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5. 13:24ㆍ독서후기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
말 그릇
- 당신의 말에 당신의 그릇이 보인다 -
■ 김윤나 지음
0 코칭심리 전문가로 코칭, 강연, 저술활동
0 심리학에 기반을 둔 자기이해,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을 인생의 핵심 프로젝트로 삼음
0 한양대 교육대학원, 광운대 박사과정 수료
0 한국 코치협회 전문 코치(KPC)
0 현재 “The 연결” 대표로 SK, LG, 삼성, 롯데, 두산, 신세계 등 수많은 기 업에 출강
0 저서 : 나 공부, 외로운 내가 외로운 너에게
■ 프롤로그 : ‘말’이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무심코 던진 말이라도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그렇게 할 거면 그만두라’는 상사의 말에 밤잠을 설치고, ‘해낼 거라고 믿는다’는 한마디에 힘이 나서 두 팔을 걷어 부친다. 많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만큼 힘이 세다 게다가 수명은 어찌나 긴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어린 시절 들었던 격려의 말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장성한 아들딸을 둔 가장이 ‘그때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냐’며 오래전 상처를 곱씹는 모습을 볼 때면 말의 질긴 생명력을 실감하곤 한다.
안타까운 것은 말 때문에 자책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된 말 습관을 그냥 내버려 둔다는 데 있다.
후배들을 격려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성에 차지 않는 보고서를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니 일단 내뱉고 본다. 아이를 존중하는 대화법을 배우기는 했지만 길에서 떼를 쓰며 버둥거리는 아이 앞에서는 버럭 성질대로 말하게 된다. 새롭게 익힌 듣기 좋은 말은 길들여진 나의 언어를 넘어서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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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에 힘을 잃는다.
말이란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매일매일 쌓아올려진 습관에 가깝다.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숙성돼서 그 사람만의 독특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오는 게 바로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말 잘하는 ‘기술’만 익혀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말 습관을 기를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크기에 따라서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일명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누군가를 현혹시키고 이용하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갈등을 극복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말을 사용한다. 너와 나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공감을 갈망한다. 성공과 욕망을 쫓다가도 결국에는 쉴 수 있는 품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도 비난 대신 그동안의 노력을 알아주기 바라고, 실수 했을 때에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를 바라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나의 능력을 의심하기보다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그러한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 즉 말 그릇이 큰 사람 주변에는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말은 당신을 드러낸다. 필요한 말을 제때 하고, 후회할 말을 덜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말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키워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신의 말은 당신이 없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그러니 진정한 말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무엇보다도 당신의 일상이 말 때문에 외로워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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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말 때문에 외로워지는 사람들
■ 당신의 말은 당신을 닮았다
“진심으로 충고할게. 너 그렇게 살지 마.”
“…내가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만 차리면 다 이겨낼 수 있는 거야.”
“그야 머리로는 알고 있지….”
“아니! 넌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어렵게 고민을 털어 놓았는데 친구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어떨까. 가만히 따져보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상한다.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만 든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 강압적이고 비난하는 식의 말을 즐겨 사용하는 상사라면 종종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일을 이렇게밖에 못하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됐고! 자네가 해봤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앞으로는 시키는 일만 잘해.”
이런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고집스러워진다. 일방통행하는 말 습관 때문에 사람들이 피한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점점 고립된다.
갈등에 처했을 때 상대방의 결점과 한계를 찾아내고 당장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취약점과 죄책감을 귀신같이 건드리기 때문에 말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욱 더 나빠진다. 그리고 이런 식의 말 습관은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공부를 열심히 했어봐라. 도대체 누구를 닮아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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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얘기 좀 그만해!”
“나 위해서 그러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엄마는 공부 잘하는 것만 중요해? 난 아무 것도 아니고!”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중에 크면….”
“아! 몰라. 됐어. 엄마랑은 대화가 안 돼!”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생긴 말의 상처야말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작 그 말을 내뱉었던 사람은 금세 잊어버리고 돌아서지만, 그 말을 들었던 사람은 시간이 흘러서도 잊지 못한다.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어릴 때 부모님의 날카롭고 무심한 말에 아파했던 사람일수록 자신의 아이에게 그 패턴을 반복할 확률이 높다.
■ 당신이 그 말을 사용하는 이유
그런데 왜 우리는 수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나누고자 하는 것일까? 왜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바로 관계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인정과 사랑을 확인하며 위로와 용기를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주체는 달라도 그 마음만큼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말하기를 ‘주도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말을 권력으로 여기면 곧 그것으로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가르치고, 바꾸고, 조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말 안에 사람을 담지 못한다.
후배의 아픔을 돌보기보다는 정신 차리게 하는 목적으로, 아이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보다는 잘못을 다그치는 수단으로 친구의 고민을 보듬어주기보다는 한 수 가르쳐 주려는 도구로 말을 사용하면 결국 사람은 다 떠나고 당신의 말만 초라하게 남는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말은 ‘통제의 말’이 아니다.
“그래 힘들었겠다. 고생했어.”
“그럴 수도 있구나.”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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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공감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자극하는 말에서 관계가 싹튼다.
잠깐 떠 올려보자.
지금 당신은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는가?
통제를 위한 말인가, 소통을 위한 말인가?
