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배우는 시간

2024. 10. 18. 15:46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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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배우는 시간

- 말이 넘쳐나는 세상 속, 더욱 빛을 발하는 침묵의 품격 -

■ 코르넬리아 토프(Cornelia Topf) 지음

0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독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0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메타토크’의 대표

0 정치경제학, 심리학, 음성학, 사회학 공부

0 독일 유수한 기업에서 전문코치, 트레이너, 강연가로 활동

0 저서 : <스몰토크>, <똑똑한 커뮤니케이션> 등

■ 장혜경 옮김

0 연세대 독어 독문학과, 동 대학 박사과정

0 독일 학술교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 전문 번역가로 활동

0 번역서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설득의 법칙, 오노 요코, 변신 등

■ 시작하며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방송마다 똑같은 뉴스를 반복하고, 스마트폰은 쉬지 않고 울려대고, 버스에서는 쉴 새 없이 라디오가 돌아간다. 집에서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회사에서는 동료들이 쉬지 않고 떠든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정치가와 기자들까지 눈사태처럼 말을 쏟아낸다. 그러니 어찌 정신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말의 홍수에서 살고 있다.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떠들지만 정작 필요한 말은 별로 없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힘이 빠지기 일쑤다. 더 심각한 건 대부분이 이 공허한 수다에 전염되어 이게 무슨 사태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자세히 지시해도 내 의중을 이해하는 직원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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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인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이런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을 꼭 보게 된다. 부모라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이다. 방 좀 정리하라고 수십 번도 더 말했건만 아들은 TV만 보고 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문제다. 아들이 TV 앞에 앉아 있는 건 당신이 수십 번도 더 말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미 경험상 당신이 수십 번 이야기할 때까지 청소를 미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여덟 살짜리에게도 안 통한다. 부모가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침묵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Hans Carossa)의 명언이 옳다면 우리의 정치가들, 상사들, 방송인들, 교사와 친척들은 놀라운 정도로 무지하다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결론을 말하자면, 침묵의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침묵할 줄 안다면 인격의 성장과 정신적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종교에 묵언 수행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침묵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면 역설적이게도 더 세상에 다가갈 수 있다. 침묵은 인간에게 힘을 주는 최고의 원천인 것이다.

◎ 1장 말 비우기 연습

“함께 말을 나눌 뿐 아니라 침묵할 수도 있는 친구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 크리스티나 프란체, 발레리나

■ 말은 할수록 힘이 떨어진다

0 잠깐의 침묵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정지 상태를 뜻하는 정적은 사실 무(無)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역동적인 상태보다 더 강력하다. 실재하는 아스피린과 달리 정적은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효력이 있다. 그리고 모순되지만 강력한 정적의 효력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다. 대화 도중 잠깐씩만 입을 다물어 보라.

한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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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딸아이가 숙제는 안 하고 TV만 보고 있더라고요.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냥 한 번 흘겨보기만 했죠. 그런데 5분 정도 지나니까 아이가 TV를 끄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만약 제가 TV를 끄라고 잔소리를 했다면 숙제를 하기까지 적어도 30분은 더 걸렸을 거예요. 또 엄청 싸웠겠죠.” 30분의 스트레스가 5분으로 줄었다. 혹할 만한 일 아닌가?

침묵은 제대로 사용하면 반항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아이에게 TV를 끄라고 지시하면 아이는 반항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반항심 때문에 반항할 뿐이다. 반대로 엄마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이의 마음에서 양심과 건강한 이성이 굼틀거리게 된다. 적어도 그럴 기회가 만들어진다.

‘말은 적게, 침묵은 많이’가 적당한 균형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침묵에도 양극단이 있다. 많아도, 부족해도 효과는 떨어진다.

별것 아닌 일에도 몇 시간이나 비난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은 말에 힘이 없다.

■ 일단 뱉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들

0 사람들은 일단 뱉고 나서 후회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말을 좀 아끼라는 지적을 받아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귀로 들리는 것만 효력이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이들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이 입 밖으로 낸 것보다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니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만이 입을 다물 수가 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면 놀랍도록 조용한 세계에 들어설 수 있고, 상대와 나 모두에게 예상치 못했던 효과가 나타난다.

o 떠들기만 하면 들을 수가 없다

한 여성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 옆자리 동료와 커피를 마실 때면 주로 상사나 동료 험담을 했어요. 그런데 어제는 그냥 조용히 동료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더니 어느 순간 험담이 고백으로 바뀌더라고요.”

