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행복

2018. 4. 26. 16:34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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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행복

- 이해인 수녀가 건네는 사랑의 인사 -

■ 이해인 지음

0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0 1945년 강원도 양구 생. 출생 사흘 만에 받은 세례명 ‘벨라뎃다’

0 20세에 수녀원에 입회해 받은 수도명 ‘클라우디아’

- 넓고 어진 바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뜻

0 수녀원의 해인 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

0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 졸, 서강대 대학원 중교학과

0 제 9회 새싹 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 대상, 제6회 부산 여성 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 문학상,

0 시집

첫 시집 <민들레 영토>이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은 위로>, <희망은 깨어 있는데> 등

0 산문집

<두레박>, <꽃 삽>,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고운 마음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 등

여는 글 : ‘순간 속의 영원’을 살며

<기다리는 행복>을 펴 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1부에서 5부까지의 글은 지난 6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것들을 중심으로 모은 것이고 6부의 글은 첫 서원하고 나서 1년간의 일기들을 단편적으로 뽑아 실은 것입니다.

20대 수녀의 풋풋함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아 수도 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뜻으로 오랜 세월 나의 충실한 ‘애인’이 되어준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 더 깊어지고, 사랑 더 애틋해지고, 기도 더 간절해지게’ 만들어준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도원, 바로 여기가 ‘민들레 영토’로 시작된 시의 산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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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기도의 못자리였습니다. 좁은 울타리를 넘어 이 세상의 다양한 이웃들과 시를 통해 사랑과 우정을 나눈 민들레의 영토는 가장 아름다운 ‘마법의 성’이기도 했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 못할 나의 초록빛 감사는 아마 죽어서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저를 키워주신 수도 공동체와 언니 수녀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 2017년 광안리에서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추천 글 : 은근하고도 절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글의 향기

이해인 수녀님의 글, 특히 시들은 단숨에 읽히는 것들입니다. 맺힌 데 없이 다 읽고 나면 일시적으로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수녀님의 시는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도 ‘아, 이거 뭐지?’ 하면서 다시 한 번 시의 전문을 읽게 하는 절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쉬운 듯하지만 은근하고 강렬한 메시지가 독자의 가슴을 ‘탁’ 치며 다가 올 때, 독자들은 ‘아, 이거구나!’ 하면서 시구를 다시 돌아봅니다.

매일 조금씩 /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 죽음을 잊고 살다가 // 누군가의 임종 소식에 접하면 / 그 깊이를 알지 못해도 가슴 속엔 오래도록 찬바람이 분다. // 두렵고도 / 고마운 말 내게 전하며 /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며 // 가을도 아닌데 / 가슴속엔 오래도록 / 찬바람이 분다.

- 이해인 <죽음을 잊고 살다가> 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암 투병하면서 쓰신 글을 통해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다’는 우주의 질서를 깨닫습니다. 수녀님의 글은 평이하고 아름답습니다. 다 읽고 나면 아릿하게 가슴속이 저며옴을 느낍니다. 이것이 곧 생의 본질이기 때문이며, 그러기에 어떻게 생을 살고 견뎌내야 하는 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제 곧 방대한 작품들을 수록한 아름답고 깊이 있는 수녀님의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이 세상을 향해 고고의 울음을 내겠지요. 그 아름다운 생명과 함께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도 다시 한 번 태어나셔서 새 생명의 빛나는 첫날을 맞이하시고, 향기로움 가득한 가을 들꽃으로 부활하시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 김정자 (시인, 문학평론가, 부산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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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일상의 행복

< 채우고 싶은 것들 >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 생각이 남아요 //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 사랑이 남아요 // 글을 쓰고 또 써도 / 글이 남아요 // 잠을 자고 또 자도 / 잠이 남아요 // 나머지는 모두 / 하늘나라에 가서 / 채우면 됩니다.

■ 일상의 길 위에서 - 세 편의 단상

0 까치집을 바라보며

바람 많이 부는 어느 날 미루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는 까치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집을 짓는 새처럼 나도 그렇게 한 채의 집을 지어야겠구나. 저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고 와 내게 전해주고 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얼기설기 잘도 엮어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하고도 아름다운 집을 꼭 지어야 겠구나.

문을 앞으로 낼까 옆으로 낼까 지붕은 어떻게 만들까 즐겁게 궁리하면서 하늘이 가까워 행복한 지혜의 둥지를 내 마음 깊은 곳에 틀어 더 많은 이웃을 초대해야겠구나 누구도 굶주리지 않게 나누어줄 따스하고 동그란 사랑의 알도 나는 더 많이 낳아야겠구나.

0 소나무 아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참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맑고 편안합니다. 태풍으로 불안했던 마음도 이내 안정을 찾습니다.

유별나지 않은 수수함,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없는 한결같음, 사계절 내내 푸른 모습 잃지 않는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권태를 모르는 그 의연함과 성실함을 사랑합니다. 수십 년을 솔숲에서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당신이 떨어트리는 솔방울을 줍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흔들릴 때는 솔방울을 꼭 쥐고 단단히 살자고 결심합니다.

새로운 감격으로 솔방울을 줍듯이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면서 뾰족한 솔잎처럼 예리한 직관력을 조금씩 키워가면서 행복합니다. 내 삶의 길에는 이제 송진 향기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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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햇살 아래 송홧가루 날리는 솔 숲길을 걸으며 황홀했던 시간들, 솔바람 타고 오는 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평범한 것에 감추어진 보화를 먼저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당신에게 어떻게 감사할까요? 늘 변함없이 곁에 있어 주십시오. 소나무여!

투병하면서 갈수록 약을 먹기 힘들어 하던 중 나는 나보다 더 많은 종류의 약을 복용하는 어느 선배 수녀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분의 약통을 구해 기도문까지 만들어 붙여드리기로 약속을 했기에 이 글을 적게 되었다.

0 약 먹을 때 하는 기도

언제부터인지 날마다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되면서 저는 약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모양과 빛깔도 다양한 약을 깊이 감상할 틈도 없이 습관적으로 먹곤 합니다. 약 안 먹는 사람들을 늘상 부러워하며 말했습니다.

“약을 안 먹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을 먹다가도 시시로 푸념하곤 했습니다.

‘이 약을 먹었다고 내 건강이 좋아지기는 하는 걸까?’

먹기도 전에 약이 주는 부작용을 상상하며 앞질러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아직 살아서 약을 먹을 수 있음을 새롭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과 치유의 하느님 제가 여러 종류의 약을 먹을 때마다 약을 만든 사람들을 기억하며 믿음과 신뢰 속에 감사하게 하소서.

제가 먹은 약들이 제 몸속에서 길을 잘 찾아 좋은 역할을 하게 도와주시고 저도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약이 되게 하소서.