■ 진심이라는 함정
지나치게 진심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직속 후배니까’, ‘가족이니까’, ‘알고 지낸지가 몇 년인데’라는 말을 하면서 갈수록 많은 양해를 구한다. 정말 진심을 전달하려는 노력 대신 “내 맘 알지?” 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뭉뚱그린다. 그러는 사이 상대는 진심에 걸맞는 ‘진짜와 가짜’를 가늠하느라 진이 빠지고 만다. 오랜 시간 이해와 오해, 아쉬움과 서운함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할래!’하면서 펑 터지고 만다. 부부사이, 부모자식 사이,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그 위태로운 진심의 끝에 매달려 서먹해지는 경우를 나는 많이 지켜봤다.
깨끗하게 정수된 물이라도 수도관이 녹슬어 있다면, 수도꼭지로 녹슨 물이 쏟아진다. 받는 사람은 보낸 사람의 속도 모르고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하면서 하며 속상해 하고, 보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나도 최선을 다했어.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니.’ 하며 서운해 한다. 그야말로 둘 다 억울한 일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연결(connection)’이 있다. 바로 나 자신과의 연결, 타인과의 연결, 세상과의 연결이다. 이것은 모두 이어져 있고, 각각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말은, 자신이 그 세 부분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다.
말이 제 값을 다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만족하기 힘들어지고,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나 부모, 친구가 되기도 힘들어진다.
■ 말 그릇이 큰 사람
“열다섯 살짜리 소녀가 지금 당장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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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1980년대 초반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라는 흥미로운 실험에 처음 등장했다. 연구원들은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위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곧이어 대답이 크게 둘로 나뉜다는 것을 발견했다.
1. “안 돼. 열다섯 살에 결혼이라니 미친 짓이지.”
2. 특수한 경우라는 게 있을 수 있다.
- 그녀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부모 친척 없이 홀로 남겨졌다면.
- 또는 조기 결혼하는 문화권에 산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 앞에서도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것. 고정된 관점을 고집하는 대신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일 줄 아는 것 등이 바로 현명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 다양성을 고려하며 유연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말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부른다.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1 . 작은 말 그릇
- 말을 담을 공간이 없다. 말이 쉽게 흘러넘친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다. 2. 큰 말 그릇
-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다. 담은 말이 쉽게 세어나가지 않는다.
필요한 말을 골라낼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품만큼 말을 채운다.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공간이 충분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받아들인다. 조급하거나 야박하게 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 ‘너는 모르겠지만’, ‘내 말 좀 들어봐’. 하며 상대의 말을 자르고 껴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랬구나’, ‘더 말해봐’, ‘네 생각은 어때?’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더 열게 만든다.
말하기 실력이 부족해서 무조건 듣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그래 너는 떠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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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식의 무시하기도 아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다름’과 ‘특별함’을 이해하고 있기에 말 자체를 평가하거나 상대방의 말하기 실력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의 불안함을 낮추고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 그릇이 큰 사람과 대화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말 그릇이 큰 사람은 한 번 들어온 말들을 쉽게 흘리지도 않는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너만 알고 있어’와 같은 가벼운 약속을 하지 않는다. 말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딱 필요한 순간에, 꽉 찬 말이 나온다. 그것은 세련된 말과는 다르다. 기교가 아니라 기세에 가깝다.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결코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끌리는 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반대로 말 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조급하고 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차분하게 듣질 못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만 말 그릇을 꽉 채운다.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고, 과장된 말을 사용하고 두루뭉술한 말 속에 의중을 숨긴다. 그래서 화려하고 세련된 말솜씨에 끌렸던 사람들도 대화가 길어질수록 공허함을 느끼며 돌아선다.
특히 말 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평가하고 비난하기를 습관처럼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비난은 참아내질 못한다. 몇 자 듣지도 못하고 ‘그만 좀 해, 나도 힘들어’, ‘너 때문에 그런 거야’와 같은 말로 다시 남 탓을 하면서 책임을 피하려 든다.
■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크기의 말 그릇을 지닌 사람들을 만난다.
“회사 다니는 게 힘들어요. 제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딱 그만두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으니 그만 두기도 겁이나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야! 나는 이것보다 더했어. 적성은 무슨, 먹고 살려는 거지. 요즘 애들은 아주 배가 불렀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3년만 더 버텨. 내 말 들어 후회 안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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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언제나 반복된다.
“둘째를 가져야 할지 고민이에요. 더 낳자니 일과 병행할 자신이 없고, 하나만 키우자니 첫째가 외로울까봐 걱정되고.”
이때도 돌아오는 답은 천차만별이다.
“그냥 하나만 키워. 뭐하려고 둘씩이나 낳아. 일하는 엄마에게 둘은 힘들어. 아주 죽어난다고!”
“에이 무조건 둘이지. 혼자는 안 돼. 내가 해봐서 알아 당장은 힘들어도 둘 키우면 나중에 더 좋아. 더 늦기 전에 얼른 낳아!”
사람들은 딱 자신의 경험만큼 조언해준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것은 사실 그들의 말일 때가 많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대답을 함께 찾아보는 대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말을 전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나의 안쪽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리게 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스스로 검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사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때까지 따뜻하고 세밀한 기술로 배려해준 사람을 만났을 때 힘을 얻는다.
커피 받침에는 고깃국을 담을 수 없다. 깊이가 없는 그릇 안에 진한 맛을 내는 말을 담아두기는 어렵다. ‘말솜씨’는 여전히 탐나는 능력이지만, 나이가 들고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깊이 있는 말이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말로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기 전에, 말 그릇 속에 사람을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말의 민낯이 존재한다.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인 말, 좁은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말, 잠깐의 감정을 못 이겨 쏟아내는 말,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말 등등. 그런 말을 하고 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이것밖에 안 됐나’, ‘왜 나는 이렇게 말을 할까.’하며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의 말 그릇이 넉넉해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도자기 공방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말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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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다듬어나가야 할지 깨달았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라 만만하게 여겼는데 웬걸,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두들기다 보면 어느새 바닥은 울퉁불퉁, 모양은 들쑥날쑥 균형을 잃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렇게 어물대다 보면 급기야 반죽에 쩍쩍 금이 가곤 했다. 진땀을 흘리고 있는 내게 선생님이 이런 말을 건넸다.
