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3. 09:31ㆍ독서후기
- 바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
말 그릇 (2)
- 당신의 말에 당신의 그릇이 보인다 -
Part 3 말 그릇을 키우는 ‘듣기’의 기술
- 말하기를 동경하는 당신에게 -
■ 많이 말한다고 듣지 않는다
직장에서 ‘소통의 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회의실이다. 가장 민감한 사안이 오가고, 약속된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말하기와 듣기의 평소 실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누가 윗사람인지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자리 잡은 위치, 앉아 있는 자세를 보아도 알 수 있고, 가장 분명한 것은 누가 가장 많이 말하는가를 보면 된다. 직업 특성상 고객의 회의시간에 가끔 동참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상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골 멘트를 발견하게 된다.
“모두 말을 안 하니까 할 수 없이 내가….”(기다리지 못하고 말한다.)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내게 생각이 있는데…(한참을 말하고)어때?”
“아. 한 가지만 더.” (그래놓고 엄청 말한다.)
“아, 마지막으로.” (물론 다들 이 말도 믿지 않는다.)
윗사람은 마음이 바쁘다. 빨리 말하고 많이 말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한
다. 이때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질문하는 사람도 없고 반대 의견도 없다.
“네, 알겠습니다.” (진짜일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일까?)
“좋습니다.” (진심일까?)
어떠냐고 물어보면 좋다고 하고, 일거리가 떨어지면 알겠다고 한다. 진심으로 동의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차피 결정된 거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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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건지 누구도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장시간의 회의가 끝나면 팀원들은
“아까 뭐라고 한 거야?” (하도 말이 많아서 알 수가 있어야지.)
“아까 그거 무슨 뜻이야?”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말이야)
“어차피 원하는 대로 할 거면서….” (도대체 회의는 왜 하는 거야.)
회의 시간에 상사가 한 말을 다시 팀원들끼리 해석하고 번역한다. 그러다 보니 오역이 쏟아진다.
나중에 보고서를 받아본 상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이렇게 말했어!”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 말, 똑바로 안 들었지!" (일하기 싫은 거지?)
“다시 말해줄 테니, 똑바로 들어!” (제대로 가르쳐야겠어.)
상사는 이렇게 더 많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많이 말한다고 상대방이 듣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통한 몇 가지의 약속
1. 말을 줄일 것
2. 전달할 내용을 3가지로 한정하고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해서 말할 것
3. 그런 후에 직원들에게 이해했는지 묻고 의견을 들을 것
4.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들을 것
5. 그럼에도 시간이 남으면 일찍 끝낼 것
회의를 할 때면 말하기와 듣기의 조화가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말하기와 듣기의 비중이 5:5가 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설명이나 공유 차원의 대화라면 2:8이 되면 좋다. 대화에서 9할을 듣기만 한다면 관계에서 밀려난 느낌이 들고 ‘이 시간을 버티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 말하려고 해도 더 이상 말하기가 싫어진다.
■ 안전해야 말을 한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럼, 충분히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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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안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말은 쉽게 오고 가지만 진짜 숨김없는 말을 듣기란 쉽지 않다. 과연 오늘 술자리에서 친구가 한 말, 맥주잔을 부딪칠 때 건넸던 말들은 진짜일까.
■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
다섯 살 된 아이가 장난감 정리를 하지 않았다고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났다. 그래놓고 엄마에게 소리친다.
“엄마, 미워! 저리가! 싫어!”
그 말을 듣는 엄마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잘 참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해야 할 일의 한계는 정해주되, “엄마한테 혼나서 속상했구나.”라고 말하며 다독여본다. 그러고 나면 어느 새 아이는 싫다고 하면서도 엄마 품에 안겨온다. 엄마가 아이의 숨겨진 말을 듣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 숨겨진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구는 어른들에게도 있다. 종종 본심과 다른 말을 하면서도 누구 한 명쯤은 ‘말하지 않아도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하는 욕심을 부린다.
연인 사이에 본심과 달리 불쑥 내뱉게 되는 말은 아마 “헤어져”일 것이다.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 지난번 일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괜히 극단적으로 말을 돌려서 한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내가 이렇게 해도 너는 내 마음을 알아줄 거지?’, ‘어서 내 마음을 읽어줘.’하는 바람이 들어 있다. 실상은 나를 알아달라는 외침이다.
듣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내게 서운했구나?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
“더 신경을 써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이렇게 말하면 본심과는 다른 말로 마음을 숨기고 있던 상대방도 결국 진심을 내 보이게 된다.
“야! 내가 이놈의 회사 때려 치고 만다.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생색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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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따로 있냐? 아니, 일한 만큼 대가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죽자고 일만 시키고 모른 척한다고!”
이렇게 강한 척 하는 모습 뒤에 숨겨진, 여리고 여린 본심은 이것이다.
‘인정받고 싶다.’
‘실력을 제대로 보상받고 싶다.’
이것을 상사가 알아주길, 지금 테이블 건너에 앉은 친구만은 보듬어 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교정 반사라는 본능이 있다. 상대방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쳐주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교정반사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상대방은 변화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바꾸려고 할수록 그것에 더욱 저항하게 된다. 물론 교정반사의 밑바닥에도 타인을 돕고 싶어 하는 선의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뜻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계란 ‘편하게 생각하라’고 해서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말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관심을 보일 때 자연스럽게 편해지는 것이다.