■ 기차를 타면

기차 안에서 세상을 보면 / 늘 가슴이 두근거려요 // 차창 밖으로 산과 하늘이 / 언덕과 길들이 지나가듯이 // 우리의 삶도 지나가는 것임을 / 길다란 기차는 / 연기를 뿜으며 길게 말하지요 // 행복과 사랑 / 근심과 걱정 / 미움과 분노 // 모두 다 지나가는 것이니 / 마음을 비우라고 큰 소리로 기적을 울립니다 // - 이해 생략, 이해인 ,<기차 안에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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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빨라진 지금의 기차도 좋지만, 한없이 느리게 달리던 예전의 기차도 나는 좋았다. 한국전쟁 피난 시절 잠시 부산에서 살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탄일, 방학이면 먼 곳에서 기차 타고 우리 집에 기차타고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척들을 마냥 설레며 기다리던 일. 옆 자리에 앉게 된 인연으로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지인들의 모습을 새롭게 떠올려 본다. 기차 안에서 커피나 떡을 나누어 먹다가 금방 가까운 사이가 된 지인도 있고, 몇 번 연락을 주고 받다가 지금은 소식이 뜸해진 이들도 있다.

내가 팔을 다쳐 깁스하고 다닐 적에 가방 속에 있던 멋진 보호대를 선뜻 산물로 전해 준 미지의 승객도 있다.

기차 안에서 조용힌 눈 감고 기도하면 기도 여행이 되고, 좋은 책을 읽으면 독서 여행이 되며, 시상이 떠올라 글을 쓰면 집필 여행도 된다. 차창으로 보이는 산과 들의 풍경을 감상하면 자연 여행이 되고 동행자와 조용히 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 여행이 되며, 마음의 길을 따라 홀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명상 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 사랑이 가득한 ‘언니 수첩’

얼마 전 짐 정리를 하다가 나의 언니 수녀님의 ‘좋은 말씀 수첩’을 다시 발견했다. 수첩에 적혀 있는 글 중 몇 가지를 옮겨 본다.

‘인간은 매일 먹고 잠자는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굶주림과 졸음이 재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신적인 것에 굶주림이 없다면 그 생활에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다.’ - 파스칼 (1623 ~ 1662)

‘현재 이 순간을 떠나서는 우리라는 것도 없고 세계도 인생도 없다. 이 현재의 순간을 놓쳐버릴 때 그것은 바로 인생을 놓쳐버린 것이 된다. 그리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것을 놓쳐버린 것이다.’

- 성 어거스틴 (354 ~ 430)

‘선을 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려면 보다 더 노력이 필요하다.’ - 톨스토이 (1828 ~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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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사랑하는 나의 벨라뎃다(나의 세례병)에게 여기 내 마음을 담아 보내며. 1966 년 8월 15일 언니’라고 적힌 빛바랜 자줏빛 수첩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이 수첩을 선물 받은 지 벌써 50년이 넘었다. 이 낡은 수첩은 이제 나에게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몇 가지 물품을 전시해야 한다면 이것을 꼭 넣어 달라고 미리 부탁까지 해두었다.

‘바다새’라는 별칭을 가진 우리 동네 이웃은 종종 언니 수녀님이 살고 계신 경남 밀양의 가르멜 수녀원을 오가며 심부름을 도와 준다. 언니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신 몫으로 수녀원에서 받은 과자나 과일(주로 오렌지)을 안 먹고 모아 두었다가 동생인 나에게 보내 주곤 한다. 평생 밖을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도원에 계시는 언니에게 나는 종종 예쁜 카드나 문구류를 모았다가 선물로 보내는데, 언니는 무언가를 보답하고 싶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런 극기의 선물을 보내는 듯하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꽃다운 나이 스물셋에 입회하여 어느 덧 80 대가 되신 언니는 몸이 약해서 자주 쉬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하는데 언니가 극기한 과일을 받아먹을 적마다 마음이 찡해 온다.

이제 언니는 수도회에 입회한지 60년이 넘었고 나는 50년이 됐으니 어느 새 반세기가 지났다. 이렇게 오랜 수도 생활을 해 오면서도 희생, 극기, 절제, 인내를 잘 수행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읽는 언니의 옛 수첩이 나에게 정겹게 속삭이는 것 같다. ‘초심을 회복하세요!’, ‘사랑의 첫 열정을 지니고 다시 시작하세요!’, ‘작은 희생을 즐기세요!’라고

사랑이란 희생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께 사랑을 증명하는데 꽃을 던지는 것, 즉 조그마한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저는 가시덤불 속에서 꽃(희생)을 따야 한다더라도 노래할 것이며 가시가 길고 따가우면 그럴수록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 데레사 말가리다(이인숙) 언니 수녀님께서는 2017년 11월 8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선종하셨습니다.

■ 아픈 날의 일기

‘새해의 들뜸은 1월에 양보하고 / 봄 입김의 설렘은 3월에 넘겨 주고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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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의 2월을 보면, 토담의 겸손이 생각난다 / 잎도 꽃도 녹음도 단풍도 없이/ 입춘과 소한으로 추위에 떠는 가난한 2월 / 내가 껴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달이다 / 2월은 나머지 열 달을 살게 하는 / 내공이 자라는 달이다‘

해마다 2월이 오면 수필가 류선진 님이 쓴 이 글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내 몸속에 들어간 독한 약들이 /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동안 나는 아프고 / 내 영혼 속에 들어간 어떤 말들이 /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동안 나는 슬프고 / 아프다고 말해도 정성껏 듣지 않고 / 그저 건성으로 위로하는 이들 때문에 / 나는 한 번 더 아프고 / 아프면서 배우는 눈물의 시간들 / 그래서 인생은 고통의 학교라고 했나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 흰 종이에 / 손을 베었다 // 종이가 나의 손을 /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도 / 피가 나다니 / 쓰라리다니 //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 다짐해 본다 // 세상에 그 무엇도 / 실상 가벼운 것은 없다고 /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 가벼운 말들이 / 남에게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누군가 <종이에 손을 베고> 라는 시를 인터넷에 올리니 삽시간에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 오늘은 나에게까지 전송되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운 마음.

■ 충실히 살다 보면 참 기쁨이 피어나죠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어느 날 수녀원 복도에서 만난 노수녀님이 대뜸 나에게 “수녀 잘 있지?”하시기에 “내 그럼요”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아직 젊은 후배 수녀가 걱정스러우셨는지 “잠시 나 좀 보자고” 하시며 나를 조서실 옆 방으로 데려 가셨다.

‘기도는 경문을 외움에 있지 않고 지향하는 사랑에 있다면 나의 숨 쉼과 맥박이 뛰는 순간마다. 당신 사랑으로 치성하기를 원하오니 하루의 맥박이 뜀과 숨 쉼이 합 192,000 화살기도로 치성케 하소서’ 라고 기도 수첩에 적어두셨던 분, 미소가 아름답고 매사에 섬세하기로 이름난 선배 수녀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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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딴 생각하지 말고 오래오래 충실하게 살다보면 어느 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내적인 기쁨과 더불어 수도 생활의 진미를 느끼게 돼.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거든.’