“그릇을 빚다보면 자꾸 틈이 생기고 구멍이 보이고 결이 갈라지기 시작해요. 흙의 특성 때문이지요. 그럴 때 번거롭다고 그냥 두면 모양도 흐트러지고, 나중에 구울 때 꼭 깨져버려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는 쓸모없는 그릇이 되지요.
순간 내가 만들고 있는 이 그릇이 우리의 말 그릇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온전한 게 어디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말실수도 하고 말에 속기도 하고 말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아픔도 겪는다. 다만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의 말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겠다고 결심하면 그때부터 말 그릇은 조금씩 성장하게 마련이다.
■ 내면 아이
심리학에는 ‘내면아이’ 혹은 ‘어른아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이나 강렬한 경험을 한 아이가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의미다.
어떤 이의 마음속에는 열 살짜리 소녀가 숨어 있고, 어떤 이의 마음속에는 사춘기 소년이 아직도 방황을 끝내지 못한 채 서성인다. 그러다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고 만다. 이게 다 ‘내면아이’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자기중심적이고, 흑백논리에 매몰되어 있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내면아이를 품고 살아가는 이의 모습도 이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말도 그러한 패턴을 따를 수밖에 없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나이에 걸맞은 말, 행동,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저 나이 먹도록 말을 왜 저렇게 밖에 못할까?” 싶은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아직도 내면아이를 떨쳐버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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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몇 초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따라서 당신의 말 그릇을 살핀다는 것은 말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과 같다. 만약 당신의 말이 잘못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그 이유 역시 당신의 마음 안에 있을 것이다.
■ 마음이 변하면 말이 변한다
‘말’에 관한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새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숨겨두었던 가정사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직장에서의 문제 친구 혹은 연인관계에서의 갈등과 고비 등등 자신을 괴롭혀왔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두고 질문을 주고 받다보면 한 사람의 말이 움직이고 있던 심리적인 근원과 마주치게 된다.
나를 찾아왔던 사람 중 한 명은 직원들의 무능력에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실수에도 사람들을 비난하며 몰아세웠다.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 그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참고 듣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몇 차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어린 시절 채워지지 못한 그의 인정욕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평범한 모습으로는 사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공부에 매달렸던 그는 여전히 그 상처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감은 사실 내면에 숨어 있는 열등감의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힘들어서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화법 때문에 주변에서 불편해 하는 것 같다며 친밀해지는 대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면 작업을 통해 우리가 발견해 낸 것은, 그가 정작 가까운 관계를 매우 불편해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색하고 차가웠던 부모님, 외로웠던 유년기, 경쟁자였던 형과의 관계를 풀어내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상처 받는 게 무서워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피하고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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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다룰 수 있게 된 후에야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대화 기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말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는 중간관리자, 그는 상부의 지시를 아랫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회의를 이끌 때도 리더답지 못한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를 너무 고심하다보니 말이 끊기는 순간에 불안해했고, 그 공백을 채우려다보니 핵심 없는 말을 하기가 일쑤였다.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니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소신있게 말하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인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과 자존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성과를 높이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후에 천천히 연습해 나가기로 했다.
작가이자 심리 상담가인 토니 험프리스는 <심리학으로 경영하라>는 자신의 책에서 자기 내면을 스스로 성찰하고 경영할 줄 알아야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상처를 피하기 위해 심리적인 방어막을 칩니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가면서 진정한 나를 만나기 시작하면 나 자신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한편,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고 이야기 한다.
자신을 알아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시선을 내면으로 돌린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말 그릇의 균열을 매우려면 말의 내면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말 자체를 살피기 이전에 말 속에 사는 나를 만나야 말 그릇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 나답게 말한다는 것
말은 살아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씨를 뿌려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마음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말은 당신과 함께 자라고 당신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말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 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히 보여준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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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단단한 말 그릇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말할 때 늘 주저하곤 했어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봐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제법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사용하는 말이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기뻐요. 말이 나다워지는 것을 느껴요.”
말 그릇을 다듬은 사람은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전보다 편안해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역할도 기꺼이 해내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말 그릇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단단한 자존감이 되어 자신에게 선물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Psrt 2. 내면의 말 그릇 다듬기
◉ 감정에 대하여
■ 감정이 당신에게 말해 주는 것
감정을 연구하는 폴 에크만(Psul Ekman)은 인간의 감정체계는 긍정적인 감정은 최대화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최소화하는 행동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은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음’에 대해서는 모른척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상함, 상실감, 수치심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들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걸맞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대항해서는 안 된다. ‘그래, 난 지금 슬픈거야.’ 라고 감정 자체를 인정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 하면서 공감의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감정으로부터 도망가기 시작하면 외로워지고 억울해진다. ‘이게 아닌데.’ ‘무엇인가 잘못 됐어.’하는 찝찝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잘못 선택한 감정이라도 일단 들어선 길이기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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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하고 제대로 된 감정과는 점점 멀어진다. ‘마음과 일치하는 말’을
하려면 먼저 감정과 친해져야 한다. 감정과 말을 엇갈리지 않게 연결시키는 능력이야말로 넉넉한 말 그릇이 되기 위한 핵심 요소다.