◉ 듣기를 오해하는 당신에게
■ 첫 번째 오해 : 경청은 참고 들어주는 것이다
“끝까지 참고 들어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거려요.”
많은 사람들이 경청이란 참고 듣는 것, 눈을 마주치고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경청 그거 뭐 따로 배워야 하나요?” 그냥 잘 들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경청에 대한 가장 심각한 오해다.
경청은 듣기 싫은 이야기도, 관심 없는 말도 그냥 참아내는 기술이 아니다. 경청은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오를 수 없는 가파른 고개다. 말 속에 숨어 있는 진심이란 종종 험하고 깊은 골짜기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들으려면 다양한 능력의 조합이 요구된다.
1. 관찰력 : 표정, 눈빛, 손동작, 제세 등 동작언어를 놓치지 않고 읽어내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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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해력과 상황 판단 능력 :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 는가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의도, 전달하는 뉘앙스가 달라진다.
3. 직관력, 상상력, 추리력도 필요 : 이런 여러 능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 휘되어야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게 경청이다.
사실 우리는 제대로 듣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리모컨을 돌리면서 “말해.”하는 것, 모니터에 코를 박은 채 “무슨 일인데. 짧게 말하고 가.” 라고 하는 것, 휴대폰을 응시하면서 “듣고 있어.”하는 것 모두 ‘듣기’가 아니다. 듣는 척이다.
제대로 들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체력이 저하되어 있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듣기의 기술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집중이 어려워지니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그럴 때는 ‘지금은 너무 지쳐 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면 어떻겠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에너지기 있을 때 제대로 듣고, 에너지가 없을 때는 회복하는 시간을 갖자. 경청은 참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듣는 척하다 보면 금방 들통나게 마련이다.
■ 두 번째 오해 : 경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주는 것이다
경청 기술에 관해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법칙이 있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를 치자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1-2-3 법칙이다. 하지만 이것을 도식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마치 이것이 경청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삽입한다. 1-2-3의 법칙도 이와 동일하다.
끄덕이고, 눈을 마주치고, 맞장구를 치는 것은 말하자면 대화에 삽입되는 적절한 BGM(광고에 사용되는 배경음악)인 것이다. 그러니 이 법칙을 기계적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경청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BGM을 사용하는 게 더 적절하다.
나는 이 1-2-3법칙보다는 내가 ‘조율하기’라고 부르는 기술을 더 추천한다.
조율하기를 잘 하려면 아래와 같은 3가지 기술을 함께 사용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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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라보기
모든 대화는 눈 맞춤에서 시작된다. 말하는 상대방을 응시해야 메시 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
2. 같이 걷기
대화는 산책과 같다. 상대방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가야 한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기술은 끄덕거림이다. 상대방의 말하기 속도와 강도에 맞 춘 끄덕임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 장 확실한 방법이다.
3. 소리내기
“그랬구나.” “정말?” “맞아” 등의 추임새나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처럼 다음 대화를 이끌어 내는 표현들
시선을 맞추고, 보조를 맞추고, 소리로 표현하는 것에도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것을 실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 듣기 실력이 필요한 당신에게
■ 듣기의 재발견
가장 경청하기 어려울 때는 아마도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과 대화를 지속해야 할 때일 것이다. 이곳은 이래서 문제고, 저것은 저래서 문제고, 못하겠다는 하소연을 듣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선배님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기계도 아니고 매일같이 야근하고, 지난주에는 새벽작업까지 했다고요. 회사 사정이 급하니까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당연하게 야근을 요구하는 게 문제예요. 얼마나 직원들을 무시했으면 당연하게 그걸 요구합니까.”
회사의 요구에 대한 반응 유형
1. ‘나도야’ 유형
“그러게 말이야, 나도 죽겠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쩔 수 없지.”
2. ‘미안해’ 유형
후배의 하소연을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받아들이는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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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내가 막아주고 그래야 하는데.”
“아니, 저는 그런 뜻이 아니고….”
3. ‘해결사’ 유형
“그래? 그럼 이번 주 하루 휴가 써.”라고 임시방편을 마련해 주거나 “한 명 더 붙여 줄게 그럼 좀 낫지 않겠어?”라며 해결해 주는 형
그러나 이 방법은 진짜 고민을 듣기 어렵다.
<비폭력 대화>라는 책이 있다. 갈등관계에서도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평화적 대화를 하게 돕는 책이다. 그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공감으로 들어줄 때는, 상대를 돕기 위해 문제해결 방안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전에, 상대방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다.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계속 관심을 둠으로써,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관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제 진심을 끌어올리는 듣기의 기술 몇 가지를 알아보자. 상대의 말에 따라 울지 않고, 미안하다며 물러서지 않고, 성급하게 해결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Fact(사실 듣기) :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Feeling(감정 듣기) : 진짜 감정을 확인한다.
