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8. 15:48ㆍ독서후기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 정영욱 지음
0 주식회사 부크럼 대표, 출판사와 문화사업
0 저서 :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편지할게요>
<나를 사랑하는 연습> 등 40만 부 판매
0 스터디셀러 에세이 작가
■ 펴내며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가도 뜬금없이 위태로운 날이 있다. 잘 붙잡고 있는 것 같다가도 마음이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날이 있다. 잘 이어가고 있다가도 무언가 끊어진 것 같은 날이 있고, 잘 사랑하고 있다가도 혼자가 된 기분에 긴 새벽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린 이처럼 아무 일이 없더라도 문득, 부정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런 위기의 때가 오면 나는 마음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잘잘잘 될 거라고 말이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잘 안 되고 있더라도, 잘 될 것이라고 해도 된다. 아무 일이 없어도 무너지기 쉬운 우리의 삶이 있다면, 무너지고 있어도 아무 일 없는 듯 ‘잘 되고 있다’ 말해 줄 수 있는 삶도 분명히 있다.
마법의 주문을 걸어보자. 뭐든 잘잘잘. 하고 있는 일도, 관계도, 사랑도, 무엇하나 빠짐없이 나를 무너뜨리기 쉬운 것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것들이자,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여기 있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일 것이다.
◎ 1. 응원했고 응원하고 있고 응원할 것이다
- 어떠한 힘듦인지 따지기 전에,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 다 괜찮다. -
■ 이유 없음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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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참으로 힘들었겠다. 참 바빴을 테고, 그만큼 허겁지겁 달렸을 테고, 그래서 넘어졌을 테고, 까진 상처에 아팠을 테고. 그리고 다시 일어난대도 아주 지쳐 있을 테지. 아픈 마음 다독일 새 없이 나가다가 쓰린 곳 다시 다쳤을 테지, 내가 감히 당신을 알겠냐만, 어떤 상황인지 알겠냐만, 얼마나 힘든지 알겠냐만… 그래도 힘들었겠다, 지쳤겠다 이야기하겠다. 또 괜찮아질 거라, 나아질 거라, 더 좋은 일 생길거라 이야기하겠다.
모든 위로는 이유 없이도 위로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 내가 나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나 참으로 힘들었겠다. 괜찮다. 다 괜찮아질 것이다.”
■ 인생 슬럼프가 왔을 때 기억해야 할 것
1. 삶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눌 휴회와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기 억하자. 나만 유독 후회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님을, 나의 선택에 대해 자꾸 만 미심쩍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2. 나보다 어떤 부문에서 능력이 있고 뛰어난 사람이 옆에 있을 때 비교하며 배울지언정, 비교하며 주눅 들진 말자. 분명 ‘나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은, 타인에게도 ‘상대방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기에 비교를 하게 되면 정말 끝이 없다.
3. 해결책을 찾지 못한 일이라고 괜찮다. 가끔은 놓아주고 포기하자. 해결하지 못하고 물러선 일이라도 해결책을 찾으려던 노력은 분명 내 삶의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쉬는 것도 아주 큰 능력이다.
4 오늘도 서툴고 실수를 했지만 그래도 잘 견뎌낸 나에게 고맙다고 해주자. 이럴 때일수록 내가 나를 보호해 줘야 한다. “그 힘든 거 버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나 정말 잘했어.
5. 나이가 들수록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미련하거나 용기 없는 게 아니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저주는 게 마음 편하다. 그 편한 맘으로 인해 비축된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자.
6. 자신감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된다. 밥 든든히 먹고 당당히 나아가자. 까짓 것 어때, 우리 곧 죽어도 자신감을 잃지 말자고.
■ 나의 가장 큰 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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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가장 큰 적이다. 내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기 때문.”
언젠가 흔들리고 무너졌던 시기에 적어 놓았던 문구였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나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자,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힘들다면 그것은 내 탓이 가장 크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 또한 내 덕이 가장 큰 것이었다. 그 무엇도 나 없인 나를 힘들게 하진 못했다. 그 내가 느끼는 순 감정은 어떠한 상황으로 인해 나에게서 나오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걸 멈출 수 없을 때에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염려할 가치가 있는 일에만 염려할 것. 힘들 가치가 있는 일에만 힘낼 것.
포기할 가치가 있는 일은 온 맘으로 놓아 줄 것.
후회할 가치가 있는 일은 움켜쥐고 마음껏 아파할 것.
자신을 너무 큰 적으로 돌리며 외면하지 말 것.
자신을 적으로 만든 것 또한 나 자신이지만 나는 가장 큰 적이기 전, 나의 가장 큰 친구였음을.
■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치열하게’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떠올려 보기로 합니다. ‘경쟁’, ‘혈투’, ‘열망’ 쯤의 단어. 표면적인 의미와는 반대로 떨어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몰린 느낌이 떠오릅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배수지진(背水之陣) 같은 사자성어도 있겠습니다. 대략 도망칠 곳이 없어 애써 싸워내야 하는 상황을 뜻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현대에 우리의 삶은 진퇴양난일 상황도 배수지진일 상황도 많지 않습니다. 매일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앞에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도망치면 죽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습니다. 내일의 나. 아, 생각해 보니 내일의 나는 아주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오늘 설렁설렁 살아도, 내일의 내가 해결해 줄 겁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 앎은 곧 암(暗, 어두울 암)
‘암’을 생각해 보세요. 병명이든, ‘암울’의 첫 글자인 ‘암’이든 ‘암흑’의 시작인 암이든. 예로부터 한자를 기반으로 많은 단어가 생성되어 왔기에 ‘암’이라는 단어는 긍정의 의미가 매우 적습니다. 없다시피 할까요. 말 그대로 어둠은 우울과 부정을 뜻하니까요. 우울하지 않나요, 힘들 때 보면 숨이 콱 막힐 것 같지 않나요.
근데 만약,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한테 ‘암’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입 콱 다물고 긍정하는 단어라 생각하겠죠. “암, 그렇지.” 정도의. 아님 ‘엄마’ 할 때 ‘엄’과 비슷하니 내 편인 활자라 생각하겠죠. 혹은 아무 생각도 없겠죠. 제대로 알지 못함에서 나오는 긍정이나 중립 정도의 생각이겠습니다.
배움이란 것이 이렇습니다. 어쩌면 긍정일 것들을 부정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일, 많이 배우고, 많이 알고 배울수록 쉽게 추락하는 일, 별거 아닌 것도 힘겹게 받아들이는 일, 앎은 곧 암(暗).
우리가 힘들고 우울한 이유는 몰라서가 아닙니다. 많이 알아서겠죠. 두렵고, 암울하고, 지치고, 가여운 이유는 곧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삶 속에서 기필코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부정적인 감정은 당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또 그렇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만큼은, 모른 척하지 않고 나아가는 나에게 말해 주어야 마땅한 일이겠습니다. 고생했다고, 애썼노라고, 조금은 쉬어가도 되는 거라고, 그만큼 알았으면 충분한 거라고.
당신의 앎을 응원하듯, 당신의 쉼 또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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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는 중
“아…왜 이렇게 까먹는 거지….”
시험을 앞두고 연거푸 탄식을 하며 내 머리가 컴퓨터 같았으면 좋겠단 말을 했었다.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상상. 내 머리가 ‘컴퓨터 같았더라면.’ 그때 친구는 말했다. 그 대단한 컴퓨터를 지배하고 있는 게 인간 아니냐고. 그 시절엔 그런 농담 섞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힘든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었다.