몇 년 동안 매일 함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던 동료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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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팔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데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이게 다 그동안 너무 많이 떠들고 너무 적게 귀를 기울인 탓이다. 입을 다물어야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혼자 끙끙거리며 힘들어하던 동료는 고민을 만들어준 상대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0 갈등 상황일수록 침묵은 효과가 크다

미국의 영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동의가 없이는 아무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침묵의 효과를 아는 한 여성 팀장이 말했다. “언쟁이 건설적인 차원을 벗어나면 무조건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그게 최고예요. 말 안 하는 사람과 한번 싸워보세요. 싸움이 되나.”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 상대는 밖으로 나가버린다. 바람직한 결과다. 또는 상대도 진정하고 보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대화를 하게 된다. 더울 바람직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상황일 때 주의할 것이 있다. 침묵에는 건설적인 침묵도 있고 파괴적인 침묵도 있어서 어떤 침묵은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상대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거나 말없이 노려보는 침묵은 좋지 않다. 입은 다물더라도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달돼야 한다.

 

■ 대화에서 침묵이 효과적인 이유

0 침묵은 상대를 당황하게 한다.

상사와 매일 언쟁을 한 직원이 있다고 해보자. 500번째 싸우는 날 상사는 부하직원이 앞선 499번처럼 자신의 말에 토를 달며 반박할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상대가 통 말을 안 한다. 상사는 당황한다. 그리고 불안해진다. 불안하면 브레이크를 밟기 마련이다. 그렇게 침묵은 갈등 상황에 바람을 빼는 역할을 한다.

■ 침묵은 생각을 자극한다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아빠를 본 적이 있다. 아이는 5 미터 앞에서도 골대에 골을 못 넣는 수준이었다. 아빠는 아들을 가르치느라 거의 숨이 넘어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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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이었다. 아이는 연방 공을 찼지만 공은 계속 빗나갔다. 아빠는 얼굴이 벌게졌다.

지친 아빠는 나중에는 거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이의 실력이 점점 좋아졌다. 심지어 스스로도 놀란 듯 “엇! 내가 어떻게 넣은 거지?”라며 의아해했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아빠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했는데?” 라고만 물었다. 아이는 공을 찰 때 상체를 숙이려 했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말없이 엄지척을 했다. 그날 그 아빠는 모든 엄마와 아빠, 모든 남자와 여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배운 셈이다.

침묵은 상대의 지성은 물론이고 책임감과 이해심, 관심, 참여까지도 활성화시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진리를 깨우친 사람은 많지 않다.

 

■ 침묵은 최고의 코칭이다

한 팀장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부하직원이 잘못을 하면 불러서 야단을 쳤습니다. 변명하는 대신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맹세할 때까지 계속 훈계를 늘어놓았지요. 그런데 한 번은 방법을 바꾸어 역지사지의 방법을 써봤습니다. 부하직원을 불러 제 의자에 앉히고는 저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자네가 팀장이고 내가 자네와 같은 실수를 했다면 나에게 뭐라고 하겠나‘하고 물었지요.”

……. 결과는? 부하직원은 상사에게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자문과 코칭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코칭은 조언을 줄이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 침묵은 최고의 협상을 이끌어낸다

협상을 잘하는 사람은 말수가 적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를 싣는다. 수다쟁이들보다 두 배는 더 자주, 더 길게 침묵한다. 그리고 두 배는 성공한다.

협상 경험이 많은 전문가가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말이 많은 사람은 할 말이 적은 겁니다. 제가 진짜 두려워하는 상대는 침묵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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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인 보에티우스(Boethius)는 이렇게 말했다.

“침묵했더라면 철학자로 남았을 텐데 ….”

철학자들은 생각 없이 떠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세상에는 철학자가 거의 멸종했다. 최근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 침묵은 동기를 부여한다

내가 아는 동기부여 전문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말이 적다. 심지어 그들은 말을 하는 시간보다 입을 다무는 시간이 더 길다.