Focus(핵심듣기) :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핵심 메시지 발견,
이른바 3F다. 각각의 기술을 별개로 사용할 수 있지만, 함께 사용하는 게 더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 사실 듣기
사실 듣기란 상대가 말한 내용들을 정리하며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 보기 좋게 디자인하여 전달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 했다가 저 이야기로 건너뛰기도 하고, 군더더기도 많고, 과장하기도 한다. 그럴 때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것이 사실 듣기다. 상대방이 들려주었던 장황한 내용을 짧게 한 두 문장으로 다시 들려주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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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자의적인 해석을 붙여서 말하기보다 상대가 말한 표현을 반복해서 말하는 게 좋다.
이것은 맥락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도 있다. ‘아 내가 그렇게 말했나? 사실은 이런 뜻이었는데.’하며 방향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공감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 란 말이지?”
“잠시만, 내가 이해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데.”
“나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아?” 등......
이 기술은 특히 비즈니스 대화에 유용하다. 내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떻게 이해했는지 정확히 확인하는 게 비즈니스 대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회의시간이나 미팅 때 사실 듣기 기술을 사용하면 오해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회의와 미팅에서 서로의 위치에 상관없이 서로의 대화를 확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보자. 물론 윗사람이 먼저 제안하는 게 좋다. 이것이 문화로 정착되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줄어들게 된다.
■ 감정 듣기
감정 듣기란 말하는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사건과 상황에는 감정이 숨어있다.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1차적인 감정, 즉 가장 먼저 일어나는 직관적이고 솔직한 감정을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때, 듣는 사람이 상대가 보여주는 눈빛, 표정, 목소리, 자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감정을 읽어내고 적절하게 대응하면 비로소 숨어있던 감정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동안 많이 지치고 서운했겠어.”
계속되는 야근과 부당한 대우에 씩씩거리는 후배를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서운한 마음을 알아본 후 이렇게 반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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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마음은 어떨까. 아마 상대방이 콕 짚어준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진짜 위안을 받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감정은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다가도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주면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떠난다.
“당황스러웠지. 정말 놀랐겠다.”
“속상했지. 마음이 힘들었겠어.”
이렇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면 감정은 더 이상 마음을 휘젓지 않고 사라진다. 반면에 존재가 확인되지 못한 감정은 출구를 찾을 때까지 마음 어딘가를 떠돌면서 계속 생채기를 낸다. 그래서 슬픈 건지, 아픈 건지, 부끄러운 건지 모른 채 살아가면서 점점 더 감정에 무뎌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솔직한 감정 한 마디를 드러내지 못해서 그렇게 불필요한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롭고 힘들어요, 위로해 주세요.”라는 말을 못해서 누군가를 욕하고 세상을 비난하며, “내가 부끄럽네. 미안해. 후회하고 있어." 라는 말을 못해서 누군가를 욕하고 세상을 비난하며, ”내가 부끄럽네. 미안해. 후회하고 있어.“라는 말을 못해서 상대를 질책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되고 싶다면 이 감정 듣기를 충분히 잘 활용해야 한다.
■ 핵심 듣기
핵심 듣기란 말하는 사람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사실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속마음이나 핵심 메시지를 발견하며 듣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사건 자체가 불러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돼 그 너머에 있는 본심을 챙기지 못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잘해보고 싶었던 긍정적인 의도기 있었기에 실망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가졌던 기대나 목적, 의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순간의 감정에만 매몰된다.
부정적인 감정은 ‘출입금지’ 말뚝을 세워 놓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감정들을 해소하려면 감정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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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새롭게 내줘야 한다.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로의 방향을 틀어줘야 한다.
그렇게 길을 새롭게 내는 작업이 바로 핵심 듣기다. 핵심 메시지를 찾아서 적절한 반응을 해주면 부정적인 감정이나 말이 멈춘다. 더불어 새로운 기대를 일으킬 수 있다. ‘못하겠다. 안되겠다. 힘들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감정을 막으려고 하지 말고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보자. 뒤집어서 들어보는 거다. 그래야 그 사람이 더 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긍정적인 의도’를 갖고 있다. 열심히 살고 싶고, 주어진 것들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후배에게 핀잔을 주는 선배라고 해서 애초에 괜찮은 선배가 되고 싶은 바람이 없었을까?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질러댄 엄마라고 해서 좋은 엄마가 되려는 다짐이 없었을까?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는 부부라고 해서 멋진 커플이 되고 싶은 기대가 애초부터 없었을까?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도록 알아봐주는 것이다. 첫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자신조차 소홀하게 대할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주면, ‘긍정적 의도’의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 연습하기
이번에는 다른 상황을 통해 3F(사실 듣기-감정 듣기-핵심 듣기)를 연습해보자.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서 각 팀의 대표가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난 후에 후배가 와서 이렇게 불만을 늘어놓는다.
“다들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협업을 할 거면 맡은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는 둥 마는 둥 한심해 죽겠어요.”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주는 게 좋을까? 후배를 OK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3F 관점을 사용하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 Fact(사실 듣기), Feeling(감정 듣기), Focus(핵심 듣기)
* 3F 기술의 예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오지 않았나 보네.” - 사실 듣기
“답답했겠어. 화도 나고.” - 감정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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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이번 프로젝트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 핵심 듣기
‘칼로저스’는 경청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깊이 있게 듣는다는 것은 단어나 생각, 감정, 개인적인 의미, 심지어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 밑에 깔려 있는 의미까지 듣는다는 뜻이지요. 때때로 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 속에서 그 사람의 겉모습 아래 깊이 파묻혀 있는 인간적인 절규를 듣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발굴하듯이, 탐험하듯이, 채집하듯이 사람의 감정과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집중력과 노력과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듣기’ 능력이 큰 사람은 말 그릇도 클 수밖에 없다.