인공지능 분야가 발달하며,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영상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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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때가 언제쯤일까 궁금증을 갖는다. 하지만 이내 부정한다. ‘그런 때는 오지 않을거야.’ 라고. 나는 사람이 가진 경험의 힘을 믿는다. 사람에겐 지운다고 해서 끝이 아닌,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나의 실수로 인해 그르친 일은 내 기억에 남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기에, 나는 다음 실수를 반복지 않는다. 누군가의 잘못이 나에게도 상처로 남기도 해서 똑같은 잘못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 컴퓨터는 지우면 다신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지워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생각난다. 그래서, 그런 경험 덕분에 우린 지배 당할 수 없다고.
■ 나를 사랑하는 것
1. 나를 잘 알아갈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껴안고 나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가 장 잘 아는 것이다. 곧 스스로를 껴안을 때, 채찍질할 때를 아는 것이다.
2.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존감이 높다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친다고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닐 수 있다. 나를 사랑함에 저절로 따라올 순 있어도, 그것들이 충족되었 다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3. 자신에 대한 실례를 범하지 않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아갈 것
타인에 대한 예우와 인정은 억지로라도 잘하고 다니면서, 나에 대한 예우와 인정은 잘하지 못하는가. 나에 대한 실례는 곧, 내가 나를 믿어주지 못함에 서 나오는 것이며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곧 나를 믿어주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4, 나만 알고 나만 보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주도적이고 주체적 인 삶이, 남을 배척하고 나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살필 줄 알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는 것. 간혹 이를 잘못 이해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도 한다.
■ 괜찮아지고 싶어도 괜찮아지지 않을 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습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은 모릅니다. 담배를 태우며 전화를 하는지. 아닌지 그 호흡의 소리만으로도 다 알 수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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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담배 피워?” 물어봅니다. 그때부터 뻐끔뻐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빠 담배 끊었잖아. 왜 또 피우는 거야.” 핀잔을 줍니다. 아빠는 말합니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이번 한 번 봐주라.”
아마 모든 아빠는 그랬을 겁니다. 괜찮은 척해 봐도 괜찮아지지 않아서 그러다가 괜히 일만 더 꼬이고. 그래서, 그렇게 굳건히 약속했던 담배를 다시 뻐끔뻐끔. 그러면서 내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고 싶었겠죠. 생각하니 급후회가 됩니다.
아빠의 뻐끔뻐끔을 내가 전파로 느끼듯, 나의 흐느낌을 아빠도 전파로 느낍니다. 그래서 아빤 허겁지겁 전활 끊으려는 나를 막지 않아 주었습니다. 왜 우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붙잡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좀 게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빠는 나에게 울 구멍을 내어 준 셈입니다. 아무리 괜찮아지려고 해 봐도 괜찮지 않던 나의 마음에 조금은 볕이 쬡니다. 마음에 잔뜩 낀 먹구름 사이로 아주 작은 빛이 들었습니다. 어두운 창밖으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아직도 삶은,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 괜찮다 감히 말해 봅니다. 마음만큼 생각만큼 다 되진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유와 희망을 얻습니다.
■ 30대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1. 유독 나만 불안하고 힘든 거 같은데 다들 그렇더라. 와중에도 잘 헤쳐 나가 는 사람들을 보면 “될 대로 돼라.” 식의 마인드가 있더라는 거. 걱정해서 될 일, 안될 일 구분해서 괜한 거로 스트레스 받지 말도록 하자.
2. 쉴 거면 확실하게 쉬어야 한다. 괜히 쉬면서 눈치 보고 스트레스 받을 바 엔 쉬지 않는 편이 옳다.
3. 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사랑을 주었지 싶었다. 걔 말고도 좋은 사람 널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가끔가다 카톡 프사나 확인할 그런 사이 에 연연하지 말자. * 프사 : 프로필 사진의 줄임말
4. 사람은 변화를 강요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 누군갈 내 힘으로 바꾸려 는 생각은 오만한 것이다. 변할 사람은 알아서 변화할 계기에 따라 변한다.
■ 상처를 쉽게 허락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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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를 성장시킨 건 뼈아픈 일이 아니었다. 나를 무너뜨릴 뻔한 일련의 사건도 아니었다. 또 그것을 당해낸 인고의 시간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수한 계기로부터 꾸역꾸역 변화해 온 나 자신이었다. 상처의 덕도, 시간의 덕도 아닌 결국 변화하고자 하는 나의 덕으로 성장해 왔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쉽게 마음을 주지 말라. 그 어떤 수용이라도.
함부로 마음을 열지 말라, 그 어떤 다정이라도.
조급히 의미를 두지 말라. 그 어느 값어치라도.
성급히 상심하지 말라. 그 누구의 거리낌이라도.
애써 숨기지 말라. 그 어떤 부정이라도.
많이 보여 주지 말라. 그 누구의 두드림이라도.
결코 뒤돌아보지 말라. 그 언제의 지나감에도.
선뜻 앞서지 말라. 그 어떤 예상이라도.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상처를 허락하지 않기 위하여.
■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 행복이 두려워지는 것
영원한 행복은 없다는 거.
날 행복하게 하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
그렇기에 코앞에 행복을 두고 두려워지기도 한다는 거.
그래서 확 껴안고 싶다가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싶어지는 것.
오늘 쉽게 행복할 수 없는 이유였다.
아는 만큼 겁쟁이가 되는 거. 지금보다 나중을 더 생각하게 되는 거.
혹하다가도 휙하고 돌아서게 되는 거.
어쩜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이렇게 잔인한 일일 수도 있었다.
■ 나의 맨 앞
사람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웁니다. 응애응애.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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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웅얼웅얼 움마. 슬퍼서 운 것도 아니고, 애타게 찾은 것도 아니지만 그냥 태어나 보니 그런 것들이 맨 앞에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를 찾으며 울기를 부끄러워했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이 맨 앞에 있던 걸요.
우리의 맨 앞엔 용맹함! 이 없었습니다.
호랑이! 같은 기운도 없었죠. 그저 나약함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맨 먼저 약해 빠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주 작은 위로입니다.
가끔씩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 내가 나를 좋아해 줄 시기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열병 앓듯이 좋아했던 마음으로
나는 나를 좋아해 준 적 있을까?
내가 나를 좋아함과 인정함은
이 세상 그 누가 나를 좋아해 줌보다 값진 것이다.
가장 값지고 아름다우며 최대의 다정이고
대체불가의 의미일 것이다.
혹여 그럴만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는, 기억하라.
막론하고 ‘지금 당장’이 나를 사랑할 적기이다.
■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이긴 싫은 마음
옷은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춥다. 마음도 옷을 입는다. 사람이라는 옷을 입는다. 마음의 옷을 입으면 답답하고 벗으면 외롭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있고 싶다가도 혼자이긴 싫어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아주 당연하면서도 아주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상처를 주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서로를 감싸는 것, 삶은 이기적인 마음이 모여 이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 상처가 많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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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일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더라도, 소중한 것과의 이별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더라도. 오해 때문에 누군가와 갈라섰더라도. 가진 것의 부족함이 무척 서글펐더라도 그래도, 그 과거와 지금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되돌리려 애쓰지 말기로 한다. 이미 지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안다. 내 탓이 아니라며 상황 탓을 하고 싶겠지. 무언갈 미워하고 싶었겠지. 그런 온갖 감정이 오늘도 당신의 새벽을 흔들어 놓았겠지. 그러나 말할 수 있다. 다 지나간 후의 당신이 지금 여기 있다. 언젠가의 좋지 않은 일들을 이겨 낸 당신이 여기 있다. 결국 버텨 내어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어쩌면 그 선택의 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든든한 내가 존재하는 셈이다.