■ 감정에 서툰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우느라 감정을 배우지 못하면 자라서도 감정에 서툴다. 지나치게 인색하거나 넘치게 사용한다. 자기 마음 한 평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색을 모른 척하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감정만 보여주면서 살게 된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에 익숙해진다.
좋은 때는 표현도 안 하다가 억울한 일에만 반응하며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이른바 ‘분노중독’이다. 화를 내면서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점점 거친 말, 센 말만 찾게 되는 것이다.
‘슬픔’이라는 감정만 사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거나 가지지 못했을 때 무작정 슬픔과 우울함 속으로 빠져든다.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의지를 스스로 꺾고, 주변의 관심과 위로를 기다리면서 삶을 소비한다.
‘화병’과 ‘우울증’이야말로 감정에 서툰 사람들이 자주 걸리는 덫이다.
실망과 화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실망이라고 생각하면 ‘너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의 기대’에 대해 함께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화라고 생각하면 ‘너 때문에 생긴 분노’만 남겨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게’있기 때문인데, 화의 목적은 상대방을 물러서게 하고 웅크리게 만드는데 있다.
‘감정’은 당신을 해치려고 온 도둑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다. 당신의 말이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그러니 감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다.
■ 진짜 감정 찾기
나는 그때 ...................................(감정)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가 ......................라는 기대(생각)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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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이다.
감정에 서툰 사람들은 특히 가정이나 친구 간의 모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인 곳에서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 많은 편이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화장실 청소’만큼은 남편에게 꼭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지켜지는 것 같지 않았다. 몇 번을 꾹 참고 넘어가던 나는 어느 날 신랑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지금 나 무시해? 내가 분명히 청소해 달라고 했잖아요?”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하고 달려드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흠칫 놀라더니 ‘알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때 시각은 밤 12시.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의 옆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야근에 찌든 그의 두 눈을 발견했다. ‘아차!’싶었다. 그때서야 그가 어제 새벽에 들어왔다는 게 생각났다.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 내가 서운했었나봐. 자기가 내 부탁을 모른 척하는 것 같아서.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느꼈나봐.”
남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기도 미안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내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노라고, 다만 감기 기운이 있는지 한동안 몸이 좋질 않아서 조금 놓쳤다는 말을 덧붙였다. 뒤늦게 진짜 감정을 알아채고 그것을 솔직하게 나눈 후에야 우리는 다시 평온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 진짜 감정을 인지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감정이 당신을 덮칠 때 철이 자석에 달라붙듯 익숙한 몇 가지 감정만이 자동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당신의 말을 결정하게 된다.
감정의 진짜 목적을 마주하지 못하면 당신의 말은 갈 곳을 잃는다. 상대방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떠도는 말이 되고, 당장은 시원하겠지만 결국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미안하니까 괜히 툴툴거리는 남편, 불안하기 때문에 소리 지르는 엄마, 고마움을 빈정거림으로 표현하는 먼 친척, 부러워서 험담하는 친구처럼 말이다.
당신의 말 그릇 안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감정들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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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정들은 제때 어울리는 상황에 정확히 나타나는가.
당신은 그중에서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가.
■ 감정 분석하기
감정은 ‘출현 - 자각 - 보유 - 표현 - 완결’이라는 다섯 개의 단계를 거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1단계 ‘출현’ : 나는 어떻게 감정을 느끼는가?
출현이란 감정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그에 따른 몸의 반응이다.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뇌가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고 호불호를 따지기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심장의 두근거림, 손 떨림, 동공의 확장, 체온의 상승, 얼굴의 화끈거림, 몸의 경련, 가슴의 조임, 위장의 쓰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만약 이 몸의 신호를 잘 알아채는 사람이라면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시했던 몸의 감각들을 살리기 위해 ‘호흡’, ‘땀’, ‘체온 변화’, ‘심장 소리’, ‘혈류의 움직임 등에 집중해 보자.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 대신 몸을 느껴 보는 시간 , 감각을 바라보는 시간, 몸의 변화를 찾아보는 시간을 통해 온몸을 관통하는 자극들을 의식해 보자.
몸은 우리에게 조용한 방식으로 말을 건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야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감정과 어울리기 위한 첫걸음은 당신의 몸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하루 중에 잠시라도 몸에 집중하며 미세한 신호들을 감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2단계 ‘자각’ 지금 떠오르는 감정의 이름은 무엇인가?
항상 감정을 명확하게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무리지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원섭섭하다는 말처럼 말이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감정은 페이스트리처럼 여러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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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트리 : 작은 케이크, 밀가루에 유지 등을 섞은 뒤 여러 겹의 얇은 층의 결을 이루게 하여 구운 과자 또는 빵
오랫동안 특정한 감정에만 노출된 사람일수록 감정의 얼굴이 더 빨리, 더 자주 바뀐다. 느낌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감정들을 피하거나 왜곡시켜버린다. 반면 어릴 때부터 감정을 존중받아온 사람,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는 관계를 맺어본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위장된 감정들 사이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을 찾아낸다.
진짜 감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안에 말하고 싶은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려고 한다. 감정의 이면을 잘 살펴보면 전하고 싶은 속내, 간절히 바라는 욕구,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숨겨져 있다.
얼마 전 후배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후배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후배는 옥신각신하더니 “됐다고. 내가 알아서 해요!”하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 있어?”
“아뇨…자꾸 음식을 해서 보낸다잖아요. 잘 먹지도 않는데.”