선종하신 지 벌써 이십 년이 된 이갑진 에와 수녀님이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불쑥 던지신 그 한마디는 오랜 세월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누가 날 알아주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불안이나 노년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자유로우며 남에게 잊히는 것에서도 원망보다는 감사를 배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 수녀님은 힘주어 말씀 하셨다.

폐암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신뢰, 깊은 신앙을 잃지 않으신 수녀님은 마지막에 당신의 두 눈을 기증할 수 있음을 매우 행복해 하시며 안약으로 열심히 눈을 닦으시던 모습도 눈물겨웠다.

덕의 길에선 아직도 멀리 있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하느님 안에서의 자유, 인내해 온 세월이 승리, 신앙이 가르쳐준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나도 어느 날 후배 수녀들에게 겸손하고도 당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길 기도한다.

‘일단 끝까지 오래 살아보세요. 그러면 참 기쁨을 맛보게 된다니까요!’라고.

■ 또다시 새봄을 맞으며

2017년 새봄을 나는 연피정으로 시작하였다. 4차 연피정자 일흔여섯 명의 수녀 중 나는 서열이 일곱 번째였다. 이들 중에는 내가 젊은 시절 공을 많이 들여 수녀원에 입회시킨 후배들도 있고, 지원자 시절 잠시 지도를 맡았던 수녀들도 있고, 거동이 불편하여 겨우겨우 걸어 다니는 선배님이나 환자 수녀들도 있다. 침묵피정이라 서로 말은 할 수 없으나 볼 적마다 눈으로 인사를 나누는데 마음이 찡해오곤 했다. 과정을 인도해 준 내 조카뻘의 젊은 사제는 우리더러 자꾸만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사랑하 는 법을 배우라고 강조한다. 한참 왜곡된 믿음, 우리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 용어 정리부터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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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 담화방 그룹 일곱 팀끼리 겨룬 설날 윷놀이 대회에서 내가 속한 기쁨 담화방이 3등을 하고 응원도 잘했다. 하여 별도로 특별상까지 받았다.

상으로 받은 미술관 관람 대신 우리는 평생 밖에 못 나오시는 가르멜 수녀님들을 찾아 ‘이른 봄나들이’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평소엔 엄숙하고 경건하기 그지없는 수녀들이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한바탕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유쾌한 웃음꽃이 피어나는지! 수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쾌활함이고 따뜻한 유머인 것을 살아갈수록 알아듣겠다. 봉쇄 수도원의 수도자인 가르멜 수녀원의 언니도 늘 말했다. ‘우리가 한 바탕 연극하고 노는 걸 보면 아마 다들 엄청 놀랄 것’‘이라고!

오늘은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책에 대한 추천의 글을 썼다. 거의 반세기를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다 어느 날 편지 한 장 남겨놓고 본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그리스도왕시녀회(평신도 재속회)의 두 사람. 이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윤세영 감독의 부탁으로 내가 내레이션을 맡았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기적으로만 살기에는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봉사하고 사랑해야 하는가를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 알게 되는 기쁨! 그러나 이 기쁨은 그들처럼 살고 있지 못한 나를 미안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이 부끄러움을 딛고 다시 사랑하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면 이것이야말로 희망적 선물!

수녀원의 진돗개인 해미와 나는 별로 친하진 않지만, 그는 요즘 부쩍 내 글방 앞을 어슬렁거린다. 지난여름 새끼를 네 마리나 낳고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내가 먹을 우유나 불가리스를 종종 주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때로는 새끼들까지 거느리고 오는데 다른 개들이 먹으려고 할 땐 난리를 치다가 도 제 새끼들이 먹는 것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기는 바닥에 흘린 것만 아주 조금 핥아먹는 걸 보니 무척 감동이 된다. 어찌 그리 타고난 모성적 배려를 할 수 있는 건지!

■ 아름다운 순간들

아침에 일이 있어 병실에 가니 귀가 잘 안 들리는 팔십 대 선배 수녀님 두 분이 마주 앉아 서로의 말을 잘 못 해석해 동문서답하면서도 계속 웃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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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모습이 어찌나 정겨운지! 잠시 그 자리에서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왔다.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하는 순간들이 모여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검은 수도복이 하도 닳아서 여러 군데 떨어진 것을 그대로 입고 다니니 옆의 수녀들이 제발 한 벌 청해서 새로 만든 것을 입고 다니라고 성화여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새 옷을 맞추어 입게 되었다. 헌 옷은 헌 옷대로 정이 들어서 좋고, 새 옷은 새 옷대로 설빔을 차려 입는 것 같은 설렘과 기쁨이 있어 좋다. 새 옷을 입으니 자꾸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누가 묻지도 않는데 “저 이번에 새 수도복을 받았거든요”라고 지나가는 수녀들에게 보여주니 축하 한다고, 이젠 좀 더 얌전하게 옷을 입으라며 웃는다.

점심 식사 후 밖으로 나오는데 그만 바닥에 넘어져서 큰일 날 뻔하였다. 넘어지는 순간에도 정신을 바짝 차리니 왼손 등에 상처가 난 것 외엔 다친 데가 없어 다행이었다. 앞에서 걸어오던 수녀가 놀라서 달려왔고 나는 좀 부끄럽기도 했으나 웃으며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요? 그러니까 하늘을 보려면 땅부터 잘 짚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니까요. 넘어질 때 옆에 아무도 없으면 외롭던데 오늘은 수녀님이 와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라고 .

수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우리 지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제작자의 경력과 명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지만 비싸다고 꼭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1000만 원짜리 악기가 2000만 원짜리 보다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그런데 소리가 더 우수한 1000만 원짜리 악기와 2000만 원짜리 악기가 삼십년 후에 만났다고 합시다 거의 100퍼센트 비싼 악기가 소리를 잘 냅니다. 말 그대로 비싼 값을 합니다. 비싼 악기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매일매일 그 가치에 맞는 대우를 해주며 길을 들이고 공을 들인 것이 나중에 그 차이를 가져 옵니다. 사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주자가 자기 악기에 대해 어떤 믿음을 두고 연주했느냐.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악기의 수준을 바꾸어 놓습니다. 영혼 없는 악기도 이렇게 받는 대우와 믿음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영혼의 존재인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은 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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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가 거깁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연주되었느냐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품어내는 소리는 많이 달라집니다.

안드레아 토르니엘리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집인 <신의 이름은 자비입니다>라는 책에 인용된 어느 사제의 기도를 읽다가 마음이 뜨거워져서 울었다. ‘주님 제가 너무 많이 용서해버린 것을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나쁜 표양을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잖아요!’ 나도 이런 기도를 바칠 수 있길 바란다. (* 표양(表樣) : 겉으로 나타나는 표정이나 모양)

■ 나를 울린 분홍빛 타월

해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더 곱게 피어나기 위해 몸살을 앓으며 잔기침하는 꽃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더 가까이 들려온다.