친구의 이야기에 쉬지 않고 대꾸하며 자기 말을 이어나가는 사람을 볼 때, 팀원의 말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여는 상사를 볼 때, 아끼는 후배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며 “나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걱정돼서 그렇지.”라며 위안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속상하다.
Part 4 말 그릇이 깊어지는 ‘말하기’ 기술
-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까? -
■ 질문이 불편한 이유
사람들에게 “당신은 충분히 질문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면 모두들 주춤한다. 말하기라면 자신 있다던 사람도 ‘질문’이라고 하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특히 회사나 직장처럼 업무집단일수록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질문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지요. 질문을 한다고 해도 대개 내 생각과는 다른 대답들이 나와요. 피곤한 일이죠. 그 뒷감당은 질문한 사람이 해야 하잖아요. 특히 질문 하고 난 후 문제를 공유하게 되면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같죠. 모르면 모를까. 알고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그냥 지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질문은 ‘관여’를 의미한다. 질문하게 되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어떤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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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 나올지도 알 수 없다. 불만과 불평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고, 다른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올 수도 있으며, 감당하기 어려운 요청이 돌아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윗사람들은 질문하기 보다는 지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아직까지 우리 문화에서 질문은 여전히 하나의 ‘테스트’로 받아들여진다. 상사가 질문하면 직원은 당혹스럽다. 질문이 실력을 검증하는 관문으로 느껴진다. 그것으로 역량이 평가되고 고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며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회의시간에도 최대한 멀리, 눈에 띄지 않는 명당자리를 서로 차지하려 든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책 속에 얼굴을 파묻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질문하지 말고 그냥 말해주면 좋겠어요. 어차피 알면서 물어보는 거잖아요. 답을 하면 뭐해요. 결국엔 혼나는 걸요. 뭐.”
질문하는 스타일 또한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질문들을 살펴보면, 물음 자체가 강압적인 것들이 많다. 녹슨 칼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질문은 생각을 자극시켜야 하는데, 그런 질문들은 마음 속의 불안과 위협을 자극한다.
“너 잘했어, 잘못했어?”
“왜 이런 식으로 했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파악은 된 거야?”
“정확한 데이터가 뭐야? 확실해?”
“그래서?”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여 질문이라면 질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 질문하지 않는 삶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난다. 오늘 아침 자명종이 울릴 때 분명 당신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몇 시지? 더 자도 될까?’
그리고 답을 선택했다. 출근할 때도 당신은 질문을 던졌다.
“도착하면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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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 퇴근하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그리고 잠드는 직전까지 자신과 계속 질문을 주고받는다.
질문하지 않는 삶은 없다. 다만 질문들이 내 안에서 시들어 가는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는가. 또 쌓아온 질문들이 한 방향으로 정리되어 가고 잇는가. 아니면 산산이 흩어져 버렸는가만 다를 뿐이다. 질문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 왜 우리는 질문해야 하는가
■ 질문은 마음의 열쇠
질문의 유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도 있지만, 성장을 돕기 위한 질문들도 있다. 의심을 풀어내기 위한 질문들도 있지만,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질문들도 있다. 또 과거를 추궁하는 질문도 있지만 미래를 탐색하는 질문도 있다. 어떤 질문이 더 좋고 나쁜가는 요리사와 조리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리된 질문을 제대로 사용하면 훌륭한 낚시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질문들은 월척을 낚을 확률이 높다.
한창 살림하고 애 낳고 공부하던 시절에는 도통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었다. 서로 ‘밥 한번 먹어야지’ 말만 하면서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5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로 했다. 그 친구도 워킹맘이라 서로 이동 경로를 맞추어 지하철 역 주변에서 2시간 정도 폭풍 수다를 떨기로 했다. 눈물겨운 만남이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난 뒤 친구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남편의 에피소드로 시동을 건다. 결혼 7년차인 친구는 남편이 말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해 주는 것은 없다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벌써 30분이 지났다. 그렇게 남편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시어머니 이야기로 넘어간다. 아까보다 조금 더 격앙되어 보였다. 벌써 한 시간…….
물론 알고 있었다. 친구가 이런저런 고민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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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에 대해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가 지금 불행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고 착각하고 연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친구는 그저 안전한 내게 마음껏 창고를 개방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나고, 일어설 때가 되자 친구는 아쉽다면 손을 부여잡고 지하철 개찰구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에 핸드폰에 친구의 쪽지가 날아왔다.
“내게는 만나면 힐링이 되는 사람이 있다. 상대를 보며 내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위안 삼지도 않게 되는, 온전히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 그래서 빡빡한 내 삶에 용기를 주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잡게 해주는 사람. 특별히 내게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는데도 그냥 수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 지는 사람.”
