 인격 모독이나 위협성 발언을 하는 고객의 전화도 끊을 수 있게 했다. 이 ‘엔딩 폴리시’를 시행한 결과 상담원의 이직율이 크게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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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역할에 따라 적절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의 옷’을 벗는 걸 잊은 것이다. 회사에서 대표인 사람이 집에서나 친구를 만날 때조차 대표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갑질‘, ’개저씨‘ 같은 한국어가 수출되는 현실이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스>는 이 표현을 설명하며 ’갑질‘은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갑질의 대물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으로 서로의 갑질을 제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누구든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 장려될 때,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문화가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질 것이다.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끝났다.

■ 당당하다는 표현이 불편한 이유

165Cm에 77Kg. 키가 크고 말라야만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플러스 사이즈(빅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양 씨의 신체 조건이다. 그를 소개하는 글에 꼭 빠지지 않는 표현이 있다. 바로 ‘당당하다’는 단어다. ‘당당하게’ 무대에 올랐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고, ‘당당하고’ 멋지게 자기표현을 했다 등으로 쓰인다. ‘당당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당당해!”라는 말은 어떤 상황을 해명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까 예컨대 덩치 있는 여자는 당당하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당당하니 놀랍고 대단하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해 자주 쓰이며, 여성이 여성을 선망하고 동경한다는 뜻의 ‘걸크러시’에서도 당당함이 핵심이다.

포털에서 ‘당당한 남자’를 검색하면 ‘바람 피우고도 당당한 남자’, ‘성기 확장으로 당당한 남자 되기’ 같은 결과가 대부분이다.

남자가 자신감 있고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면 ‘남자답다’, ‘카리스마 있다’라고 하지 ‘당당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 남자가 당당한 건 당연한 거니까. 이처럼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은 여성들 스스로 행동에 제약을 두게 한다.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왜 나는 남자 동료보다 적은 돈을 받는가?’라는 글을 써 할리우드 출연료 정책의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글에서 남자 배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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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뜻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좋은 조건의 계약을 성사시키데 왜 자신은 버릇없이 보이지 않는 데만 급급했는지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다.

영화계뿐 아니라 일반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내용의 비판을 해도 유독 여직원은 ‘감정적이며,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평가되곤 한다. 그런 선배들이 모습을 본 여직원들은 가능한 한 자기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몸을 사리기 마련이다.

일 잘하고 적극적인 여자들은 ‘기가 세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으며 ‘기 센 여자’는 ‘당당한 여자’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기가 세다’는 표현 또한 남자에게는 쓰이지 않으면서 여자에게만 갖다 붙이는 괴상한 표현이다.

나는 결혼식 때 고개를 들고 하객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크게 미소지었다. 사람들 앞에서 서약을 소리 내어 읽었으며 ‘남편을 섬긴다’, ‘밥을 챙긴다’같은 구시대적 표현은 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가 어쩜 그렇게 당당하냐‘ 며 신기해했다는 말을 들었다.

‘당당하다’가 복잡한 뉘앙스의 칭찬으로 쓰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자고만 싶나요? 많이 먹나요? 마음이 아픈가 보다.

“(…)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함께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예의 바르게 기분 나쁜 문장 앞에서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루 중 열네 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낸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미뤄둔 일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깊고 긴 잠에서 헤어나왔다. 왜 그렇게 자고만 싶었던 걸까. 그 음침한 시간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때가 떠오른 것은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다.

“요즘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병이 났나 싶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하더라. ‘힘든 일이 있나봐요 현실을 좀 회피하고 싶은가보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어.”

그렇다면 그때 내가 많이 자고 싶었던 것도, 눈뜨기 싫어서 계속 잠을 청했던 것도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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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같은 말은 와닿지 않았는데 ‘마음이 아파 잠을 많이 잔다’는 말은 굉장히 공감됐다.

스스로가 정글의 보잘것없는 초식동물 같이 느껴지던 취준생 때,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고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길 원했다. 후에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그런 강박적인 성향이 식이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 뿐 아니라 외로움이나 현실에 대한 불만족 역시 식이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마음을 채울 수 없어서 입이라도 채우고 싶은 거였구나.

복통이나 배변장애, 가려움증, 폭식이나 거식, 두통, 불안증, 수면장애 등 이전에는 없었던 몸의 이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체크해 볼 일이다. 단순히 나약해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증상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는 ‘정신으로 극복한다’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단지 겪어낼 뿐, 내 마음과 육체는 싸워서 이겨야 할 경쟁자가 아니라 보듬어서 함께 가는 친구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균형이 무너질 때 가끔 에러 메시지를 보내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그때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몸을 찬찬히 이해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마음의 문제를 찾아 보듬어 줄 때, 몸은 밸런스를 찾아나간다.

■ 둘째 딸은 왜 항상 연애에 실패할까

1년간 주간지에 연애 상담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다. 대학생들이 연애에 관련된 고민을 보내면 그걸 읽고 조언해 주는 방식이었다. 행복해지려고 연애를 하지만 연애를 할수록 불행해지고 쪼그라드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 메일을 보내는 여자들이 대부분 그런 상황이었다. 반면 남자들의 질문은 거의 하나로 귀결됐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불행한 연애로 고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는 이상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집착하는 남자를 떠나지 못하는 여자,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에게 휘둘리는 여자, 착한 여자 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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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로 이용당하는 여자 등 고통스러운 연애를 반복하는 여자 대부분이 성장기에 가족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다.

출생 순서에 숨겨진 심리를 연구한 가족 심리 전문가 케빈 리먼은 둘째나 셋째 등 중간에 태어난 사람들은 ‘소외감’, ‘무시당하는 느낌’을 다른 형제에 비해 더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나도 둘째 딸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대구에서 태어났는데,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엄마는 나를 낳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나보다 한 살 위의 언니에게는 첫째 딸이 갖는 위엄이 있었고,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귀한 아들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졌다. 언니나 동생과 달리 내게는 돌과 백일 사진이 없다는 사실, 설날 세배를 하면 항상 어른들이 언니는 언니니까 만 원, 동생은 아들이어서 만 원을 준다면서 내게는 오천 원을 줬던 일, 걸핏하면 첫째나 막내와 비교 당하던 일 등은 나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가족은 내게 무한한 사랑과 인정을 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나 자체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친구와 연인에게 집착했다.

꼭 둘째 딸이 아니어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가 작은 호의만 보여도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달콤한 말로 조종하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자신이 행복을 누리고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하기에 불행의 세계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나는 나의 칼럼에서 나의 예전 모습과 닮은 여자에게 그 상황에서 벗어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주었다.

1.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에서 벗어날 것.

‘내 인생은 원래 불행해’라고 말하는 걸 그만둬라.

2. 일상에서 작은 거절을 조금씩 해볼 것. 거절도 근육이 필요한 일이라 처 음에는 어렵지만 작은 것부터 해보다 보면 살수록 쉬워진다.