모두 당신 탓이자 당신의 것이다.
상처를 만든 것도 당신이지만, 상처를 견딘 것도 당신이다. 또 그것으로부터 아주 깊게 배운 것도 당신이다. 은연중에 버텨낼 자신이란 걸 믿어 준 용기도 당신의 것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아, 오늘도 그 어떤 상처로부터 아픔으로부터 또 후회로부터 무던히도 잘 견뎌 내었다. 지금의 당신이 되느라 얼마큼 힘들었을까. 이겨 내느라 얼마나 힘썼을까.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아, 오늘도 그 어떤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애써 잘 견뎌내었다. 그거면 된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되었다.
■ 마음 접기
여기, 근처에 A4 용지가 하나 있습니다. 종이를 들어, 계속 접어 볼까 합니다. 이걸 보는 당신도 접고 계신지요. 우린 아마도 9번을 채 접지 못해 포기할 겁니다. 종이는 사람의 힘으로 9번 이상 접질 못한다 합니다. 최대 횟수는 기네스북 기준으로 고작 9번이라고 하죠. 신기하기도, 우습기도 한 사실입니다. 저 얇은 종이도 접고 접다 보면 도저히 접을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거. 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한낱 종이도 그러한데, 사람 마음이라고 다를까 싶습니다. 마음을 잡는다는 건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거겠죠. 6번…7번…9번…그렇게 계속 접어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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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 속상한 마음, 후회되는 마음, 우리, 도저히 내 힘으론 안 되는 걸 접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건 아닐지요. 저 얇은 종이도 몇 번 접으면 못 접힌다고 발악을 합니다.
■ 마음이 갑갑할 때 필요했던 것들
0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자. 마음 환기는 나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혼 자서 풀지 못하는 감정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 이다.
0 큰 변화에 집중하지 말고 아주 사소한 목표부터 세워보자. 너무 거대한 목 표는 그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를 지치게 할 것이다.
0 건강을 챙기고 몸매를 신경쓰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거, 단짠단짠 (단맛 짠맛 번갈아 나는 것)맛이 자극적인 거 나에게 넣어주고 스트레스를 풀자.
0 ‘내 탓 남 덕’이라는 생각보다, ‘남 탓 내 덕’이라는 생각으로 조금이라도 나 를 응원해 주자. 모든 일에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잠시의 마 음 환기를 위해 나를 더 치켜 세워 주자.
0 지금부터라도 나의 감정을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예전에 메모했던 감정 이 있다면 찾아서 꺼내보자. 그리고 반성해 보자.
당신의 존재 아름답다, 소중하다, 귀중하다, 세상의 좋은 단어를 모두 빗대어도 모자랄 만큼의 당신이다.
■ 지나감이라는 기적의 바람이 붑니다
지나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봅니다. 지나간다는 것, 지나갔다는 것, 그것은 결국엔 떠나보내야 한다는 뜻이고, 또 결국엔 괜찮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엔 지나감이라는 고통과 치유가 공존하는 셈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괴롭고 슬픈 이유는 무언가 지나가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괜찮아지며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 지나가기 때문이니 지나감과 시작의 순간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가졌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앞에 “작년에도 고생 많았다.”는 따뜻한 인사 말고도. 누군가에겐 앞자리가 누군가에겐 뒷 자리가 바뀌는 변화 말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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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나간다는 거 말입니다. 그 사실만으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기적의 바람이 아닐까 합니다.
지나간 일과 새로운 일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듭니다. 지나간 사람과 새로운 사람이 다시 나를 살게 만들고, 지나간 삶과 새로운 삶이 다시 나를 살게 만듭니다.
■ 해피 엔딩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릴 적에 본 동화들은 대부분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지만, 지금 보니 다소 행복과는 거리가 먼 마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겨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니. 그래서 과연 동화속의 주인공은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까? 수차례의 고난 끝에 쟁취한 행복은 어떤 행복이었을까? 막연히 떠오른다. 멋진 공주님, 왕자님을 만나 멋진 왕국에서 화려한 삶을 꾸렸다 정도. 동화를 보면 비운의 이야기가 99페이지고 나머지 1페이지 아니, 1페이지도 다 채우지 못한 몇 문단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막을 내린다.
동화라는 환상에 가려진, 사람의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에 인색하게 살아간다. 복(福)전엔 필연적으로 난(難)이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얻은 행복만이 ‘값’있는 행복으로 간주된다. 진부한 주입식 행복론이 아닐 수 없다.
고난 뒤에 오는 행복이 값진 것도 아니니,
지금 행복한 것에 충실할 것.
고난 뒤에 행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헛된 기대를 하고 실망하지도 말 것.
그러니 행복에 인색하지 말고 99페이지의 고난보단,
99페이지의 행복을 택할 것.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 엔딩을 다짐할수록, 행복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고 살아갈 것.
■ 아픈 기억이라는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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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이 있습니다. 발을 헛디뎌 빠졌다고 상상해 보죠. 물론 구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황스러움에 발버둥 칠 것입니다. 빠져나오려 허우적대면 댈수록 나의 힘은 빠지고 몸은 경직되어 잠기게 될 겁니다. 사실 늪에서 저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그게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기보단, 쉽게 침착함을 잃기 때문이죠. 그러니 가장 현명한 대안은 최선을 다해 침착함을 유지하는 겁니다. 온전히 내 힘으로만은 나오기 힘드니 나의 힘을 가중시켜 줄 것을 잡아채 나를 끌어 올리든가, 구해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괜히 힘쓰지 말고 버티는 방법이겠죠.
늪과 아픈 기억은 동일한 구조를 지녔습니다. 아픈 기억은 늪과 같아서 빠져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나를 깊은 수렁에 빠뜨립니다.
현명한 대안은 오로지 차분해지기입니다. 기억을 꺼내 보며 허우적대지 말고, 잊으려는 발버둥으로 힘 빼지 말고. 차분하게 나를 지탱할 무언갈 찾고, 그것을 붙잡고 나갈 수 있도록, 감정을 비축하는 거죠.
사람은 결국 망각하는 생물입니다. 언젠간 분명 덮어 버릴 수 있는 기억임을, 언젠가 나를 구원할 무언갈 찾게 될 것임을, 뻔한 말이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 누군가의 빛이자 누군가의 바다인 당신에게
어느 저명한 문장처럼,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일 것이다. 부정에 대적하여 기필코 살아내며, 삶의 파도를 심히 두려워 말 것. 누군가의 긍정이자 누군가의 걱정일 당신이기에, 부모의 바다이자 친구의 여행이자 연인의 빛일 당신이기에.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기에, 철저히 당신이 살아내기를 바라며,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꼭 나 스스로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며.
◎ 2.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고 이겨낼 것이다
■ 단 하나의 차이가 전부
10, 100, 겨우 한 글자 차이지만 10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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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날, 겨우 한 획 차이지만 30배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잊고 살지만 하나의 변화와 하나의 공백 그리고 하나의 추가는 꽤 많은 차이를 불러일으킵니다.