“그랬구나. 그 말 들을 때 기분이 어땠는데?”
“죄송하죠. 몸도 안 좋으신데….”
“아, 짜증난 게 아니라 죄송한 거였구나.”
“네? (순간 알아차리며) 아… 제가 짜증내는 데 익숙해졌나 봐요.”
후배는 고마움과 미안함 대신 짜증이라는 감정의 문을 열었다.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욱하며 반응하거나 ‘좋아 혹은 싫어’, ‘편안해 또는 불편해’로 감정을 이분화한다. 대화중에 감정을 지각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3초 동안 진짜 감정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잠시 멈춤 질문’이라고 부른다. 감정이 출현한 그 순간 3초 동안 아래 질문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답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이 감정이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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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통화 장면으로 되돌아가보자.
습관적으로 ‘아, 정말 또!’하며 짜증을 내기 전에 3초만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면 아마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질문 : 지금 이것은 어떤 감정일까?
대답 : 짜증인가? 미안함인가? 아니면 고마움? 죄책감?
질문 : 이 감정이 내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 : 음식을 버리고 나면 엄마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니까 상처받 지 않게 그 부분을 설명해야겠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 인식할 새 없이 흘러가버리는 감정을 객관화시켜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3단계 보유 : 어떻게 감정을 보관하고 조절하는가?
다음은 감정을 보유하는 단계다. 알아차린 감정을 무작정 쏟아내지 않고, 말 그릇 안에 보관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면 ‘다 네 탓이야!’ 라고 남을 원망하거나 반대로 ‘다 내 잘못이야.’하며 자책감으로 무너지기 쉽다. 말 그릇이 감당하지 못해 쏟아진 말은 대개 후회를 낳는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말에도 열을 내고, 또 누군가는 꽤 나쁜 말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그의 책 <자존감의 여섯 기둥>에서 자존감과 의사소통, 그 중에서도 감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그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적절하게 의사소통할 줄 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이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 모호하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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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대화중에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기 쉽다고 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자신감이 없어서 상대의 반응에 쉽게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불안이나 불확실처럼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했을 때 쉽게 자신의 실체를 드러낸다.
감정을 품어내는 힘은 분명 개인의 자존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화중에 참지 못하고 무작정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의 내면에는 낮은 자존감이 자리하고 있다. 체면 때문에 안 그런 척하지만 감정 앞에서는 허약한 자존감을 드러낸다.
“너 내가 우습게 보여? 어디서 감히!” 이런 식으로 감정을 분출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타인을 위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들킬까봐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감정을 품어내고 다루는 일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존중’과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 이 두 가지 심리적인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0 감정을 조절하는 네 가지 방법
1. 인지적 방법 : 생각하는 방법을 바꿈으로써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 상대의 기분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
- ‘저 친구도 사정이 있었겠지? 왜 그랬을지 생각해 보자.’
2. 체험적 방법 : 정서를 충분히 느끼고 표현함으로써 감정을 조절하는 법
- 불쾌한 감정이라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충분히 음미하는 것 등
3. 생리적 방법 : 신체 생리적인 요소를 변화시켜 감정의 변화를 만듦
- 복식호흡, 명상,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 차 한잔 등
4. 행동적 방법 :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감정을 변화시킴
- 음악 듣기, 영화 보기, 산책이나 운동 등
4단계 표현 :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들은 보드라운 감정도 송곳 같은 말로 전달한다. “고마워. 네 덕분이야.”라고 말하면서 미소 지으면 그만인데, 민망하다는 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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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하고 말한다. 혹은 “무척 속이 상했어. 앞으로는 조심해 주었으면 좋겠어.”하고 깔끔하게 말하면 그만인데 그것을 못해서 “너 같으면 기분이 좋겠니?”라고 정도를 넘어선 말을 한다.
고객 앞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표하려고 보니 자료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후배가 빠트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후배에게 어떤 말을 하게 될까?
1. 첫 번째 유형 : 폭포수형
“야! 너 정신이 있니 없니! 얼마나 중요한 자료인지 몰라?”
- 스스로 평가할 때 ‘뒤끝이 없고 쿨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자기 감정을 책임질 능력이 부족한 사람
2. 두 번째 유형 “호수형”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수는 고여 있다. 고여 있 으면 결국에는 썩게 된다. 감정을 무시하거나 묻어두는 일은 일종의 감정 노동이다.
- 감정은 담가두고 발효시키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을 꾹꾹 눌러두면 언젠가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터져버리고 만다.
3. 세 번째 유형 : 수도꼭지형
“아 정말 당황스러웠어. 중요한 자료인데 빠져 있어서 얼마나 마음 조렸는 지 몰라! 너도 놀랐지.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돼.”
- 시원하게 혹은 따뜻하게 물의 온도를 선택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잠가 두고 필요할 때는 원하는 만큼 조절해서 사용한다.
- 엉뚱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해결해야 할 감정을 미루어 두지 않는다.
‘폭포수형’이라면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고 보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하고, ‘호수형’이라면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감정은 내다버리는 쓰레기도 아니고, 금고에 고이 숨겨두어야 할 금덩어리도 아니다. 고장이 나면 고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틀고 멈추기를 반복해야 하는 생활필수품이다.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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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감정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
나는 진짜 감정과 가짜 감정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할 때 나는 어떻게 자기 진정을 하는가?
나는 감정에 알맞은 말을 사용해서 표현할 줄 아는가?