3.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을 것. 자존감이 낮으면 관계를 끝낼 때 가 되어도 ‘이 사람 말고 또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어’ 하고 질질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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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이것들이 바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천히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인간관계는 시소게임과 같다

주변의 ‘착한 사람’들을 나는 잘 알아본다. 그들은 늘 “괜찮아요”, “전 상관없어요”,라고 말한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의견을 경청하며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대부분 “좋아요”라고 한다. “안 되는데요”, “그건 좀 힘들어요”, “싫은데요”같은 말은 하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런 말을 하느니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고 차라리 ‘잠수를 타고’ 만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자존감의 문제와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이 남에게 ‘No'를 말하기 힘들게 하고, 눈치를 살피다 보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알아서 해 주세요”가 반복된다.

그때의 나는 ‘괜찮아’를 연발하느라 늘 헉헉 거렸다. 나보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정작 나 자신은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착한 사람’의 내면에는 그동안 참아온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자존감이 줄어드는 만큼 피해의식이 커지기 때문에 걸핏하면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를 외치게도 된다.

돌이켜보니 혼자 과도하게 기대하고 섭섭해진 경우가 많았다. 문제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관계의 키를 잡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상대에게 떠맡겨 버리고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속상해했구나. 상대 또한 그게 부담스러웠을 텐데….

인간관계는 시소게임이나 스파링 같아서, 체급의 차이가 크면 게임을 계속할 수 없다. 한두 번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져 줄 수 있겠지만 배려하는 쪽도 받는 쪽도 금방 지칠 뿐이다.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요건으로 ‘착함’을 드는 사람에게 그건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건강할 수도 없다고, 예전 내 모습이었던 착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느 한 쪽이 착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 ‘시시한 것’이 아닐까? 건강한 인간관계는 시소를 타듯 서로를 배려하며 영향을 주고받을 때 맺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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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

“아유, 착하기도 하지.” 개는 항상 주인의 칭찬을 기다린다. 사람 입장에서 착한 개란 이런 것이다. 배변을 정해진 곳에 하고, 주는 것을 무엇이든 잘 받아먹으며, 사람을 절대 물지 않고 주인이 없어도 집 안을 어지르지 않고 얌전하게 기다리는 것. 이런 일을 할 때 개는 착하다는 칭찬을 듣고 간식도 얻어낼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착한 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것이 기본이다 음식을 주는 대로 골고루 잘 먹고, 친구나 형제자매와 싸우지 않고 양보를 잘하며, 떼쓰지 않고 울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아이는 순하고 착해서 부모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고 칭찬을 받는다.

아이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만큼 실망도 안기며 자란다. 부모의 기대는 언제나 과도하고 자녀의 생각과는 어딘가 조금씩 빗나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한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데는 이 같은 부모와의 투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위 ‘착한 사람’들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잊어버린다.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인생의 선택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 조차 방관자의 자세를 취한다. 진로, 취업, 결혼 같은 중요한 결정조차 마찬가지다.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잘못되면 포기하는 것도 빠르고 남 탓하는 데도 익숙하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착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 후려치기 하지 마세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에 살다가 미국 명문인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J. D. 밴스는 소위 ‘개천에서 난 용’이다. 그는 가난한 지역에서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양육권을 포기한 아빠 사이에서 자랐다. 성장기 내내 가난과 가정폭력,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밴스는 그의 저서 <힐빌리의 노래>에서 “물질적 빈곤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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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대상의 부재, 목표의식의 부재라는 정신적 빈곤이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문화적 단절’과 ‘사회적 자본의 부재’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나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느낀 마음 덕분이었다고 했다.

밴스는 자신이 무기력했던 이유는 “가히 종교적이라 할 만한 수준의 냉소가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책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에너지 흡혈귀’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에너지 흡혈귀란 상대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나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인 방법으로 상대의 기를 빼앗고 분노하게 만드는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요즘 신조어 중의 중 하나인 ‘후려치기’가 있다. ‘물건 값을 터무니없이 깎다’라는 본뜻에서 파생된 이 말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상대를 깎아 내리려 하는 행동을 뜻한다.

연애에서는 흔히 “나니까 너랑 만나주는 거야”, “너는 가치 없는 사람이야”같은 말을 반복하며 파트너를 그런 암시에 걸리도록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집 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해 놓고 “집이 왜 이렇게 어둡지?”하고 묻는 아내에게 “당신이 예민하군. 잘 못 본거야”라고 질타하면서 아내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게 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이 같은 후려치기 또는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유도해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하는 명백한 감정적 학대다.

심리분석학자인 로빈 스턴 박사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징후를 가진다고 정리했다.

1. 사과를 지나치게 자주 한다. 모든 책임과 의무를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2.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다른 사람의 결정을 기다리게 된다.

3. 자책을 많이 한다.

4. 폐쇄적인 성격, 변명 위주로 일관, 거짓말을 많이 하거나 속내를 감춤

그런 사람과 같이 있을 때마다 깊은 우물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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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우선 도망쳐라. 그는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조종하려고 하고 있다. 당장 떠나는 것이 어렵다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가 하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상대의 말보다 나의 직관력을 믿어야 한다.

■ 저마다의 상처를 다독이며 산다

<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라는 책에서 연구자 필링은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의 기준을 정했다.

1. 한쪽 부모가 없거나 5형제 이상의 가정

2. 소득이 낮아 학교에서 무상급식 등의 혜택을 받는 경우

3. 온수가 나오지 않거나 1.5명 이상이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경우

성취하는 아이들의 특징

1. 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포부가 있다.

2. 구직 기회가 많은 지역에서 산다.

나는 1인당 지역 총생산이 22년째 꼴찌이고, 청년 실업률은 늘 전국에서3위 안에 드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전단을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까운 친척 중 대학을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릴 적의 내가 어른들에게 제일 많이들은 말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였다. 포기하는 법부터 배우라는 뜻이다.

가난해도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도망치듯 서울로 왔고, 취업을 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니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보자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문화적 자본도 서서히 쌓여갔다. 소위 ‘인맥’이라고도 하는 그것, 도움을 줄 수 있고 필요하면 받을 수도 이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연애를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는 애정결핍이었던 나를 많이 치유해 주었다. 자잘한 성취의 기억이 쌓이면서 자존감도 높아져 갔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집을 살 거라고 했다가 “서울은 집이 너무 비싸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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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피 넌 노력해도 못 사”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같은 논리로 내게 말했었다. 그들은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성취한 경험 말이다. 그 때문에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노력해서 가지라고 말하는 대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위 ‘개천 용’들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개천에 대해 세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기에 두려워하거나 포장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삶은 디테일(세부적인 부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천을 대상화 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일 뿐이다.

■ 혼자를 기르는 법

다음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을 보다 보면, 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김정연 작가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독립한 20~30대 여성이라면 그녀가 그리는 일상에 많은 부분 공감할 것이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안동에서 서울 청파동으로 와 살고 있는 20대 여성 ‘이시다’의 삶을 그린다. 시다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며 상자 안에 햄스터를 넣어 키운다. 시다의 거주 환경은 종종 햄스터와 비교되어 보이기도 한다.