그 작은 차이의 중요함을 잊고 사는 이유를 말하자면, 하나의 핵심이 이루어 낸 결과의 차이는 10배, 30배 정도 가나 그 결과의 크기만 와 닿기 때문이다.
결과만 눈에 보이니, 자주 두렵고 자주 아프고 자주 허황됩니다. 당신이 크게 두렵고 주변의 탓도 아니고, 상황의 탓도 아닙니다. 고작 단 한 가지 생각의 차이 탓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삶은 늘 변화를 요구할 것입니다. 때로는 많은 것을 놓아주어야 하고, 때로는 벅찰 때까지 채워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힘든 것 보다, 너무 힘들게 생각하는 내가 상황을 어렵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니, 나름 편한 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걸 굳이 어렵게 생각해 오려고 노력한 건 아닐지요.
■ 나를 찾아라
러시아에 유학을 갔다 온 친구는 말했다. 유학을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그들의 시선에 있었다고. 한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무슨 일 하세요?”부터 “어디 학교 나왔어요?”까지 상대의 소속 집단에 대한 물음이 가득했지만, 유학을 간 먼 나라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고 했다.
“넌 무엇을 가장 좋아해?”, “나는 이런 걸 좋아해.” 같은. 그들은 ‘나’ 혹은 ‘너’에 집중하지 ‘우리’, ‘그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치였단다.
우리가 숨 쉬는 사회에선 내가 없다면 완성되지 않을 것들에 ‘나’라는 존재만 쉽사리 없어지곤 한다. 언제부턴가 ‘소속’이 전부가 되어 타인을 너무 의식하고 사는 건 아닐까. ‘나’와 ‘너’는 어디로 가고 ‘그들’만 남게 되었을까.
■ 흔들리는 나를 꽉 잡아 주는 주문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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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애써 부정으로 몰아간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못했고 못하고 있고 못 할 거야.”라고. 아무리 잘되고 있는 일이라도 망쳐질 게 뻔하다. 내 생각은 곧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곧 내 하루이며, 하루가 모여 삶이 이루어진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이야기하고, 그 문장만큼 뒤처지지 않게 잘해 보자. 분명 당신,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화날 때는 대답을 하지 말자.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읽었다. ‘에스키모인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걷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화가 다 풀리면,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되돌아 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은 뉘우침과 이해와 용서의 길이다.
■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날
크리스마스에 딱히 약속이 없어 집에서 원고를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연락이 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할 일 없으면 나와, 애들이랑 술 한잔하게.”
“음, 나 원고 마감이 급해서 집에 있어야 할 거 같아.”
“그래도 일 년에 하루뿐인 날인데 아깝잖아, 나오지 그래.”
사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나가봤자 사람에 치일까 싶어…. 괜한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맞아…. 진짜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날인데 나갔어야 했나?”하고요. 잠깐, 그러고 보니 어제도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날 아니었던가요. 하루 전의 12월 24일도, 한 달 전의 11월 25일도 1년에 하루뿐인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끝이 없습니다.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아니 또 이러면서 지났을 1초 전도, 전부 1년을 넘어 일생에 한 번뿐인 시간입니다. 되돌리지 못하고 돌아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임에도 순간 잊고 살았습니다.
멋있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이라며 어느 기념일에 의미를 가중한다면 나는 답해야지 생각합니다. 모든 날은 일 년에 한 번뿐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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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루는 동등합니다. 똑같이 지나가고, 똑같이 머무르며 똑같이 특별하고 똑같이 별거 없습니다.
■ 시간 참 빠르다고 느껴졌던 순간들
십년지기라는 말, 꽤 나이 들어서나 쓸 줄 알았는데 내 옆에 어느 순간 십년지기 친구들이 있더라 다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들춰보니 앳된 우리가 거기 있더라.
예전에 하던 놀이는 민속놀이가 되었고, 자랑이었던 최신기기들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더라. 한때 젊음의 상징이었던 연예인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나의 세대가 추억에 잠기면서 새로운 세대가 떠오르는 건가 싶더라.
나도 모르게 예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러다 ‘나 때는 말이야~’반복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나 때에 있었던 일만큼 이야기하기 쉽고 와닿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 거짓말처럼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한 번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아주 거짓말처럼, 붙잡고 있는
고민 걱정 두려움
전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좋은 일이 거짓말처럼 생기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꿈이라도 꾼 것처럼 모든 게 싹 사라지고
평안해지고 싶은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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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의자처럼 살아갑니다
여기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무게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 몸무게를 감당할 만큼 튼튼합니다. 의자의 다리는 같은 간격마다 같은 길이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죠. 힘이 고루 전달되어 자신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무언갈 지탱할 수 있습니다. 이 간격이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한쪽 다리가 무슨 이유로 짧아진다면 쉽게 흔들리고 금세 무너집니다. 무언갈 지탱하긴커녕,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할 만큼 비실거리기 마련이겠죠.
어쩌면 우리는 이 의자와 평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일, 사랑, 우정, 의, 식, 주…이러한 것들이 한데 모여 나를 이루고, 삶의 균형을 이룹니다. 이중 무엇 하나라도 어긋나면 자주 흔들리거나 무너질 것 같죠.
즉 어떤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는 그 균형에 달린 거지, 나를 짓누르는 시련의 크기에 달린 건 아닐 수 있단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의자처럼 흔들립니다. 완벽한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미완이라는 고충을 안고 아부 조금씩 조금씩 휘청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고, 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군중 속 외로움
혼자여서 외로운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함께여도 외로운 것임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될 때 사람과 관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이 과연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예전에는 혼자가 외롭고 두려워서 관계를 구축했지만, 그랬던 것이 외려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일까. 관계 안에서의 외로움이 더 두려워질 때가 있다.
■ 이거 꼭 기억해야 한다.
그 어느 대단한 일이라 해도 네 귀중한 몸 망가뜨리면서 이뤄야 할 일 전혀 없다. 네 몸 망가지면서 붙잡고 있을 일 하나 없고, 사람 하나 없는 거고, 내 몸 망가지면서까지 미워할 사람도 전혀 없는 거고, 네가 가장 소중하고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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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세상 어디 들춰봐도 너보다 소중하고 귀중한 건 없어. 망가뜨리지 말고 함부로 대하지 마라. 건강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부질없는 거야. 괜히 와서 또 잔소리만 늘어놨네. 엄마 마음 알지.
■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
옛날에 그러니까 내가 아주 젊을 때의 일이다. 울 엄만 말했다.
“아들 그거 아니? 너 애기 때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널 잘 안아보지도 못하셨어.”
“응? 왜?”
“응,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를 안으려고 하면 누나가 울고 불고 떼를 썼거든.”
“어떻게?”
“우리 영욱인 엄마 꺼라고 왜 엄마 꺼 뺏어 가냐고 말야. 그렇게 떼를 쓰면서 울었거든.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닌 널 마음 편히 안아 보지도 못했단다.”
음….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낌없이 받을 수 있다면, 내 삶의 일부를 누구의 ‘것’으로 잠시 남겨 두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으며 평생을 살아간다면 비록 내 삶이 온전히 내 삶이 아니더라도 눈물 날 만큼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가 클 대로 커버려서 이젠 나를 더 사랑하고자 다짐했지만, 사람은 애초에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에서 태어나는 거였지. 난 또 그 사랑 먹으며 살아왔던 존재였지.
아주 어릴 적에. 내가 내 것이기 이전에 나였을 때, 그때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이, 내가 내 것이기 이후의 나에게 말했다.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때로 우리를 살게 한다고.