■ 감정은 선물이다
감정을 다루게 되면 내면에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이 깃든다. 어색함과 억지스러움이 사라진다. 대화중 생겨나는 감정이 부담스럽다고 피하거나 불필요한 방어나 공격을 하지 않게 된다. 감정을 신뢰하게 되면 말의 군더더기가 사라진다. 보유하고 표현하는 힘이 길러지면서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게 된다. 그래서 당신의 말에 생기가 감돈다. 물론 타인의 감정도 기꺼이 껴안을 수 있게 된다.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
“내가 실수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그렇게 말하니 부끄럽네. 내가 한 번 더 생각해야 했어.”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당황스럽지?”
“미안해. 이번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겠어.”
“축하해, 나도 기쁘다. 정말 부러워.”
감정이 서툰 사람들이 하는 말
“너라면 달랐을 것 같아?”
“다 알면서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
“(상대의 불편한 표정을 모른 척하며) 괜찮지?”
“왜 자꾸 나한테만 말해?”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마음을 열어두자. 감정을 골라서 편애하지 말고 감정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자. 감정이 나를 위협할까봐 창을 꼭꼭 닫아도, 그것마저도 불안해서 사람들을 피해 꼭꼭 숨어 있어도 감정은 어차피 나를 찾아온다. 그러니 피하지 말자. 인생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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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 한 가지만 골라서 마비시킬 수는 없다.”
“어둠을 마비시키면 빛도 마비된다.”
◉ 공식에 대하여
■ 머릿속에 만들어진 공식
대화를 하다보면 종종 ‘나의 말’과 ‘상대방의 말’이 너무 달라 갈등을 일으킬 때가 있다. 처음에는 좋게 이야기해보려고 하지만 어느 새 언성은 높아지고 감정은 격해진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머릿속 공식에 대한 이해’다. 한 사람의 특별한 공식과 감정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다짐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수한 개인적 경험이 쌓일수록, 그것은 바뀌기 힘든 하나의 굳건한 ‘공식’이 되어 그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이라면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공식을 품게 될 지도 모른다.
공식의 구조
A(Accident) - B(Belief) - C(Consequence)
사전 - 믿음(공식) - 반응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 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공식에 따라 대화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0 직장인 A : 관계 강조
- 직장 생활 10년차,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
- 실력이 있어도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버티기 어렵다.
0 직장인 B : 실력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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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실력이다.
-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사람만 좋고 무능력한 사람
0 직장인 C : 태도가 중요
- 태도가 중요.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 늘 수 있다.
- 성실한 사람, 실패를 해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
0 직장인 D : 자기계발을 강조
- 자기 계발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
■ 공식의 차이가 오해를 부른다
얼마 전 기업 프로젝트를 위해 다른 두 명의 전문가와 공동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약 3개월에 걸친 협업이었는데 첫 미팅에서부터 각자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A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친밀감을 높이는 대화를 즐겨 사용했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B는 상대적으로 사고형의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질문에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거리를 두고 싶어 했고, 감정을 자제하면서 일과 관련된 대화에만 집중했다.
A는 “친밀한 관계가 좋은 성과를 만든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은 사건도 나누면서 공감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B에게는 말이 많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벼운 사람으로 비춰졌다. B는 “효율적인 일의 방식이 성과를 높인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선 순위 정리와 시간관리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 했다. A의 입장에서 보면 고리타분한 원칙주의자이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미 없는 사람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나만의 공식을 지키느라 양쪽을 오가며 필요 이상의 노력을 했다. 당연히 투명하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A와 B의 입장에서는 내가 말이 다른 박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사, 짜증을 유발하는 동료, 자꾸 잔소리를 하게 만드는 후배, 하지만 그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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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는 것 역시 나조차 이러저러한 이유로 갖게 된 나만의 공식을 통해 사람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각의 공식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걔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소연한다. 급기야 “나는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로 상대를 몰아세운다. 그 기저에는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할수만 있다면 네 생각을 뜯어 고치고 싶다는 바람이 들어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생각을 너무 쉽게 바꾸려든다. 또한 상대방이 나의 공식을 무시할수록 더욱 고집하고 싶어진다. 부정할수록 나만의 공식을 지키기 위한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화만 했다 하면 “됐어! 너한테 이야기한 내가 미쳤지! 다시는 말하나 봐라!”하며 다투게 된다.
0 부모자녀 간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식의 차이
- “내가 못한 거 네가 대신해야지.” : “아무리 가족이라도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예요.”
-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지.”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예요.”
0 부부 사이에는 어떨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달라.” : “요즘 세상에 남녀 구분이 어디 있어?”
“부부라면 뭐든 공유해야지.” : “부부라도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 줘야지.”
0 생활 주변의 대화들
“결혼 잘해서 행복한 게 최고야.” : “일로 성공해서 보란 듯이 사는 게 제일이지.”
“돈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지.” : “돈만 있으면 뭐해? 마음이 편해야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 “결과로 답을 해야지.”
“즐거운 일을 할 거야.” : “보상이 큰일을 해야지.”
“내가 먼저 행복해야지.” :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야.”
- 우리는 어떤 공식들에 묶인 채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을 만들고 있을까?
■ 나도 너도 꽤 괜찮은 사람
거실에서,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술자리에서 자꾸만 부딪치는 우리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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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들, 기호나 취향의 차이부터 가치와 신념의 차이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다름’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의견이 충돌할 때 보통 사람들은 대개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자세를 취한다.