시다의 이름은 ‘~이시다’라고 할 때의 그 종결형 어미다 높임을 받는 자로서의 인생을 목표로 지어진 것이지만, 실제 모습은 ‘시다바리’할 때의 그 ‘시다’로 최하 계층의 인간에 가깝다. 만화는 시다라는 이름에 담긴 기대와 실제처럼 이상과 현실의 격차에서 오는 쓸쓸함과 소외감을 그려낸다.

시다(‘종’이라는 일본 말)는 인테리어 회사에 다닐 정도로 공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실제로 그가 택할 수 있는 취향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다. 취향은 킨포크(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한 일상을 지향하는 삶, 생활 방식)인데 현실은 다이소(거창한, 매우, 굉장함)인 셈이다. 포스트잇처럼 자신이 존재했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만 허락되는 것이다. 구매의 기준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만 결정되는 삶에서는 자기가 사는 집에 못 하나 마음대로 박을 수 없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햄스터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시다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낮은 최저 시급과 취업난,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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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 부동산의 나라.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를 종용받는 이곳에서 청년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옵션을 보장받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계급의 사다리를 걷어 차놓고 “지금 네 취향은 별로구나.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단다”라고 하는 것은 기만이다.

나였던, 그리고 나와 닮은 수많은 시다를 생각한다. 기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살던 고시원, 그곳에서 만났던 '시다‘들도 떠오른다. 포기부터 익숙해 지지 않는 것, 그걸 원했을 뿐인데, 사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돼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누구지?”, “뭘 하고 싶지?”,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같은 물음.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던지는 질문보다 남들에게 받는 질문이 더 많아진다. 어른들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등의 말을 하면서도 정작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답답해한다. 그 과정에서 성공에 대한 기억일수록 과장되고 미화되어 우연한 사건조차 필연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은 대개 간과된다. 그걸 잊은 사람일수록 이렇게 말한다. “왜 이것 밖에 못해?”

나는 천주교 세례를 받았고 성모 마리아상을 집에 두고 있지만 불교 서적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절에가 예불도 드린다. 하지만 “종교가 뭔가요?”라고 누가 물으면 “천주교를 믿는데 불교도 좋아해요”라고 말하지 못한다.

“사람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단다. 모든 것에 대답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잃어버린단다. 자기 자신을.”

이 문장에 내가 크게 감동한 배경에는 그런 피로감이 있었다. 이 대사가 등장한 마스다 미리의 책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에는 이런 대답도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되고 싶지 않아.”

마스다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서는 주인공 수짱이 자꾸만 한 직원을 싫어하게 되자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을 결말로 택한다. 그 직원을 바꾸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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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짱이 마음을 완전히 고쳐먹지 않아도 되는 이 결론은, 각종 자기 계발서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진취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는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후 <수짱의 연애>에서는 수짱과 그의 상사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데, 이 역시 작가의 그런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난 요시코 선생의 일하는 방식이 좋아.”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 반은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런 건 지금은 상관없어. 그렇게 하길 잘했다. 하고 생각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지. ‘도망쳤다’가 아니라 ‘그만 뒀다’ 단지 그뿐인 거야.

작가의 에세이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에서도 그는 자신의 성격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내 전부가 엉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담담한 긍정은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그 대답을 오래도록 찾아온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통찰이 아닐까?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당신이 원하는 건 뭐야?”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라고 질문을 바꿔보자. 그러면 어느 날 또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 기억 보정의 함정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을 때 사진 보정 앱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필수가 됐다.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사진첩 속에서는 내가 나라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는 마음, 저마다의 기억도 이처럼 보정되고 삭제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 사진’을 남기고자 할 때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그 많은 사진 속에서 제일 잘 나온 것을 고른다. 거기다가 필터나 뽀샤시 효과를 적용한다. 그러다보면 내 모습이지만 이미 내가 아닌 이미지만 저장된다. 그렇게 만든 사진들을 보고 또 보면서 그 사진 속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게 된다. 그러다가 다fms 사람들이 찍어 준 내 사진을 보면 화들짝 놀라며 사진이 너무 못 나왔다고 생각되고, 짜증까지 나게 되는 것이다.

기억 또한 보정되는 사진 같아서 그 자체보다는 편집과 자기애가 꾸덕꾸덕 뭉쳐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무언가를 회상할 때는 ‘상처를 주었다’는 기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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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상처를 받았다’는 기억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진상’, ‘갑질’같은 기사와 그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갑질을 당했다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어째서 갑질을 했다는 사람은 찾기 힘든 걸까? 나도 그런 작이 있을 텐데 잊고 싶어서 잊은 거겠지. 기억 보정이란 게 이토록 위험하다.

Part 2. 좋게 좋게 넘어가지 않아야 좋은 세상이 온다

■ 불행하면 남에게 관심이 많아진다

대학 졸업 후 혼자 서울에 올라와 살았다. 단돈 50만 원을 들고 말 그대로 ‘무작정 상경’을 한 거였다. 서울은 ‘밑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사투리를 쓰시네요?” 지금이야 “네”하고 말지만 당시 위축됐던 나에겐 이렇게 들렸다. ‘촌스럽고 이상해.’

살던 고시원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옆방 여자가 방문을 노크했다. “쉿 드라이 기 쓰지 마세요.” 살지 않는 척 살아라, 고시원의 생활 수칙이었다.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날이 늘었다. 누군가와 통화하듯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길을 걸을 땐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중얼거리기도 했다. 극도의 외로움이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낸 거다.

우울의 증세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의욕이 사라져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꾸역꾸역 먹기도 했다. 또 우울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너만 괴롭냐? 나도 괴로워‘ 겨우 그런 걸로 힘든다고 해?’ 하는 마음이 욱하고 드는 것이다. 자신의 힘겨움에 압도되어 남의 상태를 제대로 알아줄 심적 여유가 없다는 증거다.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만 해도 너무나 많다. SNS의 생활화로 언제나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이 현대인을 더욱 좌절하게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친구의 근황을 보고 질투하고, 수시로 올라오는 카카오톡 알람과 채팅방에 매달리는 일상은 너무 얕고 자극적이어서 마음에 병을 불러들이기 쉽다.

결국 세상에서 나 혼자만 힘든 것 같이 느껴지고 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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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차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처럼 불행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고서도 갑질인지 모른다. 인정해 주는 곳이 없으니 자꾸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하고 소리친다. 인간관계에서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인과관계를 처리하는 회로가 무너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알아달라고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스스로 충만하면 남의 인정을 갈구할 필요가 없으니까.

■ 쓸모없으면 어때

대학 새내기 때 소위 ‘운동권’ 선배들은 툭하면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니?” 라거나 “요즘의 네 화두는 뭐니?”라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했더라도 별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질문자의 의도는 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오답 되풀이를 해주는 데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돼서 앞으로는 더 생각을 갖고 살아야 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는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질문이 불편해졌다.