■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는 건더기가 부드러워서 잘 으깨진다. 근데 난 좀 딱딱한 건더기가 입맛에 맞더라. 식당 된장찌개 같은? 방금 끓인 티가 나는. 그러나 이 된장찌개, 몇 번이나 끓였다는 걸 안다. 식당 된장찌개보다 훨씬 더 오래 끓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엄만 온다는 날 위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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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끓이고 식을까 쭉 데우고 그러다 안 와서 불을 끄고, 내가 늦게 오니 다시 끓였다. 이 호박도 감자도 두부도 엄마를 닮았다. 나를 기다리다 축 늘어졌다. 쭈글쭈글 물렀다. 엄마의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난 서른이 넘어서도 식탁에서 자주 울었다.
■ 혼자 살다 보면 느끼게 되는 것들
무엇보다 외로운 것은, 일 보고 집에 도착하면 껌껌한 집안 풍경과 차가운 집 온도. 어떠한 소음 하나 없어 불을 켜기 위해 누르는 스위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그 기분.
멀어지면서 애틋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 친구, 대학 친구, 자주 싸우던 형제 자매, 이해할 수 없던 엄마 아빠, 그렇게 서로 욕하고 때론 미워하고 하더니 멀어지니까 애틋해진다. 때론 몸의 거리와 반대로 마음은 가까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한 달 유지비용이 만만찮다. 나 하나 먹고 살자는 비용이 이만큼이나 드는데, 몇 식구 먹여 살려야 했던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용돈이 적다며 엄마 아빨 미워했던 나를 돌아보며 정말 철이 없었구나,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심한 우울에 시달릴 때,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안정이 그립다. 가족의 품이 답답하다며 혼자 사는 걸 꿈꿨지만, 돌이켜보면 답답함이 아니라 따뜻함이었다. 문 박차고 나가 막상 부딪쳐보니 세상은 얼음장이더라.
■ 같은 온도라도 누군가는 따뜻해지고 누군가는 쌀쌀해집니다
4월과 10월, 4월의 기온과 10월의 기온, 둘 다 수치상으론 다를 거 하나 없는 영상의 온도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4월은 따듯해졌다는 반응이고, 10월은 쌀쌀해졌다는 반응이지요. 어쩌면 온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 절대적인 수치보단 상대적인 감각에 영향을 받나 봅니다.
절대적 수치가 아닌 상대적인 감각에 영향을 받는 것, 이와 똑같은 존재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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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언어’와 ‘관계’입니다. 말의 관계는 측정할 순 없지만 분명한 온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말과 관계의 온도 또한 절대적인 수치보단 상대적인 감각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지요.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말을 건네거나, 시답잖은 말을 건네거나, 시답잖은 응원을 건네도 누군가는 ‘따뜻하다.’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아주 조금의 시비를 걸어도, 시답잖은 장난이라도 누군가는 ‘쌀쌀하다.’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 손톱깎이
어느새 너저분하게 자란 손톱을 정리했다. 얼마 전에 자른 거 같은데… 얘는 지겹지도 않나보다 하면서. 손톱은 하루에 0.1 밀리미터씩 자란단다. 그렇게 열심히 자라고 자라서 내 눈에 띄게 되면, 뚝 잘리는 것이다. 그치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자란다. 덜 잘리든 더 잘리든 하루에 약 0.1밀리미터씩. 더 해보라는 듯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그래서 결국 자르는 놈이 이길까? 잘리는 놈이 이길까? 생각하다 그만 두었다. 결국 손톱이 이긴다. 나는 자라난 손톱을 다 깎지 못하고 눈감게 되겠지. 나 대신 다른 누가 남은 손톱을 말끔히 잘라주고 나는 묻히겠지. 했다.
■ 당신의 ‘해 봄’을 응원합니다
세상의 두려움은 두 가지입니다. 너무 몰라서 두려운 것과 아주 알아서 두려운 것, 전자는 상상이 안 가서 그런 것일 테고, 후자는 상상이 너무 잘 돼서 그런 것이겠죠. 그러니 경험이 많든 적든, 해 봤든 해 보지 않았든 세상은 어느 면에서든 두려움 투성이인 셈입니다.
일, 관계, 사랑 그중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두려웠던 일을 다시 시작하든, 해 보기도 전에 두려운 일을 시작하든, 나는 당신의 그 ‘해 봄’을 응원합니다. 예상되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당신의 그 해 봄, 예상되지 않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당신의 그 해 봄, 어떤 의미로든 용기 내어 한 발 나아가 본다는 그 해 봄, 해 본다는 건, 그 행동만으로 꽤 값어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성공으로 가건 새로운 시련으로 다가오건. 다시 당신의 해 봄을 응원하겠습니다.
2024. 9. 18. 다음에 제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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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2)
■ 정영욱 지음
◎ 3. 함께 했고 함께하고 있고 함께일 것이다
■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관계는 식물과 같아서 관심을 주면 자라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든다. 관계는 정직한 편이다. 저 스스로 자라는 것 없고, 저 스스로 시드는 것 없다. 관심을 주지 않는 것 또한 무관심을 준 것이니 관계는 늘 관심이거나 무관심이거나 무언갈 받고 있는 것이다. 또 정직한 만큼 간단하다. 관심을 많이 줬는데도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뿌리까지 썩은 관계이고, 조금 주었는데도 무럭무럭 자라준다면 나의 조그만 마음도 몇 배로 흡수해 주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계인 것이다.
그러니 정해진 답에 혼자 끙끙 앓지 말 것, 괜한 마음으로, 뿌리까지 썩은 관계에 관심을 쏟지 말 것. 괜한 마음으로, 건강한 관계에 무관심만 주고 다른 것을 탓하지 말 것. 이미 예상된 결말을 애써 부정하며 붙잡지 말 것. 잘 자라나고 있는 관계를 힘써 부정하여 방치지도 말 것.
■ 영원한 관계는 없다
가장 친했던 친구와 내가 뜸해지면서, 그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바뀌게 된다. 나와 뜸했던 친구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또한 바뀌게 된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한순간 남이 되고
가장 남이었던 사람이 한순간 숨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이치. 인정하고 살면 편한 사실.
영원한 관계는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으며, 영원한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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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관계에 덜 상처받기 위한 것들
나 싫다는 사람은 신경 끄고, 나 좋다는 사람을 신경 쓰고 살아갈 것. 나에게 오는 어떠한 미움에 이유를 찾아 헤매지 말 것. 나를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은 어떠한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나를 싫어한다는 것 기억할 것
혹해서 나의 약점을 보여주는 순간, 그 사람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치부를 보여주는 건 정말 주위 손꼽을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 감정에 휘둘려 먼저 마음을 다 보여주고 다치지 말자.
마음에는 이자가 없다. 내가 준 것 그 이상을 받을 거란 생각을 품으면, 나만 공허해진다. 줄 거면 그 이상을 되돌려 받을 마음은 버리고 줄 것.
사회에서의 관계는, 대가 없는 관계가 드물다는 것을 늘 기억할 껏, 선의가 있다면, 그 선의만큼 후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 늘 기억하며 주고받을 것.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것. 특히나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선 어제의 적, 어제의 친구, 오늘의 적, 오늘의 친구, 정신없이 돌아간다. 마음 단단히 먹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 것. 그렇다고 너무 또 너무 가볍게 생각하진 말 것.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
먼저 다 주고 진심이 안 통한다면서 혼자 아파하고 미워하지 말 것.