한 펌프회사에서 감동적인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직원들에게 신제품이 아시아제품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생산 원가를 20% 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업장으로 들어가니 연단 앞에 직원들이 모여 있었고, 연단 위에는 천을 뒤집어씌운 물건이 두 개 있었다. 팀장이 첫 번째 천을 벗겼다. 아시아제 펌프에 엄청나게 큰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280 유로‘. 다음으로 천을 벗기자 자사 펌프가 나타났다. ’350 유로‘. 직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팀장은 딱 한 마디만 했다. “3개월의 시간이 있습니다. 이 가격표를 바꿉시다.”

훈시 끝.

하지만 직원들은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연단 주위에 모여 서서 이떻게 해야 생산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지 열띤 토론을 펼쳤다. 만약 생산팀장이 2시간 동안 훈시를 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직원은 훈시가 끝나자마자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여느 정치인들처럼 몇 시간 동안 연설을 해대지 않았다. “피와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밖에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로 시작한 그의 취임연설은 간결했지만 전쟁을 앞둔 영국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 침묵은 책임감을 일깨운다

한 경영자가 아들 때문에 죽겠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27살이나 먹었는데 사고만 치고 다니지 뭡니까?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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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협박과 호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만약 아들이 또 사고를 치거든 도와주지 말고 딱 한 마디만 하라고 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해줄까?”

실제로 그가 그렇게 했을 때, 아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고를 칠 때마다 화를 벌컥 내면서도 지갑부터 꺼내는 아버지 모습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외의 반응에 놀란 아들은 잠시 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제가 해결해 볼게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만 좀 알려주세요.”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수백 번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쳐도 소용없던 아들이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처럼 말 없는 설득이 더 강력한 법이다.

 

■ 존중함을 잃어버린 사회

끊임없이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말만 하고 자기 걱정만 털어놓고 잘난 척만 하려 한다. 대화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관객을 앞에 둔 배우의 독백처럼.

“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상대를 이해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침묵은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소통 방식의 일종이다. 그러니 당신 혼자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할 마음이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입을 다물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는 당신을 더욱 존중하고 한층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려 할 것이다.

■ 말과 침묵의 균형유지하기

0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는 침묵이 최고다.

0 말과 침묵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적게 말하고 많이 침묵하라!

0 말이 적어야 강하고 자신감 있고 당당해 보인다.

0 침묵은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용기를 주고, 동기를 부여하며, 이성의 스 위치를 재점화하고 갈등을 한 풀 꺾는다.

0 그럼에도 침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가 침묵을 부정적인 시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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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런 착각을 깨닫고 넘어선 사람만이 진정으로 효과 적인 소통법을 깨우칠 수 있다.

◎ 제2장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한 번도 내게 해가 되지 않았다.”

- 캘빈 쿨리지, 미국 30대 대통령

■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말

0 과유불급은 ’말‘에도 적용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 때문에 이미지와 출세, 성공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과 동료, 부하직원, 고객, 상사를 몇 년에 걸쳐 괴롭히고 또 괴롭혀 마침내 기피 대상 1호가 된다.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말과 침묵은 서로를 보완한다. 그래서 말과 침묵의 균형이 중요하다. 또한 침묵은 효과가 강렬하다. 그래서 말이 적으면 지적인 인상을 풍긴다. ’잔잔한 물이 깊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 적으면 속이 깊어 보인다. 깊이 있는 인간의 아우라가 바로 침묵의 결과인 셈이다.

0 침묵훈련

당신은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때가 있는가? 자책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이 그러니까. 다만 이를 자각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잔잔한 물이 더 깊다

말이 적으면 똑똑하고 교양 있고 유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친다. 실제로는 어떻건 말이다. 거기에 미소까지 보태지면 20% 더 지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이라 부른다. 안경을 끼면 더 지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 입을 다물어야 더 똑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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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 박사학위를 딴 여성이 제약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직장 생활을 해보니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녀보다 학력은 낮지만 경험이 풍부한 동료 직원들이 일처리도 훨씬 빠르고 실력도 뛰어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주눅이 들어 말수가 줄었고, 미팅이나 회의 시간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경험이 부족한 것이 탄로 날까 봐 자꾸 소극적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동료들의 평가였다.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동료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좋은 사람이에요”부터 “성격도 좋고 유능해요”까지.