대학생들이 이력서를 수십 장씩 쓰다보면 “당신은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요?”, “당신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요?” “인생에서가장 중요한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같은 질문에 답을 지어내면서 어느 순간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별다를 것도 없던 경험을 굉장한 계기나 되었던 것처럼 포장하다보면,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부럽고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대학에 취업률 지표를 넣어서 부실대 판정을 내리는 교과부에 예술대 학생들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건 예술인데요!” 같은 맥락이다. 왜 사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태어났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의 쓸모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아 온 것 같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 하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어릴 때는 ‘여자지만 남자보다 못할 게 없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다. 중, 고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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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책을 읽고 있으면 선생님은 그럴 시간에 문제집 하나라도 더 풀어야지 뭐하는 짓이냐고 혼냈다. 대학교 때 사회학과에 다니면서는 졸업하면 진로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주야장천 들었다. 이제는 패기 있게 “아무 것도 안 하면 어때?”, 쓸모없으면 어때?“ 라고 대답할 준비를 했더니 사람들이 더는 묻지 않는다.

우리 엄마가 4대 독자인 내 남동생을 낳고 “건강하게만 자라라”라고 했던 것처럼, 사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사회는 무책임하게도 개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라고 떠넘기고 개인은 새파래진 얼굴로 우물쭈물 답을 찾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반대로 생각하면, 별 쓸모가 없어도 살아 있으니 더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 너는 그 사람을 고칠 수 없어

무언가 문제가 있던 사람이 주변의 도움으로 ‘확’ 바뀐다는 설정은 그다지 낯설지 앉다. 그런데 우리가 미디어에서 하는 변신은 편집되어 조작된 극적인 쇼일 뿐이다. 텔레비전이나 책, 강연 등에서 바뀌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는 모른다. 또 실제 변신을 했다 하더라도 말 그대로 ‘고졸 신화’나 ‘고시 합격 수기’처럼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기에 다룰 가치가 있는 뉴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런 스토리에 계속 노출되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계몽 네러티브는 많은 사람에게 스며들어 갔다.

나는 이런 평강공주식 이야기가 평범한 대부분의 인간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간관계나 조직문화를 망치기까지 한다. 인간은 강요나 계몽 같은 방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달라지기로 마음먹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위해 극도이 노력을 해야만 바뀐다.

애정과 노력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은 아름답고, 때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진실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이는 개선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은 법과 복지 같은 시스템을 계속 보완하면서 진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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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도문이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도 놓치게 된다.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시간은 가치 있는 데에만 쓰기도 부족하고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 모르니까, 쉽게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

‘이번엔 제발 괜찮은 기사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택시를 탈 때마다 긴장하며 하는 이야기다. 탈 때마다 높은 확률로 불친절한 기사님을 만나게 되니 쿵쿵 뛰는 심장을 주체하기 어렵다. 편리하기 위해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인데 불편한 마음으로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불친절한 기사님 중에는 자꾸 정치적인 이슈를 꺼내 논쟁하려는 사람, 화난 듯 말하는 사람, 사적인 이야기를 캐묻는 사람 등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느끼는 것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꼭 자신이 직접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살아볼 순 없지만, 상대를 이해해보기 위해서 상상력을 동원하고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순 있다. 상상력이 곧 타인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책을 읽는 등의 예술 활동을 하는 것도 실은 그런 고차원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나는 여자로만 살아봐서 남자로 살아가는 일의 고충을 잘 모른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그냥 듣기만 한다. 다 듣고 나서 “그렇구나 힘들었겠다”라고 할 뿐이다.

군대에 가보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정도 반응에도 남자들은 감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잘 모르니까,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모르니까, 쉽게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 내가 모르는 너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그런 역지사지를 꾸준히 해나가야 우리는 서로 미워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다. 번거롭고 어렵지만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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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받기 위해 무리할 필요 없어

키는 보통 60Cm, 꼬리 길이는 50Cm, 몸무게는 5Kg을 넘지 않는다. 머리는 동그랗고 귀는 삼각형 모양으로 쫑긋 서 있다. 눈썹과 볼에는 털이 났고 눈 밑에는 세로로 붉은 무늬가 있어 깜찍함을 더한다. 배와 다리는 윤기 흐르는 검은 빛이다. 너구리와 강아지를 섞은 것처럼 생긴 이 동물의 이름은 ‘레서판다’다. 레서판다는 객관적으로 귀엽게 생겼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외모가 귀여워서 레서판다를 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성격이 과격하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키울 수는 없어요” 레서판다를 담당한 많은 사육사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단점이 있으며 빈틈과 약함, 예측 불가한 모습들이 있다. 많은 욕망과 여러 관계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나 외부의 조건에 맞추어 그에 맞는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입체적 존재다.

소설가 김훈이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 같은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일관된 모습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 나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는 의외의 모습들이 모여 완성된다. 저 흉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레서판다처럼.

■ 취향 존중 부탁합니다

‘취향 나치’라는 표현이 있다. 상대의 취향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공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과격한 표현을 듣고 떠오른 풍경이 있다.

지금은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 선배가 내게 물었다. “어떤 작가 좋아해요?” 떠오르는 사람들을 이야기 했다. “김00, 박00, 이00요.” 선배가 말했다. “문정 씨 취향 알만하네요.” 다음 달, 선배가 내는 기획서에는 이렇게 적

혀 있었다. “이 콘텐츠는 김00와 박00을 읽고 기껏해야 이00을 읽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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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계몽하는 게 목적입니다.

취향은 대개 당사자의 경제적 수준과 성장 환경까지 예측하게 한다. 취향은 그가 속한 계층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에, 골프가 취미인 50대와 등산이 취미인 50대는 다르다. 아이돌 음악을 듣는 20대와 재즈를 듣는 20대도 다르다. 취향은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취향은 집단의 생활양식이 되기도 한다. 1990년대 한국인의 국민취미는 ‘음악감상’과 ‘독서’였다. 인기 가수의 음반이 백만 장씩 팔리고 집에 전집 하나 쯤 갖추는 게 일반적이던 때였다. 그때 나는 매일 책을 읽었는데, 모두들 취미를 독서라고 하니 나도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웠다. 남들이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워서.

요즘은 국민취미가 영화 감상, 유튜브 감상, 또는 게임과 여행 정도인 것 같다.

취향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단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일 뿐이라면, 일기를 검사받는 것과 뭐가 다를까.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고 남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아야 세상은 여러 색으로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 ‘취존(취향존중)’부터!

■ 유일한 사람이 되는 비결

세기의 미녀 올리비아 핫세가 결혼 후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물었다. “수많은 프러포즈를 받았을 텐데 어떻게 레너드 위팅이 당신의 남편이라고 확신 하셨나요?” 핫세가 갑자기 사화자의 눈을 가렸다. “제 눈동자가 무슨 색인가요?”대답을 못하자 그녀가 말헸다. “그는 이 질문에 유일하게 답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저마다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 같아서 누군가 나를 읽어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대충 읽고선 다 아는 양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다른 책 사이에서 나만이 유일한 가치를 발견해 주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면 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판단을 뒤로하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며, 그렇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무언가를 보고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이고, 더 많이 생각한 사람은 더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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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컬해지지만 않으면 망해도 망하지 않아

* 시니컬(Cynical)하다 : 쌀쌀하고 비웃는 듯하다

시니컬한 사람들이 있다. 시니컬함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중요하거나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해봤자 안 되더라. 그러니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시니컬한 사고의 기본 구조다 외향성이나 내향성처럼 타고나는 경향이 강한 성격과 달리, 시니컬은 경험을 통해 학습되고 강화된다. 날 때부터 시니컬한 사람은 없다. 시니컬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던 기억들, 기대했던 일이 연달아 실패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재다.