진심인지 진심이 아닌지는 상대가 정하는 것이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받아주지 못할 상대란 걸 몰랐던 내 잘못도 한몫할 것이다.
숨은 구석을 너무 파헤치려 하지 말자.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그 사람의 다른 면이 궁금하더라도 파헤치려 하지 말자. 꼭 연인관계에서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취향이 있고 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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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당신이 누군갈 믿어 주는 건 속 깊은 마음이겠지만, 믿으면서 한 편으론 상대를 변화시켜 함께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오만한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은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없고 고쳐 쓸 수도 없다. 상대가 소중하다면 고치려고 안간힘 쓰기보다, 단점을 눈감아 주려고 노력할 것. 혹여 상대가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면 놓아 줘라. 어차피 그 잘못, 다시 반복될 것이다.
■ 사람의 진가
사람의 진가는 힘들 때보다 행복할 때 나온다.
꾀죄죄할 때보다 여유로울 때 나온다.
어려울 때의 겸손과 배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내 주변 사람의 진가 또한 내가 힘들 때보다, 행복할 때 구분된다
동정 어린 응원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진심 어린 축하는 누구나 할 수 없기 때문에.
■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나를 지배하려는 사람, 언제 어디서 그렇게 대장 노릇을 했길래 사람 머리 위 꼭대기까지 서서 시종 대하듯 사람을 대하려는 지. 지극한 강약약강. 강약은 그러려니 해도, 약한 자에게 유독 강해지려는 인성은 피해야 한다.
좀 불리한 건 다 모르는 사람. 누군 잘 알고 다 알아서 해 주고, 참아 주고, 들어 주고, 어기지 않는 게 아닌데. 꼭 불리한 상황만 되면 모르쇠가 되더라. 꼭 거짓말을 해도 기억 안 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꼭 때리지는 않아도 과격하게 때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은 믿고 걸러야 한다. 그것도 폭력이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진 몰라도 글러 먹었다. 곁에 두면 언젠가 그 폭력에 내가 엮이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사람. 결정의 기준이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는 사람, 휴일, 출근 시간 퇴근 시간 같은 시간 개념부터 사는 곳, 좋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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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음식 등등 남의 환경은 이해조차 할 생각이 없는 사람. 답답하다. 악의적이건 원래 그렇건을 떠나서 함께하면 내가 피곤해진다.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 꽂으려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의 뒷담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한다거나, 개념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앞에선 웃어주고 되돌아서면 표정 싹 변하는 사람. 괜한 걸로 미움과 열등감이 꽉 찬 사람.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될 게 뻔하다.
■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나의 미래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껏 어떤 가치가 있는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곧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미래입니다.
과거였고, 현재이지만, 곧 미래가 되겠지요. 아주 기대되기도, 아주 긴장되기도 하는 사실입니다. 함께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모여 나의 앞일들이 펼쳐진다니요. 지금껏 나는 홀로 무언갈 해 오고 쌓아온 것 같지만, 결국 다 곁에 있는 누군가와 얽혀 배웠으며 견인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그러니 곁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풍기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하도록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도, 시간이 고쳐주질 않습니다. 또 평가가 좋다고 해도 나에게 독이 될 사람입니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으니 괜히 시간 들여 믿어 주면 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하란 말은 이 뜻일 겁니다. 나의 지금을 망치는 사람은 나의 미래를 망치고, 나의 지금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나의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곧 나의 미래입니다.
■ 관계를 오래 지키는 사람들의 공통점
0 표현을 예쁘게 한다
보통의 대화뿐 아니라 서로 간의 이해가 틀어져 서운함을 표현할 때에도 그 표현법이 선을 넘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서로 이해만 할 순 없는 관계 에서 표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기분 나쁜 표현 이 오고 가는 관계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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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경청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상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거나, 상대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행동 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그만큼이나 관계에서 경청의 중요성을 알 고 있다. 사회생활에서 화법이 중요한 만큼, 관계에 있어 듣는 태도가 중요 하다.
0 다름을 인정한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 틀리고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상대가 아니 고 상대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논쟁의 순간이 오면 적당히 의견을 표현하고 뒤로 물러선다. 또 물러선 이후엔 그의 대처에 상대가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스트레스는 덜고, 인정받는 상황을 만드는 현명한 사람이다.
0 거절 의사 표현이 정확하다
부탁을 거절했을 때의 껄끄러움이 싫어 거절을 하지 않는다거나 상대가 포 기할 때까지 애매모호하게 미룬다거나 하는 경우가 적다. 거절을 행하지 못 하는 상황의 연속은 나와 상대를 동시에 지치게 한다.
■ 할 거면 제대로
우리 엄만 세상에서 가장 덕 없는 행동이 덕을 베풀어 놓고 생색내는 거라고 했다. 그건 덕이 아니라 악덕이라고, 그럴 바엔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빌려줄 마음이라면 줄 것처럼 빌려주고, 베풀 거면 영영 모른척할 것처럼 베풀어야 한다. 주고도 욕먹을 짓 하지 말고 받고도 욕먹을 짓 하지 마라. 그럴바엔 주고받지 마라. 양보할 거면 제대로 양보하고 내어줄 거라면 제대로 내어 주어라.”
■ 말을 해야 상대가 알아줍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안녕하세요.” 또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물어봅니다. 그럼 진료를 받으러 간 환자는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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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파서 왔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덧붙여 이야기하기가 대부분입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는데요. 어떤 때에는 어떻고 저런 때에는 저렇고요. 얼마나 되었고요. 무엇이 걱정돼서요. 그리고 이상한 게요….”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하면 다 나올 것을 구구절절 설명합니다.
늦지 않게 지금, 내 심경을 표현하세요. 표현하지 않고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론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으니까요.
■ 익숙해지다
<자동사> 자주 대하거나 겪어 잘 아는 상태가 되다.
‘익숙해지다’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자주 대하거나 자주 겪어 잘 아는 상태가 되었을 뿐,
자주 대하거나 자주 겪어 막 대해도 되는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자주 대한 만큼 소중하고
잘 아는 만큼 조심스러워야 할 상태인 것
이미 오래 함께한 사람을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줄 순 없어도,
서로의 고마움을 기억하며 혹여 헤지진 않을까
온 맘으로 그 익숙함을 소중히 다루는 것.
많이 익숙해진 우리 관계가,
결코 헤진 관계는 아니라는 것.
마음뿐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랴 봅니다.
■ 마음은 곧 선물 받은 것
사람의 마음은 소중한 선물과 같아서 한 번 잃어버리면, 이전으로 돌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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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선물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새것을 구한다 해도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처럼. 선물 받은 그것이 아니면 아무리 똑같은 외형이어도 성에 차지 않는 것처럼.
한 번 잃어버린 마음은 다시 찾는다 해도 무의미한 일.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이미 그때 주고 받은 소중한 마음이 아니게 되는 것.
받은 마음을 익숙함에 함부로 잃어버리지 말 것.
또 선물이 아니었을 마음을 오랜 시간 간직하느라 애쓰지 말 것.