자신은 무능하다고 자책하는 상황인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녀를 능력 있는 여성으로 평가한 것일까? 이것은 그녀가 미팅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열심히 경청하고, 이 사실을 동작이나 추임새로 표현한 결과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헛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도 안 하는 편이 낫다’는 선인들의 지혜를 따른 것이다.

■ 침묵은 이해와 동의를 표하는 강력한 방식이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은 이해심이 많아 보인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동의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았던 모양이다. 그들의 법 원칙에 ‘침묵하는 이는 동의하는 것’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현대법에서는 이를 ‘암묵적 동의’라고 부른다. 어떤 제안에 반박이 없을 경우 동의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한 실험 팀장이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대화를 나누게 했는데 유독 한 여성 피실험자가 “너무 좋은 대화였다”며 상대 남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데 팀장이 알기로는 그 상대 남성은 평소 소통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금증에 녹화 영상을 돌려보았더니 그 남성은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주로 “흠”,“네”, “당연하죠”,“정말요”, “세상에”처럼 동의를 표하는 추임새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대화상대였던 여성 팀원은 그를 “달변가에 이해심이 풍부하고 표현이 명확하다”고 평가했다.

거짓말 같은가 그렇지 않다. 그 남자는 정말로 천재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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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도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뿐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방법을 통해 상대 여성의 모든 것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침묵의 또 다른 힘이다.

■ 듣는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어느 시골에 은행이 두 개 있었는데 한쪽은 거의 파산 직전이고 다른 한쪽은 잘 나가고 있습니다. 전자는 미국 부실 채권을 많이 샀다가 손해를 엄청 봤는데, 후자는 별로 안 샀거든요.

파산 직전 은행의 대화 모델은 이렇다. “자네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이 건이 왜 아직 처리가 안 됐어? 왜 이렇게 느려?” 임원들이 미팅 시간의 80%를 쓰기 때문에 위기 관리팀에게 돌아가는 시간은 고작 20%였다.

반면 다른 은행은 임원의 발언 시간이 40%에 불과했다. 떠들기만 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못 듣는다. 그리고 보았듯이 그런 장광설의 대가는 너무 비싸다. 심지어 리더의 장광설은 기업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다투는 사람은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때때로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한다. 듣는 자만이 세상을 알게 된다.

■ “좋은 의견 고마워.” 이걸로 끝

0 본능대로 행동한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협상에서도 말이 많다는 것은 본능에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속아 넘어간다.

본능은 자극 반응에 따라 작동한다. 자극을 주는 쪽이 예상 가능한 반응을 도발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쯤에서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렸을 것이다. 개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행동하는 걸까?

많은 사람이 외부의 자극과 그 자극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구분하지 못한다.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건드리면 흥분하여 반격하거나 꼬리를 내렸다가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우리의 본능이 진화론적으로 볼 때는 유의미할 수도 있는 인과적 관계(싸우든가, 도망치든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본능은 착각을 유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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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지나고 후회한다

시끄러운 세상 어디에도 정적은 없다. 그럴수록 절실히 정적이 필요하다. 특히 협상과 결정의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0 침묵은 협상과 결정을 돕는다.

• 대답하기 전에 침묵하면 머릿속으로 더 논리적인 결정을 준비할 수 있다.

• 잠깐만 침묵해도 상황에 맞는 어휘와 논리를 선별할 수 있다.

• 침묵하면 직감이 되살아난다. 직감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 침묵하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고 후회할 일이 없다.

■ 피고인에게 묵비권이 있는 이유

법정에 서는 모든 피고인에게는 묵비권이 있다.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증언은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다. 이 또한 침묵이다. 법정에서조차 사용될 정도로 침묵은 유익한 것이다. 한데 그 권리가 막상 법정 밖에서는 많이 이용되지도 않고, 그리 호의적인 평판을 받지도 않고 있다.

침묵에도 규칙이 있다. 침묵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한 말이다.

“며칠만 지나면 입을 다물 적절한 시점이 눈에 보입니다. 침묵에도 규칙이 있는 거지요.”