유년 시절 어른들 또는 어른들이 보여주는 책은 모두 이런 말들을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정의가 승리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바른생활, 윤리, 도덕 같은 과목을 통해 공공의 의무와 책임, 법과 공중도덕을 배운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하나씩 깨닫는다. 노력은 (심지어 자주) 우리를 배신하며, 세상은 불합리와 불의로 가득하다는 것. 추한 것들과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그 반대보다 많으며, 가난은 불편함과 동시에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

시니컬해지는 것은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결국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봐, 내가 그럴 거라고 했지“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물정 잘 아는 현명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 염세로 빠져버리면 더욱 나빠질 일만 남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게 되듯, 변화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세상에 대한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게 되므로 집을 오래 비워두면 집은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먼지가 쌓이고 이곳저곳 망가져 간다. 매일 쓸고 닦아도 티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덕에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것이다.

시니컬해지지 말자는 건, 철저하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용기 있게 현실을 직시하자는 뜻이다. 그러면 최소한,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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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내 인생과 내 주변은 뭐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Part 3. 자기 표현의 근육을 키우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너랑 나랑 2인실을 쓰면 돼. 물론 침대는 따로 쓰고.” 런던에서 출발한 버스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도착하기 직전, 일행이던 남자가 말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대학 때 간 첫 여행지는 런던이었다. 꼭 한 번은 해외로 나가보고 싶어 돈을 모았지만 한 시간에 3,500원짜리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 대기에도 빠듯했다. 좌절하던 차에 어학연수 중인 선배 언니가 런던에 오면 재워주겠다고 제안했다. 숙박비만 줄어도 그게 어딘가. ‘빈말이었으면 어떡하지“ 너무 실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애써 무시했다. 염치나 예의처럼, 인격 중 좋은 것들은 대개 지갑에서 나오는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특가로 비행기 왕복 티켓을 사고 남은 100만원 정도를 들고 런던으로 떠났다.

스콘으로 끼니를 때워도 무료 미술관 위주로만 돌아다녀도 행복했다. 선배 언니의 옆방에 유학중인 한국 남성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런던 이외에는 어딜 가려는지 묻기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패스티벌에 가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자기도 거기 갈 생각이었다며 반색했다. 하는 김에 숙소를 같이 예약하겠다며 정산은 그 후에 하자기에 고맙다고 핶다. 그렇게 떠난 버스 안에서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지금 같으면 쌍욕을 해줬을 텐데, 그땐 “그냥 여기서 헤어지죠” 라고만 하고 돌아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구하러 갔다. 극성수기라 빈방이 없었다.

일단 행사장으로 가서 프린지 공연을 보고 에든버러성을 구경한 다음 저녁이 되자 역으로 향했다. 노숙할 생각이었다. 밤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꺼내는데 “저기 한국인이시죠>”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고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길을 묻기에 답해 주었다. 두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 숙소는 어디냐고 물었다. 1박 2일로 온 건데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겨 오늘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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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놀라운 제안을 했다. 자기들이 묵는 숙소가 3인실인데 침대 하나가 비어 있다고 공짜로 재워줄 테니 가자는 거였다.

숙소는 넓고 깨끗했다. 땀에 범벅된 몸을 씻고 나오니 언니들이 와인과 치즈를 꺼내 주었다. 둘 다 30대 초반이었고 나는 그날 처음 본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역에서 혼자 자려고 했던 이유부터…….

언니들이 이야기 했다. “너는 지금 용기 있는 여행을 하고 있어”. “대단하다”, “넌 할 수 있을거야” 같은 푸근한 격려들. 그때 내 안에서 불씨 같은 것이 피어남을 느꼈다.

만약 그때 버스에서 거절하기 어려워 애써 괜찮을 거야 생각하면서 그를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오늘 같은 행운을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그러게 그 남자를 뭘 믿고 따라갔어?” 하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었겠지. 그날이후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 종종 혼자 여행을 다녔고, 새로운 것을 보면 일단 해보기로 하는 쪽이 된 것이다. 그렇게 모험을 즐기면서 만든 나만의 구호도 있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 소리는 단호하게!’

■ 선을 자꾸 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심리학 용어 중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 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쾌적하게 있기에 필요한 점유공간을 뜻하는 말인데, 나라마다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다르다. 예를 들어 일본은 1.01m, 미국은 89Cm 정도라고 한다. 미국인보다 일본인이 안전거리를 더 길게 둔다는 얘긴데 한국인은 아마도 일본인에 가까울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과 가까이 있게 될 때 불편한 이유도, 지하철에서 자리가 났을 때 최대한 떨어져 앉으려고 하는 것도 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려는 본능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퍼스널 스페이스란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뜻하지 않는 마음의 거리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낯선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날씨 정도를 화제에 올릴 뿐이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가까이 앉아 깊이 있는 주제까지 이야기 할 수 있다. 마음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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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문이어도 누가, 어떤 뉘앙스로 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적절한 가리를 두지 않고 훅 하고 다가와 질문 세례를 던지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대꾸법으로 응대한다. 나의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면서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대화를 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하지 않는 사람이나 나의 공간을 문득문득 침범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를 잘 모르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다.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나의 깊은 감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까지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알려줘야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대리 사회>등의 책을 낸 김민섭 작가는 글 쓰는 일 말고도 대리운전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다. 한번은 대리운전 콜을 받고 손님에게 전화해 10분 정도 걸리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약속대로 도착해 여러 번 전화했지만 상대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민섭 작가는 그 앞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법한 에피소드다. 그런데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뒤 김민섭 작가의 대처에 있었다. 그는 이후 이렇게 행동했다고 자신의 SNS에 썼다.

“이런 일이 있으면 대개는 ‘어디 계세요?’하면서 혼자 이리저리 뛰다가 콜을 취소하고 곧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그냥 가신 걸로 알고 콜 취소할게요. 그런데 당신 때문에 저는 출발지 까지 갔고 그건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는 과정입니다. 지금처럼 연락 두절되는 건 몹시 비겁한 행위입니다.’ 그가 내가 보낸 문자를 볼지 어떨지 모르겠다. 다만 내일 아침 깨어 이 문자를 보고 조금은 부끄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사정이 생겨 취소할 수는 있지만 미리 알리지 않는 것은 상대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빼앗고 다른 사람의 기회까지 뺏어간다.

예약을 했지만 취소한다는 얘기 없이 예약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손님을 ‘노쇼(N0-Show)’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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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음식점, 고속버스, 호텔 등의 서비스 업종에 예약을 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비율이 20%를 웃돈다고 한다. 그리고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은 4조 5천억 원에 달했다.