‘무시하거나, 강요하거나’
몇 번 설득해도 소용이 없으면 무시해버린다. 이것은 인정과는 다르다. 무시란 ‘네가 그러니까 이 모양이지.’ ‘네가 알아들을 수 있겠니?’ 하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의 대화를 진전시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면 말 그릇이 넉넉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공식 안에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하고 인정한다.’
한 사람의 공식 안에는 숨겨진 배경과 충분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 공식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말 그릇이 큰 사람들은 ‘좁힐 수 없는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즐겨 사용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어?”
“네 결정에 영향을 준 기준은 뭐야?”
질문을 통해 내막을 듣게 되면, 동의할 수는 없을지라도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네.’ 하며 인정해 주는 것은 가능해진다. 타인의 말을 담는 그릇이 넉넉하려면 한 가지 공식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되 그것이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차이는 분명 갈등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공식의 차이가 결국 ‘인간성과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과 공식’의 차이라는 것을 알면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교류분석 이론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는 크게 OK 방식과 NOT OK 방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OK 방식이란, 상대방에게도 이해받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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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기가 있고 잘해 내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실행의지가 있다는 것, 즉 상대방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반대로 NOT OK 방식이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변명하고,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실행력이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를 뜻한다.
자신은 OK, 상대방은 NOT OK로 보면
“네가 할 수 있겠어?” “다 너 때문이야.” “그럴 줄 알았어.”
“걔가 원래 좀 그래.” “뭐가 좀 달라지겠어?”
상대방을 OK 방식으로 바라보면
“잘 해보고 싶었을 텐데 속상하겠네.” “우리가 함께 책임질 일은 뭘까?”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니?”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내게 말해 줄 수 있니?”
어제보다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은 완벽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NOT OK 방식에서 방황하는 시간보다 OK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간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공식을 가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선입견을 조금씩 부수는 게 좋다. 그러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자. ‘불편함’ 뒤에 있는 ‘다양함’을 즐겨보자. 삶의 반경을 넓혀주는 다양한 책들을 가까이 해보자. 그것이 결국 ‘나도 너도 괜찮은 사람이야.’ 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도와준다. 그것이 당신의 말 그릇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물론 상대방의 공식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수준이 저것밖에 안되나.’하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순간들, 그러나 그마저도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게 된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던 미담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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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톨게이트에서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내주었다. 그랬더니 ‘앞 차에서 이미 지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차의 운전자 역시 주저하지 않고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내 주었고 그 행렬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나의 지인은, 용감하게도 그 선행을 직접 실행해 보기로 결심했다. 용인의 한 톨게이트,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차의 통행료를 대신 지불했다. 그런데 뒤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쫒아오더니 하는 말
“야! 이 새끼야, 네가 뭔데 돈을 내줘! 어디서 돈 자랑이야!”
그는 순식간에 돈 900원 내주고 돈 자랑하는 나쁜 놈이 되었다.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공식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무슨 일이든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공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불쌍하고 가여운 희생양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다. 동시에 나는 능력이 부족해, 할 수 있는 게 없어‘라는 공식에 얽매여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주변에 의지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 조심해야 해’라는 생각 때문에 늘 불안해하며 옴짝달싹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후배가 인사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자신의 보고서가 거절당했을 때 “이깟 회사 때려 치워야지.” 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나만 빼고 모임을 가졌다고 욕을 하며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는 공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수록 관계는 멀어지고 자신은 점점 더 고립된다.
중요한 것은 살면서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상대적으로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나의 공식만 고집하면 된다. 반대로 성숙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사람마다 가진 공식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차이’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같이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볼 때, 당신의 말 그릇은 흔들리지 않는다.
■ 나의 공식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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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가 가진 공식을 발견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당신의 공식도 누군가에게는 비정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공식들이 나의 말을 주도하고 있는지, 어떤 한계를 만들고 부작용을 남기는지 알아봐야 한다.
* 공식을 발견하기 위한 나만의 문장 완성하기 (직접 해 보세요)
1)
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고 생각해.
나는 직장 생활을 잘 하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어.
나는 사람이 살면서 .......................... 만은 비켜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일을 할 때 꼭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해
내가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대개..................때문이야.
최근에 누군가가 불편했던 이유는 ...............................때문이야.
나는 누군가에게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힘들어.
나는 ...................한 사람들과 대화하기가(관계를 유지하기가) 불편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라는 이야기(평가)를 듣곤 해.
나는 선배, 후배, 친구, 부부라면 모름지기 ...............해야 한다고 생각해.
2)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은 .................야. 그것은 나에게
...........라는 교훈을 주었어.
나는 이 세상은 ......................한 곳이라고 생각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제나..............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나는 인생을 살면서 힘이 들 때 ...............................라는 말을 떠올려.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으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언젠가 반드시 ...................................하고 말거야(이루어낼 거야).
내 삶에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어.
나는 내가 ............................................할 때 근사해(마음에 들어).
나는 내가 ............................................할 때 싫어(실망스러워).
나는 ...........................하는 상황에서 더 예민해져(불안해져 / 슬퍼져)
3)
나의 부모님은 내게 늘 ................................라고 말씀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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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 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야.
나는 가족 내에서 항상...........................역할을 담당해 왔어.
그것은 나를 ........................하게 만들었지.
누가 내게 인생의 모토를 묻는다면.....................라고 대답할 거야.
아마 사람들은 나의 ...............라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내가 만약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가 될 거야.
내가 가진 한 가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했으면 좋겠어.
내가 지금보다 성장하려면..............라는 생각을 뛰어 넘을 필요가 있어.