마음이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이전 그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고,
언제나 귀중히 여기되 잃어버린 것을 너무 오래 찾아다니진 말 것
■ 당신은 모든 면에서 유한적인 사람입니다
인간의 세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파괴됩니다. 그리고 파괴된 세포는 새롭게 태어난 세포로 대체 된다고 합니다. 스스로가 끝없이 분열과 재생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분열과 재생을 반복하다 보면, 재생 기간이 늦어져 늙어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각 신체 부위마다 다르지만 가장 긴 기간에 거쳐 재생되는 세포가 지방 세포입니다. 약 8년이나 걸린다죠.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거쳐 파괴된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태어나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나는 이미 내가 아니게 됩니다. 어느새 내가 탄생하며 처음 지녔던 세포는 전부 없어지고 다른 세포로 새롭게 대체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8년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셈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내 나이가 서른이라면 난 이미 3번 이상 새로운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는 사실 말이죠.
변했다. 변함, 변화 말이죠, 비단 인간의 몸뿐만 아닐 겁니다. 나는 느끼지 못할지라도 변해 버린 것들이 참 많습니다. 변해도 모를 만큼 익숙해졌지만, 은연중에 새로워진 것들 투성이일 것입니다. 내 몸처럼 내 것이기에, 그래서 너무 익숙하기에 인지하지 못한 것들 말이죠.
그러니 여전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여전한 것이 아닌 셈입니다. 내 몸조차 여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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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8년에 거쳐 완전히 변화된 내가 여기 있듯, 너무 익숙한 탓에 몰라봤지만 분명 몇 번은 분열과 재생을 반복하며 변화했고 그만큼 재생 속도가 늦어져 노화된 것들이 무더기일 겁니다.
모든 것은 이미 그렇게 끝없는 퇴보와 탄생의 과정으로 인해 노후되어 나에게 다가왔고, 지금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실 갑작스럽다고 느꼈던 그 어느 것도 갑작스러운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영원한 것 하나 없이 유한적인 걸 붙잡고 무한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익숙할 것 하나 없는데, 익숙해하며 서서히 변해가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 모두가 답답한 사람들
운동경기를 보면
“에이 저기선 저렇게 하고 여기선 이렇게 해야지….”
생각은 현역 선수보다 뛰어나지만,
막상 겪어보면 작은 상황에도 몸 따로 마음 따로
고장 나는 나를 볼 수 있다.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 ‘나였으면…’ 답답해 하지만
‘나였어도’ 달라질 게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나였으면’ 더 최악을 만들 상황이 많다.
세상은 내 생각만큼 움직이는 것이 없다. 남도 나도 다 똑같다.
누가 볼 땐 나 또한 아주 답답한 사람일 뿐.
훈수 두긴 참 쉬워도,
받는 사람은 나를 어렵게 대하게 된다는 것.
남을 평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어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
‘나였으면.’이 아닌, ‘나였어도.’ 주변과의 예민함을 줄이고,
스스로 화를 만들지 않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 말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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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은 한 다리를 건널 때마다 왜곡되어 전달됩니다. 대화는 운전과 같아서,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전달한다고 해서 정확히 전달되는 게 아니고, 또 내가 잘 듣는다고 해서 완벽히 전해 오는 것도 아니죠. 기억 자체가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고, 상대가 감정이 순간 격해져서 과장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대화의 오고 감 속 어딘가에서 쿵! 사고가 납니다. 악의적인 마음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렇게 됩니다. 이유라면 말은 꼭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가 섞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말이든, 아주 일부만 수용하는 게 맘 건강에 좋습니다. 어떤 말이 들려 온다고 해도 전부를 믿지 않고 반의반 정도만, 그러니까 “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럴 만도 하겠네.” 정도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게 더 이상의 오해와 속상함을 만들지 않는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말은 전해지면 왜곡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곡된 말로 가득합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두 귀로 경청하기 위해서라지만, 신경 쓸 필요 없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 진짜 내 목소리
누구나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내 목소린데도 들으면 낯선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면서 괜히 그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고 꺼려집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외부를 통해 들으면, 꺼려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녹음되어 들려진 내 목소리 중 무엇이 진짜 내 목소리일까 싶습니다. 정답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목소리는 성대의 떨림이죠. 내가 말을 할 때 목소리는 성대의 떨림이 뼈로부터 전달되어서도 들리고, 입 밖으로 뱉어져 내 귀에 닿은 목소리도 들리니 두 개가 합쳐진 불순물이 낀 소리인 셈입니다.
신념을 가진다는 건 옳은 일이지만, 그 신념이 늘 옳을 순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참 옳은 일이지만 그 자신감이 늘 옳을 수도 없죠. 모두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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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하는 ‘아니오’. 내 생각을 표하는 것은 참 옳은 일이지만, 그것 또한 늘 옳을 순 없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 짓기도 전에 내가 정말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진짜 내 목소리가 무엇인지 헷갈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나온 목소리가 진짜 목소린지, 아니면 들려오는 소리가 진짜인지.
내가 하고자 하는 나의 평가, 또 외부로부터 전해 오는 나의 평가, 내면에서 말하는 나의 주장, 그 어느 것이라도 한 곳에 지나치게 기우는 순간 이상에서 제법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 바쁜 세상에서 나만 느낄 것 같지 않은 것들
0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은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들이 된다. 그래서 때 론 내가 쥐고 있는 행복이 두려울 때가 있다.
0 어릴 때 좋아하는 건 맨 앞, 싫어하는 건 맨 뒤였는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걸 마음으로 공감하게 된다. 좋아하는 건 미루게 되고 싫어하는 것부 터 후딱 해치우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다.
0 사람이 가장 무섭다. 그런 사람을 잘 믿는 나도 무섭다.
0 혼자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고, 아직 다 즐겨보지도 못했다. 굳이 혼자를 자 처하는 건 아니지만, 또 굳이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목매달지 않아도 된 다는 거, 세상엔 나 혼자 즐길 거리가 널리고 널렸다.
0 건강에 나쁘다는 것들은 죄다 내 친구가 되어 있다. 내게 진짜 위로가 되는 건 왜 얘네뿐인지. 알게 된 게 밉다가도 얘네들 없으면 나 어떻게 버티지 싶다.
■ 바다가고 싶다는 말
내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 버겁거나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 갑갑할 때에는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론 ‘바다 가고 싶다’고 말이죠.
언젠가 독자들에게 ‘힘들 때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물어봤을 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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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답은 역시 ‘바다에 가고 싶다.’였습니다.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하늘 보기’였고요. 피식했습니다. 역시 사람 다 똑같이 사는구나. 예쁜 것과 탁 트인 것을 보면 마음이 개어집니다. 푸른 것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마음이 정화됩니다. 모두는 은연중에 그 치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인이 바다 보러 가고 싶다 하면 무슨 일 있냐 불어보기도 하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면 무슨 걱정이라도 있냐 물어보는 것이겠죠.
근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바다를 보러 가도, 하늘을 봐도 달라질 거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너무 분해서, 그리고 답답해서 그것을 식혀보고자 바다를 보러 가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 사실 실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힘든 일은 여전히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풀리지 않던 일이 갑자기 풀리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럭저럭 마음이 괜찮아집니다. 또 그 괜찮음으로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습니다.
주변인이 “나 바다 가고 싶어.”라고 말하거나, 하늘을 보는 행동을 자주 한다면 어떠한 압박으로 인해 구석으로 몰려 있다는 걸 뜻합니다. 나 또한 그런 말과 행동을 자주 한다면 그런 것이 분명하겠죠. “나 좀 약해지고 싶어.” “나 좀 인정하고 싶어,” “나 좀 벗어나고 싶어.” 정도의 간절함일 테지요.