친구의 마음이 담긴 글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생각했다. 주의 깊게 듣고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굳이 힘내라고, 근사한 말을 보태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나 첫 마음이 있다. 잘해보고 싶은 기대가 있고, 다시 일어서고 싶은 열망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친구에게>
“지난번에 준비하고 있다는 일은 잘 되고 있어?”
“요즘 제일 살맛 나는 일은 뭐야?”
<배우자에게>
“당신은 언제 자신이 근사해 보여?”
“당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야?”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너, 이번에 시험목표 달성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혼자 힘으로 해 내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 줄까?”
질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을 갖는다. 작은 설렘이나 희망을 심어주는 그런 질문이면 어떤 것이든 괜찮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 과거에 했던 것, 앞으로 바라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게 질문을 던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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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와 책임 높이기
EBS ‘놀이의 반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 5세 아동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실험을 했다.
<1그룹> 선생님이 놀이를 지정해준다.
‘지금부터 쌓기 놀이만 하는 거예요. 알았죠’
<2그룹> 권유하기
‘자금부터 쌓기 놀이를 하면 좋겠어요. 어때요?’
<3그룸) 선택권을 준다.
‘어떤 놀이를 하고 싶어요? (대답을 듣고) 그럼 지금부터 그 놀이를 하면 돼요.’
그리고 15분 후 교사가 다시 들어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놀이를 계속하고 싶은 친구들은 계속하고요. 바꾸고 싶은 친구들은 새로운 놀이를 해도 좋아요.”
<1그룹> 선생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놀이를 바꾼다.
<2그룹>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놀이의 산택권이 교사에게 있었기 때문
<3그룹> 처음 선택한 놀이를 계속했다.
어린이들은 놀 때 주도권과 자율권을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이와 놀아준다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개척하도록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아이는 그 놀이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자율성이다. 내가 선택한 것을 최대한 누리고자 하는 성향. 사람들은 자율적인 동기에는 반응하지만 동기를 통제하면 딴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질문은 바로 자율성의 대화법이다. 끌고 오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 스스로 걸어오게 하는 방식이다.
“이 일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순서대로 일하면 좋을까요?”
“당신이 가장 자신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다르게 해 보고 싶죠?” - 15 -
말은 출처가 중요하다. 누가 말을 했는가에 따라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결정된다.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대답하기 위해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참여가 이루어진다.
질문은 정해진 방향이 있는 게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다. 동료끼리 혹은 선배에게도 질문은 분명 학습의 기회가 된다. 그것은 좋은 자극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 방어나 권위의식 등은 내려놓아야 하지만 말이다. ‘선배니까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상사에게 먼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 주의하기
질문은 평생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하기 기술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바로 ‘당장 써 먹지 말 것. 결과를 바로 기대하지 말 것’이다.
“오늘 배운 것 바로 써먹지 마세요.”
‘질문 하는 법’을 연습하고 나면 꼭 이렇게 부탁한다. 그럼 다들 어리둥절해 한다.
“써먹지 말라고요?”
“사실 이렇게 교육을 끝내고 나면 참여자들 주변 분들이 내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질문 교육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왜 그럴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감을 잡고 웃기 시작한다. 워크숍에만 다녀오면 배운 것을 자꾸 써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어디 다녀오더니 또 저러는구먼.’ 하고 생각한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또는 아직 어린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식으로 대화하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내가 뭘 도와줄까?”하고 말한다면 어떨까. 아이들은 아마 무서워서 덜덜 떨지도 모른다.
갑작스럼게 의욕을 보인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 속도에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네?”, “글쎄요.”, “그게…” 하면서 꾸물거린다. 그럼 질문한 사람은 속이 터진다. ‘이것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하면서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러면 사람들도 ‘그럼 그렇지’하고 실망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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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할 때에는 아래의 3가지 사항을 꼭 염두에 두자.
1. 질문하고 나면 반드시 기다릴 것.
절대로 먼저 답하지 말 것.
2. 답의 수준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인정할 것
3. 답변을 살리는 피드백을 추가할 것(아주 간단히)
질문을 하면 상대방의 답을 평가절하하지 말아야 한다. “그깟 것도 생각이라고 하냐.”,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라도 흘려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좋아!’, ‘대단해!’, ‘훌륭해!’ 같은 감탄이 아니어도 좋다. 생각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다음과 같은 피드백으로 상대방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쉬운 질문이 아닌데 말해줘서 고마워.”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할 지 알 수 있게 되었어.“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네.”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어.”
그리고 필요하다면 추가적으로 피드백을 할 수 있다.
“당신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 가지만 더 고려하면 좋을 것 같아.”
“그 생각을 발전시키면 ......할 수 있겠어.”
“그것을.... 관점에서 보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가
■ 질문의 기술
잠시 당신의 질문 실력이 얼마나 높은지 생각해 보자. 일할 때, 가정에서, 개인적인 모임에서 주로 어떤 질문을 많이 사용하는가? 당신이 하는 질문들은 상대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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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했어?”, “언제까지 되는 거지?”, “결론이 뭐야?”,
“누가 그랬어?”, “왜 그랬어?”
책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을 보면 살아가는 동안 어떤 질문을 자주 하는가에 따라 ‘학습자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심판자의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고.