최근 서비스 업종에서는 선결제 시스템이나 예약금 제도로 1주일 전에 취소하면 전액을 돌려주지만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패널티(penalty : 형벌, 벌금, 불이익)를 주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면 자신도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린 결과 노쇼 고객이 3분의 2이상 줄었다고 한다.

김민섭 작가가 했듯이, 일방적인 상대에게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 자화자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그건 익은 후의 말이다. 우리는 익기도 전에 고개부터 숙여오지 않았던가.

힙합은 원래 익지 않은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익기도 전에 부러트리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다. 커다란 휴대용 라디오를 어깨에 메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소리치던 것이 힙합의 원조다.

인종 차별이 극심해서 밤이 되면 인종주의자들이 총을 쏘고 “(피부가 검어서) 밤이라 안보여 몰랐다”고 둘러대곤 했는데, 흑인들이 거기에 저항해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친 것이 랩의 모태다.

허세는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가난한 흑인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대부분의 래퍼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쓰거나 별명으로 쓰는 MC는 ‘MIC Controller'의 약자로 ’마이크 지배자‘라는 뜻이다.

힙합 패션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됐다. 신벌이나 티셔츠, 바지를 무두 크게 입는 힙합 패션은 할렘가에 사는 가난한 흑인들이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을 수 없는 데서 유래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옷을 한 번 사면 키가 크고 살이 찔 것까지 대비해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옷을 샀으니까. 그런데 이것이 문화가 되면서 힙합 패션은 이제 쿨한 자기표현 방식으로 인정받게 됐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흑인 작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의 책 <행동반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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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하고요. 뉴욕에 사는 큰 형이 말했어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갖기 위해서는 자화자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그건 왜지, 리언?” 선생님은 지겹다는 듯이 말했어.

“왜냐면요.” 그 작은 소년은 제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자화자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칭찬해 주지 않으니까요.”

■ 단호하고 우아하게 거절하는 연습

남편은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처럼 착하게 생겨서 나쁜점은 부탁을 너무 자주 받는다는 것이다.

부탁받은 일을 하느라 남편은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뒤늦게 시작하기도 하고, 밤을 새워 일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탁을 자주 받는 사람들은 “넌 착한 사람이야”, “역시 너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고 상대를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아 자신을 혹사하면서까지 에너지를 쓰곤 한다.

부탁을 거절하려면 우선은 반갑게 연락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주고 싶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미움 받는 것이 두려워서, 안된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떠나갈까 봐서 무리한 부탁을 자꾸 들어주는 식으로 관계가 설정되면 갈수록 부작용이 커진다. 부탁 받은 일을 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마음이고 기껍고 편안한 상태여야 한다. 예의 바르게 부탁을 거절했는데도 자꾸 하소연 하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옆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그 모든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 상처에 대해 용감해져라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생각이 난다.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나서 놀라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니 한국에는 없는 좋은 점, 한국의 나쁜 점에만 집중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 다른 나라도 가 보고, 며칠간의 관광이 아니라 한 달 이상의 여행도 하는 등 경험이 쌓이자 좀 더 공통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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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에 대한 과도한 동경도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한 생각들도 조금씩 없어졌다. 크게 보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사람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은, 적은 경험으로 일부의 모습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편견에 사로잡혀서인 것 같다.

다소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하듯 누구나 1인분씩의 불운을 만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흉터에만 집중해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남을 미워하는 데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랑이나 이성에 대해서 과도하게 경계하는 건 혹시 다친 곳을 또 다칠까 겁나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 그런 척을 하다보면 정말 그렇게 된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 슬퍼진다’는 제임스 랑게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에이미 커디 교수다. 그는 자신이 저서 <프레즌스>에서 “마음이 몸을 바꾸듯 몸이 마음을 바꿀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가 연구한 대표적이 불안 증상 중 하나로 ‘가면 현상’이 있다. 자신의 진짜 능력은 보잘 것 없다고 믿으며 이 사실이 남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지는 것을 뜻한다. 가면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깎아 내리거나 자신에겐 실제로 그 일을 할 능력이 없지만 하는 척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사기꾼처럼 여기는 것이다. 에이미 교수는 이처럼 가면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며, 높은 성취를 한 이들일수록 그리고 남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일수록 자신의 형편없음이 들통나지 않을까 고민한다고 한다.

에이미 교수는 이 경우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면 자세부터 바꿔보라고 조언한다.

자세와 몸짓, 표정과 신체 습관이 마음가짐을 결정한다. 는 저자의 관점은 실험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상당히 넓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팔다리를 뻗는 확장적인 자세를 취한 피실험자 들은 옴츠리거나 오그라든 무기력한 자세의 집단과 호르몬 수치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집단은 결단력과 관련 있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수치가 19%까지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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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 수치는 25% 떨어졌다는 것이다.

신체 언어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메시지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자신감이 없어서 고민이라면, 우선 아주 작게 말하던 목소리를 한 톤 키우고 자세를 똑바로 해보자. 자신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듯한 자세는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을 주어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자존감이 없어 고민이라면 남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신체 언어부터 점검해보자.

스스로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다fms 사람들도 그렇게 보아주는 것이다. 자신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진짜로 그렇게 믿어지는 그런 순간이 올 것이다.

Part 4, 부정적인 말에 압도 당하지 않는 습관

■ 부정적인 말에 압도당하지 않는 습관

친구들이 하나둘 아이를 낳는다. 그들이 하소연 하는 말을 듣자니 대한만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인 듯싶다. ‘맘충’이라며 엄마들 전체를 싸잡아 주눅 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육아방식에 대해서도 간섭을 많이 한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듣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만이 아니다.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이런저런 질문을 퍼붓는다. 특히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질문 세례를 받는다. ‘관심'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하고 충고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들어보면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맘충

- 맘-엄마, 충-벌레

-무개념 자식들 곧, 자식들이 공공장소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주는데도 방치하는 것. 다른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 ‘애들이 그럴 수 있지 왜 아이들 기죽이냐’고 적반하장 대드는 엄마

- 이 글 에서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함부로 말하는 제3자를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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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발언을 자주해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집안의 어른이나 직장 상사인 경우라면 현실적으로 화를 내기가 어렵다. 이들은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기에 정색하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참고만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상항에서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하는 무덤덤한 인식은 상대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거대하게 느끼다가는 정신력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대답하고 싶지 않고 할 필요도 없는 상황을 마주 했을 때 유용한 말이다.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만나더라도 기죽지 말자. 매일 조금씩 단호하고도 우아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는 거다. 거절에 필요한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다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일일이 상처받지 않는다‘와 ’상대방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다.

■ 애정 없는 비판에 일일이 상처받지 않기

나는 눈치를 자주 보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지나치게 반성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던지는 말조차 오래오래 곱씹었다. 소속된 집단에 대한 나쁜 말을 들으면 예외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데이트 비용 안내는 한국 여자’, ‘명품 밝히는 여대생’같은 말을 들으면 실제로 그런 사람을 잘 보지도 못했으면서 “많이들 그렇지만 나는 안 그래!”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점점, 너무 자주 죄송해 하는 게 불편해졌다. 이것들이 정말로 애정을 담은 비판인지, 걱정인 척 포장하며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는 것인지 따져봤다. 생각해보니 우선 나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하는 말이 많았다. 단점은 장점보다 쉽게 보이고, 비판을 하면 스스로 우월감이 느껴져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냥 재미로 그러기도 했고 부러워서 그러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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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랬다는 게 아니겠나. 애정 없는 비판, 습관적인 비판, 통찰 없는 우려를 걸러내기 시작했다.