암 수술을 받은 이후 구체적으로 투병 일기나 에세이를 써보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아왔다. 나는 모든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할 능력도 안 되는데다 수도자로서 자신의 고통을 객관화시켜야 하고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평소의 생각이 흔들릴 것 같아서 거절해오곤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되고 울고 싶으면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울어도 된다고 지인들은 권유했지만 나는 자신의 병 때문에 울지 않는 것을 늘 자랑삼아 이야기해 오곤 하였다. 그런데 항암 치료를 받던 어느 날인가 내가 서울 성모병원에 갈 때면 들르는 분원(경기 의왕시 성라자로 마을 수녀원)에서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내가 머무는 방의 서랍장을 열다가 나는 분홍빛 커다란 타월을 보고 나서였다. 이건 전혀 예기치 않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2008년 여름 갑자기 입원하면서 이것저것 나름대로 준비해 갔지만 미비한 것들이 많았고, 나는 병원 가까운 곳에 살며 종종 간식도 날라다 주곤 하던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에게 큰 타월을 하나 갖다 달라고 했다. 빌린 것이었기에 언젠가 돌려주려고 임시 숙소에 보관해 왔던 타월을 그제야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그 타월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대신 선물로 달라고 해서 부산까지 들고 내려왔다.

큰 수술을 하고 나서 수혈은 했으나 계속 열이 안 떨어져 몹시 괴로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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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갑자기 배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을 때, 문병 온 이들이 위로 삼아 했던 말이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불면의 긴 밤을 보내며 문득 고독했던 순간에 고운 줄무늬의 분홍빛 타월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요즘도 몸이 안 좋거나 몸살기가 있을 때면 그 타월을 꺼내 목에도 두르고 가슴이나 배 위에 덮으며 가만히 웃어본다. 그러면 ‘치유의 마법사’라도 된 듯 그는 나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 사랑의 무게를 동백꽃처럼 - 제주도에서

제주도는 올 적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준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아름답지만 나는 일정상 주로 겨울의 제주를 보게 되는 데 인적이 비교적 드문 겨울 바다가 좋다. 이번엔 피정자들과 함께 한담해안산책로를 걸었는데 바람도 없고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 마음껏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큰 바위나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해녀의 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니 전복이나 성게를 따러 물에 들어가는 해녀들이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문득 서정주의 <시론>이란 시를 떠올리며 제일 좋은 건 따지 않고 남겨 두는 그 귀한 마음, 비밀스러운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나도 차마 따지 못하고 남겨둔 시의 전복이 살아갈수록 더 많아서 행복한 게 아닐까.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 두어라.

다 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 서정주, <시론> 전문

<동백꽃 연가> - 이해인

오늘은 그냥 동백꽃을 바라보세요 /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 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 하얀 빛으로 피어나는 / 내 가슴속의 언어들이 모두가 사랑임을 당신은 아시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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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더 하겠어요 / 오늘은 더욱 새롭게 / 당신이 보고 싶을 뿐 /

당신에게 고마울 뿐 / 세월이 가도 사랑은 새로워 //

내가 먼저 동백꽃이 될 수밖에 없는 / 아름다운 섬에서 /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 먼 데서도 가까운 당신의 향기로 살아 있고 싶어서 /

그리움의 꽃술로 / 기도하고 싶어서 - 전문 -

제주 ‘카멜리아힐’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동백꽃을 바라보며 내가 최근에 쓴 <동백꽃 연가>를 읊어본다. 하얀빛 분홍빛 동백도 아름답지만 역시 붉은 빛이 가장 동백꽃의 매력을 느끼게 해 준다고, 피어있는 꽃 못지않게 떨어진 꽃들도 아름답게 보인다며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일가친척처럼 여겨지는 정겹고 따뜻한 마음, 그들의 아픔과 고민이 다 나의 아픔과 고민으로 생각되는 연민의 마음, 그래서 내 발걸음이 더 무겁고 어깨가 아프더라도 나는 또 기쁘게 하루하루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사랑은 무거운 것임을 새롭게 그리고 가볍게 받아들이면서 한송이 동백꽃처럼 피고 지리라.

제2부 오늘의 행복

■ 사랑의 길 위에서

너도 나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남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많이 말하지만 진정 하루를 사랑으로 채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삶이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라고 표현한 아베 피에르 신부님의 말씀을 자주 기억하면서 나는 나름의 지향을 지니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랑과 배려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

1. 언제나 고운 말을 쓰는 사랑의 노력

1) 아무리 화가 나도 극단적인 표현이나 막말 하지 않기.

2) 비교급의 말을 하지 않고 중용으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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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푸념과 한탄으로 일관된 불평의 말 삼가.

4) 긍정적인 말 사용.

5) 위협적이거나 명령 투가 아닌 겸양의 말.

6) 험담 않기.

7) 경조사(축하, 위로 등)의 말을 적절하게 하기.

8) 비아냥거림이 없는 유머.

9) 친한 사람일수록 예의 갖추기.

10) 속단, 추정하는 경솔한 말 하지 않기

2. 누구에게나 밝은 표정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노력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생각 많이 하고, 좋은 책도 많이 읽고, 마음을 다스리는 기도 많이 하기

3. 다른 이에게서 부탁받은 일들을 짜증내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심부름하는 사랑의 노력

4. 그날그날 일어나는 좋은 일도 궂은 일도 다 고맙게 받아 안으려는 사랑 의 노력

< 길 위에서> - 이해인

오늘 하루 / 나에게 일어나는 / 모든 일들이 / 없어서는 아니 될 / 하나의 / 길이 된다 //

내게 잠시 / 환한 불 밝혀주는 / 사랑의 말들도 /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

일을 하다 겪게 되는 / 사소한 갈등과 고민 /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

살아갈수록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도 //

내가 되기 위해 / 꼭 필요한 것이라고 / 오늘도 몇 번이고 / 고개를 끄덕이면서 / 빛을 그리워하는 나 //

어두울수록 / 눈물 날수록 / 나는 더 / 걸음을 빨리 한다

■ 나를 깨우는 글씨

사람들은 신영복 선생님이 적어주신 ‘평상심(平常心)’이란 단어나, <논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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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이란 글귀를 좋아한다. 언젠가 전남 보성군에 있는 대원사에 갔을 적에 현장 스님을 통해 받은 성철 스님의 <공부 노트> 몇 구절은 우리 수녀들이 가장 자주 베껴가는 구절이다.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용맹 가운데 가자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 성철 스님 <공부 노트>중에서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막막해지다가도 자꾸만 되풀이해 묵상하다 보면 ‘나도 노력하면 이렇게 살 수 있을 거야’하는 생각으로 새 힘과 용기가 솟는다.

어쩌다 초심을 잃고 수도 정신이 흐려지는 나 자신을 느낄 때, 편리주의에 길들여져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인간관계에서 수도자다운 겸손과 인내가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성철 스님의 이 말씀은 나를 깨우치는 죽비가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모아둔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내가 특별히 아끼는 두 가지 글귀 선물이 있다. 하나는 법정 스님께서 어느 날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주신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인도 콜카타에 마더 데레사를 뵈러 갔을 적에 받은 뜻깊은 영문 글판이다. 두 분 다 세상을 떠나신 지금 그 글귀는 나에게 새로운 기쁨과 감동을 준다.