심판자의 길로 이끄는 질문
뭐가 잘못됐지? 누구 탓이지? 내가 상처받겠지.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고 실망스러울까?
학습자의 길로 이끄는 질문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뭘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뭘까?
이 일에서 유익한 것은 뭘까? 내가 배울 점은 뭘까? 어떤 일이 가능할까?
심판자의 질문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삶에서 문제를 먼저 찾는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도망갈 곳을 먼저 찾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르고 탓하는 동안 상처와 후회. 실망을 맛본다. 반대로 학습자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문제 안에서도 교훈을 발견한다. 자신의 책임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남은 기대를 만난다.
나는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할 때 어떤 질문을 선택하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는가?
심판자의 질문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상황을 다르게 보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 까?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단정하기는 어렵다. 질문자가 ‘이건 꽤 좋은 질문이야.’하고 생각했더라도, 질문을 받는 사람만이 최종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질문은 상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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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질문
열린 질문이란, 질문 받는 사람이 풍성한 생각과 의견을 꺼낼 수 있도록 설계된 질문을 말한다. 즉 많이 말하고 길게 떠들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다.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떠돌던 말을 마음껏 꺼낼 수 있도록 잘 다듬어서 질문 하는 게 좋다.
열린 질문의 반대쪽에는 ‘닫힌 질문’이 있다. 예를 들어 ‘네, 아니오.’나 단답형으로 종결되는 질문이 여기에 속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깊이 들어 보겠다는 의지 대신 형식적으로 질문하거나 스스로 낸 결론을 재확인하는 질문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닫힌 질문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힘이 부족하다.
닫힌 질문의 예
별일 없지? 보고서 준비는 잘 하고 있나? 확인해 봤어?
잘 할 수 있지? 더 말하고 싶은 거 있어?
열린 질문의 예
가장 좋았던 일은 뭐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뭐지?
우리가 공유해야 할 것은 뭐지? 성공하기 위해 더 점검해야 할 것은 뭐지?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뭐가 있겠어?
■ 가설 질문
가설 질문이란, 현재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늘 직위나 위치, 시간과 예산, 인력과 경험부족 때문에 현재를 넘어서기가 어렵다고 한다.
‘당시의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벽에 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에는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한 걸음 떨어져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입장, 한계보다는 현재의 충분함을 의식하면서 해결책을 다시 모색하는 게 도움이 된다.
가설 질문의 반대쪽에는 ‘현재 질문’이 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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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하는 형태다. 가설 질문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질문이라면, 확인 질문은 이미 벌어진 일을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질문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도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질문일 것이다.
현재 질문의 예
어디까지 진행됐지?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뭐지? 핵심은 뭐지?
필요한 의사결정 사항은 뭐지? 잘 되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뭐지?
가설 질문의 예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다르게 해보고 싶어?
만약 무조건 성공하게 된다면, 어떤 요인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프로젝트를 이끈다면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할까?
만약 우리에게 예산이 충분하다면 어떤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
만약 너에게 시간이 충분하다면 무엇을 더 고민해보고 싶어?
■ 목표 지향 질문
목표지향 질문은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예상하게 되는 가능성과 기대에 대하여 묻는다. 목표 자체가 버거울 수 있고, 시장 환경과 내부 시스템이 열악하고, 협력과정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지만 목표 지향 질문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질문은 결국 변화를 돕는 도구다. 이곳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다리다. 목표지향 질문은 변화를 일으킬 때 필요한 에너지를 북돋아준다.
'해서 뭐해, 어차피 안 될 거야.' 하는 마음 대신, '그래도 다시 해 보자'는 마음을 일으키려면 현실이 어려워도 그 안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목표지향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힘을 제공한다. 문제인 것, 안 되는 것에만 빠져 있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가능한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하다 보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처음부터 '문제가 뭐지?', '안 되면 어떡할래?'와 같은 장애 질문을 하게 되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심리적인 위협을 느끼면 사람은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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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판을 읽기 어려워지고, 문제를 뚫어지게 바라보느라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한 번 발목이 잡히면 늪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다음 도전이 부담스러워진다.
■ 감정 질문
감장 질문이란, 사람의 마음과 심정에 초점을 맞추는 질문이다. 요즘 팩트 폭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실로 폭행한다는 의미, 즉 사실적인 근거를 내세워 상대방의 정곡을 찌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팩트 폭행은 감정과 정서를 무시하는 행위다. 팩트 이면에 숨겨진 정서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 기술이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려면 사실 뒤에 감추어진 진짜 마음, 사실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을 풀어내야 한다.
감정 질문은 우리에게 성찰하는 시간을 준다. 감정은 이성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감정에 대해 묻고 대답하다 보면 자신도 몰랐던 마음과 감정을 돌아보게 되고 그럼으로써 치유가 일어난다. 감정 질문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
반면 사실 질문은 근거와 사실, 데이터, 프로세스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숫자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다.
사실 질문의 예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본다면? 그 중에서 확인된 사실은 무엇이지?
필요한 데이터는 무엇이지? 검증이 필요한 자료는?
개선이 필요한 프로세스는?
감정 질문의 예
그때 어떤 심정이었어? 진짜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뭘까?