◎ 4.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사랑일 것이다
■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만나는 것
누군가에게 한 치의 마음이라도 떼어 주는 게 내가 아파지는 길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또 겨울바람이 차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떼어 준 마음, 구멍 나 버려서 채우려 할수록 나만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 허기진 마음 하나 참지 못하고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공허함을 채우려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늘 그렇게 상처받았고, 늘 그렇게 결핍했단 걸 알면서도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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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의 나의 상처와 허기는 잊어버리고 다시 그 어떤 마음에게 끌리는 어쩔 수 없는 미련이었다. 비록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지라도,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로 머뭇거리다 성큼, 다가간다. 마음 한켠 내어주고 마음 한켠 베어 문다.
언젠가 만날, 만났을, 만나고 있을 사랑하는 사람아. 사랑은 미련한 마음과 미련한 마음이 대면하는 것, 미완의 마음과 미완의 마음이 미완의 감정을 견인하는 것, 완연하지 않더라도 상처가 반복되더라도, 다 채워 넣지 못하더라도 그 끝을 얘기하지 않아야겠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비웃더라도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는 너와 나만이 끌고 갈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아는 사랑은 언제나 그래 왔으니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행복함과 만족함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 사랑 때문에 아파했던 당신이
이런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시간을 내고 돈을 쓰면, 소중한 마음을 준다 생각하며 그 마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나하나 계산해 가면서 자신이 준 마음만 값비싸게 생각하는 사람 말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주 표현해 주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고마워.” “보고 싶어.” “뭐 먹었어.” “오늘 하늘 참 예쁘다.” 오늘 온종일은 아니더라도 사소한 거 놓치지 않고 공유하려는 사람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만큼, 나를 구석구석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무엇보다 당신에게 딱 맞는 사람이 아니라, 덜 맞아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으며 좋겠다. 그래서 서로가 맞추어 가고 싶단 생각이 자꾸 드는 사람, 그런 마음에서 사랑이 더 깊이 있게 자라는 것이니.
사랑 때문에 아파했던 당신이기에 꼭, 이런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 우리라는 도형
각을 가진 도형은 모서리로 그 이름을 짓습니다. 이각형은 없죠. 각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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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서리가 적어도 세 개 이상이어야 도형이 됩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아, 이러면 끝이 없으니 우리 더 많은 모서리는 ‘다각형’으로 합시다.
당신과 나는 이제 도형이 될까 합니다. 이각형은 없죠. 그러니까 너와 나만으로는 도형이 되기 어렵습니다. 해서 뾰족한 모서리 하나를 추가합시다.
만남이라는 모서리. 더해서 약속이라는 모서리. 이해라는 모서리. 하나 더. 하나둘씩 모서리가 늘어날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겠지만 이윽고 너와 나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하나의 공간이 생기어 도형이 되었습니다. 모서리가 늘어날수록 각이 점점 넓어져 뾰족함이 유해지기도 합니다. 처음엔 삼각형이었지만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아 이러면 끝이 없으니 그 공간과 꼭짓점 전부를 더해 ‘우리’라는 이름 지어 봅시다.
■ 미안해 보단 고마워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밖에 안 돼서 미안해.”
“~해서 미안해.”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할 때가 많지만, 그 말은 진심을 담아 딱 한 번만 해도 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중한 누군가 원하고 있는 것은 미안하다는 말과 주눅 든 당신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미안함을 충분히 표현했다면, 미안한 마음 더 담아 고맙다는 말을 대신 꺼내 봅니다.
“~못 해 줬는데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밖에 안 되는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한 나를 그럼에도 믿어 줘서 고마워.”
미안하다는 표현보다, 고맙다는 표현을 더 많이 건네주세요. 그럼에도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믿어 줘서 고맙다고. 당신의 미안함은 여러 번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써 보여주세요. 그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고개 숙인 모습보다 고맙다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고맙다며 손 꽉 잡아주는 믿음직한 모습을 원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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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에 두고 싶어지는 사람
0 서로의 아픈 곳을 너무 잘 알아서 상처받을 일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 려 적어지는 사람. 약점을 다 보여주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 사람.
0 미워서 서로 다투더라도 싫은 건 절대 아닌 사람. 싫어서 싸우기보다 좋아 서 싸우는 것이 마음으로부터 느껴지는 사람, 다투고 나서 더 애틋해지는 사 람.
0 솔직하게 감정을 터놓는 사람, 꼭꼭 숨기다가 서운함을 한 번에 터뜨리지 않는 사람
0 서로의 주변인을 충분히 존중해 주는 사람. 주변인을 알아 가고 이해해 보 려는 것에 적극적인 사람.
0 내가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어 주는 사람, 겉으로 보여지는 형식적인 응원보 단, 속에서부터 나오는 응원, 덕에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끔 해 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 하트
그 사람은 어디서 본 건지 이렇게 말했어요. 하트의 움푹 파인 곳은 사랑이 누군갈 따듯하게 감싸 줄 수 있다는 뜻이고, 뾰족한 모서리는 아프게 할 수도 있는 뜻이라고요. 그러게요. 하트는 마음을 형상화한 거잖아요. 내 마음을 보여 준 순간 나를 가장 따뜻하게 감싸 주는 사람이자.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이 생겨요.
그 사람은 언젠가 그렇게 말하고, 꼭 그렇다고 가르쳐 줬던걸요.
■ 벌꿀은 유전적으로 벌집 모양을 기억한대요
“벌꿀에 물을 조금 넣고 흔들면 벌집 모양이 만들어진대요.”
“아 그거 봤어요. 자연 벌꿀은 유전적으로 벌집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 말이죠.”
“벌꿀이 벌집 모양 비슷하게 변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보다 유전적으로 기억한다는 말을 만들어 낸 인간이 더 신기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말이 안 되는 소리죠. 벌꿀 같은 무생물이 유전적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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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유전적으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습성이 있는 거 같아요. 꿀벌이 본능적으로 꽃 안에 들어가서 꿀을 따오고 번식시키는 것처럼,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그런 습성이 있는 거죠.”
“쉽게 말하면 운명을 믿고 싶은 거 아닐까요? 벌꿀에 물을 조금 넣고 흔들다가 우연히 벌집 모양을 나타낼 때, 그러니까 마치 마법이라도 일어난 양 말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벌꿀을 유전적으로 벌집일 때의 모양을 기억한다.’라고 하면 신비로워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잖아. 마치 운명인 것처럼.”
■ 그 애를 행복하게 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 애를 행복하게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애의 다정한 마음이었다. 그때 그 애를 따뜻하게 안아준 건 내가 건네준 마음이 아니라, 그 애가 나에게 건네준 마음이었다. 내 덕에 행복하다 말해도, 사실 내 덕은 없었다. 나에게 보낸 사랑이 부메랑처럼 되돌아가 그 애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애의 마음일 뿐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쉼표 하나 없이 나를 사랑해야 하는 상대와 어느새 지쳐있는 내가 있었다.
사랑은 때론 뒤늦게 “사랑이었다.”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언제부터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마음이 문제야
걸어서 5시간이 걸려도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가는 게 사람이고, 택시 타고 10분이 걸려도 마음이 없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가기 싫은 게 사람이야. 늦잠 자서 헐레벌떡 나가면서도 관심 있는 게 있으면 찾아보는 게 사람이고, 일찍 일어나서 3시간이 비어도 관심이 없으면 찾아보지 않는 게 사람이야. 왜 너만 몰라. 전쟁통에 먹고살기 힘들어도 사랑하면 껴안고 같이 죽자는 게 사람이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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