‘날마다 새롭게! 구름 수녀님에게 수류산방에서 법정’이라고 적혀 있는 한지는 1990년대 초 어느 날 받은 건데 시간이 지나 누렇게 빛이 바랬지만 그 내용은 날마다 새로운 빛으로 살아온다.

날마다 새롭게 선한 마음 길들이기, 날마다 새롭게 감사하기, 날마다 새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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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기뻐하기, 날마다 새롭게 이웃을 배려하기. 날마다 새롭게 고운 말 쓰기, 등 나는 스님이 적어주신 ‘날마다 새롭게’에 그때그때 필요한 항목을 덧붙여 일상에 정진하는 수도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어쩜 다른 이들에게도 많이 써 주신 내용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늘 각별한 스님의 글씨 선물에 오늘도 새롭게 감사한다.

■ 시간에게 쓰는 편지

흰옷 입은 사제처럼 시간은 새벽마다 신의 이름으로 우주를 축성하네. 오래되어도 처음 본 듯 새로운 시간의 얼굴. 그는 가기도 하지만 오는 것임을 나는 다시 생각해 보네. 오늘도 그 안에 새로이 태어나네.

내가 깨어 있을 때만 시간은 내게 와서 빛나는 소금이 된다. 염전에서 몇 차례의 수련을 끝내고 이제는 환히 웃는 하얀 결정체, 내가 깨어 있을 때만 그는 내게 와서 꼭 필요한 소금이 된다.

- 이해인 <시간의 얼굴> 중에서

시간은 생명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또 한 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알게 해 주는 당신이 있어 하루하루를 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열정과 희망을 재촉하는 생명의 힘. 죽은 사람에겐 시간이 멈추어져 있고 살아 있는 이들에겐 시간도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을 알게 해주신 당신, 고맙습니다.

시간은 선물입니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포장을 풀어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기쁨,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사이에서 나는 늘 가슴이 뜁니다.

시간은 친구입니다.

내게 슬픈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울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함께 웃어주며 자랑할 일이 있을 때는 축하도 해주면서 멋진 벗이 되어준 EDTLS이 있어 든든했습니다.

시간은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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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은 말로 가르쳐준 지식보다 당신이 침묵 속에 일깨워준 지혜가 더 요긴하게 쓰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좋은 일을 통해서도 나쁜 일을 통해서도 배울 게 있음을 시시로 깨우쳐 주었지요.

시간은 의사입니다.

어떤 일로 실패를 겪어 좌절하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시련으로 죽을 것처럼 힘들 때에도 시간은 위로의 약을 발라 주고 상처 난 자리에 붕대를 감아주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는 처방을 내려주었습니다.

시간은 여행길의 안내자입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고 꿈을 잃었을 때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어 주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찬찬히 일러주는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 주었지요.

시간은 만남과 이별의 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으로 나올 때 문을 열어 주었듯이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죽음을 향해 문을 열어주고 닫아줄 침묵의 성자! 당신과 만날 수가 없음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그날이 언제가 되든 기쁘게 순명할 것입니다.

■ 내 일상 언어의 도움 메뉴판

1. 어떤 실수로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사과를 해야 할 때는

용서하세요. 죄송합니다. 어쩌지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등의 말을 미루지 않고 진심을 담아서

2. 어떤 일로 크게 상심하거나 슬퍼하는 이들을 만났을 때

제가 무심해서 서운 하셨지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 함을 느껴요.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어요. 등

3. 상대에게 좋은 일이 생겨서 축하나 칭찬의 말을 해야 할 때

마음껏 축하를 받으세요. 저도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등

4. 누군가가 어려운 일에 대한 상담을 요청해 올 때

저도 부족하지만 제 경험을 바탕 삼아 도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지혜를 모아보기로 해요.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을 찾아 볼게요. 하고 안심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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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느 모임이나 새해 등에 덕담을 요청해 올 때

언제 어디서나 서로서로 복을 빌어주고 복을 짓고 나누는 우리가 되었으 면 합니다. 선한 마음을 키우고 밝은 웃음 간직하고 고운 말씨 갈고 닦는 새날 새 삶을 만들어 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6. 어떤 모임에서 사람들이 뒷담화를 멈추지 않음을 발견할 때

이제 그만하고 우리 다른 얘기를 하기로 하죠.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 가 나를 험담한다고 상상하면 마음이 안 좋잖아요. 등

7. 악플이나 뒷담화 혹은 헛소문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일단 제가 원인 제공을 했으니 유감이군요.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참고하고 더 자중할게요.

8. 다른 이가 나에게 몸과 마음의 아픔을 호소해 올 때

제가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 어쩌지요? 지금은 힘들겠지만 모든 것은 지 나가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아요.

9. 나의 몸과 마음의 아픔을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을 때

잘 버티려고 하는 데도 잘 안 되네요. 지금이야말로 간절한 기도가 필요 한 것 같아요. 몸과 맘의 아픔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등

10. 술, 게임, 도박 중독에 빠져 고민하는 이가 도움을 청할 때

너무 자책하지 말고 거기서 빠져 나오려는 노력을 구체적으로 해보세요. 등 훈계조의 말을 피하고 이해하는 쪽으로 대화를 풀어 나가기

■ 잘 보고 잘 듣고 잘 말하는 이가 되도록!

다가오는 새해에 나는 좀 더 의미 있게 시간을 읽고 사람을 읽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성서를 읽듯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주위의 모든 것을 읽는 생활 속의 거룩한 독서를 한다고 할까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챈 성모님처럼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나에게 오는 시간 속의 상황을 소중히 살피고 내가 만나는 시간 속의 사람들을 자세히 ‘잘 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경박한 호기심이 아니라 애정 어린 관찰을 통해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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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민감하게 파악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잘 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안 되려면 늘 마음으로부터 깨어 있는 노력을 해야지요. 날마다 새롭게 이기심에 눈을 감고 이타심에 눈을 뜨는 사란의 주인공이 되길 희망합니다.

보는 것 못지않게 듣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땐 상대방이 맘에 들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적절히 맞장구쳐주고 함부로 속단하거나 무안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축복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 자신의 우매함으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온 지난날의 잘못을 기워 갚는 뜻으로라도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는’(야고보 1.19) 성서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심하게 다른 사람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는지요. 그로 인해 마음의 평화가 깨진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을 향한 순례의 여정에서 조금씩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하며 살겠다는 염원을 지니는 것, 이 사랑 안에서 잘 보고 잘 듣고 잘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인의 길을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 속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새해 새 삶을 향해 희망찬 발걸음으로 전진합시다.