그러나 만병통치약은 없는 것처럼 각자에게 맞는 규칙은 다르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침묵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 자신에게 맞는 규칙을 찾아내야 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대화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에게서 동등권과 존엄성을 빼앗는 행위다. 반대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과 애정, 존경을 선사하는 것이다.

베스트 프렌드는 어떤 사람인가? 멋진 조언을 해주는 친구?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요.”우리는 떠들어 대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을 원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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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한마디 준비하기

• 구체적인 상황에서 말과 침묵 중 어느 쪽이 더 유익할지 끊임없이 자문하라

• 적시에 침묵하면 지적이고 자신감 있고 이해심 많으며 믿을 수 있는 사람으 로 보인다. 또, 상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는 강력한 한마디를 준비하라. 침묵 후 미리 준비한 강력한 한마디를 던져라. 그리고 다시 침묵하라.

• 모욕과 비난을 받을 때는 대응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라. 그리고 침묵 하라.

• 침묵하는 자만이 독립과 자율성의 얻을 수 있다.

• 침묵하는 능력은 핵심적인 질문과 통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3장 우리는 모두 ‘관종’이다

-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 관종(관심종자 關心種子) : 일부러 특이한 행동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 말하는 자가 통제한다는 착각을 버려라

0 말을 하는 자가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

기업에서 그룹 코칭이나 팀 트레이닝을 할 때마다 사장이나 팀장들이 말한다. “팀을 살려야 하니 나는 이제부터 뒤로 물러나겠어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주세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숨을 푹 쉰다. 왜냐고? 결과가 어떨지 안 봐도 훤하니까. 상사는 입 다물고 부하직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못한다. 1분만 지나며 슬슬 한 마디씩 덧붙이다가 곧 본격적으로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왜 대부분의 경영인들은 침묵을 못 견딜까? 수백만 달러짜리 협상을 척척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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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 사람들이 그 간단한 입 다물기를 해내지 못한다니! 이유는 ‘말’과 ‘통제’를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영인뿐 아니라 부모, 선생, 트레이너, 자문가 등이 좀처럼 입을 닫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다.

계속 떠들어야 통제력을 손에 쥐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통제력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통제력을 위해 산다면, 나아가 연설을 통제력과 동일시한다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입을 다물 능력을 키우라는 요구 자체가 무의미하다. 입을 다물 마음조차 없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능력을 키울 의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성찰 능력을 요구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

■ 경기 시작 전에 조잘거리는 선수는 없다

우리는 조용하고 고요한 상태를 참지 못하는 스트레스 중독자들이다. 세상은 힘껏 그 중독을 독려한다. TV 생방송 중 1분간 쉬어가는 시간도 사실은 휴식 시간이 아니라 광고시간이다.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휴식은 없다. 철저히 폐지당했다. 말이 곧 매출인 시대, 침묵은 자본주의에서 범죄와도 같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소음과 분주함에 조건반사하는 파블로프의 개와 같다.

0 중독과 노이로제

한 여학생이 친구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았다가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친구는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고의로 그랬다면 내 마음은 조금 편하겠다. 이런 공격적 반사는 전형적인 중독자들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마약을 빼앗긴 중독자는 파충류의 뇌 처럼 반응을 한다. 이성이 사라진 동물의 뇌가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속적인 소음과 스트레스는 인간을 동물로 만든다.

아침마다 TV를 켜놓고 밥을 먹는 습관을 고쳐보려 했던 여성 경영인이 있다. 그러나 심각한 금단 현상이 나타났고, 도무지 적막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 TV를 켰다고 한다. 어떤 방송인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 부모세대는 늘 배가 고프고 추위에 시달렸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반면 우리는 추위와 기아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지만 정적은 무서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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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스마트폰과 SNS, 노트북을 빼앗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숲속에 가만히 서서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이다. 그들이 아이폰 사용자보다 더 행복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0 정적은 차단이요 휴식이다

다행히도 정적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이렇게 말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점심 식사 후 동료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는데, 요즘에는 5분이라도 회사 주변을 산책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집니다.” 한 남성은 이런 말을 했다. “누구에게나 단 5분이라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쉴 때 인터넷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창밖을 내다보면 생각에 잠기지요.”