■ 마음의 근육 키우기

“언니는 사는 게 재미있어요?”

한 후배가 최근의 상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는 요즘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다. 해봤자 삶이 나아지지도 않는데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가 의미 없게 느껴져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우울감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당연하지. 누구나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하고 말이야.” 후배가 놀라며 말했다. “언니는 그런 생각 안 할 줄 알았는데…. 언니는… 엄청 밝잖아요?”

남에게 그럴싸해 보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사람들은 자신은 적당한 가면을 골라 쓰고 세상에 나서면서도 남들은 가면을 벗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또 자신은 단순하게 정의되는 걸 싫어하면서 남에 대해서는 다 아는 듯이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삶도 그게 다는 아니다. 행복은 여름 날 길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같다. 아주 잠깐 좋고 금세 사라져버리니까.

신경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는“불안이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방심하면 금세 살이 찌는 몸을 대하듯, 마음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봐야 한다.

■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완서는 마흔의 나이에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을 통해 <나목>이라는 소설로 데뷔했다. 그녀가 전쟁 중 미군 부대 초상화부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에 대한 내용이다. <나목>을 뽑아준 심사위원들은 그녀를 칭찬 하면서도 “일회적인 작가가 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예언했다. 작가가 특수한 자기 경험을 형상화했기 때문에 첫 책이 마지막 책이 되고야 말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박완서 작가의 시상식 때는 그를 뽑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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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이 오지도 않았다. 자신을 뽑아준 선배 문인들로부터 직접 따뜻한 말을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스러웠다고, 작가는 훗날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에 썼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썼다. 장편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을 펴냈고, 단편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등을 출간하며 왕성히 활동했다.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중산층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기억을 소재로 한 소설은 그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계속됐다. 2011년 박완서 작가는 문학적 업적을 인정 받아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일상에서 무례한 사람이 당신을 평가하거든 ‘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넘겨버려라. ‘그의 말이 사실일지 몰라’ 하면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를 잘 모를뿐더러 나에 대해 열심히 생각지도 않는다. 몇 년 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세요?” 물어보면 분명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말을 곱씹는 게 억울하지 않는가? 나의 과정을 모두 아는 사람은 나뿐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은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려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사람들이 말하게 두고, 나는 나의 일을 하러 가자.’

■ 회사에서 멘토를 찾지 말 것

“회시는 아름다운 곳이 원래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먹으면 역설적으로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의 책 <픽스 유>를 읽다 공감해 페이지를 접어 두었다. 회사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면 ‘회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상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하고 자꾸만 원망하게 된다. 이상향을 설정하고 세상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일은 좋지만, 회사라는 조직의 특수성과 한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회사 자체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이므로 사내에서 나뿐 사람을 만나거나 회사의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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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게 들리겠지만, 도저히 맞지 않으면 퇴사하면 될 일이지 자책하거나 괴로워하며 울 필요는 없다.

직장 상사는 당신의 멘토가 ‘원래’ 아니다. 사람은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경험이 더 많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 지지 않는다.

상사도 사람이다. 위로부터 실적 압박을 받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그러니 후배에게 지적을 당하면 합당한 비판일지라도 고깝게 들릴 수밖에.

직장 동료 또한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만난 동료에게도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동기라면 나의 존재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내게 업무가 넘어오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업무 성과를 내야 한다. 회식자리에서는 나와 함께 뜻을 모아 회사의 상사를 욕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는 원래 이해관계로 엮인 곳이다.

회사나 회사 사람들에게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선 안 된다. 회사가 자기계발도 시켜주고 영혼의 단짝도 찾아주는 좋은 곳이라면 애초에 월급을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회사의 명함 말고도 나를 설명해 줄 일을 밖에서 찾고, 회사 동료가 아니어도 나와 놀아줄 사람을 찾아 나서라. 회사에 대해서는 약간 체념한 채로 일하는 것이 가장 정신 건강에 좋다.

■ 직장 상사가 안하무인이라면?

“머리가 좀 나쁘신 것 같아요.”

순간 머리속의 퓨즈가 휙 소리를 내며 끊겼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렸다. 잡지 기자로 일하다 팀을 옮겨 국내 대기업의 온라인 홍보 대행 일을 하게 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머리가 나쁜 것 같다’라니. 사람을 깔아뭉개는 발언이었다. 저열한 폭언이었다. 해외 줄장중인 그의 시간에 맞춰 컨펌(confirm, 확인하다. 확실히 하다)을 받느라 밤 11시쯤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완전히 녹다운이 되어버렸다. 그날 밤엔 너무 슬퍼서 잠들지 못했다.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한동안 그와 연락해야 할 때가 되면 머리가 묵직해졌다. 무례한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렇게 안하무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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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이렇게 권력 관계가 철저한 사람에게 내가 어떤 대응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한 말들이 자꾸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법륜 스님의 강연을 접하게 됐다.

스님이 물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누가 자기에게 뭘 주고 갔어요. 선물인줄 알고 열었는데 안을 보니 쓰레기예요. 그러면 질문자는 어떻게 하겠어요?” 질문자가 말했다. “그냥 쓰레기 통에 버리겠죠.”

스님이 이어 말했다. “나쁜 말은 말의 쓰레기입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고, 그 중에 쓰레기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 쓰레기를 주워서 1년 동안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 그 쓰레기 봉투를 자꾸 열어보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나한테 쓰레기를 줄 수 있어’하면서 그걸 움켜쥐고 있는 거죠. 그 사람은 그 쓰레기를 버리고 이미 가버렸잖아요. 질문자도 이제 그냥 버려버리세요.

가끔 일상에서 쓰레기를 휙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웃거나 정색 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찌할 수 없이 무기력해지는 사람도 있다. 권력관계가 확고할 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일 때 우리는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오랫동안 곱씹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것이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해 주고 싶다.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는 울면서 들고 있지 말고 미련 없이 쓰레기 통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 자존감 도둑 떠나보내기

삶의 어느 한때에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아본 경험이 없으면 선장의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휘둘리게 된다. 만날수록 해악이 되는 자존감 도둑들이다.

1. 나를 감정 쓰레기통 삼는 사람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처럼 , 남편과 싸울 때마다 딸에게 남편 욕을 하고 남편을 습관적으로 비난하면서 딸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았다. 자식이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 하면 ‘지 애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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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다’, ‘이기적이다’ 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감정받이를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왔다면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더라도 성인이 되면 최대한 빠르게 독립해야 한다.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항상 하소연만 하거나, 내 이야기를 꺼내도 금세 자기 얘기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성숙하지 못하다. 자신의 불행에만 함몰되어 당신을 존중할 여력이 없다.