■ 새해 결심 세 가지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 속에는 ‘나도 올 한해를 복스럽고 덕스럽게 살겠으니 당신도 그러하길 바랍니다’라는 진실한 소망도 담겨 잇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1. 날마다 새롭게 마음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여 온유한 빛이 내면에서 흘러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일로 화가 날 때에도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일단 한 발 물러서서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성모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기도하렵니다.

2. 날마다 새롭게 말씨를 부드럽게 사용하여 듣는 이에게 기쁨이 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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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겠습니다. 먼저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과 절제의 덕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말은 화를 가라 앉힌다’는 성서의 말씀을 수시로 기억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이 아닌 부드러운 말로 일관하는 사랑의 승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3. 날마다 새롭게 겸손의 덕을 실습하는 수련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된 겸손이란 무조건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못났다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충실히 지키며 어떤 경우에도 남을 무시하지 않는 따뜻함이라 여겨집니다.

떠벌리거나 자랑하지 않고 숨길 줄 아는 인품의 향기가 풍길 때 우리는 이런 사람을 겸손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

사랑과 용서와 기도의 일을 / 조금씩 미루는 동안 / 세월은 저만큼 비켜가고 / 어느새 죽음이 성큼 다가옴을 항시 기억하게 하십시오 // (……)

- 이해인 <다시 시작하는 기쁨으로> 중에서

■ 좋은 환자 되기 위한 십계명

내 나름대로 좋은 환자가 되기 위한 몇 가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함으로써 ‘명랑투병’의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은 소망을 담아 생활 수첩에 적어둔 열 가지를 살짝 공개하고 싶네요.

1. 아프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푸념과 불평을 자제하고 오히려 감사의 표현을 자주 한다.

2. 건강한 사람들이 문병을 와서 덕담보다 오히려 환자를 의기소침하게 만들 거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내색하지 않기

3. 반복되는 여러 검사에 힘들 때는 낫기 위한 인내의 과정임을 재인식

4. 통증이 반복될 때는 살아 있기에 아픔을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

5. 음식이 먹기 싫을 때는 그래도 약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

6. 먼 길을 달려갔는데도 주치의나 간호사가 건성으로 대하는 것 같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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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앉아 아픈 사람 수십 명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7. 지인들이 퍼다 주는 다양한 건강 정보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일단은 의사 의 지시부터 따르겠다는 태도가 중요

8. 아픈 것을 핑계로 옆의 누군가가 무엇이든 해주기를 바라며 의존하는 자 신이 되지 않게 정신 추스르기

9. 자꾸만 죽음을 떠올리며 우울해지는 순간에는 음악, 거울보고 웃기, 산 책 등으로 내면 충전시키기

10. 약을 먹기 싫을 때는 희망을 가지고 경건한 예식을 치르듯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먹기, 약을 처방해준 의료진을 신뢰하는 마음도 새롭게 하면서

■ 꽃 시간을 만들고 꽃 사람을 만나며

몇 년 전 강의하러 뉴질랜드에 갔다가 이름난 관광지를 차로 가는데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뿐 어디서도 사람을 구경할 수가 없어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워도 자연을 보고 감탄할 줄 아는 인간이 있어야 좋은 거네!”라고 외친 일이 있다. 봄이 오면 많은 사람이 일부러 꽃구경하러 가지만 꽃을 보러 가는 사람들 또한 꽃이라는 생각을 새롭게 하는 요즘이다. 최근에 내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지금 나와 한 집안에 사는 이들, 이렇게 저렇게 인연을 맺고 사는 지인들, 내가 사는 부산 광안리 수녀원으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모두 한 송이 꽃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빛깔과 향기가 각각 다르고 더러는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꽃님들도 없지 않지만 내가 꽃밭에서 ‘자연 꽃’들을 보며 감탄하는 이상으로 ‘사람 꽃’에서 고유의 장점을 찾아내곤 한다.

우리가 서로를 잘 들어주고 잘 보살피는 노력 가운데 진정한 힐링(치유)의 기적도 일어나는 것일 거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농담을 건넬 줄 아는 100세의 원로 수녀님 눈빛에도, 1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 수녀님의 앞치마에도, 내가 이름 붙인 병실 식당 한 모서리의 ‘누구라도 코너’에서 차를 마시는 젊은 수녀님의 밝은 목소리에도, 며칠 전에 입회한 일곱 지원자의 풋풋한 모습에도 고운 봄이 웃고 있다. 나도 이분들에게 다가가 새롭게 꽃이 되고 봄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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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의 꽃을 가꾸는 열 가지 비결

진정 좋은 만남이란, 참된 우정이란 어떤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독자들의 카카오톡에서 메시지가 들어옵니다.

‘답답해서 자문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믿지 못하는 저의 모습들로 하루하루가 힘들어서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중하게 생각했던 친구도 믿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발견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문자를 보낸 젊은이도 있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지만 대인관계가 힘들어 당장 사표를 내고 싶다고 호소하는 내용을 적어 보낸 이도 있습니다. 요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움말을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습니다.

대인관계의 비결 열 가지를 단편적으로 적어볼게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냥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1. 처음 만나는 이들에겐 호기심 가득한 태도로 이것저것 따져 묻지 않습니 다.(종교나 개인사정에 대해서는 더욱)

2. 평소에 잘 지내던 이가 나로 인해 서운해 하거나 마음 상한 것을 알아 차 렸을 적엔 미루지 않고 즉시 용서를 청합니다. 입에 발린 형식적인 사과 가 아니라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3. 아끼던 친구가 나를 오해하여 화를 내고 내 쪽에선 억울하여 같이 화를 내고 싶을 때라도 그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설명하는 인내를 보이기

4. 대화 중 상대가 어떤 사실을 틀리게 말하고 그것을 자꾸만 우기더라도 그 자리에서 무안을 주지 않으며

5. 평소에도 자주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고 장점을 칭찬해 주며 사소한 일일 지라도 그가 원하는 것을 잘 기억했다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6. 대화를 이어갈 적엔 늘 겸손한 말씨로, 상대방의 말엔 맞장구를 쳐가며...

7. 친지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적에 축하의 말을 전하기

8. 상대가 자신의 아프고 힘든 얘기를 할 때 건성으로 듣지 않기

9. 친한 관계일수록 함부로 대하거나 말하지 않고 존경과 진심으로 행동합니 다. 특히 상대방의 약점을 말하지 않습니다.

10. 누구를 만나든지 험담하거나 흉을 보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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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꽃도 저마다의 꽃술이 있다

나는 꽃잎 안에 있는 꽃술의 존재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부쩍 꽃술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정원에 나가서 서툰 솜씨로나마 여러 종류의 꽃을 찾아 꽃 술 사진을 찍고 있다.

필리핀에서 공부하던 시절, 식물학 시간에 꽃술을 그려 담당 교수님께 정교하고 아름답게 잘 그렸다는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특별히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라기보다 꽃술의 신비한 모양에 매료되어 정성을 다하였기 때문이리라.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어 내가 그린 도감을 달라고 청했으나 교수님은 견본으로 쓰겠다며 다시 돌려주질 않았다.