10분의 휴식이 하루를 버틸 힘을 준다. 명상을 하건 산책을 하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이다. 정적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경기에 출전하기 전 운동선수들을 생각해 보라. 경기 시작 직전에 조잘거리는 선수는 없다. 다들 입 다물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정적 속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잘 찾아보면 우리 곁에도 정적 할 수 있는 비밀의 장소가 있다. 이런 곳을 최소 다섯 군데 생각해서 적어보자.

■ 말을 하면 들을 수 없다

보통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할 때 힘이 든다. 그러나 침묵은 반대다. 수다는 쉽지만 침묵은 힘들다. 침묵에는 지성과 관심, 굳은 의지와 동기,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몸에 익고 나면 끊임없이 떠드는 것보다 입을 다무는 쪽이 훨씬 편하고 쉽다. 이쯤 되면 떠들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남의 말을 들으려면 입을 다물고 TV와 스마트폰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점점 침묵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관종’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떻게든 엄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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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끌려는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끊임없이 말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린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기중심주의가 날로 심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어졌다.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 슈타인

■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아킬레스건, 즉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침묵은 자신을 돌아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와 생각 이상으로 자신에게 약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곳이다.

약점을 건드렸을 때 대응하는 방식에서 한 인간의 성숙도를 볼 수 있다. 기분 나쁜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지간해서는 피식 웃고 넘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부하직원들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서’ 못 참고 끼어들었다는 임원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화가 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렇다고 꼭 그렇게 지적을 해야 하나? 좋은 말 한두 마디로 고쳐주면 될 것을 끝없이 연설을 늘어 놓아야 하는가?

자신의 약점을 알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특히 협상 자리에서 이런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협상에 능한 사람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역점을 건드린다. 그러면 상대방이 생각 없이 따발총을 날릴 것이고, 아무 생각 없이 말하면 반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하나 마나 한 소리는 이제 그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는 건 그냥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차분하지 않고 신중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정말 빨리, 생각 없이 말을 쏟아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말과 제스처, 동작, 말하는 호흡 등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생각하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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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에서는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다. 상대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나는 과연 누구와 대화를 하는 것이며 그의 말에는 얼마만큼의 가치와 진실성이 있는 걸까.

0 신중하지 못한 문화

우리 문화는 생각 없음을 장려한다. 3초만 대답이 늦어도 상대는 초조해한다. 우리 시대는 곰곰이 생각한 대답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말하는지가 중요하다. 생각이 없고 하나 마나 한 소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딱 5초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내가 아는 한 경영자는 회사에서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 그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과 신뢰가 있다. 그는 그런 평가에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리 잘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말하기 전에는 꼭 5초 동안 생각을 하지요. 그게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 같습니다.” 정말로 단 5초가 그의 말에 위엄과 신뢰를 선사한다면 10초 동안 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 말하기 전 5초 생각하기

0 사실 누구나 침묵할 수 있다. 간단하다 그냥 입만 다물면 된다.

0 그런데도 침묵할 수 없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라

0 유독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면 내 안의 어떤 두려움 탓이 아닐까?

0 침묵하라는 것은 절대로 입을 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말을 하건 침묵을 하건 의식적으로 하라는 뜻이다.

◎ 비울수록 커지는 말의 무게

“ 말을 하려거든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 피타고라스

■ 왜 한 시간도 스마트폰을 끄지 못할까?

우리 모두 왜 한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끄지 못할까? 왜 계속 말을 늘어 놓는 것일까? 소음과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면서도 왜 차에 오르면 라디오부터 켤까? 왜 우리는 단 5분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는 걸까? 대답은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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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하다. 고요함을 필요로 하면서도 우리가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서 고요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요는 저주다. 우리 사회는 고요를 피해 도주 중이다. 열심히 돌려봐야 같은 광고만 나오는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내면의 침묵은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운 일을 하는 것보다 TV를 켜는 편이 안정적인 것이다.

0 조용한 방 안에 홀로 있는 것은 어떻게 고문이 되는가?

수학자 파스칼(Pascal)은 괜히 이런 말을 했겠는가.

“인간의 불행은 오로지 방안에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0 계속해서 도망만 치다 보면 ‘나’를 잃게 된다.

입을 닫고 모든 소음의 원천을 끄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때로는 편치가 않고, 때로는 아프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 성가신 생각들에 일일이 신경 쓸 시간도, 의욕도 없기 때문이다.