내가 살면서 바꾸기 어려운 것 중 한 가지는 ..............라는 생각이야.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저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자신만의 공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이 공식은 ‘일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실행’하게 만든다.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이 공식은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게 만든다.
나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이 공식은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 스스로 해결‘하게 만든다.
◉ 습관에 대하여
■ 불쑥 튀어 나오는 말 습관
“제가 말이 좀 험한 편이에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이 그렇게 되네요. 제 말투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말투가 그런 걸 어쩌겠어요.”
“본래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편이에요. 큰 소리 나는 것보다 그냥 제가 하고 마는 것이 편해요. 서로 목소리 커지고 감정이 격해지면 불안해요.”
“주변에서 에둘러 이야기 하는 편이라고 말해요. 직접적으로 말하면 불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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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 그렇게 못하고 빙빙 둘러서 말하는 것 같아요. 말할 때 눈치가 보이고 조심스러워요.”
사람은 고유한 말버릇을 가지고 있다. 격한 말, 과장된 말, 늘어지는 말, 다가가는 말, 물러서는 말 등 대화할 때 자신만의 패턴을 보인다. 말투와 분위기는 타고난 기질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라온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 형제와 자매, 자주 어울렸던 친구,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의미 있는 사람들의 말투에 영향을 받게 된다.
성장하면서 보듬어주고, 다독이고, 위로하는 말보다는 지적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말에 익숙해진 사람이,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딸이,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엄마가 되기는 어렵다. ‘뭘 안다고 나서니!’ 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괜찮아, 너는 이대로도 좋아.’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는 힘들다. 환경에 적응하는 사이 말은 대를 이어 흘러가고, 결국 그녀의 아이들도 강한 어머니 때문에 외로워졌다.
말의 대물림은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짜증스런 잔소리를 당해낼 사람은 없어. 정말 지겨워. 나는 절대로 저렇게 안 될 거야.’
늘 아빠와 싸우는 엄마를 보면서 이렇게 다짐한 여성이, 결혼 한 후에 엄마를 닮아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말의 유전이 관계의 반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아빠처럼 무뚝뚝한 가장이 되지 않을 거야.’ 하면서도 결국 자녀를 낳은 후에 어떻게 말하고 상대해야 할지 몰라 굳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혀끝에 붙어버린 습관이다. 공기처럼 호흡처럼 익숙해져버린 말 습관 말이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는 ‘우리는 상황 속에서 많은 것을 모방함으로써 학습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직접 해보지 않고,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동일한 방식을 획득하는 것을 ‘무시행 학습’이라 하고, 그 행동이 어떤 보상을 받거나 기대한 결과를 일으키면 그 특정 행동이 더 마음속에 각인되는데 이를 ‘대리강화’라 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대응전략을 배운다. ‘아, 이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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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이렇게 말하면 되는구나’, ‘이런 성황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구나’와 같은 것을 배우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 채 하나의 규범으로 받아들인다. 좋아하는 노래가 아닌데도 엄마가 설거지를 하면서 흥얼거리던 노래를 어느 날 똑같이 읊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의 영향력은 부모에게만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함께 일했던 상사의 말을 닮아가는 사람들도 꽤있다. 선배의 말을 모방하고 하나의 대처방식으로 삼는 것이다. 후배들이 실수했을 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들었던 대로 재생한다.
■ 나의 말 습관 알아보기
나는 자신의 말 습관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종종 카메라 촬영을 이용하곤 한다. 평소처럼 회의를 진행하거나 어떤 민감한 사안에 대해 토론하게 하고, 그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다. 그리고 나중에 함께 영상을 돌려 보면서 감상을 나눈다.
“표정만 보면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겠어요.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저렇게 나쁜 습관이 있었군요.”
“아, 저거 내가 딱 싫어하는 말투인데, 내가 저렇게 말하고 있네요.”
스스로 객관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고민이 필요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떨어져서 보면 ‘남들은 알고, 나만 모르는’ 몸에 붙어버린 습관들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영상 촬영이 어렵다면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평소 대화할 때 나의 분위기와 말투, 표정, 동작, 언어의 특징 그 외 느껴지는 것들에 대하여 솔직하게 알려 달라고 부탁해보자.
* 말 습관을 변화시키려면
듀크 대학교 연구진이 2006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의 40%는 습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당신이 오늘 사람들에게 건넸던 말, 그것은 어떤 의도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습관처럼 어제의 패턴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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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기 위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1) 특정 행동을 하게 된 계기를 찾아본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그 행동을 반복하는지 따져본다.
2) 행동을 함으로써 어떤 이익이 있는지 살펴본다.
3) 원하지 않는 습관에 대한 대체행동을 찾아본다.
4) 대체행동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행동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록하 고 관찰해야 한다.
* 전화 통화할 때 녹음하는 방법도 있다.
내게도 원하지 않는 말 습관이 있다. 어릴 적에 엄마는 정리정돈에 꽤나 집착하는 편이었다.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거나 서랍에서 옷을 꺼내느라 조금만 자리가 흐트러져도 날벼락이 떨어졌다. 주로 공격의 대상은 아빠였는데, 수건 한 장이라도 잘못 꺼냈다가는 위협적인 목소리와 매서운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내게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주우면서 신랑에게 불같이 쏘아붙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살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주부도 아니고 수건의 사용여부가 감정에 크게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던 거다. 꼭 엄마처럼.
“제자리에 놓아 줘요”라고 말할 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순간적으로 익숙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당신의 말은 어떤가?
당신은 진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가? 엄마나 아빠의 말, 존경하는 누군가의 말,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동료의 말을 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8.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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