- 접시꽃, 나리꽃 : 꽃술 모양이 밖으로 돌출되어 화려해 보임

- 치자꽃, 민들레꽃 :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어 안정감이 있음

- 영산홍이나 옥잠화 : 꽃술이 가느다란 것은 섬세해 보임

- 초롱꽃, 둥굴레꽃 :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꽃은 겸손해 보이고 - 백일홍, 해바라기 : 꽃술이 원을 그리며 촘촘히 붙어 있어서 친밀하고 다 정하게 보이고

- 얼레지나, 달개비꽃(닭의장풀) : 꽃잎보가 꽃술이 더 매혹적이다.

날마다 꽃밭에 나가 꽃술을 보며 묵상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꽃들 안에 감추어진 꽃술을 향해 가다가 꿀을 먹는 벌꿀을 만나기도 하고 꽃들의 주변을 맴도는 나비나 새를 만나는 이야기도 하면서 산책하니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이들의 겉모습이 하나의 꽃이라면 겉만 보고 잘 알 수 없는 그들의 내면이 꽃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참된 우정과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적이 많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너는 꽃이니? / 나도 꽃이야 / 너는 나랑 / 다르게 생겼지만 / 참 예쁘구나 / 나비나 꿀벌이 오면 / 너도 기쁘니? / 바람이 불면 / 무슨 생각하니? /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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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 별 뜨면 / 무슨 생각하니? / 나하고 친구하자 / 서로의 다름도 기뻐하면서 / 살아 있는 모든 날을 / 더 예쁘게 사랑하자. 우리

- 이해인. <꽃이 되는 기쁨> 전문

3부 고해소에서

■ 아름다운 마무리

며칠 간 먼 나라에 다녀왔더니 그동안 여독이 많이 쌓여서인지 잠이 계속 쏟아진다.

‘ 잠자는 이들은 죽은 이들과 어쩌면 그렇게 서로 같은지! 죽음은 그 날짜가 알려지지 않았도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한 구절도 떠올리면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긴 잠을 자는 것이 곧 죽음임을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새롭게 경탄하곤 한다.

요즘은 눈만 뜨면 안으로 밖으로 수많은 부음을 듣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가 무덤 속에 있는 것이 믿기질 않아 울먹이는 순간도 부쩍 많아졌다. 여러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서 나 역시 이것저것 물건 정리를 해보고 가상 유언장도 적어보며 아직은 오지 않은 ‘상상 속의 죽음’으로 이별 연습도 미리해 보지만 어떤 모습으로 나의 삶이 마무리 될지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작가로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무어라고 답할까? 나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진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동화를 꼭 한 편 쓰고 싶기는 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를 많이 쓴 고(故) 정채봉 님의 <멀리 가는 향기>니 정호승 시인의 <항아리>, 그리고 요즘 부쩍 많이 읽히는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동화를 읽으면 얼마나 삶이 더 아름다운지! 얼마나 마음이 더 애틋하고 따스해지는지! 생생하고 감동적인 동화를 빚어내는 이들에게 늘 부러움을 느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스텐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을 나는 늘 기억하고 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게 인생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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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라는 그 말을.

곧 한가위를 앞두고 내일은 내 어머니 기일이기도 하여 형제들과 같이 산소에 가서 삶의 유한성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오리라. 어느 날의 내 죽음도 미리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편 노래를 부르리라.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 힘을 빼는 겸손함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가 힘을 빼는 일인 것 같다. 최근에는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매번 힘이 들어가 나도 모르게 몸이 뻣뻣해지니 제발 힘 좀 빼고 편하게 있으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음반을 내기 위한 시 낭송 작업을 할 때,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내레이션 작업을 할 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정성껏 잘 읽는다고 해도 좀 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충고를 연출자로부터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눈을 들어 나날이 크는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바람 속에 미소를 날리는 초여름의 꽃들을 바라본다. 저들은 어찌 그리 부드럽고 유연한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고도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 있는지!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육체적 정신적 힘을 저절로 다 빼게 되는데 아직 살아 있는 동안은 마음먹고 연습을 해야만 될 만큼 힘을 빼는 겸손이 쉽질 않은가 보다.

주님, 오늘하루도 제가 힘을 빼는 겸손으로

기쁜 하루가 되게 해 주소서

힘을 빼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움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기에

제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사랑하고 배려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그 외에는 힘을 빼게 해 주소서.

교만에서 겸손으로, 고집에서 온유로,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움의 은총 베풀어 주소서.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연습을 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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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온전한 봉헌자로 지복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행복을 허락해 주소서.

아멘.

■묵주 기도의 향기

내가 묵주기도를 가장 분심 없이 간절하게 바친 것은 여고시절 경주 김유신 장군 묘소에서 열린 제2회 신라문화제 전국 고등학생 백일장에 나갔을 때였다. 경주 어느 성당에 들어가 얼마나 열심히 구체적으로 기도했는지! 이기적인 욕심이지만 겸손을 다해 나는 간청했다.

‘성모님 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대표로 내보낸 학교의 명예와 선생님들을 기쁘게 하려고 1등까진 바라지 않으니 장려상이라도 받길 바랍니다. 오늘 백일장에서 주어지는 제목이 제가 쓰기 쉬운 것으로 나오게 해주세요. 이 기도가 이뤄지면 앞으로 더욱 당신을 섬기는 일에 충실하겠습니다…….’

그때 심사 위원장은 유치환 시인이었는데, 전국에서 모여온 수백 명의 남녀 예비 시인 중에 내가 <산맥>이란 시로 장원을 한 것이 기적처럼 여겨졌고, 나는 성모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확신했다.

하루라도 묵주기도를 바치지 못한 날은 무언가 허전하고 아름다운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빛깔도 모양도 예쁜 묵주를 선호했는데, 이제는 그냥 단순한 모양의 나무 묵주가 좋다. 임종한 수녀님들이 수도복을 입고 온전한 침묵으로 누워 있을 때도 손에 걸린 나무 묵주는 슬픔 중에도 애틋하게 아름다웠다.

아주 오래전 마음으로 힘든 시기에 묵주기도를 바치고 잠들면 성모님이 우리 수도원 복도에서 나에게 손짓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꼭 한 번 체험한 그 느낌이 하도 감미로워서 늘 잊지 못하고 있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 수녀원에서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묵주 기도를 바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 수도원의 종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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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내가 수녀원에 입회한 지 꼭 50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다. 시에 등장하는 새처럼 나 역시 삶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시로 기도로 노래하며 키가 크고 마음이 커졌다. 4년 후인 2018년 5월은 내가 수도자로 첫 서원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우리 모두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수녀님은 지금 암에 걸렸지만 우리랑 같이 금경축은 하고 죽어야 해요”옆의 동기 수녀들이 걱정스레 웃으며 말한 것이 벌써 6년 전이다. 이만큼 오래 살다보니 이젠 수도복도 매우 낡아서 기워야 하고 오른 손에 끼워져 있는 종신 서원 반지도 너무 닳아서 얇아졌다. 낡은 것, 헌것도 결국은 모두기 세월이 준 아름다움 선물임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수녀원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우리 집에서도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은 삼종 기도를 위한 큰 종을 치고 아침기도 저녁기도 끝기도를 위한 작은 종을 매 기도 시간 5분 전에 친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공동 독서를 듣다가 이야기해도 좋다는 신호로, 성당에서 퇴장하는 신호로, 중요한 공지가 있다는 신호로 원장 수녀가 종을 치곤한다. 이승에서의 수도 여정을 마치고 어느 수녀가 임종했을 때에는 수련 수녀가 성당 앞에서 아주 오랫동안 특별한 모양의 징으로 천천히 서른세 번의 종을 친다.