아프더라도, 귀찮고 도망치고 싶더라도 피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양치만 해도 그렇다. 분명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귀찮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모두 잘 안다. 정적을 피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직감적으로는 알고 있다. 그 직감을 좇아가보자. 한순간이나마 걸음을 멈추고 정적에 몸을 맡겨보자.

■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법

사방이 정적에 휩싸이면 보통은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일들,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티베트의 승려 달라이 라마(Dalai Lama)조차도 그렇다고 한다.

문제는 정적에서 오는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망치려하고, 불쾌한 생각들을 쫓아버리려 한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를 ‘마음과의 대화’라 한다.

0 자신의 마음과 대화하기

마음과의 대화라니,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손을 들고 이렇게 묻는다. “정적이 찾아왔을 때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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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에 많은 상담가는 ‘불쾌한 생각을 두 팔 벌려 환영하라’고 답한다. 그냥 인정하고 내버려두라는 말이다. 나는 이런 충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보자에게는 버거울뿐더러 적절치 못한 요구이기도 하다. 나는 이때가 바로 자신과 대화를 나눌 때라고 답한다. 불쾌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그 생각들에게 “꺼져”라고 할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눠보라는 것이다. 아니면 글로 써도 된다.

 

0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마음과의 대화는 사실 간단하다. 자신과 대화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게 어렵다면 그건 그릇된 속삭임, 그릇된 교육, 그릇된 조언가들 탓이다.

“괜찮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 자신과의 대화를 할 때는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대화법이 필요하다.

0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해져도 좋다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이해심을 갖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과 소통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몰이해로 일관하기 일쑤다.

물론 사람이 항상 다정할 수는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고약하게 굴 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굴다가는 그 공격에 자신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하면 사는 게 피곤하다. 내 주변에는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 전화를 받으며 사과부터 하는 사람이 꽤 있다. “미안해요 소파에 잠깐 누워 있었어요.” 그게 왜 미안한가? 잠시 일을 쉬었다는 것이 사과까지 해야 할 일인가?

0 ‘나쁜 생각’이란 없다

나쁜 생각은 없다는 건 일종의 원칙이다. 우리의 생각에 나쁜 의도가 있다고 가정하면 애초에 마음과의 대화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쓸모없고 멍청한 인간이라는 결론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더욱이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은 진화론적으로 보아도 틀렸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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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진화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진화는 무익한 행동을 4만 년이나 참아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하는 모든 생각은 불쾌한 듯 보여도 다 당신에게 득이 되는 점이 있다.

■ 자신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타인과의 관계도 만족스럽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냉혹하게 굴거나 스스로 생트집을 잡지는 말자.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하는 상담가가 적지 않지만 말이다.

자기 존중은 자신의 욕망을 존중할 때 시작된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욕망을 존중해 줄 것인가? 자신의 욕망을 깨달아라.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라.

0 그런데도 우리는 어째서 자신을 무시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은 ‘글쎄’라고 반문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공감하는 것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금기시되어왔다. 우리는 일을 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멍청한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그게 사회가 강요한 우리의 삶이다.

한 심리 치료사는 가끔 환자들에게 50유로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면서 이 돈을 무조건 다 쓰고 오라고 시킨다고 한다. “유익한 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 드는 걸 사세요. 직장에 필요한 비품이나 가족들을 위한 물건은 안 됩니다. 자 30분 시간을 드릴게요.”

그러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쭈뼜거리며 병원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50유로짜리 지폐를 그대로 든 채…. “아무 생각도 안 나요.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의 욕망은 어디로 갔나요?”