주저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어떤 감정일까?
무시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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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사람 사이에 '말'이 있다
■ 말 비워내기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너무 많은 말을 해서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것부터 피해야 한다. 늙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는 잘못 중에는 말하기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도 포함된다. (중략) 젊은 사람들 앞일수록 조심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그 조심성은 존중의 수준으로까지 격상될 필요가 있다. 나이든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과격하거나 불경스러운 말 한마디는 반듯한 사고를 갖춘 젊은이의 빈축을 살 뿐이다.
즉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말을 욕심내게 된다는 뜻이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도 넘치는 말을 조절하지 못해 그 진가가 묻힐 때가 있다.
말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의 말하기 기술이다. 적절한 순간에 침묵하고, 경청하고,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말하기 기술인 셈이다.
해를 넘길 때마다 나이와 주름살을 확인하듯 자신의 말 그릇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
이 책은 '왜 우리는 나이 들어서도 성숙한 대화를 하지 못할까?'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인격이 표정 안에 고스란히 새겨지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경험이 많아지고 삶의 연륜이 더해질수록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는 '몰라서' 하는 말이 있고, '알면서도'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몰랐다'며 피해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무게감에는 말에 대한 책임감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대화에는 각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그 몫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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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대화의 보기
<선배와 후배 사이>
선배 : 지난번에 말한 보고서 준비됐어?
후배 : 네? 아직 안 됐는데요.
선배 : 내가 몇 번을 말했니. 기한 지켜야 한다고 했잖아.
후배 : 죄송해요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자리에 안 계셔서…그리고….
선배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엄마와 자녀 사이>
엄마 : 너 방 치웠니?
자녀 : 아직.
엄마 : 방이 그게 뭐야? 그래서 공부가 되겠어?
자녀 : 제가 알아서 할 게요.
엄마 : 알아서 하는 애가 그래?
자녀 : (쾅)
사실상 실패한 대화는 그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그 원인이 있다. 즉 앞의 상황에서라면 선배와 후배, 엄마와 자녀가 공동 책임자다. 대화는 돌고 도는 순환관계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대화의 연속성 - 마침표의 원리'로 설명한다. 순환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원인과 결과는 맞물려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이 상대방에 있다고 원망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가까운 관계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신호등 없는 교차로와 같다. 잠깐 멈추라는 '빨간불'도 조심해 달라는 '노란불'도 없기 때문에 서로가 무심하게 선을 넘는다. 그래놓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나오냐?"며 화를 내거나 "너는 어째서 그런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며 상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이때 반복되는 충돌을 피하고 싶다면 어렵지만 '쟤 때문이야' 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른의 대화란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양보하면서 선을 지키는 것, 설령 사고가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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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절반의 책임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스스로 책임질 마음 없이 상대방에게만 책임을 지우려고 하면 대화는 점점 소모전이 되고 관계는 악화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를 '상대방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이해받기'위한 문제로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 사람인지, 상대방의 진가를 발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보다는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몰라 줄 수 있어?'에 집중한다. 상대방이 그때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이 내 기분을 어떻게 상하게 했는지에만 집중한다.
대화능력이 있는 사람은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관계를 바라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잘못을 따지는 입씨름에서 벗어나, 말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따라 다른 통로를 발견한다. 말에 매몰되지 않고 더 높은 관점에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버거운 상대를 만나더라도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따뜻한 배려를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해받으려 하기 전에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 말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인성과 인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그것을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알아보는 것, 말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 나와 연결 되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말을 두루뭉술하게 한다. 마음과 대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 다루기를 어려워하고, 타인의 감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애매하게 말하고, 돌려 말한다. 특정한 감정을 억누르거나 과도하게 부풀리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을 가지기 쉽다.
'억울함'에 치우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왜 나만 이러는 거야'하는 심정이 된다. 자신을 위한 안쓰러움과 연민이 결국 세상에 대한 부정과 왜곡 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깊이 있는 교류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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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격려하는 연습이 안 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기란 어렵다.
잘나가는 친구나 선배들을 볼 때마다 어릴 적부터 비교 당했던 형 생각이 나서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사람, 엄마와 대화할 때 마다 나를 외롭게 방치해두던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화가 난다는 사람 배신하고 떠난 누군가 때문에 새롭게 만난 이들에게 마음 열기 어렵다는 사람, 모두 상처 입었을 때 자기를 안아주고 다독이는 과정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당신의 말 그릇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기억들을 꺼내어 보길 바란다. 각각의 기억을 햇볕에 말리고, 아직 꺼내보기 힘든 기억은 잠시 쉬게 놔두면서 천천히 자신과 만나보자. 그렇게 마주하고 나면 이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밖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던 거울로 다른 사람을 비추면서, 말로 사람을 위로하고 안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 관계의 3가지 법칙
첫 번째 관계의 법칙 : 사람은 누구나 '나'를 사랑한다
가족, 돈, 명예, 건강, 등 사람들이 살면서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그 중 관계를 맺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사람은 누구나 나를 사랑한다'는 법칙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 자신의 입장 옹호
- 나니까 그런 생각도 하는 거야 :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 내가 그럴 줄 알았어 : 말하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음
- 통계는 통계일 뿐 나와는 상관없음 ; 부정적인 사실에서 나는 별개라는 태도 즉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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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잘난 척하거나, 불필요하게 공격적이거나, 불편할 정도로 폐쇄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중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아끼듯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매우 정당하다.