2. 걸핏하면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오래 관계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관계란 애초에 누군가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서로의 이해가 다를 때 “난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공감 능력이 떨어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 말에는 ‘그러니 네가 이해해야 한다’ 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다.

3. “난 뒤끝이 없잖아”, “내가 좀 사차원이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아무렇지 않게 남을 지적하고 비난한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심하게 비판적인 이중성이 있는 경우도 많아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다음 사람에게 옮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옆에 있으면 울게 되는 사람 말고 웃게 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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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돌아이가 되면 편해

나에게는 좋지 않은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웃음 포인트를 찾아내는 특기가 있다. 살다 보면, 웃긴데 슬프다는 뜻의 ‘웃프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런 상황을 두고 농담을 하다보면 주어진 상황이 조금은 덜 심각하게 느껴진다. 이는 그만큼 거리를 두게 됐다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상태가 나아졌음을 파악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힘든 일상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게 유머라고 생각하기에 자주 농담을 하는 편이다. 교통사고로 온몸을 다쳐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했을 때 의사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농담을 많이 하곤 했다. 하반신의 감각이 없어 언제쯤 괜찮아 지냐고 묻는 내게 담당 의사는 “1더하기1이 2”라는 걸 자꾸 설명하게 하지 마세요. 잘 안 돼도 약간 다리를 절면 되는데 뭐가 문제예요?“라고 해서 한동안 내 농담의 소재가 됐다. 간호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그 의사의 말을 흉내 내면서 ”1더하기 1이 2라는 걸 자꾸 말해야겠어요?“ 하고 함께 웃었는데 그런 식으로 웃을 거리를 찾아내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오래 슬퍼했을 것 같다.

코미디언 김숙은 신인시절 선배들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하기 싫다는 걸 표현하려고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하곤 했다고 한다 선배들 아이스크림 사 오라는 말에 “난 아이스크림 싫어하는데”라고 하거나 선배들에게 “곱게 늙으셨네요”하는 식의 농담을 해 선배들이 돌아이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농담을 많이 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면 그런 농담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고 ‘쟤는 원래 저런 아이’, ‘솔직한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은연중에 자신들의 태도를 한 번 더 점검하는 것 같다.

농담을 잘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령은 요즘 뜨는 유행어를 적재적소에 써먹는 것이다. 요즘엔 유행어의 수명이 짧아 빨리 바뀌기에 트랜드를 잘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콤플렉스일 수 있는 것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키 작은 사람에게 키에 대한 농담을 한다거나 과체중인 여성에게 체중 이야기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건 금물이다. 다들 생각은 하지만 말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유머 포인트를 집어내거나,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해야 함께 웃을 수 있다. 그렇게 농담을 자주 하다 보면 스스로도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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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습관에서 빠져 나오기 쉽고, 사람들도 나를 편하게 대하기에 불편한 메시지를 정색하지 않고도 잘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지나치게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남들의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사람은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재미있는 농담을 하지 못했더라도 “항상 웃길 순 없지. 계속 웃기면 뭐 내가 개그맨이게?” 하고 넘어가는 자신에 대한 관대함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이처럼 유머 감각을 키우는 것은 적극적인 자기표현과도 관련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연습해 보길 권한다.

Part 5.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살다보면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들은 내게 상처를 주고 당혹감을 안기며, 기껏 붙잡고 사느라 힘든 자존감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들을 처음 봤을 땐 엉엉 울기만 했는데, 계속해서 마주하는 동안 나름의 대응법이 생겨났다.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재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문제가 되는 발언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편견이 심한 말을 들었을 때, 흥분하지 않고 “제3자가 듣는다면 오해하겠는데요?”라고 말하거나 “당사자가 들으면 상처받겠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다.

2. 되물어서 상황을 객관화 하는 것이다.

3. 상대가 사용한 부적절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 들려주는 것이다.

“영감탱이는 욕이 아니라 친근한 표현이라서 썼다”고 한다면 “저도 친근하게 영감탱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하고 응수 할 수 있다.

“가슴이 작은데 왜 브래지어를 해?“ 하고 묻는 남성에게 ”그럼 오빠는 왜 팬티 입어?“라고 할 수 있다.

4. 무성의하게 반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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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머러스하게 대답하기

누군가 가부장적인 말을 할 때 “우와, 조선시대에서 오셨나 봐요. 상평통보 보여주세요!” 하거나 “요즘은 잔소리 하려면 선불주고 해야 한다던데요.” 등

무례한 사람을 만나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인류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함으로써 이전 세대와 다른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 부당함을 더는 참지 않기로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이런 것이라 말하기는 멈추지 않는 것, 세상의 진보는 지금까지 그렇게 이루어졌다.

■ 사람 졸업식 : 헤어지면서 성장한다

연애를 하면서 딱히 심각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마음이 떠나는 경우가 있었다. 동성 친구 간에도 다른 학교에 진학하고 나면 다른 관심사를 가지게 되고 서서히 연락을 줄이게 된다. 그걸 남들도 다 겪는 권태기 같은 거라고 한 마디로 넘겨버리기엔 마음의 복잡 미묘함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 경우 억지로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더 이로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고 이기적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에 열열히 좋았던 것이 시시해지기도 하고 취향도 변하듯,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주요 시기마다 목표와 우선순위가 바뀌기 때문에 같이 있고 싶은 사람도 계속 바뀌는 것이다. 내가 사회학에 푹 빠졌을 때는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을 사랑했고, 영화와 음악에 관심을 많이 가졌을 때는 예술가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에게 반했다.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때는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아 다녔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고 고민이 깊을 때는 배려심 많은 이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 나는 제일 나다울 수 있었다.

우리는 관계하는 타인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의 일부가 나의 일부가 된 후 작별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 졸업식에서 우는 학생은 영원히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작별 의식일 뿐이다. 나이를 먹고 얼굴이 변하고 몸이 변화하듯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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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높이는 법’과 관련해 많은 지침이 있지만 기본은 마음 사이즈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변화를 직시한 후 그에 맞는 것을 찾아 나서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현재에 충실할 수 있기도 하다.

■ 사람 판단은 최대한 보류하기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작 <살인의 추억>을 10년이 넘어 다시 봤다. 나는 개봉 당시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남편은 지금까지 그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고, 꼭 봐야 하는 웰 메이드(Well-made, 균형 잡힌, 훌륭한, 구성이 견실한 등)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나서 영화가 시작됐는데, 영화가 시작되자 내가 그 영화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이제 와서 보니 중요한 상징이었고, 감동했던 부분들은 이제 와서 보니 별 감흥이 없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어떤 소설은 재미가 없어 던져두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보니 충격적으로 좋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한 때 참 좋아했는데 다시 보니 시시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어떤 시기에 잠깐 거쳐간 뒤 거기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릴 때의 좋지 않은 경험만으로는 다시는 그것을 접하지 않는다면 인생에서 좋은 것을 누릴 기회를 그만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싫은 것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취향의 합인 사람을 볼 때 역시 당장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내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맞고 그 사람이 틀려서 내 보기에 그가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만 아직 만날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좋고 싫음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다 보면, 언젠가 인연이 닿아 좋은 관계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 끝 -

201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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