욕망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다. 정체성을, 영혼을 잃는다. 그것이 우리가 정적을 피해 도망 다닌 대가다. 우리는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건 그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다는 것, 스트레스가 심하고 세상이 불만스럽다는 것뿐이다. 애당초 ‘세상’이란 따로 없다. 당신이 있는 곳이 세상이고, 당신이 곧 세상이다. 당신이 자신을 발견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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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으면 당신은 온전히 자신이 된다. 그리고 고요하다. 자장가를 부르는 동안에도 당신의 마음은 고요하다. 그 순간 세상은 멈춘다.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성이 구성한 산물이다. 그러나 사랑스런 아기를 안거나 저무는 노을의 온기를 느끼거나 좋은 차의 향을 느끼는 그 순간, 당신은 온전히 자신이 된다. 고요와, 그리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시작해 비욘세 같은 가수들의 노래 가사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낭만적인 로맨스로 우리의 관계를 이상화한다. 너 없으면 못살아. 너는 나의 모든 것, 네가 없으면 나도 없어, 네가 가면 내 사랑도 끝나. 그런데 이게 낭만적인가? 아니 이건 병이다. 상대에게 목을 매는 이런 관계는 중독이요, 종속이며 유아적인 의존증이다.

0 당신의 자존감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생각인가?

나의 자존감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쳐보자. 상사의 인정, 동료들의 존경, 아이들의 순종 등. 그 순간, 나는 종속적인 인간이 된다. 상사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면 하루가 행복할 테지만, 반대로 상사의 기분이 엉망이면 그날은 지옥과 같을 것이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숙주의 상태에 따라 살고 죽는 기생물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 의지가 있고 자아를 실현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그러므로 독립적이다. 상사가 나를 칭찬하면 기분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내가 나를 칭찬할 수 있으니까.

■ 마음속 목소리를 먼저 들어라

스트레스가 매우 심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빨리 퇴근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주말이나 휴가, 퇴직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나요?

의료보험공단에서 나누어준 ‘스트레스 방지법’을 읽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던 적이 있다.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퇴근 후 요가를 하러 가라.” 이게 그들이 말하는 스트레스 해소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스트레스 해소란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즉시 푸는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상사가 화를 냈다면 퇴근해서 요가를 할 때까지 무려 9시간 이상 스트레스 호르몬이 내 혈관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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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다는 말이다. 스트레스 해소가 가장 필요할 때는 언제이겠는가? 저녁 8시? 아니, 상사가 화를 내는 바로 그 순간이다.

■ 운동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는 방법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스마트폰을 보며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슬픔이 밀려든다. 조깅을 하는 동안에도 조용한 상태를 못 참다니! 불쌍한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 과연 알까?

나는 달리거나 산책을 할 때는 아무것도 듣거나 보지 않는다. 그래야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운동을 하면 마음에 고요가 깃들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은 사람마다 다르다. 조깅이나 산책, 등산을 할 때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축구나 테니스를 하면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0 근육으로 영혼을 달랜다고?

프랑스 물리치료사 다니스 보이스는 운동 치료로 의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단순히 ‘팔 돌리기’만으로 번아웃 직전의 한 대기업 이사를 치료한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불안한 마음은 외부의 동작으로 전이되어 근육을 긴장시킨다.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허둥대고 잔뜩 긴장을 한다. 보이스는 이 근육의 만성적 긴장을 풀어줌으로써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찾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찾도록 도운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몸은 마음의 거울이고 마음은 몸의 거울이다.

0 마음의 평온은 쇼핑보다 아름답다.

나도 얼마 전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동작의 효과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강사가 우리에게 일어나서 천천히 방을 걸으며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느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모든 동작을 느끼기에는 너무 빨리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걸음을 늦추었다. 달 위를 걷는 우주비행사처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상당히 오랜 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생각을 멈춘 상태를 넘어 온몸과 마음이 존재의 중심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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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했다. 너무도 편안했고, 그 상태를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편안하면서도 활기에 넘쳤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움직임을 늦춤으로써 생각을 멈춰본다. 특히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을 때,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임을 늦춘다. 아주 천천히 마우스를 잡고, 또 느릿느릿 볼펜을 뉘고 파일을 연다.

너무 소소한 행동들이라 주위에서는 아무도 나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당장 효과가 나타난다. 먼저 몸이 편해지고, 이어서 정신이 편해진다. 고요가 찾아온다. 인간 존재의 원초적 힘을 숨긴 고요가.

바로 이게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평온과 고요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 모든 소음 끊어보기

0 고요가 두렵더라도 가끔은 의도적으로 고요한 환경을 찾아야 한다.

0 고요 속에서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 말 이다.

0 자신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은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 대화는 정적 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0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존중하는 대화를 연습해보자. 그것만 으로도 정말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2024. 9. 1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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