두 번째 관계의 법칙 :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다
알프레드 아들러( Alfred Adler) 는 <아들러의 인간이해>라는 책에서 "인간은 항상 자신의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동일한 목적의 적용방법을 도출해 낸다. 그의 모든 경험은 이미 만들어진 행동 양식에 맞춰지고 그의 생활 모형을 강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환경을 배제할 수 없고 인간의 변화에 있어서는 겸손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반복된 경험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된다. 따라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누군가를 비판하려 들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인격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노력,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충돌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관계의 법칙 : 누구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 도망가지 못하고 오래 봐야 하는 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익숙해서인지. 당연해서인지 거르지 못한 말이 쏟아지고, 그 찌꺼기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쌓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해가 깊어지고 앙금이 고인다. 주로 부부 사이나 부모자식 사이, 오랜 친구 사이나 선후배 사이 같은 막역한 관계에서 그런 갈등은 쉽게 벌어진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다. 너무 붙어 있지도, 그렇다고 동떨어져 있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말이다. '따로 또 같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평생 동안 두 가지 힘의 균형을 맞추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개별성과 연합성'이다. <부부 다시 사랑하다>의 저자이자 상담치료사인 린다 캐럴(Linda Carroll)은 인간에게 필요한 두 가지의 영혼을 두고 "결합에 능한 영혼"과 "거리두기에 능한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삶이란 이 두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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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보살피면서 함께 가는 여행이다. 자기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야 상대와 화합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내면에 안정감이 생기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구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이 법칙은 누군가를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어떤 마음에 의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너를 위한 거야."라면서 바닥까지 퍼주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너무 빨리 지쳐버린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속상하다는 말만 쏟아낸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 놓고 기대할 것이 없다며 너무 빨리 돌아서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지나치게 붙어 있으면 형태가 일그러져 보이기 쉽고 너무 멀리 있으면 자세하게 볼 수 없다. 부부든, 부모든, 선후배든, 친구든 서로가 맺고 있는 거리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지 살펴야 한다. 내가 다가서는데 상대가 물러선다고 속상해 하지 말자. 가장 최적의 위치를 지켜야 서로가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그것을 존중해야 손을 놓지 않고 멀리갈 수 있다.
■ 씨름의 방식, 왈츠의 방식
요즘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즐겨 보시던 ‘씨름’이 떠오른다. 씨름에서 두 사람은 동지가 아니라 적이다. 서로의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그 관계에서는 한 명이 이기면 나머지 한 명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
반면 왈츠는 다르다. 왈츠는 동행이다 버티지 않고 함께 간다. 파트너가 앞으로 몇 걸음 나오면 상대방은 그만큼 물러서서 균형을 맞춘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보조를 맞추고, 한 명이 화려한 동작을 구사할 때 나머지 한 명은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름다운 선율에 맞추어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나간다.
사람들 중에도 ‘씨름의 관계’를 맺는 이가 있고, ‘왈츠의 관계’를 맺는 이가 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고, 경쟁보다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씨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말을 무기로 휘두른다. 그것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한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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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왈츠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말은 방향을 가리키는 도구다.
말 그릇을 다듬는 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살면서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거나,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거나, 대단한 업적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 그릇을 매만지고 보듬는 일만큼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움직임을 의식하고, 살피고, 책임을 지는 일이 곧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 아픈 말도, 당신을 겨냥한 채 작정하고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설령 당신의 눈에 그렇게 보였더라도 말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처 많고 두려움 많은 존재들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준비되지 않은 말을 서둘러 꺼내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서투르고 또 한참 서투르다.
당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응원한다.
■ 에필로그 : ‘말’은 마음을 따라 자란다
얼마 전 SNS에 ‘노숙자의 운명을 바꾼 작은 관심’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미국 뉴햄프셔에 사는 한 여인이 도넛 가게에서 노숙자를 보게 되었다. 1달러를 들고 무언가를 사먹기 위해 서성거리던 노숙자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결국 그에게 커피와 베이글을 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노숙자는 마약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연,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그녀에게 털어 놓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악필이어서 미안하다면 영수증에 급하게 무언가를 작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가 남긴 영수증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오늘 자살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당신 덕분에 그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나는 잠간 그 여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노숙자를 보는 순간 느낀 연민의 감정을 모른척 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불안감도 섞여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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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강한 감정을 찾아내고 인지하고 용기 있게 그것을 드러내 보였다. 노숙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았다. 자기 삶의 공식을 기준 삼아 비난하거나 조언하지 않았다. 노숙자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다.
말은 자란다. 어릴 적의 나는 ‘자라게 하는 말’을 많이 듣지 못했다. 하지만 듣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면에 상처 많은 어린 아이를 숨겨두고 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더디기는 했지만 조금씩 성장했고,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돌아볼 만큼 넓어졌다. 이제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삶의 과제들이 말 그릇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담금질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사소한 책임을 다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시간들 틈에서 내 말 그릇이 또 조금씩 자라날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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