항상 큰 단체 안에서 살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는 종소리 없는데 가서 얼마간 자유롭게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적도 있었으나 막상 종소리 없는 곳으로 가서 머물게 되면 즉시 그리워하게 되는 게 신기하다. 몸은 다른 곳에 있는데도 공동 기도 시간이 디면 수도원이 종소리와 수녀들의 기도 소리가 저절로 환청으로 들리곤 한다. 아마도 밖에서 산 세월보다 여기서 산 세월이 더 길다 보니 그런 것이기도 할 테지만 수도원의 종소리는 나의 삶을 길들이는 ‘지킴이’고 ‘수련장’이며 졸지 않고 깨어 있게 재촉하는 ‘죽비’역할을 해온 것이기에 그를 떠나면 이내 걱정이 되고 불안하도록 그리워지는 것이리라.

언젠가 내가 죽어 어느 수녀가 엄숙하게 조종을 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지금 여기의 수도 여정에서 종소리를 더 잘 듣는 수도자로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검허하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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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들어도 / 항상 새로운 / 당신의 첫소리 //

방황하며 / 지친 내 영혼 / 울다 울다 쓰러져 /다시 들으며 / 나를 찾네 //

멀리 있고 / 높이 있어도 / 늘 가깝고 / 귀에 익은 / 그리움의 힘이여 //

죽어도 잊을 수 없고 / 절망 속에도 / 쉽게 떠날 수 없는 / 처음의 사랑이여

- 이해인 <종소리> 전문

■ 시간을 사랑하는 영성

책에서 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았던 독자들이 지금의 나를 만나면 그 달라진 모습에 실망감을 표현해서 나를 종종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할 말이 없으면 곧잘 이렇게 한마디 덧붙이는데, 비록 체면상 마지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듭니다.

“왠지 전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금의 수녀님 모습이 더 좋아요.”

누구라도 세월이 주는 변화는 막을 수가 없고 이 무게를 선물로 받아 안아야 평화가 찾아옵니다. 거울을 자주 보진 않지만, 얼굴의 주름과 흰머리가 말해주는 나의 노년을 깊이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성당이나 식당에 앉아 까마득한 후배들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곤 합니다. 빨리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불평과 탄식을 새로 오는 시간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대체 시간이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라고 푸념하고 싶을 때 는 ‘가기도 하지만 다시 오는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라고 바꾸어 말해봅니다.

■ 평상심의 영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트위터(2013년 12월 13일)에 ‘거룩함은 특별한 것을 행함을 뜻하지 않고, 사랑과 신앙으로 평범한 것을 행함을 뜻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의 묵상 끝에 “주님, 저의 평범한 일상이 사랑의 지향과 행동 안에서 아름답고 비범한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 보았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좀 더 특별한 것을 체험하고 싶고, 인간관계 안에서도 좀 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고, 문학의 길에서도 좀 더 멋지고 특별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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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욕심과 허영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괴롭힐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평범하지 않고서는 특별한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이 지루한 사막처럼 여겨지기도 할 테지만, 나를 시간 속에 길들이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바로 평범함을 견디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평범한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십시오. 일상에 대한 충실함이 성화의 첫걸음임을 잊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도하는데 하늘의 흰구름이 예쁘게 손을 흔들며 웃어줍니다.

■ 판단보류의 영성

너는 네 말만 하고 / 나는 내말만 하고 // 같은 장소 / 같은 시간에 / 대화를 시작해도 / 소통이 안 되는 벽을 느낄 때 // 꼭 나누고 싶어서 / 어떤 감동적인 이야길 / 옆 사람에게 전해도 / 아무란 반응이 없을 때 //

나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데 / 가장 가까운 이들이 / 그것도 못 참느냐는 눈길로 / 나를 무심히 바라볼 때 // 내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며 / 화해의 악수를 청해도 / 지금은 아니라면서 / 악수를 거절할 때 //

누군가 나를 험담한 말이 / 돌고 돌아서 / 나에게 도착했을 때 // 나는 / 어쩔 수 없이 외롭다 / 쓸쓸하고 쓸쓸해서 / 하늘만 본다.

- 이해인, <내가 외로울 땐> 전문

좋은 말만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남을 모질게 판단하고 부정적인 말을 쉽게 퍼뜨리면서도 큰 잘못이란 의식 없이 살고 있는지요. 오래전 비교종교학을 공부할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종교를 함부로 비난하면 안 된다는 ‘판단 보류의 영성’에 대해 배우며 깊이 공감했고, 이것이 나의 수도 생활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이요 임금으로 선택하고 모시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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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다른 이의 등 뒤에서 그들에 대해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에게 터놓고 말하기 바랍니다.’이 말씀 끝에 나는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함부로 다른 이를 험담하는 악습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판단의 말은 보류하되 사랑의 행동은 빨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도와주소서.”

■ 내가 먼저 변할 수 있어야만

수도자들이 제일 기다리고 행복해 하는 연중피정, 월피정, 한달 피정을 하기 전에는 다들 좀 더 거룩하게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희망 속ㅇ[ 설렙니다. 그러나 이런 설렘도 잠시, 피정을 마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면 별로 달라지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해질 때가 많습니다.

오랜 수도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남이 변화되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할 수 있어야만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마땅해하는 다른 사람의 결점을 내가 지극한 인내로 감당하고 있다면 그 또한 나를 인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자주 잊어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고 사랑과 인내를 갖고 현실을 내부로부터 바꾸는 것을 좋아하신다”라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씀을 요즘은 더 자주 기억하게 됩니다.많이도 말고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위스터민스터 사원의 어느 주교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한 구절을 다시 묵상해 봅니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 지!’

■ 언제나 떠날 준비를

“목사님이나 전도사들과는 달리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은 종교에 대해서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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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만 하시던데요. 그 삶이 좋고 행복하면 좋은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믿거나 할 것 아닙니까?”

내가 택시를 탔을 때 이렇게 말하는 기사에게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냐고 하니 그렇지 않다고, 상대가 어찌 생각하건 간에 좋은 것은 일단 말을 해야 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선한 세계가 있다는 것 신앙인의 기쁨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선포해 주시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어느 사형수가 나에게 편지로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처럼 나도 가장 익숙한 것 정든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부르심의 길로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2018. 4. 25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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